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비유

 

1987. 4. 23. 새벽 <목>

 

본문:마태복음 25장 14절∼30절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 세상에 살 때에 형편과 사정과 처지가 참 뭐 천태만상입니다. 좀 나쁘고 더 나쁘고 더더 나쁘고 더더 나쁘고 또 좋은 데도 좋고 좀 더 좋고 더 좋고 더 좋고 자꾸 이래서 그 형편이 천태만상입니다.

개인도 그러하고, 또 민족적으로도 어떤 지역에서는 굶어 죽고 어떤 지역에는 아주 풍부하고, 또 국가적으로도 모든 자연의 그 부하고 가난한 것이 심히 차이 있고, 또 문화도 많이 차이 있어서 뭐 사람들의 형편이 참 천태만상이라고 할 만치 그렇게 많이 차이 있고 다릅니다.

거게 대해서 어떤 사람이 고민을 했던가 아주 형편 없는 그런 자리에 이르러서 ‘이거 여기서는 참 불행하다, 심히 불행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에게 영감이 와 가지고 말하기를 ‘네가 이 장막 생활은 오늘이 끝인지 또 하루 더 남았는지 몇십 년이 남았는지 모르나 다 끝날 때에는 땅에 생활은 다 끝난다.’ ‘그런데 이 장막 생활이 끝나면 영원한 생활이 시작된다. 장막 생활이 끝나면 영원한 생활이 시작된다. 그러면 영원한 생활이 시작되니까 이 땅위에 생활은 모두가 다 장막 생활이니 그것은 천태만상의 종류와 형편과 사정이 있지마는 그건 다 끝나 버린다. 끝나 버리니까 끝날 때까지 차이가 있고 종류가 있지 그게 끝나면 뭐 좋은 것도 끝나고 나쁜 것도 끝나고, 큰 것도 끝나고 작은 것도 끝나고, 강한 것도 끝나고 약한 것도 끝나고 다 끝나 버리는 것인 것을 네가 알아라.

끝난다는 것을 알아라.’ ‘또 그러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생애가 시작되는데 거게서는 뭣만 남아 있느냐? 남아 있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을 소망한 것이, 그 사람이 땅위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소망했든지 하나님을 소망한 그것이 남아 있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소망하는 거.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해서 소망한 거, 소망한 그 소망만 영원한 나라에 가서 남아 있고, 또 그다음에는 충성이 남아 있고, 또 하나는 하나님에게 순종이 남아 있다. 이 세 가지만 남아 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소망하는 거, 하나님을 소망하는 거. 또 하나는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거. 또 하나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거 요 세 가지만 남아 있다.’ 순종과 충성은 다릅니다. 순종은 하나님이 하라 하는 대로 하는 것이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고, 충성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바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같이 시키시는 대로 그 일은 원만히 했다 할지라도 자기에게 있는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 자기에게 있는 것을 바친 것은 다릅니다.

순종과 바친 것이 다르다. 순종하는 것은 그 일을 하라 하는 대로 저거 하나 가져오라 할 때 가져왔으면 순종 다 했습니다. 가져온 것은 꼭 같이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속에 그 주인을 위해서 순종하는 그 순종에 마음을 들이는 것과 자기의 목숨을 들인 것과 힘을 들인 것과 뜻을 들인 것은 다르다 그거요.

그것이 하나님을 대우하고 사랑한 것입니다.

물론 순종하는 것도 대우하는 것이요 하지마는 순종은 뭐 이 세상에서 품꾼이라면 다 순종할 수 있습니다. 품꾼이라면 순종하지마는 순종하면서도 마음을 들이고, 목숨을 들이고, 힘을 들이고, 뜻을 들이고, 자기의 인격을 들인 것은 다르다 그거요.

욕을 하면서도 순종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욕을 하면서도 순종할 수 있고 또 자기의 인격은 하나도 들이지 안하면서도 순종할 수 있고 순종은 꼭 같지마는 거게 충성이라 하는 것은, 인격을 들인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하늘나라 구원은 세 가지인데, 세 가지. 하나는 뭐이라 했습니까? 소망하는 거. 하나는 소망. 요 달란트를 줬는데 주인이 언제 올란가? 장만해 놓고도, 장사를 하면서도 그저 장사하는 데만 전심 전력하고 주인을 기다리는 거, 주인을 기다리는 데 대해서는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자기 하는 그 일만 알뜰히 하기 위해 가지고 그렇게 장사하고 주인을 기다리지 않는 그럴 수도 있어.

마태복음 24장에는 ‘주인이 언제 올까?’ 그저 사람들이 다 같이 주인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안 오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오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또 밤낮 주인 오기를 고대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주인이 와 가지고 한 것은 하나는 뭐이냐? 자기를 기다리는 거, 자기를 기다리는 그것을 제일로 삼고 그다음에는 자기가 맡겨놓은 그 일을 잘한 것을 다음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면 맡은 식구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 나눠준 거. 양식 나눠준 그거와 또 ‘주인이 언제 올란가?’ 마치 어린아이가 저거 어머니가 떠나고 없으니까 자꾸 이거는 뭐 일은 한 내끼도 안 하지마는, 일은 하나도 안 하면서도 ‘어머니 안 오는가?’ 이래 가지고 만날 기다리고 얼굴빛이 쾌감이 없고 그저 항상 근심으로써 마음에 불안한 그런 불쾌한 마음을 가지고 자꾸 어머니 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또 좀 큰 아이는 어머니 오는 것은 뭐 그리 기다릴 필요 없고 어머니가 시킨 거 그거 지금 그것을 알뜰히 할라고 하고 있고, 또 외나 큰 아이는 일은 하면서도 어머니가 없으니까 좀 자유하니까, 자유하니까 좋고, 그러면 아들 제일 큰아들 중간아들 막내아들, 그런데 어머니는 그 세 종류의 아들에게 어데 마음이 제일 기울어지며 어데 제일 관심이 가며 어디에 제일 두터운 연결이 있는가? 아마 아무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하면서 만날 안 온다고 울고 이렇게 장 찡찡거리며 불철주야 기다리는 그 아이를 제일 책임 무거워서, 어데 만일 불행해서 어머니가 살러 가더란대도 그런 걸 떼놓고 가면 그게 제일 마음에 끼일 것입니다. 그런 거 아닙니까? 이래서, 일을 맡겨놓고 떠난 그 주인이 올 때에 밤중에 오니까 기다리고 있던 자는 얼른 문을 열어 주고, 깨어서 기다리는 자는 그러하고 다른 자들은 지금 ‘안 오니까 좋다’ 하면서 술 먹고 이래 술친구들로 더불어 그래 하고, 또 양식 나눠주고 하는 그 가운데에서 어느 것을 주님이 기뻐하시겠느냐 하는 그런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자연계시를 준 것입니다, 자연계시. 그래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라면 그걸 그런 것으로 자기를 비추어서 자기와 자기의 자녀라는 거 이런 것을 다, 또 자기와 자기 밑의 부하에 있는 거, 이거는 뭐 일도 별로이 밥값도 못 하는 직공이지마는, 밥값도 못 하는 직공이라. 직공이지마는 이것은 전적 그 주인만 바라보고 살고 주인 떨어지면 죽을 줄 알고, 다른 직공들은 일이나 부지런히 하고 뭐 이라는데 이거는 일도 하지 안하고, 일도 못하는 거니까. 그저 주인이 일단 그때 안 오니까 마음에 섭섭하고 보고 싶고 자꾸 기다리고 이라는 그런 게 하나 있다 말이요, 직공이. 있으면은 그 주인은 그 직공을 잊을 수가 없고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자기가 자꾸 책임을 더 지게 됩니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이러니까 그거 등신된 것도 자기가 책임져야 되지, 무능한 것도 책임져야 되지, 또 일 못하는 것도 책임져야 되지, 일 못한다고 온 직원들이 숭얼숭얼 놀려대고 찌지니까 그것도 책임져야 되지, 그뭐 아마 그 회사에서 주인의 그 사장의 마음을 독점하는 그것은 그 등신 바보 그것이 제일 독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안 그럴까요? 녜, 그 주인이 실력이 없어서 훌륭한 일꾼이 없으면은 그 일이 안 될 때에는 일꾼을 크게 여기겠습니다. 그러나, 일은 얼마든지 능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실력 있는 주인이라면은 일꾼이야 뭐 이것도 있고 저것도 되고 안 되면 딴 직공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지. 이렇지마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자에게는 그 마음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점이 우리에게 많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등신 바보 같으나 그거 의지하고 있으니 그것은 책임을 제일 중하게 지지 안할 수가 없어. 그거 내 비판이 어떻습니까? 다르요? 그러나, 사장이 무능하고 거지라서 일 잘하는 그 사람이 아니면 회사가 안 되겠고 그 사람에게 뭐 전부가 매달려 가지고 있으면은 이제 그 일 잘하는 그 사람을 제일 중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것은 주인이 실력이 없을 때에는 그렇겠고, 넉넉한 실력이 있을 때에는 자기를 바라보는 그자를 제일, 뭐 가치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게 아니고 자기와의 관계로서는 제일 밀접한 관계, 두꺼운 관계, 책임을 벗을래야 벗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만일 그 부자 사장이 이제는 감원을 시킨다고 하면은, 감원을 시킨다고 하면은 제일 마지막에 남아 있는 것은 그 등신 바보 같은 거, 주인 아니면 죽겠다고 하는 거 그것을 제일 마지막에 남겨 두고 다른 걸 감원할 것이오. 안 그렇습니까? 그 좀 의문돼? 만일 제 의견에 제 비판과 평가와 같애서 저 말하는 대로 그렇겠다 싶은 사람들은 한번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저 뒤에 많이 안 드네, 나는 그렇게 생각이 돼지는데. 자, 능한 사람들 한번 물어 봅시다. ○○○목사님 어떻겠습니까? 내 의견하는 것이 이거 좀 치우칩니까 그렇겠습니까? 인정이 돼요? ○○○장로님, 인정돼요? ○○○장로님, 인정돼요? 또 ○○○집사님은 어때요? 아마 이거 다 이럴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을, 수많은 인간의 마음은 뭐 별별 것들이 있고 별별되게 변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데에서 우리를, 그게 자연계시인데 배우고 가르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을 보아서 깨닫다가 나중에는 자기 보아서 깨닫는 것이 제일 종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보아서,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를 보아서 사람들과 자기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의 비밀을 알지 못합니다. 말할 때에 자기를 모르고 날뛰는 사람 되기 쉽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바라보는 것이 제일 중요해. 이러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바라보는 것이야 뭐 형편이 좋을 때에 더 바라보게 됩니까 나쁠수록이 더 바라보게 됩니까? 나쁠수록이 더 바라보게 돼.

이러기 때문에 저 아주 찬란한 선진 문화국보다 야만국에서 구원을 뭐 오히려 잘 이루게 되지 못 이룰 그런 이유가 없어. 또 형편과 모든 처지가 이 자연 은총이 많은 차이 있는데 그 은총이 빈약할수록 자기 구원 이루는 데는 뭐 손해갈 게 없어.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의 나라로 갈 때에는 주님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어떻게 소망하느냐? 소망하는 이것이 제일 으뜸갑니다. 주님을 소망하는 것이 제일 으뜸가요. 그걸 요런 것도 다 살펴서 똑똑히 확정을 지워요.

제가 지난밤에 잠잔다 하는 게 내치 꿈을 꾸었는데 그 문제에 대해 꿈을 꾸었어.

자꾸 이렇게 불평 불만 이라니까 ‘이러니 이 참 이 처지는 곤란하다’ 이라고 나면은 ‘그러면 네가 하늘나라에 소망이 뭐인데? 하늘나라에 가져갈 거는 뭐인데?’ 밤새도록 그 놀음이라.

‘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늘 없어질지 내일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면 이걸 참 뭐 너무 불공평하게 이렇게 하후하박이 이런 게 많은데 어찌 되나?’ 이래, 나중에 자꾸 또 인제 그라면 ‘가져가는 것은 소망밖에 없다. 소망을 가져간다.

또 소망 다음에는 뭐이냐? 소망 다음에는 충성을 가져간다. 충성을 가져간다. 또 그다음에는 뭐이냐? 그다음에는 순종이다.’ 이러니까 이 세 가지가 중요하고, 중요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만들어 주시는 대로 간다. 이러니까, 인적 요소에는 이 세 가지가 제일 중요하고 신적 요소에는 하나님께서 많이 해 주나 적게 해 주나 이것이 중요하다.

이러니까 당신이 아무리 험한 자리 있어도 당신이 많이 주실라면 많이 주시고 적게 주실라면 적게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신령하고 영원한 것을 많이 주나 적게 주나 거기에 차이기 있는 것이지 자연 은총 없어질 찌끼 이까짓 거는 그 가치가 가지는 못한다.

또 이것은 아주 차이 많아도 거게서 영원 무궁세계에 뽑혀 가지고 갈 거, 없어지지 안하고 영원하고 완전한 것은, 완전한 건 뭐이냐? 하나님과의 인격 관계다. 그분의 신격과 내 인격이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을 바라보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바라보는 그게 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 그거 다 든 겁니다, 바라보는 거. 또 그분에게 대해서 어떻게 충성하느냐? 충성하는 거. 또 그분에게 대해서 순종하는 거, 순종하는 것이 제일 셋째라. 마지막이라. 그러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은혜가 첫째 가고.

이러니까 마지막에 실컷 신강하다 결론한 것이 이거 땅위에 있는 형편은, 땅위에 있는 형편은 이런 형편이나 저런 형편이나 그것은 우리에게 조금도 상관이 없어.

이래서 오늘 아침에 설교하는 데에 이제 이 금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를 한 달란트를 말한 것입니다.

요것이 뭐이냐? 주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 그러면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를 만들어 놨지마는 ‘이래 놨으니까 뭐 주인이야 언제 오든지 상관없다’ 이라는 것과, ‘주인이 언제 오나?’ 어서 이거 만들어 놓고 주인 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거, 고대하고 있는 거. 그게 하나님을 소망하는 거라 말이오.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소망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

소망하는 거는 뭐이요? 소망하는 거는 그분을 인정하기 때문에 소망합니다.

인정하는 것만치 소망해. 모든 존재 가운데 그분을 제일 많이 인정할 때에는 그분을 소망하게 되고, 그분을 믿을 때에는. 제일 많이 인정하고 제일 믿고 제일 의지하고 제일 자기가 안심하고 제가 제일 존경하고 숭배하고 하는 그분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소망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하나님께 대해서 소망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 둘째로는, 일만, 딱 형식의 일만이 아니고 같은 일을 해도 그 속에 충성이라 하는 건 천태만상이라 그말이오. 일만 해 놓은 그게 아니고 속에 충성을 본다 그말이오. 충성이라.

셋째는 이제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거 순종하는 거 그것이 셋째라. 그러면 첫째가 있으면은 철없는 것이 아니면은 다 있을 수 있는데 첫째 소망하고 둘째로 충성 있으면 뭐 순종은 저절로 돼져요.

이러니까 우리가 땅위에서 이런 형편 저런 형편 수많은 천태만상의 형편이 있지마는 그것은 우리 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하등의 차이나 지장이 없습니다.

차이나 지장이 없다는 거 그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오히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가난한 자에게 믿음으로 부요하게 해 가지고 하나님의 후사가 되게 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요 진리를 깨달으면 이 세상 형편 사정 처지가 어떻게 됨에 따라서 거게 평가를 두고 자기 희로애락이 좌우되는 그런 요동되는 그런 일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돼야만 요 바로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보니까, “네가 적은 것에 충성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이다. 네가 잘하였다.

잘하였다. 네가 충성하였다. 착하고 신실하다. 주인의 즐거움에 와서 참여해라.” 들어오라 영접하고 이거 뭐 좋은 거는 다 해 줬소. 그러면 거게 대해서 닷 냥중 받은 자나 두 냥중 받은 자나 꼭 같소.

한 냥중 받은 자가 만일 그랬으면 그거는 적게 받았다고 촘 차이 있을까? 한 냥중 받은 자가 만일 그랬다면은 제일 적게 받은 데도 네가 불평 안 하고 이렇게 했으니까 아마 그것이 꺼꾸로 돼서 한 냥중이 위에 가고 두 냥중이 그다음 가고 닷 냥중이 제일 밑에 갈 것입니다. 아마 앞으로 보응은 그래 할 것이라.

닷 냥중과 두 냥중 둘이 있었는데 둘 중에 닷 냥중 두 냥중 있으니까 그거 어떻게 되겠느냐? 이래 놓으면, 자, 이래 이래 측으로 이래 놓으면 이래 놓으면 꼭 같이 놓을 것이고, 옆으로 놓으면 꼭 같이 놓을 것이고 이래 놓으면  어느 거 위에 놓을꼬? 어느 거 위에 놓겠어? 어느 거 위에 놔? 좀 뭐뭐 의문같은 데. 저 ○? 뭐라 하노? 잘 모르겠어? 닷 냥중 두 냥중 똑 같은 칭찬받고 대우받고 주인의 잔치에 오라 이랬는데 나중에 하늘나라 가 가지고 그것을 이래 옆으로 앉힐 때는 이래 둘이 꼭 같이 앉히지마는 아래 위로 앉힐 때에는 어느 것을 위에 앉힐까 그렇게 생각이 되느냐 말이요? 그래! 두 냥중 받은 사람을? 뭐 의문같이 그게 있어 지금 내가 물었어.

물었는데, ○○ 요거는 보니까 아는 거 같이 자꾸 아는 거 같고, 고거 그런데 아는 놈한테 안 묻고 알쏭달쏭한 놈한테 내가 물었는데 내 생각에 그거 꼭 그래, 꼭은 몰라요. 꼭은 모르지마는 우리 사람으로 볼 때에는 두 냥중 준 것을 위에 두지 않느냐? 왜? 이 처음에 닷 냥중 줬고 두 냥중 줬으니까 닷 냥중은 그거 몇 배나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대우를 많이 했고 이랬으니까 ‘하, 저 사람은 두 냥중 줬는데 나는 닷 냥중 이래 준다.’ 이러니까 그게 좀 기뻐할 수도 있고 주인에게 감사할 수도 있고 이렇지마는, 다른 사람이야 닷 냥중 받았거나 자기 두 냥중 받았거나 그거 상관없이 했기 때문에 그것을 좀 더 대우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이래 생각이 돼지는데 이거 꼭은 아니오, 이건 진리에 그렇게 한 거 아니니까.

많이 준 자에게 많이 받고 적게 준 자에게 적게 받고 이래 했고 이래 대우는 같지마는 요거 내가 말하는 것은 그저 인간 생각으로서 하나님 앞에 적게 받아도 상관하지 안하고 그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고 만족하고 이라는 그것이 더 주인을 더 바라보는 것이며 더 충성하는 것이며 그것이 더 순종하는 것이라, 이렇게 더 가치 있다 그렇게 봐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째요? 이 뭐꼬 이분 말해 봐요, 이분? 아니, 그 뒤에.  어느 걸 제일, 이 두 냥중 닷 냥중이라면 그러면 이래 놓을 때는 같지마는 만일 이래 아래 위로 놓을 때는 어느 거 위에 놓겠어? 적은 거 받은 걸 위에 놔? 저분은 사회 일을 잘 알기 때문에. 신문기자니까 돌아다니며, 신문기자는 장 그런 거나 하고 돌아다니거든. 그런 거 보기 때문에 그 잘 보니까, 인제 일반 사회도 그래 볼까? 일반 사회도 그렇게 보는 게 아마 정식일 거라.

이러니까, 우리가 이걸 깨달으면 자기 형편 사정에 마귀란 놈이 와서 유혹을 시키지 못합니다. ‘너는 이렇게 주고 저 사람은 많이 주고’ 이래 가지고 유혹을 시키지 못할 거라. 이러기 때문에 “원망하지 말아라” 원망하지 마라 말은 자기 있는 데 불평하지 말아라. “그래야 심판을 면한다” 했어.

이렇게 요게 다가 아니라. 이 세상 주는 이게 다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의 인품을 보고, 그의 정성을 보고, 그의 뜻을 보고,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어떻게 믿느냐 이걸 보는 이 중대한 것을 지금 하나님이 기르시고 또 이것을 시험해서 고정시켜서 판정시키기 위해서 이와같이 하는 이 비밀을 깨달으면 이 땅위에 있는 모든 이런 생활은 이거나 저거나 꼭 같기 때문에, 그래서 늘 제가 말하기를 우리의 현실은 가치도 같고, 이용당하는 효력도 같고, 또 하나님의 사랑도 같고, 우리 구원 이루는 데에 이용 가치도 꼭 같다, 조금도 다름이 없다 하는 것을 늘 말하는 것이 그것인 것입니다.

이래서, 어짜든지 오늘 아침에 배운 거 요 세 가지 요것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슬기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거, 바라보는 거. 바라보는 그거는, 바라보는 것은 “갓난 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거와같이 순전한 도의 젖을 사모하라” “도의 젖을 사모하라” 그러면 자녀가 있는 가운데에 제일 어린 그것이 제일 부모를 제일 사모하고, 사모하는 것은 제게 제일 필요하기 때문에 사모하고 또 부모의 마음도 사모하는 데 따라서 관심이 커집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게 나이가 차차 많으면 하루 종일 놀아도 부모 찾지도 안하요, 제대로 돌아다니며 놀지.

그러나 이 이 어린 거 이거는 자꾸 찾는다 그말이오. 그게 뭐이냐 하면 부모 사랑하고 소망하고 그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그거 때문에 그런 거라. 안 되니까 또 부모는 그에게 책임이 더 무겁다 그거요. 그래, 이러니까 제일 중요한 게 소망이오. 그다음이 충성이오. 그다음이 믿음이라.

그래서, 밤새껏 꿈에 씨름하기를 그거 했어. 그래서, 그거 내가 가만히 깨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야, 그게 참 옳겠다.’ 오늘 아침에는 무슨 설교할까 이라니까 여기 와서 생각하니까 ‘마태복음 25장에 금 달란트를 이제 증거해야 되겠다’ 그래 증거를 했습니다.

어짜든지 우리가 그만 주님 소망하는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런 데는 주님을 알아야 돼. 자꾸 주님에게 대해서 자꾸 생각을 해요. 주님에게 대해 생각하고 또 주님의 재림하실 재림에 대해 생각하고, 주님이 구속하신 걸 생각하고 또 주님이 재림하실 거 생각하고, 또 영원 무궁세계에서 주님 모시고 살 거 생각하고, 주님이 나에게 이미 과거에 나에게 베풀어 주신 그 모든 은혜 생각하고, 또 현재에 지금 준비해 가지고 구름 타고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거 생각하고, 무궁세계에 심판 너머 보응할 거 생각하고, 심판 너머 주님, 심판대에 계시는 심판 너머 보응의 주님, 심판 준비로서 심판의 주님, 나를 구속하신 주님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자꾸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주님 생각하는 것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우리 구원을 자꾸 바로 이루어 가서, 이거 참 지금 곧 단계가 마지막이 된 거 같아요. 그러니까 요새는 자꾸 열심히 전도하고 또 기도하고 회개도 하고 이래서, 그뭐 우리가 예수 믿는 데에 이걸 깨닫지 못하면 이 세상 것 이 세상 형편 사정 처지 그것이 내 구원을 좌우하는 근거가 되는 줄로 이래 아는데 그걸 완전히 초월해야 돼요. 완전히 초월해. 가난할수록이 좋고 적을수록이 좋고 공부도 뭐 못 할수록이 좋고 안 할수록이 좋아요.

나도 공부 안 한 거 참 보배입니다. 왜? 이거 공부를 많이 했더라면 복잡했을 거라. 다른 걸 세상 거 다 이럴 건데 그거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만 좀 많이 알게 되니까 좋아요. 그러니까, 뭐 부자도 주는 부자야 뭐 버릴 건 없지만 부자 그게 있어야 구원된다고 탐할 필요는 없다 말이오.

권세도 주시면 그 권세 거기서 구원 이룰 것이지, 거게서 구원 이룰 것이지 뭐 많이 줬다고 좋고 적게 줬다고 나쁘고 거게 불평이나 불만이나 그런 게 있을 수 없어. “그래야 심판을 면하리라” “원망하지 안해야 심판을 면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십 분 기도 후에 결혼 상담 모입니다.

기도록에 등록된 대로 기도하고, 지난밤에는 어젯날은 열한 분 장로님들은 와서 기도했습니다. ○○○장로님? 새벽기도 안 나왔네. 새벽기도 안 나왔어. 나오라 해, 그거. 그걸 계속해야 돼요. 그거 계속 못 하는 게 하늘나라서 천물이라. 엊저녁에 보니까 ○장로님하고 딱 이름이 같이 쓰였네. 같이 왔던가? 각자끼리 와? 인제 각자끼리 다니네. 어짜든지, 친구가 나쁜 친구가 아니라 친구를 떨어져야 됩니다.

이 권사님들, 내가 여기 와  가지고서 서로 권사끼리 만나지, 그때 권찰인데, 집사끼리 만나지 마라.  그 모두 다 짝자꿍인데 만나지 못하게 했어, 내가.

못 하게 한 게 뭐이냐 하면 ‘만나면 너거 서로 죽이지 유익 한 내끼도 없다’ 이래 놓으니까, 못 만나게 해 놓으니까 그 못 만나게 한다고서 ‘서로 만나서 함께 의논도 하고 예배보러도 가는데, 같이 예배보러 가는 거 어때서?’ ○○○권사님이 그때 강사인데 예배보러 가는 거 못 가구로 하니까 이의를 달고 시비가 많았어. 시비가 많아서, 많았고 이래 놓으니까, 못 가구로 하니까, 못 가구로 하니까 마음이 만날 그게 우상이라. 그거 내 마음을 그놈이 다 끌고 있거든. 그러니까 못 견뎌. 가고 싶고 만나고 싶어 못 견디는 거라.

그래 내가 가만히 보니까 가는데, 어느 사람이 가는데 ‘저게 또 저기 가지’ 싶어서, 내가 만났다 말이오. 가지 싶어서 내가 그 보니까 요래 가지고 뭘 요래 치마 밑에 넣어 가지고 치마를 요래 딱 접어서 이래 넣고서 요래 딱 요래 가지고 가. 그래 조게 뭐 들었다 그말이오. 내가 딱 만나서 ‘뭣 들었어? 내놔 봐.’ 이라니까 거기다가 뭐 맛있는 걸 요래 종지기에다 요래 가지고서 ‘어데 가?’○○○권사님 집에 간다 해, ○○○집사님이. 그러그로 해 가지고 그랬더만 지금은 인제 가라 해도 안 가.

그런데 요새또 저 양산동 기도원 갈 때 이제 권사 네 분이 간다 말이오. 네 분이 가는데 또 인제 고 권사님 또 인제 권사 한 분, 다섯 분이 기도 가. 가는데 그 조심해야 돼요. 조심해서, 잘못하면 옛날 내나 썩었던 거 되풀이하기 쉽습니다.

절대로 “정과 욕심을 십자가 못박아 죽이라” 했어. 인정이 좋은 것 같지마는 인정 못 씁니다. 그게 들어서 우상이 됩니다. 그래 가지고 죄짓고 수근거려 죄 짓고, 내가 거게서 ○○○권사님이 나한테 한번 왔기 때문에 야단을 쳤어. ‘권사들 주 뚤뚤 뭉쳐 가지고서 기도막에 죄 지으러 가나? 그라면 기도하러 못 간다.’ 내가 이랬어. 어짜든지 주 몽치지 말아요. 동무들도 떨어지기 싫은 거 그거 그게 사람 죽이는 것입니다.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다” 그러기 때문에 애정이나 감정이나 그런 정에 따라 움직여, 사람은 대개가 정에 따라 움직입니다. 정에 따라서 움직이는 게 사람이오. 정에 따라서 움직이지 말라 말이오.

정을 죽이라 말은 정에 따라 움직이지 말고 어데 따라 움직여야 됩니까? 양심에 따라 움직여야 됩니다. 양심은 어데 따라 움직여? 양심은 하나님의 진리에 따라 움직여야 됩니다. 진리에 따라 움직이면 그다음에 누구한테 따라 움직입니까? 누구한테 따라 움직이게 돼? 영감에 따라 움직이게 돼.

양심에 움직이면 진리 찾아 만나게 되고, 진리 따라 움직이게 되면은 영감 만나게 되고, 영감 만나면은 그다음에는 우리 하나님 예수님과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 다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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