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리고 지키라

 

1981. 2. 13. 밤 (금)

 

본문:창세기 2장 15절∼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3장 1절∼7절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기독교의 구원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의지 편에서는 영원 전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존하심에서부터 시발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 세계 곧 창조  이후의 세계에서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우리의 구원은 발족을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에덴동산은 역사 세계의 기독교 시발이라 근원이라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시발이 잘못되면 시간이 갈수록 잘못은 커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시발부터  잘되어야 하고, 시발에 잘된 것도 가다가 중간에 삐뚤어지기가 매우 쉬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 역사 세계의 시발이요 발원이 되는 인류 타락에 대한  이 계시 깨달음이 바로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은 다 삐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이단들의 대부분은 창세기 인류 타락 여기서부터 시발된 것들이  많습니다. 모든 이종교들과 기독교의 혼합 혼돈 문제도 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의 의지 세계, 하나님의 자존 세계 거기는 이종교들이  생각지도 따르지도 또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다 일종의 신화나  미신처럼 그렇게 부인하고 이것을 생각할 만한 그런 영면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밤에도 이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우리들은 여기 대한 영감이  부족합니다. 깨닫는 것과 느끼는 것이 권능 있게 우리의 참 복음이 되기까지  깨닫지 못하는 그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인류 시조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은 그것으로  인해서 그와 그 자손이 다 사망하게 됐습니다. 그때 첫 아담 하와를 꾀었던  악령은 지금도 그 악령입니다. 내나 그 사탄이, 그 마귀가 지금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은 요소를 받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요, 또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요소도 받아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첫째 요소의 것을 다 사망의 것 옛사람이라고 말하고, 둘째  아담에게서 받은 요소를 새사람이라, 하나님의 자녀라 그렇게 말합니다. 처음의  것은 마귀의 자식이라 그렇게 성경에 가르쳤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은 새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또 새사람으로 사는 그 생애가 세상 빛이요 덕이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첫째 아담의 요소로 사는 그것이 범죄요 사망이요 영원한  수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마귀는 지금도 우리의 옛사람의 요소를 가지고 꾀어서 하와를 꾀고 차차  아담을 꾄 것과 꼭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꾀어서 멸망시키려는 것이 악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 이하에 있는 지나간 이 모든 일들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첫 아담이 실패한 것과 같이 실패하지 아니하고 둘째  아담이 승리한 것과 같은 승리를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때의 마귀의 전법이나 지금이나 꼭 같습니다. 껍데기 모양을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뒤집어쓰고 나오는 것은 다르지마는 속에 이치는 꼭 같습니다. 우리가  그들이 타락한 이치를 배우는 것은 우리가 타락되지 아니하려는 것이요, 또  그들이 타락하지 아니하려면 어떻게 하였으면 된다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타락되지 않고 승리케 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타락하게 된 순서는 하나님의 명령 세 가지를 어긴 데에서 타락했습니다.

'동산을 다스리라, 동산을 지키라, 모든 과실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은 먹지 말아라 그러면 반드시 죽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요 곧 영생인  것입니다. 이것을 버려서 그들은 영생을 빼앗겼고 대대로 영원한 사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어릴 때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형식을 가지고 가르치던 것을 신약 시대 와  가지고는 아주 신령한 것으로 우리에게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기의 현실과 같은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살게 하신 곳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현실 현실은 먹고 마시고 뛰놀기 위해서 주신 것 아닙니다.

에덴동산과 꼭 같이 우리의 현실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현실을  다스리고, 지키고,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먹고 금하시는 것은 먹지 않는  그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에덴동산과 꼭 같은 것인 것을 우리는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이  현실에서 영생도 이룰 수 있고 이 현실에서 사망도 이룰 수 있는 이 두 가지의  결과를 맺을 수 있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인류 시조가 에덴동산에서 한 번 잘못함으로 영원한 사망을 받은 그 율법과 같이  오늘도 잘못한 그것은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 잘못된 그  요소는 영원 멸망이요, 바로 된 것은 영생인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영생도 이룰  수 있고 영원한 멸망도 이룰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가 반드시  결과를 맺고야 마는 우리 현실들입니다.

동산을 다스리라 하신 것은 동산에 머무는 그들이 그 동산을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그것들에게 다스림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에덴동산에 행동해야  될 그들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에덴동산에서 행동해야 할 그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도 우리의 현실에 우리의 움직임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우리 현실을 대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명령하셨든지  명령하시는 그대로 우리 현실에 대해서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로  명령하신 명령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 피동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을 현실에 대해서 행하는 것이 이것이 다스리라고 하시는 이  명령을 우리가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로 명령하신 것입니다.

둘째로는 동산을 지키라 했습니다. 동산을 지키라는 말은 동산을 호위하라, 동산을  파수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지켜 주심을 받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가지고 동산과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지켜 보호하여야 합니다. 그들은 동산에게  호위를 받는 동산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속하여 하나님의 호위를  받는 그들로, 하나님에게만 호위를 받는 그들로 그들 밖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그들이 호위해야 하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랬는데 그들은 첫째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둘째 것을 지키지 아니함으로,  하나님과 저희들과 둘이 결합된 이 결합으로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것을  연결해야 될 그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는 뱀이 들어와서 끼었고 하나님과  사람이 직접 관련을 가지고 있는 그 관련이 끊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와의  둘째 실패입니다.

이 둘을 범하고 난 다음에는 셋째로는 뱀이 들어왔습니다. 뱀이 온 것은 남은  하나님의 계약,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도록 하기 위해서 뱀이 온 것입니다.

첫째와 둘째를 그들이 지키지 못함으로 셋째를 범하게 하려는 뱀이 왔습니다.

첫째와 둘째를 지켰으면 뱀은 그들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또 나타나면 반드시  지배를 받아야 할 것이고 또 하나님과 한 덩어리 되어 있는 그 사람에게 뱀은  소속한 존재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첫째 둘째를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의 현실에 첫째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우리 현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움직일까 하는 이 움직임은 하나님의 명령에 다스리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이 순종으로 현실에 대해서 행동해야 됩니다. 우리는  현실에 행동할 때에 하나님으로 인한 행동, 하나님에게 피동된 그 피동으로  우리의 현실을 상대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지키지 못할 때에는, 우리가 그것을 다스려야 할 터인데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것들에게 능동이 돼야 할 터인데 그것들이 우리에게 대한  능동이 되어짐으로 우리는 그것에게 피동되는 자가 되기 쉽습니다. 이것은 벌써  사망의 행동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라 하시는 대로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현실에 사람이든지,  권세든지, 죽음이든지, 생명이든지, 어떤 영광이든지, 쾌락이든지, 가까운 자나 먼  자나, 친한 자나 어떤 것이라도 우리 환경에 몰아쳐 오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피동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에게 명령받은 대로 하나님에게 피동된 그 피동  그대로 그에게 대해서 상대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 그대로 순종하는 그  순종을 자기 현실에 대해서 해야 됩니다.

만일 어떤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라 할지라도,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는 천사에게  피동될 수 없는 자입니다. 주님에게 피동되는 그 피동으로 천사를 상대할 것이요,  그 피동대로 천사를 배척하라면 배척하고 천사에게 순종하라면 순종하고,  천사에게 하나되라면 하나되고 대립되라면 대립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시하시는 대로 명령하신 대로 그대로 우리는 거기 대해서 행하여야 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있는 크고 작고 많고 적은, 모든 영광이나 권세나 두려운 것이나  죽음이나 생명이나 어떤 것이든지 그것에게 우리는 피동되지 아니하여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굳게 잡아야 합니다.

그것들을 상대할 때에 하나님에게 내가 피동되는 그 피동으로 그들과 하나님께  피동된 나와의 일치가 되면 한덩어리요 대립이 되면 대적입니다. 외모는 그에게  순종하는 것 같으나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한 그대로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순종이요 그에게도 배치가 되지 않고 일치되는 것입니다.

요것을 첫째로 우리에게 주의 주신 것입니다.

둘째, '지키라' 말은 보존을 말하는 것이요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계시고 그 다음에 나 있고 하나님과 나와 연결된 그 다음에 인간도 두고,  천군 천사도 두고, 만물도 두고, 하나님의 종들도 두고, 죽음도 두고, 생명도  두어야 됩니다.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과 나와 하나가 된 요 존재에서 모든  존재들을 상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나와의 하나되는 이것이 첫째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고  지킬 것은 그 다음입니다. 아담 하와의 다음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고 모든 피조물은 그 다음으로 내가 상관을 가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둘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보존 면이요 존재 면인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천사나 사도나 선지자나 어떤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어 가지고 그를 접해야 되지 만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무엇을 끼워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나와의 간접적인  결합이 되면 이것은 사망이요 패전인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지키지 못했을 때에 그 다음은 사망의 원인이 되는 선악과 먹는  일만 남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뱀이 들어왔습니다. 이 두 가지는 자신  태만으로 인해서 지키지 못했지 뱀이 와 가지고 지키지 못하도록 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피조물도 방해할 수 없는 피조물 이상의 위치입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인간을 존귀하게 지으셨기 때문에 천군 천사도 그 다음이요, 모든  영물들도 그 다음이요, 모든 존재들도 다 그 다음이요, 모든 사람도 자기와  하나님과 결합된 그 다음인 것입니다. 이것을 누구의 유혹으로가 아니고 스스로  그들이 지키지 아니함으로 그 다음부터 다른 피조물의 피해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기독자들이 이 두 가지를 지키는 데에서 하나님이 먹으라는 것만  먹을 수 있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것은 먹지 않을 수가 있지, 이 둘을 지키지  못한 그자는 제가 하나님이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마는 그것은 다 허공을 치는 것입니다. 마치 발람이 어그러진 길을 간  후에 계명 지키는 것과 꼭 같은 것입니다.

우리 기독자의 구원은 어디서 이루어지는가? 움직임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움직임, 자기의 위치가 하나님과 자기와 연결된 그 다음 모든 피조물의  위치를 두는, 위치를 바로 가지고 움직임을 바로 가지는 요 범위 내에서만  영생이라는 것은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떠나서는 어떤 충성, 어떤 위대, 어떤 열심,  어떤 간절이 있다 할지라도 모든 것은 다 사망입니다. 모든 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요 두 가지를 지키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다른 것이 범할 사이 없이 그 다음  접촉된 것은 뱀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새기고 새기고 평생 새겨야 합니다.

다스리고 지키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만 구원이 이루어지지 이것을 떠나면  그 다음부터는 마귀 노릇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마귀 놀음이오. 아무리 열심  있어도 소용없고, 충성해도 소용없고, 위대해도 소용없고, 큰 일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것은 다 마귀에게 이용당해서 심판거리만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 짓는 것, 모래 위에 집 짓는 것, 다 성공 같으나 실패, 사는 것  같으나 죽는 것, 주를 위하는 것 같으나 주의 원수된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요 두 가지에서만 우리의 구원은 있습니다. 요 두 가지를 떠나서는 우리의 구원은  없는 것을 우리가 굳게 잡고 명심해야 됩니다.

자기의 현실을 다스리고, 자기 현실을 주님과 자기와 연결된 그 다음에 두는 두  가지를 지키면 에덴동산에 먹으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먹게 되고 먹지 말라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필연적으로 안 먹게 됩니다. 요 두 가지를 지켰을 때에는  먹으라는 것은 먹었고 먹지 말라는 것은 안 먹었습니다. 요 두 가지를 지키지  못했을 때에 그는 하나님이 먹으라는 것과 먹지 말라는 데 대해서 지키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 하라는 이 두 가지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  그때나 오늘이나 꼭 같습니다.

이렇게 뱀이 왔을 때 뱀을 접했을 때에 그들은 어떻게 됐는가? 하나님은 정확성  절대성 진실성인데 뱀을 접하게 될 때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에누리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에누리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하나님이 거짓말합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는  절대성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감시키는 것은 절대요,  이는 무한의 진실이요, 영원 불변이요, 완전이요, 절대입니다.

이런데 이것이 우리에게 에누리되어지는 것이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에누리가  되어지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도 정확성이 흐려져 버리고, 절대성이 없어져  버리고, 영원 불변성이 없어져 버리고 그만 그렇게도 보이고 그렇지 않게도  보이고 이래서 희미해지는 것, '정말로 그렇게까지 그렇겠나?' 이렇게 절대성이  흐려지는 것, 정확성이 흐려지는 것, 영원 불변성이 흐려지는 것입니다. 흐려지는  에누리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자기와 자기 행사에 대해서 에누리가 생겨집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깎아 내리고, 삣어 내리고 끌어내려서 에누리가 되어지고, 자기는 자기  위치를 과대 평가해서 올라가고 올라가 가지고 이렇게 에누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했는데 '죽을까 하노라' 요것이 에누리한 것입니다. 요게  벌써 잊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모든 만사물관이 에누리됩니다. 모든 만사물관과 만사물에 대한 것이  에누리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나오느냐? 범죄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동산을 다스리라는 것과 지키라고 하신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 뱀 왔습니다. 뱀이 오고 보니,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하시는 역사에  대해서 과거에는 절대성으로, 변할 수도 없고 가감도 없고 절대성이며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인 줄로 알았는데 뱀 오고 난 다음에는 이제 하나님에게 대해서  흐리게 만들어서 절대성이신 하나님이 변하는 하나님으로, 영원한 하나님을  일시의 것으로 자꾸 에누리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은 깎아 내려서 에누리됐고 자기는 치켜올려서 에누리됐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에게 지음 받은 것인데 지음을 받았는지 내가 자존한 것인지, 하나님으로  살 수 있고 죽을 수 있는 것인데 스스로 살 수 있고 죽을 수 있는 것처럼,  자존자처럼 독존할 수 있는 것처럼,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자기에게 대해서는  치켜올려서 에누리가 됐습니다.

이러니까 모든 물건이나 일이나 접하는 모든 만사물들에 대해서 정확성이  없습니다. 물질에는 과학이 있고 모든 인격 존재에는 영원 심판성이 있는 것인데  거기 대해서 전부가 에누리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본질 본성 그대로의 것은  하나도 인정하지 못하게 되고 전부는 사이비한 것으로서 다 흐려지게 됐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선악과 먹는 범죄를 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왜 진실성을 가지지 못하는가? 어떻게 해서 정확성이  우리에게 없는가? 절대성이 없는가? 에누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어겨  범죄하면 영원한 사망을 한다 하지마는 사망이라는 이 사실이 우리에게 절대성  있게, 진실성 있게, 불변성 있게, 영원성 있게 느껴지지 아니하고 인식되지  아니하고 이것이 흐려집니다. 이것이 둘을 지키지 않은 연고입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접한 연고입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선지 사도들이 인식하고 견해하고 비판하고 평가하고  상관하는 것과 우리들이 하는 것이 왜 다른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치는 것을 기쁘고  즐겁게 여겼는데 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조그만 손해도 보지 못하며  조그만 것도 바쳐 살려 할 때에 아까워 살지 못하는가? 이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라면 하나님의 계약,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 하나님의 영원한 보응 이런 것을 말하는데 여기 대해서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안 됩니다. 절대적인 신앙, 영원 불변적인 확신, 소망,  확인 이것이 우리에게 되지 않고 흐려지는 것은 분명히 뱀에게 접한 결과인  것입니다.

자기에게 대해서도, 못 할 걸 다 한답니다. 안 될 걸 다 된답니다. 생각지 말라  했는데 생각하고 싶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싶답니다. 할 수 있는 줄  압니다.

자기에 대한 평가가, 자기의 권위에 대한 평가가, 자기의 제한된 제한이, '너는  요런 범위 안에서 살아라' 그렇게 하나님이 법칙을 줬는데 하나님의 제한된  자기의 범위에 대해서 정확성 있게, 절대성 있게, 확신 있게 인식하지를  아니합니다. 이것을 넘어서 제 생각대로 얼마든지 과장해서 과대 평가합니다.

여기에서 인간이 망하는 것인데 왜 이렇게 되어지느냐? 왜 못할 것을 한다고  달려드느냐? 왜 소원해서는 안 되는 것을 소원하려고 달려드느냐? 뱀에게 접한  그 원인으로 인해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일이나 물건에 대해서 하나님 말씀에 죽는 일이라면 틀림없이 죽는  일인데 왜 죽는 일이라 해도 그저 '정말 죽겠나?' 또 '이는 참으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네 소유가 될 수 있는 큰 수입을 얻는 것이다.' 이래도, 이는  절대성 있고 영원 불변성인데도 '정말로 그리 되겠나?' 이렇게 일이나 물건에 대해서 우리가 확신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정확한 법칙이  있고, 정확한 이치가 있고, 거기 대한 정확한 평가가 있고, 정확한 나와의 관련의  길이 있는데 그것을 혼돈 혼합해서, 흐리게 에누리해서, 제 생각 제 마음대로 해서  에누리를 하게 되니까 그 다음에 하는 행동은 모두가 다 죄가 됩니다. 하나님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 둘째를 지키지 못하면 셋째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절대  지키지 못합니다. 첫째 둘째를 지키지 못하면 자기 구원은 다 헛일입니다. 아무리  힘을 쓰고 애를 쓰고 날뛰어서 유명하게 했다 해도 그것은 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이요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헛일입니다. 첫째와 둘째를 지키지  못하면 셋째 그것은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범하지 않으려 해도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리를 하면

첫째와 둘째를 지키지 않으면 셋째, 뱀이 오고, 마귀가 옵니다. 마귀가 오면  넷째,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이나 예언이나 하나님의 역사나 하나님의 심판이나  모든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정확성이 없습니다. 에누리하게 됩니다.

과대 과소 이래 가지고 하나님을 막 끌어내려서 에누리합니다. 그러고 나면, 다섯째, 자기에게 대해서 에누리하게 됩니다. 제게 대한 정확한 것이 없어집니다.

정확하게 제 가치가 얼마나 되며, 권위는 얼마나 있으며, 어디서 살며, 어떻게  가야 되는지, 자기의 정확한 영원 불변의 길이 있고 불변의 정확성이 다 관련돼  있고 정확성적으로 되어 있는데 거기 대해서 에누리를 하게 됩니다. 자기와 자기  권위 자기 욕망... 전부를 에누리하니까 전부 탈선하고 과장하고 월권하고  남용하고 이렇게 됩니다. 여기서 사욕이니 자율이니 이런 것이 마구 기어  나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정확을 잃어버려 놓으면 자기에 대해서 정확을  잃어버리고, 그리고 나면, 여섯째, 모든 만 사물에 대해서, 먹어야 될 것인지 안 먹어야 될 것인지, 취해야  될 것인지 안 취해야 될 것인지, 버려야 될 것인지 가져야 될 것인지, 좋아해야 될  것인지 좋아하지 말아야 될 것인지, 취미를 붙여야 될 것인지 안 붙여야 될  것인지... 사물에 대한 전부는 다 정확성이 흐리게 돼 버립니다. 그러면 에누리가  되게 됩니다. 에누리한다 말은 흐린다는 말입니다. 흐리게 돼 버려요.

그러고 나면 일곱째, 범죄합니다.

우리는 요 일곱 가지를 알되 다섯 가지는 우리가 그 가운데 있으면서 멸망  가운데 있는 줄 알고 첫째 둘째로 돌아가기 위해서 다섯 가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를 알라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기 전에 '나는 멸망  가운데 지금 있구나. 멸망하고 있구나.' 이걸 알라는 말입니다. 이걸 알아서  우리는 예수님의 피공로를 입어서 첫째 둘째로 돌아가야 됩니다. 찾아가야  됩니다.

이렇게 여섯 가지 순서 다음에는 범죄한 것이 선악과 먹은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게 됩니다. 선악과를 먹게 되면 하나님 중심인 것이 자기 중심으로 바꿔집니다.

하나님 중심이 자기 중심으로 바꿔집니다. 그러면 둘째로 자기라는 것이 주장이  돼 가지고 역사하게 됩니다. 자기 주관이 왕이 됩니다. 그러고 나면 지혜나  법이나 가지는 그 모든 것은 자기의 자율이라는 자기 생각 그것이 자기의 전  지혜가 돼 버립니다. 그러고 나면 다른 모든 것은 보지 않고 제가 만들어 놓은  자기 사욕이 자기의 욕심이 되어져 버립니다. 이러면 그 다음부터는 모두가  거꾸로 됩니다.

바로 되면 하나님 다음에 사람, 그 다음에 물질이 될 터인데 이제 거꾸로 되어서  자기 다음에 하나님 그 다음에 물질이 됩니다. 이렇게 거꾸로 되면 그 다음에는  물질이 제일 위가 되고, 그 밑에 자기, 자기 밑에 하나님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맨 밑에 들어가게 됩니다. 정 거꾸로 되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사물이 거꾸로  보입니다. 전체는 다 거꾸로, 비판도 거꾸로, 평가도 거꾸로, 소원도 거꾸로,  경영도 거꾸로, 행동도 거꾸로 전부 거꾸로 됩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되어  있는지? 세상은 물질이 제일 높고, 그 다음에 사람이 높고, 그 다음에 하나님은 없는  것으로 무신론을 주장하는 것이 되어집니다. 이것이 당장에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위에서부터 타락하는 순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죄악의 되는 광경, 그 속에 빠진 것을 '이런 속에  빠졌다, 저런 속에 빠졌다.'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말하는 것이지 필요 없습니다.

우리의 필요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 우리 움직임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이라야 합니다. 또 하나님과 나와 결합되어 가지고 모든 존재를 접할 것. 이 두  가지에서만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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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54 다섯 종류의 사람/ 민수기 1장 41절-50절/ 880815월새 선지자 2015.10.27
153 다섯 종류의 신앙/ 고린도전서 15장 32절-34절/ 880918주새 선지자 2015.10.27
152 다섯 종류의 하나님의 사람들/ 고린도전서 15장 33절-34절/ 880923금새 선지자 2015.10.27
151 다섯가지 겸한 믿음/ 마가복음 10장 52절/ 870308주새 선지자 2015.10.27
150 다섯가지 준비/ 요한계시록 3장 7절-13절/ 860916화새 선지자 2015.10.27
149 다섯가지 지도/ 마태복음 6장 19절-34절/ 841221금야 선지자 2015.10.27
148 다스리고 지켜라/ 창세기 2장 15절/ 800103목새 선지자 2015.10.27
147 다스리고 지키라/ 창세기 3장 1절-7절/ 810214토새 선지자 2015.10.27
» 다스리고 지키라/ 창세기 2장 15절-17절/ 810213금야 선지자 2015.10.27
145 다시 안식일로 정한 주일/ 히브리서 4장 1절-2절/ 861102주새 선지자 2015.10.27
144 다시 안식일로 정한 주일/ 히브리서 4장 3절-10절/ 861029수야 선지자 2015.10.27
143 다시 정한 안식일/ 히브리서 4장 7절-8절/ 861026주새 선지자 2015.10.27
142 다시 정한 안식일/ 히브리서 4장 1절-2절/ 861105수새 선지자 2015.10.27
141 다윗의 열쇠/ 요한계시록 3장 11절-13절/ 810606토새 선지자 2015.10.27
140 다윗의 열쇠/ 요한계시록 3장 7절/ 810605금야 선지자 2015.10.27
139 다툼과 허영으로 하지 말 것/ 빌립보서 2장 3절/ 840427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7
138 다니엘의 신앙/ 다니엘서 6장 23절/ 820124주후 선지자 2015.10.27
137 단일 사랑, 마귀역사/성령역사/ 요한일서 2장 12절-17절/ 830825목새 선지자 2015.10.27
136 단일 소망/ 시편 91장 14절-16절/ 840925화새 선지자 2015.10.28
135 단일 소망/ 누가복음 9장 51절-62절/ 840924월새 선지자 201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