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교회

 

1981. 9. 18. 금새.

 

본문: 요한계시록 3장 15절 - 16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미직지근한 것은 구별하지 않고 구별하지 않고 비판하지 아니하고 평가하지  아니하고 흐리멍텅한 그것을 가리켜서 미직지근하다 하신 것입니다. 이러면  "내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내 입이라고 하는 나는 예수님이 당신을 가리켜서  나라고 말씀했습니다. "내입에서 토하여 내친다." 예수님 안에서 나가게 된다.

예수님 안에서 나가게 된다. 하나님의 그 능력의 모든 은총 안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구원에서 나가게 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마치 노아 방주에 들어있는 것이 노아방주에 나가면 홍수 속에 빠져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오늘은 주님 안에만 참된 의식주 참된 영광 참된 보호 있지 그  밖에 것은 다 있는 것 같으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될 것 같고 좋을 것 같애서  그것 마련하느라고 참 것을 무시하고 마련 못하다가 멸망 받습니다. 마치 노아외의  모든 사람들이 땅에 있는 이것 저것 마련하면 그거 하면 될 줄 알았지마는 노아의  홍수가 올 때에 그런 것은 하나도 턱이 닫지를 안했습니다. 효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한마디 한 마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고대로 만들어 논 배 고것만  그때에 효력이 있었고 유익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구별을 하면 참 하나님 다음으로 존영하고 세상에서도  하늘나라에서도 영도 육도 다 존영해지는데 믿는 사람들이 이름만 믿고 말로만  믿지 실제로 이거는 차다 이거는 덥다. 이렇게 구별하는 이 생애를 하지 않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비참해진 것입니다.

어제 아침에도 말씀했는데 제일 불쌍한 사람이 구별없이 환경에 따라사는  사람입니다. 환경에 따라 사는 사람. 여기에 가면 이 사람 되고 저게 가면 저 사람  되고 주위 환경에 따라서 움직여 사는 사람 이 사람은 뭐이 없는 사람이라 했지요.

예, 뭐이 없지. 네, 생명이 없지요.

큰 강에 나무를 가지고 떼를 만들어 놓으면 그 참 어떤 떼는 큰 것은 한 백평도  되고 이백 평도 될 만침 나무를 엮어 가지고 이래 떼를 모아놨지마는 그 생명이  없으니까 물 내려가는데 따라서 슬슬 흘러서 내려 가버립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위대하다고 해도 하나님과 연결이 없는 사람은 이 시대라는  물결에 따라서 출렁 출렁하면서 타락해서 일생을 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없는 사람은 그 속에 진리가 없고 영감이 없는 사람은 뭐 어떤 사람이든지  일생 생애는 지옥을 향하여서 내려가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 가운데에 구별없이 사는 사람 생각없이 사는  사람. 비판 없이 사는 사람. 평가 없이 사는 사람. 주위 환경에 따라서 움직이는  그 사람이 참 제일 불쌍한 사람이요. 고보다 조금 낫은 사람은 이제 구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구별이 있는데 어제 아침에 구별을 몇 가지를 말했는데 제일 좁은 구별  제일 실력없는 구별 약한 구별 고는 못쓸 구별입니다. 못쓸 구별은 무슨 구별이라  했습니까? 욕심 구별 욕심 구별 자기 욕심이 들어서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합니다.

제 욕심이 들어가지고 뭐이 닥치면 자기 욕심 하나 딱 가졌기 때문에 뭐이 닥치면  내 욕심을 달성하는데 이것이 유익하나 해로우나 자기 욕심을 표준해 가지고 모든  것을 구별합니다. 그것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요. 고보다 좀 비판과 구별을 좀  고보다는 낫게 하는 범위가 좀 넓은 사람. 그 사람은 무슨 구별하는 사람입니까?  예, 주관 구별. 고거 똑똑히 기억해요. 기억해서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도 학생들을  가르쳐. 주관 구별은 어떤 것이 주관 구별인고 하니 자기를 중심해서 모든 것을  비판하고 구별합니다.

욕심 구별은 자기 중에도 어느 욕심인가 하나 고 욕심 고걸 하나 그를 표준해  가지고 구별하니까 그 사람은 자기에게도 해로울 짓을 한다 그 말이오. 그것이  일종의 감옥이지요. 그게 선악과 감옥에 갇혔습니다. 자기 욕심 구별에 빠진  사람은 선악과 감옥에 감옥 옥중에 거기 빠진 사람 갖힌 사람이요.

그러면 우리는 욕심으로 구별하는 그것을 벗어나야 됩니다. 거기에서 벗어나면  무엇이 있는고 하니 자기를 중심해서 구별하는 이 주관 구별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됐든지 하나님이야 어찌됐든지 자손이야 어찌됐든지 이웃이야  어찌됐든지 그저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위주해서 구별하는 그 사람 불쌍한 사람.

주관 구별 또 거기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됩니다.

주관 구별이라는 그 감옥에서 벗어나면 무슨 구별이 있습니까? 네, 이성 구별 이성  구별이라 말은 우리에게는 이치를 따지는 그런 성품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가지고 이치는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말하는데 불교인은 불교  불경 이치를 말하지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신구약 성경 하나님의 말씀의 그 진리를  가지고 모든 것을 비판을 합니다.

그러나 비판하는 자는 자기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비판하되, 자기 위해서 비판하되  욕심으로도 하지 안하고 주관으로도 하지 안하고 아마 성경 말씀으로 해야지 성경  말씀 떠나면 안된다 해서 성경에 법칙을 가지고 모든 일들과 모든 사람들과 모든  사물들을 다 구별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가지고 구별하는 것이 기독자로서의 이성구별인데 하나님  말씀가지고 구별은 하기는 하지마는 무엇을 중심으로 무엇을 위주로 무엇을 위해서  구별합니까? 이성구별은 무엇을 위해 구별합니까? 네, 자기를 위해서 구별을  합니다.

이러니까 자기를 위하기 때문에 지남철에 거치는 그 방해물 쇠나 뭐나 있는 것처럼  자기를 중심으로 위주로 하기 때문에 성경 말씀가지고 비판하고 평가하고  구별하지마는 자기 때문에 그것이 정평정가가 안 나온다 그 말이오.

그러면 이 자기를 중심하는 구별에서 이 감옥에서 벗어나면 자기에게도 매이지  안하고 내가 복되나 유익되나 밥을 먹는다 못 먹는다. 그런 것도 상관하지 말고  아무 것에게도 매이지 안하고 고것만 옳게 바르게 구별하려고 하는 고 구별은 무슨  구별이라 했습니까? 네, 양심 구별 고것이 양심 구별입니다. 고게 양심이라는 것은  자기에게도 아무에게도 메이지 안하는 메이지 안하고 공평되게 하는 것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고 양심이요.

그래서 미국에 윤리학 교수가 와서 그분은 양심을 말했는데 '양심을 인간에게 있는  인간 요소로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하나님이 보내준 하나님의  사자라 하나님이 개인에게 마다 하나님의 사자가 와 있으니 그것이 곧 양심이다'  그렇게 해놨습니다.

그거는 성경 말은 참 고상한 말을 했지마는 성경적이 아닙니다. "네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두운 것처럼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하는 그 빛이 양심인데 양심은  사람의 영 말고 사람의 이 심신으로 된 육속에는 가장 밝고 깨끗하고 옳은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으로서는 양심 비판 그 이상 비판이 없습니다. 이 성경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구별하면서 양심이 구별하면은 참 인간으로서는 그 이상을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양심으로 구별해 가지고도 다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네가 양심의 자책할 것이 책망 받을 것이 없이 다 회개했지마는 이것 때문에 네가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 왜? 내 양심보다 하나님이 아시는 그게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그대로의 말도록 해야 되는데 그걸 아직까지 하지 못했으니 하는 그말은  어떤 사건 하나를 양심대로 해놓고 영감을 받지 못할 때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영감받지 못할때 그러면 양심 비판위에 무슨 비판이 있습니까? 영감 비판. 영감  비판은 인간 비판입니까 하나님의 비판입니까? 하나님의 비판인데 하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시가지고 내 마음처럼 돼 가지고 내 마음 안에서 모든 것을 비판해  주는데 그 비판은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마는 하나님이 뭐 쌀네기 만침이라도  형체가 있습니까? 뭐 아무것도 없이 내 안에서 내 양심 안에서 양심껏 비판하면서  이래도 내가 이것은 내 마음으로 비판했기 때문에 온전치 못하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셔야 되는데 하는 것을 기다릴때에 그때에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비판시켜주는  그것이 이제 영감 비판인데 하나님 비판이요. 고대로 하면 다 됩니다.

"네가 내안에 있고 네말이 내안에 있으면 원하는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원하는  대로 구하면 다 이루리라" 어떻게 제가 원하는대로 다 이루어줄 수 있습니까? 제가  원하는대로 제가 원하는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그거는 제가 원하는 것이 제 소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원과 소원이 일치됐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원을 하나님이  기어코라도 이루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시는 그일에 자기가  동참한다 그 말이오.

그러면 비판이 몇 가지 있습니까? 다섯가지. 그러면 비판없이 사는 사람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은 어데 따라서 움직입니까? 예, 환경 따라 움직입니다. 환경  주의따라 움직이는 사람. 아 시대가 이러니까 날렙니다. 그 시대에 딱 맞추고  불교에 있나 불교에 딱 맞추고 제 딴에는 날세계 아주 환경과 분위기에 딱딱  들어맞게 움직이니까 지혜롭고 참 명철하고 잘난 사람으로 알고 있지마는 환경과  주위의 그 모든 분위기 그것이 꼭 옳은 것만 합니까? 그것이 다 사망아래에 있고  어두움에 있기 때문에 자기 옆에 열 사람이 있으면 움직이는대로 따라 움직이면  열사람 움직임 그것이 바로 움직이는 것입니까? 그 사람은 공산주의에 가면은  공산주의에 따라움직이는 사람되져 고 민주주의에 오면 민주주의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되지고, 씨름하는데 가면 씨름하는 사람되지고, 춤추는데 가면 춤추는 사람  되어지고, 도적하는 사기 협작하는 사람한테 가면 고만 그 사람 되지고 중에  힘있는 그에게 속해 가지고 거기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게 생명없는 인간이요.

생명도 없고 생명없는 그것보담은 뭐이 낫습니까? 욕심이라도 있는 기 낫습니다.

김일성이는 욕심이라도 있습니다. 아무 뼈대 없이 요새 보니까 한일 국교 회담을  이렇게 하고 있는데 그 일본 사람들은 고 비판가지고 하지 환경 주위에 따라서  피동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러니까 빡빡하게 배짱을 내고 있습니다. 배짱을 내고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라도 그 보니까 안된다고 낙심하지 안하고 또 해보자 또  해보자 자꾸 달라들어 세게만 달라들면 이깁니다.

어느정도 저와 격투하느냐 하는 그 격투의 인내가 어느것이냐? 세상은  십구일덕이라 이랍니다. 십구일덕이라 열 가지를 구하면 한 가지 얻는다. 제가  처음에 얼마 차관을 말할때에 그걸 보고서 이 일이 안된다. 왜 그만 그거는 조금  기압적이고 얼토당토 안한 때리 놨으니까 너무 지나치게 컸다 그 말이오. 그래  국교하면 실패입니다. 상대방에 그 심리를 이용해서 이래 해야되지 게 슬슬  그쪽에다 붙여서 거지 동냥 주듯이 얼마 줄라하면은 고래가지고 차차 차차 자꾸  이렇게 유도해 가지고 올라가야 되는긴데 저거는 비판있는 사람인데 당장  뭉텅말하니까 아이구야 안됐다 안됐다 거부해 버리고 말았다 그 말이오.

요새 또 계속해서 하는데 끈질기기만 하면 이깁니다. 제일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  비판없이 나쁜 비판이든지 좋은 비판이든지 나쁜 구별이든지 뭐 좋은 목적이든지  나쁜 목적이든지 좋은 동기 나쁜 동기든지 비판없이 사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 무골호인이요. 뼈없는 호인이라 말이오.

날래기야 날래지 그것을 가리켜 성경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새때, 새때  "무화가씨가 작은 것이지마는 심으면 나무 같이 되어서 모든 새들이 깃들이니라"  기회주의자 그걸 비유해서 새때라고 말했습니다. 우 날라 왔다가 소리만하면 소리  한 마디만 하면 훅 떠나버리고 무화과라고 했지 아니고 겨자씨 내가 무화과라  말했지 겨자씨 말이요. 겨자씨. 겨자씨는 작은 것이지마는 심어놓으면 그것이  난중에 나무 같이됩니다.

겨자씨는 죽었으면 죽었지 그자리 심기가지고 있어. 뭐이 바람이 불면 그만  꺽어졌으면 꺽어졌지 거 있어. 세력이 크면 뽑히면 죽지 봅히가지고 살지를 않는다  그 말이오. 기독자는 그거라 자기가 한군데 뿌리박았으면 죽었으면 죽었지  변동되지 않는 그런 인격을 가지고 그런 인내성 불변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  기독자들입니다.

기회주의자 사람을 보자 한가지만 가지고도 조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거는  구별이 있는 사람이냐 없는 사람이냐 보자 잘난 척 날뛰사도 구별이 없소. 그 사람  어데 대사로 보내고 헛일 나라 대사도 보내면 그게 가 가지고 주위 환경 따라서  고만 그 사람 되버리고 말아 못나도 저거 나라에서 대사로 갔으면 실패를 해도  어짜든지 저거 나라에 그 목적과 주장 동기 그것을 놓지 안하고 끝까지 붙들고  실패가 되든지 말든지 나가는 그사람은 그래도 욕심 구별이라도 있는 사람이라.

제일 못난 사람이 구별없이 사는 사람 고보다 조금 낫은 사람은 욕심 구별하는  사람. 욕심이 들어서 자기 욕심을 표준해 가지고 구별하는 사람 김일성이는 그거는  욕심 표준에 구별자요. 중공 소련은 그거는 주관 구별 사람들이요. 주관 구별 우리  소련나라라 중공 나라라 이 어찌됐느냐? 이렇지만 김일성이는 그것도 아니고 그 제  단독욕심을 위해서 이북을 지금 이용해 먹고 있는데 불쌍한 동포들이 이용을  당하고 있다 말이오.

그래 주관 구별 주관 구별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관 구별을 고 하되 고거는 성경  말씀을 떠나서 제 자율로 자기 생각으로 자기 지혜로 자기 뜻으로 자기 경험의  지식 체험의 지식 이런 것 가지고 구별하는 것이 주관 구별입니다.

고위에 남아있는 위에 있는 것은 뭐이냐? 이성구별 거기에서 부터 기독자 이성  구별이라고 하면 기독자가 하나님의 성경 말씀가지고 구별하기는 하는데 누가  주인이냐? 자기를 중심해서 자기를 위주해서 성경 말씀대로 구별해 가지고 사는  것이 그것이 이성 구별입니다.

고다음에 양심 구별은 이성 구별이나 다같이 성경 말씀가지고 구별하기는 하는  것이지마는 자기를 생각하고가 아니고 자기도 포기하고 남도 포기하고 이 사건에  대해서만 하나님 말씀가지고 이게 어떻게 되느냐? 어떻게 해야 바르냐? 그 자기를  떠나서 자기를 초월해서 모든 자기 현실에 형편과 사정을 초월해서 시대를  초월해서 냉정스럽게 고걸 두고서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요것이 어떠냐? 옳으냐  그르냐? 좋으냐 나쁘냐? 망할 것이냐 흥할 것이냐? 모든 것 만물에게 칭찬받을  것이냐 미움받을 것이냐? 하나님에게 환영받을 것이냐 하나님에게 버림받을  것이냐? 이거는 해야 되나 안해야 되나? 이러면 끝꿀림이 있겠나 끝은 망하겠나 뭐  이 양심가지고 이렇게 비판을 하면 우리 갈길이 환하게 나온다 이거요. 이것이  양심 비판, 양심 구별 양심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이제 영감 구별 영감을 가지고 비판을 하고 영감가지고 모든  것을 작정하고 내가 이 욕심이나는데 이 욕심은 이는 옳은 것인가 그런 것인가?  자기 욕심 그것을 구별해 보니까? 자기 욕심이 아니고 하나님의 욕심입니다.

하나님 욕심 이름을 뭐라 했지요. 성령의 성령의 소욕 성령의 소욕은 그것은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에 진리가 소원하는 것이요. 참 이 소원하는 것이요.

완전이 소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소원은 옳고 발라서 매사가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요 구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구별하는 데에는  층어리가 있습니다. 조금 구별 그 보다 좀 넓은 구별 또 참 자유하는 그 구별  완전한 구별 그렇게 자꾸 나아가서 우리는 살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고리 돼 가지고 살아서 연습을 하면 고면에 눈이 뜨입니다. 고면에  실력이 생겨지요.

이러니까 요 잣대만 가지고도 모든 걸 비판해봅니다. 이 사람 보자 저것은  아무것도 없고 남도 없고 하나님도 아무 것도 없고 욕심위주로 사는 인간이로구만.

딱 나온다 그 말이오. 저자의 말은 전체가 멸망뿐이다. 무슨 남을 선하고 뭘  한다해도 제 욕심 고놈을 다스려 가지고 고것 달성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쓰는  것이지 저거는 공평유지 안합니다. 저 사람은 보자 뭘로 사느냐? 아 그 사람은  자기 주관으로 사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그래도 이성 비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그렇지마는 중심이 자기중심이기 때문에 성경 말씀도 하나님도 제가 이용해 먹는  자이니 그 풀과 나무와 지을 집을 지어서 마지막에는 다 불타버리고 심판 받고  말것이지 하나도 심판을 이기고 남을 것들은 없다. 저 사람은 그래도 양심을  가지고 산다. 양심 비판으로 산다. 양심에게 거리끼면 안합니다. 저 사람 양심으로  산다. 저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통과는 될 것도 있고  안될것도 있지마는 그래도 인간으로서는 참 결과가 좋을 그런 생애를 하고 있다.

실패없는 생애를 하고 있다. 저 사람은 양심으로도 사는 사람 아니다. 영감으로  사는 사람이다.

이러니까 뭘 해놨다가도 영감이 자기에게 와서 참 영감으로 인정받지 안하면 항상  미결로 둔다. 영감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인데 영감으로 사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을 누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극히 큰  능력이 그 을 보호하기 때문에 아무도 해할 자가 없습니다. 원수가 와서 두드리면  그 원수가 결국은 그 매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유익되게만 하고 가고  영광스럽게만 하고 가고 존귀하게만 하고 가지 해는 하나도 하지 못합니다. 욕도  다 그렇소. 영감으로 살때에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서 내기 됩니다.

기도하는 영감을 찾아가는 것이요. 회개하는 것도 영감을 찾아가는 것이요.

기도하고 회개하고 그러면 이제 영감 여호와로 바라보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제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 가게 된다 그 말이오. 이 세 가지 우리가 할 일이요.

그러고 나면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는일 세 가지가 있다 했는데 그 세 가지는  뭐이라고 했지요. 예. 첫째 의식주. 의식주를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면 고기밥에  잘 먹입니다. 아니요. 고기 밥먹어야 될때는 고기밥을 먹여주시고 굶어야 될때는  굶게 해주시고 또 근근히 입에 참 풀칠이나 할만한 정도로 해줄 때는 그렇게  해줍니다. 왜? 우리 구원을 표준해서 의식주 생활이 구원에 가장 적절하게  해주신다 그 말이오.

많아야 유익된 줄 압니까? 의식주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그다음에는 영광을  책임져준다 말은 나와의 모든 하나님과 나와의 관련 인간과 나와의 관련 모든  사물과 나와의 관련이 모든 관계를 하나님이 책임지고 바로 옳게 이렇게 맺도록  해주신다 그 말이오.

그러고 난 다음에 뭐 해주십니까? 뭐 해주시지 안보 안보 요걸 똑똑히 알아가지고  딱딱 가르쳐요. 중간반에도 그 안보를 책임지시고 그러니까 장사의 포로도 뭐  김일성이도 뭐 그 상관없어. 어떤 강한 세력 강포자 악독자 맹수같은 사자같은  맹수속에서도 다니엘 구원한 것은 그것은 우리에게 계시로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맹수 같은 인간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불미속에서 건진거는 이렇게  혹독한 인간 혹독한 정치 혹독한 운동 맹수같은 악독한 그런 모든 역사 거기에도  하나님이 보호하면 하나도 상하지 안해. 하나도 해하지 못해.

그런데 고만 이렇게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가 베드로가 물위로 걸어가다가 주님만  안보고 무엇 생각하다가 빠져 들어갔습니까? 바람과 물결보고 그만 빠져 들어갔다  그 말이오. 세상 그런 것 보면 안돼. 주님만 바라봐야 돼. 그 사람에게는 기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6. 25때에 고걸 똑똑히 체험을 했어. 체험을 했는데 제가 한번은 개 싸움  시키는데 가봤어. 내가 개 싸움 기키는데 가 가지고 하나 뭘 좀 하나 배워야  되겠다. 나귀에게 배운 것처럼 개한테 가서 한번 배워야 되겠다. 개 싸움하는데 가  가지고 개 싸움하는데 역부러 운동장에 개싸움 하는데 가봤어 그날 나는 좋은걸  하나 배워가지고 왔어. 개싸움을 시키는데 보니까 이 개 한 마리가 참 힘도 세고  뭐 저쪽 그 개하고 싸우는데 저쪽 개를 마구 물어서 그 곤데기로 내 흔들고 야단을  나는데 이러다가 어째 저놈이 그래 물어 흔들면서 이 다리를 좀 물었던가 물으니까  깽거려 보니 개가 깽것는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만 주인들이 오디마는 고만 시지부지하고 주 갈라트려 저놈 큰 놈이  이겼는가 보다 이러니까 저거는 졌다고하고 조그만한 개 그놈을 막 찬동하며  위하는지 왜? 그러냐 하니까? 있다가 깽거리면 진다고서 깽거리면 저 그만 그  물으니까 무니까 그만 자기도 못견뎌서 아야 해서 그 항복이라 깽거리면 져 우리  기독자들이 어떤 전투에서라도 한번 아닌것 행하면 진다. 공산주의에게 뭐이든지  하나라도 그들에게 꺽어진 말한마디라도 했으면 그다음 부텀은 그만 내리 방석으로  꺽어지고 패전밖에 못한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만 바라보고 일관해야 되지 고서 말 한 마디라도 실수하면  깽것는기라. 말 한 마디라도 실수하면 깽거리는 거라. 그들이 왔을때에 두려운  마음 있으면은 상대하지 말고 기도해 기도해가지고 속에 막 불이 확 담력이  나오거든 해야되지. 그 두려움 가지고 한번 대해서 서로 막 맛델때에 두려워  버리면 깽거리는거라. 깽 아 이 개도 깽거리니까? 헛일이구나.

우리가 세상 전투에 깽거린다 말이오. 사소한 자복이라도 사소한 굴복이라도  사소한 양보라도 하면은 깽것는거라. 우리도 져 그걸 지금 내게 큰 교훈을 받았어.

이래서 그러 가지고 김일성 앞에도 하나님이 세우면 설것이고 그거 서는데 아주  그거 크게 도움이 된 개한테 배웠어. 개가 패전하는 거기에서 심판관들이 뜩 이래  앉아 있으면서 이 보디마는 깽거리니까 고만 판결 이라디마는 개를 갈라놓고 어느  놈이 이겼는가 하니까? 깽거린 그놈이 이제까지 저놈을 꺽고 짜더라 많이했지마는  깽거리니까 그만 진기라. 그게 하나의 굴복하는 소리라 말이오.

우리는 모든 보고 듣고 접촉하는 모든 것이 자연 계시요. 또 신구약 성경이 특별  계시요. 영감이 특별 계시인데, 이 계술 가지고 우리가 모든 것을 판단을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계속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 받는데에는  몇 가지 인도가 있다고 했지요. 세 가지 인도 뭐 뭐입니까? 뭐 무슨 인도 응 응 아  성문인도 그러면 성문인도라 말은 성경인도라 말입니까? 네, 성경 말씀인도 성경  인도 성문의지라는 것은 왜 그래 성경이라 말하지 안했느냐? 성경은 범위가 넓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에 문서에 기록한 문서 의지가 인도하는 걸 말해서 문서 신구약  성경 말씀 인도 또 섭리인도 하나님께서 내게 대해서 무엇이라 하는 것이 짐작이  되지다 그 말이오.

섭리인도 그다음에는 그다음에는 영감인도 그 이러면 문서 인도 받아가지고도  자기가 그 문서를 잘못 판단하기 쉽다 이거요. 문서를 잘못 이용하기 쉬워.

거기에다 하나님의 섭리를 눈을 뜨고 하나님의 눈치를 본다 말이오.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섭리하시고 저렇게 섭리하시고 섭리하시는걸 보니까 이 하나님의 뜻이  이런가보다 저런가보다 짐작을 할 수 있다 그 말이오.

이런데 이 두 가지를 자기가 찾아서 붙들면 그다음에는 영감 인도는 필연적으로  옵니다. 이것만 가지고 안되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확신을 주는 여서 이거라.

이거라 하는 확신을 준다 말이오. 고게 영감이라 이거라. 또 보니까 아, 그게 이거  하나님께서 이거라 하는 걸 주는데 참 옳고 바르고 참되고 이거는 손색에 더듬을  것도 없이 이기라. 확신이 가지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판정을 해준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확정을 지워주는 그 확정을 가지고야 안심을  하고서 담대히 나아가는 그것이 영감 인도로 사는 사람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가서 인도하는데 그 진리로 가지고 가르쳐주면  그 학생들이 여러분들 입에서 젖과 꿀이 나오니까 꿀이 나오니 달아서 얼마든지  달라들것 아니오. 젖이 나오니까 어린아이가 젖이 나오니까 얼마나 좋아하겠소.

어린 아이는 젖만 사모하는 것인데 그래서 가르치고 그렇게 하기를 노력해야 되지,  자꾸 돌아다니며 뛰돌아다니면 골만 빠지지 안됩니다. 남반 반사들 여반 반사들 또  권찰님들도 그러해요. 목회자들도 그러해요. 딴거 가지고 소용이 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13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8절-22절/ 810916수야 선지자 2015.10.29
12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1장 5절-6절/ 810903목새 선지자 2015.10.29
11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1장 5절-7절/ 810902수새 선지자 2015.10.29
10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810917목새 선지자 2015.10.29
9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4절-18절/ 810901화새 선지자 2015.10.29
8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810905토새 선지자 2015.10.29
»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5절-16절/ 810918금새 선지자 2015.10.29
6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8절/ 871031토새 선지자 2015.10.29
5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810918금야 선지자 2015.10.29
4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4절-17절/ 810919토새 선지자 2015.10.29
3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7절22절/ 840324토새 선지자 2015.10.29
2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831107월새 선지자 2015.10.29
1 라오디게아 교회, 교만/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830507토새 선지자 201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