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신앙 노선

 

1989. 2. 17. 금새벽

 

본문: 창세기 13장 14절∼15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아브람도 믿음의 조상이요 롯도 믿음의 조상입니다. 아브람과 롯은 한 혈육인데  숙질간이요 또 신앙으로 같이 출발한 신앙의 동행자요 동지자요 동역자입니다.

 이런데 이 두 사람이 불행스럽게도 가다가 서로 갈라졌읍니다. 갈라져서 한 사람  아브라함은 그와 그에게 속한 자들과 그에게 속한 모든 소유 전체가 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충만했고 또 금생뿐 아니라 내세 영원까지 충만했습니다.

 그 미래를 어떻게 아는가?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했고 또 하늘나라 가서도  모든 크고 작은 무리들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그를 의지하고 있었읍니다. 또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롯은 비참하게 망했는데 전쟁과 하나님의 재앙으로 망했읍니다. 사람이 땅위에서  망하는 그 형편을 보면 모두 전쟁과 재앙으로 망합니다. 병도 그 전쟁으로 망하는  것이요. 전쟁을 이기면 병을 이겨서 유지되고 전쟁 지면 아만 그 병에게 삼키워져  망합니다.

 하나님의 재앙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지 아니한 이 천연 자연 모든 인간들의 전  심리들의 심리 마음 심리들의 역사 이런 시대와 풍조의 이 모든 움직임들이 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로써 그것이 자기에게 해되는 것들은 다 하나님이 주시는  재앙들입니다.

 이래서, 같이 출발한 신앙의 두 사람이 이렇게 갈라져 가지고 하나는 비참하게  금생과 내세가 참 망했고 한 사람은 금생과 내세가 다 복된 영원을 차지했읍니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이 갈라진 그 원인은 하나는 영육과 또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자들과 자기에게 속한 것들이 다 영원히 망하는 그런 원인이 되고, 또 하나는  금생과 내세 영원 무궁토록 자신을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자들과 또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들 사물들 그런 것들을 다 복되게 하는 원인이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진 그 원인을 늘 생각하고 또 매시  생각해서 이것으로써 자기가 멸망을 하느냐 구원을 얻느냐, 자기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멸망을 시키느냐 구원을 하느냐,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물들을 멸망을  시키느냐 구왼을 하느냐 하는 그 방편인 것을 우리는 단단히 기억하고 매번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이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이렇게 말씀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련에  조상이라 그말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말은 하나님과 관계되는 그 관계의  조상이라. 그러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관계한 그 관계대로 관계하면 영원히 뭐  천 년이 지나든지 몇천 년이 지나든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관계한 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영영히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자와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물들이  다 구원을 얻고 축복을 받고,  또 롯의 걸어간 그 원인을 가진 사람들은 뭐 천 년 전이나 천 년 후나 언제든지  이것은 다 자기가 망하고 자기에게 속한 게 망하고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이  망해서 자기는 완전히 전멸을 시키는 이 길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언제든지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평상시에는 잘 지냈는데 서로 소유가 넉넉해지고 모든 것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니 커지고 넓어지게 됩니다. 커지고 넓어지게 되니까 거게서  시비가 일어나고 시비가 일어나니까 그때는 취사 선택이 어느 걸 취하느냐 어느  걸 놓느냐 어느 것이 좋으냐 이렇게 선하고 가려 가지고 택하고 택해서 구별하고  구별하는 그런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매시 계속하고 있읍니다. 우리 현실을 다 어느 것을  택하나 하는 그것이 결정되는 현실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 실에는 롯이 망한  그것도 우리 현실에는 다 놓여 있고, 또 우리 현실에는 아브라함이 그렇게  축복받은 그것도 다 놓여 있읍니다. 이 두 가지가 우리 현실에는 꼭 같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현실에서 아브라함이 택한 모든 것이 잘 되는 그 길을  갈라면 가고 롯이 택한 또 멸망받은 그 길을 갈라면 가고 하는 이것을 가리켜서  자유의 율법이라 그렇게 말했읍니다. 하나님이 강제하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법칙을 턱 내놨는데 이 법칙은 강제하지 아니하고 이 법칙대로 살면 복받고 이  법칙을 어겨서 가면 절단납니다.

 그래서 우러는 신구약 성경에 많고 복잡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읍니다. 그러나  간추려 보면 하나입니다. 하나 안에도 실은 한 진리를 거머쥐고 그 진리를 놓지  안하고 그 진리대로 자기가 참 인정하고 순종하변 결과는 하나입니다. 이래서  진리는 하나라, 참된 이치는 하나라, 참된 이치 그것이 밖으로 퍼져 나을 때는  천도 만도 억만도 넘게 퍼져 나가지마는 살살 거둬들이면은 근본은 하나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가 잘못되면 전체가 잘못되고 또 하나가 바로 되먼 전체가  바로 되는, 항상 우리는 이 현실이라는 이 현실은 갱신할 수 있는 현실이요  이것을 고쳐서 새로와질 수 있는 현실이요 동시에 현실은 변질 타락할 수 있는  현실입니다 변해 가지고 타락할 수 있는 현실입니다.

 이랬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재림의 주님은 심판의 주 님으로  오시지마는 지금 우리와 같이 계시는 주님은 무조건 사랑입니다. 무조건 사랑이고  용서고 얼마든지,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면은 뭐 칠칠은 사쳐구 사백구십 번  아닙니까? 만일 일흔 번씩 일곱 번 이라고, 그렇게 기록하지 안하고 한 천 번  실수하면 어떻게 됐겠읍니까 이라면은 천 번 실수하고 돌이키거든 용서해 줘라  그렇게 말씀했을 것입니다. 이러니까 끝없는 용서입니다.

 이러나 앞으로 재림하실 때에는 털끝만한 것도 양보도 어누리도 없는 아주  대적을 소멸하는 불로 오십니다. 이러니까 모든 존재가 다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는테 녹아지는 불은 하나님의 말씀의 불이라고 했기 때문에 지금 성경에  그렇지는 안하지마는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빛으로 오시기 때문에 모든 어두운 것은 다 소멸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진리의 불로 말씀의 불로나 예수님의 불로나 꼭 같은 말이오. 그러면  예수님은 불의한 것은 소멸하시는 주님으로 오시고 지금은 불의를 고쳐 보실라고  놓지 안하고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얼마든지  용서하시고 다시 또 붙드시고 그저 백 번 천 번 넘어져도 당신이 소원하시는  것은 고쳐 사는 것을, 깨끗해지는 것을 소원하십니다.

 그래서 요새 산기도를 딴이 가는데 어짜든지 이 산기도 가는 데에서 재독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생각하고 또 기도하고 하는 이런 것은 전부 하나님 만나서  하나님하고 자꾸 이렇게 관계를 가지는 것이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에서 첫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자꾸  생겨져야 합니다 '아,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과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는 것을 그 말씀하신  대로 내가 인정하고 그대로 행할라고 달라드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기도함으로써 믿음이 없는 믿음이 자꾸 생겨지고 잘못된 믿음이  고쳐지고 그래서 믿음과 회개가 있어야 되고, 그러면 믿음과 회개가 있어야 되는  데에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잘뭇된 것이 자꾸 고 쳐지고 사람들에게 대해서  잘못된 것이 자꾸 고쳐지고, 모든 일이나 물건이나 그 사물에 대해서 잘못된  그것을 자꾸 발견하고 고쳐지고 이래서 믿음과 회개하는 거, 또 이렇게 오든  관계를 바로 가지는 것, 지금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것은 무궁세계 가서 살 그  세계의 관계를 지금 맺는 것입니다. 지금 영원을 맺는 것이오. 영원한 교제를  하는 것이오. 하나님과 이 세상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어진 그거 가지고 영원히  삽니다. 또 인간들과의 관계도 지금 맺어진 거 그거 가지고 영원히 삽니다.

이러니까 영원히 존대받는 자는 존대받고 영원히 멸시받는 것은 또 멸시받는 건  영원히 멸시받습니다.

 이러니까 오늘이 참 요긴한 것은 모든 좋지 못한 것을 이것을 고칠 수 있는, 이  회개의 특권이라 하는 이것은 기독자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다른 데서는 말하지만  그거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있기 때문에 회개라는 이 고친다는 이것이  기독자에게 특권이요 하나님에 게 지금은 기도로 교제할 수 있는 기도가  특권입니다. 이 영원한 소망을 가진 이것도 특권이요. 이거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와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아브람과 롯의 이 길을 둘을 생각해서 그들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둘로 갈라져서 하나는 그렇게 망하고 하나는 그렇게 복되는가 하는  그 원인을 찾는 것이 우리 신앙 생활의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늘 말하는 대로 롯은 하나님은 생각지 안하고 저만 생각했읍니다.

저 좋도록만 생각했어. 저 좋도록만 생각했고, 제 욕심 제 소원 저 위주 저 중심  저 좋도록만 했읍니다. 또 저 좋도록 한라 하니까 이제 첫째 소원이 저 줘은 거,  다음 소원은 저의 가족 좋은 거, 다음 소원은 목자들 좋아하는 것은 사업이요.

목자 그거는 사업입니다. 자기 종언자들이기 때문에 사업입니다. 자기 사업  잘되게 하려는 거 그다음에는 또 자기 이미 취해 놓은 거 자기 가죽들 소유  잘되게 하려는 거 이것이 전부 다 롯의 사욕입니다. 롯의 사욕, 자기 욕심이요.

욕심대로 한 것이오.

 그래서 이 욕심대로 함으로써 멸망받은 요것을 주님이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은 욕심대로 할 수 있는 완전자인데 하나님의 본체시나 욕심을 하나도  부리지 못하고 완전히 욕심을, 우리가 욕심으로 말미암아 멸망을 만들어 놓은  그것을 대속하시기 위해서 욕심을 완전히 내놨읍니다. 욕심을 하나도 부리지  못했읍니다. 털끝만한 욕심도 가지지를 못했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실 때에 '아야'  하는 그 욕심도 가지지 못해, 그 욕심 가졌으면 우리 대속이 안 돼요.

 그렇게 당신의 욕심을 완전히 다, 우리 욕심대로 하다가 망하는 것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욕심을 완전히 그 댓가로 다 내놓으시고 이제는 우리 욕심 이것을,  욕심으로 멸망한 이 댓가를 내기 위해서 당신의 욕심을 다 내놓으시고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아버지의 욕심에 따라서 움직였지 당신 욕심은 하나도 가지지를  못하고 완전히 희생했읍니다 십자가 못박혀 죽으실 때도 생의 욕심, 신경의 아픈  거, 아프다 하는 거 그거 필연하지만 그 욕심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래서 , 우리  욕심으로 망한 것을 대속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롯은 자기 욕심대로 하다가 망하는 길이었읍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걸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것들은 하나도 제 욕심대로 살면 안  되고 하나님의 욕심대로 살아야 됩니다. 새가 공중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욕심이오. 이런데 만일 새가 물 속에 들어가 살라고 제 욕심 가지면은 죽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을 주신, 생의 법칙을 주셨는데 생의 법칙대로 사는 그것이  하나님의 욕심대로 사는 거 그게 사는 것입니다. 그게 영생이오. 하나님의 욕심을  떠나서 피조물이 제가 하나님께 창조된 피조물이 제 욕심대로 사는 건 전부 자멸  행위라 그거요. 이래서 , 아브라함은 그만 간단하게 그 현실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  좋아하시는 대로 또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하나님의 뜻대로 또 하나님이  하나님과 진리 다음으로 좋아하시고 아끼시는 것이 뭐입니까? 그게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교회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할라고 하면 악한 세상에서 망합니다. 이 세 가지 이대로  살라 하면은 악한 세상에서 감당 못 탑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생각하다가도 사람들이 이래 보니까 다 인인 관계가 틀렸어, 자연 관계가 틀렸어,  사물 관계가 틀렸어. 이라니까 망할 수밖에 없다 그말이오.

 망할 수밖에 없는데, 아브라함은 어떻해서 이 망하는 세 길, 저는 생각지 안하고  하나님 생각하고 제 욕심은 다 냅두고 하나님의 소욕을 생각하고, 또 저는 생각지  안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 교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  망하는 길인데, 이 길이 이거 망하는 길인데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서 이 길을  걷게 됐읍니까? 뭣 보고 걷게 됐읍니까? 자, 몇 가지 보고 걷게 됐습니까,  손가락으로? 둘. 뭣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때문에 그랬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면 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살 것이 세상적으로 보면  망하지마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받는 데는 유일한 법칙이라. 제일 좋은  법칙이라.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첫째 둘째, 자기 안 생각하고 하나님 생각 하고 또 자기  욕심 안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또 자기 안 생각하고 자기 가족이나  그런 것 안 생각하고 다른 사람 생각하고 이렇게 하는 그 걸음을 계획하다가,  계획하다가 사람이 그만 말아. 그 일을 시작해서 해 나가다가 그만 그 부딪히는  일이 그러니까 '아이구 안됐다' 그만 낙심하고 만다 그말이오.

 그때에 뭘 가져야 됩니까? 그때 뭘 가져야 됩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 가저야  됩니까! 저 뒤에 아직도 손가락 안드네. 두 가지 가져야 돼요, 두 가지. 그것을  가리켜서 소망이라 말했어. 소망의 투구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면 된다  하나님을 향한 그 소망의 이것은 그만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영생이 뭐이  영생이라고 배웠읍니까! 하나님을 소망하는 그 모든 행동이 다 영생이라. 그  소망은 영원히 있어. 모든 것 없어지나 믿음 사랑 소망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간단하게 현실을 만날 때에 하나닙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람들은 뭐입니까? 오늘에 뭐입니까? 교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교회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이 세 가지만 생각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축복과  은혜로 돼.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 은혜로 되지 뭐 이치에 맞도록 해 가지고 되는  거 그거는 다, 다 인 간선에서 되는 것이오. 인간선에서 되는 겄이라. 이치에 맞기  때문에 모든 조건들이 좋기 때문에.

 롯이 민첩한 사람이오. 얼마나 조건 좋은 것을 찾았읍니까? 얼마나 조건을  따졌소? 말을 하고 행동하는 거 보면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나  저 사람이 뭐 세상 모든 조건을 바라보나, 이 민주주의, 민주주의. 그것은 우리  칼빈 선생이 해도 그거 잘못입니다. 인간에게도 민주주의가 없어. 하나님의  독재주의에 인간은 독재를 당해야 됩니다. 고것이 요동치 않는 길이오.

 이래서 인화주의 또 오든 합리주의, 합리주의가 이제 우리 정통에서는 그걸 다  이단으로 생각하는데 이치에 맞은 거, 합리주의. 과학주의, 과학에 맞추는 거.

우리가 과학에 맞취서 하는 것도 있지마는 위에 조정자의 머리는 하나님이라야  되지 그 머리가 하나님이 아니면 안 돼요. 이 롯이 그런 거 암만 가져도 안 돼  그러니까 우리 현실에서는 원수가 누군가? 원수가 누구요? 자기가 원수요. 원수는  자기가 원수요. 또 원수가 누군가? 자기 욕심이 원수요. 또 원수는 누군가! 자기  생각이나 자기 모든 지식이 원수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한 말로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라.' 자기 부인하고 주님 좇으라 했어. 그게 영생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자기 좇아가다가 멸망받은 것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 구원을 베풀어 놨으니까 지금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것은 뭐이 믿는  것이냐? 암만 자기 부인하고 주님 좇아도 과거에 저질러 놓은 일이 있기 때문에  안 돼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과거에 잘못된 일이 있어도 지금 부인하고 주님  좇으면 이제 완전히 돼. 왜? 내 잘못한 걸 주님이 다 대속했기 때문에, 내가  잘못해서 빚진 빚을 주님이 대신 갚아 놨기 때문에 지금부터만 안 지면 된다  말이오. 안 지면 돼. 또 졌다가 또 주님에게 대속을 믿고 또 맡겨 놓고 자꾸  새로와서 고치기만 하면 돼요.

 이러니까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왔어. 그것은 아브라함이  별스러운 일 한 게 아니라 자기 부인하고 하나님 생각하고 자기 소원 욕심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 생각하고 또 자기 부인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거 하는 것이 근본 지음받은 본 지위를 예수님의 대속으로써 대속받고 본  지위를 지키고 있는 거라. 하나님을 대립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떠나지 안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오실 수 밖에는.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셔 가지고 당신이 입을 열어서 축복하시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현실에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욕심,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욕심 이것을 버리고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 중심. 하나님의 뜻, 위주,  하나님의 법칙대로 하나님의 사람을 사랑하는 거 이것이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하나님의 법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믿는 거라. 하나님 법을 믿는 게  하나님 믿는 것이요 하나님의 법도 제도를 이거 환영하는 것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를 지킨다고 우리가 진리 지키는 게 아니라 이  진리는 무한한 전능의 능력을 가졌는데 진리를 어기지 않는 것은 진리의 나래  밑에 내가 숨는 것이오. 나래 밑에 내가 피난하는 것이오 그 아무도 해하지 못해.

 이러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떠나지 안하니까 하나님 만났지. 하나님이  찾아왔지. 아브라함이 별스러운 일 한 게 아니라 이것이 피조물로서 정상적인  정상의 행동을 했다 말이오. 변질되지 안했어. 이러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이제 변질된 이것을 그라면 과거 변질해 놓은 것은 어짜는가! 원죄  본죄 변질해 놓은 거는 어짜는가! 변질해 놓은 것은 주님이 대속하셨기 때문에  이제 지금만, 대속한 것을 입고 지금만 변질 안 하면 하나님과 동행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서 자기 생각하고 자기 욕심 생각하는 것이 전체를  망하는 것이라 하는 것을 요짓을 똑똑히 잡아야 됩니다. 지금 우리가 평신도든지  교역자든지 저거 보면은 하나님 하나님 팔기는 팔지마는,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을  생각하지마는 실은 중심에 분석해 .보면 사람 눈에도 자기가 왕이요 자기  중심이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그말이오. 우리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가다가도 잘못하면 약해져서 낙망하면 헛일이라. 의심하면 헛 일이라. 하나님이  변치 않는 것같이 변치 않은 소망을 가지고 뿍뿍 걸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자기 생각하면 망하요. 하나님과 이웃 생각하면 그만  성공입니다. 요것을 딱 몇 번이든지 새겨서 암만 밤중에 자다가 일어나도 요것이  변동 없이, 그러면 자기 욕심 그놈을 죽이는 것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자기  욕심 그젓을 취하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대적해서 배척해서 버리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꼭 외우고 자기가 실행을 해야 거게서 진리를 깨달아요.

실행하고 또 자기 맡은 식구들은 권찰이든지 부장이든지 반사들이든지  보조반사들이든지 꼭 자기 맡은 믿음의 자손은 마음에 넣어 놓고 길러야 한다는  것, 마음 속에 넣어 놓고 길러야 한다는 것, 이래서 '내가 떠난 것은 몸이요  마음은 아니라 했어. 이러니까 늘 마음에 두고 기르는 그것이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 기도요.

그런고로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계속합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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