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지식

 

 1980. 10. 29. 수야

 

본문 : 누가복음 18장 9절 -14절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이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선지자선교회 (기도) 저희들이 또 주님의 은혜를 입어서 예배 드리러 모이게 됨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다 성령으로 충만시켜 주시옵소서. 원하나 예배의  자유를 얻지 못한 지역들도 많이 있는 줄 압니다. 긍휼히 여겨 주셔서 주님의  노를 풀으시고 기쁘시게 함으로 예배의 자유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우리는 다 불의 불충한 자들입니다.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여 나왔사오니 주님의  공로로 인한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어린 아이로 부터 어른들까지 충만케 하사  참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산 에배가 되게 하시고 이 시간도 주로 말미암은  성화와 축복을 받아 주의 영광으로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이 말씀에서 여러 가지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간단하게 네  가지만을 증거하려 합니다. 첫째는 사람이 사람을 멸시하는 것은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는 행위입니다.

사람이 경제적으로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을 멸시를 하든지 권세로 자기만 못한  사람을 멸시하든지 지위로 혹은 지식으로 자기만 못한 사람이라고 멸시를 하든지  그 사람의 능력 온갖 기능이 자기만 못한 사람일지라도 멸시를 하든지 이뿐만  아니라 심지어 도덕면이 자기와 비해서 허무한 사람일지라도 도덕면에 자기보다  허무하다 해 가지고 멸시를 하든지 또 이보다도 하나님 앞에 신앙 모든 생활과  행위가 자기에다가 비해서 아주 허무하다 해서 멸시를 하든지 어떤 이유로  사람이 사람을 멸시하든지 이것은 하나님이 대노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합니다. 그것을 여게 첫째로 말씀합니다.

세리는 그 날의 세리는 유대 나라가 로마 나라의 식민지로 있을 때인데 그때 그  세금이라는 것은 세리들이 도급으로 떼 가지고 얼마든지 착취해서 먹고 상납만  하면 되는 그때의 그 세리 행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리라는 것은 그  나라에서 죄인 중에 제일 못 쓰고 악하고 독하고 그런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바리새인은 신앙 생활하는 중에도 아주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는 정통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리와 바리새 교인의 신앙 행위는  기도하는 것이라든지 연보하는 것이라든지 모든 여러 면에 행위로 봐서 비교  못할 큰 차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게 보니까 이 세리된 사람들은 토색하고 또 불의하고 또 간음하고 뭐 형편  엇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이렇지마는 바리새인이 그 사람들을 멸시하는 것을  아주 주님이 노여워하셔서 그들이 모르는 이 비밀을 가르쳐 줬습니다. 멸시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았고 멸시를 당하는 그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 환영을 받았다는 것을 그 밑에 끝에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행위를 정평하고 정가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이런 이런 행위는 잘못 됐고 잘못된 행위가 이렇게 이렇게 몇 가지 있고 무엇이  있고 하는 그것은 우리가 정평해야 됩니다. 정가해야 됩니다. 그것은 내가 그  사람을 하나님 대리자로 심판하기 위해서 정죄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람을 접촉할 때에 그 사람이 어던 사람인 줄을 알아야 바로 접촉을 할  수가 있고 또 바른 관계를 맺지 그 사람이 악인이요 죄인인데 그걸 모르고  우리가 속아서 관계를 맺으면 우리 신앙 생활이 다 깨져 버리고 우리의 전  생애가 다 절단나기 때문에 사람을 하나님만이 사람을 정죄하지 우리는  심판적으로 정죄를 못하는 것입니다.

너는 이런 죄가 있으니 너는 이런 벌이 있다. 그렇게 심판적으로는 정죄를  못하는 법이고 우리가 이 사람으로 더불어 접촉을 하고 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줘서 그 사람은 접촉을 하면 안  된다. '그 사람은 그 마음이 그런 사람이고, 정신이 그런 사람이고, 혀가 독한  사람이고, 심술이 있는 사람이고 이러니까 조심해서 접촉해야 된다' 이렇게  우리가 말을 해야 그 사람이 시험에 안 들고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해 줘야  되니까 사람의 그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으면 정확하게 알고 옳은 건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속지 아니하고 그 사람을 헛되이 인정을  해 가지고 지나치게 인정해 가지고 뒤에 낭파를 당하고 그런 속이고 속는 일이  없도록 그것은 좋습니다. 그것은 해야 됩니다. 그걸 안 그것을 하나 하나님이  의인되게 하면 다 의인이 되고 하나님이 버려 두면 다 죄인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위가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우리가 정확하게 판단을  해서 자기도 그 사람이 그런 줄 알고 상대를 해야 되고 자기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니까 주의를 해라' 이래서 그 사람의 나쁜  것에 내가 물들지 않고 또 나의 관계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의 나쁜 것으로 인해서  물이 들어서 그 화를 받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가지고 고  사실을 똑똑히 파악을 해 가지고 알고 사는 것은 좋습니다.

이래서 그것은 옳다 그르다 옳은 것이 얼마 있고 그른 것이 얼마 있다 요것은  바로 판단하고 살아야 되지 그저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남의 말 안한다 남에게  대해서는 상관 안한다 해 가지고 뭐 이런 사람이나 저런 사람이나 도매금으로  그만 다 같은 사람이라 이리 되면 죄익이 얼마든지 속으로 숨어 가지고 사람들을  막 삼킵니다.

이러기 여게 똥이 있으면 똥을 치워야 되지 안 치으면 마구 주 비비대면 모든  사람에게 다 묻게 된다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하지마는 사람을 그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나쁜 점이 있으니까  하고서 사람을 멸시할 권리는 없습니다. 요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사람의  행위의 어떠한 것은 우리가 비판하고 평가해서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이렇게 비판하는 것은 그 사람의 나쁜 것으로서 나와 모든 사람이 나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이것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이지 이런 이런 죄인이니까 어떤 형벌을 주기 위해 가지고 내가 비판하면  하나님 하나님 노릇을 제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죄를 받습니다.

또 아무리 그런 사람이라도 그러니까 내가 조심해서 상대하지 하나님이 붙들어  나도 그와 같이 안 되게 만들었으니까 다른 사람의 그 죄를 보면 그러므로  자기가 깨달아져서 하나님이 나도 붙들어 주지 안하면 저와 같은 자가 되어지니  두려워하면서 조심해서 그 사람같이 되지지 않도록 하는 그것을 제가 할 일이지  저런 저런 죄를 지은 자라 하고서 멸시를 하면 요것은 하나님의 그 형상대로  지음받은 그 하나님의 형상을 멸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죄를 받습니다.

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잘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그 사람의 행위는 옳다 그르다  얼마든지 비판하고 평가할 수 있지마는 사람을 멸시할 권리는 우리가 받지를  못했습니다. 또 사람을 동정하고 사랑하고 구원할 권리는 하나님에게 받아서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마는 우리가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을 해칠 권리는 받지를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날뛰면 그 사람의 악의 행위를 우리가 막을 수 있습니다. 악의  행위를 우리가 막을 수 있어. 악의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지마는  우리가 그 사람을 해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방어전은 우리가  하지마는 침략전을 할 수 없다 하는 것도 여게 근거해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

첫째로 오늘 밤에 이 말씀에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을  멸시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요걸 기억합시다. 그러면 멸시하면 진노하니까  사기 협잡을 하는 그런 사기꾼이라도 멸시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시니까 사기  협작꾼이라도 그 사람 좋다 괜찮다 사기 협작꾼을 사기 협작꾼으로 지적하는  이것이 멸시하는 것인 줄 알고 사기 협작꾼을 사기 협작꾼으로 지적하는 것은  멸시가 아닙니다.

사기 협작꾼을 그 사람을 묻어 주고 가뤄 주고 덮어 주고 이러면 그 무서운  전염병 같은 그 병이 많은 사람을 해치기 때문에 그것은 제가 알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 주지 안했기 때문에 파수꾼이 나팔을 불지 아니함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속아서 절단이 났다는 고 죄를 받습니다. 고 손에서 도취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멸시는 못합니다. 업신여 기고 천하게 여기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조심해서 이는 사기꾼이니까 이런 도적이니까 이는 아주  강퍅하는 그런 불량자니까 해서 조심은 해서 우리가 그것을 말도 하고 선포도  하고 조심도 하고 이렇게 또 그 사람에게 가서 말도 해 주고 그 틀렸다 그  고치라 이리할 수 있지마는 사람을 멸시는 못한다. 요거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을 멸시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멸시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우리는  그 권리를 갖지를 못했습니다.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 우리가 정평 정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마는 그러니까 사람을 내가 잘못해 업신여기는 업신여길 수  없다 말이오. 멸시할 수는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저 사람을  조심하고 주의하고 이 사람 접촉해서는 안 되겠다. 이 사람하고 말해서 안  되겠다 사귀서는 안 되겠다 이럴 수는 있지마는 그 사람을 멸시는 못한다  그말이오. 요거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합니다.

또 둘째는 사람이 죄라 의라 하는 것은 죄라 의라 하는 것은 사람을 표준으로 해  가지고 죄라 의라 하는 것 아닙니다. 아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 의인이라 그거  아닙니다. 이 사람보다 이 사람이 옳으니까 의인이다 그거 아닙니다. 이  사람보다 이 사람이 잘못 됐으니까 죄인이다 그거 아닙니다.

죄라 의라 하는 것은 인간을 표준으로 해 가지고 죄라 의라 하는 것이 아니고  죄는 하나님에게 삐뚤어진 거 하나님의 법칙 이 진리에 삐뚤어진 것을 죄라  이렇게 합니다. 여게 이 바리새 교인은 의라고 "나는 이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  의로운 자라." 자기가 의는 이 사람은 간음하는데 저는 간음하지 안하니까  의인이라, 이 사람은 토색하는데 자기는 토색하지 안하니까 의인이라, 이 사람은  불의한데 자기는 불의하지 안하니까 의인이라, 이러니까 이것을 틀렸다고 정죄를  받았습니다. 세리는 오히려 의롭다함을 얻고 돌아갔고 바리새 교인은 정죄 받고  갔습니다.

그것이 뭘 가르치는고 하니 죄라는 것은 누구만 못하기 때문에 죄가 아닙니다.

죄는 다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진 거 고것만이 죄입니다. 그 사람이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보다 낫다 할지라도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보다 낫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지면 죄인입니다.

천하 사람이 이 사람이 제일 의인이라고 아무것이 보다도 이 사람이 낫고,  아무것이보다 이 사람 낫고, 천하의 모든 사람보다 제일 낫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삐뚤어져 있으면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인 육십육  권 도리에 삐뚤어져 있으면 죄인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종교 여려 이종교가 많이 있는데 여러 이종교에서 아 그 교주는  이렇게 훌룡하다, 그 도덕가는 이렇게 훌룡하다, 그 철인은 이렇게 훌룡하다,  모든 천하의 사람들이 다 노벨상을 주고서 이 사람은 천하에 모든 사람들에게  존대를 받는다 해도 그게 의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지고  하나님께 삐뚤어져 있는 행위라면 천하 인간이 다 의라고 인정을 해도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지면 죄인입니다. 죄입니다.

의도 그러합니다. 의라는 것은 어떤 게 의인가? 의는 인간보다 낫다고의가  아닙니다. '아 이 사람은 아무 사람보다 이 사람은 낫다 이러니까 의인이다.'  그거 아닙니다. 의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이 의요 또 하나님에게  올바른 관계가 되어 있는 고기 의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의 말씀에 하나님과 성경  말씀에 일치된 고것이 의요. 죄는 고게 삐뚤어진 것이 죄라.

그러기에 우리가 회개를 하는 것은 누구 사람을 보고 그 사람보다 낫게 하면  회개되는 것 아닙니다. 그 사람만 못하다고 죄인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해 가지고 회개를 해야 됩니다. 아무것이가 저렇게 하니 그  사람보고 나도 그 사람과 같이 해야 될 터인데 그 사람 같이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죄인이라. 그 사람 잘못 알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떤 성자라 할찌라도 그 성자를 보고 저 성자와 같이 나도  살아야 되겠다 하면 그것이 잘못된 신앙입니다. 아 베드로가 위대하니까 나도  베드로같이 믿어야 되겠다. 사도 바울같이 믿어야 되겠다. 아브라함이 위대하니  나 아브라함같이 믿어야 되겠다.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사도 바울도 우리의  신앙의 표본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것이지 사도 바울의 그  인격을 닮는 거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 기록할 때에 "나를 본받으라" 나를 본받으라는 그 본받으라는  것은 사도 바울이라는 그 사람을 본받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바울이  기록한 게 아니고 성령님이 기록했습니다. 나를 본받으라 그 말은 성령님을  본받으라 그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영을 본받아 그리스도가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되게 하는 그대로의 사람이 되어지라 하는 그것을 말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하면서 내가 이백 명 있는 가운데에 이 구십아홉  명보다 내가 나으니까 됐다 아니요. 구십아홉 명보다 자기가 옳다고 의인  아닙니다. 된 것 아닙니다. 만 명 있는 가운데에 만 명보다 자기가 낫다고  옳다고 해 가지고 된 거 아닙니다. 만 명보다 옳다 할찌라도 뭐 만 명 이만 명이  자기 옳은 거 보증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옳은 것은 만 명과 뭐 틀리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이면  의입니다. 또 하나님과 일치된 것이면 그것이 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에도 사람을 표준해 가지고 죄라고 이렇게 정하지 말고 의도  사람을 표준으로 해 가지고 누구보다 나으니까 의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죄도 의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해 가지고 죄라 의라 하는 것을 결정을  지워야 되지 이 사람들보다 나는 낫습니다. 그것이 그가 의를 행했다고 해도 그  의가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의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고로 죄와 의는 인간 보고 그 인간과 비교해 가지고 죄라 의라 그렇게  사람들이 하기 쉬운데 그것은 다 잘못된 사상이요. 세상이 그렇게 쓰는 것이지  하나님은 그런 법칙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사람은 사람보고 회개하면 안 됩니다. 아 내가  저 사람보다 나으니 된것 아닙니다. 이 사람은 저 사람만 못하니까 죄인이라  그거 아닙니다. 그 사람만 못해도 하나님 법칙에 맞았으면 의인이 됩니다.

그러기에 죄와 의는 사람을 기준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행위를 기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성경 말씀을 기준한다는 요걸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됩니다.

셋째는 바리새 교인은 자기의 장점을 보고 만족을 했고 사람과 비교해 보니까  자기의 장점을 보고 만족했습니다. 그 장점 좋습니다. 다른 사람은 토색하는데  저는 토색하지 안하고, 다른 사람 불의하는데 저는 불의하지 안하고, 다른  사람은 간음하는데 저는 간음하지 아니하고, 저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기도하고  십일조도 잘 드리고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아주 귀한 것입니다.

귀한 것이지마는 자기가 해놓은 귀한 것 고것으로 끝을 맺고 귀한 것으로 끝을  맺어서 귀한 거 옳은 거 고것만 보고 고것만 보고 앉았기 때문에 자기는 이 의  있는 옳은 거 그것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이 세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을 보니까 너무 하나님의 법칙에 많이 틀렸고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 볼 수도 없어. 하나님의 법칙을 바라보니 기가  막혀서 자기는 감히 바라보지도 못하고 자기의 삐뚤어진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불쌍히 여기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사람이 어데까지 의인이 됐을지라도 어디까지 의인이 됐을지라도 의인된  고것으로 만족을 하고 의인된 고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냐 하나님과 진리에  삐뚤어진 고면을 지금 잡고서 분발하고 있는 사람이냐? 요 둘 중에 하나입니다.

어데까지 의인이 됐다 할지라도 자기의 의 그것만 가지고 있는 자는  하나님에게는 필요없습니다. 물리침 당합니다. 에데까지 떨어져 있는 인간이라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을 보면서 자기의 삐뚤어진 고것을 원통히 여기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에 맞도록 하려고 애를 쓰는 삐뚤어진데 대해 삐뚤어짐에  대해서 심한 그 부끄러움과 두려움과 하나님 앞에 말할 수 없는 그 죄송스러움을  금하지 못해서 자기의 삐뚤어진 고것을 발견해 가지고 어떻게 자기가 고쳐야  된다는 거 바로 고쳐야 된다는 거 고것을 바라보면서 삐뚤어진 요걸 삐뚤어진  요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진리를 향하여 바로 고칠 요것을 바라보면서 삐뚤어진  요걸 거머쥐고 바로 고칠 요것을 바라보면서 있는 고 사람은 하나님이 들으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자기의 바로 된 고것만 거머쥐고 자기가 삐뚤어진 걸 고치야 될 거 고치야 될  것도 가지지 안했고 고쳐야 될 것도 안해. 요렇게 고치야 되겠다 하는데 그  고치야 될 것도 가지지 안하고 그러니까 삐둘어진 걸 가지지 안했으니까 고치야  될 걸 가지지 안했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삐뚤어진 것을 가지지 안하고 삐뚤어진 것을 고칠라고 하는 고  고칠려고 애쓰는 삐뚤어진 것은 가지지 안하고 고쳐놓은 옳은 고것만 가진 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버림 당합니다.

요거 그러기에 사람이 자기의 옳은 점 고것 가지고 있는 사람 있고 고것만  가지고 있는 사람 있고 또 자기의 옳은 점은 가지고 있지 안하고 삐뚤어진  삐뚤어진 점 고 점을 하나님 앞에 지금 고치려고 애를 쓰면서 부르짖는 고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옳은 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만족하는 그 사람은 버림을 받았고  자기의 삐뚤어진 점 고점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심히 두려워  부끄러워하면서 고치려고 애를 쓰는 사람 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영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기의 좋은 점 자기 옳은 점, 자기의 장점 그것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버림을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자기의 잘못된 점 고 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하면서 고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환영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고 고 보다도 더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제일 좋은 사람은 자기에게 장점 있는  그것이 과거에 그 장점이 없었던 단점 뿐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장점된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또 요와 같이 하나님이 고쳐 장점되게  하셨으니까 나에게 남은 단점 요것도 하나님이 고쳐 주실 것을 소망하면서  자기의 단점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부르짖는 요 사람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지금 의로워진 고것을 거머쥐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내가 과거에는 이렇던 죄인이라 하는 그것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은혜로 깨끗해진 것을 그것을 무시하는 깨끗해진 것을 거머쥐고  감사하면서 깨끗해지기 전에 어떻게 더러웠던 자 된 것을 그것을 건너다 보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또 자기의 앞에 있는 그 고치야 할 깨끗 이것을  바라보면서 달음질하는 이것이 성신의 행동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장점만 보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하고 그 사람은  교만을 놓게 되기 때문에 버림을 당하고, 자기의 단점을 고쳐 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겸손을 가지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환영을 받게 되고 자기의  단점을 하나님이 고쳐줘서 장점된 그것을 감사하면서 앞으로 남은 단점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 장점화 시킬 수 있는 이 욕망을 가지고 달아난 사람을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십니다.

이제 세 가지 한 가지만 더 말하고 말겠는데 바리새 교인과 세리가 하나님 앞에  같이 기도하러 갔는데 세리의 기도는 들으셨고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안했습니다.

왜 그러냐? 다 같이 기도하러 갔지마는 세리는 자기의 잘못된 요것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고 잘못 된 요것을 고쳐 주시기를 바라는 고 회개를  원하는 기도 그 회개를 근거로 하는 기도 자기의 잘못된 것을 발견해 가지고  요것을 하나님 앞에서 고침 받으려고 하는 고 회개를 근거한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셨고 회개를 근거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고쳐 놓은 그 점을 보고서 낙관하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기도를 듣지 안했습니다.

그런고로 넷째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응답의 기도란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는  반드시 회개를 밑바탕으로 삼아야 그 기도가 회개가 본질과 본성이 되어져야  회개가 본질과 본성이 되어져야 그 기도 응답을 받으시고 회개를 밑잘미로  잡아야 그 기도 응답이 되지 회개를 빼놓은 그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안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감사하는 것도 있지마는 감사하는 그거는 건설적인 하나님의 기도나  응답 없습니다. 감사하는 건 이미 있는 걸 감사하는 것이니까. 거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새로 은혜를 베풀 필요가 없습니다. 베풀 필요가 없어.

이러기 때문에 기도는 반드시 회개가 그 본질과 본성의 기도가 뼈대가 되야 되지  회개가 기도의 뼈가 되야 되고 회개가 기도의 기초가 되어져야 그 기도의 응답이  있지 회개가 없는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 네 가지를 기억하면서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가 요기서 회개를 합시다. 사람을 멸시하면 하나님 앞에 버림 받습니다.

죄와 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함이지 인간을 기준해 가지고 사람보다  어떻다 사람을 기준해서 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장점만 보고 오만한  사람은 버림당하고 자기의 단점으로 부르짖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환영을  받았습니다.

넷째로 기도는 회개가 뼈대야 되고 회개가 그 기초가 되야 되지 회개 위에  기도를 해야 되고 기도의 뼈다귀가 또 회개가 돼야 됩니다. 그렇지 안하면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6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80605 남권찰회 선지자 2015.10.27
6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80807주새 선지자 2015.10.27
62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51013주새 선지자 2015.10.27
61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51013주새 선지자 2015.10.27
60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51011금야 선지자 2015.10.27
59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880905월새 선지자 2015.10.27
58 넓은 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61015수새 선지자 2015.10.27
57 넓은 문 좁은 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30528토새 선지자 2015.10.27
56 넓은 문, 좁은 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30529주전 선지자 2015.10.27
55 네 가지 교훈/ 누가복음 9장 22절-26절/ 851221토새 선지자 2015.10.27
54 네 가지 생활/ 요한계시록 3장 14절-16절/ 810830주후 선지자 2015.10.27
53 네 가지 생활/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810830주전 선지자 2015.10.27
52 네 가지 생활/ 요한계시록 3장 14절-16절/ 810831월새 선지자 2015.10.27
51 네 가지 순서 연습/ 신명기 28장 47절-48절/ 850124목새 선지자 2015.10.27
50 네 가지 싸움/ 야고보서 4장 1절-10절/ 810713월새 선지자 2015.10.27
» 네 가지 지식/ 누가복음 18장 9절-14절/ 801029수야 선지자 2015.10.27
48 네 가지 축복/ 요한1서 2장 25절-29절/ 860621토새 선지자 2015.10.27
47 네 가지 큰 구원/ 히브리서 2장 1절-4절/ 880925주전 선지자 2015.10.27
46 네 가지 큰 구원의 가치를 평가/ 히브리서 2장 3절-4절/ 880925주후 선지자 2015.10.27
45 네 가지를 구하라/ 신명기 28장 1절-6절/ 860620금야 선지자 201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