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교리

 

1987. 7. 9. 새벽 <목>

 

본문:빌립보서 1장 29절∼2장 11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은혜 주신 것은 믿을 뿐만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믿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해 주신 그 대속의 구원을 믿음으로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희들이 대속의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대속의 구원만 받고 좋아하고 대속의 구원만 받는 것만 좋아하는 그런 사람 되지 말아라.

“믿을 뿐만 아니라” 하는 말은 대속의 구원을 너희들이 멸망에서 구원 얻고 사망에서 영생 얻고 하니까 그 구원을 좋아서, 믿으면 그 구원을 얻기 때문에 대속하신 그 구원을 믿는 그 마음만 너희들이 가지고 믿는 행위만 할 게 아니고 “고난도 받아라” 그말은 이 대속의 구원을 너희들이 믿음으로 받아 가지고 이 구원을 잘 보존하도록 할라고 하면은 어려움이 온다. 받기만 너희들이 좋아하지 말고 받아 가지고 잘 보존해라 하는 그 말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고난이라면 무슨 고난이 있느냐? 싸움의 고난이 있다. 싸움의 고난은 너희들이 대속의 구원을 받지 못했을 때에는 이 사망 세상에서 사망으로 살기 때문에 함께 모두 뜻이 맞아서 세상과 뜻이 맞아 가지고 같이 가지마는 사망에서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너희들이 생명 얻은 것만 좋아하지 말아라. 생명을 얻었으니 생명으로 살라 하면 사망으로 되어 있는 이 세상과 전부 대립이 되고 마찰이 되는 그런 싸움이 있다. 그럴 때에 너희들이 평안할라고만 생각하면은 이 싸움을 다 피해야 되니까 그리 되면 너희들이 구원되지 않는다 그것을 가리켜 말했고, 또 2장 1절에서부터는 너희들이 이런 저런 모든 성경 말씀을 지켜서 서로 위로하든지, 또 성령의 교제를 하든지, 불쌍히 여기든지, 사랑하는 것이든지, 권면하는 것이든지, 또 자비나 긍휼을 베풀든지 어떤 너희들이 신앙 행위, 성경대로의 행위를 할지라도 너희들이 살피고 조심하지 안하면은 주를 위해서 신앙 행위 한다 하는 것이 내나 마귀 일만 하기 쉽다. 성경대로 산다는 것이 마귀 일만 해 가지고서 마귀 좋아하는 일만 하고 마귀 일만 성사시키기가 쉽다.

어떻게 해서? “같은 사랑 같은 마음으로 해라” 예수님의 대속을 받았으니 예수님의 것이 되어 있는 너희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의 것이 되어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뜻으로, 예수님의 소원으로 일을 해야 생명이 생명 생활 하는 일이 되어지지 잘못하면 너희들이 일한다고, 성경대로 일한다고 시작은 하고서 네것 가지고 하고, 네 맘 가지고 하고, 네 소원, 네 뜻 가지고 하면은 내나 네가 싸워야 될 사망의 대적들의 것이 돼 가지고서 사망의 편이 돼 가지고 생명을 대적하는 그런 일이 되기 때문에 너희들이 한 마음 한 사랑, 한 사랑이라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말합니다.

그래 가지고서 너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서 각각 지체가 된 것이기 때문에 이 지체는 저 지체를 위해서 있지 손이 손을 위해서 있지 안하고 손은 손 아닌 것들을 위해서 있고, 발은 발 아닌 것들을 위해서 있고, 뭐 눈도 눈 아닌 것을 위해서 있지 그 자체가 자체 위해서 있는 것은 없다. 그러기 때문에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

그러면 그말은 손 너는 네가 손 너 위하는 일은 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손 너는 손 너를 위해서 있는 것 아니다. 손은 발을 위해서 있고 눈을 위해서 있고 온 전신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손이 손 위해서 있는 것 아니다. 손은 다른 모든 지체를 위해서 있고 어느 지체든지 다 그렇다. 입도 입을 위해서 있는 것 아니고 입은 모든 지체를 위해서 전신를 위해서 있는 거와 같이 너는 모든 형제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낫게 여기라” 그를 네가 위주로 하고 그를 섬기고 높이고 돕고 봉사하는 일로 너는 있으라 그말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한 지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너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그말은 남을 더 위주로 해서 있으라, 살아라, 네 주격은 남이요 너는 모든 사람의 소유격이다. 손 너는 다른 모든 온 전신이 네 손 주인이요 손 너는 다른 모든 전신의 지체를 위해서 네가 있는 것이다. 너는 너 위해서 못 한다. 그러면 그 손은 뭐이냐? 손은 또 다른 지체가 위해 준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일을 돌아볼 뿐 아니라 또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봐라” 그러면 네가 네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다 했는가 그거 네가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한 그런 것을 보고서 네가 깨달아라.

그러면 네가 네게 있는 모든 의무를 하지 못한 것을 자꾸 찾아 가지고서 하도록 노력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자기 의무와 책임을 감당한 그것을 네가 깨닫고, 또 다른 사람 그 자체를 생각할 때에 네가 그에게 대해서 의무와 책임을 줘야 될 것이 있는데 주지 못해서 네가 혹 주지 못함으로 상대방이 가난해지는 것 있지 않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다시 말하면 네가 눈에 티가 들었는데 네가 손 네가 티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루지 안하고 그래서 그랬으니까 눈의 치료는 모든 다른 지체가 치료해야 되지 눈 자체는 치료하지 못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네가 하지 못한 것 그런 것 있는가 돌아보고 네게 대해서는 또 의무와 책임 있는 것을 돌아보라,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래서 요번 주간에 우리가 세 가지만 하기로 했는데 자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있다는 그것을 우리가 발견해서 그걸 정상화시키도록, ‘나는 다른 사람 위해 있다.’ “낫게 여기라” ‘다른 사람 위해 있다.’ 또 내가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하지 못한 내 단점을 찾아 가지고서 그것을 내가 노력하고 또 하나님께 기도해서 보강하도록 그렇게 하고, 또 다른 사람이 또 한 모든 점,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이라 말은 다른 사람이 이런 의무 저런 의무를 책임을 감당한 그런 것을 네가 찾아 가지고 그는 그렇게 감당했는데 그 감당한 것을 네가 잘 받았는지? 다른 사람이 네게 대해서 주는 것도 있고 한 것도 있는데 그것을 네가 받았는지? 또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한 것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한 그것을 네가 보고서 너도 그와 같이 하도록 노력을 해라 하는 그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잘못된 그런 단점은 어떻게 하겠는가? 단점 그거는 너 할 일이 아니다. 어짜든지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장점은 어떤 게 다른 사람의 장점인가? 다른 사람의 장점은, 그 장점이라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그것이 장점입니다. 그게 좋은 점이오. 그 외에는 좋은 점이 없습니다.

또 내게 대한 단점은 뭐인가? 내게 대한 단점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가져서 다른 사람에게 마땅히 유익을 줄 유익을 주지 못하고 내가 해야 될 의무와 책임을 하지 못한 그것이 내 단점입니다.

내 단점은, 내 단점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하지 못한 그것이 내 단점이고 다른 사람의 장점은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쳐 주는 그 점만 네가 찾아라.

그 사람이 예를 들어서 만일 백 가지 다른 사람에게 손해보이고 한 가지 유익을 보이면 네가 손해보이는 그거는 보지 말고 그거는 너 볼 게 아니고 그 사람이 하나라도 다른 사람에게 유익 끼쳐 준 그것만 네가 발견하라. 그러면 그 유익을 끼쳐 준 데 대해서 너도 지금 거게 얻을 것이 있고 또 너도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 유익을 끼쳐 주는 그 일 해라. 요거 좀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 가지인데, 요번 주간에 힘쓸 것. 하나는, 모든 사람은 내 주격이요 나는 그의 소유격이라.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있다. 모든 사람은 나에게 위함을 받도록 돼 가지고 있다. 그게 이해가 못 되거든 몸에 여러 지체가 있는데 어느 지체든지 그 지체라 하는 것은 그 자체 아닌 다른 지체를 위해서 있지 자체가 자체 위해서 있는 것 아니다.

손이 아주 이거 오만 일 능하지마는 손등어리에 가시가 하나 박혔으면 이거는 제가 못 뺍니다. 이 손이 왼손이 빼주든지 그거 안 되면 또 좀 먼 이웃인, 자기 한 몸 안에 있지 안한 다른 사람이 와서 이걸 치료해 줘야 되지 안 된다 그말이오.

눈이 눈을 어떻게 눈의 일을 하지 못하고 발이 발의 일을 하지 못한다. 그걸 네가 좀 생각해서, 우리 자체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있다는 요것을 단단히 확고하게 이거 뭐 확정지워 있어야 됩니다.

이래서 사람을 대할 때에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 습성을 들여 가지고서 언제든지, 이렇게 하면 만났을 때 ‘내가 이 사람에게 무슨 손해를 보일까? 이 사람에게 어떤 손해를 끼치게 될까? 해를 끼치게 될까?’ 그것 생각하고, 또 ‘어떤 유익을 줘야 될 것인가? 내 의무와 책임이 뭐인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손해를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실패를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먼저 생각해서 그 사람의 모든 불리한 점에 대해서 내가 의무와 책임을 진 것이 있어서 그걸 내가 하지 못함으로써 내 의무 감당하지 못한 일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그 사람에게 유익된 일이 있는데 그 일을 내가 하지 못하면 안 될 일이 있으면 그러면 내가 하지 못해서 안 되는 그런 일이 있는가? 자기의 단점을 찾는 것은 전부 그게 자기의 단점 찾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의 장점 찾는 것은, 그 사람이 단점이 암만 해도 그거는 내가 볼 게 아니고, 그 사람이 제가 볼 일이지. 그 사람의 장점, 그 사람이 다른 이에게 어떤 유익을 끼쳤다, 다른 사람을 위함이 됐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됐다. 도움되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백 가지 행동 가운데 한 가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고 한 게 있다 할지라도 그것만 네가 보고서 그것만 네가 ‘나도 요렇게 유익을 끼쳐야 되겠다’ 하는 그것만 네가 볼 것이고, 거게 대해서만 네가 상관을 가질 것이고, 배울 것이고, 너도 갖추어서 노력해 가지고 그것이 있도록 할 일이지 그 사람에게 하지 못하는 단점 그것은 네가 보면 네가 죽기 때문에 그거는 너 보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애 법칙을 주신 것이 요게 생애 법칙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일반 이 부패한 이 세상으로 보면은 이해가 안 됩니다. 안 될 때 그래서 성경이 말하기를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는데 각각 지체마다 하는 일이 따로 있고 또 그 지체 자체가 자체를 위해서 하지 못한다” 하는 그런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게 우리 생애 법칙이오.

풀은 마치 흙에 심기워져야 그게 살고, 새는 공중에 날아야 살아지고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성도의 사는 법칙이다. 이게 생애 법칙이다. 사는 법칙이다.

이 세상에 법칙은 전부 모든 사람을 자기를 위해서 있게 하려는 것이 잘났든지 못났든지 전부 그 사람입니다. 결혼해 가면은 ‘내가 어떻게 해야 저 남편이 나에게 유익이 될 남편을 구할까?’ 하는 그것이 이제 모든 세상 법칙이고 그리스도의 법칙은 ‘내가 누구에게 가야 하나님이 주게 하신 그 유익을 끼쳐 줄까?’ 그러면 자기가 섬길 사람, 자기가 위할 사람, 자기가 도울 사람, 자기는 그를 위해서 희생할 사람, 이렇게 그런 사람을 찾는 그것이 성경적이다. 그게 생명법이다. 생명법은 그기 생명법이고 사망법은 정반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법과 사망법을 우리가 구별해 가지고 우리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사람이기 때문에 생명법을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된다. 생명법을 가지고 사는 것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나는 다른 이를 위해서 있다. 다른 이는 나에게 위함을 받고 내가 함으로써, 상전은 종이 뭘 함으로써 상전이 형통해지고 상전에 대해서 종이 할 일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 종노릇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애 법칙이다, 생애 법칙.

요걸 선한 일을 한다고 하는 게 아니고 요것이 영생하는 생명법이라 그말이오, 생명법.

그러면 또 자기의 단점을 찾는 것은 무엇이 자기에게 단점인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을 주지 못한 것, 할 것을 하지 못한 것, 자기가 아직까지 빚지고 있는 그것이 자기 단점이라.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인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나는 빚진 자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게 단점은 뭐이 단점인가? 내게 단점은 내가 인인 관계에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해야 될 의무와 책임을 본본을 하지 못한 그것이 내게 단점이라.

그러면 내가 내게 대해서는 항상 단점,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내가 하지 못한 것이 뭐인지 이것 찾는 것이 자기에게 대해서는 요것만 보라 그말이오. 자기에 대해서는 요것만 봐라.

요것만 보는 이것이 영생하는 법칙이고 성도의 생애 법칙이기 때문에 요 법칙을 어기는 것은 마치 새가 폭포수 속에서 놀고 있는 잉어를 보고 자기도 폭포수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들어가면 죽는다.

너는 고기는 고기의 생애 법칙을 정해 주신 대로 물 속에 살아야 되고 새는 생애 법칙을 정해 주신 대로 공중에서 살아야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사망 속에 있는 그 사람들의 생애 법칙은 다른 사람보다 자기를 낫게 여기고 힘 있는 대로는 다른 사람을 자기가 정복해 가지고서 자기를 봉사하도록 자기에게 이용이 되어지도록 모든 사람을 이용하려는 것이 사망의 법칙인데 너는 중생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그것이 너의 생명 법칙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이 세상에서 연성해 가지고서 자기 아닌 다른 것을 위하는, 다른 것을 위하는 것은 다른 것은 하나님도 있고 피조물도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위하는,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생애 법칙이요 하나님 위하는 그것만 있는데 하나님 위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무엇이 돼야 됩니까? 뭐라고 배웠소? 하나님을 위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뭐 위함이 돼요? 다른 사람을 위한 그 결과만 되어지는 그것이 그 생애 법칙이라 말이오.

그러면 또, 그러면 하나님 위하고 또 위한 결과가 다른 사람 위한 그 결과가 되어지고 그러면 자기는 어짜고? 그러면 자기가, 자기는 하나님께서 “이러므로 그를 하나님이 높여” “지극히 높여” 이렇게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이라 그말이오.

요 우리가 요것을 자기가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 또 자기의 단점을 찾는 것, 다른 사람에게 장점을 찾는 것, 다른 사람의 장점은 뭐이 다른 사람의 장점입니까? 다른 사람의 장점은 뭐이 다른 사람의 장점이지요? 다른 사람의 장점은 뭐이 다른 사람의 장점이요, 저 ○○○교회? 다른 사람이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할 본분을 해 가지고서 “남을 낫게 여기고” 하는 그 사람이 남을 낫게 여긴 그 행동은 다 좋은 점이라.

그 사람에게 하나도 없으면 보지 말고 하나도 없이 다른 사람을 해만 끼치고 그랬으면 보지 말고, 그러면 이 세상 사람은 봐야 돼요 안 봐야 돼요? 안 봐야 돼. 세상 사람은 볼 것 없어. 세상 사람은 안 봐야 돼. 세상 사람은 다 자기를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지 안하거든. 그러니까 그에게는 볼 게 없고 아무리 성도라도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는 그 점이 하나 있으면 그것만 너는 보지 딴것 보지 말아라.

또 자기에게는 뭘 봅니까? 남을 낫게 여기지 못한 것, 자기를 낫게 여긴 것 그것만 본다 그말이오. 그것만 봐 가지고서 그와 같이 해라.

요 세 가지 요번 주간에 우리가 하기로 했는데 그러면 그다음에 해석이 있어.

그러면 그렇게 되면 어찌 되느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님께서는 행하신 것이 순전히 하나님을 위해서 했지 다른 것 위해 하지 안해. 전부 하나님을 상대해서 했다. 하나님을 상대해서 했는데 그 일은 순전히 그 결과는 하나님이 다, 그 열매는 하나님이 먹지 안하시고 그 열매는 전부 다른 사람에게 줘서 사람이 다 먹고 다 살았다. 사람이 먹고 다 영생하게 됐다.

그러면 하나님을 위하고 그것의 결과는 다른 사람을 위해지고 그라면 어찌 되느냐? 그러면 너는 하나님이 높여서 제일 높은 자리 하나님 우편에, 만물 위에 뛰어나서 만물들이 다 무릎을 꿇고 주라 시인하는 그 결과가 맺은 그것이 생애 법칙이다.

그러면 하늘나라는 이런 사람들만 있으니까 거게 사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법칙만 있는 하늘나라기 때문에 사망이 없어.

그러기에 하늘나라는 이 화된 것만 가지 이 화되지 안한 것은 못 간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심판은 어떤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이냐? 지옥 가느냐 하늘나라 가느냐 하는 그것을 공심판에서 다 판정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그 공심판에서는 다 천국 갈 것으로 돼 왔습니다. 다 천국 갈 것이 다 됐습니다.

천국 갈 것이 다 됐는데 천국 갈 것이 다 된 이것을 인제 그리스도가 심판합니다.

그리스도가 심판해 가지고 그리스도가 여게서 모든 행한 대로 생명의 법칙대로 된 것은 생명 세계로 가고 생명의 법칙대로 되지 않은 건 사망 세계로 보내 버립니다.

이러니까 보내니까 그 가라지는, 가라지는 마귀가 갖다 넣은 건데 그 악령 악성 악습이 된 그것이 가라지입니다. 그러면 가라지가 와 가지고서, 가라지가 들어와 가지고서 밭에 있습니다.

밭에 있는 것, 가라지가 들어와 가지고서 요 밭에 있다 말을, 가라지가 들어와 가지고서 교회에 있으니까 ‘교회는 가라지도 있고 성도도 있고 둘이 있다’ 이렇게 이래 사람들이 요게까지만 봤습니다. 요게까지만 보고 ‘교회 안에는 이거 지옥 가고 천국 갈 둘이 있다.’ 요래만 봤는데 그거 잘못 봤다 말이오.

주인의 밭에 심어 놨어, 주인의 밭에. 교회 안에 갖다 심어 놨어. 이러기 때문에 교회라 하는 건 어떤 게 교회입니까? 이거 여러 수백 명 수천 명이 모인 그게 그것만 교회입니까 자기 개인은 교회가 아닙니까? 개인도 교회라 말이오.

이러니까 이것이 들어온 것은 거게서는 뭘 중점으로 보고 말하느냐? 중점으로 보고서 말하는 것은 교회 가운데는 불택자가 와 가지고서, 불택자가 와 가지고 택자 비슷하게 그렇게 행동하는 것 있다. 그러니까 그건 지옥 갈 자인데 그 지옥 갈 자를 마귀가 보내 가지고서 성도 속에 섞이도록 하는 것은 그거는 지옥 갈 자 보고 ‘저래 예수 믿어도 되는구나’ 하고서 미혹 받도록 하기 위해서 저거 지금 군대로서 저거 일 하도록 하기 위해서 보냈는데 그게 교회 안에도 있다.

교회 안에뿐만 있을 뿐 아니라 너, 개교회, 말하자면 개체 교회, 단체 교회가 있고, 이 단체 교회를 가리켜서 그것을 사회 교회라고 합니다, 사회. 이 우리 오늘 아침에 모인 거는 사회 교회요. 사회 교회고 사회 교회보다 작은 것은 뭐이냐 하면은 가정 교회입니다. 가정 교회보다 작은 건 뭐이냐 하면 개인 교회입니다.

이 개인 교회 속에도 가라지가 들어 있다.

가라지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러면 가라지가 들어 있으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사람은 부득이 가를 수밖에 없다. 갈라서 그 사람에게 곡식 노릇 한 것은 하늘나라 가고 가라지 한 것은 지옥에 보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 사회 교회 가운데에 택자들이 있고 불택자들이 있는데 불택자는 지옥 보내고 택자는 천국 보내고 그와 같이 가르는 거와 같이, 이 교회 가운데에 불택자와 택자를 갈라 가지고서 택자는 하늘나라 보내고 불택자는 지옥 보내는 거와 같이 요와 같이 한 사람 속에서 또 가라지 노릇 한 거는 지옥 보내고 곡식 노릇 하는 거는 하늘나라 보낸다. 요래 갈라진다.

그러면 갈라지면, 그 갈라지면 한 사람이 하늘나라 갔으면 또 뭐 하늘나라 갔는데 또 지옥 갈 사람이 어데 있느냐? 그것은 한 사람 속에 두 인격이 있다. 한 사람 속에 두 인격이 있다. 두 인격이 있는데 한 인격은 무슨 인격입니까? 한 인격은 무슨 인격이요? 성령과 피와 진리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 새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이 마음과 우리의 몸 이것이 예수님의 피로 대속을 입으면 성령의 것이 될 수 있어. 성령으로 물을 들일 수 있습니다. 성령 감화를 줘 가지고서 성령으로 물을 들여. 흰 베쪼가리를 붉은 물 들이면 뭣 돼요? 빨간 것 되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그걸 감화라 그란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 영과 마음과 몸을 다 예수님의 피로 대속하면 주님의 것이 일단 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성령으로 물들여서 성령 완전히 성령화되고 또 진리로 물이 들어서 진리화되고, 이것을 가리켜서 새사람이라. 그러면 우리 한 사람 속에는 새사람과 옛사람 두 사람이 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죽기 전에 옛사람을 죽여서 정리하고 새사람으로만 산 사람은 이다음에 죽을 때에 죽일 것도 없고 다 하늘나라 갈 사람이기 때문에 하늘나라 간다. 그러나 제가 죽일 것을 죽이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은 그때에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은 하늘나라 가는데 제가 평소에 둘을 가르지 못하고 옛사람 새사람 둘이 한 속에서 살았는데 옛사람이 산 거는 오히려 십분지 구나 옛사람 산 거는 그렇고 새사람으로 산 거는 십분지 일쯤 되면은 그 둘을 어째야 됩니까? 그 둘을 다 하늘나라로 가져가야 되겠습니까 지옥 가야 되겠습니까? 부득이 이거는 가를 수밖에 없다. 가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새사람을 따라서 산 그 심신은 하늘나라 가고 옛사람을 따라서 산 그 심신은 지옥 가야 된다.

이라는데 요번에 대구집회 때 그걸 말을 했는데 그게 이해가 못 돼서 야단이 나고 뭐 말들이 다 많았습니다. 말들이 많았는데 지금까지도 말들이 있는지 혹 스스로 소화를 해 가지고서 회개를 했는지 모릅니다.

말하기를 모두 ‘그러면 한 사람이 천국 가 버리면 또 딴 사람이 어데 있느냐?’ 그거 한 사람 속에 두 사람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것을 몰라서 그래요. 알기는 아는데 알면은 이게 따로 떨어져 놓고는 내나 알고 또 한테 붙여서 연합시켜서는 연결시켜서는 또 몰라.

그러니까, 그러면 지옥 갈 자는 뭣뭣이 지옥 갑니까? 지옥 가면 뭐이 지옥 갑니까? 악령 악성 악습, 또? 악령 악성 악습에게 물든 마음, 악령 악성 악습에게 물든 몸 이것이 지옥 갑니다. 또 하늘나라 갈 때에는 피와 성령과 진리에 물든 우리의 영, 또 물든 우리의 마음, 또 우리의 물든 몸 이것은 아주 판이하게 딴것입니다. 딴것이기 때문에 하나는 지옥 가고 하나는 천국 보냅니다.

그러면 지옥 간 그것이, 지옥 간 그것은 마음에 모든 그 기능이 다 갔고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다 갔는데 그거는 아픈 걸 알 수 있겠소 없겠소? 알 수 있어요 없어요? 살아 있을 때에 한 몸뚱이 속에서 그놈이 욕심을 품어 가지고 주장하면은 성령과 진리의 욕심이 쫓겨나고 꼼짝을 못합니다. 그놈이 들어서 그 악을 품고서 뭐 불량을 지기면은 이 성령이 쫓겨나가고 진리도 쫓겨나가고 중생된 영도 쫓겨나가고 이 마음을 그놈이 주장해 가지고서 완전히 주장해 가지고 이놈이 날뛰는데, 믿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것 얼마든지 안 봅니까? 자기 속에도 보지 않습니까? 그러면 살아 있을 때에도 그놈이 주장하고 이런데, 그놈이 주장해서 온 몸뚱이를 뭐 총 주장해. 전부 그놈이 주장할 때도 있는데 그놈만 따로 볼가져 가지고서 지옥 보내면 그놈이 희로애락을 알 수 있겠소 없겠소? 고통스러우면 그것이 불평을 하겠소 안 하겠소? 시비를 할 수 있겠소 없겠소? 못 하겠어 하겠어? 요것이 지금 해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 요 우리 진영에도 요것이 해결이 안 되고 요것이 안 되면 제 구원 전부가 다 망쳐버리고 절단나는 것인데 요것을 말해 줘도 놀라지 안하고 오히려 지금 비쭉비쭉 하면서 업신여깁니다.

업신여겨서, 한 사람 속에 가라지 있는 것, 교회 속에 있는 건 그렇지마는 한 사람 속에 가라지와 곡식, 곡식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을 곡식이라고 했고 또 가라지는 마귀로 말미암아 생겨진 걸 가라지라 했는데 한 사람 속에 마귀로 말미암아 생겨진 이 가라지가 환하게 보이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처분하느냐? 이거는 지옥 간다 하는데 그 지옥 간다는 것을 부정합니다.

부정하는 건 왜 부정하느냐? ‘그거 한 사람이 하늘나라 갔는데 거게는 또 누가 가 가지고 그라면 아프다고 이를 갈고 슬피 울고 하겠느냐? 거기는 누가 가서 이럴 수 있느냐? 거게는, 한 사람이 주격 한 사람이 하늘나라 갔는데 거게는 누가 가 가지고서 그렇게 울고 불고 야단을 지기겠느냐?’ 저 ○○○교회 조사님? ○○○교회 아니요? 그러면 누가 지옥 가? 녜, 그놈이오.

그놈이 우리 몸뚱이 속에서도 그것이 인격 주체가 돼 가지고 막 주장이 돼 가지고 온 몸을 점령할 때도 있는데 그놈이 저거끼리 가 놓으면 얼마나 왕노릇 잘 하겠소? 얼마나 주장 잘 하겠소? 이러기에 이것을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가라지 행위 하고 있는 거는 다 지옥 간다. 가라지 행위를 가진 사람은 가라지 행위 한 그것만 지옥 가지, 가라지 행위 한 사람에게도 택한 자면 하늘나라 간다.’ 하는 그것이 이해가 안 돼 가지고 있고 오늘까지에 세계 주석에 다 그거 반대돼 가지고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칼빈 주석에도 보니까 ‘가라지는 처음부터 그것은 다ㅡ마귀가 넣었다 했으니까ㅡ그건 다 지옥 갈 자들이다. 그러면 가라지는 다 지옥 간다.’ 요래만 해 놨어. 그런데 그 뒤에 해석을 하기를 “넘어지게 하는 자 불법을 행하는 자” 그러면 불법을 행하는 넘어지게 하는 자는 다 지옥 가니까 자, 여게 불법 안 한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불법 한 사람 다 손 들어 보십시오, 불법 한 사람.

다 했지. 또 다른 사람 형제를 넘어지게 한 사람 다 손 들어 봐요. 그라면 이 사람 다 지옥 간다 말이요? 이러니까 또 그들은 그 시대에는 그만하면은 모든 사람을 이끌 수 있기 때문에 그렇고 또 그후 세대는 그후 세대에 이 죄악이 자꾸 가속도로 이렇게 높아지기 때문에 그 세대를 구원할라면 그 세대를 정복하고 구원할 수 있는 또 진리가 나와야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에덴 동산에 하나님이 인간 구원하는 법칙과 또 그후에 출애굽에 법칙과 달라요, 자꾸. 지금과 달라. 이러니까 묵은 둥치만으로 안 되고 묵은 둥치 위에 이 시대에, 이 시대를 정복하고 이 시대를 구원할 수 있는 새싹이 나와야 된다 하는 그것을 도무지 이해를 하지 안하고 자꾸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 묵은 둥치만 자꾸 말해. 묵은 둥치 이렇고 이렇고 말하니까 ‘그게 옳다’ 다 그리 따라가 버렸고 이 새싹을 말하면 이래 해. 새싹이면 ‘저거 묵은 둥치를 몰라서 지금, 모든 학자들이 이렇게 말한 이 묵은 둥치를 몰라서 말한다.’ 묵은 둥치를 모르면 새싹이 어떻게 나올 거라? 묵은 둥치 없이 새싹이 어떻게 나올 거라? 그런 것 다 알고 다 거게서 새싹이 나온 건데 ‘저거는 새싹뿐이지 묵은 둥치를 모른다.’ 묵은 둥치 없이 새싹이 나왔으면 그거 어데서 나왔겠어?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이십세기 아니요? 지금 이십세기지? 이십세기인데 십구세기에 있던 거게서 이십세기를 정복하고 구원할 수 있는 그 새싹이 나야 됩니다. 그걸 가지고 있는 게 문제요.

지금 벌써 사도 시대 속사도 시대 그때에 밑에 아주 묵은 묵은 묵은 둥치 그거 중요하지요. 묵은 둥치 그것 가지고 오늘에는 구원 못 한다 말이오. 묵은 둥치에 새로 새싹이 나야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이 양성원에서 교수들은 뭐 사례는 얼마 안 되지마는 연구비를 주고 이래 가지고 연구비는 매월 지불해 주는데 그러면 연구를 어떻게 하느냐? 일 년에 세 주간밖에는 안 가르칩니다. 일 년에 세 주간밖에 안 가르치니까 넉 달 만에 한 주간씩 가르치는데 넉 달 만에 한 주간 가르치니까 석 달 세 주간 연구해 가지고서 한 주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석 달 세 주간 연구해 가지고서 한 주간 가르치라. 일 년 내내 연구해 가지고서 세 주간만 가르치라.

그러면 세 주간 가르치는데 무슨 연구? 과거에 모든 묵은 둥치야 다 사람들이 다 책에 써놓고 다 있는 그거는 뭐 그거는 그저 얼마 동안만 독서하면 다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 ○○○박사 조직신학이라든지 또 성경신학이라든지 이런 거 모두 다 이거 거의 다 정리가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몇 번 읽으면 다 알아.

며칠 동안만 공부하면 다 알 수 있어요. 다 아는데 이제 거게서 오늘 세대를 감당할 수 있는 새싹이 뭐이냐 하는 그게 문제라, 그게 문제.

어제 내가 성경신학 가르치는 걸 봤는데 그거 지금 그 새싹을 약간 좀 말하는데 조금 그 희망은 있어. 새싹을 말하는데 그 새싹 그걸 자꾸 거석해 가지고서 오늘에 새싹을 잡아야, 새싹을 잡아야 돼요.

그러니까 한, 늘 가서 말하기를, 교리는 몇 가지 교리 가져야 돼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몇 가지 교리? 단일 교리를 가져야 돼. 이런데 둘 서이 너이 이래 가지고서, 이 사람은 이래 한다 저 사람은 저래 한다 그러고 너는 어떻게 믿느냐 그거 없어.

이러기 때문에 두 가지 교리, 이래도 된다 저래도 된다 깨달음이 두 가지 돼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의 행동은 두 가지 행동돼요 한 가지 행동돼요? 두 가지 행동돼. 두 가지 행동이면 하나님 앞에 찾아갈 수 있어요 없어요? 못 찾아가.

이러기 때문에 단일 교리를 가지라 하는 이것을 얼마든지 말하지만 아직 귀 속에 안 들어가, 암만 말해도. 단일 교리를 가지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단일 교리가 뭐? 이래도 된다 저래도 된다가 아니라. 단일 교리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부패해지고 망합니다. 그거 단일 교리를 가지지 안하는 것이 뭐 다른 사람 해치는 게 아니라 자살 행위요.

자살 행위 자멸 행위인데 자살 행위 자멸 행위를 하는 사람을 저 죽을 줄도 모르고 하는 것을 그것을 뭐 이러니 저러니 그뭐 대적할 것도 없고 마음에 안타깝기만 하지 거기 대해서 미워할 것이 없고 또 그렇게 업신여기고 책망할 것이 없어.

왜? 왜 그렇습니까? 단일 교리 가진 것은 가진 제가 제이 제삼 여러가지 교리를 가져 종류 교리를 가지는 그 사람을 대적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고 업신여길 것도 없고 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왜 그래요? 그거 한번 대답해 봐요, 저 조그마이 조사님? ○○○교회 앞에, ○○○교회지? 왜 그래요, 왜? 왜 그렇게 해? 어제 보니까 가르쳐 쌓데, 내가 들어 보니까. 들어 보니까. 바울이 자기가 자기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만드셨다는 것을 많이 배우지 안했습니까? 단일 교리를 깨달은 사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지 제가 깨달은 것 하나도 없어. 하나님에게 받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고 제가 높아질 것이 없고 하나님이 그 자기를 깨닫게 해 가지고서 알게 했으니까 자기는 또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 깨닫게 해 줄 그런 의무와 책임이 있으니까 그거 감당 못 하는 것, ‘내가 다른 사람을 다 깨닫지 못하게 했다’ 이거나 제가 지금 찾을 일이지, 그거는 뭐 찾는 것입니까? 자기의 뭐입니까? 자기 단점이라. 이러니까 그거나 찾을 일이지 교만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에는 교만이라 하는 것은 그것은 자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건, 자꾸 이래 말해 쌓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영감이 가 가지고서, 영감이 가 가지고 어째 영감에 그 접선이 되면은 하나님하고 접선이 되기 때문에 이라는 가운데 접선이 될까 싶어서 자꾸 이렇게 하는 것이라, 이렇게 하는 것.

자꾸 이리 이리 하는 것은 접선될까 해 가지고 이래 하는 것이라. 모든 이치가 다 그렇지 안해요? 사람이 나는 것도 남녀 동침할 때 정충과 배란이 둘이 그게 돌아다니면서, 보면은 현미경으로 보면 막 이래 이래 돌아다니다가 어찌 둘이 만나면 사람이 돼 나온다 그말이오.

이리 이리 자꾸 이래 말하는 것은 행여나 하나님하고 접선이나 될까 싶어서 자꾸 이래 하는 것인데 이걸 그렇게 들어서 받을라 해야 되지 딱딱 반대만 해 쌓아니까 이거 안 된다 그말이오. 또 반대해도 하나님이 되게 하는 거는 반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 분 후에 결혼 상담이 있습니다.

지하철 공사를 위해서 한 마디씩 빠지지 말고 기도하시고, 또 하루 삼십 분 기도를 요거 꼭 잃지 마십시오. 삼십 분 기도가, 자, 한번 따라합시다.티끌 모아 태산!티끌 모아 태산! 삼십 분 기도 이것이 열 번 모이면은 얼마 됩니까? 다섯 시간 됩니까? 열 번 모이면 다섯 시간 되고, 백 번 모이면 오십 시간 됩니까? 이렇게 이렇게 이거 모아 가지고서 이 힘을 모아 가지고서 자기 한 시간에 제 힘 가지고 못 올라갈 것을 배만 되면 올라갈 수 있지 않소? 이렇게 삼십 분 기도 이것이 주 모여 가지고서 사람으로서 뛰어넘을 수 없는, 십 메타가 아니라 천 메타도 날아 넘어갈 수가 있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큰 환난도 다 이기고 남음이 있다 그말이오. 이거 다 기도하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지금 삼십 분 기도를 정해 놨어요.

또 자기가 격투할 때에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 뭐 요한이 모양으로 불에 넣어 놓고, 기름 가마에 넣어 놓고 지지게 한다든지 독침이나 독약을 먹인다든지, 독약 먹이면 우리 인간은 약화되지 않습니까? 독침 주면 약화되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것도 불에 들어갔지만 불내음새 안 난 거와 마찬가지로 그 마찬가지라.

마찬가지기 때문에 이 삼십 분 기도가 그런 것을 자꾸 만들어 낸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미래에 모든 면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은 열 가지를 두고 기도하는 데 어떤 사람은 하나밖에 몰라. 그러면 하나밖에 기도 못 했지? 이러니까 자기의 모든 면을 기도하면은 하나님께서 이 면도 기도해라 저 면도 기도해라 자꾸 기도할수록 자꾸 기도할 면이 많이 생겨지요. 기도하니까 기도할 것 모든 기도할 종목이 많이 생겨집디까 없어집디까? 기도해 보니 어때요? 양산동 기도하러 가니까 기도할 제목이 많이 생겨져요? 그게 자꾸 기도할수록이 눈이 밝아지니까 이런 것 저런 것 기도할 게 생각이 된다 그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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