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 젖을 사모하라

 

1982. 3. 28. 주전

 

본문: 베드로전서 2장 1절 - 3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우리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고 또 육은 혼과 이 살덩어리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신자들은 사람의 요소를 세 가지로 말하고 또 둘로도 말하는데 그것이 다  성경적입니다. 영은 이미 자체 구원은 다 이루어졌고 중생 된 영의 권위에  대해서는 죽는 날까지 자라 가는 것입니다.

그 권위가 자라는 것은 자기의 소유가 되어 있는 이 심신으로 된 육을 어느 정도  다스릴 권리를 가졌으며 어느 정도 그것이 영에게 복종을 하게 되었느냐 하는  이것이 중생 된 영의 권위입니다.

육은 죄 아래에서 법적으로는 구속을 받았지마는 실상은 구속을 입지 못하고 죄  아래에 있습니다. 닥치는 현실 현실에서 예수님의 공로를 입은 육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그 죽으심에 연합해서 옛사람으로 살던 것을 죽이고 이제는 그  심신을 영감과 진리에 바쳐 중생 된 영의 주격에 따라서 사는 이 실상의 삶을  가져야 합니다.

현실에서 실상이 죽어야 되고 실상이 살아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살아나는  이것이 육이 살아나는 구원이요. 또 살아난 심신은 그 다음 현실에 죽은 이 육이,  육의 부분이 살아날 때에 같이 살리는 역할을 중생 된 영으로 더불어 같이 하는  산영은 산 역사를 하고 죽은 육은 현실을 통해서 살아나고 하는 것입니다.

근본 하늘나라에 가는 구원은 같지만은 하늘나라에 구원 얻는 자의 영광과  권위와 지위가 다른 것은 영이 그 심신으로 된 육을 어느 정도 잘 길들였으며 또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그것이 하늘나라 구원 얻은 자의 차이점입니다.

요한복음 6장 52절로 6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이요 산 떡이라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자는 살아나고 또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고 생명의 양식인 예수님을 먹지 안한 자는 그 속에 영생하는  생명이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6장 27절에는 "말씀하시기를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하는 이 양식을 위해서 하라" 말씀을 하시고 이 양식은 내가 너희들에게 줄  양식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4장 31절로 34절에 보면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나의 먹을 양식이  여기에서 있다. 제자들이 사마리아 여인이 먹을 걸 주었는가 생각을 하니까  주님이 자실 이 양식을 밝혀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과 온전히 이루는 것이 나의 양식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오늘 봉독한 베드로전서 2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모든 악독을 버리고"  악독을 버리고 하는 말씀은 하나님에게 지음 받아 저도 하나님의 것이요. 모든  먹고 마시고 쓰는 것도 다 하나님의 것인데 이는 하나님을 위해서 중심으로  살라고 했는데 만물은 다 그러한데 인간만은 이 위치를 떠나서 범죄했기 때문에  영원한 사망을 받는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악독을 버리라" 말은 이런 존재가 조물주 이 구속주를 위해서 살지 아니하고 제  중심으로 또 제가 좋아하는 대로 어떤 국가나 민족이나 인류나 어떤 운동이나  문화운동이라든지 무슨 뭐 정치나 사회나 예술이나 무슨 재 마음대로 선택한  어떤 운동들이든지 그런 것들 중심으로 살아 저도 망하고 죽고 조물주에게  영원한 복수로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영원히 멸망을 당하고 죽지도 안하고 고생만  하고 저만 그럴 뿐만 아니라 죽는 이 사상과 주위와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해서 다른 사람에게까지 이런 행동을 가르치고 보이고 또 연극해 가지고 모든  사람이 멸망하는 그 길을 부러워하도록 이렇게 만들고 이렇게 하는 자의 그 독을  가르쳐서 악독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피조물 중심으로 저도 죽고 다른 사람도 망치는 악독이라 악독을 버리고 모든  궤휼을 버리고 궤휼이라 말은 다른 사람을 꾀우는 말인데 꾀우는 것은 어떤게  꼬우는 것인가 피조물 된 자는 일차 타락에서 영원한 사망을 받은 자들인데  여기에서서 대속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구원 얻을 수 있는 이 길이  생겼는데 이 길을 말해주고 이 길을 전하면 되든지 안되든지 그래도 사람에게  바른 말해 주는 것이고 옳은 길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진실이겠고 다른  것이 되겠는데 이 일 외에 이 길 외에 이런 종교 저런 종교를 만들어 가지고 한  그 자가 인간을 꾀우는 자요.

이런 사상 저런 사상 이런 주위 저런 주위 이런 인생관 만물관 제 마음대로  조물주는 따로 있는데 무책임하게 제 생각대로 만물관 생사관 빈부 고락관  이것을 주장해 가지고 아무런 실상 없고 책임을 지지 못할 말이요. 그대로  이루어지지 안 할 이 거짓말을 가지고 인간들을 꼬우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인간을 꾀우는 궤휼의 인간들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인간이 구원 얻는 이 길 외에는 인간의 구원이나 행복의 길이  없는데 이 길 외에 쓰지 못할 것을 가지고 사람들의 그 시간을 거기 다 드리게  하고 정력을 거기다가 기울이게 하고 그것에게 소망을 붙여 가지고 정한 수명의  시간을 다 여기에서 허비하고 낭비하도록 만들어서 일생을 헛일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것 가지고 제 마음대로 이 사람 죽이는 일에 이렇게 쓰고 저렇게 쓰니  하나님의 심판의 복수가 영원한 것입니다.

"궤휼을 버리라"는 말은 그것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외식을 버리라, 주권자이시며  조물주이시며 주재자이신 그분의 뜻이 있고 그분의 법칙이 있고 그분의 주장이  있고 그분의 지어놓은 인간들에게 이렇게 살아라 해 주셨는데 이분도 무시하고  법칙도 무시하고 이 시간이라도 제 생명을 부르면 꼼짝 못하고 죽을 이게  이것들만 뚤뚤 뭉쳐 가지고 오만 것을 계획하고 조직하고 윤곽과 세포를 짜  가짜고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 껍데기만 꾸몄다 하는 말입니다. 껍데기만 꾸몄다  외식을 버려라 주재자는 따로 있는데 주재자 없이 저거끼리 의논하면 뭐 할  것이요. 주권자는 지금 따로 있고 주권자의 법칙은 따로 있는데 저거끼리 저거  비유대로 맞추어서 이래 들어다 꾸며 놓으면 뭐 할거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이 섭리하심 이것 빼 놓고 인간끼리  하는 그 전체가 다 외식입니다. 그 전체가 다 외식 이것 버려야 합니다. 예수  믿어도 악독도 버리지 안하고 궤휼도 버리지 안하고 외식도 버리지 안하고  아무리 큰 소리를 해도 오늘날 주님이 오시면 그런 것 다 전멸을 당할 것입니다.

노아 때에 홍수가 이르러 저희들을 멸하기까지 망령과 패역과 가증과 참람을  부리다가 홍수 속에 매장해서 멸망한 거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 때도 그렇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악독을 버립시다. 꾀우는 궤휼을 버립시다. 봐라 너는 쫄쫄 굶지 나는 고기밥에  잘 먹고 있지 않느냐 너는 값 싼 옷 입고 있지 나는 높은 값비싼 옷을 입고 있지  않느냐 너는 권리 없지 나는 권리 있지 않느냐 이것이 다른 사람들을 꾀어서  죽이는 일 입니다.

그런고로 높은 자는 낮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과거에는 그게 제일인 줄 알았는데  예수 믿고 보니 이거 아니다. 이거 아무것도 아니다. 조물주가 계신다. 그분의  뜻에 따라서 그분 시키는 대로해야 그것이 가치 있지 그분을 어겨서 고량진미를  먹고 세계를 다 제 주먹에 쥐었다 할지라도 이제는 벌로 마련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게 없다. 높은 자가 낮아지고 껍데기 그것 가지고 전적 평가해 가지고 저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조물주가 있고 그분의 뜻이 있으니까? 그분과 그의 뜻을 맞추는 이것이 가치 있는 것이지 그분을 떠난 이것, 다 꾸며 논  이거 외식 다 가짜라 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낮은 자가 나도 최고 자가 될  수 있다. 하면서 버떡 일어서는 것이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모든 악독을 버립시다. 오늘이라도 숨이 끊어지면 저는 영원히  후회합니다. 중생 된 자이면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만 목숨은 붙어 있고 사람은  사람이고 육은 육이지만은 사람이요 목숨 있고 육이지만은 정신 전체가  만신창으로 되어있는 병신이라면 그것은 죽는 것만 차라리 살아 있는 것이 못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과 인간의 차이가 아닙니까? 하늘나라도 이렇습니다  하늘나라도 이렇소. 이렇기 때문에 구원 얻었으나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거와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크지만은 자기 현실에 있어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네가  입었으니 너는 주의 것이 된 것이 아니냐' '아닙니다 나는 내 것입니다.' '주님이  너 위해서 대형 대행 대화친 해서 이렇게 했으니까 너는 죽었다 살아난 자를  위해서 살아야 된다' 했으니까 너는 '주의 것으로 살게 아닙니다. 나는 나로  삽니다.' 이 자에게 어떻게 예수님의 공로가 입혀질 수가 있습니까? 어리석게 인간  중심으로 어짜든지 만물보다 거짓된 인간들의 비유를 맞추어서 그들을  좋아하도록 성경 해석을 해 가지고 오늘에 예수만 믿으면 꼭 같은 영광의 구원  얻는다 하는 안된 학설을 교리와 신조를 내어 논 그 자는 하나님 앞에 받을  심판이 심히 컸을 것입니다. 심히 클 것입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아무리 잘나도  잘난 그 자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오 명철하고도 명철하고 세밀하다 할지라도  명철하고 세밀한 그 사람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오.

요 풀 한 포기에도 이십세기 과학이 다 알았다 하지마는 어림도 없습니다. 분명히  나는 여기에서 대해서 백 분의 일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과거에는  이기면 이긴 줄 알아도 여기에서 세포가 들었다 뭐 있다. 주님의 재림이 남아  있다면 인자 이십세기 이천 년이나 더 있으면은 여기에 서서 지금 발명하지 못한  것이 많이 발명될 것입니다.

이것을 만드신 분이 소리 없이 만드신 분이 엿새동안에 만드신 분이 주님이시오.

하나님이신 데 그분이 등신입니까? 바보입니까? 우리의 것을 세밀히 조사하고  조사하지 못할 줄 압니까? 스스로 속지 맙시다. 모든 악독을 버립시다. 자타를  꼬우고 속이는 궤휼을 버립시다.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고 둘밖에 없다고 했소.

믿음으로 사는 그 외의 생애는 높든지 낮든지 잘났든지 못났든지 저 속이고 남  속이는 것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성경이 말했어. 디모데후서 3장에 말씀해  놨습니다. "외식을 버리라" 알맹이 없는 껍데기 생명 없는 살이, 평강 없는 평강,  나라 없는 나라, 소유 없는 소유, 참 행복 없는 행복 이러니까 오늘이라도 그 생명 부르면 다 없어질 껍데기만 꾸며 놓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면 저 해 놓은 일이 전부 다 쭉정이요. 껍데기요.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 멸망만 마련해 놓고 제 딴에는 일생동안 행복 마련했다고 자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 행복보라 나를 불러서 나를 따라 오라.

이렇게 하니 그것이 순전히 껍데기 만드는 것입니다. 외식이라 말은 껍데기  외(外)자 꾸밀 식(飾)자 껍데기만 꾸몄다 그 말입니다. 얼마나 껍데기 꾸몄습니까?  우리가 지금은 이제 지체할 여가가 없습니다. 회개를 해야 됩니다. 시간이  바쁩니다. 회개도 못하고 엉거주춤하다가 떠나면 그대로라 하늘나라에 가서 걸어다닐 걸음마도 배우지 못했고 하늘나라에 가서 아! 사람들은  어리석습니다. 인간의 언변과 지혜가지고 얼마든지 사람을 다스릴 수 있소.

이북에는 김일성이가 자기를 신이라고 하기까지 사람들을 다스립니다. 그러나  그것이 생명 있는 것 아니요. 예수 믿는 사람도 그 날 그 날에 하나님이 새로운  은혜를 주시면 새로운 은혜를 받아 가지고 제가 변화가 되가지고 자기에게  말씀으로 온 그 말씀과 말씀 속에 성령과 성령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이 능력으로 살려야 되는 것이지 자기에게 온 하나님이 제일 껍데기로 온  것이 이 말씀이요. 그 속에는 영감이요. 그 속에는 하나님이신 데 이분을  배반하고 이분의 일을 어떻게 안다 말이요.

그러기에 예배볼 때에 조는 사람은 그 사람은 운동해도 헛운동입니다. 그것다  외식이요.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 지은 게 뭐이요. 영원성 완전성 하나님과 진리  가지고 짓지 안하고 인간 요소들 인간들 지능 가지고 지은 그것이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입니다. 다 불타버리고 맙니다.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 말씀을  자기가 들어 깨닫지 안하고 뭣 가지고 살 것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진리를  제가 혼자 연구해서 알든지 모르는 사람이면 배워 가지고라도 알아야 되지  배우지 안하고 어떻게 할 것이요.

주일학교 반사들도 그 학생들 인도가 좋지마는 아닙니다 제가 구원을 얻어야  구원 얻은 자가 구원 얻은 자가 얻은 그 구원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구원을  전해주는 것이지 제 구원 안된 자가 남의 구원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학생들 데려다 놓고 저는 예배 볼 때에 꾸벅 꾸벅 졸아서 그냥 다 지나보내  버리고 가서 일하는 것이 진리와 권능으로 일하지 아니하고 순전히 제 생각 제  주의 제 언변 제 열심가지고 일하는 것이니까 그 무슨 생명의 열매가  맺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제야 뭐라고 해석을 하고 잘났든지 간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말합니다. 새벽기도 나오지 아니하고 성경도 제가 보지 아니하고  제 생각 제 주장 제 깨달음 제 자율대로 주관대로 사는 사람은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건설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소. 안나와도 이룰 수 있지요.

성경 말씀을 진실 되게 보고 고대로 또박또박 실행을 하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지 그렇지만은 내가 보기에는 내가 열 마디 물으면 열 마디 대답 하나도  못할 거라. 박사도 그렇고 대학원 졸업생도 그렇고 대학생도 그렇고 예수 믿는  사람이 새벽기도를 무시하고 하는 그 사람으로서는 배울 것이 없어도 자기가  연대 책임 있는 것으로써 내가 새벽기도 나가면 많은 사람이 안나와서 멸망  받으니 이 책임이 무겁다.

그 깨달음이라도 가지고 새벽기도 나올 터인데 하나님이 그 제도를 세워  놨으니까 정말로 자기가 하루에 할 일이 어떻다는 걸 깨달으면 주님의 비유를  맞추어야 될 터이니까 나를 집사라고 교인이라고 아는데 많은 사람에게 내가  산에 가서 한다 할지라도 새벽기도 나오지 안 하면 그 사람들에게 덕이 되지 안  하니 주님이 좋아하겠나 섭섭하겠나. 다른 사람에게 선을 격발케 하기 위해서  본을 보이기 위해서 내가 산에 가서 기도하는 것보다도 교회 가서 기도하면 내나  산에 가도 내가 널 상대할 것 교회가도 내가 널 상대할 것 또 내가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가르칠 때에 그 가르친 말씀이 네게도 도움이 되지 안 할  것.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될 것.

이러니까 내가 좋아해서 오늘의 하루 일을 나한테 물으면 네가 의논이 통하고 잘  가르쳐 줄 터인가 그게 낫지 이런 분명히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이 심령의  응답이 없는 사람이 그 사람이 신앙 잠을 자는 사람이지 무슨 산 사람이라  하겠소.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새벽기도 나오지 안 하는 사람 기도에 힘쓰지 안 하는  사람 환란이 이를 때에 산기도 금식기도 이렇게 발동 치지 안한 사람 쳐놓고  환란에 마귀에게 삼키지 안한 사람 나는 하나도 안 봤습니다. 왜정 말년에도  신사참배에 참가한 사람들 다 전부 최고의 학벌을 나온 잘난 사람들이요. 위대한  사람들이요. 다 삼켜졌습니다. 다른 사람 멸시하고 제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다 패전했어. 이것이 사람이 말 안 해도 자기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나보고 예수 믿어라 나를 본 받으라는 말을 하지 안하고 나는 본 받지 마라 나는  본받지 마라 해도 저는 다른 사람에게 본을 끼치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러기에 제가 다른 사람에게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누어주는 신앙의 유익을  주는 일이 아니면 신앙에 해를 깨치는 일이지 무엇이겠소. 이 시간에 제가 증거  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심판과 다르면 내가 저주와 징계를 받을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뜻과 동일하다는 걸 확실해서 나는 증거 합니다.

여기에서도 공산주의자가 와 가지고 지금 속으로 녹음으로 필기도 하는지  모릅니다. 분명히 와서 있기는 있습니다. 어떤 때가 되면은 나를 그 앞에서  직고해서 고발할 사람은 있습니다. 있는 줄 알고 증거 합니다. 공연히 할 말이  없으니까 무슨 큰소리나 하고 싶고 인기나 끌고 사람들의 그 마음이나  감동시키고 하는 줄 압니까? 사례를 받으니까 월급 그것 때문에 하는 줄 압니까?  하나님만 허락하신다면 하나님이 하지말고 다른 거 하라 한다면 지금 손 딱 떼고  해도 내가 지금 생활보다 경제생활 몇 배 더 크게 합니다. 십 배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없는 게 아니라. 이게 가치 있는 길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고  명령하신 길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요 뭐 돈보고 설교하는 줄 압니까? 그래도 지금 이북에서 칼을 갈고 앉았는데 생명 내놓고 하는 설교입니다. 생명은  제단 위에 바쳐놓고 하는 설교요.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을 버리고 시기와 모든 훼방의 말을 버리라"  시기를 버리라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면 전체가 그의 것이요.

그로 말미암아 피동이요. 실패도 그의 실패 성공도 그의 성공이니 천인 만인이 잘  되어도 주의 것 잘 되니까 제것이고 못하면 원수가 잘못되어도 주의 것 잘못되니  제것 잘못 됐기 때문에 걱정이고 이런데 근본이신 주님을 버려놓고 나니까  주인이 각각 제가 주인이기 때문에 저거는 내 것보다 낫다 내 것이 저만 못하다.

이것이 제가 왕이 되어 가지고 독립자로 자조자로 주체자로 된 요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 보면 시기 나고 저보다 나은 것 보면 분하고 저만 못한 것 보면  멸시하고 요 시기하는 것이 자기가 왕이 됐다 그 말이요. 왕이 된 그 행위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갓난아이가 갓난아이는 옷 걱정도 없어요. 사업 걱정도 없어요. 명예 지위 권세  걱정도 없어요. 갓난아이는 어데 병들어서 아프면 골막거리지만 병든 거 외에는  젖 먹을라 하는 것 그거 외에는 다른 게 아무것도 없어. 젖 먹을라 하는 것 그거  외에는 딴 게 하나도 없어요. 갓난아이는 그 울면은 들창 젖꼭지 물라고 그라면  해결되고 젖꼭지를 물려도 해결이 안되면 몸뚱이 조사해 보면 몸뚱이가 반드시  병이 들었다 말이요. 병든 거는 아프니까 못 견뎌 날뛰는 것이고 아프니까 못  견뎌하고 사모는 젖 밖에는 사모하는 게 없어.

"모든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의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신령한 도의 젖을 사모하라 했는데 여기에서는  지금 개혁에는 이래 놨습니다. 도의 젖이라 말 안 하나 한가지 말입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 말은 무궁을 향하여 갓난아이같이 된 우리들은 무궁을 향하여  자라 가는 우리들이요. 무궁한 세계의 온갖 실력도 자라가고 권위도 자라가고  지위도 자라가고 영광도 자라가고 소유도 자라가고 전체가 무궁세계를 향하여  지금 자라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어린아이가 자라는 것 외에 딴 것 아무 것도  없어요. 자라는 것만 알지 할 일은 자라고 난 다음에 할 일이라. 갓난아이는  자라는 것 뿐이라 우리가 죽는 날까지는 갓난아이같이 자랄 것뿐입니다.

이러니까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젖만 사모해서 젖만 먹어라 젖을 먹고  자라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네가  주의 인자를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다른 것 다 두고 "순전하고  신령한 젖" 젖이 뭐인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으신 신구약 성경의 계시  말씀, 그 안에 영감 진리와 영감이 가르치는 주의 이 대속 구속 이로 인하여  자존자 주재자 창조주 주권자 이 하나님에게 연결되는 연결 이것이 젖입니다.

이것이 젖이요. 우리가 먹고 자랄 양식입니다. 양식 이것만 사모해 모든 것 버리고 가족사모도 버리고 사회사모도 버리고 자체사모도  버리고 모든 것 버리고 진리 영감 주의 대속 하나님에게 연결되는 것 이것만  사모하던 우리가 한 말도 한 마디도 썩는데 이르지 안 할 것이고 우리  생각하나도 썩는데 이르지 안 할 것이고 우리의 희로애락 하나도 썩는데 이르지  안 할 것이고 우리의 노력도 하나도 죽는데 이르지 안 할 것이다. 가장  하나님에게 알맞은 기뻐하는 내가 될 것이고 전 피조물들에게 가장 원하는 내가  될 것이고 전 인류에게 가장 존대하고 사모하는 내가 될 것이고 국가에 제일  보배로운 사람이 될 것이고, 사회와 가정에 교회에 제일 보배로운 가치 있는  생애를 한 사람이 될 것이고 자기에게도 제일 좋게 한 사람이 됩니다. 이거하면  실패인 줄 압니까? 이거 외에 딴 것 생각해서 좋은 것이 이루어질 것이 있는 줄  압니까? 어리석습니다. 어리석지를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갓난아이가 이렇게 젖만 사모하는 것처럼 아픈데 있으면 울고 그 외에는  젖 때문에 우는 기라 젖만 사모해 아픈 거는 이 위해 발동하는 것이고  갓난아이는 젖 외에는 사모가 없어.

이와 같이 우리도 순전하고 신령한 우리의 양식을 사모하라 했습니다. 우리의  양식을 이것만 사모하면 양식 먹으면 건강해지지 힘이 나지지 육체의 양식은  물질인데 아무리 건강하고 잘나고 장사라도 안 먹으면 저는 눌러지지 안 먹으면  기진 맥진해지지 심히 안 먹으면 저는 말라붙어 죽지 음식을 입으로 먹고 코로  먹고 이 피부로 먹어 모든 그 식물에 제게 필요한 것을 먹어서 건강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신령한 사람도 그 신령을 먹여야지 그 영혼을 먹여야지  고깃덩어리가 먹을 때에 마음으로 더불어 같이 먹지 입으로 먹고 마음으로 안  먹으면 안됩니다. 마음에 구미가 당기지 안하고 마음에 이 음식을 먹으려고  하니까 먹으면 죽을 것 같은 그런 구역질이 나는 음식 먹으면 반드시 그 음식을  먹고 제가 좋지 못한 결과가 나는 것입니다.

마음에 구미가 당겨서 마음으로부터 맛있고 먹고 싶어 음식을 먹을 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과 심령 영혼은 영이 아닙니다. 고깃덩어리 그 육을 가라쳐  심신을 가르쳐서 말합니다.

이 심신의 이 심령과 이 영혼이 음식을 먹어야 이게 강건해지지 이것을 음식을  먹을 때에 어떻게 먹는가 진리가 양식이요 영감이 양식이요. 주의 대속의 사랑의  공로가 양식이요. 하나님이 우리의 양식이 되시니 이 양식을 어떻게 먹겠소 중생  된 영으로 더불어 먹는데 마음으로 먹어야지 마음으로 먹으니까 생각으로  먹어야지 영으로 먹어야지 이성으로 먹어야지 감각으로 먹어야지 비판으로  먹어야지 평가로 먹어야지 하나님의 진리를 제가 상고하고 생각하고 영감을 받아  감동으로 먹고 감각으로 먹고 각오로 먹고 결심으로 먹고 비판으로 먹고  하나님의 성경 말씀으로 비판해 보면 땅 위에 가치 있는 생활이 예수 믿는 생활  외에 뭐 있습니까? 이 걸음 걷는 자의 배경이 자존자시며 조물주시요 주재 주권자신데 누구만 못한  것이 어데 있습니까? 암만 살아봤자 오늘 죽을지 모르는 그 생명도 귀하다  하는데 영생인데 영생의 가치가 그만 못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제자들이 모르는 신령한 양식 썩지 아니할 양식 영원한 양식  순전하고 깨끗한 하나님의 이 도의 젖을 먹어 영감을 받아 봐야 되지 영감을  사모해야 영감이 오지 진리를 상고해야 그 비판이 나오고 평가가 나오지  하나님의 약속을 읽어보고 명상해 봐야 그 약속이 큰지 땅에 있는 약속이 큰지  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돈 돈에 팔려 고깃덩어리 먹는 거게 팔려  제 욕심에 끌려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만 연구하고 그것만 계산하고 그것만  평가하는데.

그러니까 그 사람은 옛사람만 튼튼해지지 옛사람만 튼튼해지고 죄악의 사람만  튼튼해지지 악령의 감화의 사람만 튼튼해지지 악성의 사람만 튼튼해지지 악습의  사람만 튼튼해지지.

이러니까 죽은 기쁨, 죽은 능력, 죽은 담대, 죽은 쾌락, 죽은 행복, 썩은 행복,  망할 것 이런 것만 더 고귀하고 가치 있게 보이고 더 사모하게 보이고 더 이것만  마련하게 보여지지 돈을 사모하듯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모하듯이 신령한  양식을 사모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또 놓고 떼고 계산해 보고 썩은 자기  중심으로 하나님의 중심으로 생각해 보지 비판해보지 환하게 나오지 이러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속성이 힘을 얻을 것이고 강건해질 것이고  성장될 것이고 하늘에 기쁨이 하늘에 영광이 하늘에 권위가 하늘에 취미가  하늘에 담력이 하늘에 지위가 튼튼해지니 세상에 있는 것을 배설물로 여길  수밖에 없을 터인데 신령한 양식을 먹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죽었습니다. 우리의 몸의 기능은 죽었습니다. 죽음으로 지금 죽음이 커가고 있는  것이요.

이러니까 하루 살았으면 하루 산 것 만치 저는 죽었지 그만치 꺼져졌지 믿음의  사람이 새사람이 신령한 사람이 먹어야 힘을 얻지 자라야 힘이 더 세지지 안  먹는데 어떻게 힘이 있겠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생각해 보지 안 하는데 무슨  힘이 나오요. 진리의 말씀을 읽어보지 그 말씀을 참 된다고 그 말씀을 읽어보지  세상이 뭐인지 그 말씀을 화하게 가르쳐놨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걸  환하게 가르쳐 놓고 있지 무엇이 죽은 건지 산 것인지 다 말해놨지 귀하고 천한  걸 다 말해 놨지 가치 있는 생활 가치 없는 생활 다 말해놨지 권위 있는가  없는가를 다 말해놨지.

 이러니까 자기의 깨달음이 달라지지 생각이 달라지지 평가가 달라지지 비판이  달라지지 소원이 달라지지 욕심이 달라지지 이러니까 계획이 달라지지 활동이  달라지지 힘이 달라지지 기쁨도 달라지고 즐거움도 달라지고 담력도 달라지고  마련하는 것도 달라지고 달라지는 것입니다. 안 먹으니 죽었소 안 먹으니  죽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나를  대속하셨는데 그 은혜를 배반하면 "모세의 율법도 어긴 자를 하나님이 에누리  없이 멸하셨거든 하물며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까지 하셔 가지고 구원하신 이  구원을 등한이 여기는 자에게 받을 형벌이 어떻게 크겠느냐" 말했습니다. 이 성경  말씀 아닙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뭐 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가 땅 위에 있는 그 권위 있는 사람만 못합니까? 그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권위자입니다. 창조주시요. 영생이, 많이 살아 요새는 백 이십  세 살았다 백 삼십 세 살았다 하는데 백 이십 세 살았으면 몇 해 돼요. 영생이  그만 못합니까? 대주재 아들이 어떤 권세 있는 자의 아들만 못합니까? 하나님이  배경인데 땅 위에 인간의 배경만 못합니까? 살려봤자 죽을 고깃덩어리의  치료하는 의사가 큽니까? 영생하도록 치료하는 그 의사가 큽니까? 무엇이  작습니까? 무엇이 약합니까? 무엇이 천합니까? 천지는 없어질 수 있어도 하나님  말씀은 획 하나도 없앨 수 없다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이 말씀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버렸고 이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이 말씀이 말씀하는 거는 다 버려버리고 만물보다 거짓된 인간의  대가리에서 나온 요것만 인정하고 보기 때문에 저는 죽었지 저는 말라빠졌지  저에게 희로애락은 있어도 죽은 희로애락이라 정말로 네가 기뻐하는 기쁨이 산  기쁨이냐 오늘 죽어도 그 기쁨이 있을까 공산주의가 쳐들어와도 그 기쁨이  있을까 네 환경이 절단 나도 그 기쁨이 있을까? 세상이 없애라면 없앨 수 없는  기쁨일까 없앨 수 있는 기쁨일까? 예수 안에 있는 기쁨은 그런 것 아니요 온  천하가 와서 없애도 없앨 수 없는 기쁨입니다. 없앨 수 없는 기쁨 없는 부요요, 왜? 이 새사람 우리는 힘 얻어 자라지 못하고 멸망 받을 옛사람으로만 자라게  되는가 왜 그 사람은 강한데 새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시들어져 가지고 기진  맥진해서 사람이 육신의 양식 안 먹으면 기진 맥진하면 희로애락도 없지. 눈도  어두워지지, 이 지체도 다 굳어져서 죽은 송장같이 되어지지 양식을 안 먹으니까  우리에게는 사랑이 힘이 있소 진실이 힘이 있소 거룩의 힘이 있소 의가 힘이  있소. 진리의 지식이 힘이 있소. 믿음이 힘이 있소. 하나님을 바라보는 소망이  힘이 있소. 순종하는 순종이 힘이 있소. 정평정가 하는 힘이 있소. 없습니다.

불쌍하고 가련한 자들입니다. 가난하고 가련하고 벌거벗고 눈먼 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이라도 주님이 부르면 이대로 이 모양으로 가야 돼. 주님이  재림하시면 이 모양대로의 신자들로 가야 돼. '모세를 통한 율법도 어긴 자에게  하나님이 벌을 에누리하지 안 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독생자로 독생자와  성령으로 인하 이 법칙을 어긴 자에게 받을 형벌이 어떠하겠느냐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분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오늘에는 부들부들 하고 배척도 해도 되고 쥐 박아도 되고 욕도 해도 되지마는  구름 타고 오고 난 다음부터는 안됩니다. 그때부터는 심판의 하나님으로 권위의  하나님으로 만주 만 왕의 하나님으로 오늘에는 긍휼과 인자의 참고 견디는  인자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대하고 있습니다마는 언제든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리석고 교만하지 맙시다. 모든 악독을 버립시다. 저만 제 중심으로 사는 것도  하나님 앞에 받을 벌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데 제 중심으로 살려거든 하나님이  만든 데서 살아도 저 첩첩산중에 가서 보는 사람도 접촉하는 사람 없이 저 혼자  살면 저 혼자만 벌받으면 되지마는 피조물 중심으로 제 중심으로 피조물은 크다  위대하다 하고 이는 크다 뭐이 크고 위대한데 우주의 우주 속에 지구 땅덩어리는 우주를 지리산만 하다고 비하면 이  지구땅덩어리는 지리산의 먼지 하나만 합니다. 먼지 한 개만 하요. 고렇츰 작은  양이요. 지구 땅덩어리 가운데에 한 모떼기 소련이 몇 분지 일이나 됩니까?  미국이 몇 분지 일이나 됩니까? 한 모떼기 그것 중에도 고거 거게서 거게 속한  먼지 먼지 먼지 중에 그거는 큰 줄 알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고 제 부자가  큰 줄 알고 제 지위와 권세가 큰 줄 알고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네가  소경이다. 네가 소경이다. 원시치 못하는 소경이라 없는 것 같으나 인간이  그리스도의 것이 되려고 하는 이 운동은 적어도 하늘의 것과 땅에 것과 영계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 사망 것 생명 것 모든 것을 자기 것을 삼을 수 있는 이  수속을 밟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계약을 의지해서 지금 밟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자기 것이라 한다고 시비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그 사람이  이겼다 하는데 그거 미국나라 크게 경성을 주는 것입니다. 세계에 경성을 주는  것이요. 그 말이 맞소? 믿는 자이 것이지 믿는 자의 것이 아닌 게 어데 있소  있기를 내가 믿으면 여러분들은 다 내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믿으면 나는 여러분들의 것이요. 믿음의 비밀을. 믿음이 만든 비결을  성경이 말한 대로 그대로 인정해야지. 먹어야 힘이 나지 먹지 않기 때문에 신령한  사람은 다 안 죽었지만 죽은 것같이 골케 골케하니까 그의 마음에서 그의 몸에서  그의 입에서 그의 눈에서 그의 손에서 그의 행동에서 산 생활은 하나도 안나와  죽은 생활만 막 나오지. 이 원인이 어데 있습니까? 신령한 양식을 먹지 않는데서  오는 기라. 생각해 봐요. 예수 믿는 사람이 기쁘면 절대로 두드려 밟는 것  아닙니다. 보니까 기뻐지는 것 아니요. 접촉하니까 기뻐지는 것 아니요. 신령한  기쁨은 생각하고 생각하고 하니까 기쁨이 나옵니다. 생각 속에서 나오는 것이요.

성경도 연구 속에서 나오는 것이요.

하늘에 속한 두려움도 생각 속에 나오는 것이요. 성경을 가지고 생각해 보니까  두렵습니다. 이러니까 전 생애는 죽은 생애 뿐이라 산 생애는 없어. 죽음에다가  죽음의 양식을 보태니까 점점 죽음이 강해지고 죽음이 짙어지지 산 자에게 산  양식을 가하면 산 자가 강건해서 산 자에게 산 행동이 나올 터인데 그런고로 악독을 버립시다. 궤휼을 버립시다. 외식을 버립시다. 참 가증스러운  시기를 버립시다. 훼방을 버립시다. 전체가 불쌍하고 가련한 것 뿐이요. 제가  주체가 되니까 모든 걸 상대해서 시기도 질투도 훼방도 나옵니다.

하나님에게 소속한 자는 시기 질투 하나님이나 시기 질투할까 하나님에게 속했기  때문에 시기 질투 훼방은 자기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할 것은 아니라. 이러니까  썩을 것만 마련하고 도적 맞을 것만 마련하지 영원한 거 하나도 마련하지 안  하지.

 이러니까 어떻게 하면 미국으로 도피를 할까 재산을 어떻게 하면 지금 도피를  할까 어디를 갈까 육덩이 살기는 한국이 나쁠지 몰라도 예수 믿기는 한국보다 더  좋은 곳은 세계는 없습니다. 한국이 제일 예수 믿는 데는 제일 좋소. 신령한  사람이 성장되고 연단 받는데는 한국 같이 좋은 곳이 없어. 이제 양식을 안  먹었으니까 기진맥진하기 때문에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아무리 바빠도 성경대로 생각해봐야 됩니다. 성경대로 비판해 봐야 됩니다.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지 귀를 기울려야 됩니다. 자기 양심 속에 성신의 감화가  자기에게 어찌 감화 주는 고걸 받아야 됩니다. 고거 안 받고 성경만 읽어  가지고는 소용없어. 성경에서 그 영감을 받아야 되지 영감에서 하나님과 결합이  돼야 됩니다. 그래야 거게서 나오는 것이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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