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과 내 지체를 무엇에게 드릴까

 

1986. 8. 17. 주일오전

 

본문:로마서 6장 12절∼23절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울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오늘 봉독한 말씀에는 몇 가지 중요한 단어를 기억하면 그 내용이 잘 깨달아질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죄의 종” 죄의 종이라 말이 있습니다, 죄의 종. 또 “의의 병기” 의의 병기라, 병기라 말은 무기란 말입니다, 병기. 이 총 칼 이런 거 다 병기인데 의의 병기, 의의 무기.

또, “법 아래 있다” “은혜 아래에 있다” 하는 그 말이 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법 아래 있다, 은혜 아래 있다. 법 아래 있는 것은 무엇이며 은혜 아래 있는 거는 뭐인가? 그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면 되겠습니다.

“법 아래 있다” “은혜 아래 있다” 이 쉬운 말 같지마는 이것이 바로 정의가 나 가지고 있지를 안합니다. 그래서 법 아래 있는 게 뭐인가 은혜 아래 있는 것이 뭐인가 하는 것을 바로 정의 내서 말하는 것이 아주 힘듭니다. 고신에서는 오종덕 목사님이 법 아래 있다는 것과 은혜 아래 있는 것을 정의를 내서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다른 이에게는 듣지를 못했습니다.

또, 사망과 영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단어들을 잘 기억하고 이 말씀을 읽으면 잘 알게 됩니다.

제가 본문을 읽을 터이니까 여러분들이 성경을 들고 거기 있는 말씀의 뜻을 깨닫도록 해 보십시오. 깨달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는 너무 어렵지 안하고, 행하기가 어렵고 알기에는 어렵지 아니한 말씀입니다. 새로 12절부터 읽을 터이니까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잘 깨닫도록 힘써 알아 볼라고, 알라고 애를 써서 들어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는 말은 그 윗절에 보면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의에 대해서는 산 자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걸 가리켜 말했습니다. “너희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이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라. 그러면 죄가 우리 죽을 몸을 주장하지 못 하게 하는 이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입니다.

죄라는 거 어떤 게 죄인고 하니 신구약 성경 말씀에 위반된 것들이 다 죄입니다.

죄라는 말은 삐뚤어졌다는 말입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만 옳고 바르지 신구약 성경 말씀에 틀린 거는 다 그것이 죄가 됩니다.

천하에 말이 많이 있지마는 그런 말들에는 맞든지 안 맞든지 그까짓 게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으면 의고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지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말은 인간들이 만들어 놨기 때문에 만든 인간들은 그 말에 삐뚤어지면 죄로 정해 가지고 감옥도 보내고 사형도 시키고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성경에서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죄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진 것을 죄라고 합니다.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 하게 하여” 우리 몸은 죽을 몸입니다. 우리 몸은 죽을 몸인데 오늘의 죽을 몸으로 죽는 길도 있고, 죽을 몸을 죽지 안하고 영생을 얻게 하는 길도 있습니다.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죄가 왕노릇 한다 말은 죄가 우리 몸을 주장한다 말입니다. “죄가 우리 몸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여” 요 듣고 알아요.

책임을 지고 들어요. 죄라하면 마구 물 먹듯 먹고 마시고 죄를 하나도 이기지 못하고 죄의 종이 돼 가지고 일생 동안 허덕거리면서. 내가 요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 정신이 바짝바짝 차려지고 내가 연약한 걸 깨달을 터인데 요대로 실행할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요 말씀을 내가 실상으로 내가 이루어서 이 말씀의 실상이 이루어져야 되지 실상이 이루어지지 안하면 무슨 소용없은 것입니다.

나는 죽을 몸인데 죄가 내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이제는 하나님 말씀을 어기게 하는 죄 그놈이 내 몸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려는 요것을 여게서 결심을 가져야 됩니다.

“못 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몸의 사욕이라 말은 이 고기덩어리 이놈이 욕심내는, 고기덩어리 이놈이 먹고자 하는 대로, 고기덩어리 이놈이 하고자 하는 대로, 고기덩어리 이놈이 놀고자 하는 대로, 고기덩어리 이놈이 취미를 가지고 하자는 대로, 고기덩어리 이놈에게 순종하면 죽습니다. 제 몸에게 순종하면 죽습니다. 마음에 순종해도 죽습니다. 우리 마음에 순종해도 죽고 몸에 순종해도 죽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제 몸뚱이 하자 하는 대로 하고 제 마음이 하자 하는 대로 하기 때문에 다 사망입니다. 우리는 마음과 몸을 제 마음대로 하자 하는 이놈을 꺾어 복종시켜서 마음도 몸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도록 해야 살지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지 안하고 이 마음, 몸 이놈 저 하자 하는 대로 하는 사람은 멸망입니다. 그 뒤는 멸망인 것입니다.

13절에, “또한 너희 지체를” 너희 지체라 말은 혀도 지체요, 귀도 지체요, 눈도 지체요, 손도 지체요, 또 우리에게 있는 모든 지체, 보이는 지체 보이지 않는 지체가 꽉 찼습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너희 지체를,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불의의 도구로, 죄를 짓는 불의의 도구로, 불의의 도구로, 삐뚤어진 일 하는 도구로, 사람이 혀 하나 불의의 도구됨으로 일생 망치는 자 있고 눈 하나 불의의 도구로써 일생을 망치는 자 있습니다. 그 눈이 안 볼 거 봐.

하와가 선악과 그거 하나 보고 자꾸 들여다 보니까 자꾸 탐이 나. 그래 가지고 그것으로 죽지 안했습니까? 사람도 그렇습니다. 뭐 사람이든지, 사건이든지, 영광이든지, 지위든지, 뭐이든지 그렇습니다. ‘고거 좋다.’ 또 보니까 더 좋습니다. 또 보니까 더 좋습니다. 자꾸 보면 더 좋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은 그리 기울여져서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부자 자식이 창기에게, 보니까 그 창기는 저를 삼킬라 하는 원수인데, 들어다 보니까 예쁘고, 눈썹 보니까 예쁘고, 귀 보니까 예쁘고, 입술 보니까 예쁘고, 말하는 거 보니 예쁘고, 저 꾀우는 거 보니 예쁘고, 요래 가지고 망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너희 지체를” 너희 지체를, 뭐 지체라 하면은 보이는 지체 보이지 않는 지체 꽉 찼지 않습니까? 어떤 부자의 자식은 보니까 보이지 않는, 그 속에 보이지 않는 숨어 있는 그 성기라는 그 지체 그놈이 욕심내는 그놈대로 따라 하다가 일생 망치고 자기 모든 소속한 가족들도 다 망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 게 다 지체라 말이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더러운 병기로, 더러운 도구로, 불의한 도구로, 더럽고 추한 도구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죄 그놈한테 드리지 말고, 그걸 불의의 병기로 삼으면 죄 그놈에게 바치는 것 아닙니까? 움직여 바치지 않습니까? 그러면 죄 그놈은 수입을 보고 나중에 죄 그놈은 죽입니다. 그 사람을 죽입니다.

“오직 너희 자신을” 너희 자신이라면은 우리 전체를 말합니다, 우리의 전체.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죽어도 죄를 용납지 안했습니다.

죽어도 의를 놓지 안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해서 죽었느냐? 죄를 용납지 않기 위해 죽었고 의를 뺏기지 안할라고 하기 위해서 죽었으니까 “죽은 가운데서” 죽고, 죽은 가운데서 이런 것들을 다 승리하고 난 예수님의 몸. 죄를 용납지 않기 위해서, 의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 죽고 나니까 삼 일 만에, 죄를 용납지 안하고 의를 놓지 안했으니까 의로 인해서 삼 일 만에 살아났습니다. 범죄하지 않기 위해서 그 몸이 죽고 범죄하지 아니함으로 죽은 그 몸이 다시 의롭기 때문에 사흘 만에 살아난 거와같이 너희 몸뚱이를 이렇게 살아라.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자꾸 익히십시오.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자.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자.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지 안하면 죄에 드립니다. 내 자신을 죄에 드리느냐 하나님께 드리느냐? 내 자신을 죄에 드리느냐 하나님께 드리느냐? 내 몸의 지체 요 지체가, 어떤 자는 손가락 지체 그것이 노름하면서 손가락 그게 습성이 돼 가지고 손가락 하자 하는 대로, 또 어떤 자는 그 발이 들어서 자꾸 ‘춤추는 데 가자’, 또 그 눈이 들어서 ‘기도하는 시간에 테레비 보자’ 또 `노래 부르자.' 망하지마는 요 속에 있는 성기라는 지체 요놈을 따라서 죄를 지어서 전신이 망치는 데에 그런 데 드리지 말고,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예수님의 자신과 같이, 예수님의 자신과 같이, “산 자같이” 예수님의 자신과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께 안 드리면 죄에 드리지. 죄에 안 드리면 하나님께 드리지.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의를 이루는 지체로, 우리 지체는 전부 의를 이루기 위해 있습니다. 보이는 지체 보이지 않는 지체 전부 의를 이룹니다.

우리의 눈이라는 지체도 의를 이룰 수 있고, 귀라는 지체도 의를 이룰 수 있고, 혀라는 지체도 의를 이룰 수 있고, 입이라는 지체도 의를 이룰 수 있고, 손발이라는 지체도 의를 이룰 수 있고, 자기 속에 있는, 여러분들이 모르기 때문에. 성기라는 지체도 의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전부 의를 다 이룰 수 있는 거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그렇게 하면, 네가 네 자신과 네 지체를 죄에게 드리지 안하고 하나님께 드릴라고 네가 애를 쓰면,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릴라고 애를 쓰면, 네 자신과 네 지체를 고기덩어리 그놈 욕심대로, 만물보다 거짓된 마음 그놈 욕심대로 그대로 해 가지고 죄에게 드려 죄의 종이 되면은 자신은 망합니다. 이거는 자꾸 해.

그러니까 우리 마음 이놈도 죄 짓기를 원하는 놈이고 우리 고기덩어리 이놈도 죄 짓기를 원하는 놈입니다. 왜? 그것이 타락해서 죄의 것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의 것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라.

우리 영은 의를 행하기를 원합니다. 이러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와 중생된 우리 영 이것이 단합해 가지고 자꾸 이 마음에게 타이르고 몸에게 타이릅니다.

자꾸 타이르면 마음 이놈이 좋아하던 죄, 제 욕심 ‘이것은 망하는 길이로구나’ 하고 좀 정신을 차려서 들을 때에 그때에 피와 성령과 진리와 중생된 영이 ‘그라면 네가 죽는다.’ 자꾸 타이르면 이제 이 몸이 ‘모든 데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이것이 가치 있다. 내 지체 이거는 의의 도구로 삼아 가지고 하나님께 드려야 되겠다.’ 이렇게 해서 곧이 듣습니다. 듣다가도 그만 휙 돌아가 버립니다. 돌아가면 또 애를 써 가지고 또 돌리고 이래서, 그러면 자기의 몸과 자기의 지체에게 자꾸 타이릅니다, 타일러. 이러니까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요.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이 시간은 전부 자기 몸에게 자기 지체에게 자꾸 타이릅니다. 뭘로 타이릅니까? 하나님 말씀으로 타이릅니다. 이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 설교 말씀한 말씀을 또 재독해 듣고, 또 내가 자꾸 생각하고, 이 육신의 생각이 나올 여가가 없이, 또 이 고기덩어리의 욕심이 나올 여가가 없이 자꾸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설교를 또 읽고 듣고, 내가 이 설교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자꾸 생각을 하고 자꾸 생각을 하니까 이제 이 자신과 이 지체라 하는 것이 눈이 뜨여져서 옳고 그른 것을 짐작하고, 망하는 길과 사는 길을 짐작하고, 참 좋은 것과 나쁜 걸 짐작하는 요것이 차차 차차 돼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제일 복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명상 많은 사람이 제일 복있는 사람입니다.

따라합시다.

명상 많은 사람이! 제일 복있는 사람이다!

명상이라니? 명상은 두 가지 있습니다. 눈 감고 땅의 것만 자꾸 생각합니다. 땅의 것만 생각해서 자꾸 죽고 망할 것만 자꾸 생각하는 그 명상은 제일 많이 망하는 자입니다. 여게 말하는 명상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십자가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와 이 성경 말씀, 설교 말씀, 자꾸 이 성자들 성녀들 이것만 자꾸 생각합니다. 그런 걸 자꾸 생각하니까 자기가 차차 차차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마음이 되고, 그런 정신이 되고, 그런 소원이 되고, 그런 성품의 사람으로 차차 되어지고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이게 뭐 일조 일석에 되는 것 아니오.

“하라” 그렇게 하면 14절에 참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14절에 읽어 보십시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 하리니”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 하리니, 죄, 하나님에게 삐뚤어진 거 그것이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이 자꾸 의롭게만 살라고 애를 쓰고, 또 착하게만 할라고 애를 쓰고, 죄를 안 지을라고만 애를 쓰고, 자꾸 애쓰고 생각하고 자꾸 그라면 사람이 죄 안 짓고 의롭게 살 수 있는 줄 압니까? 아닙니다. 아니오.

석가모니 같은 그런 사람은 아는 대로 죄 안 지을라고 일생 동안 전심 전력 기울였습니다. 의롭게 살라고 전심 전력 기울였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그 전부는, 자기는 의인 줄 알고 그 도를 펴서 많은 사람들을 다 돌아오게 하고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했는데 성경은 보면은 그것이 지옥의 제일 밑층에 갑니다.

왜 밑층에 가느냐? 제이계명에 우상 많이 섬긴 것은 제일 죄악이 많기 때문에 육신적으로도 삼사 대까지 가고 그것의 반대 사는 사람은 천 대까지 구원 얻는다 했으니까 우상을 전부 만들어 가지고 우상 섬기게 만들었으니까 자기는 좋은 줄 알고 했지마는 그 죄가 사람 중에는 제일 죄가 크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지옥에는 종교 창설자들이 제일 지옥 밑층에 있고, 그 위에는 철학자들이 그 위에 있고, 그 위에는 도덕가들이 있고, 그 위에는 세상 모든 이런 정권자들 세상 모든 그 성공자들이 다 그 위에 층층으로, 층층으로 첩첩이 놓여 가지고 있습니다. 떡첩 놓듯이 층층이 놓여 가지고 있는 거라.

그러나, 우리는ㅡ깨야, 몰라 몰라. 이 말씀을 들어서 말씀을 들을 때에 ‘아, 과연 아멘!’ 깨달으면 ‘아멘!' 요래서 요렇게 자기 속에 박혀야 되지 그라면 안 돼요.

인제 우리도 이거 고쳐요. 우리 이 케케묵은 거, 생명된 신앙은 저버리고 말라빠진 교리와 신조만 가지고 하던 이 학자들 다 사람 죽이는, 그런 거 다 죽이는 것입니다. 그거 다 회개하고 돌아섭시다.

이제 우리도 설교를 들을 때에 자세히 깨닫다가 맞으면 ‘아멘!’ 하십시오.

기도하다가 자기 성미에 맞고 자기 교리와 신조에 맞게 되면 ‘아멘!’ 이래 하십시오. 그거 ‘뭐 양반이 신사가 기도하는데 설교 듣는데 뭐 아멘! 저만 거석한 척 하고, 속으로 그래 생각하지 그래?’ 점잖차리다가 다 뒈졌습니다.

알겠습니까? 왜 교회가 이렇게 점점 타락해 가고 점점 부패해지고 점점 세상에게 짓밟힘이 됩니까! 이 모든 학자들이 점잔한 예수 믿다가 다 망했습니다! 이거 오늘 우리가 다 회개합시다.

설교 들을 때에 자기가 모르면 ‘이거 내가 모르겠다.’ 고민을 가지고, 자기가 들을 때에 ‘아, 과연 그 이치가 맞다. 진리가 맞다. 고거 맞다.’ 하면 `아멘!' 해서 도장을 꽉 찍으십시오. 이라면 변동이 없어.

14절 좋은 말씀입니다. 네가 네 자신과 지체를 고기덩어리 욕심대로, 만물보다 거짓된 네 마음 욕심대로 그렇게 하면은 네 지체는 죄의 도구가 된다. 네 자신은 죄에게 드려서 죄가 너를 왕노릇 하게 된다. 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라고 애를 쓰고 네 자신을 죽은 가운데서 다신 살아난 예수님 자신과같이 네 자신을 그렇게 하나님에게 드릴라고 애를 쓰고 네 지체는 의를 행하는 의의 도구가 되도록 네가 애를 써서 하나님께 드릴라고 하면, 네 자신과 네 지체를 하나님에게 드릴라고 의의 도구를 삼을라고 애를 쓰면, 쓰면 14절에,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 하리니”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 하리니” 죄가 네 자신과 네 지체를 제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리니, “못하리니” 석가모니는 이렇게 했어도 죄, 마귀 그놈이 주장해서 마귀 대가리를 만들어서 우상 도를 만들어 내고 말았는데 우리가 어떻게 내 자신과 내 지체를 의의 병기를 만들라고 하나님에게 드릴라고 애를 쓴다고 해 가지고 이 죄가 우리 몸과 지체를 주관하지 못하게 되느냐? 못 하게 되는 이유를 그 밑에 말해 놨습니다. 못 하게 되는 고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냥 제가 죄 안 지을라고, 의롭게 살라고, 하나님께 드릴라고 아무리 일생 동안 결심하고 금식하고, 그렇게 한다해도 소용없습니다. 되는 이유가 거기 있어. 그 밑에 있기를, “주관치 못 하리니 이는” 어떻게 주관치 못 하느냐? “이는” 어떻게 해서 주관치 못 하느냐?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요거 해석 난해절입니다. 내가 고려신학교 다닐 때에 요 성구를 해석하는 사람은 오종덕 목사님 하나밖에는 못 봤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껍데기야. 옳게 해석을 못 했어. 오종덕 목사님만 옳게 해석해요.

이라니까, 그때 듣지마는 만판 해석을 들어야 다른 사람들이 못 알아들어. 그 신학생들 나하고 동창생이 많았지마는 그걸 뒤에 가서 들었나 안 들었나 싶어서 묻습니다. 본과생들, 어학, 뭐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 공부하는 본과생들, 저거딴에는 우쭐 하고서 ‘우리는 지성인이라’ 하는데, 그래 내가 묻습니다.

묻기를, ‘법 아래 있는 거는 뭐이며 은혜 아래 있는 거는 뭐입니까?’ 이라면 엉뚱한 소리 해, 엉뚱한 소리. 그라며 떠들어. 그래 내가 이라다가 하도 밉상이 돼 놔서 ‘그까짓 거 원어만 보고 자꾸 들어다 보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배울 때는 똑똑히 배우십시오. 여기 죽고 사는 것이 여기 있습니다. 자기네들 해석하는 거 다 틀렸소! 아니오!’ 이래 가지고 본과생들 그때 저 남천교회 있었던 ○ 뭐입니까? ○○○, ○○○목사가 고신에서는 이거였습니다. ○○○목사가 나한테 좀 가깝고 이라기 때문에 내가 호통을 쳐 버렸어. ‘그까짓 걸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면은 그저 실실 졸면서 듣고 어학 말만 하면 눈이 바짝 뜨고. 어학에 생명 있나? 너거는 이거 알아야 틀리게 알았어! 잘못 알았어!’ 그래 내가 조직신학을 어려운 거 있으면 묻습니다. ‘이거 뭐 어짭니까?’ 이라면 저거 아는 척 하고 이랍니다. ‘틀렸어! 틀렸어! 그게 아니라! 이게야!’ 이래 놓으니까 나중에 몇 번 그라고 나니까 그만 별명이 돼 놓으니까 아예 물으면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아이구, 뭐 조사님이 잘 아시지 저거가 뭐 압니까? 그거 뭐입니까?’ 물으러 가면 묻습니다. 물으러 가면 물어. 물으면 내가 가르쳐 줘요.

이거 어려운 말이오.

너만 죄 안 지을라고 애쓰고, 너만 네 지체를 의의 병기로 살라고 애쓰고, 너만 네 자신을 하나님에게 드려서 하나님의 종이 될라고 애쓰고, 너만 네 자신과 네 지체가 죄의 종노릇 안 할라고 애쓰고 하면은 죄가 너를 주관치 못하게 된다.

어떻게 해서? “죄가 너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이는” 왜 못 하느냐? “못 하리니 이는” 그거 알아 보라 말이요.

“이는” 뭐이냐?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너만 힘쓰면 죄를 이길 수 있고, 너만 힘쓰면 의의 병기로 네 전신을 만들 수 있고, 너만 힘쓰면 하나님의 종을 만들 수 있고, 죄의 종을 만들지 안할 수가 있다. 너만 힘쓰면 된다. 뭐 때문에?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법 아래 있다 말은, 법 아래 있는 것은 첫째 아담은 법 아래 있었습니다.

알겠습니까? 첫째 아담은 법 아래 있었기 때문에 그는 행동하는 대로 공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왜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않습니까? 왜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안하지요? 왜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않습니까? 첫째 아담은 하나님의 공심판의 법 아래 있었기 때문에 백 가지 잘못하면 백 가지 심판받아 정죄받아야 되고 한 가지 잘못하면 한 가지 심판받아 정죄받아야 되는데 왜 우리는 법 아래 있지 안하고 은혜 아래 있습니까? “법 아래 있지 않는다” 이거는 첫째 아담에게 속해 있지 않다. 공심판 앞에 있지 않다. 공심판에 속한 자가 아니다. 어떻게 해서? 그러면, 나는 공심판에 속하지 안했으면 공심판을 다 무시할 것인가? 내가 공심판에 속해서 내가 범죄한 값으로 영원히 죽어야 하는데 주님이 내 대신 공심판에 속해 가지고 내 대신 공심판 일을 다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과거에 지은 죄, 현재에 지은 죄, 미래에 영원히 지을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대형으로 다 형을 받았고, 내가 행하지 못한 것을 대행으로써 다 법을 완전히 완수했고, 내가 원수된 것을 예수님이 대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한 화친을 이루었기 때문에 나는 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고 새로 지음을 받은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라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법 아래 있지 안하고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달음이 됩니까? 요거 깨닫지 못하면 암만 은혜받아도 마귀란 놈이 뒤에 또 홀켜서 끌고 가면 또 끌려가요.

그러면 법 아래 내가 있었는데 법 아래 내가 있는 나는 예수님이 내 대신 법 아래서 정죄받을 거 다 정죄받았고, 형벌받을 거 형벌 다 받았고, 그 책임질 거 다 책임지고, 예수님이 내 대신 법 아래서 잘못된 것은 형벌로 다 때웠고, 또 법이 요구하는 것은 완전 이행했고, 예수님의 죽으심이 몇 가지 죽으심입니까? 자,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 죽으심입니까? 녜, 세 가지 죽으심.

내가 잘못한 그 죄의 형벌을 대신해서 죽었고, 내가 행하여야 될 하나님의 율법을 대신 행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충성하여 순종으로 죽으셨고, 내가 원수된 것을 주님이 죽기까지 화친을 주장하고 도모하고 끝까지 죽어도 화친을 거머쥐고 죽었기 때문에 내 대신 화친으로써 우리를 대속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세 가지 죽으심이오. 이 세 가지 죽으심.

이 세 가지 죽으심으로 법 아래 있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내 모가치를 예수님이 대신 다 했기 때문에 나는 법 아래는 상관이 없어. 법에서는 다 대신했기 때문에 하나님 공심판 다 받았어. 공심판 다 받고 공심판 문제 다 해결했어. 해결하고, “은혜 아래 있다” 그 말은 당신이 대신 대형 대행 대화친한 그것을 내 대신 당신이 하시고 내 대신 한 그것을 나에게 공짜배기로 줬기 때문에 은혜로 받았다.

그러니 은혜 아래 있어. 나는 둘째 아담에게 속했어. 하나님의 공심판을 받지 안하는 사람이라.

이러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이 나를 대속하신 것을 내가 믿고 나는 대속을 받은 자요, 나는 둘째 아담의 대속을 받아 가지고 나는 완전히 하나님의 의를 입은 자이기 때문에 새로 지음받은 새사람이다. 이것을 내가 믿으면, 이것을 믿으면 죄가 왕노릇 하지 못해. 왕노릇 못 해. 왕노릇 하다가 ‘사탄아 물러가라! 죄야 물러가라! 죄 너는 내게 상관이 없어!’ ‘네가 지금 죄를 지었는데 나와 상관이 없어?’ ‘이것은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벌써 일차 다 죄의 형벌을 받은 거야.

예수님이 담당한 것인 것이야! 그러기 때문에 너는 내게 상관하지 못해.’ 알아듣겠습니까? 죄는 한 가지 죄를 한 번만 형벌하지 두 번 세 번 형벌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형을 할 권리가 없어.

이런고로, 예수님의 대형 대행 대화친하신 이 공로를 입고 믿음으로 일어섰을 때에는 죄가 즉시 나와는 상관없이 떠나가 버리고 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내가 죄 지어도 거게서 그 죄의 상전, 죄로 내 상전된 그 죄 그놈을 망치로 때려서 바싹 깨뜨려서 쫓아내 버리고 우리는 거기서 자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것은 한 시간 두 시간이 아니라, 깨닫는 사람은 잠깐 깨닫겠지마는 요것을 할라면 여러 시간 걸려야 됩니다.

이번에 마태복음 4장 1절 이하에 있는 세 가지 시험을 공부할 때에 우리가 거창 집회에서 공부했는데 그 공부한 것을 다 가지면 일등 목사요, 일등 성자요, 성녀요. 몰라 그렇지 아마 그것을 지금 테이프가 나가 가지고 정말 신학자라고, 정말 그것을 예수 믿는 도를 참 믿을라 하는 사람은 막 고거 보고 달라붙어서 야단이 날 것입니다.

이거 모양으로,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 그러기 때문에 죄가 너를 주관하지 못한다.” 하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간단한 시간에 말하나 요걸 똑똑히 깨닫고 가서 자꾸 눈을 감고 생각하십시오. 그라면 알아집니다.

15절,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는 법에서는 다 면제돼서 나왔고 이제는 하나님의 것을 공으로 은혜로 받는 은혜 아래 속했으니까 우리 죄 암만 지어도 상관 없다 해서 죄를 짓겠느냐? 그럴 수 없다 그말이오.

그것은 죄를 지으면 제가 즉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를 벗어버리고 제가 죄의 종으로 다시 돌아갔기 때문에 소용이 없어, 돌아갔기 때문에. 제가 죄의 종과 마귀의 종 이것이 되지 안하고 죄가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종과 의의 병기가 될라고 애를 쓰는 그 마음이 있을 때에 되는 것이지 그 마음만 버리면 안 돼.

이 불택자는 그 마음을 암만 일생 동안 써도 안 되는데 우리는 애만 쓰면 되는 그게 은혜라. 그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대속의 공로가 없기 때문에 안 돼. 우리는 애만 쓰면 즉시 그때는 그걸 물리쳐. 대속의 공로를 믿고 애를 쓰면 죄가 손대지 못하고 떠나가지마는 대속의 공로가 없는 자는 죄와 이 사망을 떠나라고 물리칠라 하면은 죄와 사망이 이 철퇴로 때려 박살을 내. ‘이놈 내가 내 종인데 무슨 소리 해?’ 꼼짝 못 해. 이렇기 때문에 석가모니가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그 종으로서 일생 동안 지내고 그 종노릇해서 사람을 지옥으로 끌어 넣는 그 일을 했습니다. 이라면 불교인들이 뭐 굉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이라! 성경에 뭐이든지 하늘이나 땅에 있는 거 우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 절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다 망치고 유황불 구렁텅이에 보낸다고 했어. 성경이 말하지 내가 말하는 건가? 그러면 그 사람들 오면은 ‘성경이 이래 말한다. 그러면 성경이 말했으니까 하나님이 말한 거라. 나는 하나님 시키는 대로 말하는 것이니까 그러면 하나님하고 싸우라.’ 하나님하고 싸움을 붙이지. 누가 이기든지 지든지.

이렇게 왜정 말년에도 싸우기를 이래 싸웠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하나님 말하라는 대로 내가 해야 되지 예수 믿는 사람이 누가 하라는 대로 하겠느냐?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하지 안했느냐? 너희들이 합병할 때에 기독교, 종교 자유를 허락해 놓고, 합병할 때는 이 성경대로 믿는 거 자유 허락한다 이래 놓고 오늘 배신해서 이따위 하는 사람이 이거 뭐고? 이거 이중이 아니냐?’ 이라니까 큰소리 뻥뻥치고 얼마든지 할 수가 있어. 성경 말씀 가지고 이겨요.

“그런즉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우리는 이제 공심판 아래 있지 안하고, ‘죄를 암만 지어도 그거는 예수님이 대형했기 때문에 상관 없다. 이러니까 우리가 죄를 얼마든지 지을 수 있고 죄를 그것을 예사롭게 지을 수가 있지 않겠느냐?’ 그러면 제가 다시 죄 아래 있기 때문에 소용없어. 죄 아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벗어버렸다 말이오.

예수님의 대속은 이제 입으면 죄를 범하지 안해야 대속을 입고 있는 것이지 입고 죄를 범하면 대속을 휘떡 벗어버렸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절에,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어데든지 다른데 순종하면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지. 그렇지 않습니까? 한 시간 종이라도 종이지. 별수가 있어?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죄에 종노릇하면 사망에 이릅니다.

알겠습니까? 죄에게 순종하면 사망에 이릅니다. 별수 없어. 요거 단단히 기억해요.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죄에게 순종하면 사망이 와. 죄에게 순종하면 사망 됩니다. 죄는 뭐인데?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것이 죄지. 하나님 말씀 어기라는 그것에게 순종하면 저는 사망합니다.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죄에 순종하면 사망에 이르고, 네까짓 게 암만 욕심을 부려도 죄에 순종하면 너도, 네 가정도, 재산도, 사업도 다 망하고 죽는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죄에게 복종하면 망하고 죽는 데 이르고 네 몸뚱이나, 네 재산이나, 네 가족이나, 네 사업이나 다 망하고 죽는 데 이르러. 이거는 틀림없어.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못해요.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종으로, “순종의 종으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종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종이 되면 의를 이루느니라.

의인이 된다. 네가 의에 이른다. 네 행위는 의가 되고 너는 의인이 된다.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들이 본래 예수 믿기 전에는 죄의 종으로 죄가 시키는 대로, 죄의 종이 무슨 종입니까? 죄의 종이 제 마음이 하라 하는 대로 하는 것이 죄의 종이지, 제 고기덩어리 욕심대로 하는 것이 죄의 종이지, 의의 종은 하나님이 하라 하는 대로 하는 것이 의의 종이지.

하나님이 하라 하는 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종이지. 죄의 종은 영원한 사망이요 의의 종은 영생입니다.

“본래 너희가 죄의 종이더니” 죄 그놈이 시키는 대로, 죄가 시키는 대로,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을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죄의 종 아닙니까?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너희들에게 가르쳐 준 신구약 성경 말씀, 예수 믿는 도리, 가르쳐 준 바 예수 믿는 도리, “이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이 신구약 성경의 가르쳐 주신 이 가르쳐 준 이 교훈에 ‘보자, 그 교훈은 어떻게 말했느냐?’ 교훈을 표본으로 삼아서, 교훈을 원본으로 삼아서, 교훈을 모본으로 삼아서, 교훈을 표준으로 삼아서, 교훈을 기준으로 삼아서, 교훈을 따라서 교훈대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이 순종하다 보니까 죄에서 차차 차차 해방이 됩니다.

순종하다 보니까 죄에서 차차 해방이 돼. 그렇지 않습니까? 한 번 순종하니까 죄 하나에서 해방되고 두 번 순종하니까 둘에서 해방되고, 하루 종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니까 하루 종일 죄에서 해방 됐습니다. 예수 믿는 남은 여생을, 듣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니까 남은 여생은 죄 그놈에게 해방돼서 죄 그놈 종노릇 하나도 안 했습니다. 요거라 그말이오.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의에 속한 자가 됐고 의가 시키는 대로 하는 자가 되어졌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함으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너희 지체를, 우리의 지체를, 온갖 지체를, 지체는 보이는 지체 보이지 않는 지체, 보이는 지체 그놈보다도 보이지 않는 지체 그게 죄를 더 많이 짓습니다. 더 많이 지어. 요새는 지금 내가 지난밤에 이상함을 봤는데 보니까 이거 뭐 교인들을 모아놓고 지금 사경회 뭘 가르치는데 그 전부가 다 똥구덩이라. 막 똥구덩인데 내가 똥구덩이 거기 안 들어가고 가르치니까 안 돼. 이래 똥구덩이에 들어가 가지고 막 똥구덩이 가서 이래 가르치고 보니까 옷도 똥이고 전부 똥에 막 전부 묻어 가지고 똥구덩이에서 이제 사경회를 했어.

똥구덩이에서 똥구덩이 똥 묻은 인간들을 데리고 자꾸 사경회 했다 말이오.

사경회를 다 하고 나니까 내 몸에 전부 똥이 묻었는데, 옷에도 묻었는데, 그라니까 어떤 분이, ‘이거 내가 이거 뭐 이러고 나니까 이거 전부 옷도 몸에도 똥이 다 묻었으니까 어째야 됩니까?’ ‘가자.' 가자 해. 내가 가니까 물도 깊으지 안해.

요만한 물인데 자꾸 밑에서 올라오는데 거게 가 가지고 이리 누웠다가 저리 누웠다가 이리 저리 하니까 옷도 벗지도 안하고 있는데 똥이 싹 씻기고 몸에서 구린내도 하나도 나지 안하고 싹 씻겨서 깨끗해져. 깨끗해져. 그래 그라고 나서 깼습니다.

‘이것이 나에게 오늘 설교하라고 가르쳐 주시는구나. 우리 교인들이 예수 믿는다 해도 전부이 죄구덩이 속에 들어 가지고 있구나, 이거. 막 죄구덩이 속에,’ 내가 며칠 전에도 내가 가슴이 아픈 내가 그런 꼴 봤어. 이거 생각도 못 할 이 죄를 범해 가지고 또 더렵혔다 말이오. 이 더렵혀서 그만 부애가 나 가지고 또 부애가 나 이놈을 다 부셔버릴까 이런 생각이 났어.

내가 저 어데 갔다 오니까 죄란 놈이 또 와 가지고 보니까 또 다 장치를 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거 죄 이걸 참 멸할라 하면 이거 뭐 밤낮으로 동서남북에서 막 들어오니까 어느 구멍으로 들어오는지 알지를 못하겠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한 의인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정말로 한 의인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죄로 더불어 싸우고 범죄하지 안하는 그 의인이라면은 그 한 사람은 하나님은 우주보다 그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에 그 나라는 누구의 것이냐? 의인들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보다 귀하기 때문에 모든 걸 예수님에게 맡겼어.

예수님이 뭐이기에? 예수님은 의인이라. 그 의는 우리 대신했기 때문에 예수님도 의인이요, 우리 대신 의인이요 우리도 예수님이 대신했기 때문에 우리도 의인인데 이 의를 벗지만 안하면 의인이 되는데 우리가 이 의를 예사로 여겨 가지고 돈에 사죄 칭의 화친을 팔고, 지위 취직에 사죄 칭의 화친을 팔고, 자기의 무슨 사건의 해결에 사죄 칭의 화친을 팔아. 사건 그까짓 거 악화되면 어짤 것인데? 살기 위해서, 죽으면 다시 영광스러운 몸으로 뭐 부활하지.

죽어도 우리는 죄의 종이 안 되어야 합니다! 죽어도 의를 놓지 안해야 됩니다! 죽어도 우리는 하나님을 놓지 안해야 됩니다! 왜? 주님도 죽으면서, 생명 바쳐서 사죄의 공로를 이루었고, 생명 바쳐서 칭의의 공로를 이루었고, 생명 바쳐서 의의 공로를 이루어서 화친의 공로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생명 바쳐서 도성인신하신 하신 신인양성일위이신 주님이 생명 바쳐서 이루어 놓은 구원이니까 우리도 이것을 감당하는 데는 생명 바쳐야 지당하지 않습니까? 별스러운 일이 아니라. 그 귀하신 분도 그랬는데 우리 천한 것이 그리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내 수족을 전부 의의 지체로, 내게 있는 거는 전부 의의 지체라, 전부 의의 지체. “의의 지체로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이라면 우리는 거룩함에 이룰 수가 있어. 완전함에 이룰 수가 있어.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는 자유하였느니라” 죄에 종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해서 자유했다 말은 뭐이냐 하면 죄에 종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해서 의가 말하면 의 네까짓 거 뭐 하거나 말거나, 해도 눈도 깜짝 거리지 안하고 ‘의 너까짓 게 뭐인데?’ 의를 발길로 탁탁 차 버리고 의에게 자유했어. 의를 멸시하고 천대하고 의에 대해서 조금도 자극받지 안했어.

그러나, 이제는 우리는 의의 종이 됐기 때문에 죄를 이렇게 대해. 의의 종이 됐기 때문에 죄를 우리는 멸시하고 죄에 대해서 자유해야 돼. 죄 그까짓 놈이 천 마디 만 마디 해도 ‘이놈! 시끄러!’ 죄 그까짓 놈이 하루 종일 해도 눈도 꼼짝거리지 안하고 ‘임마 시끄러’ 발길로 딱 차서 없애버리고 이제는 죄에 대해서 우리가 자유해서 그까짓 놈한테 종노릇 하지 안해야 되고 의에 대해서 종노릇 하는 우리가 되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때에는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 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은 사망이니라”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제 마음하고 싶은 대로 하고, 고기덩어리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또 이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하고, 인간들이 하자 하는 대로 하고 이렇게 해서 임시 하고 싶은 대로 좋은 대로 한 그것 때문에 망했다는 것을 죽을 때 후회 안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죽을 때 예수 안 믿는 사람은 후회 안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 내가 그거 때문에 저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그런 말 있어. 널 속에, 널 속에 들여다 보니까, 널에서 보니까 뭣이 떠들석 해, 덜거럭 덜거럭 덜거럭 덜거럭 해. 그 가만히 보니까 ‘내가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이럴 저럴 줄 알았더라면’ 한다고. 이제 죽을 때에 회개 안 하고 후회 안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왜? 제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안 하는 것이 전부 제 잘못해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고, 제가 또 원치 안 한 것이 이루어진 것이 제가 저 하고 싶은 대로 해 가지고 다 된 것이라.

하나님이 하라 하는 대로 해서 저 하고 싶은 것을 죽이고 하나님이 하라 하는 대로 한 그래 가지고 후회된 거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거, 아무리 하고 싶어도 자기 지체를 죽여서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거 안 해 가지고 후회된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 열매는 사망이니라” 22절에, “그러나 이제 너희가 죄에서 해방 되고” “죄에서 해방 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나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영생이니라” 따라합시다.

죄의 값은! 사망이요!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값은 사망이요! 은혜는 영생이니라! 죄의 값은 사망이요! 은혜는 영생이니라! 은혜는! 예수님이 대속하신! 사죄 칭의 화친! 이것은 영생이니라! 사죄 칭의 화친을 벗지 않고! 사죄 칭의 화친을 빼앗기지 않고! 사죄 칭의 화친으로 산 것은! 다 영생이니라! 다 영생이니라!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제 결심합시다. 내가 이 시간에 내 자신과 내 지체를 뭣한테 드릴란가? 불의의 병기로 죄에 드려서 사망의 종이 될 것인가, 내 지체와 내 자신을 의에 드려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인가 이것을 결정합시다. 하나는 사망이요 하나는 영생입니다.

우리는 죄 이것을, 어짜든지 죄 이놈을 벗읍시다. 죄 이놈을, 원수가 죄이니까 죄 이놈을 어짜든지 멸해서 죄를 벗읍시다. 뭐 살림살이가 부숴져도 죄를 벗읍시다.

이혼이 돼도 죄를 벗읍시다. 사형을 당해도 죄를 벗읍시다. 죄 이놈을 벗어야 됩니다. 죄 이놈은 벗어야 됩니다. 죄는 사망입니다. 죄를 벗은 의는 영생입니다.

죽으면 무슨 상관 있습니까? 죽어도 영생인데. 천하를 차지해도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기도> 주님, 이 시간에 우리의 원수가 무엇인 것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의 자신과 지체는 얼마든지 죄에게 자유할 수 있고 죄가 우리에게 왕노릇하지 못하도록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어 우리는 공심판 법 아래 있지 안하고 사심판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있는 저희들인고로 저희들 자신과 지체가 죄에 종노릇 하지 안하고 의의 병기로 하나님에게 드려 하나님의 종이 될라고 하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는 것을 말씀해 주셨사옴을 감사합니다.

이제는 이 말씀에서 우리의 원수는 죄요, 불법이요, 사망이요, 마귀인 것을 깨닫고 우리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드려서 이놈으로 더불어 싸워서 이기고 예수님의 피공로를 언제든지 내가 기념하고 보수하고 영감과 진리를 이행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죄의 값은 사망이요 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인 것을 확실히 깨닫고 죄로 더불어 원수가 되고 우리는 전부를 다 기울여서 의로 사는 저희들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많은 형제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사망과 마귀와 죄에 속해 있다가 이제는 주님의 공로로 부름을 받아 주님의 자녀가 되었사오니 마귀와 죄와 사망과 멸망이 저들을 간섭하지 못하고 해하지 못할 걸 믿습니다.

주님을 든든히 믿고 의지함으로 이 어지럽고 인정없고 냉정하고 잔인한 세상을 담대히 염려없이 평안하게 걸어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고 모든 문제는 주님 앞에 의논해서 다 해결하고 도와 주심을 받는 은혜 속에서 사랑 속에서 사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총을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하는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더욱 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불붙게 하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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