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인도

 

1984. 2. 17. 금새벽

 

본문: 로마서 8장 4절∼6절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 온 은혜가 있습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여기 영을 좇아 행한다 그말은 우리의 영을 말한 것 아닙니다. 우리의  영을 말한게 아니고 성령님을 말합니다.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우리가  택함을 입고 중생되고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한 우리들입니다.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좋아 행하는 우리에게'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알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또 우리가 알기 전에 성령과 진리로 우리가 중생함을 입었고  그 후에 우리 알기에 예수님 믿기를 시작한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살아가는 길, 살아가는 그 방편, 살아가는 방편이나 살아가는  길이나 같은 말이겠습니다.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방편이라 살아가는  길이라 자꾸 이렇게 말하는 것은. 길이라 하면 알아들을 사람 있고 또 살아가는  방편이라 하면 알아들을 사람 있기 때문에 두 가지 말을 하는 것이지 실은 한  가지 말만 해도 족한 것입니다. 살아가는 방편과 길이 둘이 있는데 이 길로 살  수도 있고 저 길로 살 수도 있고 이 방편으로 살 수도 있고 저 방편으로 살 수도  있고 우리의 살아가는 길은 두 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길로 가고 어떤 사람은  저 길로 가고 길은 둘뿐인데 어떤 사람은 이 길로 가다가 또 저 길로 가다가 또  저 길로 가다가 이 길로 가다가 자꾸 이렇게 버끔지어서 그렇게 가는 사람도  있고, 한 길만 쪽 계속해서 잘 가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는 길은 육신을 좇아서 가는 길과,-그 말은 육신을 따라서  육신이 인도하는 대로, 육신 좋아 하는 대로. 육신 하자 하는 대로 육신만  생각하는 대로 이렇게 사는 길이 하나 있고, 육신은 어쨌든지 육시은 생각지  아니하고 영만 생각하고 영이 좋아하는 대로 영을 위해서 사는 그 길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 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 그래 이 두 길이  있는데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우리가 육신을 따라서  육신 좋아하는 대로 육신이 하자 하는 대로 그렇게 행하지 아니하고 영이 좋아  하는 대로, 영이라면 성령입니다. 우리 영 아닙니다. 영이 좋아하는 대로,  성령이 좋아하는 대로, 성령이 하자 하는 대로, 성령 위주로 이렇게 행하면,  행하기만 하면, 이렇게 행할라고 우리가 애를 쓰고 힘을 쓰고 우리가 하기만  하면, 애 쓰고 힘 쓰고 하기만 하면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는 이 율법은 뭣인고  하니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입니다.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이 요구하는 요구를 다 이루어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지성법과 지공법이 요구하는 그 요구를 다 이행할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은 높이도 끝이 없고 넓이도 끝이 없는,  말하자면 온전하고 구비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 법칙인데, 아주 까다로운  법칙이요 정확무오한 법칙이요 그 법칙대로 된 것은 아무 사망도 사망시킬 수  없는 절대적인 법칙인데 이 법칙을 우리가 다 행할 수 있다 그말입니다. 그  율법이 요구하는 그것을 다 만족히 이룰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을 우리가 다 완수 할 수  있다, 다 지킬 수 있다, 지성법이 우리를 아무리 심사해도 걸릴 것이 없고  지공법이 심사해도 걸릴 것이 없고 지성법과 지공법이 잘 됐다고 이렇게  찬성하지 우리에게 대해서 정죄할 만한 그런 일이 하나도 없는 자가 되도록 하려  함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 말씀은 우리가 예사롭게 지나가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의 요구 만족이라, 법이라는 것은, 법의 요구는  뭐이냐? 법을 내놓고는 이 법대로 해라 하는 그것이 법의 요구입니다.

예를-들어서 조그만한 사소한 일이라도, 교통법으로 여기에 는 횡단보도가  아니니까, 횡단의 길이 아니니까, 여기에 는 이 길을 가로 건너가는 길이 아니니  여기는 건너가면 안 된다 하는 그것이 교통법이겠습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교통법. 교통법을, 여기에 는 운전 기사들은 잘 알고 있겠는데 우리 평인들도 다  그거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 서는 건너 갈 수 있다 여기에 서는 건너가지  못한다, 또 여기에 는 푸른 불이 켜이거든 건너가고 붉은 불이 켜이면 못  건너간다 이거 다 교통법입니다. 교통법. 교통법은 뭣하는 법이냐? 교통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법대로 지켜라. 그 법이 요구하는 것은 이 법대로 지켜라  하는 것을 법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기에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 하는 이율법은  인간이 세운 법이 아니고 하나님이. 전지전능의 하나님이 세우신 그 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입법한 입법이니. 그 입법은 지성 지극히 거룩한 법이요, 지극히  공변된 법인데 이 법이 하라 하는 대로 다 할수 있다 그 말을 가리켜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함 이라고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뭐 우리는 두 말할 것 없이 지옥에 있던 자요  지옥에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지 옳은 것은 털 끝만치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우리에게 있고 또 성령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또 진리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과 진리가 우리  안 팎에 다 있습니다. 안에도 우리가 성령으로 살아났고 진리로 살아났고,  우리가 예수님 믿기 시작된 것은 성령의 힘으로 예수 믿기 시작했고 진리의  힘으로 예수 믿기 시작했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예수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가리켜서 요한 1서에는 성령과 물과 피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를 증거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은 어느 정도 힘을 쓰면은 옳은 행위를 할 수 있느냐? 힘만 쓰면, 우리 힘은  얼마 안 되지마는 우리가 힘만 쓰면 우리할 일만 하면 피와 성령과 진리가  우리를 도와서 하나님의 율법에 만족을 시킬 수 있다, 뭐 지성법 지공법도  하나도 그 법에 걸릴 것 없이 그 법대로 딱 들어맞는, 그 법에, 그 법이 아무리  우리를 조사해서 우리를 정죄할라고 애를 써도 정죄할 수 없는 그 법에 딱  들어맞는 그런 완전 행위 완전의 사람이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여기에  말씀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그 앞에보면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 다음에 해석을 합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을 좇는 사람은 항상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자  이렇게 하면 육신이 어찌 되느냐, 육신의 일이 어찌되느냐? 이라면 육신의 일이  어찌 되느냐 영의 일이 어찌 되느냐?-여기 건축부에 일하던 ○뭐이지? 여직원,  ○ 뭐요? ○○○? ○○○ 왔으면 손들어 봐요. ○○○, 이것도 시집가고  장가가디마는 둘이 다 서로 죽이는구나. ○○○ 남편 손들어 봐. ○○○ 손들어  봐. 안 왔네. 그 둘 다 꼭 꼭 새벽기도 나오던 것이 그만 결혼하고 나서는 그만  안오는 거라. 그라면 뒈지고 가정도 망하고 다 망해. 그까짓 것 애 낳아보면 뭐  할 것이며 밥 먹고 살면 뭐 할 것인가? 살아 봤자 사망밖에는 못 만드는데 무슨  소용 있어야지? 그 남편이 뭐 하늘나라 까지 잘 끌고 데리고 갈 건가 그 아내가  뭐 하늘나라 까지 데리고 갈 건가? 그까짓 것 아무 소용 없어. 그저 예수님을  믿어 구원준비하는데 그게 필요하지. 그게 필요하지. 그것 하기 위해서 시집도  가고 장가도 가고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는  것이지 그것 아니면 무슨 소용있어? 어리석어 그렇지. 엇다가 뭐 재미를 붙이고  있어? 재미 붙여 봐야 저 망할 것뿐이지 하나도 유익은 털끝 만치도 없어. 이거  남녀 권찰들. 반사들은 아직까지 어리니까 내비두고 남녀 권찰들 조차 정신이  죽었어요. 정신이 죽은 것은 왜 죽었다 하느냐? 결혼 상담을 이래 해 보면 전부  가치가 육신에 있어. 가치가 육신에 있어. 전부 가치가 육신에 있고 영에 있지  안해. 영의 가치를 따져 가지고서 그 총각의 가치를 따지는 것이 아니고 육신의  가치를 따져 가지고서 가치를 따져. '이거는 금이다.' '뭐이 금이고?'  '육신적으로 해 보면 금이다.' '아, 이 금이다. 금덩이다.' '금덩이라니 뭐이  금덩이고? 그까짓 것 재산도 없고 얼굴도 삐뚤어졌고 학력도 없고 한데 뭐이  금덩이고?' '이거는 하나님과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금이다.' 이라는  권찰은 없다 말이오. 그라면 다 망합니다. 제가 그 사상이 그리 되면 모든 하는  일이 전부 다 그대로 합니다. 이러니까, 말을 해야 그 말이 귀에 안 들어 와.

정반대 말이니까, 그까짓 것 뭐 대학을 하고서, 또 대학원을 해서 박사면 뭐 할  거야? 아무 가치 없어. 박사 그까짓게 우리를 구원해 줄 건가? 안 됩니다. 우리  구원 방해만 하지 아무 소용 없어. 이러니까, 그것보다도 '이 사람의 영의  중량이, 영이 어느 정도 그에게 있느냐?' 영의 중량으로 가치를 삼지 안하고  순전히 육신의 중량을 가지고서 가치를 삼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라면 안  됩니다. 이런 말은 해야 그러니까 들리지 안할 거라. 돈 벌이나 된다 하고 뭐  어데 육신적으로 세상에서 부귀 영광이나 있는 그런 거나 있다 하면 좋다 가치  있다 이라지. 노래에 그런 말이 있데, '부귀와 영광이 무슨 필요 있나 예수 없는  것은 다 죽고 망하는 것인데 예수 외에 뭐 구할 것이 뭐 있느냐 예수 밖에  무엇을 달리 구할 것이 있느냐.' 그거 다 성도들의 믿음의 말들이라 그 말이오.

그게 어리석지, 육신의 일로 사는 그것 어리석습니다. 그라면 안 돼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영의 일로 인도 하면 상이 찌푸려 가지고 '죽을 지경이다.'  이라고 마귀란 놈이 육신의 일로 인도해 가지고 가면은 '오늘 형통하다 참 오늘  재수 있다 하나님이 내 기도 들어 주신다' 하나님이 뭐 저 지옥 가라고 제 기도  들어 줘? 그것은 마귀가 그 소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마귀도 힘있어. 마귀가 이  세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5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 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요 두 길을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 영의 생각, 그러면 영의 생각은 성령님의 생각을  말하고 육신의 생각은 무엇을 말합니까? 육신의 생각이라고 그래 말하는 것은  요것은 악령의 생각이라 그말입니다. 악령의 생각. 육신의 생각은 악령의  생각이라 말이오. 육신의 생각은 악령의 생각이라 악령의 생각.

 그런고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생각뿐입니다. 성령의 생각 악령의 생각 그  둘뿐인데, 악령의 생각을 왜 육신의 생각이라 이렇게 말했는가? 악령이 벌써  사람들 속에 들어가 가지고서 그 마음 속에 들어가 있고 고기 덩어리 속에  들어가 있어 가지고 그 마음을 작용하고 고기 덩어리를 작용하기 때문에 성령의  생각이 아닌 그 생각은 어떤 생각이든지 다 마귀가 운전한 생각입니다. 운전수가  운전대를 거머쥐고 이리 저리 하는 것 처럼 이 마음이라는 것이든지 고기  덩어리라는 그런 것은 운전 기사가 차를 운전하는 거와 같은 차와 같은 것이요.

이 마귀란 놈이 이것을 운전을 하면 마귀 저 가고 싶은 대로 끌고 가고 성령님이  운전하면은 성령님이 하고자 하시는 대로 이 몸을 운전합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마음과 몸은 성령이 운전하는 것 하나 있고 마귀가 운전하는  것 하나 있고 둘뿐입니다. 둘뿐인데. 성령을 좇는 일 성령의 일 성령의 생각  하는 것은 성령님이 우리 마음과 몸을 운전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했고, 육신이라  하는 것은 성령님이 운전하는 그 반대의 성령님이 운전하지 안하는 운전, 안  하는 운전은. 제가 스스로 제가 운전하는 것 같지마는 안 됩니다. 그것은 전부  악령의 운전으로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거는  뭐 내 마음대로 하지 뭐, 내 맘대로 했지 마귀 마음대로 하나? 이것은 뭐 내  생각대로 한 것이지 마귀 생각대로 하나? 이거는 내 욕심대로 했지 마귀  욕심대로 하나?' 하지마는 성령의 인도가 아니면 마귀 인도입니다. 성령의  생각이 아니면 마귀 생각입니다. 성령을 따라서 행치 안한 것은 전부 마귀를  따라서 행한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확정을 지우는 데에서 우리의 구원은 참  오십 프로가 반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반이 되는 것  아니지마는 요 지식만 확고하게 가지고 있으면 자기의 구원을 다 이룰라고  하면은 반이나 이루는 정도로, 반 정도나 어려운 일이요 이게 크게 효력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내 마음이나 내 몸이 내대로 움직일 수는 절대 없습니다. 인제.

그것은 에덴동산에 타락하기 이전에는 제맘대로 움직일 수도 하나님의 인도대로  움직일 수도 있었지마는 그때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움직였지 자기 뭐 다른  것 따라서 움직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배암 그놈이 배암이 아니라  마귀입니다. 마귀가 배암을 입고 와 가지고 미혹을 할 때에 배암에게 꼬여서  서로 경쟁하고 투쟁 하다가 배암에게 인류 시조 아담과 해와는 졌습니다. 진  셈입니다. 짐으로서 정죄를 받아서 다 사망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지 보통 부정 모혈. 아버지와 어머니로 인해서  난, 보통 생육법으로 난 일반인, 일반인이라고 하고 자연인 이라고 합니다.

일반인이라 자연인이라 하는 것은 일반인 아닌 사람이 있고 자연인 아닌 사람이  있으니 일반인 아닌 사람이 하나 있고 자연인 아닌 사람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는 누구냐? 곧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 외에는 전부  일반인이요 다 자연인입니다. 있반인과 자연인은 이는 벌써 다 마귀에게  점령당했기 때문에 그저 제가 대통령이라도 마귀가 운전하고, 왕이라도 마귀가  운전하고, 학박사라도 마귀가 운전하고, 미인 용사라도 마귀가 운전하고 마귀가  운전 안하면 성령님이 운전 합니다. 자기를. 둘뿐입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와 성령과 진리의 이 도움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람은 마귀의  운전을 따라서 제 마음은 움직여지고 제 몸은 움직여지지 그 외 딴 길이  없습니다. 한 길뿐입니다. 그러나 구속함을 받은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이.

성령님이 운전할 수도 마귀가 운전할 수도 있고 두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왜 성령님이 인도하도록만 그만 그리 해 버리지 안하고 이 두  길을 가지고서 이리도 가고 저리도 갈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를 괴롭히는가?  괴롭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를 소모양으로 고삐 끼워가지고서,  고삐 끼워가지고 소를 줄줄 몰고 가는 모양으로, 또 생명 없는 기계와같이  그렇게 하지 안하고, 우리가 하나님 아들이기 때문에 존귀케 하기 위해서 유한한  자유성을 준 것입니다. 자유성. 생명에는 자유성이 있습니다. 자유성이 없으면  그 생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영생하는 자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벌써 자유성이 있습니다. 있어서,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데 거기에 서 나쁜 것을 피하고. 옳게 하는 그것이 생명이요  사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떼나무라, 뗏목이라, 뗏목이라 하는 것은, 지금도 뭐, 지금은  아마 뗏목이 없을 거라. 지금은 뭐 나는 그거 똑똑히 모르겠는데 저 나무를 여러  수천 짐을 이런 나무를 엮어서 이래 한테다 이래 뭉쳐가지고서 물이 내려가는  데서 물을 따라서 이렇게 내려가고 이렇게 올라오고 이렇게 해 가지교. 돌아가고  이래서 물에 띄워 가지고 저 먼 데까지 가는 그거는 뗏목 운반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그렇게 이 집채 무더기보다 큰 뗏목을 모아 가지고서 한 그것도,  거기에 는 그것이 자유가 없습니다. 자유가 없어서, 물이 요렇게 돌면 그것도  요렇게 따라 돌고 물이 가면 가고 안 가면 또 가만히 중지해 섰고 이렇습니다.

 그러나 조그만한 고기새끼 한 마리도 생명이 있으니까 그거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거는 올라가고 싶으면 올라가고 내려가고 싶으면 내려가고 올라가고 뭐 제  마음대로 가고 싶은 대로 가지 환경에 따라서 그렇게 하지를 않습니다. 그런  것도 생명을 준 요 생물, 생명이 있는 그 생명성이 있는 것은 자유가 있습니다.

이런 식물 이거는 생명이라도 이거 더 천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거는  여기에 심어 놓으면, 화분에 심어 놨다가 거기에 서 물 안주면 말라 죽었으면  죽었지 거기에 서 요리 가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자유성이 많을수록, 자유성의 범위가 많을수록 가치가 권위가 있는  것인데, 우리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우리를 하나님이 구원 하시기로 했는데,  자유성이 없어서 한 번 하나님께 속하면 하나님께나 속하지 마귀에게 속할 수  없고 마귀에게 속하면 하나님께 속할 수 없고 요렇게 자유성이 없게 이래 했으면  그것은 생명이 없는 것이고 천물이기 때문에, 우리를 귀중한 구원을 주시려고  하니까 자유성이라 하는 그 자유성을 안주면 안 되기 때문에 자유성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은 한 길 뿐이 아니고 두 길입니다.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자유성이라 말이오.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도 있고  마귀의 인도를 받을 수도 있고 둘 중에 하나는 어느 것이든지 받을 수 있는데,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우리가 어느 정도 완전함을 이룰 수 있느냐?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을 다 이행해서, 지공법 지성법을 다 완수해서 지성법 지공법이  우리를 심사한다 해도 그 심사에 걸릴 것이 없이 완전히 행할 수 있다 하는  그것이 중생된 우리들입니다. 이렇지마는 내가 이 자유성을 가지고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고 악령이 인도하는 그 인도를 따르면 일생 동안 그대로 따라  가지고서 멸망하는 길을 걸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이 인도하시지 않는 그 모든 걸음은 다 악령의 인도라 악령의  인도인데, 여기에 가르쳐 말하기를 마음, 제 맘대로 한다. 고기 덩어리가  좋아하는 대로 한다 그것을 가리켜서, 육신이라 하는 것은 마음과 고기 덩어리를  합해서 육신이라 하는 것인데 성령의 생각대로 하지 안하고 마음 생각대로 하고  육신 생각대로 고깃덩어리 생각대로 한다, 고기 덩어리 좋아하도록 하고 고기  덩어리만 위하고 마음만 위해서 한다. 그러면, 마음과 고기 덩어리만 위해 산다  하니까 그 마음과 고기 덩어리가 그것이 자유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성령님의  인도를 딿지 안했으면, 인도를 딿지 안했으면 그 마음과 고기 덩어리는 죽어  있는 것입니다. 살아 나기를 우리 마음이 살아나기를 성령으로 살아났고 진리로  살아났기 때문에, 성령과 진리로 살아난 그 성령과 진리를 물리치면 그만 거기에  는 사망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러니까, 영은 중생했기 때문에 변동이 없지마는 이 마음과 고기 덩어리라  하는 것은 과거에 성령에게 인도함을 받은 것은 살아났지마는서도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아니한 그것은 죽어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살아나고  그리 안 하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성령의 인도가 아닌 것은 전부 다  육신의 인도라 말이오. 성령의 인도가 아닌 것은 그만 육신의 인도입니다.

성령의 인도가 아닌 것은. 그러기에, 육신의 생각이라 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가  아니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 무슨 인도 라 말인가? 마귀 인도라 그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완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이요,  성령의 인도를 거부하고 난 다음에는 그거는 마귀 인도입니다. 마귀 인도요  마음의 인도요 고기 덩어리 인도인데 마음과 고깃덩어리, 성령만 버리면 마음과  고깃덩어리 마귀 이 셋은 하나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성령과 마음과 고기  덩어리 이 셋이 하나가 되어 가지고 사느냐 왼쪽에 이 셋이 하나되어 가지고  사느냐? 그것이 우리의 현실 현실에 결정되는 현실 통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  말씀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이제까지 많이 말했는데 여러분들이 그걸  가지고 오면 막 살 것인데.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또 육신의 생각은 죽고  망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육신의 생각이. 육신의 생각이 다른 말로 말하면 무슨  생각입니까? 예? 악령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악령의 생각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악령의 생각. 악령의 생각. 그러면, 악령의 생각은 악령이  인도해 주는 것이 악령이 주는 것인데 악령이 주는 것이 있고 성령이 주는 것이  있고 둘뿐입니다.

 이러니까, 성령이 주는, 성령이 주는 사랑도 있고. 성령이 주는 재산도 있고,  성령이 주는 봉사도 있고. 성령이 주는 친절도 있고, 성령이 주는 재미도 있고,  성령이 주는 모든 취미도 있고, 성령이 주는 일도 있고, 성령이 주는 길도 있고,  성령이 주는 것이 있고 악령이 주는 것이 있습니다. 악령이 주는, 악령이 주는  사랑도 있고. 악령이 주는 돈도 있고, 악령이 주는 지위도 있고, 악령이 주는  권세도 있고, 악령이 주는 봉사도 있고. 악령이 주는 친절도 있고, 악령이 주는  기쁨도 있고, 악령이 주는 성공도 있고, 악령이 주는 형통도 있고, 또 성령이  주는 것도 있고, 이런데, 악령이 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전부 사망입니다. 전부  사망 악령이 주는 사랑도 사망이요. 악령이 주는 재미도 사망이오. 악령이 주는  행복도 사망입니다. 전부 사망인데 그 사망이 당장 사망되는 것 있고. 그것이 한  순서 두 순서를 지내가지고, 사망되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순서를 지내가지고  사망되는 것 있고, 직접 사망되는 것 있고 그 사망되는 순서가 좀 다른 것뿐이지  딴 것은 없습니다. 사망되는 순서만 다른 것 뿐이라.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무슨 성공이든지 형통이든지 평강이든지 기쁨이든지  재미든지 또 친절이든지 봉사든지 나를 위하는 것이든지 무엇이든지, 악령에게도  종류가 백 가지라면 성령님에게도 백 가지. 이 종류가 우리에게 악령이 주는  것도 백 가지 성령이 주는 것도 백 가지 다 있습니다. 이런데, 악령이 주는 것은  전부 사망이라 하는 요거 우리가 똑똑히 잡아야 됩니다. 이거 아주 붙들기가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내가 오늘 새벽에 이 말씀을 하는 것은 엊저녁에 내가 여기 와서 기도하면서 그  면을 좀 기도해야 되겠다 해서 그 면에 대해서 한 삼십 분이 됐던가 얼마 됐던가  기도를 하고 갔습니다. 악령이 주는 것은 전부 사망인데 악령이 주는 것을  사람들이 받아 가지고서 사랑이면 사랑이지, 사랑도 두 가지입니다. 사랑도 두  가지요. 성공도 두 가지요, 실패도 두 가지요, 형통도 두 가지요, 친절도 두  가지요, 존경도 두 가지요. 성령이 주는 존경이 있고 악령이 주는 존경이  있습니다. 성령이 주는 사랑도 있고 악령이 주는 사랑도 있습니다. 악령과  성령과 둘이 같이 주는 일은 없소. 이게 아니면 저거고 저게 아니면 이거지.

이러니까, 악령이 주는 것은 전부 사망이라 하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모르면 자꾸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억만 번이고 외우십시오 악령이 주는 것 다 사망이라,  악령이 주는 사랑도 사망이요, 악령이 주는 친절도 사망이요, 악령이 주는  형통도 사망이요, 악령이 주는 도움도 사망이요, 악령이 주는 선물도 사망이요.

악령이 주는 재미도 사망이요 전부 사망이요. 악령이 주는 거는 전부 사망이오.

악령이 주는 거는 전부 사망.

 그러기 때문에, 기도도 그렇소. 기도도 악령이 주는 기도 있습니다. 성령이  주는 기도 있어. 기도함으로 점점 멸망하는 수가 있소. 어떤 사람은 기도하러  산에 가서 금식기도 가 가지고서, 금식기도 가서 뭣 때문에 금식하느냐? '내가  이제 한번 금식해서 기도한다.' 그 금식기도 하는 그 기도가 자기 소원 자기  욕심, 악령이 주는 육신의 욕심, 육신의 소욕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금식기도 합니다. 여러 날 동안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을 수 있소 없소? 예? 들으면 망하기 때문에 들을 수가  있겠소? 그러니까, 기도할 때에 자기의 욕심이 육신의 욕심이 강한 사람은  육신의 욕심대로만 자꾸 생각하면서 이렇게 기도해서 육신의 욕심이 강하니까 딴  걸 줄라 해야 줘 봐야 안된다 그 말이오. 가만히 눈감고 있다가 또 육신의 욕심  가지고서 생각도 해 보고 계산도 해 보고 수지도 놔 보고 뒤에는 어찌 돼는지  그래 가지고 탄탄히 육신의 욕심 그 욕심 이루어지는 그 방편만 튼튼하게 하지  성령이 인도하는 길을 따를 수가 없게 된다 이거요.

 어떤 요 ○○ 교회, 옛날이요. 제가 처음에 왔을 때인데, 장로인데 그 장로가,  ○장로라는 장로가 있었는데 그 장로가 자기가 아닌 길을 걷는 그 길을 걸으면서  어떤 여자에게 자기가 결혼해야 된다고서 결혼 한다고서 이라면서 결혼을  할라고서 그래 모르게 강간하고서 살면서 이 사람하고 결혼 되게 해 달라고서.

그 사람하고 결혼이 되게 해 달라고서. 다른 데는 이혼이 되고 그 사람하고  결혼이 되게 해 달라고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뭐 안 되는 것이 없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우리가 구하면 다 된다.' 이래 가지고서 그 기도를 하러  금식 기도를, 다른 사람이 옆에 말려도 안 되고 그 일을 달성해 보겠다고서  금식기도 갔다 말을 들었는데 가 가지고서 한 보름 돼도 안 왔어요. 열 이레  만에 시체로 발견 됐어. 열 이래 만에 산에서 시체로 발견돼서, 금식기도  하다가서 죽어서, 죽는다고서. 죽도록 기도한다고 이루어지는 줄 압니까?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 아니십니다. 삐뚤어진 기도는 암만 해 봤자 안 들어  주신다 말이오.-속 잠을 졸아 가지고서. 그라면 좀 수건도 좀 벗어 버려요. 속  잠 오거들랑. 예? 아니기는 뭐 아니라 속 잠 자는 것 보이는데 눈이 잠오는  눈알이라.

 어짜든지, 그러니까, 기도도 마귀가 주는 기도가 있고 성령이 주는 기도가  있으니. 찬송도 마귀가 주는 찬송 있고 성령이 주는 찬송도 있고, 성경 보는  것도 마귀가 주는 성경 보는 것 있고 성령이 성경보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분별하기가 어렵겠습니까? 이러나. 우리가 꼭  자기에게 있는 정성을 들여서 그걸 정성 들여서 바로 할라 하는 그 마음만  있으면 되는데 그 마음을 가리켜서 이름을 뭐이라 했습니까? 그 마음이  뭐이지요? 다른 사람 멍청이가? 와 사람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면 안돼. 그  소용없어. 아 공부를 하면서 자 계란을 세 개씩 석 줄 해 놨으니까 얼마고? 삼  삼은 구, 아홉 개라 이랬는데, 아 소금을 세 포대씩 이렇게 세 줄 해 놓으니까  이게 몇 개고? '야야 너 이거 공부했으니까 좀 몇 개인가 계산해 봐라.' 책을  가지고 디리디리 하디마는 '나는 소금 세포대 재 놓은 것은 안 배웠는데요. 안  배웠는데요' '소금 세 포대 재 놓은 것은 안 배웠는데요? 암만 봐야 소금 세는  것은 없어. 그러면, 계란 세 개나 소금 세 포나 같애요. 안 같애요? 예? 삼 삼은  구 하면은 맞아요 안 맞 아요? 그것을 가리켜서 지식을 웅용한다, 이 지식을  여기에 도 써 먹고 저게도 써 먹고 이래야 되는데 이것 하나 배우면 그말뿐이지  도무지 다른 말은 모른다 그말이오.

 우리가 두 가지 가르치는 것이 있는 줄 알고 요것만 구별해서 알라고만 하면  알아집니다. 성령님이, 성령도 우리에게 기도를 하라, 성령이 기도 하라는  기도도 있고 악령이 기도 하라는 기도도 있습니다. 기도를 다 빼 놓으면 예수  믿는 사람이 악령의 꾀움을 받겠습니까? 악령 그놈이 기도하라고도 하고  성경보라고도, 하고 이라기 때문에 모르지.

 제가 삼각산에 가니까, 삼각산에 거기 기도원에 제일 기도원이라는 하는  기도원인데 '가보자. 기도원에 이거 뭐 하고 있는 그 보자.' 가보니까 아주  콘크리트 집으로 잘 지어 놓고서 있는데 거기 가보니까 어떤 사람이 감방에  들어앉아 가지고서 기도를 그렇게 뭐 기도를 하는데 기도를 잘해요. 아주.

기도를 하는데 그저 잘잘잘잘잘 계속 기도를 하고 있어요. 기도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오디마는 문을 발로 콱 차는데 '저 사람이 남 기도 하는데 와 저래  저라노 저 무슨 속에 여자가 있는데 저거 남편이 왔나 또 공부하라는 아이 공부  안 하고 있으니까 부모가 왔나?' 이랬는데 뭐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차디마는서도 '성경 봐' 이라니까 또 성경을 읽기 시작하는데 또 뭐 창세기부터  자꾸 잘잘잘잘잘 읽습니다. 읽는데, 나중에 보니까 정신 이상자라. 마귀의  인도를 따라서, 예수 믿는 일을 마귀의 인도를 따라서 예수 믿고나니까 그만  완전히 미쳐졌다 말이오. 미쳐졌어.

 우리 교회도 그런 사람 좀 있어서 그래 하지 말아라 말을 해도 잘 안 듣는 사람  있는데 성경 읽는다고서, 성경을 자기 구원 이루는게 아니라 성경 가지고 자기  구원을 망칩니다. 옳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벌써 마귀가 와서 붙어 버리요.

지나치면. 꼭 지나치지 안하고 이재 다 체계적으로, 몸뚱이는 크면 귀도 커야  되고 눈도 커져야 되고 아무리 어린애도, 어린애도 눈도 커집니다. 어른이  될수록 자꾸 눈 이것도 요거 좀 커지요. 커야 되고, 입도 커야 되고, 또 팔도  커야 되고 다리도 커야 되고 이래야 체계적으로 커 나가야 되지 자 다른 거는 다  안 크는데 만일 그 사람이 눈만 크면 어찌 됩니까? 아이는 그놈 조그만한 아이가  눈 뿐이더라 병신이더라. 그 기형 아니요? 그게 그 기형이나 또 다른 거는 안  크고 키는 요만한 것이 한 두 자나 될 만한데 팔만 컸습니다. 팔만 커서 팔은 한  서너 발 됩니다. 온 전신 클 것인데 팔만 컸으니 그거 뭐입니까? 기형이요  병신이요? 예? 그 병신이라. 기형입니다. 이런데, 이게 또 항상 대조할 때에는  '그 사람이 크다 하더라.' 커? 나 만침 큰가 보자. 팔만. 내 봐. 자네 팔하고 내  팔 대 보자.' 팔을 떡 대 보니 제 팔보다 작거던. '아이구 나보다 작은  사람이로구만.' 팔만 가지고 장 대조합니다. 딴 거 안 하고.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자는 '그 사람이 잘 믿는다 하니 예수를 얼마나 잘 믿는고 가 보자.' 가서  묻기를 '아 그 사람이 그라면 철야기도를 일 년에 몇 번이나 합니까?' '그  사람은 철야기도는 하나도 안합니다.' '에이구, 아무것도 아니로구먼.' 이  사람은 철야기도라고 항상 예배당에 와 자는 것만이 저의 하는 일이라.

이러니까, 뉘든지 그만 그 사람이 신앙이 좋다 하면 철야 기도를 얼마나 하는지  예배당 얼마나 자는지 그것만 가지고 그것 하나를 가지고. 표준을 해 가지고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그러니까, 그게 다 기형이요 병신이요 못 쓰는 거라  그거요. 다음에 혹 기회 있으면 더 계속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는 요것만 기도해. 다른 것 기도하지 말고 요것만. 어짜든지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둘이라. 요걸 분별해서 성령이 인도를 하면 완전자도 될 수 있고  또 마귀 인도하면 그거는 전부 사망뿐입니다. 마귀의 사랑도 있고, 성공도 있고.

취직도 있고, 형통도 있고, 친절도 있고, 정직도 있고. 공의도 있고 다 있어.

마귀도 다 있어. 그러나 그 결과적으로는 다 사망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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