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교회

 

1981. 9. 1. 화새

 

본문: 요한계시록 3장 14절 - 18절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소망되어 있는, 이를 구원은 보이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을 다 점령하고  귀에 들리는 것을 다 점령하고 자기에게 접촉되는 것을 다 점령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서 성공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취하려고 하는 것도  육안으로 보거나 듣거나 접하거나 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또 우리가 이것들을  취할 수 있는 모든 그 방편도 보이는 이런 것들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든 시발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고 하니 우리의  손에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눈에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귀에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모든 시작은 우리 마음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시작해서 지혜도 마음에서 나오고 소원도 마음에서 나오고 능력도 마음에서 나오고  모든 보배로운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겉에 것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완전히 죽어있는 교회인데, 이 교회가 왜  죽었느냐? 미지근해서 죽었습니다. 미직지근해서 왜 미직지근하다고 죽는가  미직지근하다고 말씀하는 것은 이것은 구별이 없이 흐리다는 것입니다. 구별이  없이 흐린 것 혹 이것이 나는 표준어인지 사투리인지 모르지마는 그 사람이  흐리멍텅하다 그런말씁니까? 꼭 그말로 표시하면 제일 맞습니다. 구별하지 않는 것  흐리멍텅한 것. 믿는 사람은 지혜도 구별한데서 나옵니다. 자꾸 따져 들어가면  됩니다. 따져 들어가면 지혜를 만납니다. 구별하면 또 능력도 따져 들어가면 우리  안에 지극히 큰 능력이 있습니다. 또 기쁨도 자기 몸밖에 어떤 사람으로 무슨  사건으로 물건으로 기쁠라고 하는 그것은 다 껍데기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따져  들어가면 자기 속에 기쁨이 나옵니다. 따져 들어가면 구별해 들어가면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가지고 구별을 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이 말씀에는 이렇고 저렇고 이렇게 말씀해 저렇게 말씀해  이렇다. 이렇다. 자꾸 이렇게 따져 들어가면 구별해 들어가면 진리와 성경으로  중생된 자에게는 자기 안에 지극히 큰 능력이 들었고 무한한 지혜가 들었고, 또  무한한 희망이 들었고 또 이미 형언할 수 없는 굉장한 것이 자기의 것이 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몸밖에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그렇게 좋고 큰 것이  들어 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살 때에 신앙생활이요. 또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 이 구별하는 것을 버려 버리면 당장 타락입니다. 악령은  그러기에 성도에게 대해서 제일 전술의 방편의 뭐이냐 하면은 복잡하게 만들든지  급하게 만들든지 그렇지 안 해. 무슨 좋은 것으로 미혹을 시키든지 아주 흉한  것으로 미혹을 시키든지 어쨌든지 사람을 자극 주고 충격 줘 가지고 요 구별하는  일만 하지 못하게 합니다. 구별하는 일 구별하는 일만하지 못하게 해서 구별하는  고것만 딱 중단되면 고시부터 마귀의 것입니다. 구별을 하는 이 구별 속에서  아멘이시오. 충성이시오. 참된 증인이시오. 창조의 근본되신 이를 아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신구약 성경에 우리에게 가리켜 놓으신 것을 구별하면 아멘 이  사람이 되기를 첫째 원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나 땅에서 이루어지리라" 하는 이것이  다 아멘이십니다.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 뭐이며, 요리 문답에 사람에 제일 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온전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다  아멘에 속한 것입니다. 구별하면 자기의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구별하면  무궁세계의 지위를 소유할 수 있는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구별이 없으면 어떤 사람되느냐? 나는 부자라.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하는 이 사람이 되는데, 하나님께서 보실때에는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러면 부자라 말은 제가 제 소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졌으니까 부자입니다. 뭐 돈  소원한 돈이 됐어. 지위 소원 지위가 됐어. 권세를 소원한 권세가 됐어. 평안을  소원한 평안이 됐어. 행락을 소원한 모든 행락이 이루어졌어. 자기 소원하는대로  다됐으니까? 자기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는  인정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다 불탈 것들입니다. 사람은 자기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그것이 성공인줄 아는데 무엇이든지 자기 원하는 것.

자기가 욕심낸 것 자기가 기뻐하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것.

이것은 이루어지는 것보다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고, 하나도 그것은 가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자인데 왜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벌거벗은  것과 눈먼 것을 네가 알지 못한다". 여 표시는 이랬지마는 네 지위가 하나도 없다.

제 소원대로 지위를 청해서 취해서 어떤 지위를 취했더라는데도 너는 지위가  하나도 없는 자이다. 제 욕심대로 해 가지고 큰 재벌이 됐습니다. 너는 재벌이  재물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왜 영원히 불타지  안하고 영원한 것은 주님이 소원하신 그대로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소욕하신 것  고것이 하나도 하나라도 이루어져야 고것이 산 것이고 온전한 것이고 심판을  통과할 것이고 무궁세계가 남아 있을 것이지 자기로 인한 것은 다 그거는 망할  것이요. 주님으로 인한 그것만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 가운데에 자기의 소원 자기의 뜻 자기의 기뻐하는 것. 자기가  소욕하는 것 그것을 이룰라고 애쓰는 사람이 믿는 사람 가운데에 있고 그것을 안  이루고 죽을려고 죽일려고 없앨려고 그것을 힘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  가운데에 자기의 소욕을 죽일려고 애쓰는 사람 있고 자기 소욕을 이룰려고 애쓰는  사람 있습니다.

예수님도 자기의 소욕을 죽일려고 이랬는데 믿는 사람이 자기 소욕을 이루어놓고서  기뻐하고 내 소원대로 성공을 했다 됐다 하는 그것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소속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소원이 있지마는 그 소원이 얼마나 소원이냐? 죽기까지  소원이냐? 죽어도 내가 이 소원은 이루어보겠다. 내가 어떻게 수십 년 고생을 해도  내가 이 소원 이루어보겠다. 자기 소원을 정해 놓고 그것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전심전력을 기울이 가지고 그게 이루어지고 나면은 영광이요.

성공이라고 해 가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네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네가 등을 데고 큰 줄로 안 그것은 뭐이냐? 배로 하나님을  삼았다. 물질로 가지고 네 힘을 삼았고 물질로 네 배경을 삼았고 물질로 튼튼하게  했다' 그거 뭐이냐? 십자가의 원수의 길은 다 그 길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자기  소원을 죽이고 하나님의 소원을 자기 소욕을 죽이고 하나님의 소욕을 자기 뜻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자기 기쁨을 죽이고 하나님 기쁨을 자기 영광을 죽이고  하나님 영광을 자기 높임을 죽여 하나님 높임을 이렇게 하려하니까? 이게 참, 사는  생활이고 가치있는 생활이지마는 고통입니다. 그게 고통입니다.

십자가는 고난이라는데서 고통인데, 그 고통은 누가 당하는 것인가? 죽을 그자가  고통을 당하고 죽고 옛사람이 그렇지 새사람은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런고로  믿는 사람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렇게 성공을 해놓고 나는 구비해서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한 그 성공이 무슨 성공인가? 자기 소원 성공입니다. 자기 소욕  성공입니다. 자기 뜻대로 다했소. 자기원대로 다했소. 소원 성취가 다 됐소.

이러니까 나는 부족함이 없다 하지마는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은 비 할 때  없다. 너는 아무것도 없다. 네 소원 성취를 다 해놨는데 아무것도 없어. 네 소원  성취는 그거는 다 지옥에 불태울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소원 성취가 그것이  영원히 남아 있고 그것이 영생이지 네 소원 성취를 그 하나님이 남겨두느냐? 그러기에 앞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은 하나님 외에 인간의 소원 성취를 다  불사러 버립니다. 남겨둘 것은 하나님의 소원대로 많이 이루어졌든지 적게  이루어졌든지 그것이 자기의 영원한 자기의 것입니다.

이러기에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된 줄 알았는데 하나도 되지 안한 모든 것이  구비하게 마련됐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마련되지 안 한 이런 참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 모래 위에 짓는 집 그게 다 이것을 말합니다. 이런 된 줄 알았는데  되지 안했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있지 안 한 이런 아주 허무한 헛된 이런 결과를  맺게 되는가? 그것도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이 되느냐? 그것도 흐리멍텅해서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흐리멍텅해서 되지 따지지 안하고 구별하지 안한데서 그게  나왔습니다.

그러면 자기를 온전한 자로 기르고 무궁한 실력을 갖추고 무궁한 세계에서 자기의  지위를 갖추고 자기가 안가면 그거는 안돼. 아무도 가서 앉을 자리 사람이 없어.

그 일 한 사람이 없어. 이러니까 모든 피조물들이 원하고 영접하려고 고대하고  있어. 앉았을려해도 그자리 안앉을 수가 없어. 그 영원한 지위를 마련하고 모든  피조물을 자기것을 만드는 이 존영한 일을 하는 것이 어데서 나왔는가? 어데가서  이 기술을 배워야 될긴가? 무슨 방편을 써야 될긴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돈  없어도 없고, 값없어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도 됩니다. 뭐이냐? 자기만 하면 돼  어떻게 하면 되는데 구별하면 돼요. 자꾸 생각하면 돼요.

그러기에 스웨덴 부르크라하는 그 성자가 영계에 들어 가보니까 세상에서 부지런히  날뛴 사람들도 많이 오고 별별 사람들 다 천국에 와 있는데 명상 많이 한 사람이  제일 일 많이 한 사람이요. 제일 성공을 큰 성공을 한 사람이요. 하나님과  피조물을 제일 기쁘게 좋게한 사람들 이라더랍니다. 명상 많이 한 사람 명상이  눈감고 생각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 이게 뭐이냐? 구별이라 뭐이든지 생각해  가지고 해라. 구별해 가지고해라. 세상에는 비슷하나 거짓 것이 많고, 아주 세상이  다 못쓴다고 버리는 것이나 그것이 제일 좋은 것이 되는 것도 있고, 모든 세상이  좋아서 탐하는 것인데 실상은 아무짝도 쓰지 못할 그런 것들이 있으니 그저 눈  이것은 아무 판단력이 없는 것인데 그만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자기에게 접촉하는 대로 자기 욕심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이래 가지고 자기를  망치는 것인데, 일단 구별해봐라. 구별해라. 성경 지식을 네가 많이 가졌으면 그  구별의 범위가 넓을 것이고 세밀할 것이고 또 성경지식이 좁고 적으면 그 구별이  적지마는 네게 있는 지식으로 족하다 구별해라. 이것을 구약성도들에게 가르치기를  레위기 11장에는 "쪽발로 걸어가라" "쪽발로 걸어가라" 그 말씀이 두 쪼가리로  걸어가라 이게 아니면 저거라 좌 아니면 우라 좌 우를 내가 구별해 가지고 가라.

선악을 구별해 가지고 가라. 신본주의 인본주의를 구별해 가지고 가라. 천국이냐,  세상이냐? 구별해 가지고 가라. 네 소원이냐, 하나님 소원이냐 구별해 가지고  가라. 한자국 한자국을 구별 가지고 가라. 네 소원이냐? 하나님 소원이냐? 구별해  가지고 가라. 한자국 한자국을 이 구별가지고 가라. 말씀을 가르친 한  모형교훈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아무리 바쁘고 급하고 어렵고 크고 또 좋고 중요한 일을 닥쳐도  언제든지 발을 내디딜때에는 구별을 앞세워 가지고 구별 뒤에 자기가 따라가야  되지 구별을 버리고 자기가 나서게 되면은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 있습니다. 구별을  버리면 마치 공중에 달아 논 것이 이 달아 논 줄이 없으면은 그것은 필연적으로  땅에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땅에서 땡기 눌리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이  구별하는 이 구별 할 때에 자기 속에 있는 지극히 큰 지혜와 능력이 나오는  것인데, 구별 없으면 자기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에게 필연적으로 끌려서 안 믿는  사람 되게 되는 것입니다. 구별이 없으면 그만 옛사람 자기 나오고 구별 없으면  마귀 나오고 구별 없으면 이제까지 타락한 생활에 길들여 논 그게 나오고 구별  없으면 그 시간부터 자기는 타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더웁든지 차든지 하기를 원한다. 네가 더웁지도 안하고 차지도  안하고 이렇게 미직지근하니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구별 없으면  주님에게서 떠나가게 된다. 구별 없으면 주님 배반하고 내가 타락하게 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주님 앞에 나서면  그저 뭐 주십시오. 뭐 주십시오 하는 그런 기도는 그것은 아주 어릴 때 하는  기도지 그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눈을 감고 구별하는 것이요. 가만히 눈을  감고서 성경 말씀을 생각하면서 자기 과거도 성경 말씀으로 한번 돕아서 보고 자기  현재도 그렇게 해 보고 자기 미래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 보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단식기도 하려고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산에 올라가서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다 보니까 자기는 열흘이 되든지 닷세가 되든지 보름이 되든지 사십일이  되든지 금식 기도를 하면서 그 소원을 이룰려고 했는데, 올라가 가지고 한 몇 시간  안되어서 자기가 차든지 참더운것 이것을 구별하기 위해서 구별하려고 눈감고  가만히 성경 말씀 구별해 보니까 자기 기도하러 올러온 것을 하나님이 가증스럽게  여긴다 말이오. 그 한두서너 시간도 안되어서 주님이 네가 이것을 소원해 가지고  올라왔는데, 이런 죄를 범했습니다. 네가 이 소원을 다 포기합니다.

이것이 참 죽고 망할 소원이었습니다. 즉시 그 소원을 버리고 오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구별없이 기도하는 사람은 한시간이나 두시간이나 그렇지  안해도 눈만 감으면 당장 알아서 이거는 안된다. 이거는 포기해야 된다. 이거는  화약지고 불로 들어가는 길을 했구나 이리되는데 이 구별없이 기도하는 사람은  그렇습니다.

이걸 가지고 자꾸 이루기만 원해서 이루기를 원하고 원하고 하니까 마귀라는 놈이  그걸 통해 가지고 온갖 죄악의 생각 악독의 생각이 나가지고 기어코 그것을 꼭  이루기를 소원하는 소원이 강해지도록 합니다.

이러니까 이루어지기를 강하기를 강해지기를 소원하니까 자기가 눈감고 생각한다는  것이 그 일을 이룰 방편만 생각합니다. 이러니까 돈벌이든지 권세든지 지위든지  자기가 무슨 소원이든지 그리 안하면 복수든지 그러면 자기 현재 무슨 고난을  벗어나는 것이든지 자꾸 그것만 생각하니까 점점 타락해서 해고 나오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은 이 구별이 눈입니다. 그러면 구별하는 이게 뭐입니까?  구별하는 이것을 다른말로 하라하면 양심이라. 어제 내 방송을 들으니까 밤에  들으니까 어떤 사람이 양심을 회복하자 하면서 거기에 대해서 강론을 하는데 아마  예수님 믿는 설교자들이 설교자들이 그런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대부분이 듣기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이 없었습니다. 그분이 뭐 영혼도 말하고  심령도 말하고 그렇게 말하지마는 생명은 최후로 절정의 결론을 말하면은 인본으로  살아라 인본으로 살아라. 물질 본위로 살지 말고 권세 본위로 살지 말고  지위본위로 살지말고 수량본위로 살지말고 인간을 최기로 알아서 인본으로 살아라.

그것이 도덕이요. 그것이 철학이요. 그것이 입법입니다. 예. 요 구별하는 요  마음을 다른말로 말하면 양심이라. 신앙 양심이라. 이렇게 구별하는게 아니라.

중매쟁이가 양심이지 자기가 이성을 가지고 이성을 가지고 구별하면 이성을 가지고  구별하면 양심 구별을 찾아 들어가서 만나게 됩니다. 양심 구별을 만나게 됩니다.

양심 구별에서 찾아 들어가면 영감 구별을 만나게 됩니다. 이성 구별도 신구약  성경 말씀가지고 구별하는 것이요. 양심 구별도 신구약 성경 말씀가지고 구별하는  것이요.

그러면 이성 구별과 영감 구별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양심구별입니다. 이  구별하면 필연적으로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아멘의 사람이 되어지고 충성의 사람이  되어지고 증인의 사람이 되어지고 너희들이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얻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뭐 하라 했습니까? "네 증인이 될리라"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과 인간사이 피조물 사이에 중보자 자격을 이룬다 그말입니다. 네  창조의 근본되신 이로 더불어 결탁해 가지고 모든 피조물을 자기가 책임맡고  하늘에 있는 것 땅에 있는 것 다 내게 주셨다. 내게 책임을 맡겼다. 우리가 이기면  주님 앞에 이런 책임을 맡는 이것이 소유권을 확대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별만하면 이렇게 좋은 것 되어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없는 것 된줄 알았는데  안되는 것 성공인줄 알았는데 실패 이런 헛된 일을 하지 않는 이런 지혜가 어데서  나오는가? 구별에서 나옵니다. 또 먼저 말한 이렇게 좋은 것들이 어데서 나오는가?  구별에서 나옵니다. 믿는 사람은 이 구별의 소원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만 구별이  너무 소원되어서 거미쳐야 됩니다.

이런데 믿는 사람들이 구별를 듣기를 싫어합니다. 구별하면 그만 듣기 싫어해.

따지면 싫어합니다. 구별을 싫어하는 사람은 뭐 그렇게 까다롭게 구별때문에  미움받은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구별한다고 사람들에게 미움받았고 배척 당한  사람은 복있는 사람이요. 구별 잘못하면 헛일입니다. 구별 안한 일을 닥쳐  놓으면은 그때는 깜깜해서 실패하지 우리 OOO조사님이 지금 형무소 미결소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뭣 때문에 훈련받으러 가 가지고 주일날이 걸렸다 말이오. 그  안에 교회 있으니까? 교회 있으니까? 그안에서 예배를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랬는데 거서 예배 볼라 하다가 자기 교회에 가서 예배볼라 하니까? 안된다고서  여기에서는 여 봐야 된다고 허락을 받아 가지고 나가면 되지마는 허락 안하는 것을  대립을 해 가지고 말 들으니까,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느냐고서 어데 이래놨다  말이오. 하나님 안 계시는 곳이 있나. 그러고 나 여기에 예배 안본다고 자기대로  고만 가 가지고 주일을 지키기는 지켰지마는 그것이 탈영한 죄가 된다고 그런걸  자기 앞에 있는 것은 미래부터 기도해.

그러면 주일이 끼일터이니까, 그때 가서는 어떻게 되느냐? 자기 앞에 일을 벌써  닥치기 전에 하루 이틀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자기 일을 그것을 자꾸 이래  따지봅니다. 또 이 세상에 살때만 아니라. 이다음에 심판대 가면 어찌될까?  부활때가면 어찌될까? 무궁세계 가면 어찌 미래를 자꾸 따져갑니다. 이게  구별이요. 이게 우리 기도 아닙니까? 이렇게 해야 되는데 젊은 사람이니까?  훈련이라 하는 것은 뭐 한 달에 한번 닥치는지 일년에 한번 닥치는지 그거는  몰라도 그 계속 닥치고 있는데 자기 앞에 눈앞에 닥친 그 일에 대해서 평소에  이거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확정이 없기 때문에 그리 됐다 그 말이오. 말들으니까?  그것이 잘못됐다고 시말서 쓰고 항소를 하면은 되는 것인데, 나 잘못됨이 없다.

이러다가 또 이제 지난밤에는 내가 전화를 들었는데 항소는 하기는 했다. 이러니까  그 주일날 명령 일하에 있는 사람이 그 명령 어기고 갔으니까? 그게 탈영이 됐다.

그 실수를 했다 하는 인정한 것 같다 그 말이오. 그런 것이 없어야 됩니다.

미리부터 기도해서 마귀라는 놈이 어떤 일을 닥쳐도 나는 그보다 더 미리 연구하고  궁구하고 확정을 지워놨기 때문에 더듬을 것이 없어야 돼. 마귀라는 놈이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딱 닥치면은 일이야 몇 가지든지 아무 준비 없지. 얼떨떨하겠지.

이래도 벌써 그 일을 미리부터 생각해 가지고 수 십 번 하나님하고 의논하고  작정했고 또 그 매도 여러 번 맞아봤고 혼자 맞는다 말이오. 혼자 그 매를 맞는데  이렇게 맞을 것이라. 이런 위협이 올 것이라. 그걸 너무 지나치게 다 준비했기  때문에 그 일이 닥치니 자기 준비한 것에 반도 들이도 안해도 그 일이 되어졌다 그  말이오. 이것이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그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갑자기 닥치는 일이  없어. 이외에 닥치는 일이 없어. 모두다 자기가 명상 가운데서 당했던 그 일이고  인자, 이 일이 왔구나. 이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하면 되지 주님하고 일찍부터  의논해놨지 이게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그게 뭐이냐? 그게 미직지근하지 아니하고  찹고 더운 것을 똑똑히 갈라가지고 쪽발로 쪽발로 걸어가는 사람이라. 흐리멍텅한  사람이 아니라. 흐리멍텅한 것은 죽는 것입니다. 미직지근은 흐리멍텅.

따라합시다. 미직지근은 흐리멍텅. 미직지근은 흐리멍텅. 미직지근은 흐리멍텅  기억하기 좋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흐리멍텅이라는 것은 구별하지  않는 것 그 사람들은 이걸 싫어합니다. 이걸 싫어하는 사람은 희망이 없어. 이  속에 오만 좋은 게 다 들었는데 제가 내가 이렇게 하고 싶다 하는 그것이  구별해보면 구별해보고 구별해봐도 그런 것이라면 생명 내놓고라도 해야지 구별해  보니까 이것은 아니다. 이것은 서이만있는 사회 너이만 있는 사회 열만 있는  사회라도 이거는 용납 안한다. 백 명 있는 사회는 더 용납안한다. 나만 원하지  다른 사람은 다 원치 않는다. 하나님도 원치 않는다 이것을 구별하는 가운데서 그  정평정가가 나오는 것인데 구별하지 안하면 믿는 사람은 소인됩니다.

처음에 구별이 일 학년 구별이 뭐입니까? 일 학년 구별이 뭐이지. 대답해봐. 저  저저 저게 일 학년 구별이 뭐이지? 일 학년 이 학년 삼 학년까지 말해놓지 안했어.

삼 학년이 최고급인데 일 학년 구별이 뭐이요. 그 옆에 말해봐. 말들어도, 저래  들으니까? 여기에는 또 뭐이냐? 이 일 학년 구별은 이성(理性)구별 이성 이치  이(理)자 성품 성(性)자 이치를 따지는 성품이 우리에게 지어져 있는데 그것을  가리켜 이성이라 말합니다. 성경가지고 성경으로 그 이치를 따지는 것이  이성입니다. 이성구별 또 이 학년은 응, 양심구별 이성구별을 해 들어가면  양심구별을 만난다 그 말이오.

이성 구별로 들어가야 양심구별 만나지 그렇지 않으면 못 만나 양심을 가지고  구별합니다. 양심 구별 삼 학년은 영감 구별 성신의 감화 감동의 구별 이제 그러면  거기에 다 있어. 우리가 다른 이에게 얻을게 하나도 없는데, 우리 안에 다 있는데  조물주도 계시지 진리가 모든 걸 찾는 진리가 있지. 모든 것의 주제가 있지. 여 다  있는데 무엇을 다른 이에게 가 가지고 구걸할게 뭐있겠소. 있기를, 내안에 다  있는데 이것이 안 믿는 사람들이 철학으로서 자기에게 있다는 그것은 모르고  그거는 한 추상이요. 상상이지마는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 생기진 것입니다. 대속의 공로로 법적 대속과 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시키시는 그때부터 법적으로 실상으로 우리 속에 와서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구별을 버리면 그만 소경이요. 구별 버리면 무능하요. 어제도  중간반들 내가 점심 먹는데 가 가지고 요새 중간반도 내가 어제 그 보고서를  보니까 많이 떨어졌어. 떨어진 그게 뭐이 구별을 못하는 거라. 구별 구별하는 걸  쉬었어. 중간반 자기가 하는 그 일이 얼마나 존영하며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몰라. 뭐 중간반 일하다가 아무것도 말랐다. 말랐다. 마르기는 뭣 때문에 말라.

무슨 놈의 일을 해서 그 일이 큰일이라고 말라. 속에 병이 들어 그렇지 구별 안해.

그렇지 나같은 죄인에게 이런 직책이라니 그 직책의 존귀함을 느끼지 못하고 아 그  일을 맡긴 하나님도 잊어버렸지. 하늘나라도 잊어버렸지. 지극히 큰 능력 인간  사는데 능력도 잊어버렸지 다 버리고 주님 만나는 건 다 버리고 구별 없으니까?  세상 것만 보지 세상 것 마귀 것만 있으니까? 마귀의 것이 커지면 주님의 것이  작아지지. 마귀 것으로 전부 되면 주님의 것은 없어지지.

이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갈때에 생각을 가지고 속에 가진 것이 있어야 된다.

이래서 네 충만한 기쁨을 가지고 마음에 충만한 감사를 가지고 이렇게 지극히  보배로움을 가지고 참 예수 없는 그 왕이 불쌍해 죽은 자기 때문에 죽으면 그거는  구더기보다 구더기 같은 것이라. 구더기 같이 보여지는 그거지마는 세상에 그걸  왕이라 하니까! 이렇게 왕이라 하지마는 실상 속에는 구더기라 말이오. 이  구더기야 살아라. 이 구더기야 하나님 아들이 되라. 이렇게 속에 말하지마는 그  차마 그래 말하면 안 될터이니까 속에는 불이 있으니까 이게 있어 가지고 이렇게  말해야. 그게 전달이 되어지는 것이지 그거 없으니까? 그렇지 않아. 주를 위해서  죽는 것도 가한데 뭐 주님 위해서 정말로 주님 위해서 말라지게 되었고, 주님  위해서 파리에게 됐고, 주님 위해서 쇠잔하게 되었으면 그 이상 영광이 더 어데  있겠습니까? 따져봐? 그것도 구별해봐? 내가 정말로 주님을 위해서 주님이 피흘려  인간을 구원하고져 하는 인간 구원을 하는 인간 구원하고져 하는 인간 구원의  노력에서 내가 말랐나, 내가 죄를 지어 말랐나, 구별해보지 구별해보면 주를  위해서 말랐자면은 '주여! 감사합니다.' 고것이 보스라기 보스라기 순교도  순교니까? 아, 감사하지 '주여 보스라기 순교도 하게 했으니 앞으로 완전히 몸둥이  전부가 다 순생하고 마지막에 순교하게 해주시옵소서' 그걸 소원하는 사람이  되어지지 무엇 때문에 원망 불평 낙망이 되어지고 옆에 다른 제 삼자들이 볼때에  부러워하지 못하게 하고 '야, 중간반 반사들 불쌍하고 가련하다 공연히 헛되이  붙들려 메여 가지고 고생 한없이 하고 있다. 가치 없는 고생하고 있다.' 그러면 내놓지 오늘이라도 내놔 그런 사람 필요 없어. 그것 다 필요가 없다 그  말이오. 해봤자 거치기만하지 아무 소용없어. 뭣 때문에 구별을 잊어버렸어.

흐리멍텅해졌어. 이성비판도 없어졌지. 양심 비판도 없어졌지. 영감 구별도  없어졌지. 이러면 피곤합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원수되요. 저희 배는 하나님이요.

그러면 이 세상 물질위주 물질 위주 그것만 되게 됩니다. 유물줄의가 뭘  유물주의요. 물질에 그것이 오니까 좋아하고 그게 가니까? 섭섭해졌고 영감의  사람들은 하나를 깨달은 그걸로 기쁘게 암만 맛있는 것 암만 좋은 걸 줘봐야 그런  것은 가치가 아닙니다. 암만 좋아 봤자. 끝이 빤하게 됩니다. 암만 좋아봤자 며칠  후는 이렇게 되기 때문에 암만 좋아봤자 이것이 이렇게 변화될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아도 영광스러워도 아름다워도 그 얼마후에 그것을 환하게 보고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그렇게 있게 보이지 않습니다. 주안에 있는 것은 그는 생각해  볼수록 자꾸 커 이러니까 중간반 반사들 같이 아마 일하던 사람들도 저 내 그때  반사 안하길 잘했지 중간반 반사 하는 것 그거 한없는 고생이고 비참하고 보니까  쭉 더 그리하이 말라가지고 지금 흐리멍텅하이 해 가지고 보니까 영 그만 죽사발이  됐더라. 천해졌더라. 고 직책도 하면 천해진자는 교역자되 허덕거리지 왜 교역자가  천해 천하 있는 것 이제 것인데 당장에 호령쳐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지마는 그  덕을 위해서 방편으로 율법있는 자에게는 율법있는 자처럼 가난한자는 가난한  자처럼 부자에게는 부자처럼 바울이 여러 모양으로 나타났지 믿는 사람이 이  구별을 버리면 모든 좋은 것이 어린양으로 보좌에서 졸졸 흘러 나왔습니다.

문지방에서 흘러 나왔소. 그것이 가면 갈수록 자꾸 충만해지고 확대해집니다. 이걸  잊어 버려 놓으니까 흐리멍텅하고 또 헛된 걸 원하고 썩을 걸 원하고 썩지 안 할  것은 싫어하고,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설교도 그렇습니다. 설교하는 사람들도 자기가 구별하고 해 가지고 속에서  불이나서 이것으로 마구 깨 부셔야 되겠는데 이런기든지 그리 안하면 아 좋은긴데  뭐 자기가 환장을 할만침 이렇게 좋은데 이런 걸 좋든지 나쁘든지 보다 이것이  자기 속에 불이 붙어가지고 그것을 증거하는 그것이 설교지 그거없이 뭐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서 부득히 말을 조용 조용히도 하고 살살도 하지 흐리멍텅한  기독자는 죽습니다. 구별 없으면 헛일이요. 구별 일 학년 일 학년 구별은 무슨  구별 이 학년 구별은 삼 학년 구별은 거들어가면 다 돼. 거 들어가면 세상이  환하게 보이요.

지금 세상에 뭐 등소평이니 저거 짜다라 김일성이니 참 불쌍하고 가련하다.

이북에서 제일 저주 많이 받은 사람은 김일성이라. 참 비참하다. 자기에게 확실히  보여지니까? 그걸 원하겠습니까? 가깝게도 그렇지 아무것도 죽은 것이 죽은 송장이  양복을 입고 좋은 양복입고 막 이싸고 돌아다니니까 저거 송장이다 하기는 주님이  계시니 그래 못해도 '주여! 저 송장을 살려 주시옵소서' 불쌍해서 자기가 상대방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지나가지 부러울 면이 하나도 없지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  밖에 부러울 것이 어디 있소? 있기를 부러우면 주님 부럽고 그 다음에 부럽다면  성자 성녀 성도들이 부럽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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