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리고 지키라

 

1981. 2. 14. 새벽(토)

 

본문:창세기 3장 1절∼7절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마귀의 역사, 사탄의 역사를 이 창세기 3장에서 바로 발견하지 못하면 아무 데  가서도 바로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다른 데는 다 부분적입니다. 여기는 아주  간단하면서 사탄의 모든 유혹성이 다 나타났고 또 인간의 연약성이 다  나타났습니다.

저 지난번에는 간교한 마귀가 간교에 잘 말려들어 갈 수 있는, 간교에 잘 물들 수  있는 뱀을 택했고, 뱀은 인간 중에 남자보다 여자가 간교에 잘 감염될 것이기  때문에 여자를 택했고, 또 여자는 자기의 간교에 제일 감염 잘될 자는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를 택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악령은 오늘도 이 간교에 잘 말려 들어갈 자를 붙듭니다. 믿는 사람이  아무리 위대하다 성자다 해도 간교에 대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간교에 말려  들어가면 다 헛일이요 실패합니다.

간교라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 같으나 실은 하나님을 끌어내리는 것이요,  사람을 높이는 것 같으나 실은 끌어내리는 것이요, 일을 잘되게 하는 것 같으나  아주 삐뚤어지게 하려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표리가 다르게 되는 것이  간교입니다.

순회도 가면 그만 순회 간 사람이 당장 그 본교회 교역자에게 감염돼 버립니다.

그 간교에는 꼼짝을 못 합니다. 교인들의 간교, 교역자 간교, 동역자 간교, 간교는  마귀란 놈이 이것 가지고 인류를 다 삼켰고 정복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들이 쓰고  있는 전용 방편은 간교입니다. 간교는 하나님도 모든 사물도 다 들먹이나 그  상대방을 위주로 해서 상대방을 위하는 것 같은 그런 방편을 씁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간교에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자는 간교에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왜? 자기를 칭찬할 때에 듣기  좋아하는 그것이 자기 부인치 않는 그 증거입니다. 그것이 하나님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자기를 알면 자기같이 거짓된 것이 없고, 자기같이 약한 것이 없고, 자기같이  외식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칭찬하는 그 말이 바로 들리지 않아야 그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높일 때, 자기 위할 때, 자기 유익되게 할 때에 빠지는 그게  간교입니다.

마귀가 뱀을 통해서 와 가지고 처음에는 하나님 위주 중심으로 하는 것  같았지마는 사람 위주 중심으로 바꿔 놨습니다. 하나님 위주를 사람 위주로  바꾸고, 그 다음에는 물질 위주가 돼 버렸습니다.

벌써 선악과 보니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로울 만큼 탐스럽다' 했습니다.

그까짓 게 무슨 인간에게 지혜를 주고 인간을 망하고 흥하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인간의 망하고 흥하고 하는 모든 것이 그 선악과 물질에 달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러니까, 선악과 그게 위에 있어서 그것으로 사람이 지혜로우려면 지혜롭고,  그것으로 무지하려면 무지하고, 그것으로 아름다워지려면 아름다워지고, 그것으로  아주 허무하게 되려면 허무해지고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것을 취하고 안  취하는 데 자기의 흥망성쇠가 달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 속에 무엇이 들어서 그러냐? 마귀가 들어서 그렇습니다.

마귀가 벌써 자기를 점령해 버렸어요.

성경이 말하는 대로는 사람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위주로 하나님 높이는 그  일만이 사람 생활입니다. 하나님 높이고 그 다음에 자기 높이고 그 다음에 사물  높이는 그것 아닙니다. 하나뿐입니다. 하나님 높이는 것만 사람 생활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를 높여야지? 아니오. 자기 높이는 게 아닙니다. 하나뿐이오. 단일의  하나님을 단일성으로 섬기는 것뿐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높이고, 하나님 한 분만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 한 분만을  존귀케 하고, 그러면 자기는? 자기는 하나님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사는 것도  살고, 죽는 것도 죽고, 없어지는 것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 본지위를 가진 변질되지 아니한 사람인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다음에는 저 영화롭게 하는 그게 벌써 멸망입니다. 뱀에게 걸린 것이오.

하나님 좋고 인간 좋고 그것 아닙니다. 하나님만 좋게 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원수를 좋게 하는 것 아니오.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  했기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인간을 사랑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 좋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마귀가 뱀을 통해서 와 가지고 이것을 에누리를 하게 만듭니다. 그  에누리하게 만드는 것 보면 하나님을 아주 높입니다. '하나님의 명령 일하에 모든  게 다 된다. 하나님이 하시면 그것은 변동 못 한다.' 이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해 놨으면 이것은 변동  못 한다. 못 먹는다 했으면 참 못 먹는다. 변동 못 한다.' 이렇게 하나님을 높이는  것 같지마는 이것이 사실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정확성 진실성을 다 흐리게 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아주 위하는 것 같지마는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나님이 언제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 했습니까? 이것이 모든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서 긍정하고 두려워 떠는 것 같지마는 실은 부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에누리하고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서 에누리를 하니까 하와는  당장에 감염됐습니다.

감염돼서 "모든 과실을 임의로 먹지마는 중앙에 있는 이 과실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더라" 먹지 말라고만 했지 만지지 말라 말을 어디 했습니까?  아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는 강조하는 것 같지마는 그것이 벌써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정확성을 잃어버리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절대성입니다. 정확성입니다. 진실성입니다. 이건 진실뿐입니다.

에누리가 없습니다. 영원 불변이요 절대성입니다. 이랬는데 "죽을까 하노라"  여기서 벌써 하와는 마귀의 것이 됐습니다. 뱀의 것이 돼 버렸어요.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니라" 이것은 하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게 했어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부인하게  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 말이 어떻습니까? '네 눈이 밝아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될 줄 안다' 이 말이 거짓말입니까 참말입니까?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참말 아니오? 참말인데 벌써  마귀에게 사로잡힌 그자의 심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마귀에게 감염된 심리는 벌써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 지성주의로, 지공주의로,  지상주의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절대성, 영원  불변성, 완전성의 하나님의 신성에 대해서 부인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에누리하고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서 에누리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멸시하게 되니까 자기에게는  제일 가까운 것이 자기입니다. 보이는 것은 자기뿐입니다.

이러니까, '이걸 먹는 날에는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같이 될 줄 안다' 이 말이  맞은 말입니다. 옳은 말이오. 바른 말입니다. 왜? 바른 말인 줄 아는 것은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쫓아낼 때에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기 때문에' 쫓아냈습니다. 하나님이 말하면 마귀는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같이 됐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들을 때는 어떻게 들었느냐? 하와가 뱀의 말을 들을 때 하나님은  부인하고 자기만 보이고 자기만 가깝고 자기만 보고 자기만 알도록 그렇게  되었는데, 그런 하와에게 이 말을 하면 그가 어떻게 인식하겠느냐? 하와가 그 말을 들을 때는 하와 제가 영광스럽고 존귀하고 제일 머리되고 능치  못하심 없고 알지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모든 속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실력을 가진,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가진 이 하나님같이 된다는  것으로 그렇게 잘못 듣게 되어있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하와의 심리를  이용했습니다.

벌써 하나님 행사에 대해서 에누리하다가 나중에는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죽지 아니하리라' 했으니까 하나님을 부인했습니다. 하나님  부인하면 그 다음에 자기에게 보이는 것은 뱀과 자기밖에는 안 보입니다. 뱀  보이고 자기 보이고 다른 것 보이지 않지요.

이러니까 뱀을 통해서 마귀가 '네가 이걸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  줄 아느니라' 얼마나 그 말이 교묘한 말입니까? 말은 옳은 말입니다. 옳은 말인데,  요 말을 하면 마귀의 감화를 받고 있는 그 하와에게 어떻게 해석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요것은 하와 제가 영광스럽고 존귀한 참 하나님,  참 하나님이 되리라고 이렇게 해석을 할 줄을 알기 때문에 마귀가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완전자는 완전자 당신 중심으로 모든 선악을 규정  지우는 것이 옳은 것인데, 이와 같이 하와 저도, 인간이 완전자가 아니면서  완전자처럼 자기를 중심해서 모든 선악을 규정 지운다는 이것이 아주 전체가  멸망받는 것인데 마귀는 하와가 이렇게 할 줄을 알았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같이 된다' 했는데 여기는 '하나님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안다.' 이렇게 또 말했습니다.

마귀의 간교의 말은 이렇습니다. 위에 붙일 것 아래 붙이고 아래 붙일 것 위에  붙이고 요렇게 해 가지고 듣는 자의 심리까지 이용하고, 어느 정도의 죄악으로  감염돼 있는 것까지 이용하고, 그이의 주관이 어느 정도 어떻게 돼 가지고 있는  것까지 이용을 해서 자기가 주장하는 거기에 감염돼 들어오도록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역자들을 잘못됐다고 책망하면 책망하고 난 다음에 뱀이 사르르 갑니다. '요  책망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저 사람의 주관이 어찌 돼 가지고 있고 감정이  어찌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요럴 때에 가서 말하면 어찌된다.' 하고 뱀이 사르르  갑니다. 뱀 새끼가 어떻게 많은지? 가 가지고 말하는 것은 아주 그이를 위하고 높이는 것같이 하지마는 바로 박살을  시키는 것인데... 이 뱀을 보는 눈이 없으면 헛일입니다. 여기서 나한테 꾸중듣고  나면 사르르 뱀이 끌어 가지고 다방으로 데리고 가서, 가면 뭐 오차나 한잔 사  주는지 몰라도 그러고 나서 위로하는 척 해 가지고 뱀 새끼를 만듭니다. 그걸  모르면 목회를 죽는 날까지 한다고 해도 여러분들의 목회는 헛일입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하와에게는 맞습니다. 먹고 난  다음에 죽었습니까? 안 죽었어요. 그러나 실은 죽었습니다. 왜? 벌써 사람이  육체가 됐습니다. 영이 죽어버렸어요.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벌써 영은  죽었습니다.

선악과 먹고 난 다음에 죽었습니까? 선악과 먹기 전 벌써 다스리는 것 하지  않았고, 지키는 것 하지 않았고 뱀으로 더불어 연결됐기 때문에 하나님과 이미  끊어졌습니다. 통일교에서는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하고 결혼된 인생이 이제  뱀하고 결혼했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이 통일교에 싹튼 시발입니다.

'사람이 육체가 되었으니' 하는 것은 벌써 죽었고, 영은 생명과 끊어져 있고  고깃덩어리만 살아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영은 생명과 끊어져 있고 고깃덩어리는  살아 있는 그 하와에게 '결단코 죽지 아니하리라' 했으니까 그 말이 맞습니다. 안  죽었습니다. 그 몸이 안 죽었어요. 제가 보기에는 안 죽습니다. 안 죽고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습니까? 그러나 결과는 죽었어요. 여기서 사람은 시간 감옥에 들게  됐습니다. 자기 감옥에 들게 됩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 말을 듣고 나서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했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했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처음에는 제가 취하면 유익될 걸로 봤고 그 다음에는 '보암직도  하고' 아주 그것이 아름답게 보였지마는, 마지막에는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하다' 이제는 완전히 물질이라는 그 과실, 물질 그것에게 자기는  귀속돼 있습니다.

그것의 여하로써 자기는 되어집니다. 자기가 지혜롭고 무지하고, 능력 있고  무능하고, 자기가 실력이 있고 없고, 존귀해지고 천해지는 것이 물질 그것에게  매였다 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에게 자기에 대한 주권이 매였습니다.

하나님이 주권하신 그 주권을 버리고 나니까 자기가 자기에게 대한 주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같이 된다'에는 자기가 주권입니다. 하나님 치워버리고 이제  자기가 주장되지요. 자기가 주장되고 난 다음에는 차차 차차 끌어 가지고 물질이  주장이 되게 됐습니다.

오늘 세상이 이렇게 무신론이 된 것은, 무신론이면 유물주의인데 유물주의가 된  것이 왜 그러냐? 그것이 뱀에게 미혹받아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배반하면 결국은  유물주의로밖에는 갈 데가 없습니다. 그게 종착점이오. 그 이상 갈 게 없어요.

거기 가는 과정은, 하나님 부인하고 난 다음에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버리면 제가  제일 귀중하지요. 인간이 제일 귀중하지요. 인간이 귀중하고 난 다음에는 물질이  귀중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인간의 모든 죄악과 모든 방편이 여기 싹 다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그렇게  범위 좁게 생각지를 말아야 합니다. 이 본문의 말씀은, 창세기 3장 이후에 있는  66권의 도리는 어느 한 성구든지 그 성구에 요렇게 오묘하고 광범위한 것이  내포돼 가지고 있는 것은, 요한복음 3장 16절 그 말씀이 이보다 더 크고, 또  '증거하는 것은 성령과 물과 피니라' 하는 그 말씀이 둘째 아담에게 속한  말씀으로서 크고 그 범위가 넓지 그 외에는 이만큼 넓은 말이 없습니다. 이런 줄  알고 우리가 이것을 연구해야 됩니다.

지금 내가 여러 시간을 말하고 있지마는 무슨 말인지 느끼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가만히 눈감고 명상하고 또 실지 모든 것의 실물을 들어서 이것으로  다 심사해 보고 자기가 실지로 체험하고 경험하는 거기서 느끼지 그리 안 하면  느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지라"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에게 달린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주권되어 있고 거기 달려  있는 것인데 이제는 그것이 제게 달렸어요. '네가 하나님같이 되어서 모든 선악에  대한 걸 하나님처럼, 선한 것 악한 것을 네가 하나님처럼 다 정리하고 처리하고  주권할 수 있다.' 이제 제가 왕입니다. 제가 왕이 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물질이  왕이 됐습니다.

그러면,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동산을 다스리라, 지키라' 하는 것입니다.

다스리라 말은 자기의 움직임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지키라 말은 자기의  존재에 대해서 하는 말입니다. 자기 확보, 자기 파수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파수라니? 무슨 말인지? 안보라니? 무슨 말인지? 안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에 자기가 끼어 있는 그것이 자기  안보입니다. 그것이 자기 파수요. 그것이 자기가 만물을 보호하는 안보자입니다.

만물에 대해서는 자기가 안보자요 자기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자기의 안보자요.

자기의 위치, 자기 소속, 자기의 처소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하와에게 '아담 하와야, 모든 것을 지키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모든 것과 하나님과 인간 서이 있는데 어떤 줄로 서 가지고 있습니까? 누가  제일 위입니까? 누가 제일 위에 있지요? 하나님이 제일 위에 있어요? 어떻게  하나님이 제일 위에 있어요? 군대가 천 명이 있는데 하나가 있다가 '네가 이 군대를 다 다스리고 지켜야  된다.' 그러면 제일 높은 자가 누구요? 그 명령하는 자 아닙니까? 그 다음에 높은  자는 누구지요? 그 명령을 받은 자 아니오? 그 다음에는 누구입니까? 남은  군인들이지요.

하나님이 제일 위에, 그 다음에 자기, 그 다음에 모든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아무것도 끼이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첫번째 명령하시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지금 만물과 사람과 하나님과 셋이 있는데 어떤 줄로 서 가지고 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과 가깝습니까 뱀과 가깝습니까? 어찌 되어 있습니까? 처음에는 하나님, 사람, 뱀 이렇게 사람이 가운데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키라는 것을 지키지 않으니까 그 다음에는 어찌 되었습니까? 양쪽에는  하나님과 사람, 가운데는 뭣이 들어 있습니까? 뱀이 들어 있어요. 이것이 멸망인  것입니다.

네가 어떻게 존재해야 되느냐? 네가 어떻게 움직여야 되느냐? 이것을 영원  불변적으로 회복시켜 놓은 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것은 이것을 복구해서 영원 불변적으로 복구시킨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이요 이 대속을 완전히 입은 것은 중생된 영입니다.

중생된 영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아무것도 끼우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진리를 끼웁니까?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진리를 끼우지 않습니다. 진리는  하나님과 자기를 결박시킵니다. 또 어떤 것으로 피동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만 피동됩니다.

하나님으로만 피동되는데 진리의 결박으로 진리대로 피동됩니다. 진리는 하나님이  움직이는 역사요 인격이 아닙니다. 진리는 인격 존재가 아니오. 하나의  이치입니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결합된 이치입니다. 결합되기를 진리로  결합됐어요. 하나님에게 피동되는데 진리라는 이치대로 피동됩니다. 이것이  영생이오. 이것이 믿음이오. 이것으로만 구원됩니다.

지키지 않으면 그 다음에 뱀이 옵니다. 뱀 오면, 어떤 자가 뱀에게 말려  들어가느냐? 간교한 자들이 말려 들어갑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용이 입에서 강물을 토하니까 모두 다 거기 빠져  죽어버립니다. 그런데 땅이 입을 벌려서 물을 삼켜서 사람들이 죽지 않게 합니다.

그 땅은 도덕성을 가리켜 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과, 인간과 인간과의 도덕성을  가진 자는 용이 위협하고 미혹시키는 거기에 떨어지지 않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해 놓은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 둘을 지켜야 뱀 접선이 안 되지 그렇지 않으면 뱀에게 접선이  됩니다. 뱀이 접선되면 그 뱀은 어떤 자를 잡고 일하느냐? 간교한 자를 잡고  일합니다.

간교한 자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을 높이는 것 같지마는 실은 자기 높이는  일을 합니다. 그것이 표리가 부동한 간교입니다. 또 다른 사람을 높이는 것  같지마는 실은 자기를 높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 같지마는 자기를  위합니다. 하나님 위하는 것 같지마는 자기를 위합니다.

그리 되면 제 딴에는 지혜롭게 한 줄 알았는데, 남을 위하는 것같이 해 가지고  자기를 위하고, 남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같이 해 가지고 자기 목적을 달성하고,  하나님 높이는 것같이 해 가지고 자기를 높이고 이랬는데 마지막 종착은 제가  어떤 자가 되어지느냐? 만물의 종이 되어집니다. 저는 만물을 위하는 자가  되어지고야 맙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뒤집어져서, 하나님 다음 위치를 가지고  있던 인간이 만물 밑에 밟혀서 만물의 때와 같이 만물의 종이 되어집니다. 이렇게  자기를 천하게 만듭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란 놈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은 인간을 자꾸 올립니다.

그러니까 인간 타락은 올라가다가 떨어진 것이 인간 타락이요 천사의 타락입니다.

그러기에 멸망은 올라감으로 타락해서 멸망받는 것입니다. 멸망으로 가는 길은  전부 올라가는 길이오. 저 높이는 길, 올라가는 길, 영광, 존귀한 것, 좋아지는 것...

이런데 결과는 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살리는 길은 내려가는데 자꾸 올라갑니다. 낮추는데 올라가고, 주는데  부자 되고, 억울하게 욕 얻어먹고 참는데 복수는 강하게 되어지고, 정복을  당하는데 정복을 하고, 죽는데 살고,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입니다.

뱀의 하는 일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뱀이 하는 일은 간교입니다. 내가 늘  말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해요. 간교한 인간들 많아요. 그 간교 빼기  전에는 아무리 해 봤자 헛일입니다.

'이것을 다스리라, 지키라' 했습니다. 이것 지키지 않는 자는 아무리 해 봤자  마귀의 일만 하고 말지 제 일은 하지 못합니다. 마귀가 와서 무슨 일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대해서 진실성을 희미하게 해 버립니다. 정확성을 희미하게  해 버립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시고 진실하시고 절대 불변이시고 영원하신 분인데  여기 대해서 그렇지 않다는 에누리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지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지음 받았고 하나님으로 인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면 죽습니다. 이런 인간인데 인간에 대해서 정확성을  다 흐리게 해 버립니다. 이러니까 인간이 독립자가 되었습니다. 자존자가 돼  버렸어요. 제가 하나님처럼 자존자처럼 되었습니다. 창조자를 떼 내버리니까 제가  자존자지요. 주권자를 떼버리니까 제가 주권자지요. 하나님께 속해야 살 것을  떼버렸으니까 제가 독립자가 되어버렸지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에누리하게 만들고,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 대해서  에누리하게 만들고, 그 다음에는 모든 자기 밖에 있는 만물에 대해서 에누리하게  만듭니다. 정확성을 잃어버렸다 말입니다. 사이비하게 만든다 말입니다.

요것을 눈을 떠서 알면 오차 한잔 사 주고 살살 말할 때에 '사탄아!' 그게 있어야  됩니다. 그게 없으면 안 됩니다. 그 불이 있어야 돼요. 불의를 볼 때는 자기 뒤에  칼을 숨겨 쥐며 있을지라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불의라도 인간에게 대해서 하는 불의와 물질에 대해서 하는 불의와 하나님께  대한 불의, 진리에 대한 불의가 달라요. 물질에 대한 불의보다도 인간에 대한  불의가 더 크고 악하고, 인간에게 대한 불의보다 진리에 대한 불의가 더 악하고  크고, 진리에 대한 불의보다 하나님께 대한 불의가 더 악하고 크고 큽니다.

아직까지는 우리 공회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받을 것이요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공회를 허는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허는 것입니다. 진리를 허는 것 아니면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허는 것이오. 이게 막바로 사탄입니다.

그걸 알아야지요. 그걸 미워할 줄 모르고 자기의 형편에 동감이 됐다고 해서...

이번에 여러분들이 우리 공회에 행정이 잘못됐다, 행정이 틀렸다 하는 것 있으면  행정 틀린 걸 다 기록해 내 주십시오. 돌아앉아 입으로 말은 하면서 틀린 걸  기록해 내지 않으면 뱀입니다. 두말 할 것 없이 뱀이오. 간교한 자입니다. 뱀으로  명패를 딱 붙여야 됩니다.

제게 무엇이 와도, 칼이 와도 붙일 것입니다. 회개 안 하면 붙일 것이오. 명패를  붙일 것이오. '이것은 뱀이다!' 하는 걸 내가 선언할 것입니다. 왜? 하고 나서  '이렇고 이렇기 때문에 뱀이다.' 하는 걸 내가 말을 할 것이오. 이번에는 말하고  우리가 고칠 것을 고치도록 해야 할 것이오. 자기에게 대해서 에누리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모든 만물에 대해서 에누리합니다. 그 다음에는 선악과 먹었어요.

듣든지 말든지 나로서는 다 증거했습니다. 듣고 가서 연구하도록 하기 위해서 다  말을 해 버렸어요. 그만큼 해도 모르면, 말해도 모르면 그걸 자기 스스로는  개봉한다는 것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제가 엊저녁에 말 들으니까 순복음교회서 지금 서부교회에  전도사가 둘이 파송돼 가지고 있으면서 낱낱이 다 기록해서 보낸다고. 미국에  있는 어느 순복음교회서 설교하는 걸 보니까 제가 설교하는 원고 그대로 하기  때문에 그걸 이상하게 여겼다고.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우리와 같이하지 않는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냅디다. 그것 금지해야 안 됩니까?' 하니까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서  나를 훼방할 자가 없으리라 대적하지 아니하는 자는 환영하는 자요 환영치 않는  자는 대적하는 자이니라.' 요것을 말씀했습니다.

이러든지 저러든지 어쨌든지, 니고데모가 밤에 온 것과 같이 다른 사람 이목과  위신이 있어서 나타나기를 주저하면서 해도, 자기 위신을 어째 지키든지  지키면서라도 그 진리가 좋고 탐이 나서 어떻게 하든지 애를 써서 그래 들어  가지고 가면 고맙습니다. 어쨌든지 전해지면 됩니다.

설교하나를 받아내려면 설교하는 시간까지는 조려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전하라 하시는지, 성경을 가르치면 가르칠 수 있지마는, 어느 성경이든지  가르치려면 가르칠 수 있지마는 설교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그것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으로 자기 전부를 삼아 있으면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밖에 나올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 전부를 삼아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타나는  것은 전부 아버지만 나타납니다.

그게 나타나면 모든 열방을 파괴도 건설도, 뽑기도 심기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그런 능력 있는 말이지만 인간 제까짓 말이야 박사 말이면 뭣할 것이며,  개혁가 말이면 뭣할 것이며, 어떤 위대한 말이면 뭣할 것입니까? 그런 것이야  인간 말이니까 인간 말이면 뱀 말이지 딴 말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그런 인간  말을 안 하려고 하니까 그렇게 힘드는 것입니다.

원고를 기록하지 못하고 원고 없이 설교한다 하니까 '헤, 우리는 원고를 쓰니까  이렇게 힘이 드는데 원고 없이 한다는 것 보니까 그런 사람은 놀고 먹는가 보다.'  이래 생각합니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OOO목사님이 전에 '목사님은 집 지으면서, 이리 저리  다니면서 그게 설교 준비하는 것인데' 이러면서 시장에 돌아다니고 양사방  돌아다니고 그래서 '왜 그러느냐?' 하니까 '이게 내나 설교 준비하는 것이라'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런데 은혜가 나와야지요? 나중에 굴에 들어앉았으니까  은혜가 왔지요.

원고를 쓰려 해도 원고 쓰면서 생각하니까 '이게 정말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인가?' 생각해 보니까 또 헛일됩니다. 또 시작했다가는 또 헛일이오. 마지막에  설교하는 그 시간까지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그 시간에 하실 말씀이 무엇인지 이것을 바로 찾으려 하니까 그  시간까지 안 돼요.

하나님이 증거하라 하시는 것, 요걸 계속해서 증거하라 하는 것을 받아 가지고  있을 때에는 계속 증거니까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마음대로 할 수가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그 말씀이 무엇인지 그걸 찾으려 하니까 그  시간까지 졸여지지 않으면 안 돼요.

어떨 때에는 설교 시간 10분 남았는데도 그것을 몰라요. 자, 시간은 됐으니까  사회자가 나와서 '하나님 말씀 읽고 하나님 말씀 증거할 것입니다.' 했는데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뭐인지 몰라요. 나와 서는데 하나님이 안  주시면 그것 광고할 수밖에 없어요.

안 주시면 '이 시간 도무지 무슨 말씀 증거할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지  않으시니까 설교를 못 하겠습니다.' 그 말밖에는 할 말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고 주셔요. 주시면 그 시간에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으로 자기의 전부를 삼아 있으면 자기에게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것밖에  더 나오겠습니까? 말은 하나님의 말 나오지요. 행동은 하나님의 행동 나오지요.

소원은 하나님 소원 나오지요. 자기가 하나님의 것이 완전히 되어 있다면  하나님의 것을 누가 쓰겠습니까? 하나님 외에 누가 쓰겠어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쓰지 못합니다.

마귀란 놈도 쓰고, 만물도 쓰고 이런 것 저런 것이 다 쓰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  되어지지 아니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다른 것들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으로 인하여 동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 아무것도  끼우지 않고 하나님과 나와 맞붙어 있고 그 다음 만물이 내 다음에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것을 떠났을 때는 마귀가 접선됩니다.

이게 한번 되면 항상 그리 돼 있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했다 육체로 마친다'  했습니다. 됐다가 깨졌다가 됐다가 깨졌다 이래 되는데 이것이 계속되어지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뱀이 접하지 못해요. 하나님으로만 동하는데 뱀이  오면 그대로 두겠습니까? 또 하나님과 하나돼 가지고 뱀이 와서 접했으면 무슨  상관 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다스리라 지키라 하신 이 본 지위를 우리가 다시 회복을 해야  되겠는데, 여기 가서 살아야 되겠는데 여기서 살려고 하면 가는 길이 무엇입니까?  가는 길은 에누리하는 것을 정리해야 됩니다. 에누리한 것을 정리해서 에누리한  것을 차차 차차 진실로, 확고한 견고한 것으로, 불변성으로 절대성으로 자꾸  옮겨져 가야 되겠다 말입니다. 이것이 자기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에누리했습니까? 몇 가지 에누리입니까? 세 가지 에누리입니다. 이  세 가지에 대한 진실성을 찾아야 됩니다. 확고 불변성을 찾아야 됩니다. 이래서  이것이 자기에게 절대성이 되어졌다면 그 다음부터의 행동은 다 영생입니다.

이 에누리한 것을 어떻게 진실로 바꾸겠습니까? 에누리를 어떻게 정확으로  바꾸겠습니까? 부인을 어떻게 절대 불변성으로 바꾸겠습니까? 하나님에게 대한  절대성 불변성 진실성을 이것을 찾으려면 어디 가서 찾아야 되겠습니까?  성경에서밖에는 찾을 데가 없습니다. 성경에 가면 있습니다. 성경에 가면  찾아집니다. 이 진실이 자기 주관으로 느껴져야 합니다. 성경에 가면 하나님께  대한 진실이 다 기록돼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진실이 다 기록돼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법을 어기면 죽는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결합이  되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제것 된다고 기록해 놨어요. 그게 진실입니다.

그것 절대성이오. 그게 불변성이오. 이게 믿어집니까? 이게 인정이 되어집니까?

우리에게는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에 '이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를, 권찰회 때도 요것만  기도하기를 몇 천 번했습니다. 그래도 '그 말은 항상 하는 말...' 이래 생각하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 말밖에는 할 기도가 없습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 안에 내게 대한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내게  대해서 좋은 것은 천하에 있는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뜻 안에 내게 대한 제일  좋은 것이 들어있습니다. 그게 보배입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말해 놨지마는 이걸 다 에누리합니다. 자기는 하나님께 지음  받았다는 이게 절대성이오. 가감 못 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만 살 수 있다는  것이 절대성입니다. 하나님 말씀 어기면 죽는다는 게 절대성이오. 인간에게 대한  소망 약속한 것도 절대성입니다. 에누리 없습니다.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에게 있는 것, 인간의 행불행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 이것도  에누리 없습니다.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것 아닙니다. 이것을  가감할 수 있습니까? 아니오. 모두가 다 절대성이오. 진실성이오.

진실성이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인간이 듣기에 그렇지 진실성이라 말은  불변성이라 말입니다. 불변성이라 말은 완전성이라 말이오. 진실은 완전성이요  불변성이요 영원성이요 절대성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기록해 놨는데, 하나님께 대해서, 인간에게 대해서, 제게 대해서, 제  행동에 대해서, 모든 사물에 대해서 이렇게 다 기록해 놨는데 암만 읽어도 그게  자기라는 주관에 인정이 되어져야지요? 지식으로서는 인정이 되니까 입술은  말하지만 제게 믿어져야지요? 확신이 되어져야지요? 이게 안 되는 줄 알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확신을 달라고, 확신이 안 될 때에는 확신을 찾기  위해서 죽을 만큼 노력도 하고 밥도 굶고 야단을 지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에누리를 회복하면 이게 무엇이냐?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이오. 바로 그것이 하나님과  맞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천으로 만으로 말해도 마지막은 구슬 하나  꿰는 것처럼 하나뿐입니다. 하나입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거짓부리를 회개하지 않으면 진리는 그 속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너희들 속에 있을 곳이 없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를 판다' 이랬습니다.

선악과를 누가 안 먹을 수 있는가?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에 대해서 에누리하는  것을 다 벗어버려야 됩니다. 이것을 다 회개해 버려야 됩니다. 이러면 뱀이라는  놈이 있을 곳이 없어서 가버립니다. 뱀 물러가면 천사가 돕습니다. 이러면  하나님과 연결이 바로 되고 그리되면 하나님이 먹으라는 것은 먹고 먹지 말라는  것은 안 먹을 수 있습니다. 하라는 것은 다 할 수 있습니다. 순교하라면 순교할  것이요, 감옥에 들어가라면 감옥에 들어갈 것이요, 어떤 고문과 고형이라도  당하라면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구별해서 하나님이 당하지 말라는  고생은 안 당할 것입니다. 원하는 것도 정확하고, 비판 평가도 정확하고, 행동하는  것도 정확하고 모든 것이 정확합니다. 그래야 영생이지요.

기독교 방송에 어떤 박사라는 자가 영생을 말하는데, 영생이 어떤 게 영생이냐?  '모든 인간계와 물질계에 들어와서 이것들과 잘 화합해 가지고 사는 그것이  영생인 줄 압니다.' 기독교 방송에 그렇게 방송합디다. 그래서 저는 그 방송하기를  싫어합니다. 왜? 다 에누리가 돼 버려요. 다 사이비한 것만 나오는 그런 곳이기  때문에 부패한 말은 잘 들리고 이런 것을 말해 봤자 알아듣지 못합니다. 몇  시간이나 직접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데 거기 가서 말하면 그 사람들이  알아듣습니까? 박태선이 이제는 '하나라.' 하는 그걸 들고나옵디다. 박태선은 뭘 주장했는고 하니  '예수님은 몰랐다. 내가 알지 예수님은 몰랐다. 예수님이 만일 죄를 알고 의를  알고 구원을 알았더라면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죄인이다.

우리에게 구원에 유익을 주지 못하는 인간이다. 그는 음행자다. 야곱도 믿음의  조상인데 뭐 의인이라? 그는 음행자다. 다윗이 무슨 우리에게 신앙에 본보일 데가  있느냐? 그는 음행자다.' 우리가 성경에 지금 믿는 그 모든 신앙의 선지 사도들은 다 죄인으로 정죄하고  '예수님도 몰랐다. 몰랐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치지 못했다. 가르치지 못하고 다  의인으로 인정했다. 이랬는데 내가 이것 알려고 30일씩 금식하기를 열두 차례인가  하고 또 얼마를 하고 이렇게 금식해서 내가 깨달았다. 현재 교회들에게 정말로  구원이 있나? 예수가 알고 가르쳤나? 예수도 이걸 몰랐었다. 40일 금식기도 한  번밖에 못했는데 그래 가지고 되나? 나는 30일씩 열두 번했다.' 이렇게 기록을  했어요.

그것 봤습니까? 국제기독교신보라 하는 그 신문에 났습디다. 아마 그것은  전도관에서 경영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거기 기이한 것이 다 기록돼 있습디다.

그것도 자꾸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누구 말 듣겠습니까?  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을 모든 사람이 성경보고 인정하기가  쉽습니까 박태선이 말하는 말이 인정하기 쉽습니까? 어느 말이 쉽습니까? 그게  쉽습니다. 아브라함은 죄인이요 의인입니다. 죄인이요 의인이라는 그것을 어떻게  영감 아니고 알 수가 있습니까? 박태선이 아직까지 다 모르고 그것만 봐서 그렇지 예수님의 족보를 봤으면 더  호령을 치고 나올 것입니다. 이게 세상이오. 하나님이 이렇게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거짓부리자는 자꾸 거짓부리 되도록 합니다. 진실이 없이 실행하지 않는  자는 자꾸 미끄러지게 합니다. 실행하려 하지 않고 말만 가지고 날뛰는 자는  망하도록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그렇게 빠져 들어가도록 만드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서 에누리를 다 벗어야 됩니다. 지식적으로 에누리를  벗어야 되고, 자기의 주관적으로 감정적으로 에누리를 벗어야 됩니다.

에누리를 벗는 데에는 기도하지 않으면 에누리를 못 벗습니다. 성경과 기도로  이것을 벗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정확성이 완전히 회복이 된다면, 하나님과  하나님 행사에 대해서 정확성이 완전히 회복이 된다면 그분이 나 좋아하는데  딴것 취할 게 뭐 있겠습니까? 그분이 나를 책임지는데 염려할 게 뭐 있겠습니까?  그분과 결합이 되는데 달리 원할 게 뭐 있겠습니까? 이것이 전부 에누리로  인해서 자기 망치는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왜 에누리가 되느냐? 그 둘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에누리됩니다. 에누리된 것은  정확성이 없는 것이 하나님께 대해서 이것이 이렇게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어지면 내 행동이 다를 건데, 내가 다르고 내 행동이 다를 건데 믿어지지 않는  것은 벌써 이것은 뱀에게 침범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정 사실로 알고  여기서 발버둥을 쳐야 됩니다. '그렇지마는 자기는 안 그렇다.' 그게 가증스러운  사람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저 연구 과제밖에는 안 주는 것이니까 가 가지고 깊이 깊이 여기 대해서, 배암의 이 간교성, 하와의 간교성, 이것을 바로 깨닫도록 여러분들이 노력을 해야 되지, 그저 녹음기 모양으로 기억해 가지고서 그대로 말만 하면 되는 줄로?

  선지자선교회

근 삼십 명이 이번에는 다 부흥사로 가 가지고서, 말씀은 증거를 잘해서 다 은혜를 받았다 하는데, 그 배암하고 배암하고 둘이 모이니까 이 사람은 저 사람 높이고 저 사람은 이 사람 높이고 하나님 잘 팔아 먹어서 감염은 다 잘 받았어. 순회 가 가지고서 감염받지 안 한 사람이 별로이 없어. 많이 없어. 회개해야 됩니다.

 

저거끼리 높이면 얼마나 올라가겠소? 하나님이 섭섭해하는데, 떨어질 것은 파묻혀서 죽을 것밖에는 없는 것인데, 그 결과는. 그러고 제가 그 엊저녁에 도안한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이런 면을 좀 생각해 보라 그말입니다.

 

이런 면을 생각해 보라는 것으로 그래 한 것이니까, 그대로 하라는 게 아니고 이런 면에 대해서 좀 연구를 해 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다음에 모일 때에 거기 대해서 어쨌든지, 우리가 처음에는 바로 되지를 못하니까, 또 하고 난 다음에 또 새로 또 고치고 고치고 이래서 자꾸 바른 것을 찾아가려는 이 향방만 바르면 결국은 온전해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 갑시다.

 

오늘 아침에는 벌써 여섯시가 됐는데, 권찰회 모일 시간이 없겠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모여봤자 그겁니다. 어쨌든지 분구된 구역장들은, 온 가족이 단합이 돼 가지고서 그 가정에 영광스러운 직책 하나 맡긴 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이 일을 첫째로 노력하십시오.

 

권찰회에서 의논한 것은 하나님의 대리자들이라고 그대로의 흉금을 털어놓고 다 남의 개인 일도 다 말하는 것이니까, 책임지고 기도하지 거게 들은 말을 다른 데 가서 말하면 그것 귀신 됩니다. 마귀 됩니다.

 

그러고 자기 맡은 식구를 강단에서 설교하는 설교를 잘 들어서 강직하도록 노력하고

자기가 그 사람들에게 왕되어 가지고서 자기 중심으로 배암 노릇해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왕노릇 하는 그런 짓 하지 안 하도록 그것 주의하고,

 

학습 세례 준비하는 이 준비를 잘 시키고, 또 성찬을 먹는데도 깨끗이 잘 준비하도록 준비를 시키고, 주일학교 학생들 분반, 또 중간반 그 졸업반들 모두 이양하는 것, 또 장년반 그 권찰님들에게 이렇게 분구하는 것, 이런 면이 지금 다 한테 집합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대단히 좀 힘들고 바쁜 때입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이 일을, 일의 가치를 알고 시기를 알면, 잠을 못 잘 만치 바쁘고 지금 중요한 시기일 것이오. 여게 대한 가치를 모르면 둥둥둥 아무 일도 이 일도 할래야 손 안 잡히고 이러니까 아무 일도 할 일이 없을 것이오.

 

그러니까 그런 일만 주력해서 하면 되니까, 오늘 아침에는 권찰회 없습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가서 벌써 지금 여섯시 일분 전입니다. 이러니까 권찰회 없겠으니까, 권찰회 해서 말할 것을 여기서 다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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