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지식


선지자선교회 1983. 6 .2. 목새

 

본문 : 에베소서 1장 17절∼23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세상에 많은 지식들이 생겨졌습니다. 이는 배암이 하와와 아담을 미혹시키고 난  뒤에 배암이 사람들 마음 속에 왕권을 가지고 내주합니다. 중생되기 전 사람은  마귀가 그 속에 왕권을 가지지 안한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또 중생된 사람도  영은 마귀가 그 안에 출입하지를 못하지마는 중생된 자의 마음과 몸 안에는  마귀가 왕권은 가지지 못 하지마는 미혹의 세력을 가지고 언제든지 침노하고  여러가지 방편으로 미혹하는 일은 계속합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서 나온 수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전지하신  지혜와 우리를 당신의 생명같이 사랑하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필요 있는 지식을  하나도 빠짐이 없이 모아서 간추려 주신 지식이 있으니 곧 그것이 육십육 권  도리의 계시 말씀입니다.

 이런고로 세상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전지하신 지혜를 가지시고  주신 필요 있는 지식이 있고 악령이 우리를 넘어뜨려 인생의 영원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해 놓은 지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서 난 지식들입니다.

 그러면 이 두 지식이 있는데 인간 지식은 그것은 필요가 있기는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필요가 있는가? 인간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 잡아먹는 밥이 되어 있는  것이 인간 지식입니다.

 인간 지식을 자기에게 있는 하나님의 지식이 그것을 잡아먹어 먹음으로  하나님의 지식이 더 튼튼해지고 배부르고 강건해지면 그 사람이 가진 인간  지식은 보배가 되겠고 그것이 하나님의 지식보다 그 사람 에게 커서 그 지식이냐  하나님의 지식이냐 이렇게 비교를 하려고 비 중을 달아보려고 넘적거리는 자는  벌써 죽은 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인간 지식은 내가 이용을 할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을 할  때에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보배로 쓰여지고 하나님의 지 식은 내가 이용하면  죽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에게 이용당할 그런 지식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식을 차차 배워 가지고 자기가 커집니다. 커지는 것은  하나님의 심부름을 더 잘하라고 키우는 건데 이게 커지면 커진 자세를 부리고  커지면 커진 권세를 부리는 그것은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위해서 가진  이용자입니다.

 사람이 믿어 차차 온갖 하나님의 지식 또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 지식 가져  커짐으로 말미암아 더 하나님에게 붙들리고, 더 하나님에게 꼼짝 못하고, 더  하나님에게 이용당하고 이런 사람이 있고, 이게 클수록 하나님 앞에 교만해서 제  자리를 차지하고서 있는 것만치 뒤로 자빠라져 자세를 부리게 됩니다. 그거는  하나님의 지식을 이용하는 자라는 그 표현입니다. 그 사람은 아무리 위대한  자리를 가지고 있어도 그는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었으니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이 둘이 섞여 있는데 인간 지식은 내가  이용해야 되고, 인간 지식은 '이거는 먹으면 네가 배탈난다' 하면 그 지식을  보고 안 먹어야 됩니다. 또 이거는 먹으면 네가 눈이 먼다 하면 그것도 안  먹어야 되겠습니다 그거는 이용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은 이용을 못 하고 하나님의 지식은 모셔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지식에게는 복종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자기 위에 지상  명령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지식은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먹으라면  먹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이 지식에 절대 복종입니다.

 절대 복종에서 살지 그 지식을 제가 뭐 선택해 가지고서 이해를 따지고 어짜고  자기를 지금 '내게 어찌 되느냐?' 내게 어찌 되느냐 하는 그것은 있을 수 없고  자기는 이 지식에게 복종하기 위해서 구속받았고, 복종하기 위해서 지음받았고,  복종하기 위해서 있는 것인데 이 복종에 이탈되면 다 죽어버립니다.

 그런고로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지식이 있는데 인간 지식은 그 가치와  권위가 어떠하며 하나님의 지식은 그 가치와 권위가 어떠 하다는 이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굳게 잡아서 하나님의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으로 대우해야 될  터인데 인간들이 썩어서 하나님의 지식은 멸시하고 인간의 지식을 크게  여깁니다.

 신학교 학생들, 이 사회 학교 학생들, 외국에 유학생들 다 썩기 쉽고 썩었소.

실은 자기 썩은 그 암병 상처를 몰라 그렇지 썩었다 그거야. 뭣이 썩었는가?  하나님의 지식보다도 인간의 지식을 앞세우고 더 필요성 있게 여겨서 하나님의  지식에게 한 시간 기울이면 인간 지식을 아는 데는 열 시간이 아니라 백 시간 백  배 기울일 것입니다. 백 배 기울여서.

 '모든 독서 중에 성경 독서가 제일 많아야 된다' 하는 그것이 무리한 말 같지만  그게 정상이오. 정상인데 인간이 변질돼서 그것이 얼토당토 안한 말이라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전부 다 자식을 낳으면 한살 두살 자라가면 이것이 이 세상을 접하게  되니까 세상에는 크게 말해서 두 지식이 있으니 한 지식은 죽이는 것이고 한  지식은 살리는 것인데 이 두 지식이 있으니 어느 지식을 내가 이 자녀들에게  넣어 줘야 되겠느냐?  또 하나님의 지식의 밥이 인간 지식이니 인간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  잡아먹어야 됩니다. 제가 아무리 대대학자라 할지라도 세상 지식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지식에게 잡아먹혀서 하나님의 지식에 밥이 되지 안하면  그 사람 죽었소. 썩었습니다. 뭐 지금은 무슨 중얼거리지마는 마지막 심판에 가  보면 알 것이오.

 그런데 자녀를 낳으면 이 두 가지 지식 있는 세상에 나가게 되니 하나님의  지식을 첫째 가져야 되겠고 또 하나님의 지식에 이용물이 되는, 밥 안 먹으면  시장한 것처럼 인간 지식이 없으면 하나님의 지식이 이것을 이용해서 활기 있게  활동하는 데에 필요가 있으니 인간 지식도 가져야 되겠고 두 가지 지식을 가져야  되는데 언제든지 하나님의 지식은 주체성 주권성, 권세를 가져. 주권성 가지고  인간 지식은 거기에 속해서 하나의 소유의 식물처럼 그 위치를 가져야 되겠다.

 바란스를 잘 맞춰서 잘 조절해서 나가야 될 건데 인간이, 하나님의 지식은  신구약 성경 한글로 써놓은 그것뿐이고 인간 지식은 오만 꼬꾸랭이 다 있고 그것  또 세상이 알아 주거든. 인간 지식은 세상아 알아 주지만 하나님의 지식은  사람들이 안 알아 준다 그거요.

 이러니까 하나님의 지식은 몰라도 인간 지식은 알아야 된다고 인간 지식에다가  전심 전력을 마구 기울여 가지고서 인간 지식이 커지면 성공인 줄 알고, 또 인간  지식에는 전부 거짓말이 들었기 때문에 인간 지식이 들어가면 '내가 요 공부만  해서 졸업만 시켜 주면 뭐 돈벌이 해서 아버지 어머니 평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때부터 거짓말이라. 전부 거짓말이오. 그말에 안 속은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내가 부모에게 할  의무를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그때부터 부모에게 할 의무 인간에게 할 의무,  의무가 이렇다 이런데 의무를 하지 못하는 것을 늘 생각하며 '내가 이것도 못  했다. 이래야 될 터인데 이것도 못 했다. 이래야 될 터인데 이것도 못 했다.'  이건데 세상 지식은 이 거짓말로 '내가 이래 하겠다. 이래 하겠다. 이래  하겠다.' 거기에 다 속아 가지고서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 두 지식의 중량의 주객에 대해서 하나는  주격 하나는 소유격이 되어 있는 그 위치를 바로 조절하지 못해 가지고 전부  자녀들 다 죽였습니다.

 나도 자식들 죽인 것은 공부 가르친 것이 죽인 것입니다. 지식이 속에 없어서  무식이 돼 가지고 있으면 절대 그렇지 안하고 성경만 알았으면 그렇지 안하고 다  성자가 돼 버리고 다 됐을 터인데 이 인간 지식, 그러기에 이것을 가리켜서  음행의 포도주라 그렇게 말했어. 음행의 포도주라.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지식은 없어도 인간 지식은 넣어 줘야 된다 하는 요  죄를 회개 안 하면 안 한 것만치 저주를 받을 것이요 그만치 제가 그 화를 받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인간 지식은 못 넣어 주면 하나님의 지식만은 못 넣어 주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을 넣어 주도록 해야 되겠다. 하나님의 지식 넣어 주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지식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인간 지식은 적절하게 넣어 줘서  이용하기가 넉넉하게 되면 편리할 것이고 또 이용할 것이 없으면 좀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할 수 있습나다.

 요새는 지금 내가 군대식을 모르는데 얼마 전에는 군인들의 말을 들으면 위해서  집 지으라 하면 '나무가 재목이 있습니까? 또 공구가 있습니까?' 빳다 방망이로  패 댄대요. '이놈의 새끼 집지으라 하면 집이나 지을 일이지 뭐 잔소리야?' 다  어데 가 어짜든지 지어 가지고 오라고. 그게 군대식이오. 그것 좋은 건데 지금  너무 인화주의로 이래 가지고, 미국 이 더러운 바람이 불어서 뭐 인권 인권,  이북에는 그건 것 다 아주 안 봅니다. 명령일하에 움직이지 안 들으면 사형시켜  버려. 이러니까 미국 나라가 이 세계에서 강한 나라가 아주 약화돼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두 가지 지식이 있으니 내가 어느 지식을 넣어 줘야 되겠느냐  하는 요것을 생각지 안하고 무조건 '인간 지식을 넣어 주면 산다. 인간 지식만  넣어 주면 밥도 있고 돈도 있고 권세도 있고 지위도 있고 평안도 있고 아내도  있고 남편도 있고 집도 있고 다 있다.' 어리석은 노릇이오. 인간이 그것 가지고  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그 지식만 가지면 돈도 있고 밥도 있고 생명도  있고 지위도 있고 권세도 있고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이 우리에게 앞서 필요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능가하는 인간 지식이 있으면 벌써 그것으로써 그 사람 망했다 하는 그걸 알아야  합니다.

 자식을 공부를 시키다가 요것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학교 가더니마는 차차 차차  그럴수록 하나님을 아는 게 더 똑똑하고, 하나님의 지식에 대해서 더 정확하고,  더 빠르고, 더 범위 넓고, 학교 공부를 함으로 하나님의 지식 면이 다 앞서 가고  더 활발스러워지면 그때까지는 하고, 그러다가 요게 좀 커 가지고서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이 거의 키가 견주름 견주름 하면 틀렸습니다. 그러면 딱  퇴학시켜 버려야 됩니다.

 여기에 왔는가 몰라도    집사 그 내외가 흠없이 죽도록 충성되게 산  사람입니다. 이런데 그게 큰아들을 뭐 대학을 뭐 지금 시켰다나, 간다나?  틀렸소. 그 집에는 대학을 아들 대학 시키는 게 틀렸습니다. 제가 대학 암만 해  봤자 공부 가지고 저는 망하지 유익 못 봅니다. 여기에 지금 그분들이 와 있는지  몰라도, 망하지 유익 못 봅니다. 저는 대대학을 하는 것보다 아버지 하는  자전차점을 유업으로 받아야 됩니다.

 어리석어서 옛날 동양이 멸망한 것이 손톱을 이만치 길어서 '그래도 그 사람은  손톱 발톱 밑에 흙 안넣고 산다.' 이걸 자랑해. 그놈은 망해야 됩니다. 손톱  발톱 밑에 흙 안 넣고 사는 그놈들 때문에 우리가 다 망했습니다. 우리 선조지만  다 그놈들 때문에 망했소.

 이와 마찬가지로 어짜든지 자녀들이 있으면 평안하게, 일은 적게 하고 수입  많고, 평안하고 높은 자리 있고, 안일주의로 전부 착취하는 요것만 연구를 해서  '자식들을 취직을 시키면 어데 가면 좀 땀 안 빼고 속 안 썩고 잘살 수 있는 그  길을 택할까?' 자, 그 길에 생명이 있습니까 멸망이 있습니까? 뭣이 있소?  멸망이오.

 인간의, 인간의 가치는 땀 흘리는 가치 속 썩히는 가치 그게 인생 가치입니다.

뭐 부자의 자녀로서 뻔들뻔들하게 이래 가지고서 하나도 속 썩힐 줄 모르고 땀  홀릴 줄 모르는 그거는 화덩어리입니다. 그걸 마누라라고 데려오는 그놈은 평생  화를 받습니다. 또 그것을 남편으로 맞이하는 것도 평생 화를 받습니다.

 그저 인생의 가치는 그것이오. 왜? 타락 후에는 그것이라. 그것보다 나은 거는  뭐인가? 그것보다 나은 거는 하나님으로 전부를 삼는 그 것이 그것보다 나아.

 타락 전에는 하나님 한 분만 알고 그분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니까  모든 피조물이 다 제것인데 말할 게 뭐입니까? 짐승을 갖다 놓고 '너 호랑이라.'  '예.' '너 도야지라.' '예.' 모든 것이 말하는 데는 전체가 복종하는데 그  사람이 뭐 밥을 마련할 필요가 뭐 있겠소? 그러나 타락한 후는 '등골에 땀이  차도록 일하라' 그랬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것이 되지 안하고 전부 하나님이 가르친 거는 부인 하고 욕심만  가지고 그러기 때문에 헛일이라.

 내가 말 들으니까 요새는-아주 신통하게 했는데-주일학교 반사도 잘하지도  안하고 집에 골치를 앓는다고. 저거가 대학 시킬라 하면 마구 죽자 살자 해  가지고 있는 학비 다 들여도, 다 들여봤자 지금 여러 수십 억 가진 사람들의  자녀와 비교하면 '저거는 십만 원짜리 옷 입고 다니는데 나는 찍해야 만 원짜리  옷. 아이고 부끄러워라.' 그게 뭐이냐? 아담 하와가 선악을 자기 중심으로  결정지우는 눈이 뜨인 그게, 눈이 밝아졌어. 그 눈이 밝아진 이후부터  죽었습니다.

 그게 성경을 성경 지식을 알아서 그 공부를 한다면 '저런 사람들은 저러지만  나는 우리 정도로 말하면 할 수 없는데 내가 이 학교 다니니 내가 저 사람들 한  시간 하면 나는 두 시간 해야 되겠고, 또 저런 사람들이 부모에게 대해서 한번  생각하면 나는 두 번 생각해야 되겠고, 또 이게 하나님의 은혜이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이래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고 충성을 할까?' 점점 믿음이  좋아지면 시킬 필요가 있고 믿음이 나빠지거든 딱 퇴학시켜 버려야 돼.

 퇴학시키고 안 되면 가라 하지. '가거라. 네 맘대로 가거라.' 그게 좀 있으면  나중에 가서 칼 가지고 '그러면 내 까짓 거 죽습니다. 약 먹고 자살할란다.'  자살도 예정이라. '자살하든지 칼로 자살하든지 마음대로 해 버려라.' 이래  버려야 됩니다. 이런데 나는 그것을 과거에 모두 다 많은 사람과 나와 경험을  해서 알아서 말하지만 처음에는 그거 모르는 사람은 다 협박을 당할 것이오.

 벌써 학교 감으로 주일학교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충성하는 것이 점점  성글어지고, 성경 멸시하는 것이 더 점점 심해지고 하나님 두려워하는 것 신앙에  대해서 가치성 아는 것이 흐미해지고 그러면 벌써 그것 망했는데 더 망하도록 뭐  하려고 자본 대 줄 게 뭐 있겠습니까?  여기에 다 우리가 그것 회개해야 됩니다. 지식에 대한 탐심, 지식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지식을 아주 멸시해 버리는 그 죄를 우리가 회개 해야 하나님의 축복이  있지 그것 회개하지 안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없습니다. 그것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시의 정신을 줘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또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해서 부르신 이 부 르심이 무엇 때문에  불렀으며, 우리에게 지금 희망이 어떤 희망이 있 으며, 또 이렇게 측량 못 할  존귀한 소망도, 또 존귀한 위치도, 지극히 크신 상관도, 머리도, 왕도 모시고  직속이 됐으니 우리가 이러면 여기에서 이런 자리 이런 소망을 가진 우리로서 이  위치를 감당할라 하면 어찌 되느냐? 지극히 큰 능력이 너희들에게 있다. 뭘로?  믿음으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동하라 정하라 하는 그거는 치극히 큰 능력인데  지극히 큰 능력을 뭐 능치 못함이 없는 그런 능력인데 우리가 믿음은  멸시합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 큰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줬는데 이것은  하나의 거짓말로 꾸민, 불교에서 불경을 말한 것처럼, 무책임한 사람들이 이  종교 저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다 동류로 여겨서 생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획 하나도 가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에게도 먹이고 입히고 얼마든지 잘살도록 이 세상에 모순된 이  모순을 세상에다 가득이 채웁니다. 모순을 세상에다 가득이 채워 놓고서 이래  놓고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라, 하나님의 지식은 이런 지식이라, 어제 아침에  말한 것같이 네가 그러면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며 하나님이 말씀해 놓은  그 지식에 대해서 어떻게 하느냐? 요것 봅니다. 요것 보고 영원 무궁이 결정돼  버리요.

 노아 홍수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걸 다 구비해 놓고 '보자, 나와 내 말을 듣나  안 듣나?' 하나 시험한 것이 방주 만드는 것 아닙니까? 안 만든 그 유명한  인간들 다 홍수에 매장되지 안했습니까? 그게 이거요. 오늘도 그때와 같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하신 것은 아주 업신여깁니다. 한 신화로 여기요.

어떤 자가 거짓말쟁이가 꾸며 놓은 이 세상의 말과 같이 여깁니다. 그것이  길바닥이오. 이번에 대구에서 큰 말씀을 주셨는데 '너 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 말씀과 인간의 말과 그 중량을 달 아봐라. 말씀하신 하나님과 말한  인간들과 그 중량을 달아봐라. 어느 것이 무거운고?'  그래서 '천하 인간 다 뭉쳐도 하나님의 한 손가락을 당하지 못하는 이렇게 차이  있구나. 하나님 말씀은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할 능력을 가진 이 말씀인데  인간들은 그 능력이 창조해 놓은 인간들이 중얼거리면서 무책임하게 해 놓은  이것들이구나.' 비교해서 비중의 평가를 바로 하는 사람이면 길가바닥을  벗어났다 그렇게 말했어.

 암만 말해야 귀구멍에 안 들어가. 왜? 이 말씀을 이용할라 하기 때문에.

이용할라 하니까 내가 알면 됐지. 내가 이 말씀에 이용을 당하려고 하면 이  말씀이 한 번 오니까 이용당하지 못한 게 있으니까 '아이쿠, 내가 요 면 이용을  못 당했다. 여기에 복종하지 못했다.' 또 나오니까 가슴이 딸랑딸랑해 '또 내가  복종 못 했다. 거기에 내가 이용당하지 못했다. 내가 그 말씀을 모시고 살지  못하고 그 말씀을 버렸다.'  바울과 같이 무거운 짐진 것처럼 자꾸 오그라져 들어갈 건데 이게 조금 알고  나면 '내가 이만한 실력이 있으니까 아무 데 가도 뭐라도 할 수가 있다.' 교만해  가지고 날뛰는 그게 뭐이냐? 말씀을 이용하는 자라는 그 증거요 표현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이용당하는 자는 점점 겸손해지고 점점 자기는 약해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강해집니다. 약해지는데 강해지요. 이용하는 자는  저는 점점 강해지는데 하나님으로서는 그에게 점점 약해집니다. 그러니까 사망의  것만 강해지지, 성장되고.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큰 능력이라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알아라 할 때에 '예, 내가 그대로 압니다. 내가 그대로 확실히 지금 확신을  가집니다.' 또 '네가 요렇게 해라' 그대로 하려고 애를 쓰는 것 그것이, 확실히  인정하고 그대로 하는 요 두 가지는 그것이 지극히 큰 능력입니다. 지극히 큰  능력.

 지극히 큰 능력이면 그 능력이 없는 가운데 천지 만물을 창조했는데, 그 능력이  예수님 안에서 하늘과 땅의 것을 다 발 아래 복종을 했고, 아버지 우편에  앉았고, 그 능력이 들어서 당신을 후회 없이 가장 이 상하게 완전하게 당신을  사용했고, 죽은 것을 완전히 사용하는 것이오. 사용했고 또 그 능력이 모든  존재에게 털끝만한 것도 잘못이 없이 잘 관할하고 잘 통치하고 모든 걸 다  제어해서 조물주와 피조물들에게 다 찬양이나 받고 만족이나 하지 부족이 없는  건설 이것인데 우리가 지극히 큰 능력에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은 무시하고 헛된  걸 찾으니까 멸망받아야 마땅합니다.

 뭐 예수 믿는 사람 많지마는 참 기본구원뿐이지 건설구원을 이루어 가지고 간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주님이 이것 귀하게 여겨. 이렇게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무시하는데 당신을 진정 바라보고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우주를  줘도 아깝지 않습니다. 다 그래 줄 것이오.

 제가 아레 양성원에 갔었습니까? 아레 양성원에 가 가지고서도 이런 말과 같은  말씀을 증거를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분과 연결돼 있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가 됐습니다. 뭐  무한함이, 모든 면에 무한하고 충만하고 완전함에 꽉, 접선이 됐으니까  빨아당기면 돼. 빨아당기면 돼. 어리석은 말 같지마는.

 빨아당기면 그분이 요것 필요할 때는 요것, 조것 필요할 때는 조것, 젖꼭지를  요것 물리고 조것 물리고 요래 가지고서 요것 필요하면 요것 조것 필요하면 조것  하는데 그저 당신이 하라 하는 대로만 하면 무한함을 내가 빨아당겨서 내것  만드는 것이라.

 그러면 그 말은 열방을 파괴, 건설, 뽑고, 심고, 모든 피조물을 자유 자재로  하는 세상뿐 아니라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이 다 그 아래 복종을 하는 그 능력이  예수님에게 일차 했고 이차적으로는 우리에게 할 것인데 우리가 이것은 무시하고  이 마귀떼들이 와 가지고서 유혹을 시키니까 어짜든지 세상 지식 해서 '이래  나가면 서부교회는 무식한' 무식한 건 마귀 지식 무식하고 하나님 지식으로  유식만 했으면 우주와 영계는 우리 것입니다. 우주 영계는 우리 것이오.

 좀 봇짱이 커야 됩니다. 반딧속같이, 벼룩새끼 모양으로 원청 작아 놓으니까 큰  걸 볼 수가 있어야지? 하나님이 안 보인다 그말이오. 그분이 자존자요, 그분이  주재자 주권자요, 그분이면 다 돼. 그분이 보여야지, 잘난 인간은 보이지마는.

꼬우는 마귀의 지식은 보이지마는 영원을 책임진 그 지식이 보여야지요?  이러니까 그분에게 피동되어야 되는데 그분에게 피동되는 것 중에 큰 것은 피동  안 하고 작은 것만 피동을 하려고, 작은 거는 순종하고 큰 거는 순종 안 합니다.

'깔따구는 걸러먹고 약대는 삼킨다'  우리가 순종하는 데는 첫째는 내가 경제 생활, 그거는 우리에게 참 높은 권세  가졌기 때문에. 내가 업을 하는 것을 업 그것을 순종하는 업 해야 됩니다. 업을  순종하는 업 해야 돼요. 돈벌이 잘되는 거는 우리 업이 아니고, 평안한 게 우리  업이 아니고, 영광 있는 게 우리 업이 아니고 당신이 하라 하는 그 업이 우리  업입니다.

 장사 하라면 장사하고, 똥구루마 끌라면 똥구루마 끌고, 또 메고 다니면서 도부  장사 하라 하면 도부 장사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가서 수고하는 종질 하라면  종질 하고, 그게, 시키는 그게 다가 아니라 시키는 것 함으로써, 우리의 소망은  시키는 그 일이 귀하나 천하나 그 시키는 일에 수입이, 많으나 적으나 그게  아니라. 당신이 시키는 그분과 나와 연결되는 그 소망으로 합니다. 그분과 나와  연결되는 그 소망이오. 그 성공이오. 그것이면 다인데.

 이러니까 업을 하나님이 시키시는 업을 하고 제 맘대로 세상에 있는 그건 것을  가려서, 돈 표준하는 사람은 업이 돈만 많이 올리면 될 것 이고, 평안하기를  표준하는 자는 평안하기만 하면 될 것이고, 또 손톱 발톱 밑에 흙 안 넣고 먼지  안 넣고 넥타이 딱 메고 하는 그 매꿈하게 사치를 표준하면 그는 그런 업을 택할  것이고, 또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얻어 삼는 이것을 표준한 자야 꺼꾸로  가든지 옳게 가든지, 천하든지 흥하든지, 좋든지 말든지, 수입이 적든지 많든지  내 표준은 그 업에서 하나님 차지할라 하는 그 표준이니까 이게 성도의  표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차지하게 하는 이 표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우리는 표준이 틀렸다 그말이오. 다른 표준 가지고 하니까  그분이 인도하는 것이 우리 표준에 맞지 안해. 그게 제맘대로 다 가서 그것이 다  망하는 것이라 그거요. 업을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해야 되겠고 또 자녀  공부시키는 것을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해야 됩니다.

 시키는 대로 해서 너는 국민학교 하다가도, 국민학교 하다가도 이것이 국민학교  일학년 때는 그렇더니만 이학년이 되고 나니까 뭐 그 지식을 막 그게 제일  지식인 줄 알고 성경을 무시하고 이거 교회 하나님의 지식을 무시하고 이러는 것  보니까 안 됐다. 그건 일학년에 그만 두고서 그놈을 바로 잡아야 되지 이학년  시키면 다시 못 붙듭니다. 그게 음행의 포도주인 줄을 아십시오.

 교회에 늙고 젊고간에 일내는 거는 보면 말이지요, 그 사람이라도 말이요. 그  사람이라도 일내는 것은 보면 마귀 지식이 든 그게 들어서 일을 냅니다. 또 그  사람이 내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은 보면 속에 양심에서 줘서  이렇게 일으켜 주는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서 선한 일 합니다. 전부 멸망이 인간  지식 가지고 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업을 믿음으로 해야 돼, 업을. 하나님이 시키시는 업을 해야 다.

그런데, 우리 표준이 다르면 안 돼. 우리 표준은 하나님과 그의 은혜를 내가  얻는 그것이 우리 표준이지 땅위에 무엇을 얻는 그게 우리 표준이 아니라  그거요.

 업을 믿음으로 해야 되고, 자녀 공부나 제 공부나 공부를 믿음으로 해야 되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제가 이런 활동 저런 활동 활동하는 것을 믿음으로 해야 돼.

그러면 차차 모든 것이 믿음으로 돼 나가겠습니다.

 제가 뭐 조그만한 것 사소한 것 이건 것 성경 말씀대로 '자, 네가 봉사해라,  희생해라. 주일을 지키라, 뭐 심방을 해라.' 하니까 그것은 순종하면 하는 줄  알고 업은 하나님이 시키는 것 안 하고 돈 목적으로, 하나님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 표준이 아니고 업은 삐뚤어진 업을 믿음으로 하지 안하고 마귀 시키는  대로 업을 취했습니다. 제까짓 게 암만 해도 마지막에는 마귀 자식 되고 맙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시키시는 거기에는 지극히 큰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것 외에는 다 넓은 길인데 마귀란 놈이 시키는 것이 별별 호호  찬란한 것이 있어도 말할 것 없이 단어로 한 말로 멸망이오.

 권찰님 누가 가 가지고서 말하십시오. 말해서 안 들으면, 분명히 말합니다. 그  아이 그 공부 가지고 망합니다. 벌써 망하기 시작하고 있지 않소?  '누구는 공부 하고 누구는 공부 안 하느냐?' 그거야 공부해서 대대학을  공부해도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하는 사람 있어. 해야 될 사람 있고. 해야 될  사람은 뭐인가? 그거는 해도 그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에게 아용되고 하나님의  지식과 그 지식과 비교가 안 되고 하나님의 지식에게 이용되기 위해서 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필요하지.

 '이 지식이 있으니까 내가 목회하는 데 모두 이 지식이 있으니까' 이걸  밑천으로 삼으면 벌써 틀렸소. 벌써 틀렸습니다. 그것이 회개 안 되면 그  시간에는 설교를 해도, 설교를 해도 마귀 설교나 하지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을  증거 못 합니다. 요것 하나님이 세밀히 구별하십니다.

 그러면 모든 것 세상 업이나 지식이나 그것을 심사는 뭘로 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주신 업입니다. 언제든지 얼마든지 해도 됩니까? 하나님이 공부하라는  공부입니다. 얼마든지 해도 됩니까? 하나님이 주신 지위입니다. 얼마든지 그  지위는 올라가면 됩니까?  그만 둬야 될까 계속해야 될까 하는 그것을 잘 심사를 해야 되는데 그 심사는  뭘로 합니까? 자, 그 심사는 뭘로 하요? 남자들보다 좁은 지식, 범위가 좁은  지식, 시야가 좁아서 요만만 보지 멀리 못 봐. 시간도 당장만 알지 그다음에는  못 봐, 길게를 보지 못하고. 여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뭘로 심사해야  됩니까? 자, 뭘로 심사를 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신 것입니다. 시키신 것이지마는 그것을  가다가 중단해야 될 때도 있고, 버려야 될 때도 있고, 옮겨야 될 때도 있으니  무엇으로 심사를 무엇으로 진찰을 하면 잘 압니까?  거기에 병든 것 하나님이 공부하라 했는데 공부 그게 암병이 돼 갑니다.

하나님이 그 직장에 취직하라 했는데 그 직장이 암병이 돼 갑니다. 하나님이  결혼해라 해서 결혼했는데 그 결혼이 암병이 돼 갑니다.

 그 진찰해서 암성이 돼 가면 그게 성공하기 전에 어서 수술하던가 어짜든가  치료를 해야될 것 아니겠소? 그 진찰을 뭘로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예? 큰 소리로 해. 소리 그렇츰 작나? 뭐 되는 것 같다, 맞은 것  같은데. 뭐라 해? 하나님과 하나님 능력? 은혜와, 또 어짜라고? 어짜라고  그러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어짜라고? 찾으라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찾으라고. 찾는 그것 가지고 안 돼.

 그것은 여러분들, 남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와  지식. 그것도 그래 벙벙하게 하면 딱 그어버리고 빵점 주지, 빵점, 절대 안 돼.

자, 뭘로 가지고 진찰할꼬? 몰라요? 예? 뭘로? 지식으로? 뭘로 진찰할까 하니까  진찰하는 진찰기를 말하는구먼. 내가 묻기를 잘못 물었는 것 같애.

 진찰기를 말하는데, 그 진찰해 가지고, 진찰해 가지고서 그 결과를 뭘 보아서  암병인지 압니까? 뭘 봐서 암병인지 아요?  녜, 따라합시다.

보다! 보다! 보다! 보다!  이것보다 이게 크거든 암병 들린 줄 알고 아직도 이것보다 이게 크면은 문제  없습니다. 보다.

 언제든지 비교해 봐야 됩니다. 언제든지 비중을 심사해 봐야 됩니다. 공부를  시켜도 이것을 비중을 심사해 봐서 이게 학교 갈수록 보니까 주의 일에 더  열심있고, 하나님에게 더 거석하고, 또 더 진실해지고,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고  이러면 되는데, 부모가 그걸 좋아하는 줄 아 니까 요놈이 벌써 속에 도둑놈이  들어 가지고 '내가 요래야 부모 돈을 홀킬 수 있고 부모가 학비를 잘 줄 거다'  해서 그것까지 생각해 가지고 그러면 그거는 고등범죄입니다. 고둥범죄요.

지능범죄요. 속으면 안 됩니다.

 어쨌건 '이것이 공부를 함으로써 세상 지식보다 하나님의 지식이 위에 점점  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모든 세상 사람보다 하나님의 크심을 알고 있나?  이 세상은 준비요 무궁세계가 더 크다는 걸 알고 있나?' 이걸 자꾸 이 비중을  달아서 진정 비중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 위에 크면 안심하고 갈 수  있고 만일 그 비중이 거의 같게 되면 얼른 중단해야 돼. 원수가 돼도 중단해야  됩니다. 안 하면 뒤에 자타가 다 망하지.

 우리가 깔따귀는 걸러먹고 약대는 삼킨다는, 뭐 사소한 그런 거는 실행 하는  것, 굵닥굵닥한 것, '첫째는 내가 취직을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지. 그렇지 이걸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지. 또 자녀 농사에 공부 시키는 것 이것 믿음으로 해야지.

내가 출세나 활동을 믿음으로 해야지.' 그런 굵닥굵닥한 것을 해 놓으면  나머지기 시시한 거는 저절로 됩니다.

 그래 잘 듣고 새겨서, 다 어려운 말이오. 그게 아주 껍데기 있는 말이 아니고  다 속에 속에 들어가서 어려운 말이기 때문에 들어야 그때는 알쏭알쏭하지만  그만 지나가 버리면 헛일이라. 그 말씀을 새기고 새기고 새겨야 돼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큰 능력. 하나님에게 피동되면, 피동되면 그 피동은  지극히 큰 능력이기 때문에 뭘 만들지 몰라요. 뭘 만들지 모른다 그거요. 지극히  큰 능력을 내가 받아 가지고 그 능력이 내게 일하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일 해.

우리 뭐 지식으로 아는 지식 범위내에 것이면 뭐 그리 큰 일이 어데 있겠소?  우리 지식을 초월한 것이라야 더 크지.

 모두 공부 우상 이것 회개합시다. 어떤 사람 말하기를 자꾸 그러면 '서부교회  목사님 자꾸 그래 하면 나중에 반지식' 반지식론이 아니라. 반지식론이 아니라.

정지식론이라, 정지식. 정지식.

 '그러면 다 무식하겠구만' 그거야 백성들 다 들어 놓으니까 전부 암병이 다  걸렸소. 이 나라 백성은 보니까 병이 하나도 없어. 병이 하나도 없으면 그 나라  백성이 승리하지 병든 거는 얼마 안 있어 망하지 안하겠소? 그저 믿음이 아닌  것으로써 하나님과 하나님의 지식을 까뭉캘 수 있는 인간 지식은 없는 게  좋습니다. 있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없는 게 좋습니다.

 내가 보는 대로는 통계를 봐서 지식을 가지고 인간 지식을 가지고 유익을 본  사람은 참 횐쌀에 뉘 모양으로 적고, 크나 작으나 인간 지식 제대로 들어 가지고  그놈이 들어서 망친 사람은 백이면 백이 다라 그렇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야 반대하지. 저거야 반대하지. 하나님은 내가 말하는 것을 '아멘! 네  말이 맞다.' 할 것입니다. 우리가 정신차려야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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