남한에 대한 현실관

 

1988. 6. 19. 주후.

 

본문: 창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오전에 우리 남한은 어떠한 형편에 처하여 있느냐 하는 것을 재가 본 대로  증거했습니다.

 남한에 있는 교회들은 어떻게 되어 있으며 남한에 있는 현 정권자들은 어떻게  되어 있으며 또 현 사법가들은 어떻게 되어 있으며 또 모든 의회들은 어떻게  되여 있으며 정권을 노리고 있는 정권의 욕망자들 또 정권의 야욕자들은 어떻게  되어 있으며 모든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어 있으며 학생들은 어떻게 되어 있나  하는 것을 간단하게 오전에 증거를 했습니다.

 또 남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자기가 할 일이 뭐인가 하는 것도 오전에 말을  했습니다. 저 할 일은 안 하고 전부 자살 행위를 하고 있다 하는 것도 오전에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며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하며 사업가들은  어떻게 해야 하며 모든 언론가 사상가들은 어떻게 해야하며 정권을 모두 노리고  있는 그런 야당들은 어떻게 해야 하며 여당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을 똑똑히  말했습니다.

 이것이 반드시 중앙청에도 올라갈 것이고 또 각계에 모든 인물들에게도 다  전달이 되리라 생각이 됩니다. 전달을 받고 이 말이 참되다 인정하고 그대로  하면 살 것이고 거게서 패역을 부리면 패역부리는 그 자부터 먼저 죽고 남은  백성들도 다 형편이 없어질 것입니다.

 이러니까, 남한에 있는 교회는 지금 뭐 재 기반 닦고 감투 장만하고 그렇게  어리석은 그런 짐승같은 야만욕을 버리고 교회 전체를 위해서 또 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현재에 어려운 문제를 위해서 자기 교회 자기 가정 자기 개인의  신앙을 위해서 다 회개와 기도로 힘써서 옳은 것이면 생명을 애끼지 않는 순교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고 삐뚤어진 길이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뺏겨도 당당히  담대히 용감스럽게 나아갈 수 있는 이런 모든 용기들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 복술이 늘어서 어리석게 쪼그만한 범위에서 제 발등에 불끄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그렇게만 하면 되리라 생각하는 그런 것은 어리석습니다.

 공산주의가 안 돼야 학생 저거도 있지 이북의 학생을 똑똑히 알아보지요.

거기는 노예라. 자유가 없어. 남한에 학생들의 하는 행동 이북에서는 절대  하루도 못 합니다. 하면 다 숙청입니다. 못 합니다. 너무 자유가 지나쳐서 하고  있습니다. 또 거게는 언론 자유가 없습니다. 그뿐아니라 행동 자유도 없습니다.

 그분들이 점령한 땅에는 천주교는 좋을 줄 알아도 천주교도 그들이 점령할  때까지는 아주 입에 밥을 서로 내먹는 거 팔이 이렇게 하지마는 딱 점령하고 난  다음에 점령지에 천주교가 있는가 가서 살펴보십시오. 어느 기독교 종파도  없습니다. 기독교만이 아니오. 다른 종교도 없습니다. 그들은 신이 없다고 하는  것이 주장인데 무슨 종교가 있겠소? 이러니까, 뭐 사소한 것 가지고 ‘네가 많이  먹었느니 적게 먹었느니’ 많이 먹었으면 배가 터져 죽겠지 뭐. 저 많이 먹어도  또 우리 먹을 거 있으니까 문제없지 않소?  또 도둑질 해다 어데 갖다 숨겨 놨다. 숨겨 놨으면 뒤에 발견 나오지 숨겨 놔도  우리 먹을 거 있는데 뭐. 뭐 너 거처할 집을 잘 지어놨다 뭐. 잘 지어 놔 봤자  남한 국경 안에 있지 국경 밖에 날아갔겠소? 좀 넓게 생각하고 그런 시비 곡직은  지금 가릴 때가 아니라. 지금 위급해. 그저 되나 안되나 남북 통일 통일만 할 게  아니라 민주주의로 통일될 건가 공산주의로 통일될 건가 그걸 좀 생각하고  해야지.

 또, 남북 학생 회담 좋아요. 할라면 이북 학생들 만나 가지고 민주주의로  통일하자 하는 그런 주장을 할라면 가고 아예 그 사람들 공산주의로 통일하자 할  때에 입도 못 벌리고 가 가지고는 꼼짝도 못하고 그랄라면 될 거고 가지 말아야  돼. 갈 필요가 없어. 갈 자격 없어 우리는 민주주의 아니요, 우리는? 공산주의  아닙니다.

 그것은 다 뒤로 미루고 어짜든지 이거 힘에 버거운 올림픽을 해놨는데 이미  시작해 놨으니 이거 어짤 수 없어. 이거는 얼른 치러 놓고, 이거 치러 놓으면 큰  일이 둘인데 대사 하나 치러 놓고 나면 이제 반공 하나 뿐입니다.

 이래야 될 터인데, 이북에서는 남침의 야욕이 사람마다 가뜩가뜩 차 가지고  있는데 이남에서는 지금 이북을 부러워하고 있고 헐뜯는 것은 이남입니다.

정신차려야 돼.

 6·26 때 보니까 그 건방진 학생들 여학생들 마구 모조리 잡아다가가 가지고  전쟁 가 가지고 뭐 죽는데 참 비참하게 그때 뭐 수십만 죽었습니다. 다 죽은 건  수백만 죽었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지금 국가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이 전쟁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풀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도록 우리가 생명을  내놓고 기도해야 될 이때입니다.

 사회의 책임은 교회에 있는 것이고 또 교회 책임은 모든 성직자들에게 있는  것이고 성직자 중에도 책임은 그 모든 책임자들 머리되는 그런 분들에게  있습니다.

 여게 이제 읽어 본 창세기 3장 14절로 19절까지에 읽어보면 아담 해와가  타락해서 저주받으니까, 아담 해와가 범죄로 저주받으니까, 아담 해와만  저주받지 안했소. 아담 해와가 저주받으니까 땅도 저주받고 모든 이 초목들도 다  저주받고 짐승도 저주받고 사람도 저주받았습니다. 요것을 단단히 명심합시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저주받을 짓을 하고 나면 사람만 받는 게 아니라 모든  만물은 사람에게 속했기 때문에 땅도 초목도 짐승도 전부 저주받습니다.

 또 창세기 6장 11절로 12절까지에 보면 사람이 패괴해지니까, 패괴해진다 말은  돼지 뒷발 모양으로 어기기만 하고 삐뜩거리고 어기기만 하고 거역만 하고 늘  깨뜨리는 행동만 하는 것을 가리켜서 패괴라고 말합니다. 어짜든지 옳은 말 하면  어기고 건방지고 삐뜩거리고 뭣이든지 뭐 뿌사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 교회에 무슨 일이 없으면 배가 아프요. 무슨 일이 있어서  그라면 눈이 버쩍 뜨이고 기분이 좋아서 ‘어? 어? 무슨 일? 무슨 일?’ 이렇게  하는 그자 자체가 저주를 받습니다. 그거. 회개해야되지.

 어떻게 하나님이 그거 축복을 할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를 그라는데 그거 내비  두겠소?  제까짓 게 뭐 건강하면 소용 있는가? 건강한 자들도 당장에 평생 면하지 못할  병도 들 수가 있고 죽을 수도 있고 또 높은 자도 망할 수도 있는데.

 백향목 잣나무를 꺾는다 그 말은 쭉 곧게 커 올라간 맵시 좋고 모든 사람이  부러워한 어떤 위대한 인물이라도 하나님이 탁 꺾어 버리면 꺾어지지 뭐 아무  소용없어.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가 제일 불쌍한 자라.

 그래서, 하나님이 이 모든 인간들로 인해서 땅과 만물과 모든 혈육있는 자들이  다 패괴됐으니까 이것을 다 내가 전멸시키겠다 하시고 홍수로 멸했으니까,  그런데 식물은 근 일 년 물 속에 들어 있어도 물이 쭉 빠지고 나니까 모두 움이  트고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버러지라도 육지에 있어 호흡을 하는 것은 패괴됐기  때문에 한 마리도 살지 못하고 다 죽었습니다. 인제 그것을 노아 방주에다가  옮겨서 번식 종자로 둔 것만 남았지 나머지기는 다 전멸을 당했습니다.

 여게서, 자기 하나 잘못하면 모든 전부가 다 잘못돼진다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출애굽기 32장 25절로 29절에 보면 거게 말하기를 아론이 방자함으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방자했다 그랬습니다. 모세가 내려와서 이것을 숙청해  가지고서 그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진 이쪽에서부터 저쪽 진까지 왕래하면서  모조리 회개하지 안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안하는 자는 모조리 죽이라  했습니다. 네 부모라도 죽이고 형제라도 죽이고 남편 아내라도 죽이라. 모조리  그때 다 죽였습니다. 그날 죽은 것이 삼천 명, 가량 죽었다 거게 출애굽기  32장에 보면은 기록돼 있습니다.

 그렇게 죽이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죽였으니  이들은 다 하나님에게 바치운 자라, 하나님에게 쓰여진자라, 하나님의 일한  자라. 이러기 때문에 그때부터 땅위에 축복을 하셔서 그들은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한 사람이 그 교회에 방자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안하고?  방자한 그런 행동 그저 건방지게 넘치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그런 자가 있으면  온 교인이 전부 단체 돼 가지고서 너 왜 그라노 그라노 전부 이래 총공격해서  그걸 회개를 시켜야 되지 찌글찌글 웃으며 실실 그걸 조장을 시켜 가지고서,  하지 말라 해도, 가증스러운 거 있습니다. 그리 하지 말라 하면서 강하게 하게  만듭니다. ‘그라면 되는가? 저거 저 백지 저 큰일 날 짓하고 있네. 그라면  되는가? 그라면 안 돼.’ ‘안 되기는 뭘 안 돼?’ ‘아이 거저 또 저’ 하지  말라 하면서 하라고 용기를 주는 그런 악질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도 알아.

우리도 나도 아는데 하나님이 몰라?  그런 자가 하나 있으면 너도 나도 합력을 해 가지고서,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들이 돌아보아 믿음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망령된 자가 있어서 잠깐 동안 그  행락과 일시에 필요한 그런 한 그릇 식물을 위해서 장자 기업 판자와 같은 그런  자가 있는가 그런 것을 다 돌아보고 또 쓴뿌리가 나서 많은 사람을 더럽힐까,  쓴뿌리는 뭐이 쓴뿌리라 했지요? 쓴뿌리는 뭐이 쓴뿌리입니까? 쓴뿌리는  뭐이요? O집사님. 네, 쓴뿌리는 악이라 말입니다. 자기중심. 자기중심의 인간이  이 교회에 있으면 교회가 안 됩니다. 뭐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그런 자가 있으면  전체가 망하는 줄 알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 권면 하고 그게 아닌 것으로서  대적하고 협동을 안 해야될 터인데 그런 자가 있으면 협동을 해.

 이래야 이거 교회가 돼 나가는 것인데 비떡비떡하면서 어짜든지 건방을 피우면  저만 망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살기는 사는데 하나님의 축복이 없지 뭐.

없으니까 택한 자라도 구원은 하나도 없어. 또 나이가 많아 가면 비참해집니다.

 이러니까, 이거 제일 서부교회 망하고 흥하는 것은 백 목사에게 달렸습니다.

그만치 나도 책임이 무겁지만 여러분들에게도 중요한 줄 알아야 됩니다.

 백 목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여러분들을 기뻐하셔서 축복할 것이고 나를  미워해서 고만 밉상스레 보이면 여러분들도 다 절단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일  기도할 것은 목사 위해 기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기도요.

 이런데, 나도 힘을 쓸 터이니까 여러분들도 같이 힘을 써서. 각자가 자기 한  사람 잘못되면 자기에게 속한 전체가 다 망하는 줄 알고 우리가 힘을 써서  고쳐야 될 터인데 고칠라 해도 고치기 어려운데 역부로 삐딱삐딱 건방되게 해  가지고서 복음을 훼방하고 교회를 훼방하고 고런 나쁜 심보를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그 비참합니까?  예레미야 5장 1절로 2절에 보면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킬라고 하나님이 작정을  하고 선포를 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이제는 전멸을 시키겠다 선포하시고 난  다음에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 성에 공의와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하나라도 발견해라. 그러면 그  사람을 인해서 내가 예루살렘 성을 용서하고 기다리겠다.’ 말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의는 귀합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가 없었으면 이 우주는 그만  전멸되고 말았습니다. 그 의인 노아의 여덟 식구로 인해서 이 우주가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으니까 뭐 이런 거 민족이고 인류고 뭐 문화고  떠들어 쌓지 이게 다 신앙 지키는 노아의 신앙의 그 혜택이 아니면 이거 다  없어졌습니다.

 이러니까, 나 한 사람을 작다고 생각지 말고 나 한 사람이 참 하나님을 두려워  섬기고 그의 뜻대로 살라고 애를 쓰면 하나님께서는 그 한사람을 버리지 안하고  그 한 사람이 죽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손을 떼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따라가서 비로소 발견하고 난 다음에  ‘아, 엘리야 당신은 이스라엘의 마병이요 불병거라. 이스라엘이 이렇게 미약한  가운데 있으나마 외국이 침노하지를 못하고 이렇게 국방이 잘 돼서 평안하게  있은 것은 군대들이 국방한 게 아니라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국방한 마병이요  불병거였구나.’ 하는 것을 영감을 뜨고 난 다음에는 봤습니다.

 누군지 몰라도 이 나라도 진실되이 하나님을 믿고 바라고 겸손히 그분 앞에  회개하면서 부르짖고 이 나라 구원을 위해서 힘쓰는 그 사람보고 하나님이 뭐  참고 견디시고 두고 있는 것이지 미군이 강해 그런 줄 압니까? 아니오.

 6·25때 저는 피난하지 안했습니다. 6·25 인민군 속에 살았습니다. 살면서도  매일 세 번씩 종치고 예배보고 그들은 매일 사형 선고 내려놓고 오늘 잡으러  온다 내일 온다 해도 그대로 예배보고 있었는데 보니까 뭐 미군들 뭐 군기 좋다  하지마는 밀고 내려오니까 국군이 먼저 쫓겨서 후퇴하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미군들이 쫓겨 내려오는데 그 뭐 소용이 있습니까?  저 있는 고게서 한 이 키로 가면, 이 키로 가면 고거 있는데 이 키로 있는 데  고게서, 바로 이 키로 있는 거게서 씨악실 그 호행이라 하는데 한 높이가 아마  한 아남은 길 될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냇물인데 냇물 물이 탁했습니다.

마구 차가 거기 가서 전부 얼마나 뭐 수백 대인지 수천 대인지 뿌숴지고 미군이  얼마나 참 죽었는지, 그 모두 키도 거의 한국 사람 목 반이나 되는데 그래  가지고서 다 죽어서 참 참혹하게 많이 죽었습니다. 우리나라 위해서 그분들이  와서 많은 희생을 당했습니다. 이랬는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붙여 놓으니까 뭐  힘을 쓸 수가 있습니까? 안 됩니다.

 이래서 다 아는 대로, 후퇴할 때는 여게 초량교회에서 밀려서 쫓겨 내려온  목사들이 주 모아 가지고서 마구 밥을 굶고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대성통곡하고서 죄를 사해 달라고서 대성통곡이 일어 난지, 나흘 동안인가  집회했는데 처음에는 냉냉하다가 나중에 회개를 하고서 깨닫고 대성통곡이  일어난 지 하루만에 갑자기 후퇴 명령이 내려서 그들이 후퇴했습니다. 누가  후퇴시켰소? 하나님이 후퇴시켰지. 어리석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 한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에게 모든 게 매인 줄  알고 그분을 그분으로 대접을 하고 그분의 긍휼을 입을라고 겸손히 간청하는 그  나 한 사람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이 천 명을 구원하는지 만  명을 구원하는지 백만 명을 구원하는지 모릅니다. 그 만큼 우리가 예수님의  피공로 때문에 중요성을 가진 것을 깨닫고 우리가 힘을 써야 합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에 보면은, 아브라함아 너만 내가 시키는 대로 바로 하면  본토 민족 친척 아비 집을 떠나고, 네가 나 만나기 전에는 지방 정실에 속해  살았고, 혈육 정실에 속해서 살았는데 거게 따라서 동하고 정했는데 인제 그것을  내어놓고 네가 내게 따라서 나를 따라서 모든 지방을 처리하고 나를 따라서 모든  혈육 정실들을 처리해서 나를 그 위에 두고 나 시키는 대로 모든 혈육이나  정실이나 지방 정실이나 모든 사물들을 처리하고 나 인도대로 하기만 하면 내가  네 이름을 창대케 하고 너를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고 천하 만민이 너로  인해서 복을 받고 너를 복 주는 사람 내가 그도 복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리라.

 하나님이 축복하는 자를 누가 저주할 수 있소? 하나님이 축복하는 자는  저주하면 망해 버립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하기 때문에 사람의 가치가 어데 있느냐?  사람의 가치는 인물 잘난 데 가치 있는 것 아니오. 키 크고 스타일이 미꿈한 데  거기 가치 있는 것 아니오. 학문 많은 데 가치 있는 것 아니오. 돈 많은 데 가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나 모셨느냐 하는  그것입니다. 인생의 가치는 그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그것이  인생의 가치요.

 그러기에, 아브라함아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다 축복할 것이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리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자를 누가 해하겠습니까? 해하면은, 인정하는 걸 해하면은  해하는 반면에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해하는 자가 절단 나는데.

 이러니까, 나 한 사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중요한 줄 알고, 우리는 죽기를  두려워하면은 일 못 합니다.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종노릇하는 자를  놓아 줄라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죽기를 두려워하는 자야 무슨 일이라도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하는걸 가만  냅뒀다가. ‘이놈 죽일란다. 그거 하지 말아라.’ 하면 그만 안 할거, 생명을  바치지 못한 자가 무슨 일 하겠습니까? 아무것도 못 합니다. 큰 일이고 작은  일이고 못 하요. 그것은 생명에 속해 있기 때문에 생명을, 생명은 이 세상  권세가 거머쥐고 잡고 흔들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생명을 내놓고,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지마는 우리 아버지가 허락지 않으면 한 마리도 땅에 안 떨어진다 했습니다.

 암만 죽고 싶어도 못 죽는 거요, 사람은. 죽을까 겁을 내서 뻘뻘 떠는 거  어리석소. 아무리 죽고 싶어도 하나님이 정한 기한 전에 못 죽습니다. 천하  사람이 다 달라들어서 살릴라고 새도 못 살립니다. 천하 사람이 다 달라들어서  죽일라고 해도 하나님이 죽게 하셔야 되지 죽이지 못합니다.

 모두 죽기를 두려워해서 죽인다는 협박에 끌려서 일생을 지내는 자는 참으로  인생을 죽일 자가 있는 줄로 그렇게 알고 있지 이것을 부인하고 네까짓 게 무슨  힘이 있나? 하나님이 허락해야 되지. ‘너를 이놈아. 불 속에 넣어도 안 죽는다  말이가?’ ‘불 속에 넣어도 하나님이 죽으라 해야 죽지 불이 나를 죽일 줄  아느냐?’ 네 이놈 타 봐라, 불 속에 넣어서 벌거이 달궈 가지고서 태웠지마는  불 내음새도 안 나고 살아 돌아다녔습니다.

 이거 뭣 보인 겁니까? 불과 같은 어떤 혹독한 속이라도 주님이 허락지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을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너거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나 한 사람이 바로 되면 다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쪽 믿음으로 믿는 가정에서 믿지 않는 그 강퍅한 남편 그 자녀 여게  대해서 우리가 안타까운데 그 안타까와하는 것은 당연하고 안타까운데 하는  방편은 어짜든지 나 하나 바로 되면 주님이 다 바로 해 주시지 하는 요것을 믿고  자기 하나 바로 되는 데에 전력 기울여서 자기만 바로 되면 언제 그거 바로 되는  것도 몰랐는데 가보니까 벌써 바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나 한 사람이 이렇게 중요한 것을 깨닫고 또 다른 모든 걸 고치는  것보다 나 하나 고치면 하나님이 잘해 줄라 하니까 얼마나 좋은 방편이요 쉬운  방편입니까? 그보다 더 자유로운 방편이 있습니까?  남을 내 맘대로 합니까? 남을 내 맘대로 못 하기 때문에 남을 내 맘대로 고쳐  볼라 해도 잘 안 되지마는 나만 고치면 된다 하니까 그래 남을 내가 내 맘대로  고쳐 보는 것보다는 나를 내 맘대로 고치는게 쉽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이걸 깨닫고, 마태복음 5장 14절로 16절에 보면은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 이랬습니다. 빛이라. 빛 한 개가 들면은 온 집안이 환하다 했소.

이거 무슨 말이냐? 나 한 사람이 빛으로 바로 바로 살면 그 가족이 몇이든지 다  힘이 된다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브라함 하나가 빛으로 사니까 거게 속한 사람들은 종들도 모든  집안 파숫군만 해도 삼백 열 여덟 명인데 그 소속한 그 모든 종업자들이나  식구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전부 다 성자 됐었습니다.

 이러니까, 그분은 자기 하나 함으로 다른 거 다 하나님이 해 주신다는 걸  생각하고 모든 것을 위하는 거기에서 자기 하나 깨끗하고 온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되어지기만 힘을 썼던 것입니다. 이 방식으로 우리가 나가면  우리가 멀지 안해서 반드시 빛을 볼 것입니다.

 그라고 마태복음 16장 19절 이하에 보면은 말하기를 너거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이랬습니다. 이 세상을  망치고 흥하는 것이 우리 장중에 잡혔습니다. 우리에 매였소,  우리가 무슨 권세 있어 그런 게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대속해서 세상의 빛으로,  세상의 생명으로, 세상의 중보자로, 세상에 이 예수님의 계대의 구세주로 구주로  세워 놨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구원할라고 하면은 구원할 수 있고 그를 버려  두면 망쳐집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래 권세 잡았으니까 참 좋다 할 것이 아니라 나 하나가  힘쓰면 모두 살고 힘 안 쓰면 다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공연히 지금 헛된 일 하지 말고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나라와 모든 인류와 자기에게 속한 교회들 사람들 이 회개를 위해서 자신이  회개하고 또 하나님의 긍휼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미 죽는 목숨 공산주의자에게  몽둥이로 뚜드려 맞아 죽고 껍데기를 뺏겨서 죽고 이라는 것보다는 기도하다  죽는 게 낫지 안해요?  죽는 그들에게, 오면 반드시 죽임 당하니까, 여게 있는 사람은 하나도 안  남습니다. 옆에서 벌써 이거 예수 믿는다는 거 ‘나는 예수 믿는다 해도 내가  연애하러 다녔지 뭐 내가 예수 믿으러 다니나?’ 뭐라 해도 교회 다니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 알 수 있는 사람, 다 모릅니까, 그거? 안 믿는 사람들도 다  아는데.

 그 이상합디다. 제가 지난번에 언제 한번 보니까 그뭐 믿는 사람의 일을 어떻게  잘 아는지 교적부 안 가져가도 다 알아요. 물으면 ‘그 사람 교회 다녔나 안  다녔나?’ 그 사람들이 다닌 사람을 안 다녔다 하면은 요놈도 반동 분자로 몰려  가지고 죽일 것이기 때문에 안 다니는 사람도 다닌다 하지 다니는 사람을 안  다닌다고 그렇게 싸 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다 나타나요.

 OOO집사님 숨을 수 있어요? 숨을라면 숨을 수 있는 줄 압니까? 못 숨어 못  숨어. ‘이마 번들번들한 그 양반 말이요? 교회 다닙니다.’ 안 남궈 둬.

죽이요.

 이러니까, 그때 가서 우리 생명 내놓느니 지금 회개에 생명 내놓고 기도에 생명  내놓고 하는 것이 우리 구원 얻고 모든 사람 살리고 이 나라 이 민족 다  구원하고 행복되고 자손들도 행복될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어짜든지 강퍅을 부리지 말고, 이 세상이 마구잡이로 지금 벌로  꺼득거리니까 저도 마구잽이로 벌로 뛰어서 그렇게 날뛰면 안됩니다.

 요새도 우리 진영에서 예수를 믿는데 너무 힘을 써서 그렇게 마음을, 자꾸  세상은 긴장을 풀고 살자 하는 세상인데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예수 믿자고  그렇게 하니 되서 예수 못 믿겠다 이래 가지고 편케 예수 믿겠다고 해서 나가는  사람들 있는데 얼마나 편할란지 모릅니다. 얼마나 편할란지!  그 편코 구원이 같을 진대야 그게 좋지. 그리 안 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했는데 십자가가  뭐입니까? 고난 아닙니까? 고난 없이 고난을 면할라고? 고난 안 당하고 이  공산주의에게 죽임 받을 그 죽임을 면할라고? 공산주의에 죽임 받을 그것은  회개하고 주님에게 부르짖는 데에 죽을 만치 힘쓴 사람이라야 그들 손에 안  죽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여러분들이 이 교회 저 교회 돌아다니면 근심 걱정 없고 평안하고 서부교회  오면 마음이 쪼리고 고만 견디지를 못하고, 이렇게 오니까 좋은 걸. 좋은 것  찾아다니다가 나중에 참 큰 화 만납니다.

 각오를 새요. 뭐 각오할 건가? 나 한 사람 바로 하면 다 된다. 나한 사람으로  모든 문제를 똘똘 뭉쳐 쥐고 나 한 사람이 참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되고  주님의 노를 다 풀고 주님에게 구할 것을 구하고 회개할 걸 회개해서 요렇게  하면 나 한 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을 다 구출할 수가 있습니다.

 그 가정에 호주 하나 바로 되든지 어머니가 하나 바로 되든지 그 가정에 무슨  주일학교 학생이 하나 바로 되든지 하면은 그 덕택에 그 가정이 삽니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04 나 할 일은 하나뿐이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861226금새 선지자 2015.10.27
103 나는 구속받은 사람이다/ 베드로후서 3장 1절-14절/ 791003수야 선지자 2015.10.27
102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마태복음 6장 31절-34절/ 791003수새 선지자 2015.10.27
101 나는 독립으로/ 요한복음 3장 16절/ 870920주전 선지자 2015.10.27
100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1장 25절-26절/ 850331주후 선지자 2015.10.27
99 나는 어느 증인인가/ 사도행전 1장 6절-8절/ 820601화새 선지자 2015.10.27
98 나면서 소경된 자/ 요한복음 9장 1절-19절/ 870507목전집회 선지자 2015.10.27
97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사도행전 3장 6절-10절/ 860924수야 선지자 2015.10.27
96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사도행전 3장 14절-16절/ 860925목새 선지자 2015.10.27
95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사도행전 3장 2절-10절/ 790814화새집회 선지자 2015.10.27
94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사도행전 3장 6절-10절/ 861019주새 선지자 2015.10.27
93 나아만의 문둥병/ 열왕기하 5장 1절-27절/ 850519주후 선지자 2015.10.27
92 나에게 찾아 오신 주님께 순종해 보라/ 누가복음 5장 4절-11절/ 861008수새 선지자 2015.10.27
91 나의 행복과 불행은/ 갈라디아서 2장 16절-21절/ 870109금야 선지자 2015.10.27
90 낙망이 가장 큰 죄이다/ 누가복음 18장 1절-8절/ 801030목새 선지자 2015.10.27
89 날때부터 소경된 자의 교훈/ 요한복음 9장 1절-12절/ 800118금야 선지자 2015.10.27
88 남을 낫게 여기라/ 빌립보서 2장 3절-4절/ 84042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7
87 남한 교회의 정화 방식/ 이사야 1장 18절-20절/ 880803수야 선지자 2015.10.27
» 남한에 대한 현실관/ 창세기 13장 14절/ 880619주후 선지자 2015.10.27
85 내 마음 보좌의 왕/ 마태복음 13장 3절-9절/ 830916금야 선지자 201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