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교회

 

1984. 3. 24. 토새

 

본문: 요한계시록 3장 17절22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무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온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감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맡씀을 들을지어다

 

 신앙이 어릴 때는 성경만 읽어 가지고는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을 바로  해석해 주는 그 해석을 듣든지 읽든지 해서 성경을 깨닫는 바른 깨달음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기독교가 심히 수가 많게 이렇게 갈라져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인간  이 참 원수인 줄 모르는 정실이라는 이것이 들어서 이 교파와 교회를 갈라놓은  것들도 심히 않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성경은 꼭 같은 성경인데 성경을 보고  깨달으는 그 깨닫는 깨달음이 각각 달라서 서로 갈라진 그런 것들이 더  많습니다.

 이 세상에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의 전 인류를 말하면 가는 길이 각각  다릅니다. 불교인들이 가는 길이 있고, 또 철학자들이 가는 길이 있고, 또 이런  저런 종교를 가는 자들이 있어서 가는 길이 다 다릅니다. 다른데, 예를 들어,  불교라면 불교에 국가관도 따로 있고, 인생관도 따로 있고, 소망관도 따로 있고,  또 빈부관도 따로 있고, 피난관도 따로 있고 가치관도 따로 있습니다. 불교에는  이런 것을 가치 있다, 뭐 사리라 하는 그것이 가치 있다고 그래 가지고 모두  그거 있기를 원하고 하는데 그 아무짝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또  그거만 그러냐? 유교는 유교대로 모든 관이 다릅니다. 국가관도 다르고,  인생관도 다르고, 행복관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능력관도 다르고 각각  다릅니다. 종교마다 다릅니다. 다른데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사람들은 다  같은 사람들인데, 모두 다 자기의 가는 길이 다른가? 다른 그 이유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것입니다. 지식이 달라서, 다시 말하면  깨달음이 달라서 다릅니다.

 지식을 크게 말하면 두 가지 지식인데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이, 지식이  이래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또 인간 지식을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간  지식을 둘로 나누는데 하나는 물질에 대한 지식이요, 하나는 인류에 대한 지식  이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인류에 대한 지식을 가리켜서 도덕 지식이라  그렇게도 말하고, 도덕 지식  종교 지식 모두 다 그런 걸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물질 지식은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질 지식은 다 동일합니다. 물질에 대한 지식은 공산주의가 과학을 보는  것이나 과학을 가진 것이나. 또 민주주의에서 과학을 가진 것이나 물리에  대해서는 다 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물리를 어떤 사람은 많이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적게 가지고 있고 이것만 양에 차이 있지 그 이치는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치를 가졌으되 백점 이치를 가졌고, 어떤 사람은 한 오십 점  이치를 가졌으니 이치 가진 것은 다 같은데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가졌고 적게  가진 사람은 거기에 대해서 무식하고 지금 온 세계가 다 투고 있는 것은 뭐  전쟁을 한번 시험해 본다, 연습한다, 그렇게 훈련한다고 하고 또 공연히 많은  돈을 들여서 공중에 위성을 발사하고 모두 이렇게 탄도탄들을 발사를 하고 하는  그것이 무슨 뭐냐 하면 쇼우(Show)정치입니다. 그것이 우리는 물리에 대해서  물리에 대해서 이만큼 물리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저 나라에서는 그만한 물리  실력을 가졌는데 자기 나라에서는 물리 실력이 그것만 못하면 그만 꺾어집니다.

저 사람들은 저만침 물리에 대해서 앞섰으니까 저 사람들에게 대해서 우리는  거기에 뒤떨어겼으니까 대항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모두 머리를  숙입니다. 이러니까 온 세계가 지금 물리 전쟁으로서 물리의 실력을 가지고  비교를 합니다. 아야 물리 실력이 저희들보다 앞서 있으면 그 나라에게는 달라  들라고 생각지를 않습니다.

 그런고로 물리 실력은 다 거의 양만 다르지 같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바로 가질  수 있습니다. 왜 바로 가질 수 있는고 하니, 사람아 영은 죽어서 아무, 작용이  없지마는 이 물질로 되어 있는 이 심신은 그것이 아직까지 죽지 안하고, 차차  죽지 단번에 죽지 안하고 그것이 아주 생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심신은 다  물질로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물질에 대해서는 인간이 그것을 연구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것은 이 물질이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그 영이 참 사람의 주격인데, 주격인 영은 죽었기 때문에 인생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 말씀에서 말하는 것 외에는 뭐  종교가 심히 많고, 도덕이 심히 많고, 철학이 심히 많지 마는서도 그 하나도  인생에 대한 것은 바로 안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다는 것을 우리가  단정 지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자가 세상 지식을 모르다가 세상 지식을 조그매 맛보면  '아. 인간들이 인생에 대한 지식은 하나도 바로 되어 있지를 못하다' 이라면  '아, 그거는 글을 몰라서 무식해서 하는 소리다. 이렇게 이 바로 된 것이 있다.

누구의 인생관은 바르다, 누구의 철학관은 바르다 누구의 도덕관은 바르다,  누구의 정치관은 바르다' 그런게 다 인생 지식입니다. 인생이 어떻게 다스리고  살며, 어떻게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살며 윤리나 도덕이나 하는 그런 것도 다  그런 것들입니다. 그런 것을 부정하지 안하고 어리석어서 그거 등신이라서  아무리 지식을 많이 가져도 등신이라서 신구약 성경 외에 인생에 대한 지식을  바로 가진 것이 그래도 혹 들어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조금 어리석은  사람이요. 또 이것도 다 틀린 것도 있지마는서도 옳은 것은 성경과 같다  이라면서 주장을 하되. 그가 인생에 대해서 가르칠 때에 성경에 말씀해 놓은  거는 보니까 좀 흐미한 것 같고, 그렇게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겠고, 인생이  말해 놓은 인생관은 인간에 대한 지식은 바르다 싶으기 때문에 힘을 내기를,  설교할 때에 성경 가지고는 힘 얻는 게 아니고 힘을 얻는 게 아니고, 성경은  그저 명색만 내세워 놓고 인간이 말한 인간에 대한 지식 그런 지식을 내놓으면서  주먹을 두드리며 고함을 지릅니다. 그자는 마지막에 망합니다. 세상에서  망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자를 하늘 나라 가 보면 발가벗어 있고, 또 택한  자라도 다른 사람을 전부이 옷을 벗겨서 다 두드렸으니까 그 자가 이제 받을  심판이 큽니다.

 이러기 때문에 학자들 가운데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는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는다. 사탄의 깊은 것이  뭐이냐? 사탄의 깊은 것이 사탄의 고등 술책을 말하는 것인데 고등 술책은  뭐이냐 하면 세상에서 고등 지식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인간의 지식 이 지식을 둘로 나누면 하나는 사람에 대한 지식이요  하나는 물질에 대한 지식인데, 물질에 대한 지식은 바로 맞아 있고 또 틀린 것도  있지마는 대개는 최종은 바로 맞고 양이 다르지 질온 같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지식은 털끝만한 것도 옳은 것이 없다 그말이오.

 오 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는 이것은 윤리에 대한 지식이요 도덕에 대한  지식인데, 이거야 오계명은 성경에 부모에 대한 위선하는 것, 선조를 위하는 것,  부모를 위하는 것, 혈통으로 자기 위에 있는 그 모든 선진 선조들을 위하는 것  이런 것이야 다 바로 되어 있지 않나, 이것은 도덕에서도 불교에서도 부모에게  효성하라고 했으니까 효성하라는 이런 지식은 불교의 오 계명과 같은 것이니까  이거는 같지 않느냐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효성하라는 그것도 제오 계명과 다릅니다. 오 계명과 달라서 그들은 부모에게  대해서 효성하라는 그 지식도, 하나도, 올바른 지식이 이 세상 인간 지식에는  하나도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어째 그런가? 여기에서도 부모에게 효하라 하고 저게도 부모에게 효하라 했는데  어떻게 그런가? 성경에 부모에게 효하라고 하는 것은 그는 하나님이 육체에 대한  모든 은혜를 주실 때에 부모를 육체의 은혜 기관으로 했기 때문에 그 은혜를  귀중히 여겨 은혜 기관을 귀중히 여기고, 은혜 기관을 귀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이 그 은혜를 베푸실 때에 그 부모를 은혜의 기관으로 썼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부모를 잘 은혜 기관으로 대접하고  공경하라고 이렇게 했는데, 세상에서 부모를 궁경하라는 것은 부모가 자기를  지었고, 자기를 낳았고, 그 부모가 근본 이라고 생각을 해 가지고 하기 때문에  아주 틀립니다. 아주 틀리요. 그러기에, 이 성신의 감화가 아니면 다 이렇게  땅에 있는 지식으로 자기 주관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모두가 틀려 있다  그말이오.

 정직이라 하면 정직은 불교에도 정직, 유교에도 정직, 세상에도 정직,  기독교에도 정직인데 정직이라면 다 이거는 같은 지식이 아니냐? 아니요.

하나님께서 말씀한 정직은 세상 인간들이 말한데는 그 정직은 털끝만치도 없는  것입니다. 요것을 구별해서 알아야 됩니다. 요게 이해가, 뭐 일반 평신도들은,  평신도도 영감을 받은 진실한 사람은 박사는 깨닫지 못해도 당장 한글도 몰라도  뭐 깨달아져 버려요, 성신의 감동으로. 정직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 그 정직을  성경에서 말씀을 했느냐? 그것이 우주와 영계에 있는 모돈 피조물들과  창조주와의 그게 길을 내놓은 그 길에 그 바른 길을 찾아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모든 관계를 바로 관계를 가지는 데에 거기에 도움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직을 가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생만이 아니고 -모든  피조물 전부에- 피조물 전부에만 아니고 창조주까지, 이렇게 모든 것을 가지고  이렇게 바로 곧게 하라는 그 말인데, 이 세상 지식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하나도 없습니다.

 유교에는 하나님을 늘 말하고 있지마는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유교에서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자기네들의 상상을  가지고서 말하지, 성경에서 말하는 영원 자존자로서 어떤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유교가 유교 그것을 주장을 하지 안할 것이고, 유교인들이 빨리  예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교 학자들은 예수 믿기가 참 어렵습니다.

얼마나 어려운지 벌써 모든 지식이 바꾸어져 잘못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지식을 바로 잡기가 심히 어렵다 그거요.

 그런고로, 이 세상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너무 이것을 단순히  생각하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유혹을 받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신구약 성경을 보고서 신구약 성경대로 예수 믿기로 딱 작정했으면  작정한 그것을 요동치만 안하고 꼭 잡고만 있으면 되는데, 다른 지식이 와  가지고 자꾸 이렇게 밀고 땡기고 하니까 그 지식이 옳다 싶어서 신구약 성경  지식보다도 이 세상 지식이 높다 이렇게 생각한다 말이오. 목사들도 그런 목사가  백의 구십 구는 됩니다. 우리 진영의 이 목사들도 아마 거의 대개가 그러합니다.

 이래서 양성원에서 공부할 때에 성경을 말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세상 지식을  말하면 아주 재미가 있고, 그 지식은 참 유력할 줄 알고, 오데 가면 나도 이  세상 야런 지식을 가졌다 이래 가지고 돌아다니면 조그매 토끼 꼬리는 요만해요,  토끼 꼬리는 요만해요. 토끼 꼬리는 요만한 것, 토끼 꼬리는 요만한 것, 박사  꼬리도 박사 지식도 그 꼬리가 요만 밖에 안 돼 내가 보기에는 좁고 작고 하니까  똑 토끼 꼬리 밖에는 안돼 이런데도 그걸 가지고서 무엇을 알고, 또 유식한 줄로  이렇게 알고, 그 지식을 배워야 가치 있는 줄 알고, 학생들도 어데든지 보자.

어데가 유력한 신학교인가 보자 신학을 갈때에 인간 지식을 많이 가르치면  여기에는 실력 있는 신학교다 또 인간 지식으로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무슨  최고의 어떤 전문 지식을, 여기에는 전문 지식들을 많이 가르치고 있다 이라면  전문 지식을 많이 가르치는 그 전문 지식에다가 가치를 두기 때문에, 여기에는  아주 신학교가 제일 실력 있는 신학교다 이렇게 평하니까 미국같은 나라도 자꾸  실력 있는 신학교라고 이래서, 신학교의 실력은 뭐이냐? 신학교의 실력은 인간  지식의 실력 그것의 실력이 신학교의 실력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그 신학교를  처음에 세울 때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세웠고, 신학이라 말은 뭐 저거 신학  박사들 세계 박사들이 다 달라 들어서 뭐라고 말한다고 해도 신학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을 연구하는 것이 신학입니다. 고렇게만 알면 틀림없어.

하나님을 연구하는 것이 신학이라,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배우는 것이 신학이라,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그라면 천하의 종교들이 이 종교에서는, 이 종교에서는  하나님을 이렇게 본다, 저 종교에서 하나님을 이래 본다, 하나님도 천도 만도  넘습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시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가짜  조짜배기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연구하고 아는  지식을 그것을 하나 가르치는 것이 신학이라 이렇게 해석을 하면 됐습니다.

 이런데 요새 신학자들은 말하기를 '신학이라는 것도 학이다' 그러면 신학  공부가 뭐이냐? 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학을 공부하는 학이 무슨 학이냐? 이  사람은 이런 신학을 말했고, 저 사람은 저런 신학을 말했고, 사람들 천 명이  말한 천 명 말한 천 신학을 말했으면 구십 구 신학을 아는 사람보다 천 신학을  아는 사람이 권위 있는 사람이요 대학자다, 이렇게 해석을 한다 말이요. 이것  쉬운 말 같아도 쉬운 말 아니요. 이게 다 발 아래 밟는 것이요 그런 것을 다.

 이렇게 사람들이 신학이라는 것을 다 삐뚤어지게 알고 있는데, 그러면 신학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연구하는 것이 신학이라 그러면 신학이면 신학이,  하나님께 대해서 천 가지 만 가지로, 하나님은 어떤 종교에서는 하나님을 이렇게  본다. 어떤 종교에서는 하나님을 저렇게 본다 하는데, 그런 것을 많이 아는 것이  대신학자가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신학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나는 이런 분이다'  이렇게 당신 이 당신을 증거해 놓은 거라. (와 졸아 요새 새벽에 안 보이네  나왔나? 안 빠졌어? 안 빠졌어? 새벽에? 빠졌지? 한 번도 안 빠졌어? 빠졌어  내가 봤어 안 보이는데 뭐 내가 이래 봐도 자꾸 이래 설교하면서 이래 봐도 다  봅니다. 누가 안 빠지고 누가 빠진 것 또 누가 늦게 온다 일찍 온다 그걸 본다  그거요) 신학은 다른 무슨 공자가 말한 그 신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노자가  연구한 신학이 아니고 톨스토이가 연구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까짓  거는 다 소용이 없는 거라. 다 죽은 신학이라. 하나님이 '나는 이런 하나님이라'  당신이 당신을 소개한 그 지식이 있으니 그것이 신구약 성경인데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이라고 하느냐? 하나님의 성품은 어떻다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느냐? 하나님의 마음은 어떻다고 가르치고 있느냐? 하나님의 소원은 어떻다고  가르치고 있느냐? 하나님의 그 노는 어떻다고 가르치고 있느냐?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다고 가르치고 있느냐? 성경이 가르친 그대로의 하나님을 공부하는 것이  신학이라 이랍니다.

 이런데, 미국 가서 어떤 신학자들을 모두 다 이래 만나 가지고서 그 신학이  뭐냐 하는데 대해서 신학은 여기에서 배운 대로 신학은 하나님 공부하는 것이  신학이라, 허허허허 웃더래요. 허허 웃더래요. 신학은 신학이라는 학이 있는데  그 학을 공부하는 것이 신학이지 하나님 공부하는 게 신학인줄 안다고 참  케케묵은 소리를 한다고. 인제 그러면 성경은 얼마나 읽었습니까? 이라니까  성경은 신구약 성경을 한 번도 안 읽었더래요. 한 번도 한 독도 안했어. 한 독도  안했는데 박사라 신학 박사. 네? 세상이 이렇게 삐끌어져 나가는 세상입니다.

 여러분들 자 이것을 이게 뭡니까? 종이지요? 이거 종 아닙니까? 이 종이라는  말이 이게 바른 말이오 잘못한 말이오? 예? 이게 바른 말. 이 종(鍾), 종이라  하는데 하나는 야, 고 노리개라, 또 하나는 떡이라 하나는 뭉텅이라, 하나는 또  그거는 절하는 섬기는 신이라, 만일 이름을 만들라고 하면 가짜 이름을 만들려면  몇 가지 만들 수 있습니까? 천 가지 만들 수 있을까요? 나는 만 가지도  만들겠소. 만 가지도, 그러면 이 종에 대한 지식을 만 가지를 이 세상에 이런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저렇게 말한다, 그 만 가지를 공부하고, 이 종이라는  것은 모르고 그 종이라는 그 이름 외에, 만 가지 종류를 알았고, 알았고, 한  사람은 만 가지의 종류에 하나도 모르고 이 종이라는 것 하나 밖에는 모릅니다.

그러면 어느 사람이 제일 이 종에 대해서 높은 지식 많은 지식, 좋은 지식, 옳은  지식을 바로 가지고 있느냐? 어떤 사람이 옳은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까? 종이라 하는 이게 바른 지식 가졌다 말이오. 이 종이라는 것 바로  알았으면 이 하나만 알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이게 종인데 이게 떡이라면  '틀렸다.' 무조건 그만 나는 종이라고, 바로 하나님의 성경이 종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종이라고 아니, 그 다음에는 떡이라면 '틀렸다, 이거는 이 섬기는 그  우상 섬기는 우상이다. 틀렸다, 이거는 노리개다 틀렸다.' 무조건 만 명이 다  달라 들어도 '틀렸다. 틀렸어, 다 틀렸어, 다 틀렸어' 다 틀렸다 합니다.

'저거는 저 혼자 옳다 한다.' 성경이 종이라 했기 때문에 성경 이 종이라 한  요것만이 맞다 요래서 그 사람이 올바른 지식을 가졌다 말이오.

 그라면, 여러분들, 우리가 틀린 지식을 틀린 지식을 배우기를 지금 소원하고  있습니까? 옳은 지식을 배우려고 소원하고 있습니까? 자 틀린 지식을 배우기를  소원하는 사람 말고 옳은 지식을 배우기를 소원하는 사람은 한번 손들어 표해  보십시오. 네. 됐습니다. 그러면, 옳은 지식을 배우려면 옳은 지식을 배우려면  여러 가지 지식을 틀린 지식을 많이 배워 가지고서 옳은 지식을 알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까? 옳은 지식 하나만 배워 가지고서 옳은 지식. 그 외의 것은 다  틀렸다, 이렇게 옳은 지식 하나를 배워 가지고서 그 틀린 지식을 알고, 옳은  지식을 아는 그 방편이 쉽습니까? 틀린 지식을 다 알아 가지고서 옳은 지식을  이건 다 틀린 지식이니까 하고서 옳은 지식을 그 뒤에 배우는 것이 그것이  방편이 쉽습니까? 어떤 것이 승 습니까? 네, 고걸 알아야 돼요. 옳은 지식  하나만 딱 배워 놓으면 그 다음 거는 배울 필요가 없어. 공부 뭐 하려고 하고  있어 할 필요가 없는데, 아 뭐하려고 공부하느냐 그말이라. 하나님이 말씀해  놓으신 이 지식은 이 물질에 대해서 말한게 아니고 사람에 대해서 말씀해 놓은  지식인데, 이 지식은 정확 무오하니까, 요 지식 하나만 딱 받아 가지고 꼭  거머쥐고서 이제 세계 대학자들에게 간다. 딱, 가 가지고서 아주 인생에 대해서  딱 성경이 말한 때로 딱 가지고 있으면 천하 박사들이 주우 모아 가지고  '이렇다' '틀렸어! 하나님 주권법에 틀렸어 저거가 틀려' 나를 틀렸다고 뭐라고  한다 해도, 틀렸다고 하면서, 이놈의 새끼 틀렸다고 이랬으니 이거는 잡아서  죽여야 된다고. 죽으면서도 '주여 감사합니다. 천하 인간들이 저게 다  삐뚤어지게 알았는데 나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 성경대로 바로 알았으니  감사합니다.' 나중에 삐뚤어지게 알았다고 정죄한 그것들이 뒤에 가서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영원토록 머리 숙이고 무릎을 꿇어야 된다, 무릎을 꿇어 야 돼.

 지금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고서 이렇게 하는 사람도 있고, 모두 다  범죄한다고 이라는데 이제 이남에 범죄한다고 한 그 사람들이 와 가지고서 범죄  안 한다는 사람한테 영원히 무릎을 꿇겠어요. 고면에는 영원히 꿇게 돼. 영원히  꿇고 이렇게 섬기면서 '녜,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녜, 그저 거슬린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찬송합니다.' 이것이 영원한 하늘나라의 보좌를 만드는 것이라.

세상에서 옳은 걸로 핍박받으면 그것이 보좌 만드는 거라. 옳은 걸로 핍박하는  그 사람들이 뒤에 나를 섬겨줄 사람이라. 이러니까 '거짓 걸로 잘못 돼 거짓  걸로 핍박하며, 옳은 것을 잘못됐다고 핍박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해라. 하늘의  상이 크니라' 이랬는데 제가 정말로 옳은 줄을 알고, 삐뚤어진 것이 옳은 것을  틀렸다고 이렇게 욕을 하고 매장을 하면 분함이 안 나옵니다. 분함이 안 나와요.

분함이 안 나오고 마음에 참 감사하고, 저래 다 모두 삐뚤어졌는데 나는 바로  됐으니 참 감사하다 감사가 나오고 도리어 거기에 대해서 불쌍함이 나와요.

저거는 몰라서 저렇츰 저래 쌓으니까 괘씸한 마음이 안 나와요. 불쌍한 마음이  나오지. 그러나 그 속에 그래도 옳게 안다고 해도 그 삐뚤어진 요소가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죄악 그 놈이 들어서 지금 그렇게 충격을 줘 가지고 뒤에 되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지식인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도 빠지지 안했습니다. 이 신구약 성경 지식만 하면 우리가 알아야 될  필요한 지식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이 다 갖춰 놓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여기에 대한 이 지식을 믿습니다.' 하고서 확신을 가지고서 요동치 안하고,  확신을 가지고. 이 신구약 성경 지식대로 아는 요 지식을 불끈 거머쥐고 놓지  안하고, 지식을 거머쥐고 어데든지 돌이 부딪혀도 그대로 밀고 찢기고, 죽음이  부딪혀도 그대로 밀고 나가고, 뭐 세계가 다 부딪혀도 밀고 나가고 그대로 밀고  나가면 이 지식이 이 모든 지식을, 발아래 밟고 승리해서 과연 할렐루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지식이 가다가 푹 꺾어지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말이오.

양보만 안하고 요 지식대로 가져가면 온 세계의 지식은 다 내 발 아래 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모든 천상천하에 피조물은 요 지식을 가지고 요대로 사람,  요대로의 행위로 요대로의 사상을 가지고서 나가면 하늘과 땅의 것은 다 내게  복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는 계대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상속받는 것. 어떤 부자들 보니까 아버지의 그 모든 소유를  상속받으려고 시비도 하고, 어짜든지 상속받아 봤자 그까짓 것 오늘이라도  죽으면 그만 되는 것, 또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것 무슨 가치 있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무한한 그를 내가 상속받아-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양자라 말은 양자라  말은 하나님의 신적 요소로 된 것은 아니지마는서도 하나님의 것을 받는 권리는  꼭 신적 요소로 된 그 예수님과 같은 동등 권리를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은  적자요 우리는 양자입니다.

 이러니까 성경이 말한 대로 이렇게 이 지식을 가지는 요 지식이 이게 제일인데.

이 양성원 학생들도 그래, 이 성경 지식이 아닌 이 세상 지식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말하고, 내가 가만히 오층에서 들으면 이리 저리 말하면 그만 다  거기에만 쏠리 간다 말이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세상 지식을 참 안 당해서  다행이지, 만내 버렸으면 다 이거 넘어간다 말이오. 그래도 안 당했다 할지라도  그 지식을 당하면 넘어 갈 사람 알고, 암만 당해도 안 넘어 갈 사람 알고  하나님은 그것을 뭐 시험하지 안하고 경험해 보지 안해도 시험해 보지 안해도 다  알고 계십니다. 이러니까, 신구약 성경을 믿되 온 천하에 지식이 다 와도 요동치  안하고 믿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지식을 가졌느냐? 이거는 가지고 아주 연약해서  짝이 없어서 세상 지식하고 밀면 착착 꺾어지고 해이해지고 고만 딱 포기할 수  있는 그런 지식을 가졌느냐? 이 실력이 무궁세계의 실력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공산주의 죽음이 와도 권능자의 아들이라. 전능자의 품안에 있다,  전능자의 품 안에 있는 것을 공산주의 독침이 죽이겠습니까 뭐 하겠습니까?  죽이면 죽을 때가 됐으면 죽일 것이고, 죽일 때가 안 됐으면 못 죽인다  그말이오. 못 죽이는데, 그때 두려워지는 것이 그게 뭐입니까? 전능자의 품 안에  있다고 말은 하면서 두려워지는 그것은 뭣 때문에 두려워집니까? 전능자의  품안에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강한데 그렇습니까? 인정하는 것이 약해서  그렇습니까? 인정하는 것이 약하다 그말이오. 그게 믿음이 약하다 그말이오.

믿음이 약해 그래. 이러니까, 그것을 지금 연습 하는 것이 우리 연습인  것입니다.

 또 시간 너무 많이 지나가서 할 수 없어. 어제 세 가지 말했는데, 빈부관.

소유관이라고도 할 수 있고, 빈부관이라고도 할 수 있고, 빈부관을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이렇게 가져라. 또 그 다음에는 안보관, 안보관을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가져라. 또 그 다음에는 뭐입니까? 시관을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가져라. 그러면 이 세 가지를 성경이 가르친 대로 바로 딱 가지면 바로 가지면  그저 온 천하에 디리 섞어 놓아도 이거는 못 쓸 것, 이거는 못 쓸 것, 이거는 쓸  것, 저거는 해독이 있는 것, 이거는 필요한 것. 전부 고만 이 성경 지식만  척척척척 가져서 딱 가져서 이거는 못 쓸 것, 이거는 쓸 것 요거는 가치가 몇  푼어치 있는가? 요거는 가치가 더 많은 것 이것을 평가도 옳게 되고, 비판도  옳게 되고 이러니까 가치관이나 비판관이나 모든 것이 바로 되니까, 내가 소원할  것도 소원하고, 소원 안할 것은 안하고, 더 소원할 것은 더 소원하고, 힘을 많이  들일 것은 많이 들이고, 적게 들일 것은 적게 들이고, 이 모든 것이 다 균형이  딱 들어 맞고 바로 된다 그말이오. 이러나 성경을 무시하기 때문에 안돼.

 아 여기 양성원 학생들도 그래. 이 세상 것 가르치면 그런 것 가르치면 눈이  쫑긋 쫑긋하고 이렇지마는서도 성경에 대해서는 그렇게 중하게 여기지를 안 한다  그말이오. 여러분들이 여기에 한 달동안 여기에 가르쳐 배우면서 새벽기도에  배우는 요것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알고 있으면 고 지식이면 세상 지식 그까짓  거는 다 발 아래 밟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철학이라도. 내 그때 고려 신학교에  그때 미국서 온 어떤 세계 유력한 그 철학자가 와 가지고 철학을 강론하는데 그  철학을 들어 보니까 그 전부 한마디로 요거는 요렇기 때문에 틀렸다, 조거는  조렇기 때문에 틀렸다 전부 정죄를 다 할 수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  그거는 그것대로 받아들이고, 저거는 저것대로 받아들이고 이러니까 고만  기독자들이 어떻게 됐느냐?  내가 어떤 신학교에 가는 사람 그 사람을 물으니까 '네가 지금 신학교를  뭐하려고 가느냐' 이라니까 '교역자 노릇하려고 갑니다.' '교역자 노릇하려고  가면은 너거 학교는 여러가지 과가 있는데 교역자 노릇하는 데는 어떤 지식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 무슨 과를 입학 했느냐?' '철학과를 입학했습니다.'  '그 철학과는 뭐하려고 입학했느냐?' '철학과에 철학을 공부해야 교역자 노릇을  하고 설교를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철학과를 입학했습니다.' (○○○ 조사님 뭣  때문에 꾸벅꾸벅 졸고 있노. 헛일이야 그래 가지고는 이 귀에 안 들어가는 거야  아직까지는 그 가치관이 틀려 그래) 내가 말했어. 철학에 대해서 한 시간 동안  내가 거기에 서서 좀 강의를 해 주면서, 그래 네가 목회를 할라 하면 성경  공부를 해야 되지, 철학 그것은 인간의 주관 인간에게서 나온 인간학인데 그걸  공부 인간 지식이라 말이오. 인간 지식인데 그것을 공부하면 성경에 삐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철학이 아니다. 기독교는 계시 종교이지 철학이 아니다.

철학이라 하는 것은 인간들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그래도 인간들이 생각해서 그  근원이 뭐이냐? 인간들의 그 주관을 가지고서 마귀 감화를 받아 가지고서 자꾸  생각하고 생각해 가지고서 이렇게 발달되고 올라가는 것이 철학이요. 기독교는  그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렇다 해서 한 가지 계시를 해 주면. 하나님이 열어  주셔 계시해 주시면 '이렇다.' 처음에 계시가 뭐입니까? 계시가 처음 계시가  하나님께서 동산을 다스리라 한 계시, 또 동산을 지키라 둘째 계시, 여기에 있는  모든 과실을 임의로 먹으라 셋째 계시, 또 선악과는 먹지 말아라 넷째 계시,  먹는 날에는 죽는다 다섯째 계시 하나님이 요렇게 계시를 열어 주기 때문에  고것이 그와 같이 모든 지식이 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는 그 지식이지, 철학은  인간에게 올라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은 위에서 내려오고 인간 지식은  올라오기 때문에, 이거는 정 반대다. 그러기 때문에 철학이 있는 것만치  하나님의 지식에 적이 된다.

 이러니까, 이 기독교가 복잡하게 되어진 그것은 뭐이냐 하면 이 세상에 기독교  요 중세기에 중세대에 이 철학들이 나서 가지고서 철학과 기독교가 같은 줄 알고  혼합시킨 거기에서 이단이 제일 많이 나왔고 기독교에 복잡한 것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 기독교는 철학이 아닙니다. 철학은 철학은 기독교의  정반대입니다. 과학이라 하는 것도 과학이라 하는 것도, 그것은 물질에 대한  물리이기 때문에, 물리가 과학인데, 이제는 신앙생활도 과학이랍니다. 과학이란  말은 착각해서 잘못 썼어. 신앙의 이치를, 물질의 이치를 신앙의 이치도 물질  이치와 같다 그렇게 같다고 그렇게 인용은 할 수가 있지마는서도. 바로 신앙이  과학이다, 그러기 때문에 과학적 신앙을 가져야 된다 이렇게 말하면 틀렸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성경에 말하는 것을 배워야 되는데 이 세 가지 잘못된 것을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 하는 것은 이 세 가지를 네가 깨달은 바가 있으면 요 대로  열심해라. 또 회개하라, 잘못된 거 있으면 회개해라. 문을 두드린다. 문을  두드린다 말은 이제 문을 열라 말은 회개하라 말인데, 이 세 가지가 잘못된 이것  때문에 가리워져 가지고 하나님 하고 통하지 못합니다. 이 세 가지만 바로 되면  당장 우주를 점령합니다. 점령하요.

 그러니까 무슨 열심을 내야 되느냐? 소유로는 뭣을 소유하는데 열심히 자꾸  소유해라. 열심히 자꾸 네가 부자가 되라. 뭣을 부자 돼라 말이오? 열심 내라  했는데 뭐 부자? 이런 소리는 이제 저 뒤에서 그거 있어야 돼요. 뭐 설교 다른  데서는 백지 소용도 없는데 이래 말하고, 아멘! 아멘! 인제 심심하면  아멘하지마는서도, 이 아멘이라 말은 과연 옳습니다. 그대로 원합니다. 과연  옳습니다. 그대로 원합니다. 그런 뜻입니다. 아 이런데 '뭣을 지금 소유하기를  열심을 내야 됩니까?' 이라면은 다른 사람이야 소리 내든지 말든지 하나님!  이렇게 속에서 확, 속에서 '하나님! 하나님으로 부유해지기를, 열심을, 이  하나님으로 부유해지는 이 일을 열심히 해야 된다' 이게 속에 폭 틔어 나와야  될까 말까 한 건데, 이래 가지고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이래 가지고서 뭐 참  싹이 노래요, 안 돼 그러면, 어떤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돈 부자 될라고  자꾸 이라는데 나는 이 일에도 하나님 부자, 저 일에도 하나님 취하는, 이  일에도 여기에서도 하나님. 내 하나님, 여기에서 여기에서 자기 하나님 삼을  하나님 있고, 하나님은 한분 뿐이신데 이 일로 하나님을 내가 더 내 하나님으로  삼고. 저 사건으로 하나님을 내 하나님 더 삼고 이라니까,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일에 열심을 내라, 열심을 내라. 또 내가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삼지 안하고 가다가는 돈을 내 돈 삼을라고서 시간을 허비했으면  네가 회개를 해라 이말이오. 회개를 해라.

 아 그 다음에는 또 무슨 무엇을 열심히 하라 하면 안보, 피난처는 예수님의  대속 공로 뿐입니다. 이러니까 암만 미국 나라에 피해 가도 소용없고. 이러니까  예수님의 대속 속으로 피란해야 되니까, 의복으로 의복은 자기 몸을 보호하는게  의복 아닙니까? 상징적으로 말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아, 내가 미국으로  보호한다, 돈으로 보호한다, 이 과학으로 보호한다' 그것보다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보호하고, 사죄를 입고 사죄를 벗지 않겠다, 사죄를 벗지 않고  어데서든지 사죄를 입고, 또 더 입고더 입고, 이 면으로 사죄를 입고 저 면으로  사죄를 입고, 아 사죄를 입었는데 사죄를 입었는데 이 사죄가 요 면에는 내가  예수님의 그 사죄로 피란처를 삼지 안하고 다른 것으로 피란처를 삼았습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뭐이요? 구멍이 뚫어졌다 그말이오. 구멍이 뚫어졌는데 원수의  화살이 구멍으로 딱 들어오면 내가 꼽혀 죽는다 그거요. 이러니까 요 예수님의  사죄로 입어서, 사죄의 구멍이 요면으로도 예수님의 사죄를 입으니 요면으로도  사죄를 입고 사죄를 벗지 안하고, 요면으로도 사죄를 입어서 죄가 없고,  요면으로도 사죄를 입어서 요면으로도 예수님의 공로로 사죄 다 받아서 죄가  없고, 저 면으로도 전신에 죄가 없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입니다.

 또 하나님의 그 예수님의 대속의 옷은 뭐인고 하니 예수님의 칭의, 예수님이  대행하시고 칭의 주시니까 칭의를 내가, 나는 의롭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나는  의롭다, 이 의를 죽어도 안 벗는다, 이 의를 죽어도 벗지만 안 하면 요 마귀란  놈이 꼬아 가지고 요 의를 벗으라. 벗으라. 벗으라, 요 의를 요럴 때는 잠깐  벗어 놓으면 그저 잠깐 벗어 놓으면 잠깐 벗어 놓은 고통에 칼로 팍 찔러  버립니다. 또 그만 불합격입니다. 의를 벗지 안하고 사죄를 벗지 안하면 마귀가  와 봤자 두루 두루 있어 봤자 칼로 찌르지 못해. 물리칠 것도 없어, 오니라  오니라 얼마든지 와서 있거라. 암만 와서 해 봤자 그게 내게 왔다가 이래  거석하니까 좀 거칠기는 거칠지마는서도 또 상급이 되거든, 이러니까 상하지  못한다 말이오.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해서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내 안에 있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상호 내주하는 이 결합의 친밀을 해서 화친으로 이렇게  영생을 딱 가지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동거동행하는 요것을 딱 떼이지 안하면 마귀란 놈이 고걸 놔라. 하나님과  동행해서 잠깐만 좀 놀러 나오니라, 놀러 나가면 칼로 찌르요. 놀러 나가지  안하고 이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벗지 안하고 있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자기  안보 중에는 제일 안보입니다.

 '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벌거벗은 수치라 말은  해를 보지 말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흰옷을 샀는데 흰옷은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말합니다.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 두루마리  빠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 말은 그 두루마리는 무슨 두루마리입니까? 내나 모든  사람들 다 임금 잔치할 때 왔는데 손님 중에서 예복을 입지 안하고 온 사람  있으니 또 쫓가 냈다 말이오. 예복 입지 안한 그 예복이 뭐입니까? 이거 예복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말합니다. 이러니까, 두루마리를 빠는 자 복이 있다  말은 제가 두루마리를 더럽혔다 말이오.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흐렸다 말이오.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흐린 것은 이제는 똑똑하게 명확하게 하라 그 말이오.

그 외에는 우리에게는 좋은 안보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셋째는 뭐입니까? 시관, 눈은 말이죠 눈은 눈은 공자의 유교로 눈먼  봉사들 많고, 철학으로 봉사들 많고, 세상 과학으로 봉사들 많고, 이 세상에 뭐  공산주의로 봉사들 많고, 민주주의로 봉사들 많고 세상에 모든 지식으로 봉사들  많은데, 그 세상 지식으로 봉사가 많다 말은 세상지식 고대로 이 세상 지식  이렇게 하니까 자기도 요런 줄 알고, 저렇게 하니까 저런 줄 알았는데 그게 다  반 거짓말이오 다 틀린 말이라 그말이오. 안약은 뭐냐 하면 영감과 진리를  가르쳤는데 영감과 진리로 다 눈에 발라 가지고 보게 하라. 그러면 영감이  가르쳐 주는 대로 성경 지식이 가르쳐 주는 대로 고대로 보면 옳고 바르고  참되고 털끝만치도 틀림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 성경이 말한 대로 인생은  뭐이냐? 성경이 말한 대로 영은 뭐이냐? 또 인생은 뭐이냐? 영감이 말한 대로  나도 내가 어떤 자인고? 사람들이 날 욕한다고 그까짓 것 소용도 없어.

칭찬한다고 소용없어. 보자 성경을 보자 성경이 날 뭐라고 하느냐? 성경을  읽으면서 보니까 성경이 자기는 이런 사람이라 성경 읽어 보면 나타납니다.

이러면 그것을 자기가 성경이 '나는 이런 자라' 하니까 자기를 그렇게 보고  고치면 바로 고쳤어. 성경이 자기를 뭐라고 말하는지 성경 지식대로 자기를 보고  영감대로 자기를 봐서 영감과 진리대로 자기를 봐 가지고서 흠 있는 것을 다  치료하고 올바르게 구비하게 건강하게 잘 준비를 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자기에게 대해서 완전히 봤고 바로 봐서 바른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면 세상도  다 그렇게 모든 만 존재관과 하나님에 대한 신관도 요렇게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지식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영감이 가르쳐 준대로 요대로  보고 알라 그말이오. 이게 눈이 밝아요.

 요 세 가지 관을 바로 가져야 됩니다. 소유관. 안보관. 시관 이것을 잘못되면  다 틀려요. 이것만 바로 되면 다른 것 다 바르게 돼요. 이러니까, 사람을 만나  가지고 이 얘기를 합니다. 이 얘기를 할 때에 그 사람 말해 보면 아 저 사람은  어떤 면이 틀렸구나. 틀렸으니 저 사람은 주장을 무슨 주장 할 것이고, 저  사람은 행동을 어떻게 할 것이고 그거 보면 다 알아요. 어데 노력할 것이라.

그러면 그 사람의 앞으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가 보지 안했지만 그리스도의  심판대 가 보면 벌거벗었다, 저 사람은 아무 것도 없다 저 사람은 껍데기다,  라오디게아 교회같이 공연히 네가 말하기를 네가 말이요 네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사람입니까?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 말한 대로 모든 것을 보고  있다 그말이오. 사람이 말한 대로 보고 있기 때문에 틀렸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봐야 바로 되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런데 오늘도 요 새벽 기도 조금 좀 더 나왔어. 보니까 한 몇 십명 더  나왔는데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는 거라.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니까 불쌍하고  가련해. 잠한테 붙들려서 못 나오지, 또 아이들한테 붙들려서 못 나오지,  남편에게 붙들려서 못 나오지, 게을에 붙들려서 못 나오지, 교만에 붙들려서 못  나오지. 내가 그 소리 듣고 뭐 새벽기도 가 나 같은 사람이, 네 교만으로 네가  죽는다, 네가 망한다. 회개를 해라. 뭐 지금 하느라고 오늘이라도 죽으면 지금  벌거벗고 갈 사람들이 뭐 아무것도 이 마련한게 없어. 너무 신앙이 없어.

허무해.

 인간 지식이고 뭐이고 비판을 그리하기 때문에 그렇다 말이오. 비판을 모두  인간 지식으로 비판해서 예 저래도 아무 것이는 뭐 훌륭한데, 훌륭한 그것이  인간 도덕에 암만 맞추고 훌륭해도 소용없어. 하나님 법에 맞추지. 도덕가가  인제 기독교 도덕주의는 다 멸망입니다.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정치주의 기독교 윤리주의, 헤 제가 윤리라면 저거는 아무것도 윤리도  없는 것 윤리 그것 가지고 구원 얻는가?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 얻어. 소용이  없어.

 기도록에 기록한 사람 사천 팔백 사십 육명인데 기도록에 기록한 사람들도  계속해서 기도를 열심히 하고, 또 기록해 어짜든지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 안  하면 안 돼요 하나님이 이렇게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에 이 기도해야 돼. 다른 것  좀 못해도 기도해야 돼요. 다른 것 못해도 죽고 사는 영원 한 문제가 여기에  달렸는데 뭐 아무래도 굶어 죽겠습니까 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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