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지도

 

1984. 12. 18. 화새벽

 

본문 : 마태복음 6장 21절∼23절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어제 아침에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그리하면 거게는 좀도 동록도 도적도  도적질하지 못한다 만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지 안하고 땅에다가 쌓아 두면  그것은 세월이 지나가면 모든 것이 좀먹는 것처럼 그것들이 다 상하여 없어진다  또 환경이 더러우면 그 물건도 차차 오염돼서 동록 슬고 곰팡이 피고 이래  가지고서 다 썩는다 그뿐 아니라 땅에다 두면 마지막에는 솔빡 다 도적맞고 만다  다 네가 잊어버리고 만다 그런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 어떤 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인가? 보물이라 하는 것은 보배로운 물질이라 말인데 보물이라 하는 건 보배  보(寶)자, 물질 물(物)자입니다. 만물 물(物)자 물질 물자, 만물 물. 보배로운  물질을 하늘에 쌓아 둬라.

 그러면, 물질은 어떤 것을 가르침인가? 혹 사람들은 돈이나 물건이나 이런  것만을 물질로 이렇게 보기 쉬운데. 우리가 가진 우리가 가진 물질은 돈도  물질이요 물건도 물질이지마는 우리 몸은 그것보다 더 중한 우리가 가진  물질이라. 또 마음은 몸보다도 더 우리가 가진 중한 물질이라 하는 것을 어제  아침에 공부했습니다. 물질이 마음과 몸과 돈과 모든 물건 이런 것들이 다  물질이라 그렇게 어제 배웠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보물이라 하는 그 물질에 대해서 네 가지를 말했는데 두  가지는 일반이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지마는 두 가지는 그렇게 생각지를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나 똑똑히 알고 구원을 잘 이루도록 그렇게  해야 되지 이것을 가지고 아직까지 그것은 들어서 고 지식을 가졌지마는 다른  면에서는 아직까지 지식이 구비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는 지식을  자기가 하나 깨달아 가지고 그것을 벌로 날뛰면 자기의 그 깨달은 그 지식이  틀렸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총 공격을 할 때에 그때에 자기도 그만 깨달은 것이  의심돼 버리고 실수하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일반 주석들에는 이 보물이라 하는 것을 뭐 돈이나 금이나  무슨 이런 걸로 이래 생각하지 자기가 하는 모든 그 하는 노력 일, 노력은  일입니다. 일까지 보물 속에 들어갔다 이렇게는 사람들이 잘 생각지를 아니하고,  그보다도 보물 속에는 우리의 몸도 들어가 있다 그거는 더군다나 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지를 아니합니다. 또 그보다도 마음도 그게 물질에 들어갔다  이거는 뭐 사람들은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런 것을 배우고 자기가 깊이 깨달아서 볼 때에 '아, 이게 옳다'해서  뒤에 천하 사람이 다 말한다 해도 이 보물이라고 하는 보물 속에는 이 네 가지가  다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자기가 확실히 거게 대한 광대한 지식, 넓은 지식  말이오. 거게 대해서 구비한 이 지식을 가졌으면 다른 사람에게 증거를 해서  그것을 차차 알려서 이렇게 전파해서 증거해 나가지마는 그것을 고 한 모때기만  안 일방적 지식 가지고서 가서 벌로 하면은 도리어 손해보기 쉽습니다.

 어제 전화가 어데서 왔는데, 우리 교회 다니는 어떤 청년인데 또 우리 진영에  있는 전도사로 더불어 변론이 났던 모양입니다. 그래. 그런 변론을 하지 말라고  지금 말합니다. 변론이 났었는데 무슨 변론이 났는고 하니 죄도 하나님께서 다  내셨다 이라다가, 그리 됐는지 안 됐는지 몰라도 죄도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이렇게 인제 말이 되고 또 저쪽에서는 하나님은 죄를 상관없다고, 죄가 없다고  이렇게 말씀하시고 죄에 대해서는 벌을 주시고 이랬는데 어떻게 그 죄를  하나님이 내셨겠느냐 이렇게 변론하다가 죄는 바로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이란다고서 이래 가지고 변론이 돼서 나한테 역부로 장거리 전화가 왔습니다.

장거리 전화가 와서, 다른 진영에 있는 사람 같으면 그 사람에게 대해서 뭐 그저  간단하게 가르치지마는 이 사람은 아직까지 전도사라도 거게 대해서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걸 할 수 없어서 말을 좀 많이 해서 알렸는데도 그 사람이 확고한  그런 지식을 가지지 못한 거 같아서 그래 나중에 다시 내가 전화를 걸어 가지고  그 사람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니까 그 질문하는 데에서 그 사람이 좀 더 확신을  얻어 가지고서 인식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와 같이 여러분들이 여기서 배우는 것을 그것을 '일반 교계에서 다 이와 같이  알고 있는 것이니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벌로이 말을 하면 나중에 도로 의문을  주게 되고 이단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저를 전국에서 이단이라고 자꾸 온 전국에서 욕을 하고 이거 이단이라고 자꾸  이렇게 해서, 인제 하다 안 되니까 말하기를, 나를 욕을 하기를 백파라 인제  하도 거석하니까 제일 주장해서 머리되는 인도를 하는 것을 백가라고 그래, 욕을  하다 못 하니까 백파라 이렇게 욕을 하고 있습니다.

 어데든지 거기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파에서도 ○○○ 목사님이  거기서 머리가 돼서 인도하는 데는 한파라 하고. 또 ○○○목사님이 인도하는  데는 송파라 이래 하고 이런데, 한파 송파 이래 부르는 사람도 있고, 또 고소파  반소파, 고소를 주장하는 고소파가 있고 고소를 반대하는 반소파가 있고 이래서,  인제 모두가 다 반소 하면. 반소파 하면 뭐이고 고소파는 뭐이고 이렇게 다 알고  있는데, 그 욕이, 그게 욕입니다. 욕인데. 그게 백파가 나오고 난 다음부터는  이제는 그 다음에는 그게 어디로 갔느냐 하면은 한파 송파 이렇게. 고소파.

고소한 파라 또 고소를 반대하는 반소파라 이렇게 그만 내나 인제 그 이름이  그만 자기네들에게도 다 가 가지고 이렇게 갔는데 그게 다 욕하는 소리라  그말이오.

 이래서, 한파니 송파니 하는 그것은 뭐 고소파니 반소파니 하는 그것은 수치로  여기지 안해도 이거 백파 하면은 지금 다 전부 이단이라는 말이 따라 붙어 있기  때문에 다 욕으로 이렇게 해서, 미우면 그랍니다. 그만 어데든지 가서 미우면  그러면서 말하기를 그 사람들이 '이 백파는 이거는 공산주의 한가지다. 공산주의  한가지이기 때문에 아예 거기서 배우기만 배우면 그만 그거는 빼내버리지를  못한다. 배우기만 배우면 빼 버리지를 못하고 거게 꼭 박히게 되어지니까,  박히게 되어지니 이는 아예 못 가게 하고 고만 거게는 침노하지를 못하도록  그렇게 해서, 아주 방어선을 해 가지고서 단단히 성을 쌓아서 거게 못 가구로  해야 되지, 가면 이는 듣기만 들으면 그만 그는 공산주의 한가지이기 때문에  듣기 만 들으면 빼 내버리지를 못한다' 그렇게들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마는서도.

 이래서, 여게 고려 진영에서 고려 성경 학교. 고려 고등 성경 학교라고 여게  있었고, 부민동에 있었고. 또 고려 신학교라고 있었는데, 고려 성경 학교  학생들이 그 성경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도 그만 공부 시간만 딱 지나면은 여기  새벽 예배 밤 예배에 전부 이 서부 교회로 다 왔습니다. 뭐 한 사람도 빠지지  안하게 왔는지는 모르지마는서도 좀 살아 볼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왔습니다. 또  신학교 학생들도 다 왔습니다. 이러니까 학교에서 어떤 일을 했는고 하니 서부  교회 가면은 처음에는 정학을 시킨다. 공부를 못 하도록 정학을 시킨다 이라다가  그래도 가니까 나중에는 이제 퇴학을 시킨다 이래 가지고 그때에 그 학생들을  믿는 데도 '뭐 당하면 당했지' 하고서 오는 사람들은 별로이 많지를 안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당하면 당했지' 하고도 온 그 사람들은 지금 거세 속해 가지고  있어도 이 진리를 좋아하고 또 존대하고 이라다가 마지막에 그때 고신하고 이  총신하고 합동할 때에 합동해 가지고 안 돌아오고, 고신으로 돌아오지 안하고  그곳에 그만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그때에 한 고신에서 아마 삼분지 일쯤은  거게 머물렀습니다. 안 돌아와 버렸습니다. 돌아온 사람들을 가리켜서 환원이라  이랬습니다. 고신이 합동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해 가지고 환원파가 생겼습니다.

환원파. 환원파가 생겨서 그 환원파가 이제 송파 한파 두 파로 이래 나눠져  가지고 이랬었는데 그때에 돌아오지 안하고 그만 합동에 그대로 속해 가지고  있는 교회들이 많았었습니다. '합동' 하는 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고신하고  총신하고 둘이 합했다고서 합동이라, 지금도 합동이라 이렇게들 모두 가리켜서  말을 합니다.

 그런 것이, 어짜든지 거게 교인을 못 가구로 하기 위해서 그런 말로 방어하는  일을 했었고, 또 거게는 그거는, 백파는 양도둑이라, 양도둑이라 이렇게 또  이름을 하나 붙였습니다. 그거는, 양도둑이라 말은 양을 뺏들어 간다는 말인데,  누가고 교회 가 가지고 양을 뺏들어 오지 안했지마는 와서 들어 보고는 그만 다  이리 오고 하니까, 그 양도둑이라 말은 누가 제일 먼저 냈는고 하니 ○교회  ○○○ 목사님이 제일 먼저 그 욕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욕을 만들어 내기는 왜  만들어 냈던고 하니 거게 있는 ○○○ 집사가 거게 아주 증요한 인물로 일하다가  이리 돌아 오고. O○O집사가 거게서 중요한 일을 하다가 여게 돌아오고 그 두  사람이 돌아올 때에 참 대단히 마음에 섭섭했던 모양인가 그만 그렇게 창단에서  그런 말을 몇 번 계속해 놓으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그러고 달리는 할 수  없으니까 이단이라는 말을 붙여야 못 가지 해서 무조건 이단이라고 그렇게  붙입니다.

 붙이는데, 대구, 대구 노회에서. 경북 노회. 대구 노회가 경북 노회인데 경북  노회에서 노회적으로 이단이라고 정죄된 것은 뭣 때문에 그리 됐더냐 하면은 그  ○○○목사가 들어서 그렇게 노회원들에게 가 가지고서 말하니까 그 노회원들이  고만 그 말을 듣고서 이단으로 결의를 해서 정죄를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거게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말하면 그리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확고한 지식을 가지지 안하고 넓은 지식을  가지지 안하면 사람들은 미혹 받습니다.

 그때는 무엇으로써 이단이라고 정죄를 했던고 하니 '중생된 영은 다시 범죄하저  않는다.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성령과 진리로 중생 됐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다시 범죄하지 않는다. 중생된 사람은 범죄할 수 있으나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아니하고, 중생된 사람의 마음도 범죄할  수 있고 중생된 사람의 몸도 범죄하지마는서도 중생된 사람의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이란다고서,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고 '이럴 수가 어디 있나  이거는 이단이다' 이래 가지고 정죄를 했습니다.

 왜 그 사람들은 그렇게 정죄했는고 하니, 영을 모릅니다. 영을 마음이 영인  줄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영이요 영이 마음이요 좀 또 더 날카롭게  말하는 사람들은 양심이 영이요, 이렇게, 양심이 영이라 마음이 영이라, 육이라  하는건 단지 이 고기덩어리를 육이라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하니까 다 중생한 줄을 자기네들은 알기는 아는데. 중생하기는  했는데 중생된 자기 마음을 자기가 살펴봐도 그 마음이 하루 열 번도 죄를 더  지으니까 이렇게 마음이 열 번도 더 죄를 짓는데 이렇게 중생된 영은 죄짓지  않는다는 이거는 아주 틀리지 안했느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서 그래  했다가 그 뒤에 그래 결의를 해서 노회 그 회록에, 회의 회록 순서에다가 기록을  해서 모두 모든 사람들이 가지도록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 노회원들에게는  그것이 여게 몇 장 날아왔습니다. 그걸 보고서 여게 목사님 몇 분이 경북  노회에 가서 '자, 그러면, 이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말이 이단이라  그러면, 중생된 영도 범죄한다 하는 것을. 자기네들은 중생된 영도 범죄한다고  그렇게 알고 범죄 아니 한다는 것이 이단으로 이래 알면 여게다가, 중생된 영을  범죄 안 한다 하는 것을 이단이라 하는 데다가 글을 써 가지고 여게 도장을  찍어라 여게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단이라 중생된 영은  범죄한다 하는 그 주장으로 여게 서문을 우리가 써 가지고 가서 '자기 이름 여게  쓰고 도장을 찍어라' 그래 전부 찾아 다녔습니다. 찾아다니니까 한 사람도  도장을 찍지 않을라 합니다. '나는 그때 그래서 따라갔지 나는 거게 대해서 내가  모른다' 이렇게 말을 하고서 한 사람도 도장을 찍지 안하고, '그러면 지금도  그래 생각하느냐?' 나는 거게 대해서 그거 모르는데 그때 그만 그래서 그래  결의에, 그 결의에 따라갔지 내가 주장한 거 아니라고서 이렇게 회피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노회장 부회장 서기 총무 뭐 뭣한 사람에게다 가서  그래도 그것을 회피하고. 자기네들이 그래 했으면은, '아, 그래. 중생된 영이  범죄 안 한다 하는 거 이단이다 하는데 나는 그렇다' 하며 도장을 꼭 찍고  증거를 해야 될 터인데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모르고  하는 것이라.

 이라다가 ○○○목사님도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 자기가 처음에는 주석에다가  '범죄 안 한다' 이렇게 주석을 요한 1서에다가 내놓고 그 뒤에 이거 유혹받아  가지고 난 다음에는 '중생된 영도 범죄한다' 이렇게 또 주석을 내놨습니다.

내놓고. 그것 때문에 동성로 교회가 O○O목사님이 거게 계시다가 그쪽으로  가지 안하고 이쪽으로 속해 가지고서. 동성로 교회가 그리 속하지 안하고 여게  우리 총공회에 소속돼 있는 것이 그 문제 때문에 시비가 나서 그 문제를  교인들에게 인식을 시킬라고 ○○○목사님을 청해서 거게서 두 달인가 한 달인가  그저 반박론을 증거를 했습니다. 한 달이던가 두 달이던가 거기서 시무를  했습니다. 또 그라고 또 누가 가서 시무를 했던고 이래 해도 나중에는 자꾸 가서  증거를 하다 보니까 그거는 안 하고 엉뚱하게 오히려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그 말만 자꾸 이래, 그 말 비슷하게 나오게 되기 때문에 나중에 자기가  그만 거게서. 아, 내가 여기 안 된다고서 그만, 암만, 두 달 기한 해 놓고 한 달  있고 난 다음에는 거게서 사표를 냈습니다. 동성로 교회에 일시 목회자로 부임을  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분들이 중생된 영도 범죄한다는 그 논문을 내겠다고서 큰 소리를  했지마는서도 한 번도 글을 써 가지고 내지는 안했습니다. 지금은 이제 중생된  영이 범죄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그 문제는 그라고 난 뒤에 그것을 자꾸 반박을  내가 하지 안했습니다. 논문을 써서 내라 이라는데 그걸 내가 써서 내지 안하고  말하기를 '그 논문을 써 내면, 안 그렇다 그렇다 하면은 그것이 점점 시비가 더  강하게 붙어지기 때문에 강하게 반대한 사람들은 뒤에 그만큼 돌아오기가  힘든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다 바로 깨달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만 그만치 둬  두고, 옳은 거는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만 해 놓으면 차차 성령이 가르쳐서 다  옳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지금 자꾸 주장을 하면은 도로 그 사람들이  아니라고 반대하다가는 돌아오기 어렵다' 그래 그런 말을 하고서 제가 논문을  쓰지 안했었습니다.

 안 하고 '뉘든지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단이다 범죄한다는  말이 그것이 옳다 이렇게 논문이 나오면, 그, 논문이, 논문이 나와도 일반 그런  사람들 말하는 거야 그리 신임하지 안하지마는 어떤 대신학자가 그런 논문을  내면 그때 가서는 내가 논문을 쓰지마는서도 그 전에는 논문 쓰는 것이 도리어  진리 운동에 이거 방해가 된다' 이렇게 말을 하고 논문을 안 썼습니다. 안  했는데, 그분들이, 그분들은 논문을 쓴다고 했지마는서도 지금까지 논문을 안  내고 있습니다. 이제 논문 낼 용기가 없었을 겁니다.

 그것은, 벌써 아무라도 예수 믿는 사람이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것은 혼도  아니요 몸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요 영이라. 영인데 영만 중생 됐는데 영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됐다. 다 영생을 가졌다. 그러면 영생을 가진 것이  범죄하면 다시 죽으니까 영생 가졌다 죽었다 영생 가졌다 죽었다 살아났다  이라면은 영생한다는 말도 성경에 거짓말이오. 그러면, 범죄 안 한다는 말이  그것이 거짓말이 안 될라면 영생이 돼야 되고 영생한다는 말이 참말이 될라면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안한다는 말이 그게 참말이 돼야 된다. 이렇게 자꾸  모순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이렇게 자꾸 예수 믿는 일을 겉으머리로 이 세상에  돈벌이 하는 것만치도 마음을 기울여서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말해도  깊은 것을 모른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설교해도 껍데기만 듣지 몰라.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자꾸 이거 힘이 나지는 안하지 용기는 나지 안하지, 생명을 내  대서 그렇게 싸울 만한 그만한 담력도 생겨지지 안하지, 그렇다 그거요. 이래  나가면. 이래 나가면 참 그 ○○○목사는 그때도 제가 위천에서 국기 배례  때문에 시비가 나 가지고서 그렇게 바로 경찰서에서 무장을 한 경찰관들이  여럿이 올라와 가지고 이와 같이 할 때에 그때에 그는 조그만한 학생으로  있었습니다. 학생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본 사람이오. 자기가 본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만큼은 느끼고 있지마는서도, 또 6·25 때에 그때는 집회하는 그것은  참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봤기 때문에 그런 말 하는 것입니다.

 이라는데, 이게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것은 다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됐다  이것을 자기네들도 말하고 또 중생은 단번 중생이지 두 번 세 번 중생되는게  아니다. 이것은 세계의 정통 신학자들은 다 요렇게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  그거 와 그라고 있느냐? 먼저 다 깨달은 사람들이 중생은 영이 중생했는데  중생한 중생은 영생으로 중생했다. 그래 중생된 영은 다 영생으로 중생하고  중생된 영은 단번 중생이요, 이 심신의 성화. 중생은 여러 중복적이다 하는 그런  말은 다 글로 쓴 것을 외우기만 외우고 배우기만 배워 가지고서 앵무새 모양으로  말만 하고 있지. '영은 몇 번이나 중생을 합니까. 한 번 합니까 두 번 합니까.

한 번 합니다.' 하는 그거는 정통 신학자라면 다 그렇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한  번, 한 번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암만 중생돼도 범죄하면 죽지 안 죽고  됩니까? 중생됐다고 범죄하면 안 죽습니까? 죽습니다. 중생돼도 범죄했으면  죽습니다.

 이러니까, 자기네들 입으로 영생으로 중생했고, 단번 중생이니까 다시는, 한 번  중생으로 영원이지 새로 다시 중생되는게 아니라는 이 말씀에서 벌써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이 거게 해석돼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앵무새 모양으로  자꾸 이렇게 글만 넣고 외우기만 외웠지 그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소리 한다 말이오.

 여러분들이 이 진리를 암만 배워도 이렇게 깨닫지 못하면 내나 그 사람 되고  만다 그겁니다. 지금. 여러분들 똑똑히 가르치기 위해서 이런 말 지금 하고 있다  그거요.

 어제도. '그러면 죄가 어데서 나왔느냐?' 자꾸 '하나님이 내놨다. 하나님이  내놨다.' 이 시비를 해 가지고, 이래서 내가 말하기를 '그라면 보자. 조사는  모든 것의 원인이, 원인이 하나라고 일원론을 믿나 이원론을 믿나 뭘 믿노?'  내가 이래 물으니까 '그거는 뭐 일원론 아닙니까? 이원론 아니고 일원론  아닙니까? 그런데 뭐 조직 신학 할 때 이원론도 있기는 있다 하대요?' '그러면  이원론인지, 원인이 모든 존재에 대해서 원인이 둘인지 하나인지 거게 대해서  아직까지 확정이 없느냐?' 확정이 없으면 그 사람 지금 어디로 날아갈 사람인지  몰라요. 그러면, 그게 확정되지 안하면 그게 이단입니다. 그게 참 정말  이단이오. 그런 게다. 그래 이제 물으니까, '그러면, 하나님 이 계시기 전에 또  뭐이 있었느냐? 하나님이 계시기 전에 뭐 있었느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또  그 말은 맞다 그말이오. '그러면, 모든 존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느냐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 생겨진게 있느냐?' 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지지  안한 것은 없다 이란다 말이오. '그러면 이원론이 맞나 일원론이 맞나' 이라니까  '네, 일원론이 맞습니다.' '일원론이 맞으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다고 그렇게 믿느냐' 인제 '네 믿습니다.' '그러면 마귀와 죄. 이제  마귀와 죄인데, 마귀는 그러면 누구로 말미암아 생겨졌다고 생각하느냐? 마귀는  자존자로 생각하느냐 뭘로 생각하느냐?' '마귀는, 마귀도 하나님이 지으셨지요.'  그러면 마귀가 죄를 내놨는데. 죄는 누가 내놨느냐? 마귀가 내놨다. 그러면  마귀를 하나님이 만들어 내놨으면. 또, 죄를 만들어 낸 마귀는 하나님이 만들어  냈으니까 그 죄를 통틀어 말하면은 누가 만들어 냈느냐' 이래 말하니까 이제  나중에 해석한다 말이오.

 그러니까, 자꾸 못 들어 그래요. 그래서 그런 말을 내가 하나 비유를 해서 내가  말했었습니다. '보자. 그 나라의 정권자가. 정권자가 그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  행정법을 세웠다. 행정법을 세워 가지고서 뉘든지 산에 가서 소나무를 베면 석달  징역을 보낸다 이렇게 법을 냈다. 법을 냈으면. 법을 냈는데. 그. 정권자가  소나무를 벨 일이 있어 소나무를 베면은 그 법에 적용을 받아 가지고서 석달  징역을 가야 되나 안 가야 되나?' '그거는 안 가야 되지요.' '와 안 가야 되노?  봐라. 그것은 자기가 통치하기 위해서 그런 법을 냈기 때문에 그 통치를 받을  사람들은 그 법에 매여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그 통치를 이렇게 내고 저렇게 냈던  사람은 소나무를 베면 형을 받는다 하는 법이 또 그 사람이 있다가서 소나무를  모조리 하나도 없이 전부 쏵 다 베라 이렇게 법을 내면은 또 다 베도록 되는  것이 된다. 그러면 법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법을 내서 그 법에게 제재를 받고  그 법에게 다스림을 받을 사람들에게 한해서 그런 것이지 법을 만들어 낸 사람은  거게 소속해 있지 않다.'  그래 또 내가 하나 성구를 또 말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을  이렇게 이렇게 한다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 이렇게 말할 때 주님이 뭐라고  말했느냐? 안식일을 만들어 낸 것을 내가 냈다. 안식일의 주인이 여게 있다.

안식일을 범하면 죽이라 하는 그 법을 만들어 낸 이가 내이기 때문에 그거는 이  법에게 속해 가지고서 다스림 받을 사람들이 그렇지 법을 만들어 낸 하나님은 그  안식일을 범하는데 대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거게 초월되어 가지고 초월되어  있는 아주 고차원의 그것을 다스리고 있는 주권하고 있는 분이기 때문에 그 법은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니까 나중에 좀 어두움이 벗겨지는 거  같애요. 그래 가지고 나중에는 '이제 알았습니다.' 하는데, 심령이 그렇게  어둡습니다. 이러니까 잘못 들으면 안 된다 그거요.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도 여러분들이, 보물이라고 하는데 벌써 마음과 몸과 이  물질과 모든 일들이 다 이거 보물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말하니까, 마음이  물질이라는 말을 그리 들으니 여러분들은 벌로 듣고 지나가지마는서도 마음이  물질이라 하는 것을 여게서 딱 못을 박아서 지금 말을 해 놨는데 그것을 지금  뭐인지 모르고 듣고 있다 말이요. 모르고 듣고 있으니까 나중에 마음이 물질이  아니라고 어떤 사람이 말 하면은 그만 거게 미혹을 받을 거라 말이오.

 어제 아침에도 내가 말하기를 마음을 말하면서 짐승을 말했다 말이오. 짐승은  영은 없고 혼과 몸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짐승도 혼과 몸은 있다. 짐승도  마음과 몸은 있다. 영은 없다. 이러기 때문에, 짐승은 죽으면은 그 혼이 땅  아래로 내려간다 그 말은 그게 물질과 함께 없어진다는 말이다. 사람은 죽으면  짐승같이 그렇지 안하고 그 몸은 다 땅에 있지마는서도 혼은 위로 올라간다  하는, 그것은 그렇다는 그걸 해석했지만 그 무슨 말인지 지금 여러분들이 모른다  그거요.

 이래서 그래 내가 늘 가르쳐 가다가도 마음에 좀 마음에 좀 이상함을 느끼는  것은 '내가 이렇게 멍청이 같은 사람들 앉혀, 놓고서 이렇게 가르친다는 것이  이거 무슨 효력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걸 가르치라고 이렇게 하시는고'  이렇게 마음에 참 낙심하고 마음에 답답한 일이 많았는데. 차차 차차 이제  주일학교 학생들이 자라 올라오고 이제 중간반들이 올라오고 또 이렇게 뭣한  사람들이 좀 이래, 지금으로 말하면 반사둘쯤 그저, 빨리 올라온 사람은 반사로  올라올까 그 중에 또 앞에 올라온 사람들은 지금 뭐 아마 장로들 가운데에서도  그렇게 확실히 확고한 지식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런 사람들을 볼 때에  그래도 소망은 있다 그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이라고 여게서는 그게 뭐 믿음이 있다고 그렇게 나는 보지는 안하고 저거  저거는 그저 놀기나 좋아하고 지금 신명군이나 있고 그저 껄렁하이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전화만 왔던가 편지 왔던가 내가 그걸 잘 기억을  못 하는데. 전화도 오고 편지도 왔던가 내가 모르겠어요. 또 그라고 이제 편지가  자기 집으로 오고 이랬는데 거게 그런 말이 있었어. 아주 미국에서 좋은 대학에  가 가지고 거게서 공부를 했는데 성적이 아주 우수해요. 전체의 일등인지  우등생인지 그거는 내가 똑똑히 모르지마는서도 어쩌든지 일등이라는 말  들었는데.

 그라면서 거게서 모두 박사들이 와서 가르치는데 가만히 있다가 뭘 보고  깨달은게 아니라 '내가 이 공부를 해서 박사 학위를 받으면 내가 지금 저 박사  저것밖에 더 되겠나? 내가 지끈 해 봐야 저것밖에 더 되겠나? 내가 저거 할라고  내가 남은 여생을 기울이겠나? 가치 없다. 어라. 안 되겠다. 나는 신학 가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서 집에다가 신학 가겠다고서 자꾸 이라니까 집에서는  속으로는 좋지마는서도 '저게 공연히 공부도 안 하고 저래 그만 지금  방탕해질까' 이래서 염려를 하다가, 그러니까 '그러면 그리 해라' 그래 해서  지금 그 카브난트 신학을 갈라고 그래 수속을 다 하고, 어제 말 들으니까,  어제인가 아래인가 들으니까 여게서 그 증명 서류가 그것이 빨리 서류가 안 와서  지금 마음에 답답함을 가지고 있다고 그런 말했는데, 그 증명 서류를  ○○○목사님에게 제가 그 증명할 그런 조건들을 말해서 그걸 잘 말을 만들어  가지고 써서 그래 보내라 이랬는데 보냈는지 안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영어를 못 쓰기 때문에. 내가 추천을 해야 그 사람들이. 여기 또 내가 잘 그  사람이 다 아는 사람이고 이러니까 신임하지, 그래서 그래 보냈는데, 보냈는지  모르나. 그래 그런 걸 보면은 그게 어데 가서 다 듣고 보니까 '아니라.' 그래 뭐  그런 말 많이 해 놨어요. 뭐 이런 거 보니까 이렇고 이렇고. 그런데 이 진리를  깨달으면, 여게서 증거하는 이 진리를 깨달으면 절대로 딴데 끌고 목을 홀까  가지고 끌고 가도 죽었으면 죽지 딴데 끌려가지 않습니다. 몰라서 그런 것이지.

이러니까, 말해도 껍데기만 알고 잘 모른다 그거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둬라' 보배로운 물질이라 하는 것을 네 가지로 표시를  해서 그렇게 여게서 증거를 했습니다.

 그러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 어떤 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냐? 그걸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물질을, 물질을 제 마음대로 쓰면 그  물질이 다 썩는 것이 되어지고 땅에 쌓는 것이 되어지고 그 물질을 또 어데  은행에나 그런데 저축을 해 놓으면은 그거는 아직 땅에 쌓아 놓은 것이 되는  것이고. 그 물질을 하나님의 진리가 말하는 대로 진리대로 쓰면 그 물질을  하늘나라로 옮겨서 하늘나라 보배. 하늘나라 창고에 저축하는 것이 된다.

하늘나라에 쌓는 것이 된다. 그 물질을 진리대로 쓰면 하늘에 쌓는 것이,  저축하는 것이 된다. 쌓을 저(貯)자. 하늘에 쌓는 것이 된다.

 그러면, '진리대로 쓰면' 고 말은 또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함이라. '진리대로  쓰면'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진리에게 쓰여지면' 그 말입니다. '진리대로  쓰면' 하는 것은 내가 진리대로 쓴다는 말이요. '진리에게 쓰여지면' 진리에게  이용을 당하면, 그러면, 진리에게 피동된다 말이오 '진리대로 쓰면' 내나 그러면  쓰는 주인이요. 쓰는 주인이 내가 주인인데. '진리에게 피동되면' 그 말은.

'진리에게 쓰여지면' 하는 것은 진리가 나보다 그 물질에 대해서 주인공이 돼  가지고서 주장한다는 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진리대로 쓰면' 하는 말과 '진리에게 쓰여지면'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까 다른 말입니까? 예? 요거 다르다는 거 고거 알아야 돼요.

말해도 자꾸 두더기 모양으로 주 이라기 때문에 이 말귀를 못 알아 듣는다  그거요,  그러면, 진리에게 내 물질이 쓰여지면, 진리에게 내 모든 하는 행사들이  쓰여지면. 내 하는 행동이 일 아닙니까? 행동이 일 아닙니까? 행동하면 일이  되는 것 아닙니까? 모든 일들이 진리에게 쓰여지면. 진리에게 이용을 당하면. 또  내 권세가, 지위가. 명예가, 재산이 진리에게 이용을 당하면, 내 몸이 진리에게  이용을 당하면, 내 마음이 진리에게 이용을 당하면 그것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렇게, 어렵고 이렇게 첩첩이 이래 돼 가지고 있는 이걸 그저 졸면서  아무런 껍데기로 다른 말 듣듯이 이래 하니까 모른다 그거요. 이번에 척 스미스  목사님이 강의하는데 아마 이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그걸 자다 들어도 다 듣고  다 깨닫고 환하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걸 봐서 저희들이 심령이 밝아졌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그 하는 말은 무슨 말인고 다른 사람들은 그 말 모르는 사람들  많아요. 목사 쳐 놓고도 그 말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말이오.

여게 있다가서 얼마 동안 딴데 갔다 와도 설교를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어.

이러니까 여기 와도 설교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못 알아듣겠다 하는  사람들이 뭐 얼마나 많은 줄 압니까? 못 알아 듣겠다고서. 이러니까, 이,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있다고 하면 벌써 심령이 그만치 밝아졌다 그말이오, 이런데, 이걸  뭐인지 밝아져도 밝아진 줄도 모르지 이러니까 이거 참 답답하기는 답답한  일이라.

 그래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은 어떤게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냐? 진리에게  쓰여지는 것이다. 진리에게 쓰여지는 것이다. 영감에게 쓰여지는 것이다.

진리에게. 진리로 쓰고 난, 진리로 써서 다 썼다 했는데 또 영감으로 쓸라  하니까 남은게 많습니다. 영감으로 쓸라 하니까 또 영감으로 쓰여지는 것이다.

또 주님의 대속에게 쓰여지는 것이다. 이렇게 이 세 가지에게 쓰여지는 것이  그것이 하늘나라에 저축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했다 말이오. 그러면 그게 이해가  돼야 돼. 확실히 확고하게 이해가 돼야 돼.

 그러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둬라. 그러면 거게는 동록도 해하지 못한다.

동록이 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세상 죄악이 멸망받을 때에, 네가 땅에 두면  죄악이 멸망받을 때에 너도 같이 멸망받는다.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히 차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데 네가 하늘에 쌓아 두면 거게는 동록이 없다. 거기는 환경에  죄가 없다. 거기는 죄가 없기 때문에 거게는 멸해질게 하나도 없다. 좀먹는다,  좀먹는 것은 세월에 대해서 상징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거게는 뭐 천 년 만 년  억만 년을 가도 거게는 해될 것이 없다. 또 도적맞지 않는다, 거게는 끝나는  일이 없다 그 말이 그 도적 맞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이 끝나는 거 아닙니까?  끝나는 일이 없다.

 이렇게 한 말씀을 이래 듣고, 그러면, 그것이 뭐이냐? 내가 그것으로만 살도록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지, 영감으로 가르쳐 주셨지, 진리로 가르쳐 주셨지.

진리로 우리가 중생됐다 말이오. 진리로 중생됐기 때문에 우리 속에는 진리가  속에 우리 생명이 돼 있습니다. 진리가 우리 생명이 돼 있기 때문에 진리대로  산다는 것이 우리가 본능으로 사는 것이고 자유로 사는 것이지. 남의 생활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생활 내가 하는 것이라 말이오. 진리로 중생됐다는 말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중생된 자기가 중생된 그 생명으로 사는 것이라 말이오. 그거 우리  생활이라. 우리 생활 이니까, 이렇게 생활하도록 하나님이 중생을 다 시켜 놨지,  이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 놓고 이렇게 살아라 그말이오. 우리가  그래 사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진리로 살아라 영감으로 살아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살아라 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 공로로 산다는 그것이 우리가  들어서 삽니까 우리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중생  시켰습니까? 뭐이요? 예? 어떻습니까? 중생된 사람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와 또  영감과 진리로 우리가 죽은 것이 살아났으니까, 이 세 가지 힘으로 살아났으니까  이 세 가지 힘으로 사는 것이 자기 생활이겠소 이 세 가지 힘을 죽이는 것이  자기 생활이겠소?  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세 가지, 이 세 가지 역사, 세 가지 힘을 죽이는  것이 자기 생활이라고. 자기의 정상된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알고 안 드는지? 맞기는 맞은데 알고 안드는지를 모르겠다 그거요.

 우리가 이 생활 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놓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그  말은 네가 네 생활 네가 해라. 네 이제 마음도 몸도 네 소유도 네게 모든  사건들도 이렇게 하나님이 중생 시켜 놓은 대로 네 생활 네 해라 그말이오 내나  말하자면. 네 생활 네 해라. 네 바른 생활 하라. 이는 다 영생이요 영원히 죽지  않는 생활이다 하는 것이요, 이것이 아닌 딴 생활은 제 생활이 아닌 것입니다.

이거 남의 생활이오.

 이라면 어찌 되느냐? 그는 좀도 동록도 도적도 구멍 뚫지 못한다. 이라면  이것은. 그 나라에는 그 나라에는 좀이 없다. 그 나라에는 죄가 없다. 그  나라에는 동록이 없다. 그 나라에는 좀 먹는게 없다. 그 나라에는 천 년 만 년  억만 년 가도 시간에 제한받지 않는 그 나라다. 부패하지 않는 죄가 없는  나라다. 또 도적맞지 않는다 그 나라에는 끝이 없다.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로서  끝이 없는 나라다.

 이런 이렇게 말씀해 놓은 이걸 껍데기로 주르르 훓어 가지고서 이래 하는데,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이러니까, 연보해라 연보하면 된다 이렇게만 하면,  연보도 그에게 속한 건 속한 것이지마는서도 연보로 말하면 얼마나 외부의  껍데기 중에 껍데기 아닙니까? 그 속에 알맹이 되면 절로 되는 것이라 그거요.

이라면 거게는 사망이 없다 그말이오. 하늘에는 사망이 없다 그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보물 있는 곳에는' 우리에게 알도록 하시기 위해 가지고서 자꾸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말이오. '보물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랬다  말이오. 그러면 이렇게 살면 네 마음이 거게 있다. 네 마음이 거게 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어데 있다 말입니까? 예?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말은 우리  마음이 어데 있다 말이오? 예? 우리 마음이 어데 있다 말입니까? 어데 있다  말이지? 우리 마음이 어데 있다는 말이오? 거게라 하니까 거게라 말은 장소를  말하는 거 아니오? 거게는 장소를 말하는 거 아니오? 그러니까, 거게라 했으니까  그 어데를 말하요 지금? 하늘. 하늘, '네 마음도 거게 있느니라, 보물이 있는  곳에 있느니라' 말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했으니까 이렇게 살면 네 마음도  거기 있느니라, 하늘에 있느니라. 하늘에 있느니라. '마음도 거게 있느니라'  그래 놓고 고 밑에 또 자꾸 차차 차차 주를 달아서 해석을 해 줍니다.

 이제 하나 또 비유로 나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눈이 하나 밝으면 온 몸이 다 밝다. 손은 눈이 없어도 눈  하나 있으면 손이 눈이 있다. 손에 눈이 없어도 눈 하나 밝아 놓으면 이 손 이게  밝다. 이거 손 이게 전부 제가 다 아는 것 같다. 그렇지 않소? 눈 하나 밝으면  다 아는 것 같다 말이오. 여기는 불덩이인데, 여기 불 있는데 떡 대이면 그만  데일 것인데. 데일 것인데, 데일지 안 데일지 뭐 불인지 뭐인지 모를 건데 눈  하나 가지고서, 이 그손도 눈이 있다 말이오. 손이 거기 누가 주 넣을라고 거게  끌어다 붙일라 해도 안 끌어 붙여진다 말이오. '여게 뭐인데 안 끌어 붙일라  하노?' '아, 불에다 끌어 붙일라 하나?' '손 네까짓게 뭐 아노?' 그 손이 뭣  보고 아요? 예 '손이 불을 보고서 거기 대면 자기 탈 줄 알고 손을 안 댈라  하는데 이 손이 어째 불을 볼 줄 압니까? 손이 불 볼 줄 압니까? 뭘로 가지고  보요? 눈 하나 가지고 본다 그말이오. 눈 하나 가지고서 이 눈 하나 있지마는  발도 눈이 있고 손도 눈이 있고 귀도 눈이 있고 온 몸뚱이에다 눈이 돼서 눈  하나 밝으면 온 몸이 밝고 눈 하나 어두워지면은 온 몸도 어두워진다 요렇게 해  놓고서 고 다음에 또 해석을 또 해 줘요. 자꾸 내려서  '이와 같이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크겠느냐' '빛이  어두우면' 그 빛은 또 뭘 말합니까? 예? 육신의 눈을 가지고서 이라다가 거게  빛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음을 말합니다. 마음. 마음. 육신의 눈을 말하고  고다음에는 마음의 눈을 말합니다. 마음. 마음의 눈을 말하는데, 네게 있는  빛이라는 고 빛은 뭣을 가리켜 말하는고 하니 그 마음에 옳은 마음. 마음에 옳은  마음, 바른 마음. 곧은 마음, 깨끗한 마음. 지혜있는 마음, 참된 마음 고 마음에  제일 옳고 바르고. 온 몸에 눈 하나가 밝음으로써 온 몸 전체가 밝은 것처럼, 고  마음을. 고 마음 전체를 밝게 만드는 온 마음을 다 밝도록 만드는, 고 마음 중에  온 마음을 밝도록 만드는, 고 마음 중에 온 마음을 밝도록 만드는 고게 있어.

몸뚱이 중에 온 몸뚱이를 밝도록 만드는 것은 뭐이지요? 예? 눈 아니오?  그러면, 온 마음 전체를 환하게 밝도록 만드는고 마음은 뭐입니까 그게? 그게  뭐이요? 빛이라고 말했는데 고것이 뭐이냐? 양심입니다. 양심. 그러면, 양심  하나 가지고서 온 마음이 전부 밝습니다. 양심 하나 가지고서 온 마음이 다 밝은  일 할 수 있고 양심 하나 삐뚤어지고 양심 하나 죽어 버리면 온 마음은 전체는  다 어두운 일 할 수밖에 없다 그거요. 그러니까 요걸 차차 자꾸 가르쳐 내려간다  말이오.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크겠느냐' 빛이 어두우면  얼마나 그 어두움이 크겠느냐 이러니까, 네게 있는 양심이 어두우면 전 마음이  어두워지니 전 마음이 어두워지면 네 생애가 어떻게 되겠느냐. 네 생애가 전멸을  당하지, 전멸할 생애를 하지 않겠느냐 그말이오.

 그러면, 그 양심을 밝게 하는 그 방편이 뭐입니까? 양심을 밝게 하는 방편이  뭐이지요? 마음이, 마음이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이렇게  하늘에 저축하는 생활을 하면은, 내 마음이 진리에게 복종하고 영감에게  복종하고 주의 피에 복종하고, 또 내 몸도 소유도 모든 내 물질도 사건도 다  진리와 영감과 주의 피의 공로에 쓰여지고 복종하고 거게 이용당하고 거게  쓰여지고. 그에게 쓰여져서 이용을 당하고 하면. 당하면. 자, 우리 마음이,  마음이 깨끗해지겠소 안 깨끗해지겠소? 우리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그리 되면, 그 마음 전체가 차차 차차 자꾸 그러면은 이제 마음 중에. 마음이  열 개가 있으면 열 개 가운데에 한 개가 처음에는 양심이 됐다가, 양심이 됐다가  자꾸 고 생활 하니까 이제 마음 열 개가 다 뒤에 다 양심 됩니까 안 됩니까? 예?  열 개가 양심 됩니까? 양심 열 개가 다 양심 됩니다. 그러면, 욕심도 양심  욕심이 됩니다. 욕심이라는 그 욕심이라는 마음도 양심 욕심이 돼. 그러니까, 그  욕심 그것도 어찌 됐든간에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을 자꾸 이래 원하는 것이  되니까 욕심 중에 양심 욕심. 욕심 중에 참 밝고 깨끗하고 옳고 지혜롭고 그는  슬기롭고 참 거룩하고 참된 욕심이 있는데 그 욕심을 가리켜서 이름을 뭐라고  성경에 말했습니까? 성령의 소욕. 성령의 소욕, 성령의 소욕. 이러니까, 우리의  자꾸 우리에게 있는 빛을 밝게 해서 우리 마음이 밝아지게 되면은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말이오.

 그래 놓고 그 다음에 또 가르셔서 말해 놨습니다. 말해 놓기를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고렇게 자꾸 계속해서 가르치고 가르치고 자꾸 우리에게  가르쳐서 지금 계속해서 가르쳐 내려오고 있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의 요 진리를 깨달아서 요걸 가져야 되는데, 아무리  교역자들에게 가르쳐도 고 교역자들이 그것을 알아 듣지를 못해요. '선은 하나님  중심이요 악은 하나님 중심 외에 모든 피조물 중심이 악이라' 이 말이 껍데기가  수십 껍데기를 들어가 가지고서 되는 말인데 이걸 껍데기로 들으니까 입으로는  외우기는 외우지마는서도 속을 모르기 때문에 이거 뭐 다른 데, 선을 해석하기를  전부 여게는 이래 해석하고 저게는 저래 해석하고. 한 진리도 꼭 잡아 가지고서  그 뿌럭지를 알아서 딱 붙들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요동이 된다  말이오. 이 진리를 붙들고 있으면 요동이 안 돼요.

 그래 내가 어제 어떤 사람을 데리고서, 내가 이름은 내가 모르겠는데. 나는  사람을 기억하지를 안해요. 이러니까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제 어떤  사람에게 말하기를 '네가 그렇게 하면. 그렇게 하면 어두워진다. 자꾸 요 진리를  배웠다가, 요렇게 가르친 진리를 배웠다가 조렇게 가르치는 진리를 배우고  이라면 많이 배우면 좋은 줄 알아도 네가 고렇게 되면은 그 진리를 배우면 요  진리를 모르게 된다.' 여게 있던 사람이 다른 교회에 가 가지고 한 일 년이나  이태나 있다가 오면은 이 말씀 무슨 말씀인지 못 알아 들어요. 암만 해도 못  알아 들어요. 못 알아 들으니까 재미가 없고 잠도 오고 이라다가 어떻게 해서  눈이 뜨여 가지고서 요 말씀을 알아 듣기 시작해 놓으면은 그 사람은 딴데 가지  못합니다.

 그라니까 그 사람이 그래 말해. '아, 아닙니다. 내가 거기 가서, 거게 가서  들으니까 더. 더 참 우리가 서부 교회서 배운 진리가 참 옳다 바르다 더 옳다  바르다는 것을 더 깨닫게 되고 더 내게 확고해지고 그렇습디다' 그 말을 해.

그래서 '아, 고게 조금 아마 눈은 떠 가지고서 깨닫기는 좀 깨달았는가 보다.'  그래 이 진리를 깨닫고 보면. 바로 깨닫고 보면 어데서 들으면 '저러니까 틀렸다  저러니까 틀렸다' 그 틀린 것을 환하게 알아. 어데 틀린 말을 배울수록이  배워지지 안하고. 틀렸다는 걸 더 알아지게 됩니다.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은 이종교의 뭐 철학이나 뭐이나 어떤 것을 가서 봐도  보면은 '저러니까 틀렸다 틀렸다' 자꾸 틀린게 자꾸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확실히 계신 것을 아는 사람은 무신론자 앞에 강의를 가 받아도 무신론자의  강의를 받을수록이 그 속에 강의 받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 더  강하게 역사하고 강하게 더 확고해지지 하나님이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그  소리에 미혹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똑똑히 들어요. 그러니까, 어짜든지 하나님의 도리를 똑똑히  깨닫고 예수를 바로 믿도록 해 달라고, 이러니까, 예수를 껍데기로 믿어. 안  믿는 사람들 저거 옳다 하지요. 예수를 껍데기로 믿는 사람도 저거 옳다 하지요.

예수를 진짜로 믿는 사람, 자. 그러면, 이다음에 순교당하기를 예수 안 믿는  사람 손에 죽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 손에 죽습니까? 어데 죽소? 믿는 사람 손에  죽어.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 하시기를 예루살렘 밖에서는 선지자와  의인들이 죽임을 당할 일이 없다 이랬어. 예루살렘 밖에서는  이거 알아 들어야 된다 그말이오. 영 귀가 어두워서 못 알아 듣기 때문에 이거  참 탈이라. 요거 알아 듣지 못하니까. 그런데, 주일학생들은 알아 들어요.

주일학생들은 알고, 이거 지금 중간반 학생들 가운데에서, 내가 아래도 주일날  이래 순회하고 이래 쭉 하면서 저 사층 올라가 봤어. 사층 올라가니까 중간반  학생들이 그래도 거득하이 있어. 거게 대해서 내가 마음에 흐뭇하게 '이것들은  주일학교에서부터 올라왔기 때문에 이 진리를 깨닫지 않겠느냐? 이게 진리를  깨달으면 이만하면 세계를 다 구출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있다.'  거게 가 가지고서 그 중간반 학생들이 거득하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흐뭇함을  가졌어요. 흐뭇함을 가지고,  주일날 뭐 장년반들 와 가지고 이래 가지고 있는 데는 마음에 사실 답답한 일만  있지. 다른 사람들은 이거 장년반은 교인으로 하고 뭐 주일 학교는 교인으로 안  하지마는 나는 주일학교는 소망을 가지고 장년반들은 이래야 '저게 언제  되겠느냐?' 암만 해도 속에 고집 들었지, 고집 들었지, 선입적 관념 들었지.

기존 지식 들었지 이러니까, 제 경험 체험 있지 이러니까 가르쳐 봐야 잘 못  깨닫는다 말이오. 다 못 깨닫는 건 아니지마는서도 어떻게 강퍅한지, 아이 놓고  어른 놓고 가르치면은 아이가 어서 알아 듣습니다. 이런데, 사람들 모두 하기를  '아이는 어리니까 그 진리를 알겠소? 그라니까 아이들 알 진리를 가르쳐 주지  어른들 진리를 가르치면 아이들이 알겠습니까?' 다 같이 놓고 가르치면 아이와  어른들 가운데 아이가 더 확고하게 바로 깨닫고 더 견고히 거머 쥐어서 실행력이  더 낮고 아이가 훨씬 우등생이라 하는 그걸 일반들은 모른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거 주일학교 시찰하러 왔던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은 그  사람들이 처음에는 아무래도 이해 안 된다 안 된다 이라다가서 그러면, 장년반  가르치는 데에는 국민학교 졸업 안 한 사람과 박사와 한자리에 놓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따로 가르칩니까? 그래도 나중에 결론에 보면은 일자무식 그 사람이  잘 깨닫고 순교자가 거게서 나오고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이 거게서 나오지  박사에게서 나오지를 않습니다. 가르쳐도 박사는 못 알아 듣는다 말이오. 박사는  자기 속에 지식이, '아 그런데 안 그런데' 이게 있기 때문에 못 알아 들어.

그라고 나면, '참 그렇겠다' 이렇게 겨우 안다 그거요.

 이러니 여러분들이 어짜든지 바로 깨닫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저는 그거  하나님의 은혜라요. 처음에 예수 믿을 때부터 내가 매일 제일 많이 하는 기도는  무슨 기도냐 하면은 육십 육 권 도리를 바로 깨닫게 하시고 바로 행하게 하시고  요대로의 사람 되게 해 달라는 고것이 내게 기도가 제일 많이 됩니다. 난  누구한테 배운게 아니고 처음에 예수 믿기 시작하고 난 다음에 아무래도 바로  깨달아야 되겠다 그래서 육십 육 권 도리를 낱낱이 다 바로 깨닫게 하시고 그  다음에는 바로 행하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하나님에게 기도를 제일 많이 했다  말이오. 하나님이 그렇게 기도하게 하시고 또 기도도 들으셔서 깨닫게 해  주셨어요.

 이러니까, 저하고 뭐 일하는 사람들은 자꾸 내가 말하기를, '왜 그랬노 그랬노'  자꾸 말하면 자꾸 책망하는 말만 하니까 나하고는 사람이 이래 돼 버려요.

나하고 일해도 그만 사람이 그만 이래 돼 버린다 말이오. 와? 자꾸 책망하는  거는 틀린 걸 틀렸다 하니까 그걸 달게 받아서, 또 지혜 배웠다 배웠다' 자꾸  이렇게 하면 굉장히 가속도로 이래 될 터인데, 그렇지 안하고 자기 주관과  틀리니까 나중에 자꾸 꾸중만 하니까 이렇게 마음에 섭섭함을 가졌다가서 떡  떠나고 난 다음에야, 떠나고 나 다음에야 이제 그때 제가 써먹는다 말이오.

그때는 그 지혜가 나오니까.

 ○○○ 목사도 여기 있을 때에는 내게 이래 가지고서 나한테 많이 괴로움을  끼쳤다 말이오. 이러나. 이제 가 가지고는 뭐 와 가지고서 어쨌든지 목사님한테  한 번만 만나면 해결될 줄 아는데 이거 시간이 없어 만나기가 미안해서 만날  것도 못 만나고 못 만나고. 한 번 만나면 그렇게 해결될 줄 알고 한 번 만나기를  그렇게 원하지마는서도 만날 시간이 잘 없다 그거요. 저 먼저 하루 아침에 내가  기름을 뺏습니다. 뭘 이렇게 지단하이 이만한 종이에다가 여러 장을 기록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자꾸 얘기를 해서 나중에 그라고 난 다음에 나중에 말하는  것이 '내가 걱정을 많이 끼쳤고 목사님 한테 애를 많이 먹였고 이제 지금 제가  가고 난 다음에 깨달아집니다. 깨달아집니다.' 그래. 그래 내가 있다가서 '참  깨달아 지나? 깨달아져서 네가 후회가 되고 참 깨달아지면 네가 희망은 있는데  그거 네가 채 깨달아지는지 어느 정도까지 깨달아지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얘기를 하고서 서로 나뉘었습니다.

 요걸 꼭 알아 들으면, 이 진리를 알면 이 진리를 두고 어데를 가겠습니까? 그저  무조건 예수 믿어라 그게 아니고 안 믿으면 안 되고 믿어야만 된다는 그 이치를  근본부터 획 뒤집어서 전부 다 알려 주니까 들어서 깨달으면 그 신앙이 요동치를  안합니다. 그러니까. 어짜든지 깨닫도록 해 달라는 그걸 자꾸 기도해요.

 그라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둬라 거게는 좀도 동록도 도적도 없다' 이렇게 한  요 말씀을 자꾸 새김질하고 하라 그말이오. 그라고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 또 네 빛이' 자꾸 쪼르르 이래 말하는 거 보면은 위에서 요렇게  말하고 요렇게 말하고 요렇게 말해 가지고서 자꾸 요걸 점점 옳고 바른 데로  자꾸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말이오. 하나님께서 자꾸 끌고 들어가서 요렇게  인도해 들어가는데,  거게 따라서 가면 마지막에는 죽음이 없는 세계에서 사니까. 죽음 없는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니 그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할리가 있습니까? 바울도  말하기를. 어서 떠나서 주 앞으로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새생명으로 살기  때문에 그렇다 그거요. 항상 죽기를 두려워 해서 죽음 없이 죽음 없이 주님 만날  사람, 산 채로 주님 만날 거 그걸 좋다고 해 가지고 그리 따라가는 사람은  죽기가 얼마나 싫은 사람이니 아직까지도 죽을 사람으로 산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가 뭐이냐, 안 죽을 중생된 사람으로 사는게  아니라 죽을 옛사람으로 살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두 말 할 것  없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죽을 옛사람으로 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이제  중생된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은 죽을, 죽을 옛사람 그게 들어서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을 반대하기 때문에 그놈이 얼른 죽어 버리면 좋겠고 그게 없어져 버리면  좋다는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떠나 주님 앞에 같이 가는 것을 마음으로 원하고  있다 이랬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기도 많이 하고 성경을 듣고 버리지 말고, 모르거든 재독을 하고  재독해 가지고 그 속에, 뭣 때문이냐? 속에 진리를 좀 배우라는, 진리를 못  배우기 때문에 자꾸 흔들리고 요동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아 보십시오.

모가지를 홀까 가지고 끌고 가도 안 갑니다. 속에 어떤 뭐 부요나 무슨 그런  황금을 준다 해도 끌려 가지 않습니다. 황금보다 나은게 있는데 뭐 할라고 끌려  가겠습니까, 끌려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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