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축복

 

1986. 6. 21. 토새벽

 

본문:요한1서 2장 25절∼29절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지난밤에 증거한 바와 같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도 이루어야 하겠고, 또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룬다는 것이 우리 자신만의 구원을 이룰 수가 있느냐?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의 구원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런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비유컨대 이 나무가 자랄 때에 아무리 나무 가지가 살아 있다 할지라도 그 가지에게 속한 다음 가지에게 모든 삶의 이 영양을 넘겨 주어야 제 자신이 자라지 넘겨 주지 안하면 자라지 않습니다. 암만 생명 있어도 안 자랍니다.

그것이 이 자연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잡목 나무 같은 그런 나무는 보면 위에 가지 있는 가지를 그만 잎이 나고 뭐 꽃이 핀다든지 하는 그런 움이 나는 그런 것을 가지에 잎이 피는 가지를 딱 잘라 버리면 그 자른 가지가 일 년 있어도 살아 있고 이 년 있어도 살아 있고 삼 년 사 년 오 년 있어도 살아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에 그 포구나무라는 그런 나무가 우리 마을 앞에 큰 게 있었는데 거게 자잔한 붉은 열매가 맺습니다. 이래서 그 나무에 열매 때가 되면은 자주 가 가지고서 그 열매를 따먹기도 하고 이랬는데 저는 어릴 때 나무 재주를 잘했습니다. 이래서 뭐 양사방 돌아다니는데, 어떤 가지는 그 가지가 벌써 끊긴지가 제가 본대로 여러 해가 됐는데, 움이 납니다. 움이 나면은 또 사람들이 올라가면서 밟으니까 움이 다 떨어져 버립니다.

그러면 움이 나 가지고 자라지를 못하고 움이 났다가 떨어지고 움이 났다가 떨어지고 이라는데 그 가지가 뭐 여러 해가 돼도 아마 내 생각에 지금 한 십 년 돼도 살아 있지 않겠나? 그런데 크지는 않습니다. 자라지는 안해요. 항상 그대로요. 그대로인데 그때는 그런 걸 생각지 못하고 이거는 오래 동안 잎이 나는 것을 사람들이 다 그만 떼 버리고 이래서 잎이 자라지 못해도 살아 있다 하는 그것만 제가 그때 느꼈습니다.

그 뒤에 내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이 성경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 그 나무가지가 왜 그때 자라지 안했을까? 같은 가지인데, 같은 가지가 나왔는데 한 가지는 그다음에 자잔한 가지가 나서 자잔한 가지에게 영양을 자꾸 이렇게 보급해 주고 하나는 보급해 주지 못하고 딱 잘려 가지고서 주지 못하고 이런데, 보급해 준 가지는 같은 그 가지인데 나중에 몇 해 지나고 보니까 이렇게 커단하게 돼졌고 이거는 가지가, 그 나무가 여뭅니다. 요만해요. 요만한 게 항상 살아 있어도 그대로 있어요.

그래서, 이거 나무 이런 것도 자기에게 속한 자가 있어야 자신이 자란다. 또 자기에게 속한 것에게 자꾸 이걸 그 영양을 보급해 줘야 이게 자란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의 자신의 구원도 자기가 자꾸 곁가지 내는 것처럼 전도를 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해야 자란다. 이 성경에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 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대로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하나님 앞에 받은 바의 사랑을 주고, 또 지혜를 주고, 진실을 주고, 또 거룩을 주고, 또 힘을 주고, 소망을 주고 뭐이든지 예수님 안에 있는 이런 것들을 자꾸 자기 다음 후배에게 줄수록 자신이 자라게 된다. 또 자기에게 관련된 자를 도와 줄수록 자라게 된다.

그러니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있다 하는 이 이치를 나무 자라는 데서 이래 보니까 주는 것이 곧 자기가 받는 것이요, 다른 사람을 키우는 것이 자기를 키우는 것이요, 저만 욕심 내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안하고 저만 알고 자기 사욕으로, 이기주의로 자기만 아는 자로 있는 것은 자기를 키울 수 있고 자기를 실력 있게 존영하게 만들 수 있는 그 기회를 다 잃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남을 줄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놓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주님에게 받아서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된다.

그러니까, 나무를 보니까 받아 가지고 다른 가지에게 주니까 다른 가지도 자꾸 자라고 커지고 그것이 자라고 커지니까 자꾸 달라고 하고, 달라고 하는데 그 영양을 자꾸 주니까 주는 것만치 그다음 가지들을 바람이 불어도 잘 유지할 수 있을 만침 대목 가지가 크게 된다. 만일 그게 자라지 안하면은 그다음 가지들이 다 뿔라져서 못쓸 것이기 때문에 그다음 가지가 자라기 위해서 대목 가지가 커지고 이게 든든하게 된다.

그것을 이래 생각하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들을 자꾸 구원에 유익되도록 이렇게 하는 것은 마치 나무 가지와 같이 주님 앞에 ‘네 행실을 보면 내가 어떻게 하지마는서도 지금 네게 달린 것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너를 용서하고 보존하고 있다’ 하는 그런 꼴을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이거 다른 사람 같으면 그럴 것인데 이거 밑에 달려 있는 후배와 그 모든 전도해 놓은 곁가지와 같은 그런 형제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거 때문에 지금 이거 하나님이 보존해 주시고 강건을 주신다. 제가 설교는 하기는 했지마는서도 자꾸 깨닫는 것이 더 깨달아지고 더 깨달아지고 확고해지고 달라집니다.

이래서, 다른 권찰님들을 볼 때도, 자기 그 사람이 지혜가 내가 처음 만날 때와 지금과는 비교 못 할 만침 아주 유능하게 지혜 있어졌다. 이거는 무슨 연고인가? 거게 달려 있는 것이 많이 있고 이것을 바르게 해야 자꾸 거게 소속한 것들이 발라지고 살아질 터이니까 그 후배와 제가 전도해서 믿음으로 낳은 자녀들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게 많다.

이라고 보니까 저것은 저 개망나니 노릇을 하고 있는 것, 저거는 밥을 먹고 지낼 수가 없어 당장 죽든지 어떻든지 해야 되지 아무 살 가치가 없는데 왜 저거는 살려 두는가? 그거는 보니까 그다음에 거게서 난 자손이 지금 주일학생이 있고 뭐 이런 것이 또 중간반이 있고 있어서 저것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것을 부득이 그래도 둬 두는구나. 저거는 출물꾼이다.

또 그라고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도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패역을 부려서 다 광야에서 몇 사람 말고는 다 죽어 버렸는데, 광야에서 멸망받는다 하는 대로 멸망을 받았는데 멸망받을 그 사람들을 광야에서 그래도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고 이렇게 한 이유가 뭐인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광야에 나와 가지고서 낳은 그 후손들 그걸 기르는 데에는 그 믿지 않는 광야에서 멸망받을 그런 선조들이라도 있어야 되지 그게 없으면 안 되겠구나.

이라니까, 저게ㅡ인제 자꾸 나온다 말이오ㅡ이 식물도 보면은 젖잎이 있다. 젖잎이 있으면은 젖잎이 그것이 젖잎을 미리 똑 잡아 떼 버리면은 위에 새 잎이 자라지를 못하고, 충분하지를 못하고 젖잎 그것 두면은 위에 새 잎이 장성해지게 되면은 젖잎은 차차차차 양보를 해 가지고서 누러져서 그 젖잎은 떨어지고 위에 잎은 장성하게 자란다. 이거 보니까 전부 다 그거라 그거요.

이래서, 고동 같은 거는 참 그 고동이 강건하게 잘 자랐는데 그다음에 새끼가 나면은 새끼가 다 먹어 버리고, 다 갉아먹어 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이제 떠나가니까 그말 하지 않습니까? 고동 껍데기가 떠나가니까 그 새끼들이 말하기를 우리 어머니 시집 간다 한다고서, 알맹이 다 빼이고. 이러니까 이 모든 이치가 하나다. 이러니까 주는 자가 복 있다 하는 그것이 뭐 별스러운 말이 아니라 이 만물이 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또 성경도 가르치고 있구나.

이래서, 이제 차차 살아 나오니까 성경만 읽는 사람은 그 사람은 성경에 대한 뜻을 알지 못한다. 이 모든 자연 계시를 접함으로써 자연 계시에서 특별 계시인 성경을 깨달을 수가 있고 성경 계시에서 자연 계시를 깨달을 수가 있다. 그것을 자꾸 늘 말합니다.

이래서, 나는 도시 사람들이 복이 적다. 왜? 저 시골에, 농촌에 있는 사람들은 자연 만물을 많이 접하기 때문에 거게서 깨닫는 것이 많아. 그 깨달은 사람들은 성경의 도리를 말하면 척척 깨달아지지마는서도 그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성경의 도리를 암만 말해야 잘 몰라요. 이런데 그라면 도시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시골 사람은 눈뜨면 만물이 보입니다. 들에 가도 보이고 집에 가도 보이고 전부 이거 자연 만물 보기 때문에 그렇지마는서도 도시 사람들은 눈 뜨면 앞에 보이는 거는 앞집 지붕, 또 돌아보면 뒷집 지붕, 옆집 그거나 보이지 다른 거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다 말이오. 혹 뭐 푸른 부산 만든다고 해 가지고 이런 식물들을 놓기는 놓지만 그까짓 거 몇 가지 됩니까? 이러니까, 이제 시골 사람들이 이 자연 만물, 자연 계시를 자꾸 보고 있는 것처럼 이제 이 도시 사람은 자꾸 계속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을 그려 내놓은 그 책들이 있으니까 그 책을 자꾸 읽어서, 하루 아침에 그만 들에 가서 보면 될 것을 책으로 읽을라 하면은 제가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적어도 며칠 읽어야 될 거라 말이오.

그러니까, 도시 사람들은 독서에서 그것들을 대략 좀 구경하고, 또 시골 사람들은 자연 만물에서 구경하고 해서 이 자연 계시에서 특별 계시를 깨닫고 특별 계시에서 자연 계시를 깨닫는 이 비밀이 있구나.

그러면, 하나님께서 특별 계시를 먼저 주셨느냐, 자연 계시를 먼저 주셨느냐, 하나님께서 자연 계시를 먼저 주시고 특별 계시를 그다음에 주셨는데 에덴 동산에 준 것은 벌써 자연 계시 받은 후에 에덴 동산에서 특별 계시를 주셨다.

주는 것이 복이 있다 하는 그런 것을 자꾸 보면 볼수록, 주는 것이 복이 있고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알고, 자기만 좋게 하고, 자기만 유익되게 하려 하는 것 자기 위주로 사는 그것이 자멸 행위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다. 모든 이치가 그래 보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다 그러하다. 그것을 자꾸 깨달아지면 자꾸 깨달아진다 그거야.

이러니까, 우리가 자기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데에도 이 성경이 말하는 대로 모든 축복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자신 구원을 이루는 데에도 축복 받아야 되는 것은 어떤 축복을 받아야 되느냐? 내 영이 강건해야 내 영이 내 마음과 몸을 지배할 수가 있고 내 몸이 강건해야 내 몸 밖에 있는 모든 사물들을 지배할 수가 있지 그렇지 안하면 다스릴 수가 없고 안 되겠다 그거요.

그러니까, 내 구원 위해서 내 영이 강건함을 얻어야 되겠고, 또 내 마음이 아주 강건하고 깨끗함을 얻어서 내 마음이 성령의 명철한 지혜와 총명을 받아서 내 마음이 아주 깨끗하고 강건해서 내 마음의 병이 다 고쳐져야 되겠다 말이오.

내 마음에 사욕, 못쓸 욕심 하나만 가져도 그 욕심 때문에 마음만 망하는 게 아니라 몸도 망하고 뭐 전부가 다 망합니다. 영의 구원도 절단나고. 또 자기 사업도 절단나고, 마음 절단나니까 다 절단나요. 안 가질 생각 한 번 가졌음으로써 그만 일생을 망쳐 버립니다. 안 가질 생각 하나, 안 가질 욕심 하나, 안 가질 취미 하나, 안 가질 성질 하나 이거 뭐 이거 마음에 나오는 것인데 이런 거 하나 가지고서 얼마나 해독을 받는지 몰라.

또, 자기 몸도 그래요. 몸도 이거 축복 받아서 몸도 깨끗해져야 되지, 몸에 무슨 병 하나만 있어도 그만 그게 아주 안 됐어. 저는 자꾸 병이 생겨요. 이 여게 팔에 가만히 아무 다친 데도 없는데 뭐 뼈가 요런 게 하나 톡 튀어 오르더니마는 그게 아파서 요게 요만침은, 요게서 요만침은 항상 쓰리고 아프고 이래, 요래도 잘 못 하고 이래요.

이래서, 우리 ○○○ 장로님에게 이 한번 보여 봐야 되겠다 이라면서 그 마음 먹은 지는 한 아마 한 달포 됐지마는서도 그 장로님에게 전화 걸 시간이 없고 만날 시간 없어서 못 보였습니다. 그것도 뭐 때문인지 분명히 이것도 계시는 계시인데 주님이 뭘 알릴려고 하는 것인데 뭐인가 이래서 그런 것을 자꾸 살핍니다.

어제도 내가 우리 목장에서 우리를 위해서 수고하고 있는 그 ○ 집사님 보고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신고함에 ‘이 우유를 예배당에서 이렇게 팔고 있는데 주일날도 이거 팔고 있으니 이거 어찌 됩니까? 이게 주일을 범하는 것이 되지 않습니까? 그라면 다 연합체로서 다른 사람이 나쁘면 우리 서부 교인들은 다 복을 못 받는다 했는데 그것 때문에 우리가 좀 복 못 받는 그런 데 지장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신고함에 쓰여 들어 왔습니다.

그 사람을 내가 만나 가지고서 ‘이거는 처음에 우리가 그 모든 목장도 우리 목장이고 우리가 모두 지금보다 그때는 식품들이 다 빈약해서 우유를 해 가지고 우리 직원들은, 다 일 많이 하는 직원들은 돈을 내지 안하고 그것을 무료로 먹도록 그렇게 하고 그 목장을 우리가 경영했다. 경영을 하고, 또 그다음에 혹 남아서 먹는 사람도 한 달에 얼마로 하고서 이렇게 먹기 때문에 그것은 매매에 거게 들어갈 수는 없다. 왜? 하숙을 한 달을 붙이면은 한 달 하숙이 얼마라 하면은 주일날도 먹으니까 그것도 계산을 따지면 사 먹는 것이지마는서도 한 달을 댔기 때문에 그것은 거기에 해당되지 안하게 그렇게 계산 할 수도 있다.’ ‘또 우리가 전기를 쓰고 수도 쓰는 것도 그것도 내나 그 일하는 사람들 있지마는 그 주일날 그란다고 그렇게 해석할 수가 없다. 그러나 주일을 지키는 것은 개인의 신앙 양심 자유에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전기 쓰는 것도 이거 주일날 쓰기 때문에 나는 안 쓸란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안 써야 되겠다는 그 양심이 있는 사람은 안 쓰고서 그날은 전기 안 쓰는 사람 있고, 수도도 그날 안 쓰는 사람 있고, 또 수도 전기는 그거는 그만한 범위에 쓰는 사람도 있고, 이거는 주일날 논도 매고 밭도 매 가지고 한 오곡 곡식이기 때문에 이건 주일날 노동해 가지고서 만든 곡식 이니까 이 주일날은 밥을 안 먹어야 되겠다. 또 안 먹는 사람도 있고, 안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서 자기 구원 위해서 안 먹기 때문에 잘하는 것이요, 또 먹는 사람도 주를 위해서 먹는 것이기 때문에 잘 먹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을 해서 그분에게 간단하게 해석을 해 주기는 해 줬습니다.

해 줬지마는서도, 내가 그 사람에게 그 해석을 할라 해도 힘이 드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다 그렇게 해석해 줄라 해도 문제가 문제고 이래서 아무래도 이거 우유 거석하는 것은 그만 우리가 불편해도 우유를 사 먹든지 어짜든지 하고서 이것을 그만 둬야 되겠다. 그래, 오래 전부터, 신고함에 들어오기 전부터 오래 동안 그 말을 했고 본인들에게도 말을 해서 목장을 처리를 할라고 합니다.

하는데 그래, 지난밤에는 만나서 아무래도 그러니까 가서 될 수 있는 대로 속히 우유 조합으로 그것을 넣고 또 이거 운반하는데 자꾸 고장도 나쌓고 이라니까 그리 조합으로 갖다 넣고 여기서는 그만 우유 교회 내에서 먹는 것은 그래 그만, 그만 두기로 그래 하자 그래서 타협을 봤습니다.

그랬는데, 그런 것도 자꾸 이래 뭣이 안 되면 뭣 때문에 이런가 살피게 되고, 그래서, ‘제 팔목 이런 것은 혹 그런 것 때문에 그런가?’ 그거 인제 그거 그라고 난 다음에 이 팔목이 저절로 나으면 아마 그거던가 보다’ 이래서 모르는 거 깨달아 가지고서 고치면 이 육신의 병 고쳐지는 것도 많고, 심령이 고쳐지는 것도 많고, 영이 강건해지는 것도 많고, 모든 일들이 형통해서 잘되어지는 것도 많아요.

이래서, 이러니까 너무 장 좋기만 하는 것만 좋은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 간섭이 있어 가지고서 이렇게 되어지는 그것이 좋아요.

성전 밖마당은 간섭하지 안한다 했습니다. 이거는 암만 죄 지어도 상관없어요.

‘성전 밖마당은 이놈은 내가 취급할 수 없으니까 어라 그거 그만 던져 둬라.’ 방임해 두는 것, 방임해 두는 그것보다 더 참 불쌍한 게 없습니다.

이러고, 사랑하는 자일수록 자꾸 징계합니다. 몇 번이든지 징계해 가지고서 너를 깨끗하게 하겠다 그러기 때문에 열심을 내서 회개해라 그렇게 라오디게아 교회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아무래도 내 구원을 이루는 데에도 내 영이 강건해져야 되겠고 내 심령이 강건해져야 되겠어. 내 심령에 병이 안 들어 있어야 된다 말이오. 내 마음에 병이 안 들어 있어야 되지, 마음의 병은 무슨 병인고 안 생각할 것 생각하는 것도 마음 병이요 또 원하지 안할 거 원하는 것도 마음 병이요 욕심 내지 안할 것을 욕심 내는 것도 마음 병이요 기억지 안할 걸 기억하는 것도 마음 병이요 생각지 안할 것을 생각하는 것도 마음 병이요 또 그렇게 계획하지 안할 걸 계획해도 마음 병들이라 말이요, 그게 다 마음 병.

이 마음 병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망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의 망하는 것은 마음 병에서 시작합니다. 영이 약한 그것이 제일 원인이 되고, 마음 병에서 나는 것인데 불신자들은 영은 죽었기 때문에 마음 그놈이 뭐 온갖 병이 들어 가지고서 일생 동안 어떤 사람은 일생을 돈 보고 죄짓다가 죽고, 권세 보고 죄짓다가 죽고 뭐 명예 보고 죄짓다가 죽고 그거 다 모두 마음의 병이 들어서.

왜? 자기를 속이고 망치는 그 일이 병 아닙니까? 그 마음 병을 우리가 고쳐야 되겠고, 또, 몸뚱이 병도 이거 고쳐야 강건해야 뭐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몸 이것도 약하면, 몸뚱이 병 이것도 또 고쳐야 되겠어.

또, 이러고 또 우리 하는 일하는 일 병도 고쳐야 되겠어. 성경에는 기한 전에 네 과실이 떨어지지 않겠다. 이것은 모든 일이 미완성으로 절단나는 일 없고 모두 다 완성되구로 해 주겠다. 이렇게 농사 짓는 데 그렇게 했으니까 장사하는 데도 사업하는 데도 정치하는 데도 다 꼭 같은 이치라 말이오.

이러니까, 이 모든 일에 대해서도 병을 다 고쳐야 되겠고, 또 물질에 대해서도 병을 고쳐야 되겠어. 그러면 물질이 너무 많아 가지고서 병 드는 것도 있고 물질이 적어 가지고 병 드는 것도 있고 물질이 없어서 물질 병든 것도 있다 말이오. 물질 병도 고쳐야 되겠다.

이러니까, 영의 축복을 받아야 되겠고, 마음의 축복을 받아야 되겠고, 몸의 축복을 받아야 되겠고, 이 모든 사물의 축복을 받아야 되겠다.

이래서, 우리가 대구 집회에서도 가 가지고서 어찌 됐든지 사람 병 고치고 소유 병 고치도록 그렇게 하자 그것을 말해 가지고 자꾸 고친 사람 많았는데 이걸 고쳐야 되겠어요. 안 고치고는 내 구원도 이루지 못하지, 또 다른 사람에게 이 구원을 전해 주지도 못하지.

제가 이 전도지를 거석할라고 써 놓고서 이 전도지를 박을라고 가만히 생각하니까 전도지를 박는다. 그러면 우리 교회에 안 오는 사람을 오라고 돈을 들여 가지고 자꾸 끌어들이는 이게 좋은 방편이냐? 소문 듣고 오고 온 사람은 갈 수 없다 해 가지고 암만 가라 해도 가지 안하고 오는 사람이 안 가고 소문을 듣고 오고 하면은 아마 여기 뭐 이 예배당이 솔아서 감당을 못 할거요.

그러니까 이 옳은 이치가 있는데 옳은 길은 걷지 안하고 엉뚱한 걸 가지고서 전도지를 가지고 듣기 싫다 하는데 자꾸 욕 얻어 먹고 하는 것 이거 틀렸다. 욕을 얻어 먹는 것도 주를 위해 욕 얻어 먹지마는 바로 얻어 먹어야 가치가 있지 삐뚤어지게 얻어 먹으면 안 되겠다 이래서 그것을 지난밤에 제가 증거를 했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그대로 지켜 행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겠다, 성에서도 복 받고 들에서도 복 받고 사업에도 복 받고 손으로 일하는 것 다 복 받고 몸에도 복 받고 자손도 복 받고 전부 다 복 받는다 하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저주로 가지고서 지금 망하고 있고 화로 망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사람들이 다 어데로 가야 될까 이래서 뭐 점치는 데로도 가고 또 절로도 가고 뭐 전부 다 가는데 그거는 다 거짓부리지 복 받는 길은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받지 받지 해 가지고서 속고 있는 것인데 기독교도 꼭 같애. 그 사람들은 이 부처한테 가면 복 받는다, 우리 기독교는 교회 와서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이렇게 했는데 이 전도지를 제가 그 둘째 문제에는 하나님 말씀을 지킨 것만큼 모든 세계 민족 위에 뛰어날 수 있는 온갖 축복을 받는다 이래 전도지에 둘을 박아 놨지마는서도 그 사람들이 와 가지고서 이걸 보고서 그러냐고서 와서 볼 때에 과연 여기는 복 받은 사람들뿐이로구나 이래야 될 터인데, 와 보면 뭐 절름발이는 그대로 절름발이지, 또 모두 다 근심 걱정 수심이 있어서 상은 찡그려 가지고서 그 모든 피부를 보면은 근심 걱정이 가득 쌓여 있지, 또 경제적으로서는 어려워서 항상 그저 입칠하기가 바당바당하고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왔다가는 다 갈 거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고장은 아무래도 여게 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영을 얼마든지 강건하게 해 주신다는 계약이 있고, 우리의 심령이 아주 깨끗해서 하나님처럼 그렇게 온전한 심령이, 명철한 심령이 된다고도 또 말씀해 줬고, 우리 몸에 있는 병도 계약도 그랬고, 주님도 앉은뱅이도 낫아 줬고 모든 것 다 낫아 주셔서 이렇게 됐다 말이오.

이런데, 우리 서부교회는 지금 ○○○ 집사님이 앉은뱅이인데 암만 말해야 안 나아. 기도해야 안 나아요. 안 낫는 데, 내가, 안 나으니까 엉뚱하게 나도 좀 옛사람 노릇했다 말이오. 뭐 제가 뭐 고칠 걸 고치든지 해야 낫지 암만 기도해도 낫지 안하니까 그 무슨 사고냐 이랬는데 또 가만히 깊이 생각하니까 우리 기도가 부족하고 우리가 뭐 목사가 뭐 모자란 게 있으니까, 예수님은 그만 앉은뱅이 떡 기도하면 덜컥 나아 버렸는데 목사가 예수님의 후배이니까 예수님 같은 그런 목사가 돼 버렸으면 문제 없는데 이 목사 탈은 목사 탈이라 그말이오.

그래서, 내가 물어 보니까 그 지금은, ○○ 집사 어데 있소? ○○○, 요새 좀 거게 앉은뱅이 된 데 좀 생기가 돌아오요 그전과 꼭 같소? 어때? 많이 좋아졌어? 뭐 좋아졌는데 앉은뱅이는 앉은뱅이인데 뭐이 좋아졌어? 좋아진 게 뭐야? 좋아진 걸 좀 말해 보라고. 그라면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좀 힘을 쓰지. 뭐이 좋아졌어? 뭐라 하노? 뭐라 해? 그 전달 좀 해, ○○○ 목사. 허리가 어째? 뭐 낫기 시작한 지는 모르겠어. 그라면 혈맥이 돌아오고 뭐 좀 이래 좀 돌아오는데 이게 하나님이 자꾸 독촉하는 거라 말이오. 하나님은 고칠 수 없는 것이 없습니다. 뭐 전부 다 고칠 수 있어. 전능자십니다.

이런데, 이 고장은 꼭 우리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것은 이제 요한1서 2장 25절로부터 본 거와 마찬가지로 ‘기름 부음이’ 기름 부음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인고 하니 우리가 그 성령으로 중생된 것, 성령으로 중생된 우리 영이 성령으로 살아난 그 성령을 가리켜서 기름 부음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또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것 그것을 가리켜서 또 기름 부음이라고 말합니다.

안수를 가리켜서 기름 부음이라 말하는 것이 외부를 말하는 것이고 성령으로 중생된 것은 내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에게 안수 받은 것, 또 중생된 이 속에 성령님이 우리를 옳고 바르게 가르쳐 주고 있으니까 그대로 행하면 되는데 그걸 행하지 안해서 지금 고장난 그것이라.

이러니까, 아무래도 이거 우리 서부교회가, 복음 전하는 것보다도 서부교회 뭐, 언제 어떤 사람 그런 사람들 있었어요, 말하기를 교역자 중에서. 자꾸 이적을 말하면 그 온 사람들 자꾸 병신들만 와 놓으면 나중에 마구 병신을 메어다 놓을 터이니까 이제 그 예배당도 감당을 못 할 것이고 병신들이 와 가지고 하나님이 다 낫아 주시면 하지마는서도 낫아 주시는 것도 있을 것이고 안 낫아 주시는 것도 있을 터이니까 병신이 오면은 자꾸 죽어서 초상이 나가게 될 터이니까 혹 그 사람들이 와 가지고서 그 죽었다고 트집을 뜯어 가지고서 뭐 이래 가지고 시비하면 어짤 것이냐 그렇게 말하는 그런 교역자들로 염려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거는 와도 우리가 무슨 그 사람에게 손을 댔다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뭐 다른 데 모양으로 낫기 위해서 손으로 대고 뚜드리고 뭐 이렇게 했다든지 그러면 하지만 손도 안 대지 뚜드리지도 안하지 하나님 말씀 가르치지 이렇게 찍해야 뭐 위해서 기도하고 이라는데 그 사람이 죽었다고 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뭐 때려 죽였다고 그렇게 뭐 찍탈잡을 리가 없어.

이러니까, 그런 거, 그런 거는 주님이 하실 것이고 우리는 너거 병신 오거든 고쳐 주고 소경 오거든 눈 띄워 주고 거지 오거든 부자 만들어 주고, 아주 독사와 시랑이와 같은 악한 자 오거들랑은 의인 만들고 이렇게, 또 너희 자신들도 그렇게 해라 하는 이것이 성경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아무래도 이 일을 해야 되겠다 해서 이제는 더 강력하게 제게 들어왔습니다. 강하게 깨달음이 와요. 이제는 뭐, 만일 병신들이 와 가지고서 여게 와서 들어와서 어떻게 된다 하더라도 그거 상관없다. 병신이 오면 성한 사람은? 성한 사람은 또 바깥에 서지. 또 그리 안 하면 하나님께서 이거 예배당이 솔면 ‘하나님, 이거 수용할 수 없어 가지고서 못해 이러니까 수용 이거 우리에게 돈이 없는데 뭐 도적질하라 말입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돈을 줘서 예배당을 짓게 하든지 어짜든지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이러면 그거는 하나님 책임이지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 할 일은 우리가 하고 주님이 할 일은 주님이 하시고 이렇게 갈라 가지고 일을 해서 이거 참 멋지게 예수를 믿어 가지고 이거 바로 좀 돼 나가야 되겠다 이 생각이 강하게 들어왔습니다.

제가 처음에 예수 믿고 집사로서 부흥사로 돌아다닐 때에 그 때에 오는 병신들이 나으니까 전부 집회할라 하면 병신들이 앞에 와서 먼저 자리 차지하고 앉고 이래 놓으니까 진리를 가르칠 여가도 없고 전부 병신들만 주 모으니까 뭐 시골에 조그만 예배당에 겨울에 추우니까 그만 거석한 사람들은 들어오지도 못하고 바깥에 추워서 은혜도 못 받고 이래.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내가 기도를 했어요. ‘이제 이거 병 낫는 사람들만 하지 말고 진리 배워 가지고서 구원 얻을 사람만 거석해야지 자꾸 병만 낫고 이라니까 예배당은 솔지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 그때부터 안수를 안 해 주고서 그만 딱 끊어 버리고 이랬다 말이오.

그 가조교회서 그랬어요. ‘여게 서봉월 집사 여기 있어요? 서봉월 집사, 그때 그랬지? 잊어 버렸어? 안 잊어 버렸어? 안 잊어 버렸는지 잊어 버렸는지 이래 놓으니까 내가 뭐인지 모르겠어. 잊어 버렸다 말이요? 안 잊어 버렸어? 그때 은혜 받아서 그때 동참한 사람이야.

이러니까, 이제는 뭐 병신이 오든지 말든지 어짜든지 우리 자신의 영이 강건해져야 되겠고, 우리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예수님의 마음과 꼭 같은 마음 되는 것이 우리 마음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마음과 꼭 같은 마음이 우리가 되어져야 되겠고, 또 우리 육체가, 모세는 죽을 때까지 기력이 쇠잔하지 안했다 했는데, 예수님은 오는 사람마다 전부 다 병 고쳐서 강건한 사람돼 가지고서 예수님을 따르면서 잘 믿었는데 육신의 모든 병도 고쳐서 육신의 복도 받아야 되겠고, 또 이 물질도, 물질의 복도 받아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고 들에서도 뭐, 산에서도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 받는다 했는데 또 복을 받아야 이거 사실, 봐라. 예수 믿는 증거를 우리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돼 달라고 말씀했는데 이 증거를 보여 줘야 될 터인데, 이제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에게 주실 때 어떻게 줬는가? 그 대속을 예수님이 주신 대로 나도 그 방식으로 이 대속을 보수해야 되고, 그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줘야 되고, 또 그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복 되게 해야 되고, 그 방식으로 나도 복이 되어져야 되지 나는 먹을 게 없으면서 예수 믿어 복 받으라 이렇게 해 봤자 소용이 없겠고, 또 이거 뭐 정신 이상자든지 이런 거 고치지 못하면서 자꾸 이거 말로만 해 가지고서는 안 되겠어.

이래서, 이 고장이 어데 났는고 하는 그 고장은 암만 봐도 이대로 하면 되기는 되는데 틀림이 없는데 이 고장이 어데 났노 하는 것을 찾아보니까 고장난 것은 지난밤에 말한 대로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말은 그 현실에서 우리에게 요렇게 해라 하는 고대로 안 해서 요게 고장이 붙은 것 같애요.

내가 다른 사람 보니까 조금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그만 고장이 고쳐졌어. ○○○ 집사도 뭐 무슨 온천이더라? 부곡 온천 가 가지고서 매일 다녔습니다. 하도 내가 그 말 ‘부곡 온천에 다니지 말아라. 그 백지 아무 소용 없는 데다. 돈 벌어 먹을라고 꼬우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일시 차운 데 뜨거운 데 들어가니까 자극 받아서 그렇지마는 그거는 병 고치는 것은 아니다.’ 이라니까 은밀히 와 가지고서 ‘목사님 그런 말씀은 강단에서 안 하면 좋겠읍디다.’ ‘왜?' `현저히 병을 고치고 이래 가지고 있는데 그런 말 하면은 강단에 그 설교 말씀도 권위가 없어지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 그라면 내가 그말은 내가 안 할 터인데 집사님은 자꾸 다니이소. 매일 꼭 다니이소?’ ‘예, 다닙니다.' 그래 다니다가 늘어져 가지고 돈만 없애 버렸지 하나도 안 나았어.

처음에는 그렇지만 그다음에는 나중에 보니 꼭 같애.

이 수원지 다녀 가지고 나았습니다. 지금은 밥을 얼마나 많이 먹고 힘이 세고 잠은 눕기 시작하면 밤새도록 자고 또 산에 가서 기도하게 되면은 그만 그 밤새도록 눈도 감지도 안하고, 꼼짝 안 하고 그대로 또 앉아서 기도하고, 이제 병 다 나았어.

이번에도 보니까, 아마 오늘 올 거라. 산에 갔다가 다른 교인들은 다 왔는데 안 오고 저 산만당에 가서 굶고 있는지 어쩐지 그 아마 더 은혜를 깊은 은혜를 받는 것 같애.

그런 사람들은 이래 보니까, 내가 접해 보니까 과거와 달라서 현실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고대로 하는 그 심령이 밝아졌다 말이오.

이러나, 우리 일반이 다 안 되니까 우리가 다 돼야 되지 혼자만 됐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그럴 거라 말이오. ‘아무 데는 건강한 사람 없나? 서부교회만 건강한 사람 있나? 다 건강한 사람 쌔 버렸다.’ 이러니까 건강한 사람 하지만 다 이제 건강해져야 되겠고 다 복 받아야 되겠고 사업이 잘 돼서 다 부자가 돼야 되겠고 이렇게 다 그 마음이 예수의 마음으로 변화돼서 성자 성녀의 마음들이 돼져야 될 거라 말이오.

이 다 고쳐져야 되지 하나 둘만 고치니까, 한목 다 고치지지는 안 되고 자꾸 이래 고치기는 고쳐져. 서서히 차차차 고쳐지기는 고쳐지지마는 다 고쳐져야 되겠소.

그래 제가 보니까 서부교회 교인들은 병은 거의 다 고쳐진 것 같애. 인제 얼마나 남았지. 뭐 그러니까 병자가 별로이 없어요.

없는데, 이 좋기는 좋은데 병자가 별로이 없고 병은 고쳤지만 이 병 고쳐진 것이 병 고친 것 가지고 도적질 하는 데만 빨리 가 버리지 하나님 섬기는 데는 그렇지 안해. 도적질 하는 데라니? 병 고쳐 가지고 그것 가지고서 거짓말하고 이래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장사하고 이래 가지고 다른 사람 발등걸이로 다른 사람가는데 방해나 하고 제 이기주의로 자꾸 이래 하다 보니까 이거 몸뚱이 고쳐 주면 죄 짓는 데 써먹지, 또 재산 주면 이거 사욕으로 자꾸자꾸 사업이나 넓히지 씨를 심는 이런 일을 하지 안하지, 지혜와 총명을 주니까 뭣 해요? 선지자가 지혜 총명 받은 사람이 선지자 아닙니까? 선지자는 뭣 해요? 예? ○○○ 목사님, 선지자는? 예? 뭐라 하노? 큰 소리 해 봐. 몸뚱이는 큰 데 소리 그렇츰 작아? 한번 이 사람이 다 들리게 한 번 해. ‘돈을 위해서 점치고’ 선지자는 돈을 위해서 점친다 했어.

이 조금 지혜와 총명 받아 놓으니까 이 지혜 총명 가지고서 ‘내가 이만한 지혜와 총명이면 나도 사업할 수 있다, 나도 도시에 나가서 살 수 있다, 나도 아무 장사할 수 있다, 나도 이만하면 지금 출세할 수 있다.’ 이래 가지고 지혜와 총명 주니까 전부 악용하고 제 사욕으로 써 버리지 바로 쓰지 안하니까 이거 고장이 났다 말이오.

이러니까, 주님이 주셔서 받아 가지고서 잘못 쓰니까 난 고장,

또, 주님이 가르친 거는 두 가지뿐인데. 하지 말라는 것 하라는 것 둘뿐인데. 또 과거에 하지 말라는 그것을 한 것 있으니까 그것을 지금 자복을 하고 회개를 하고 자복을 해야 될 터인데 자복을 안 하지, 과거에 하라 하는 것을 안 한 것을 자복을 해야 될 터인데 이거 뭐 입 싹 닦아 버리고 과거에 하라는 것 안 했더란대도 아무 상관없어. 암만 하라는 걸 안 해도 상관없고 또 하지 말라는 걸 해 놓고도 눈 지끈 감고 아무 거석이 없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여게 고장이 생겼어.

이제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데 대해서 과거적으로 고장이 생겼다. 이 과거적으로 고장 이것을 여러분들이 다 같이 찾자 말이오. 과거적으로 고장 이걸 다 찾자.

또, 현재적으로 고장이 생겼어. 하지 말라는 것을 현재 하고 있으면서 복 달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줄 수가 없다 그말이오. 또 현재 하라는 것을 안 하고 있으면서 자꾸 복 달라 하니까 또 줄 수 없다 말이오. 그 현재에 하라는 거와 하지 말라는 것이 다 고장이 생겼어.

또, 미래적으로 앞으로 내가 이 지혜와 총명 명철한 지혜와 총명을 줬으면 이것 가지고서 도적질하는 데에, 남 속이는 데에, 내 사욕을 이루는 데에 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의롭게 사는 데에 쓰겠습니다 이래야 될 터인데 그렇게 약속을 안 하니까 또 안 되는 거라. 약속을 안 하니까 안 돼요.

‘주여, 지혜 총명을 주시옵소서. 이 지혜 총명을 내가 달리 쓰지 안하고 꼭 의인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소금이 되기 위해서만 쓰겠습니다.’ 내가 뭐 있는 직장 그 직장에서 내가 이 지혜 총명 가지고서 올라갈라고 하지 안하고 나는 자꾸 내려갈라 하고, 내려갈라 하니까 다른 사람은 자꾸 이 사람 올릴라 하고, 올릴라 해도 안 올라가고 내려갈라 하고, 자꾸 올리고 이라면 덕이 돼 가지고 ‘저 사람은 왜 올릴라 하는데 요번에 그 과장 자리 올라가면 좋을 것인데 안 할라 할꼬?’ ‘그 사람들은 그 별 사람 아니가, 예수 믿는 사람 아니가, 그 사람은 보면 항상 다른 사람이 끌어 올릴라고 애를 쓰고 안 올라갈라고 해 가지고 지금도 그 자리까지 왔는데 그뭐 여간 끌어올려 가지고 안 올라간다. 아무래도 우리 회사가 될라면은 저 사람이 과장이 되고 저 사람이 사장이 돼야 되겠다. 저 사람이 사장이 돼야 우리 회사가 잘 되고 우리가 밥을 잘 먹지, 안 되겠다. 그 사람을 그냥 사장 시킬라 해도 되는 줄 아느냐? 마구 끌어올리고 강제로 우리가 막 데모를 하고 이래 해 재껴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올라온다.’ 이래 가지고서 올라온다 그거야.

그러니까, 그 사람은 지혜와 총명을 사욕 위해서 쓰지 안하고 주님 위해서 주님이 쓰라 하는 대로 억지로 끌려가서 쓰여진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래야 될 터인데 지혜와 총명 받아 가지고는 ‘주십시요’ 하는데 속에는 보니 새까맣게, 지혜 총명 주면은 한 사람 해하던 것이 열 사람 해하고 또 열 사람 해하던 것이 백 사람 해하고 그 조그마한 죄짓던 것이 큰 죄짓고 하니까 못 주겠다 말이오. 그래 못 받는 것, 미래에 좋은 약속을 하지 안해서 못 받는 것, 좋은 계획을 하지 안해서 못 받는 것, 이제 건강도, 건강 주면 이 건강 가지고 이제는 새벽 기도 내가 꼭 나오겠습니다, 이 건강 가지고서 내가 내 직장에서 충성해서 모든 사람에게 빛과 덕을 끼쳐서 주님의 복음을 영광스럽게 하겠습니다, 이 건강 주면 내가 아침 새벽 기도 딱 마치고 난 다음에 뿌루루루루ㅡ저 수원지 여기 좋은 산이오. 얼마 안 된다 말이오. 뛰어가면 십 분이면 가요. 십 분 동안이면 가는 데 거게 가 가지고서 기도하고 와 가지고서 또 직장 가고, 또 산기도 갈 때는 산기도 가고, 철야할 때는 철야하고 이래 건강 가지고 어짜든지 잘 쓸 터이니까 건강을 주십시오 이렇게 미래적으로 약속을 잘 해야 될 터인데 약속 안 해 가지고서 안 되는 것.

그러면, 미래적으로 몸이나 마음이나 사업이나 물질이나 사건이나 이런 것 전부 미래적으로 약속을 바로 하지 안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지 않는 것, 악하게 쓸라고.

그러니까 ‘너희들이 시기하고 다투고 피를 흘리고 살인하는도다. 그래도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뭐라 했습니까? 정욕대로 쓸라고 잘못 구함이라.’ 이랬어, 야고보서 4장에 보면.

이러니까, 고장은 여게 붙었으니까 이거 공연히 전도지 박아 가지고서 전한다고 자꾸 이렇게 그 억설스러운 소리를 할 게 아니라 이 할 일은 여게 있다 하는 걸 그걸 내가 깨달아서 엊저녁에 그 설교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아무래도 첫째로 우리 영, 우리 마음, 우리 몸, 우리의 모든 사물, 우리 소유 말이오. 우리 소유. 이 네 가지 병을 고쳐서 이 네 가지 축복을 받아야 내 구원도 바로 이루겠고 다른 사람에게 이 구원을 전해 주기도 하고 하늘나라의 그 영광스러운 구원도 이 넷을 받아야 이제 구원을 잘 이룰 수가 있다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분교도 돈이 있어야 분교를 이걸 지교회를 만들어 가지고서, 지금 일군들은 있다 그거야. 일군들은 있는데 그 남의 전세집에 있으니까 언제 어찌 될지 모르니 그거 집만 돼서 자꾸 이래 지으면 하나씩 자꾸 내보내 가지고서 지금 지교회를 세울 거라 말이오. 이런데 이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이러니까, 이런 것도 저런 것도 모두 다 이 넷의 병을 고쳐야 되겠고 축복을 받아야 되겠는데 이 병 고치고 축복 받는 것은 주님이 고쳐 주시겠다고 축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분의 약속이 신실하니까 문제가 없는 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 받을 수 있는 구하는 모든 구함이 부족하다 말이오.

구함이 부족한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두고 구하니까 헛일, 또 잘못 쓸라고 구하니까 또 헛일, 또 잘못돼 놓은 것을 고치지 안하고 구하니까 헛일, 현재 잘못하며,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이 제가 죽였는데 주님을 현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주님이 하지 말라는 걸 하고 하라는 걸 현재 안 하면서 자꾸 뭘 달라 하니까 줄 수가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공장은 여게 있다.

이러니까, 하지 말라는 것 대해서, 하라는 것 대해서 요 간단하게 두 가지, 고거는 그만 알기 쉬워요.

그러니까, 성경을 아는 사람은 성경을 아는 대로 그래 하고 또 모르는 사람은 십계명만 가지고 해도 돼요. 이러니까 성경을 알아서 다 이렇게 열 가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성경 보고 알라고는 하지 안 하고, 성경 보고 알라고는 하지를 아니하고 이 십계명만 들고 하면은 하나님이 또 기뻐하지 안해요. 자기에게 있는 것 다 해야 되요. 지식도 다 해야 되기 때문에 성경을 알아서 나벼보는 사람은 나벼 가지고서 성경 아는 대로 해야 된다 그거야.

이래 가지고 이 두 가지, 하라는 거와 하지 말라는 것, 이러면 과거에 하라는 것을 안 한 게 뭐냐? 과거에 하지 말라는 것을 한 것이 뭐이냐? 이것을 조사해 가지고서 정리할 것, 그러면 현재에 대해서 내가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게 있나, 현재에 하라는 걸 안 하고 있는 게 있는가 이거 현재에 해결을 지우고, 또 ‘미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은 앞으로 내가 안 하겠습니다’ 계약의 약속을 하고 있나?, 약속 기도가 힘있어. 약속을 하고 있나? 야곱도 약속 기도 안 했소? 밧단 아람으로 갈 때 ‘이제 주님이 나에게 가서 축복해 주시면 내가 여기 와서 성전을 짓고 이리이리 하겠습니다’ 이라니까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히 지켰다 말이오. 지켰는데 야곱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안하고 잊어 버렸거든.

잊어 버리니까 하나님께서 몽둥이로 때려 가지고 기어코 나중에 와 가지고 그 자리에 성전을 지었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래서 미래에 모든 약속을, 약속을 해서 ‘하지 말라는 거는 안 하겠습니다.’ 미래에 약속을 하고, ‘하라는 건 하겠습니다’ 약속을 하고 요래 약속을 해야 되는데, 여러분들, 물질도 말이요, 물질을 받아 가지고 일곱 가지 도적질하면 헛일이라.

일곱 가지 도적질을 고치지 안하고 자꾸 물질 달라 해서는 안 줘요. 일곱 가지 도적질을, 과거에 일곱 가지 도적질 한 것을 그거는 뭐 어짤 수 없으니까 하나님 앞에 고해서 회개를 하고, 잘못했습니다 자복을 해서 용서를 구하고, 또 현재는 일곱 가지 도적질을 하는 일을 안 하고, 또, 그것만 하면 되냐 하면 또 ‘앞으로 내가 물질 주면 일곱 가지 도적질을 안 하겠습니다’ 또 약속하고, 또 현재로서는 일곱 가지 도적질을 하지 안하는 것,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온전한 십일조, 헌물, 또 양식은 먹고 또 씨는 심으는 거 요대로 현재 하고, 또 ‘앞으로 요래 하겠습니다’ 또 요렇게 하고, 이라면 뭐 이거는 틀림없이 요렇게 하면 다 되는데 요렇게 하는데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하나님이 위약하는 것 아니요? 하나님은 위약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애가 터져서 지금 이렇게 해 주시기를 원하고 있는데 안 해 탈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인정이 없고 이 잔인하고 무도하고 거짓된 이 세상에서 뭐 악인을 가지고 내가 악 가지고 대항해서 내 호신을 할라 해 가지고 안 되겠고, 하나님이 나를 호신해 줘야 되겠고, 또 이거 마구 잔인하고 악독한 세상에서 멍군장군 하면서 싸워 가지고서 ‘네가 말 거짓말 하니까 너 거짓말 한 마디 하면 나는 거짓말 두 마디 할란다. 너 이제 조그마한 저급의 속이는 일 하면 나는 고급으로 속이는 일 하겠다.’ 이래 가지고 우리가 암만 해 봤자 일을 못 출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는 그런 거 다 냅두고 세상 그런 걸, 그 세상 것 내가 뺏들라고 할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새로 위에서 창조해 주시는 걸 자꾸 받아야 되겠어.

이러니까, 오늘날 네게 명하는 요 명령만 지켜 행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는 이 전능 전지자 사랑의 주님이 우리에게 계약해 놨는데 요 계약 지켜 가지고서 뭐 해결해야 될 터인데 이거 안 하고 달리 한다 말이오. 요것 회개합시다.

회개해 가지고서 오늘부터 이제는 주님의 이 네 가지 축복 받기를 위해서 노력할 사람 속 한번 들어 봅시다. 이 네 가지 축복을 받기 위해서 노력할 사람? 녜, 노력을 하는 데는 이 법대로 해야 되지 법대로 안 하면 안 돼. 법대로 하는 거는 뭐냐 하면은 과거적으로 두 가지, 현재적으로 두 가지, 미래적으로 두 가지 요것만 정리만 돼 버리면 대번 돼 버리요.

이제 알았습니까? 이제 오늘부터 또 힘을 써서 계속해서, 그래 가지고, 그러면 예배당 와서도 자꾸 부르짖어요, 하나님에게 말이오. 이제 요걸 고치면서 하면은 하나님은 책임 있거든. 그렇지 안해요? 우리가 요거 고치지 안하고 하면은 소용이 없어요.

요걸 고치며 ‘하나님이여 주시옵소서. 나에게 이 병이 지금 쩔름쩔름 하고 있는데 이거 쩔름거리며 자꾸 예배당에 돌아다니니까 다른 사람이 보는 데도 아무 그 복음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 절름발이 고쳐 주시옵소서. 당신이 계약하지 안했습니까? 약속하지 안했습니까? 안 고쳐 줄라면 그라면 이제 내게 돈을 줘 가지고서 의학적으로 자연으로 고칠라면 그래 고쳐 주시든지 그리 안 하면 다른 사람에게 돈 줘 다른 사람이 나를 고쳐 주시든지 뭐 어짜든지 당신이 고쳐 주기는 고쳐 주기로 약속하지 안했습니까? 약속 이행 하십시요, 하십시요.’ 막 독촉을 해 재끼요, 그만.

‘주십시오. 이거 안 주면 안 되지 않습니까?’ 막 이래 가지고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하고 시비적인 말이요, 시비적인 기도를 해야 되겠어.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그 씨름 한다는 것은 서로 투쟁적인 그 기도를 했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과부가 원한적인 기도를 한 것처럼 이렇게 해서 하나님 앞에 뭐이든지 이 네 가지를 우리가 구합시다.

이 네 가지를 구하는 데에 그냥 뭐 살망살망 그럴 게 아니라, 그 옆에서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똑똑히 말하면 옆에 사람이 그만 그리 가 버려 옆의 사람 기도를 방해해요. 옆의 사람 기도 방해하면 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해. ‘임마 너 옆에 사람 기도도 못 하고 그라면’ 하나님이 그 사람도 사랑하시거든. 이러니까 고함을 지르되 그 옆에 사람에 방해되지 안하도록 응응응 이래, ‘주여 주시옵소서, 주여! 주여 주시옵소서! 이거 안 주면 안 됩니다.’ 막 고함을 지르고 이래 가지고서 그래야 돼요.

그래 저도 거창에 있을 때에는 어데 산에 가 기도하면 뭐 산골짝이 떠나게 기도했고, 여기 부산에 와서도 처음에 좀 젊을 때에는 저게 저 수원지 만당에 가서 기도하면 밤새껏, 뭐 있는 사람들이 뭐 하는지 모르는지 밤새껏 고함을 지르고 기도한 것이 여기 같이 간 사람들이 모두 안 죽고 다 살아 있어요. 막 밤새도록 고함을 지르면서 거기서 기도했었어. 저 또 여기 금정산에 가 있을 때에도 막 밤새도록 고함 지르며 기도해. 밤새도록 고함 지르며 기도한 것 중에 ○○○ 권사님 기억해요? 내가 밤새도록 고함 지르며 기도했어요? 밤새껏 기도했소.

이랬는데, 지금 여기 처음에 교회가 부흥될 때도 제가 여기서 고함을 지르면서 좀 기도를 했는데 옆의 사람 방해되지 안하도록 응얼응얼 고함을 질러 또 응얼응얼하고 이래 또 이래 했는데 지금은 그만 힘이 없어서 그래 못 해요 좀 고함을 지르면 앞뒤 가슴이 마쳐 그래 어제 권찰회 때 그래 가지고 고함 질렀다고서 우리 ○ 선생님이 있다가서 목사님 고함을 너무 고함을 질러서 지금 또 그렇지요? 등이 마치고 이래서 또 그래서, 이래도 말이지, 마음에는 이 고함 지르는 이것도 암만 질러도 괜찮도록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겠는데 이것도 내가 기도가 모자라는 거라.

이래서, 나도 여러분도 힘써 가지고, 우리가 몇 가지 축복 받아야 돼요? 네 가지 축복 받아야 돼요. 이 축복은 병도 고쳐야 되고 모든 게 풍부해서 다른 사람들이 와 보면 뭐 전도할 게 아니라 ‘뭐 예수 믿기 싫으면 말아라.’ `아이구 나도 여기 가입합시다. 좀 가입 좀 합시다.’ ‘가입할라면 돈 만원 내라.’ 아마 가입하러 돈 만원 내라 해도 막 돈 만원 내 가입 할라 할 거라. 이래 가지고 이거 좀 고급 전도로 권위 있는 전도로 참 예수님의 증인 전도를 해야 될 터인데 예수님은 그렇게 했는데 우리는 말뿐이지 하나도 되지 않는다 그거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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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51013주새 선지자 2015.10.27
61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51013주새 선지자 2015.10.27
60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851011금야 선지자 2015.10.27
59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880905월새 선지자 2015.10.27
58 넓은 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61015수새 선지자 2015.10.27
57 넓은 문 좁은 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30528토새 선지자 2015.10.27
56 넓은 문, 좁은 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30529주전 선지자 2015.10.27
55 네 가지 교훈/ 누가복음 9장 22절-26절/ 851221토새 선지자 2015.10.27
54 네 가지 생활/ 요한계시록 3장 14절-16절/ 810830주후 선지자 2015.10.27
53 네 가지 생활/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810830주전 선지자 2015.10.27
52 네 가지 생활/ 요한계시록 3장 14절-16절/ 810831월새 선지자 2015.10.27
51 네 가지 순서 연습/ 신명기 28장 47절-48절/ 850124목새 선지자 2015.10.27
50 네 가지 싸움/ 야고보서 4장 1절-10절/ 810713월새 선지자 2015.10.27
49 네 가지 지식/ 누가복음 18장 9절-14절/ 801029수야 선지자 2015.10.27
» 네 가지 축복/ 요한1서 2장 25절-29절/ 860621토새 선지자 2015.10.27
47 네 가지 큰 구원/ 히브리서 2장 1절-4절/ 880925주전 선지자 2015.10.27
46 네 가지 큰 구원의 가치를 평가/ 히브리서 2장 3절-4절/ 880925주후 선지자 2015.10.27
45 네 가지를 구하라/ 신명기 28장 1절-6절/ 860620금야 선지자 201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