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교훈

 

1985. 12. 21 토

 

본문:누가복음 9장 22절∼26절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여게 오늘 아침에 22절로부터 봉독한 말씀은, 우리는 생명이 둘 있습니다. 생명이  둘이 있어서 하나는 영생하는 생명이고 하나는 죽는 생명입니다. 생명은 생명이나  그것은 자꾸 죽어갑니다. 그러기에 하루 하루 지나면 더 죽고 이틀 지나면 더  죽고 사흘 지나면 더 죽고 또 살아갈수록 자꾸 죽습니다.

지난 밤에    목사님이 옛사람과 새사람을 설교했는데 그거 내 마음에 참  좋았습니다. 나는     교회에    목사님이 설교하는데 이 하늘의 복음으로  옮겨가지 안하고 땅의 복음과 하늘의 복음과 어름어름한 그래서 이거 이거 내가  여러 번 말했는데 엊저녁에 설교를 들으니까 하늘의 복음으로 확 기울어져서  이렇게 가는 것이 보여졌습니다. 그라면 인제 잘 됩니다. 땅의 복음 그까짓 거는  암만 해 봤자 속이는 것뿐입니다.

이런데, 그    성경을 나는 처음 봐서 우리   목사님은 거기 대해서 잘 알기  때문에 물었다 말이오. ‘자,   목사님 이거    성경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뭐입니까?’ 이라니까 그 얘기를 해 주면서 그런 종류가 한국에 한 대엿 개  들어왔다고서 이라는데 그라며 웃으면서 그말 해 ‘요새 교인들이 그 성경을 사  가지고서 전부 성경 공부를 하기 때문에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다가는 참 코빵  맞는 일이 더러 있고 그거는 내 말이야. 그런 의미로 말해요 아주 뭐 질문을  당해서 틀리면 틀렸다고 그래 알고 하기 때문에 요새 목사들은 아주 공부를 많이  안 하면 설교를 못 한답니다. 웃으며 그래 말해요.

그것으로써 성경 공부하는 것이 좋은 것 같으나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말하면  그 사람은 억지 소리 고집 소리 같고, 좋다고 하는 것은 그거는 백의 구십 구가  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실은 좋지를 못합니다. 그것을 읽어 가지고서 관주 성경이  요러니까 요걸 관주 성경 봐 가지고 찾아 가지고 또 요래 거석하고 또 고거  해석하고 이렇게 주석 보고 하는 그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이래서 그 설교록  이것도 참 하는 것이 이게, 지금도 내가 또 처음에 또 안 할라 하다가 요번에 또  그 다음에 하다가 이런데 그 하는 것이 이걸 안 하는 게 좋지 않느냐? 이렇게  자꾸 생각하고 의문이 납니다.

왜 그러냐? 주석이 그게 해롭다는 것은 자기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고, 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자기가 있다 말이오. 자기 있고, 또  성경책이 있고 성경책이 있는데 그 성경책은 획 하나도 변동 없다는 것은 원본  성경은 한 권뿐인데 기자들이 성경을, 성령님이 기자들을 통해서 기록한 그 원본  성경은 한 권뿐입니다. 원권 그거 한 권뿐이데 그 한 권을 베낀 걸 가리켜서,  사람이 베낀 것을 가리켜서 사본이라 이랍니다. 암만 베끼는 자가 조심해서  베껴도 사본과 사본이 서로 틀린다 말이오. 그래서 그 중에는 제일 틀리지 않는  그 사본을 뭐 이런 나라 말 저런 나라 말로 각국 말로 번역을 해 가지고  그와같이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본이 있으면 좋지마는 원본에 한 자도  안 틀리도록 고렇게 됐으면 좋지마는 이 사본과, 이 사람이 베낀 것과 저 사람이  베낀 것이 조금 틀린 것이 있으니까 어느 것을 맞았다 이렇게 할 수가 없는데 그  중에 제일 볼 때에 옳다 바르다 하는 그런 것을 해서 우리가 번역한 것을 보고  있습니다.

있는데, 또 성경에는 명백성이 있습니다. 명백성이라 그말은 성경 자체에 이  자체가 이런 지식이 아니고 일반적인 세상에 있는 지식이라 하는 그런 지식이  아니고 이는 진리기 때문에, 진리가 지금 문서로 나타났습니다. 진리가 사람 말로  나타냈었는데 사람 말 그게 진리가 아니고 그 속에 진리가 사람 말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는 그 진리가 없는 가운데 영계와 물질계 모든  것을 창조한 시공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명령했고, 하나님은 지어라 말씀했고  그 말씀이 나와 가지고서 모든 것을 창조한, 집을 하나 지을라고 하면은 그 집을  짓는 데에는 주인이 있고, 이렇게 있어 설계도 하고 뭣도 하고, 그리 안하면 또  감독을 세워 가지고서 이 일을, 그 집을 짓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집을 짓는 그  시공자가 있는 것처럼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창조하실 때에 시공한 것이  있으니 시공한 것은 진리가 했습니다. 시공하도록 명령한 이는 하나님이  명령했습니다. 말씀이 명령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명령했습니다.

이랬는데, 그래서 그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 문서와 다른 고로 그것을 모두  다, 학자들이 연구해 보고서 확실히 느끼는 가운데서 통계로 말해 가지고서 성경  가운데는 명백성이 있다. 밝을 명 자, 흰 백자, 그 성품 성자, 성경을 볼 때  환하게 바로 옳게 깨닫게 하는 명백성이 있다 이렇게 모두 다 통계가 됐습니다.

뭐 아무든지 성경을 보면은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는 그 능력이  있습니다. 명백성이 있지, 또 성경 안에는 성경을 기록한 기록 영감이 내나 그  영감이 이 성경 안에서 내재해 가지고 성경을 읽을 때에 그 사람에게 깨닫게  하려고서, 이 성경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감동이 역사하는, 살아 역사하는 감동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 자체에 명백성이 있지, 또 그 안에 영감이 내재해 가지고  계시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자기가 있지, 이러니까 삼합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성경을, 가장 잘 깨달아집니다. 깨달아지는데, 요 적이 뭐이  적이냐 하면은 인간들이, 이 주석이 적이 아닌데 주석은 어떤 사람이 요 성경만  보고 성경의 명백성이 가르쳐 주는 대로, 영감이 가르쳐 주는 대로, 또 중생된  자기가 지금 이렇게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성령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성령이 가르쳐 주고 있고 잘 깨닫도록 가르쳐 주고, 또  성경 안에도 성령이 계셔 가지고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요래 가지고서 깨달은 고 사람들이 깨달은 말을 하니까 고 사람들의  영감은 책 속에다가 들일 수가, 주석 속에다가, 영감은 주석 속에다가 잡아 넣을  수가 없고, 잡아 넣을 수가 있습니까? 그 안에 넣을 수가 없다 말이오.

하나님인데 넣을 수 있습니까? 영감은 그 안에 넣지를 못하고, 그 사람이 깨달은  영감은 넣지를 못하고, 그 사람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기 때문에 그 사람은  새생명으로 사는데 새생명으로 사는 그 새생명은 고 주석 안에다가 넣을 수가  없다 말이오. 넣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없는데, 다만 그 사람이 깨달아 가지고서  말하는 문서 이 말만 갖다 낸 말만 써놓은 것이 그게 주석이라 말이오.

주석이니까 뭐 성경을 볼 때에는 보면 성경을 자꾸 읽고 자기가, 자기가 기도하고  성경 읽고 그라면은 읽으면서 성경 속에 있는 명백성이 자기에게 가르쳐 주는 그  가르침을 받을라고 애를 쓰고, 또 성경 안에 있는 영감이 가르쳐 주시도록  기도하고 내나 그 영감은 하나님이시요 곧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에 그  영감에게 기도하고, 또 자기가 중생되기를 성령으로 중생됐기 때문에 중생된  새사람으로 지금 성경을 연구하려고 자꾸 읽고 애를 쓰고 기도하고 노력하고  이렇게 하면 눈이 슬그머니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이 성경에 진리가 들어  있으니까 진리가 슬그머니 깨달아진다 말이오. 깨달아지면은 참 좋고 기쁘고 힘도  나오고 그 능력이 나온다 말이오. 깨달아져.

이렇게 하려고는 하지 안하고 요 말세에 제일 큰 죄가 무슨 죄인가 하니 자기를  어떻게 하면 영화롭게 하며 존귀케하며 기쁘게 하고 평안하게 할까 하는 요게  옛사람 요놈인데 요놈이 강해집니다. 강해져 가지고서 안일주의로 어찌 됐든지  옛사람이 강해지기 때문에 성경을 그래 할라 하니까 그래 하기가 힘든다  그말이오. 요거 중요한 말입니다. 요거 지금 한국에, 세계 교회에 가 가지고서 요  말씀이 팍 눌러서 그거 다 죽여 꺾어야 됩니다. 힘이 드니까, 성경 볼 때에 성경  본문도 모르는 게 그만 이 관주에 어떤가 이 관주 찾습니다. 또 어떤 사람의  주석에는 뭐라 하는고 주석 찾습니다. 주석 찾고 관주 찾고.

이래 관주 찾는데, 톰슨 성경 그런 게 다섯 종류가 나왔대요. 다섯 종류 나왔는데  그거는 인제 아마, 내가 보지는 안했어. 누군가 어제 아침에 우리 교인 중에 한  분이 와 가지고서 이래서, 그걸 나한테 사 년인가 얼마인가 그리 됐는데 그래도  나한테 와서 말하면 또 어찌 될까 해서 말 안 하고 있었다가 요새는 하도 그  책이 세월이 나 가지고 뭐 성경보다 더 팔린답니다. 굉장해요. 그런데 큰 성경은  사만 얼마라든가 이렇고, 그 작은 거는 만 삼천 원인가 이런데 그거 나한테 한  권을 이래 참고하라고 기증할려고 이래 가져온 것을 내가 돈을 줬는데 어제 내가  누구한테 챘는고 내한테 돈 채 준 사람 만 삼천 원을 챘는데 내가 잊어  버렸습니다. 지금. 엊저녁에 내가 집에 가서 누군가 생각하니까 기억이 없는데  그거 누굽니까? 나한테 돈 빌려 준 사람 누구요?     목사님이었구나. 나는  깜빡 잊어 버려. 내가 암만 생각해도 못 나와 . 그래, 영 머리가 둔해요. 그런데  하나님 말씀이나 좋은 것 기억하는 데는 또 명철해. 그것 뭐 암만 오래 돼도 잘  안 잊어 버립니다. 함부래 딱 작정을 해 놨어요. 소용 없는 그런 거는 뭐 좀  몰라도 될 거고 이래서.

인제 이래 가지고서 고만 주석 보니까, 주석 보니까 주석이 아, 이래 하니까, 아,  주석이 이라니 이런갑다. 주석을 따라서 그만 이 주석 저 주석 보고서 주석이  말하는데 고 총 중에 제일 좋은 것 선택했다 말이오. 그거는 자기 속에 있는  성령이 자기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까, 성경 안에 있는 성령이 가르쳐 준  것입니까, 또 성경 자체에 이 진리의 명백성 그 명백성이 가르쳐 준 것입니까,  어떻습니까? 중생된 새사람이 그건, 새생명으로 사는 사람이 그것을 노력해  가지고서 들은 것입니까 뭐입니까? 그건 다른 사람이 한 거라 말이오. 다른 그  사람은 그 은혜를 받아 가지고서 그렇게 했다 말이오. 했지마는 그 껍데기만  이렇게 내놨지 속에 알맹이는 하나도, 사람에게 제재 받지 않습니까? 암만 글을  써도 그 알맹이는 거기 안 씌여 나와요 그거는 또 거기 안 나와요.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영감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이 성경책과 달라. 성경책 속에는  영감이 있고, 성경책 속에는 명백성이 있고 이렇지마는 사람들이 해 놓은 주석  속에는 영감이나 명백성이 있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녹음기 가지고 녹음해 가지고 고대로 들으면 다 된다  생각하지마는 그게 아니라 그러면, 고린도전서 2장에 내리보면은 바울은 설교할  때에 내가 너희들에게 도를 전할 때에 그 지혜의 오묘한 말로 가지고서 전하려고  하지 안하고, 또 아름다운 그 뭐 지식적으로 전하려고 하지 안하고, 성령으로  전하고, 내가 전하는 것이 너희들에게 지혜의 오묘한 말에 있지 안하고 영감에  있기를, 권능에 있기를 원했다 그렇게 말했다 말이오. 권능에 있기를 원한다.

그것은 뭐이냐 하면 속에 알맹이를 원한 것인데 고만 그것보다도 주석을 해  가지고 자꾸 이래 하며 이래 가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만, 자기를 자기 속에  역사하는, 자기 속에서, 요한 1서 2장 27절에 말씀한 거와같이 ‘너희 안에 기름  부음이 너희를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치나니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랬으니까 그 성령이 자기에게 가르쳐 줌을 받아야 할 터인데, 성령 와야 헛  일이지 자기 속에 계시는 성령 필요 없지 성령을 저버린다 말이오.

성령으로 살아야 할 터인데 성령은 저버리고 주석을 대신으로 해 버리지 또 관주  성경 아 가지고 또 그걸 대신으로 하지, 또 거기다가 톰슨 성경인가 뭐인가  그거는 내가 보지는 안했는데 아마 그거는 무슨 뜻을, 관주 성경은 단어를 이렇게  주 모아 가지고 이래 한 것인데, 같은 단어를 뺀 것인데 이거는 무슨 같은 그 뭐  뜻이나 고런 것 조금 범위 넓게 한 게 아니겠는가 그래 싶어요. 주석을, 해석했다  하는 것 보니까. 아직 한 절도 보지는 안했어요, 내가, 안했는데, 그래 놓으니까  전부 자기가 노력할 일을 관주 성경이 자기 선생이 됐지, 또 톰슨 성경인가 무슨  성경인가 뭐 내가 나타냈다, 내가 나타냈다 하는 그 사람, 사람, 그 사람  성경이라는 그게 대엿 권이나 들어간 그게 또 그 주장을 하고 있지, 주석이  주장하고 있지, 이러니까 이 셋이 그 사람을 가르치고 있으니까 셋이 그 사람을  가르치고, 그 선생님을 말이지 그 사람이 모시기를 선생님을 이런 이 세 가지를  선생님으로 모시지, 성경 안에 있는 이 명백성이 가르쳐 줄라고 하고 있는 그거  들을라고 하면은 새사람이야 가르쳐 주지 새사람이 아니면 안 가르쳐 줄라 한다  말이오. 마귀는 안 가르쳐 줘요, 암만 그래 쌓아도 몰라요. 이러니까 새사람이  돼야 될 터이니까 새사람을 찾아야 될 터이니 새사람 찾기가 힘드니까 요 될이거  너거 이 명백성 한테 자꾸 이래 받을라 하니까 힘이 드니까 치워 버려라. 명백성  네까짓 게 다 안 가르쳐 줘도 된다. 치워 버려라 저 관주 성경 보면 되는데, 주석  보면 되는데, 톰슨 성경인가 그거 보면 되는데 그뭐 그럴 게 뭐 있느냐? 또, 이런데 성경 안에 있는 내재적 영감에게 가르쳐 달라고서 그 영감을 받으려고  애를 쓰니까 또 좀 거석하니까 조금 시작하니까 잘 안 나오니까 ‘에히 그거 필요  없다. 또 선생님, 낱낱하고 낱낱하고 아주 편리하고 쉽게 교제할 수 있는 선생님  주석 선생님 나오시오. 주석 선생님 나오시요, 또 이 관주 선생님 나오시요, 톰슨  선생 나오십시오.’ 이라니까 그만 영감은, 성경 안에 있는 내재적 영감은 뚜우하이  그만 쫓겨났어, 뚜우하이. 그거 아닌데 옛사람에게 줄 수는 없고 새사람이 돼야  주겠는데 새사람되도록 자꾸 권고하니까 고만 마다고 해 가지고 옆에 고만  간교한 이 간부에게로 갔다 말이오. 그것도 간부라. 이 가 버렸다 말이오.

이러니까, 고만, 성경 안에 있는 내재적 영감도 배척 당해 버렸지, 또 내 안에  있는 영감도 성경 알라 하면 알도록 자꾸 이래 가지고, 애를 쓰고 이라면은  우리를 중생시킨 새사람이 나올 터인데, 새사람이 나올 터인데 허영주의 이 세상  위주 이렇게 안일주의 옛사람 이놈이 나와 가지고서 이라니까 새사람 찾으면  줄라고 해도 새사람이 아니면 또 들을 수가 없다 말이오. 이렇는데, ‘다 치워  버려라 이래 놓으니까, 우리 속에 있는 영감도 배척, 성경 안에 있는 영감도 배척,  성경 속에 있는 명백성도 배척 누가 선생님입니까? 주석. 주석은 깨달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록했고 깨달은 사람들의 것을 듣고 이래했기 때문에 좋은 것이나, 좋은  것이나 자기에게는 필요가 없다 말이요. 좋은 것이나 사람에게 배울 필요가 없다  너한테 기름부음이 가르쳐 준다. 그현실 현실마다 바른 걸 깨달아서 할라는 데는  그렇다고 말했는데 이 성경 보면 다 그래.

그러기 때문에 지금 내가 어제도 내가 그말 했어 요새 별 게 다 있습니다. 또  보니까 이 오행이라는 것 순전히 마귀 놀음인데, 오행이라는 꾀를 가지고서  성경을 풀어서 뭐 성경에 요긴한 요절을 전부 다 말해 놨어. 이래 가지고서  그것도 들어가면 뭐 성경이 딱 들어맞아요. 성경에 딱 맞아. 맞춰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하는데, 그런데 거게는 뭐이 나오느냐 하면은 우리 단군 그 뭐, 단군이  말을 했는데 이렇게 단군 한 말이 성경이라. 성경에 말했는데 아주 그라면 다  영생을 한다 이래 가지고서 인제 단군이 영생시킨다 했어. 그래 놓으니까 그  문서를 가지고, 나하고 같이 믿던 그     집사님이라는 그분이 그걸  가져왔어요. 가져와 날 만나려다 못 만나고 갔어요. 아마 이거 단군이 이렇다  하는데 이게 어떻게 해 이러냐 해서 그래 묻기 위해서 나한테 왔는데 날 못  만났어. 그거 순 마귀말이라, 마귀말. 또 벧엘 성서 연구라 하는 그것도 순전히  사람을 하나님 만나지 못하게 가로막는 거라 말이지. 이런데 이것도 보니까 다  그런. 이래서, 어제도 내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하고 참 요거는 이 주석이니  뭐이니 이런 거 다 불로 태워 버리고 다 전혀 어쩌든지 설교록이니 다 이런 것  다 불로 태워 버리고 고만 성경과, 이 전도함으로써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사람, 사람과 이 세 가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중생된 자기와 성경과 요 단둘이 만나 가지고 요래 되면은 이 속화  교회가 없을 것이고 그때 그때 성령이 역사해 가지고서 이 교회가 썩어지지 않고  좋을 것인데 이거 전부 이게 나서 가지고 다 썩혀뜨렸다. 그것을 내가 또 어제도  누구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청년들이 다 그래 사 가지고 한다는 것 그 청년들이 사  가지고서 그따위짓 하지 말고 어짜든지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을 읽고 자기가,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실행하면 깨달아지는 그 길뿐이지 사는 길이지 그저 뭐  이런 것 저런 것 짜다라 성경 공부한다고 해 가지고 마귀가 전부이 요새는 성경  공부 시켜요. 마귀가 전부 성경 공부시켜요. 성경 공부시킨다 해 가지고 사람을  죽입니다. 암만 제가 성경을 뭐 암만 거석해 봤자 천 독 만 독 읽고 암만 주석을  찾아 봐도 속에 있는 깊은 진리는 모릅니다. 그것은 자기가 애를 쓰고서  새사람으로 살고, 이렇게 새사람으로 살고 이래야 그 새사람 이래야 되지, 그렇게  말씀했어.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뭐라  했습니까? ‘참 내 제자가 되고' 그게 사람이 성화되는 것이오. 성화되고, 그러면  진리를 새로 압니다. 이런 건데, 그런 것 가지고 자꾸 이래, 성경을 읽고  실행하고, 성경 읽을 때에 성경 이 진리가 나를 가르쳐서, 이 진리가 나를  가르쳐서 진리에게 배우도록, 또 성경 안에 있는 영감이 바로 가르쳐서 영감에게  배우도록 내가 진리의 사람 영감의 사람주의, 피공로의 사람 내 자체가 이런  사람이 돼 가지고 배울 수 있도록 이게 뭐이냐 하면은 말씀 듣고 자기가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건 안 하고 이것 가지고 그라니까, 그러니까 요새는 목사노릇하기가 어렵고  쉽습니다. 왜? 이 젊은 사람들 어짜든지 자꾸 독서를 뭐 속독법도 배워 놨지  이러니까 독서하기를 그래서 자꾸 읽은 사람, 이 성경 외에 다른 것을 자꾸 읽어  가지고서 이와같이 하는 그 사람은 어떤 죄를 지으면서라도 그거 그만 영감  그거는 필요 없고, 글은 글이고 말은 말이기 때문에, 지식은 지식이기 때문에  성경 지식을 이리 저리 보고 상고해서 많이 외어 가지고서 그대로 하니까 순  공산주의 무신론의 대가리라도 이 요새 설교는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습니다. 고거  보고 다 이래 가지고서 고만 그대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말이오. 할 수가  있지마는 성령은 속이지를 못합니다. 옛날부터 이단이 어데서 나왔느냐? 이단이  성경 가지고 말했습니다. 성경 가지고 말해서 교회를 죽이고 사람들을 죽였어.

그러기 때문에 참된 기독자가 순교당한 것은 믿는 사람에게 당했지 이방인들에게  당한 일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거 뭐 이게 없이 이라니까, 영감 안 받으면  설교하려고 해도 설교가 안 되고 말도 안 나오고 자꾸 이래 돼지고 영감이  나오면 고만 설교가 돼지고 이렇게 돼지는 것을 할라 하니까 이거 사람이 죽을  지경인데 그리 안 하고 고만 지식적으로 이래 할라 하니까 뭐 아무 일 없어.

그것만 자꾸 많이 읽으면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좀 어려운 말인데  고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그런 건 하지 말고, 성경 읽고, 성경 본문만 읽으십시오.

그래. 내가, 톰슨 성경이란 그 성경이, 그러면 벌써 이름이 추접하고 보기도  싫은데, ‘그 성경이 본문은 어찌 됐느냐?’ `본문은 우리 성경과 꼭 같습니다.’  이라기 때문에 고게 좀 안심이 돼. ‘같습니다' 같으면, 같으면 인제 그거 하나의  미혹물이 되기 쉽다 그거요. 그거는 그 자체가 나빠 그런 게 아니고 사람들이  자꾸 쉽게, 쉽게 먹을라고, 겉먹을라고 자꾸 날뛰기 때문에 그 유혹을 받아  가지고서 속에 참된 능력도 보지 못하고, 또 참된 지혜도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고, 자기도 새사람도 나오지 못하고 그만 헛일 하기가 쉽다 그거요.

오늘 아침에 봉독했는데 이것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그러면 몇입니까? 또  장로, 또? 대제사장, 또? 서기관. 이 사람들은 장로라 하면은 교회서 제일 잘 믿는  사람들이 장로입니다. 또 성경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 서기관입니다. 대제사장은  그때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사이에 중보자로서 오늘의 교역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대제사장입니다. 이런데 대제사장은 한 사람뿐이요. 이러니까  대제사장인데 이분들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이분들이 예수님을 죽였어.

이분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말이오. 우리는 요걸 좀 깨달아야 돼.

이분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어.

못 박았는데, 가서 주석을 암만 들여다 봐. 거게 뭐 나오는가? 또 관주 성경 암만  찾아봐요. 나는 관주 성경 찾아야 효력 못봐. 왜 못 보느냐 하면 이 뭐인고  싶어서 내가 알고 싶은 거는 관주 성경 찾아보면 없고 엉뚱한 주만 해 놨어.

그러니까 속에 뜻은 없다 말이오.

왜 요래 되는가? 예수님과 왜 대적이 됐는가? 예수님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으셨고,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으셨고 제사장, 서기관, 장로,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이 사람은 죽는 생명으로 살았습니다. 죽는 생명, 죽는 생명으로 살았소.

죽는 생명으로 살았다 말이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옛사람으로 살았다는 말이요,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으로 살았다 말이오. 예수님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으셨다 말은 예수님은 새사람은 아니고 그는 뭐, 헌사람, 새사람, 우리가  새사람이지 예수님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았다 그말은 하나님과 진리와  동행하는, 하나님과 연결되는, 이 생명은 뭐이 생명인고 하니 자존하신, 완전하신  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동행하는 것이 그것이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우리가  지금 영생하는 생명을 얻은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그 생명이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새생명은 아니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인데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을 끊지 안했습니다. 연결된 생활은 어떻게 했는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예수님은 새생명으로 사는 것은 아니고,  우리는 죽었던 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새생명으로  살았다 하지마는 예수님은 죽었다가 그런 게 아니니 새생명이 아니고, 예수님은  함부래 죽지 안했어요. 한 번도 안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았어. 한 번도 안 죽었다니? 죽은 것은 껍데기 우리 대신해서 형벌로 죽었지  속에, 십자가 못 박힐 때에도 하나님과 연결은 끊치지 안했습니다. 연결은  끊어지지 안해. 그러기 때문에 이사야 53장에 보면은 ‘실상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자이시니라’ 이렇게 말씀했어.

예수님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고 그들은 죽어가는 생명, 다시 말하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으로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대립이 된다 이말입니다. 대립이  된다. 이러니까 예수님을 죽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어. 이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다 장로, 바리새 교인들, 서기관들, 대제사장들  이 일등으로 잘 믿는다 하는 사람들이 다 이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말이오.

못 박았는데, 그들이 못 박을 때에 그 근거를 뭐로 했느냐? 성경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서 그와같이 못 박았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은, 성경은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라고 우리에게 성경 준 것 아닙니다. 성경은, 진리와 성령과 피로  중생된 우리들에게 성령이 우리를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주는데, 그 성령이  인도하는 고대로 내가 행해야 되는데 성령 인도가 어떤 것인고 이것을 성령  인도를 구별해서 바로 찾도록 하는 데에 유일한 참고서와 같은 것입니다. 유일한  참고서와 같애요. 이러니까, 왜?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시되 성경 범위 내에서  인도하지 그 범위를 넘어서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듣고서 성경을  가지고서 이거 내가 악령의 감화를 받았느냐 성령의 감화를 받았느냐, 이게  하나님의 뜻이냐 저게 하나님의 뜻이냐, 곧 현실에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  고것이 영감인데, 이거 무슨 뜻이냐 이렇게 구별하는 데에 필요하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다른 사람에게 배워도 어떻게, 막상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그거는 사람이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필요도 없다. 너희 속에 기름  부음이란 말은 영감인데 너를 중생시킨 영감에게 배우려고 애를 써야 되지,  영감에게 배우는 고 일을 연습을 해서 처음에는 어렵지마는 자꾸 영감에게 듣고  배우고 이라면 숙달되면 나중에는 영감에게 빨리빨리 배워지니까 그거라야  돼지지 그거 아니면 안 된다 그걸 말씀해 놨다 말이오.

이런데, 그들이 차차차차 사람들이 말한 그 말을 중하게 여기고 성경 말씀은  중하게 여기지 안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장로들이, 교회의  머리되는 모두 장로들이 말한 그런 것을 도를 삼아 가지고서 하나님의 진리는  배반하지 안했느냐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안했습니까? 너희들이 사람의  말로 도를 삼고, 하나님의 진리라고 성경같이 삼고, 이 천주교가 교황이 깨달은  그 주장이라고 하면은 성경과 꼭같이, 교황이 깨달은 것도 정확 무오다, 성경이  정확 무오한 거와같다 이것이 천주교가 자꾸 썩어져 나가는 그거라 말이오.

그것도 천주교가 그렇지만 그것만 그런 게 아니고 오늘 이 개혁교라고 하는 것도  다 이렇게 돼 가지고 지금 썩어져 나가고 있다 그거야 이걸 알아야 돼요.

이러니까, 톰슨 성경이니 뭐이니 벧엘 성서 연구니 뭐이니 이래 가지고 보니까  그림 그것도 그림을 그려 가지고 막 이렇게 해서 이래 놓으니까 이게 하나님을  만나는데 못 만나게 하는 것이라. 그러니까 어짜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고대로  받고 우리가 받는 방편도 하나님이 주신 고 방편이 좋고 전하는 방편도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는 방편 그것이 좋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성경 말씀 보고  설교하고, 설교하고 문서를 모두 기록하는데 이것까지는 나는 인정이 지금  될랑말랑 될랑말랑 자꾸 이렇게 하고 있어요. 부인을 하나 어짜나? 주 기철  목사님은 그분이 세상을 떠날 때에 자기가 낸 주석책 을 다 가져오라 해  가지고서 자기 앞에서 불을 사루라 하고, 왜? 성경 있고 성령의 감화 감동 있으면  되는데 내가 도로 이거 이래 가지고서 그 사람이 직접 주님과 만나 가지고 이래  할 걸 내가 들어서 가로막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이래서, 잘 깨달았다 그거요.

왜? 우리가 실지로 보면 압니다.

칼빈이, 칼빈보다 더 역사에 위대한 선생이 없다 이래 하지마는 칼빈의 깨달음과  가르침이 우리에게 거리낌이 되더라 말이오. 거리낌이 돼서 그래 가지고 칼빈이  얼마나 많이 막았습니까? 많이 막았습니다. 칼빈이 말한 것 그 외에 뭣을 또 새  걸 발견해 가지고 말하면은 ‘제가 칼빈보다 낫나?’ 칼빈 고 가다 속에, 형틀 속에  딱 들어가서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도 못 하고 고 속에만 있으라 하는 것이  칼빈주의라. 이래 가지고 칼빈주의가 세력을 얼마나? 칼빈주의 신학이라고,  칼빈주의, 칼빈주의 이래 가지고서 많이 그라는데, 내가 청도 가 가지고서  칼빈주의에 대해서 ‘칼빈주의는 그 시대를 감당했고 이 시대는 다시 이 시대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새로 성령으로 역사해 가지고서 새 움이 나야 되지  묵은 둥치만 가지고 안 된다’ 이 말을 했더니만 고말이 어찌 그만 당장에 여기     신학교 왔다 말이오. 왔는데, 그때는 나를 지금 서로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뭘 지금 흠을 잡을까 이라고 있었는데 그말했다고 제가 칼빈보다 낫다 한다고  어떻게 욕이 퍼부어 오고 뭐 이렇게 돼 놨는지 그뭐 잔뜩 몰렸습니다.

잔뜩 몰렸는데, 그게 언제 내가 해방을 받았느냐 하면은     박사 말이지,      박사는    신학교 내나 교장노릇도 하고 지금 거기서 수고하고  계십니다. 좋은 목사님인데     목사님이 그때 미국서 건너와 가지고서 이제  그때 말할 때에 지금은 그 칼빈만 가지고 하지 말고 칼빈이 깨닫지 못한 것을  새로 깨달음이 있어야 된다 하는 그말을 그때    교파  교회 대강단에서 전국  그때 총회를 했던가 이랄 때에 그때 그 설교를 하며 그 설교를 했어요. 그 설교해  가지고 그때 내가 해방을 받았습니다. 그전에는 그렇지만, 그 박사가 그라니까  그말에는 욕도 못 하고 그렇겠다 인정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거 간판이 필요해요. 간판은 제게는 손해요. 그래서 박사 간판을 나는  가지지 말라 했는데, 그래 박사 간판은 자기를 위해서는 손해입니다. 박사 그거  자꾸 썩먹을라 하고 다른 사람은 박사 제일인 줄 알고 이래 높여 줄라 하니까  탈이지마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있어. 박사인 줄 알면 박사가 말하면 다른  사람이 인정을 잘하지만 이 간판주의자들이, 인정을 잘하지마는 이 일자 무식군은  말해야 인정을 안 해준다 그말이오. 옳은 걸 말해야 인정 안 해 줘. 그러니까  무식이 자기에게는 유익하고, 그런 간판은 다른 사람에게는 그게 간판 있는 게  유익합니다.

이래서, 이분들이 이렇게 천주교도 이렇게 다 흘러내려가서 요새는 여기 천주교는  보면 미사 드린다 하는 것이 제 이계명 우상 만들지 말라 했는데 그거 전부 사진  박에 놓고 이래 쭈욱 이래 놨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아침마다 요게 한번, 꼭 절  한 군데 두 번씩 합니다. 무릎 꿇고 하는 거 내가 가 봤어요. 이거 뭐 하는고  싶어서 가보니까 한 쪽 발 요래 무릎 딱 꿇고 요래 가지고서 딱 요래 요래  가지고서 절 꼬빡하고 또 두 번 해야. 한 번 두 번 하고 또 하고, 그러니까 뭐,  내가 그때 보니까 여게 저    산 천주교가 거기 가 보니까 칠십 몇 개인가  돼요. 칠십 몇 개인가 이래 있는데 그래 한 번씩 하니까 칠십 몇 개 칠십 개  절하려고 하면 몇 번 해야 됩니까, 두 번씩이면? 백 사십 번 아니오? 백 사십 번  한 그것이 미사 드리는 건데 인제, 그 미사 잘 드리면 천주교 잘 믿는 사람이오.

그 사람은 꼭 미사 드린다 아침마다 미사를 드리요. 그것이 성경에는 뭐라고 말해  놨소? 이래도 이것도 또 가면 인제 그만 아무 일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그거는  이계명을 범한다고 이래 놓으면 좋을 건데 그말은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천주교는 이계명범이라. 그거 말하지를 안해요. 모두 다. 이래 가지고 천추교와  지금 합동 번역하는데 참 기가 찹니다.

이러니까 이들이, 이들이 당시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도를, 하나님, 메시야를 믿는  그 사람들인데 이 구원을 바라는 중에 제일 대가리가 누구냐 하면 대제사장이  제일 대가리고, 그 다음에 또 둘째 대가리는 누구냐 하면은 장로가 둘째  대가리고, 그 다음에 세째 대가리는 이거 서기관이 세째 대가리고 또 네째  대가리는 뭐이냐 하면 열심쟁이라 하는 이 바리새 교파들이 네째 대가리라  말이오. 이들이 일등 대가리지마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안했느냐? 왜 죽였더냐? 예수님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았고, 영감으로 살았고, 예수님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았고 영감으로 살았고, 이들은 악령으로 살았고 죽는 이  육의 생명 육의 사람으로 살았고, 창세기 6장에 사람이 육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신이 영원히 그와 같이 있을 수가 없다고 이래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돼  가지고서 그때에 메시야를 십자가에, 저희들이 이제까지 고대하는  메시야를십자가에 못 박고, 그 선조들이 잘못해 가지고 그짓 해 놓으니까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자기네들 구주라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를 한  번씩은 꼭 합니다. 하면서 이 유태인들이 아직까지도 예수님을 자기 구주인 줄  모르고 지금 믿지 못하고 구원 얻지 못하니까 어서 구주인 것을 깨닫고 구원  이루게 해 달라고, 우리 큰집이거든. 이러니까 깨닫게 해 달라고서 그렇게 매일  한 번씩은 기도를 합니다 안 빠지고.

이런데, 이렇게 됐으니 우리도 사람이요 또 마귀도 그대로 있고, 내나 성경에,  성경도 그 성경으로 이와같이 지금 신약 성경이 하나 더 첨부해 있지마는 이래  있으니까 우리가 잘못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서기관, 바리새 교인, 장로,  제사장, 대제사장 되기 쉽다는 요것을 알아야 되지 요것을 관심을 안 가지면 다  헛일이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걸 말하는 것은 다 뺄쭉나다. 고집쟁이다,  안하 무인이다, 유아 독존이다, 이름이 그 사람은 유아 독존이라, 안하 무인이라,  독선주의라, 한국 엘리야라 이 이름을 욕을 얻어 먹는 그것이 좋은 거라  그말이오. 나쁜 게 아니고.

여러분들이 암만 들어야 모르면 몰라요. 먼저 총공회 때에 사흘 동안  총공회했지만 우리 진영에 있는 목사들이 내가 무엇 때문에 지금 말하고 있는지  그걸 알아듣는 사람이 내가 보기에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애, 그때가 사흘 동안이나  연기하면서 그것을 자꾸 이 하고 한 것이 뭐 때문에 했고 뭐 때문에 왜? 진리를  안 줄라고 그런 거라. 지금 끌고 나오는 이 진리, 이걸 일반 교회를 만들지  안하려고 해 가지고 그때 사흘 동안이나 신강을 했다 말이오. 그걸 봐야 몰라요.

이러니까, 요게서 우리가 깨달아서 그 사람들도 그렇게 잘 믿는 사람들이 나중에  그리 됐는데 왜 그리 됐느냐? 왜 그리 됐느냐? 될 것이 하나님의 도만 도로 삼지  안하고 인간의 말을 도로 삼아 가지고, 장로가 장로의 유전들, 장로의 유전 그걸  도로 삼았어요. 이러니까 이 주석가들 이거 모두 톰슨, 또 벧엘 이런 사람들이  말한 그걸 도로 삼고 하나님 말씀을 도로 삼지 안하는 데에서 이렇게 타락이 돼  가지고서, 저거는 잘 믿는다고 하는 것이 예수를 죽여야 잘 믿지 하고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말입니다. 그래, 못 박으면서 얼마든지 그걸 말하니까 ‘아,  그 피의 값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 그거 잘하는 줄 알고, 저거 그거 자손에게  돌려 달라 하면은 대대로 축복받는 일인 줄 알고 그들이 자신만만하게 그 피의  값은 우리 자손들에게 돌려 주옵소서 이렇게 말했다 말이오. 저거는 알지 못하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그거 이용을 해 가지고서 예수님의 공로를 그들에게  그 하라고, 저거는 모르는 소리했소. 저거는 엉뚱한 소리했는데 하나님은 그 말을  이용을 했다 말이오. 이용을 해 가지고서 자손들이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입도록  했어. 그러나 저거는 예수 죽인 것이 자기에게 선한 일 한 줄 알고 천 대까지 복  받으리라 하는 그 복을 받을 줄 알고 했다 말이오. 그거는 저주 받아요.

이러기에, 이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합시다. 고라고 시간이 없어 내가 다 못  하는데, 교역자들도 깨달아요. 요게 새생명으로 살면 외부적으로는 여전 고난이  옵니다. 외부적으로는 이렇게 고난 와. 예수님이 그 대제사장, 서기관,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박해 당한다. 오늘도 영생하는 새생명으로. 새사람으로, 영생하는  새생명으로, 새사람으로 살면 현재에 이 교회들에게 이렇게 대립이 되어지고  박해를 당하는데 이단이다, 만날 욕 얻어 먹고 만날 저거, 나중에 가서는 죽이요.

그만. 저게 들어 안 되니까 저거 죽여야 된다. 왜 죽이느냐? 자기네들 주장하고  반대되니까 죽여야 된다 말이오. 아마 이 톰슨 성경 한 사람이나 뭐 이 벧엘 성경  한 사람이나 내가 하는 이 말이 설교록에 나가면은 고 미움이 될 거라.’ ‘그놈의  새끼' 이렇게 하면 그럴 거라. 그게 나중에 심해지면은 나중에 죽인다 말이오.

죽임을 받아요. 이걸 알아요. 알아요, 다.

영생하는 새생명으로 새사람으로 살면은 이렇게 교회들에게 박해를 당한다.

그러면 교회들에게 박해를 당하면은 그 사람들은 어떻게 믿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직접 들어서 믿을라고 하는 것보다도 장로들이 예수 잘믿는  사람들의 그 말을 지키는 그것을 더 하나님 말씀 지키는 것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것 장로들이 유전한 그 유전을 지키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지 안하고 인간의 말로 도를 삼았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하나 표준으로  말하면 그렇게 발표할 수 있다 말이오.

그러고, 이 자기를 부인하고 하는 그말은 뭐이냐 하면은 옛사람 그놈을 부인해야  돼요.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 새사람으로  살면은 이렇게 대내의 박해와 대외의 박해가 있다 말입니다. 새사람으로 살면  자기 속에도 원수가 있고, 자기 밖에도 원수가 있고, 자기 속에서도 싸워야 될  놈이 있고, 자기 밖에도 싸워야 할 대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것을 여게 말했어.

새사람으로 살고, 영생하는 사람, 중생한 사람이 새사람인데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뭘로 사는 것이냐?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으로 살고 영감으로 살고  진리로 사는 것이 그게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요 그게 영생으로 사는 것이라  그거요.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요 말씀을 요걸 잘 알아야 됩니다. 요거 뭐  주석 암만 들여다 봐야 주석에 가 가지고 요게 있을란지 없을란지, 나는 다  보지는 못했지마는.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요걸 모르기  때문에 왜정 말년 신사 참배 때에 다 꺼꾸러졌읍니다. 6 5 인민군들에게 다 굴복  다 당했습니다. 요걸 알면.

요거는 뭐 요거는 뭘 말하느냐? 뭘 말하느냐? 중생된 새사람과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권능을 말하는 것이요. 알겠습니까? 권능. 다시 말하면 산  믿음으로 사는 걸 말합니다. 다니엘이 그때 만일 자기가 자기 목숨을 구원하려고  하면은 새사람으로 살 수 있소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 수 있소? 다니엘이 그때  ‘아, 나는 그래도 기도 계속하겠습니다.’ 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나는  우상에게 절 안 합니다.’ 이렇게 한 것은 새사람으로 산 것입니까 옛사람으로 산  것입니까? 고것은 영생하는 생명이 살았습니까 죽는 이 육의 생명으로  살았습니까?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았어. 고라면 고것이 무슨 믿음입니까? 산  믿음입니다.

산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어. 산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기 때문에, 전능이기  때문에 고 산 믿음, 산 믿음, 새사람 영생하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 이 아들의  능력을 말하는 것인데, 능력. 그러니까 죽을 때가 됐으면 뭐 합니까? 그래, 순교.

죽을 때가 됐으면 순교하고, 아직까지 죽을 때가 안 됐는데 불에다 넣었으면 어찌  됩니까? 불에 넣었으면 어찌 돼요? 불에 넣었으면 어찌 됩니까? 죽을 때가 안  됐는데 불에 넣었으면 어찌 됩니까? 기적이 나와. 죽을 때가 안 됐는데 사자  구덩이에다가 집어 넣었으면 뭐이 나와요? 기적이 나와요. 기적이 나와.

이러니까 이 새생명의 능력은 전능이라. 새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된 게 새생명이기  때문에 나는 전능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전능하니까 전능과 연결이 됐으니까 내가  전능이라, 전지와 연결이 됐으니까 내가 전지라. 완전과 연결됐으니까 내가  완전이라. 이러니까 자, 죽을 때가 됐으면, 세상 뜰 때가 됐으면 순교하니까 폐물  이용으로, 이미 죽어 없어지는 그 생명을 이렇게, 사람이 삶이 반이요 죽음이  반인데 이 죽음을, 폐물 죽음될 것을 완전히 이용이 되면은 일생 동안 예수 잘  믿은 모가치 됩니다. 일생 동안 예수 잘 믿은 것만치 중량 무거운 복을 차지해.

이러니까 이거 일생 동안 순생이나 순교나 한가지인데, 이제 일생 동안 주를  위해서 깨끗하게 산 그것이나 마지막에 죽음을 바로 죽는 것이나 중량이 같애.

얼마나 큰 수입입니까? 죽을 때가 됐으면 큰 수입, 폐물 이용, 큰 수입, 또 죽을  때가 안 됐으면 안 됐는데 불에 집어 넣었습니다. 어찌 됩니까? 죽을 때가 안  됐는데 불에 집어 넣었으면 어찌 돼?   조사, 기적이 나와. 죽을 때가 안 됐는데  사자 구덩이 집어 넣으면 뭐 나오지요? 기적 나와.

아, 죽을 때가 안 됐는데 담배불 그 불 달라 하니까 ‘아, 다른 불은 줄 수 있어도  담배불 내가 심부름 못 합니다.’ 이러니까 ‘담배불 심부름 못 해? 죽어도 못 해?’ ‘  못 합니다.' 끌고 갔다 말이오. 저기 가서 구덩이에 가 가지고 ‘지금도 못 해?  네가 담배불 못 줘?’ 이라니까 `못 줍니다.' `죽어도 못 줘?’ 못 줍니다.' 그라면  죽을 것 아니요? 그때 아마 그 집사님이,  집사 여기 왔는가 몰라. 요새 그것도  막 신앙 생활 못 하구로 신앙 생활 못 하구로 막 이 웅쳐대니까 못 견뎌.   집사  딸 여기 왔네. 손들어 봐. 들어봐, 뻐뜩,   집사 딸 여기 있어. 있는데, 그래 그  어머니가 그랬어. 아, 죽을 때가 못 되니까 이라니까 나중에 총을 턱 놓으면서 ‘참  예수님을 바로 믿습니다. 나도 예수 믿는 놈이 지금 공산주의에 끌려서 내가 지금  못 견뎌서 이런데 나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라며 존경을 하고 가더래요.

죽을 때가 안 됐으니까 하나님의 기적 아니요? 그 기적 아닙니까, 그것도? 죽을  때가 안 됐으면 기적 나오고, 죽을 때가 됐으면? 순교라. 이러기 때문에 이제 이  새사람과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데에 권능은 이런 권능이 있다 이걸 말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그만 옛사람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것 때문에, 새사람으로  살면 산다. 새사람으로 살면 그 고기덩어리도 기적으로 살아나오고, 또 죽을 때  되면 순교당하고, 이러기 때문에 죽었으면 새생명이 살아서 영생이 더 견고해졌고  이래도 저래도 삽니다. 육이 자, 육까지 살 때 되면은 육까지 살고, 육 안 살고  영이 영생하구로 살면 영이 영생으로 살고, 영생으로 사는 것도 살 수 있고  육덩이 죽는 생명 이것도 잘 유지 될 수가 있고, 만일 다니엘 그때 안 그랬으면  죽는다 그말이오. 그거 ‘하나님 배반하고 `아이구 나는 그라면 딴 데 기도 안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 안 하고 내가 있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이별됐으니까 이별됐으니까 그 사람들이 그 뒤에 그거 냅둡니까? 하나님이 같이  안하니까 무슨 권능이 있겠소? 그거 제가 점점 다 그러면 다니엘이 등신이 될  것이고, 그라고 난 다음에 몰려서 죽여 버릴 것 아닙니까? 그거는 안 죽을 도리가  없어. 이러니까 이렇게 사는 것이, 새사람과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것이 이것이  영도 육도 금생도 내세도 전부 승리요 전부 생명인 것입니다. 이것이 새사람과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그자의 능력이 어떠냐 하는 것을 요것을 보여 준 것이라  그거요.

또,그 다음에 25절 이하에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는 이것은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의  가치를 말한 것입니다.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의 가치, 그러면 자기가 한 시간은  냅두고 뭐 한 십 분이라도, 십 분이라도 새사람으로 살면 천하보다 중량이 크다  말이오. 그런데 잃는 것은 뭣 때문에 잃었습니까? 자기를 잊어버린 거는 뭣  때문에 잊어 버려? 자기를 잊어 버리는 것은 새사람 잊어 버리고 옛사람으로  산다 그말이오. 왜? 이 세상 것을 소망하고 세상 것 안 뺏길라고, 세상 것  얻을라고 이래 가지고서, 세상 그거 안 뺏길라고, 세상 것 차지하려고, 이 세상에  좀 더 살지 이라기 위해서 새사람을 배반하고 옛사람으로 획 돌아서 버렸다  말이오. 그러니까 고만 산 믿음 배반해 버리고 고만 세상을 따라 이래 살았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가 이 세상 때문에 새사람을, 자기를 잊어 버렸다 말은  새사람 잊어 버렸다 말이오. 새사람 잊어 버리고 옛사람으로 그만 바꿔섰다  말이오.

자기를 빼앗긴 거는 뭐이냐 하면은 고 순간을 산 믿음으로 살았으면 자기 그  모든 지체는 전지 전능의 지체가 되어지는 것인데 전지 전능의 지체가  되어지는데, 아, 고만 고 현실에서 세상 것 이런 문제 때문에 전지 전능의 지체가  될 그 심신의 기능을 완전히 죽여 버리고 말았다 말이오. 고 한 시간 고 현실에서  자기의 심신의 기능이 영생하는 기능이 될 터인데 고것을 그만 빼앗겨 버렸다  말이오. 고걸 그만 그 현실을 영감에서 마귀로 살았기 때문에 빼앗겼다 말이오.

그거는 뺏겼는데, 한 시간이나 네가 한 십 분이나 이래 네 현실에서 고 세상  것을, 세상에 좀 더 살라고, 세상 것을 위해서 하는 그것을 가지고 그것 때문에  네 새사람도 그만 놓쳐 버렸고 또, 또 새사람의 기능이 될 것도 다 뺏겨 버렸고  이랬는데 그 뺏긴 그것이 가치가 얼마나 크냐?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도 이게  가치가 더 크다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러니까 요게서 보면, 아, 새생명으로와 영생으로 안 살면 저는 예수님의 적이  되고 맙니다. 너희들 속에 내 말이 거할 곳이 없기 때문에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그렇게 됩니다. 새생명으로 안 살면은 예수 잘 믿는 사람이 적이 됩니다.

새생명으로 살면 그 외부에 십자가 이 고난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난들이 많이  있어. 외부에 고난이 있어. 그러나 참고 견뎌. 고난이 있으나 새사람으로 사는 그  능력은 굉장히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기 때문에 구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린 자는 살리라 하는 이거는 영생의 생명도 얻고  육의 생명도 다 얻는다 그말이오. 다니엘로 생각하면 잘 알아요. 새생명으로 사는  자의 그 실력이 어떠한가 하는 고 실력을 말해요.

그 다음에 온 천하를 얻고도 하는 것은 새생명으로 사는 자의 그 결과의 가치가,  새생명으로 사는 자의 가치가 어떠하다, 그 능력이 어떠하다, 그렇게 살라고  하면은 외부 안팎에 파동이 있다 파란이 있다 고걸 말했고, 새생명으로 살지  안하면은 처음의 그는 예수님을 자기네들이 메시야로 기다리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그렇게 변질이 돼 가지고서 기독교 같으나 완전히 그게  기독교의 적이 되고 만다 말이오. 적 기독이 그게 속화된 교회가 적기독인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몇 가지 배웠어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 배웠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이거 하나도 모르네. 아, 네 가지  배우지 안했어? 네 가지, 네 가지, 하나는 잘못하면 옛사람으로 살기 쉬운 것 또  새사람으로 살라고 하면은 안팎에 투쟁이 있는 것, 또 하나 뭐이요?   조사,  새사람으로 사는 자의 그 능력, 또 하나는 뭐이야? 새사람으로 사는 가치. 몇  가지 배웠습니까? 이제 가르친 것? 손들어봐. 손을 들어 보이소. 다섯 가지  아니고 네 가지인데, 네 가지 배웠어.

요 단단히 기억하고, 요것을 기억함으로써 자기 속에 힘이 나와야 됩니다. 요거  생각하면 힘이 나와. 그 힘이 무슨 힘입니까? 그 힘이 무슨 힘이야? 예? 전능의  힘이라. 그것이 우주 만물을 창조한 그 능력이라. 그러니까 피조물이 그 앞에서는  예 예 굴복만 하고 이용만 당했지 해는 못 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요  생명으로 살았는데 불이 이용을 당했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에게 이용  당했소? 이용당했습니까? 이용 단단히 당했습니다. 그 불이 얼마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도와 줬던지 도와 줬던지 고만 그라고 나오니까 마구 이거 뭐 온  전국이 하나님으로 충만해져버렸어. 그 불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도왔지  해하지 못했어. 사자도 그랬어.

자, 우리   집사 그 새생명으로 살아 그랬는데 인민군이 그  집사 도왔소  해졌소? 도왔어. 이래 놓으니까   집사 유명해  집사 여기 왔는지 몰라. 손 한  번 들어 봐요.  집사 왔으면. 좀 손들어봐. 아, 저게 뒤에 있는 것 같다. 예?  왔어? 그래. 그래 놓으니까 이   집사 유명해졌다 말이오. 그래 모두   집사  유명해졌어. 그래 모두 우리    교파에서는, 우리   교파에서는 다 알아요. 그  나도   교파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장 우리   교파라 해. 우리   교파에서  다 알아요   집사 그래 가지고 그 유명해서 그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도 은혜도  많이 받고 아주 유명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쪼굴딱이 이 할마이 이   교파에  가도 이렇게 모십니다. 그러니까 인민군이   집사를 도왔지 해하지는 못했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산 믿음은 여러분들 전지 전능이라는 걸 생각하고 어짜든지 산 믿음은  현실에 있습니다. 요 산 믿음, 그래 누가 겨자씨 믿음 가지고 요번에 집회한다고  하던데 그것만 잘 해석하면 그것만 가르쳐 주면 그만 그 교회 살립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다른 성경 그거 내 가지고 주석이니 뭐이니 다른 성경 자꾸 이래 가지고 하지  말고 성경 본문 읽고 그 관주 그런 것도 찾아봐 가지고 그라면 삐뚤어져, 그거  찾아보지 말고, 내가 성경 많이 읽고 깨달아요 딱 깨달아지고 난 다음에는 주석도  찾아봐요. 깨달아고 난 다음에는 보자. 깨달음 이게 바로 됐나 어찌 됐나? 깨달아  가지고 봐 보면은 주석한 것은 주석한 거는 저게 밑에 있고 자기는 쑤욱 위에,  쑤욱 위에, 쑤욱 위에 가서 깨달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제  뒤에 참고로는 하지마는 먼저 깨닫는 것을 주석 보고 자꾸 그리 달아나지를 말라  그말이오.


선지자선교회  여게 오늘 아침에 22절로부터 봉독한 말씀은, 우리는 생명이 둘 있습니다.

생명이 둘이 있어서 하나는 영생하는 생명이고 하나는 죽는 생명입니다. 생명은  생명이나 그것은 자꾸 죽어갑니다. 그러기에 하루 하루 지나면 더 죽고 이틀  지나면 더 죽고 사흘 지나면 더 죽고 또 살아갈수록 자꾸 죽습니다.

 지난 밤에 OO목사님이 옛사람과 새사람을 설교해는데 그거 내 마음에 참  좋았습니다. 나는 OOO교회에 OO목사님이 설교하는데 이 하늘의 복음으로  옮겨가지 안하고 땅의 복음과 하늘의 복음과 어름 어름한 그래서 이거 이거 내가  여러 번 말했는데 엊저녁에 설교를 들으니까 하늘의 복음으로 확 기울어져서  이렇게 가는 것이 보여졌습니다. 그라면 인제 잘 됩니다. 땅의 복음 그까짓 거는  암만 해 봤자 속이는 것뿐입니다.

 이런데, 그 OO성경을 나는 처음 봐서 우리 O목사님은 거기 대해서 잘 알기  때문에 물었다 말이오. '자, O목사님 이거 OO성경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뭐입니까?' 이라니까 그 얘기를 해 주면서 그런 종류가 한국에 한 대엿 개  들어왔다고서 이라는데 그라며 웃으면서 그말 해 '요새 교인들이 그 성경을 사  가지고서 전부 성경 공부를 하기 때문에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다가는 참 코빵  맞는 일이 더러 있고-그거는 내 말이야. 그런 의미로 말해요-아주 뭐 질문을  당해서 틀리면 틀렸다고 그래 알고 하기 때문에 요새 목사들은 아주 공부를 많이  안 하면 설교를 못 한답니다. 웃으며 그래 말해요.

 그것으로써 성경 공부하는 것이 좋은 것 같으나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말하면 그 사람은 억지 소리 고집 소리 같고, 좋다고 하는 것은 그거는 백의 구십  구가 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실은 좋지를 못합니다. 그것을 읽어 가지고서 관주  성경이 요러니까 요걸 관주 성경 봐 가지고 찾아 가지고 또 요래 거석하고 또  고거 해석하고 이렇게 주셔 보고 하는 그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이래서 그  설교록 이것도 참 하는 것이 이게, 지금도 내가 또 처음에 또 안 할라 하다가  요번에 또 그 다음에 하다가 이런데 그 하는 것이 이걸 안 하는 게 좋지 않느냐?  이렇게 자꾸 생각하고 의문이 납니다.

 왜 그러냐? 주석이 그게 해롭다는 것은 자기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고, 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자기가 있다 말이오. 자기 있고, 또  성경책이 있고 성경책이 있는데 그 성경책은 획 하나도 변동 없다는 것은 원본  성경은 한 권뿐인데 기자들이 성경을, 성령님이 기자들을 통해서 기록한 그 원본  성경은 한 권뿐입니다. 원권 그거 한 권뿐이데 그 한 권을 베낀 걸 가리켜서,  사람이 베낀 것을 가리켜서 사본이라 이랍니다 암만 베끼는 자가 조심해서  베껴도 사본과 사본이 서로 틀린다 말이오. 그래서 그 중에는 제일 틀리지 않는  그 사본을 뭐 이런 나라 말 저런 나라 말로 각국 말로 번역을 해 가지고  그와같이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본이 있으면 좋지마는 원본에 한 자도  안 틀리도록 고렇게 됐으면 좋지마는 이 사본과, 이 사람이 베낀 것과 저 사람이  베낀 것이 조금 틀린 것이 있으니까 어느 것을 맞았다 이렇게 할 수가 없는데 그  중에 제일 볼 때에 옳다 바르다 하는 그런 것을 해서 우리가 번역한 것을 보고  있습니다.

 있는데, 또 성경에는 명백성이 있습니다. 명백성이라 그말은 성경 자체에 이  자체가 이런 지식이 아니고 일반적인 세상에 있는 지식이라 하는 그런 지식이  아니고 이는 진리기 때문에, 진리가 지금 문서로 나타났습니다. 진리가 사람 말로  나타냈었는데 사람 말 그게 진리가 아니고 그 속에 진리가 사람 말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는 그 진리가 없는 가운데 영계와 물질계 모든  것을 창조한 시공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명령했고, 하나님은 지어라 말씀했고  그 말씀이 나와 가지고서 모든 것을 창조한, 집을 하나 지을라고 하면은 그 집을  짓는 데에는 주인이 있고, 이렇게 있어 설계도 하고 뭣도 하고, 그리 안하면 또  감독을 세워 가지고서 이 일을, 그 집을 짓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집을 짓는 그  시공자가 있는 것처럼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창조하실 때에 시공한 것이  있으니 시공한 것은 진리가 했습니다. 시공하도록 명령한 이는 하나님이  명령했습니다. 말씀이 명령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명령했습니다.

 이랬는데, 그래서 그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 문서와 다른 고로 그것을 모두  다, 학자들이 연구해 보고서 확실히 느끼는 가운데서 통계로 말해 가지고서 성경  가운데는 명백성이 있다. 밝을 명(明)자, 횐 백(白)자, 그 성품 성(性)자, 성경을 볼  때 환하게 바로 옳게 깨닫게 하는 명백성이 있다 이렇게 모두 다 통계가  됐습니다. 뭐 아무든지 성경을 보면은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는 그  능력이 있습니다. 명백성이 있지, 또 성경 안에는 성경을 기록한 기록 영감이  내나 그 영감이 이 성경 안에서 내재해 가지고 성경을 읽을 때에 그 사람에게  깨닫게 하려고서, 아 성경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감동이 역사하는, 살아 역사하는  감동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 자체에 명백성이 있지, 또 그 안에 영감이 내재해  가지고 계시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자기가 있지, 이러니까 삼합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성경을, 가장 잘 깨달아집니다. 깨달아지는데, 요 적이  뭐냐 적이냐 하면은 인간들이, 이 주석이 적이 아닌데 주석은 어떤 사람이 요  성경만 보고 성경의 명백성이 가르쳐 주는 대로, 영감이 가르쳐 주는 대로, 또  중생된 자기가 지금 이렇게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성령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성령이 가르쳐 주고 있고 잘 깨닫도록 가르쳐  주고, 또 성경 안에도 성령이 계셔 가지고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요래 가지고서 깨달은 고 사람들이 깨달은 말을 하니까 고 사람들의  영감은 책 속에다가 들일 수가, 주석 속에다가, 영감은 주석 속에다가 잡아 넣을  수가 없고, 잡아 넣을 수가 있습니까? 그 안에 넣을 수가 없다 말이오.

하나님인데 넣을 수 있습니까? 영감은 그 안에 넣지를 못하고, 그 사람이 깨달은  영감은 넣지를 못하고, 그 사람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기 때문에 그 사람은  새생명으로 사는데 새생명으로 사는 그 새생명은 고 주석 안에다가 넣을 수가  없다 말이오. 넣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없는데, 다만 그 사람이 깨달아 가지고서  말하는 문서 이 말만 갖다 낸 말만 써놓은 것이 그게 주석이라 말이오.

주석이니까 뭐 성경을 볼 때에는 보면 성경을 자꾸 읽고 자기가, 자기가 기도하고  성경 읽고 그라면은 읽으면서 성경 속에 있는 명백성이 자기에게 가르쳐 주는 그  가르침을 받을라고 애를 쓰고, 또 성경 안에 있는 영감이 가르쳐 주시도록  기도하고 내나 그 영감은 하나님이시요 곧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에 그  영감에게 기도하고, 또 자기가 중생되기를 성령으로 중생됐기 때문에 중생된  새사람으로 지금 성경을 연구하려고 자꾸 읽고 애를 쓰고 기도하고 노력하고  이렇게 하면 눈이 슬그머니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이 성경에 진리가 들어  있으니까 진리가 슬그머니 깨달아진다 말이오. 깨달아지면은 참 좋고 기쁘고 힘도  나오고 그 능력이 나온다 말이오. 깨달아져.

 이렇게 하려고는 하지 안하고 요 말세에 제일 큰 죄가 무슨 죄인가 하니 자기를  어떻게 하면 영화롭게 하며 존귀케하며 기쁘게 하고 평안하게 할까 하는 요게  옛사람 요놈인데 요놈이 강해집니다. 강해져 가지고서 안일주의로 어찌됐든지  옛사람이 강해지기 때문에 성경을 그래 할라 하니까 그래 하기가 힘든다  그말이오. 요거 중요한 말입니다 요거 지금 한국에 세계 교회에 가 가지고서 요  말씀이 팍 눌러서 그거 다 죽여 꺾어야 됩니다. 힘이 드니까, 성경 볼 때에 성경  본문도 모르는 게 그만 이 관주에 어떤가 이 관주 찾습니다. 또 어떤 사람의  주석에는 뭐라 하는고 주석 찾습니다. 주석 찾고 관주 찾고.

 이래 관주 찾는데, 톰슨 성경 그런 게 다섯 종류가 나왔대요. 다섯 종류  나왔는데 그거는 인제 아마, 내가 보지는 안했어. 누군가 어제 아침에 우리 교인  중에 한 분이 와 가지고서 이래서, 그걸 나한테 사 년인가 얼마인가 그리 됐는데  그래도 나한테 와서 말하면 또 어찌될까 해서 말 안 하고 있었다가 요새는 하도  그 책이 세월이 나 가지고 뭐 성경보다 더 팔린답니다. 굉장해요. 그런데 큰  성경은 사만 얼마라든가 이렇고, 그 작은 거는 만 삼천 원인가 이런데 그거  나한테 한 권을 이래 참고하라고 기증할려고 이래 가져온 것을 내가 돈을 줬는데  어제 내가 누구한테 챘는고 내한테 돈 채 준 사람 만 삼천 원을 챘는데 내가  잊어 버렸습니다. 지금. 엊저녁에 내가 집에 가서 누군가 생각하니까 기억이  없는데 그거 누굽니까? 나한테 돈 빌려 준 사람 누구요? OOO목사님이었구나.

나는 깜빡 잊어 버려. 내가 암만 생각해도 못 나와. 그래, 영 머리가 둔해요.

그런데, 하나님 말씀이나 좋은 것 기억하는 데는 또 명철해. 그것 뭐 암만 오래  돼도 잘 안 잊어 버립니다. 함부래 딱 작정을 해 놨어요. 소용 없는 그런 거는 뭐  좀 몰라도 될 거고 이래서,  인제 이래 가지고서 고만 주석 보니까, 주석 보니까 주석이 아 이래 하니까, 아,  주석이 이라니 이런갑다. 주석을 따라서 그만 이 주석 저 주석 보고서 주석이  말하는데 고 총 중에 제일 좋은 것 선택했다 말이오. 그거는 자기 속에 있는  성령이 자기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까, 성경 안에 있는 성령이 가르쳐 준  것입니까, 또 성경 자체에 이 진리의 명백성 그 명백성이 가르쳐 준 것입니까,  어떻습니까? 중생된 새사람이 그건, 새 생명으로 사는 사람이 그것을 노력에  가지고서 들은 것입니까 뭐입니까? 그건 다른 사람이 한 거라 말이오. 다른 그  사람은 그 은혜를 받아 가지고서 그렇게 했다 말이오. 했지마는 그 껍데기만  이렇게 내놨지 속에 알맹이는 하나도, 사람에게 제재 받지 않습니까? 암만 글을  써도 그 알맹이는 거기 안 씌여 나와요 그거는 또 거기 안 나와요.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영감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이 성경책과 달라. 성경책 속에는  영감이 있고, 성경책 속에는 명백성이 있고 이렇지마는 사람들이 해 놓은 주석  속에는 영감이나 명백성이 있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녹음기 가지고 녹음해 가지고 고대로 들으면 다 된다  생각하지마는 그게 아니라 그러면, 고린도전서 2장에 내리 보면은 바울은 설교할  때에 내가 너희들에게 도를 전할 때에 그 지혜의 오묘한 말로 가지고서 전하려고  하지 안하고, 또 아름다운 그 뭐 지식적으로 전하려고 하지 안하고, 성령으로  전하고, 내가 전하는 것이 너희들에게 지혜의 오묘한 말에 있지 안하고 영감에  있기를, 권능에 있기를 원했다 그렇게 말했다 말이오. 권능에 있기를 원한다.

그것은 뭐이냐 하면 속에 알맹이를 원한 것인데 고만 그것보다도 주석을 해  가지고 자꾸 이래 하며 이래 가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만, 자기를 자기 속에,  역사하는, 자기 속에서, 요한 1서 2장 27절에 말씀한 거와같이 '너희 안에 기름  부음이 너희를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치나니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랬으니까 그 성령이 자기에게 가르쳐 줌을 받아야 할 터인데, 성령 와야  헛일이지 자기 속에 계시는 성령 필요 없지 성령을 저버린다 말이오.

 성령으로 살아야 할 터인데 성령은 저버리고 주석을 대신으로 해 버리지 또,  관주 성경 찾아 가지고 또 그걸 대신으로 하지, 또 거기다가 톰슨 성경인가  뭐인가 그거는 내가 보지는 안했는데 아마 그거는 무슨 뜻을, 관주 성경은 단어를  이렇게 주 모아 가지고 이래 한 것인데, 같은 단어를 쓴 것인데 이거는 무슨 같은  그 뭐 뜻이나 고런 것 조금 범위 넓게 한 게 아니겠는가 그래 싶어요, 주석을,  해석했다 하는 것 보니까. 아직 한 절도 보지는 안했어요, 내가, 안했는데, 그래  놓으니까 전부 자기가 노력할 일을 관주 성경이 자기 선생이 됐지, 또 톰슨  성경인가 무슨 성경인가 뭐 내가 나타냈다, 내가 나타냈다 하는 그 사람, 사람, 그  사람 성경이라는 그게 대엿 권이나 들어간 그까 또 그 주장을 하고 있지, 주석이  주장하고 있지, 이러니까 이 셋이 그 사람을 가르치고 있으니까 셋이 그 사람을  가르치고, 그 선생님을 말이지 그 사람이 모시기를 선생님을 이런 이 세 가지를  선생님으로 모시지, 성경 안에 있는 이 명백성이 가르쳐 줄라고 하고 있는 그거  들을라고 하면은 새사람이야 가르쳐 주지 새사람이 아니면, 안 가르쳐 줄라 한다  말이오. 마귀는 안 가르쳐 줘요, 암만 그래 쌓아도 몰라요. 이러니까 새사람이  돼야 될 터이니까 새사람을 찾아야 될 터이니 새사람 찾기가 힘드니까 요 될  이거 너거 이 명백성 한테 자꾸 이래 받을라 하니까 힘이 드니까 치워 버려라.

명백성 네까짓 게 다 안 가르쳐 줘도 된다. 치워 버려라 저 관주 성경 보면  되는데, 주석 보면 되는데, 톰슨 성경인가 그거 보면 되는데 그뭐 그럴 게 뭐  있느냐?  또, 이런데 성경 안에 있는 내재적 영감에게 가르쳐 달라고서 그 영감을  받으려고 애를 쓰니까 또 좀 거석하니까 조금 시작하니까 잘 안 나오니까 '에히  그거 필요 없다. 또 선생님, 낱낱하고 낱낱하고 아주 편리하고 쉽게 교제할 수  있는 선생님 주셔 선생님 나오시오. 주석 선생님 나오시요, 또 이 관주 선생님  나오시요, 톰슨 선생 나오십시오.' 이라니까 그만 영감은, 성경 안에 있는 내재적  영감은 뚜우하이 그만 쫓겨났어, 뚜우하이. 그거 아닌데 옛사람에게 줄 수는 없고  새사람이 돼야 주겠는데 새사람 되도록 자꾸 권고하니까 고만 마다고 해 가지고  옆에 고만 간교한 이 간부에게로 갔다 말이오. 그것도 간부라. 이가 버렸다  말이오.

 이러니까, 고만, 성경 안에 있는 내재적 영감도 배척당해 버렸지, 또 내 안에  있는 영감도 성경 알라 하면 알도록 자꾸 이래 가지고, 애를 쓰고 이라면은  우리를 중생시킨 새사람이 나올 터인데, 새사람이 나올 터인데 허영주의 이 세상  위주 이렇게 안일주의 옛사람 이놈이 나와 가지고서 이라니까 새사람 찾으면  줄라고 해도 새사람이 아니면 또 들을 수가 없다 말이오. 이렇는데, '다 치워  버려라 이래 놓으니까, 우리 속에 있는 영감도 배척, 성경 안에 있는 영감도 배척,  성경 속에 있는 명백성도 배척 누가 선생님입니까? 주석. 주석은 깨달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록했고 깨달은 사람들의 것을 듣고 이래했기 때문에 좋은 것이나, 좋은  것이나 자기에게는 필요가 없다 말이요. 좋은 것이나 사람에게 배울 필요가 없다  너한테 기름부음이 가르쳐 준다. 그 현실 현실마다 바른 걸 깨달아서 할라는 데는  그렇다고 말했는데 이 성경 보면 다 그래.

 그러기 때문에, 지금 내가 어제도 내가 그말 했어 요새 별 게 다 있습니다. 또  보니까 이 오행이라는 것 순전히 마귀 놀음인데, 오행이라는 꾀를 가지고서  성경을 풀어서 뭐 성경에 요긴한 요절을 전부 다 말해 놨어. 이래 가지고서  그것도 들어가면 뭐 성경이 딱 들어맞아요. 성경에 딱 맞아. 맞춰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하는데, 그런데 거게는 뭐이 나오느냐 하면은 우리 단군 그 뭐, 단군이  말을 했는데 이렇게 단군 한 말이 성경이라. 성경에 말했는데 아주 그라면 다  영생을 한다 이래 가지고서 인제 단군이 영생시킨다 했어. 그래 놓으니까 그  문서를 가지고, 나하고 같이 믿던 그 OOO집사님이라는 그분이 그걸  가져왔어요, 가져와 날 만나려다 못 만나고 갔어요. 아마 이거 단군이 이렇다  하는데 이게 어떻게 해 이러냐 해서 그래 묻기 위해서 나한테 왔는데 날 못  만났어. 그거 순 마귀말이라, 마귀말. 또 벧엘 성서 연구라 하는 그것도 순전히  사람을 하나님 만나지 못하게 가로막는 거라 말이지. 이런데 이것도 보니까 다  그런. 이래서, 어제도 내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하고 참 요거는 이 주석이니  뭐이니 이런 거 다 불로 태워 버리고 다 전혀 어쩌든지 설교록이니다 이런 것 다  불로 태워 버리고 고만 성경과 이 전도함으로써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사람,  사람과 이 세 가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중생된 자기와 성경과 요 단둘이 만나 가지고 요래 되면은 이 속화 교회가 없을  것이고 그때 그새 성령이 역사해 가지고서 이 교회가 썩어지지 않고 좋을 것인데  이거 전부 이게 나서 가지고 다 썩혀뜨렸다. 그것을 내가 또 어제도 누구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청년들이 다 그래 사 가지고 한다는 것 그 청년들이 사  가지고서 그따위짓 하지 말고 어짜든지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을 읽고 자기가,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실행하면 깨달아지는 그길뿐이지 사는 길이지 그저 뭐  이런 것 저런 것 짜다라 성경 공부한다고서 해 가지고 마귀가 전부이 요새는  성경 공부 시켜요. 마귀가 전부 성경 공부시켜요. 성경 공부시킨다 해 가지고  사람을 죽입니다. 암만 제가 성경을 뭐 암만 거석해 봤자 천 독 만 독 읽고 암만  주석을 찾아 봐도 속에 있는 깊은 진리는 모릅니다. 그것은 자기가 애를 쓰고서  새사람으로 살고, 이렇게 새사람으로 살고 이래야 그 새사람 이래야 되지, 그렇게  말씀했어.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뭐라  했습니까? '참 내 제자가 되고' 그게 사람이 성화되는 것이오. 성화되고, 그러면  진리를 새로 압니다. 이런 건데, 그런 것 가지고 자꾸 이래, 성경을 읽고  실행하고, 성경 읽을 때에 성경 이 진리가 나를 가르쳐서, 이 진리가 나를  가르쳐서 진리에게 배우도록, 또 성경 안에 있는 영감이 바로 가르쳐서 영감에게  배우도록 내가 진리의 사람 영감의 사람주의, 피공로의 사람 내 자체가 이런  사람이 돼 가지고 배울 수 있도록 이게 뭐이냐 하면은 말씀 듣고 자기가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건 안 하고 이것 가지고 그라니까, 그러니까 요새는 목사노릇 하기가 어렵고  쉽습니다.왜? 이 젊은 사람들 어짜든지 자꾸 독서를 뭐 속독법도 배워 놨지  이러니까 독서하기를 그래서 자꾸 읽은 사람, 이 성경 외에 다른 것을 자꾸 읽어  자지고서 이와같이 하는 그 사람은 어떤 죄를 지으면서라도 그거 그만 영감  그거는 필요 없고, 글은 글이고 말은 말이기 때문에 지식은 지식이기 때문에 성경  지식을 이리 저리 보고 상고해서, 많이 외어 가지고서 그대로 하니까 순 공산주의  무신론의 대가리라도 이 요새 설교는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습니다. 고거 보고 다  이래 가지고서 고만 그대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말이오. 할 수가 있지마는  성령은 속이지를 못합니다. 옛날부터 이단이 어데서 나왔느냐? 이단이 성경  가지고 말했습니다. 성경 가지고 말해서 교회를 죽이고 사람들을 죽였어. 그러기  때문에, 참된 기독자가 순교당한 것은 믿는 사람에게 당했지 이방인들에게 당한  일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거 뭐 이게 없이 이라니까, 영감 안 받으면  설교하려고 해도 설교가 안 되고 말도 안 나오고 자꾸 이래 돼지고 영감이  나오면 고만 설교가 돼지고 이렇게 돼지는 것을 할라 하니까 이거 사람이 죽을  지경인데 그리 안 하고 고만 지식적으로 이래 할라 하니까 뭐 아무 일 없어  그것만 자꾸 많이 읽으면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좀 어려운  말인데 고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그런 건 하지 말고, 성경 읽고, 성경 본문만  읽으십시오.

 그래. 내가, 톰슨 성경이란 그 성경이, 그러면 벌써 이름이 추접하고 보기도  싫은데, '그 성경이 본문은 어찌 됐느냐?' '본문은 우리 성경과 꼭 같습니다.'  이라기 때문에 고게 좀 안심이 돼. '같습니다' 같으면, 같으면 인제 그거 하나의  미혹물이 되기 쉽다 그거요. 그거는 그 자체가 나빠 그런 게 아니고 사람들이  자꾸 쉽게, 쉽게 먹을라고, 겉먹을라고 자꾸 날뛰기 때문에 그 유혹을 받아  가지고서 속에 참된 능력도 보지 못하고, 또 참된 지혜도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고, 자기도 새사람도 나오지 못하고 그만 헛일하기가 쉽다 그거요.

 오늘 아침에 봉독했는데 이것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그러면 몇입니까? 또  장로, 또? 대제사장, 또? 서기관. 이 사람들은 장로라 하면은 교회서 제일 잘 믿는  사람들이 장로입니다. 또 성경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 서기관입니다. 대제사장은  그때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사이에 중보자로서 오늘의 교역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대제사장입니다. 이런데 대제사장은 한 사람 뿐이요. 이러니까  대제사장인데 이분들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이분들이 예수님을 죽였어.

이분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말이오. 우리는 요걸 좀 깨달아야 돼.

이분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어.

 못 박았는데, 가서 주석을 암만 들여다 봐. 거게 뭐 나오는가? 또 관주 성경  암만 찾아봐요. 나는 관주 성경 찾아야 효력 못봐. 왜 못 보느냐 하면 이 뭐인고  싶어서 내가 알고 싶은 거는 관주 성경 찾아보면 없고 엉뚱한 주만 해 놨어.

그러니까 속에 뜻은 없다 말이오

 왜 요래 되는가? 예수님과 왜 대적이 됐는가? 예수님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으셨고,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으셨고 제사장, 서기관, 장로,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이 사람은 죽는 생명으로 살았습니다. 죽는 생명, 죽는 생명으로 살았소.

죽는 생명으로 살았다 말이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옛사람으로 살았다는 말이요,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으로 살았다 말이오. 예수님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으셨다 말은 예수님은 새사람은 아니고 그는 뭐, 헌사람, 새사람, 우리가  새사람이지 예수님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았다 그말은 하나님과 진리와  동행하는, 하나님과 연결되는, 이 생명은 뭐이 생명인고 하니 자존하신, 완전하신  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동행하는 것이 그것이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우리가  지금 영생하는 생명을 얻은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그 생명이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새생명은 아니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인데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계를 끊지 안했습니다. 연결된 생활은 어떻게 했는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예수님은 새생명으로 사는 것은 아니고,  우리는 죽었던 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새생명으로  살았다 하지마는 예수님은 죽었다가 그런 게 아니니 새생명이 아니고, 예수님은  함부래 죽지 안했어요. 한 번도 안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았어. 한 번도 안 죽었다니? 죽은 것은 껍데기 우리 대신해서 형벌로 죽었지  속에, 십자가 못 박힐 때에도 하나님과 연결은 끊치지 안했습니다. 연결은  끊어지지 안해. 그러기 때문에 이사야 53장에 보면은 '실상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자이시니라' 이렇게 말씀했어.

 예수님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고 그들은 죽어가는 생명, 다시 말하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으로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대립이 된다 이말입니다. 대립이  된다. 이러니까 예수님을 죽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어. 이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다 장로, 바리새교인들, 서기관들, 대제사장들 이  일등으로 잘 믿는다 하는 사람들이 다 이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말이오

 못 박았는데, 그들이 못 박을 때에 그 근거를 뭐로 했느냐? 성경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서 그와같이 못 박았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은, 성경은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라고 우리에게 성경 준 것 아닙니다. 성졍은, 진리와 성령과 피로  중생된 우리들에게 성령이 우리를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주는데, 그 성령이  인도하는 고대로 내가 행해야 되는데 성령 인도가 어떤 것인고 이것을 성령  인도를 구별해서 바로 찾도록 하는 데에 유일한 참고서와 같은 것입니다. 유일한  참고서와 같새요. 이러니까, 왜?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시되 성경 범위 내에서  인도하지 그 범위를 넘어서 인도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듣고서 성경을  가지고서 이거 내가 악령의 감화를 받았느냐 성령의 감화를 받았느냐, 이게  하나님의 뜻이냐 저게 하나님의 뜻이냐, 곧 현실에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  고것이 영감인데, 이거 무슨 뜻이냐 이렇게 구별하는 데에 필요하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다른 사람에게 배워도 어떻게, 막상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그거는 사람이 가르칠 수도 없고 배울 필요도 없다. 너희 속에  기름 부음이란 말은 영감인데 너를 중생시킨 영감에게 배우려고 애를 써야 되지,  영감에게 배우는 고 일을 연습을 해서 처음에는 어렵지마는 자꾸 영감에게 듣고  배우고 이라면 숙달되면 나중에는 영감에게 빨리빨리 배워지니까 그거라야  돼지지 그거 아니면 안 된다 그걸 말씀해 놨다 말이오.

 이런데, 그들이 차차차차 사람들이 말한 그 말을 중하게 여기고 성경 말씀은  중하게 여기지 안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장로들이, 교회의  머리되는 모두 장로들이 말한 그런 것을 도를 삼아 가지고서 하나님의 진리는  배반하지 안했느냐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안했습니까? 너희들이 사람의  말로 도를 삼고, 하나님의 진리라고 성경같이 삼고, 이 천주교가 교황이 깨달은  그 주장이라고 하면은 성경과 꼭같이, 교황이 깨달은 것도 정확 무오다 성경이  정확 무오한 거와같다 이것이 천주교가 자꾸 썩어져 나가는 그거라 말이오.

그것도 천주교가 그렇지만 그것만 그런 게 아니고 오늘 이 개혁교라고 하는 것도  다 이렇게 돼 가지고 지금 썩어져 나가고 있다 그거야 이걸 알아야 돼요.

 이러니까, 톰슨 성경이니 뭐이니 벧엘 성서 연구니 뭐이니 이래 가지고 보니까  그림 그것도 그림을 그려 가지고 막 이렇게 해서 이래 놓으니까 이게 하나님을  만나는데 못 만나게 하는 것이라. 그러니까 어짜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고대로  받고 우리가 받는 방편도 하나님이 주신 고 방편이 쫓고 전하는 방편도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는 방편 그것이 좋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성경 말씀보고  설교하고, 설교하고 문서를 모두 기록하는데 이것까지는 나는 인정이 지금  될랑말랑 될랑말랑 자꾸 이렇게 하고 있어요. 부인을 하나 어짜나? 주 기철  목사님은 그분이 세상을 떠날 때에 자기가 낸 주석책을 다 가져오라 해 가지고서  자기 앞에서 불을 사루라 하고, 왜? 성경 있고 성령의 감화 감동 있으면 되는데  내가 도로 이거 이래 가지고서 그 사람이 직접 주님과 만나 가지고 이래 할 걸  내가 들어서 가로막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이래서, 잘 깨달았다 그거요. 왜?  우리가 실지로 보면 압니다.

 칼빈이, 칼빈보다 더 역사에 위대한 선생이 없다 이래 하지마는 칼빈의 깨달음과  가르침이 우리에게 거리낌이 되더라 말이오. 거리낌이 돼서 그래 가지고 칼빈이  얼마나 많이 막았습니까? 많이 막았습니다. 칼빈이 말한 것 그 외에 뭣을 또 새  걸 발견해 가지고 말하면은 '제가 칼빈보다 낫나?' 칼빈 고 가다 속에, 형틀 속에  딱 들어가서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도 못하고 고 속에만 있으라 하는 것이  칼빈주의라. 이래 가지고 칼빈주의가 세력을 얼마나? 칼빈주의 신학이라고,  칼빈주의 칼빈주의 이래 가지고서 많이 그라는데, 내가 청도 가 가지고서  칼빈주의에 대해서 '칼빈주의는 그 시대를 감당했고 이 시대는 다시 이 시대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새로 성령으로 역사해 가지고서 새 움이 나야 되지  묵은 둥치만 가지고 안 된다' 이 말을 했더니만 고말이 어찌 그만 당장에 여기  OO신학교 왔다 말이오. 왔는데, 그때는 나를 지금 서로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뭘 지금 흠을 잡을까 이라고 있었는데 그 말했다고 제가 칼빈보다 낫다 한다고  어떻게 욕이 퍼부어 오고 뭐 이렇게 돼 놨는지 그뭐 잔뜩 몰렸습니다.

 잔뜩 몰렸는데, 그게 언제 내가 해방을 받았느냐 하면은 OO박사 말이지,  O박사는 OO신학교 내나 교장노릇도 하고 지금 거기서 수고하고 계십니다. 좋은  목사님인데 O목사님이 그때 미국서 건너와 가지고서 이제 그때 말할 때에  지금은 그 칼빈만 가지고 하지말고 칼빈이 깨닫지 못한 것을 새로 깨달음이  있어야 된다 하는 그말을 그때 OO교회 대강단에서 전국 그때 총회를 했던가  이랄 때에 그때 그 설교를 하며 그 설교를 했어요. 그 설교해 가지고 그때 내가  해방을 받았습니다. 그전에는 그렇지만, 그 박사가 그라니까 그말에는 욕도  못하고 그렇겠다 인정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거 간판이 필요해요. 간판은 제게는 손해요. 그래서 박사 간판을  나는 가지지 말라 했는데, 그래 박사 간판은 자기를 위해서는 손해입니다. 박사  그거 자꾸 썩먹을라 하고 다른 사람은 박사 제일인 줄 알고 이래 높여 줘라  하니까 탈이지마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있어. 박사인 줄 알면 박사가 말하면  다른 사람이 인정을 잘하지만 이 간판주의자들이, 인정을 잘하지마는 이 일자  무식군은 말해야 인정을 안 해준다 그말이오. 온은 걸 말해야 인정 안 해 줘.

그러니까 무식이 자기에게는 유익하고, 그런 간판은 다른 사람에게는 그게 간판  있는 게 유익합니다.

 이래서, 이분들이 이렇게 천주교도 이렇게 다 흘러내려가서 요새는 여기  천주교는 보면 미사 드린다 하는 것이 제 이계명 우상 만들지 말라 했는데 그거  전부 사진 박에 놓고 이래 쭈욱 이래 놨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아침마다 요게  한번, 꼭 절 한 군데 두 번씩 합니다. 무를 끊고 하는 거 내가 가 봤어요. 이거 뭐  하는고 싶어서 가보니까 한 쪽 발 요래 무를 딱 꿇고 요배 가지고서 딱 요래  요새 가지고서 절 꼬박하고 또 두 번 해야. 한 번 두 번 하고 또 하고, 그러니까  그, 내가 그때 보니까 여게 저 OO산 천주교가 거기 가 보니까 칠십 몇 개인가  돼요. 칠십 몇 개인가 이래 있는데 그래 한 번씩 하니까 칠십 몇 개 칠십 개  절하려고 하면 몇 번 해야 됩니까, 두 번씩이면? 백 사십 번 아니오? 백 사십 번  한 그것이 미사 드리는 건데 인제, 그 미사 잘 드리면 천주교 잘 믿는 사람이오.

그 사람은 꼭 미사 드린다, 아침마다 미사를 드리요. 그것이 성경에는 뭐라고  말해 놨소? 이래도 이것도 또 가면 인제 그만 아무 일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그거는 이계명을 범한다고 이래 놓으면 좋을 건데 그말은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천주교는 이계명범이라. 그거 말하지를 안해요. 모두 다. 이래 가지고  천주교와 지금 합동 번역하는데 참 기가 찹니다.

 이러니까 이들이, 이들이 당시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도를, 하나님, 메시야를  믿는 그 사람들인데 이 구원을 바라는 중에 제일 대가리가 누구냐 하면  대제사장이 제일 대가리고, 그 다음에 또 둘째 대가리는 누구냐 하면은 장로가  둘째 대가리고, 그 다음에 세째 대가리는 이거 서기관이 세째 대가리고 또 네째  대가리는 뭐이냐 하면 열심쟁이라 하는 이 바리새 교파들이 네째 대가리라  말이오. 이들이 일등 대가리지마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안했느냐?  왜 죽였더냐? 예수님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았고, 영감으로 살았고, 예수님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았고 영감으로 살았고, 이들은 악령으로 살았고 죽는 이  육의 생명 육의 사람으로 살았고, 창세기 6장에 사람이 육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신이 영원히 그와 같이 있을 수가 없다고 이래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돼  가지고서 그때에 메시야를 십자가에, 저희들이 이제까지 고대하는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선조들이 잘못해 가지고 그짓 해 놓으니까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자기네들 구주라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를 한  번씩은 꼭 합니다. 하면서 이 유태인들이 아직까지도 예수님을 자기 구주인 줄  모르고 지금 믿지 못하고 구원 얻지 못하니까 어서 구주인 것을 깨닫고 구원  이루게 해 달라고, 우리 큰집이거든. 이러니까 깨닫게 해 달라고서 그렇게 매일  한 번씩은 기도를 합니다 안 빠지고.

 이런데, 이렇게 됐으니 우리도 사람이요 또 마귀도 그대로 있고, 내나 성경에,  성경도 그 성경으로 이와같이 지금 신약 성경이 하나 더 첨부해 있지마는 이래  있으니까 우리가 잘못하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서기관, 바리새교인, 장로,  제사장, 대제사장 되기 쉽다는 요것을 알아야 되지 요것을 관심을 안 가지면 다  헛일이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걸 말하는 것은 다 뺄쭉나다, 고집쟁이다, 안하 무인이다,  유아독존이다, 이름이 그 사람은 유아독존이라, 안하무인이라, 독선주의라, 한국  엘리야라 이 이름을 욕을 얻어 먹는 그것이 좋은 거라 그말이오. 나쁜 게 아니고.

 여러분들이 암만들어야 모르면 몰라요. 먼저 총공회 때에 사흘 동안  총공회했지만 우리 진영에 있는 목사들이 내가 무엇 때문에 지금 말하고 있는지  그걸 알아듣는 사람이 내가 보기에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애, 그때가 사흘 동안이나  연기하면서 그것을 자꾸 이 하고 한 것이 뭐 때문에 했고 뭐 때문에 왜? 진리를  안 줄라고 그런 거라. 지금 끌고 나오는 이 진리, 이걸 일반 교회를 만들지  안하려고 해 가지고 그때 사흘 동안이나 신강을 했다 말이오. 그걸 봐야 몰라요.

 이러니까, 요게서 우리가 깨달아서 그 사람들도 그렇게 잘 믿는 사람들이 나중에  그리 됐는데 왜 그리 됐느냐? 왜 그리 됐느냐? 될 것이 하나님의 도만 도로 삼지  안하고 인간의 말을 도로 삼아 가지고, 장로가 장로의 유전들, 장로의 유전 그걸  도로 삼았어요. 이러니까 이 주석가들 이거 모두 톰슨, 또 벧엘 이런 사람들이  말한 그걸 도로 삼고 하나님 말씀을 도로 삼지 안하는 데에서 이렇게 타락이 돼  가지고서, 저거는 잘 믿는다고 하는 것이 예수를 죽여야 잘 믿지 하고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말입니다. 그래, 못 박으면서 얼마든지 그걸 말하니까 '아,  그 피의 값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시오.' 그거 잘하는 줄 알고, 저거 그거 자손에게  돌려 달라 하면은 대대로 축복받는 일인 줄 알고 그들이 자신만만하게 그 피의  값은 우리 자손들에게 돌려주옵소서 이렇게 말했다 말이오. 저거는 알지 못하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그거 이용을 해 가지고서 예수님의 공로를 그들에게  그 하라고, 저거는 모르는 소리했소. 저거는 엉뚱한 소리했는데 하나님은 고 말을  이용을 했다 말이오. 이용을 해 가지고서 자손들이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입도록  했어. 그러나 저거는 예수 죽인 것이 자기에게 선한 일 한 줄 알고 천 대까지 복  받으리라 하는 그 복을 받을 줄 알고 했다 말이오. 그거는 저주 받아요.

 이러기에, 이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합시다. 고라고 시간이 없어 내가 다  못하는데, 교역자들도 깨달아요. 요게 새생명으로 살면 외부적으로는 여전 고난이  옵니다. 외부적으로는 이렇게 고난 와. 예수님이 그 대제사장, 서기관, 제사장들이  장로들에게 박해 당한다. 오늘도 영생하는 새생명으로. 새사람으로, 영생하는  새생명으로, 새사람으로 살면 현재에 이 교회들에게 이렇게 대립이 되어지고  박해를 당하는데 이단이다, 만날 욕 얻어 먹고 만날 저거, 나중에 가서는 죽이요.

그만. 저게 들어 안 되니까 저거 죽여야 된다. 왜 죽이느냐? 자기네들 주장하고  반대되니까 죽여야 된다 말이오. 아마 이 톰슨 성경 한 사람이나 뭐 이 벧엘 성경  한 사람이나 내가 하는 이 말이 설교록에 나가면은 고 미움이 될 거라. '그놈의  새끼' 이렇게 하면 그럴 거라. 그게 나중에 심해지면은 나중에 죽인다 말이오.

죽임을 받아요. 이걸 알아요. 알아요, 다.

 영생하는 새생명으로 새사람으로 살면은 이렇게 교회들에게 박해를 당한다.

그러면 교회들에게 박해를 당하면은 그 사람들은 어떻게 믿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직접 들어서 믿을라고 하는 것보다도 장로들이 예수 잘믿는  사람들의 그 말을 지키는 그것을 더 하나님 말씀 지키는 것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것 장로들이 유전한 그 유전을 지키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지 안하고 인간의 말로 도를 삼았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하나 표준으로  말하면 그렇게 발표할 수 있다 말이오.

 그러고, 이 자기를 부인하고 하는 그말은 뭐이냐 하면은 옛사람 그놈을 부인해야  돼요.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 새사람으로  살면은 이렇게 대내의 박해와 대외의 박해가 있다 말입니다. 새사람으로 살면  자기 속에도 완수가 있고, 자기 밖에도 원수가 있고, 자기 속에서도 싸워야 될  놈이 있고, 자기 밖에도 싸워야 할 대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것을 여게 말했어.

새사람으로 살고, 영생하는 사람, 중생한 사람이 새사람인데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뭣로 사는 것이냐?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으로 살고 영감으로 살고  진리로 사는 것이 그게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요 그게 영생으로 사는 것이라  그거요.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얾으면 구원하리라' 요 말씀을 요걸 잘 알아야 됩니다. 요거 뭐  주석 암만 들여다 봐야 주석에 가 가지고 요게 있을란지 없을란지, 나는 다  보지는 못했지마는.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요걸 모르기  때문에 왜정 말년 신사 참배 때에 다 꺼꾸러졌습니다. 6·25 인민군들에게 다 굴복  다 당했습니다. 요걸 알면.

 요거는 뭐 요거는 뭘 말하느냐? 뭘 말하느냐? 중생된 새사람과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권능을 말하는 것이요. 알겠습니까? 권능. 다시 말하면 산  믿음으로 사는 걸 말합니다. 다니엘이 그때 만일 자기가 자기 목숨을 구원하려고  하면은 새사람으로 살 수 있소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 수 있소? 다니엘이 그때  '아, 나는 그래도 기도 계속하겠습니다.' 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나는  우상에게 절 안 합니다.' 이렇게 한 것은 새사람으로 산 것입니까 옛사람으로 산  것입니까? 고것은 영생하는 생명이 살았습니까 죽는 이 육의 생명으로  살았습니까?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았어. 고라면 고것이 무슨 믿음입니까? 산  믿음입니다.

 산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어. 산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기 때문에, 전능이기  때문에 고 산 믿음, 산 믿음, 새사람 영생하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 이 아들의  능력을 말하는 것인데, 능력. 그러니까 죽을 때가 됐으면 뭐 합니까? 그래, 순교.

죽을 때가 됐으면 순교하고, 아직까지 죽을 때가 안 됐는데 불에다 넣었으면 어찌  됩니까? 불에 넣었으면 어찌 돼요? 불에 넣었으면 어찌 됩니까? 죽을 때가 안  됐는데 불에 넣었으면 어찌 됩니까? 기적이 나와. 죽을 때가 안 됐는데 사자  구덩이에다가 집어 넣었으면 뭐이 나와요? 기적이 나와요. 기적이 나와.

 이러니까 이 새생명의 능력은 전능이라. 새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된 게  새생명이기 때문에 나는 전능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전능하니까 전능과 연결이  됐으니까 내가 전능이라, 전지와 연결이 됐으니까 내가 전지라. 완전과  연결됐으니까 내가 완전이라. 이러니까 자, 죽을 때가 됐으면, 세상 뜰 때가  됐으면 순교하니까 폐물 이용으로, 이미 죽어 없어지는 그 생명을 이렇게, 사람이  삶이 반이요 죽음이 반인데 이 죽음을, 폐물 죽음될 것을 완전히 이용이 되면은  일생 동안 예수 잘 믿은 모가치 됩니다. 일생 동안 예수 잘 믿은 것만치 중량  무거운 복을 차지해. 이러니까 이거 일생 동안 순생이나 순교나 한가지인데, 이제  일생 동안 주를 위해서 깨끗하게 산 그것이나 마지막에 죽음을 바로 죽는 것이나  중량이 같애. 얼마나 큰 수입입니까? 죽을 때가 됐으면 큰 수입, 폐물 이용, 큰  수입, 또 죽을 때가 안 됐으면 안 됐는데 불에 집어 넣었습니다. 어찌 됩니까?  죽을 때가 안 됐는데 불에 집어 넣었으면 어찌 돼? O조사, 기적이 나와. 죽을  때가 안 됐는데 사자 구덩이 집어 넣으면 뭐 나오지요? 기적 나와.

 아 죽을 때가 안 됐는데 담배불 그 불 달라 하니까 '아, 다른 불은 줄 수 있어도  담배불 내가 심부름 못 합니다.' 이러니까 '담배불 심부름 못 해? 죽어도 못 해?'  '못 합니다.' 끌고 갔다 말이오. 저기 가서 구덩이에 가 가지고 '지금도 못 해?  네가 담배불 못 줘?' 이라니까 '못 줍니다.' '죽어도 못 줘?' 못 줍니다.' 그라면  죽을 것 아니요? 그때 아마 그 집사님이, O집사 여기 왔는가 몰라. 요새 그것도  막 신앙 생활 못 하구로 신앙 생활 못하구로 막 이 웅쳐대니까 못 견뎌. O집사  딸 여기 왔네. 손들어 봐. 들어 봐, 뻐뜩, O집사 딸 여기 있어. 있는데, 그래 그  어머니가 그랬어. 아, 죽을 때가 못 되니까 이라니까 나중에 총을 턱 놓으면서 '참  예수님을 바로 믿습니다. 나도 예수 믿는 놈이 지금 공산주의에 끌려서 내가 지금  못 견뎌서 이런데 나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라며 존경을 하고 가더래요  죽을 때가 안 됐으니까 하나님의 기적 아니요? 그 기적 아닙니까 그것도? 죽을  때가 안 됐으면 기적 나오고, 죽을 때가 됐으면? 순교라 이러기 때문에 이제 이  새사람과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데에 권능은 이런 권능이 있다 이걸 말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그만 옛사람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것 때문에, 새사람으로  살면 산다. 새사람으로 살면 그 고기덩어리도 기적으로 살아 나오고, 또 죽을 때  되면 순교당하고, 이러기 때문에 죽었으면 새생명이 살아서 영생이 더 견고해졌고  이래도 저래도 삽니다. 육이 자, 육까지 살 때 되면은 육까지 살고, 육 안 살고  영이 영생하구로 살면 영이 영생으로 살고, 영생으로 사는 것도 살 수 있고  육덩이 죽는 생명 이것도 잘 유지 될 수가 있고, 만일 다니엘 그때 안 그랬으면  죽는다 그말이오. 그거 하나님 배반하고 '아이구 나는 그라면 딴 데 기도 안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 안 하고 내가 있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이별됐으니까 이별됐으니까 그 사람들이 그 뒤에 그거 냅둡니까? 하나님이 같이  안하니까 무슨 권능이 있겠소? 그거 제가 점점 다 그러면 다니엘이 등신이 될  것이고, 그라고 난 다음에 몰려서 죽여 버릴 것 아닙니까? 그거는 안 죽을 도리가  없어, 이러니까 이렇게 사는 것이, 새사람과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것이 이것이  영도 육도 금생도 내세도 전부 승리요 전부 생명인 것입니다. 이것이 새사람과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그자의 능력이 어떠냐 하는 것을 요것을 보여 준 것이라  그거요.

 또, 그 다음에 25절 이하에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는 이것은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의 가치를  말한 것입니다.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의 가치, 그러면 자기가 한 시간은. 냅두고  뭐 한 십 분이라도, 십 분이라도 새사람으로 살면 천하보다 중량이 크다 말이오.

그런데 잃는 것은 뭣 때문에 잃었습니까? 자기를 잊어버린 거는 뭣 때문에 잊어  버려? 자기를 잊어 버리는 것은 새사람 잊어 버리고 옛사람으로 산다 그말이오.

왜? 이 세상 것을 소망하고 세상 것 안 뺏길라고, 세상 것 얻을라고 이래  가지고서, 세상 그거 안 뺏길라고, 세상 것 차지하려고, 이 세상에 좀 더 살지  이라기 위해서 새사람을 배반하고 옛사람으로 획 돌아서 버렸다 말이오. 그러니까  고만 산 믿음 배반해 버리고 고만 세상을 따라 이래 살았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가 이 세상 때문에 새사람을, 자기를 잊어 버렸다 말은 새사람 잊어 버렸다  말이오. 새사람 잊어 버리고 옛사람으로 그만 바꿔졌다 말이오.

 자기를 빼앗긴 거는 뭐이냐 하면은 고 순간을 산 믿음으로 살았으면 자기 그  모든 지체는 전지 전능의 지체가 되어지는 것인데 전지 전능의 지체가  되어지는데, 아, 고만 고 현실에서 세상 것 이런 문제 때문에 전지 전능의 지체가  될 그 심신의 기능을 완전히 죽여 버리고 말았다 말이오. 고 한 시간 고 현실에서  자기의 심신의 기능이 영생하는 기능이 될 터인데 고것을 그만 빼앗겨 버렸다  말이오. 고걸 그만 그 현실을 영감에서 마귀로 살았기 때문에 빼앗겼다 말이오.

그거는 뺏겼는데, 한 시간이나 네가 한 십 분이나 이래 네 현실에서 고 세상  것을, 세상에 좀 더 살라고, 세상 것을 위해서 하는 그것을 가지고 그것 때문에  네 새사람도 그만 놓쳐 버렸고 또, 또 새사람의 기능이 될 것도 다 뺏겨 버렸고  이랬는데 그 생긴 그것이 가치가 얼마나 크냐?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도 이게  가치가 더 크다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러니까 요게서 보면, 아, 새 생명으로와 영생으로 안 살면 저는 예수님의 적이  되고 맙니다. 너희들 속에 내 말이 거할 곳이 없기 때문에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  그렇게 됩니다. 새생명으로 안 살면은 예수 잘 믿는 사람이 적이 됩니다. 새  생명으로 살면 그 외부에 십자가 이 고난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난들이 많이  있어. 외부에 고난이 있어. 그러나 참고 견뎌. 고난이 있으나 새사람으로 사는 그  능력은 굉장히 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기 때문에 구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린 자는 살리라 하는 이거는 영생의 생명도 얻고  육의 생명도 다 얻는다 그말이오. 다니엘로 생각하면 잘 알아요. 새생명으로 사는  자의 그 실력이 어떠한가 하는 고 실력을 말해요.

 그 다음에, 온 천하를 얻고도 하는 것은 새생명으로 사는 자의 그 결과의  가치가, 새생명으로 사는 자의 가치가 어떠하다, 그 능력이 어떠하다, 그렇게  살라고 하면은 외부 안팎에 파동이 있다 파란이 있다 고걸 말했고, 새생명으로  살지 안하면은 처음의 그는 예수님을 자기네들이 메시야로 기다리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그렇게 변질이 돼 가지고서 기독교 같으나 완전히 그게  기독교의 적이 되고 만다 말이오. 적기독이 그게 속화된 교회가 적기독인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몇 가지 배웠어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 배웠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이거 하나도 모르네. 아, 네 가지  배우지 안했어? 네 가지, 네 가지, 하나는 잘못하면 옛사람으로 살기 쉬운 것 또  새사람으로 살라고 하면은 안팎에 투쟁이 있는 것, 또 하나 뭐이요? O조사,  새사람으로 사는 자의 그 능력 또 하나는 뭐이야? 새사람으로 사는 가치. 몇 가지  배웠습니까? 이제 가르친 것? 손들어봐. 손을 들어 보이소. 다섯 가지 아니고 네  가지인데, 네 가지 배웠어.

 요 단단히 기억하고, 요것을 기억함으로써 자기 속에 힘이 나와야 됩니다 요거  생각하면 힘이 나와. 그 힘이 무슨 힘입니까? 그 힘이 무슨 힘이야? 예? 전능의  힘이라. 그것이 우주 만물을 창조한 그 능력이라. 그러니까 피조물이 그 앞에서는  예 예 굴복만 하고 이용만 당했지 해는 못 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요  생명으로 살았는데 불이 이용을 당했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에게  이용당했소? 이용당했습니까? 이용 단단히 당했습니다. 그 불이 얼마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도와 줬던지 도와 줬던지 고만 그라고 나오니까 마구 이거 뭐  온 전국이 하나님으로 충만해져 버렸어. 그 불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도왔지  해하지 못했어. 사자도 그랬어.

 자, 우리 O집사 그 새생명으로 살아 그랬는데 인민군이 그 O집사 도왔소  해쳤소? 도왔어. 이래 놓으니까 O집사 유명해 O집사 여기 왔는지 몰라. 손 한  번 들어 봐요. O집사 왔으면. 좀 손들어봐. 아 저게 뒤에 있는 것 같다. 예?  왔어? 그래. 그래 놓으니까 이 O집사 유명해졌다 말이오. 그래 모두 O집사  유명해졌어. 그래 모두 우리 OO교파에서는, 우리 OO교파에서는 다 알아요. 그  나도 OO교파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장 우리 OO교파라 해. 우리 OO교파에서  다 알아요 O집사 그래 가지고 그 유명해서 그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도 은혜도  많이 받고 아주 유명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쪼굴딱이 이 할마이 이 OO교파에  가도 이렇게 모십니다. 그러니까 인민군이 O집사를 도왔지 해하지는 못했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산 믿음은 여러분들 전지 전능이라는 걸 생각하고 어짜든지 산 믿음은  현실에 있습니다. 요 산 믿음, 그래 누가 겨자씨 믿음 가지고 요번에 집회한다고  하던데 그것만 잘 해석하면 그것만 가르쳐 주면 그만 그 교회 살립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다른 성경 그거 내 가지고 주석이니 뭐이니 다른 성경 자꾸 이래 가지고 하지  말고 성경 본문 읽고 그 관주 그런 것도 찾아봐 가지고 그라면 삐뚤어져, 그거  찾아보지 말고, 내가 성경 많이 읽고 깨달아요 딱 깨달아지고 난 다음에는 주석도  찾아봐요. 깨달아지고 난 다음에는 보자. 깨달음 이게 바로 됐나 어찌됐나?  깨달아 가지고 봐 보면은 주석한 것은 주석한 거는 저게 밑에 있고 자기는 쑤욱  위에, 쑤욱 위에, 쑤욱 위에 가서 깨달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제 뒤에 참고로는 하지마는 먼저 깨닫는 것을 주석보고 자꾸 그리 달아나지를  말라 그말이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80605 남권찰회 선지자 2015.10.27
6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80807주새 선지자 2015.10.27
62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51013주새 선지자 2015.10.27
61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51013주새 선지자 2015.10.27
60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51011금야 선지자 2015.10.27
59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880905월새 선지자 2015.10.27
58 넓은 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61015수새 선지자 2015.10.27
57 넓은 문 좁은 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30528토새 선지자 2015.10.27
56 넓은 문, 좁은 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30529주전 선지자 2015.10.27
» 네 가지 교훈/ 누가복음 9장 22절-26절/ 851221토새 선지자 2015.10.27
54 네 가지 생활/ 요한계시록 3장 14절-16절/ 810830주후 선지자 2015.10.27
53 네 가지 생활/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810830주전 선지자 2015.10.27
52 네 가지 생활/ 요한계시록 3장 14절-16절/ 810831월새 선지자 2015.10.27
51 네 가지 순서 연습/ 신명기 28장 47절-48절/ 850124목새 선지자 2015.10.27
50 네 가지 싸움/ 야고보서 4장 1절-10절/ 810713월새 선지자 2015.10.27
49 네 가지 지식/ 누가복음 18장 9절-14절/ 801029수야 선지자 2015.10.27
48 네 가지 축복/ 요한1서 2장 25절-29절/ 860621토새 선지자 2015.10.27
47 네 가지 큰 구원/ 히브리서 2장 1절-4절/ 880925주전 선지자 2015.10.27
46 네 가지 큰 구원의 가치를 평가/ 히브리서 2장 3절-4절/ 880925주후 선지자 2015.10.27
45 네 가지를 구하라/ 신명기 28장 1절-6절/ 860620금야 선지자 201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