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신앙

 

1980. 6. 5. 목새

 

본문 : 다니엘 6장 10절, 21절 - 22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셨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믿음의 사람 다니엘도 벌써 자기를 시기해 가지고 자기를 애매히 정죄해서 죽일  그런 꾀를 내 가지고 다니엘은 기도 않고는 안되는 그런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인데 기도 하는 자는 사자 구덩이 잡아 넣는다 하는 이런 왕의 조서가  내렸으니까 막바로 자기에게 사형이 내린 것입니다. 막바로 그 자기에게 대한  사형이요. 이래도 온 그것은 전국이 달라 들어 가지고 (그 앞으로 와요 저 뒤엣 분들 이제 오는 분들 일어서 이리 와요. 뒤에 오는  분들 안내원이 말해도 자꾸 그리로 가네. 이리 와 앉아 이리 일어서서. 그 버릇  고쳐야 돼. 그 일어서요. 와 저 누구 한 분은 꼭 고집 피우고 있네. 그  자기네들은 위해서 그러는 거라. 뒤에 오는 분들 벌써 보십시오. 이대로 있으면  저 뒤에 꽉 앉으면 자기네들이 그 못 앉고 도로 돌아가야 돼. 뒤에 오는 사람들  위해서 뒤에 오면 낮 부끄러울까 싶어서 이 앞에 부터 앉히고 뒤에 와서 앉도록  그래 하는 것인데 꼭 그래 그래 앉고 있어.)

온 전국이 왕으로부터 백성까지 전부가 다 합해 가지고 다니엘을 두렵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만든 일입니다. 전체가 다 한테 합해서 결의해 가지고 왕의 허락받아  가지고 다리오 왕 외에 다른 것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 구덩이에 넣어서  죽이기로 그랬으니까 이는 자기를 고통케 하는 자가 전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요 모든 권세들이요 또 다른 이에게만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  기도를 꿇지 않고 계속 기도할 사람에게 가는 거라.

그러니까 바로 자기에게 온 전국이 들어서 자기를 죽이려고 지금 사자 구덩이에  넣어서 죽이려고 딱 단합해 가지고 지금 사자 구덩이에 들어서 넣는 판입니다.

이래도 다니엘의 마음에 그 기쁨과 감사를 조금도 침노 못했습니다. 이래도  다니엘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그 마음이 기뻐서 하나님에게  감사했습니다.

억지가 아니고, 그 뒤에 이튿날 그 왕이 사자 굴에 가 가지고 하도 원통해서  그렇츰 참 사람이 없었는데 자기 밑에 쓰는 사람 중에 그렇게 참 사람이  없었는데 이 사람을 사자 구덩이에 넣어서 죽였으니까 부득이 나라에 그 국령을  권위 세우기 우해서 그리 했지마는 기가 막히니까 밤새도록 잠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이튿날 아침에 가 가지고 허퍼서 너무 원통해서 '다니엘아 네가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능히 사자 입에서 구하시드냐?' 그거는 구할까 싶어하는 게  아니라 너무 원통하다 그말이오.

'너 공연히 하나님을 그렇게 고집스레 그랬지마는 그 하나님이 이런 경우에서는  구출 할 수가 있는 줄 아느냐?' 너무 원통해서 그 너무 참 자기네들 보기에  지나친 그 광신적인 그 신앙을 가지고 나가서 그렇게 아까운 인물이 사자 밥이  된 걸 생각하니까 원통해서 그 하나님에게 그가 서기는 하나님에게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다니엘이 살아 가지고 대답하기를 '왕이여 하나님께서 임에 천사를  보내 가지고 사자의 입을 봉해서 나를 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도 해를 받지  않고 지금 있습니다.' 이유는 내가 하나님 앞에 죄가 없는 연고인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을 거슬린 일이 없다. 죄라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거슬린 것이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계약 문서 계약, 영감 계약 두 계약  우리에게 대한 그 계약이 이렇게 해라 하는 그것인데 그거 어긴 것이 죄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어겨서 하나님과 대립 된 게 없었고, 또 왕에게도 해를 끼친  일이 없었나이다.' 그말이 무슨 말이냐? 뜯어보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이렇게  해라 하는 그것은 그 행위는 자기 상관에게도 다 유익만 되지 해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부하에게도 유익만 주지 해되는 게 아니고, 자기의 사랑하는  자에게도 유익만 주지 해주는 게 아니고, 심지어 자기의 원수에게도 유익만 주지  해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하는 고것은 모든 피조물이 언젠가 알  때는 무릎을 꿇고 감사하고 존경하고 주라 시인할 수 있는 그런 요 하나만 되는  생명의 참된 길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소에 자기가 어떤 때 이르러도 아무것에게도 해를 받지 않는 고  방편은 주님이 인도하신 고대로 하는 고 외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그는 이를 어김으로 어떤 평강이나 생명이나 유익이와도 그것을 자기가  유익으로 보지 안했습니다. 주의 뜻대로 삶으로 인하여서 자기에게 어떤 무엇이  와도 그것이 자기에게 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다니엘은 이런 그 참 어려움을 당했는데 벌써 오기도 전에 공산주의 올까 싶어서  다 피해서 미국으로 도망을 치고, 어떤 사람 미국가 가지고 거기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딱 일어서 그 꽝 걸면 그 시민권 영주권 가지고 미국 사람 그 자기  본국으로 돌아갈 때 자기도 돌아가면 아무래도 미국 사람이 미국 사람만은 그  사람들은 다 구출할 것이고, 또 공산주의가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미국 사람만  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는 것이니까.

그 사람이 벌써 하나님보다 미국 사람을 크게 여겼으니까 하나님이 지금 좋아할  것인가, 복수를 할긴가? 그것은 어리석어도 좀 생각해 보면 압니다. 또 미국  사람이 피난시키는 데는 아무도 해하지 못한다고 했으니까 공산주의를 보지마는  하나님께서 미국 사람이 날랜가 내가 날랜가 보자 하는 그 경쟁이 붙는 거는  필연한 일이라 말이오. 우리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이  형상대로 지은 것이기 때문에 삐뚤어진 것이 있지 대략은 하나님의 뜻과  같습니다. 이러기에 "너희들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져 하는 대로 네가 먼저  남에게 대접을 해라 이것이 곧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법칙이라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멀리 있지마는 그런 형편만 보고도 떨어져 못 견뎌서 지금 떠는데 죽음이  바로 자기 문 앞에 딱 이르렀는데 사사 구덩이에 집어 넣는 이 사형이 자기 앞에  이르렀는데 다니엘의 마음에 기쁨과 감사를 도무지 침노 못했습니다.

그거 뿐이겠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 사람들은 벌거이 불을 피워다 놓고  불가운데 집어 넣는다고 지금 했지마는 그 불에 고통이라는 그 위협이 그 세력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 그 사람들의 마음에 평강을 침노를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고통을 주지를 못했소. 해하지를 못했어.

우리가 마음에 행복 어떤 것이 와도 그 마음에 행복을 해할 수 없는, 마음의  행복 어떤 것이 와도 그 몸에 행복을 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그 마음과 몸은  아무도 해를 주지 못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기까지 고민한 그 고민은, 그 고민은 어떤 고민이냐?  자기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의 그 일을 만족히 이루어 드리지 못할까, 당신이  하는 이 모든 원수되어 있는 죄인들을 구출 하는 데에 만족되지 못할까 하는 그  면에 근심이지 당신이 어떻게 해를 당할까 하는 그런 근심 아닙니다. 그것은  사망에 속한 근심이 아니요 생명에 속한 근심이라.

그 죽는 자를 살리려는 완전을 그것을 상해하지 않고 완전을 보존하려는 그  마음이니까 그때 고민한 그 마음이 그 행복된 마음입니까, 고통된 마음입니까?  그 저주스런 마음이요, 행복스런 마음이요? 영원무궁토록 그 마음이 하나님을  만족케 원수인 이 죄인들을 죄인들 구원에 만점을 이루지 못할까 하는 그런 그  근심이 앞으로 영원무궁토록 조롱받을 근심입니까,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받을  그 근심입니까? 그 행복된 근심 아니요. 고통이라도 행복된 고통, 또 근심이라도  행복된 근심이지 불행이라는 것이 오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자기 마음이 어떤 불행이 몰려와도 그 불행에 충격을 받아서  불행스러운 그 마음이 되지 않고 행복스러운 마음으로만 가질 수 있는 그 길이  어떤 것이냐? 자기 몸이 모든 불행케 하기 위해서 그 몸을 사형을 시켜도  예수님의 몸에 세포 하나도 그 불행케 하기 위한 그 사망의 해에 해를 받지  안했습니다. 그 세포 하나도 그 죽음에 고통이나 억지로 당하는 그게 없었고, 그  세포 하나도 그런 것 어려운 고통을 줘도 그 몸은 어떻게 하면 위로 하나님을  만족케 어떻게 하면 이 죄인들의 구원을 완성할까 하는 그 세포로 끝이  났습니다.

이러니까 자기의 마음이 행복스러운 마음으로, 어떤 불행이 와도 그 불행이 자기  마음을 불행케 하지 못할 그 행복스러운 마음으로, 행복스러운 몸으로,  행복스러운 행위로, 그 행위를 온 천하가 정죄를 해도 그 행위가 불행스러워지지  않고 그럴수록 행복스러워지고, 또 그 행위를 한다고 사형을 시켜도 그 행위가  해되지 않고 그 행위가 행복스러워 지는 거, 이 행위를 마련을 무엇으로 할껀가?

예수님을 이렇게 옳은 길 간다고, 손양원 목사님을 옳은 행위한다고 총살해  죽였습니다. 죽였으니까 손양원 목사님의 옳은 행위를 총살해 죽였으니까 그  손양원 목사님의 옳은 행위를 행복스럽게 했습니까, 불행스럽게 했습니까? 어찌  됐습니까? 불행스럽게 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행복스럽게 했으면 얼마나 행복스럽게 했습니까? 세상에서는 행복스럽게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세상에서도 그 행위는 행복스럽게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행위를 모든 사람이 다 존대합니다. 세계에 그 행위를 이렇게  반포했을 때에 세계에서 그 행위, 행위를 책에서 보고서 그 행위를 다 존대하고  이렇게 존귀히 여겼고 그 행위가 죽었습니까? 그 행위는 영원히 빛납니다.

그러기에 마음에 행복을 어떤 게 와도 행복스러운 자기 마음을 행복스럽게만  해줬고 더 행복스럽게 해줬지 자기 행복스런 마음을 불행케 하지를 못하게 하는,  행복스럽게만 아무도 해할 수 없는 행복스러운 마음을 아무것도 해할 수 없는,  행복스러운 자기 몸을 아무것도 해할 수 없는, 행복스런 자기 행위를 아무것도  해할 수 없는, 행복스러운 자기 일을 예수님이 해 놓은 일을 다른 것들이  정죄한다고 그것이 그 일이 저주받습니까? 그랬으니까? 영원해 해와 같이  빛나지.

자기에게 있는 모든 소유 자기에게 관련돼 있는 모든 관련, 천인 만인의 온  민족이 다 불행스러워도 자기는 그 민족을 불행스럽게 하는 그 불행이 자기에게  오지 안해서 그 민족에 대한 행복을 자기는 가지는 것, 그 자기는 민족에 대해서  하나도 잘못한 것 없고 바로 했는데 그 민족에 대한 멸망을 받는다 할지라도  자기에게는 그 민족적 해가 오지 안했습니다.

이래서 모든 면으로 악령과 사망과 하나님의 저주와 죄악이 모든 피조물들이  아무리 해하려고 해도 해할 수 없는 이런 행복을 마련하는 것이 뭐이냐?  마련하는 그것이 그저 현실 현실에서 주님이 시키시는 고대로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실패가 없는 것입니다. 요거 외에는 딴 것이 없어.

자기가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담대를 가져야지.' 성경에 두려워 한 자는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으니까 내가 두려워하지 안해야지. 두려워하지  안한다고 해서 두려움이 안 들어옵니까? '이럴 때도 담대해야지.' 담대하고  싶다고 결심한다고 담대가 됩니까?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믿음  지키는 나에게는 삐뚤어진 것이 없는 연고이나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는 연고이니이다." 그 때문이지 딴 거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한 거와 같이 우리가 참 이 세상에서 사는 이 한 토막 한 토막에 이  생애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피조물도, 창조주도, 어떤 그 운동도, 역사도,  능력도, 궤휼도, 마귀도 어떤 것이 와도 해할 수 없는 이 생명과 평강을  마련하는 요 현실입니다. 요것을 마련하는 현실이요. 요 현실이 우주하고  바꾸겠습니까? 천하하고도 바꿀 수 없는 요 현실이요, 요 보배로운 믿음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이 행복은 요 믿음으로만 마련할 수  있는 것인데, 요 믿음은 다른 데서 마련하지를 못합니다. 꼭 현실에서만  마련합니다. 고 현실이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와 마음이나 몸이나 고 움직임,  움직임이 요것이 하나되는 요것이 믿음입니다.

이러니까 현실을 닥치지 안했는데 무슨 행동을 할 수가 있겠소. 현실을 닥치지  안했는데 그 진리가 어떻게 동행하겠소. 현실을 닥쳐야 진리와 자기와 동행할 수  있지요.

그런고로 우리는 이 방편을 주셨는데 이 방편 외에 꾀를 써 가지고 무엇을  얻으려고 죄를 지어 가지고 뭐를 얻으려고 급하게 날뛰어 가지고 뭘 얻으려고  하는 그런 멸망받는 어리석음의 방편을 취하지 말고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요 행복, 아무것도 해할 수 없는 요 행복, 마음에 행복이나, 몸에 행복이나,  행위의 행복이나, 자기 해 놓은 일에 행복이나, 자기의 소유의 행복이나 모든  것에 요 행복 요것은 믿음 외에 딴 걸로서는 안 됩니다.

왜? 믿음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데 고기 옳고 바르고 참되기 때문에 그것을  틀렸다 하는 그게 다 망하지 이것이 망치지를 안합니다. 상해를 받지 않는  것이라 말이오.

그런고로 요것을 굳게 잡고 이 방편 외에는 다 살아 봤자 참 심판으로서  원통하고 뒤에 가서 고통스러울 것만 마련하고 있는 것이지 살지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택자들이 그런 가운데서 사는 것은 그래 살다가 이것을 마련할 수 있는  그런 미래가 있을까 해서 그런 것이지 하나님을 어기고, 이 방편 쓰지 못하고  어기고 그 일로만 인간 주장으로만 사는 이것이 계속된다면 나지 안한 것이  좋고, 또 죽는 것이 좋고, 살지 안한 것이 좋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한 십 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이겠습니다. 이것을 이 시간에 여러분들이 새김질  하면서 믿을 것인가 안 믿을 것인가, 과연 그런가 안 그런가 이것을 판단하고 그  다음에 그러면 자기가 단점을 할건가 안 할건가, 그 다음에 단정한 이것이 이  현실을 닥쳤을 때에 내가 실천이 되겠는가 안 되겠는가, 요 세 가지를 이 시간에  가지야 될 것입니다. 확신 확정 단행.

(기도) 전지전능의 의 본성을 가지신 완전자이신 주께서 정하신 구원이요 계획하신  구원이며 섭리하시는 구원이오니 주님 외에 어떤 피조물로서도 이 구원은 이룰  수가 없고 다만 시작하신 주의 성령으로만 일이 이루어 지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도 지극히 큰 이 성령의 역사로만 십자가의 대속이  완성되었고 또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게 되심을 아옵나이다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산 소망도, 산 존재도, 산 움직임도, 산 결과도 절대 이룰 수 없음을  확신합니다. 성령님이 감화가 올 때에 어떻게 죽은 것도 다 사랑하고 어떻게  무지한 것도 전지자의 지혜로 받아 가지게 되고 성령님이 떠나실 때에는  어데까지 구원을 이룬 자도 즉시 다 사망의 것으로 어두워지고 생명에게  끊어짐을 아옵나이다.

이는 주께서 어떤 피조물도 주 앞에 교만치 못하게 하시고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주로만 살게 하사 사망의 어두움이 추호도 가까이 올 수 없는 자로 생애로  복되게 하사 영원히 영광을 받으시려 하심인 줄 아옵나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임에 주신 구원도 이로 인했고 앞으로 이루게 하시는 구원도 순전히 지극히 큰  능력에 복종하는 믿음으로만 이르게 하시는 것을 아옵나이다.

이 시간도 이 능력을 거스리는 사망의 요소의 이 옛사람 자유의 모든 것을 꺽어  치료 받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그런 것을 바래거나 쓰거나 가지거나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이런 일들이 없도록 성령님이 주관하여 주시고 이런  모든 어두운 그 악령의 역사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우리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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