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능력

 

1986. 2. 13. 새벽

 

본문:베드로전서 2장 1절∼3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1절에, 「그러므로」 했습니다. 1절에 「그러므로」 그러므로 하는 것은 그 위에 20절부터 쭉 내려 보면은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과 마음과 몸 이것이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생겨 나왔습니다. 그랬는데, 우리의 시조인 아담 해와가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아야 되는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또 그 위치에서 살았는데 그것이 타락하기 전 우리 인류의 위치입니다. 지위입니다. 본 지위입니다.

그러기에, 본 지위는 천상 천하에 제일 높은 지위였습니다. 무엇으로써 제일 높은 지위를 가졌던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으로 인하여 피동되어서 살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난 높은 지위를 하나님이 주셨고 가지게 됐습니다. 그랬는데 배암의 유혹으로서, 배암이 ‘네가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 것이 아니고 네 중심 네 위주로 살면 하나님같이 될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너희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러니까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사는 그 일만 너희가 어리석게 하지 말고 네 중심 네 위주로 살아봐라.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 그것은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라고 한 것인데 너희들이 선악과를 먹어봐라. 너희들의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아는 것이ㅡ선악을 아는 것이라 말은 선악을 규정짓는 것이ㅡ하나님같이 규정짓게 되리라’ 그러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가까우면 선이요 당신을 배반하면 악인데 그걸 아담 해와가 그와같이 하니까 아담 해와는 완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그 모든 게 다 죄가 되고 하나님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 위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에 인간 중심 인간 위주가 시발이 됐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원죄라 이렇게 말합니다. 본죄라는 것은 우리가 평생 동안 짓는 죄인데 그 본죄는 무엇인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가 변해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된 그것이 원죄인데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언행 심사한 모든 행동이 다 그것이 본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범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원죄와 본죄로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난 우리의 영 마음 몸은 다 완전히 죽어서 영원히 죽어 멸망받는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영도 마음도 몸도 다 죄를 범해서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됐는데 그러면 영은 어떤 죄를 범했는가? 영이 직접적으로 선악과 먹을 때에 죄를 범했던가? 영은 범한 것이 아니고 그때부터 심신이 영에게 복종하지 안하고 심신 제 독단 행위가 나와 가지고 범죄했는데 그러면, 영은 그때에 선악과 먹는 그 죄에 참가하지를 안했습니다. 안 했는데 왜 영은 죽었는가? 영이 죽은 것은 영이 책임지고 있는 그 심신이 범죄했기 때문에 심신의 주격된 그 영은 주격 위치의 주격 책임에서, 죄를 범하지 안했지마는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이 심신이 범죄했는고로 주격 위치의 범죄를 영이 정죄받아서 죽게 된 것입니다.

그래 죽었는데, 죽은 이 영육을 살릴려고 예수님이 오셔서 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 가지고 영육을 살릴려고 이렇게 주님이 공로를 대신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까지는 우리의 죄의 문제 의의 문제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는 그 문제를 다 해결 지운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요 다 해결은 지워서 죄 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되어 있지마는 실상은 우리들이, 예수님이 대신해서 그러하지 우리 자체로서는 실상은 죄 없는 자도 아니요, 죄 있는 자요, 불의한 자요,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는 자요, 죽어 있는 영육이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에게 예수님이 대속해 놓으신 이 세 가지 대속의 구원을 우리에게 이루기 위해서, 실상으로 이루어서 우리가 이 대속의 이 세 가지 구원을 실상으로 우리가 입고 실제로 살고 누리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다시 사람을 입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부활하신, 대속하신 이 공로를 인해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죽으심도 대속이요 예수님의 부활하심도 대속입니다. 이 대속은 예수님의 죽으시고 사신 이 사활이 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대신 속하는 그 일을 베푸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데 영은 죽어 있기 때문에 죽어 있는 영은 이것은 아무리 대속의 공로가 있다 해도 스스로는 살아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영을 하나님이 살렸습니다. 살린 것을 이것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영이 사는 것은 영은 이렇게 종합체가 아니고 단일체입니다. 영은 종합체가 아니고 단일체이기 때문에 영은 살아나면 단번에 살아나고 죽으면 단번에 죽습니다. 그러나, 종합체로 되어 있는 이 심신은 죽는 것도 여러 차례로 걸쳐서 죽게 되고 또 사는 것도 여러 차례로 걸쳐서 살게 됩니다.

왜? 그것이 하나 같으면 하나 살면 되지마는 여러 수억만도 넘은 것이 한테 합해져 가지고서 이 마음도 됐고 몸도 됐고 이랬기 때문에 이것은 사는 것이 단번에 살지 안하고 여러 차례로 살아야 살아나고 또 죽는 것도 단번에 죽는 것이 아니고 여러 차례로 죽어야 죽기 때문에, 아담의 영은 그 선악과 먹는 즉시로 영은 죽어 버렸습니다.

영은 죽었고, 그 심신이라는 그것은 다 죽는 데는 아담도, 아담이 몇 살 살았습니까? 아담이 몇 살 살았지요? 그만 그거 볼 것 없어. 그거는, 몇백 살 살았습니다. 살았는데 그런 거는 뭐 햇수를 기억을 안 해도 좋아요 그거는, 그저 몇백 세 살았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돼. 아마 여러 백 세 살았습니다. 여러 백 년을 걸쳐서 아담 해와도 다 죽었습니다. 제일 많이 산 사람이 므두셀라인데 므두셀라는 몇 해 살았지요? 구백 육십 구가 얼마고, 팔십인가? 그런데 므두셀라는 그렇게 많은 해를 걸쳐 가지고서 그 심신이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살아나는 것도 그렇게 세월이 많이 걸립니다.

그래서, 영이 살아난 것은 단번에 살아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이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영이 살아난 것을 가리켜서 중생이라 했는데 이 중생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깨달음이 달라서 별별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생은 언제 중생했느냐? 중생하는 것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한번 큰 은혜를 받아 가지고서 변화가 되어지고 크게 울고 애통하고 회개하고 크게 변화받는 이런 일이 있은 지 후에 중생이 된다 그렇게 했습니다. 중생은 아주 뜨거운 은혜를 받아 가지고서라야 중생이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깨달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결 교회서는 그 교리가 어찌 돼 가지고 있느냐? 사람이 예수 믿고 난 다음에 한 번 부흥회에 참석하든지 어떤 일로서 크게 한번 변화를 받을 그때가 중생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성결교 교리고 장로교 교리에서는 사람이 중생되는 것은 본인이 모른다 중생이 된 지 오래 후에 예수 믿는 신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성결교 교리와 장로교 교리가 아주 이렇게 정반대로 되어 있는데 그러면 지금은 어찌 됐느냐? 지금은 성결교에서 장로교 교리가 옳고 우리 성결교 교리는 틀렸다 하는 그것을 지금은 깨닫고 성결교에서도 그 교리는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고치지 못하나 지금 그 교리는 틀렸다 해 가지고서 그 교리는 믿지를 안하고 쓰지를 안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은, 성령과 물로 중생된 것은 영인데, 영이 중생된 것은 비유로 가르치기를 그렇게 주님이 가르쳤습니다. 마치 바람이 불면 바람부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지마는 동풍인지 서풍인지 하는 것은 그 바람이 와 가지고서 역사하는 것을 보면은 나무가 동으로 기울어지면 서쪽 바람 불었다 또 서로 기울어지면 동쪽 바람이 분다 이렇게 하는 거와 같다 이랬습니다. 그래서 중생됐는지 안 됐는지 그것은 본인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모른다 모르는데 다만 그 사람이 중생했으면 그 후에 행동이 나타난다 행동 나타나는 것은 첫째가 예수 믿는 행동이 나타나게 되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되고 그다음에는 차차차차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는 사람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되어지고 이래 된다.

그것이 이제 중생된 표입니다.

그랬는데, 영이 중생하는 것은 죽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려야 되지 죽은 것을 암만 살아나라고 해봤자, 살리는 힘이 와야, 살려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살아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단독 힘으로써 우리 영을 살려냈습니다.

살려냈으니까, 영과 육으로서 된 것이 사람인데 이제 영이 살아났으니까, 우리 사람은 영육인데 영육에 영이 살아났으니 그 사람의 소유의 것들이 살아났습니까 주격인 주인이 살아났습니까? 뭐이 살아났습니까? 소유가 살아났습니까 주인이 살아났습니까? 주인이 살아났다고 깨달은 사람들 한번 손들어 보십시오? 녜, 맞습니다. 주격이 살아났습니다. 주격이 살아났기 때문에 주격이 살아난 후에는 하나님께서 영이 살아난 그 사람의 마음이나 육에 대해서 하나님이 직접 관리를 하지를 안하십니다. 못 합니다.

왜? 그 사람의 주인이 영이기 때문에 영이 살아났으니까 영하고 의논을 해 가지고 그 마음에 관리를 하지, 그 영의 소유인 마음과 몸인데 하나님이 직접으로 영은 비켜라 하고서 영을 치워 버리고 직접 와 가지고서 우리의 마음이나 우리의 육에 대해서 역사하지를 못하십니다. 할라면 하실 수 있지마는 하면 하나님이 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유성을 줬고 그 주격성을 줬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은 주격인 영을 무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무시하는 이것은 하나님의 지공법에 범죄가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에게는 직접 와서 역사하시지를 아니 하시고 중생된 영을 통해서 역사를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사람들에게 직접 와서 역사하신 일,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직접 와서 역사하신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그러면, 직접 와서 역사하신 일이 있었는데 직접 와서 역사하신 것은 영에게 역사했습니까 마음과 고기덩어리에 역사했습니까? 심신에게 직접 와서 영에게 역사했습니까 영에게만 직접 와서 역사를 했습니까? 심신에게도 직접 와서 역사를 하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없습니다. 잘 맞았습니다. 영에게만 직접 와서 역사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이 살아난 것이 무엇으로 살아났느냐? 영이 살아난 그 생명은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영생하는 생명인데, 생명이라는 것은 힘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힘인데 영생하는 생명이라 말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쇠해지지 않는, 죽지 않는 그 힘이라 말입니다. 영생하는 생명이라 말은 영원히 계속되는 그 힘이라 그말입니다.

마치 어떤 힘센 장사가 있지마는 그 장사에게 생명이 있을 때에는 그 장사가 온갖 자기의 지체를 가지고서 힘있는 행동을 하지마는 아무리 장사라도 그만 생명이 뚝 떠나 버리면 조그만한 개미가 와 가지고 파먹어도 파먹히지 꼼짝을 못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아주 용감스러운 큰 사자가, 용감스러운 그런 맹수 사자라 할지라도 생명이 있을 때에는 그 사자가 아주 뭐 이런 다른 짐승은 오면은 대번 삼켜 버리고 죽이고 이렇게 하지마는 생명이 떡 떠나면은 그것은 죽은 사자가 산 개만 못 합니다. 아무 힘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명이라는 것이 이게 생명인데 우리 영이 살아났는데 우리 영이 중생한 힘, 우리 영이 살아난 생명의 힘은 무슨 힘으로 우리 영이 살아났습니까, 우리 영이 무슨 힘으로 살아났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몇 가지 힘으로 살아났습니까? 한번 가리켜 보이소. 우리 영이 몇 가지 힘으로 살아났는지 버뜩 들고 한번 가리켜 보이소. 녜, 맞습니다. 요 세 가지 힘으로 살아났습니다. 세 가지 힘으로. 그런데, 첫째 힘은 무슨 힘인고 하니 예수님이 대형 대행 대화친하신 대속의 공로의 힘으로 첫째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힘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힘은 무슨 힘인가?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대형으로 사죄의 공로를 무슨 베풀어 주신 것은 영원히 우리가 어떤 죄를 짓든지, 과거 현재 미래의 어떤 죄를 지어도 그 죄는 예수님이 다 대신 담당하신 이 공로입니다.

또, 대행한 것은 우리가 하지 안했지마는 뭐 어떤 것이든지 예수님이 대신 행해 주셔서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영원토록 다 대신 완전히 행한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을 완전히 이행한 능력, 또 죄를 완전히 없앤 능력, 또 하나님과 영원히 완전 그 친합이 변동 없는 영원 불변의 친합이 된 이 친합의 공로, 이 세 가지를 하신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는 우리가 하나님과 모든 인류와 모든 만물을 향하여서 사는 이 모든 언행 심사의 행동에 대해서 대신 완전 행동을 한 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완전 행동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내가 믿기만 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만 안하면 우리는 완전자입니다.

영은 예수님의 대속을 하나님이 능력으로, 객관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대속을 영에게 입혀 버렸습니다. 영에게 입혀 버렸으니까 영은 영이 입고 싶어 입은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 강제당해 가지고서 영은 이 대속의 공로를 입었습니다.

말하자면 순전히 객관의 능력으로 입었습니다. 입었는데 이 영은 입을 때에 다시 벗을 수 없는 대속을 입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대속의 힘으로 영이 살아났습니다.

또, 대속의 힘으로 살아났는데 이 대속의 힘을 우리에게 입히는 역사를 누가 하느냐? 예수님의 대속의 힘만으로써는 우리에게 입힐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이 힘을 택한 자들에게 입히는 역사를 했으니, 입히는 역사를 했는데 입히는 역사한 것이 몇 가지가 와 가지고서 입히는 역사를 했다고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두 가지. 요 두 가지를 똑똑히 가리키십시오. 두 가지 능력이 와 가지고 입히는 역사를 했습니다.

두 가지 능력이 뭐인가? 성령님의 감화 감동인 영감의 역사와 또 이 진리. 진리가 나타난 껍데기는 신구약 성경말씀입니다. 말씀이요 이 말씀의 알맹이는 진리입니다. 진리와 영감이 와 가지고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입혔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영이 살아난 것은 세 가지 힘으로 살아났는데 세 가지 힘 한 가지는 예수님의 대속의 힘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의 영감 역사, 영감 역사의 힘과 또 진리의 힘 이 세 가지 힘으로 우리의 영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우리 영의 힘은 몇 가지 힘이 합해서 우리의 영의 힘이 돼 가지고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우리 영은 몇 가지 힘이 합해 가지고서 우리 영의 힘이 돼 가지고 있습니까? 녜, 세 가지 힘이 합해서 우리 중생된 영의 힘이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은 영생하는데 영은 무슨 힘으로 영생하는고 하니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영생을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힘으로 영생하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힘도 이는 늙지도 쇠하지도 변하지도 않는 영원 불변의 완성인 것입니다.

또 성령의 감동도, 이 영감은 없어지거나 변해지거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 영원 불변의 영감인 것입니다. 또 진리도 영원히 변동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 가지 힘으로 살아난 이 세 가지 힘은 다 영원을 가졌고 완전을 가졌고 불변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가 영이 중생된 힘은 중생된 생명이 무슨 생명으로 살고 있느냐? 영원 불변의 완전의 힘으로, 생명의 힘으로 살아났으니 그 생명의 힘이 뭐이냐 하면은 예수님의 완전 대속 영감의 능력 진리의 능력 이 세 가지가 우리 중생된 생명의 힘입니다.

이래서, 영은 단번에 살아났는데 이제 살아난 영을 통해 가지고서 지금 우리의 심신의 기능을 살려낼라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중생된 영을 통해서 우리의 이 심신의 기능을 살릴라고 하고 있는데 중생된 영이 몇 가지 능력의 생명으로 살아났는가? 세 가지 생명의 능력으로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살아나 가지고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살고 있는데, 살아 있는 이 영을 통해 가지고서 우리의 심신을 살릴라고 애를 씁니다. 우리의 심신을 살릴려고 애를 쓰는데 우리의 심신을 살리는 것은 단번에 살리는 것인가 여러 수억만 번 걸쳐서 중복적으로 살리는 것인가? 중복적으로 살립니까 우리 심신의 기능은 단번에 살립니까? 단번에 살린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단번에 살린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하나도 들지 안했는데 저쪽에 누가 아마 들었다가 얼른 내렸는데, 우리의 심신은 단번에 살리지 않습니다. 여러 수억만 번 걸쳐서 살리게 됩니다.

살리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직접 와서 살리시는가, 우리의 중생된 영을 통해서 살리는가? 우리 중생된 영을 통해서 살리지, 직접 살릴 수가 없습니다. 왜? 직접 살리면 하나님께서 당신이 세워 놓은 법을 범하는 것이고 자유성을 줬는데 자유성을 강제로 억압하는, 강압하는 그 월권 행동이 되어지고 또 자유성을 말살시키고 그 심신의 주격된 주격의 권위를 그걸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를 아니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중생된 영을 통해서 우리의 심신을 살릴라고 역사합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된 영이 몇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생된 영을 또, 중생된 영을 지금 우리의 심신을 살리라고 자꾸 중생된 영을 자꾸 권고합니다. 중생된 영을 권고하는데 중생된 영을 권고할 때에는 몇 가지 힘이 와 가지고서중생된 영을 권고합니까? 한 힘이 권고합니까 두 힘이 권고합니까 세 가지 힘이 권고합니까? 세 가지 힘이 권고합니다.

중생된 영을 내나 세 가지 힘으로 중생을 시켰는데, 중생을 시켰지마는 이것이 이 세 가지 능력의 힘이 아직까지 어리기 때문에 그 배후에 무한하신 이 세 가지 중생시킨 능력이 와 가지고서 중생한 영에게 그 배후에서 힘을 밀어 줍니다. 밀어 주는데 뭐이 밀어 주느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성령님과 진리가 중생된 영을 이렇게 후원해 줘 가지고서 중생된 영을 힘있게 만들어 가지고 중생된 영이 힘이 있으면 이제 그다음에는 그 마음에게 전해서 마음을 살릴라고 달라들고 몸의 기능을 살릴라고 달라들고 이래 가지고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라는 것이 이것이 중생된 영을 살리는 힘입니까, 운동입니까, 심신을 살리는 운동입니까? 심신을 살리는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신을 살리는 운동하고 있으면은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읽는다 말입니다. 읽든지 듣든지 또 자기가 이 말씀을 생각하든지 이렇게 할 때는 내 마음이 이 성경을 읽고 듣고 합니다.

새김질하고 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이 그래 하면은 내 마음이 단독 하는 것입니까 마음을 그렇게 하도록 역사하는 그 역사가 있어서 그 역사에 따라서 이 마음이 성경을 펴 가지고 보게 됩니까 마음이 제가 단독 이 성경을 보게 됩니까? 단독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게 성경을 보도록 그 배후에서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에 역사하는 그 힘에 피동이 돼 가지고서 이 마음이 비로소 성경을 보게 됩니다.

마음이 성경을 열어서 보도록 이렇게 하는 그 역사하는 힘이 무엇입니까, 그 힘이 무슨 힘입니까? 그 힘이 무슨 힘입니까? 그 힘이 중생된 영의 힘입니다. 중생된 영의 힘입니다. 중생된 영이 우리 마음에게 성경 읽어라 성경 읽어라 이렇게 할 때에 비로소 마음이 그 영과 접선이 될 때에는 성경을 보고, 아무리 영이 성경을 보라고 해도 이 마음이 성경을 안 봅니다. 자기 마음에 ‘성경을 봐야 된다, 봐야 된다 하는 그것이 자기에게 자꾸 빛이 와서 `내가 암만 바빠도 성경 전연히 못 보니까 성경을 봐야 되겠는데 봐야 되겠는데’ 이래도 요 마음에 여러 가지 욕심의 마음이 있어 가지고서 그만 돈벌이가 났으면은 돈벌이 욕심이 끌려서 이 욕심이란 놈이 ‘햐,돈벌이 하러 가자’ 이래 끄니까 이 마음이 다 끌려 버리고 그만 성경을 못 펴 본다 그말이오.

또, 자기가 마음에는 성경을 봐야 되겠다 싶어서 ‘뭐 모든 거보다 성경 봐야 된다, 성경 봐야 된다’ 성경 봐야 된다 이라는데 성경 봐야 된다 하는데 이 고기덩어리 말이오. 고기덩어리 이게 지금 아프다든지 뭐 그리 안 하면 이 고기덩어리가 뭐 무슨 맛있는 음식이 냄새가 온다든지 고기덩어리 이것이 또 정욕으로 뭐 그래 가지고서 자기에게 정욕의 무엇이 발동이 된다든지 하면은 성경을 봐야 될 줄로 알고 봐야 된다는 마음은 있지마는 이 고기덩어리 이놈이 그 성경을 펴지 안하고 어만 짓 할라 합니다. 음식 먹으러 갑니다. 또, 이제 옆에 동무들이 막 뛰고 굴리며 자꾸 이라니까 동무에게 끌려서 그만 동무에게 끌려서 가게 됩니다.

그럴 때 이제, 중생된 영이 그 마음에게 성경 보라고 권고한 것이 마음은 좀 들었지마는 이 고기덩어리는 하나도 듣지 안하고 있는데 마음에 들은 것도 나중에 차차차차 그만 삭아져 버리고 이제 고기덩어리 그놈 하자는 대로 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로마서 7장에, 이제 원치 안하는 것이 있으니 육체 안에 다른 세력이 있어 가지고서 내 마음이 끌려가더라 하는 것을 그걸 가리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성경 보는 것은 책을 이래 손으로 펴 가지고서, 육체로 펴 가지고 눈으로 이래 성경 읽는 것은, 내 눈과 손으로 성경을 읽기 전에 역사한, 손으로 성경을 보는 이 역사를 하기 전에 한 역사가 뭐입니까? 무엇이 먼저 역사했습니까? 예? 우리 마음이 역사했습니다. 우리 마음이 역사를 했습니다.

마음이 영에게 피동되어 역사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성경 봐야 되겠다는 이 마음이 있기 전에 무슨 역사가 있었습니까? 중생된 영이 애를 쓰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중생된 영이 역사하는 역사가 있었는데 중생된 영이 역사할 때에 중생된 영이 단독 역사했습니까 중생된 그 영을, 빈약한 영을 자꾸 힘을 일으켜서 그 배후에서 아주 힘을 줘 가지고서 중생된 영을 힘있게 만든 그 힘이 뭐입니까? 그 힘이 몇 가지 힘 입니까? 세 가지.

예수님의 대속의 이 공로의 무한한 능력의 힘과 또 성령의 감화 감동의 능력의 힘과 진리의 능력의 힘이, 우리 영이 세 가지로 살아났지마는 어린 아이기 때문에 빈약하다 말이오. 빈약한 것과 같은 것인 걸 이제 그 세 가지 능력이 힘이 배후에서 이렇게 권고하고 힘을 부어 주니까 이 중생된 영이 힘을 얻어 가지고서, 힘을 얻어 가지고 중생된 영이 그 힘으로써 무슨 역사를 하느냐 하면은 그 마음을 권고하는 역사를 합니다.

그 마음을 권고하는 역사를 하니까 마음이 이제 권고를 받아 가지고서, 이제 영과 합작이 돼 가지고서 역사를 하기를 어디다 하느냐 하면은 그 몸에게다가 역사를 해 가지고서 그 몸으로 하여금 또 이대로 이 세 가지의 힘으로 살라고, 이 세 가지 힘으로 살고 이 세 가지 성질로 살고 이 세 가지의 방편으로 살고 이 세 가지 힘으로 살도록 그렇게 할 때에, 그 몸이 받아 가지고서 세 가지 힘으로 살면 이 몸은 이 세 가지 힘을 받아 가지고서 어데다 대고 삽니까? 이 몸은 지금 이 세 가지 능력을 받아 가지고서 이 능력으로서 어데다가 대고 그러면 그 행동을 합니까? 예? 사물에다 대고 합니다. 사물.

그러면, 사물이면 물건 성경책 이것도 물건 아닙니까? 물건 이걸 손으로 듭니다.

물건을 손으로 들고 읽는다 그말이오. 읽고. 또 그 힘을 가지고서 자기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라 전도도 하고, 또 모든 사람들은 다 다리오 왕에게만 기도하는데 다니엘은 다리오 왕에게 기도하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을 다리오 왕에게만 기도하라고 이라니까 다니엘은 하나님에게 기도할라 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다리오 왕에게만 기도하는데 다니엘은 거게만 기도하지 안하고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혼자 하지 안했습니까? 이와같이, 그러면 어떤 사람은 그 심신이, 다니엘 입이 말이오. 다니엘 입이 다리오 왕에게 ‘나는 죽어도, 사자구덩이에 들어가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이 다리오 왕에게 말한 것은 다니엘이 마음이 말했습니까 고기덩어리가 말했습니까? 고기덩어리가 말했습니까 마음이 말했습니까? 마음이 말할 줄 압니까? 고기덩어리가 말했습니다. 다니엘이 고기덩어리가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거 중단할 수 없습니다.’ 이랬습니다.

다니엘이 입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입으로 그랬는데, 입으로 그래한 것은 그 힘은 무슨 힘입니까? 그 힘은 어데서 왔습니까? 마음에서 왔습니다. 마음에서 왔었는데 그 마음에서 온 힘은 몇 가지 힘입니까? 세 가지 힘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이지마는 미래의, 짐승으로써 대신해서 예약의 약속대로 했기 때문에 구약에 있는 사람은 짐승으로서 사죄를 받아 가지고서 이렇게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그것이 완성이 됐습니다.

그러면, 마음의 힘을 받아 가지고 그랬는데 그 마음은 어데서 힘을 받았습니까? 영에게서 힘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영은 어데서 받았습니까? 이 세 가지 능력에게서 힘을 받았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그와같이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중생돼서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의 그 심령은 예민하고 그 심령은 하나님이 복되게 만들어서 영이 말하면 즉시 고대로 딱딱 들어서 순종하는 마음도 있고 강퍅한 마음은 잘 듣지를 아니합니다.

후란시스는, 후란시스의 마음은 어떤 마음을 가졌느냐? 후란시스는 그 중생된 영이 있다가서 이제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됐기 때문에 이 마음과 몸은 다시는 딴거하고 합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와만 합해서 그리스도와만 배후가 돼 가지고 살지 그리스도와만 짝이 돼 가지고 살지 딴거 짝이 돼 가지고 살지 못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짝되어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짝되어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인 그 진리와 짝되어 살지, 진리와 영감과 대속의 공로로만 짝이 되지 딴거는 나의 배필이 없다. 내 짝이 없다.

짝을 이 세 가지로만 이 짝을 삼아서 사는 것으로서, 자기 책상 위에서 생각해 보고, 그려 보고서, 딱 책상 위에 그려서,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와 짝이 됐다. 다시 결합이 됐다.배후자가 됐다. 짝이 됐다. 아이들 말로 하면 학생들 짝지, 짝지됐다 하지 않소? 짝이 됐다. 이제, 다시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외에는 내가 짝할 게 없다. 이것만 짝이 돼 가지고서, 그 공로만 짝이 돼 가지고 그 공로하고 둘이 합작해 가지고 산다 요것을 책상 위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작정을 하고 난 다음에 다시는 그는 결혼하지 안하고 다시는 뭐 다른 거하고 짝을 하지 안해, 사람하고 짝을 하지 안했고 돈하고도 짝을 하지 안했고 권세하고도 짝을 하지 안했고 순전히 이 세 가지로만 짝이 돼서 하나가 돼 가지고 이 세 가지로 짝이 돼 가지고 세 가지 힘으로만 여생을 산 것이 후란시스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런 분들의 그 마음은 예민하고 아주 예민해서 고렇게, 듣는 것이 아주 예민하고 순종을 예민하게 했지마는 어떤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아무리 그 중생된 영이 말하고 그 배후에 강한 그 세 가지 능력이 중생된 영을 통해서 말을 해도 어림도 없습니다. 꼼짝도 안 해요. 그 마음이 요동치 안해. 그런 사람이 죄악의 힘이, 원죄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세상에서 성공을 합니다.

알겠습니까?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으로도 대가리가 크고 굵닥하고 아주 무게가 여러 수천 근 될 만한 사람이고 암만 대패침으로 찔러도 그 마음이 요동치 안하는 그런 뚝뚝한 사람입니다.

네로 황제가, 로마의 네로 황제인데 그 네로 황제의 마음이 얼마나 강퍅했는지, 강퍅한 사람, 다른 사람 여러 수만 명을 죽이고 난 다음에도 그 수만 명 죽인 데 대해서는 뭐 그거 눈도 깜짝 거리지 안했는데 자기가 이 형벌을 뒤에 받게 되니까, 형벌을 받으니 자기 눈에 처음으로 눈물이 나왔어. 눈물이 나오니까, 그거는 사실은 아니지마는 영화관에 그랬다 말 들었어. 눈물을 이래 받으면서 ‘아이구, 내 눈에 눈물이 나온다요’ 하고서 그렇게 제 눈에 눈물 나오는 그것이 수만 명 죽은 거보다도 크다 그말이오. 사람이,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강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천만 명이 죽어도 눈도 꼼짝을 안 하고 제게에 한 푼 유익이 있으면 유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어떻게 희생이라도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강퍅한 자 있고 그 몸이 악독한 자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천층 만층 있는 것은 그 마음이 중생된 영의 지도를 잘 받느냐 안 받느냐? 그 몸이 또 중생된 영이 마음을 통해서 지도할 때에 그 지도를 잘 받느냐 안 받느냐 하는 거게서 우리의 구원의 가치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히브리서에는 늘 말씀하시기를 만일 너희들이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아라. 강퍅케 하지 말아라. 자기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말을 얼마든지 많이 말했습니다. 마음을 강퍅하게 한다 말은 암만 자기 중생된 영이 자기 마음에게 ‘이게 옳다’ 이렇게 비추어 줘도 `뭐!’ ‘이거 기도 안 하면 안 되겠는데, 하루 삼십 분씩 기도해야 되겠는데' 말을 이래 해도 어떤 사람은 한 번만 말해도 ‘아이쿠, 이거 참 기도 안 하면 안 되겠다’ 요런 마음도 있는데 어떤 마음은 기도하라 해도 ‘뭐, 기도는 뭐 삼십 분 꼭 그렇게 해야 되는가?’ 죽는 날까지도 그랍니다. ‘기도해야 되는가, 뭐 기도는 아무 때나 하지 꼭 하루 삼십 분씩 기도해?’ 강퍅하게 이래 가지고 그 말을 듣지 안하는 자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그라다가 고게 뒈질 때에는 회개를 합니다. 죽을 때에는 ‘너 삼십 분 기도했느냐?’ ‘기도 안 했습니다. 내가 지금 살려 주면 내가 지금 살려 주면 내가 그 기도를 지금 하겠습니다.’ 때가 다 지나갔는데 소용 있습니까?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부르면 네가 모아 놓은 재물이 뉘 것이 되겠느냐?’ 마지막에 죽을 때 그때사 깨닫고 후회한다 말이오. 그러니까, 불신자도 다 마지막에 죽을 때는 후회하는 게 많지마는 예수 믿는 사람은 다 후회하고 깨닫고 죽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죽을 때도 후회는 하지마는 자기대로의 잘못한 걸 후회를 하지 하나님 말씀을 준해 가지고 후회하는 회개는 없습니다.

그런고로, 이걸 자꾸 들어서 하나 말하면 이걸 다 알아서 깨달아 잊어 버리지 안하면 고 다음을 고 다음을 말하면 쉬운데 이걸 자꾸 잊어 버리기 때문에 안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새벽 기도에 나와서 자꾸 배워야 되지 이 세상에 뭐 대대학의 그런 학문은 그까짓 거 하나도 몰라도 됩니다. 성경의 영감 도리만 알면 자기는 명철해서 세계에 뛰어나는 인물도 될 수가 있고 모든 것을 다 통치할 수도 있고 다 있습니다. 머리를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요 지식을 마귀를 통해서도 만든 이가 하나님인데 이 머리를 명철하게 하면 모든 거 되는 거 아닙니까?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내가 뭣 뭣으로 중생했는가? 내 생명의 힘은 중생된 생명이 힘은 무엇인가? 이 세 가지 힘입니다. 이 세 가지를 버리면 우리는 생명이, 생명의 힘이 죽어 버리게 되기 때문에 힘이 없습니다. 영은 안 죽지마는 육에게는 이 세 가지 힘으로 살아났던 거 이 세 가지만 잊어 버려 버리면 고만 심신의 영생하는 힘은 그만 끊어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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