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지식

 

1982. 6. 2. 수새

 

본문고린도전서 118~21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선지자선교회

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말씀하신 전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66권 도리를 가리켜서 전도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66권 이 전도가 미련타 그 말은 인간이 생각할 때에는 미련타, 인간이 생각할 때에는 다 그것이 좋은 이치가 아니고 다 나쁜 이치다. 옳은 이치가 아니고 삐뚤어진 이치다. 그것이 잘되는 이치가 아니고 망하는 이치다.

그러면 세상 지혜로 볼 때에, 인간의 지식으로 볼 때에 그 지식은 전부 다 틀린 지식이다 하는 말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그 말은, 미련타 말은 이 전도가 참으로 미련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받을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된다하는 그 뜻과 같은 뜻을 가진 것입니다.

이러니까 전도가 인간 볼 때에는 아주 미련하게 보여지는 이 전도 가지고 인간을 구원하시기를 하나님이 기뻐하셨다 그말이오. 이것을 작정하셨다 하는 뜻입니다.

왜 그러냐? 그는 하나님께서 인류시조 때부터, 배암이 들어온 그때로부터 인간 지혜가 생겨졌고 인간 지식이 출발했습니다. 이것은 마귀가 가지고 있는 그 지식의 종자를 해와에게 심어줬고 해와가 아담에게 심어줘서 이 종자가 자라고 자라 6천년 동안이라는 긴 세월을 자라서 오늘의 인간 지식이 되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버려둔다고 하면, 이 지식을 그대로 버려둔다고 하면 인류는 완전히 망하는 것이 됐는데 하나님께서 이 지식으로 인간이 망하도록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이 지식을 폐하려고, 이 지식을 멸하려고, 이 지식을 없이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다시 타락한 인생들에게 이 전도를 주셨고, 이 전도의 중심은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이 오셔서 이 전도를 완성하셨고 이 전도가 66권 도리와 영감으로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이 말은 인간이 인간의 지혜로 멸망하는데 멸망하는 그 속에 두지 않고 멸망케 하는 그 지혜를 없애 버리고, 또 멸망케 하는 그 총명, 악의 총명 악의 지혜, 악의 총명 악의 지혜라 말은 악한 자기 중심의, 인간 중심의 지혜가 악한 지혜요 인간 중심의 총명이 악한 총명입니다.

이것을 폐하려고 이제 전도를 보냈다 그말입니다. 그게 좋은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과 같이, 좋지마는 남의 좋은 것보다 제 나쁜 것이 좋아서 제게 있는 나쁜 것을 세우기 위해서 남의 좋은 것을 다 절단내는 거와 같은 그런 악의 심정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이 지혜가 다 인간을 망치기 때문에 망치는 여게서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망치는 인간의 지혜를 폐하고 하나님의 지혜로 인간을 구출하시기 위해서 이 전도를 보냈다 하는 말씀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데 미래에 속한 것이 지혜입니다. 미래와 현재에 속한 것이 지혜요, 지식은 과거와 현재에 속한 것이 지식입니다.

지식과 지혜는, 지식과 지혜는 과거 현재 미래에 위치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혜가 현재에 자리잡고 있지 않는 그 지혜는 지혜가 아닙니다. 지식도 현재에 자리잡고 있지 않는 그 지식은 다 지식이 아닙니다. 요 말을 좀,

예를 들면 과거 현재 미래 시간적 경우로 말하면 이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 과거는 지나간 때요, 현재는 바로 지금 이 현시 이것이요, 미래는 앞으로 될 것.

이런데 지식이라 하는 것은 과거에 뿌리를 박아 가지고 그 순애기가 현재에 와 가지고 지금 연결되어서 걸쳐 가지고 나올 것, 뿌리는 과거에 박아 가지고 현재에 이 움싹이 지금 자라고 있는 것이 지식이고, 지혜라는 것은 미래에 뿌리를 박아 가지고 이 움싹이 현재에 와 가지고 지금 자라고 있는 이것이 지혜입니다. 다 같은 건데 지식과 지혜는 여게서 구별됩니다.

지혜라 하는 것은 어데서 나오는가? 지혜라 하는 것은 지식에서 나옵니다. 지혜는 지식에서 나옵니다. 그 사람의 지식이 이러면 지혜가 이렇게 되고 그 사람의 지식이 저러면 저렇게 되고 그 사람의 지식이 반이 틀렸으면 그 사람의 지혜는 틀림없이 반이 틀립니다. 그 사람의 지식이 완전히 다 틀렸으면 그 사람의 지혜는 완전히 다 틀렸습니다. 그 사람의 지식이 완전히 다 맞았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지혜는 완전히 다 맞습니다. 그러기에 지혜의 어머니는 지식입니다. 지식에서 이 지혜가 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게 하나님의 지혜와 사람들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그러면 이 세상이하는 말은, 물론 세상에는 사람도 들고 이 자연도 다 포함된 것이고 과학도 포함된 것이지마는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세상의 주체가 뭐인고 하니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하는 말은 전 인류가그말입니다. ‘전 인류가’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그말은 인간이 자기 지혜로그말입니다. ‘인간이 자기 지혜로그말은 인간이 자기 지식으로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지혜가 둘이고 지식이 둘이라는 것을 여게서 우리는 판정 지을 수 있습니다. 지혜도 둘이요 지식도 둘이라. 하나는 하나님의 지식이요 하나는 이 세상 인간 자기들의 지식이요, 하나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는 이 세상 인간 자기들의 지혜라.

그러기에 세상에는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이 있다. 이 둘만 있다. 이 둘 외에는 없다. 마귀의 지식이 있는 그것은, 마귀의 지식은 인간 지식의 어머니입니다. 인간 지식이 마귀의 지식에서 움이 터 가지가 뻗어 나와 가지고 인간 지식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는 지식은 두 종류가 있다 하는 것을 이것을 견고히 잡는 것이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대학자라도 이것을 잡지를 못하고 있고, 그저 뭐 몇 가지 지식인지? ‘지식은 수백 가지라.’ 그렇게 아는 자가 잘안 것 같고 유식하게 안 것 같지마는 실은 잘못 알았습니다.

지식은 단 두 가지뿐입니다. 이 세상에는 지식이 두 가지뿐입니다. 하늘나라는 가면 지식이 한 가지뿐입니다. 하나님의 지식뿐입니다. 지옥은 가면 지옥에도 지식이 한 가지뿐입니다. 거게는 마귀의 지식, 인간 지식만 가득차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데에는 지식이 둘이 있다. 하나는 세상 지식 하나는 천국 지식, 하나는 인간 지식 하나는 하나님의 지식, 하나는 악령의 지식 하나는 성령의 지식, 내나 같은 말입니다.

요 지식이 둘이 있다는 것, 둘이 있어. 하나님의 지식, 하늘의 지식, 성령의 지식 같은 말인데 하나님의 지식이라 말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지식은 영생하는 나라와 영생하는 자기와 영생하는 기능을 마련하는 지식이라 그말이오.

하늘나라의 지식, 하늘나라의 일을 준비하고, 하늘나라의 실력을 준비하고, 하늘나라의 영광을 준비하고, 하늘나라에 가서 살 사람들을 준비하고,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것을 준비케 하는,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를 준비케 하는 지식이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지식이라.

또 하나님의 지식이라 하는 말은 영원 자존하신, 유일하신 이 하나님, 자존하시고 주권하시고 주재시고 창조주이신, 이 영원 자존하신 완전하신 이 한 분, 완전하신 한 분의 지식이라 말입니다. 완전하신 한 분의 지식이라.

또 성령의 지식이라 이 말은 완전하신 한분의 지식이요 영원한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지식인데, 이 지식이 우리의 이 세상 지식으로 망하고 있는 자들에게 와서,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와 가지고 가르치고 감화 감동시키고 역사하는 지식이라 이것을 가리켜서 성령의 지식이라 지혜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두 가지 지식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하나는 죽이는 것이요 하나는 살리는 것이요, 하나는 죽은 것이요 하나는 산 것이요, 하나는 참 미련한 것이요 하나는 지혜로운 것인데,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 지식으로 생각할 때에 미련하고 인간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으로 생각할 때에 미련합니다. 서로 미련하다 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인간의 지식을 미련하다, 인간 지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지식을 미련하다 이래 서로 미련하다 하요.

그러면 우리는 이 두 가지 지식이 있는데, 이 지식이 없이는 생각도 없는 것이고, 이 지식이 없이는 소원도 없는 것이고, 이 지식이 없이는 분도 없는 것이고, 이 지식이 없이는 기쁨도 없는 것이고, 이 지식이 없으면 인간은 움직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아무, 생명이 있다 할지라도 그 움직임의, 활동의 작용이라는, 마음의 활동도 없고 몸의 활동도 없고, 지식이 없으면 마치 이런 종 이거 한가지입니다. 종 이거 한가지이고, 한가지인데 지식으로 비로소 움직임이 시발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두 가지 지식이 있는데 하나님의 지식에서 노하는 것은, 성내는 것은, 성내는 것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에서 급박한 것은 급박해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에서 냉정한 것은 냉정한 것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에서 미워하는 것은 미워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에서 발족한 것은 미움도 좋고 고움도 좋고, 노하는 것도 좋고 웃는 것도 좋고, 기뻐하는 것도 좋고 싫어하는 것도 좋고, 욕심 품는 것도 좋고, 하나님의 지식에서 발족한 것은 전부 좋습니다. 전부 생명 운동이요 천국 운동이요 다 이거는 살리는 운동입니다.

그러나 인간 지식에서 나온 것은 웃는 것도 그게 사람 죽이는 것이고, 성내는 것도 사람 죽이는 것이고, 분한 것도 사람 죽이는 것, 감사하는 것도 사람 죽이는 것이고, 원하는 것도 사람 죽이는 것이요, 욕심 내는 것도 사람 죽이는 것이요, 판단도 사람 죽이는 것이요, 또 계획도 사람 죽이는 것이오. 방편도 사람 죽이는 것이오. 인간 지식에서 나온 것은 전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런데 사람들이 뿌럭지는 생각지 아니하고 웃으면 다 좋다 합니다. 웃으면 다 좋다 하요. 성내면 다 나쁘다.

어떤 강사가, 그 목회자가 강단에서 아주 교인들의 삐뚤어진 행위를 보고 분개해서, 분개해서 견디지 못해서 강단에서 강단을 치면서 아주 분해서 견디지를 못해서 벌벌 떨면서 이렇게 설교를 하니까 밑에 있는 교인이 말하기를 우리 목사는 강단에서 혈기낸다, 범성죄를 지었다, 강단에서 혈기를 낸다.’ 그 사람이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끝이 망합니다. 끝이 벌써 거의 다 망해갔소. 우리 서부교회에서 제일 잘 살았었는데 끝이 다 망해갔소. 여러분들!

분노도 사랑도 소원도 계획도 경영도 비판도 평가도 웃음도 친절도 그것이 어느 지식에서 나왔느냐 하는 그거 뿌럭지를 찾아야 되지 그것은 찾지 않고 웃으면 다 좋답니다. 사랑이면 다 좋대요. 이러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인간 지식을 자꾸 말할 때에 인간 지식을 그래. 이놈이 우리를 죽이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야 될 터인데 인간 지식을 말할 때에 이 말을 오랑캐같이 생각하니까 제가 그걸 회개하기 전에는 희망이 없다 그거요. ‘그 사람이 뭐인데?’ 네가 그거 회개하기 전에는 희망없다 하니까 아주 속단되는 말같이, 잘못된 말 같지마는 이는 절대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말이오.

혈육 정실을 네가 벗어나라. 너는 혈육 정실이 너를 다스리기 때문에, 혈육 정실이 다스리고 있으니 너는 이것을 회개치 않으면 안된다. 너에게는 이것이 제일 회개할 죄라.’ 할 때에 그것을 반발하는 사람은 그거 회개를 하면, 뒤에 가서 제가 양심을 가지면 아이구 목사님, 참 내가 이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이 있어야 그 속에 성령의 역사가 있지 절대 없습니다. 절대를 인간이 붙일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근거해서 절대를 붙인다 그말이오.

그 사람들은 지금도 그걸 가지고 있어. 여러분들, 대양반이라는 양반이 참 좋습니다. 양반이라고 하면 행위가 그래도 도덕적이요 예의적이오. 이런데, 잘못된 양반은, 우리 한국에 과거에 내려오는 양반이라 하는 것은 아주 몹쓸 착취자, 아주 나쁜 인간들만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착취자들이오. 그때는 양반이라 하는 것을 그 개인의 그 인격이나 행위에 따라서 양반으로 평가하지를 아니하고 하나의 정권, 정권 이것을 근거해 가지고 정권 이것만 가지고 평가했기 때문에, 정권적으로 정권에 권리를 가진 사람들은 다 양반이고, 행위야 뭐 엉망진창이라도 양반이고, 정권에 권리를 가지지 못한, 없는 사람들은 다 상놈이라 했기 때문에 그거는 평가가 틀렸다 그거요. 그런 가정은 다 망했어.

그러나 참 그 근거를 인격에 근거대 가지고 양반이라, 그 사람의 그 행위를 근거해 가지고 양반이라 하는 것은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보면 다 문벌이라고 문중 단위로 우리나라는 살았습니다. 그거 내나 소 왕국이오. 김가, 이가, 박가, 이래 김가는 이가하고 서로 대결하고 서로 성과 성끼리 이래 대결해서 하는데 강한 것이 대성이요 양반이라고 세력을 가졌는데, 이 대성받이들은 과거에 이 자기의 성이라는 그 성명, 자기의, 이름 말고 자기의 성 그게 내나 문벌인데 자기의 문중을 근거해 가지고 세력을 부리고, 세력을 부리는 사람들은 문중끼리는 생사를 같이하는 단합입니다.

그러기에 대성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문중이라는, 자기 혈통이라는, 그 족벌이라는 이것을 벗어나기가 참 힘듭니다. 아브라함에게 첫째 명한 것이 네 아비 친척의 집을 떠나라이랬는데 대성의 문벌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참 희망이 없습니다. 그것을 벗어나야 그다음부터 하나님을 주로 모시지 언제든지 그놈이 주장이 돼 가지고 역사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것이 다 인간 지식이요 땅에 속한 것들인데 이 지식이 두 가지라 이것을 바로 구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우상되어 있는 것은 이것을 버리라 하면 싫어합니다. 우상되다니? 자기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려고 하는데 이 구원을 방해하는 그것이 우상인데 우상되어 있는 것, 자기를, 우상되어 있다 말은 자기를 최종적으로 최고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 자기를 최종적으로 최고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주장하고 있는 자가 그것이 악령으로 되어 있든지 악성으로 되어 있든지 자존심 무엇이든지 뭐 이것 저것 제가 제일 낫다는 자존심 이 내나 악성이오.

악습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사람은 그것도 아니고 낚시질하는 사람은 낚시질하는 데만 자꾸 발달이 되어 가지고 낚시질에만 그만 미쳐 버렸어. 낚시질에만 발달이 됐습니다. 이 사람은 도박하는 것만 자꾸 연습하니까 도박하는 것만 발달되어 가지고 도박에만 눈이 뜨이고 그 모든 것이 성장되어 가지고 도박에만 익숙하고 도박에만 치우쳐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 사람은 술타령하는 사람인데 술을 자꾸 먹어. 술 먹는 데만 자꾸 주력하고 이러다 보니까 나중에 그만 술 먹는 습관이 딱 되어 버렸다 그거요. 또 이 사람은 동무하고 놀러다니는 것, 동무하고 놀러 다니는 것 그것만 자꾸 힘을 쓰다 보니까 이것은 머리가 허여이 늙어가면서도 도무지 동무 떨어져서는 못 살아. 그것도 좋은 것 아닙니다. 나쁜 것이오. 이 사람은 음란에, 음습, 음란에 눈이 띄여 가지고 그것만 연습해 놓으니까 음습, 음란에 그것이 또 연습이 되어 가지고, 음습이 되어 가지고 그 사람이 그 면만 발달되어 가지고 자꾸 달아나고 있다 그말이오.

그걸 가리켜서 모두 다 총합해서 악습이라, 악습이라, 악한 것을 연습한 악습이라. 악성 악령 이것이 뭉쳐 가지고 자기 아닌 자기요, 이것이 자기에게 우상이 되어 있는데, 이놈을 건드리면 발악을 합니다. 다른 거는 건드려도 괜찮다가 이놈만 건드리면 발악을 하고 이놈을 죽이려 하면 마구 죽소. 환장을 하고 죽소. 이놈을 죽이려고 하는 데는 얼마나 힘든지?

아편 맞는 사람, 아편 중독자가 딴거 문제가 없어. 아편 중독자는 그것은 악령입니까 악성입니까 악습입니까? 어데 속했어, 아편 중독자? 악습에 속한 것이오. 그것 악습에 속한 것인데 이것을 고치려고 오만 수단 방법을 가해도 안돼. 좋은 것을 줘서 달래도 안돼. 또 꾀워도 안돼. 뭐 일을 부지런히 시켜도 안돼. 안돼요. 이거 하는 법은 하다 하다 안되면 감옥에 가두는 수밖에 없어. 가둬 놓고 그만 아편을, 아편 주사를 주지 말아야 돼. 이래 놓으면 나중에 얼마나 참기 어렵든지 죽습니다. 그러면 죽을 지경이라 그만 죽어. 죽을 때에 이 아편 주사를 약간 조그매만 놓으면 살아난다 그말이오. 살아나거들랑 또 내버려 뒀다가 또 죽을 지경 되면 또 조금 적게 놓고 적게 놓고 이래 가지고 나중에는 아편 주사를 한 달을 안 놔도 되고 두달을 안 놔도 되고, 이러니까 자기 체질적으로는 안 맞아도 견디기는 견디는데 이는 마음 치료가 문제라 그말이오.

한 서너달 그래 놓으면 이제는 아편 안 맞아도 아무 일 없어. ‘이제는 네가 아편 안 맞아도 살 수 있느냐?’ ‘이제는 뭐 아편 맞기 싫습니다. 아편 그놈 때문에 내가 늘, 아편 안 맞으니까 살도 찌고 건강하고 좋습니다.’ ‘그러면 네가, 내놓을 터이니까 다시는 아편 맞지 말아라.’ 내놓으니까, 몸은 치료가 됐지마는 마음이 치료가 안됐다 말이오.

나가 놓으니까 옆에 동무들이 와 가지고 , 이거 한대 맞아 봐라하니까 맞고 싶어서, 마음이 맞고 싶어서 못 견뎌. 몸은 괜찮은데 마음이 맞고 싶어. 그래 가지고 맞아 가지고 또 아편쟁이 됩니다. 적어도 아편 중독자는 3년 걸려야 됩니다. 3년동안은 걸려서 이래 가지고 완전히 이제는 지식이, 아편 중독이라는 것은 자기와 가정을 망친다는 것이 자기의 지식이 되어 가지고 자기 마음까지 완전히 변화가 되어져야 되어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인간 지식이라는 것이 악령의 지식이요, 악성의 지식이요, 악습의 지식 이 세 가지가 주 모아 가지고 만들어 놓은, 생산하는 지식이기 때문에 이 지식이 참 인간에게 제일 해독을 주는 것이지마는 어리석게 자기가 세상 지식이 있는 사람은 이 지식편이 되어 가지고, 자기가 도리어 지식편이 돼 지식이 미워하지 않는 것, ‘이놈, 인간 지식이 나를 죽이고 인간을 죽이는 것이다.’

미워하지 않는 자는 뭐라 했습니까? 미워하지 않는 자는, 성경에? 미워하지 않는 자는? 대적하지 않는 자는? 환영하는 자라. 성경에 그래 놓지 않았어? ‘대적지 아니하는 자는 환영하는 자, 환영치 않는 자는 대적하는 자입니다.’ 중간, 대적도 아니고 환영도 아니고 중간은 있을 수가 없어. 중간은 없는 것입니다. 둘뿐이지. 미워하지 않는 자는 사랑하는 자요 사랑하지 않는 자는 미워하는 자라. 미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거는 없다 그말이오. 그거는 둔해서, 머리가 둔해서 세밀히 판단을 못해 그렇지 중간은 있을 수가 없다 그거요.

이런데 이것을 죽이려고 그걸 고쳐서 살리려 하면 그 말을 듣기 싫을 때에 제가 어느 편에 속해서 무엇이 들어서 듣기 싫어하는지 그게 뭐인지 하는걸 이걸 알아야 될 터인데 이걸 모른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여러분들, 오늘 아침에는 지식은 두 가지뿐이라는 것을 여기 밝혀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 지혜,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 이 둘뿐이기 때문에 하나는 살리는 것 하나는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우리 몸에, 나는 의학을 모르지마는 우리 몸에는 굉장한 종류의 수많은 종류의 균이 있답니다. , 균이 있는데 균 그것이 아주 보기 약하지마는 균 그놈이 내게 죽어서 내 영양이 안되면 균 그놈은 나를 망치고 맙니다. 내게 있는 균이 내게 잡아 먹히면 그 균은 나에게, 그 균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참 보배로운 균이고 내게 있는 균이 내게 잡아 먹히지 않고 그놈이 나를 잡아 먹기 시작하면 그 균은 나를 망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마는 나를 망치고 만다 그말이오.

지식도 그러합니다. 그 지식을, 내가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을 잡아 먹어서, 그 지식을 요리를 해서 먹어서 그 지식이 내게 이용을 당해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에게 이용을 당해서 식품이 되어지면 보배지마는 이 지식이, 이것이 적든지 많든지 작든지 크든지 요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에게 잡아 먹히지를 않고 요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을 잡아 먹으면, 요 지식이 자기를 잡아 먹으면, 자기가 이 지식을 사용하지 않고 이 지식이 자기를 이용해서 지식에게 지배를 받으면 내나 그 지식이 암병과 같은 것이 되고 맙니다.

암병이라는 것은 공연히 혹 붙은 게 암이 아니고 그 속에 암균이 있어. 암균이 있는데 그 암균은 아주 작답니다. 그놈이 많이 상해놓은 것만 보여지지 암균은 내 보인다 말 못 들었는데, 여기 장로님 있나요? 암균 누가 보이는 줄 압니까? 원자경으로서는 다 봤는가, 발견이 됐는가? 그놈이 장난쳐 놓고 막 상처 해놓은 이걸 보면 , 이것은 암이다, 뭐이다.’ 이래 하지 암균이 지금 내가 보인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모르겠어요. 고렇츰 작은 균이지마는, 작은 균이지마는 그놈이 내게 삼켜지지 않고 내가, 그놈이 나를 들어 잡아 먹기 시작하면 그것은 치료하지 못해. 가장 무서운, 고렇츰 작은 게 무서워.

자기에게 세상 지식이 작게 들어 있어도, 적게 들어 있어도 그 지식이 적든지 많든지 고 지식이 자기를 다스리면 자기는 망칩니다.

우리를 다스릴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뿐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나를 다스리고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의 상전이 되어야 되고 세상 지식은 뭐이 된다고 가르쳤지요? 어제 아침인가 언제 아레 아침인가 가르쳤는데, 세상 지식은 뭐이 되어야 돼? 뭐라 하노? 뭘로? , 그건 또 운전대, 운전수로 그래 또 비유했고, 상전과 종으로 말했는데, 어제 아침인가 아레 아침인가 가르쳤는데, 그래, 세상 지식은 우리가 종으로 가져야 되고 하나님의 지식은 상전으로 모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종으로 잡아 부릴려 하다가는 망해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상전으로 모셔서 하나님의 지식에게는 무조건 복종해야 돼요. 예예 복종하고, 하나님의 지식은 진리인데 진리는 나의 상전입니다. 내 위에 있소.

세상 인간 지식은 내가 그 지식에게 다스림 받는, 지배받는, 상전으로 모시면 적게 모셨든지 많이 모셨든지 그 사람은 그것으로 망치고 맙니다. 암균과 같소. 세상 지식은 자기의 종으로 가져야 됩니다. 그것은, 세상 지식은 내가 이용하고 잡아 부려야 되지 그 지식에게 통치당하면 안된다 그거요.

이것은 말을 하면 무식한 교인들은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그것도 분석해 보면 자기에게는 세상 지식이 없으니까 ! 됐다해서 좋아하지 깨닫고 좋아하는 사람은 심히 드물다 그말이오. “또 지혜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세상 지식이 많은 사람은 이 말은 오랑캐같이 듣고 대립으로 듣지 좋게 듣지 않는다 그말이오.

내가 편지가 온, 건의서 온 그걸 장로님들에게 이제 회람을 시키든지, 회람을, 모이지는 못할 건데 회람을 해서 보는데 여섯 가지인가 일곱 가지인가 적어 놨어, 백목사 틀렸다고. 그게 틀렸다고 고쳐야 된다고 적어 놨는데, 거기다 적어 놓기는 뭐라고 적어 놨느냐 하면 이걸 장로님들에게도 다 같이 보고 대예배 때 한번 확실히 목사님은 지금 이걸 고쳤는지 그 이념이 그대로인지 아닌지 그것을 발표해 달라고 해서,

그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은 아니고 이 장로님들도 그런 요소가 속에 가득찼기 때문에 이걸 보여 줘 가지고 그같은 요소의 사람들은 서로 동맹이 되어 가지고 한덩어리가 되어 가지고 뭉쳐야 힘이 있지. 장로 둘 뭉치는 것보다 서이 뭉치는 게 힘이 있고, 너이 뭉치면, 장로 전체가, 우리 교회 장로가 아홉인데 아홉 장로가 뚤뚤 다 뭉치면 더 힘이 있을 것이고, 뭉치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것 또 배격을 하든지 얼마든지 하나님 것이니까 공개해 가지고 좋도록만 하지 하나님에게 속했으면 뭐 많이 떠들수록 좋습니다. 많이 떠들수록 수입이 크지. 하나님에게 속하지 아니한 것은 아무리 그게 커 봤자 자꾸 말만 많이 나면 결국 절단나고 맙니다. 결국은 비판이 바로 되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두 가지 지식이 있다.’ 여러분들이 양성원에 와 가지고 지금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지식에 대한 확고한 지식을 가지지 않으면 여러분들의 걸어가는 길은 사망을 걸어가는 길이 되고 맙니다. 요 지식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공부한 사람과 이 지식을 구별하고 공부한 사람은 이는 참 천지 차가 있습니다.

조그만한 공부라도 요 지식을 구별해 가지고 요거는 요 지식이다, 요거는 내가 다스려야 되겠다, 요거는 내가 사용해야 되겠다, 내 이용할 좋은 보배다.’ ‘요 지식은, 내가 요 지식에게, 내가 아무리 시시한 것 같아도 요 지식에게 내가 꼭 종 노릇을, 죽어도 복종하고 살아도 복종하고 복종해야 되겠다.’ 요것을 구별해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조그매만 해도 세계를 통치할 수가 있습니다.

이거 모르고 하는 그자는 책보따리라. 생명은 없어. 책보따리지. 도서실, 크게 말하면 도서실이지. 생명은 없어. 여러분들이 요걸 구별하고 공부를 하도록 하십시오.

,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십시오.

 

어쩌든지 양성원에서 이 두 가지 지식을 구별하고 구별하면서 이용할 지식이라고 자꾸 이걸 말해주면서 공부를 좀 빠듯이 시켜요, 눈이 쑥 들어가도록. 그냥 설렁설렁 놀기만 하고 농담만 하고 자꾸, 뭐 저 지난 번에는 양성원이 순 농담 구덩이가 돼 버렸어. 잘 시슥거리는 사람이 인기이고, 웃기는 사람이 인기이고, 시슬지기는 사람이 인기이고. 못 써.

그것도 습성을 들여 놓으면 평생 못 버립니다. ○○○목사님하고 ○○목사님하고 동창생입니다. 나이도 거의 같지, 아마. 그 둘이 또 시슥거리는 데 대해서는 일등입니다. 일등이오. 지금도 ○○목사한테 그 근성이 있어서 가끔 가다 한마디씩 말하면 그 얄굿게 말하며 사람을 웃깁니다. 아주 시슥거리는 것, 그 습성 때문에 내가 꾸중을 얼마나 하고 이래도 지금도 뽑아버리지 못해. 그게 나오면 다른 사람이 우스워서 웃소. 웃으면 그게 장기인 줄 알고 또 그거 가지고 사람을 얻습니다.

그런 인간들은, 그 말 한마디에 그만 혹해 가지고 재미가 붙어 인정이 따붙어 버려. 그런 인간은 그거 안돼. 그게 나오면 미워해야 되지. 어쩔 수 없어 박해는 못 해도 미워해야 돼. 이제 언간히 고쳐지기는 고쳐졌는데 지금도 보면 둘이 만나 놓으면 굉장해. 그전에 학교 다닐 때 둘이 고만 해 놓으면 학생들이 다 배를 쨉니다. 웃기는 것, 시슥거리는 것, 농담하는 것 그런 것 하면 안돼요.

양성원에 또 내가 또 소문을 들어 보면 알아. 이리 저리 진찰하는 법이 있어요. ‘, 누가 고자질한다.’ 고자질이 아니고 아주 원만하게 아는 그 방식이 있어.

우리 ○○조사님도 가끔가다 한마디 슬금슬금 나올 때는 어북 굉장히 나옵니다. 그런 것 다 그게 나쁜 악습이라, 악습. 그게 악습인데 그놈을 죽여야 돼요. ○○조사님 내가 하는 게 긍정돼? 제법 장기가 있습니다. 그 아주 악습이라. 못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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