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주인


선지자선교회 1982년 1월 7일 목새 

 

본문 : 마 6:24-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 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여기 "키를" 하는데 이 사본, 원본 성경은 아니고 이 사본을 사람들이 원본을  보고 이래 베낀 사본인데, 그러기 때문에 베끼기를 잘못 베낀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베긴 사본 중에 어느 사본이 제일 나으냐 하는 그 사본을 대조해  가지고 제일 나은 사본을 지금 채용해 가지고 번역한 것인데 그 사본에는 이것이  키라 이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키라 기록이 돼 있는데 다른 사본에는  목숨이라 그렇게 기록했소. 목숨이라 해 놓은 그게 옳습니다. 그러나 이 사본에  이렇게 됐기 때문에 이 사본을 채용하면서 그것만은 딴 사본의 것을 채용할 수가  없어서 키라 이래 왔지 실은 이것이 목숨이 맞습니다. 그 밑에 보면 거기  목숨이라 해 놨지요?  키는, 그것도 하나님의 모든 주권 능력의 섭리로 역사하기 때문에 그도  한가지는 한가지이지마는 키 그것은 여기에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거는 목숨이 그것이 모든 성경을 봐서 바르다고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왜? 중한 것을 말하기 때문에 목숨이 키보다 더 중하고 또 키로 말하는 그것은  사람들이 이해가 잘 안 돼. 키도 사람들이 시대가, 시대에 키가 커지고 작아지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 의지의 예정이요 주권 능력의 섭리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마는  키라 하면 사람들이 이해가 어렵다 그말이오. 또 키 그것보다 목숨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해.

 이러기 때문에 사본도 이 면은 이 사본이 바로 돼 가지고 있고 저 면은 저  사본이 바로 돼 가지고 있고, 보고 쓴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원본이 획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는 그말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쓴 그 책 그  성경만은 정화무오하지마는 그걸 보고 베낀 것은 인간이 베꼈기 때문에  정확무오라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과 전체를 보면 그게 어떤  것이 돼 가지고 있다 하는 그것을 알 수가 있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27절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목숨을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니느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어젯밤에, 우리가 현실 현실을 당할 때에 무엇을 제일 필요로 하며 또 내가  소망을 하는가? 자기가 무엇이 있어야 그게 내게 필요하고 그로 그 덕으로 내가  살겠느냐 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이 물질이라야 자기가 산다 하는 물질을 섬기고  물질을 바라보고 하는 사람으로 살고 간 것이 한 무더기, 또 하나님이 모든  것보다 필요하다, 하나님만 계시면 다 된다 해서 하나님을 모셔 섬기고 바라보는  것으로,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 하나님을 배반하지 인고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기 위해서 이렇게 살고 간 한 무더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 현실은 이 두 가지로 갈라집니다. 하나님을 모시느냐 물질을  모시느냐,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물질을 의지하느냐,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물질을  바라보느냐? 자기 현실은 이것이든지 저것이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가 되고야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은 전적 물질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섬기고, 그러니까  물질을 더 자기가 튼튼하게 많게 이렇게 해서 자기를 든든케 하려 하는 그것이  불택자의 생활 전부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도 없고 뭐 거기에 한 쪼가리도 없고,  이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도 분석을 하면 불교인들은 부처를 믿는 것  같지마는 그것은 하나의 보면 자기 물질적인 그것을 위해서 부처를 믿습니다.

물질적인 또 그것을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 부처를 믿습니다.

 물질적의 것이 잘되기 위해서 믿는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의 마음도  물질이요 몸도 물질입니다. 그런 걸 여러분들이 잘 안 배우면 모릅니다. 마음이  물질이라는 그 말을 이 교계에 나가서 말하면 그 말 안 듣습니다. 그걸 깨닫는  데는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마음도 물질이오. 신비한 물질이오. 몸도 물질인데, 그들이 뭐 불교 믿는다고  해도 참 자기는 부처를 위해 살아야 되겠다는 그것 아니오. 부처를 이용해  가지고 자기의 물질, 자기의 마음과 자기 몸과 자기 소유 그것이 잘 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게 아니고 자기에게는 어떤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제일 필요하고 중요해서  자기의 생활로서는 하나님 바라보는 그것이 자기에게 생명이요, 하나님 섬기는  것이 그것이 자기에게 평강이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자기에 든든이라.

이래서 자기 현실에서는 하나님을 차지하느냐 물질을 차지하느냐 이 둘 중에  하나로 언제든지 결정을 지우고 지나갑니다. 믿는 사람들도 이 둘 중에 하나를  결정지우고 지내 나가는데, 현실이라 하는 걸 우리가 그냥 보지마는 이 현실은  어떨 때는 참 부애가 날 때가 있습니다. 부애나는 그런 또 현실을 하나님이 딱  만들어 준다 말이오. 하나님이 부애나게 하는 그 현실을 만들어 줄 때에는 그  부애가 안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애나는 그런 현실을 만들어 줄 때 이 부애나는 현실에서는, 부애나는  현실이면, 이 면에는 어쩌냐? 그 면에서도 부애날 때에 '내가 여기에서 부애를  지르는 사람과 물질과 사건 이것을 상대해서 거기에 피동되고 그것으로 인하여서  내가 움직이면 나는 결국은 물질을 바라본 사람이 되고, 물질 취한 사람이 되고,  물질과 인연을 관계를 맺은 사람이 된다.' 이럴 때도 암만 부애나지마는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삼는 이 일을  하려고 하니까 부애대로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부애 그 놈을, 그것도  투자로, 부애 그것도 하나님을 얻기 위해서 이것도, 부애 이것도 하나님 얻기  위해서 이걸 버리지 않으면 안 돼.

 그러면 어떨 때는 그걸 버려야 하나님을 차지할 때도 있고, 또 자기 가진 것을  써야 하나님을 차지할 때도 있고, 자기가 또 어떤 어려움을 당해야 하나님을  차지할 때도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뭐 이런 것을 다 합해서 "모든 것을 다  팔아서 보배를 샀다. 진주를 샀다." 진주, 보배는 하나님과 우리 구원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이것이 아니면 저것, 저것이 아니면 이것, 이것이나 저것이나  둘 중에 하나가 결정되어지고 가는 것인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어제나 오늘이나  이 현실이나 저 현실이나 그저 먹으면 됐고, 마시면 됐고, 입으면 됐고, 뭐 제  욕심대로 되면 됐고, 저 기분 좋게 되면 됐고, 이렇게 현실을 살아가니까 그것이  내나 물질 취한 것이라 말이오 마음 좋은 것도 내 마음, 네 마음 좋은 것도  그것도 물질이요, 내 몸뚱이 네 몸뚱이 좋은 것도 물질이요, 또 권세가 뭐 좋다.

그것도 다 물질 권세지 딴 권세가 아니라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 현실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이 현실에서 영원히 결정되는데, 물질이냐 하나님이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데 어느 것이 결정되어지고 지나가느냐 여기에 대해서 생각을  가져보지도 못하고 그만 현실에 '먹을 것 없으니 먹을 것 마련해야 되겠다. 입을  것 없으니 입을 것 마련해야 되겠다 기분 좋은 사람 만나니 기분 좋다. 원수  만나니 기분 나쁘다.' 전부 그것, 좋으나 나쁘나 자기 현실에 움직이는 것은  전부, 자기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생각하는 것은 다 물질의 것인데 이것만  상대해서 살고 지나가지마는 이것이 '나는 이 현실에서 영원한 관계를 물질로  맺었다. 나는 물질로 관계를 맺고 지나갔다. 또 지난 현실에도 그랬다. 이번  현실에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보면 무엇으로 인연을 맺고 지나가겠느냐?  하나님으로 더불어 인연을 맺고 지나가겠느냐?' 이것을 따져 보지도 않고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만 일생 동안 자 버리는 그것이 뭐이냐? 잠자는 신앙이라 그  말이오.

 자면 살기는 살아 있지마는 행동은 죽은 자와 꼭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숨만 빨딱거리지 그 뭐 행동하는 것이야 뭐 있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되기는 중생된 사람이지마는 죽은 안 믿는 사람과 꼭 같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자는 사람이라, "자지 마라. 깨어 있어라." 하는 것이 그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현실에 모시기를 무엇을 모시며, 바라보기를 무엇을  바라보며, 섬기기를 무엇을 섬기며, 무엇에게 피동으로 움직이느냐 하는 그것이  현실에 제일 중요합니다.

 제일 중요하고 또 그 다음에 둘째로 중요한 것이 뭐이 중요한 것이냐? 그러면  현재에 자기가 이 물질에 있는 이것을 모시고 바라보고 그것으로 인하여  피동되어서 살아 뭣 만들려냐? 뭣 만들려냐? 그 만드는 것이 물질을 취하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물질로 인하여 움직인다 말이오. 물질에 피동된다 말이오.

 물질에 피동된다 말은 그와 같은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부애가 되게 나서 분이  납니다. 분이 나면 그 사람의 말도 행동도 생각도 몸도 전부 그 부애에게 피동돼  가지고 부애대로, 그 부애에게 피동 된 마음으로, 부애나는 마음으로, 부애나는  말로, 부애나는 행동으로, 부애나는 일로 그렇게 하니까 그 부애에게 피동돼서  사는 것이라 말이오.

 또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면 사람으로 인해서, 그 사람으로  인하여 말하고, 사람으로 인하여 생각하고, 사람으로 인하여 행동하고 해서 그  사람으로 또 인한, 사람에게 피동되는 그런 사람도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현실에서 사람 만날 때 사람을 만났는데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이럴 수 없는 것입니다. 물질 만났는데 '물질 있거나 말거나' 이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물질하고 사람하고 무엇을 만나든지 접하기는 접했지마는 겉은  그것을 접하면서 속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 얻기 위해서,  소돔왕과 아브라함이 만났을 때에, 아브라함이 소돔왕을 만나 말할 때에  껍데기는 소돔왕하고 둘이 서로 대화를 하고 있지마는 속은 하나님 얻는  노력했고, 하나님 바라보는 일 만들었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일을  만들었더라 그거요.

 그러니까, 그러면 우리가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물질을 자기  것으로 바라보고 의지하고 심기고 피동되는 그 일이, 하나님이냐 물질이냐  이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러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에게 순종해서 만들기는 뭘 만드느냐? 그러면 이래 가지고 뭘  만들 것이냐, 만들기를? 그러면 너는 물질을 바라보고, 물질의 의지하고, 물질을  성기고, 물질에게 피동되는 것으로 네가 살면 그래 가지고 네가 뭘 만들겠느냐?  그 사람들은 만드는 것이 무엇을 만드느냐 하면 세상 나라를 만듭니다. 세상  나라를 만드는 것이 그 사람들 만드는 것이오. 또 그 다음에는 뭘 만드느냐?  자기의 호위성을 만듭니다. 세상 나라를 만들고 둘째로는 자기 안보를 만든다  말이오, 자기 안보. 안보 만들지 않습니까? 자기가 세상에서 잘되고 높고 세상  것을 마련해. 그 사람들은 그래 가지고 하늘나라에서 죽고 난 다음에 어찌 잘  살려 하는 그것 아니오.

 이 세상에서 잘 살려 한다 말이오. 이 세상 나라를 마련하고, 또 그 다음에 뭐  마련하느냐? '이래야 내가 튼튼하겠다. 이래야 내 명예가 튼튼하겠다 지위가  튼튼하겠다. 내 가정이 튼튼하겠다 내 몸이 튼튼하겠다.' 그 다음에 둘째로  마련하는 것은 자기네들 안보를 마련한다 그말이오.

 뭘로 안보를 하느냐? 자기가 이제 마련한 물질로 안보를 하고 또 물질에  거기에서, 손으로 옥탑을 누르면 '탱그랑' 하면서 이렇게 나오는 것 모양으로  인간들의 그 물질을 신령한 물질을 탱구니까 나온게 뭐이냐? 지식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지식으로 가지고 이제 자기 안보를 하고, 그 전부 물질 그것 가지고 지금  자기를 안보하고 물질 그것 가지고 이 세상 나라를, 자기의 세상 나라를 튼튼케,  자기의 세상 나라가 세상 나라로서 자기가 번창케 존귀하게 그렇게, 그 세상  나라와 세상 안보를 마련하는 것이 그들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그분에게 피동되는 그 피동 가지고 무엇을  마련하느냐? 마련하는 것이 이렇게 하나님을 이렇게 모시고 마련하는 것이  잘못하면 우리들이 '아, 이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 섬기고 이랬으니까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살 것 그것을 이제 이차적으로 마련해야 되겠다.'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기 쉽다 말이오. 그러니까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되 무엇  때문에 섬기느냐 하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마련한 것은 그걸 마련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바라보고 그에게 피동은 하지마는 그분들이 마련하는  것은 내나 세상 나라를 마련하고 세상 안보를 마련한다 그거요. 어떤 사람이  설교를 듣고 모든 사람들이 다 인기가 아마 제일 집중하는 것 같고 모두  날아드는데 그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 그렇다 그말이오. 그러면 어째 보면 하나님  모시는 것은 모시는 것 같지마는 모시고 뭣 하느냐? 마련하는게 뭣 하느냐? 세상  사람들은 인간과 자기와 무슨 과학이나 이런 것 가지고 세상 나라와 세상 안보를  마련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셔 가지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가지고 세상 나라와 세상에 있는 것들을 마련하라.' 이러니까 이것 세상 것  가지고 세상 마련하는데 하나님 가지고 세상 것 마련하라 하니까 잘됐다 그거요.

이러니까 사람들이 모두 다 거기에 마음을 기울이고 그리 들어 붙습니다.

 그것이 옛날도 있었어. 사두개교와 바리새교, 바리새교는 하늘나라를 바라봤던  것이 바리새교이고 사두개교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 그들은 세상 나라, 세상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사두개 교인이었습니다. 그것 언제든지 있소. 지금도  내나 그 두 쪼가리로 그와 같이 돼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첫째 우리의 자본이요, 우리의 근원이요, 우리의 머리요, 우리가  사는 목적이 그분이 우리를 지었기 때문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그분으로 인하여 보존되고 또 그분을 섬기는 그분에게로 돌아가는 것, 그분으로  인하여 생겨진 것이 그분으로 인하여 보존되고 그분에게 돌아가서 그분 섬기는  그것이 우리의 하는 일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현실에서 물질 모든 것이냐 하나님이냐 이렇게 둘 가운데서 하나님을  모시고 바라보고 심기고 의지하고 순종해서, 뭘 만들겠느냐? 자본을 잘 만들기는  만들었는데, 머리는 잘 만들었는데, 자기의 대장은 잘 만들었는데 이래 가지고  뭘 만들겠느냐? '이래 가지고 세상 돈 만들고, 빌딩 만들고, 자기 지위 만들고,  공장 사업 만들고 그러면 좋지 않느냐?' 이러니까 '하, 됐다.' 하고 들이  달라붙는다 말이오. 달라붙으면 또 그게 안 되는 게 아닙니다.

 됩니다. 그건 성경에 허락했기 때문에 하나님 가지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걸  마련하는 인간도 있고, 그것 가지고 그렇지 않고, 뭐 그것은 내나 그것 떠날  것이고 아무 실력 없는 것인데 그름은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이냐 그것이냐 내게  대해서 내 상전이 되지 내 종이 되지 못하는 것인데 하나님 모시고 그것 하려  하다가는 나중에 거꾸로 뒤벼져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인하여 하나님  섬기는 자가 된다 그 말이오. 그러면 그건 우상 숭배자가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래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첫째로 모시고, 너 할 일은 뭐이냐?  하나님의 나라를 네가 마련해라. 이제 그래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서 네가 어떻게  살며, 어떻게 환영을 받으며, 어떻게 모든 것을 봉사하며, 어떻게 필요하고  유익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충만을 어떻게 받아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나눠주는 이 봉사의 중보의 이 귀한 일을 어떻게 하겠느냐?  하늘나라를 네가 마련해라. 하나님 모시고 뭐할 것이냐? 하나님 모시고 하늘나라  마련하는 것이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또 그러고 난 다음에는 네가 안보를 받아야 되는데, 안보를 받아야,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 가지고 이루는 그것이, 완성하는 것이 그것이  의인데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서 완성을 한다 해도 이것이  인간의 의인데 이것이 안 됩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으니' 하나님 의는 예수님이  대형 대행 대생으로써 이루어 놓은 그것이 하나님 의인데 이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서, 이 의를 힘입어 가지고 하나님의 공심판을 면하고, 공심판을 면하고  난 다음에 이 의를 힘입어서 하나님의 심판 면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어떤  의를 이루느냐 그것이 인제 상급이 되고 수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네가 안보는 하나님의 의의 안보를 네가 마련해라. 세상 사람들은 돈  가지고, 어떤 정권자 가지고, 어떤 과학 가지고, 뭐 물질 무슨 가지고 자기를  안보하지마는 그 안보는 세상을 떠날 때는 다 바싹 깨져 버리고 아무것도  없어진다. 네가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난 이 의로 네가 안보를 해라. 이  의로 네가 안보를 가지면 이 안보는 세상에서도 제일, 공산주의 앞에서도 제일,  이것은 바쁠 때도 제일, 병들었을 때도 제일, 죽을 때도 제일, 심판 때도 제일,  무궁세계에도 제일, 이 안보가 제일 이니까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현실에서 무엇을 모시고,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의지하고,  무엇을 인하여서 피동이 되는가? 이것이 첫째 결정되는 것을 알아야 하겠고,  그러면 이렇게 좋은 것으로 돼서 하나님으로 됐다 할지라도 잘 되기는 잘됐는데  하나님으로 돼 가지고 뭘 하는가? 하나님으로 돼 가지고 내나 뭐, 기도하고  의지하고 바라보라 하더니 '집을 해라, 또 사업을 만들어라, 뭣을 어째라.' 내나  그래 가지고 게 잡아 물에 넣는 것 마찬가지로 또 세상 마련합니다. 아무  소용없어 그것이 사두개교입니다.

 하나님을 마련했으면 네가 하나님을 가지고 하나님을 밑천을 삼고, 하나님을 네  원동력을 삼고, 네 근원을 삼고, 하나님으로 네 머리를 삼고, 하나님으로 네  지혜를 삼고, 하나님으로 삼아 가지고 뭐 만들겠느냐? 만들 것 둘 만들어라.

첫째는 하나님 나라 만들어라. 네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만들어라. 둘째로는  하나님의 이 대속이 너를 보호하기는 보호하지마는 보호한 것을 네 현실에서  휘떡 벗어내 버리고, 네 현실에서 이 보호를 그만 벗어내 버리지 않느냐?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네 안보한 이 안보를 벗어버리지 말고 이 안보를  끝까지 입고 네가 지내는 이 일을 노력해라. 이 두 가지를 노력을 해라. 노력을  하면 셋째로 이 물질이라는 그런 것은 너희에게 더하여 주신다. 너에게 적당하게  해 주신다. 많아 필요하면 많게 해 주시고 없어 필요하면 없게 해 주시고 네게  가장 적당하게 해 주신다.

 "이 모든 걸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걸 더 한다 말은  많게 해 준다 말이 아닙니다. 그것이 뭣 때문에 있느냐? 그것은 우리의 하늘나라  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 필요해서 있다 그 말이오. 그것이 경건을 이루든지  불경건을 이루든지 그것을 사용해 가지고 그것 이루도록 하는 것이니까 그것  있는 것이니 그것은 우리가 먹는 데 필요하고 입는 데 필요한게 아니라 그것은  내가 하늘나라의 구원을 이루는 데에 그게 필요합니다. 어떨 때는 안 먹으면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나 어떨 때는 또 굶는게 좋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모든 걸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그 말은 네 구원 이루는 데에 더  효력이 있도록 해 주겠다 그말이오. 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 더 효력이 있도록 해  주겠다 그말이오. 효력이 있도록 해 주겠다 그말이오, 더하겠다 하는 그말은  이러니까 첫째 둘째 셋째 그렇게 해라.

 이 말씀을 깨달으면 마구 좋아서 지금 기절하고 죽을 것인데, 기절을 하고 죽을  것인데, 꼬시고 맛이 있어서, 자, 저녁에 일곱시에 시작해 가지고 아침에  여덟시에 마치면 몇 시간 설교했어? 예? 열 세 시간을 설교해도 피곤치 않고  하나도 졸지 않고, 오줌 누는 사람도 없고, 나가는 사람도 없고, 물먹으러 가는  사람도 없고 이렇게 재미가 있는데,  여러분들도 보십시오. 자기가 이제 믿어도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게  좋다는 걸 깨닫고 안 믿는 사람에게 '예수를 믿어라' 이래 전하면 전할 때에 그  사람이 잘 들으면 말할 때에 피곤이 없이 입에 말이 썩썩 나오는 것이 잘  전해집니까 안 전해집니까? 그 사람이 안 듣고 이러고 하면 가서 전하려 할 때에  그만 입에 말이 안 나오고 그렇게 됩디까 안 됩디까? 그 뭐 반사들은 잘 알겠지.

또 교역자들은 더 잘 알겠지,  이러니까 듣는 사람들이 잘 들으니까 열 세 시간 설교할 것도 있고 설교하는 데  피곤치도 않고 잘 들으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지마는 잘 안 들으면 증거하는  사람도 힘을 써 증거 못 하고, 또 들어서 재미가 있고 깨달아지면 잠이 뭐이요?  피곤이 뭐이요? 열 세 시간 해도 오줌이 안 나오는데. 암만 젊은 사람이라도 잘  때 그렇지만 가만히 앉았으면 자꾸 그것이 지금 순환하기 때문에 배설물 오줌이  채여서 오줌 그릇이 터지려 할 것인데 그것도 없다 그말이오. 또 목이 안  마르겠습니까, 밤새껏 막 이래 이러니까. 찬송하다가 또 그러다가 이러니까.

이렇지만 물 먹으러 나가는 사람도 없어.

 예배드릴 때에 이 에배드리기 전에 '어쨌든지 이번 예배에는 내가 깨달아야  되겠다. 어쨌든지 깨달아야 되겠다.' 뭐 그만 안 깨달으면 저는 죽고 깨달으면  살기 때문에 '깨달아야 되겠다.' 이걸 하나님 앞에 간절하고,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깨닫고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으로 되게 해주옵소서. 능력도  받게 해 주옵소서.' 이래 가지고 첫째가 깨닫는 것이오.

 이래 가지고 이제 '못 깨달으면 죽는다.' 이래 가지고 한 마디 나올 때에 그걸  깨달으려고 애를 쓰면 그 설교가 1학년 설교는 단어로 묘한 말을 한 마디 척하고  그거 깨닫고 그 다음은 또 묘한 말 한 마디 딱 하면 단어적인, 단어적인 그  은혜, 그 은혜가 있고 그 다음에는 단어 그것 가지고는 얕아서 안 된다 말이오.

단어와 단어를 종합해 가지고 이래 큰 걸 만드니까 이렇게 이렇게 여러가지를  모아 가지고 만들고, 부속품 하나를 보배로운 부속품과 이 부속품 둘을 서이를  만들어 가지고 서이 만들어 가지고 둘 서이를 합 해 가지고 만들면 좀 기계가  값이 있는 기계가 된다 말이오. 열 개를 합해 가지고 만들면 값있는 기계가 된다  말이오.

 그러면 부속품의 그 가지 수가 많이 들어 가지고 만들어야 그 기계가 가치가  있소 그 가지 수를 적게 들여 가지고 만들어야 가치가 있소? 어째요? 어떻지요,  여반에는? 가지 수를 많이 들여 가지고 만들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지 수가 좀 커도 괜찮고 작아도 괜찮고 이런 가지 수를 만들어 가지고  있는 것이 힘이 있습니까 그 가지 순가 1푼은 냅두고 뭐 1밀리라도 더해도 안  되고 덜해도 안 되는 꼭 그대로 정확해야 되는 그런 부속품들을 만들어  가지고라야 그 기계가 되어지는 그 기계가 힘이 있겠습니까? 어떻소?  ○○○집사님 한번 말해 봐요. 좀 커도 뭐, 그 기계는 이만해도 아쉬운 대로  쓰고 이만해도 차 쉬운 대로 쓰고, 그러면 그 기계는 힘이 없는 기계입니다.

정확해야 힘이 있는 것이지. 가지 수가 많아야 되는 것이지.

 이와 마찬가지로 설교도, 설교도 한 마디로 되는 설교는 힘없습니다. 모든 면을  이래 가지고 여러 면으로 관계를 가져 '이렇게 해야 된다.' 하는 하나의 기계와  같이 되어지는 것, 설교도 모든 부속품을 모아 가지고 하나의 기계가 조립되는  것과 같은 그것이 설교도 그와 같은 이치라 말이오. 조립이 되는데 두 가지  가지고 조립한 것, 열 가지 가지고 조립 한 것, 많은 숫자를 가지고 조립을 해야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으라는 그 믿음이라는 그 한 마디 가운데는  수많은 것이 이것이 다 연결돼 가지고 하나의 교리가 된 믿는다는 것, 믿으면  된다는 그것이 그런 것인데 그 안에는 수많은 것이 다 종합돼 가지고 조립이 돼  가지고 된 것인데 이것 믿는다는 걸 '믿사옵나이다.' 하나만 가지고 된다고, 이  믿음 가운데 신구약 성경이 다 들었는데. 이렇게 해 가지고 '믿사옵나이다 하면  됩니다.' 이렇게 가르치니 이것이 욕심쟁이들이 들을 때에는 '야, 쉽겠다.

됐다.' 눈이 버쩍 뜨이고 쉽지마는 실상을 하려 하면 안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이 모든 것을 여러가지를 합해 가지고 되어지는 데도, 합해  가지고 되지마는 좀 커도 되고 작아도 되고, 그것은 길어도 되고 '이게 나무는  석 자입니다.' '석 자라도 괜찮아.' '이거 한 자밖에 안 됩니다.' '한 자라도  돼.' 한 차라도 쓸 수 있고, 거기에는 한 자로 써도 되고 두 자로 써도 되고 석  자로 써도 되고 그런 기계라면 그까짓 것 기계 만들어 봤자 아무 힘 없습니다.

 거기는 1분 1초만 더 있어도 안 돼. 그렇게 정확한 것을 요구하고 정확한  것이라야, 그 기계가 되어질 때는 그런 조립의 기계라면 그 기계가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 말이오. 아마 여기 자동차보다는 비행기가 부속품의 종류가 많을  것이고 기계의 대소가 비행기가 더 정확할 것입니다. 여기 말들 소들이 끌고  다니는 그것보다는 자동차가 더 정확할 것입니다. 또 리어카 이것보다는 아마  사람 타고 다니는 자전차가 더 부속품이 많을 것이고 정확할 것이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러니까 설교에 '이래도 된다 저래도 된다.' 그거 어느게 정확하냐? 어떤 것이  정확하며 어떤 것이 종류가 구비하냐? 여기에서 그 사람의 신앙은 능력 있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거 들을 때에 재미가 있고 하나씩 깨달아지게 되면 예배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나도 그것 졸아 봤는데, 어떤 다른, 여기 제자들  설교하도록 시켜 놓고 설교를 하는 데에 그만 내가 준비도 못 하고, 내 기도가  모자라고 준비도 못 하고 또 나도 시험에 든다 말이오. 또 그러고 또 설교하는  걸 볼 때에 아예 이거는 그만 마음에 '이것 틀렸다. 이것 보니까 싹수가 노라이  이거는 아무것도 아니고 틀렸다.' 이래 보일 때에는 그만 그걸 또 나도 그만  시험에 들어 가지고, 그걸 심사를 해야 될 터인데 졸게 된다 말이오.

 내가 그때 한 두 번 설교할 때 다른 사람 설교시켜 놓고 졸아봤는데, 졸 때에  내가 졸면서 안 졸려 하니까 그보다 더 된 게 없고, 졸면서 졸음이 오는데 안  졸려 하니까 그보다 더 된 게 없고, 조니까 그 예배 시간이 어떻게 긴지? '이  사람이 설교를 두 시간을 하나 세 시간을 하나? 어찌 그리 설교가 기노?' 나중에  보니까 설교는 짤막하게 한 35분밖에는 안 했어 제가 뭐 할 말도 없고 하니 한  35분했는데 그렇츰 길지, 잠을 깨려 하니까 어떻게 되 재꼈는지?  그래 내가 생각할 때에 '야, 예배보는 데 이것, 조는 사람들이 예배드리는 데는  제일 고생은, 고통은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다. 예배 드리는 데 고통은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다.'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자기 구역 식구의 뭘 열어 줍니까? 열어 줘야 되는 것은  귀를 열어 줘야 됩니다. 눈을 띄워 줘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깨닫는 이  귀를, 하나님의 도리를 깨닫는 이 이치를 깨닫는 그 귀를, 신령한 귀를 열어  주면 그게 와 가지고 벌써, 이 도리를 깨달으면 절대 이 서부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도리를 깨달으면 제가 떠나지 않습니다. 이 사명감에서 떠났으면  떠났지 '여기에 떠나 가지고 어디로 가겠다.'  여기 있다가 이 청년하고 같이 있던 학생 그 학생이 이 도를 깨달으면 떠나지  않습니다. 왜? 여기서 가르치는 것이 틀리게 가르치지를 않고 또 제가 비교해  보면 아마 다른 데 가르치는 것보다도 여기에서 가르치는 것이 그렇게 뭐  허술하지를 않고 동등이 되든지 그리 안 하면 낫든지 그렇지 자기가 간 교회가  지금 어떤 교회인지 몰라도 그 가르치는게 다를 거라 말이오.

 이러기에 깨닫는 것이 없으면 피곤하고 깨달으면 재미있고, 깨달아서, 벌써  깨달을 때에 재미가 있고 마음에 힘이 나고 하면 그게 뭐이냐? 그 사람이 천국  가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성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예배드릴 때에 성화가 제일 많이 되고 자기가 실행할 때에 그  다음으로 많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성화되고 재미있는 그 사람이 천국 가는  사람이라.

 그때에 예배드릴 때에 깨달아지지 못하지, 또 깨닫지 못하도록 감동시키지,  깨닫지 못하도록 감동시키는 그 영이 뭐이냐? 악령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잠마귀가 마귀 중에는 호주 마귀라 그말이오. 왕마귀라 그말이오.

 깨닫지 못하게 하지, 그러면 깨닫지 못하고, 예배드릴 때에 깨닫지 못하고 잠  오는 그것은 새사람입니까 옛사람입니까? 그게 옛사람입니다. 이게 제일  원수라는 걸 알아야 돼요. 이놈부터 정리해 놔야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자꾸 기도할 때 처음에 준비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라. 이게 그래  대번에 되는 것 아니오. 그때만 해 가지고 안 돼. 이제 자기가 어디 가서  다니든지 제일 급선무가 그것이니까. '주여, 이제는 내가 예배드릴 때에 졸지  않고 깨닫게 해주옵소서. 깨닫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것을 언제든지 하나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저도 기도하는 그 기도는 놓지 않습니다. '주여, 첫째가 66권 도리를 바로  깨닫게 하시고 이대로의 행동이 되고 이대로의 사람이 되도록 해주옵소서. 66권  도리를 바로 깨닫도록 성령으로 감동시켜 주옵소서. 바로 깨닫게 해주옵소서.'  이것을, 언제든지 이것은 기도합니다. 바로 깨닫게 해 달라고 이 기도는 놓치지  않아 안 할 때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무식한 사람이지마는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니까 깨닫는 데  대해서는 제법 다른 사람을 따라간다 그거요, 자꾸 소원을 하니까 내가 무식을  자랑하는 것은 나와 같은 무식한 사람도 되니까, 무식한 사람도 되니까, 나는  국민학교 5학년까지 밖에 안 했는데 무식한 사람도 되니까 여러분들도 된다  그말이오.

 그래 내가 어떤 사람 보는데 국민학교 문턱도 밟지도 않은 사람인데 가만히  보면 말하는 것이나 일 처리 하는 걸 보면 대대학 졸업 맡은 사람보다도 소견이  훨씬 그 위에 있습니다. 처리하는게 그 위에, 훨씬 그 위에 있다 말이오.

 학교서 배우는 지식이라는 그것은 그 배우는 날도 얼마 안 되고 얼마 안  됩니다. 자기 보고 듣고 하는 접촉한 이 시청각에서 배워지는 것은 한없소. 예배  때에 배워지는 것이 성경 볼 때 배워지는 것은 한이 없습니다. 그것은 굉장한  것이오. 이런데 뭐 그것만 꼭 지식입니까? 어리석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배드릴 때 졸면 안 돼요.

 오늘 아침에도, 엊저녁에 이제 자본이요 오늘 아침에 마련할 것은 내가 둘째로  내가 세상에서 뭘 구하느냐? 뭘 구하느냐? 첫째 것 구하고 둘째 것 구하고, 이게  중요한데 예수를 믿어도,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첫째 것도 둘째  것도 아닌 셋째 것 구해 가지고 자기 망하는 일만 자꾸 한다 말이오. 어떤  사람은 또 첫째 걸 구하지 마는 첫째 것 구하는 목적이 뭐이냐 하면 자기 망칠  것 그것 구하기 위해서 내나 첫째 것 구합니다.

 그러면 설교를 하면 그 설교가 땅의 설교냐 하늘의 설교냐, 물질, 유물주의,  예수 믿는 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유물주의자가 있습니다., 유물주의자.

세상주의, 인본주의, 육신주의, 도덕주의, 이런 것을 말하는 이것을 그래 들을  게 아니요 뜻을 깨달아서, 설교를 들으면 '이 사람은 인본주의의 설교로구나. 이  사람은 암만 설교는 하기는 하지마는 실은 무신론자로구나.' 주님, 주님,  하나님, 자꾸 말은 하지마는 따져보니까 제일 머리로서는 하나님이 아니고  딴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무신론이라 말이오. 알겠습니까? 제일 머리가  하나님이 돼 가지고 있지 않아.

 이러니까 어느 것을 섬기고 주인을 삼겠느냐 하는 그걸 따져보니까 그 사람은  내나 유물주의더라 그말이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라. 무신론자라.

 기독교 무신론주의, 기독교 유물주의,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이  사람은 예수 믿는데 정치하기 위해서 예수 믿는 것, 기독교 정치주의,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유물주의, 기독교 인본주의, 기독교 세상주의, 이것이 되면  헛일인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졸음이 없으면 참 좋겠는데. 새벽기도 나오면 저거가 '아, 나는 지금  공부하기 위해서' 공부, 공부 그것 천배 만배 새벽기도 나오는게 낫습니다. 공부  그걸 가지고는 자기를 망칠 수 있지마는 새벽기도 나오는 건 자기를 구원할 수  있어.

 '사업이 바쁘다.' 제까짓게 무슨 큰 사업을 하고 무슨 큰 정치를 한다 해도  그까짓 것보다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제게 대해서 천배 만배 낫습니다. 뭐 제가  뭘 한다고?  '나는 이런 높은 지위에 있기 때문에' 높은 지위 그것 내나 썩을 지위인데  거기에 있으면 제가 죽고, 그것으로 인해 새벽기도 못 나오니 그것으로 뒈지지  뭐야?  그러면 듣기 싫지만 듣기 싫으면 옛사람 그놈이 듣기 싫지 새사람이 듣기 싫은  건가? 듣기 싫어 발동하는 그것은 내나 옛사람에게 붙들려 가지고 지금 죽고  있는 자라 그말이오. 제가 안 배우면 뭘 알 건가? 새벽기도 안 나오는게 그 뭐  배울 능력은 어디 있겠소? 깨달을 능력은 어디 있겠소?  새벽기도 나와야 되고 나오는 데는 안 졸아야 됩니다. 안 졸고 여기에서 변화를  받아야 돼요. 여기에서 새로와지고 힘을 얻어야 됩니다., 어쨌든지.

 이것을 이래 하려면 쉬운게 아니라. 밤에나 낮에나 길을 가면서도 '주여, 나로  하여금 예배 시간 때에 졸지 않게 해주옵소서.' 여기에 마구 붙들리면 꼼짝 못  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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