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증인들을 보고 온전을


선지자선교회 1988년 7월 11일 월새 

 

본문 :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 보좌 우편이라 한 이 말의 뜻은 영원 자존하신,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한 분이신 이 하나님 그분이 계시는 그 위치, 보좌라 말은 그 분이 계시는  그 지위 그 위치를 말합니다. 그분이 계시는 지위, '우편에 계신다' 우편에 계신다  말은 첫째는 완전히 승리했다 하는 뜻을 가리키고, 우편이라 말은 첫째는 완전히  승리했다 하는 그 뜻을 가리키고 또 둘째로는 완전한 인계자 계대자, 인계자가  됐다 하는 것을 말하고, 인계자, 계대자, 대리자 그것을 가리키고, 또 세째로는  영원히 완전 승리를 하실 분으로 계시게 됐다 하는 뜻입니다.

 '보좌 우편에' '하나님 우편에' 하나님 우편이라 말이나 보좌 우편이라 말이나  같은 말인데 왜 하나님 우편이라고 하지 안하고 보좌 우편이라고 말했는가?  보좌는 가장 높은 지위 그 지위를 가리켜서 보좌라고 했는데 그전에 군왕주의  때는 용상이라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천상 천하에 제일, 존귀한 흘로 권세를 가지신 그 권세자의 지위 오른편에  계신다, 오른편이라 말은 승리했다는 말이요, 완전 승리했다는 말이요,  또 둘째로는 하나님이 전부를 다 그에게 맡겨서 하나님의 대리를 하게 됐다  그말이오. 예수님께서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내게 주셨다 하는  내나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 대리를 하시게 됐다 그말이오.

 또 앞으로 모든 맡은 바의 사명이나 의무나 책임을 완전히 완수해서 영원히  승리한다. 영원히 승리한다.

 그러면, 승리하시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완전 대리자가 돼 가지고 또 세째로 완전  영원히 승리한다 하는 그런 뜻을 가리켜서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이랬습니다.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앉음같이 너희들도 이기면 내 보좌에 앉으리라 하는  약속과 층하가 있어도 주님이 그에게 하심 같이 우리들도 그런 소망이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하나님 아버지의 대리되심같이 우리도 이기면  예수님의 완전 대리자가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리라  말씀했고 또 아버지 보좌 우편에 계신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또, 예수님이 첫째 성공을 하셔서 그 성공한 그 성공이 우리의 것이 됐는데,  예수님이 성공을 하셔 가지고 그 성공이 우리의 성공이 됐는데 예수님께서 그  성공을 하실 때에 어떤 방편으로 성공을 하셨는가? 예수님이 어떤 방편으로  성공하셨는가 그 성공하신 것을 여기에 가리켜서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예수님은 현재 좋은 것을 취하지 안했었고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과거 좋은 거 가지고 날뛰지 안하고 과거 좋은 거 가지고 자랑하고 '내가  지금은 이렇지만 과거는 이랬다'. 과거를 자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아주  패배자요 그것은 참 이제 가련한 것을 남에게 호소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과거의 즐거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고 '내가 이래도  젊을 때는 어땠다' '내가 이래도 과거는 어떤 부자의 아들이다' '내가 어떤 지위에  있었다'  어떤 사람 내 한번 봤는데 그 사람이 OO사람인데 좀 훌륭한 분의 높은 지위에  있는 분의 아내입니다. 그 아내가 그 남편에게 이제 배척을 당해서 이혼을 당하고  삽니다. 살면서, 그때도 얘기를 하면 지금 아무것이가 과거에 이혼하기 전에 내  남편이었다고 그걸 자랑합니다. 그렇게 못났기 때문에 그 이혼을 당했습니다.

이혼을 당해도 나는 과거에 아무것이가 우리 남편이었다고 그 자랑을 해요. 내가  그 소리를, 뭐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렇게 자랑을 해.

 이게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과거에 좋은 점을 현재에 자랑하면서 사는 그  사람 제일 못난 사람이고, 또 현재에 좋은 것을 뽐내면서 현재에 좋은 그것을  누리고 그것 보고 사는 사람도 그 사람도 다 못난 사람축에 갑니다. 아무  소용없는 사람이오. 예수님은 그렇게 살지를 안했습니다.

 '저는' 하는 것은 예수님을 가리켜 말한 것이오. "온전케 하시는 이를 바라보자  저는" 내나 예수님은 말입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현재 좋은  것을 취하지 안하고 장래 좋을 것을 항상 취해 했습니다. 인간이 현재 좋을 것을  취하는 거기서 다 그 구멍으로 다 망해 빠져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그 앞에 있는 현재에 있는 거 아니고 미래에 좋을 거, 미래에 좋을 거,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러면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무슨 일을 했느냐? 십자가는 고난이요 또 하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한다'  예수님은 고난과 부러움 이것을 피할라고 하지 안하고, 고난과 부끄러움을  개의치 안했다 하는 말은 당신이 목적과 성공을 달성하기 위하여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성공을 위해서는, 목적을 달성하는 성공을 위해서는 두 가지를 했다.

고난과 부러움을 개의치 아니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승리하신 방편입니다.

고난과 부끄러움.

 우리의 승리하는 이 생활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생활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십자가의 생활은 무슨 생활이냐? 고난과 부끄러운 생활입니다.

 부끄러운 것은 세상이 이 이치를 모르고 이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저거  망할라고 저래 한다. 미련하다. 어리석다.' 세상 보고 향해서 투쟁하던 사람이 세상  그런 거 다 양보해 버리고 집어치워 버리고 인간이 모르는 하늘나라의 소망만  위해서 역사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등신으로 볼 수밖에 더 있습니까? 실패자로 볼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들이 귀하게 여기는 세상 것을 상대해서 그 성공을 누리지 안하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하늘나라의 부활 영원을 위해서 투자하니까 그 사람은 망했다 할  것이요 다 어리석다고 할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우리의 가는 이 걸음은 전부 사람들이 조롱하는 부끄러운 길이요  노아가 그때 다른 사람들은 땅에 있는 거 이런 거 저런 거 취해서 그 면으로  주력하니까 그 면으로 부강해졌는데 노아는 그런 것을 다 가치로 여기지 안하고  안전에 두지 안하고 그까짓 걸 다. 상대하지 안하고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는  요거 하나만 목적으로 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조롱을 얼마나 받았겠습니까?  온 천하에 그 사람들 여덟 식구뿐이었으니까 그 조롱이 얼마나 했으며 그  외롭기를 얼마나 외로웠으며 참 고독과 조롱과 멸시 천대가 얼마나 있었습니까?  그들이 모르는 걸음을 걷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멸시 천대를 받을 때에  저들이 멸시하는 이 일을 나는 가치로 알고 하게 되고 모든 사람이 멸시하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 일을 하게 되니까 멸시를 받을 때마다 자기는 울고  섭섭해 하는 게 아니라 멸시를 받을 때마다 저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다 멸시하고 욕하는데 모든 사람이 멸시하고 욕하는 나는 이 순종을 전심  전력 기울이게 됐으니 자기가 세상과 다른 사람된 거기 대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한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 거창서 예수 믿을 때에 그때 그래도 그 골짝에서는 뭐 첫째 둘째  갈라고 이렇게 했는데 내가 예수 믿고 나니까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믿지  말라고도 하고 저 참 불쌍하게 됐다 저 사람 가련하게 됐다고.

 내가 똥장군을 짊어지고, 그래도 그 골짝에는 제일 하이칼라라고, 구두도 뭐  거창서 맞춰서 그래 안 신습니다. 저 서울이나 인천이나 역부러 가 가지고 맞춰  가지고 그래 와서 신어. 그러니까 아주 그때는 아주 땅엣 것을 뭐 구비하게  살았는데. 똥장군 지고 이래 다니니까 그 사람들이 그만 내가 부끄러워서, 나는  부끄러 안하는데 그 사람들이 나를 부끄러워서 저리 둘러가요, 나를 안 만날라고.

 이래 지내면 그 모든 저거끼리 모여 앉아서 저 참 저 영희 불쌍하게 됐다고 저  왜 저거 갑자기 미쳐서 저래 그만 저래 됐는고 모르겠다고 모든 사람들이 조롱을  하는데 그 소리가 내게는 어떻게 들리는 게 아니라 자꾸 조롱을 하고 욕을 해라  그래 들리지 그렇게 욕을 하기를 자꾸 원하고 있어요. 왜? 그게 뭐이냐? 내  속으로는 '저렇게 욕하고 예수 믿으면 망한다는 것을 예수님이 들으시지' 그러니까  예수님 듣는데 자꾸 망한다 흥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를 망한다 흥한다 하는  그것이 예수님에게 약올리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에게 약  올리는 것이니까 약을 되게 올려야 예수님께서 '봐라 망하는가 보자' 이렇게 하실  거든. 그러니까 그분들이 욕하는 것이 내게는 참 기도 중에는 아주 기도 아니면서  강한 기도가 돼요. 강한 기도가 돼요.

 왜? 자꾸 망한다고 저래 쌓으니까 예수님이 듣지 자꾸 망한다 해라. 망한다  해라. 망한다고 하는 그 소리 할수록 하나님이 내게 축복해 주시도록 이렇게 하는  그 일이 되는 걸 알아 놓으니까 기쁘고 즐거워서 자꾸 욕을 많이 해라 이렇게  나는 그저 봐라 봤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욕하는 것이 밉지 안하고 속으로는 온 골짝 사람들이 전부 다  욕을 했으면 하나님의 마음에 충격을 주어서 하나님이 저 욕하는 거 들으시지  '봐라. 너거 말대로 되는가 그런가 봐라. 망하는가 봐라.' 그렇게 역사하시도록  하기 위해서 그걸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이 걸어가는 걸음은 세상이 모르는 걸음을 걷고 세상이  모르는 것을 소망하고 살고 세상이 모르는 그 모든 방편을 쓰니까 미련하다  어리석다, 망했다, 저거는 뭐 미쳤다, 정신 이상에 걸렸다, 사람 버렸다. 별별 욕을  얻어먹는 것은, 부끄러움이라 그 말은 욕 얻어먹는다 말이오. 부끄러움이라 말은  뭐인가? 그들이 이해 못하고 알지 못하는 걸음을 걷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성공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아는 걸음을 걸었습니까? 아는 걸음 걸었으면 세상과 같은  걸음 걸었지. 세상이 전혀 모르고 이해를 못 하고 하기 때문에 조롱하는 부끄러운  그런 걸음이오.

 또, '고난을 개의치 안했다' 고난은 얼마나 고난을 당했습니까? OOO집사님.

예수님이 고난 당한 고난은 어떤 고난이지요? 고난은, 십자가는 마지막에  결말입니다. 이래 가지고 오만 애로, 굴곡, 고통, 예수믿는 거는 고통스러운  걸음이라는 것, 힘드는 걸음이요 고통스러운 걸음이라.

 참 맘대로 자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지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고 그만 고난스러운 걸음입니다. 고난스러운  걸음이라.

 다른 사람은 지금은 날이 더우니까 저녁에 그 선선할 때에 실컷 돌아다니며  놀다가 이제 한밤중 되면 더움이 가셔집니다. 그때 서늘하면 그때 드러누워  가지고 지금까지 누워잡니다. 누워자서 한 여섯시나 되면 일어나고 아내는 이제  밥을 해 줘야 될 터이니까 조금 일찍 일어나 가지고 또 인제 밥해 주면 여섯시나  돼서 깨우면 인제 일어나 가지고 먹고 가고 뭐 실컷 놀고 실컷 자고 또 아내는,  아내는 그래 놓고 또 남편 나가고 난 다음에는 그때는 또 실컷 누워 잡니다. 뭐  이렇게 편한데 예수 믿는 사람은 참 고난스러운 곤란스러운 고생을 하는  고생하는 걸음이오. 고생하는데 그 고생을 얼마나 하느냐? 고생을 마지막으로  죽는 것으로서 그 고생이 끝나는 것이 그것이 십자가의 걸음이라.

 이러니까. 예수님이 성공한 그 방편이 부끄러움과 고생으로 죽는 거, 부끄러움과  고난으로 죽는 그것이 예수님이 걸어가신 승리의 걸음의 그 방편이니까 오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의례히 이 길을 걸어서 성공할라 하면 고난과 부끄러움,  고난으로 죽는 고난의 걸음이요 조릉 받는 수치의 걸음이라 하는 이것을 깨닫고  예수님이 그 걸음 걸어서 승리했으니까 나도 그 소망을 바라니까 그 방편을  취해야 될것 아닙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그저 평안하게 수월하게 예수  믿을라하는 사람은 그게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시험을 많이 당합니다. '백 목사는' 조롱을 합니다. '너무 그렇게 뭐  지나치게' 그러면 그 서부 교회 교인노룻 할라 하면 졸려서 못 살 만치, 졸려서 못  할 만치 그렇게 막 조아대고 사람을 조아붙이고 이렇게 아주 고난스럽게 이런 뭐  눈뜰 여가도 없이 이렇게 몰아 붙인다. 그 사람들하고 예수 믿을라 하면 놀  시간도 없고 쉴 시간도 없고 이렇게 좋은 관광도 갈 시간도 없고 이렇게 모아서  회식하는 이런 것도 하지도 못하고 자유없고 꼼짝 못 하는 예수 믿는 것인데  이제 거기서 나와 가지고 이새 믿고 보니까 뭐 가고 싶은 데 다 가고 놀고 싶은  거 다 놀고 기쁘고 즐겁고 모두 살이 퉁퉁 짜고 얼굴이 번들번들합니다. 그래  내가 그런 말을 들었어요. 저 뭐 OO사람들이 와서 그래요. 자랑한다고. 그  사람들이 있다가서 '너거도 이리 오라. 그 참 좋다.' 뭐가 좋다하는고 좋다 하는 걸  뭘 좋다 하더노 이래 내가 물으니까 그거 좋다해요.

 시간이 있고 수월하고 평안하고 또 가고 싶은 데 다 가고 놀고 싶은 거 다 놀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영 뭐 얼마나 그만, 새장 안에 들었던 그 새가 나오니까  얼마나 좋아서 마음대로 한번 날아보고 마음대로 돌아 다녀보고 그라면 죽습니다,  새 그놈. 새장 안에 갇혀 있던 새가 나오면 좋지만 안 죽는 놈이 없습니다.

결국은 다 죽습니다. 이렇게 편하다 이래요.

 이러나, 참으로 서부교회 예수를 믿을라 하니까 이거 무슨 예수인지 뭐 사람이  눈코를 뜰 여가도 없고 참 피곤하고 되고 괴롭고 고생스럽고 또 그라면서  과거에는 칭찬 받았는데 욕은 찐뜩 얻어먹습니다. 집안에 욕 얻어먹지 가족에게  욕 얻어먹지, 처음에는 가족에게 욕 얻어먹다가 그게 고개를 넘고 나면 이제는  집안에 욕 얻어먹지 집안에 욕 얻어먹을 뿐 아니라 사회에 욕 얻어 먹지 전부 욕  얻어먹는 것 뿐이라. 왜 욕 얻어먹습니까? 먹는 것은 그들이 이해 못 하는 그  소망을 이해 못 하는 방편을, 이해 못 하는 그 행위를 하고 있으니까 그  사람들에게 욕 얻어먹을 수밖에 더 있습니까? 욕 얻어먹는 거, 또 하나는  뭐입니까? 고생스러운데 얼마나 고생하느냐? 고생하다가 죽는 걸음이라.

 예수 믿는 것은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 믿는  사람은 사람들이 모두 다 뭐, 미래에 좋은 거 그것도 안 바라요. 현재 좋은 걸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현재 좋은 거 위해 사요.

 세상 사람들은 현재 좋은 거 가지고 살고 과거 좋은 거 가지고 자랑하고 살고  현재 좋은 거 가지고 살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과거에 좋은 거 그런 거는 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회개를 하고 또 현재에 좋은 그런 것은 아예 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현재 좋은 것은 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것은 취하지 안해.

 창기한테 가 가지고 이렇게 아주 좋아서 날뛰는 그거 과거에는 그걸 좋아했는데  창기한테 가서 현재 좋아하는 그것은 자기를 망치는 것인 줄 알아야 그 사람이  그 걸음을 그 발걸음을 금합니다.

 또, 자기 욕심대로 하는 그것이 현재는 좋지만 하나님의 심판에서 멸망받을 것인  줄 알기 때문에, 자기 욕심대로 할라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애를 씁니까 욕심을  죽일라고 애를 쏩니까? 자, 욕심대로 할라고 애를 쓰다가 욕심대로 돼 놓으면  좋아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욕심대로 할라고 하지 안하고 자기 욕심대로  성공할라고 하지 안하고 자기 욕심을 죽여서 없애 버릴라고 애를 쏩니다. 자기  욕심을 죽이고.

 그러면, 뭘로 삽니까? 자기 욕심을 죽이고 그라면 뭘로 삽니까? 하나님의  욕심으로 살아, 하나님의 욕심으로. 자기 욕심으로 살지 안하고, 자기 욕심으로도  살지 안하고 자기 아내 욕심으로도 살지 안하고 가족 욕심으로도 살지 안하고  부모 욕심으로도 살지 안하고 친구 욕심으로도 살지 안하고 하나님 욕심으로  살아.

 이 말이 됩니까? 하나님 욕심으로 산다는 그것이 말뿐입니까 참으로 됩니까?  성경에 육체의 소욕은 인간 욕심이라 그말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자기 욕심이요  사욕이요 인간 욕심이라. 인간 욕심은 '육체의 소욕은' 그 답안이 뭐입니까?  사망이요 '성령의 소욕은' 생명과 평강이라.

 이라니까, 현재의 모든 사람들은 현재 보고 자기 욕심대로 사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욕심대로 사는 게 아니고 자기 욕심을 죽이고 '나도 한번 사람들이  날 몰라주니까 나도 사람들이 알아주도록 한번 명예를 위해서 한번 노력해야  되겠다' 그 명예 욕심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도 지금 명예 욕심으로 이 세상에  나서 가지고 날뛰는데 그 사람이 그 욕심대로 해 가지고 그 욕심이 성공되면  좋다고 성공이라고 야단을 지기고 가족들도 좋아하지만 그 욕심이 성공한 그것은  다 뭐입니까? 그거 뭐이요?  성령의 소욕 말고 육체의 소욕으로 자기는 세상의 지위 권세 무슨 일류 대학의  또 자가는 뭐 국회의원 대통령 이렇게 자기 그 땅에 있는 육체의 소욕 이것  때문에 전심전력 기울여 가지고 그것이 성공이 되면 그 성공된 그것이 뭐입니까?  다 사망이라 다 망할 것이요 죽고 없어질 것들이라.

 이러기 때문에, 그런 커다란 욕심이 자기에게 닥쳐도 그 욕심을 달성시킬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그것을 죽일라고 애를 써. 이러니까. 그 사람이 국회의원을  할라고 대통령을 할라고 하는 그 잘난 사람인데 그런 욕심을 지금 달성해 볼라고  하는 그 사람이 만일 그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하늘에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힘을 쓴다면 얼마나 굉장히 믿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소망으로 믿으면 소망으로 살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소 욕을 얻어먹소? 욕 얻어먹어. 이러니까 우리가 믿는 이 성공의 걸음은  욕. 얻어먹는 걸음이요 또 고생하는 걸음이라.

 그 사람 예수 믿는다고 칭찬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칭찬을 합니다. 예수 잘  믿는다고. 예수 잘 믿는다고 그 사람이 뭐 잘 믿고 뭐 잘 믿고 무슨 구제를 하고  뭐 무슨 봉사를 하고 어짜고.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그 번쩍거리는 그것은 저  할일 아닙니다. 그 사람은 그 속에 다른 사람이 욕하고 조롱하고 이해하지 못할  그 속에 알맹이 들어 있는 그 일을 제가 할 일입니다.

 또 세상에서 자기 하는 생애로서 그날 그날 효력이 나는 그것을 자기가 하는 게  아니라 효력은 하나도 안 나고 전부 투자만 하고 희생만 하는 그것이 자기가 갈  걸음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욕 얻어먹고 고생으로 뒈지는, 욕 얻어먹고 고생으로 죽는  이것이 예수 믿는 자의 사는 생애 방편이오. 왜 그래?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안하고  그 앞에 있는 즐거움, 그 앞에 있는 성공, 학생들도, 땅에 있는 학생들도 그래요.

그 사람이 자, 현재 좋구로 하는 그 학생이 성공합니까 앞으로 성공할라고  생각하면 현재 고생을 해야 됩니까?  성공의 준비는 뭐이요? 고생이오. 또 현재 좋도록 하는 그 결과는 뭐입니까?  현재 좋구로 하는 현재가 좋은 것은 그 결과가 어떻소? 결과가 나빠. 결과가?  좋은 그 현재는 어떻습니까? 결과가 좋은, 좋은 결과를 만날 그 현재는 어떻소?  고생이라. 이거 온 세상 법이 다 이런데 이 사람들이 어두워 놓으니까 예수 믿는  법도 몰라서 그렇지 별스러운게 아니오. 이치는 꼭 같소. 진리는 꼭 같아.

이러니까 요거 기억합시다. 자, 그라면 오늘 아침에 세 가지 배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첫째는 앞에 있는 즐거움, 미래에 있는 행복, 미래에 있는 성공  미래를. 보고 삽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현재 보고 살지 안하고 미래를 위해 사요.

현재를 위해 살지 안하고 미래를 위해 사는 거 하나,  또 하나는 뭐입니까? 부끄러움을 개의치 안해. 자꾸 부끄러운 노릇만 해.

부끄러운 노릇 하니까 무슨 나빠서 부끄러워합니까? 세상이 이해 못 하는,세상이  이해 못 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하니까'그들은 수치스럽게 자꾸 욕을 하고 있어.

그들이 보기에 욕을 하고 부끄러운 일이지 하나님이야 칭찬하시는 일이지요.

 그러면, 부끄러움을 아예 개의치 안해야 돼. 뭐 하든지 말든지 부끄러움을 당할  그것을 각오해야 되고 또 고난이니 죽는 것이 그것도 상관하지 안하고 그것도  개의치 안해. 개의치 안한다 말은 상관을 안한다 그말이오. 부끄러움도 고생도  죽음도 개의치 안하는 걸음이 그것이 예수 믿는 걸음입니다.

 인간들이 그 잘나고 지혜 있는 자들이 보면 사람에게 칭찬 받을 거 그런 거 다  엮어서 대지, 그걸 딱 계산을 대지, 또 우선 평안하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거,  그러니까 저희 영광은 저희 영광은 어디 있습니까? 우리 자 OOO장로님. '저희  영광은' 내세에 있어요? '저희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그들이 영광스럽다  영광스럽다 하는 것은 눈을 뜨고 보니까 전부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 없는 그것만  자꾸 저거 영광이라 합니다.

 또 우리의 하늘나라의 영광은 칭찬에 있소 부끄러움에 있소? 부끄러움에 있어.

 우리의 성공과 승리와 권세는 살고 커지는 데 있습니까 고난당하고 죽는 데  있습니까? 고난당하고 죽는 데 있어.

 오늘 아침에 세 가지 배웠습니다. 현재 보지 안하고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그 앞에 있는 즐거움. 미래의 즐거움 장래의 즐거움을 위해서 장래의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장래 행복을 위해서.

 그러면, 세상살이는 뭐합니까? 세상 아닌 무궁세계의 행복을 위해서 세상에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오. 예수님은 그래 살았어. 또 예수님은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고 칭찬하고 부러워 하고 하는 그런 영광스러운 생활했습니까  세상들이 조롱하는 그런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그 생활했습니까?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그 생활했어. 우선 평안할 걸 취했습니까 고난을 취했습니까? 고난을  취했어.

 오늘 아침에 세 가지. 앞에 있는 즐거움. 십자가의 고난. 부끄러움 개의치 안한  거. 고난과 부끄러움을 개의치 안해야 예수 믿습니다. 그 고난과, 고난은 무슨  고난인데? 고난은 앞으로 장래에 영광스럽고 행복된 그것을 소망하니까 현재는  고난일 수밖에 없어.

 학교 학생들도 나중에 '일등이다' '전교 일등이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그것은  취할라 하면 현재는 저거도 놀고 싶을 때 놀지 못하고 쉬고 싶을 때 쉬지도  못하고 고난스럽게 공부를 해야 돼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 공장에서 공장장직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공장장을 뭘로 가지고 취했어? 공장장을 고난으로  취했습니다. 고난으로 공장장이 된 거라.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 세 가지 배운 거 기억합시다. 예수님은 그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서,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서 현재의 고난과 부끄러움을 개의치  안했다,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서 현재의 고난과 부끄러움을 상관하지 안했다,  개의치 안했다 상관하지 안했다, 고난이고 부끄러움이고 그런 거 상관하지 안했다.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고난과 부끄러움을 개의치 안했다. 그것  따지지 안했다 상관하지 안했다. 개의치 안했다. 요 세 가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 선생님들 자기에게 해당된 공과를 꼭 외우고 요거라도 실천을 해서 자신이  자라가는 경험과 체험을 하면서 학생들을 기르면 학생들도 커지고 자기도 커지고  자기가 자꾸 커져야 되지 학생들은 커지는데 자기는 커지지 안하니까 학생들이  배울 것이 뭐 있어요? 자기가 앞서가야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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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4 두 신앙 노선/ 창세기 13장 1절-18절/ 830424주전 선지자 2015.10.28
53 두 신앙 노선/ 창13장 8절-11절/ 830427수야 선지자 2015.10.28
52 두 신앙 노선/ 마태복음 4장 17절/ 830321월새 선지자 2015.10.28
51 두 신앙 노선-씨 뿌리는 비유/ 마태복음 13장 18절-23절/ 830503화전집회 선지자 2015.10.28
50 두 신앙노선/ 창세기 13장 1절-18절/ 871018주후 선지자 2015.10.28
49 두 신앙노선-하나님이냐 자기냐/ 창세기13장 8절-13절/ 830502월밤집회 선지자 2015.10.28
48 두 신앙노선-하나님이냐 자기냐/ 이사야 49장 22절-23절/ 830331수새 선지자 2015.10.28
47 두 양식/ 요한복음 6장 27절-35절/ 840226주전 선지자 2015.10.28
46 두 여인/ 마태복음 24장 40절-44절/ 860203월새 선지자 2015.10.28
45 두 운동-두 이치/ 사도행전 27장 22절-26절/ 860814목새 선지자 2015.10.28
44 두 인도/ 로마서 8장 4절-6절/ 840217금새 선지자 2015.10.28
43 두 자유/ 갈라디아서 5장 1절/ 880908목새 선지자 2015.10.28
42 두 종류의 사람/ 요한일서 4장 7절-11절/ 861128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28
41 두 종류의 생활-가인과 아벨/ 창세기 4:1-8/ 800117목새 선지자 2015.10.28
40 두 종류의 생활-가인과 아벨/ 창세기 4장 1절-9절/ 800116수야 선지자 2015.10.28
» 두 종류의 증인들을 보고 온전을/ 히브리서 12장 2절/ 880711월새 선지자 2015.10.28
38 두 종류의 증인들을 보고 온전을/ 히브리서 12장 1절-2절/ 880709토새 선지자 2015.10.28
37 두 종류의 지식/ 고린도전서 1장 18절-21절/ 820602수새 선지자 2015.10.28
36 두 종류의 짐승/ 요한계시록 13장 10절-18절/ 821013수야 선지자 2015.10.28
35 두 주인/ 마태복음 6장 24절-34절/ 820107목새 선지자 201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