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교회

 

1981. 9. 16. 수야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18절 - 22절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요사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은혜를 받는 중에 있습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산 것이 없는 참 죽은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이 교회에 하나님이 주시는 그 희망을 볼 때에 지극히 큰 희망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승리하시고 아버지 보좌에 앉은 거와 같이 이 라오다게아 교회도  승리하면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서 예수님의 승리하신 그 승리와 같은  승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여기에 선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죽기 전에는 어떤 지경에 있어도  희망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희망을 잘못 생각해서 죽기 전에는 회개만  하면 된다 해서 낙관시 하다가 회개를 못하고 불쌍한 구원을 얻어 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되기 쉽습니다.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이라든지 또 자기가 해야 될 그 외로운 일을 하는  것이라든지 그런 것은 인간 자기 마음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야  하고 또 은혜를 주셔야 되지, 회개도 어느 때나 제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의로운 그 행위도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고 참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가 기회를 만날 때에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이지, 뭐 우리가  죽기 전에는 희망이 있으니까 언제든지 내가 다시 새로워지면 되지 않겠느냐! 앞선  자가 뒤 되고 뒤선 자가 앞선다고 했으니 내가 늦게 서둘러도 좋은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길이 있지 않느냐! 이렇게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완패케 해 가지고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 사람이 마음을 강팍케해서 실패가 되는 것이지 기독자들이 죽기 전에는 어떤  경우에 빠져 있어도 지극히 큰 소망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루면 됩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고 내가 함께  있으니 네가 지금부터라도 힘쓰면 된다. 문을 두드리노니 열면 내가 들어가면  된다. "그 문 두드린다." 말은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이 들어오시기 위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영은 중생시켜서 우리 영 안에는 주님이 내주 해 계시지마는 우리 마음  안에는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점령해 가지고 있고, 주님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시지 못하는 데에서 우리의 생애에 사망이 생기지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마음에 주님이 들어오셔 가지고 주님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신다면 그때부터 모든  것은 다 영생화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지경에 있을지라도 낙망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어디서라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는 우리입니다. 여기에 라오디게아 교회에 "라오디게아  교회가 나는 부자라 모든 것이 부요해서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러면 부요하지 아니한 것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부요한 것을 말을 했습니다.

그 부요한 것은 세상대로 부요한 것입니다. 세상대로 부요한 것 예수님을 믿지  아니할 때 우리들이 세상 것으로 소유해 가지고 있었고, 또 지금도 안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은 모르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으로 갖추어 가지면  그것이 자기의 것이 됐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삽니다.

그와 마찬가지인 그런 부요관을 가지고 부요관 부요에 대해서 그렇게 세상이 아는  대로의 그런 그렇게 알고, 또 행복이라는 행복을 세상 사람들이 이런 것이  행복이라 저런 것은 불행이라 행불행을 세상 사람들이 보고 있는 그대로 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시고 네가 참 가난하고  가련하고 벌거벗고 눈멀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독자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표준하고 있는 그 가난이 우리 가난도 아니요. 그  부요가 우리 부요도 아니요 그 영광이 우리 영광도 아니요. 수치가 우리의 수치도  아닙니다. 우리는 순전히 세상이 모르는 그 빈부를 존영을 행불행을 실력을  상대해서 사는 것이 기독자들입니다.

그러기에 라오디게아 교회가 세상이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하고  해서 나는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 하는 그것이 믿는 사람으로서의 평가하는  것으로 보면 아무것도 없는 그것보다 더 불행스러운 처지에 있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은 모든 행복이라는 이 행복관을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대로  이대로의 행복을 가져야 되지,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무시하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그런 행복과 불행을 자기가 그대로 알고 있다고 하면  우리의 생애는 다 꺼꾸로의 생애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밤에 봉독한 말씀 가운데에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자되라 흰옷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안약사서 발라  눈에 발라서 보게 하라 네가 이기면 내가 승리하고 승리의 보좌에 앉은 것 같이  네가 이기면 너도 나와같이 이 승리의 보좌에 앉게 된다." 하시면서 이 세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하는 이 금은 믿음을  말합니다.

불로 연단한다는 말은 이 세상 온갖 파란곡절, 애로, 굴곡, 이 세상에 참 온갖  좋아서 어렵고, 나빠 어렵고 그 환경이 여러 질로 여러 모양으로 변해지는 그런  변하는 속에서도 네가 요동치 않는 그런 믿음으로 네가 부자가 되라 하는  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대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처럼 참 사람으로 온전한 생애를 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불로 연단한 금 이 세상 온갖 환경의 변해지고 온갖 그 애로에 별별  유혹과 궤휼과 교훈의 풍조들과 이런 저런 세력들의 마찰하는 어떤 것이 있어도  네가 요동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 생애, 그것 가지고 네가  부요해져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온전한 행위 가지고 온전한 행위를 해서 부요해지면 온전한 행위만 많이  했다는 말인데, 온전한 행위는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그 행위요 진리에 피동되는 그  행위인데, 그 행위가 무엇인데 그것 가지고 부자되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어떤 현실에서든지 그 진리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과 진리를  놓지 안하려고 진리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은 영원 자존하신 그 신성을 가지신  생존하신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과 진리를 놓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와 동거 동행하는 이 생애를 하려고 하니까 온갖 어려움이 와도 요동치  안하고, 참 자기에게 박해가 와도 손해가 와도, 감옥에 갇혀도, 마지막에 죽임을  당해도, 진리를 놓지 안하고 하나님을 놓지 안하고 모든 것이 희생당해도 하나님과  진리를 잡고 놓지 안함으로 그 진리와 자기와 이제 하나가 됩니다.

또 하나님을 모시고 자기에게 어떤 그 피곤하고, 지루하고, 괴롭고, 억울하고,  분하고, 두렵고, 아프고 별별 일이 있어도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을 놓지 안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있음으로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 자기와는 하나가 되어지고 자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은 자기의 하나님이 되고, 이렇게 그 어려움에서  하나님을 네 하나님으로 진리를 너의 진리로, 너는 완전히 네가 진리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것이 되어지는 이것으로 네가 부요를 삼아라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창조주요 조물주요 구속주이신 이분이 자기의 하나님이 됐으면 자기의 주가  됐으면 또 자기가 완전히 주의 것이 됐으면 주님이 자기에게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하실 것이고, 또 주님이 자기의 하나님 됐으니까 하나님의 모든 것은 다  자기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이리 될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우주와 영계에 모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것이 "하나님이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하는 말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여러 날 전에 많이 해석을 했습니다. 먹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인격의 양식이라 얼핏 들으면 모르나 생각하면 다  압니다.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 말은 너는 나를 힘입어서 네게 대한  의무와 책임, 하나님이 네게 맺긴 사명, 네게 맺긴 직책, 네 본문 하나님을  힘입어서 그것을 다 할 수 있다 하는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이 세상은 잠깐 나그네 세상으로 지나가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 세상은 완전히 다 끝나버립니다. 이제 만물은 새로워지고 새 하늘과  새땅과 되어집니다. 이 우주가 이대로 있지마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두가 다 멸할  것은 멸해지고 모든 것이 영원히 새로워지는 세계가 되고 무궁 세계가 되어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의 안에서 통일이 될 때에 그때에 부요는 어떤  부요가 그때 부요인가? 하나님으로 부요 진리로 부요 이외에 다른 것은 그 나라에  부요가 되지를 못합니다.

홍포입은 부자가 이 세상 것 가지고 많이 부요했지마는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  그는 조그마한 소유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하늘나라는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하나님의 것으로 자기가 삽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살고, 하나님의 힘으로  살고, 하나님의 지혜로 살고, 하나님의 욕망으로 살고 전부 하나님의 것으로  삽니다.

마치 그 사람이 병들면 병균대로 썩어들어 가지마는 그 사람이 건강해서 생명이  있을 때에는 그 사람의 세포나, 근육이나, 지체나, 움직임이나 전체는 그 속에  있는 그 생명대로 움직입니다. 생명이 움직여서 생명이 손가락 끝에까지  움직이면서 생명대로 움직입니다. 생명이 움직여서 생명이 손가락 끝에까지  움직이면서 생명이 힘이 가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나라는  완전하신 하나님 한 분이 역사하시는 그 한 분으로 인한 그 모든 역사가 피조물을  통해서 피조물들에게 전달해서 영원히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손가락도 내 손가락은 내 생명 내가 가진 이 생명 하나 가지고 이  손가락도 살고, 세포도 살고, 간도 살고, 콩팥도 살고 모든 것 다 사는 것처럼, 온  전신의 수많은 지체가 있고 세포가 있지마는 그 한 생명 가지고 모든 것이 살고 한  행복을 가지고 전 지체가 누리고 한 불행이 있으면 전신 전체가 다 불행을 같이  내리는 것처럼, 하늘나라는 하나님 한 분이 우리의 생명이 되셔서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움직여지는 그것이 하늘나라 힘이요 하늘나라의 지위요  하나님의 실력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 인한 그 힘이 많으면 실력이 많고 없으면 실력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것,  하나님의 지체로 하나님과 결합되어 가지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고 사는 그  연결이 많이 됐나 적게 됐나? 강하게 됐나 약하게 됐나? 있나 없나? 그것이 이제  하늘나라의 실력이요 부요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가면 무슨 영계뿐 아닙니다. 이 우주 이것도 새로워져 가지고  영계와 우주가 지금은 통치가 따로 있지마는 영계가 우주가 통일 통치를 합니다.

한 통치를 받아 가지고 영계나 우주가 같은 한 통치에서 움직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그것만이 그 나라의 실력입니다. 세상에서도 이성적인  그 국가라고 하면은 그 국가의 최고의 정권자라면 그 기간이 되는 동안에는 그  정권자 그가 온 전국을 움직이고 전국은 그로 인해서 그에게 피동되어서 전국이  움직여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세상은 인간이 무능하고 죄악이 끼어서 논리는 그렇지마는 그래도 실현되는  것은 빈약하지마는 하늘나라는 전능하신 분이 홀로 계시면서 없는 가운데에서  만드신 그것을 영원무궁토록 당신으로 인하여 움직이고, 당신으로 인하여 살고,  당신으로 인하여 행복되고, 뜻도 당신의 뜻이 모든 존재의 저거 뜻이 되고, 또 그  부분의 모든 소유가 모든 것들의 소유가 되고, 그분들의 그분의 성품이 모든 것의  성품이 되고 그분의 뜻이 모든 것의 뜻이 되어서 이런데 그분으로 충만해지고  빈약해지고 관계가 없고 하는 이것이 무궁세계의 인간의 부요입니다. 이것만이  인간의 부요요 피조물의 부요입니다.

이렇게 나그네 세상에서 무궁 세계를 향하고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으로 자기가  부요하려고 하지 안하고 진리로 부요하려고 하지 안하고 현실에서 돈 문제  있으니까 진리 턱 팔아 가지고 돈 턱 차지하고, 하나님 턱 배반해 버리고 권세나  잡고, 네가 잡으면 그걸 얼마나 가지고 있는 것이며 얼마나 네가 눌리리 것이냐 그  말이오.

하나님과 진리를 기회 기회마다 다 팔아 버렸으니까 하나님 구속을 받은  사람이지마는 하나님과 자기는 상관이 없소. 진리와 자기와도 상관이 없소. 그  진리는 자기가 다 배반해서 자기에게 배반당한 진리요. 자기는 진리와 하나님과의  떨어진 그 진리인데 그분과 그 진리가 통치하는 그 나라에 가니 자기는 그  하나님과 진리와의 연결된 게 하나도 없어.

이런데 하나님과 진리를 팔아 가지고 썩어질 땅의 것을 다시 말하면 죄를 지어서  땅의 것을 취해 놓고 그것 있으니까 부요하다 하니, 네가 참으로 바로 아는 지혜의  눈이 어두워서 그렇다, 불쌍하고 가련하다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부강이라는 것은 우리의 부강 지식의 부강이든지, 능력의  부강이든지, 영광의 부강이든지, 지혜의 부강이든지, 소유의 부강이든지 우리의  부강은 하나님으로 부강을 삼고 진리로 부강을 삼고 하나님과 진리를 부강으로  삼는 것은 이 현실에서 하나님이냐 진리냐 세상이냐? 할 때에 이 둘이 견제될 때에  세상을 내가 버리고 하나님을 취할 때에는 하나님은 내 하나님 되고, 이 내가 어떤  희생을 당해도 진리를 놓지 안할 때에 그 진리와 내가 하나 되어지는 것이지, 뭐 제 마음대로 이 세상 욕심차릴 때도 다 차리고, 제 주관대로 할대로 다해서  진리 버릴 때는 버리고, 하나님 버릴 때는 버리고, 이 세상 간교한 외식 모양으로  그 주여 주여 입술로만 부르고 그래 가지고 주님을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도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한 진리를 행하려고 할 때에 희생을  당하면서도 행할 때에 그 진리와 나와 하나가 됩니다. 나도 진리의 것이 되고  진리도 나의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자들의 부강은 하나님과 진리로 부강되는 것이요. 하나님과  진리로 부강되는 그 방편은 하나님과 진리로 현실에서 행동하는 그 행동이 세상에  빛이요 그것이 의요. 그것이 하늘나라의 세마포 옷 같은 영광이 되겠는데 하나님과  진리를 자기 하나님으로 자기 진리로 자기가 하나님 고 진리의 것이 되어지는 것은  이 세상 현실이라는 생애에서만 되어지지 생애에서만 되어지지 다른 데서는 되는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자기를 위해서 알속을 차리는 부강을 마련하는 것인데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사망 아래에 저주 아래에 썩고 있는 그것만  취하기 위해서 하나님도 진리도 다 팔아 버리고 그것만 취해 가지고 있으니까 뭐이  된 줄로 아니 오늘밤에 네 영을 부를 때에 네 영혼을 부를 때에 네 모든 마련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이 어리석은 자야 누가복음 12장에 말씀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로 연단한 금을 타지 않는 것이 정금 아닙니까? 이와같이 세상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없어지지 안하고 요동치 안하는 변하지 안하는 흔들리지 안하는  이 영감과 진리 생활 하나님과 진리와 연결되는 생활 믿음을 하나님에게 따라  피동되는 진리대로 피동이니까 하나님이 나보다 강하기 때문에 나와 그와 연결이  되면 내가 그 피동되지 그분이 내게 피동 된 것 있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진리와 네가 결합하기 위해서 세상이 온갖 애로가 있어도  요동치 아니하고 마지막에 죽음이 와도 그 죽음이 하나님과 진리와 너와의 연결을  끊을 수 없도록 이것으로 네가 부요해져라 이것으로 부요해져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큰 포부며 희망이요. 또 우리가 그 할 일이 얼마나 크고  복잡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까. 얼마나 귀중한 일입니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입니까.

"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여기에 사라는 말이 있는데  사라는 말은 자기를 내놓아라 그 말입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하는 그말도  이제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와 한 덩어리 될라 하면은 자기를 내놔야 됩니다. 자기  몸도 내놓고, 생명도 내놔야 되고, 자기 욕심도 내놔야 되고, 뜻도 내놔야 되고,  자기 취미도 내놔야 되고, 주관 내놓고 그만 자기 다 내놓고 하나님과 진리의 뜻만  고대로만 하기 위해서 자기의 심신을 다 기울려야만 되어지는 것이지 그리 안하면  안되기 때문에 사라 그말은 자기를 내놔야 그게 된다 그 말이오.

그 자기 내놓으면 댓가 된다말 아닙니다. 그래 성경 다른데 말씀하시기를 값없어도  사라이랬어요. 값없어도 사라. 그 댓가는 되는 게 아니라 댓가는 되는 게 아닌데,  다만 사는 고 방편 네게 있는 걸 내줘야 그걸 살 수 있는 고것과 마찬가지로 고  방평만 여기에 비유를 이용한 것입니다.

너를 불로 연단한 금을 살려면 너를 내놔야 되지 너 안 내놓고 너 생각하면  안된다. 털끝마치라도 널 생각하면 이 승리의 생활은 못한다.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흰옷은 사죄와 칭의와 하나님의 더불어  화평된 이 새 생명을 흰옷이라 말합니다.

벌거벗은 이라는 말은 벌거벗은 거는 어떤 게 벌거벗은 것인가? 인생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로 대속을 입고 살지 아니하고 자기로 사는 것이 벌거벗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죄야 어찌됐든지, 칭의야 어찌됐든지, 하나님과의 결합이야  어찌됐든지 그거 놔두고 제 욕심대로, 제 마음대로, 제 뜻대로, 제 생각대로, 제  주장대로 저로 사는 그것이 벌거벗은 것입니다. 이 인생이 자기로 사는 것이  벌거벗은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은 자기로 살아 가지고 두 사람 점령하면은 한 사람도 점령 못한  사람보다 영광스럽고 만 명을 점령해서 주머니에 집어 주 넣어서 그 착취해 먹고  이것을 다 발아래 밟고 이러면 영광이 있는 것 같지마는, 그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무궁 세계에서 수치고, 게워내야 되고, 부끄럽고, 크게 살든지 작게 살든지  예수님이 나에게 사죄해서 죄 없는 자로 살라했고 의로운 자로 살라했고 네가  하나님 배반치 말고 하나님과 동행자로 살라고 하셨는데, 요대로 살면 자기에게 살  동안 고 산 고 행사에 대해서는 수치가 없습니다. 고 행사에 대해서는 영광되고  존귀가 되지 부끄러울 것이 없고 가책될 것이 없고 심판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 구속받은 자로 살지 안하고 구속을 벗고 제가 잘났든지 못났든지 자기로  살면 그것이 벌거벗은 것이요. 그 생애는 영원한 수치라 그거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탑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네가 사죄 입은 자로, 칭의 입은 자로, 하나님과 결합된 자로  살려고 하면 값을 내놔야 된다. 살려고 하면 이렇게 살려고 하면 이렇게 사는 이거  하나만 네가 차지하지. 네가 돈도 물론 좋으니까 돈을 돌아보지마는 이렇게  살라하다가 돈이 거리끼면 돈도 돌아보지 안하고 이렇게 살라고 하다보니까 명예가  그리되도 명예도 돌아보지 안하고, 아 이렇게 살라고 하니까 어떨 때에는 참  오기가 나서 분해서 이가 갈립니다. 이럴 수가 있나 이 분해서 죽어도 내가 한번  해보겠다. 분해서 내가 죽어도 이 복수를 한번 해봐야 되겠다 싶으지마는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하나님의 결합 때문에 안 된다.

그러면 이것 벗어놔야 되고 기백을 내놔야 되고 감정을 내놔야 도고 욕심을 내놔야  되고 자기의 가정을 내놔야 되고 자기 명예를 내놔야 되고 지위를 내놔야 되고  자기의 건강을 내놔야 되고 자기 자율을 내놔야 되고 자기의 생명을 내놔야 되고  이렇게 그것을 어떤 것을 내가 희생해도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이 흰옷을 벗지  않겠다하고 살 때에 인생의 생애는 하나님의 심판 받을 수치스러운 정죄받을 것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벗고 아무리 제가 지혜롭게 민첩하게 한다 할지라도 세상이 이렇게  뭐 노벨상을 줘서 이렇게 한다 할지라도, 이 세 가지 대속을 벗고 산 그것은  영원한 수치요 영원한 심판에 다 재료가 되고 마는 그을 가르쳐서 말씀합니다.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안약은 이 진리의 말씀 영감 양심은 우리의 눈이요. 양심은 우리의 눈이요.

마음도 우리의 눈이요.

이런데 우리의 마음을 진리와 영감으로 씻어서 진리와 영감으로 치료해서  진리대로의 마음 영감대로의 마음 진리대로의 양심 영감대로의 양심이 되면 이는  영원 무궁토록 잘못됨이 없습니다. 그 깨달음이나 주장이나 비판은 영원히  참됩니다.

그렇지마는 이 자기의 마음의 눈이나 양심의 눈이나 지식의 눈이나 지혜의 눈이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화되지 아니하면 그것은 소경이요. 봉사입니다. 자기  망치는 지혜 외에는 하나도 섞인 게 없습니다. 저 속이고 남 속이고 제가 사랑하면  사랑하는 것만치 많이 속였소. 제가 가까이 하면 가까이하는 것만치 많이 속였소.

제가 지도하면 지도한 것만치 그 사람 많이 속였소.

이러니까 네가 하나님의 지식으로 네 지식을 삼고 영감으로 네 마음을 삼아 가지고  모든 사리 판단과 가치 평가를 모든 경영과 방편을 그와같이 하려고 하면 그와같이  하려고 하면 네 지식에 거리낌이 많다. 네 지식에 거리낌이 네 주관에 거리끼고,  네 자유에 거리끼고, 인간들의 통계에 거리끼고, 이러니까 자기 지식, 인간의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이 정반대가 되어질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면 망하는 것이고 이대로 하면 사는 길이라고, 환해도 그럴  때에 자기를 부인하고 부인해서 자기를 버리지 안하고 자기를 내놓지 안하면  하나님의 지혜대로의 살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가리켜서 자기를 내놓아라  말을 안약을 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지식으로 살고 하나님의 지혜로 살고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살려고 할 때에 이것이 자기 현실에 있어서 세상 비판으로나 세상 평가로나 세상  통계로나 이 과학으로나 세상 이치로 볼 때에는 이거는 참 미련한 길이요. 망하는  길입니다. 미련한 길이요 망하는 길이기 때문에 그때는 자기를 완전히 내어놓지  안하면 이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값을 내고 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밤에 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불로 연단한 금 이것만이 우리의 부강이  됩니다. 이것만이 우리의 힘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죄 칭의 새 생명 받은  요걸로서만 살아야 그 생애가 심판받지 안합니다. 또 진리와 영감 요 지식대로 요  지혜대로만 살아야 그게 바로 알고 바로 산 것이지 그 외에 어떤 그 종교 어떤  도덕가 어떤 사상가 어떤 자의 말대로 살아도 요대로 살지 안한 것은 다 소경  노름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한 삼 분간 바짝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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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8절-22절/ 810916수야 선지자 2015.10.29
12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1장 5절-6절/ 810903목새 선지자 2015.10.29
11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1장 5절-7절/ 810902수새 선지자 2015.10.29
10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810917목새 선지자 2015.10.29
9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4절-18절/ 810901화새 선지자 2015.10.29
8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810905토새 선지자 2015.10.29
7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5절-16절/ 810918금새 선지자 2015.10.29
6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8절/ 871031토새 선지자 2015.10.29
5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810918금야 선지자 2015.10.29
4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4절-17절/ 810919토새 선지자 2015.10.29
3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7절22절/ 840324토새 선지자 2015.10.29
2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831107월새 선지자 2015.10.29
1 라오디게아 교회, 교만/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830507토새 선지자 201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