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유

 

1988. 09. 08. 목새.

 

본문: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사람은 이 죄악의 종이 안 될 수가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죄악의 종이 안 될  수가 없다는 그 말은 마귀가 삐뚤어지게 할 때에. 마귀가 삐뚤어지게 할 때에  삐뚤어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말입니다.

 마귀는 이 세상에 들어 온 목적이 우리를 삐뚤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들어왔습니다. 왜? 삐뚤어지면 제것이 됩니다. 의로운 것 옳은 것은 하나님의  것이 되어서 영생하고 삐뚤어진 것은 마귀의 것이 돼 가지고 영원히 멸망합니다.

이래서 마귀는 처음에 이 목적을 가지고 들어와서 인류 시조에게 성공을  했습니다. 삐뚤어지도록 하는 성공을 해 가지고 인류는 완전히 마귀의 것이  됐습니다.

 또, 그때에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이 우주를 하나님에게 유업으로 받은  우주인데 이래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며 정복하라 이렇게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스리고 정복권을 가지고 하나님 대리의 권세를 행했습니다. 그러나  이 배암의 삐뚤어지게 하는 그 간교한 유혹에 빠져 가지고 그만 삐뚤어져서  마귀가 꾀우는 대로 끌려가서 삐뚤어졌기 때문에 사람은 삐뚤어진 사람이  됐습니다. 삐뚤어진 사람이 되니까 삐뚤어진 것의 왕이 되는 마귀의 사람이  됐습니다.

 그래 예수님께서 이 세상 세력이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을라고 달라들 때에  말씀하시기를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게는 상관할 것이 없다 내가 어떻게  아버지를 사랑하며 그 명령에 순종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 줄 것뿐이다  이랬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그것이 자기의 자유요 또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어겨서 저에게 순종케 하려는 것이  저의 목적이요 자유입니다.

 이랬는데 사람이 마귀의 유혹받아서 삐뚤어진 행위로 인해서 삐뚤어진 사람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왕이 되고 사람은 마귀의 종이 되고 이 우주는  다 마귀의 것이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세상 임금이라는 것은 이 우주를 다 저의  것을 삼은 마귀라 그말입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서 마귀에게  도전하셔 가지고 이제 마귀는 예수님이 도전했으니까 예수님을 이겨야 되지  예수님 이기지 안하면 제가 안 되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만 나타나지 안했으면  영원히 마귀의 것이 될 터인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예수님은 의로 자유할라  하고 하나님으로 자음하고 진리로 자유하고 이렇게 할라 하는데, 처음에 아담  해와가 범죄하기 전에 그들은 하나님으로 자유했고 진리로 자유했고 이렇게  자유했는데 마귀란 놈이 삐뚤어지게 해 가지고서 그만 어리석게 패전을 해서  그에게 져서 우주는 그의 것이 되고 사람들도 다 그의 사람이 됐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다시 도전하셔서 예수님은 우리 전부를 다 대신해서 우리  전부의 지은 죄값을 예수님이 먼저 담당해서 형을 받야야 우리가 죄에서 해방할  수 있기 때문에 형벌받으셔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또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우리 대신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을 다 이행을 해서 하나님의  공심판에 의롭다 통과를 시켜 완전한 자유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을 주셨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자유할 수 없는 게 인간인데 자유할 수 있도록 됐습니다. 왜?  죄가 우리에게 왕노릇하지 못하고, 왕노롯한다 말은 절대성을 가졌는데 죄가  우리에게 강제성이나 절대성이나 그런 것을 가지지 못합니다. 죄가 우리에게  왕노릇하지 못하고 사망이 왕노릇하지 못하고 마귀가 왕노릇하지 못하고 순전히  이제는 진리와 영감과, 영감은 하나님이신데. 진리와 하나님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자유하게 됐습니다.

 이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이제 다시는  종되지 말고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자유를 줬다 말은 죄에서 자유를  증고 마귀에게서 자유를 줬고 사망에서 자유를 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해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안한 사람들은 죄가  왕노릇하기 때문에 항상 죄로만 살 수 있지 죄의 종으로만 살 수 있지 달리는 살  수 없고 마귀의 종으로만 살 수 있고 또 사망의 종으로 사망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예수님이 거게서 해방을 시켜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굳세게 서서' 우리에게 자유를 줬기 때문에 이  자유를 뺏기지 말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자유를 뺏기지 말고 자유자로 굳세게 서서,  자유를 굳게 가지고, 굳세게 선다 말은 자유로 서서 말이요, 자유 이 자유를  뺏기지 말고 자유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다시는 종의  멍에라 말은 종이 돼서, 무슨 종이 됩니까? 죄의 종, 마귀 종, 사망의 종이 돼  가지고서 그것이 끄는대로 시키는 대로 그 종이 돼서 그에게 항상 순종하다가서  죽는 그 생활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래서, 자유는 악의 자유가 있고 의의 자유가 있는데 마귀는 악의 자유를  가졌고 하나님은 의의 자유를 가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옛사람  새사람이 있는데 옛사람은 죄의 자유, 마귀의 자유, 사망의 자유 그러면 마귀로  살고 사망으로 살고 죄로 살아서 그 끝이 완전히 멸망이 되는 것인데 거게서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으로서 중생돼서 새사람 돼서 우리는 진리로 자유하고 의로  자유하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자유하는 이 자유자도 되었고 또 옛사람은 뭘로  자유합니가? 죄와 사망과 마귀, 악령, 악성, 악습으로 자유하는 그것이 불의의  자유입니다. 그러면 불의로 사는 것이 제 자유인 옛사람이 있고 의롭게 사는 것이  자기의 자유인 새사람도 있습니다. 요 죄의 자유 의의 자유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그는 이제 완전히 죄의 것이 됐기 때문에  죄의 자유로 삽니다. 마음대로 죄짓고, 마음대로 죄짓고, 죄짓는 것이 저희들의  자유라 말이오. 죄짓는것이 저희들의 소원이라. 자유라는 것은 뭐이 자유냐  하면은 제 소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그러면 안 믿을 때에는 죄짓고자  하는 대로, 죄를 짓고자 하는 대로 죄짓는 것이 그것이 제 소원대로 하는 것이요  마귀와 하나되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제 소원대로 하는 것이오. 그러니까  날마다 사망하는 그 사망 일만 하지 생명 일은 하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자유는  둘이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자유는 둘이 있다. 옛사람의  자유도 있고 새사람의 자유도 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옛사람의 자유로 할라  합니다. 죄의 자유를 할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 법을 어겨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생활을 계획하고 늘 그 생활만 도모하고 그 생활대로  하면 좋아하고 그 생활대로 하지 못하면 죽을라고 날뛰고 하는 그 사람이 이제  옛사람이요 멸망할 사람인데 우리는 그것이 아니고 정반대로 과거 예수님 믿지  안할 때에는 자기가, 죄란 것은 뭐이 죄냐 하면 삐뚤어진 게 죄인데, 삐뚤어진  거는 뭣대로 하는 것이냐?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하는데, 자기 중심 자기  위주대로 할라고 노력을 해 가지고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대로 되면은 기쁘고  즐거워하고 만족하고 만일 자기 중심 자기 위주하는 그놈이 꺾어지면 죽을라고  날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와 정반대로 이제 중생된 새사람은 자기  중심으로 살라고 자유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자기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살라고 애를 쓰고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살았으면  기쁘고 즐겁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못하고 자기 중심으로 살았으면 후회가  되고 죽을 고통을 느끼고 하는 그것이 우리의 새사람인 것입니다. 이래서,  아직까지도 내가 자꾸 이 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자유가 뭐인지를 그걸 몰라서  지금 자꾸 이 자유를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자유는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자기 하고  싶어 하는 대로 하는 것이 자유인데 그러면 그 사람이 한 사람이 있으면은 그  자유가 몇 가지이겠습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몇 가지겠습니까?  한 사람이 있으면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자 하는 그 사람이 몇 사람이  있겠습니까?, 손가락으로? 만일 사람이 열 사람이 있으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사람이 몇입니까? 열 사람이지. 만일 사람이 백 명이 있으면은 저 하고  싶은 대로 못 해 그렇지, 못 해 그렇지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그 사람이  몇이겠습니까? 몇 사람이겠어? 백 명이지. 여러분이 자유를 지금 모르고 있기  때문에 말하는 거라. 백 명이지. 만일 사람이 한 사람뿐이라면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그 사람이 몇이겠습니까? 한 사람뿐 이라면? 하나뿐이지.

 그러면, 천하에 사람들이 많은데 예수 믿는 사람 빼 놓고 나면은, 예수 믿는  사람들 빼 놓고 나면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자기들 하고 싶은 게 뭐이냐 하면은  죄로 살고 싶고 마귀로 살고 싶고 사망으로 살고 싶고 이렇게 빼고 싶은 자기  중심으로 살고 싶은 그 자기 중심이 뭐이냐? 자기 중심이 죄악의 중심이요 마귀  중심이요 사망의 중심인데 그대로 살고 싶은 사람이 하나뿐이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중생된 사람이 하나 생겼으니까 이제는 사람이 둘이 됐습니다. 알겠어요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몇이요?  안 믿는 사람은 자기가 몇이요, 손가락으로? 하나.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은  자유하고자 하는 그 자유가 몇입니까? 하나.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가 몇입니까?  둘.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하고 싶은 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사람이 몇입니까? 둘됐다 그거요, 둘.

 둘 됐는데,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그것은 그것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그것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으면 어찌 됩니까?  자기 소원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으면 그 사람은 성공입니까  실패입니까? 완전 멸망이라. 그렇지 안해? 안 믿는 사람은 진리대로 살기를  원하는 게 아니고 진리를 떠나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대로 살기를 원하니까 자기  중심 자기 위주대로 살기를 원해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대로 완전히 다 달성을  해 버렸습니다.

 그러면, 달성된 건 뭐이 달성됐습니까? 성공은 뭐이, 성공됐습니까? 자기 중심이  성공됐고 자기 위주가 성공됐으니까 그러면 자기 위주 자기 중심이 성공됐으니  그러면 그것은 누구와 대립입니까? 하나님과 대립인데 자기 중심 자기 위주니까  홍포입은 부자,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암만 하나님께서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이렇게 살라고 해도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러면 이제 너는 너대로 살아라' 하고서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 줬어. 물 한  방울도 안 주니까 그거 죽는, 그 지옥이라 하는 건 그게 지옥입니다. 자기  중심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중심으로 살구로 내비둬 버려요, 내비두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는 물 한 방울도 없어. 없으니까 그거 멸망하겠소 살겠소?  멸망할 수밖에 없는 거라.

 이러니까, 요 자유가 둘이 있다는 것 요걸 여러분들이 지금 그래 가지고는 암만  말을 들어야 잘 모르는 것 같애. 자유가 둘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멸망하는 자유,  자꾸 멸망이 하고 싶다 말이오. 자꾸 죄를 짓고 싶어. 죄를 짓고 싶어. 물질에  대한 죄를 짓고 싶고, 또 남녀 이성에 대한 죄를 짓고 싶고, 또 자기 주장대로  하는 죄를 짓고 싶고, 자기 중심으로 하는 죄를 짓고 싶고, 자기 욕심대로 하는  죄를 짓고 싶고, 하나님 법을 어겨서 이 세상 법대로 살고 싶은, 자꾸 살고 싶은  그대로 살아서 죄를 짓고 싶은 이것이 있어서 우리는 악의 자유와 의의 자유,  옛사람의 자유와 새사람의 자유.

 그러면 옛사람의 자유 생활을, 행동을 했는데, 그 시간에 행동했는데 옛사람의  자유 행동했으면 그 시간은 그 행동한 것이 마귀에게 대해서는 잘됐습니까?  못됐습니까? 잘됐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반대됐어.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에 가  가지고서 정죄를 받겠습니까? 칭의를 받겠습니까? 정죄를 받는 거라.

 이러니까, 자유가 둘이 있다. 자유가 둘이 있게 된 것은 사람이 둘이 있게 됐기  때문에 자유가 둘이 있다. 둘이 있는데 하나는 사망에 이르는 자유요 하나는  생명에 이르는 자유라. 하나는 삐뚤어진 것이 제 자유, 소원이라. 삐뚤어진 대로  했으면 이제 자유가 된 거라. 죄를 지었으면 자유한 거라. 죄가 짓고 싶어서 요게  뭐 남을 속이는 죄라든지 물질적으로 죄를 짓든지 그리 아니면 서로 미움으로  죄를 짓든지, 사람이 그거 미워서 못 견딜 때에 그 미워서 못 견디는 미워하고  싶은 마음, 미워서 못 견딜 때에 미워하고 싶은 그것이 자유입니까 자유  아닙니까? 미워하고 싶을 때에 미워했으면 그거 자유입니까 자유 아닙니까?  옛사람의 자유라. 미워하고 싶을 때에 미워하고 싶은 그것이 제 소원이라.

미워하고 싶을 때 미워하면 그거는 제 소원대로 했기 때문에 자유 성공을 했다  말이오. 그러면 그것은 악의 자유입니까 의의 자유입니까? 악의 자유. 그러면 그  결과는 사망이 되겠습니까? 생명이 되겠습니까? 사망이 되는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자유도 둘이 있다. 소원도 둘이 있다. 이러니까 향방도 둘이 있다.

결과도 둘이 있다. 하나는 향방이 멸망에 도착하는 것이고 하나는 생명에  도착하는 것이라.

 이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이제 '자유를  주셨으니'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자유케 하려고 하는 그 말은 이거는  일시 자유입니까 영원한 자유입니까? 영원한 자유라. 영원한 자유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도 그 국법이 있는데 그 국법을 어겨서 저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그거는  나중에 법에 들려 나면은 다 정죄받고 안 된다 그거요. 일시 자유가 있고 영원한  자유가 있습니다. 영원한 자유는 진리와 하나가 돼야 영원한 자유가 되겠소  진리를 떠나서 저와 하나든지 인간들과 하나돼야 그 자유가 영원한 자유가  되겠소? 영원한 자유는 옳고 바르고 참돼서 정죄할 것이, 흠과 점과 주름잡힘이  없고 티가 없는 온전이라야 영원한 자유가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그거요.

하나님의 심판은 진리가 심판하는데 진리에게 정죄받을 것이 없어야 그  자유합니다. 진리에게 정죄받을 수 있는 그런 것은 임시 몇 사람이 앉아서  저거끼리야 자유지. 저거 방안에서야 자유지. 이북에서야 자유지. 그렇지마는서도  전 인류에게는 자유를 못 받고, 전 인류에게서 자유를 받았으나 전 인류에게  자유를 받았으나, 전 인류가 큽니까 하나님이 큽니까? 전 인류에게는 다 자유를  받아서 칭찬을 받았는데 하나님에재 걸리면 그 자유가 영원한 자유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돼요 안 돼요? 안 돼. 하나님이 대주재시고 그분이  심판을 가지고 계시고 그분이 모든 것을 주권하시고 다 그분의 것이기 때문에  그분과 막힐 게 없고 그분의 법도에 어겨진 것이 없고 이래야 영원한 자유가  되지 그분에게 거스린 것은 다 세상에 이 범죄하는 기간이 떨어지자 그만 그  다음에는 자유가 다 막혀 버리고 맙니다.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은 무슨 종의 멍에? 무슨 종의 멍에입니까? 무슨 종의  멍에? 죄의 종의 멍에. 삐뚤어진 것의 종이 되지 말아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데는 첫째는 양심 자유를 가져야 됩니다. 첫째  양심 자유 가져야 돼요. 양심 자유 가진다 말은 뭐이냐 하면은 자기 양심대로  요게 옳다 싶으면 그대로 하는 것이 양심 자유라, 양심 자유는 자기가 옳다  하면은 그대로 하는 그것이 양심 자유요. 양심을 꺾는 것은 요게 옳은데 하고서  그걸 꺾어버리는 것이 그게 양심을 꺾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양심이 먼저  자유해야 그 다음에 이 어려운 자유들이 되지 그리 안 하면 못 합니다. 양심의  자유 자기 양심대로 뭐 누가 뺨을 때려도 양심대로, 다른 사람이 욕을 해도  양심대로, 다른 사람이 뭐 자기 재산을 빼앗아 가도 어떻게 해도 자기 양심대로,  양심에 꼭 양심이 요게 옳다 싶으면 그대로 사는 것이, 여러 뭐 많은 사람들이  꾀워도, 또 자기에게 돈이 지위가 직장이 꾀워도, 또 자기에게 미남이 꾀워도  미인이 꾀워도 어떻게 꾀워도 자기 양심대로 하는 그것이 양심의 자유입니다.

 양심의 자유를 먼저 가져야 그 다음에 진리의 자유를 가집니다. 양심의 자유를  가져야 진리의 자유를 가져. 그러면 진리의 자유를 가지고, 진리의 자유를 가져.

 그 다음에 무슨 자유 가집니까? 성신의 감동의 자유를 가져. 감동의 자유를  가진다 말이 무슨 말이요? 성신의 감동을 자기가 받았는데, 성신의 감동이 이렇게  하라 하는데, 그렇게 하라 하는 데에 그대로 하는 것이 자유입니까 성신의  감동으로 이렇게 하라 했는데 하지 못하는 게 자유입니까? 그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 그말이오. 그게 이제 영감의 자유라 그말이오.

 영감의 자유이고 그 위에 최고의 자유는 뭐이냐 하면은 사랑의 자 유라. 사랑의  자유. 하나님을 사랑할라는 그 사랑이, 하나님을 자기는 사랑하고 싶어 사랑해야  되겠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만일 세상이 사랑치 못하도록 이렇게  방해할 때에 그 사람이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중단이 되면은 그 자유가  꺾어졌습니까? 자유가 살았습니까? 자유가 꺾어졌어. 자유가 꺾어졌으면은 그러면  무엇의 종이 됐습니까? 삐뚤어진 죄의 종이 됐다 그거요.

 그러면, 자기가 이웃 사랑을 제몸같이 할라고 지금 그렇게 원하고 이웃 사랑을  제몸같이 하는 것이 그것이 옳은 줄 알고 이웃 사랑을 제몸같이 할라고 애를  쓰는데 이웃되는 그 사람이 촉분을 지르고 뭐 못된 짓을 하고 너무 엄청난 그  행위를 하고 있으니까 이제 그 사람을 그만 사랑할라 했는데 미워하게 됐습니다.

미워하게 됐으면 그 사람 자유를 하고 있어요 이제 자유를 뺏겼어요? 자유를  뺏겼으면 뭣의 종이 됐어요? 죄의 종이 됐어요. 피의 종이 됐어. 이러니까 이것을  위해서 싸워.

 그런데, 나는 이복순씨 말이지요, 이번에 늘 좀 보기는 '저게 뭐 저 사람이  저렇게 뭘 알고 저라나 모르고 저라나' 이래 했는데 제가 천막 가는 그 천막 가는  도중에 그 천막이 있어요. 내가 이래 가며 들으면 늘 녹음기를 틀어 놓고 있어.

어떨 때는 성경 틀어 놓고 어떨 때는 재독 틀어 놓고, 재독 틀어 놓고 그  여름이니까 모기장이 쳐져 가지고 있어서 내가 가만히 보면은 엎드려 가지고서  녹음 재독을 듣고 있어. 듣고 있는데 '그래 아마 저거 뭐 곤해서 엎드려 가지고  자는가보다' 그거 하나님이 꼭 그래 만들라고 했어. 참 복이야. 눕지를 못해요.

누우면, 눕지를 못해 놓으니까 꼭 오그라져 가지고 요래 딱 엎드려 가지고 있어야  되고 엎드려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또 엎드려 가지고 있으면서 그냥 있으면 못  견뎌. 녹음을 듣고 성경 말씀을 듣고 이래 가지고 거게 일치가 돼서 그만 자꾸  성경 말씀대로 녹음 설교대로 그 말씀만 생각하고 자기가 그대로 될라고 애를  쓰는 그걸 도수가 맞으면 아픈 게 없고 그만 그 도수가 조금 물러지면은 아파 못  견디는 거라. 하나님이 그래 강제로 만들었어. 얼마나 복인지.

 이래 놓으니까, 이번에 세상을 뜰 때 보니까 그것은 만든 것이 확실해. 녹음을  틀어 놓고서 자기가 엎드려 가지고서 성경 말씀을 인제 녹음한 게 있거든.

그거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설교든지 녹음을 들으면서 그 말씀과 자기와 대조해  가지고 그 말씀대로 자기가 될라고, 말씀대로 자기가, 몸이 그러니까 하지는  못해도 말씀대로 될라고 자꾸 애를 쓰고 자기 마음이나 생각으로 말씀대로  될라고 하고 또 그걸 이제 좀 성할 때는 나와 가지고서 집에 와 가지고 뭐  심방도 하면서, 하면서 또 말씀대로 자기가 실행해 볼라고 애를 쓰고 실행하다 또  실패하면 또 가 가지고 또 엎드려 가지고 녹음 들으면서 또 말씀대로 할라고  애를 쓰고 그래 자꾸 그 공을 들인 모양이라. 이러니까 그게 그만 숙달이 됐다  말이오.

 그래 놓으니까 자기가 이 자유가, 어떻게, 자, 만일 그 고통스러운 일이 왔을  때에 자기 기쁨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는 그 기쁨이 자유 한다면은 만일 되게  고통이 오면 그 기쁨이 없어지면 자유입니까, 만일 없어졌다고 하면은, 누가 만일  그 사람에게 독약을 먹여서 독약으로 인해서 그 기뻐함이 없어졌다고 하면은 그  기쁨이 자유를 끝까지 가졌습니까? 기쁨이 자유를 뺏겼습니까? 그러면 자유를  뭐한테 뺏겼습니까? 자유를 뭐한테 뺏겼어? 뭐한테 뺏겼습니까? 독약한테 뺏겼지.

독약한테 뺏겼어. 독약에게 종이 됐지. 독약에게 종됐다 말은 독약이 '기뻐하지  말아라' 못 하구로 이래 강제로 이라니까 그 독약에게 그만 패전을 해서 독약  네까짓 게 암만 독약을 뭐 어떻게 하든지 말든지 기뻐하는 그 기쁨을 뺏기지  안했으면 독약에게 뺏기지 안한 자유를 가졌는데, 그러면 독약이 되게 막 독해서  못 견디구로 독약을 마셔 놓으니까 독약의 독으로서 자기가 기뻐할 수 없어서  그만 독약 그놈 때문에 기뻐하지 못했다 말이오. 그러면 그 기쁨을 뭐한테  뺏겼소? 독약한테 뺏긴 거라 말이오.

 또, 독침을 맞아 또 그러면 독침한테 뺏긴 거라. 고문과 고형할 때 고문 때문에  감사함이 없어졌으면은 그것도 감사함을 고문에게 뺏겼다 그거요. 또 하늘의  소망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는데 하늘의 소망을 너무 고문과 고형하니까  하늘의 소망이 그만 끊어지고 없어졌다 말이요, 약해졌다 말이오. 그러면 그거는  고문 고형에게 자기가 하늘 나라의 소망의 자유를 뺏겼다 그말이오.

 예수님은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게는 상관없다. 저야 오든, 오면 저 할 일 저  하고, 저는 저 할 일 저 하고 나는 나 할 일 나 한다. 내 자유를 뺏기지 않는다.

어떤 자유? 예수님이 세상 임금이 와도 뺏기지 안한 자유는 뭐입니까? 무슨  자유? 무슨 자유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순종하는 것 그 두 가지 자유를  제가 하든지 말든지 나는 아버지 사랑하는 것 변동없이 아버지 사랑하고 싶은  대로 사랑하고 또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싶은 그대로 순종하지 저희들에게 아버지  사랑하는 자유 또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의 자유 이것을 뺏기지 않고 했기  때문에 승리를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은 그게 중요하요. 요번에 아주 나도 그거 아주  중요한 것 하나 배웠어. 녹음 고거 틀고 이래 또 녹음을 틀고 어짜고 성경 우리가  그래 하지마는, 어두울 때는 성경을 읽을 수도 없고 이러니까 녹음을 틀어 놓고서  딱 엎드려 가지고 녹음에서 성경 말씀 말한 대로 그 말씀과 자기와 비교해  보면은 성경 말씀은 요런데 자기는 요러면 성경 말씀과 자기와 다른 거 있다  말이오. 성경 말씀과 자기와 다른 거 있으니까 성경 말씀과 다른 그걸 고쳐서  성경 말씀과 자꾸 하나 만들어서 자꾸 일치 만드는 그 일을 자꾸 해 나갔어.

 이러니까, 마지막에 뭐 그거는 말로 그렇지 사람이 숨이 떨어지게 될 때에는 그  고통이 제일 큰 고통이오. 제일 큰 고통인데 제일 큰 고통이 와도 그에게는 이  자유를 뺏기지 안했어. 기쁨의 자유를 뺏기지 안했어, 감사의 자유를 뺏기지  안했어. 하늘의 소망의 자유를 뺏기지 안했어. 그는 이웃을 사랑하는 그 자유를  뺏기지 안했어. 끝까지 다른 사람에게 믿음에 유익이 되도록 구원하려는 구원의  역사의 그 자유를 뺏기지 안했어.

 만일 그래 고통하다가 그만 구원하고자 하는 그것이 중단됐다든지, 또 이웃을  사랑하는 게 중단됐다든지, 감사가 중단됐다든지, 기쁨이 중단됐다든지 중단됐으면  만일 그 사람에게 암병 고통으로 중단됐으면 그 사람은 그때 뭣의 종이 됩니까?  암병의 종이 됐어, 고통의 종이 됐어. 이러니까 예수 믿는 줄 알지만 판판이 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종됐지 하나님의 종된 그 부분이 없는 줄 알고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돼진다 그거요.

 이러니까, 자유를 뺏기지 안할라고, 이러니 신구약 성경 말씀에 그 모든 말씀을  보면은 어짜든지 자유를 뺏기지 안하도록 지금, 세상 자유를 뺏을라 하고 자기는  자유를 뺏기지 안할라 하고서 어떤 것이 와도 자유를 뺏기지 안하고 자유하는 요  생활 할라고 노력하는 것이, 노력하는 방법 가르친 것이 성경이고 모든 선지  사도들과 성도들이 그 노력한 것이 그것이 그들의 노력이라. 자유를 뺏기지 않고  어디서든지 자유할라고,  이러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종의 멍에라 말은 멍에를, 멍에라 말은 이  소를 부릴 때에 모가지에다 멍에를 끼워요. 이 소 모가지에 멍에를 딱 끼워  놓으면 이놈이 꼼짝 못 하고, 가면 이걸 끌고 간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거 이 멍에  이 죄란 놈이 멍에를 딱 죄의 멍에를 지워 놓으니까 죄가 가자 하는 대로 가야  되고 죄를 싣고 가라 하는 대로 싣고 가야 되고 죄의 종이 돼 가지고서 죄의  수입만 자꾸 시킨다 그거요. 이래서 이, 아주 자유라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자유를 똑똑히 깨닫고 자유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돼.

 만일 뉘 집에 가면은, '아무것이 그 사람한테 가면은 이제 그 사람이 나한테  이러니 저러니 감정 돋구는 말을 많이 하고 이 몹쓸 말을 할 것인데 내가 꼭  자유 뺏기지 않겠다' 가서 가 놓으니까 처음에는 그랬지마는서도 원청 견딜라  하니까 그만 견디지를 못해 가지고서 그만 그때 그만 마귀갈 놈이 자꾸 유혹을  합니다. '네가 참으니까 그 사람이 너를 사람 같잖이 여기니까 좀 그럴 때는 좀 뭘  좀 미워해 줘야 되고 좀 복수를 해 줘야 된다' 이래 가지고서 복수를 하고 나서  보니까 뒤에 보니까 마귀에게 꾀여 가지고서 그만 사랑의 자유를 못 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 양심 자유, 진리 자유, 요 신앙 자유, 신앙 자유라 하는 거는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것을 뺏기지 안하고 하는 그것이 자유라.

신앙 자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은 천하가 달라 들어도 내 목을 끊어도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요거는 내가 양보하지 않는다 그것이 생명이  끊겨져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 믿음을 뺏기지 안하고 산 그것이 신앙의  자유라. 신앙의 자유.

 그래서, 이 자유라는 것을 자꾸 여러분들이 여러 수만 번 하십시오. 이 자유가  뭣인가? 자유가. 또 요거, '내가 오늘은 또 자유를 뺏겼다.' 오늘은 자유한 것을  자기가 계산대서 알아야 되겠고 자유를 뺏긴 걸 알아야 되고 '자유를 했느냐 종이  됐느냐? 나는 오늘 종이 몇 번 됐으며 자유는 몇 번 했느냐?' 자유하고 종되는  그것을 두고서 자꾸 요 계산을 대서 이래 해야 그 자유하는 사람이 되어지지 그  자유가 그렇게 쉽게 되는 것 아닌 것입니다. 자유하는 사람을 봐야 보지를  못합니다. 자유하는 사람을 보지를 못해.

 그 모두 인간 보면 사람 만나면, 이 사람 만나고 저 사람 만나면, 이 사람 만나면  이 사람에게 피동되고 저 사람 만나면 저 사람에게 피동 되고서 그저 하루 천 명  만나면 천 명 피동되는 그거는 창기 생활이라. 기생은 그래. 기생은 오늘  초저녁에 이 남자 만나 가지고 이 남자만 좋아하는 것같이 그렇고 뭐 남자를  몇을 만나든지 그 사람 다 좋아하는 것같이 이렇지마는, 이런 거 모양으로 그걸  팔방미인이라, 팔방미인, 창기 생활, 그게 창기 생활.

 이러니까, 자기가 하나님 한 분과 하나되는 요 진리대로 사는 것, 양심대로 사는  것, 또 믿음으로 사는 것, 예수님의 대속으로 사는 것 요것을 어떤 환경이 와도  뺏기지 안하고 요대로 계속해 사는 요것이 자유 생활이라 그거요.

그라고 반사 선생님들은 이제 셋째 빛인데, 이것은 첫째 빛, 둘째 빛, 셋째 빛  이거는 여러분들이 상식적으로 알기 때문에 안 가르쳐도 다 알 수 있어야 돼.

 그 사람이 자기 직장에서 자기 사회에서 자기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잘해  가지고서 거게서, 제일 껍데기 빛 아니요? 그 빛의 생활 못 하면 신앙 생활을 못  하는 거라. 제일 껍데기 빛. 껍데기 빛이 뭐이냐 하면 자기 현실에서 거게서 자기  의무, 책임, 본분 그것을 잘 해 가지고서 다른 사람에게 본되는 것이라.

 학생들은 그러면 지금 학생들은 그 학생이 자기가 껍데기 빛노릇 하는 게  뭐이요? 껍데기 빛노릇 하는 게 뭐이요, 학생들이 껍데기 빛노릇 하는 거?  뭐이요? 자, O집사로 말하면 껍데기 빛노릇 하는 게 뭐이라? 그래. 요 희망은  있는데 이거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내가 모르겠어. O집사 빛은 자기가, 요새는  내가 보니까 자기 업도 하고 또 남의 날품도 드는데 날품 드는 사람은 그라면 그  사람은 빛노릇 하면 날품 들러 갈 때는 빛노릇 하는 게 뭐이야? 일할 때에 다른  사람이 보고 '야, 그 사람 어떤 사람이고? 참 진실한 사람이고 정직한 사람이고 또  자기 의무와 책임을 잘하는 사람이라.' 그러면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멸시를 해요  존대를 해요? 존대해. 그것이 껍데기 빛이라.

 그러면, 학생은 지금 그 껍데기 빛이 뭐이냐? 저 학생 지금 대학에 다니나요?  다니고 있어? 그러면 학교에서 뭐이 빛이야? 껍데기 빛은 뭐해야 돼? 모범생이  돼야 돼, 모범생. 그렇지 않아? 행위도 모범이 돼야 되고, 공부도 모범이 돼야  되고, 사상도 모범이 돼야 되고, 담력도 모범이 돼야 되고, 그만 일등이라! 이게  돼 버려야 돼. 그게 빛이라.

 이러니까, 이 첫째 빛, 둘째 빛 하나님이 우리에게 간략하게 이렇게 해 줬는데  이빛 생활은 평생 반사들이 학생을 만날 때에 이 공과만 가르칠 게 아니라  학생들 만날 때 '야, 너 지금 네가 일 학년인데 제일 처음에 셋째 빛 생활해야  된다' 셋째 빛생활 하는 아이에게 '야, 너 그것만 가지고 만족할. 게 아니라 그  둘째 빛생활 해야 한다.' 첫째 빛 둘째 빛 셋째 빛 이래 가지고서 자꾸 이라면  청년들 지도에는 눈코 뜰 여가 없이 자꾸 바쁘게 잡아 돌려야 돼요 연구하도록  그래 한가한 시간을 줘야 돼요? 어째야 돼?  그래서, 반사 선생님들이 요거는 꼭 기억해 가지고서 평소에도 만날 때에 '야, 너  제일 쉬운 것,' 제일 쉬운 것이 뭐이야? 첫째 빛 둘째 빛 셋째 빛 어느 게 제일  쉬운 빛이라? 셋째 빛이 쉬워 셋째 빛을 자꾸 요걸 권유해서 말하고 또 둘째 빛  말하고 또 첫째 빛 말하고 자꾸 이거 말하면은 만나면 학생들이 살아.

 가 봐야 학생들 살릴 게 뭐 있어야지, 아무것도 없는데. 뭘 말해? 찍해야 하는  말 장 그말이지. 듣기 싫은 소리. '요번 주일에 주일 범하지 마라. 주일날 꼭  나오너라.' 만날 해야 그놈의 말뿐인데 그말 그거 누가 좋아하겠어? 그거 주일에  나오라 하는 것보다도 '너 이 빛 첫째 빛노릇 지금 하고 있나? 네가 점점 온전한  사람이 돼야 되는데,' 이거 인제 온전한 사람에 대해서 말하지 또 자기가 사회에  대해서 빛을 말하지, 자기의 소유에 대한 빛을 말하지 이거 자꾸 빛을 말하면 그  사람의 영이 자꾸 살아난다 그거야.

 백지 만나 봐야 듣기 싫구로 바쁜데 만나 가지고 자꾸 쓸데없이 '꼭 와야 된다.

뭐 안 된다. 추석이다. 꼭 와야 된다.' 그따위 놈의 소리를 누가 듣기를  좋아할까니? 사람이 인격이 있기 때문에 '고 이렇고 이렇고 아래 네가 지금 셋째  빛노릇 해야 된다. 아무것이는 어떻고 어떻고 어떻고 지금 학생은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자꾸 이래 지금 학생에게는 학생 말해 주고 또 노무자에게는 노무자  말해서, 그러면 그 사람의 영이 살아난다 말이오. 영이 살아나는 게 아니라 영혼이  살아나.영혼이 살아난다 말은 마음이 살아난다 말이오. 그래서 이런 것은 평생 늘  가지고서 그들에게 주어야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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