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

 

1986. 2. 3. 월새벽

 

 본문:마태복음 24장 40절∼44절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어제도 말했지마는 우리가 성경을 읽든지 설교를 듣든지 할 때에 물론 기분도 좋아야 되고 또 마음도 상쾌해야 되고 기뻐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외부의 것이기 때문에 속이 바로 돼 가지고 여게까지 나온 것이라면 좋지마는 속이 바로 되지 못하고 껍데기로만 된 거 같으면 이것은 다 헛일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다 기쁨도 있고 평안도 있고 상쾌함도 있고 그런 모든 쾌락들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없는 것 아니오. 안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평생 기쁘게 즐겁게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기쁨이나 모든 즐거움이나 쾌락이나 가진 그것은 성경이 말한 기쁘고 즐겁고 쾌락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요걸 아십시오. 믿는 사람들이 기쁘고 즐겁고 상쾌하고 한 요것, 요것은 불택자,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진 거와는 종류가 아주 다릅니다.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은,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껍데기는 같지마는 속에 알맹이는 다릅니다.

이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저 성경을 읽든지 하나님 말씀을 듣든지 할 때에 기분이 좋고 마음이 상쾌하고 개운하고 한 이것으로만 우리가 은혜받은 것이라고 표준을 하면은 껍데기가 되기 쉽습니다. 물론 껍데기에는 불신자들도 쾌락이라는 것이 있고 성령의 사람들도 쾌락이라는 것이 있어서 껍데기를 볼 때에는 이 사람 기뻐하는 것이나 저 사람이 기뻐하는 것이나 그 기뻐하는 것이 구별 못 할 만치 꼭 같이 보여지지마는 속에 알맹이는 아주 판이합니다.

이러기에, 한 자리에 둘이 일하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두 여인이 매를 갈면 매 가는 그것은, 팔레스틴 지방에는 밭이 많고 논 곡식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잡곡을 다 하는데 그 잡곡을 전부 갈아 가지고서 그렇게, 이 손으로 갈아 가지고 떡을 만들어서 그래 먹는 것이 팔레스틴 지방입니다. 이러기에 집집마다 매가 다 있습니다. 옛날 기계가 없을 때에는, 우리 어릴 때에는 농사지어 놓으면 겨울 내내 머슴들 데리고 하는 일이 방아 찧는 일이오. 방아 찧어 가지고서 이제 쌀을 만들어 가지고서 밥 해 먹는데 요새는 뭐 잠깐이면 수십 석이라도 찧는데 그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틴에서는 농사를 지어 가지고는 그것을 매로 가는 것이 하루 종일 일입니다. 그러면, 둘이 갈 때에는 혼자는 힘이 드니까 하나는 위에 손을 거머쥐고, 밑에 거머쥐고 이래 둘이 자꾸 이래 돌려서 이래 합니다. 그러면, 그때는 원청 미개한 때이니까, 그러니까 그후에 발견이 돼 가지고 나무로 이렇게 기다랗게 이래 가지고 하니까 손도 안 닳고 나무로 그래 가지고서 또 이래 매를 돌렸습니다. 또 그뒤에는 나무로 매를 만들고 돌로 매를 만들어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또 빨리 하는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물로 가지고서 방아를 만들어 가지고 수침방아라고 있었고, 그라다가 물레방아가 있었고, 물레방아 나오고 난 다음에 또 화통방아가 있었고 이래 가지고 자꾸 이래 발달이 되어서 나왔는데 두 여인이 매를 간다 말은 곡식을 가는 매, 이라면 하나는 위에 거머쥐고 하나는 밑에 거머쥐고 이래 돌립니다.

이거는 돌아가기도 같이 돌아가고 꼭 같이 일합니다. 그래도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하나는 구원을 얻고 하나는 구원을 얻지 못하고 멸망하게 된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껍데기에는 꼭 같이 행동 합니다. 꼭 같이 행동하는데 하나는 멸망을 받고 하나는 구원 얻는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을 하십시오. 껍데기는 꼭 같은데 알맹이가 달라 가지고 하나는 멸망받고 하나는 구원 얻는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런 기쁨 저런 기쁨, 교회 와서 설교를 들을 때에 마음이 개운하고 기쁘고 상쾌하고 그것만 은혜라고 생각하면 안 믿는 사람들도 그런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매 가는 것이나 일하는 것이 외모로 보기에는 꼭 같지마는 속에 알맹이가 틀려서 하나는 멸망받고 하나는 구원을 받는다 요렇게 한 요 말씀은 어데든지 들어맞추면 맞습니다. 맞는 것은, 꼭 같이 기쁨을 가졌는데 한 기쁨은 멸망받을 기쁨이요 한 기쁨은 구원 얻을 기쁨이라.

사람이 조심을 하는데 한 조심은 구원 얻을 조심이요 한 조심은 멸망받을 조심이다. 열심을 내는데 한 열심은 구원 얻을 열심이요 한 열심은 멸망받을 열심이다.

교회에서 열심히 교회 일을 하면은 그것은 다 믿음이 좋은 줄로 알고 그렇게 생각을 가지지마는 교회 일을 할 때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그 사람은 교회서 무슨 일을 할라 하면은 반대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 일을 할라 하면은 열심히 앞장 나서 가지고 일을 잘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반대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고 열심히 교회에 충성되이 일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믿음이 있는 좋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렇게만 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진주 성경 학교 가 가지고, 어떤 강도사가 그때 와 가지고서 설교를 하는데 ‘교회를 해치는 자가 어떤 자가 해치는 자냐? 교회서 무슨 일을 할라고 할 때에 반대하는 자가 있고 무슨 일을 할라고 할 때에 그 일을 앞장 나서 가지고 열심히 교회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두 사람 가운데에 교회를 진정 해치는 사람이 열심 내는 사람 가운데 있겠느냐 반대하는 사람 가운데 있겠느냐 어데 교회를 더 많이 해치는 사람이 있겠느냐?’ 하는 것을 묻습디다. 묻는데 거게 있는 모든 교인들이 다 대답을 하기를 무슨 일 할라고 하면 반대하는 그 사람이 교회를 많이 해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대답을 합디다.

하니까 그 강도사가 말하기를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일방적 지식만 가졌지 쌍방을 알지를 못합니다. 교회 옳은 일을 할라고 할 때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 사람은 교회를 크게 해치지 못합니다. 옳은 일을 하는 데에 반대한다 해도 모든 사람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반대를 당하지 안하니까 방해는 하기는 했지마는 별 큰 방해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교회 일을 열심히 하고 앞장 나서서 할라는 그 사람, 그 사람 속에 교회를 크게 해치고 끌어 엎을 사람이 있습니다. 껍데기 보기에는 교회를 위하는 것 같지마는 마지막에 그 사람이 들어서 교회를 꺼꾸로 덮쳐 가지고서 멸망을 시키는 그런 사람이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 가운데에 많이 있지 반대하는 사람 가운데에 많이 있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사람 그것은 신임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까짓 게 해 봤자 항상 저거는 저런 거다 하지마는 열심히 일하니까 사람들은 거게 미혹받아 가지고 저 사람은 열심히 일하니까 저 사람 집사를 내야 되겠다. 저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니까 저 사람은 장로를 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서 나중에 그 사람이 자기가 권세를 잡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이 자기 속에 딴 사람으로 그래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나중에 가서 뒤집트려 가지고서 교회를 망친다. 한국 교회를 망치고 있는 것이 누구냐? 망치고 있는 것은 장로들이다 이랬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보면은 교회를 망치고 있는 것은 장로입니다. 교회를 망치는 마귀노릇하고 있는 것은 장로입니다. 그다음에 교회를 망치는 자가 누구냐? 목사들입니다. 그다음에 교회를 망치는 자들이 누구냐? 청년회 회장, 남전도회 회장, 여전도회 회장, 목사 사모, 이런 사람들이 교회를 해치는 것을 과거에 해방 직후에는 뚜렷히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후에는 지금은 그렇게 뚜렷히 보이지 않습니다. 안 보이는 것은 그 사람들이 회개를 해서 안 보이는 것 아니오. 회개를 해서 안 보이는 것이 아니고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갔습니다. 해가 넘어가 버렸습니다. 해가 넘어가니까 그림자가 없습니다. 양지가 있어야 음지가 있는데 해가 없으니까 양지도 없고 음지도 없고 다 같습니다. 너무 타락해서 이 교회가 속화됐기 때문에 이제 그런 것도 표가 안 납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처음에 오셨을 때에도 교회들은 이렇게 타락해서 내려가서 예수님이 마태복음 23장에 일곱 번이나 ‘화 있을찐저’ 라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화 있을찐저 화 있을찐저’ 화가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 화가 무엇 때문에 화를 받는가? ○○○권찰님 구역에 ○무슨 선생이지? 요새 새벽 기도 인도한. ○○○선생 손들어 봐요. 안 나왔지? 그 열심쟁이 만날 여기 와 있는데, 내가 저 먼저 말 한 마디 나무랬더니마는서도, 이게 안 나왔지 싶어서 내가 물었는데 안 나왔습니다.

다 가짜요. 회개를 해야 돼요. 회개 안 하고 열심히 믿는 그것이, 고걸 딱 보고서 잡아낼 줄 알아야 그게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집사님 손들어 보십시오. 고 사람을 붙들고 잡아서 회개를 시키십시요. 기본 회개를 해야 됩니다. 원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자기 중심인 고걸 회개 안 하면 헛일입니다. 슬슬 추니까 그게 이래 하고 있지마는 제게 걸리면 안 됩니다.

지금은 그런 것이 표시 안 나는데, 요것이 다 요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한 자리에서 같이 일하는데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한다. 두 여인이 매를 가는데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한다.

매로 비유한 것은 교회 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매로 상징한 것입니다. 맷돌로 상징한 것은 교회를 상징해서 맷돌로 그렇게 했습니다.

왜? 매라 하는 것은 모든 잡곡들을 다 한테 넣어 가지고 갈면은 가루가 되어서 한테 타여 버립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그것을 솥에다 찌면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떡덩이가 됩니다.

교회는 이것이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김가나 이가나 박가나, 또 장관이나 거지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잡곡같이 별별 종자들이 많고 별별 개성들이 많지마는 그 모든 것이 교회 와서 뿌숴져야 됩니다. 맷돌에서 갈려 가지고 부숴져야 됩니다. 뿌숴져서 이거는 뭐 장관도 표 없고 하관도 표 없고 부자도 표 없고 교회 오면은 모든 것이 다 부숴져 가지고서 다 하나가 됐습니다. 부숴져 가지고서. 자기 개성이나 자기 인간의 지위나 그런 거는 하나도 없이 다 부숴지고 뭘로 똘똘 뭉쳐 가지고서 떡덩어리가 됐느냐? 성령의 은혜에 녹아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한덩어리가 됐습니다.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한덩어리 된 이것이 교회입니다. 주님의 공로와 성령과 진리로 한덩어리 된 이것이 비로소 주님이 잡수실 수 있는 떡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는 떡상이라는 떡상이 시설돼 있습니다. 그 떡상에는 떡을 항상 만들어다가 진설해 놓는데, 진설을 해 놓는데 그 진설해 놓은 그걸 하나님이 뭐 먹어서 주는 것은 아니나 그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떡이라 해 가지고서 그와같이 성막에 성전을 지을 때는 그렇게 해 놨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을 안에 상징하고 있는가? 우리가, 우리가 성전인데 우리 속에 하나님이 잡수실 수 있는 떡이 있어야 된다 그말입니다. 내가 부숴져 가지고, 내가 부숴져 가지고서 모든 사람으로 피와 성령과 진리로 한덩어리가 된, 피와 성령과 진리로 한덩어리가 된 요 사람이 돼야 하나님이 잡수실 수 있는 떡이 된다, 하나님의 양식이 된다 하는 그것을 상징해서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두 여인이 매를 간다 말은 여인은 누구를 가리켰느냐? 여인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여인을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은 왜 여인을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말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자주장해 가지고서 살 수 있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말하기를 하나님은 남편이요 교회는 신부라 이렇게 했습니다. 그말은 하나님이 남편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인은, 남녀 간에 그리스도인은 다 하나님의 신부라 이렇게 한 그것이 비유로 말한 게 아니고 그것이 원형입니다. 하나님은 남편이요 교회는 신부로 된 이 비밀이 어떤 비밀인가? 이 비밀을 우리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남녀 부부라는 이것으로 가지고서 계시를 했습니다.

남녀 부부라는 거 가지고서 계시를 해서, 그래서 성경에 에베소서에, 결혼할 때에 읽는 그 성구에서 말하기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하라. 두 몸이 하나가 되는 요 비밀을 말하노니 요것은 육체의 부부를 말함이 아니고 요것이 하나님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증거를 했습니다.

그러면, 두 육체가 하나된다 하는 고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두 부부가 결합해서 동침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두 부부가 합해 가지고서 한 사람이 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 아닙니다. 고것은 김가하고 이가하고 아주 타타인 남인데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는 한 육체를 이룬다 그말은, 우리가 지금 구원을 이룰라고 하고 있는 것은 영의 구원을 이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육의 구원을 이룰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육체가 된다 말은 육의 구원이 하나가 된다 그말입니다. 육의 구원이 하나가 된다 그말입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각각 제가 구원을 이루어서 제가 잘 이루면 구원이 잘 이루어지고 잘 못 이루면 못 이루어지고 제 개인 육체의 구원을 이루어지마는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개인 육체 구원이 되지 안하고 두 사람이 합하여서 한 육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것을 가리켜서 가정 구원이라 부부 구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무리 그 남편이 구원을 잘 이루었어도 아내가 없으면 좋겠는데 아내가 있으면 아내 구원하고 남편 구원하고 둘이 합해 가지고서 한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요 비밀이 크도다 이랬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하나의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그 부부 관계에 요것을 하나 계시해서 나타내는, 형식으로 계시해서 나타내는 것. 그러면 하나님은, 호세아서에 본 남편이라고 했고 또 우리는 신부라고 했고, 간부가 있는데 간부는 뭐이라고 했습니까? 예? 간부는 세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이 세상이 간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하고 요렇게 한짝되어서 부부된 요것이 요것으로서 영생하게 되는데 요것이 하나님을 버리고 악령 악성 악습이라는 이 세상과 짝이 돼 가지고서 인간이 멸망받는다 이래서 간부라 이랬습니다.

이래서, 본 남편을 두고서 간부를 좋다고 ‘간부가 내 먹을 거 입을 거 다 줬다’ 해 가지고서 간부를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죽을 때 되고 난 다음에, 죽을 때가 되면은 그때사 후회를 하면서 ‘하나님이 주셨고 그분은 영생하고 그분과 나와 하나됐을 때는 다 영생이었는데 그분 버리고 세상과 짝이 돼 가지고 하나돼 가지고서 한 것은 전부 멸망이다’ 죽을 때사 회개합니다. 죽을 때사 이제 자기가 하나님 대신으로, 하나님보다 낫게 여겼던 세상, 상대했던그 세상 상대가 나를 속인 것이요 나를 꾀운 것이라 하는 그것을 깨닫고 그때사 배반하고 본 남편에게로 돌아간다 말을 했습니다.

이래서, 요한계시 18장에 말하기를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면 자기를 영화롭게 자기를 사치스럽게 자기를 기쁘게 할꼬 하는 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요 사람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중심의 사람 자기 위주의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 있습니다. 이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과부가 아니라’ 과부가 뭐입니까? 남편 없는 게 과부 아닙니까? ‘나는 과부가 아니라’ 제가 말하기를 나는 내 상대방으로서 나를 책임지고 내가 의지하고 내가 바라보고 나의 머리가 되는, 머리가 되는 하나님이 나와 이래 떨어져서, 남편되어 있는 하나님 떨어졌으니까 내가 과부될 터인데 ‘나는 과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자라 했습니까? 어떤 자라 했습니까? ‘여황으로 앉은 자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라’ 이래 가지고서 하루 동안에 멸망받는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남편됨이 어떤 면으로, 육의 부부로 나타낸 그것으로써 정확하게는, 비유요 상징이기 때문에 나타내지 못하지마는 외부를 나타낸 그것은 이런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부부가 되면 아내의 모든 것을 남편이 다 책임을 집니다. 아내의 모든 흠이나 점이나 아내가 죄를 지으면, 요새 법은 이거 부부 법도 이것도 깨져 버려서 이거 다 이렇습니다. 아내가 죄를 지었으면 남편이 매를 맞아야 됩니다.

아내가 죄를 지었으면 남편이 징역을 살아야 됩니다. 아내의 모든 나쁜 점을 다 책임지는 것이 남편인 것입니다. 아내는 아무것도 없는 거지인데 남편이 큰 재벌가라면 재벌가와 결혼할 때에 재벌가의 그 모든 재벌이 아내의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소유권이 하나입니다. 합해서 하나입니다.

모든 흠과 점과 잘못된 것이 다 이것이 합해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아내의 잘못됨이 남편의 잘못됨이 되고 남편의 옳은 것이 아내의 옳은 것이 되어지고, 나쁘고 좋은 것이 한테 타여서 하나가 되어서 같이 책임지고 부하고 가난한 것도 아내의 가난이 남편의 가난이 되고 남편의 부요가 아내의 부요가 되고 요 면이 우리와의 부부입니다. 그러기에, 남편은 아내의 모든 것을 책임을 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내의 무지 무능도 남편이 다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또, 부부 유별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부부는 한 몸이기 때문에 동거 동행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와 동거 동행합니다. 부부가 합해 가지고서 자녀를 낳는 것처럼 하나님과 우리와 합해 가지고서 사람을 낳습니다. 새사람을 낳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믿음의 자녀라고 이렇게, 믿음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전도를 암만 해도 나 혼자 전도해 가지고 안 됩니다.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함께 전도할 때에 이 노력에서 새사람이 나옵니다. 남편과 아내의 좋고 나쁜 것이 하나가 된다. 약하고 강한 것이 하나가 된다. 남편의 권세가 아내의 권세되고 아내의 모든 비열의 천한 것이 남편에게 책임지고 담당이 된다.

이래서, 예수님의 대형으로, 대행으로, 대화친으로 우리가 하나되는 이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믿는 사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시고 또 형식이라는 이런 문제 가지고 가르쳐 줍니다. 그것이 이 자연 법칙을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 두 가지 방편이 있습니다. 하나는 특수 방편이요 하나는 보편 방편입니다.

특수 방편은 뭐이냐? 신구약 성경 말씀과 영감과 예수의 피공로가 합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특수 계시입니다. 보편 계시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가르쳐 주고 있는 일반 계시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 하나님의 창조를 가지고서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모든 섭리, 하나님의 이렇게 저렇게 섭리하시는 것을 가지고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어떻다 하는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인간들의 마음의 구조, 마음이 천층 만층 천태 만상의 별별 마음들이 있는 그것을 가지고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가 부부라고 말하니까 그만, 타락해서, 부부라고 말하니까 남녀 이성의 동침 요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요것을 가지는 것으로 ‘하나님은 남편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신부라’ 요한계시 21장에 보면은 신부가 지아비를 위해서 단장하는 것처럼 우리들은 하나님을 향하여서 단장합니다. 하나님은 내 모든 것을 책임졌습니다. 그분의 모든 부요와 충만이 다 내것이 됩니다. 나의 원죄와 본죄 이 모든 것을 당신이 책임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해 가지고 대형을 하고 대행을 해서 대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거는 아주 딴것인데, 딴것인데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와 이렇게 결합이 돼 가지고서 이래, 친합이 돼 가지고 되는 요것을 우리에게 가르친 것인데, 이 육체의 부부는 이것은 계시의 한 이용물로 가지고서 이와 비슷한 것이다 하는 것을 보여 준 것인데, 이 육체의 부부에는 사람들이 이 신령한 고귀한 것은 깨닫지 못하고 아주, 타락 후에 더러워진 이 음란 요것만 자꾸 머리에, 관심에 딱 있기 때문에 이런 것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남편이시요 교회는 신부라 하는 이 설교를 자주 하지를 못합니다. 오해하기 때문에. 성경에 있기 때문에 안 가르칠 수는 없고. 이래서, 자주 못하는 것은 듣는 자들도 다 타락해서 더러워져 있고 가르치는 자도 타락해서 더러워져 있기 때문에 자꾸 그렇게 옆으로 삐끌려 가기 때문에 바른 계시가 안 되는고로 이것을 자주 증거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 더불어 우리가 이렇게 돼서, 뭘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결합이 됐느냐? 부부 동침으로써 육신의 자녀가 나왔으니까 이것은 분명히 부정 모혈로 되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아들을 낳는데, 뭘로 결합이 됐습니까? 뭘로 결합이 됐습니까? 뭘로 결합됐습니까? 진리로 결합됐습니다. 진리로 결합이 됐습니다.

영감으로 결합이 됐습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로 결합이 됐습니다.

그러면, 종자는 어데서 나왔습니까? 종자는 교회에서 생겼습니까 하나님에게서 생겼습니까? 종자는 어데서 생겼습니까? 남편에게서 생겼습니다. 하나님에게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피공로와 성신의 감화 감동과 진리와 이 셋이 합하여 가지고서 이 교회 속에 와 가지고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이를 증거함으로써, 증거함으로 이 셋이 씨가 돼 가지고서 믿는, 교회라는 형태 속에, 교회라는 조직 속에, 교회라는 이 모든 분위기 속에, 교회라는 이 복음 운동 속에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한 자리에 둘이 일하고 자나,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하는 이 말은, 첫째는 이 종자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종자돼 가지고서 생겨난 자가 있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말미암아 종자돼 가지고 생겨난 자가 있으니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로 된 자도 있고 둘째 아담에게 속해 가지고서 된 자가 있습니다. 이것으로써 그 영이 멸망받고 구원 얻는 것입니다.

그 영이 둘째 아담과 결합된 그자 있고 첫째 아담과 결합된 그자가 있기 때문에 첫째 아담과 결합된 자는 땅에 속한 자요 땅에 속한 형체를 가졌고 둘째 아담은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하늘에 속한 자의 형체를 가져서, 땅에 속한 자의 형체가 먼저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체가 다음으로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체가 땅에 속한 자의 형체를 이것을 다 삼켜서 이것을 성화시켜서 변화시킬 때에 구원이 된다 이렇게 고린도전서 15장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요한복음 3장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도 못한다 가지 못한다 이랬습니다. 또 요한1서에 5장에 보면, 5장 7절에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그러면, 이 셋이 우리의 씨가 됩니다. 우리가 중생된 것이 뭘로 중생 됐느냐 중생된 것이 한 가지로 중생됐습니까 몇 가지로 중생 됐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세 가지로 중생됐습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 이 셋으로 우리기 중생됐습니다. 중생됐습니다.

마치 육의 부모에게서 나면은 아버지에게서는 정충이 나와서 씨가 나왔고, 첫 아담에 속한 것은. 나왔고, 그다음에는 어머니의 피 속에서 요것이 자라 가지고서 비로소 열 달이 되면은 사람으로 돼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종자가 나와 가지고, 어머니 태 속에서 자라는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의 이 태 속에서, 태라 말은 비유입니다. 교회의 태속에서 자라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종자가 나왔으니까 그 종자가 무엇입니까? 그 종자가 몇 가지로 되어 있는 종자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세 가지로 되어 있는 종자입니다. 이 종자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종자인데 육체로서는 아버지에게서 부정이, 정충이 나와 가지고서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하나 계시라 말이오. 하나 이 신령한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런 것을 만들었기 때문에 실은 육체의 부부 제도 이것은 때가 지나 가면은 나중에 가서 이것은 다 끝은 납니다. 그때는 천사와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부부 제도로써 행동해서 건설한 미는 다 같이 가지고서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부의 형체라든지 과거라든지 기억이라든지 그 모든 이루어 놓은 공로라든지 그런 거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것이 필요가 없는 때가 됩니다. 더 중요하고 좋기 때문에 그런 것이 필요가 없는 때가 됩니다.

모르는 것이 아니고 알고 있고 또 해 놓은, 아름다움에 대한 영광은 없는 게 아니라 그대로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게 있기 때문에 마치 그 사람이 양자 가기 전에는 저 십촌이나 넘어된 아주 거리 먼 사람인데 양자를 갔으면 즉시 부자가 됩니다. 부모와 자녀니 또 사촌간이니 이렇게 촌수가 가까워집니다. 먼 촌수를 버리고 가까운 촌수를 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먼 것은 버리고 더 중요하고 깨끗하고 온전한 것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은 남편이시요 우리는 그에게서 난 그의 자녀라.

그의 씨로 우리가 된 자녀라. 이래서, 베드로전서 1장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거듭난 것이’ 뭐라 했습니까? 썩어질 뭐?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고'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고 항상 있고 살아 계시는’ 또 뭘로?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됐다 이랬습니다. 고거 하나만 표시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영생하는 새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우리가 나왔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우리의 영이나 우리의 마음이나 우리의 고기덩어리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입니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인데 이제 둘째 아담에게서 우리에게 씨가 나왔습니다. 이 씨가 뭐이냐? 중생하는 씨인데, 이 씨가 영생되는 씨인데 이 씨가 하나님의 자녀되는 씨입니다. 그러면 이 씨가 나왔는데 이 씨가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씨 무슨 씨? 진리 진리가 나와서 우리를 살린 씨가 됐습니다.

진리보다도 더 깨끗하고 온전한 영감이 우리를 중생시킨 씨가 됐습니다. 진리와 영감이 증거하고 있는 진리와 영감이 뭐하고 있는가? 진리와 영감은 예수님의 대형과 대행과 대화친의 이 공로가 얼마나 넓고 크고 깊고 얼마나 존귀한 이 사실을 우리에게 고대로 바로 알려 주는 것이 진리요 성령이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진리는 하나의 다리요 영감은 다리요 노정이요 주님의 대형 대행 대화친은 원 자체 본체요 이 본체가 나오기를 영감으로 나왔고 진리로 나와 가지고서 우리가 비로소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새사람이라 말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속 사람이라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영생을 가진 자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치 생명이 있으면 움직이고 생명이 없으면 송장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움직이는 것은, 새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진리로 움직이고 영감으로 움직이고 예수님의 피공로로 움직입니다. 이것이 새사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 셋이 내 마음을 주관하고 이 셋이 내 몸을 주관해서 내 몸과 마음은 이 셋이 주관해가지고 이 셋에게 복종하고 이 셋에게 피동되고 이 셋과 연결이 돼 가지고 있을 때에 고것이 새사람입니다.

새사람이 당장에 옛사람 되기 쉽습니다. 옛사람은 어떤 것이 옛사람이냐? 내 마음과 내 몸이 악령 마귀 고놈하고서 결합이 되고 원죄하고 결합이 되고, 원죄가 어떤 것이 원죄입니까? 원죄가 어떤 게 원죄입니까? 자기 중심. 이 원죄도 알기 쉬운 것 아니오. 원죄를 지금도 세계 교회들이 지금 원죄가 뭐이라 하는 것을 정의를 못 내고 있습니다. 이게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이 시대에 알려 주기 위해서 이래 알렸는데 이 복음이 세계에 퍼쳐 나갈 것입니다. 반드시. 원죄는 자기 중심이 원죄입니다.

또, 이 본죄는 뭐이 본죄입니까? 자기가 지은 본죄는 무슨 본죄입니까? 원죄가 들어서 행동한 것이 본죄입니다. 원죄의 새끼가 본죄입니다. 인간이 자기 중심된 것이 악령의 새끼이고 악령과 악성의 새끼, 악령의 새끼가 자기 중심인 악성이요 악령과 악성의 새끼가 이것이 무엇입니까? 뭐입니까? 악습, 익힐 습(習)자 습관, 버릇, 구습(舊習), 습관, 악습(惡習), 이것이 안 믿는 사람들은 자꾸 악습이 쌓여 가게 되는 것입니다. 악습이 점점 저축돼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의 그 모든 행동은 무엇이 주관하는가? 자기가 주관해 가지고서 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뭐이 주관하는가? 악령이 주관해 가지고서 하고 있습니다. 중생된 새사람은 그것은 이 몸과 마음을 누가 주관하는가? 누가 주관합니까? 제일 처음에 누가 주관합니까? 요걸 알아야 됩니다. 모르면, 새사람으로 사는 걸 모르면 구원이 헛일이라 그말이오. 이거 암만 해도 모르고 이래 하니까 변화가 안 돼요. 변화가 되면 뭣 때문에 예수 한 분이면 다 되는데 골빠지게 할 게 뭐 있습니까? 예수 한 분이면 다 되는데, 그분만 오면 심판에 무사 통과가 될 수 있는 자가 되어지고 지극히 크신 분이 동거 동행하는 자가 되어지고, 껍데기는 뭐입니까? 기적과 축복. 이것으로서 예수 믿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제 힘으로 사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 아니오.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 되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 정말로 믿어 보십시오. 기적과 축복이 여러분들의 하는 일에 ‘내 힘으로 이거 골빠질 게 아니라 하나님의 해 주시는 것이로구나. 나는, 내가 나로 살라고, 하나님의 아들로 살라고 애를 쓰면 이것은 저절로 되는구나’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보고 난 다음에라야 그때 믿음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이 뭐입니까? 아들로 사는 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오.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뭐이냐? 하나님에게서 난 자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씨가 우리에게 왔는데 몇 가지로 그 씨가 우리에게 왔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녜, 세 가지로 씨가 와 가지고서,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이 영과 마음 몸이라는 형체는 첫째 아담에게 받았는데 이것이 죽었습니다. 죽었는데 이제 둘째 아담에게서 이 세 가지 생명의 씨가 와 가지고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꼭 껍데기는 같은 일을 하나, 같은 일을 하나 요것이 옛사람이 주장돼 가지고서 그 일 하는 사람도 있고 새사람이 주장돼 가지고 그 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요것이 마치 제철소에 쓰지 못할 녹슬은 고철이 있고 새로 만들어 놓은 새 쇠가 있는 거 모양으로 고철이 없으면 제철 공장이 절단납니다. 한쪽 머리는 고철이 산더미같이 재였고, 한 군데는 용광로를 통해 가지고 고철이 새 쇠로 되어 나가는 것이 이것이 제철 공장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새 쇠로 되어 있는 것은 적고 고철로 되어 있는 것이 많습니다. 이 고철이 이것이 용광로를 통해 가지고서 이것이 변화되는 것처럼, 용광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용광로는 셋으로 되어 있는 용광로입니다. 셋이 합해서 용광로입니다.

셋, 뭐뭐? 진리 영감 주님의 대속의 공로, 이 세 가지가 여게 다, 요한1서 5장 6절 이하에 보니까 이제. 증거하는 이는 셋이라 했다 말이오. 증거하는 거는 자꾸 이렇다 저렇다 가르쳐 주는 게 증거 아닙니까? 이것이 밥이다 밥이다 자꾸 이래 말하니까 자꾸 들으니까 내가 밥인 줄 안다 그말이오. 이것 모양으로 증거하는 이는 셋이라. 이 셋이,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피공로가 자꾸 증거를 해 가지고서 우리가 비로소 고철이 이 세 가지 증거라는 용광로 속에서 녹으면 새 쇠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새 쇠가 됩니다.

그러면, 고철은 용광로라는 그 화력 속에 들어가 가지고서 녹아서 녹이니 뭐니 더러운 것은 다 찌끼로 나가 버리고 새 쇠가 되어 나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무슨 용광로에서 우리가 변해서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은 다 썩어져 버리고 벗겨져 버리고 이거는 다, 그거는 다 포기되고 나가 버리고 새사람이 되어집니까? 우리는 무슨 용광로에서 우리가 변화를 받습니까? 세 가지로 된,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비유컨대는 용광로와 같은 여게서 이 고철 같은 우리가 신철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고린도전서 6장에, 여러분들이 가서 읽어 보십시오. 거게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전에 악행자요 살인자요 음행자요 우상 숭배자요 거짓말하는 자요 마귀에게 속한 자라 이런 자이더니마는서도 이런 자가 변해서 너희가 되지 안했느냐, 이러기 때문에, 네가 과거에 되기 전에 이런 자가 아니었더냐? 이러기 때문에 이런 자 된 것을 이상하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변해서 너와 같은 이런 자가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자를 네가 대적하고 멸시하지 말고 그런 자를 변화시켜서 이런 새사람을 만들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에서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가운데에 잘못하면, 내가 어서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으로 하면 이것이 영영한 자기의 기업이요 상급이 될 터인데 속에 사람을 바꾸지 안하고 이 사람으로 이래 하다 보면은 사람 보기에는 같이 하는 거 같았는데 하나님 보실 때에는 심판받을 원수의 대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회개해야 됩니다. 날마다 회개해서, 한 자리에서 둘이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는 것은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 세 가지로 살아난 새사람이 내 마음과 내 몸을 주관해 가지고 그 일을 했을 때에는 이것이 다 영생이 되어지는 것이고 악령 악성 악습이 내 마음과 몸을 주관해 가지고서 일을 하면은 껍데기 보기에는 꼭 같은 일을 했지마는 속에 주인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은 멸망을 받는다는 것을 여게 똑똑히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다 옛사람 뭉텅이 이것이 변해서 새사람으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새사람으로 우리가 살라고 하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새사람으로 살 수 있느냐? 이 고철이 어떻게 되면은 새 쇠가 되어지느냐? 비유입니다. 그러면 옛사람이 어떻게 하면 새사람이 되어지느냐? 새사람이 어떻게 하면 새사람 되어집니까 어데 들어가면 새사람 됩니까? 주님의 신구약 성경 말씀을 내가 자꾸, ‘증거한다’ 했어. 성경 말씀을 내가 자꾸 듣습니다. 성경 말씀을 자꾸 들으니까 옛사람은 자꾸 녹아집니다. 이것은 내가 배척을 합니다. 옛사람은 배척을 하고 이제 진리는 ‘이게 옳다’ 진리를 내가 영접합니다. 진리를 영접하고 나니까 차차 영접하니까 나중에 가서는 성신의 감동이 우리를 감화시켜 자꾸, 성신의 감화로 변화가 됩니다.

과거에는 내가 죄를 소원했는데 이제는 죄를 미워하고 의를 소원합니다. 과거에는 모든 인간을 다 잡아 먹어서 내 밥을 삼을라고 들었는데 이제는 내가 어쨌든지 다문 한 사람에게라도 나로 하여금 그에게 혜택을 주고 도움을 줘서 한 사람에게라도 환영을 받고 한 사람에게라도 감탄을 받고 평가를 받겠다 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욕심도 변화됐지, 생각도 변화됐지, 취미도 변화됐지, 과거에는 죄 짓는 놀음하고 춤추고 술먹고 모두 앉아서 다른 사람 헐고 뜯고 하는 그게 재미가 있어서 저녁을 먹고 나면은 그거 한번 그렇게 죄를 안 지으면 살지 못해서 이웃에 가 가지고서 실컷 논인 장단하고 그리 아니면 이런 모든 더러운 죄 짓는 그런 거 한번 실컷 생각하고, 하고 하니까 이제 잠이 오고 흐뭇하니까 이제 가서 누워 잘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듣고 영감을 받고 예수님의 피공로를 자꾸 사모하고 이라다 보니까, 내 속에 속 사람이 점점 장성해지고 보니까 과거에 재미 있던 그 사랑방에 가 가지고서 그 회석에 가 가지고 있으니까, 들어 보니까 이 사람 말하는 것도 멸망할 말, 저 사람이 말하는 것도 멸망할 말 모두가 사람이 전부 다 멸망할 마음, 멸망할 생각, 멸망할 정신, 멸망할 심보, 멸망할 취미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가 봐야 까치 설에 까마귀 모양으로 아무 유가 안 됩니다.

유가 안 되니까 나도 가니까 재미 없고 그 사람들도 ‘아무것이 그자식 이상하네.

그전에는 그게 오면 그게 우리 속에 제일 재미 있는 인기를 끌었는데, 그거 오더니마는서도 똑 꿔다놓은 보리자루 모양으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고 그게 있으니까 우리 분위기가 깨져서 재미가 없네’ 이 사람이 됩니다. 저거도 재미 없고 나도 재미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라다가, 새벽 잠을 못 자고 일찍 나와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니까 마음이 상쾌하고 ‘나도 저와같이 살아야 되겠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져야 되겠다’ 소원이 땅에 있었는데 하늘에 있고 피조물을 의지하고 바라볼라 했는데 그까짓 거 가치 없어. 오늘 떠날지 내일 떠날지 모를 것이기 때문에 완전자 영생자 하나님 그분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분에게 소망을 가지고 싶고, 육의 생명은 암만 건강해도 오늘 죽을지 끝날지 모른다. 육의 생명 이 생명을 자기 생명으로 가지고 살기 싫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된 이 영생, 이 영생이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 영생으로 살라 하는 사람이 되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차차차차 우리가, 한 자리에서 같이 일하나 멸망할 사람과 구원을 얻을 사람이 있으니 구원 얻을 사람은 진리 힘으로 사는 사람이요 영감의 힘으로 사는 사람이요 예수님의 피공로, 예수님이 대형해서 사죄 주셨으니 나는 죄 지을 수 없다. 대행해 가지고서 나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의인 만들어 줬으니 나는 의인으로 사는 나는 요것을 양보할 수 없다. 하나님과 결합된 이 결합을 양보할 수 없다. 내 직장을 뺏겨도, 내 소유를 뺏겨도, 감옥에 갇혀도, 죽여도 진리 어길 수 없고 영감 어길 수 없고 예수님의 피공로 배반할 수 없다 하는 이 사람은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보다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이렇게 평가한 사람은 세상이 해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렇게 새사람으로 사는 데에는 일호로 뭘로 살아야 됩니까? 요 순서를 가르치기 위해서 합니다. 새사람으로 살라면 첫째로 뭘로 살아야 됩니까? 진리로 살아야 됩니다. 진리.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살다가 보면은 어떤 사람 됩니까? 진리의 말씀대로 살다 보니까 무슨 사람 됩니까? 영감 사람 됩니다.

성신의 감화 감동을 입는 사람 됩니다. 영감 사람되고 진리의 사람되고 보니까 나중에는 무슨 사람 됩니까? 진리와 영감이 무엇을 소개합니까? 예수님의 피공로를 소개합니다. 진리가 뭐하러 왔습니까? 예수님의 피공로를 우리에게 알리러 왔습니다. 영감이 우리에게 뭐하러 왔습니까? 예수님의 피공로를 알리러 왔습니다.

우리가 진리와 영감을 접촉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공로가 없으면 진리와 영감을 우리가 접촉을 못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진리는 우리의 소개자요 영감은 우리의 소개자요 우리가 가서 거처하고 살 곳은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서 우리의 뭐이라 했습니까?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한 자리에서, 멸망받지 안할 사람으로 살 때는 뭘로 사느냐? 내가 현실에서 같이 일하되, 사람 보기에는 모르지마는 자기 속으로 ‘내가 여게 일하나 내가 진리를 어겨서는 하지 안할 것이고 진리대로 나는 하겠다’ 진리가 자기를 주관해 가지고서 일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주관해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지 이 세상 무슨 물질이나 사람이나 그것이 주관해 가지고 일하고 있는지 사람이 어찌 보겠습니까? 모릅니다. 사람은 보고 모릅니다.

다니엘이 이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의 대속이 들어서 그 사람을 주관해 가지고서 총리대신노릇을 했지마는 사람들 보기에는 다른 사람과 꼭 같습니다. 다리오 왕에게 얼마나 충성했습니까? 했지마는, 마지막에 이 사람이, 다리오 왕을 위해서 살고 있느냐, 거게 피동돼서 살고 있느냐, 이 세상 벼슬이나 권세 거게 피동돼 살고 있느냐, 진리와 영감 하나님에게 피동 되어서 살고 있느냐 그걸 몰랐는데 마지막에 뚱딴지 같은 일이 하나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아라’ 하는 말이 딱 나오고 보니까 확 폭발됐습니다. 나중에 그 한 마디가 딱 나오고 보니까 그다음부터 그 사람이, 다리오 왕을 위해서 산 것도 아니고 총리대신의 그 지위 위해서 산 것도 아니고 영광위해서 산 것도 아니고 뭐 위해 살았습니까? 뭐 위해 산 것이 표났습니까?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위해서 산 것이 폭로가 됐습니다. 그러면 그거 위해서 사는 그 생활이 얼마나 강했습니까?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서 죽어서 사자밥이 돼도 양보할 수 없는 사람으로 강한 사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한 자리에서 멸망받고 구원 얻으니 구원 얻을 사람으로 사는 데는 일호가 내가 성경 말씀대로 살라고 애를 쓰는 가운데서 영감대로 사는 사람되어지고 이렇게 애쓰는 가운데서 예수님이 피공로 속에서 사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나와서 똑똑히 알아서 배워야 됩니다. 재독을 여러분들이 들으십시오.

재독을 안 들으면 늘, 녹 끼인 것을 벗겼다가 또 녹이 끼고 녹이 끼고 하니까 항상 새 세계는 보지를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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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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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두 신앙 노선/ 마태복음 4장 17절/ 830321월새 선지자 2015.10.28
51 두 신앙 노선-씨 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장 18절-23절/ 830503화전집회 선지자 2015.10.28
50 두 신앙노선/ 창세기 13장 1절-18절/ 871018주후 선지자 2015.10.28
49 두 신앙노선-하나님이냐 자기냐/ 창세기13장 8절-13절/ 830502월밤집회 선지자 2015.10.28
48 두 신앙노선-하나님이냐 자기냐/ 이사야 49장 22절-23절/ 830331수새 선지자 2015.10.28
47 두 양식/ 요한복음 6장 27절-35절/ 840226주전 선지자 2015.10.28
» 두 여인/ 마태복음 24장 40절-44절/ 860203월새 선지자 201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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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두 자유/ 갈라디아서 5장 1절/ 880908목새 선지자 2015.10.28
42 두 종류의 사람/ 요한일서 4장 7절-11절/ 861128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8
41 두 종류의 생활-가인과 아벨/ 창세기 4:1-8/ 800117목새 선지자 2015.10.28
40 두 종류의 생활-가인과 아벨/ 창세기 4장 1절-9절/ 800116수야 선지자 2015.10.28
39 두 종류의 증인들을 보고 온전을/ 히브리서 12장 2절/ 880711월새 선지자 2015.10.28
38 두 종류의 증인들을 보고 온전을/ 히브리서 12장 1절-2절/ 880709토새 선지자 2015.10.28
37 두 종류의 지식/ 고린도전서 1장 18절-21절/ 820602수새 선지자 2015.10.28
36 두 종류의 짐승/ 요한계시록 13장 10절-18절/ 821013수야 선지자 2015.10.28
35 두 주인/ 마태복음 6장 24절-34절/ 820107목새 선지자 201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