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동행

 

1987. 3. 9. 양성원 개강예배

 

본문:요한일서 3장 1절∼3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자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시려고 그 역사하신 역사는 심히 큽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곧 하나님의 기업을 받을 후사를 만드시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은 우리가 측량 못 합니다.

첫째로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당신 의지 안에서 목적을 정하신 일이 있는데 그 목적 정하신 것을 사랑함으로 정하셨다 했습니다. 또 목적을 이루시는 것도 사랑과 은혜로 이루신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시고 이 목적을 많은 순서를 거쳐서 완료하실 때도 그리스도로 완료를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신 우리의 영원한 영광의 기업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영광의 기업이라 말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 영원한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고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는 것이 하나님의 대접입니다. 주기를 원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아 가지고 또 받기를 원하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영원히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케 하여 줌으로 모든 존재들이 먼저 하나님의 자녀된 저희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또 저들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이 시은의 기업, 은혜를 베푸는 시은의 기업, 봉사의 기업, 모든 잘못되고 부족한 것을 주님이 우리를 담당하신 것같이 모든 피조물의 모든 그 부족한 것을 다 담당하는 이런 영광의 직을 마지막으로 맡길 것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로 계속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됐고 또 영원히 완성 그 단계에서 영원히 끝없는 계속하는 그 계속도 그리스도적인 그 은혜로 우리에게 계속해서 이루십니다. 이것은 뭐 참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사람들은 아무리 안다고 하여도 다 측량할 수 없습니다.

또 이뿐만 아니라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당신이 예정을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예정하셨습니다. 또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말로 쉽지 예정이라면은 역사에 전개되는 그 모든 것은 다 예정대로 전개되는 것입니다. 또 모든 존재는 창조되었기 때문에 존재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정도 창조도 보존도 섭리도 이런 것이 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만들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그 무한하고 충만한 것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상속시켜 주시고 이 상속을 받을 만한 실존을 만드시기 위해서 이렇게 하나님이 큰 사랑의 역사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이 비밀을 알지 못하고 또 비밀의 원인이요 비밀의 끝이요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아버지도 알지를 못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대해서 그들이 부러워하는 것이나 시기하는 것이나 대적하는 것이나 그런 것이 없이 잘 자라가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랑하는 자들이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포된 이 문서 계약으로 되어 있지마는 잠시 후면은 이 문서로 계약된 이 모든 것이 다 실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이 소망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다 측량 못할 소망입니다. 이는 아무리 사람이 알라고 해도 자기가 자라는 것만치 알고 자란 그 이상은 알지 못합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의 소망은 우리가 하나님과 꼭 같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고 부모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또 모든 자연계시에도 새끼는 에미 애비를 닮습니다. 또 모든 씨종자들도 그 종류는 그 먼저에 선조의 그 종자를 닮아서 그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 하는 것은 하나님같이 된다는 것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가 상속받을 자인 것과 또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다 인계받을 자들인 것을 여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이 큰 소망을 가진 자는 조건이 있습니다. 이 큰 소망을 가진 자는 조건이 있는 것은 3절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하나님 당신이 깨끗하시고 당신의 하시는 일도 깨끗하시고 당신에게 속한 것들도 깨끗하고 모두가 다 깨끗해서 그 나라에는 깨끗지 안한 것은 용납될 수 없고 또 그 나라의 것은 깨끗지 아니한 것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이 깨끗을 모릅니다. 한 가지 나타난 것은 예수님은 깨끗으로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의 깨끗이 나타나시고 보니까 모든 더러운 것은 다 불살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이 소망을 가진 자는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인고 하니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로 시작되고 예수로 통과해서 이 결말로 이루시는 이 모든 구속의 은혜는 우리가 새삼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다 이루어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루어져 가지고 있는 것인데 우리가 이루어져 있는 그 은혜로 된, 한 말로 말하면 구원이라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모든 은혜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다 만들어져 가지고 있는데 이 만들어져 가지고 있는 것을 받는 자는 깨끗한 자인 것입니다.

이 만들어진 이 모든 본질과 본성과 그 방편이 다, 깨끗이라 말은 완전이라 말이요 온전이라 말입니다. 잡것이 하나도 섞여 있지 않다 그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이라는 말입니다.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은혜 자체 모든 하나님 자체도 깨끗이요 그분이 목적한 바로 경영하는 바도 또 이루시는 방편도 전부 깨끗입니다. 전부 진리입니다. 전부 완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이 깨끗하심에는 무엇이 견디지 못하느냐 하면은 삐뚤어진 것은 견디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옳은 것만 있는데 삐뚤어진 것 틀린 것은 용납되지를 못합니다. 쉽게 말해서 이 무슨 수학적으로 계산을 한다면 거게는 계산이 다 딱 들어맞아 가지고 있는 것인데 거게서 계산에 틀린 것은 거기 용납 못 합니다. 계산에 틀린 것은 거기 암만 있을려 해도 있지를 못하고 그는 자연히 거게서 스스로 은퇴해서 나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깨끗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깨끗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깨끗이라는 것은 그저 잡것이 없고 틀린 것이 없고 , 옳게 표현할라고 하면은 깨끗이라는 것은 진리라 그렇게 표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갈 나라도, 우리가 받을 기업도, 우리가 영원히 쓸 방편도, 우리가 쓸 힘도, 또 우리가 속한 거게도, 또 우리가 받아서 피조물들에게 주는 것도 다 깨끗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깨끗이 가는 곳에는 모든 더러운 것이 소멸되는 것이 그것이 필연성의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깨끗게 하시기 위해서 도성인신 하셨고, 또 사활로 대속을 하시고, 또 피와피는 대속인데피와 성령과 진리가 합하여서 이 깨끗 운동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죽은 영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다 사죄와 칭의의 화친을 입히고 난 다음에 우리를 이 대속과 또 성령과 진리로 우리를 중생시킨 이 생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생명도 깨끗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영에게는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 우리 영에서는 떠나지를 아니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시기를 원하기를 얼마나 원하느냐? 영원히 계시기를 원합니다.

영원히 우리의 머리되시기를 원하고 우리의 생명되시기를 원하고 우리의 그 능력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데, 우리 영이 깨끗하기 때문에 우리 영에게는 항상 떠나지 안하고 영원히 계십니다.

계시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 하나 있는 거는 뭐이냐? 우리가 성전되고 그의 지체되는 것을 원하시는데 이 영은 깨끗하니까 하나님께서 늘 오셔 가지고 이와 같이 동거 동행하시지마는 우리의 심신으로 된 이 육이 깨끗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육 안에 들어와 계시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게 하는 데에 우리가 뭐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기를 원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 거게 대해서는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와서 계시기를 얼마나 원하느냐? 하나님이 사람되시기까지 원하시고 또 십자가에 저주의 사망을 받으시기까지 원하시고 또 영원히 피조물로 창조주가 계시기까지,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시기까지 원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지혜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완전되시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주여, 나에게 오시옵소서. 내 안에 계셔 주시옵소서. 나와 같이 해 주시옵소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것은 자기 혼자 군담이고 교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거게는 아무 관심이나 노력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다만 문제는 무슨 문제냐? 그분이 완전이기 때문에 소멸하시는 불입니다.

히브리 12장 끝절에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니라” 했습니다. 소멸하는 불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완전이기 때문에 그 불완전한 거는 다 소멸되고 맙니다.

깨끗이기 때문에 더러운 거는 다 소멸됩니다. 참이기 때문에 거짓된 것은 다 소멸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항상 계시고 영원히 계셔서 우리는 당신의 전이 되고 우리는 당신의 지체가 되고 당신의 몸이 되고 당신은 우리의 생명이 되셔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를 영원히 원하십니다.

원하시는데, 어떻게 해서 우리의 이 심신은 전능을 가지고, 한 토막을 말하면 전능을 가지지 못했는가? 우리 영은 전능입니다. 우리 영은 전능입니다. 우리 영은 전능인데 전능의 영도 이 심신을 어떻게 할 수가 없고 또 전능의 하나님도 우리의 심신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그 자유성 능동성을 줘 가지고서 길러야 하나님의 형상이 돼지지 하나님의 형상은 제일 권위 있는 것이 능동성이요 영원에 원인이 되는 것이 당신이신데 우리가 하나님을 아무리 안에 계시구로 이래 할라고 해도 당신에게 배치되는 것이 있을 때에는 마치 빛이 들어오면 그 어두움이 그만 녹아져 버리는 거와 마찬가치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는 녹아집니다.

주님이 마지막으로 재림하셔서는 그 빛이 이 세상에 그대로 나타남으로, 지금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구원하는 그 사랑의 역사로 이렇게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셨다가 쫓겨나갔다가 들어오셨다가 쫓겨나갔다가 자꾸 이렇게 지금 뭐 여러 수천 번 반복을 합니다.

당신이 우리 속에 계시다가 우리 심신이 불의를 용납할 때에는 하나님은 재빨리 피하십니다. 우리를 피하지 안하면 우리는 소멸돼 버리고 맙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이 들어오셔도 소멸될 이런 것들을 다 단속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들어오셔도 소멸되지 안할 것이 됐을 때에는 즉시 들어오십니다.

그러면 소멸되지 안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예수님이 벌써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 놓은 것은 우리가 의로운 게 아니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공심판을 통과한 것이기 때문에 이건 온전입니다. 대속으로 온전해지기 때문에 대속을 입으면 이는 하나님이 오셔도 소멸될 것이 없고, 대속으로 인해서 소멸될 것은 없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함께 당신의 뜻을 이룰 수 있고 우리의 소원을 이룰 수가 있기 때문에 즉시 들어오십니다.

들어오셔 가지고 우리가 뭐 연약하다고 무지하다고 우리는 못났다고 상관없습니다. 얼마든지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전지 전능의 역사를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있는데 다만 그분으로 인해서 소멸될 수 있는 것으로 변질될 때에는 그분은 떠나시게 됩니다. 이거는 하나님의 사랑이시요 우리를 피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 하는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을 가리켜 말하는고 하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셨을 때에, 내주했을 때에 그 인간은 인간 중에 제일 천하고 못난 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면 인간 중에 최고로 잘난 인간으로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를 이렇게 원하셔서 독생자까지 보내셨고 사활의 대속을 베푸셨고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주해 계시기를 원하고 영원 전 자존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과 같은 깨끗한 자 만들어 가지고 우리를 당신의 것으로, 당신의 종으로, 당신의 성전으로, 당신의 지체로, 당신의 몸으로, 당신의 자녀로, 당신의 제사장 선지자로 왕으로 이렇게 할 이런 포부를 가져 가지고 이 소원의 포부를 이루시기 위해서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당신 혼자 주권으로 예정하시고 예정한 대로 주권의 능력으로 창조하시고 오늘까지 보존하십니다.

얼마나 큰 계획을 가지고 얼마나 큰 지금 투자를 하고 이렇게 계신 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실라나 안 들어오실란가, 뭐 ‘주님이여, 나를 버리지 마십시요, 내 안에 들어 오십시요, 나와 같이 계셔 주십시요,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이런 기도는 실은 그것이 성화되는 거 그런 가운데서 세상과 좀 멀어지고 자기의 모든 주관 그 썩은 행위가 차차 차차 벗어지는 데 좀 필요가 되는 일들이지 그것이 주님을 꼭 내가 간구해야 들어오시고 또 들어오실 만치 내가 뭐 어떻게 해야 된다는 그런 것은 교리상 이탈되는 소리입니다.

그저, 당신이 들어오지 못하시는 것은 당신이 들어오시면 소멸될 수 있는 어두움이 있기 때문에 빛되신 그분이 어두움이 있으니까 우리를 살리는 것이 목적이지 우리를 멸하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빛되시는 분이 들어오시는데 우리에게 어두움이 있기 때문에 이걸 상우지 안할라고 하기 때문에 지금은 자꾸 재빨리 피하십니다.

피하시고, 그러면 소멸될 게 어떤 게 소멸될 거냐? 소멸될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 밖에 있는 것은 다 소멸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를 믿으면 이것은 다 대속이 됐기 때문에 공심판도 통과됐으니까 이거는 소멸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우리 안에 들어오시지 못하게 하는 것이 당신에게 소멸될 요소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들어오시지 못하시고 당신이 우리에게 전지 전능으로 내주하셔 가지고 우리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그러면 생명이 들어서 온, 하나 이 육체의 생명 이건 다 죽는 생명이지마는 육체의 생명 하나로 인해 가지고 그 모든 심신의 온갖 기관들이 다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이 생명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들어오면은 무슨 일 하느냐? 예수님의 사활로 대속하신 것과 예정으로 하신 이 열한 가지, 이 열한 가지의 대속이 이 속에 그리스도가 내주하시면 그리스도의 역사로 능력으로 인해 가지고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이 생명 능력으로 인해서 열한 가지가 이 세상에 비추어 나갑니다. 이 세상에 비추어 나갈 때에 그것이 세상에 빛이요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어오시면은 그분의 모든 것은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지체라, 그분의 몸이라, 그분의 종이라, 그분의 제사장이라, 그분의 선지자라, 왕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내 안에 들어오시도록 간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쫓아내지 안하면 됩니다. 또 그 하나님께서 쫓겨 나가시는 것은 능력이 없어 그런 게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성화를 시키시되 유기적으로 해서 이것을 상우지 안하고 몇백 번 몇천 번 연습시켜서 다 비용만 허비하고 다 이렇게 비용이 얼마가 많이 들어도 하나님처럼 완전 자유자로서 능동적으로 이렇게 모든 거룩한 이 생명 생애를 이룰 수 있는 그런 실력자 만들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욕심에서 그와같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간에 지금 제가 증거할라고 하는 것은 뭐인고 하니 이 전지 전능의 하나님 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그 완전이요 무한이 우리 안에 들어와 가지고 이 조그만한 쌀내끼만, 서숙 쌀내끼만한 형체도 없습니다. 서숙 쌀내끼만한 그만한 형체의 거침도 없이, 그런 형체도 없이, 서숙 쌀내끼 그런 거야 뭐 하나 입에 들어오지만 그것도 이런 아마 혈관 속에 서숙 쌀내기 하나라도 들어가 있으면 대단히 진통이 심할 것입니다.

그만한 그 형체도 가지지 아니하시고 전지 전능자의 완전만이 우리에게 들어와 가지고 역사하시니까 곧 내가 내것으로 역사하는 거와 꼭 같은 그런 기묘한 사랑의 작용으로서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역사하시기를 원하고 원하기를 얼마나 원하느냐? 당신의 그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대속하시고 사활의 다시 부활로 일어나신 그 모든 것이 다 원하시는 증표라 그말이오.

모든 이 우주의 만물 창조도 예정도 전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안에 들어오기를 원해서 예정했습니다. 알겠습니까? 모든 예정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 가지고, 나는 사람인데, 사람인데 사람 속에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꼭 같은 만물에게 대해서 이 능한 이 영광스러운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예정했습니다. 모든 창조도 이것 때문입니다. 당신의 이 사활의 대속도 이것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이 들어오시기를 원하는 것이라든지 들어오시는 데 지체하는 것이라든지 들어오시도록 할라고 우리가 뭣을 애쓴다든지 바로 깨닫지 못하는 그런 방편을 쓰지 말고 그저 주님이 내게 들어오시는 데에는 내게 생명 역사하러 오시지, 생명 역사 하러 오셔 가지고 생명 역사 할 때에 이거는 당신의 지체로 쓸 터인데, 지체로 쓸 터인데 당신이 들어와 가지고 지체로 쓰면 성공인데 당신이 어데 지체로 쓰지 못하고 이거 뭐 소멸해서 절단내 버리면 당신이 쓰시지도 못하고 헛일되고 만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소멸되게 될 때에 당신은 피합니다. 이러니까 소멸 안 되구로 하는 방편은 예수님의 대속을 믿음으로 입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믿음으로 입고 있는 것.

이래서, 나는 주님의 피에 팔린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이 사활의 대속으로 나에게 완전을 입혀 주셨으니 나는, 완전을 입은 나는, 완전을 입은 나는 이 완전에게 팔린 당신의 것입니다. 이거는 내가 아무 공로 없는데 당신이 대신 해 줬기 때문에 나는 믿으면 됩니다.

이러니까 완전을 나에게 주시고 나를 샀습니다. 이 완전은 내것입니다. 완전을 입은 나는, 나는 완전이라. 내가 둘인데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으니 나는 완전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새사람입니다. 완전이오. 예수님의 대속을 벗고 제 욕심 제 생각 제 주관대로의 그 내라는 그놈은 원수요 그게 절단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안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나는 예수님의 것이 되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나는 완전자가 되고 있고 요것만 믿음으로 가지면 주님은 우리에게 오셔 가지고 우리의 생명으로 역사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하느니라” 하는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에게 완전 대속을 베푼 이 대속과 같이 우리는 깨끗해지는 것이라.

그러면 대속을 입으라 말이오.

그 대속과 같이 우리가 어찌 되느냐? 대속과 같이 그렇게 하나님의 공심판을 우리가 어찌 통과 할 수 있는가? 내 대신 통과했기 때문에 내가 믿으면 내것 돼.

그러면 너는 하나님의 공심판을 통과한 자가 돼라 그말입니다. 죄와 사망과 마귀에 자유하고 다시는 그들에게 종이 되지 안할 수 있는 네가 되었으니 나는 종되지 안할 수 있는 내라. 나는 그런 것들을 다 이긴 자이고 그것들을 내가 종으로 부리지 그에게 종될 자가 아니라 하는 이것을 믿음으로 가졌으면 요것을 가리켜서 깨끗입니다, 깨끗.

그러기에 이 깨끗을 가지면 주님은 내 속에 재빨리 들어오십니다. 이 예수님의 대속 열한 가지 대속, 이 열한 가지 대속이란 것은 택함과, 또 아버지와 화친, 또 하나님의 모든 공심판을 통과한 이 의, 또 죄에 자유하고 해방된, 죄에 대해서 해방하고 자유되는 것, 사망에서 해방되어 자유하는 것, 마귀에게서 해방돼 자유하는 것, 하나님을 향해서 진리대로 영생하는 것, 영감대로 영생하는 것,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사장 선지자 왕직을 지금 우리가 가졌기 때문에 이 직을 지금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깨끗이니까 이것을 가지면 우리가 깨끗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 안에 오셔 가지고 이 생명이 전신의 기관을 다 붙들고 움직여 가지고 산 행동을 하는 것처럼 주님이 우리 안에 생명으로 계시면 우리의 영육을 붙들고 전지 전능의 완전의 그 행위를 우리 안에서 하실 수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하느니라” 하는 이 말씀을 오늘 봉독했는데 여러분들이 여게서 이 양성원에 이 과정을 마칠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기 때문에 그것도 하는 것이 필요하지마는 이것은 어데까지나 진짜는 아닙니다. 진짜는 아니고 이거 다만 진짜에 나아가는 그런 하나의 방편으로 발버둥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그러면 여게서 여러분들이 배우는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세상 인간 지식 배암 지식 그것으로 능해질라고 하는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것도 다 가짜고, 자짜. 또 하나님의 이 육십육 권의 이 말씀으로 자기를 깨끗게 이렇게 할라고 실력 있게 할라고 하는 그것도 가짜는 아니지마는 껍데기, 또 자기가 그러면 이 문서계시 속에 곧 들어 있는 것이 피와 성령입니다. 피와 성령. 피는 예수님의 대속을 말하고 성령은 곧 영감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이 알맹이가 예수님의 열한 가지 이 대속, 구속입니다.

이것을 자기가 언제든지 입고 놓지 말고, 그러면 생명이 떠나면 그 시간은 썩습니다. 이것 모양으로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계속 내주하시기를 힘쓰고, 그러면 내주하시는 것은 뭐 그리스도의 대속만 내가 입고 있으면 주님은 떠나지 안하십니다. 대속만 입고 있으면 천하가 거기 밀어내도 꼼짝도 안 합니다.

다만 내가 대속을 벗으면 이렇게 힘들여 놓은 것이 대번 절단날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피해야 되지 어짜겠습니까? 대속만 입고 있으면, 그러면 대속 입으니까, 대속 입으니까 대속을 공짜배기로 당신에게, 은혜 베푸셨기 때문에 대속을 입었으니 대속 입은 나는 뭣 됩니까? 대속 입은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대속 입은 나는 주님의 것이니 나는 대속 입은 나는 주님의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는 동하고 정하는 것이 나로 동하고 정하는 게 아니라 나는 그의 종이요 그의 지체이기 때문에 이제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동하고 정한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게 뭐이냐? 이게 전능입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것은 전능이요 그게 껍데기는 사람이지마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오.

이러기 때문에 여게서 배우는 이 학생들은 세상 이 지식으로 자기를 실력 있게 갖출라 하는 이것도 공연히 어리석어서 속고 있는 폐단, 이것 폐단. 또 신구약 성경 말씀을 많이 백 독 읽으라 했는데 백 독 읽고 이 성경 말씀으로 가지고 자기가 유식하게 될라고 하는 이것도 가짜라 이렇게 그렇게 할 수 없지마는 이것도 하나의 외모입니다, 외모. 외모요 껍데기 만드는 것 이 외식이요, 속에 알맹이는 뭐이냐? 알맹이는 하나님이 들어오셔도 소멸되지 아니할 자체되는 것이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주님의 것이 돼 가지고 주님으로 동하면 됩니다.

동하고 정하면 돼요. 그 외 딴거는 없습니다.

요것을 할라고 애를 써서 자기는 급하든지 한가하든지 평안하든지 고통이 있든지 온 세상이 뭐 다 어떻게 하든지 말든지 대속을 놓지 안할라고 하는 이것이 여러분들이 제일 힘쓰는 데에 주력을 할 것이고, 대속을 입고 난 다음에는 주님은 내 안에 계시니까 대속을 입고 난 다음에는 내 맘대로 내가 동하지 말고 주님이 내 안에 능동돼서 나는 그로 인해서 동하고 정하기를 힘쓰는 요 두 가지만 연습되면 그게 뭐입니까? 그것이 주님의 것 되는 것이요, 그것이 주님의 종된 것이요, 그게 주님의 성전된 것이요, 그것이 주님의 지체된 것이요, 그게 주님의 몸된 것이요, 그것이 주님의 제사장된 것이요, 선지자 된 것이요, 왕된 것입니다.

요게다가 노력을 해서 요 방편으로 애를 쓰면 오늘 교회들이 다 살아나고 일어날 터인데 이 거짓부리들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교회들이 전부 뭐 따지고 보면은 전부 이 땅에 있는 명예 영광심 그것이지 내나 이름만 다른 세상이지 세상은 세상입니다. 간판만 다른 그 사욕이지 사욕은 다 사욕입니다. 이러니까 실은 하나님이 와서 내주해 계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양성원의 학생들은 요것을 힘써서 하나님이 내게 들어오실 때에 소멸되지 안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이 열한 가지 대속을 항상 입고, “새사람을 입으라”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으라 “예수를 입으라” 했어, “예수를 입어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이게 뭐이냐 하면 전신갑주가 뭐입니까? 뭐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곧 예수님의 대속을 말한 것입니다. 대속 입은 데는 하나님의 공심판도 꼼짝 못 합니다. 대속을 입은 데에는 모든 인간을 사망시키지만 사망도 와 가지고 근방에 오지 못해. 마귀도 근방에 오지 못하요.

대속 입은 요것과 대속을 입어 주의 것 됐으니 주님으로 인해서 동하고 정하는 요것만 계속되도록 힘을 쓸 때에 적은 숫자의 학생이라도 주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온 세상을 살릴 수가 넉넉히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고요히 작정하십시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셔야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데는 죄가 없습니다. 죄를 짓고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으로 천만 번 해도 대속과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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