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시는 그 능력


선지자선교회 1983년 1월 2일 주일오전

 

본문 : 벧전 2:2-5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사람은 기쁨이 없으면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합니다. 또 평강이 없으면 기쁨이  생겨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평강이 있는 동안에는 기쁨이 있고, 기쁨이  있는 데에는 살고 싶은 의욕이 있는 것입니다.

 기쁨 없는 세상에, 기쁨 없는 곳에, 기쁨 없는 가정이나 처소에 살기 싫은 것이  모든 생물들의 본능입니다. 기쁨이 없으면 곧 죽어 없어지기를 원하는 것이  생물들의 본능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평안이 있은 후에 기쁨이 있는 것이지 평강이 없으면 기쁨은  저절로 없어지는 것입니다. 기쁨의 원인은 평안이요 평안의 원인은 강건입니다.

 여기 말씀하시기를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비유입니다. 순전하다 그말은 추호도 거짓이나 과장이나 헛것이 없는 진실한  젖이라 말입니다. 신령한 젖이라 말은 새끼가 바라보는 어미의 젖인 물질적인  젖이 아니고 도의 젖을 말합니다. 1937년 이전에 번역된 성경에는 전부 다 '도의  젖을 사모하라' 그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고로 신령한 젖이라는 것은 예수교의 도리의 실상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신령한 젖이라는 말씀은 예수교의 교리, 예수 믿는 도리, 이 도리의 실상을  사모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어렸을 때에 젖을 먹으면 그  생명이 튼튼히 보존됩니다. 아무리 강건한 아이라 할지라도 젖을 안 먹으면 그  생명은 끊어집니다. 또 그 아이의 기력이 젖을 먹으면 그 기운이 강건하고, 젖을  안 먹으면 기운이 쇠약해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 젖을 먹으면 성장되고, 젖을 안  먹으면 발육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갓난 아이에게 생명이 튼튼하고 기운이 튼튼하고 발육이 잘 된다면 그 아이는  필연적으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기독자의 기쁨은 평안에서  나오고, 평안은 생명과 기운과 발육에서 나오고, 생명과 기운과 발육은 어머니의  젖을 먹는 그 젖을 먹음에서 생겨지는 것입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하신 것은, 신령한 젖  기독교의 도리, 예수교의 실상, 예수교의 실상을 먹어라. 예수교의 실상을 먹으면  네 생명이 튼튼하고, 네게 있는 힘이 강건하고, 네가 잘 자라게 된다. 그러면  기독자는 평강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기독교의 진상인 그 실상은 입으로 먹을 수가 없고 사모로 먹습니다, 사모.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으로 먹습니다. 예수교의 실상, 그 실상을 네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따져 보고 따져 보고 따져 보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과 비교해 보고 비교해 보고 또 비교해 봐라 그리하면 네게 있는 생명이  튼튼해지리라. 하나님과 너와의 관계가 점점 필요성을 네가 느낄 것이고, 원할  것이고, 관계가 점점 튼튼해질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외에 가질 것이 없다는  것을 네가 점점 알게 될 것이다. 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니 그 모든 남은  것은 절로 관계가 올바르게 가장 올바르게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그런고로 피조물의 생명은, 기독자의 생명은 영이나 육이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와지고 튼튼해지는 거기에 달렸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살아 있어도 죽는  것만 같지 못한 고통을 느낍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영도 튼튼해지고 육도  튼튼해집니다.

 그런고로 이 신령한 젖을 네가 생각하고 생각하고 연구하면, 따지고 따지고 따져  보면 이 외에 찾을 것이 없다. 이 외에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왜? 이 안에 다  들었다. 따져 보니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튼튼하게 되고, 자기에게 있는 참  사람의 인격성의 힘이나 소망의 힘이나 의의 힘이나 믿음의 힘이나 하나님에게  맡기는 의지하는 모든 힘이 점점 튼튼해집니다.

 그분을 몰라서 예수교의 실상이 내게 희미해질 때에 나는 고독해지고, 나는 원수  속에 싸여지고, 공포와 비겁과 고난과 비관에 싸여지고, 기독교의 그 진상을 깊이  깊이 궁구하여 알 때에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고 하시니 누가 정죄하며, 하나님이  내 편 되어서 도우니 사람이 어떻게 할 것이며, 모든 피조물이 내 구원 위해서  지음받았고 내게 와 있기 전에 당신이 작정한 구원이었는데 어떤 자가  해하겠느냐!  모든 참사람의 힘이 튼튼해집니다. 사람의 힘이 튼튼해지면 세상에 속한 것들도  있어 필요한 거는 점점 있어 튼튼해지고, 없어 필요 한 거는 없어서 튼튼해지고,  인격의 힘이, 의지의 힘이, 욕망의 힘이, 진실의 힘이, 하늘을 향하는 힘이, 죄를  대항하는 힘이, 의로 사는 힘이 강해집니다. 이러면 잘 자랍니다.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점점 그의 신앙도,  소망도, 모든 하나님의 형상도 점점 자라서 예수님 같은 하나님의 성전이 점점  되어져 가고 거룩한 제사장이 점점 되어져 갑니다.

 이 도의 젖을 자꾸 먹으면 생명이 튼튼해지고 힘이 강건해지고, 이 생명은 다  영생하는 힘이요 생명도 영생하는 생명이요 또 썩지 아니할 영원한 것으로  불변의 것으로 점점 자라갑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점점 되어져 갑니다.

 성전이 되어져 간다 말은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게 되고 하나님이 그 단체  속에 계시게 되어서,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니까 피조물이 섬길 것뿐이지  훼방하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또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되어진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그리스도가 중보됨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보가  되어져 간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구역에는 '거짓이 없는' 그래 놨는데  여기는 순전이라고 번역됐습니다. 거짓이 없다는 그 번역은 세상에는 전부가  거짓이기 때문에 이 도만이 참되다는 것인데 이 번역에는 그것을 뽑았습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도의 젖을 사모하라'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신령한 젖을  먹어라. 그러면 네 생명은 튼튼히 보존될 것이고, 네게 힘은 강건해질 것이고,  너는 잘 성장되어 구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성전이 이루어지고,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진다 말씀했습니다.

 기쁨도 많습니다. 종류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제가 누워서 기쁨이 없어서  오만 기쁨을 다 꾸어 봤습니다. 예수 밖에 있는 천하에 있는 사람들이 좋아  뛰노는 그 기쁨을 다 내가 생각으로 가져 봤습니다. 하나도 나에게는 기쁨이  되지를 아니했습니다. 왜? 그 기쁨 끝에는 배나 고난과 애통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기쁨이 되겠지마는 내게는 기쁨이 되지  않았습니다.

 허덕거리다가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젖을 먹는 가운데에서 기독교의 진상  실상을 발견하여 생각하고 사모하고 그 실상을 내가 깨달아 느낄 때에, '주여!  천하에 무엇이 나를 해하겠느냐?' 하는 기쁨이 솟아났습니다.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사형이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천하 인간들의 어떤 매장이, 정죄가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평강도 온갖 평강 다 있었는데, 내가 아파 누워 있으면서 '이 병이 당장에  나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누가 와서 말하기를 '이 검사도 하니까 병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면서 기뻐 즐거워 소식을 가지고 기쁜 소식이라 하면서 '또 저  진찰해서 거기도 병이 없습니다.' 기뻐 즐거워 왔는데 내게는 평강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평강이 안 됐습니다.

 이러니까 왔던 사람들이 '아. 목사님 왜 이런 것인데 기쁘지 않습니까?' '나는  기쁘지 않고. 평안하지 않습니다.' '아, 이게 어떻게 평안하지 않습니까?'  이상스러워서 반문을 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평안이 되지 아니했었어. 왜? 나아  봤자 이시간 어찌 될지 다음 시간 어찌 될찌? 그까짓 평강 가져 봤자 어리석은  자가 정신없이 평안하다고 할 것뿐이지 즉시 사망화될 것인데 무슨 평강이  되겠습니까?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가운데에서 '사망이냐 생명이냐, 이제 것이냐 장래 것이냐,  천사냐 높음이냐 깊음이냐? 어떤 것이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겠느냐?' '환난이냐 핍박이냐 기근이냐 적신이냐 위험이냐  칼날이랴 죽음이랴 이런 것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이 생명의 도로 말미암아 이기고 이기고 남음이 있는 그 언덕에 설 때에  평안했습니다.

 그런고로, 기독자들이 기쁨이 없이 살게 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 믿을 때에 기쁨니다. 그 다음에는 차차 기쁨이 혼돈됩니다. 평안이  혼돈됩니다. 왜? 우리 안에 있는 도야지가 잡혀 죽을 그 죽음을 모르고 제 닥칠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좋아하지마는 미래를 안다면 그거 지금 잡을려고  흥정하는데 뭐 좋아할 게 뭐 있겠습니까?  이는 기독자의 눈이 차차 차차 밝아져서, 모든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 지혜  지식의 눈이 밝아져서 모든 것이 차차 차차 정상적인 견해의 눈이 뜨여지니까  오늘 기뻤던 것이 하나 깨닫고 보니 아니라. 오늘 안심했던 것이 하나 깨닫고  보니까 아니라. 이렇게 불안하고 기쁘지 아니하니, 과거에 안 믿을 때에 기뻤고  안 믿는 사람들이 기뻐 뛰놀고 야단인데 왜 기쁨과 평강이 없는가?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가도, 되돌아가 봐도 옛날의 기쁨과 평강이 자기에게는 되지  아니하고.

 이러니까, 갔다 왔다 갔다 왔다 보금자리를 치다가 '아무래도 안 됐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기독교의 이 실상을 자기가 생각할 때에 하나만 해도, 자존하신  대주재,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주권자이신 이분 한 분이 나를 안다 하는  이거 하나만 해도 만족이 됩니다. 이분이 내게 대해서 세밀히 간섭한다는 이걸  생각할 때에 놀래 죽겠습니다. 기뻐 죽겠습니다. 이분이 나 위해서 모든 만물을  지어 그것들이 나 기다리고 있다는 걸 생각할 때에 기쁘고 즐겁습니다.

 '세상이 정죄할려면 정죄하고 훼방할려면 훼방해라. 나는 곧 간다. 나의 대속주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다.' 이렇게 기뻐 즐거워서 혼자 뛰고  굴리고 춤추고, 과거에 불안을 주던 모든 것을 하나 하나 간추려 봐도 그까짓 거  불안을 줄 수 없어. 그거 내게 기쁨을 제거할 수가 없어.

 이렇게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다가 이 젖을 조금만 안 먹으면, 사모하지 아니하면  그만 다 풀어집니다. 담력도 기쁨도 평강도 풀어집니다. 시들어집니다.

시들어지니까 세상에서 알든지 모르든지 기뻐 뛰는 그 기쁨이 부럽습니다. 아!  저들은 그렇게 기쁘게 사는데 또 기뻐할 수가 없어. 왔다 갔다가 이러다가 신령한  도의 젖을 먹는 데에서 해결을 짓고, 이 도의 젖을 먹는 일이 중단되지 아니하고  계속 먹을 때에 생명의 힘도 능력도 점점, 성장도 평강도 기쁨도 점점 더  해졌습니다.

 이러니까 말씀하신 대로 구원이 점점 이루어지는 것이 보여져.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한다.'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보여져. 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지식이 바꾸어지지, 소망이 바꾸어지지, 취미가 바꾸어지지, 인간의 속성이  바꾸어지지, 모든 소욕이 바꾸어지지. 평가가 바꾸어지지.

 봐도 '아, 이게 구원이로구나. 구원이 바꾸어지고 사람이 바꾸어지고 만물관이  바꾸어지고 평가가 바꾸어지니까 생애가 점점 바꾸어지는구나. 그러니까 신령한  집 성전이 되어져.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이 분명해. 내 안에 계셔서 당신이  자유하시고 당신이 하고저 하시는 대로 나를 쓰시고 나는 그에게 쓰이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러니까 참으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 아는 대로의 범위대로의 만물과  하나님 사이에 그 사이에 들어도 죄를 저지르지 아니하고, 그 사이에 들어서  이간이나 방해하지 아니하고, 내가 그 사이에 들지 아니한 것보다 들어 있음으로  하나님에게도 기쁨이 되고 그것들에게도 기쁨이 되고 정말 유익이 되는 이  제사장의 자격이 이루어져 가는구나' 하는 것을 느껴졌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기독자들이 벌써 하나님의 말씀으로 멀리 보는, 넓게 보는  성령의 지식을 받았기 때문에 불신자 모양으로 그런 거 가지고는 기쁘지를  못합니다. 왜? 그 기쁨이 죽은 기쁨이요 불원간에 그것이 큰 사망으로  바꾸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기쁨을 기쁨으로 가지지를 못해요.

 정신 없는 사람은 은행에서 남의 돈을 훔쳐 가지고 됐다고 기뻤지마는 정신  있는 사람은 훔쳐서 기뻐하는 그 기쁨을 가지지 못해. 은행 문 밖에도 못 나가서  붙들려 감옥에 갈 터인데 그 기쁨을 누릴 수가 없어.

 그런고로 기독자들이 기쁨과 평강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눈이 밝아진 연고요,  모든 이치를 밝게 넓게 알게 된 연고입니다.

 그러면 기독자는 평강과 기쁨이 없는 사람으로 살 것 아니냐? 기독자의 평강과  기쁨은 나오는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에 입을 대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나오는 구멍이 무엇인가? 신령한 도의 젖을 사모하니까 신앙 인격 이 믿음이  튼튼해지지.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튼튼해지지.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고 내가  하나님의 것 된 것이 확고해지지 이러니까 하나님과 나와 관계가 튼튼해지지.

이러니까 모든 참 사람의 힘이 튼튼해지지.

 이러니까 점점 참 인격의 사람이 자라가지. 이러니까 그로 인해서 생겨지는  평강, 생겨지는 기쁨,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가 다  체험했을 것입니다. 가끔 체험하고, 또 마귀에게 꼬임받아 가지고 이 도의 젖을  버리고 다른 것만 생각하면 죽습니다.

 이 도의 젖을 사모하면 육의 생활이나 영의 생활이나 세상 생활이나 천국  생활이나 그 모든 것이 흠과 점이 없이 옳고 바르고 참되게 되어지기 때문에,  기독교는 영육의 구원이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면 떡은  저절로 생겨요.

 그러니까, 금년 첫 주일인데, 우리가 어린 아이같이 되어가지고 신령한 젖을  자꾸 뻘떡 뻘떡 먹어. 자꾸 생각하는 게 먹는 거라 연구하는 게 먹는거라.

 저도 하나님을 생각하다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데 이분이 나를 안다 하신다니!  이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니!' 이분이 나를 실질적으로 간섭하는 것을 내가 봐.

이분이 내가 뭐인데 간섭하다니! 이분의 간섭받는다는 이 하나만 해도 죽어도  살아도 만족이오.

 금년에는 우리가 이 도의 젖을 먹음으로 거룩한 제사장도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도 되고 구원도 점점 이루어지고, 기쁨과 평강도 얼마든지 누리고 성장도  강건도 생명도 튼튼한 이 사람으로 자라갑시다.

 우리가 주님을 무엇으로 기쁘시게 하겠습니까? 어린 아이 갓 낳아 놓은 그것은  본능적으로 사랑하고, 그것이 살 붙을 때가 되어 가지고 아무것도 모르고 어머니  소리는 좀 기억하니까 소리 좀 알고 뭐 어름 어름하이 보이면 그만 누웠다가  어머니 소리가 나면 어쩔 줄 모르고 팔다리 굴리며 막 벙긋거리며 야단을 지기고,  어머니가 검은 옷 입고 얼마동안 있었으면 얼굴은 모르고 시커먼 거 아니까 딴  옷 입고 오면 암만 해야 울고 시커먼 옷만 입고 오면 좋아서 벙긋거리고, 그  고기덩어리 같은 거 그까짓 거 말을 할 줄 아요, 뭐 사랑의 교제의 대상이 돼요,  대화의 대상이 돼요, 그거 무슨 감사할 줄 아요 은혜를 아요? 뭘 아무 것도  모르요. 고기덩어리 뭉텅이 아무 가치 없는 거.

 그러나 제게 필요하고 좋은 걸 주시는 그 어머니를 무엇보다도 기다리고 반갑고  즐거워하고 좋아하고, 그 어머니에게 젖이 나오니까 어머니를 사모하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이거 하나 가지고, 화재가 났을 때에 그 젖먹이가 있으니까 젖먹이를  건질려고 들어가서 젖먹이를 뭉쳐서 밖에 내던져 버리고 자기는 타 죽었습니다.

OO교회 O장로님 그 여동생이 OOOO교회에서 그랬습니다. 그 사람 은혜 받아  가지고 내 집회 늘 따라 다녔었는데 그 화재에 그래 죽었습니다.

 그렇게 부모가 좋아하고 즐거워하고 그 아이 위해서는 모든 거 아낌없이 다  생명이라도 희생하고 싶은 그것이 뭐이냐? 그 아이가 그 어머니에게 모든 소망을  두고 어머니가 좋은 걸 줄 줄 알고 어머니만 사모하고 어머니만 바라보고 그만  바라보고 있는 그거 하나입니다.

 우리가 뭐 어떤 것을 내어 가지고 하나님을 대접한다 할지라도, 이것도 좋지마는  당신만을 바라보고, 당신이 모든 것 다 잘해 줄 것을 바라보고 그분을 사모하고  좋아하는 이거 하나가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완전히 삼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게 없으면 일생을 충성해도 소용 없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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