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싸움
선지자선교회
1981년 7월 13일 월새

 

본문 : 약4:1-10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쫓아 나느뇨' 이 싸움은 인간끼리  시비하는걸 말합니다.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뇨'  이 정욕으로 좇아 난다는 말은 그 속에 육체의 소욕, 자기 욕심, 성령의 욕심이  아니고 자기 욕심 그것으로 좇아 나 생긴 것이라는 말입니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아무리 믿는  사람이 제 욕심대로 무엇을 경영해도 안됩니다. 저는 마음이 마귀에게 유혹을  받았기 때문에 틀려도 그만 예사로 생각하고, 또 안될 수도 있다고하여 예사로이  여기고 스스로 위로를 받지만 사랑하는 자는 자기대로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도 너무 죄를 많이 지으면 하나님이 마귀시키는 대로 해서  되도록 놔둡니다. 놔둬서 그것 가지고 저 망하고 저 자손 망하고 대대로  망하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내버려 둡니다.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이렇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소원하지만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상대해서 그 은혜로 도우심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택한 사람들이 제 단독의  힘으로 되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안되는 이유가 그것이라는 말이요.

 '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그것을 구하기는  바로 구하는데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은 그것을 줘 놓으면 그것가지고서 자기  구원 절단내지, 자기 구원에 유익 되게 할 자가 못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이 말은 여반에게만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  신자 전부를 비유가 아닌 실상인데 은밀한 그 영적 의미를 들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간음하는 여인들이여' 그러면 여인이면 시집가야 하고 여인이면  남편이 있어야 되는데 남편은 누구를 말하는가, 하나님을 남편으로 두고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유가 아니고 실상입니다. 인간 부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 관계를 나타내는 계시로, 이용물로 되어 있는 것이지  이것이 본체가 아닙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간음하는 성도들이여, 간음하는  택한 자들이여 하는 그 말입니다. 어떤 간음인데,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5절에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이 성령이 우리를 사모한다는 말은 성령이  우리를 애착하고, 우리를 사랑하고, 생각하는 것이 마치 결혼의 첫사랑 남편인  신랑이 아내를 사모하는 것처럼 이렇게 사모하기 때문에 이 아내의 부정이  있으면 그 시기심이 굉장한 것입니다. 성도가 조금만이라도 세상을 향하면  하나님께서 시기를 하시고 견디지 못하는 시기를 하시기까지 하십니다. 그까짓  것이야 뭐 세상과 짝이 되든지 마든지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 아내가 그만  자기에게는 도리어 이혼하면 싶어하면, 그까짓 것이야 뭐 다른 짓을 하든지  말든지 상관이 없지만 애착이 있으면 애착이 있는 것만큼 거기에 대해서 시기  질투가 생길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을  향하면 시기하기까지 그만큼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사모하시고 애착하신다는  이 말씀을 너희가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하는 말씀입니다.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너희들이 과거에  이런 자리에 있고 이렇게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든지 거기에서  돌이켜서 은혜 주시려고, 그럴수록 이자에게 은혜를 더 베풀어서 어찌하든지  하나님 한 분만 보고 살 수 있는 자가 되도록 하려고 애를 쓰나니 그 말입니다.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이걸 돌이키려고, 지금 자식이 병들었으니까  이까짓놈 집어던지자 그렇게 하지 않고 병들었으니 그 사람은 성한 자식보다  돈을 더 많이 들여서라도 기어코 치료해서 성한 자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과 같이  이렇게 세상과 짝이 되어지니까 어찌하든지 은혜를 더 줘서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하나 되게 하려고 애를 쓴다 그 말입니다.

 '은혜를 더욱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교만한 자는 어떤 것이 교만한 자이며  겸손한 자는 어떤 자가 겸손한 자인고 하니, 교만한 자는 자기가 어떤 자라는  것과 자기가 어떻게 해야 될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이것을 모르고 자기가  무엇인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은혜를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이것을 모르고 벌로  덤비는 그것이 교만한 자입니다. 자기가 어떻게 해서 자기가 된 줄로 모르고  스스로 된 줄 알고 또 자기는 어떻게 할 의무와 책임을 가진 자인 줄 모르고 제  욕심대로 사는 그자가 교만한 자입니다.

 겸손한 자는 어떤 자가 겸손한 자이냐? 겸손한 자는 자기가 자기 된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과, 또 자기가 자기 되어 있는 이것은 어떻게 하라고  자기를 이렇게 자기 되게 하신 이것을 깨닫고 거기에 합당한 자로 살지 못해서  애를 쓰고 거기에 합당한 자로 살고나서 보니 또 잘못됐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마음에 고통을 느끼고 하는 그 사람이 겸손한 사람인 것입니다.

 '은혜를 주신다 하셨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종할지어다' 네가 하나님  앞에 순복해라. 마귀를 대적해라. 지금 네 마음이 네 마음인줄 알지만 그것이  마귀가 준 마음이기 때문에 마귀를 대적해라. 성령의 욕심으로 살지 않고 네  육체의 소욕대로 네 욕심으로 사는 그것이 마귀가 속에 들어와서 네 왕이 되어  있어 그런 것이니까 이 마귀를 대적해라. 네가 알기는 그것이 네 혼자 스스로 네  마음을 이렇게 먹고, 저렇게 먹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 네 속에  있는 마귀가 그와 같이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네가 대적해라. 마귀를  네가 물리쳐야 되지 하나님을 물리칠 권세가 없다. 네 속에 있는 마귀는 네가  물리쳐야 되지 하나님은 물리칠 권리가 없다. 왜? 네게 자유를 줬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까짓 마귀 죽이려면 죽이고 없애려면 없애지만 자유를 줬기 때문에  이 자유를 가지고서 네가 쫓아내야 네 구원이 영광스러워지지,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쫓아내면 그 사람에게는 자유를 파괴시켰기 때문에 자유성  없는 인간이 되니까 그 구원이 깨지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못하는 것이요. 우리의 자유를 아끼기 때문에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너희가 보혈의 공로가 있고 영감이 있기 때문에 대적만 하면 마귀들이  도망을 친다. 너희가 대적하면 마귀를 이길 수 있다 그 말입니다.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너를 중생 시켜 놓은 하나님이 너를 주관하도록 네가 하면 하나님이  너를 주관하실 수가 있다는 말이요.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삐뚤어진 행위에서 날마다 죽어 가고 있는 자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곧 네 행위를 깨끗이 하라 그 말이요. 손을 깨끗이 하라는  말은 행위를 깨끗이 하라는 말입니다.

 '행위를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네가  하나님에게 속했다가 마귀에게 속했다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움직였다가 마귀로  더불어 움직였다가, 하늘에 소망을 가졌다가 땅에 소망을 가졌다가 이러니까  하나님과 마귀, 하늘 나라와 세상, 창조주와 피조물, 이러니까 두 마음을 가졌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마음을 성결케 해라 네 두 마음 가진 이것을 구별하고  구별해서 깨끗함을 만들어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이렇게 고치는 데에는 이것이 그냥 고쳐지지  아니하는 것이고 이 사실이 참 네게 대해서 얼마나 비참한 일이며, 또 얼마나  애통을 해야 하며, 가슴을 칠 일이며, 얼마나 네가 눈물을 흘려야 될 일인지  네가 모르고 이렇게 해야 될 터인데 예사롭게 그저 생각 한 번 가지면 될 줄  알고 말 한마디하면 될 줄 알고 이렇기 때문에 안된다 그 말입니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네가 지금 웃고 있는 것이 순전히 멸망할 웃음이다.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이러니까 주님 앞에서 너를 낮추라 그러면  주님이 너를 높여 주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제 오전 오후에 증거 했는데 이 귀가 어두워서 잘 들려지지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어제 그 테이프를 가져다가 오전 오후 설교를 녹음으로  다시 들었습니다. 나는 그런 설교를 내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들었으며 마구 뒤집어지겠는데 참 이상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이 그만 너무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이렇게 주니까 마비가 됐는지 우리가 여기에 말씀한대로  자기가 육체의 욕심대로, 육체의 욕심은 육체 그놈은 항상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욕심 내는 놈입니다. 하늘 나라는 욕심을 내지 않소. 성도가 성령의  소욕으로 살지를 못하고 육체의 소욕으로 살아 성령의 소욕으로 살면 주와  하늘나라에만 욕망을 품게 되는 것인데, 육체의 소욕으로 살면 세상과 자기에게  대해서만 욕망을 품게 됩니다. 이 육체의 소욕으로 사는 이것이 그렇게 쉽게  고쳐지는 것 아닙니다. 이렇게 사는 자기는 슬프며 비참하다 그 말이요.

가련하다 말이요.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어야 하는데 참으로 그 감정과 감각이  이런 정도의 도수에 도달해야 고칠 수가 있는 것인데, 이렇지 않고 그저 말로만  예사로 해 가지고서 고쳐지리라 생각하니 어리석습니다. 이대로 사는 자를 마구  교회서 이래 올립니다. 우리 한국 교회도 이번에 종교법을 창설하자 하는데 다  이대로 사는 자들이 왕 되어 있습니다. 이러니 전부가 멸망이요. 예, 또 그까짓  것들 그렇게 한다고서 참 믿는 사람들이 눈 하나 꼼짝거리는 줄 압니까?  신학교를 질을 높이자. 신학교를 일곱 개만 남기자 이렇게 하다가 안되니까 또  몇백 개 내자 제까짓 것들이 아무리 그렇게 한다고 해서 참 성도들은 세상도  두려워하지 않고 공산주의도 두려워 않는 사람들이 그까짓 것들 두려워 할줄  압니까?  신학의 질을 높이자 하는 것이 무슨 질이냐? 진리의 질이냐, 성령의 질이냐,  성령의 감화가 낮으니 감화의 도수를 높이자, 진리의 지식이 낮으니 진리의  지식을 높이자, 하나님 앞에 충성의 도수가 낮으니 이 충성의 도수를 높이자,  회개의 도수가 너무 낮으니 회개의 도수를 높이자, 이것이 신학의 도수를 높이는  것인데, 신학의 질을 높이는 것인데, 그것이 질을 높이는 것인데 그게 아니고  마귀에게서 나온 썩은 지식, 대학 간판이 없으니까 안된다, 세상의 이런 말 저런  말의 어학이 모자라니 안된다. 이 세상 활동성이나 이 모든 간판성, 사람 만나면  어떻게 하면 자기에게 꺾어대고 하는 그것이 모자라니까 그것을 좀 높이자,  참으로 망할 일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것을 가지고 울지 않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가슴 칠 일이요. 이것이 망할 일입니다. 방송에 나온 설교도 전부 망할 죽은  설교 뿐이요. 산 설교가 없어. 언제 복음신문인가 크리스챤신문인가 거기에  보니까 신학에 대해서 질을 높이자 하는 이것이 인간적이라는 내용을 한 번  내놨습디다. 내놔야 그까짓것 가지고 꿈쩍이나 합니까?  여러분들 육체의 소욕으로 사는 데에서 성령의 소욕으로 바꾼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울어야 되고 얼마나 뼈아프게 느껴야 되어지지  하나님의 욕심으로 살지 않고 자기 욕심으로 사는 이것을 고쳐서 하나님의  욕심으로 살도록 하는 이것이 그렇게 쉬운 것 아니오. 하루 이틀 울어서 되는 것  아닙니다. 가슴 쳐서 되는 것 아니오. 다 여기에 대해서 지금 느끼는 사람은  그까짓것 물질에 대한 것 그런 것은 눈앞에 보이지 안합니다. 그까짓것은 한  시간에 팍 집어 던지고 싶고 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 이래도 자기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이렇게 어렵습니다. 소욕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는 참  애통해야 되고 슬퍼해야 됩니다. 이것으로 사는 사람을 갑은 을을 높여 주고  을은 갑을 높여주고 하나님 빼놓고 저희끼리 서로 높여주는 이것이 인격이라고,  이것이 인간성이라고, 이것이 사회성이라고, 이것이 실력이라고, 이래가지고  저희끼리 높여서 바벨탑을 쌓듯이 이렇게 올라가는 이것은 실력있고 자기의  소욕을 바꾸려고 애를 써서 소욕을 바꾼 사람은 그까짓것 짓밟아도 되고 뺨을  때려도 대항도 없고 이러니까 아주 무능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기지만,  공산주의가 와보지 어느 놈이 강한가!  지난 6.25때에 제가 위천교회 부임을 하니까 위천교회 그 전에 있는 조사가  지서, 학교, 면사무소, 또 면모임에서 대인기요. 교회서 하던 그 설교를  거기에서 비슷하게 범벅을 해서 하니까 그 사람들이 모두 다 연설 잘한다고  대인기인데 밥 먹을 것은 없어서 그 사모님이 바느질 품들고 이웃에 쌀 꾸러  돌아다니고 이랬었어. 이랬는데 나는 가서 그걸 안하고 조사님 오십시오 아무리  초청을 하고 초댓장이 와도 아무래도 내가 갈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기  가라고 나를 세워 놓은 것이 아니기 대문에 안가고 이러니까 멸시하고 무시해서  저희들끼리 똘똘 뭉쳐서 지서에서도 무시하고 학교에서도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그렇게 한다고 내가 대항할 수도 없고 이랬는데 지서에서는 주일학교 국기배례  때문에 하다 하다 안되니 한 번은 경찰서와 짜고 경찰서에서 모두 다 총 들고  사십 명이 올라와서 아이들을 학교에 세워 놓고 예수 믿는 아이들 이리 나오너라  하니까 하나도 안 빠지고 꼭 다 나와, 국기 배례하는 아이들은 놔두고 안하는  아이들은 전부 서울로 잡아간다 국기 배례할 아이들은 다 들어가라. 그러나  하나도 안 들어가니 다 잡아갈 수는 없고 주일학교 부장하고 선생하고 두 사람  잡아갔습니다. 천세욱과 진학일 목사 그때 둘다 학교 선생인데 잡아 가지고  갔습니다. 서에 잡아 가지고 가서 아무리 해봐야 안되니까 올려 보냈습니다.

서에서 하도 그러니까 파출소에 들어가니 그 직원이 아파서 그만 토하고 심하면  아마 그런 모양이라. 심하니까 병원에 아무리 가야 안되고 약도 없고 죽을  지경이라. 그 옆에 있는 분이 그러면 우리 조사님한테 가서 자기네들 하는 일을  자복하고 기도받으면 될터인데 하니까, 아침 먹는데 왔소, 왔기 때문에 밥 다  먹을 때까지 앉아있어라. 한두시간 있으면 죽을 지경인데 그래놓고 밥 다먹고  회개하라는 소리는 안했고 그 집에 그것이야 나는 회개할 것이 없고 기도해  주니까 그날부터 없어졌어.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들은  멸시했어. 그런데 공산주의가 왔을 때 그 사람들은 피난을 못가버렸습니다.

포위가 되어 거기있는 공무원들은 하나도 피난 못갔오. 이래놓으니까 그들이  시키는대로 엎드리라 하면 엎드리고 가라하면 가고 서서 팔을 들라 하면 팔들고,  이리 가라 하면 이리 가고 시키는 대로 종질하는데 나는 그들이 아무리 말해도  그들에게 할 말 다하고, 조금도 상관하지 않고, 머리도 숙이지 않고 꼭 그대로  하루 세 번씩 예배보고서 이래 나가니까 이들이 그때 알았다 말이요. 아이구  간이 콩낱같고 못난줄 알았더니만은 야, 그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와도 꺾지  못하는데 우리가 국기배례니 뭐가지고 말했으니 이것 참 어리석은 일했다.

이래서 6.25가 지나갔다 말이요. 이제 다 후회하고 난 다음에 그 학교 교장을  내가 보니까 저 앞에 뚱뚱하고 큰 사람하나가 오더니만은 옆으로 도망을  쳐버리요. 누군가 하고 보니까 교장이라 그 뒤에는 한 번 피할 길이 없는 곳에서  만나 놓으니까 코가 땅에 닿도록 엎드려 절하면서 부끄러워서 '안녕하십니까'  이러고 갑디다.

 예수 믿는 사람이 간이 작은 사람 아니고 못난 사람 아니요. 저희 마음대로  짓밟아도 가만있으니 천물인줄 알고 영락교회는 잘난 사람도 있지만 서부교회는  못난 사람들만 있기 때문에 김수길 박사가 그렇게 말했어. 그래서 내가 탄식을  했습니다. 참 세상 지식으로 볼 때에 그렇소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죄가 올 때에, 마귀가 올 때에, 불의의 세력이 올 때에, 그래도  담대히 이길 사람 아마 서부교회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때 그 말을 했어.

그분 지금 깨달았소. 지금은 깨달았지만 자기 환경을 이길만한 힘이 없는  사람이라 소용없어. 깨달으면 무슨 소용있는가, 환경을 이기지 못하면 환경에  끌려서 질질 끌려 돌아다니면 구원이 되어지는가, 안되지. 교회서 육체의  소욕으로 사는 자들이 교회 왕이 되어서 이것을 서로 높이고 육체의 소욕으로  사는 자를 높여 주면 좋아하지요. 높여 주면서 일하라 하면 잘하지요. 예,  그러나 육체의 소욕으로 사는 그것을 알아주지 않고 성령의 소욕으로 살지  않는다고 육체의 소욕으로 사는 것을 이제 성령의 칼로, 진리의 말씀으로 찔러서  이것을 치료해 줄라 하면 그만 삐꿔 돌아갑니다. 그러나 진리 대항하는 데에는  하룻동안에 원수가 됩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원수이지만 예수님을 대항하기  위해서는 당일에 친구가 됐다 이랬소. 옛사람을 치면 꾸중듣고 난 다음에 옛사람  맞은 사람이 또 있거든, 그 사람에게 가서 소곤소곤 말 한마디만 하면 둘이 딱  들어붙어요. 붙어봤자 죽는 일입니다. 그까짓것 그래 붙은 것 겁을 낼진테  공산주의 앞에는 그만 기절해 죽어야되지, 어리석지 말아요. 어서 고칠 것을  고쳐야 되요. 우리는 세상나라가 우리나라 아닙니다. 또 제가 아무리 젊고,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오늘 떠날지 몰라. 빨리 고쳐서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육체의 소욕으로 사는 이것을 고치려고 가슴을 치면서 애를 쓰도  안고쳐지는데 육체의 소욕으로 사는 것을 고치라고 말만 해도 마구 원수를 삼고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언제 고치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어제 네 가지 울음을 말을 해도 귀에 안 들어간다 그 말이요 안 들어가면  나중에 환난이 와서 죽을 지경이면 그때는 들리지. 그러나 그때는 시간 다  지나갔는데 무슨 소용 있소 육체의 소욕으로 사는 요놈이 예를 들면 공산주의  앞에 가서 너 예수 안 내놓으면 죽인다. 우리 말하는 대로 순종 안하면 죽인다고  할 그때에 안 죽기 위해서 예수를 내놔야 될, 안 죽기 위해서 예수를 내놓는,  죽기 싫고 살고 싶은 그 놈이 어떤 놈입니까? 오늘 육체의 소욕으로 사는 그  놈이 고놈입니다. 고놈을 지금 죽여야 되지 그때는 죽이지 못합니다. 그놈을  지금 죽여야 되는 것이요. 네, 공산주의 앞에서 육체의 소욕으로 살기 위해서  예수를 내놓고 진리를 내놓고 하는 내놓게 하는 그놈이 어떤 놈입니까? 평소에  성령의 소욕으로도 살 수 있고 육체의 소욕으로 살 수 있을 이때에 육체의 소욕  요놈을 배척을 하고 요것을 약할 때에 죽여 버려야 되는데, 약할 때 죽여 버리지  않고 요놈대로 살아서 그놈을 평생 길러 놨으니까 공산주의 오면 공산주의하고  한 덩어리 되지 별 수가 뭐 있소. 이것도 참 힘드는 것이고, 또 자기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소원하면 베드로가 고기 잡은 것과 같이 그런  기적적인 세상 성공이 오는 것인데, 한참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자기가 하나님을 축복을 받아서 세상 성공을 하려고 하면 세상 성공은 되어지는  것인데 이 성공이 안되는 이것도 쉽게 세상 성공이 되는 것 아닙니다. 이 세상  성공도 되도록 하려고 섞임 없이 참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려고 하면 이것이 힘들지 쉬운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서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성공이라도 하려고 하면 이것이  얼마나 힘드는지, 이것도 애통을 하고 뼈저리게 느끼고 참 자기가 성공 못한  이것을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이래야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성공도 할 수 있는 이런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법칙을 바로 지켜서 세상 성공을 한 사람이 자기가 그것  가지고 주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쓰지 않고 자기의 정욕대로 쓰고  있는 이것도 고치려고 하면 참 가슴 쳐야 됩니다.

 예, 이것이 첫째보다 둘째가 더 어렵고 둘째보다 셋째가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법칙대로 다 했는데 그 사람에게는 안 오는 것, 저  사람에게는 오는데 내게는 안 옵니다. 둘이 똑같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법칙대로 했는데 저 사람은 세상 성공을 주는데 내게는 안줍니다. 안주는 이유가  뭡니까? 주면 그것 가지고 악용해서 배나 지옥의 자식이 될 터이니까 자기  망치라고 하나님이 주시겠습니까? 정욕대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에 안  주신다 이것이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 은혜 받으면 제가 스스로 된 줄 알고 그것  가지고 배짱 내고.

 예, 내게 지난번에 남산 교회서 왔었는데 내가 어제도 장로들 전화번호를 내가  물어야 되겠다. 하는 것을 지금 생각하고 아직까지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늘 안  잊어버리면 내가 김 목사님께 전화번호를 물어서 전화를 할 것입니다.

 너희가 비참하다. 너희가 참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이 주신 지능이  남보다 뛰어나고 하나님이 주신 물질적으로 남 위에 있고 권세적으로 위에  있으면 하나님이 주셨지 제가 스스로 된 것이 아닌데 하나님이 주실 때에는 이것  가지고 선용하라고, 하나님 중심으로 원하시는 의롭게 쓰라고 이렇게 하나님이  주셨는데 이것이 제것인줄 알고 이것 가지고 자세부립니다. 이것 가지고  자기네들 잘난 체하고 자기네들 자세 부리요. 자기네들 좋을 대로 하고 자기네들  자세부린다 그 말이요. 아무리 목사가 무능하지만 나는 목사의 설교도 은혜가  안되고 듣기도 싫고 그 목사가 보기도 싫습니다. 네, 그것도 그 속에 좋은 것을  가지고 하면 좋습니다. 이래야 목사님에게 자극이 콱 가서 이제 참 신령한  목사가 되겠다. 싶어서 하나님 보실 때에 그 중심으로 한다면 그것도 방편은  나쁘지만 고쳐야 됩니다. 내가 거기에서 그 말을 해줬습니다.

그렇기에 베드로전서 5장에 보면 '장로 된 자들은 자세를 부리지 말고' 하는  말씀을 거기 다 써 놨어. 자세를 부리지 말고 모든 일을 은혜를 줘서 이렇게  남보다 뛰어나게 해 주니까 그것 가지고 자세 부린다 말은 쭉뺀다 말이요, 그것  가지고 세력 부린다 말이요. 그것 가지고 자기를 위해서 세력 부린다 그 말이요.

그것이 유치한 짓이고, 부끄러운 일이고, 참 그것이 유치한 일이라 말이요. 어린  노릇이라, 이것이 정욕대로 쓴 것이라. 그것이 있으니까 그것 가지고 제 돈인줄  알고 제 마음대로 저 위해서는 아무리 써도 제것이니까 제게 쓰는 데는 아깝지  않아. 주를 위해 쓰는 것은 하나만 써도 내가 안쓸 것 썼다. 이러니까 많이 썼다  안 쓸 것을 썼으니까 날 공로로 안 세워주나 안 알아주나, 어리석고 어리석은  자야, 어리석고 못난 자야, 하나님께서 막대기로도 일할 수 있고 아무리 못난  자도 당장 그렇게 할 수 있는데 너는 자본이 뭔데, 그러면 그 다음에  가버립니다. 없어 깨졌버려. 진리의 복음을 들을 때에는 그것이 깨지지만  멸망길로 도망을 쳐버리면 '봐라 그놈은 다시 탈선했기 때문에 버려둬라,  멸망하는 그날까지 가만히 둬라.' 평생 그것으로 살아도 누가 말한마디  안해줍니다. 그 말을 하면 목사와 대립이 되는데 목사가 그 말을 해줍니까? 해  주는 사람은 쫓겨나도 좋다 이 교회 없어도 하나님이 계시니까 된다. 교회  못맡으면 노방에서 전도하다가 죽으면 더 좋다. 예, 이렇게 자기를 초월하고  생사의 사선을 넘은 사람이라야 말해 주지 그렇지 않으면 말 못한다.

 이렇게 자기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법도대로 구해도 하나님이 안 주시는  것은 정욕대로 쓸 그 사람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고쳐야 주니 정욕대로  쓸 그 사람을 고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쉽지 않소. 그것이  성도들이 울고 있는 자립입니다. 뭐 육체의 소욕대로 구하는 그까짓 것을  초보요, 쉽소. 그것 고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세상 것을 얻은  그것도 쉽소. 그것도 얻은 사람이 일호도 쉽고 이호도 쉽고 일호보다는 이호가  좀 어렵지만 이호보다 삼호는 더 어려워, 자기라는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주와 형제를 위해서 쓰지 않고 이것을 가지고 자기 것인 줄 알고 자기 위해서  써서 자세부리며 우쭐하는, 자기 위해서 쓰는 이 사람이 고쳐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나도 울고 있는 자리가 여기라. 내가 고민하고 있는 자리가  여기라. 육체의 소욕과 소원은 없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만족히 놀랄 만큼  받았어. 그까짓 것 다 하루 아침에 한 시간에 다 집어던져 버렸어. 이렇지만  하나님이 주신 이런 은혜, 저런 은혜 가지고 있는 그것을 주와 형제를 위해서  의롭게 쓰지를 못하고 자기 위해서 정욕대로 쓰는, 자기 육체의 소욕대로 쓰는  이것은 고쳐도 또 나오고, 올라오는 싹을 문질러버려도 또 나오고, 뽑아도  세균이 암병모양으로 벗어도 또 나오고, 이것은 문질러도 나오고, 뽑아도  나오고, 끊어도 나오고, 어떻게 계속 나오고 있는지.

 눈물을 흘리면서 노래를 불러도 그만 진리와 멀어져 버리고 자기는 감정의  사람만 돼 버리고 맙니다. 감정도 있어야 되지만 영감은 감정의 영감이 아니라  감정은 초보 영감이요. 진리의 법칙, 하나님의 이 법도에 자기가 사로잡히고  입각되게 하는 것이 성령의 충만한 장성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진리에  들어가서 진리를 가지고 진리와 하나 되려고 애를 쓰면서 들으면 그런 감정으로  복음성가라든지 이런 찬송을 하고 있는 것이 저 밖에서 하고 있는 것으로  아련하게 들립니다. 저 세상에 있을 때에는 그런 찬송을 들으면 자기 앞에 저  안에서 들리고 안에서 울려 나오기 때문에 은혜가 되고, 진리에 입각했을 때에는  그것이 다 외부요 껍데기라는 것이 자기에게는 환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정욕대로 쓸려고 잘못 구함이라' 정욕대로 쓰다 보면 자세가 나오고 이것이  교만이요.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자기 생각대로 쓰기 쉽다 그 말이요. 이것은  죽는 날까지 고쳐도 안돼, 죽는 날까지 고쳐도 고칠 것이 있어. 그런데 이런  입장에 있으면 아, 저것은 내 말하는구나 마귀란 놈이 어떻게 빨리 소개를 해  주는지, 자세부리는 그것은 여러분들만이 아니오, 나도 그것이 뿌득뿌득 나와서  그것 때문에 실수를 합니다. 아주 죽어 장사지낸 것과 같이 하나님께 받은 바의  은혜는 전부 주와 및 형제를 위해서 이 구원을 위해서만 써야 할 터인데 그것이  혹 어떨 때에는 감정에서 그것이 나올 때도 있고 또 어떨 때는 상대방이 은혜를  받지 못하고 망령을 부리면 이 마음이 쑥 나와서 한 주멱 쥐어 박고싶은 이것이  나옵니다. 이것도 우리가 얼마나 고치기 어려운 것이요.

 제일 어려운 문제가 무엇이냐? 넷째 것인데 자기가 하나님 앞에 온갖 은혜를  구할 시간이 없소, 온갖 성신의 은혜도 구할 시간이 없어. 자기에게 이미 받아  가지고 있는 이 은혜를 기회 놓치지 않고 주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거기에  순종해서 이 은혜를 주의 뜻대로 쓰는 이것을 기다리면서 요것 하지 못한 과거를  인하여 다시 하게 하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요것 할 그때에 시작했다가  어려우니까 뒤로 돌아가는 요런 실패를 하지 않으려고 여기에서 울고 있는 것이  사도 바울이요, 여기서 탄식하고 있는 것이 사도 바울입니다. 요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성도들이 기도하는 것은 모두 미래에 대한 기도요. 내가  이런 고문과 고행이 있을 때에 이런 가난이 올 때에, 이런 억울함이 올 때에,  이렇게 동역자에게 배반과 배척을 당할 때에, 외로워질 때에, 억울함을 당할  때에, 그런 일을 당할 때에 그대에 내가 정욕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그럴 때에 내가 녹아지는 소금처럼 주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투자할 것을 투자할  수 있는, 심을 수 있는 것을 심는 사람이 도리 수 있는 요일을 인해서, 성도들이  매일 가죽도 벗겨져 보고, 불에 꿉히기도 매일 해보고, 매일 앞정갱이에다  네모진 나무를 대놓고, 뼈가 푹 들어가는 이런 것도 매일 당해보고, 팔을 뒤로  뒷 팔장을 해서 불끈 묶어서 그 팔을 들면 제일 신경이 당겨져서 한 이삼일  있으면 죽어버리는 이런 것도 당해보고, 그럴 때에 주님의 지극히 큰 능력의  도우심이 아니면 나로서는 감당 못합니다. 주님이 그때 도와주시옵소서. 평소에  네가 할 수 있을 때에 네가 하지 않고 나한테 도움받아서 나 시키는대로 할 수  있는 것 하면 그때 내가 도와주지 하는 것이 주님의 대답입니다. 이러니까  사람이 거기서 꺼꾸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요. 이러므로 우리가 갈 하늘나라는 참  자기 잘난 것 가지고 가는게 아니요. 못난 것 가지고 갑니다. 자기의 실패한 것  가지고 가는 걸음이요. 자기의 낮아진 것 가지고 가는 걸음이요. 낮아지려고  하다보니까 낮아지는데 높아지는 것이 천국이요. 자기는 이렇게 못나고 약한 자  될 때에 하나님께서 강한 자 만든 것이 하늘나라의 가는 길입니다. 이런데 자기  잘난 재미로만 사는 사람은 잘난 재미로만 살았는데 마지막에 못난 사람됐소.

자기의 억세고 강하고 힘있는 것만 가지고 살았는데 가서보니까 가장 무능하고  못난 사람됐습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깨달아야 됩니다.

 

어제, 우리는 평생 전투하지마는 세상이 하는 전투는 하나도 우리에게는 섞여 있지 않다고 말했는데 그말이 무슨 말인지 깨닫아야 되지 깨닫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살리는 소리를 죽이는 소리로 들으면 안됩니다. 죽이는 소리는 옛사람 그놈 죽이는 소리요. 옛사람은 죽여야 되지 안죽이고 어쩔 것입니까? 새사람을 살리고 옛사람을 죽이는데 옛사람 죽이는데 천국 갈사람 죽이는 줄 알고 화를 내고 분을 내면 그것은 옛사람이라는 것이 분명하지 그 사람을 주체가 옛사람 이라는 것이 분명하지 그래도 그 현실에서 자기가 깨닫지 못하면 참 존귀한 자의 존귀한 자리에 있으나 깨닫지 못하면 뭐라 했습니까? 뭐라 했어요. 청년들 뭐라고? . 뭐라고. 멸망할 짐승같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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