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신앙 노선

 

1983. 4. 24. 주전

 

본문 : 창13:1-18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이 아브라함과 롯에 대해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 성경에 말씀했고, 또 롯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타락한 사람들의 표본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아브라람의 그 노선을 지켜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또 롯이 걸어간 그 노선을  따라서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을 크게 분류하면 이 두 노선으로  갈리어져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의 노선으로 따라가지 아니하면 롯의 노선을 따라가게 되고  또 롯의 노선을 따라가지 아니하면 아브라함의 노선을 따라가게 되는 것은  필연한 일입니다. 이 두 노선을 벗어나서 자유하는 사람도 없고 또 다른 새 길을  내는 사람도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면 전부 다 이 두 노선 중에 한 노선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아이를 좀 잘 보호하십시오. 아이는 왈기면 안  됩니다. 살살 달래야 되지. 그 옆에 누구 사탕 있거든 사탕을 좀 주시오.)

 아브라함과 롯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출발해 가지고 벧엘에 가서 장막을  치고 하나님을 섬기다가 그곳에서 하나님이 시련하시기 위해서 좀 어려움을  당하게 하시니까 거기에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대 실패를 보고 다시 회개를  하고 벧엘로 향하여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는 그간에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아브라함도 아주 모든 것이 부요하게 됐고 또 롯도 부요하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두 사람이 같이 목축을 하고 있는 그곳이 점점 모든 것이 부요해지고  또 따르는 그 종업자들도 많게 되고 이러니까 그곳이 좁아서 같이 살 수 없어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시비를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너나 나나 다 우리가 한 골육인데, 뼈와 살이 다 같은  우리인데, 너나 내가 서로 시비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내게 속한 목자들이나 내게  속한 목자들이 서로 시비하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 앞에 불가한 일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자. 그리고 지금 너와 내 앞에 여기 소돔이라는 아주 넓고 물 좋고 또  초원이 좋아서 목축을 얼마든지 하기에 좋은 곳도 있고, 또 가나안이라는 여기에  수원이 없어서 아주 붉은 자산으로 박토가 있으나 이것은 내가 취할 것 선택 할  것이 아니고 네가 자유로 먼저 택해라. 네 마음대로 어느 것을 택하든지 택하면  네가 택하고 남은 것을 내가 가지겠다' 그렇게 선언을 했습니다.

 그 선언을 듣고 나서 롯의 가족들과 그 목자들이 모여 가지고 '아무리 큰 집  아브라함이 안 된다고 해도 우리가 이 소돔들은 목축하기에 좋고 저 가나안은 뭐  땅은 있지마는 풀 없으니까 소용이 없으니 하다 안 되면 반반이라도 갈라야  된다' 고 이렇게 시비를 하다가 '어디든지 자유로 네가 좋은 것을 선택하라  하니까 그만 가족들이 모여 가지고 이렇게 '이미 아브라함이 허락을 했으니,  아브라함은 한번 말 했으면 그대로 지키는 어른이지 변개치 않는 분이니까  자유로 택하라 했으니까 이때에 이 소돔들을 우리가 택해서 이를 잡읍시다.'  하는 그것을 말을 했고,  또 아브라함에게 속한 사람들도 으례히 말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그러면  반반으로 가르든지 이래야 되지 좋은 곳은 전부 자유로 하라 하면 뭐 롯이라든지  롯의 가족이라든지 롯에게 따른 모든 종업자든지 그 사람들이 예의나 체면이나  신앙이나 그런 것 가릴 것 없이 좋은 것만 솔박 다 취할 터이니까 그래서야  됩니까?' 하는 것이 양쪽 그 모든 가족들과 종업자들 사이에서 일어나서 시비가  분분했습니다.

 그때에 롯은 자기 아내도 말하지 자기 자녀도 말하지 모든 종업자 들도 말하지  이래 가지고 단합이 돼서 '아무래도 우리는 소돔을 취해야 됩니다.' 하고 벌써  이삿짐을 싸고 양떼들 소떼들을 다 몰아서 소돔 들을 향하여서 나아가고  이러니까, 롯은 아마 그랬을 것이오. 성경은 다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기록 안  했으나 '그렇지만 그러면 되느냐' 해도 그만 슬슬 몰고 가고 가니까 어쩔 수  없어서 '그것 참 너거가 이래서는 안된다' 하면서 슬슬 끌려 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롯은 수원이 좋고, 옥토요 또 초원이 좋은 소돔 들을 택해서 그리 옮겨  장막을 치고, 아브라함은 풀이 없고 물도 없는 가나안 그곳을 택해서 머물게  됐습니다.

 롯이 떠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와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이 풀 없는 자산을 차지하고 좋은 소돔들을 롯에게  주려느냐? 하는 아마 그런 말도 있었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내게 소돔 들이나 아무리 목축할 수 있는 방목 장이 좋다  할지라도 당신이 축복 안 하시면 헛일이요, 아무리 자산에 형편 없는 곳이라도  당신이 축복하시면 되는 것이지 뭐 그런 것 있겠습니까? 또 내가 어떻게  숙질간에 싸워서 주님 앞에 근심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대답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러면 내가 이 가나안을 너에게 주겠다. 또  눈에 보이는 경내를 다 너에게 주겠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고 하나님은 떠났습니다. 이것이 그 두 숙질이 만난 현실에서 하나는  이리 가고 하나는 저리 가고, 자기 만난 그 현실에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그  현실을 처리하고 롯은 현실을 저렇게 처리하는 그 두 신앙의 갈래길이  생겨졌습니다.

 그 뒤에 얼마 지나고 난 다음에 소돔 성에 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소돔 왕  편에는 다섯 나라가 연맹하고 상대방에는 네 나라가 연 맹해 가지고 아홉 나라가  연합 전쟁이 일어나서, 결국 소돔 왕이, 패전하게 되어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다 포로가 되고 재산도 다 탈취를 당하고 이렇게 해서 지금 잡혀가고 있다는 그  소식을 어떤 탈주한 탈주병이 와 가지고 아브라함에게 전했습니다. '주  아브라함이여 당신의 조카가 소돔 성에 있었는데 이 큰 전쟁으로 말미암아 소돔  왕의 편이 완전히 패전을 해서 사람이고 재물이고 완전히 다 탈취를 당해서 지금  포로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는 그 소식을 아브라함에게 전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소식을 듣고 그동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했는지  아브라함 집에 그 재물을 지키는 수직군이 삼백십팔 명 훈련병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삼백십팔 명이 자기의 재산과 모든 가족 들을 지키지 안하면 안될 만한  수직할 사람들을 그렇게 기를 만치 많이 부흥됐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소식을 듣고 삼백열여덟 명을 거느리고 가서 그 강 한 네 나라를  다 격퇴시키고 다섯 나라를 구출하고 또 그 재산과 사람을 완전히 다 구출해서  다 본 나라로 돌려 보냈습니다.

 이러니까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가지고 말하기를 '당신의 택으로,  우리 전 국민이 다 멸망받게 되었는데 이렇게 구출이 되었 으니 이 모든  재물이나 이런 것은 전부 당신이 다 차지하고 국민만 다 저에게로 돌려  주십시오' 하면서 간청을 했습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두고 맹세를 한다.

만일 내가 전쟁해 가지고 모든 이 적산을 내가 차지한다고 하면 네 생각에나 또  너거 나라 백성들 생각이나 듣는 제삼자들이 들을 때에 아브라함은 그 전쟁에서  승리해서 탈취한 적산으로 저렇게 부자 됐다 이런 소리를 너거가 할 터이니까,  나는 하나님 한 분으로 망하고 흥하는 것이 다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하나님 한 분이면 내게 족한데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워서 그런 하나님에게  욕 돌리고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영광을 어만 데다 돌리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실락끈 하나라도 내가 차지 안 하고 물질은 다 돌릴 터이니까 너거가  다 차지하고 그거는 내가 안 가져온다. 가져오지도 안할 뿐 아니라 뺏들어 놓은  것을 다 너거가 차지해라. 백성도 다 너거가 다 데리고 가라. 다만 내 조카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이 이떻게 내 옆에 가까이 오지 아니하고 나를 떠나서 그래  있으니까 그들이나 잘 보호해 달라 하는 부탁을 하고 소돔 왕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찾아 왔습니다. 와서 아브라함아  네가 전쟁해 가지고 원수에게 빼앗겨 가는 그 전쟁을 네가 이겨서 탈환했으니까  전쟁에서 탈환한 그 적산은 네가 하는 것이 당연하고 이런 건데, 네가 그것을 다  소돔 왕에게 도로 돌려 주고 하는 그 이유가 뭐고?' '그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으로 인해서 내가 이렇게 모든 것이 잘 된다고 그렇게 여기질 아니하고  그런 것 때문에 잘 됐다고 할 터이니까, 나는 실상 잘되는 것은 당신 한 분으로  말미암 아서만 되는 것인데 당신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을 그런 거짓부리 그런  것들로 인해 됐다고 그렇게 주의 영광을 그리 돌릴까 해서 내가 그리 했습니다.

나는 그런 것 없어도 당신 한 분이 나를 인정하신다면 나는 족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l5장 l절에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네 방패가 지금부터 되어 주겠다. 내가 이제는 네 방패가 되어서 너에게 오는  모든 해는 내가 다 방비하겠다 약속을 선언했습니다.

 또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겠다. 네게 모든 것을,  우주와 영계에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내가 다 창조했고 이것을 내가 다  주관하고 내 것이지마는 이것을 너에게 얼마든지 줄 수 있지마는 주되 거저  너에게 주지 아니하고 상급으로 주겠다. 네가 하는 일마다 도덕적으로도 승리,  봉사적으로도 승리, 사랑으로도 승리, 희생으로도 승리, 네가 모든 옳고 참된  일에 승리함으로 모든 사람에게 감탄을 주고 그 승리한 승리의 상급으로 너에게  주겠다' 하는 그 약속을 선언하고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얼마 지난 후에 아브라함이 장막에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소돔 고모라 성에 죄악이 관영했으니 내가 그 소돔  고모라 성을 유황불로 다 태워서 멸하려고 지금 내가 살펴 보려고 내려 왔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기도를 했습니다. 의인 오십명 있으면 하다가 의인 십  명까지 기도했는데 의인 십 명만 있어도 용서하겠다 했지마는 소돔 고모라  성에는 의인 십 명이 없어서 유황 불비로 타게 됐습니다.

 아브라함이 근심을 하고 그 이튿날 아침에 보니까, 소돔 성에 유황 불비가 나와  가지고 마구 시내가 전부 불덩어리가 되어 가지고 탔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소식을 불타기 전에 하나님에게 그 말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를 한 그 기도하다가  끝을 맺지를 못하고 의인 열 명이 없으니까 할 수 없어 그대로 둬 두고  나뉘어졌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기도를 생각하시고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천사를 소돔 성에 보냈습니다. 롯을 구원하려고 보냈습니다.

 보내서 천사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지금 죄악이 관영해서 소돔 성을 유황불로  태우려고 이와 같이 하셨으니 너희들이 타기 전에 빨리 이 성에서 피난하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롯은 그 말을 천사의 말을 듣고 피난 준비를 하는데 롯의 아내는  어정어정하고 '그 말을 어찌 믿을 거라? 그 사람이 와 가지고 그렇게 한다고,  이제까지 유황 불비는 없는데, 불비가 없었는데 역사에 없었던 불비가 온다고  하는 그런 소리를 믿고 이사도 못하고 다 두고 피난할 수가 있겠느냐?  어정거리고 그러는데 또 천사가 말하기를 '너거 딸 둘, 아내, 너, 네 식구 외에  다른 식구는 없느냐?' '우리 딸과 정혼한 사위가 둘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도 빨리 연락해서 불나기 전에 피난하도록 해라' 롯이 사람을 보내서 그  두 사위를 청했습니다.

 청해 가지고 '곧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기별 오기를 이 성에 죄악이  관영해서 불로 태우려고 이렇게 하시니 불타기 전에 다 이곳에서 피난을 가야  되니까 너희들도 같이 가자' 이러니까 사위 두 사람이 있다가 '아, 또 저 장인은  언제든지 치우쳐서 노망한 소리 잘 하는데 당신이나 가시오. 우리는 안 갑니다.

무슨 이제까지 없었던 불비가, 어디 불비가 있소, 있기를?' 이러면서 조롱을  하고 암만 권 해도 안 따라갑니다.

 그래서 할 수 없어 어정거리니까 천사들이 끌어 내면서 빨리 가라고 끌어  내니까 네 사람이 끌려 나와 가지고 이제 피난으로 도망을 치는데, 롯의 아내는  암만 가며 생각해도 참 실없다. 그 사람들이 역사에 없는 소리를 하는데 그 말을  듣고 저 모든 살림살이 다 두고 저렇게 피난을 가다니? 정말로 불이 붙는가  보자' 하고 뒤를 돌아 봤습니다.

 돌아 보니까 유황불비가 와서 때려서 롯의 처는 즉사해 가지고 소금 기둥이  되어서, 나는 보지 못했지마는 영국 박물관에 지금도 소금기둥이 되어 있다고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이 달려갔습니다. 세 사람이 겨우 가서 먼 데는 못 가니까 소알  성에 가 가지고 거기에 가서 이제 피난해 있는데, 그 모든 소돔과 고모라 성은  다 불로 타 버리고 소알 성에 있기도 겁이 나 가지고 거기에서 더 산중으로  들어가 가지고 그래 있다가 거기에는 아무 사람이 없으니까, 딸 둘이 생각하기를  '이제 아버지는 늙었고 다른 남자들은 없고 이러니까 우리가 아무래도 인종을  전해야 되겠는데, 이는 할 수 없으니까 아버지를 술을 먹여 취하게 해 가지고  처음에는 내가 동침하고 두번째는 네가 동침해서 자손이 나면 그것으로 자손을  잇도록 하자' 하면서 그렇게 해 가지고 자손이 나기는 났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롯이 걸어간 걸음이요 그 결말이었습니다. 그런고로,  누구든지 우리의 현실에는 반드시 아브라함과 롯의 이 두 사람 이 걸어가는 그  길 외에는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 길을 걸어가든지 저 길을 가든지 두 길 중에  한 길밖에는 못 가는 것입니다. 두 길을 걸어갔는데 아브라함이 가는 그 길이  처음에는 형통치 아니했고 어려움이 있었으나 뒤가 좋아겼고 롯의 가는 걸음은  처음에는 좋았지마는 끝에는 참 비참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그 두 사람이 현실을 만났을 때에 롯은 어떤 걸음을 걸어갔더냐?  그는 하나님을 생각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중심을 가지지 아니하고  인간을 위하고 인간을 중심하는, 인간을 위주로 하는 인본의 길을 택했습니다.

롯은 인본의 길을 택했고,  아브라함은 저희 가족이나 자기나, 인간이야 어찌 됐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을 위주로 중심으로 하는 신본의 길을  택했습니다.

 롯은 인본의 길을 택했고 아브라함은 신본의 길을 택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루 하루의 사는 현실마다 이 둘은 반드시 봉착되고야 맙니다.

이러니까 그게 많으면 롯과 같이 멸망받고 많으면 아브라함같이 성공합니다.

 또 그 다음에 보면 롯은 타협주의를 취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 가족들과  자녀들 모든 그 종업자들이 이러자 저러자 하니까 그 사람 들의 중론에 따라서  타협을 해 가지고 다수로 가결을 해서 갔습니다. 그분 모든 종다수한  사람입니다. 많은 수를 따라서 갔습니다. 롯은 아내도 그래, 자녀도 그래,  종업자들도 그래 모든 사람들이 그러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것을  배격하지 못하고 반대하지 못해서 그 많은 사람들과 같이 타협을 해 가지고  의논해서 다수에 따라서 움직여 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내도 자녀들도 또 식구들도 다 의례히  목축업은 초장이 없으면 다 헛일인 것인데 초장이 있는 곳을 취할 수 있는데 다  내어 주고 초장 없는 자산으로 가려고 하니까 그걸 원할 리는 없었습니다.

이사야 49장에 자산에도 푸른 초장이 있다는 것은 아브라함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다 내가 내 소원보다는, 내 소원보다는 가족들의 소원을  내가 들어서 따르는 것이 옳지마는 하나님 소원보다 가족 소원을 들어서 따를  수는 없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따를 수밖에 없다' 하는 것으로 아브라함은 신앙 위주로  그 현실을 통과했던 것입니다.

 롯은 다수의 타협주의로 그 현실을 통과했고, 아브라함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그 현실을 통과한 이것이 두 사람이 달랐습니다.

 또 거기에는 봉착된 문제가 롯은 '아무리 삼촌이고 하나님이 계시지마는 현재  이 많은 짐승을 거느리고 짐승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이 자산에서 뭘 하겠느냐?  목축하기에 좋은 옥토를 이걸 택해야 그래도 우리 이 목축 낙농이 바로 돼 나갈  것이고 우리 가정이 바로 돼 나가지 아무것도 없는 자산에, 물 없고 풀 없는  데로 가 가지고 어떻게 되겠느냐?'  그는 현재에 있는 물질을 보고 택한 유물주의의 길을 걸었습니다. 아무래도  조건이 좋아야 되고 물질이 있어야 되고 무엇이 있어야 되지 물질 없이 뭐이  되느냐 하는, 물질을 따라서 움직이는 유물주의의 길을 택했고,  아브라함은 아무리 물질이 풍부하고 조건이 좋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축복하지  아니하시면 안 되는 것이요, 아무리 조건이 나빠도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되는  것이요, 또 안 되어도 내 축복을 따라서 내 되고 안 되는데 따라서 좌우할 게  아니라 하나님에 따라서 살아야 될 게 아닌가 하고 그는 하나님의 축복주의로  그렇게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은, 우리가 만나는 현실은 자기 인간을 위주로 하는 인본의 길을  택하느냐, 인간이야 어찌 됐든지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본의 길을 택하느냐 요 두 길이 현실에서 결정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많은 관련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서 타협주의로 많은 사람들의  다수의 중론을 따라서 움직이는 그 다수주의가 있고, 또 인간의 수효가 얼마가  되든지 인간의 비위를 맞추고, 하나님 비위에 맞으면 좋지마는 인간 비위에  아무리 맞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틀리면 안 되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인도인 신앙주의로 아브라함은 움직였습니다.

 이래서, 롯은 종다수의 타협주의로 움직였고 아브라함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신앙주의로 움직였고, 롯은 눈에 현저히 보이는 물질 이것을  따라서 모든 성패가 있는 것으로, 거기 모든 행복이 달린 것으로 눈에 현재  보이는 물질 그것을 위주로 해 가지고 유물주의의 길을 택했고, '물질이 있어야  된다.' 유물주의의 길을 택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이면 다 되고 축복  없으면 안 된다. 축복주의로 택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은 크나 작으나 누구든지 네가 하나님의 축복주의를 택하느냐,  네가 물질을 위주로 하는 물질주의를 택하느냐? '물질이 있어야, 점포 위치가  좋아야, 장사하는 그 모든 장사의 종별이 좋아야, 내가 직장이 좋아야, 뭐  기술이 있어야, 무슨 박력이 있어야, 박력 암만 좋고 기술 암만 좋고 조건 암만  좋고 직장 암만 좋고 가진 소유가 암만 많아도 하나님의 축복 없으면 다  헛일이다, 또 그런 것이 없고 모자라도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있는 길이면 된다 하는 이 두 길 중에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느냐 현재에 가견적인 물질을 바라느냐? 어느 걸 보고 네가 따르느냐? 이 둘  중에 한 길을 우리가 날마다 택해서 걸은 것도 있고,  또 하나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여지느냐, 많은 사람들의 그 모든  중론을 따라서 인간의 비위를 따라서 움직이느냐? 인간의 비위를 맞추어서  움직이느냐, 하나님 한 분의 비유를 맞추어서 움직이느냐? 어느 것이냐? 이 둘  중에 하나요,  또 하나는 인간을, 인간 좋게 인간을 근본으로 생각하는 인본을 택 하느냐,  하나님 좋게 하나님을 근본으로 하는 신본을 택하느냐? 이 두 가지.

 롯이 택한 이 세 가지, 아브라함이 택한 이 세 가지. 셋씩 셋씩 이 두편 양편  이것을 우리는 날마다 거듭거듭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결과가 어떻게 돼는가? 롯이 물질을 위주로 하고 갔는 데, 물질  양이, 소가 어디로 갔는지 한 마리도 없고, 마지막에는 자기 입은 옷 한 벌  뿐이지 나머지기를 바짝 태워서 자기에게는 물질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니까  가난으로서는 그렇게 가난해질 수 없는, 완전히 물질에 대해서 실패를  당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고 자산이라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는 너무 많아서 자기 집안 수직군이 삼백십 팔 명이 그 수직군으로  있었으니까 얼마나 부요했습니까? 그 강대국 들을, 대 연맹국도 다 격퇴를  했으니까 그 권세를 얼마나 가졌습니까? 아브라함은 물질에 대해서 성공을  했습니다.

 또 롯은 그렇게 인간 좋게 인간의 타협을 맞추어서 인간 좋게 그렇게 하니까  얼마든지 사람은 많이 얻으리라 생각하고 사람의 부자가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는 자기의 마누라까지도 다 멸망시켜서 빼앗기게 됐고 없어지게 됐고  유황불비에 불타서 다 없어지게 됐고, 딸 둘 데리고 갔는데 딸 둘 그 사람은  영원히 그 아버지의 수치거리가 되고 말았으니, 그는 인간 좋게 인간 비위  맞추어서 한 그 결과가 하나님 비위 버려두고서 인간 비유 맞춘 그 결과가  인간에게 대해서는 완전히 실패자입니다. 완전히 실패자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인간 비위보다 하나님 비위를 맞추어야 되어서 그는  타협주의로, 다수, 종다수주의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신앙주의로 했기 때문에 그는 인간에게 대해서 거부가 됐습니다.

 그 당시도 거부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을 로마서 4 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인간에 대해서 대성을 했습니다.

인간 부자가 됐소.

 또 롯은 인간들 저거를 위한다고 아주 인본으로 인간을 중심해서 인간을  위했지마는 그 위한 것이 저의 종업자들이 다 망했지, 저의 아내가 망했지,  사위도 망했지, 딸도 망했지, 자신도 망했지, 그 이 상 더 망할 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이상 망할 수는 없어. 완전히 망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지  아니하고 인생을 생각하는 고 길은 인간을 완전히 망치는 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입니다.

 아브라함은, 인간 비위가 귀한 것이지마는 하나님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인간의  많은 중론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위주로 해서 움직인 그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 되고 보니까 아브라함도 성자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성녀요, 아들도 성자요, 손자도 성자요, 속한 거기에 종도,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갔던 그 걸음을 보면 그들이 다 성자입니다. 다 성자요.

하나님과 직접 다 영교의 교제가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의 현실 현실마다 자기야 알든지 모르든지 이 두 가지  길로, 이 길로 기울어지든지 저 길로 기울어지든지 기울어지는데, 기울어지는  그것은 당장에는 표가 안 나지마는 세월이 얼마 안 가서 표가 납니다. 또  세상에서 표가 안 나면 무궁 세계에서 표가 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세상이 무궁세계요 하늘나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브라함의  걸음을 걸어서 가는 이것이 세상을 이용하는 것이요, 무궁세계를 점령하는  것이요, 자기가 하나님 밑에 하나님에게 속한데 대해서 모든 피조물의 중보자가  되어지는 것이요, 이것이 성공이오, 하나님과 자기와 둘인데, 하나님보다 저  생각하려 하는 것 그게 자기 망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비위보다 인간 비위 맞추는 그것이 자기에게 속한 모든 인간들을 다  망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보다 현재 보이는 물질 그것을 크게 귀중히  여기는 그것이 그것을 다 망치는 길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깨닫고 이 시간도 우리는 확정을 지우고 단정을 지우고  걸읍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도는 실지의 도입니다. 말만이 아닙니다. 실지입니다.

 ( 기도 )  공의와 정의로 선포한 약속대로 신실히 이행하시는 주님 앞에 너무 거짓되며  범사에 에누리 많은 저들의 이 부패성을 긍휼히 보사, 주의 선포하신 이 말씀을  참되고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이 없는 이 사실을 확신하는 믿음을 더하여  주사, 현실 현실에서 롯을 따라 한 자욱 아브라함을 따라 한 자욱 어느 걸음을  걷든지 걷고 있는 무서운 금생과 내세의 장래를 이루고 있는 현실인 것을 확실히  깨닫는 믿음을 주사 아브라함에게 속한 이 걸음을 강하고 담대히 전심 전력 다  기울여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감화 감동하심이 항상 저희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 두 신앙 노선/ 창세기 13장 1절-18절/ 830424주전 선지자 2015.10.28
53 두 신앙 노선/ 창13장 8절-11절/ 830427수야 선지자 2015.10.28
52 두 신앙 노선/ 마태복음 4장 17절/ 830321월새 선지자 2015.10.28
51 두 신앙 노선-씨 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장 18절-23절/ 830503화전집회 선지자 2015.10.28
50 두 신앙노선/ 창세기 13장 1절-18절/ 871018주후 선지자 2015.10.28
49 두 신앙노선-하나님이냐 자기냐/ 창세기13장 8절-13절/ 830502월밤집회 선지자 2015.10.28
48 두 신앙노선-하나님이냐 자기냐/ 이사야 49장 22절-23절/ 830331수새 선지자 2015.10.28
47 두 양식/ 요한복음 6장 27절-35절/ 840226주전 선지자 2015.10.28
46 두 여인/ 마태복음 24장 40절-44절/ 860203월새 선지자 2015.10.28
45 두 운동-두 이치/ 사도행전 27장 22절-26절/ 860814목새 선지자 2015.10.28
44 두 인도/ 로마서 8장 4절-6절/ 840217금새 선지자 2015.10.28
43 두 자유/ 갈라디아서 5장 1절/ 880908목새 선지자 2015.10.28
42 두 종류의 사람/ 요한일서 4장 7절-11절/ 861128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8
41 두 종류의 생활-가인과 아벨/ 창세기 4:1-8/ 800117목새 선지자 2015.10.28
40 두 종류의 생활-가인과 아벨/ 창세기 4장 1절-9절/ 800116수야 선지자 2015.10.28
39 두 종류의 증인들을 보고 온전을/ 히브리서 12장 2절/ 880711월새 선지자 2015.10.28
38 두 종류의 증인들을 보고 온전을/ 히브리서 12장 1절-2절/ 880709토새 선지자 2015.10.28
37 두 종류의 지식/ 고린도전서 1장 18절-21절/ 820602수새 선지자 2015.10.28
36 두 종류의 짐승/ 요한계시록 13장 10절-18절/ 821013수야 선지자 2015.10.28
35 두 주인/ 마태복음 6장 24절-34절/ 820107목새 선지자 201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