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치관

 

1988. 12. 21. 수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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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13장 1절∼18절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 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우리 사람들이 심령이 어두워서 세상을 잘 모르고 실패의 길올 걷는 것입니다.

실은 다 알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이라는 이 현재는 잠시 후면 과거라는 과거가 됩니다. 또 오늘 미래라고  하는 그 미래라는 이 미래는 잠시 후면 그만 현재로 바꾸어져 옵니다. 또 현재는  과거로 바꾸어져 지나갑니다.

 이런데 과거는 현재의 원인이요 또 현재는 미래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든지 그 현재밖에는 생각지 않기 때문에 현재를 보고 자기는 뭐  불만도 불평도 혹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생각을 가지고 단순히 현재면 현재로,  과거면 과거로, 미래면 미래로 이렇게 토막 토막이 생각하는 가운데에서 사람들은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이라는 이 현재를 오늘 이 현재 이것만 보고 우리가 상대하면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오늘이라는 이 현재는 잠깐만 있으면 이 현재는  지나가 버립니다. 지나가고 이 현재는 앞으로 닥쳐을 미래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에 살면서 이 현재는 과거에 내가 어떻게 했기에  과거라는 그 과거가 어떻게 됐기에 그 결과로 이 현재가 왔느냐 하는 것을  언제든지 연결시켜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 없는 미래가 없는 이 시간적 절대성뿐만 아니라 그  모든 고 행위와 고락도 꼭 그러합니다. 원인 없는 고생도 없고 원인 없는 기쁨도  없고 원인 없는 성공이나 행복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현재라 하는 것올 그저 좋다 나쁘다 그렇게만 단순히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이 현재에 좋은 현재가 닥쳤으면 '오늘이라는 이  좋은 현재를 내가 닥쳤으니까 이 현재를 맞이하게 된 그 원인이 어데 있나?' 하는  것을 미루어 생각해야 됩니다. '과거에 내가 이리이리 해서 오늘이라는 이 기쁨의  이 현재를 내가 맞이하게 됐구나.'  이런 것을 생각함으로서 오늘은 또 미래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오늘 괴로워도  즐거워도 앞으로 미래의 원인이 되어서 오늘 내가 언행심사 행동한 그대로  미래에 이루어지니까 미래를 생각해서 현재를 행동하고,  또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서 자기는 '이러한 과거에 이러한 현실을  닥쳤으니까 내가 오늘이라는 현실은 미래의 원인이 되니까 내가 이 현실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결과인 원인이 좋도록 나는 살아야 되겠다.' 하는 이렇게 연결을  시켜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침륜에 빠지지 아니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항상 과거를 반성하고 또 현재에서 양면을 봐야 됩니다.

현재에서는 앞으로는 이 미래, '내가 현재에 이렇게 하면 앞으로 미래가 어떤  미래가 되겠다. 또 내가 현재 이런 일을 닥친 것은 과거라는 어떤 과거로  말미암아 이렇게 생겨겼다.' 하는 이것을 언제든지 현재 과거 미래 이 세 토막을  한테 연결시켜 가지고 우리들은 그 모든 것을 평가해야 되지 사람들이 만일 이  셋을 연결시키지 않고 토막토막에 평가한다면 그 사람은 뭐 백이면 백 실패를  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잠깐 좀 증거하려고 합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신앙  출발을 같이 한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갈대아 우르에서 출발할 때에  아브라함의 믿음이나 롯의 믿음이나 물이 꼭 같은 믿음을 가지고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출발을 했습니다.

 또 행장을 차린 것도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 것도 같이, 또 하나님 따르기에  지장 없는 것들만 가지고 간 것도 다 꼭 같은 그런 참 정신과 믿음을 가지고  출발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벧엘에 와 가지고 또 두 숙질과 같이 온 사람들이  벧엘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셔 가지고 너희들이 여게 머물라 내가 이곳을  너희들에게 주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같이 듣고 그곳에서 같이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러다가 그만 그곳에 흉년이 장기간 동안 들어서 참 먹고 살기에 심히  어려웠습니다. 어려움을 닥친 것도 롯이나 아브라함이나 꼭 같이 그 흉년에 아주  어려움을 같이 겪었습니다. 겪다가, '아무래도 여게 있어 가지고는 우리가 많은  식구들 거느리고 다 굶어 죽겠으니까 이제 여게 있을 게 아니라 그래도 말  들으니까 애굽 나라에는 모든 것이 그래도 곡식이 풍성하다고 하니까 애굽으로  우리가 좀 이 흉년을 피해서 피난을 가자.' 이렇게 의논을 하고 두 숙질이  출발했습니다. 출발해 가지고 차차 차차 애굽 국경을 넘어 들어가니까 거게는 뭐  양식도 있고 또 물도 있고 이래서 품을 들어도 아주 배부르게 먹고 잘 살 수가  있었습니다. 배부르게 먹고 잘 살고 이러다가 차차 차차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서 애굽 나라 서울에 갔습니다. 애굽 서울에 들어갔는데 서울에 가니까 그  아브라함의 아내는 그때 그 나이가 근 칠십여 세가 다 돼 가는데도 어떻게  미인인저 그 애굽 사람들이 깜짝 놀래서 '하, 여게 참 평생 보지 못한 아름다운  미인이 우리 국경 안에 들어왔으니까 이것을 왕에게 고해야 되겠다.' 해서 왕에게  내용을 보고를 했습니다. 그 왕이 과연 아브라함의 아내를 보고 참 너무 귀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자기 아내를 삼으려고 그렇게 불러 왔습니다. 아브라함과 둘을  불러다 놓고 '이 여인이 누구냐?' 이러니까 자기네끼리 미리 알고 '아무래도  자기는 아름다운 미인이니까 아마 여게서 자기를 탐해 가지고 자기를 취하고자  하는 사람이 나를 죽이고 자기를 취할지 모르니까 부부간이라고 하지 말고 누이  동생이라고 이렇게 말해 가지고 그 어려움을 면하고 자기가 참 부득이해서  이렇게 다시 개가를 가는 이런 일이 있을지라도 죽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하고  그런 의논이 됐었습니다.

 그러자 마침 왕의 대신들이 보고 왕에게 보고를 해서 왕이 지금 인제 아내를  삼으려고 청혼을 했습니다. 남매간이라고 이러니까 아브라함에게 예물도 많이  주고 이래 가지고 결혼을 하기로 이제 됐습니다.

 결혼하게 되어서 이제는 참 결혼식을 하고 이제는 부부가 될 터인데 결혼식  하려 할 때 그때에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은  남매간이 아니고 부부간이고 또 그는 나를 섬기는 의인이기 때문에 네가 그  의인에게 대해서 조그만치라도 해를 가했다가는 너거 나라의 민족이 남지를 않을  터이니까 네가 그런 죄를 범하지 말아라'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알렸습니다.

 이러니까 바로 왕이 그만 자기 아내 삼으려 하다가 놀래서 하나님께 말하기를  '그가 부부간이라고 했으면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지 안했을 터인데  누이동생이라고 이렇게 해서 내가 이런 생각을 가졌으니까 그가 나를 속였지  내가 그에게 대해서 뭐 그냥 미혼 여자라면 결혼하는 것도 정한 이치 아닙니까?'  이거는 내가 죄지은 게 아니니까 내가 그 여자를 돌려 보낼 터이니까 나한테  그렇게 벌을 내리지 말라고,  그래 인제 그 아브라함 불러 가지고 '왜 네가 이렇게 말했느냐?' '과연 생명이  위험해서 그렇게 약속하고 그렇게 했노라. 실은 내 아내라.' 이럴 때에 네 아내가  여게 있으니까 데려가라 이래 하고서, 그렇게 됐던 것이니까 그동안에 예물을  줬던 것은 도로 찾지 않고 그거 또 약간의 미안한 것을 무르기 위해서 약간의  예물을 줘서 보냈습니다. 보낼 때에 그 롯에게도, 또 예물을 주고 두 군데서  예물을 받아서 얼마간 재물이 됐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가지고 나온  재물이 있었을 뿐 아니라 또 거게서도 약간 얻고 해서 재물이 있었습니다. 거게서  둘이 나서 가지고 지금 다시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자기가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렇게 남방으로 이렇게 애굽  나라로 이렇게 피난해서 왔던 그걸 생각 하고 아브라함이 마음에 깊이 마음에  후회를 가지고 지금 하나님이 여게 있으라 하는 그 벧엘 땅으로 다시 찾아서  올라갑니다. 벧엘 땅으로 찾아 올라가는데 올라가는 도중에, 양을 몰고 이래  가니까 빨리 못가고 그저 슬슬 먹여 가면서 그래 가기 때문에 세월이 걸립니다.

혹 몇 해가 걸렸는지, 한 일 년이 걸렸는지 몇 해가 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 롯도 아브라함도 아주 재산이 많이 부요해졌습니다. 그래  그리그리 가다가 이제 처음에 하나님이 머물라 하는 벧엘에 가 가지고 거게서  다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섬겼는데 그때에 두 집에  하나님이 축복을 하셔서 짐승도 많고 또 일꾼도 돈도 많았었습니다.

 이러니까 처음에는 뭐 그곳에 가도 어데 붙었는가 몰랐지마는 두 집이 그렇게  부자가 되니까 그 자리 살기가 너무 땅이 좁아서 어려웠습니다. 이래서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가서로 시비를 해서 자꾸 이거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롯은 숙질간이고 또 주인들이니까  뭐 밑에서 모든 목자들이 서로 시비하고 있는데 그 모든 원인이나 주권은  아브라함과 롯 그 두 숙질간에 매여 있었읍니다. 그래서 시비하는 가운데에  아브라함이 롯을 불렀읍니다. '롯아, 나와 너와도 이렇게 시비할 수가 없는  숙질간이고 또 내 밑에 있는 목자와 네 밑에 있는 목자도 이렇게 서로 시비할 수  있는 이런 처지가 아니지 않느냐? 그래 우리가 이 시비를 하지 말자.' 이렇게  말을 했으나 롯은 그 말을 듣지를 않습니다.

 '그뭐 내가 아무리 하지 말라 해도 그들이 자꾸 저렇게 시비를 해 쌓으니 그거  참 뭐 내가 그걸 뭐 권하는 게 아니고 말려도 안 된다.' 하고서 롯 중심에서  그것을 그렇게 만류하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안하고 자꾸 서로 분쟁은 더 심해  갔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여게 하는 말입니다. '내 목자나 네 목자가 서로 다투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않느냐? 넓은 이 땅이 있는데 네가 어데든지 택해라. 너와  나와 한테는 있을 수가 없으니까 네가 어데든지, 우리가 있는 이곳은 좋은 곳이  아니니까 앞에 지금 소돔 고모라 이 광야가 있고 또 거게 넓은 초장이 있고 물  근원 좋은 데도 있고 하니까 네가 좌하든지 우하든지 네가 어데든지 네 소원대로  택하면 나는 네가 택하고 난 다음에 남은 것을 내가 차지하겠다.' 이렇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말했고 롯은 자기가 삼촌 보기에 미안하지마는 밑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아무래도 큰집은 큰집이니까 낫지 않 는가? 우리가 이번에  이 방목지를, 양을 기를 목장지를 바로 택하지 안하면 우리 가정은 다 망하고  마는 것이니까 우리가 어짜든지. 이미 큰집에서 자유로 하라고 허락을 했으니까  좋은 곳을 택해야 됩니다.' 또 '그래서는 안 된다. 큰 집을 대우해야 된다.' 의논이  분분했읍니다. 이라다가 마지막에는 이제 롯이 그만 이 모두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자꾸 이래 쌓고 시비가 일어나니 이제는 어짤 수 없고 하니까 '그만 좀  삼촌 보기 미안하지마는 내가 이 소돔 들을 취하겠읍니다.' 그리고 소돔 들을  취해서 인제 제일 목축하기에 풀 좋고 물 좋고 또 평지를 롯이 다 취해 가지고  가고 아브라함은 아주 풀도 없는, 물도 없고 우물도 풀도 없는 발간 자산 그것을  차지하게 되고 그렇게 됐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롯이 떠나서 소돔 고모라 성에까지 이르러 가지고 거게 가서  장막을 치고 인제 목축을 거게서 시작을 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 가지고 말씀하시기를 '왜 네가 좋은 것 택하지 않고 네가  여게서 이런 박토를 택하고 있느냐?'하시면서도 하나님 마음에는 매우 흐뭇한  그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리니 네가 이 땅을 측량해  봐라.' 그렇게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롯은 롯으로 떠났고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으로  가나안 아주 자산에 있었습니다. 그래 이사야 49장에 보면 자산에도 푸른 초장이  있다고 한 말씀은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질 그때를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있는 곳은 발간, 자산이라면 붉을 자( )자 뫼 산(山)자, 붉은  산이라 말이오. 풀이 없는 자산을 취했는데도 자산에도 푸른 초장이 있다. 그  아브라함은 발간 자산을 취했지마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푸른 초장이 있어 가지고  성공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러고 난 다음에 롯은 이제 소돔 들로 가 가지고 아주 물 좋고  하니까 목축을 잘했고 또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그래도 뭐 목축을 그냥  했었습니다. 이러다가 전쟁이 났는데 그 롯이 적에게 포로되어 가고 재산도 모두  탈취가 됐고 한다는 그건 소식을 롯에게서 사람이 와 가지고 '아브라함의 지금  조카 롯이 포로가 돼 가지고 지금 가고 재산도 다 낭패가 되고 이렇습니다.'  이러니까 아브라함이 그 소식을 듣고, 자기 집을 지키는 사람이 삼백십팔  인이라고 했습니다. 14장 13절에 보면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힘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십팔 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대단히 아브라함도 거부가 됐습니다.

 그러고 그 뒤가 어찌 됐느냐? 아브라함이 자기 집에 집을 지키는 그 사람들을  거느리고 가 가지고 사대 강국이 연합한 그 나라를 쳐서 이겼습니다. 이기고  사람도 다 뱃들어 가지고 찾아 가지고 오고 재물도 전부 다 뺏들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왔는데 그때에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말하기를 참  감사하다고, 이렇게 후원해서 우리 백성들도 다 도로 포로에서 찾아 주고 또  재물도 이렇게 다 찾아 주시니 감사하다고 이러면서 '사람은 우리에게로 돌려  보내고,' 적산이라는 이 모든 재물은, 저희에게 뺏든 재물은 전부 당신이 다  하십시오.' 그렇게 말을 하고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거 재산은  신들메 하나도 내가 차지하지 않겠다. 다만 나와 같이 갔던 전쟁에 고생한  그분들에게나 네가 대우할 것 대우하지 나는 하나도 차지 않겠다.' 왜 차지하지  않을 것은 만일 이것을 차지하면 너든지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자기 조카 때문에 소돔 성을 탈취해 가지고 가는 그 적군들을 쳐서  승리하고 그 적산을 뺏들어 가지고 아브라함이 부자됐다 이렇게 말을 해서,  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만 지금 내가 뭐 모자람이 없이 충만한데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공연히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얻은 재물이라고 이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이 가리워질까 해서 내가 그래 하나도 내가 차지하지 않겠다 하고  물리켰습니다. 물리치니까 하나님께도 영광이 됐고 그 소돔 왕도 참 그것 보고  칭찬하고 참 놀랬습니다.

 그러고. 그 뒤에 롯이 거게서 소돔 성에서 사는데 그 뒤에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 성에 죄악이 관영해서 이 성을 유황불비로 태우기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말을 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너한테 숨기겠느냐? 너거 조카가 지금 소돔 성에  있는데 소돔 성을 이제 잠시 후면 유황불로 가지고 멸해서 소돔 고모라 성을  완전히 유황으로 태워서 아주 참 돌이고 흙이고 바짝 타 가지고 아주 잿더미가  되도록 하겠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기도를 다섯 번이나 했습니다. 나중에 마지막에는 '의인 열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렵니까?' '의인 열 명이 있으면 열 명을 인해서 내가 참고  기다리겠다' 했지마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그 소돔 고모라 성은 이제 유황불에  다 소멸하게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고 아브라함의 조카를 구원하기  위해서 천사를 보냈습니다. 천사를 보내서 그 롯에게 가 가지고 '여게는 유황불로  가지고 이 성이 소멸될 터이니까 너희들이 이 성에서 피난을 가거라. 너거 삼촌  아브라함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서 지금 이렇게 피난시키게  했으니까 피난을 가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롯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너와 가까운 그건 친척이 있으면 너거뿐  아니라 명을 데리고 가도 되니까 너거와 관련된 사람 이면 데리고 피난 가거라.'  '이러니까 '아이구 아무도 없고 우리 약혼한 사위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거나  있을까 뭐 딴 사람들은 내 말 하나도 안 듣고 다 지금 내가 참 외롭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내 사람 하나도 없고 우리 딸이 둘이 아름다운 딸이 있으니까 딸  욕심으로써 약혼한 총각 둘만 나와 관련 가졌지 아무도 나와 관련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그러면 너거 사위에게 연락해 가지고 그 사위들에게 같이 피난을  가도록 그렇게 해라.' 롯이 두 사위에게 가서 연락을 했습니다. 연락을 하면서  '지금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까 어쩌든지 여기서는 곧 하나님이 유황으로 가지고  불로 태워서 이 땅을 완전히 태워서 그렇게 아주 멸하기로 했으니까 같이 피난을  가자.'  이러니까 그 약혼한 사위 둘이 말하기를, 이 영감 자꾸, 저렇기 때문에 결혼도 못  해, 망령된 노망한 영감 모양으로 자꾸 미친 소리만 한다고 빈절빈절 웃으면서  '갈라면 영감님이나 가십시오. 우리는 안 갈랍니다.' 이러니까 가자 해도 안 가고  이래서 그만 할 수 없이 두고서 인제 그 너이 나섰습니다. 딸 둘하고 또 자기  할멈하고 자기하고 이래 너이 나섰는데,  그 할마이도 말이요, 영감 말 안 듣습니다. 천사가 말하기를 '가면서 뒤돌아보면  이제 유황불비에 맞아 가지고 너희들이 멸망을 방을 터이니까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어찌 됐든간에 급히 피난을 가거라.' 이렇게 말했는데,  그러니까 딸들은 둘은 따라 나오는데 할마이는 '암만 해도 이거 뭐 천사니  뭐이니 저놈들이 도둑놈들인지 모르니까 우리한테 이 유황불비 온다 하고 우리  피난 가라 하고 이제 남은 살림살이 저거가 도둑질해 가지고 가려고  저러는가보다' 이래서 자꾸 뒤를 빼꼼빼꼼 돌아보면서, 암만 가라고 독촉해서  도망을 치면서도 보니까 불은 안 온다 말이요, 비가 안 오고, 그 유황불비가  내려오지 안해요.

 이러니까 그만 이 롯의 처가 '이 공연히 속았는갑다' 이래 가자고 지금 뒤를  돌아보고 도로 돌아가려 할 때에 그때에 불이 내려와 가지고서 그만 그 롯의  처는 그 유황불비에 맞아 버렸습니다. 맞아 가지고서 소금 기둥이 되어서 지금  영국 그 박물원에 있다 하는데 나는 보지는 못했으나 거게 있다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그 소돔 고모라 성이 얼마다 탔던지 그 소돔 고모라 성 탄 그  자리가 지금 뭘로 돼 있느냐 하면은 사해라 하는 바다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사해라는 바다가 돼 가지고 있는데 그 사해라는 바다는 바다보다 깊이가 얼마나  깊은고 하니 그거 내가 척수는 좀 잊 어버렸는데 바다 요량하면 한 사람으로  말하면 몇 길 그 깊이 돼 가지고 있는 그렇게 타서 오그라져 버렸습니다. 타서  그만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사해는 이름을 사해라고 하는데 그 사해는 물이 썩습니다. 썩어서  요단 강물이 그렇게 많은 물이 그리 들어가지마는 물이 한번도 차지를 안합니다.

넘지를 않고 들어가면 삭아 버리고 들어가면 삭아 버리고 이래서 거게는, 그 요단  강에는 고기가 많은데 그 사해는 고기고 버러지고 산 거는 한 마리도 없습니다.

완전히 참 사해라, 죽을 사(死)자 죽은 바다 사해라.

 이래서 언제 내가 어떤 한번 책자 보니까 거기에 사해에는 세계 인구를 몇 배를  전멸시킬 수 있는 전쟁 약품이 그 안에 지금 저장되어 있다. 자꾸 물이 거게서  마르고 마르고 자꾸 이러니까 저장되어 있다. 이래서 그 안에는 굉장한 이거  사람을 살해하는 전쟁 그 무서운 독약이 들어 있는데 그것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세계가 지킵니다. 아무도 손대지 못하도록. 그것만 가지고 나오면 무슨  일을 하련지 몰라. 하나님께서 그걸 가지고 뭘 태우련지 몰라요.

 이래서 롯의 처는 그만 거게서 소금 기둥이 돼 버렸고 그래 인제 그 딸 둘을  데리고 가다가서 멀리 못 가서 '저 소알이라는 조그만한 성 저리 우리를 피하도록  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 가거라. 그곳에 가 가지고 또 두려워서 산에 올라가  거하면서 삼부녀, 딸 둘하고 아버지하고 거게서 바위굴에 틀어박혀 가지고 뭐  이런 것 저런 것 그 풀뿌리도 캐먹고 벌레도 잡아먹고 뭐 이래 가지고 근근히  사는데 이러다가 거게 차차 좀 기반닦아 가지고 그냥 아래 사는데 인종이 없어.

또 그러고 또 그 사람들은 벌써 소돔 고모라 성에 그래 나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접근을 해 주지 안해요. 접근해 주지 않기 때문에 이거는 아주 뭐 딸 둘은  그냥 독신으로 늙어야 되고 또 아버지는 뭣을, 그러니까 그때 농사지어 가지고  포도주도 좀 하고 이랬는데, 그래 아무래도 안 되니까 딸들이 '우리 아버지를 술을  취하도록 해 가지고 우리가 동침을 해서 거게서라도 자손을 얻어서 자손을  우리가 전해야 되지 이래 망할 수가 있겠느냐?' 그래 가지고 거게서 술을 취하게  하고 정신없게 만들어 가지고 동침해서 거게서 잉태해서 둘 다 아들을 낳아  가지고 자손이 됐는데 그 자손들도 비참한 자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망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망하고,  아브라함은 뭐 이거 그때에 그렇게 시비할 때에 롯은 좋은 곳으로 택해서 가고  아브라함은 가족들이 아무리 해도 가족들의 말 듣지 안 하고 가나안에 있으니까  그 모든 가족들이 시비가 않았지마는 그래 꾹 눌러 가지고 거게 있으니까 차차  차차 하나님이 복을 줘서 모든 것이 풍부하게 그렇게 부자가 됐지 또 거기에  따른 그 종들이나 모든 그 식구들이 전부 다 성녀입니다. 그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장가드릴라고 할 때에 그때에 그 종을 중매쟁이로 이래 보냈는데 그 종에  아브라함이 부탁한 것이나 또 종이 아브라함의 그 말을 그렇게 듣기를 꼭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 듣듯이 두려워하고 그래 들어서 한 걸 보면 그만  아브라함에게 속한 그런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아내도 성경에 보면 사라의 딸이  되리라고 사라를, 여인 중에는 제일 위대한 여인이 사라입니다. 마리아보다도  위대한 여인입니다.

 그렇게 복많은 그런 아내가 됐고 아들 이삭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런 복많은 아들이 됐고 또 그 아브라함에게는 그 자손이  땅의 티끌 숫자보다 더 많겠다고 하는 것은 전부 믿는 사람이 그분의 신앙의  자손이 돼 가지고 이렇게 자손이 많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저녁에 증거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아브라함하고 롯하고 둘이 꼭  같이 출발을 해서 같은 그 경로를 통과했는데 어떻게 해서 아브라함은 그렇게 큰  축복을 받았고 롯은 그렇게 끝이 참 비참하게 멸망을 받았는가 하는 그 원인이  어데 있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증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아브라함과 롯이 둘이 벧엘에서 고생도 당했고 거게서 남쪽으로  애굽으로 내려가다가 또 밥도 잘 먹었고 재물도 얻었고 또 거게서 바로 왕  만나고 난 다음에 되돌아와서 벧엘로 올라갈 때에 그때에 재물도 많았고  벧엘에서 두 집이 서로 시비할 때 그때는 뭐 재물도 많았고 노비들도 많았고  굉장한 아주 번성한 그런 가족들이 됐었어. 롯도 그랬어. 롯도 그러고 똑  같았습니다.

 똑 같았는데 두 집이 가다가 어데서 갈라졌느냐 하면 벧엘에서 서로 목자들이  시비할 때에 아브라함은 말하기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 아브라함은 양보를 했고 롯은 양보하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취해서  갔던 것입니다. 거게서 두 집이 갈라졌습니다. 거게서 두 집이 갈라져 가지고 한  집은 끝까지 완전히 멸망을 받았고 한 집은 참 행복스러운 가정이 되어졌습니다.

 이와같이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도 꼭 같이 예수 믿기 시작했지마는 이 롯과  같이 참 그 뒤가 비참하게 될 사람들도 있고 아주 행복되게 될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거 뭐 비참하게 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비참하게 되는 것보다도 세상  비참이야 안 믿는 사람들도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비참은 크게 비참이 안  되지마는 무궁세계에는 참 말할 수 없는 그런 비참한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이고 행복스러운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그 두 사람들이 왜 그렇게 시비할 때에 그렇게 갈라졌던가 하는,  왜 아브라함은 그랬고 롯은 또 그런 사람이 됐든가 하는 그것을 찾는 것이 롯의  멸망의 원인이요 아브라함의 축복의 원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OOO집사님 그거 뭐이겠습니까? 모르겠어요? 녜, 모를 거라.

 요 간단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이 돈도 안 보고 또 뭐 평안도 안 보고, 처음에  평안을 보고 거게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자기 아내가 모욕을 당하고 그렇게 큰  변을 보고 난 다음에 아브라함은 아주 크게 거게서 반성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따라 나갈 때에 무엇을 위주로 해서 봤던고 하니  아브라함은 자기 언행심사의 모든 행동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 일이  되느냐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되느냐?' 요것을 제일 크게 삼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이러면 뭐 일이 형통하냐 성공이냐? 뭐 부자가 되느냐 뭐냐?'  그런 게 아니고 자기가 하는 이 행동에서 '이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겠느냐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되겠느냐?' 기쁘시게 하는 일이면  하나님하고 하나가 되겠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라면 하나님과 대립이  되어지니까 요것만 아브라함은 봤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일 저런 일 거게서, 벧엘에서 떠나서 자기네들 좋도록 하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갔는데 그때까지는 몰랐지마는 애굽에 가 가지고 자기  아내를 뺏기게 된 그때에 그는 깨달아서, 만일 그렇게 결혼이 됐으면,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지 안했더라면 자기 아내를 아내 아니라고 누이동생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누이동생이라고 해서 그 바로 왕이 결혼을 떡 했으면 말이요, 결혼을  했으면은 결혼하고 난 다음에 이 보니까 아무래도 자기 부부니까 좀 다를 것  아니겠습니까? 부부니까 그러면 바로 왕의 아내를 아브라함이 남의 아내를  가로취하는 게 되니까 당장 아브라함 사형입니다. 까짓 거 뭐. 아브라함 그거 뭐  천 명이라도 당장 죽여 버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장 죽는 일이라.

 이래서, 아브라함은 그때에 '이거 내가 암만 배가 고파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벌써 축복해 주신다 했는데 거게서 떠나지 않고 있어야 되는데 내가  이래 떠나 나와 가지고-그 일을 닥치자-하나님을 내가 노엽게 했다.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을 했다.' 하는 고것을 자기가 깨닫고,  '노엽게 해서 이 죽는 이런 일이 닥쳤는데 하나님이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여게서 구출하기는 하셨지마는 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이런 이 봉변을  당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노여워하셔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큰 징계로  이런 일을 주셨다.' 하는 것을 아브라함은 깨달았습니다.

 거게서 '하나님을 노엽게 했다' 하는 그것을 아브라함이 하나 깨달았고 또 하나는  아브라함은 뭘 보고 사느냐 하면 돈이나 뭐 이래 뭐 사람이나 이런 것 많이 얻는  그런 것보다도 아브라함은 자기의 성결, 자기의 성결을 가치로 보고 살았습니다.

 이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고 난 다음에 꼭 두 가지만 봤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하나님을 노엽게 하느냐?' 요거 하나. 또 '내가 거룩한  사람이 되느냐 죄인이 되느냐?' 요거, 요 두 가지만 아브라함은 봤습니다.

아브라함은 요 두 가지만 봤기 때문에 그 벧엘에서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  하나님을 노엽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또 자신이 아주 더러워 졌다는 것을 그걸  깨달았고 요 둘을 깨닫고 하나님이 거게서 살려서 어서 거게서 도망쳐 가지고  지금 벧엘로 올라와 가지고 하나님 섬기니까 재물이 많아지지마는, 아브라함은  그후에 뭐 재물이 많아지고 적어지고 하는 그것보다도 어쩌든지 일편단심이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할까?' 하는 요것이 그의 목적이요 소원이었고 또  '어떻게 하면 내가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 되고 죄인되지 않고 거룩하고 깨끗한  사람이 될까?' 하는 요거 요 두 가지만을 아브라함은 노렸습니다.

 이러니까 그때에 롯으로 더불어 시비가 날 때에, 시비가 날 때에 뭐 아브라함은  더듬을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더듬을 것이 없어. 거게서 '이러면 목축이 뭐  이래야 잘 되나 저래야 잘 되나? 어데로 가야 내가 부자가 되나 안 되나?'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가 가슴에 그렇게 아픈 것은 벧엘에서 주님의 노여워하는 그 길 걸은 것을  그것을 참 기막히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여게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겠느냐?' 그분이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겠느냐?' 이게 자기 속에 매여  있고,  돈이 목적이 아니고 돈에 소망을 가지지 않고 물질에 소망을 가지지 않고  인간들의 사람을 뭐 많은 사람을 자기 사람을 만든다는 사람 부자에도 아무  소망을 두지 않고 단지 소망이 둘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하나님을 노엽게 하느냐?'  요것뿐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그때에 숙질간에 다툴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는 양보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 하는  이 길밖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 없고 또 이 길밖에는 자기를 더럽히지  않고 성결케 하는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이 길을 택한 것은 요 둘이 자기의 평생 소원의 생애의  목적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그 길을 택하는 것만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겠고 그 일을 택하는 것만이 자기를 더럽히지  않는 일이 되지 만일 다른 일을 하면 결국은 숙질간에 이러면 자기는 더러운  사람 되어지고 주님을 노엽게 하기 때문에 그의 신앙의 전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 자기의 성결만을 자기가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 길밖에는 택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어떻게 해 가지고 삼촌도 모르고 그만 몰인정하고 그래 가지고  소돔 고모라 성을 택했던가? 그는 신앙생활에서 보는 것이 아브라함과 같지  안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벧엘에서 애굽으로 설설 내려올 때에 올 때에 자기는  물질이 하나씩 둘씩 불어서 자꾸 물질이 부해집니다.

 이래 부요해지니까 물질 부요해지는데 거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이 이렇게  은혜를 주시고 축복을 해 주셔서 물질이 부요해진다' 하나님이 물질을 부요해지게  해 주는 거 물질 부요 그것을 가치로 삼아서 자기는 기뻐하고 즐거워했고, 또  그렇게 내려오면서 사람들 만날 때에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을 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교섭하고 이리저리 사람 취급을 이리저리 하는 가운데서  사람부자도 됐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의 소망은 뭐였었느냐? 물질에 가치를 두고 또 자기 사람들을 만드는  사람에 가치 두고, 사람에게 가치 두는 것과 물질에 가치 두는 두 군데다가  가치를 롯은 뒀습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자기 지혜대로 수단대로 말도 하고 교섭도 하고 서로 사람을  취급도 하고 이러니까 사람 부자도 되고 물질 부자도 되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어렇게 잘 됐다 이래서 이러다 보니까 자기가 목적하는 것이, 소망하고  목적하는 것이 사람 부자와 물질 부자 이것이 그의 소망이요 목적이었습니다.

 이러니까 딱 아브라함과 둘이 둘이 딱 시비해서 다투게 될 때에 그때 롯은  자기가 모든 생활의 가치를 물질에다 두기 때문에 물질을 내놓을 수가 없는 그  사람입니다.

 또 자기는 사람을 취해서 '어쩌든지 사람이 있어야 된다' 자기 밑에 부하 사람  데리는 것을 가치로 삼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얻는 데에는 사람들의 비위를  들어야 되지 그 모든 사람은 다 '여기 저 소돔들 우리가 가야지 그리 안 하면 안  됩니다. 나는 그래 안 하면 내가 이 목축 못 하겠습니다.' 막 이렇게  뿔룩뿔룩거리는데 그 사람들을 잘 온화해서 서로 적당하게 이야기도 하고 서로  타이르기도 하고 화합도 하고 의논도 하고 이래야 사람을 취할 수 있다 말이오.

 지금까지 내려온 사람을 취하는 방법이 그래 가지고 사람을 취했고, 사람 취하는  방법이 그래서 사람을 취했고 또 물질 취하는 방법도 그렇게 자기가 노력하고  힘써 이렇게 해 가지고 물질을 취했고 자기 신앙 경험이 그래.

 신앙 경험이, 사람에게 대해서는 서로 타협적으로 이렇게 해야 되지 꼬장배기  모양으로 하나님 하나님 이래 가지고 인간들의 비위를 듣지 않고 이래 하면 사람  다 뺏긴다. 사람 다 뺏긴다. 또 이거 사람을 타협을 해서 내가 이제까지 사람  경험한 가운데는 이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그 사람들에게 그렇게 내가 교섭을  하고 서로 화친을 하고 이렇게 사람들을 달래서 사교를 했기 때문에 내가 이만치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어 삼촌 아브라함에 못지 않는 이렇게 이 밑에  사람들이 많게 되고 재물도 많게 된,  이것이 뭐이냐 하면 재물 취한 그런 경험이 자기에게 쌓여 있고 사람들을 취한  경험이 자기에게 쌓였고 하니까 자기 경험에 따라서, 경험에 따라서, 롯이 취한 것  같은 그 걸음을 취하는 것이 사람 부자되과 물질부자 되는 길이기 때문에 자기는  그 길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또 그것보다도 자기는 가치로 삼기를 물질과  사람만을 가치로 삼았지 하나님께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그  길 택할 수밖에 없었고,  아브라함은 그가 가치를 삼기를 물질에도 사람에도 삼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노엽게 하느냐 하나님에게다가 가치를 둬서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삼느냐 하나님이 나와 대립이 되느냐 나와 하나되느냐?' 그가 가치로  삼기를 하나님을 자기의 유일한 가치로 삼았고,  둘째 가치는 하나님이 노여워하면 자기 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여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그 의인이 되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성결한 사람이 되는 그것이 자기에게 둘째로 가치로 삼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롯은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것이  가치관에서 그렇게 되어져 버렸고, 가치관에서 그래 되어져 버렸고 신앙 경험에  노력하고 경험하고 체험한 거게서 그렇게 됐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어쩌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 자기 성결을 가지려고  이렇게 할 때에 그때에 재물도 왔고 사람도 왔기 때문에 재물과 사람 취한 것도  재물과 사람 때문에 죄짓고 하나님 앞에 배치되는 일 해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 자기가 걷는 그 깨끗한 성결의 길을 걸을 때에 그  모든 것도 잘 됐다는 것이 신앙 경험으로 봐도 이제 거게서 하나님 노엽게 해서  취하는 그런 경험을 못 했고 자기가 더러워져 가면서 취하는 그런 경험을 못  했기 때문에 자기를 깨끗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서 얻었던 신앙  경험도 그러하고 또 그가 가치관도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됐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의 두 조상의 노선입니다.

 이러니까 오늘밤에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을 것이 뭐인가? 우리가 꼭 같은  신앙 생활올 해서 다 같이 축복을 받아 가지고 뭐 왕성이 됩니다. 축복을 받아  가지고 사람 부자도 되고 돈 부자도 되고 이렇게 많이 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다시 말하면 내가, 내 자신이 가치를 어데다 두느냐?  가치를 하나님에게 두느냐 사람에게 두느냐, 사람 부자에다가 두느냐 하나님  부자에다 두느냐? 내가 가치를 하나님욜 가치로 삼느냐 사람을 가치로 삼느냐?  사람보다 하나님을 가치로 봤는 것이 아브라함이요 하나님보다, 하나님이야 어째,  하나님은 섭섭해도 사람이 부자가 되어야 된다고 사람이 많아야 된다고 사람에게  가치를 더 두었던 그것이 롯이오.

 또 그는, 아브라함은 돈보다도 '내가 성결해져야, 내가 성결해져야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되기 때문에 능치 못할 게 없지마는 내가 더러워지면 하나님 다 나와  관계 없어지니까 천금 만금이 있어야 그까짓 소용이 없다.' 자기 성결은 수많은  재물보다 낫게 여겼어. 수많은 재물보다 성결은 낫다고 평가했고 수많은  사람들보다 하나님온 더 무한히 높다고 평가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 두 가지를  취했고, 롯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제 사람 만드는 게 낫기 때문에 그 사람은  사람을 취하는 그 길을 걸었고 또 자기가 거룩하게 성결하게 되는 것보다도 이  재물이 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이 자리 있지마는 여러분들이 이 두 이 노선이 똑똑합니다. 이 두  노선이 똑똑하니까 그저 '나는 하나님이냐 사람이냐?' 하나님 취하려 하면 사람  취하지 못하고 사람 취하려 하면 하나님 취하지 못하고 이러는데 하나님을  취하면 사람은 저절로 오고 사람을 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 취하고  하나님 취하려 하는 사람은 다 버려지고 맙니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요 오늘까지  통계입니다.

 그러고 자기 성결하면 하나님이 모든 필요하면 얼마든지 부요를 주는 줄 알고  성결을 부요보다 크게 여긴 사람은 하나님이 그에게 얼마든지 부요를 줄 수 있고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결보다 부요를 크게 여기는 그 자에게는 부요 줘  놓으면 그게 뭐 돈 자식이 되고 돈 종이 되고 돈이 완전히 그놈 죽여 버리고 말  터이니까 어떻게 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성결보다 재물을 크게 여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물질의 축복을 줄  수가 없고 또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가치 있게 귀중하게 여기는 그 사람은 사람  부자를 만들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들어 주면 그 사람 사람에게 치여 죽을  터이니까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오늘 우리 신앙은, 아브라함 신앙은 모든 자기 종업자들 수많은 사람을  내 사람 만드는 것보다도 하나님 한 분의 뜻을 찾아서 하나님을 내 하나님  만드는 것이 그것이 아브라함의 신앙 사상이오. 또 모든 재물 그것을 다  뺏길지라도 자기의 성결을 더럽히지 않겠다 하는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이요  롯은 그와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여게서 우리가 이걸 잃지 말고 이것을 기억하면서 우리에게 당면될 때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어두워지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롯의 걸음을 걸으면 다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요거 꼭 잃지 안해야 됩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가치관, 가치관을 아브라함의  가치관을 가지면 아브라함의 걸음을 안 걸을래야 안 걸을 수 없고 롯의 가치관을  가지면 롯의 걸음을 안 걸을래야 안 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치관을 바로 가지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암만 그래, 떠들어  쌓아도 소용이 없어. 뭐뭐 잘나도 떨어지고 암만 천하 걸 다 뚤뚤 뭉쳐도 소용  없습니다. 그거 무슨 가치 있고 무슨 힘이 있습니까, 불어 버리면 날아가 버리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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