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처소

 

1989. 2. 27. 월새벽.

 

본문: 빌립보서 2장 5절∼11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늘 아침에 빌립보 2장 5절 이하로 봉독한 것은 2장 9절 이하에 보면 '죽기까지  복종하였음이라 이러므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줘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주라 시인해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게 했다 하는  그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요새 늘 계속 증거하고 있는 누가복음 9장 47절 이하에 있는 그 말씀에 대한  뜻이 깊고 높은 차원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기 쉬워서  자꾸 거듭거듭 말합니다. 잘 듣고 생각하면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차차 진리에  가까운 고차원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이 세상에게 삼키워지지를 않고  유혹받지 않고 요동되지 아니합니다.

 예수님께서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은 이  세상적 처소를 하나도 마련한 것이 없다 그말입니다. 머리 둘 곳이 없다 말은  머리 둘 만한 그런 아주 지극히 작은 그런 처소도 마련한 것이 없다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그 따르는 제자가 '내가 주를 따르겠습니다 하는 그 사람의  따르는 이유와 목적과 소망이 무엇인고 하니 그는 땅에 있는 처소를 소망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면, 예수님을 좇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땅에 있는 그런  처소를 잘 마련하겠다 하는 그런 욕망에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네가 욕망하는 세상적 처소는 나는 지극히 작은 것도 없다, 머리 둘  곳도 없다, 머리 둘 만한 곳, 머리를 둘 만한 그만한 처소도 나는 마련한 것이  없다.'  그러면 세상에저 제일 가련하고 천하고 아주 제일 말단 처소를 나타내기 위해서  머리 둘 곳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 머리 둘 곳이라 하는 데는 다른  뜻으로 해석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런 아주. 미약한 그런 처소도 나는 마련한 것이  없다. 여우도 자기 처소 마련한 것이 있고 공중의 새도 자기 처소 마련한 것이  있다. 그러나 나는 세 상에서 가장 작은 자가 마련할 수 있는 그런 처소도 마련한  것이 없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처소가 없는가? 예수님은 처소가 얼마든지 있도록 처소를 잘  마련했습니다. 예수님은 처소를 잘 마련했으나, 나를 따라 오려고 하는 네가  소망하고 네가 욕망하고 네가 필요로 하는, 네가 가치있는 처소로 생각하는 그런  처소는 나는 하나도 마련하지 않았다, 그런 처소는 내게는 필요 없고 그런 처소는  다 그것은 마련한 것이 다 속아서 마련했지 그거는 참으로 가치 있는 필요 있는  그런 처소는 아니다 하는 그 말을 선포했습니다.

 그런 처소를 마련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고 하니 여우와 같은 그런 인격성,  그런 본질과 본성을 가진, 아주 짐승 같은 그런 수성적인 인격성, 그 본질과 본성,  또 그런 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 지식대로의 처소지 예수님이 가지신 영원 불변의  하나님의 지식대로의 처소가 아니고 참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 같은  온전한 인격성, 하나님의 신성을 닮은 그 인격성, 참사람의 본질과 본성을 가진  자들이 마련하는 처소가 아니고 또 산지식 하나님의 지식, 영원히 변치 않는  산지식을 가진 자들이 마련하는 그런 처소가 아니다.

 산지식을 가진 자들은 그런 처소는 다 죽은 것으로, 죽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죽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은 다 처소가 아니라 자기를  멸망시키는 멸망의, 멸망시키는 하나의 멸망시키는 처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마련하지 않는다. 내가 세상에 하나님으로서 세상에 온 것도 온 이유 중에 하나는  그것도 들어 있다.

 인간들이 마귀에게 꼬임받아 가지고 자멸하는 그 모든 운동과 방편과 처소를  자기에게 필요하고 요긴하고 참 자기가 거처하기에 좋은, 거처할 만한 그런 좋은  처소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꼬임받아 가지고 자멸을 자기 구원의 평안의 처소로  마련하고 있는 그런, 완전히 정반대로 깨닫고 있는 그것을 바로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왔고, 또 그렇게 잘못 깨닫고 저질러 놓은 그 모든 영원 멸망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내가 왔다.

 이제 그것 때문에 나는 근본 부요한 자이지마는 그런 것을 다 내놓아 가지고  가난한 자 되어서 거게서 속량했다. 너희들이 잘못 생각하고 잘못 알아서 잘못  행동으로 멸망을 자취한 그 영원한 멸망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나는 잘못  깨달음이 없는 내 바른 깨달음을 제물로 내놓아 가지고 너희들이 잘못 저질러  놓은 그 형을 내가 대신 받아서 너희들을 거게서 구출하기 위해서 내가 세상에  왔고 가난한 인자가 되었고 또 모든 대속의 역사를 이루신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너희가 욕망하는 것의 정반대인, 너희들이 욕 망하는 그  처소의 정반대인 처소를 내가 마련해서 너희들에게 주고 너희들도 이제는 너희가  지금까지의 가치로 아는 그 처소는 잘못 알아 그러기 때문에 그런 처소를 버리고,  내가 너희들에게 주고 너희들에게 마련하도록 말하는 이 처소를 마련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왔기 때문에 네가 기대하고 나를 따르려고 하는 거와는 정반대의  지금 소망이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소망하는 것은 내게는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거는 내가  너희에게 줄 수도 없고 그런 소망은 다 멸망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소망은 너희에게 줄 수가 없다.

 그런 소망은 내게 없다. 그런 소망은 어떤 자들이 그런 소망을 마련하느냐 하면  여우같고 공중에 나는 새 같은 그런 자들이 그런 소망인 처소를 마련하는 것이다.

여우도 처소를 마련했고 새들도 처소를 마련했지마는 나는 지극히 작은 머리 둘  만한 그런 처소도 마련치를 못했다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처소를 마련을 못 했으면 영원히 어데 가 살 건가? 예수님은  처소 마련한 처소가 없는가? 예수님의 마련한 처소는 빌립보 2장 9절 이하에  보면 죽기까지 복종하는 그 방편을 참된 지식,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인  하나님의 지식에게 복종하는 그 방편을 썼는데 그 방편이 무엇을 마련했느냐?  세상에서는 죽고, 세상에서는 죽었다 말은, 진리로 죽었다 말은 진리로  끝마쳤다는 말입니다. 진리로 뭐 죽었다는 말은 진리로 이제는 진리를 완전히  행했다 그말이오. 진리 행위로 완전히 끝을 마쳤으니까 진리는 다 행한 것이요  진리에 남은 것이 없이 다 행한 것이 됩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 전부 다해서  진리대로 다 살아서 진리대로의 사는 생활로 끝을 마쳤습니다.

 이러므로 그가 마련한 처소는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준  그것이 주님이 마련한 처소요. '하늘에 있는 자들과' 하는 것은 영계입니다. 또  '땅에 있는 자들과' 하는 것은 이 물질계 세상입니다. 땅 아래 있는 자들이라 말은  이 음부, 영원한 지옥을 가리켜 말합니다. 지옥에 있는 자들로 예수의 이름에게  무릎을 꿇고 예수님에게 다 예수님을 존경하고 숭배하는 뜻으로서 그 앞에 다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주라 시인하여' 주라 인정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했다.

 그러면 지옥에 있는 자들도 주님을 주라, 또 이 물질계에 있는 자들도 주님을  주라, 또 영계에 있는 자들도 주님을 주라. 지금은 안 하지마는 잠시 후면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셔서 이 모든 세상이 다 심판되고 은밀한 것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진상과 모든 진가가, 참된 그 가치의 실상이 다  환하게 알게 되는, 어제 말한 거와 같이 빛의 나라, 광명의 나라, 전지의 나라,  모든 것이 낮에 벌거벗은 거와 같이 환하게 드러나는 나라, 평가의 나라, 모든  비판의 나라, 의의 나라, 완전의 나라 그 나라이기 때문에 그 나라가 됐을 때에 그  나라가 된 것은 하늘나라도 그싶고 하늘나라가 아닌 이 우주와 영계는 다 하나가  되지마는 우주를 불에 태워 가지고 다시 재창조해 가지고 영계나 이 물질계라는  우주나 꼭 같은 세계가 되어지지마는 지옥은 그 세계가 되지 않고 있지마는  그때에 모든 것이 다 가리어 있는 것이 되익졌기 때문에 환하게 알기는 다 안다  말이오. 모두 알기는 다 알아.

 알기는 다 아니까 다 아는 그 세계에서, 그 하늘나라에서도 주님을 주라 하니까  하늘나라에서도 주님은 없으면 안 된다, 하늘나라에서도 주님을 서로 오라 하고  주님이 와야 되겠으니까 서로 주님 모시려고 하고, 요거 좀 어려운 말이오. 요거  지금 그렇게 요새 이 어두움의 교회들이 모르고 있는 말입니다.

 하늘에서도 주님을 다 바라보고 영접하고 환영할 뿐 아니라 주님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주님을 제일 필요로 삼고 있고, 하늘나라에서 주님을 제일 필요로 삼고  있고 또 이 물질계에 있는 것들도 다 주님을 펄요로 삼고 있고 지옥에 있는  것들도 다 주님을 필요로 삼고 있으니까 예수님이 거처하실 예수님의 처소는  영계나 물질계나 모든 지옥이나 전체는 다 예수님을 환영하는 처소요 예수님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처소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전체가 당신이 마련한 당신의  처소라. 이러니까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제일 작은 자가 어떤 자냐? 걸리는 것이  이리 가려 하니까 '내게는 필요 없습니다' '여기 좀, 좀 비껴 주십시오.' 모두가 다  비껴 달랍니다. 모두가 다 필요 없다 하니까, 필요 없으니까 필요 없는 자가 거기  밀려 나와야 될 것 아닙니까? 밀려 나오고 밀려 나오고 다 밀려 나와 가지고  하늘나라에 제일 구석에 낮은 자리, 더 밀려 나올 수는 없고 하나님의 피가 있기  때문에 제일 낮은 천한 자리에 그 자리에 밀려 가지고 와 가지고 있고,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도 자꾸 모두 다 어느 자리에 다 환영하니까 어데서든지  다 예수님을 필요로 하고 환영을 하니까 하늘나라는 전부 예수님의 처소가 되어  있고 지옥도 영원히 예수님의 처소가 되어 있고 모든 이 물질계도 예수님의  처소가 다 되어 있는 이렇게 예수님은 처소를 마련한 것이라.

 이러니까 모든 존재들이 예수님만이 필요하다. 예수님만이 나의 주요 나의  구주가 돼야 되겠고 나는 예수님을 따르겠고 예수님을 모시겠고 예수님의 지도를  받겠고 예수님께 나를 맡기겠고 예수님 의지하겠고 예수님만이 필요하다고 모든  존재들이 다 그와 같이 말하는 요런 처소를 만들었음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했다 그말은 하나님 아버지가 이렇게 독생자를 보내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렇게 구속주가 되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필요 있는 이런  존재의 대속을 설정하도록 한 그 일에 대해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돌리고 찬성을 돌리는 이렇게 되어지는 이 처소를 마련한 것이 주님이  마련한 처소입니다.

 이 처소를 마련하기 때문에 세상 처소는 마련치를 않았습니다. 왜? 세상 처소는  다 이것은 악으로 만드는 처소요, 속임으로 만드는 처소요, 하나님을 거슬려 만든  처소요, 마귀적인 처소요, 세상적인 처소요, 불법적인 처소요, 비 진리적인 처소요,  비사랑적인 처소요, 비 진실적인 처소요, 비거룩적인 처소요, 비인자적인 처소요,  비겸손적인 처소, 전부 다 이 더러운 것들만 가지고 만들어서, 제딴에는 처소를  만들어 놓고 들어앉아서 지위 들어앉았으니까 좋다 하지마는 그 처소라는 것은  완전 멸망할 이 처소가 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너희들에게 이 처소를 주기  위해서 온 게 아니고 이 처소를, 너희들이 잘못 깨닫고 가지고 있는 이 처소를  바로 깨달아서 이 처소를 버리고 이제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처소를 마련토록  하기 위해서 내가 왔다.

 '그런고로 네가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땅엣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해라. 거게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우편에 계시느니라' 그분이 이제  처소를 마련해 가지고 있는데 그 처소는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땅 아래 있는  것들도 다 환영하는 그런 처소를 만들었기 때문에 모든 존재에게 다 필요하고,  모든 존재가 다 환영하고, 모든 존재가 다 찬성하고 모든 존재들에게 참 유익을  끼치고 도와 줄 수 있는, 모든 존재가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그 처소 마련한  것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이분으로 인해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돌리게 된 이 처소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런 처소는 지극히 작은 것도 마련하지를 않았다. 그러면  예수님은 처소가 없었느냐? 예수님의 처소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 존재라 하는 것들은 다 주님을 어서 오십시오 주님을 환영하고  당신 없으면 안 된다고 모든 것이 환영하고 필요로 삼는 이제 그 처소를 주님이  마련했는데, 너희들도 이 처소를 마련하도록 하기 위해서 여우 생활을 버리고,  공중에 나는 새 생활보고 그런 인격적인 그런 속성적인 그런 본질과 본성적인  그런 모든 생활, 거게 맞은 그것을, 그런 생황을 하고 있는, 그런 생활을 하게  하는, 배암이 준 이 지식 이것을 지식부터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지식 산 지식을  가져 가지고 너희들이 산 준비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 하는 그런 뜻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는 예수님이 처소를 지극히 작은 털끝만한, 머리 둘 만한  곳이라 말은 아주 이 두골을 둘 만한 그런 게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하나 둘  만한 곳도 없는 그런 처소도 마련 못 했다 그말이오. 머리 둘 곳이 없다 하는 그  말은 이 두상이면 그래도 어북 머리 두려 하면 이 두상이면 그래도 한 다섯 치나  여섯 치나 그런 평방미터가 돼야, 그런 면적이 돼야 이 머리 하나도, 두골 하나도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 하나도 둘 처소를 마련치 못했다  말이오. 마음 하나를 둘 만한 그런 처소도 마련치 않았다 그말이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는 마음 하나 두어서 내 마음은 요게는 살았으면 되겠다.

요게 와서 거처하면 되다. 당신의 마음이 잠깐 쉬어서 갈 만한 그런 그 처소도,  땅위에는 없다 그말이오.

 전부 멸망뿐이기 때문에 멸망 가운데 예수님의 그 마음 하나도 잠깐이라도  거게는 머물 곳이 없는데 너희들은 이것을 눈이 어두워 모르기 때문에 영원히  완전 멸망으로 가는 너희들이 이 처소에, 처소를 바로 알면 거게서는 일시라도  머물지 못하고 뛰어나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터인데, 이 처소가 너거 처소인  줄을 그렇게 착각하고 마귀 그 놈에게 꼬여 가지고 오해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게서 구출하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이 인자되기까지 이렇게 낮아졌고, 앞으로  십자가에 못박혀서 완전히 너희를 대속하기 위해서 그 댓가를 내가 내 가지고  너희들을 거게서 구출하려고 하는 것인데,  이 처소를 너희는 소망하고 나를 따르니, 나에게는 그런 처소를 내가, 나도  마련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그런 처소 마련하는 것을 마련하지 못하도록. 거게서  구출하기 위해서 왔는데 그런 처소를 네가 욕망하고 나를 따르니 그것이 다 네  기대에는 어긋나니까 그것을 다 버리고 이제 내가 마련한 처소 이 처소, 모든  존재에게 환영하여서 가지 말라고 이리 오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존재가 찬성하는,  모든 존재들이 없어서는 안 되고 필요로 여기는, 모든 존재들이 환영하고 모든  존재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는 이 처소 마련이 있는데 마련하지 않고 모두가  다 싫어하는 거, 모두가 다 싫어하는 거, 저만 좋아하지 모두는 싫어하는 것이  그거 세상 처소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저는 좋아하지마는, 저는 제가 중심이기 때문에, 제가 중심이기 때문에 저는  좋아지마는 저 좋아하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다 싫어합니다. 이것이 이  자유법에, 공평법에, 또 평가법에, 또 의의 법에, 이 모든 것을 환하게 알고 있는  전지의 그 눈초리 앞에서 이런 것들이 있을 수 없는 그런 처소를 네가 마련하려  하기 때문에 돌아서라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우는 그거는 항상, O목사님이 단절 해석은 그걸 말을 했는데 여우는  항상 썩은 것만을 맛있게 여기고 썩은 것만 쫓아하고 썩은 것만 취미 붙이는  그것만이 아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런. 생리성 가진 여우로 비유한 것은 이제  무엇이든지 썩은 거라야 좋아하지, 죄 라야 재미가 있지 죄가 아니면 재미가 없어.

기쁨도 불의한 기쁨이라야 재미가 있고 하나님 법에 위반된 것이라야 재미가  있고 하나님의 그 영감에 배치된 거라야 재미가 있고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야  재미가 있고 전부 썩은 것, 썩은 것이라는 것은 마귀적이요 다 사망적이요 다  비진리적이요 불법적이요 죄적이요 전부 삐뚤어진 것 그런 것만 취미한다 말있오.

 그거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열 명을 놓고 열 명이 기뻐하는 그 기뻐하는 거,  기뻐하는 걸 고것을 기뻐하는 것을 만일 백 개라고 하면 백 개 기뻐하는 그것이  다 뭐요? 전부 썩은 것입니다. 그거 전부 썩은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6장에 말씀하시기를 육체를 위하여 심은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은 자는 영생을 거둔다 이러니까 전부 그 본질이 썩은  것 죄된 것만 좋아하고 사망될 것만 좋아하고 하나님과 배치되는 것만 좋아하고  영감에 배치되는 그런 것만 자꾸 좋아해. 기쁨도 그 기쁨 사랑도 그 사랑입니다.

사랑도 전부 죽은 사랑, 썩은 사랑, 죽이는 사랑, 더러운 사랑, 심판받을 사랑,  영원히 멸망받을 사랑, 자꾸 사랑도 그거요, 기쁨도 그거요, 소망도 그거요, 원하는  것도 그거요, 가치도 전부 죽은 것 썩은 것 그것만 가치 있게 생각합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주님께서 하나의 비유한 그것으로 여우를 말한 것은 여우는  썩은 것은 좋아하는 그 성질 하나를 우리에게 비유로 이용해서 가르치기 위해서,  전부 그거는 성한 것도 썩아야 맛이 있지, 그러니까 O목사님이 그걸 뭘 묻어 놓고  썩으면 캐 먹는다고. 썩어야 맛이 있어. 그러니까 썩은 것만 좋아해. 여우는 썩은  것, 썩지 아니한 거 생 거는 안 먹어요. 썩어야 좋아해요.

 이 모양으로 이제 모두 다 그 내외간도 처음에 결혼해 가지고 썩지 아니한  사랑이나, 만일 하나 신앙이 없으면 썩지 아니한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려 햐면  맛이 없어서 토해 내고 자꾸 이래 쌓다가 차차 차차 그 아내가 썩어지고 남편이  썩어져서 썩어진, 이제 썩어진 사랑, 썩어진 취미 그런 걸로 바꿔지면 좋아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썩어야 먹지 썩지 않으면 못 먹는다 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요? 알아들려져요, 저 OO 교회서  은? 뭐 알아듣겠어? 사랑도 썩은 사랑이라야 맛이 있어. 썩지 아니한 사랑은  딱딱해서 안 됐어. 썩지 아니한 사랑은 뭐이냐? 죄를 없애는 게 사랑이요 의롭게  하는 것이 사랑이요 하나님하고 밀접해지는 게 사랑이요 이제 진리대로 나가는  게 사랑이라. 그거는 그만 영 그만 다 싫어. 우리 총공회도 지금 모두 싫어서  나가는 게 뭐이냐 하면 썩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다, 저거가 원하는 건 썩은 걸  원해. 썩은 걸 원해 가지고 그래 지금 나가고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잘 믿는 처녀하고 못쓸 남자하고 둘이 결혼해 놓으면 이게 그 처녀가  그만 남자 모양으로 완전히 짐승이 돼 가지고 완전히 썩어진 것, 하나님 법에  위반된 것, 동침도 하나님 앞에 위반되게, 또 사랑도 하나님 법에 위반되게 서로  소망하는 것도 하나님 법에 위반된 것 전부 썩은 거 이런 것만 거석하면 의논이  딱 맞아 가지고 좋을 것인데 하나가 살아 있기 때문에 비위가 맞지 않으니까  나중에 가서 이혼도 하고 야단이 된다 그말이오.

 그게 다 하나는 생 걸 좋아하지 하나는 썩은 걸 좋아하지 하니까 성분이 다르고  본질과 본성이 다르고 모두 구미와 취미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 그러면  인간성이 지금 완전히 참사람의 인간성과 멸망 사람의 인간성, 마귀적인 인간성과  하나님적인 인간성이 다르다 그거요. 이런데 사람이라는 것이 자꾸 앞으로  전진하고 향상해서 자꾸 이렇게, 암만 과거에 그 사람하고 나하고 과거, '그  사람이 나한테 잘못하더라.' 잘못하더라 하면서 원망 불평하는 그것이 전부 다  과거 때문에 생긴 것이라. 원망 불평할 그게 아니고 그거 그 사람이 원망  불평하든지 말든지 나로서는 그 사람이 뒤에 감사해서 나를 높이고 나한테  머리를 숙이고 감사히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미래 건설이 얼마나 있는데  미래 건설은 하지 않고,  자꾸 과거만 돌아보고 지금 그래 가지고 지금 파괴만 돌아보고 건설을 생각지  않고, 전진은 생각지 않고 후퇴만 생각하고 그 모든 후회만 자꾸 하고 있다  말이오. 후회 백 번 해야 소용 없습니다 후회 할 것이면 후회를 하지말고 후회할  것이라면 앞으로 그 좋아서 후회할 것이 앞으로 다행이다 다행이다 행복이다 할  수 있는 미래 건설이 얼마나 있는데 자꾸 후회만 돌아보고 있는 그것이 뭐냐  하면 여우가 뒤돌아보는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다 말이오.

 하늘나라 이루는 것은 한번 책임 졌으면 요동치 않고, 겨자씨 비유로, 겨자씨는  신어 놓았으니까 거게서 뽑히면 죽어. 거게서, 꺾어져도 거게서 꺾어지고 말라도  거게서 마르지. 이러니까 새와 겨자씨 나물과 대조적으로 이렇게 비유했는데, 새는  정처 없이 자꾸 제게 유리하도록 환경과 주위에 따라서 제게 유리하도록 자꾸  변동되는 그것이 새요, 이 겨자씨는 한번 박혀 놓으면 심어 놓으면 요동치 않는  것이라.

 믿는 사람이라면 책임도 한번 져 놓으면 그대로, 한번 뭐이 시작했으면 끝까지,  책임졌으면 끝까지, 또 한번 맺었으면 끝까지, 작정했으면 끝까지, 자기가 소망을  가졌으면 끝까지, 모두 끝까지 변동 없는 그런 것을 취하고 또 취한 것이라면  주위 환경 어떻게 된다 해도 변동하지 않고 나가는 그것이 새의 반대의 생활인데  새는 그런 게 아니라.

 아무리 약속해도 휘떡 벗어버리면 되고, 책임져도 벗어버리면 되고 자기의  형편과 사정 자기에 따라서 정처가 매인 데가 없이 박힌 데가 없이 이와같이  돌아다니면서 이와같이 하는 그런 자라 말이오. 그런 자의 생활 법칙과 그런  인격은 뭘 마련하느냐? 이 세상에서 썩어지고 없어질 그 처소를 마련하기  마련이라 그말이오. 어제 그 처소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썩은 지식  죽은 지식이기 때문에 그 지식적인 처소로서 세상 지식에서 제일 존귀한 처소라  한 그 처소가 하나님 의 말씀에는 제일 불행한 처소가 됐다 그말이오.

 그러면 세상에 제일 존귀한 처소가 누굽니까? 모든 정치가들은 유명한 정치가가  되려 했지마는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서 보면 제일 죄를 많이 지어서 지옥에 제일  밑층 갈 사람이 제일 유력한 정치를 했고 그렇게 정치적으로 유명하고, 또  세상에서 종교 중에 제일 큰 종교를 가진 그 종교 창설자가 제일 좋은 처소를  마련했다고 하겠는데 하나님 말씀에 보면 그 사람이 제일 사람을 많이  유혹시켰고 많이 넘어지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제일 지옥의 밑층에  간다 말이오. 종교, 모든 타종교의 창설자가 종교를 창설해서 자기에게 따른  사람이 많을수록 많은 사람을 미혹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지옥 중에는 제일 아래  지옥에 밑층 지옥에 가게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런 것들이 다 지식이 틀렸기 때문에 그것을 멸망인 줄 알지 못하고  속아서 이러고 나중에 죽을 매는 다 벙벙한 사람들도 있고 어떨 때는 사람들은  죽고 나서 보니까 다 헛일이라 그말이오.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하, 우리 남편이 이렇게 사랑하니까 제일 사랑한다. 나도  남편 위해 죽고 남편도 나를 위해 죽겠다' 그렇게 사랑이라고 봤는데 나중에 숨  딱 떠나 가지고 이제 광명 세계를 하나님의 심판을 딱 보니까 전부 남편은 자기  다 속였고 자기는 남편 속이고 하기 때문에 전부 다 서로 속여서 해친 것뿐이기  때문에 다 과거에 산 생활이 원통하고 후회하고 전부 미안하고 부끄럽고 다  죄송스러운 것뿐이지 하나도 감사할 것은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이해가 돼요?  그래서, 새에 대해서도 여러분들이 자꾸 생각을 하면 새적인, 공중에 나는 새적인  그 인격성, 기독자는 자기가 한번 깨달은 것이면 변동이 없어. 한번 바로 깨달은  것이면 죽었으면 죽었지 그 깨달음에서 죽고, 또 한번 옳은 의를 시작했으면 그  의에서 죽지 의를 시작해 가지고 형편에 좀 좋다고 하고 싫다고 이래 변동하고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인내의 도입니다. 인내의 도 인내의 도인데 공중에  나는 새들은 계속은 없어. 그거는 형편에 따라서 자주 날아다녀야 되는, 자주  날아다녀야 된다 그말이오. 그런 자들은 세상 처소를 마련해요. 세상 처소를  마련하고 이제 천국적인 이 생활 방편 가진 것은 세상 처소는 하나도 마련하지  못해요.

 장사하면 어떻게 거짓말 할 수가 있나? 정직만 자꾸 하려 하니까 형편에 따라서  정직을 열 번 하고 난 다음에는 정직 열 번 해서 다른 사람에게 신임 얻은 그,  다음정직 열 번 해서 신임 얻은 그 신임 얻은 걸 가지고 한목 한번에 폭 속여  버리면 열 번 정직해서 손해 본 것을 한목 도매금으로 몽탕 몽탕 수입을 하는 것,  이러기 때문에 그 모든 증설을 다 과괴로 이용하고 이래 가지고 이 세상, 무슨  말인지, 무슨 말인지 모르면 그저 알고 그런 게 뭐 있다 하더라 하고 자꾸 명상  많이 하고 생각하면 알 수 있어.

 그러니까 이 도가 낮으면,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 도가 안 들어가요. 그러니까  항상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이름만 예수 믿는 사람이지 실상은 안 믿는 사람과  갈애. 그러니까 불교 믿는 사람이나 무슨 다른 이종교 믿는 사람이나 다 이름만  다르지 끝은 같다 하기 때문에 종교 통일을 말하는 자들이 이 도리를 깨닫지  못해서, 그자들이 깨달았으면 기독교를 똑똑히 구별하지만 깨닫지 못해서 그래.

 OOO장로님 좀 알아지겠어? 아멘이 돼요? 알면 죽어도 못 가요. 알면 이 도를  떠나지는 못해요. 이 도 속에서 죽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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