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소망

 

1987. 3. 9. 새벽 <월>

 

본문:마가복음 10장 5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믿음이 있는 대로 여게 대해서 가치를 크게 생각할 것입니다. 저분, 저게 저 ○○○구역에 있는 저분. 그래 나중에 좀 봐요. 속에 귀신이 들었는데 그 좀 정신 차려야 되지 정신 안 차리면 나중에 자기 안 돼. 죄를 회개해. 죄를 회개 안 하고 그라면 안 돼. 그러니까 자꾸 예배 볼 때 자기 마음대로 못 하고 귀신이 붙들고 그라는 거라.

어제도 예배 볼 때 종일 오전에는 그런 짓 했는데 정신차려야 돼요? 어제는 내가 그 말을 못했어. 예배 볼 때 그라면 그때는 모두 믿음 어린 사람이 많애서 거석할 것 같애서 말 못 했는데. 정신 안 차리고 회개를 안 하면 귀신이 안 나가. 내가 말했지? 고거 회개하라고. 믿음을 가져서 믿음의 그 양이 있는 대로 여게 대해서 평가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여게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좇는다 말은 따른다 말이요. 그를 소망하고, 그를 따라서, 그를 배워서, 그의 제자가 된다는 그 말인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망 중에는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보다 더 큰 소망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17편에 세상 사람들은 세상 분깃을 받은 사람들은 불택자입니다.

세상 분깃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세상에서 먹고 입고 살다가 남은 것이 있으면 자기의 자녀라면 자기의 유산을 감당할 만한 실력이 있든지 없든지 자기 자녀니까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녀에게 유업으로 넘겨 주고 죽는 것으로 자기 할 일 한 줄로 이렇게 알지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망이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하는 것은 죽었다가 부활하고 난 다음만 말한 것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람은 땅위에서 깨는 거는 어떤 것이 깨는 것인고 하니 예수님의 피와 영감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깨어 사는 것이요, 자는 것은 중생되기는 됐으니까 생명은 있지마는 그 행동은 악령 악성 악습대로의 안 믿는 사람, 다시 말하면 세상 소망으로 피조물 소망하는 이 소망으로 사는 것을 가리켜서 잔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깰 때에” 중생된 사람들은 그 영이 중생된 것같이 그 심신도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입고 이 사활의 대속을 입은 새사람이 되면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하는 것은 주님의 그 신성, 주님의 속성, 주님과 같이 되는 이것으로서 만족하리이다.

그러면 세상 분깃을 받은 사람들은 세상 이런 것 저런 것, ‘나는 동양을 차지했다, 나는 서양을 차지했다, 나는 어떤 나라를 하나 차지했다.’ 지금은 차차 차차 발달이 되니까 나라도 커집니다. 그전에는 조그만한 고을이 하나 자기 나라라 해 가지고 그 나라의 수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라다가 이제 앞으로 주님의 재림 때가 가까워 오면 나라 숫자가 또 많을 것을 말해 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에게 금우상 보인 것은 이 역사를 보인 것인데 발은 철과 진흙으로 됐습니다. 진흙은, 철은 한덩어리지마는 진흙이라 하는 것은 먼지같은 그런 것들이 주 뭉쳐 가지고 진흙덩어리 된 것 아닙니까? 이제 주님의 재림 때가 가까워 오면은 모두 극히 약소국들도 다 독립할 것을 가리켜서 예언해 놓은 것입니다.

왜? 그거는 필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제는 자꾸 논평하니까 이거는 옛날 우리 나라다 하면은 그것을 그래 가지고, 철은 쇠뭉텅이 하나 있고 강대국이 하나나 둘이나 있고 그 자잔한 것들은 강대국 저희를 위해서 그것을 소속국으로 만들어 가지고 행정적인 그런 단합을 할라고, 지금 민주주의에서는 행정적인 그런 단합을 할라고 하니까 뭐 어짜든지 너거가 무슨 영토를 가졌든지 상관없다.

우리와 같이 정치 사상만 같이 해 가지고 행정적으로만 같이 하자 이렇게 하고 있고, 공산주의자들은 그보다 좀 달리 그들은 모순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부적인 지역적으로 저거 것을 만들라 하는 지역 욕심을 가지고 있고, 영토 욕심을 가지고 있고, 또 속에는 이 정치 사상으로 하는 것보다도 그들은 사회주의라 하는 것을 하나 종교같이 만들어 가지고 그와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알맹이는 정신 문제 가지고 있고 껍데기는 영토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행정하는 것이 많이 불리하고 까다롭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공산주의가 속히 발달돼 나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너거 마음대로 살되 다만 우리 민주주의 이것만 함께 하자’ 하니까 따르기가 쉽고 합하기가 쉽고 또 좀 차원이 좀 높고 이라기 때문에 이것은 점령해 나가기가 쉽고 속으로 들떠 가기는 저 공산주의가 쉽고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안 믿는 사람들은 세상 것을 차지하고 오늘 내놓을지라도 차지하는 그것으로 성공이요 복인 줄 알지마는 중생된 사람들은 중생된 영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심신 이거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중생된 자가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중생된 자도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은 땅에 소망을 가지고 욕심을 가지고 사는 것은 그는 세상으로 잠이 들어 그렇습니다.

중생된 그 생명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외부적인 이런 이 세상으로 잠이 들어 가지고 있어 그런데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바로 깨달아서,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중생 됐는데 예수님의 대속대로 깨닫고 영감대로 깨닫고 진리대로 깨달아서 대속과 영감과 진리대로의 모든 것을 견해하고 비판하고 평가해서 가치관이나 모든 존재관이나 인과관을 본다고 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형상 가지는 거 그 외에는 소망을 가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 말은,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그말은 하나님의 속성 같은 속성, 하나님의 신격성과 같은 인격성, 그러면 인격에는 그 모든 지정의가 다 따른 것이요 또 신격에도 다 따랐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 열두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속성을 가져서 그 속성 가진 것으로서 만족한다. 왜? 그게 만족하는 것은 그거 가졌으면 하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모든 것이 다 자기의 소유가 될 수 있는 그런 자체 실력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한다 이랬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전토나 네 목숨이나 그런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도의 껍데기는 뭐이라고 했습니까? 신구약 성경 도리. 알맹이는 뭐이라고 했습니까? 그 안에 열한 가지의 대속을 말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인데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또 누가복음 14장에 말씀하시기를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이랬어. 안 됩니다. 있는 거 다 버리지 안하면 제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어제 여기 어떤 학생 하나 와 가지고 그 학생이 좀 택한 자인가 몰라서, 지금 부산대학에 다닌다 하는데 좀 불쌍해서 잠깐 얘기하고 오늘 새벽에 나오라 했는데 새벽에 나왔습니까? 나왔으면 저 남반에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그 학생이 나왔으면. 나왔으면 들어. 안 드네.

내가 밤에도 그 사람 위해서 기도를 했어요, 아마 이리저리 보면은 그거 택한 자가 아닌 거 같은데 그래도 택한 자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까운 사람을 버려 놨어, 그 좀 정신이 이상 돼 가지고 있어서. 그래 내가 밤에 그 사람 위해서 기도하기를 ‘만일 그 사람이 택한 자면, 택한 자요 지금 고쳐야 될 사람 같으면 오늘 새벽에 나오도록 하시고 안 나왔으면 나는 그 사람에게 대해서 포기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내가 밤에 기도를 했습니다.

어제 ○○○장로님이 소개한 그 사람인데 어제 나하고 얘기한 부산대학에 다니는 그 학생 나왔으면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안 들어. 안 나왔어. 이러니까 이것으로서 나는 이제 거게 대한 문제는 그만 이제 포기를 하고 그래 거게 대해서는 근심과 걱정을 놓겠습니다.

사람이 제일 가치는 어떤 것이 가치냐 하면은 “길에서 주를 좇았다” 길에서 주를 좇았다 말은 길은 우리는 길 가는 행인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주님 앞에 가는 그 시간까지의 세상 생활은 전부이 길 가는 생활입니다. 길에서 주님 좇았다 하는 것은 남은 여생은 주님 따르는 거, 주님 닮는 거, 주님 본받는 거, 주님과 같은 자 되어 지는 것, 우리가 주님과 같은 자 되어진다면은 이거는 교만해서 오히려 그 사욕이 아닌가 생각하지마는 주님 닮아가는 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닮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커지면 커진 것만치 그분과 관계는 더 커지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됐기 때문에, 시편에 “나는 완전자라, 나는 흠이 없는 자라, 하나님여 나를 살펴 보십시오.

내게 무슨 흠과 점과 그런 주름잡힘이 있습니까?” 시편 기자들이 그와 같이 말한 것은 어떤 사람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거 다 시편 주석 해 놓기를 뒤벼보면 다 그래 해 놨소. ‘이거는 사람으로서는 자기는 그래도 의로운 사람이요 자기 알기로는 의로운 사람이라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시편 주석가들이 해석을 해 놨습니다. 그거는 영계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을 한 것입니다.

그건 그런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열한 가지 대속을 입었으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완전한 자 된 것입니다. 완전한 자 됐는데 이것을 벗고 살기 때문에 문제지 입고 살면은 완전한 자 된 것입니다.

자기를 그렇게 완전하다 말한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찬양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지 교만한 것이 아닌데 요 비밀을 모르니까 다 주석들을 그래 해 놨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 교계에 나가서 말하면 이 말을 이해 못 하면 자꾸 이단이라고 몰리기 쉽다 그말이오. 이단이라 하지마는 조만간에 그게 벗어져요, 없어져요.

온전한 것이 올 때는 온전치 못하는 것은 폐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길에서 예수님을 좇았다 하는 이것이 우리의 소망 중에 제일 큰 소망입니다. 남은 여생을 어짜든지 예수님 배우기를, 예수님 본받기를, 예수님 닮기를, 예수님의 가지신 그 속성을 내가 완전히 갖추어 가지기를,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말한 거와같이 이제 우리를 본 자는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예수님과 꼭 같은 자 되어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여 주는 자 이 자 되기를 힘쓰는 그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주의 형상 갖추어 가지는 것이 최고의 복이라 말이오. 주님의 제자되는 게 최고의 복이라.

이러기 때문에 최고의 복인 이 주님의 제자가 될라고 하면은 “있는 것 다 버리지 안하면 안 된다” “네 생명보다 나를 더 중하게 여기지 안하면 안 된다” “날마다 십자가 지고 나를 좇아야 된다” 날마다 성경 말씀대로 살기 위한 고난, 또 예수님의 십자가의 이 대속의 열한 가지 대속대로 살라고 하니까 당하는 고난 그 고난이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그 고난을 날마다 겪으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여게, 이 사람이 예수님을 좇아 길에서 예수님을 좇게 된 이것이 최고의 복을 가졌는데 이 최고의 복을 가진 원인이 무엇입니까? 최고의 복을 가진 원인은 그가 보게 된 그것입니다, 보게 된 것.

어제 모든 존재관이나 가치관이나 인과관 그 세 가지만 바로 보면 예수님의 제자되는 그 일에 전심 전력 다 기울이고 그 일을 위해서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애낌없이 다 기울이지 안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제일 소원이 뭐인가?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이 제일 소원인데 예수님의 제자가 될라고 하면은 뭘 해야 됩니까?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이것은 가치도 이거는 가치가 얼마 있다.

이거보다는 이게 가치가 더 있다. 이거보다 이 가치가 더 있다. 이거는 세상 사람은 가치가 제일이라고 하지마는 이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 “이 세대의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도록 네가 명령해라” 왜? “정함이 없는 이 모든 물질계의 것들에게 소망 두지 말고” 왜? 물질계의 것들은 정함이 없어. 오늘 정권이 이렇지만 내일 어찌 될지 몰라. 오늘 생명이 있지만 오늘 지금 밤이 오기 전에 죽을란지 몰라. 이러기 때문에 “정함이 없는 모든 것들에게 소망 두지 말고 모든 것을 영원히 후히 주어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이랬습니다. 그말이 틀린 말입니까? 이라기 때문에 이제 이 제자가 되는 일은 이렇게 어려운 일인데 이 제자가 어떻게 해서 됐던가? 눈을 떠서 보게 됨으로 제자 됐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그시로 눈이 환하이 뜨여서 환하이 보게 됐습니다. 보니까 그만 주님 따랐습니다.

이게 뭐이냐? 우리에게, 너희들이 모든 존재관이나 가치관이나 인과관이나 그런 것을 너희들이 똑 바로 본다고 하면 보는 그 시간부터 네 소유와 몸과 생명은 다 기울여서 주님 닮아가는 이 일에 전공하지 그거 외에 딴것은 하지 않는다.

네가 무슨 공부를 해도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공부 하는 가운데서 예수님의 제자되는 그 일을 연습하고 숙달하고, 농사 짓는 데에도, 장사하는 데에서도, 사업을 하는 데에서도, 정치를 하는 데에서도, 어떤 교편을 잡은 데에서도 그것은 주님의 제자되는 그 일을 연습하는 장소라. 연습하는 모든 기관들이라. 자기 연구하는 도서실이요 또 모든 연구하고 실험해 보는 모든 재료들을, 재료들을 가지고 자기가 이런 거 저런 거 실험하고 연습해 보는 모든 연습실이라.

나는 지금 정치 연습실에서 나는 예수님의 제자되는 일 연습한다. 나는 상업 연습실에서 예수님 제자되는 것을 연습한다. 나는 학창으로 지금 학업을 닦으면서 학교서 공부를 하는 이 공부하는 여게 이 장소에서 예수님의 제자되는 연습한다.

나는 식모살이에서, 나는 직공에서, 땅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된다는 것은 바로 굴 안에서 대번 되는 게 아니라 말이오. 모든 분야의 자기 생활 거기에서 자꾸 진리대로 사는 생활을 거게서 연습하고, 영감대로 사는 생활을 거게서 연습하고, 하나님의 구속받은 구속대로의 사는 생활을 거게서 연습해.

이러니까 이런 거 저런 거 하나 거게서 예수님의 제자되는 그 일을 달성할라고 그 욕망을 가지고 하는 자 있고, 껍데기는 꼭 같이 그 사람하고 같이 하지마는 이거는 돈 보고 하고, 지식 보고 하고, 지위 보고 하고, 명예 보고 하고, 권세 보고 하고, 땅의 것 보고 하는 자 있고, 다 같이 땅의 것을 같이 하고 있지마는 속에 알맹이는 예수님의 제자되는 소망이 달라.

이러기 때문에 “한 자리에서 둘이 일하고, 두 여인이 함께 매 갈고, 한 자리에 같이 누워 자지마는 하나는 데려감을 받고 하나는 버려둠을 받는다.” 이렇게 말씀한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되기를 그만 소망하고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을 힘쓰는 그것이 남은 여생이 됐어. 예수님의 제자되기를 힘쓰는 것이 자기의 남은 여생의 전공이 됐어.

왜 그리 됐는냐? 그래 된 것은 못 보던 자가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보니까 그 외에 탐할 것이 없고, 욕심낼 것이 없고, 그 외에 부러울 것이 없고, 그외에 가치가 있을 것이 없고 그것뿐이라. 예수 한 분뿐이라. 이랬는데 보게 되니 됐습니다.

보게 되게 됐는데 우리에게 뭐 필요합니까?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이 필요합니까, 모든 것을 바로 보는 자 되는 것이 필요합니까 바로 보는 자 되는 그 방편이 필요합니까? 세 가지 중에 내가 말한 대로 일호가 필요합니까, 이호가 필요합니까, 삼호가 필요합니까? 일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이호가 필요한 사람들? 삼호가 필요한 사람들 손 들어 보십시오. 삼호가 필요한 사람들? 여기는 뭐인지 모르니까 손도 못 드는구만. 일호나 이호나 삼호나 뭐이든지 하나 들어야 될 터인데 모르기 때문에 못 드는 거라.

일호가 좋기는 좋지마는 우리는 아직까지 일호 말하면 초절이라. 물론 일호를 지금 말하는 사람도 이 가운데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되는 그것만 지금. 예수님의 제자되는 이것이 제일이다. 거게만 막 욕심을 품고서 들이 달라붙이면 그 사람은 깬 사람이지마는 모든 것을 바로 보지 못하면서 예수 제자되기만 힘쓰는 사람은 초절 행위기 때문에 낭파를 지웁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되는 데는 기도해야 된다.’ 기도하러 가 가지고 배나 지옥의 자식이 되는 사람 많습니다. 기도하러 가 가지고, 이 세상이 분주하니까 이것도 저것도 생각하니까 제 욕심이 정리가 안 되고 제 욕심이 단일 욕심으로 강하게 안 되지마는 기도하러 가니까 이것도 저것도 없이 가만히 앉아서 생각한다는 것이 ‘뭣을 지금, 뭐, 뭘 해 볼꼬, 뭐 해 보꼬? 자꾸 자기 욕심 사욕 그놈만 생각하니까 그놈이 쇳덩이 모양으로 땅땅하게 굳어집니다, 굳어져.

‘아무것이는 나하고 대립이 돼 있는데’ 그 대립이 된 그것만 자꾸 생각하니까 자꾸 대립이 되니까 미움만 더 생깁니다. 시기만 더 생깁니다. 요러니까 마귀만 더 됩니다. 꿈에도 그거 생시도 그거 전부 그것만 돼지기 때문에 배나 지옥의 자식이 돼 가지고 나옵니다. 알겠습니까? 모든 것을 바로 봐야. ‘이 보자.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게 뭐꼬? 미워하는 거는 살인하는 것이다. 살인자에게 영생이 없다.’ 이 모든 걸 바로 알면 죄를 지을 수가 없고 바로 알면 의를 행하지 안할 수가 없고 바로 알아야 예수님의 제자되는 이 지극히 큰 구원을 이루는 것이지 바로 모르고 제가 무슨 구원을 이루어 갈 겁니까, 이루어 가기를? 이러니까, 일호가 좋지마는 이호가 있어야 일호가 돼지지 이호가 되기 전에는 일호가 안 됩니다. 또 모든 것을 바로 보는 게 좋지마는 바로 볼라고 하면은 뭐 있어야 됩니까? 삼호가 있어야 돼. 삼호. 뭐이냐? 나는 보지 못함으로 나는 비참하다. 모든 걸 보지 못함으로 비참한 거. 홍포 입은 부자가 자기가 행복된 데 왜 비참해요? 성경대로 보니까 제가 비참하지. 자기는 성경대로 관찰하면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돼야 눈뜰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나는 성경대로 비참하다. 전능의 능력을 내가 가진 자인데 왜 나는 이 능력을 가지지 못했는가? 나는 전지의 지혜를 가진 자인데 왜 전지의 지혜를 가지지 못했는가?’ 저 ○장로님 아들, ○장로님 어데 갔어? 오늘 아침에 안 나왔어? 개명 가셨어? 저 사람 말이요, 내가 효자상을 주면 싶으지마는 효자상을 줘 놓으면 너무 소문 나 가지고 그 사람에게 무거운 짐이 돼서 도로 그물을 두터쓰는 게 돼 내가 안 합니다. 다 본 받아요. 다 자기 부모가 잘나고 이러면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 아버지입니다.’ ○대통령 양아들도 아닌 게 ‘내가 ○대통령 양아들입니다.’ 저거 아버지가 잘났을 때에는 자랑하고 돌아다니지마는 저거 아버지가 병신이 돼 가지고 자꾸 이이 쌓는데 그라면 아버지라 소리 하기를 부끄러워할 거라 말이오.

내가 서울에 있는 큰아들이 왔는데 며칠 동안 와서 있으니까 아버지를 모시고 오는데 보니까 내가 보니까 조금 그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것이 좀 부끄러운 것 같은 그런 것이 약간 내 눈에 조금 보이는 거 같애. 그래서 내가 ‘조놈의 새끼를 내가 한번 주먹으로 쥐박아 대야 되지’ 이래, 요번에 장로 됐어.

이랬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라. 그것도 보니까 효성이 있어.

이런데, 이거는 올 때 뭐 업고 오는지 어짜는지 데리고 와 가지고 여기 거석해 여기 앉힐라 하면은 이거 이래 모셔다가 이렇게 앉혀 놓고서 이래 가지고 오고 가고 하는데, 아들이 효자가 되니까 며느리도 효자가 되겠지마는 그 며느리가 그 시부모를 그렇게 잘 봉양해서 여기 오면 그만 새사람이 돼요, 그만. 얼굴도 건강도 그만 이래 돼 버리요. 이래 되지 아들도 그렇지. 다 본받아요. 복받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복 주지. 만일 복 안 주면 내가 하나님 앞에 내가 송사를 할 거라.

‘하나님이여, 오계명을 당신이 명해 놓고 왜 복 안 줍니까?’ 이렇게 해요.

부모에게 불효하는 그것에 대해서는 ‘불효하지마는 복을 주십시오. 용서하고 복을 주십시오.’ 이런 기도는 못 해. ‘그러면 나로 하여금 네가 오계명을 범하라는 말이냐?’ 당신이 그라면 어짤 거라? 이러면 나는 그 사람 위해 기도하기를 ‘저게 깨닫지 못해서 저렇게 불효하고 있으니까 그 죄를 용서하시고 어짜든지 효를 할 수 있도록 오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그 기도밖에는 못 해. 축복은 못 한다 말이오. 알겠어요? 좀 눈이 있으면 좀 봐.

학교서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존경하는 사람을 기록해라’ 하니까 어떤 학생이 저거 엄마를 기록해 놨더라고. 그래 저거 엄마 그래서 ‘너거 엄마가 뭐 존경할 수 있느냐?’ 이라니까, 또 ‘뭐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느냐?’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는 다 눈이 둘인데 우리 어머니는 눈이 하나라서 그게 제일 보기 좋다’고. 그래 자랑하더라고. 그놈이 잘난 놈이라. 학생들 다 이다음에 발로 뽈끈 밟을 수 있는 인격자야. 눈이 멀어도 내 어머니라.

이런데 내 어머니 눈 멀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조롱하겠지. 나는 내 어머니 눈먼 눈먼 걸 내가 자랑하겠다 하고서 우리 어머니 눈이 하나 멀었기 때문에 내가 제일 좋아하고 존경한다고. 그놈이 거게 있는 학생들 다 앞으로 발로 다 밟고 그 위에 올라설 수 있는 잘난 놈이야. 알겠어? 저거 부모 잘났으면 뜯어먹을 줄은 알지마는 어째 됐든간에 좀 그러면 부끄러워할 건데 그 부끄러워하지 안하고 그렇게 모시고 오는 걸 내가 참 볼 때에 감동을 받았어. ‘저게 복이 있다.’ 그래 나는 중매할 때 그렇습니다. 그 어떤고, 다른 사람은 그거 몰라요. 내가 슬슬 묻기를 ‘그 어찌 되지?’ 이라면 아, 그 효성 있다 하면은 그만 됐어. 효성이 있다 하면 그만 복받아.

내가 결혼할 때 말하기를 ‘보자’ 그러니까 `나는 어머니를 모셔야 되는데 어머니 안 모시면 나는 안 됩니다. 어머니를 모셔야 됩니다.’ 이라니까 그거 또 처녀 그것도 꾀가 있었든가 지혜를 써 가지고 ‘하, 부모를 모셔야, 나도 부모 모시는 게 평생에 소원입니다.’ 딱 들어맞아서 결혼을 해 버렸다 말이오.

결혼하고 난 다음에 틀려. 여게 지금 있어. 결혼하고 난 다음에 효성이 틀려.

이러니까 복이 그것으로 끝나 버렸어. 알겠소?

부모에게 효성 없는 사람은 오계명의 축복을 못씁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라면 허락한 땅에서 오래 살리라” 그말은 백 세 한다 말입니까 그땅에서 망하지 안하고 그땅에서 오래 흥한다 말입니까? 오래 산다 말이 뭐이요? 허락한 땅에서 오래 산다 말은 수명 길다 말이요 거게서 망하지 안하고 오랫 동안 그 족속이 거기 산다 그말이요? 오랫 동안 산다 그말이라. 그래 그거 어만 것 같지마는 여러분들 그거 단단히 알아요.

인제 이 말도 한번 설교해 놓으면 그분에게 좀, 그분에게 유익을 주는 게 아니라 그분에게는 손해야. 그분에게는 손해라. 다른 사람에게 그래 놓으니까 그만 자기 속에는 그만 부끄럽고 미안하고 조금 안 됐어서 손해라. 손해지마는, 다른 사람이 그래 보니까 또 손해라. 여러분들, 불효 새끼 여러분들 때문에 하는 거야! 알겠어요! 불효 여러분들 위해서 내가 그말 하는 거라! 오계명을 지키지 안한 자가 무슨 복을 받아? 절대 복 못 받아요.

그래 일호가 좋지마는 이호가 있어야 일호가 돼져. 이호가 좋지마는 삼호가 있어야 이호가 되고 이호가 있어야 일호가 돼요. 이러니까 우리가 제일 힘쓸 거는 뭐냐 하면은 삼호를 갖추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데 있소? 세계를 점령해도 그까짓 거야 시시합니다. 온 세계 대왕이 됐다고 해도 시시하요. 이 세 가지는 참으로 이 피조물에게 없는 지극히 큰 것입니다.

모든 것을 정관할 수 있는 거, 모든 거 정관하면 예수님의 제자돼. 정관하고 보면은 예수님 따를 거 외에는 큰 게 없어. 보배로운 게 없어.

이걸 아는 사람들은 매를 갈아도 이거 위해서 갈고, 한자리 둘이 누워 자도 아내는 세상 꿈꾸는데 이 사람은 한자리 누워 자도 ‘내가 이거 부부돼 가지고 이와같이 지금 같이 이라는 것은 여게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옆에서 아무리 어떻게 지금 미혹을 시켜 가지고 달콤하게 한다고 해도 복음 위해서 화친하고 복음 위해서 이렇지 그 소망 위해서 이 가정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아무 딴게 없어.

이러니까 껍데기는 다 같이 이래 한자리 둘이 누워 자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형상을 바라보고 했기 때문에 그거는 다 썩는 데 내버려 두지 안하고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순전히 땅의 것만 바라고 했기 때문에 이것은 버려둠을 당해야 될 것 아니겠소? 영이 그렇다 말이 아니고 심신의 기능이 다 버려둠을 당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눈 띄움을 받을 수 있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하는 그 믿음. 첫째는 모든 것을 정관하지 못해 나는 불행하다.

뭘 불행해? 성경대로의 행복을 가지지 못했다 말이오. 성경대로의 행복을 가지지 못한 것인 것을, 못한 것을 깨닫는 사람이 돼요. 요거 일호 가지고.

그 다음에는 성경대로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한 것은 내가 모든 것을 정관하지 못한 연고다. 이 정관하지 못하는 것을 정관시켜 주실 이는 누구냐? 예수님 한 분뿐이시다. 예수님에게 정관되는 자, 정관할 수, 바로 보는 자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예수님에게 부르짖으니까, “길에서 부르짖었다” 일생 동안 이것만을 호소하고 이것만을 소망 가지고 열심을 가진다.

이라니까 잠잠하라고 환경에서 반대가 많이 온다. 반대가 오니까 올수록 역항적으로, 반대할수록이 더 힘써서 주님에게 호소한다. 방해물이 올수록, 사정이 그렇게 할 수 없는 사정 딱한 그런 것이 막 몰아 싸 가지고 이래 돼도 사정을 다 포기할지라도 예수님에게 ‘나를 바로 보게 해 주옵소서’ 하는 이것이 제일 크기 때문에 여게 호소하는 역항의 호소.

이라다가 예수님께서 오라 하는 그 소식을 듣고 난 다음에는 있는 걸 다 버리고 바로 보여 줄 수 있는 예수님에게 나아가는 거, 다 버린 것. 있는 거 다 버리고, 내나 성경이 그거라. “누구든지 있는 것을 다 버리기 전에는” 뭐라고 했습니까?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 성구가 어데 있지? 누가복음 14장 몇절이지? 32절? 33절? 똑똑히 맞나? 그래 맞아? 33절 맞아? 읽어 봐. 뭐 모기 소리밖에 안 나오노? 덩치는 커다란 사람이 왜 그래 못 해? 크게 읽지. “누구든지 있는 걸 다 버리지 안하면 나의 제자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말씀했어. 이러니까 있는 것 다 버렸어. “겉옷을 버리고”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성경 다른 데와 딱 들어맞다 말이오.

“뛰어 일어섰다” 뛰어 일어섰다 하는 것은 예를 들어서 말이요, 이 짐승이 말이지, 양이든지 소든지 이래 누웠는데 만일 칼로 가지고 아픈 데를 콱 찔러 보십시오. 그게 그냥 일어섭니까? 깜짝 놀라 훌떡 뛰는 것처럼 그렇게 예수님이 오라는 소리, 예수님이 자기에게 눈을 바로 띄워 주는 그것 내가 보여서 조금씩 눈이 뜨여지고 모든 이치가 바로 깨달아지니까 막 훌떡 뛰어 일어서 가지고 예수님에게 달려가는 이게 있어야 돼.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이거 자꾸 밤낮 생각이 그것이니까 생각하다가 그걸 모르고 있었는데 변소 가다가, 그걸 변소 갔다가 용변하다가 그게 깨달아졌다 말이오. 용변하다가 깨달아지니까, 모르는 거 깨달아지니 눈 밝아진 거 아닙니까? 깨달아졌어. 깨달아졌으면은 그만 깨달아졌으니까 ‘아, 급한 일 봐야겠다.’ 안 가.

자, 깨달아졌으면 이걸 종이도 안 가지고 왔지 아무것도 안 가지고 왔지 이걸 그만 그때 그만 놓치면 잊어버릴 터이니까, 이 깨달은 진리를 잊어버릴 터이니까 잊어버리지 안할라고, 용변하면서 용변 다 했다고 나오는 게 아니라 그것을 또 익히고 익히고 자꾸 익히고 몇십 번이든지 익혀서 ‘내가 여게서 나가도 종이에 쓸 때까지 잊어버리지 안해야 되겠다.’ 요렇게 생각을 하고 나가도 나오면 깜깜하게 잊어버려 버리요. 모르는 것 많애. 이러니까 안 잊어버릴라고 야단을 쳐.

애를 써. 이렇게 초비상적으로 비상뿐 아니라 초비상이라. 비상에 초월한 초비상적으로 주님에게 달려갔어. 이게 있어야 돼.

그래 가지고, 예수님께서 ‘네 소원이 뭐꼬? 나한테 뭘 구하느냐? 네 소원이 뭐꼬?’ 하니까 이는 예수님이 소원을 물으니까 소원 댈 게 꽉 찼지 않애? 여러분들, 기도 좀 많이 하고 나면은 이것도 될 것으로 보이고 저것도 모든 것이 뭐 희망이 전부 희망이오. 희망 아닌 게 없습니다. 전부 희망이라. 안 될 게 하나도 없어. ‘아, 안 될 게 하나도 없다.’ 하는 사람이 돼져. 그럴 때에 모든 희망 다 버리고 이제 보기를 원하는 그 단일 소망으로 나아가는 요게까지 갔을 때에 주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했어. 요것을 깨닫고 우리가 요 사람 돼야 되지 그냥 예수 믿는 일을 뭣을 아무나따나 그래 믿으면 되는 줄 압니까? 제가 믿는 것 다 하고 교회 와 가지고 이런 것 저런 것 다 제 욕심 다 챙기고, 다 수지는 다 제가 다 먹어버리고 찌끼 그것만 남은 찌꺼기 가지고 오늘 아침에도 박사가 하나 왔는데 내가 박사 말을 해서 박사 공격하는 줄 알고 그래 오해하지 말아요. ‘나는 박사인데 내가 새벽기도 나가? 나는 박사인데,’ 다 예배 보고 난 다음에 뒤에 떡 이래 앉아 가지고 이래 가지고, 떡 이래 가지고 ‘뭐 공연한 쓸데 없는 소리 해 쌓아? 뭐 모두 다 괴변이로구만, 다. 거짓말이로구만.’ 이런 소리 하고 앉았는데, 어리석어 그래.

이러기에, 아무것도 소망이 없어. 단일 소망이라. ‘나는 학문도 사업도 아무것도.’ 어짜든지 모든 것을 정관하기를 원한다 하는 요것만이 단일 소원의 사람이 되어져야 요것 보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하는 구원 받을 수 있는 그 믿음이 된다 그거요. 알겠습니까? 그러면 눈 띄움을 받아서 정관하는 자가 될라고 하면은 얼마나 힘이 들어요? 그 힘이 드는데 그런 순서도 하나도 밟지 안하고 아주 낙관스럽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바로 믿어? 그러기 때문에 예수를 바로 믿지 못하고 믿지마는 사두개 교인 모양으로 땅의 거나 얻지 하늘의 것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삼십 분 기도 놓지 말고 기도합시다. 이게 앞으로 지금 큰 일을 메꿉니다. 큰 평강을 줍니다. 큰 승리와 큰 환난을 극복하게 만듭니다.

그라고 종전과 같이 교회 주변에 대해서 또 수고해 주십시오.

그러고 잠깐 기도후에 그저 시간이 많이 지나갔으니까 한 삼 분 가량 기도하고 난 다음에 권찰회 모이겠습니다. 이러니까 권찰회 모이는 데에 왔다가 볼 일 있는 사람은 바로 가도 돼요. 그래도 ‘권찰회 내가 참석해야 되겠다’ 요 마음이 생겨지면 은혜 받았어. 그 마음이 생겨지면 이제는 권찰회 참석할라 하면 참석할 연구를 하는 거라. 과거에는 권찰회 참석 안 할 연구를 하지마는 이제 권찰회 참석할 연구를 해. 연구하면 다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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