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길

 

1988. 1. 19. 화새벽

 

본문: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여게 길이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두 길을 말씀했습니다. 길에 대해서 어제 아침에  간단하게 말했는데 이 길이라는 것은 성경에는 도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길 도자,  도라.

이 길은 우리가 살아나가는, 살아가는 길이요, 우리가 행해가는 길이요, 또 하나씩  우리가 정리해 가는 길이요, 정돈해 가는 길이요, 그렇게 이 시간에서 다음  시간으로 다음 시간에서 그다음 시간으로, 이 현실에서 다음 현실로 이렇게  옮겨서 가고 있는 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행인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나그네와 행인 같은 우리들이라’ 행인이라 말은 길 가는 사람이라 그말인데  우리는 길을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 시간을 지나면 그 한 시간으로 인해서 저주에 가깝든지 축복에 가깝든지  자기를 망치는 일이 이루어졌든지 자기를 복되게 하는 일이 이루어졌든지 일이  이루어지고야 끝나는 것입니다. 생각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어제 아침에 우리의 마음이 걸어가는 길을 말을 했고 우리 또, 마음에  걸어가는 길은 생각도 마음에 걸어가는 길이요 소원도 감정도 이성 비판도 그  모든 것이 다 마음으로 걸어가는 것이라, 또 입으로 걸어가는 것, 눈으로  걸어가는 것, 귀로 걸어가는 것, 그러면 귀로도 이 시간에 듣고 고다음 시간에  하나 잘못 들음으로써 죽습니다. 하나 잘못 들음으로 죽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원수가 네 집안 식구니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원수가  네 집안 식구라 말은 자기가 무슨 일을 행해 나가는 이 길을 갈라고 할 때에  자기가 현실에서 미래로, 이 시간에서 다음 시간으로, 이 형편에서 다음 형편으로  이렇게 옮겨가는 거기에 죽고 사는 것이 달렸는데 그 길을 걸어갈라고 할 때에  그때에 누가 제일 그 길을 바로 찾아서 가지 못하게 방해하느냐 하면 자기  가족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가 자기 가족이든지 가족이 아니든지  어쨌든지 네 집안 식구라 그말은 가까운 사람을 표준해서 말합니다. 자주 같이  있고, 제일 많이 같이 있고 많이 접촉하고 이렇게 많이 모든 생활에 관련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켜서 집안이라 이랬습니다.

사람 중에는 부부간이 제일 가까울 것이고 그다음에는 부모 형제가 가까울  것이고 친구가 가깝고 이렇게 모두 신앙 동지들이 가깝고 이런데 네가 길을 가는  데에 생명되는 바른 길을 갈라고 하는 데에 제일 방해자가 누구냐 하면은 네  집안 식구니라 말했습니다.

자기가 어데까지 장성해졌든지 자기가 가장 접촉하고 있는 가까운 그 사람이  자기의 걸어가는 길에 방해하는 일을 제일 많이 합니다. 그 사람이 들어서  마음으로 걸어가는 일을 바로 하지 못하게 만드요. 혼자 굴 속에 앉았든지 그리  아니면 고요한 그저 예배당에 와 앉았든지 뭣을 눈을 감고 생각하면은 요렇게  해야 되겠는데 하고서 작정을 했는데 가족한테 가니까 가족들이 쏙싹쏙싹해  가지고서 그리 가지 못하게 이렇게 만들어버립니다. 감정으로써.

그래서, 아무리 잘난 남자라도 저거 집에 가까운 식구, 저와 가까운 사람이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하는 이 말씀을 깨달아서 이 말씀을 자기의 생명의  도로 삼지 못한 사람들은 그까짓 거 천이고 만이고 뭐 대통령이라도 마지막에는  계집 사람 되고 남자 사람 되고 자식 사람 되고 부모 사람 되고 친척 사람 되고  친구 사람 되지 그것이 진리의 사람은 절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자기보다 낫게 깨달은 사람이면 자기보다 나아서 옳은 길을 택하도록  하지마는서도 그렇지 않은 것은 전부 자기의 바른 길을 찾지 못하도록  혼돈시키고 삐뚤어지는 길을 가도록만 자꾸 이렇게 만듭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대개 보면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라고 육신 생각, 육신 생각을 누가 들어 하게 했는가 하니 집안 식구가  들어서 하게 했습니다.

집안 식구가 들어서 육신의 생각하게 했는데 육신의 생각을 하고 보니까 고만 그  시간부터 속이 불안하고 상은 찡그러지고 순 마귀가 돼 버립니다. 보면 아요. ‘아,  저거 가족 원수에게 지금 저렇게 한번 사격을 당해서 한번 지금 독침을 맞아서  저렇게 병이 들었구나. ’ 가족의 독침에 맞아 가지고서 상하지 않는 사람 그것을  피하는 사람은 잘난 사람입니다.

제가 겪어본 대로 과거에 제가 접한 모든 목사님들 보면 그 목사님들이 마누라  말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 그런 목사가 별로이 없습니다. 뭐라 한다 해도 그저  옳은 거 내가 따라가지 옆에서 암만 뭐 처자가 들어서 친구가 들어서 쏙싹거린다  해도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이러기 때문에 여게 미혹받아 가지고 내가  독침맞기 쉽다 하고서 그저 말하지 안하고 그걸 또 아니라고 하면은 또 가정이  깨어질 것이고, 나중에 가정이 깨어져도 가정보다는, 어떻습니까? 진리가 큽니까  가정이 큽니까? 가정이 깨어져도 진리는 양보할 수가 없고 진리는 내 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면 가정이 깨어집니다. 깨어져도 진리를 양보하지 않은 그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언젠가 하나님이 다 그런 걸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러나  대개는 그렇지 안해.

이래 내가 그런 걸 ○○○ 목사님한테 들었는데 언제 말하기를 얘기하면서, 많은  사람이 있는데 ‘자, 여게서 마누라 말 듣는 사람들은 이리 나서거라. ’ 이라니까  다 그리 나서고 한 사람만 남아 있더라고서. 그래서 ‘너는 마누라 말 안 듣느냐?’  ‘우리 마누라가 많은 사람 가는 데로 가지 말라 하더라’ 그 사람은 더 듣는  사람이라. 그런 말 내가 들었어. 그 참 묘한 말 했다 내가 이랬어요.

아브라함과 롯이 둘이 걸어갈 때에 어떻게 해서 아브라함은 멸망하지 안하고  축복을 받았고 롯은 멸망을 받았는가? 그 이유는 아브라함은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는 것을 자기가 생각하고 조심해서 걸어갔고 롯은 이것을 모르고  벌판이로 고만 밑에 목자들이 가족들이 이라니까 고만 거게 피동돼 가지고서  걸어가다가 멸망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성경에는 ‘사람을 삼가라’ 이랬어.

‘사람을 삼가라’ 제일 우리가 삼가할 것이 뭐인고 하니 영을 구별해 가지고서 영을 삼가야 할  것을 요한1서 4장에, 무슨 영이든지 받아 들일 게 아니라 영을 잘 구별해 가지고  영접지 안하면은 악령을 영접해서 멸망받는 것을 가르쳐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제일 삼가할 것이 악령이냐 하나님의 영이냐? 영에 대해서 조심을 해야  되겠고 그다음에는 사람에 대해서 조심을 해야 됩니다. 전부이 지옥 갖다 주는  것이 사람이 갖다 주요, 또 천국 갖다 주는 것도 사람이 갖다 줍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도의 교통이 필요합니다. 성도의 교통이라 말은 모든 것을  구별해서 옳고 바른 참된 것을 찾아 나가는 그런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둘째로는 사람 접촉을 삼가야 하고, 세째로는 사건 접촉을 삼가야 됩니다. 이 사건을 내가 이렇게 접해야 되나, 이  사건은 내가 등으로 대해야 되느냐, 이 사건은 옆구리로 대해야 되느냐, 이  사건은 내가 아듬어야 되느냐? 사건 접촉을 조심해야 되고, 그다음에는 물질 접촉을 조심하면 고만 그다음에는 별 실수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 귀도 또 듣고, 고다음에 듣고 이게 귀가 걸어가는 길이라. 귀가 걸어가는 길,  이 시간에는 이 말 들었는데 다음 시간에는 또 고다음 말 들어. 고다음 말, 이게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

이러니까, 듣는 데는 사망으로 인도하는 그 소리도 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소리도 있기 때문에 무슨 말이든지 다 들으면 안 돼. 이 말은 들어서 물리칠 것,  이 말은 들어서 받아들여서 감당을 할 것, 자기가 들을 때에 물리칠 말을  물리치지 안해 가지고서 일생뿐 아니라 영원히 망치는 사람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듣는 것을 삼가야 됩니다.

그거는 잘못 들어 봤자 별 무슨 표가 없는 것 같지마는서도 그것이 내게 있는  수많은 재물을 뺏드는 것에 비교 못 할 만치 큰 흥망이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도 또 ‘보는 것을 삼가하라’ 그게 또 눈으로 걸어가는 것이요.

한자욱 걸어가는 것인데 이 보는 것도 사람들이 안 볼 거 하나 봄으로써 그만 그  사람 망하고 맙니다. 안 볼 거 하나 봄으로 망했어. 또 잘못 봄으로 망했어. 그  사람이 말 한 마디, 입으로 걸어가는 것인데 말 한 마디 잘못해 가지고서 일생을  망쳐 버립니다.

손 하나 잘못 놀려 가지고서 일생을 망쳐. 왜 저 사람이 과거에는 괜찮게  착실하게 지냈는데 왜 저 사람이 지금 저렇게 감옥에 가 있느냐? 도장 하나 꼭  잘못 찍은 거 그거 가지고 감옥에 가 있어. 손 하나 잘못 놀려 가지고서.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는, 여게 말하기를 ‘좁고 넓은 길이 있다’  ‘평탄하고 험한 길이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가고 적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있다’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도 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도 있다' 이렇게 말씀해  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이 현실에서 어떤 현실에 있을지라도 그 현실에서 어떤  궁지에서라도 어떤 데서라도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있고, 어떤 평탄한 자리에서도  죽는 길이 있습니다. 자기 현실에서는 요라면 살고 요라면 죽고, 죽고 사는 길이  둘이 갈래길이 자기 앞에 같이 놓여 있어.

놓여 있는 이 사실을 깨닫고 내가 요게서 언행 심사의 요 행동을 요렇게 함으로  죽음에서 살아나올 수도 있고 요렇게 함으로써 살고 평안한 데에서 죽음으로  기어 들어가는 일도 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현실에서 한 자욱을 떼 놓는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한 자욱이라니? 뭘로 떼놓노? 발로 한 자욱 떼 놓는 것도  있지마는 그것보다도, 발로도 떼 놓고 손으로도 한 자욱을 앞으로 걸어가고  눈으로도 한 자욱을 걸어가고 귀로도 한 자욱을 걸어가고 입으로도 한 자욱을  걸어가고, 내나 기쁘고 즐거워서 은혜받아 가지고서 이렇게 그 사람이 참 산  사람이 됐다가 저거 집에 가 가지고 저거 마누라 저거 자녀들이 쏙삭쏙삭하니까  고만 그말 듣고 난 다음에 ‘그래?’ 이래 가지고 죽습니다.

과거 왜정 말년에 ○ 목사라는 목사가 있었는데 그 목사가 감옥에 육 년을 신사  참배 안 할라고 갇혀 있었습니다. 이랬는데 자기 부인이 가 가지고서 쏙삭쏙삭  했다 말이오, 해서 ‘지금 장로 집사 그분들이 이래 가지고서 결의를 해서 뭐’ 저거  사택에 목사 가족에 대해서 그렇게 박대하는 것, 또 아주 멸시하는 것, 압제하는  것, 또 경찰서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 이래 하는 것, 이래 가지고 쏙삭거리니까  고만 그말 듣고서 나중에, 처음에는 그거 쪼그매씩 이겨서 나오다가 이겨 나와도  물먹 모양으로 그놈이 속에 묻는다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나중에 들어오니까,  여섯 달 남겨놓고, 여섯 달을 지키고 나왔으면 참 승자가 될 터인데 여섯 달 남겨  놓고 나중에 가서 ‘그래, 그라면 나는 지금 내가 나갈 수가 없어서 여기 있나?  당장이라도 내가 신사 참배한다고 말만 하면 되지. ’ ‘그래 가족들이 지금 전멸을  당하고 있는 판이니까 당신 혼자 이 신사 참배 안 하고 좋은 구원 이룰라고 이래  가지고 가족들 망하는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자꾸 인제 이래 쌓으면서 눈물  찔끔찔끔 짜 쌓으면서 압제 천대받은 것을 자꾸 얘기하니까 이게 그만 이 귀가  사망으로 인도하는 그 길을 이 귀가 걸었다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그라면 뭐 할 수 없지’ 신사 참배 하겠다 하고서 나왔어. 나오니까  당장 그 일본 나라에서 그 사람 일본까지 한번 유람할 수 있는 여권도 내주고  고만 돈도 이렇게 주고 또 교회서도 척 나오니까 그만 나와서 이래 대우를 하고,  일본 정부에서 관청에서 대우하니까 교인들이 꼼짝도 안 하고 눌려 가지고  아이구 목사님 나왔습니까? 막 이래 가지고서 청어도 사 오고 가오리도 사 오고  명태도 사 오고 과자도 사 오고 케이크도 사오고 돈 봉다리도 오고 마구 이래  대우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죽은 목사 봤어.

그게 뭐이냐? 누가 그래 하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해. 그렇게 꼬와 가지고서 고  넘어가는 그거는 지금, 자기가 주를 위해서 함이 아니고, 주를 위해서 함이  아니고 이거 명예로 ‘내가 아무래도 이거 신사 참배 안 하고 이기고 나가야지,  이겨야지, 견뎌야지. ’ 헛된 다른 욕망에서 했지, 자기를 대속하신 주님 위해서 했다면 그뭐 뭐라 하든지 주님은 어떤 고난  가지고서 자기를 대속했다는 그것을 자기가 믿고 그거 생각했다고 하면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 문제가 없을 것이고 주를 위해 했는데 내가 주님 위해했지 인간  위해서 가족 대우 위해서 한 게 아니니까 주님이 변치 않는데 내가 변할 수 없는  것이고, 또 땅 위에서 내가 무슨 이기고 난 다음에 대우 받을라 하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느니 나도 주님이 나 사랑한 대속을 벗지 안할라고 영감을  벗지 안할라고 진리를 벗지 안할라고 고것 때문에 한 사람은 고까짓 거 와도  상관이 없다 말이오.

주기철 목사님은 그 사모님이 참 미인이랍니다. 미인인데나는 보지  못했는데미인이고 또 부부간이 아주 좋았습니다. 부부간이 좋았는데 그래  평양경찰서에 갇혀 있을 때에 ‘아마 이 부인이, 이렇츰 사모님이 미인이고  이러니까 내외간이 그래 좋고 하니까 이분만 들여보내면 된다. ’ 해서다른  분들은 면접을 할라 하면은 저 살창문을 두고서 그렇게 이래 면접해요. 한 자리에  가지 못하고이분들은 둘이 단방에 독방에 둘이 만나 가지고 그 얘기를 ‘그저  어짜든지 모처럼 만났으니까 얘기할 것 하이소’ 이제 ‘볼 일 다 봤으니까 이제  나가겠습니다’ 할 때까지 한 방에 거처하게 해. 한 방에 독방에 이래 놓고 자꾸  몇 시간이든지 상관없도록 이래 한다 말이오.

하는 것은 여게서 아마 이 부인이 꾀우면 넘어갈 거다. 이제 그라면 그때 가  가지고서 손톱도 깎아주고 이발도 해 주고 또 몸도 씻겨주고 다 씻겨 준다  말이오. 이라니까 저렇츰 거석하면 일이 됐다 하는데, 고라면서 ‘여보시오. 여보, 당신이 여게서 만일 승리 못 하고 나오면 영원토록 내  남편 안 됩니다. 나하고는 이혼입니다. 여게서 어짜든지 승리하고 나오되 여게서  순교로 죽어 나오십시오. 나도 또 순교로 죽어 주님 앞에 가겠습니다. 그래 가서  만납시다. ’ 이거 만날 순교만 속으로 속딱거려. 순교할 것만 자꾸 쏙쏙거려.

자꾸 속삭거리니까, 그래 인제 안에서 똑똑 하면서 이제 볼일 다 봤으니까  나가겠습니다 이라면 ‘요번에는 시간이 한 두 시간 서너 시간 지났으니까이제  저거와 같은 줄 알아그러니까 아마 요번에는 일이 됐을 거다. ’ 하고서 ‘녜,  그렇습니까?' 환영을 하면서 이래 내보내는데, 내보내고 나면은 주 목사님은 좀  더 진짜가 되고 또 한번 만나면 더 진짜가 되고 이래 가지고 점점 순교만  강해지지 그 신앙이 약해지지를 안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됐어.

그러니까, 그분은 참 이웃이 원수가 된 게 아니라 이웃이 참으로 이웃이 됐어.

부인이 참으로 이웃이 돼, 신앙의 이웃이 돼서 그 신앙을 돕는 일을 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현실에서는 귀로 걸어가고 마음으로 걸어가고 또 눈으로  걸어가고 발로 걸어가고 손으로 걸어가고 자기 정신으로 걸어 가, 욕심으로  걸어가는 건 뭘로 걸어가는 겁니까? 이 욕심에서 저 욕심으로 옮겨지는 것은  뭘로 걸어가는 것입니까? 마음으로 걸어가, 마음 속에 다 들었어.

사람이 안 가질 욕심 하나 가짐으로써 일생을 망치는 사람 얼마든지 많습니다. 안  가질 감정 하나 가지고서 일생을 망치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평생 쭉 펴고  좋게 살 터인데 집구석에 가면은 아내가 속삭속삭, 자녀가 속삭속삭해 가지고  마귀 소리하고 자꾸 이래 가지고 감정을 일으키니까 ‘그래’ 아까 ○ 목사  모양으로 ‘그래? 에!’ 분해서 이를 갈도록 만듭니다. 이를 갈도록 만들어. 갈면 너  뒈지지 누가 뒈지겠느냐 말이오. 이런 것이 가득히 찼기 때문에 사람을 삼가라  말했어.

이러니까, 이걸 이번에 공과로 하면서, 학생들에게 다른 거 가르치지 말고 자꾸  그저 좁은 길 넓은 길 요대로만 자꾸 공과한 대로 두 길이 있으니까 두 길 중에  잘 택해야 되지 잘 안 택하면 망한다 그런 것을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제일 뭐이냐? ‘요래야 돈이 유익이 되겠느냐,  요래야 돈 성공이 되겠느냐, 요래야 내 소원 성공이 되겠느냐, 이렇게 해야 내  목적 달성이 되겠느냐, 이래야 이 사건이 해결이 잘 되겠느냐?’ 그거 다 죽는  생각이오. 그거 다 죽는 생각이라.

자, 내 현실에서는 무슨 두 길이 있느냐? 두 길을 바로 찾아야 됩니다. 자기  현실에는 어떤 두 길이 있느냐? 이 두 길을 바로 찾아야 돼. 어떨 때는 내  현실에서는 ‘내냐 주님이냐’ `지금 나를 위해서 이 시간 내가 살아가야 되느냐  주를 위해 살아야 되느냐’ 그 한 현실에는 ‘내 육신의 욕심이냐 성령의 욕심이냐'  내가 이 현실에서는 지금, 현실마다 달라. 현실에 ‘여게서는 뭘 생각해야 되느냐? 내가 지금 천국을  목적으로 하고 이 시간 내가 현실에서 택해야 되겠느냐 이 세상을 목적하고  택해야 되겠느냐?’ 언제든지 그런 게 아니라. 어떨 때는 천국 지옥, 어떨 때는  하나님 나, 어떨 때 여게는 또 나 이웃, ‘이웃이냐 내냐?’ 또 `물질이냐 진리냐?’  이렇게 자기에게 당면된 두 길을 바로 찾으면, 두 길을 바로 찾으면 이제 생명길  반은 시작됐습니다. 찾았습니다.

찾고 난 다음에, 두 길을 바로 찾아 가지고서 바로 찾고 난 다음에 ‘이러니까  이것은 버리고 이걸 택해야 되겠다’ 하는 고 이차적으로 두 길에서 취사쥐고  놓고 하는 거취사 선택을 요걸 잡을까 요걸 놓을까 고것만 바로 하면 됩니다.

그러기에, 인생이 자기 현실에서 두 길, 요게는 지금 쌍길이 있느냐? 어떤  쌍길이냐? 하나님이냐 내냐 쌍길이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쌍길이냐, 믿음이냐  물질이냐 쌍길이냐, 요게서는 사랑이냐 미움이냐 쌍길이냐, 요게는 불목이냐  화목이냐 쌍길이냐? 그 모두 각각 그런 쌍길이, 꼭 같은 게 아니고. 현실마다  다르다 그말이오.

그런데, 자기 현실에 해당된 두 길을, 넓은 길 좁은 길 두 길을 딱 바로 찾아  놓고 난 다음에는 이 길을 취해야 되느냐 저 길을 취해야 되느냐? 이것을 잡아서  나아가면 그 사람에게는 어떤 깊은 궁지에서라도 솟아나지 못할 궁지가 없습니다.

이거 잘 못 찾으면 어떤 존귀하고 튼튼한 길에서라도 멸망에 빠지지 안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게서 택할 때에 ‘좁은 길을 택해라’ 좁은 길을 택해라 그말은  넓은 길은 찾는 사람 많은데 좁은 길을 택하라 거게서 생명되는 옳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생명길은 찾기가 어렵다 이랬어. 좁아서 찾기가 어렵다. 많은  사람이 가지 안하는 길이다. 이게 뭐이냐? 은밀한 길입니다. 은밀한 길.

아무나따나 대번에 직감적으로 감정적으로 말이오. 자기 감정에 떠오르는 대로  직감적으로, 사람이 직감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주, 직감적으로 쪽 곧게 대번에  생각나는 대로 팍팍 이래 하는 그런 사람은 이 사람은 다 망합니다.

직감적으로 나가는 사람을 가리켜서 영웅이라 그랍니다, 영웅. 영웅 쳐 놓고는 안  망한 사람이 하나 없습니다. 직감적으로 가지 안하고 이것을 좀 깊이 깊이 넓게  이렇게 생각해 가지고서 그렇게 한번 되새기고 여러 가지로, 여러 면으로 새겨  가지고 나가는 사람을 가리켜서 그 사람을 지혜의 사람이라 모략의 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찾기가 어렵지마는서도 많은 사람들이 다 찾는 그 길을 찾지  말고, 또 많은 사람이 찾는 길을 찾아야 될 때도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럴  때는 깊이 넓게 생각해서 요만한 범위로서, 어떤 사람은 하는 데에 그 한 가지만  ‘요렇게 하는 요것이 걸린다’ 걸리는 것이 한 가지를 발견했고 어떤 사람은  행할라 하니까 걸리는 것이 두 가지 있는 걸 발견했고, 세 가지 발견했고, 그라면, 이 ‘요래 할라 하면 요게 걸린다. 요래 하면 대번에, 오기대로 요래 하면  좋기야 좋지마는 요래 할라고 하면은 요 뒤 좀 생각하니까 요게 또 걸리고  요면에 또 손해 가겠다, 조면에 손해 가겠다. ’ 이래 가지고서 자기가 언행 심사의  행동할라 할 때에 거기에 거리끼는 것을 발견한 것이 수가 적은 사람이 좋습니까  많은 사람이 좋습니까? 넓은 시야를 보고 사는 사람은 거리낌이 많습니다. 거리낌이 많은 거리낌을  보고서 그것을 다 거리끼지 안할, 거리끼는 그걸 다 봐서 요리조리 하면 아무데도  거리끼지 안하고 나가는 고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니까 고 길을 찾기가 힘들어.

그래서 요거, ‘좁은 길은 아주 찾는 사람이 적고 협착하다. 그러나 고것이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 이렇게 말씀했어.

이러니까, 이거 여러분들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은 모를 것인데 인간을  그래도 한 오십 넘어 산 사람들은 조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교의 공자가  말하기를 ‘오십에 지천명이라’ 사람이 오십 살이 돼야 비로소 인생이 하나님의  명령을 찾을 수가 있다. 그렇게 말했어. 이러니까 모든 인간 경험을 하지 못한  자들은 몰라.

이랬는데, 나이 한 스무남은 살 먹는 대학생 제까짓 것들이 뭣을 저거가 지성으로  알겠다고서, 만날 해 봐야 빨갱이 운동만 했지 딴거 뭐 한 게 뭐 있어야지.

그것도 좋기는 좋아. 그럼으로써 자꾸 뚜드려 뿌수니까 새로 건설이 되니까  좋게는 돼도 저것들 하는 일은 다 망하는 일이야. 그게 다 인제 깨어지고 하니까  이거 좋아지는 것이지.

어짜든지, 자기 앞에 현실에서는 멸망이냐 생명이냐?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 그러니까 내 현실에는 내가 멸망이냐 생명이냐? 내 귀로  듣는 데에서 생명으로 갈 수 있는 걸 들을 수도 있고 멸망으로 가는 걸 들을  수도 있다. 또 내가 눈으로 보는 데 멸망의 길을 내가 보고 걸어 갈 수도 있고  생명의 길을 보고 걸어 갈 수도 있다.

이렇게 내 귀, 눈, 입술, 마음, 생각, 성질, 뜻 이거 한번 움직이는 데에서 망하고  흥하는 이 길이 좌우된다 이것을 깨닫고 두 길을 발견하고 어느 길을 취하고  어느 길을 놓을까 하는 이것을 생각지 못하는 사람은 마구잡이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다 실패합니다.

이래서, 오늘 아침에는 좁은 길 넓은 길, 이것을 여러분들이 생각해서 깨달으면  얼마나 거석한지, 어렵고 중요한 것인지! 사람을 볼 때에 그 사람이 아무리 잘되고 뭐 이래도 참, 사람들은 뭐 솔직하고  이렇게 씩씩한 사람들 좋아하지 않습니까? 씩씩하고 솔직하고 좋은 그 사람들이  세상길만 걸어가지 인간의 생명길은 걸어가지 못해. 대개가 들어가지 못합니다.

또, 생각하고 생각하고 이렇게 생각해서 깊이깊이 넓게넓게 생각해서 이렇게  나가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해도 머리를 짜웃거리면서, 급하게 하지 안하고서 이걸  또 생각하고 신중히 해서 두 길이 있다는 거를 깨닫고 확실히 요 길이 요게서는  요래 해야 되겠다 하는 바른 길을 택해 가지고서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생각도  ‘요 생각 가지면 안 된다. 아, 요게서는 요 생각이 제일 옳으니 요 생각 가져야  된다. ’ 이렇게 해 가지고서 자기가 마음으로 생각이나 욕심이나 느끼는 것이나  감정이나 어떤 흥분이나 말이나 듣는 것이나 보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이런  것을 바로 하는 그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바로 내가 하는 고거는 바로 고게  생명이오. 잘못 한 그거는 바로 그것이 망하고 죽는 것입니다.

이런 줄 알고 살아야 되지 아무나따나 해도 된다고 이래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거는 오지 안하고 원치 않은 것이 자꾸 오게 되는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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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74 두 가지 자유/ 갈라디아서 5장 13절-15절/ 881026수야 선지자 2015.10.28
73 두 가지 종류의 믿음/ 히브리서 11장 1절-26절/ 820709금새 선지자 2015.10.28
72 두 가지 죄악의 결과/ 창세기 11장 1절-9절/ 810621주전 선지자 2015.10.28
71 두 가지 준비의 현실/ 야고보서 4 장 13절-17절/ 840213월새 선지자 2015.10.28
70 두 가지 지식/ 에베소서 1장 17절-23절/ 830602목새 선지자 2015.10.28
69 두 가지 지식/ 베드로전서 3장 8절-12절/ 840831금야 선지자 2015.10.28
68 두 가지 회개하여 네 가지 축복/ 누가복음 5장 4절-11절/ 860629주후 선지자 2015.10.28
67 두 가지 회개하여 네 가지 축복/ 누가복음 5장 1절-11절/ 860629주전 선지자 2015.10.28
66 두 가지가 결정되는 현실/ 마태복음 5장 13절/ 800211월새 선지자 2015.10.28
65 두 가치관/ 창세기 13장 1절-18절/ 881221수야 선지자 2015.10.28
64 두 갈래길과 그 결과/ 창세기 13장 8절-13절/ 830424주후 선지자 2015.10.28
63 두 갈래길과 그 결과/ 요한일서 3장 8절/ 830314총공회 선지자 2015.10.28
» 두 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80119화새 선지자 2015.10.28
61 두 길/ 마태복음 6장 34절/ 841220목새 선지자 2015.10.28
60 두 사람을 구별하라/ 로마서 6장 5절-7절/ 880109토새 선지자 2015.10.28
59 두 사랑/ 누가복음 10장 26절-28절/ 1988. 8. 11. 새벽집회 선지자 2015.10.28
58 두 생각/ 로마서 8장 32절/ 800804월새 선지자 2015.10.28
57 두 신앙 노선/ 창세기 13장 8절-18절/ 830425월새 선지자 2015.10.28
56 두 신앙 노선/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830316수새 선지자 2015.10.28
55 두 신앙 노선/ 창세기 13장 14절-15절/ 890217금새 선지자 201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