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디게아 교회

 

1983. 11. 7. 월새.

 

본문 : 계3:14-22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본문 봉독 전 기도)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셔서 주를 찾고 주께 모든 것을 의논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이 지극히 큰 능력이신 영감으로 죽는 일도 사는 일도 다  성공하셔서 우리 구원이 된 걸 믿습니다. 이는 인간의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고 성신의 감화로만 되는 걸 믿사오니 오늘 아침에도 여기에 나온 성도들에게  영감으로 충만시켜 주시고 나오지 못한 형제 들에게도 영감으로 그들에게 눈을  띄워 주셔서 견딜 수 없는 입장과 처지인 것을 알게 하사 어서 환난과 멸망에서  벗어나게 하시옵소서. 이 시간도 영감으로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십 분 기도 후에 사층에서 권찰회 있습니다.

 지금 기도회에 등록된 분은 삼천백사십팔 명이 둥록됐습니다. 지난 밤에  기도하러 온 분은 구백 일곱 명이 기도하러 왔습니다. 장로님들 가운데는 여섯  분이 기도하러 오셨습니다.

 여기에 '창조의 근본되신 이가 가라사대' 이 말씀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또 당신이 창조한 것을 얼마든지 개조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지시고 오신 것올 말합니다. 하루 일혼 번씩 일곱 번이라도 네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돌이키면 다 창조의 근본되신 능력을 가지신 주님이시기  때문에 다 얼마든지 개조해 주실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첫째 말씀하신 것이 네가 구별 없이 살기 때문에 결국은 내게서  버림당하고 악령에게 삼키게 된다. 구별 없이 사는 것.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하다 그말은 구별 없다 말입니다.

 네가 의인이 되든지 죄인이 되든지, 죄인이 되면은 주님 앞에 고해서 사함을  얻고 살 수 있고 의인이라면 하나님 앞에 영접받아서 살 수 있는데 너는 의인도  아니면서 의인인 줄 알고 죄인이면서 죄인 아닌 줄로 그렇게 알기 때문에 너는  내게서 토하여 내치게 된다.

 토하여 내친다 말은 생명에서 떨어진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에서  떨어진다 그말입니다. 떨어지면 그만입니다. 성경에 보면 느부갓네살이 천하를  통일한 그 위인이지마는 하나님이 버리니까 짐승같이 되어서 비참하게 됐다가 또  하나님이 붙드니까 또 됐습니다. 그게 하나님이 작지를 던지라 하니까 배암 되고  잡으니까 또 작지 됐습니다. 품에 손을 넣으라 하니까 넣었다 내니 문둥이 되고  또 넣었다 내니까 또 그 문둥 손이 성한 손 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렇게 죽은 걸 살릴 수도 있고 산 자를 죽일 수도 있고, 없는  가운데 있게도 하고 있는 것을 없게도 하고, 크고 높은 자를 꺾어서 그 백향목을  꺾어서 다 부숴뜨리고 또 높은 산은 무너뜨려서 깊은 함정을 만들고 또 깊은  곳을 돋워서 높은 산이 되게도 한다 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주권 가진 것을  믿는 것이 이게 주님을 대우하는 것입니다.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했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고 그분을 상대해서 행동하면  그는 하나님이 얼마든지 높여 주실 수 있습니다.

 미직지근하다는 이 말씀은 구별이 없다는 것, 우리 믿는 사람은 구별이 있아야  됩니다. 구별이 없고 보니까 그 모든 차차 악령의 미혹으로 지식 이 바꿔집니다.

지식이 바꿔져서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도다'  이것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렇게 모든 것을 구별하지 안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타락해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은 버려버리고 눈에 귀에 가까운  인간 지식으로 변화됐습니다.

 인간 지식으로 바꿔지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망한다는 것은 인간 지식으로는  흥한다, 하나님이 죽는다는 것은 산다, 하나님께서 가련하다 하는 것은  영광스럽다, 이렇게 정 꺼꾸로 반대로 보여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구별해  가지고 모든 지식을 바꾸어라.

 그래서 '곤고한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절에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가 너를 권한다.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네 소유는 어떤 환난에서라도  하나님에게만 피동될 수 있는 이 실력이 네 부요요, 네 재산이요, 네 전부다.

 불로 연단해서 없어지지 안할 금, 그말은 세상의 세력이 피조물의 세력이 다  달라들어도 해할 수 없는 영감과 진리의 능력으로 네가 무장돼 있는 그것이 네  소유고, 네 실력이고, 네 부요지, 그저 바람에 불리는 구름 같은 그런, 세상에  있는 그런 것 가지고는 네 실력을 암만 만들어도, 홍포 입은 부자가 당장에 물  한방울의 소유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그것이 인생이 아니냐?  그러기 때문에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모든 온갖 파란과  곡절과 세상에서 어떤 시련을 당해도 웃음으로 이길 수 있고 기쁨으로 이길 수  있고 온 세상을 점령할 수 있지 세상에게 피해를 보지 않는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것이 절대 부동하는 이건, 인간에게는 절대성이 없지마는 하나님으로  인해서는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와도 뭐 신사참배가 와도 조금도 부동하고, 6·25 인민군이 와도  부동하고, 자기 사생활로서 이런 것 저런 것 뭐 직장과 처지와 가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신앙이라 하는 것이 요동되지 안하고 그대로 나아가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네가 믿음 부자가 돼라.

 '횐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입은 자이니 주님의 것이 되고 주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주님의 것이 되고 주님의 대속 안에 있으면 너는 깨끗하다. 너는  털끝만치도 흠이 없지마는 주님의 대속을 벗으면 인간은 더러워집니다.

 또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 말은 안약은  영감과 진리의 이 도리로 모든 것을 관찰하라. 네가 하나님의 진리로 관찰해서  하나님의 진리로 모든 걸 해석하고 진리로 비판하고 진리로 평가해라. 진리가  가치 있다 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진리가 가지 없다 하는 것은 가치 없다.

 네 인간의 지식이나 인간의 마음 가지고 '이거는 좋다 나쁘다' 인간의 지식  그것을 지식과 법칙을 삼아 가지고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은 정 꺼꾸로 된다.

네가 인간 지식으로 하려거든 정꺼꾸로 답안을 내라. 인간 지식으로 좋다 하거든  하찮은 것인 줄 알고, 올라가거든 떨어지는 것인 줄 알고, 부요하면 가난하고  가련해지는 것인 줄 알고, 가난하면 그게 도리어 나은 줄 알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안약 사서 바르라 그말은 네가 성경 지식으로 만물관을 가지라 그 말이오. 성경  지식으로 만물관을 가지라. 그것이 안약 사서 발라서 보게 하는 것입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마찰이 있든지 뭐 조금 무슨 일이 생겨도,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나?' 그 일을 해결할 방편을  모색하느라고 인간의 생각대로, 인간의 궁구 대로 사람을 붙들고, 모든 또  복술을 써 가지고 꾀를 써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하고 있는 그것이 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알지 못하신 일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는데 한 사람의 두뇌를 만들  때에 컴퓨터를 십억만이나 그 안에 만들어 넣어 가지고 인간이 기이한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도록 이렇게 해 놓은 그 세밀하신 분인데 그분이 모르지 않습니다.

 이래서 그분이 우리에게 뭐인가 좀 못마땅한 것이 오는 그것은 틀림없는 주의  징계로 봐야 됩니다. 징계가 그것이 미운 게 아니라 사랑하는 자에게 징계 주는  것이오. 징계로 보고 뭐 마찰이 있으면 '뭣 때문에냐? 이 징계니까 주님이 이런  것이니까 주님의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주님의 권면하시는 것이 뭐이며,  주님이 책망하시는 것이 무엇인가?'그걸 찾는 그것이 자기에게 있는 난제 해결,  자기에게 있는 장벽을 헐고 모든 것을 대로로 통과할 수 있는 이 유일한  방편인데,  이것은 회개일랑 하지 아니하고, '내가 너를 징계하노니 열심을 내라'  그럴수록이 징계가 오면 더 열심내야 될 건데 징계 오면 그만 가라앉고, 징계  왔으니 열심을 내 가지고 잘못된 걸 찾아서 고쳐라 이래야 될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그런 일이 닥치면 그만 인간 거머쥐고 날뜁니다. '인간하고 무슨  어떤 교제를 할까? 어떻게 또 사람 한번 꾀워볼까? 꾀를 써볼까? 운동을 할까?  선물을 주고 무슨 사람을 매수해 볼까?' 이렇게 하고 있으니 그것이 이제 망하는  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징계하니까 징계인  것을 깨닫고 책망하는 것은 무엇을 책망하는지 책망하는 그걸 깨닫고 그것만  고쳐버리면 됩니다.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열심을 내서  회개하라. 그러면 사람이라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일방적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돈이나 손해가면 그게 손해간 줄 압니다. 또 그에게 무슨 육체에 병이나 들면  일난 줄 압니다. 그것보다 더 큰 것 있습니다.

 진리가 자기에게 깜깜해서 진리가 깨달아지지를 안하고 영감이 자기에게 오지  안해서 성신의 감동이 자기에게 오지 안해서 깜깜 마비가 되고서 강퍅해지는 것,  그게 뭐이냐? 뭐인가 당신이 요구하고 책망하고 명령하는 것이 있으니까 그것  찾으면 해결이 됩니다. 우리가 미련한 방편을 쓰면 안 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에게  징계 오는 그것이 징계가 오는 것이 뭐이냐? 문 밖에서 주님이 두드리시는  것이라. 문을 두드리는 것. 징계 오는 것.

 한쪽머리는 징계 와서 내게, 어떤 사람은 극도로 타락한 사람은 이제 물질의  해가 오고, 또 그다음에는 차차 사회에서나 인권이 유린이 돼서 다른 사람이  자연히 자기를 대적하고 멸시하게 되고 그다음에는 신체상 지장이 오고, 이제  말단에 간 사람이고.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은 그런 것은 아직까지 안 오고 그보다  더 귀한 것 진리 깨달음이 오지 안하고 영감이 오지 안하고, 영감이 자기에게 안  오니까 도무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데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어지는 이게 징계인데 그게 문 밖에서 주님이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게 오거들랑 열심을 내 가지고 회개해야 됩니다. 주의 음싱을 듣고, 징계가  올 때에 '주님이 지금 나에게 문 두드리고 계시 는구나' 주의 음성인 줄 알고  문을 열어야 됩니다.

 문 열기가 그게 힘이 듭니다. 문을 열면 되는데 문 열기가 힘이 드는데 그 문이  뭐인고 하니 문 밖에 계시는 주님과 자기와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문입니다. 문만 열면 주님하고 자기하고 둘이 통하는데 문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가로막는 것은 그 뭐입니까? 가로막는 것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가로막는 것은 죄입니다. 죄가 주님과 자기와 사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 죄는 곧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생각, 자기 욕심, 자기 지식, 자기  견해, 자기 뜻, 이러니까 그게 뭐 있는데 그게 자기 혼자 크렇게 만들어 가지고  있는 것도 있고, 또 다른 사람과 둘이 합해 가지고 만들어 가지고 있는 것도  있고, 또 여러 수십 명이 단합해 가지고 만들어져 가지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있는데, 그런 것을 수십 명이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주님은 수십 명 보다 더  크시고 수십 명과 나와의 관계보다 주님과의 관계가 더 크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고, 또 암만 딱한 사정에 친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과 나와의  인연보다 주님과 나와의 인연은 크고 그 사람 괄시하는 것보다 주님 괄시하는  것이 더 크다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이 대속을 입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이제는 '그런 게 아니라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다'하는  이 말씀이 나읍니다. '사나 죽으나 나는 주의 것이다. 사나 죽으나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기를 내가 원한다.' 요게 되면은 그까짓 것 인정에  어려워도 싹 끊어버립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죄는, 인정에 거석해 가지고 바로가 이스라엘을 내 주지  안할라고 얼마나 신강했습니까? 꼭 그와 같은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죄를 끊으려 하면 상대방이 신용 없다고 뭐 오만 모욕을 다하고  오만 단합을 해 가지고 총격을 하고 또 죽겠다고 하고 뭐 별별 딱한 사정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을 십자가에 못박아라 하는 것입니다. 정을 십자가에  싹 못박아 정을 죽여버려야 정 그까짓 놈이 암만해도 피동되지 않습니다. 정을  십자가에 못박고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못박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가 깨달아서 '주님이 이렇게 큰 힘 들여  가지고 죽기까지 하셔서 나를 대속해 주셨는데 내가 죽 음으로 죽기까지 다해서  주님이 주신 사죄를 내가 보수해야 되고, 칭 의를 보수해야 되고, 화친을  보수해서 하나님과 동행해야 될 것 아닌 가?' 이래서 뭐 '나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살아도 죽어도 마땅히 주를 위해서 죽어야 되고 주를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게 마땅하니까 그까짓 문제가 뭐꼬?' 이걸 딱 이럴 때에 그것은 문은  열려집니다.

 그럴 때에 자기 주관과 자기 사욕, 자기 사정, 자기 형편, 자기 모든 욕심,  인인과의 관계 맺은 모든 그 관계, 사정, 이런 것이 척 열리게 됩니다. 그것을  부인하게 된다 말이오.

 그걸 척 부인하고 이것 다 부인해 버리고 이제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 '나는  사나 죽으나 주의 뜻대로 사는 게 내가 마땅한 것이니까 여기에서 그러면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대로 살려 하면 뭐 어떻게 사는 것이 진리대로 사는  것이냐?'  그때부터 진리를 찾으려 하면은 진리가 자기에게 알아질 때에 '이대로 사는  것이 이게 하나님의 뜻이다' 진리를 찾은 그것이 주님을 만나는 것인데 그래  찾아도 자기 마음에 확신이 안 옵니다. 그래 진리를 찾아서 '요렇게 하는 것이  옳다' 하는 것을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묵상하고 기도하면은 자기 속에 '주님 이여, 이렇게 혼란된 복잡한 갈래길이  많이 있는데 어떻게 요 길 요대로 행해야 된다는 요 진리를 생명길을 나에게  알려 주셨습니까?' 그때 자기에게 감사가 나오고 기쁨이 나오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좀 묵상하니까 그 길을 걸으라고 하신 분이 창조주시요, 주권자시요,  주재시요, 모든 것을 다 주권하고 계시니까 그까짓 거 지저분한 인간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말이오. 문제가 없어. 이러니까 강하고 담대함이 나옵니다.

 강하고 담대함이 나오고 기쁨이 나을 때에 그때에 이제 자기는 영감을 받았고  영감을 받으면 그 뒤에 뒤따라오시는 이는 창조의 근본되신 이가 그 뒤를 따라  들어옵니다. 따라 들어와서, 진리가 앞잡이 이 문을 열어. 자기를 부인하니까  앞에 진리가 들어오고 진리가 들어오고 난 다음에 영감이 들어오니까 확신과  담대가 들어오고, 그러고 나니까 사나 죽으나 내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주님에게 다 맡깁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오셔 가지고 들어와서 자기를 붙들고  일합니다.

 이러니까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그말은 주님은 나를 붙들고 나를 통해서  당신의 소원하시는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네게 해당되고 분담된 그 구원과 모든 사명과 본분을 너는 나를 힘입어서 다  이룰 수 있다.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이렇게 해서 이기면 어찌 되느냐? 주님이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서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통치하는 것처럼 이렇게 이긴 그 이김의 결과로서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에 그때에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해서 모든 존재들의 중보가 되고, 모든 존재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시은자가 되고, 모든 존재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바라보고,  바라볼 때에 어떤 사람은 한 고을이 바라보고, 어떤 사람은 열 고을이  바라보고, 어떤 사람은 하나만 바라보고, 그것이 므나 비유에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여기에 쓰여진 것만치 자기에게 속한 자가 생겨지고 자기로  해결지울 수 있는 자가 생겨지고 자기를 바라봤다가 자기로 해결지우지 못하면  부득이 그것은 중보가 바꿔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해결지우지 못하면 이제는  나는 밀려나가고 다른 사람에게 이제 중보가 바뀌어져서 나보다 더 세상에서  이김이 많은 그 사람이 그에게 은혜를 베풀 것이고 해결을 짓고 통솔해 줄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에서 한 고을 차지한다 열 고을 차지한다, 네가 한 의를 행할  때에 그것이 한 고을의 댓가가 된다" 하는 그말은 내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처럼 주님의 보좌에 앉아서 주님으로 더불어 왕노릇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이 지금 이기느냐 지느냐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그 모든  것의 영원을 결정하는 현실입니다. 이 현실은 영원을 결정하는 현실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참 깨어 살아야 되지 잘못하면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지식이  바꿔지면 망할 걸 그걸 성공이라고 좋다고 부러워합니다. 지식이 바꿔지지  안하면 불쌍하고 가련하게 됩니다.

 저 사람보다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 없는데, 부자에게 시집가 가지고 꼼짝  못하고, 권세 높은 사람에게 시집가 가지고 꼼짝 못하고, 주일을 지킵니까,  기도를 합니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그자를 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주일  안 지키고 죽기도 하고 이렇게 망하기도 하는데 그걸 복이라고 생각하는 그게  지식이 틀려 그렇다 말이오.

 '저 지금 주일에 지키는 자유 못 하고 지금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길을 가니까  저게 환난이 오고 무슨 지금 멸망이 올런지 모른다' 이거 지식 이 옳는데 '나는  영광이다 나는 권세다 존귀다' 해 가지고 뭐 그것 됩니까?  그러기 때문에 지나간 때에 많이 봤습니다. 지나간 사람을 말할 필요 없지만  우리 나라에서 제일 높은, 하나 한 분이 높았지마는 그분이, 그분은 하나  로보트같이 있었고 그 밑에서 그분의 모든 것을 주권해 가지고 있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가족 자살하지 안했습니까? 그 뭐 행복된 게 뭐 있습니까?  어리석지 맙시다.

 그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우리에게 계시로 보여 준 것이지 그뿐만 아니라  인간이 죽어버리면 다 그 자리를 다 들어섭니다. 인간이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  앞에 들어설 때에는 홍포입은 부자와 같이 자기의 세상 형편이 하나도  가져가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증거 해야 되고 하나님이 옳다  인정해야 되지 그까짓 피조물들이 아무리 다수로서 증거해 봤자 무슨 힘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아니라 하면 그만이지.

 그러기 때문에 창조주, 조물주, 절대 주권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그분, 모든  것의 주인되는 그분의 법칙에 맞추고야 안심이 되고 그분과 관계를 바로 맺고야  안심하는 이것이 눈이 밝은 사람이요, 멀리 본 사람이요,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임시 그까짓 거 아무 거짓말 하는 이것 인간들 마귀에게 속한 거기에 위로받고  뭐 응호하고 찬성하면 뭣 합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 분 기도 후에 사층에서 권찰회 모입니다.

 어쩌든지 새벽으로 나와 가지고 진리를 배워야 됩니다. 진리를 배우면 우리가  웃음으로 기쁨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갈 수 있는데 그만 믿음 없고  마귀가 들어와 놓으면은 멸망길을 가면서도 좋아하고 하나님의 길은 죽자껏 가기  싫고 위험한 길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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