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생활-가인과 아벨
선지자선교회  

1980. 1. 17. 목요일 새벽

 

본문: 창세기 4:1-8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이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내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들을 때에 양심을 써서 잘 듣지 아니하면 모르게 됩니다. 성경은 꼭 같은 성경을 가졌지마는 성경에 대한 깨달음은 수없이 그 종류가 많습니다. 성경을 이 세상 이치대로 이렇게 세상 과학에 맞추어서 이 모든 역사에 맞추어서 그렇게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그것이 세상주의 사람들이요. , 인간의 생각과 지식에 맞추어서 성경 해석하는 사람들이 인본주의의 사람들이요. 성경을 성경에 맞추어서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신본주의입니다. 역사에 보면 바로 깨닫고 바로 믿는 사람의 수는 적고, 잘못 깨닫고 잘못 믿는 사람들의 숫자는 많습니다.

 

이러니까 교회들이 무슨 일에 결의를 해 나갈 때에 사람의 숫자에 많은 것을 따라 가는 그 회마다 그 회가 점점 타락되고 속화됩니다. 이러면 나중에 개혁이라는 이런 싸움이 일어나가지고 두 옳은 것과 삐뚤어진 것이 싸워가지고 옳은 것이 삐뚤어진 것에게 아벨이 죽임을 당하는 것처럼 이렇게 많은 순교자들이 남니다. 많은 죽임을 당하는 자들이 나고 하나님의 진리는 그대로 서지는 것입니다.

 

천주교와 이 개혁교가 서로 다툼이 있을 그때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천주교에게 얼마나 많이 죽임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뭐 수십만 명이 죽임을 받았습니다. 성경대로 믿을려고. 그때의 천주교 세력이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사형이나 그런 것이 없고 벌이 없고 이럴 수 있는 그 세력을 가진 천주교인테 그때 세계에 제일 강한 나라가 로마 나라인데 로마 나라도 천주교 마음대로 했습니다.

 

이럴 때에 성경대로 살려고 함으로 수십만 명이 죽임을 받으면서 천주교 교리가 틀렸다, 바로 믿어야 된다 하는 그것을 그때 교리를 세웠습니다. 이랬는데 요새는 완전히 교회가 부패해져서 천주교와 이 개혁교가 어떻게 생겼다는 그것을 다 잊어 버리고, 뭐 공산주의 민주주의도 서로 화합할려고 애를 쓰는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다 하나되지 뭐. 기독교가 통일 되지, 뭐 기독교만 통일 될건가? 종교라 하는 것은 전부 다 통일되지. , 종교만 통일 될건가?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 사람이나 비무종교가나 종교가나 다 통힙을 해야지. 이렇게 나가는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말세입니다. 그래 가지고 천주교 이 개혁교를 구별을 하면 이것은 좁다 잘못 되었다. 이래 가지고 자꾸 합칠려고 애를 쓰는 이런 것이 생겨집니다.

 

그래서 성경 번역도 같이 했소. 그러니까 성경 번역을 천주교에게 맞춰서 한 번역이 있고, 개혁교에 맞춰서 한 번역이 있고 서로 이것을 많이 할려고 시비를 하다가 너거대로 하나 했으면 우리 대로 하나 해야 될 것 아니냐? 이래서 천주교에 맞는 성경 번역이 있고, 개혁교에 맞은 성경 번역이 있기 때문에 성경은 실은 두쪼가리로 갈라졌는데 한 성경이 두 해석을 가졌기 때문에 이 성경은 믿을 수 없는 성경이 돼 버렸습니다.

 

이것을 교리사나 교회사나 역사 신학이나 이런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덮어 놓고 천주교는 큰 집, 개혁교는 작은 집. 작은 집 큰 집 그런 것이 뭐 서로 잘 지내야 되지 사이좋게 지내야지 벌어질게 뭐있나? 그럴듯 안합니까?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은 세상 이치에 맞게 성경 해석을 하면 이해가 잘 됩니다. 인간 비위에 맞게 해석하면 이해가 잘됩니다. 하나님의 비위에 맞게 하는 그 해석은 맞지 아니하요. 그러기에 성경을 배울 때에 자기가 참 하늘나라의 구원을 얻을려고 배우는 것과, 하나님의 도를 이용을 할려고 배우는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러기에 귀 있는 자는 들어라 하는 그 말은 착한 양심이 있는 사람이어야 들려진다 그 말이요. 그 귀는 착한 양심을 말한 것입니다. 지난 밤에 가인의 신앙종류가 있고, 아벨의 신앙종류가 있는데, 가인의 신앙종류는 멸망이요. 아벨의 신앙 종류는 구원입니다.

 

그러나 영적면과 하나님 앞에서는 그게 강하고 무궁세계는 강하지마는 그게 참 하나님 함께 하는 이 세력은 크고 강하지요. 그렇지마는 이 육적으로 세상적으로 육적으로 세상적으로 죄악적으로 이면은 가인이 강합니다. 아벨이 가인을 죽이지 않았소. 가인이 아벨을 죽였소. 옳바른 깨달음은 비뚤어진 깨달음들을 해치지 않습니다.

 

그것을 대해서 그것을 훼방하고 자꾸 그것을 멸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비뚤어진 깨달음이 바른 깨달음을 정죄하고 해합니다. 제일 속화된 세상은 제일 속화된 교회를 핍박하고 속화된 교회는 저보다 속화 덜된 교파를 핍박하고 조금 속화된 교회와 교파는 바로 나가는 정통 교회와 교파를 핍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란 놈은 이것을 떡 이용해가지고 핍박만 받으면 정통인줄로 알고 소수만 되면 숫자가 적기만 하면 정통인줄로 알아서 소수를 들어 이용하고 핍박을 받는 것을 들고 이용을 해가지고 하는 그 미혹을 마귀가 줍니다. 전도관은 분명히 그것이 통일교나 전도관은 이단인데 봐라. 핍박을 받는 것은 정통이 받지 않했느냐 저는 아주 이단이라서 사람들이 여게 끌려가지 말아라 하는건데 그것도 저렇게 그리 이용을 하고 그 숫자가 적어지니까 봐라, 옳게 나가는 숫자가 적지 않느냐 그걸 이용합니다. 마귀는 이렇게 저렇게 이용하기 때문에 참 양심을 써서 자기가 어쨌든지 바로 믿을려고 하는 그 진실한 마음이 없으면 안됩니다.

 

그 사람이 예수를 아무리 열심히 믿는다고 해도 속에 진리가 없으면 헛일입니다. 여기 서부교회 다니는 사람으로 서부교회에서 가르치는 이 진리를 깨달으면 그 사람은 죽어도 안나갑니다. 바로 깨달았으면 안나갑니다. 이것을 지식적으로 배워서 이 지식을 팔아 먹고 이용해 먹고 이 지식을 팔면 돈도 나오고 뭐 오만 거 다 나옵니다.

 

이러니까 이 지식을 팔아 먹을 지식으로 가진 사람은 그 사람은 이 지식으로 인해서 교만해지고, 이 지식으로 자기 구원을 이루어 가려고 하는 이 사람은 이 지식을 떠나지 못합니다.

 

이 지식을 가질 수록 자기는 점점 죄인이 더 되어지고 겸손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깨닫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소. 아무리 그 사람이 어떻다 할찌라도 진리를 바로 깨닫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이 진리를 사수하지 못할 사람입니다. 생명 내 놓고 지키지 못할 사람이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너희들이 나를 죽일려고 하는 것은, 나를 죽일려고 하는 것은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할 곳이 없어서 내 말이 너희 안에 없기 때문에 나를 죽일려고 한다 그렇게 말씀했소

 

예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없는 사람은 다 예수님을 대적하고 말았지 대적하지 안한 자는 없었습니다. 잘 들어야 되요. 아벨은 양을 잡아 제사 지냈고, 가인은 제가 농사 짓기 때문에 농작물로 제사를 드렸는데, 이 농작물로 제사 드린 가인이 아벨과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을 자기가 알았고, 자기와 자기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게 열납이라 말은 기쁠 열()자 받을 납()자 열납(悅納)자 그 말이요. 열납이라 말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셨다 그 말입니다. 그것을 본인들이 알았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말을 이래 한 것처럼 이렇지만 다 영감이요. 하나님께서 그때도 보이게 사람처럼 나타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요. 완전자시기 때문에 그러기에 성경에 하나님을 본 사람 없다 그렇게 기록 했습니다. 자기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감동시켜 주시는 것을 봤고 들었고 깨달았다 그 말이요.

 

아벨과 아벨의 제사는 기뻐하시는 것을 가인이 알았고, 아벨도 알았고, 또 가인의 제사와 가인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것을 가인 자신도 알았고 아벨도 알았습니다. 아니까 가인이 분하다 그 말이요. 자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 제사는 기뻐하지 아니하고 아벨과 아벨의 제사는 기뻐하니까 가인이 좋아 여기지 아니하고 마음에 섭섭하게 여기고 마음에 불쾌하게 여기고 했다 그거요. 분히 여겼다 말은그 인간이 알도록 하기 위해서 좀 확대를 해가지고 키워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분히 여겼다 말은 감사하지 아니했다 그 말이요. 감사하지 아니하는 것이 그것이 감사함이 없으면 그것이 분히 여기는 것이요. 또 거게 대해서 환영하고 그것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찬성하지 아니하는 그것은 분히 여기는 것이라 말이요.

 

가인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일에 대해서 감사치 아니하고 찬성치 아니했어. 거기에 대해서 불만스럽게 여기고 감사함이 없었어. 낯이 붉었다 그 말은 벌써 양심이 자기에게 알려준다 그거요. 알려 줘서 양심이 알려 주니까 자기 신경이나 자기 피부까지라도 거기에 대해서 벌써 자기가 틀렸다는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받지 않으시니까 자기가 틀렸다 하는 그것을 다소 짐작하기는 했다 그거요.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만 아는 것이라도 다른 사람을 만날때 예를 들면은 그 사람을 헐고 욕을 했다 그거요. 둘이 앉아서 그 사람을 헐고 욕을 했어. 헐고 욕을 했는데 그 사람은 못들었지마는 그 사람을 그 뒤에 만나면 그 헐고 욕한 그것이 양심에게 비추기 때문에 그사람을 대할 때에 그 안면이 꼭 같이 할라고 해도 같아 지지 아니하고 달라진다 그기요. 그런 것은 다 자기 양심이 가르쳐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분히 여겼다 이랬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있어서 그들이 드린 제사는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제사인가? 우리의 전 생활이, 말이나 행동이나 마음이나 생각이나 이 전 언행심사의 생활이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것이요, 예배드리는 것이 제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전 언행심사의 생활. 이것이 가인 아벨로 말하면 제사 드리는 것인데 이 제사가 우리의 언행심사의 생활이 가인적인 생활도 있고, 아벨적인 생활도 있다 했습니다. 그러면 가인적인 생활은 어떤 생활이며 아벨적인 생활은 어떤 생활이냐? 가인적인 생활은 자기가 범죄함으로 아담이 범죄했으니까 그 정죄를 받았습니다. 신인 대표로 계약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는 죄인인 것과 자기는 정죄로 사망받은 자인 것. 가인은 이것을 잊어 버렸소.

 

자기가 범죄로 벌써 사망을 받고 있는, 범죄로 사형을 받고 있는 사망을 받고 있는 범죄자인 것과 자기는 사형을 받아서 사망 아래에 있는 자인 것을 이것을 가인은 잊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잊어버렸소. 여기에는 상관이 없어. 벌써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벌써 생명과를 못 먹고 쫓겨나 버렸고 지금 사형을 받아서 있는 자인데, 죄와 사망에 대한 것은 가인은 전혀 잊어 버렸소. 잊어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어떻게 섬겼느냐? 자기가 농사짓고 있으니까 자기 환경에서 깨닫고 접촉하는 모든 사물에서 깨닫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깨달음대로 자기 주장대로 이렇게 하나님 섬겼다 그 말이요.

 

하나님 섬기기는 섬겼소. 성의를 아무리 들여서 섬기고 정성을 들여서 아무리 들여서 섬기고 아벨은 양 한마리를 가지고 드렸는데 이 사람은 농사를 만일 쌀을 그 농사 진 것을 농작물을 수십 석을 들여서 양 수십배의 가격을 들여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 봤자 소용이 없다 그기요.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사람이 뭐 위대한 개혁을 하고 뭐 교회를 부흥을 시키고 뭣을 어떻게 하고 마구 세계에 유명하고 아무 소용이 없소. 요걸 꼭 알아야 됩니다.

 

그 하나님을 섬긴 가격이 가격이 많고 적고 양이 많고 적고 종류가 많고 적은 게 문제가 아니라 다만 문제 되는 것은, 하나님이 선포하신 계약. 첫째 여게 중심을 둬서 그러면 하나님이 계약을 어떻게 했는데? 너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너는 죽는다. 죄인으로 정죄 받았고, 또 벌써 사형받은 사망 안에 있는 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약이요.

 

하나님의 계약이 너는 하나님의 계약을 어겼기 때문에 너는 정죄 받은 죄인이요. 죄값으로 너는 사망한다 너는 사망 아래 있는 자다. 이것이 하나님이 두번째 선포한 계약입니다. 처음에는 이것 먹고 다른 것은 먹고 이건 먹지 말아라 하는 것이 계약이요 그 다음에는 너는 먹었기 때문에 정죄 받고 죽는 자다, 너는 사망아래에 있다, 사형을 너는 받았다, 너는 사망 안에 있기 때문에 지금 영원히 죽어가는 자요, 너는 살지를 못한다. 요것이 둘째 계약이요.

 

셋째 계약은 네가 여기에서 네가 영원히 사망받을 그 대신 짐승이 사망 받음으로 그 피로 인해서 피는 생명으로 성경에 말했습니다. 네가 짐승의 죽음과 그 생명으로 인해서, 짐승이 해를 받은, 네 대신 해를 받은 이 대속의 제물로 인해서 너는 죄에서 벗어 나올 수 있고, 사망에서 벗어 나올 수 있다. 너로서는 네가 죽어버리면 그만이니까 네가 죽을 대신 다른 것이 죽음으로 너 대신, 너 대신 다른 것이 정죄를 받고, 너 대신 다른 것이 정죄를 받고, 너 대신 다른것이 죽는 죽음으로 해서 너 대신 다른 것이 했기 때문에 다른 것이 정죄받고 죽었기 때문에 요 대속의 공로를 네가 힘입어서 요것을 네가 놓지 아니하고 너 대신 죽은 요걸 네가 꽉 가지고 있으면 너는 죽지 아니했으나 너는 죽은 자기 때문에 더 죽을 것이 없고, 너는 정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더 정죄 받을 것이 없어, 대신 죽은 것은 죽어 버렸고 너는 그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너는 대신 살게 되어 있다.

 

이러기 때문에 너는 죄에서 벗어나는 칭의, 너는 죽음에서 벗어나는 생명을 이렇게 얻게 되었으니 요것을 네가 기억하고, 네가 정죄 받은 것과, 너는 죽은 자인 것과 셋째 계약에서 너를 대신 하여 죽는 그 죽음과 정죄 요 둘을 너 대신한 것을 기억하여 네가 이것을 벗어 놓지 아니하면 죄에서 벗어나서 죄없는 자 되었고 너는 산자 되었으니 다시 죄짓지 아니하고 죽지 아ㅣㄴ하면 너는 산다. 이제 셋째 계약을 어기지 아니하면 산다. 셋째 계약. 셋째 계약은 대속입니다.

 

요 첫째 계약 어겼고, 둘째 계약 이제 선포 되어서 죽었고, 셋째 계약에서 대속의 공로 안에 있으면, 요 공로 안에 있으면 죄 없앰을 받고 칭의를 받고 영생하게 되어지는 것인데 요 셋째 계약을 네가 지켜라. 요것이 가인과 아벨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이랬는데 가인은 이것을 전혀 잊어 버렸소.

 

우리도 첫째 계약을 우리가 받았고, 둘째 계약을 받았고 셋째 계약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셋째 계약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이것이요. 그러면 가인은 이 셋째 계약을 지키지 안했소. 이걸 생각지 안했소.

 

자기가 정죄 받은 죄인이라는 것도 자기는 죽은 자라는 것도 이것도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가 접촉하는 사물에서 자기 밖에 있는 모든 인간의 무엇에서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계약과는 상관이 없고 하나님의 계약과 상관이 없으니까 먹으면 죽으리라 하는 그것도 상관 없고, 먹었으니까 너는 정죄 받고 죽었다 하는 그것도 상관이 없고, 여기서 대속함을 인해서 너는 구원을 받아라 여기서 살아나라는 이것도 상관 없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계약과는 상관이 없으니까 자기는 죄지은 것도 죽은 것도 상관이 없으니까 죄에서 사죄 받는 것도 여기에 구원 받는 것도 상관이 없는 자라 그거요. 이렇게 가인은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그가 바른 제사를 드려 가지고서 살기를 바랍니다. 살기를 바라는데 죽은 그대로 있으니까 하나님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아벨은 거기에서 하나님의 계약을 준해서 이렇게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아벨은 살아났다 그거요. 아벨은 죄를 벗어 놓고 살아 났으니 하나님이 기뻐할 수 밖에 더 있겠습니까? 요렇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자기가 첫째아담으로 말미암아 정죄 받은 것과 저주의 사망을 받은 요것을 자기가 깨닫지 못하고 요것을 인정치 아니하면 예수가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가 무슨 필요 있을거요?

 

내가 첫째아담으로 말미암아 정죄 받은 원죄, 내가 범한 죄로 죄인인 본죄로 말미암아 이 죄로 인해서 나는 하나님 앞에 정죄 받은 죄인이라.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나는 망하고 죽을 자라, 이 죄의 문제, 사망의 문제 이것이 없으면 예수님의 이 대형, 대행 이것이 필요 없소.

 

또 여기에서 아! 나는 죄인이라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라 이것만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의 이 대속의 구속은 필요 없소, ! 나는 이런 자인데 여게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사죄를 받을 수 있고, 칭의를 받을 수 있고, 영생을 받을 수 있다. 이미 나는 영은 받아 있는데 이 심신으로 된 이 육이 지금 죄안에 있지만는 받을 수 있다. 이 소망이 있을 때에 예수님의 대속이 자기에게 필요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자기가 죄인인 것과 사망 아래에 있는 이 육체라는 것. 자기의 소유나 자기의 행복이라는 것. 자기 소유도 자기 행복도 자기의 마음도 자기의 고기덩어리도 첫째아담과 자기로 인한 죄로 인해서 죄악에 있는 것, 사망 아래 있는 요것을 자기가 알 때에 요것을 인식하고 요자인 것을 알 때에 그때에 예수님의 사죄가 필요하고, 여기에서 나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살아날 수 있는 요 소망을 자기가 확실히 가졌을 때에 예수님의 칭의가 필요하고, 그러면 사죄와 칭의를 받아 법적해결을 받은 자기가 이제는 산자로 영생을 해야 되는 이것에 대한 깨달음의 필요성을 가졌을 때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합된 예수님이 주신 새생명을 자기가 필요있고 욕구하고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 어디서든지 밤이나 낮이나 무슨 일을 하든지 죄벗을라고 하는것, 하나님 앞에 의를 얻을라고 하는 것,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 하나님과 화합될려고 하는 것, 요 세가지 문제를 거머쥐고 이 세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로 해결하는 자기 생활로 살지 아니하면 이것은 전부가 가인의 생활입니다.

 

하나님과 상관 없는 생활이요. 자기는 그 현실에서 그 현실에 살았던 마음의 기능도 영원히 죽었고, 몸의 기능도 영원히 죽었고 살아 있는 것은 그때에 이용된 그것이 아닌 다른 기능이 지금 아직까지 남아 있지요. 마음의 기능이나 몸의 기능이나 다른 것이 남아 있지 그 시간에 쓰여진 것은 없어졌습니다. 요것 아십시요, 그 시간에 쓰여진 것은 없어집니다. 그 시간에 쓰여진 게 그 다음에 또 쓰여 지는 것 아니요. 그 시간에 쓰여진 것은 없어졌고 그 다음에 쓰여진 것은 그 다음 시간에 쓰여질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현실에서 죄인인 것과 사망 아래에 있는 요것을 깨닫고 요것을 벗는 행위로 요렇게 사는 요것만 하나님이 기뻐합니다. 이래 살면 그 다음 요 좀 어려운 말이요. 가인이 알았소. 낯이 벌게 졌소. 분히 여겼소. 알았소. 요걸 알았다 그거요. 우리가 자기 현실생활에 죄에 대한 문제, 의에 대한 문제, 하나님과 결합인 이와 같은 하나님과 화합된 이 생명에 대한 문제, 요 셋에 대한 문제를 거며쥐고 요것을 해결 지울라고 현실을 살면, 지금도 본인이 하나님이 자기를 기뻐하고 그 행위를 기뻐한다는 것을 자기가 깨닫게 됩니다.

 

자기가 확실히 인정하게 됩니다. 인정하게 되요. 인정하게 됨으로 자기에게는 감사와 기쁨이 나옵니다. 이 현실에서 그것을 잊어 버리고 ******* 벌로 정신 들친 자와 같이 벌로 날뛰지. 무슨 일을 했어도 이 세가지 이걸 하지 아니한 그때는 자기에게 어두움이 옵니다.

 

하나님께 기도 할라 하면 하나님과 멀어져 있습니다. 자기 양심이 압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기뻐하지 않는것, 자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지 아니했다는 것을 본인이 압니다. 본인이 알게되요. 이러니까 양심이 자기에게 가르쳐 줘서 자기가 알아진다 그기요.

 

그러면 그럴 때에 그리되면은 어찌 되느냐?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이 없고 하나님과 가까워지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멀어져서 기도할라하면 딱 안돼 버립니다. 자기가 기도 할라 할 때에 척 무릅을 꿇을 때 하나님 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자기가 느낄 때가 있고, 하나님과 자기와는 아무런 지금 기쁘하지도 아니하고 그저 자기가 하나님을 붙들고 날뛴다는 그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 말이요.

 

여러분들이 얼마든지 체험합니다 얼마든지 경험할 수가 있소.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어데서 살던지 우리 현실 생활은 내가 죄인된 이 죄를 벗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그 심판 받지 아니할 의인으로 되기 위해서, 하나님과 결합이 되기 위해서 요거 위해서 예수님이 나에게 대속해 주셨으니, 요 현실에서 나는 죄없는 자로 죽기까지 하셔 주신 이 주님이 사죄를 줬기 때문에 내가 정죄로 영원히 죽었던 육인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게 됐으니 나는 내가 이 현실에 돈이 무너져도 목숨이 끊어져서 어떻게 해도 나는 다시는 죄짓지 얺겠다

 

나는 어떻게 절단나고 어떻게 희생되어도 나는 의롭게 살겠다. 이제는 하나님 떨어지고 하나님 두고 뭣과 화합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두고 뭐 돈하고 인간하고 뭣하든지, 어떤 좋은 것이든지, 어떤 좋은 것이든지 내 생명을 죽인다 할지라도 생명 살기 위해서 생명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멀어지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 요 세 가지 요것을 가지는 요 깬 생활 요것을 할 때에 하나님이 자기를 기뻐하신다 는 것을 자기가 인정하게 되요. 또 자기 생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요. , 이 생활하면 하나님이기뻐하시리라 하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요것이 없을 때에는 가인의 걸음을 걸었을 때에는 요것이 없습니다. 요것이 없소. 하나님과 자기와 트여진 그런 감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가 하나님을 찾아야 되요.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을 찾아야 되고, 아벨의 걸음을 걸었을 때는 하나님을 찾을 것 없이 하나님이 자기 안밖에 가든찬 것을 볼 수가 있고, 하나님을 찾을라고 할 때에 하나님안에 자기가 있는 것을 자기가 느껴 하나님안에 자기가 있고, 하나님이 자기를 아듬고 있고, 하나님은 자기 안에 게시고 자기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는 것을 자기가 느낄 수 있다 그기요.

 

이래서 이용도 목사님을 모두다 정죄를 했는데 그이 낸 책을 보니까 그 분은 그랬어. 하나님의 자기와 함께 계신다고 인정하는 하나님과 함께 하다 보니까 하나님이 간 곳이 없소. 하나님 안계신다고 찾아서 야단을 치고 막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셔. 이것을 조금 봤소 그분은. 봤는데 그때 교회들은 그걸 느끼지를 못했소. 못하니까 정죄해 버렸소.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는 느낌, 함께 하지 아니한 느낌, 자기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찾아서 헤매니까 이렇게 눈을 감고 하나님을 찾고 자구 이래 명상하고 성경을 찾으니까 이제 하나님과 자기와의 대면이 스르르 해주면서 하나님과 자기와 통해지고, 하나님과 자기와 관계가 둘이 맺어질 때에 아무것도 안보이요.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에게 구하라 아버지가 갚아 주리라. '

 

그때는 하나님만 보이지, 이 세상 사정, 형편, 내 형편 사정이 뭐 참 아주 생벼락 같은 그런 어려운 일이지만 다 잊어 버려져. 잊어 버리고 주님과 구속한 주님만 보여지고 그분과 자기와 만 보여진다 말이요. 모든 염려가 다 없어져 버려. 이렇게 찾아 가지고 이러다가 또 자꾸가면 그만 이제 하나님 어디로 간 곳이 없고 고 영교가 없어진다 그 말이요. 고 영교가 없어져 생겨졌다가.

 

이것을 이용도 목사님은 그때 느꼈어. 그 다른 사람은 그걸 느껴서 느낀 책이 없어. 책을 읽어봐야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말이요. 이 성경을 전부 서적적으로, 이걸 학문적으로, 이것을 다만 이치적으로 이렇게 했지 영감에 대해서 그렇게 느끼지를 못했어요.

 

그런데 이거 우리가 보면 압니다. 자기가 알지 않소? 자기가 무슨 일을 해 놓으면 이라면 공연히 하나님 기뻐하지 하면서 하나님에게 기도 할 때에 하나님이 자기를 가지고 기뻐해서 즐거워하시는 그런 느낌을 가지고 아무런 하나님과 자기와는 관계가 없는 이런 느낌을 가지고 하나님을 척 뭐 기도하라 하면은 뭐 엎드려서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자기와 둘이 지금 하나 되어서 의는 하는 그것을 느낄 수 있고, 어떨 때는 하나님을 찾을려고 하는데 하루를 날뛰도 안되고 이틀를 날뛰도 안되고 사흘 날뛰도 안되고 닷새를 밥을 굶어도 안되고 이래 오랫동안 애를 써가지고 비로서 하나님을 찾아서 만나지는 때가 있다 그기요. 이러니까 깨어 있어라 말은 아벨의 생활을 계속하라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나는 첫째아담으로 말미암아 정죄 받은 것과, 둘째아담으로 말미암아 사죄 받은 거, 첫째아담으로 말미암아 의를 더해 버린 것, 둘째아담으로 말미암아 의를 지금 받은것, 첫째아담으로 하나님과 원수된것, 둘째아담으로 화평이 이루어진 거, 이러니까 이제는 첫째아담의 자손이나 둘째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에 첫째아담의 자손인 것을 알아 겸손히 자기가 이것을 벗어야 되겠고, 둘째아담의 자손이 되었기 때문에 요것을 벗지 아니하고 입고 살아야 되곗다는 요거, 요것을 언제든지 기억하고 요 문제를 해결짓는 장사로, 요 문제를 해결짓는 노동 일로, 요 문제를 해결 짓는 목사로 요렇게 모든 생활이 되어지는 요 게만 하나님이 고 사람만 기뻐하시고, 고 생활만 기뻐하시고, 고것만 영생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 다음에 부활 할때는 그것만 이제 살아나 가지고 영생에 부활합니다.

 

몸덩이는 자기 몸이 다 살아 나지요 다 알지요 피차에. 아무 것이 지금 아는 것처럼 그때 다 안다 안면이 다 있어. 다 알지마는 기능이 문제라. 기능이 문제. 요새 처녀 총각 우리가 결혼을 할라고 하면은 그 뭐 얼굴 그거 보지마는 기능보요. 또 얼굴 보면은 얼굴과 기능이 같소.

 

그 사람 얼굴이 빤빤하게 생겼으면 의, , 주는 문제 없다 합니다. 얼굴에 바보도 나오고, 얼굴에 명철도 나오고, 얼굴에 어진 사람도 나오고, 얼굴에 간교한 것도 나오고 다 나온다 그기요. 얼굴에 나와. 그건 뭐이냐 보면 다 실력을 보고 있다 말이요. 실력. 아무리 그 사람이 참 개가 싹싹 핥아 먹은 죽사발 같이 그말이 있소. 개 핥은 죽사발 같이 아무리 미끔해도 인간의 실력이 아무것도 없으면 그 사람하고 결혼 안할려해. 가면 제가 벌어 먹이야 될 것이라. 아무 소용도 없어. 애만 먹어. 그러니 아무 것도 능력없어. 그렇지 않소. 이 다음에 부활할 때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지금 마련해야돼. 지금.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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