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안식일로 정한 주일

 

1986. 10. 29. 밤(수)

 

본문:히브리서 4장 3절∼10절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다음 주일 주일학교 중간반 공과입니다.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본문, 히브리 4장 3절로 7절 제목은, ‘다시 안식일로 정한 주일’ 요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 4장 13절.

이번 이 공과는 교리 공과라서 여러분들이 몇 번이든지 읽어 가지고 외워야 할 것입니다. 외우지 안하면 나중에 잊어버리기 쉽고 또 외우고 단단히 기억해야 되지 이게 일반 교계에, 세계에 조직신학으로 아직까지 나오지 안한 교리기 때문에 이 교리가 나가면 많은 시비들이 일어날란지 모릅니다. 그러나 참되고 바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단단히 배울 때 배워야 미혹을 안 받지 그렇지 않으면 미혹 받습니다.

서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안식일을 세 차례 주셨다. 안식일은 노는 날이 아니고 하나님은 창조를 끝마치시고 안식하셨고 안식일을 받은 사람들은 안식에 들어가는 구비 은혜를 씨종자적으로 받는 일에 전력하고 다른 일 하는 데 추호도 기울이지 말라는 뜻인데 안식일은 일하지 않는 날로만 오해되어 왔다.’ 알겠지요? 본론에, ‘첫째 안식일은 인류 시조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고 각종 과실은 임의로 먹고 선악과는 금하여 이를 지키는 복과 거룩을 이루어 하나님과 친밀하고 생육 번성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바다와 땅과 공중에 움직이는 것들을 다스리고 채소 실과를 양식으로 주신 이 안식을 약속 받았으나 힘써 지키지 아니하므로 실패하였다. 이들도 할 일을 안 하므로 실패하였고 일을 하므로 실패한 것은 아니다.’ 요것도 좀 꼭딱스러운 말 같으나 자세히 여러분들이 읽어보면 뜻을 알 것입니다.

둘째, ‘둘째 안식일은 실패한 아담과 하와, 또 가인, 아벨, 셋, 육체의 이스라엘에게 주셨다. 첫째 안식은 대속 없이 주었고 둘째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예약, 예표로 짐승의 속죄제와 속건제, 번제, 화목제 구원의 은혜 길과 안식 준비의 날을 같이 주셨다. 첫째와는 아주 판이한 은혜의 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소극적인 일 안 하는 것만 힘쓰고 영원한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준비는 강퍅하여 외식으로만 기울어지고 실상은 하지 안하여 하나님이 맹세하신 대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자가 많았다. 이는 예약인 사죄, 칭의, 화친, 영감, 진리의 대속 완성에는 힘쓰지 안하고 또 몰랐다. 행함으로만 알아지는 도리를 행하지 아니하니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셋째, ‘다시 정한 안식일 을 예언으로 선포한 예약 예표가 완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 대속 후 신약 교회에 주신 것이다. 다시 정한 안식일을 주의 날이라 칭함은 일이차 안식일 실패를 증거하는 다시 안식일이라 함보다 주님의 사활 대속의 다섯 가지 실상이 중요하기에 사활 대속으로 우리 책임주가 계심을 증거하는 주일로 정하여 주신 것이다. 우리가 주의할 것은 외식 운동으로 우리 구원을 미끄러지게 하는 악마의 기묘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일을 일 안 하는 것으로만 힘쓰고 사죄, 칭의, 화친, 영감, 진리와 내가 하나되는 일을 등한히 함은 또 외식으로 망하는 방편이다. 주일은 모든 일을 버리고 주님의 사활 대속을 입는 은혜 받는 데만 전력하여 일주간 능히 자기 구원 이루는 자기 일을 힘써 할 수 있도록 씨종자적인 은혜를 입어야 한다.’ 문답에, ‘하나님이 안식일을 몇 차례 주셨느뇨?’ 답에, `세 차례 주셨습니다.’ 또 둘째, ‘셋째 안식일을 왜 주일이라 하느뇨?’ 답에, `안식일은 방편이요 주일은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안식일 지키는 외식이 무엇이뇨?’ `일 안 하는 것만 위주하고 영원한 안식 세계에 들어갈 준비 은혜 받는 일에는 등한히 하는 것입니다.’ 넷째, ‘주일은 무엇을 하여야 하느뇨?’ 답에, `말씀을 듣고 읽고 하여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다섯 가지 대속과 하나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거는 좀 여러분들이 공과를 꼭 외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 공과를 하는데 한 일주간 걸렸습니다. 내가 몸살도 많이 했었습니다. 많이 성경을 참고하고, 저에게 주님이 가르쳐 주셔서 깨닫기는 깨달았으나 그것을 간추려 쓸라고 하니까 좀 간추리기가 힘이 들어서 그래 오랫 동안 좀 힘을 쓰다가 지난 주도 그만 그전 공과를 했고 오늘 오후에 한 네시쯤 돼서 끝마쳤습니다. 요걸 잘 외우면 여러분들이 여게 대한 것을 깨달을 것이고 외우지 못하면 속담에 개 머래 먹듯 아무 거게 대한 그 실상을 모를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하시던 일을 다 끝마쳤으므로 쉬셨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그 쉬신 것은 창조하시는 일이 끝났다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일은 다시 하지 않습니다. 영계와 물질계에 창조해 놓으신 그 창조의 것을 가지고 다시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가공하는 재창조는 해도 없는 가운데서 새로 창조해 내는 그런 것은 끝났습니다.

다시 하지 않습니다. 이래서 영계나 물질계나 모든 존재는 다 엿새 동안 창조해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 원소를 가지고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재창조 가공은 하셔도 창조하신 일을 끝났습니다.

그라고, “복주어 거룩하게 하셨다” 한 것은 그것은 그때는 사람이 없었고 다만 아담과 하와 인류 시조 두 사람밖에 없었는데 그 두 사람에게 대해서 이 안식일을 줬습니다.

안식일을 주시면서 “이 날은 네가 내가 주는 복을 받고 또 이렇게 거룩을 이루는 일을 너희들에게 주노니 이 안식일에 복받는 일과 거룩을 이루는 이 두 가지 일을 하라. 그리하면 안식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복은 무엇인가? 그 주신 복은 네 가지입니다.

동산을 다스리는 것과 지키는 것과 일반 과실을 먹는 것과 선악과는 먹지 않는 거 이 네 가지를 지킬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 그것이 복입니다.

이것은 저희들이 지킬라고만 하면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걸 복으로 주었고, 또 “거룩하게 하였다” 하는 말은 이 네 가지를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해 주셨는데 이 네 가지 지키는 그 일로 통해서 모든 피조물과 창조주와의 모든 것을 구별해 가지고 비판도 평가도 바로 해서 바른 관계를 맺게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거룩하게 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이 안식에 들어가는 날,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그 준비의 날로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에게 안식일을 줬는데 그러면 이 안식일에 뭣을 하는가? 네 가지를 지킬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것이 그들에게 복입니다.

그들이 지킬라면 이 안식일날 이 네 가지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네 가지를 지키면 네 가지를 지킴으로 인해서 구별되는 이 거룩이 이루어집니다. 네 가지를 지킴으로 거룩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안식 세계는 뭐인가? 그 아담 하와에게 주신 안식 세계는 땅을 정복하고 또 땅과 공중과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다 다스리고 또 씨맺는 것과 모든 채소들을 식물로 하고 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아담 하와가 통치하고 또 모든 피조물은 거게 통치를 받기를 다 원하고 이렇게 해서 다시는 그런 무슨 실패나 그런 것이 없이 영원히 이 안식 세계에서 살 수 있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 그것이 처음에 준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을 사람들이 안식일이라 이라니까, 하나님도 일을 쉬었다 이라니 이 안식일은 그만 일 안 하는 날이 안식일이라 그렇게 아주 껍데기로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안식일날은 아담 하와에게 허락한 안식 세계에 들어 갈 준비가 이 안식일에 은혜받아 가지고 엿새 동안, 안식일에 은혜 받은 요 은혜 가지고 엿새 동안 안식일에 은혜 받은 그 생활을 엿새 동안 함으로써 거게서 모든 거룩이 이루어집니다. 이거 좀 어려운 말입니다. 거룩이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 연단시킬 대로 연단시켜 가지고 이 네 가지 생활을 하게 되면 네 가지를 지킬라면 지킬 수 있도록 하신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지킬라면 지킬 수 있도록 은혜 주신 것이 복입니다.

그러면, 네 가지를 지켜 가지고 뭣 하는가? 거룩을 이룹니다. 거룩을 이루다니? 거룩을 이룬다 말은 구별을 이룬다 말입니다. 구별을 이루어 가지고 모든 것을 완전한, 구별해 가지고 완전한 그 결과를 맺게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도 구별하고, 크고 작은 것을 구별하고, 하나님과도 구별하고, 모든 것을 구별해서 이 안식일날 이 네 가지 생활을 할 수 있는 이 은혜를 받아 가지고 네 가지 생활을 함으로 모든 존재와 구별을 하는 이 일은 엿새 동안에 그 일을 해서 거게서 연습되고 연단되고 연성이 이렇게 됐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 정복하고 통치하고 또 이용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이 영광스러운 세계를 점령하게 되는데, 이 아담 하와가 하나님이 주신 이 네 가지를 지킬라고 하면 안식일날 그날은, 안식일날 그날, 엿새 동안 이 네 가지를 지키는 생활할 수 있는 은혜는 안식일날 받는데, 안식일날 그들이 만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에덴동산을 다스리는 이 일을 실수 없이 잘 다스리도록 해 주시고, 또 에덴동산을 잘 지키도록 해 주시고, 또 일반 과실은 다 먹되 선악과는 먹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하는 것을 이 안식일날 힘써서 그날 엿새 동안에 지킬 수 있는 이 은혜 받는 날이 안식일날인데, 이 안식일날인데 이걸 힘쓰지 안하고 그들은 예사롭게 들어서 이 안식일을 이렇게 거룩한 날로 구별해 가지고 하지 안했기 때문에 아담 하와는 실패했습니다. 실패해서 아담 하와에게 하나님이 주기로 허락하신 안식 세계는 다 뺏겨 버렸습니다.

이래서,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또 이것을 다 다스리고 그것을 또 모두 다 운영하고 활용하고 하는 그 일을 완전히 빼앗겼습니다. 빼앗겨서, 누구에게 뺏겼느냐? 이 네 가지를 지키지 아니함으로 네 가지를 지키지 못하게 한 배암에게 져서, 사탄에게 졌습니다. 배암에게 져서 완전히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이 사탄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안한 사람들은 지금도 그때에 인류 시조에게 빼앗은 그 승리리를 가지고 영원히 왕노릇 합니다. 이래서 마귀와 죄와 사망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안한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왕노릇 합니다. 이래서 일차 안식은 완전히 실패를 했습니다.

실패한 그것이 어데서 실패를 했느냐? 이 안식일은 일 안 하고 노는 날로만 그때도 생각했지, 일 안 하고 노는 날로 이렇게만 생각했지 안식일은 저희들이 일반 생활은, 아무리 신앙 생활이라도 일반 생활은 할 만한 그런 여유가 없고 일반 생활은 다 그것은 제쳐 놓고 안식일날 하나님이 복 주는 네 가지 복, 네 가지 복은 뭐이냐 하면은 동산을 다스릴 수 있는 복, 또 지킬 수 있는 복, 또 일반 과실은 임의로 먹을 수 있는 복, 또 선악과는 먹지 안할 수 있는 복 이 네 가지를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잘 감당해서 이행할 수 있는 그 능력을 받는 날이 안식일인데 그들은 이 안식일이 능력 받는 날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무심하게 지내 버렸기 때문에, 이 네 가지 지키는 거는 안식일날 지킬 수 있는 능력을 받는 것인데 여기 대해서 무심하게 지냈기 때문에 그들은 이 네 가지를 지키지 못하고 당장 낙제해 떨어져서 실패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첫 안식일은 실패를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이래 있는데 이제 성경을 찾아보니까 이걸 알았지 그전에는, 저도 여게 대해서는 지금 처음 발견입니다. 처음 발견이고 제가 세계에 있는 조직신학은 그래도 대충 이래 뭐 교리나 신조나 그런 것은 아는데 아직까지 세계 조직신학에는 이런 것이 나오지 안했습니다. 그저 이제까지는 안식일은 일하지 안하고 노는 날로만 생각했지 노는 날이 아니고 안식일날은 참 그날은 굉장히 힘드는 날인데, ‘이거 하자면 이거 못 한다. 이거 하자면 이거 못 한다. 이거 하지 말고 이거 해라.’ 하는 것인데 이거 하지 말라 하는 그것만 알아 가지고 일 안 하는 그것만 했지 이거 하기 위해서 이거 안 한다는 그것을 전연이 몰랐기 때문에 첫째 안식일에도 우리 인류가 실패했고 또 둘째의 안식일 주는 것도 약간의 사람들이 성공을 했지 많은 사람들은 다 실패를 했습니다.

또 지금 이 셋째로 안식일을 우리가 받았는데, 셋째로 안식일을 받았는데 셋째로 안식일 받은 데에도 대개 보면은 백의 구십구는 다 실패라 그렇게 보여집니다.

왜? 이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될 것을 생각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첫째 안식을 실패해서 하나님이 다시 이 안식일을, 이 둘째 안식일은 첫째 안식보다 다른 것을 더 보강해 가지고 둘째 안식일을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첫째 안식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네 가지를 지킴으로 그들에게 약속된 이 안식 세계, 약속된 안식 세계, 창세기 1장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와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심이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에 씨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하는 이 큰 축복을 받았는데 이것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했으니까 사람들이 그것은 예사로 알지마는 이 우리 나라의 대통령으로 말하면 우리 나라는 그 국경 이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해서 모든 권리를 주권하는 거 아니고 다만 행정권만, 행정권만 주권하고 있습니다.

행정권만 주권하고 있소. 또 사법권은 또 달리 돼 가지고 있소.

행정권 고거 하나만 주권하고 있어도 이 권리가 있다고 하는데 땅에 있는 모든 움직이는, 바다에 움직이고, 공중에 움직이고, 또 육지에 움직이는 그 모든 움직이는 것을 다 정복하고 통치한다고 하면은 그 영광이 크겠습니까 적겠습니까? 큽니까 적습니까? 어떻습니까? 이거 사람들이 성경을 어누리하고 다 무시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게 참 큰, 일차적으로 주신 큰 안식 세계인데, 안식 세계인데 타락하고 나니까,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이 지으신 그걸 정복하고 모든 것을 다스리고 운영하고 자기의 소유로 이렇게 활용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영광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거 성경에 있기 때문에, 성경을 무시해서 버리니까 요 진리를 깨닫지 못했더라 그말이오.

이 큰 것을 주시는데, ‘이 큰 것을 주시는 데에는 뭐인가 조건이 있을 것 아닌가?’ 이럴 건데 그 조건이 선악과 먹으면 죽는다는 고거 네 가지 말했는데 네 가지를 어겨 가지고 사람이 전인류가 죽지마는 죽는다는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가 뭐인가 거게 된 근거는, ‘이렇게 된 이 근거는 무엇인가 큰 게 있을 것이다’ 하는 그것을 사람들이 전제로 생각하고 연구를 안 했기 때문에 일차 안식일은 완전히 빼버렸습니다. 일차 안식일은 완전히 빼서 거게 대해서는 전연이 언급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일차 안식에는 이 네 가지만을 하나님께서 지킬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주시고 대속이라 하는 건 전혀 없었습니다. 대속, 인간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인간을 대신해서 대속하는 그 대속의 길을 줘야 되지 대속의 길을 받지 않고는 인간은 이 구원 얻을 수가 없다 하는 그런 그 대속의 길을 안 주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차 안식일을 줬습니다.

또 그때는 성경 말씀이 없습니다. 이 특별 계시는 없고 이 보통 계시, 자연 계시, 이 만물을 봐서 다 알 수 있는 그런 때인데, 타락하지 안했으니까. 때인데, 인간이 일차 안식에서 실패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때는 다시 실패했기 때문에 이거는 대속이 아니고는, 실패했으니까 실패한 자는 그만 죽어 버리니까, 실패해, 실패했으니까 그거는 다시 할 도리가 없다 말이오. 일차 안식에서 실패해서 범죄했으니까 그는 영원히 죽어야 되지 않습니까? 죽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할 수 없어서 대속의 도리를 그때에 선포했습니다.

이래서, 이차 안식에는 하나님의 대속의 길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셔 가지고 이차 안식을 타락한 아담 하와에게도 허락해서 아담 하와도 이 대속의 길로 거기서 다시 복구할 수 있도록 하셨고 그 다음에 가인, 아벨, 셋 이런 분들에게 이렇게 이 대속의 길을 열어 놓은 이차 안식을 줬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이차 안식이 육체의 이스라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까지는 전부 이 이차 안식에 관한 사람들이 이차 안식에서 예수님의 이 대속을,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 대속을 하시는데 이 대속을 하기 전에 이차 안식을 준 사람들에게는 이 대속을 예약으로 미리 약속하고 미리 예표해 가지고, 신인양성일위로 이 대속이 이루어지지 달리는 이룰 수 없는데 그 하나의 예표로 하나 상징으로 한 예약으로 해 가지고 짐승의 피를 가지고 대속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래서 이차 안식을 받은 사람들은 이 대속의 예약을 믿고서 그 예약을 의지해 가지고 준비한 사람들은 이 이차 안식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간 것을 히브리서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에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들어간 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래서, 성경에 아담, 하와, 가인, 아벨, 셋,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때에 아담의 한 몸에서 나온 인류지마는 택함을 입은 자가 있고 택함을 입지 안한 자가 있었는데 성경에 기록한 모든 인물들은 택함을 입은 사람들만 나타낸 택한 자들의 족보요 사기요 불택자는 그때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 안 한, 그 취급을 하지 안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가인이 ‘내가 나가면 나를 쳐서 만나는 자가 죽일 터인데’ 한 것은 그때 그라면 가인과 아벨 외에 사람이 누가 있었겠느냐? 많이 있었습니다.

많이 있는 거는 다 그거 누군가? 어데서 나왔는가? 내나 아담 하와에게서 나왔는데 아담 하와의 자손으로서 하나님의 예택을 입지 안한 그 모든 불택자들이 그때에 많이 있었고 아담으로 가인 아벨 이래 나온 것은 다 택자들의 족보의 줄기가 그렇게 나와 가지고 된 것입니다.

이랬는데, 이차 안식일을 줬을 때에 하나님께서 안식일은 “일하지 말아라.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일하지 말아라. 짐승도 일 시키지 말아라. 자녀도 일 시키지 말아라. 일하지 말아라.” 이것은 이 소극적인 법으로서, 일하지 말라고 한 그것은 소극의 것이고 그 안에 진리를 파고 들어가 보면은 레위기라든지 또 역대상하라든지 뭐 열왕기라든지 모두 다 성경을 보면은 하나님께서, 속건제라고 있었는데 속건제도 피 없이는 드리지 못하고, 속건제는 사람들이 혹 잘못 알아서 허물로 지은 죄, 자기가 범한 죄보다도 이거는 몰라서 지은 죄, 허물, 뭣을 모르고 뭐 잘못된 게 있었을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허물이라 말하고 자기가 하나님 법을 어겼을 때에 그걸 죄라고 말하고, 그때는 벌써 이스라엘이 나온 후에는 십계명을 하나님이 줘서 벌써 율법이 나왔고 그 전에는 가리켜서 그걸 양심 시대라 이렇게 말합니다. 양심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람이 더러워지지를 덜했기 때문에 양심만 해도 그 옳고 그런 것을 구별하기 때문에 양심 시대가 있었는데 양심 시대에 양심을 가지고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이 있을 때에는 짐승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지내라, 이래서 인류 시조 아담이 구원은 얻었으나 아담도 이제 짐승의 피의 이 대속의 약속을 믿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래서, 그 모든 레위기나 이런 데 하나님의 법을 보면은 자기가 무엇이든지 잘못됐다고 생각이 있을 때에는 즉시, 잘못 됐다고 생각이 있을 때에는 그대로 두고 지내보내지 말고, 지내보내면 그때는 하나님께서 죽였습니다. 자기가 잘못된 일이 있었을 때에는 그것을 그대로 두면은 하나님께서 죽여버렸다 말이오.

이러니까 사람들이 죽기가 두려워서 그때 뭐 ‘무슨 죄가 있을란가, 있는가?’ 싶어서 찾아 가지고 조그만한 죄가 있을 때에는 속건제라고 제사를 드렸고, 뚜렷한 죄가 있을 때에는 속죄제라고 제사를 드렸고, 또 하나님에게 대해서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과 불목됐다고 또 화목제를 드렸고, 사람하고도 조그매라도 무슨 불목스러운 일이 있으면은 즉시 화목제를 지냈습니다.

그러면 화목제를 안 지내고 또 속건제를 안 지내면 죄가 없어지지 안하기 때문에 벌을 받게 되고, 또 불목이 있으면은 화목제를 지내지 않으면 그 사람으로 더불어 원수가 되어지고 사람과 원수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지기 때문에 이제 불목한 일이 있으면 그 불목을 사할라고 화목제를 드리고 이렇게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자기는 다 하나님께 바쳐 놓고 사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이래서 자기를 하나님에게 다 바치는 표로 번제라 하는 제가 있습니다. 번제를 드리는 데에는 그 짐승을, 다른 제사는 각만 떠 가지고 지내기도 하고 기름만 뽑아 가지고 지내기도 하고 이렇지마는 번제는 뭐 털이고 가죽이고 뼈고 똥이고 몽땅 그 짐승을 불에 태워 가지고 그래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 번제는 뭣을 예표한 것인가 하면 자기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자기를 하나님께 바쳤다. 바친다는 거, 자기를 하나님께 바치는 데에는 자기를 바치지 못한 게 있을 때에 자기를 하나님 앞에 생명까지 다 바친다는 증거로서 번제 드릴 때에는 짐승을 몰고 와 가지고 그 위에, 자기가 하나님 앞에 바치지 못하고 하나님에게 자기를 도적한 그런 것이 있었으면, 하나님을 배신한 그런 게 있었으면 짐승을 사 가지고 와 가지고 그 위에다가 손으로 안수를 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지금 배신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바치는 제사를 드린다’ 해서 안수하면 내 대신 양을 바치는 것이 돼.

양을 바치는 건 나를 바쳤다는 표로서 양을 안수해 가지고 안수하고 나면은 제사장이 그 양을 끌어다가 당장 잡습니다. 잡아 버려. 잡아서 그거 불에 태워 버립니다. 태우면은 이제 ‘나는 완전히 주님에게 다 바쳤다’ 하는 그런 번제를 드렸습니다. 또 화목제도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자기가 죄지었을 때는 양 머리에다가 손을 안수해 가지고 내 죄를 양에게 담당시켜 가지고 양이 내 죄를 짊어지고 이제 속죄 제물이 돼 가지고 죽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 네 가지 제사를 드리는데, 아벨도 그때 벌써, 아벨로 말하면 참 제일 처음 신자요 그 실패한 사람들도 없었고 또 그렇게 범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징계받은 사람들도 없었고 그럴 때니까 알기가 어려울 때라 말이오. 아무도 그렇게 행한 사람이 없는데도 아벨은 그때 형과의 일에 시작할 때에 형이 제사드리는 그 제사에 따라서 같이 지내지 않는다고 서로 시비가 있고 완력이 있어서, 너 그라면 안 된다고 시비 있어서 그 형이 뭐 죽이기는 그 다음에 죽였지마는 아주 죽일라 하는 그런 악독을 가지고 동생을 협박도 하고 뭐 이렇게, 그때도 우리 한국에, 우리 고려 때에 그리 안 하면 옛날 이조 때와 같이 그 나라도 봉건 사상이 있어서 형이라 하면 뭐 동생을 형의 발에 때만치도 안 여겼습니다. 이런데 형이 하는 대로 동생이 따라 하지 않는다고 이와 같이 시비를 했지마는 아벨은 기어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를 양으로 제사를 드리는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제사를 드리지 안했습니다.

안 했는데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안 받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니까 둘이 시기심이 나 가지고 지금 시비하고 있는데 그때 아마 성경에는 기록 안 됐지마는 우리가 그때 일을 잘 추상해 본다고 하면은 형이 동생에게 협박을 많이 놨을 것입니다. ‘네가 나와 같은 제사를 안 지내서 네 제사는 하나님이 받고 내 제사는 하나님이 안 받았으니까 네가 나와 같은 제사를 지내지 안하면 내가 너 죽인다’ 하는 협박을 많이 했을 것이라. 협박을 많이 했지마는 가인 같은 그 제사를 지내지 안하고 아벨은 아벨대로의 하나님의 약속대로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드려, 생명을 빼앗겨도 드린 것을 봐서 그때에 하나님이 안식일 줄 때에 예약 예표로서 이 대속하시는 하나님의 예약을 지켜야 네 죄가 없어지고 속량을 받아서 구원 얻지 그걸 지키지 안하면 네 죄가 그대로 있어 멸망받는다 하는 그것을 그들이, 아벨 그 사람도 얼마나 여게 대해서 그가 강하게 느끼고 확고하게 가졌기 때문에 생명을 바쳐서 지킨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뒤에 또 레위기에 모든 그 백성들 역사들이 쭉 나옵니다. 나온 거 보면은 자기가 뭐 남하고 말하다가 조금 다른 사람에게 거리껴 가지고 말 한 마디 실수했습니다. 실수했으면 반드시 양을 가지고 와서 또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뭐 조금 잘못했으면 그만 속죄제를 드립니다. 이러고 자기네들이 이 짐승으로 드리는,불목죄나 또 범죄나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서로 멀어진 배신의 죄악이나 하나님께 바치지 안하고 제대로 사는 것이나 이런 것은 다 멸망받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조그만한 사소한 그런 일만 있어도 그만 짐승을 잡습니다. 짐승 잡아 가지고 꼭 그가 제사를 지내서, 자기네들 마음에 ‘내게 있는 모든, 번제나 화목제나 속죄제나 이 제사로서 나는 이제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흠과 점이 없는대속 때문에흠과 점이 있었지마는 흠과 점이 있는 것을 이 대속의 제물로 인해서 완전히 이걸 속죄하고 나는 아무것도 없다.’ 하는 그 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생각을 가지고 살고 그렇게 깨끗하게 해 가지고 산 사람들은 다 그때 구원을 이루었고, 이제 ‘뭐 그래 하는 거 그저 뭐 알면 다른 사람들이 알고 하니까 안 그랄 수 없이 하지마는 그거 뭐 그렇게 할 필요가 뭐 있는가?’ 이제 안식일날, 안식일날 일하면 모든 사람 눈에 띄면 죽으니까 일은 안 하고 이렇게 껍데기로 일은 안 하는 이 외식으로서, 하나님 앞에 안식일날은 이 일을 새롭게, ‘네가 안식일날은 네가 혹 속건제를 잊어버리지 안했나? 속죄제를 잊어버리지 안했나? 화목제를 잊어버리지 안했나? 번제를 잊어버리지 안했나?’ 이것을 찾아 가지고 그날 깨끗이 완전히 제사로 속량받는 이 일을 하는 날이 안식일인데 그거는 하지 안하고 일 안 하는 날로 하기 때문에 외식자라 말이오. 그런 자는 다 멸망받았어.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몇번이나 깨우쳤지마는 안 들어서 “내가 맹세한다.

너희들은 절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때도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했으니 안식일은 노는 날이 안식일이 아니고 안식일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모든 준비하는 데에 필요한 요소를 종자적으로 받아 가지고 그날 모든 걸 받아 가지고 엿새 동안에 “자기 일을 힘써 한다” 말은 엿새 동안은 안식일날 받은 그 은혜 생활을 엿새 동안 계속하는 가운데에서 연습도 되고 또 그라니까 하다 보면 또 그 여러가지 마찰 때문에 못 했으니까 그 연단도 받고, 이리이리 해 가지고 엿새 동안 어짜든지 연성을 시켜서 요래요래 돋파서 요렇게 한 주간 한 주간 돋파나간 사람들은 다 예약의 대속으로써 구원을 얻었는데 그렇지 안하고 외식으로써 일만 안 하는 것으로 지나간 사람들은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랬는데, 그때도 실행하는 사람들은 ‘아, 이 안식일은, 안식일은 일하지 않는 그것이 목적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에 네 가지 제사를 완성하는 것이 이게 목적이기 때문이 이 완성이 안 되면 안 된다. 이 완성은 이 안식일날 은혜받아 가지고 엿새 동안을 흠없이 죄없이, 또 하나님 앞에 완전히 헌신해서 다 바친 생활, 그러면 번제 생활, 또 속죄제 생활, 화목 생활 이 생활은 안식일날 은혜 받아 가지고 엿새 동안 이 생활 해야 된다.’ 하는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깨달았지마는 실행하지 안하는 사람들은 암만 말해야 안 들립니다.

알겠습니까? 요게 지금 제가 이 안식일에 대해서 고민을 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셋째로 지금 안식일을 받은 날인데, 일차 안식은 대속 없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정해 주신 것이고, 이차 안식은 예약적 대속의 길을 열어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 모든 과거에 우리 신앙의 선배들에게 주셨고, 예수님이 예약한 대속이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완성이 됐습니다. 이 대속이 완성이 됐습니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율법을 완전케 하러 왔다는 것은 율법에 예약적인 예언적인 것이, 예약적 대속이 완성을 하기 위해서 왔다 하는 말씀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이 대속이 완성되는 그 증거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그거는 사람이 건드리지를 못해. 건드리면 즉사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건드리지 못하고 일 년에 한 번만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이제 세번째 안식을 줬는데 말하기를, 요거 성경은 한 자가 우주보다 큽니다. 이 한 자를 들고 떨어야 되지,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교리를 말해 가지고 성경이 한 자가 틀리면 그 사람이 정죄받고 꼼짝을 못합니다.

이런데 뭐 여기서야 열 자가 틀리거나, 백 자가 틀리거나, 뭐 성경 반 권이 틀리거나, 오늘은 이 성경 전체를 얘기 성경으로 막 집어 넣어도 아무 일이 없다 하는 이놈의 뭐 썩은 놈의 세상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하나님 말씀에 정통인 사람들은 만일 한 획이 틀리고 한 자가 틀리면 절단납니다. 만일 백 목사가 지금 뭣이든지 교리 말한 것이 한 자가 틀려 보십시오. 막 들고 나와서 정죄하면 꼼짝 못하고 정죄당하지 어짤 겁니까, 한 자라도 틀리면? 이렇게 이 교리와 신조는 어려운 것이오. 생사 문제입니다.

6절에,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절에 “오랜 후 다윗의 글에” 다윗이 예언했다 말이오.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날을 정하여” 다시 어느날을 정했으니 무슨 날 정했다 말입니까? 다시 어느날 정했으면 무슨 날 정했다 말이요? 안식일 정했다 말 아니요? 안 그렇습니까? 이 안식일을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한 날 정했다니까 다시 한 날 정한 것은 뭐 정했다 말이요? 다시 한 날 정했다면 장날을 정했다 말이요, 뭐 전쟁할 날을 정했다 말이요, 입국 날을 정했다 말이요? 무슨 날 정했다 말이요, 다시 한 날 정한 것은? 안식일을 정했다 말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다시 정한 안식일이라 그말이오. 다시 정한 안식일을 안식일이라 하지 않고 지금은 주일이라 그렇게 합니다.

이래서, 이 안식교에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은 구원이 없다’ 이래 가지고 이것이 많이 미혹을 주고 있는데, 왜? 안식일이 ‘뭣 때문에 안식일, 너거 계명은 자꾸 안식일이라고 사계명은 안식일 지키라고 외우면서 뭣 때문에 주일을 지키느냐? 그거 변한 것 아니냐?’ 이렇게 말해도 여게 대해서 변론할 학자들이 별로이 없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여기 대해서 왜 안식일이 왜 주일이 됐느냐 하는 걸 나는 들어보지를 못했어. 아무 데도 아무 목사한테도 들어보지 못했어.

오늘 교회에 들어보지 못했어. 못 했는데 제가 히브리서를 볼 때 여게서 하라 하는 이걸 말해 가지고 이걸 여기 서부교회 와 가지고 제가 많이 말을 했었습니다.

했는데, 다시 어느날을 정했다, 다시라는 이거는 다시 정한 안식일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요걸 확고히 가져야 돼요. 요래야 안식교에서 미혹을 줘도 ‘주일은 안식일을 다시 정해 가지고 다시 정한 안식일, 다시 정했다.’ 그러면 다시 정했으면 다시 정한 안식일이라 이라지 왜 지금 주일이라 하는가? 안식일이라 하는 것은 일 안 하고 노는 날이 안식일이 아니고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준비하는 날이 이 안식일인데 사람들이 꺼꾸로 그만, 외식자들이 막 판을 쳐.

5절에, “또 다시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또, “그후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우리가” 하는 건 누굽니까? 1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우리가 힘써야 된다 하는 우리는 누굽니까? 우리는 과거 이스라엘입니까 우리입니까? 우리라 말이요, 오늘 우리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과거 이스라엘이 아니라 오늘 우리라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지나가 버렸고 이 신약 시대에 히브리서를 줬습니다. 알겠습니까? 요것도 똑똑히 알아요.

“우리가 힘쓸지니” 하는 우리는 구약 이스라엘인지 신약 신령한 이스라엘 우리들인지 이걸 모르면 성경 막 뒤비지고 만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여게 우리는 곧 오늘 밤에 모인 우리들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그러면 안식은 이 세상에서 일 안 하고 평안히 노는 안식입니까 안식일이라 하는 것은 안식에 들어가는 날입니까? 뭐이요? 자, 안식일 일차 안식 줬고 이차 안식 줬고 삼차에는 다시 정한 안식일인데 이 안식일은 세상에서 평안하게 일 안 하고 노는 날입니까, 이 안식이 이 세상에 있습니까, 여기 기록한 안식이라 하는 거는 세상에 있지 안하고 하늘나라에 있습니까? 우리 안식은 하늘나라에 있습니까 이 세상에 있습니까? 우리 안식은 하늘나라에 있고 세상에 있는 게 아닌데 이 꺼꾸로 가르친다 말이오.

꺼꾸로 가르쳐서, 주일날 일 하면 안 된다. 주일날 일 안 하나 주일날은 이거 내나, 안식일이 뭣 때문에 주일이 됐는지 이것도 모르지, 주일날 또 일 안 한다는 이것만 생각하지, 주일날 뭐 하는 것인지? 이래 놓으니까 마귀란 놈이, 참 덧버선 열두 개 신었다 하더니마는 첩첩이 방어를 해 가지고 이래 해놨기 때문에 이 생명 구원에 들어가는 데는 감감합니다. 바로 깨닫는 데는 감감하요. 너무 거리가 머요.

그러면 지금 우리가 지금 이거 안식에 들어가는 날이라 하는 것 그것도 모르고 있지, 또 주일날은? 왜 다시 안식일을 정했는데 주일날이라 하느냐? 안식일이라 말은 안식에 들어가는 모든 준비의 은혜를 안식일날 받아 가지고 안식일날 받은 은혜 그것 가지고 엿새 동안에 자기 구원을 이루는 일을 힘써 하라, 엿새 동안.

십계명 해석에서 안식일날, 엿새 동안에 자기 일을 힘써 하라 하는 데에 내가 그 십계명 해석한 그 해석을 많이 봤는데 “자기 일 힘써 하고” 하는 자기 일은 전부 육신의 이런 일 저런 일 하는 것을 다 말했지 구원 이루는 게 자기 일이라 하는 것을 나는 주석에 해석을 하나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러니까 이렇츰 깊이 감추어 있는 것인데도 사람들이 이거 무시하고 있다 말이오.

엿새 동안 자기 일이 뭐인가? 우리 일은 우리 구원 이루는 일이 우리 일입니다.

그러면 안식일에 안식에 들어가는 그것을 종자적으로 받아 가지고 받은 은혜 그거 가지고 엿새 동안에 자기 일, 자기 구원 얻는 일을 힘써 하는 것은 주일날 이 능력을 못 받으면 안 됩니다. 요걸 믿어야 되는데, 참 가르칠 게 많아서.

왜 그러면 안식일이라 안 하고 주일날이라 했는가? 안식일이라 말은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모든 준비는 안식일날 된다. 안식일날 된다. 안식일날 되는데 그러면 안식일날 되면 나머지 엿새 날은 뭐하는 것이냐? 안식일날 재료를 다 받고, 원력을 받고, 은혜 받고, 종자적으로 다 받은 그 은혜를 엿새 동안에 기른다. 엿새 동안에 기르기 때문에 주일날 안식일날 받은 그 은혜를 엿새 동안에 연습해 본다.

연습하다 실패하니까 또, 연습이라는 건 자꾸, 또 실패하고 또 또 또 하는 게 연습 아닙니까? 그라다가 연단 받는다. 자꾸 그라니까 한 번 두 번 실패하는 가운데에 연단받아서 점점 온전해진다. 그 다음에는 연성된다. 토요일까지 전 주일날 받은 바의 그 은혜를 토요일까지 완전히 완성을 해야만 된다 하는 이것이 이제 성경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안해서 다 과거에 안식일을 일 안 하는 것으로만 만족으로 알고 그날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이 준비가 몽땅 거게 들었다. 거게 다 들었다.’ 이렇게 생각지 아니한 사람들이 다 실패했다. 순종치 아니함으로 멸망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은 오늘날이라 하는,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이런데, 다시 정한 안식일이라 하면은 일차 이차의 안식은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삼차적으로 이제는 예수님의 대속의 사죄 칭의 화친 세 가지 대속, 세 가지 대속을 인해서 영감과 진리, 이것도, 영감과 진리가 어찌 왔느냐? 대속 때문에 왔습니다. 대속 때문에 왔다는 것이 지금 교리에 안 나와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런데 이거 첨단을 걸을라 하니까 모두 자꾸 이거 뭐 이단이라고 주 미루고 도무지 그 시비 붙는 사람들이 나한테 말을 안 해. 좀, 시비 붙는 사람이 없어, 없기를. 여러분들이 좀 알아 가지고 거석해야, 알아 가지고 나가서 증거해야 될 터인데 이거 뭐하는 건지 몰라.

다시 안식일이라고 하지 안한 것은 그거는 방편인데, 그날 들어간다는 방편이요 주일날로 하는 것은 주일은 주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세 가지 대속을 했고 또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다시 새생명으로 살게 하는 영감과 진리 두 가지 대속을 해서 다섯 가지 대속을 한 그날로써 이제 그 다섯 가지를, 다섯 가지 요 실상을 주일날 우리들에게 주시는 날이기 때문에 이 날을 안식일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거리 멀고 주일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 안식일은 대속 법칙이 없이 해서 실패했고, 둘째 안식일은 대속의 약속만 하고, 대속의 약속만 두고, 대속의 약속을 저희들이 짐승을 사 가지고 와 가지고 몰고 와서 이래 해야만 이래 됐는데 오늘은 이 대속의 주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 영감과 진리 이 다섯 가지를, 주일날 이 다섯 가지를 몽땅 가지고, 가지고 우리에게 이 주일날 주시는 날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이 주일날 이 다섯 가지를 받아서 내것 만드는 것이 이거 우리 주일날 하는 일입니다. 알겠습니까? 이 주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뭣 하는 것이 우리 주일날 하는 것이냐? 안식일은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그 은혜를 몽땅 받는다는 표시로 안식일이라 했는데 주일날로 한 것은, 주일로 한 것은 이 주일은 뭣입니까? 주일은 무슨 날입니까? 주님이 죽으심 가지고 안 됐습니다. 알겠습니까? 죽어서 무덤 가운데에 들어 있다가 부활할 때에 그때 비로소 이 주일이 시작됐습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이 주일날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한복음 20장을 찾아 보면은 20장 19절에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안식 후 첫날이면 무슨 날입니까? 주일날 맞습니까? 안식 후 첫날이라는 건 주일날 맞습니까?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을 닫았더니” 주님이 이제는 ‘내가 부활하고 나면’ 미리 예언하기를 ‘내가 죽었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할 터이니까 부활하고 난 다음에 너희들이 이제 안식일을 변하여 다시 주일로 지켜야 된다’ 하는 그것을 많이 말씀했기 때문에 그때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일라고 막 총총 가는데 그들이 두려워서 숨어 가지고 있다가도 이 주일을 안 지킬 수가 없어서 밤에 살짝살짝 모르게 모여 가지고 문을 닫아 놓고 은밀히 지키는 이것이 주일 시작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활로 이루어진 주일의 시작이오.

시작인데, “문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셔서 가라사대” 그러면 오셔 가지고 뭣 했느냐? 주일날 뭣 줬느냐? 요 세 가지 줬습니다.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제 평안을 줬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천지야 돼라. 하늘과 땅이 돼라. 천지야 되어라.” 이라니까 됐지 그뭐 하나님이 무슨 못을 박고 뭐 땅을 파고 뭐 어짜고 비비고 했습니까? “공중에 속한 새가 나오라” 다 나오지 안했습니까? 이렇게 능력 있는 말씀인데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것으로써 예수님이 주일날 먼저 우리에게 평강 준 것이라. 평강 준 것은 이 평강은 세상이 빼앗아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영육의 평강, 영원 평강, 이 평강을 주일날 줬고, 또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보고 기뻐하더라” 이제 이 주일날 그들이 근심 걱정에 쌓여 있는데 예수님의 옆구리의 창자국과 손의 못자국을 보고 난 다음에는 과연 예수님의 죽었던 그분이 살아난 게 확실하니까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난 다음에 기뻤습니다. 이래서 둘째 선물은 뭐이냐 하면은 주일날은 부활의 이 선물, 부활의 확신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 주일날입니다, 부활의 확신을 주는 것이.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 변화산상에 가 가지고, 변화하는 것은 이다음에 부활할 걸 보인 것인데 변화산에 올라가 가지고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가 가지고 변화를 했는데 변화한 그날이 무슨 날인 줄 압니까? 그날이 무슨 날이요? 안식일날이요 안식 후 첫날이요? 안식 후 첫날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렇게 성경은 조직적이지만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그만 깜깜해서 안 된다 그거요.'기뻐하더라' 그러면 평강 얻었지 기쁨 얻었지 이게 둘째 축복입니다. 첫째는 평강 축복 얻었고 둘째는 기쁨 축복 얻었습니다. 평강 기쁨 축복.

이러니까, 기독자들이 주일날 뭐 얻습니까? 첫째 뭣 얻습니까? 평강. 둘째 뭣 얻습니까? 기쁨. 인제 기쁨은 뭐이냐? 기쁨이 돈을 버니까 기쁨입니까 뭐 예수님 만나니까 기쁨입니까 무슨 기쁨입니까? ? 부활의 기쁨. 부활의 기쁨을 가진 자가 있는데 부활의 기쁨 가진 자가 죽음이 무슨 상관이 있소? 이러니까 다 죽음을 발 아래 밟는 기쁨이라. 이 기쁨을 주일날 받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부활의 기쁨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주일날도, 좀전에 누가 테이프 가져와서 들어봤는데 주남선 목사님도 어짜든지 평생 소원이 순교 제물입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평생 소원이 순교 제물이오. ? 부활을 믿으니까, 이미 죽기는 죽는 건데 좀 가치 있게 좀 주를 위해서 죽고 좋은 부활 얻을라고 하기 때문에 부활을 믿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일날 이 은혜를 받는다 그말이오.

뭐 하다가? 뭐 하다가 받습니까? 주일날 뭐하고 하나 돼요? 몇 가지하고 하나 돼요, 주일날? 우리가 몇 가지하고 하나 돼야 돼요? 손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하고? 다섯 가지하고 하나 돼요. 이라면 여게서 다 돼요.

'기뻐하더라' 21절에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처음에 평강 한 번 말씀하더니 또 두번째 무슨 평강을 말해? 평강 말한 게 또 있어. 무슨 평강?

두번째 평강,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보내노라' 아버지가 나를 보낸 것같이 내가 너희들을 세상에 보낸다. 우리를 주님이 세상에 보내는 것은 뭐하라고 보냅니까? 세상에 보내니까 그 세상은 뭣입니까? 세상은 골고다입니다. 알겠습니가? 세상에 보내니까 그것이 우리 골고다요. 그거 우리 십자가요.

주님이 인간을 대속하라고 아버지가 보냄같이 우리를 세상에 인간 구원하라고 보내니까, 인간 구원하러 보내니까 환난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환난이 있는데 다시 두번째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는 것은 뭐이냐? 네가 복음을 위해서 아라비아를 가든지 뭐 공산주의를 가든지 어떻게 간다 해도 복음 위해서 갈 때에 그때에 너를 괴롭게나 근심되게 할 자가 아무도 없다 하는 이 평강을 얻는 것이 주일날 얻는 것입니다.

그러면 평강 처음에 온 평강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이 기독자의 모든 일반적 평강이고, 영원한 평강이고 두번째는 복음 역사의 평강이고, 두 번 평강이 왔습니다.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아라' '성령을 받아라' 이게 주일날 받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주일날, 성령 주일날 받았소, 주일날. 주일날입니다. '성령을 받으라'

23절에 '너희가 뉘 죄를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제 죄 사하는 권세. 사람을 죄에서 구출하는 권세. 내비두면 죽을 걸 구출하면 구출할 수 있어. 구출하면 돼. 이라니까 성령 필요하지 않소? 이러니까 그 죽음 앞에서도 강하고 담대하고 평강을 있을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필요 있어. 그러니까 공산주의가 죽일라 하는데도 호령을 치지. 왜정 말년에 부장이 죽인다고 이렇게 날마다 와서 조아대도 육 년이고 오 년이고 눈도 꼼짝거리지 안하고 대항해 나가지. 이 평강을 받아야 된다 말이오.

그러면, , 주일날 여기 받은 게 몇 가지입니까? 한번 헤아려 보이소. 제일 처음에 평강 받았고, ? 또 그다음 무엇이요? 기쁨 받았고, 또 그다음에? 셋째로? 또 평강 받았고, 또 넷째로? 넷째로 뭐이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내가 너희들을 보낸다' 보냄 받는 거, 보냄 받는 거. 알겠습니까? 파송, 파송. 선교사라 말이오. 파송 받습니다. 또 그다음에 뭐 받았소? 성령 받고, 또 그다음에 뭣 받았습니까? '네 죄를 사하면 사함받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다' 함을 받았습니다. 이거 다 주일날 된 것입니다.

  선지자선교회

이러니까, 주일날 우리가, 죽으심으로써 몇 가지, 죽으심으로 몇 가지, 손가락 들어. 죽으심으로 몇 가지? 죽으심으로 몇 가지 대속? 세 가지. 부활로 몇 가지 대속? 두 가지. 그러면 합해서 얼마? 다섯 가지. 다섯 가지 이 대속과 나와 하나 되기 위해서.

진리와 나와 하나 되기 위해서, 영감과 나와 하나 되기 위해서, 사죄와 나와 하나 되기 위해서, 칭의와 나와 하나 되기 위해서, 하나님과 화친과 나와 하나 되기 위해서, 그러니까 나는 화친이라, 진리라, 영감이라, 사죄라.

이거 되는 것이, 이 일 할라 하니까 눈코 뜰 여가 없이 딴데 두지 말고 여기 다 전부 다 기울여야 이게 되어지는데 주일날 일만 안 하면 되고 직장에만 안 가면 된다. 직장에만 안 가면 된다. '내일 주일 지키니까 내일 직장 안 가니까 오늘 저녁에 열두시까지 테레비 보자. 내일은 뭐 직장에 안 가니까 눈구멍이 뻐끔해도 괜찮을 것이고 옷도 질질질 해도 될 것이고' 이래 가지고 와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럽게. 뭣이 돼? 뭐이 돼? 하나님이 어떤 분이 줄 알고 있어? 똥덩이로 알고 있어, 똥덩이로! 하나님을 똥덩이로 알고 있어! 어림도 없어! 좀 있으면 환난 와요! 다 모조리 쓸어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밀어붙여 버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때에 수십억이 홍수 속에 매몰됐지마는 눈도 꼼짝하지 안했어. 여러분들 강퍅하지 맙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 공과를 외우십시오. 이 공과가 그렇게 보통 것 아닙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데에서 우리를 구원할 이는 이 다섯 가지뿐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인간은 죽음도 못 해요. 할 수 없어. 죽음도 할 수 없어. 죽음에서도 이 다섯 가지 대속은 우리를 구원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노아 홍수 때에 뭐 노아가 배 모은 것이 무슨 필요 있었어, ? 운반선이요 연락선이요 상선이요? 아무 소용 없었어. 다만 홍수 심판이 올 때에 인간이 할 수 없는 거게서 구원한 것이 노아의 방주 모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꼭 그렇소. 뭐 세상 과학이 할 수 있는 거 그까짓 거야 과학이 하는데 필요가 있어? 과학이 못 하고 세상이 못 할 그때에 하나님의 멸망에서 구출하는 것은 우리가 이렇게 주일날 예비한 것 외에 딴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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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54 다섯 종류의 사람/ 민수기 1장 41절-50절/ 880815월새 선지자 2015.10.27
153 다섯 종류의 신앙/ 고린도전서 15장 32절-34절/ 880918주새 선지자 2015.10.27
152 다섯 종류의 하나님의 사람들/ 고린도전서 15장 33절-34절/ 880923금새 선지자 2015.10.27
151 다섯가지 겸한 믿음/ 마가복음 10장 52절/ 870308주새 선지자 2015.10.27
150 다섯가지 준비/ 요한계시록 3장 7절-13절/ 860916화새 선지자 2015.10.27
149 다섯가지 지도/ 마태복음 6장 19절-34절/ 841221금야 선지자 2015.10.27
148 다스리고 지켜라/ 창세기 2장 15절/ 800103목새 선지자 2015.10.27
147 다스리고 지키라/ 창세기 3장 1절-7절/ 810214토새 선지자 2015.10.27
146 다스리고 지키라/ 창세기 2장 15절-17절/ 810213금야 선지자 2015.10.27
145 다시 안식일로 정한 주일/ 히브리서 4장 1절-2절/ 861102주새 선지자 2015.10.27
» 다시 안식일로 정한 주일/ 히브리서 4장 3절-10절/ 861029수야 선지자 2015.10.27
143 다시 정한 안식일/ 히브리서 4장 7절-8절/ 861026주새 선지자 2015.10.27
142 다시 정한 안식일/ 히브리서 4장 1절-2절/ 861105수새 선지자 2015.10.27
141 다윗의 열쇠/ 요한계시록 3장 11절-13절/ 810606토새 선지자 2015.10.27
140 다윗의 열쇠/ 요한계시록 3장 7절/ 810605금야 선지자 2015.10.27
139 다툼과 허영으로 하지 말 것/ 빌립보서 2장 3절/ 840427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7
138 다니엘의 신앙/ 다니엘서 6장 23절/ 820124주후 선지자 2015.10.27
137 단일 사랑, 마귀역사/성령역사/ 요한일서 2장 12절-17절/ 830825목새 선지자 2015.10.27
136 단일 소망/ 시편 91장 14절-16절/ 840925화새 선지자 2015.10.28
135 단일 소망/ 누가복음 9장 51절-62절/ 840924월새 선지자 201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