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신앙 노선


선지자선교회 1983년 3월 16일 수새

 

본문 : 고후 5:8-10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서부교회서는 벌써 한 두 달 전부터 긴급한 그런 마음들을 가지고 준비를 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한 일 년 반 전 공산주의자들이 암살 도급을 청부를 하고 있는 그  일을 그날 밤에 하나님이 저에게 보여줘서 긴급히 경비될 사람들을 소리해서  경비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날 밤에 그 본인이 잡혔지마는 그것을 처단을 못하고  지금 어데 가서 어찌 돼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남한에는 반공 방첩이 희미  합니다.

 그 뒤에 얼마 지나고 나서는 내 신변에 대해서는 이제는 그들에게 세 번이나  경영했으나 헛일해서 지나갔으니까 이제 여게는 경비 하지 말고 예배당을 불지를  터이니까 거기 대해서 경비하라.

 그런데 그날밤 두 시 돼서 그 사람을 본 사람 중에도 별 이상하다고, 어째 오늘  저녁에 어디 그런 사람이 왔을꼬? 그래 저 재목상은 함석으로 이어서 그 위에는  걸어다니지도 못할 터인데 전도관 집 수리하는 사다리를 걸쳐 놓고 거기 올라 가  가지고 있으면서 넘어오려고 했는데 뜻밖에 사람들이 지키고 있으니까 못 넘어와서  원층 오래 기다리니까 못 견뎌 몸부림치는데 알았습니다. 보니까 고 위에 딱  드러누워 가지고 은신하고 있는 것을 경찰을 동원해 가지고 그래 포위해서  소동하니까 아래로 뛰어 내려서, 재목 위에 꽉 있는데 뛰어 내려서 잡기는 잡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주민등록증도 아무것도 없고 거주지도 분명치 안하고, 그 뒤에 그  사람 그 집에 없습니다.

 그랬는데 또 예배당 불탄다 하니까 '목사님은 노망기가 있나 그 전보다 어째  변해져서 자꾸 뭘 믿음 없는 소리를 하고 있나?' 이런 사람들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뒤에 대구 서울 여섯 교회가 예배당이 불 붙었습니다. 탔습니다. 서울에  한 집은 부속 건물이 탔고 본 건물은 안 탔습니다. 그거는 신문에도 내지 않게 돼  가지고 있고 이래서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나 두 교회는 이름이 나왔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예배당을 이렇게 불사룬다고 지키라는 말이 예사 말이 아니라 이렇게  조금, 조금 믿었습니다.

 그 뒤에 지키다가, 낮에 고등학생 둘이 와 가지고 믹서기를 타고 위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을 못 넘어 가도록 붙들었는데 그만 도망을 쳤습니다. 그 뒤에 어떤 화재 난  데 가서 사람이 들으니까 '이번에는 서부교회 꼭 불지르겠다. 먼저는 가서 불  지르려고 하다 말았다' 하는데, 그 말이 들려졌는데 그만 그 뒤에 그것도 누구한테  물으니까 쉬쉬쉬 웃고 대략 짐작은 되지마는 말았습니다.

 이 일이 나고 나서 조금 경비를 온 교인들을 동원시켜 가지고 그 때 제일 추울  때인데 경비를 순번으로 시켰습니다. 제가 경비 시킨 것은 경비시켜 봤자 그 옆에  있어도 얼마든지 병에나 이런데 휘발류 넣어 가지고 불댕겨 가지고 집어 던지고  고만 도망치면 내가 간다 하고 해도 방비 못합니다.

 그런 모두 다 경비에 대해서 아무런 경험이나 실력없는 사람들인 데 왜 그렇게  했느냐? 우리의 적 공산주의가 있고 언제 밀고 내려 올지 모르니까 생명이  위험하다. 적이 있다 하는 것을 깨닫고 좀 신앙으로 깨서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때 그 일을 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 하면 안 될 터이기 때문에  불지르니까 와서 경비하라 이래 가지고 시켰습니다.

 제가 하루 새벽에 열두 시인가 한 시인가 일어나서 경비하는 그 경비원들과 또  하나님이 예배당을 소각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그 기도만 제가 하고 있었습니다.

뜻밖에 실로암탑이 무너져 열여덟 사람이 치어 죽은 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죄가 더 많아 그런 줄 아느냐 너희들이 회개치 아니하면 멸망할 것을  하나의 예표로 보여주신 것이다 하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이 갑자기 내게  소리로 들려주는 것이상으로 내게 뜻밖에 감동돼 왔습니다.

 나는 깜짝 놀래서 '이거 무슨 뜻인가? 그러면 그 성구를 찾아보면 거게 무슨  설명이 있을까?' 해서, 그 성구는 잘 아는 성구이기 때문에 누가복음 l3장을 찾아  가지고 암만 읽어도 거기 없습니다. 안 보입니다. 여기 저기 뒤비트리니까 누가복음  l3장 빼놓고 딴 데 가서 암만 읽어보니 있습니까? 못 찾기를 두 시간 걸렸습니다.

이러니까 두 시간 동안에 내 마음은 점점 심각해져 가지고, '아! 아게 무슨 뜻인가?  실로암 탑 무너지는데에 이것을 나에게 보여 주고 이것을 미리 사람들 위해서 하나  징조로 경고로 보여 준 것이라' 할 때에,  그때 내게 자꾸 깨달아 해석 되기를, 한국 교회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불로 완전히 소멸된다는 그것을 지금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인데 나는 예배당 불탈  것만 생각하고 경비인들 얼어서 상한될까 그것만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깨닫게 해 주신 것으로 알았습니다.

 저도 오래동안 경험있기 때문에 내 생각이 되는 것도 있고, 내 이성 활동에서  생겨지는 그런 생각도 있고, 마귀가 주는 또 그런 생각도 있고, 성령이 주는 생각도  있는데 성령이 주시는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더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그날  밤에는 떨려서 날만 새면 내가 교인들에게 새벽에 기어 나가서라도 이 말씀을  증거해야 되겠다, 이러다가 좀 더 있다가 생각하니까 금요일날 온 우리 진영  교역자들이 그래도 몇 명 모이니까 그때 증거해야 되겠다, 이러다가 아니다. 내가  증거할 것은 우리 본교회 교인들이기 때문에 주일날 오전에 설교를 해야 되겠다  해서 이 말씀은 맛없이 한 주나 두 주일을 설교를 했고, 계속 회개에 대한 설교를  그때서부터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도 다른 설교를 하려고 하다가 제가 요새 좀 다른 데 가서 좀 휴식처를  마련해 가지고 쉬고 있는데 내게 자꾸 생각이 나서 이것을 신문으로 보도해서  알리나, 나에게 지금 책임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서 알리나, 방송국에 가서 방송을  하나 이렇게 생각 하면서 기도만 하고 있는데, 지난 주일은 영락교회서 부목사님이  여기 주일학교 시찰하러 온다고 전달와서 말하러 와서 그날 참석할 것이기 때문에  여게서 오늘 아침 오늘 내가 이 말씀을 증거하면 그 분이 듣고 가서 또 편할  것이고, 아마 여기 뿐 아니고 다른 강단에도 하나님의 종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예언이라면 예언이고, 하나님이 보이시는 징조라면 징조고, 경고하면 경고니까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게 대한 책임만 내가 하는 것이 옳다 해서 서부  교회서는 두 달 이상 계속 새벽마다 회개에 대한 지금 설교단 서 목사님이 하고  있는 줄 압니다.

 왜 이 말을 하는고 하니 우리 진영 교회들도 여기에서 증거하는 말씀을 자기네들  된 대로 자기네들에게 내게 이 말씀만 필요하다 하는 것만 뜨끔 뜨끔 간추려서  이렇게 들어 가지고 설교나 하려고 생각하지 진실되이 이 교훈을 받는 사람들의  수는 심히 적습니다. 다른 데에서는 주일학교에 대해서 그렇게 오지마는 우리  진영에서 서부교회에서 하는 주일학교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것을 보고 본 받으려고  하는 교역자들 적습니다. 어떤 분들은 여기 있어도 내가 콩 하면 그는 팥 해서 아예  반동적으로, 왜? '얼른 저거 없어지기만 없어지면 내가 왕이 될 터인데' 이래서  언제나 그게 우상되기를 원하는 것보다도 그것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는 그거는 모든  것을 반동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소식이 별로이 그렇게 힘있게  전달되지 않았지 아니했나 해서 오늘 아침에 제가 이것을 전달 하려고 선 것입니다.

 제가 깨닫고 느낀 대로는 나도 성신의 감화가 나에게 주신 것이요, 회개 안 하면  남한 교회는 다 불살라진다, 예배당만 타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불살라지면 예수  믿는 사람 다 멸망을 받는다 그 말입니다. 믿는 사람이 제가 '그때는 안 믿는 척  하지' 해도 다 압니다. 그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여러 달, 여러 해를 두고 작업을  해서 예수 믿는 사람은 세뇌-씻을 세(洗)자, 수 뇌(腦)-세뇌 작업이 안 된다고  압니다. 그건 죽여 버려야 되지 안 된다고 알고 있어. 이러니까 '예수 팔면 살지'  싶은 그런 어리석은 생각 가지지 말고, 또 '지금부터 안 믿으면 되지 않겠는가?'  택한 자는 안 믿어도 하나님이더 들추어 내 가지고 더 야나지게 고통당하게 합니다.

어리석은 생각 하지 말고 회개하면 이 모든 세력이 우리에게 이용물이 돼서 도리어  구원이 될 것이고, 지금도 회개 안 하고 여게서 뭐 교인수나 늘구겠다, 명예나  지위나 사업이나 뭐 주님을 이용해 가지고 제 감투나 마련하려 하는 그런 정신  가지고 있는 그것 복수하려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다 망합니다.

 지금은 긴급히 회개하여야 할 때입니다.

 얼마, 며칠 전만 말해도 소련이 뭐 조금 강하니 이랬지마는, 얼마 전에 신문 보니까  소련이 미국의 그 전력 세력은 삼배 이상이고 이북은 이남의 몇 배가 되는지  모릅니다. 뭐 자꾸 공산주의를 강하게 하는 것이 공산주의 이래 강하니까  민주주의를 지금 이거 하나님께서 공산주의에게 붙이기 위해서 공산주의를 강하게  합니까? 아니오. 하나님은 어제 누가 설교 때인가 막대기 하나 가지고도 오만 것 다  하셨는데 공산주의가 암만 약하다고 해도 그것 들고 민주주의, 온세계 가득찬  민주주의라도 일시에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없애기 위해서 공산주의를  그렇게 강하게 만들 것이 뭐 있습니까? 좀 깨달아야 되지.

 하나님이 개별 섭리하시는데 '하나님이 없이 그대로 그 모든 세계 움직임이 그것이  그리 됐다' 이러면 예수 믿는 사람 아니오. 하나님의 예정을 믿지 않는 사람이오.

예정을 믿는다면 그 모든 것이 주님이 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될 것 아닙니까?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공산주의에게 민주주의를 붙이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하셨겠습니까? 붙이려고 하면 그리 강하게 안해도 됩니다. 민주주의를 공산주의  앞에서 절단내는 그일은 공산주의 세력이야 강하든지 안 강하든지 주님이 붙이면  그만 절단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공산주의 세력이 지금 이렇게 강하다… 모두 미국으로  피난하면 될 줄 알고. 내가 지난 주일날 그 설교를 했어. 그것도 했어. 모두 미국에  시민권 영주권 다 둬 놓고 살며시 와 가지고 큰소리 뻥뻥 하고 하다가 만일 어떤 일  있으면 우리는 미국 시민이기 때문에 영주권 있기 때문에 먼저 피난시킨다 그걸  하나님 보다 더 믿고 있어. OOO목사님 영주권 가지고 고거 딱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 여기서 일하려면 영주권 그것 아예 반납시키고 하든지 그리 안 하면  그리 가던지 해라.' 반납시켰습니다. 성경에 뒤를 돌아보는 기드온 삼백 명 군인을  뽑는 그것을 도무지 봐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 지금 한국에서  큰소리하는 일군 가운데는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이나 가지고 안 있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다 속으로 다 가지고 있어요.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안하고 제 꾀 쓰는, 하나님의 원수가 지금  제 꾀인데. 첫시간에 말하는, 마귀 일을 멸하려는, 마귀의 일 세 가지 그것이 주님의  원수인데 그게 뭐이냐? 그것이 인간의 주관이요, 자율이요, 제 꾀입니다. 그 원수를  지금 갚으려 하는데 그 원수의 보호를 점점 키우면서 이렇게 천국 같은 그 강대국  미국에 의지하고 있으면 된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놈은 붙들려 하고  그놈은 좀 징계를 주고 벌을 주려 했더니마는 미국으로 저래 피해 놨으니 어쩔 수  있나' 그런 무능한 하나님 아닙니다. 그런 무눙한 그런 하나님 같으면 내가 발로  밟아버리오. 그런 하나님으로 믿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  아닙니다. 자존자시요, 창조주시요, 주권자시요, 전지 전능자시요, 주재십니다.

 이런데 무엇 때문에 이제는 소련 세력을 강하게 해 가지고 일본하고 미국하고  한국하고 중공하고 우리 약자들이 한테 모이면 강해지니까 우리 약자들이 모여  가지고 소련을 저걸 방어하자 이러니까 처음에는 소련이 얼떨떨해 가지고  있더니마는 이제는 '뭐 너희 서이고 너이고 전세계 다 달려들어도 문제없다. 그저 몇  시간이면 다 전멸시킬 수 있다.' 일반 과학은 미국이 앞섰지마는 전쟁하는 그 과학은  미국이 쑥 떨어졌습니다. 못 따라갑니다.

 지금은 이제 미국이고 일본이고 당장 멸할 수 있는 그 코 앞에다 가 모든 미사일을  설치를 하고 잠수함들을 배치를 하고, 이러니까 '여게 배치만 해 봐라. 우리가 어쩔  것이다. 또 저게 배치만 해 봐라 어쩔 것이다.' 미국도 큰소리 하고 '해 봐라. 해  봐라.' 하거나 말거나 배치 다 했습니다. 어데 하나 제재됐습니까? 배치 다 시켰소.

말만 했지 배치시켜 봤자 미국도 꼼짝 못 했어. 일본도 꼼짝 못 했어. 이제는  선포하기를 중공, 한국, 미국, 일본 할 것 없이 모조리 다 해서 적이, 상대하는 적이  다 없어져 가지고 적 없는 평화를 만 들겠다. 요번에 포프인가? 그 사람 포프라  하더나? 그 사람의 정치관입니다.

 이렇게 강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고는 믿어야 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하신다면 공산주의를 강하게 해 가지고 민주주의를 공산주의에 붙이려고 한다. 그  소용을 인해서 저렇게 강하게 하는가 보다' 또 그것도 우리가 비판해야 될 것  아닙니까? 붙이려 하면 그리 안해도 붙일 수 있는데 거기 붙이기 위해서 뭐 하려고  그렇게 강하게 할 게 뭐 있는가? 약한 자에게 강한 걸 붙여야 '하나님 계시는구나!'  하는 것이 더 드러나서 영광이 되어지지, 사람 보기에 강해 가지고 붙여지면 뭐  그거는 필연적이고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지 하나님의 역사가 뭐 있느냐 그럴  터이니까 강하게 할 필요가 없는데….

 그것은 다른 것 아니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것  크게 여기고,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이것이라야 좀 실감을 가지고 마음에 좀  느껴지기 때문에, 보라! 소련 이북이 이리 강해지니까 너희는 절단날 수 있지  않느냐? 이렇게 자꾸 위협을 주고 경고를 해서 그 뭐 하나님이 몽둥이 채찍 하나만  가지면 다 거석할 건데, 몽둥이를 커다랗게 만들면서 '몽둥이 이리 크다. 이만하이  쇠가리 가져와서 두드린다.' 이러는 것은 이것도 벌써 보이는 위주고 보이지 않는 그  이면의 큰 역사를 보지 못하는 외식하는 자들을 위협해서 좀 두려워 회개케 할까  하는 그것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소련이니 이북이니 저렇게 하는 것은 오늘 믿는  사람들의 그 강퍅성을 인해서, 그래도 몽둥이가 이리 커지니까 '아, 이제는  적화된다.' 하는 것을 저희들이 좀 깨달을 수 있지 않겠나 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깨달아지면 자꾸 깨달아지는데, 언제나 하나님이 성경 말씀만 가지면, 성경 말씀은  원리 원칙에 기본 지식이오. 그때 그때 성경은 사람들에게 배우지마는 너희들은  사람들에게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은 너희 속에 기름 부음이 가르쳐 준다는 것은,  개인도 그의 안에 있는 영감이 그 사람을 지도를 하고, 시대도 성경이 지도하는 것  아니오. 성경은 원리 원칙이오. 그때 그때 하나님의 종들을 깨닫게 하셔 가지고  이렇게 예언해 가지고 멸망을 피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첫주일 이 성구 l3장 성구 봤고, 그 다음 주일에는 제가 저기 가 있다가 하나님이  요엘서를 주셔서 요엘서를 증거했습니다. 요엘서는 보면 예언서인데, 주전 팔백년에  기록한 예언서인데 '너희 자손과 후손 또 후손 후손 대대로 이 말씀을 전해라. 이게  제일 중요하다. 늙은이 너희들도 이말 들어라. 이 세상 경험 체험 광문다학한 세상  노숙 익숙한 자들아 너희들이 배우고 듣고 보고한 모든 말 중에 이 말이 제일 크다.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멸하시는 멸망은 먼지도 남지 않게 멸망을 시킨다.' 그걸  거기 기록해 놨습니다. 그런데 무슨 죄 때문에 멸망시킨다 그렇게 하지 안했어. 그저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멸망을 시키는 이 멸망은 너희가 전에도 못 봤고 이제까지  이런 일 없다, 이런 멸망은 없다.

 그런데 이 멸망이 있는데 이 멸망을 방비하는 것은 제사장 노인 소년 젖먹이까지  전부 다 나오라고 모아 가지고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를 해라, 애통하면서 회개를  해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서 애통하면서 회개를 해라, 회개를 하면 제사장,  그러면 성전 제단 사이에 너무 기진맥진해 가지고 누워서 기도해라, 누워서  하나님에게 부르짖어라, 뭐 편하라고? 기진맥진해서 지금 퍼들어졌다 그 말이오.

이래 가지고 간구할 때에 하나님이 약속하기를, 하나님이 어디 있나,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그 백성들에게 붙여 가지고 멸망을 시키도록 할 게 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 손에 붙이면 그들이 하나님을 뭘 알아서 어떻게 찬송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에게 그래도 속한 백성인데 이렇게 백성과 하나님을 다 모욕시키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럴 때 내 마음이 분개가 일어나서 회개하고 기도를 해야 되지  백성들 회개 안 하고 제사장 암만 그래 봐야 저 죽어 봤자 소용없습니다. '그래  가지고 내가 원수들을 동해로 서해로 다 몰사하게 만들어서 바다에서 썩은 냄새가  올라오도록 하겠다.' 그 다음에는 원수 복수를 야나지게 하고 모든 걸 풍성케  하겠다고 했습니다.

 성경이 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회개하면  땅에서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고 화개 안 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하지  아니했습니까? 지금 위급합니다. 어리석소. 지금 사업주의 공명주의 뭐 무슨 주의  무슨 주의 다 썩는 운동입니다.

 지금은 회개 외에는 할 것이 없어. 회개가 긴급해요. 전체가 회개하면 좋고,  과거에도 보면 하나님이 경고를 시켜서 회개를 함으로 하나님이 돌이켜 하나님의  구원이 오고 멸망이 안 오면 '백지 멸망도 안 오는데 사람들에게 미혹을 줬다'  그렇게 한 자도 있소 그거는 그 다음에 낱낱이 망해 버리고 말아.

 요나가 니느웨 성에 가 가지고 멸망을 말하다가 그 백성들이 다 회개함으로 멸망을  안 시키니까 '공연히 하나님이 나한테 그렇게 말하더니만 멸망도 안 했어.'  멸망되기를 원하는 그 요나 선지 때문에 그 선지는 하나님에게는 필요 없어.

이용물만 되지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 대단히 위급한 때 있습니다. 이것을 전해서 그저 지금은 돈이고 사업이고 뭐  교인 수 늘이는 것도 좋지마는, 그날도 내가 영락교회 목사님한테 말했습니다. '모두  영주권 다 시민권 다 그래 놓고 몇 교회 운동이니 몇 교회 운동이니 무슨 복음  운동으로 전도 운동, 선교 운동하는 것도 좋지마는 그 모든 것보다 남한 교회는  회개가 급급하다, 회개 안하면 선교고 뭐이고 있을 것도 아무것도 없다.' 이런  입장에 놓여 있는데 이것을 좀 교역자들이 실감을 가지고 강단에서 외쳐 줬으면  좋겠다는 그것을 그날 내가 영락교회에서 온 그 목사님 들으라고 내가 그렇게  증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듣고 증거를 자꾸 해서 이렇게 하면 이 말이 제대로  옳게 퍼져 나가서 벌써 전국에 퍼쳐 나갈 것인데, 여러분들이 어리석게 교인들  꾀우는 것 요래 말하고 조래 말하고 외식 교인들이 좋다고 은혜가 되고… 은혜  그까짓 거 썩은 것입니다. 소용 없는 것입니다. 뭐이 은혜입니까? 은혜는 그 시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 그것을 받고 하나님이 예언한 예언을 듣고 깨달아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바로 맺으려는 그것이 은혜고 그게 구원이지 뭐.

 오늘 아침에 고린도후서 5장 8절 이하에 본 말씀은, 여게 보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 그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이 환난이 마지막 환난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환난이 될런지, 이 남한 무력적화 시키는 이 환난만 면하는 회개가  될런지,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회개가 될런지 우리는 그거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지 회개는 손해 가지는 아니할 것이오.

 그러기에 언제나 우리에게 오늘인지 내일인지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음을 받으려  함이라 하는 그 시대의 심판, 이 심판이 우리 마음 가운데에 언제든지 명심해  있어서 자기 언행 심사의 하나 하나가 이 심판과 관련 안 시키려 해도 언행 심사  하나 하나가 우리가 받을 그 시대의 심판에 연관성을 가지게 되는 이게 있어야  됩니다. 이게 돼 가지고 있어야 우리 구원이 된 것이라 그 말이오. 심판을 생각하고  구원을 준비한 그 다음이 되지 심판을 생각지 않는 자에게는 구원이 안 됩니다.

몰라 그렇지.

 뭐 계명대로 지킨다고 해도 그 속에 주인이 여러 수십명이 들어 앉았어. '주여!  주여!' 막 울면서 불면서 이리 해도 그 속에 비웃고 있는 주님 외에 주님 아닌 다른  주인 도적놈이 거기 꽉 들어찼습니다. 꽥 찼어. 저는 못 봐도 다른 사람 보면 다 알  수가 있습니다. 왜 자기만 모르겠습니까? 심판을 생각하고 그날 심판 받을 때 어찌  된 다는 그것이 지금 느껴져 오늘의 현실에 그 심판이 충격 주는 그 충격의 힘이  있어야 비로소 그 회개나 신앙이 좀 진실성이 조그매 생겨지기 시작하지, 그거 관련  없이 하면서도 이러면 회개시키나 저래시키나,  6·25 때나 왜정 말년에 감옥에 있으면서도 '견디기만 견디라. 견디면 언젠가 끝이,  날 터이니까 끝만 나면 내가 한 번 큰 소리 치겠다.' 내나 그래 가지고 제 왕국을  만들어 가지고 산 분들, 사람들은 속아서 몰라서 그렇다 이래 생각되지마는 나와  가지고 전부 제 일 하다가 끝은 다 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일이 결국은 인본의  일만 하고 말았다는 그걸 보면 알 수가 있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 하나 하나의 일동 일정의 그 생활에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는다는  이것이 연결되어서 나에게 그 심판이 충격을 주고 그 심판이 나에게 경고를 주는 이  경고에 연관성 있는 거기에서 구원 준비가 되는 것이 조금 희망이 있고,  또 그 안에 들어가서 '내가 온전히 담대하여 차라리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이라'  그 담대가 뭐입니까?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을 종노릇하는 데에서 놓아 주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는데 이 담대는 죽음을 원하는 담대입니다. 죽음을 원하는 담대.

죽음을 무서워 하는 담대가 아니고 이 담대라는 말을 해 놓고 고 다음에 어서 떠나  주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는 세상 떠나기를 원하는 그 담대요. 이것이 있어야  우리에게 좀 정상입니다. 그렇다고 다 된 것 아니오.

 회개를 하려면 눈물의 세 만당을 넘어야 된다 이러니까 무슨 말인지? 회개 하려  하면 처음에는 옛사람 그놈이 웁니다. 아무래도 주를 위해서 생명 내놔야 되기  때문에 생명 내놓으려 하면 기가 막혀서 울고 있소. 옛사람이 우는 것이오.

 그 울음 울고 나면 내가 참으로 생명을 내놓기를 원하기는 원하는데 내놓지 못할까  하는 거게 대한 근심의 눈물이 더 나옵니다.

 그 눈물을 흘려서 생명을 다 주께 바칠 수 있는 이게 되면 주님이 위로하셔서 참  위로에 넘치는 위로의 감격한 눈물이 나오요. 그러고 나면은 소망이 나옵니다.

그러고 나면 소망이 나오요. 소망이 나오고 나면 하고 싶은 욕망이 생깁니다. 욕망과  동시에 담대함과 평강이 나오고, 그 다음에 충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욕이라는 그놈이 들어서 열심히 일합니다. 자기 공로나 명예나 공명욕이 들어  가지고서 그 사람을 거머쥐고 뭐 쉴 줄 모르고 날띕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가 옛날  진주 성경원에 가니까 어떤 강도사가 설교하기를 교회는 교회 일을 안 하려고  반대하는 그 사람보다 교회 일을 열심히 하려 하는 그것이 교회에 제일 큰  적입니다. 큰 적이 그 안에 들었습니다. 하는, 나는 그때 무슨 말인 줄을 몰랐소.

 공명욕, 공명욕, 명예욕, 뭐 권세욕 별별 이것이 주장이 돼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것, 그것은 제 왕국을 장만하지 다른 것 장만하는 게 아니라.

 내가 며칠 전에도 어데 전화를 하면서 이렇고 이러니, 이렇고 이렇고 이렇게 네가  나가는 길이 네 왕국을 장만하는 것이라고 어리석은 자도 다 그렇게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수치스럽다. 그 길 가지 마라. 그러면 누구하고? 그냥 너 혼자 있을려면  너 혼자 있고 그런 비웃고 침 뱉을 그런 짓을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을 내가 전화로  얼마나 내가 권면을 했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 구원은 실상이오. 실상이 얼마나 실상입니까? 이 세상에는 실상 해  봤자 시간 가면 썩어지고 낡아지고 없어지고 또 불살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  구원이라는 이 실상은 억만년 가도 쇠해지지도 낡아지지도 않는 그렇큼 야문  실상입니다.

 쇠는 몇백 년 몇십 년 가면 썩어지지마는 금은 안 썩소. 그것보다도 우리 구원은  더 오래 가도 변하지 않는 고 실상이오. 우리 실상, 진격의 실상 아닙니까? 그  실상이 우리 구원인데 껍데기로 제 주관으로 제 생각으로 됐다는 그것 가지고  되겠습니까? 심판에 관련이 있는 그 마음이 생겨져야 거기에서 희망이 있고,  또 죽기를 원하는 담대 그게 있어야 이 세상에서 신앙의 걸음을 걸을 수가 있지,  어떤 신앙의 걸음이든지 그 걸음은 다 죽는 걸음입니다. 죽기를 원하는 그것이 신앙  생활을 원하는 것이지 딴 것 아니오.

 죽기 싫어서 안 죽을 때를, 세상 사람은 이것 저것 가지고 방비를 하고 이리  하지마는 신자들은 요 어리석게 지능이 높아서 성경에 영원성 있다 하는 요런 걸로  준비해야 되겠다 그걸로 준비를 하면서 실상은 세상에 있는 그 자기와 함께 그게  죽어 버리오.

 그런고로 죽기를 원하는 이 담대. '온전히 담대하여 차라리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이 그것이 원하는 바라.' 이 담대, 이 담력이 이것이 신앙생활을 원하는 곧  인격이요 인격의 요소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떠나든지 거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원한다.'

 이번에 총공회 워원들이 개선됐고 또 지방공회원들이 개선됐는데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다 선출했지마는 마귀 일을 하는 것으로써 어떤자는 구원을 마련하고  어떤 자는 멸망을 마련합니다. 그거 알고 있어야 됩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교회에  손해를 보이면 결국은 제 소원 제 주장 제 뜻을 이루면 하나님의 원수 입장만 점점  더 커지게 되는 것이지 유익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떠나든지 거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원하노라.'  위원된 여러분들이 거게서 '어떻게 하면 일을 잘되게 할까?' 하면 소경됩니다. 눈  멉니다. 일이 잘되게 하는 그것은 사람들을 마귀라는 놈이, 인간에게는 부패성이  있고 인간에게는 자율이 있고 인간에게는 경험 체험이 꽉 있는 것이 전부 썩은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고놈을 가지고 요래야 일 잘된다 조래야 잘된다. 일 잘된다고  해서 다 마귀 따라 갔지 안 된다고 마귀 따라가는 것은 없습니다. 성령 따라 가면  망하고 마귀 따라 가면 잘된다고 해서 마귀 따라 간 것이지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헛일이라. 좀 어려워요. 그저 교역자들이나 알아들을런지 '일을 잘해 보자. 교회 일을  되게 해 보자.' 하면 그것을 표준을 푯대를 삼고 하다가 보면 결국은 인본 되고  맙니다. 그래 가지고 그 일에 열심하는데 제 속에 자기가 열심을 냈고 그 일이  해결되면 기쁘고 즐거운 것은 그것은 제 속에 무슨 죄악의 요소가 기뻐하는가 하는  그것을 분별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만들어 놓고 제가 기뻐하고  주님은 따돌려 버리고 적이 되는 그런 것도 깨달아야 되고, 이러니까 '이렇게 하면  주님이 기뻐하시겠느냐, 저라면 주님이 기뻐 하시겠느냐? 어떻게 처리를 해야  주님이 기뻐하시겠느냐?' 주님의 기뻐하시는 그 기뻐하심을 표준으로 목표로 삼고  하면, 이 일이 잘되나 못되나 하는 것과 주님이 기뻐하시나 기뻐 안 하나 하는 것은  거리가 멉니다.

 일이 잘되나 못되나 하는 데는 인간들하고는 한덩어리오. 주님이 기뻐하시나  주님이 섭섭해 하시나 하는 그거는 대개 보면 인간들과 이렇게 대립돼지는  것입니다. 이 길을 다 걷기를 싫어하고 걷기 어렵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이것을 목표로 표준을 두고 이러면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이러면 일은 낭패된다.' '낭패돼도 주님이 기뻐하시면 되지.'  '이러면 모든 사람이 다 반대하겠는데? 반대해도 주님이 기뻐하시면 되지.' 이래서  모든 것이 어찌 될지라도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려는 요것이 위주가 되고 요 목표를  가지고 해야 되어지고,   또 그 목표 가지고 해서, '그러면 요러면 주님이 기뻐하시겠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이렇게 했다.' 주님 기뻐하시는 대로 이 일을 했으면 된 줄 압니까? 아니오.

구원은 머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일을 해도 그 속에 도적놈이 첩첩이 들어  앉았어. 구원되는 것 아닙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한 그 일이 정말로 주님을 기쁘시게  했으면 우리의 껍데기 이성 판단이 기뻐합니다. 이성 판단이, 자기 속에 자기 이성  판단이 개운합니다. 이성 판단이 개운하요. 이성 판단이 개운한 그것이 그 속에 이제  들어가서 바로 됐으면 양심의 기쁨이 나옵니다. 양심이 기쁨이 나오요. 이거는 다른  것의 제재를 받지 아니해요. 양심의 기쁨이 나오요. 양심의 기쁨이 나온 그 속에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원한다 하는 자, 기쁘시게 하는 사람 됐어. 고게서  구원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뭐라  했습니까?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또 뭐라 했소? '너희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제는 주님이 우리 속에서 기뻐하시면 기뻐하시는 그것이 비추어  나와서 내 기쁨이 되고, 내 기쁨이 비추어 나와서 양심의 기쁨이 되고, 양심의  기쁨이 비추어 나가서 이성의 기쁨이 나오고, 이성의 기쁨이 돼 가지고 나오면 온  세상과 대립이 돼, 온 세상과 대립이.

 그런고로 이번에 그 책임 맡은 분들 잘하면 복이 있고 잘못하면 심판을 마련할  것입니다. 그저 어떻게 하든지 주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할까? 주님의 뜻일까?  일편단심 주님만을 생각해야 되지, 제가 들어서, 그게 뭐요? 원죄요. 첫날밤의 원죄,  자기 중심. 자기 중심이 원죄라. 본죄는 악습이요, 원죄는 악성이요, 악습은 악성에서  나왔고 악성은 악령에서 나왔습니다. 말은 쉽지마는 어렵습니다. 거기 73편 모양으로  껍데기 형통하다 껍데기 형통하다. 그거는 인본으로 하면 뭐 교인 몇 백명만 되어도  그걸 이용하면 참, 어제 언제 총공회에서 사회하는 목사님이 말하기를, '의과대학  가라. 왜 의과대 갑니까?' '그래야 돈을 벌지.'  '아버지는 몰랐습니다. 요새는 돈을 벌라 하면 신학교를 가야 됩니다.' 사실입니다.

몇 백만명 되는데 착취하려면 간단하지. OOO 이 그 몇 명 안 되지마는 그 이래  가지고 있는 것 다 바치고 이래 하니까 돈 굉장히 많이 모았었어 얼마든지 해서 잘  살 수 있고 잘 먹을 수 있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는 자는 그렇게  사요. 죽기를 원하는 담력을 안 가지고 죽음 이편에서 사는 사람은 언제나 거게서  떠나지를 못합니다. 준비를 하는 죽음 이편에 있소.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라 그 말이오.

그거는 뭐이냐?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으로 충만케 하려 함이라'  기쁘게 하는 그 일이 다른 사람 보기에 '저 사람 참 잘했다.' 칭찬 받아도 제 속에는  깜깜할 수 있어. 이게 조금 더 신실히 되면 자기 이성 판단과 성경, 성경 안에는  성경적인 이성 판단을 가지고 안심을 가져올 수 있고 평안할 수가 있어.

 그래도 다 된 게 아니라. 그래도 속에 양심은 편치 아니하거든. 그 속에 양심이  편한 데까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그일을 바로 하는 그게 돼져. 이제 양심의 평강  그것보다도 주님이 속에서 기뻐하는 고 기쁨이, 자기 속에서, 등 안에 불 켜니까  등이 불덩어리 되는 것 모양으로 '주님이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그것이 내 기쁨으로 충만케 하려 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돼야  비로소 구원에 도달한 것입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뭘 탐할 게 있어? 먹을 것 뭐 있고 염려할 게 뭐 있어? 당신이  다 모든 것을 아신다 했는데. 독생자도 주신 아버지께서 하물며 너희들에게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시지 않겠느냐 로마서 8장에 말씀하지 아니했소?  그런고로 지금 회개에 몰두해야 될 때인데 아무래도 우리 서부교회도 좀 회개  하니까 뭐 회개라는 말이 귀에 꽉 차서 회개하는 실감적인 작용은 없고 회개하라  하는 말만 귀에 가득 차 가지고 그 말이 지루하고 권태나고 듣기 싫어할 만치 그  만치 됐습니다. 그게 이제 멸망을 받아도 핑계 못합니다. 멸망을 핑계 못해.

서부교회는 회개하라 말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멸망을 받아도 파숫군에게는 죄는  없어. 그런고로 우리가 깨어서 어쩌든지 돌아가거들랑 지금은 급속히 회개해야  됩니다. 이것 저것 어쩌든지 급히 회개해야 되지, 뭐 이것 저것 다 회개 부터 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이제 여유있으면 할 일이지. 전도도 그렇고 뭐 선교 운동도  그렇고 예배당 짓는 것도 그렇고 회개부터 해 놓고 그 다음에 그것은 여유 있으면  해도 되고, 회개하고 난 다음에 여유 없으면, 환난 오면 거게서 들려 올라가든지  하나님의 구출받아 버리면 나머지 무슨 일 있으면, 환난 오면 노아 때 모양으로 다  없어지고 나면 온 천하가 노아 혼자 모가치인데 뭐 뭐 그런것 논 사고 밭 사고 뭐  볼일 보고 거래할 게 뭐 있습니까? 홍수 지나가니까 온천하 토지가 다 노아의  토지인데. 우리는 어리석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서 어쨌든지 회개합시다. 서부교인들. 회개하라는  말을, 제가 저기 가 있어도 설교를 듣습니다. 거기 있으면서도 한 시간도 빠지지  안하고 설교를 다 듣습니다. 듣는데 이제 자꾸 회개하라 하니까 온 교인들이  회개하라는 말조차도 듣기를 싫어하는, 그만 '아, 또 무슨 새 말이나 딴 말 안 하고  자꾸 회개하라는 저 말만 했다.' 이래서 싱겁게 여기는 그게 뭐이냐? 회개를 하면,  회개하는 사람이면 자꾸 회개하려면 힘이 나고 마음에 더 쥐어질 터인데 회개는 안  되고 말을 들어서 버린 인간들이기 때문에 한번 두번 해 자꾸 권태가 나고 듣기  싫어한다 그 말이오. 싫다 그거요 그게 증거가 멸망 받을 증거라 그 말이오. 다른 게  없어.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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