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사람이 됩시다

 

1986. 1. 5. 주일오전

 

본문:로마서 8장 1절∼6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고린도전서 1장 20절∼21절 지혜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이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세상 지혜를 미련케 하셨다 말씀하셨습니다. 미련케 하셨다는 말은 어둡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세상 지혜를 어둡게 하셨다, 또 어둡게 하셨다는 말은 더 깊이 들어가면 보지 못하게 가루었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세상에 있는 모든 지혜는 하나님을 배반 후 악령의 미혹을 따라서 만들어진 인간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배신 타락으로 인한, 사람들에게 생명나무의 과실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따 먹을까 하여 가루어서 생명과를 보지 못하게 하고 화염검으로 지키셨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지음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목적하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을 영육으로 되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정복하고 또 다스리라 이런 지위를 주었는데 사람이 타락함으로 본지위에서 쫓겨났습니다. 근본 사람의 본지위는 영계나 물질계의 모든 것을 하나님 대리로 통치하는, 하나님이 꼭 모형으로 지은 것인데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은 원형이요, 사람은 모형이요, 모든 지능도 하나님은 원형이요 사람은 모형으로 되어 있도록 이렇게 지었는데 배암이 유혹시키는, 타락한 천사가 배암을 입고 인류 시조에게 와 가지고 유혹시키는 그 유혹에 빠져서 인류 시조가 실패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지혜를 가루어서 참지혜를, 생명에 속한 지혜들을 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은 이 공간도 우주와 영계가 있건마는 이 우주에도 한 부분의 일 모퉁이를 보고 그것을 상대해서 살고, 시간도 영원 무궁의 시간이 있건마는 그것은 보지 못하게 짤막한 한 토막의 몇십 년이라는 그것만 보고 살고 너머는 모릅니다. 또, 존재에 대해서도 육안으로 보는 것, 혹 물질 중에 신비한 것 그런 것만 볼 줄 알지 모든 존재를 창조한 창조주를 보지 못하게 가루었습니다. 모든 지능도 타락한 인간의 극히 미약한 심신의 타락한 지능만 보고 인간이 전능자가 아니면서 전능의 지능을 가지는 이 지능은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생명도 죽는 생명, 칠팔십 년, 지금 많이 살아 봤자 백 년 백 이삼십 년이 더 이상 장수하는 사람이 없는데 그러면 죽습니다. 죽어가는, 저주 받아서 죽어가는 생명만 사람들이 보았지 영생하는 생명은 보지 못하게 가루었습니다. 그 모든 빈부 귀천도 없어져 가는 그것만 봤지 영원히 건설돼 가는 것은 가루어서 보지 못하게 됐습니다. 모든 희로 애락도 다 그러합니다. 하루밤 나그네의 슬픔은 보나 영원한 슬픔은 보지 못하게 가루었고, 하루밤 나그네와 같은 기쁨은 보나 영원한 기쁨은 보지 못하도록 가루었기 때문에 사람은 전부 타락한 후에 다 근시자가 됐고, 또 외식자가 됐고 점점 사망에서 사망으로 타락해 가는 것이 인생이 된 것인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이 다시 복구시켜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대속 제물로 오신 이가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 전에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만물과 영계와 물질계를 홀로 창조하셨고, 그분이 창조하시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요한복음 1장 2절과 3절에 말씀했습니다. 또 세상은 그분이 지으셨다고 말씀했고, 모든 고체나 액체로 되어 있는 모든 이 우주는 그분의 것이라고 똑똑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들도 그분이 만드시고 그분이 영원히 주인으로 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배암의 유혹을 받아서 그 실상을 알지 못하게 축소 축소시킨 한 일 부분만 보고 살게 됐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이것을 회복하실라고 오셨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성경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은 우리가 장차 얻어 갈 이 모든 것을 다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존재로서는 보이지 않는 영원 자존하신 한 분이 계셔서 그분은 완전자시며, 영원 불변자시며, 영원자시요, 단일성의 하나님이시요, 그분은 완전 지혜, 완전 지식, 완전 사랑, 완전 중심, 완전의 구별, 완전의 의, 완전의 주권 이렇게 가지신 이 하나님으로서 보이는 것은 다 보이지 않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았는데 자기 땅에 오되 사람들이 대접하지 안했다 이랬습니다. 곧 대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타락의 거게서 인간의 본지위를 다시 얻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의 그 권세를 준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게는 말씀하시기를 영생을 말씀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말씀했습니다. 불과 일이백 년도 잘 못 사는 인간에게 영생이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소리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오늘에 받은 사람들은 영생을 확실히 잡고 보았습니다. 영생은 육의 생명보다도 더 확고합니다. 또 사람이 전지 전능의 그 지능을 가질 수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도 세상은 믿지 않지마는 믿는 자는 이미 몇십 번 몇백 번이든지 체험을 한 사실입니다. 전지 전능이 되는 것은 그분과 연결되어서 그분을 바라보면서 그분에서 피동될 때에 그는 전지 전능자가 되는 것을 지금도 얼마든지 경험하고 체험하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은 지금 86년 첫 주일인데, 우리가 31일 그날 하루 종일 불 넣어 놓고 85년의 모든 삐뚤어진 것을 가지고 넘어가지 말자 하는 것을 우리가 말했습니다. 죄라는 말은 삐뚤어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죄는 하나님께 삐뚤어진 것이요, 인간에게 대한 죄는 인간에게 대해서 삐뚤어진 것이요, 사물에 대한 죄는 사물에 대해서 삐뚤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삐뚤어졌다는 그 바르고 삐뚤어진 데 근거는 뭐인가? 근거는 이 세상의 인간이 입법해 놓은 그런 법을 준해 가지고서 바르다 삐뚤어졌다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해 놓으신 하나님의 이 법칙을 준해 가지고서 바르고 삐뚤어지고 그것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죄를 다 정리하고 청산하고, 우리가 지은 죄를 자기로서 해결할 수 없으니 주님에게 다 맡겨 놓고 맡긴 그 시간부터 자기의 주관을 완전히 버리고 주님에게 피동으로, 모든 피조물을 소망하는 그런 것을 완전히 버리고 자존 완전자이신 그분 한 분을 소망하고, 모든 인간들의 별별 그런 욕심으로 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모든 마귀가 주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소욕,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것은 네가 욕심을 품어라. 이거는 소원을 해라’ 하는 그 성령의 소욕으로 살기로 우리가 작정하고 31일에서 1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잘못됐다는 게 생각날 때에는 거게서 앉아서 울고 후회하고 원통스럽게 여길 것이 아니라, 그것도 좋지마는 아무리 후회하고 원통스럽게 여겨 봤자 거게서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에 깨달으면 즉시 주님의 피에 고해서 잘못된 것은 사유함 받고, 그 범죄한 자리에 일 분도 앉아 있지 말아라, 빨리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고 일어서라, 그래서, 우리는 잘못된 것은 주님께 고해서 사죄받고 회개하는, 다시 고치는 개로 가지고서 일어서서 걸어갈 것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가리켜서 믿음이라 그렇게 말했는데, 믿는 자는 점점 믿게 되고 안 믿는 자는 점점 안 믿게 됩니다. 왜? 자기 현실에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법전으로 삼고 삼아 가지고 자기 신앙 양심에 성신이 감동 시켜서 그 현실 현실에 너는 이렇게 하라, 이렇게 말하라, 이렇게 생각하라, 이렇게 소원하라, 이렇게 소욕을 품으라, 이렇게 비판하고 평가하라, 이렇게 계획하라, 이런 것을 버리라, 이런 것을 끊어라, 이런 것을 던져라, 이런 것을 취해라, 잡아라, 이런 인내를 하라, 이런 것을 벗어 버리고 떨쳐 나오라 오만 것을 우리에게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대로 살면 우리의 전 생활은 기적과 축복으로 사는 것이 기독자의 생활인 것입니다. 기독자의 생활은 자기의 부지런하게 하는 것, 또 자기가 검소하게 하는 것, 자기가 또 노력하는 것, 계획하는 것 이런 거 가지고서 잘 사는 것이 기독자 아닙니다. 기독자의 생활 방편은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생활 방편이 배암이 와 가지고 주는 그 생활 방편을 완전히 버리고 이제는 예수님의 피공로를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요 생활 방편으로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회개라 하는 것은 한 가지 두 가지 잘못 된 걸 고치는 그것도 회개이지마는 근본적으로 회개라는 말은 방향을 전환했다 하는 말입니다.

돌아섰다 하는 말입니다. 돌아선 것 중에 우리의 생애 법칙도 자기의 지능으로나 수고로 무엇을 해 볼려는 그런 망상을 완전히 버리고, 다만 우리의 할 일은 뭐인가? 내가 오늘날 너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 내가 너에게 축복하여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 또 너의 도처와 너의 손으로 하는 모든 것에 다 축복해 주겠다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의 금생과 내세 영육의 모든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의 그 지극히 큰 능력이 도와 주시면 자체가 온전해지고 또 그분이 복을 주시면 자기의 소유가 다 윤택해지고 풍성해지는 이것이 기독자의 생애의 법칙입니다. 또 아무리 분투 노력해도, 아무리 제가 오만 방편을 다 써서 수양을 해도 하나님이 그에게 저주하면 지능이 자기를 망치고, 수양이 자기를 망치고, 연단이 자기를 망치고, 자기의 많은 소유가 자기를 망치고 마는 이 사실을 믿고 요대로 사는 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그러기 대문에, 신앙을, 하나님의 법도를 모르는 사람은 그 나라의 큰 재벌가이면은 이는 이 재물이 많으니까, 황금 만능이라는 세상인데, 재물이 많으니까 이 물질 가지고 행복되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물질이 너에게 복되게 해 주셔야 복이 되지 그 물질이 너에게 저주와 화가 되게 하면 그 물질로 인해서 너는 망하고 죽고 만다 요렇게 모든 사물과 화복관을 이렇게 가지는 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자는 하나님이 복 주신다 하고서 가만히 있는 게 기독자인가? 기독자는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아, 기독자는 하나님이 해 주신다 하고서 공부도 안 하고 그라면 가만히 있어도 지능의 사람이 되어지는가?’ 기독자는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기독자의 할 일은 뭐인가? 할 일은 믿음뿐입니다. 믿음 하나만 하면 됩니다. 기막히는 소리일 것입니다.

믿음이라 말은 무엇을 가리켜서 믿음이라고 하는고 하니,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신구약 성경 모든 선포를 자기는 의심없이 확실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확신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존재하시니 그분이 모든 것을 지었다 하실 때에 성경에 그랬으니까 ‘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신데 그분은 보이는 것 모두보다 크신 분이요 그분이 모든 것을 지으셨다 이걸 믿습니다. ‘그분은 알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고 모든 것을 홀로 통치하시고 관할하고 계신다’ 하는 것을 믿습니다. ‘그분에게 거슬리면 그것이 죄가 되고 그분에게 따라서 피동되어 그분과 하나되면 의가 된다, 의는 영원히 살고 죄는 영원히 망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성경대로 지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그것이 반 믿음이요, 그대로 행하는 것이 비로소 이제 온 믿음입니다. 알고 인정하고 고대로 행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자들이 할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정은 언제든지 할 수 있고 지식도 언제든지 갖추어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한다는 것은, 행한다는 것은 그것은 현실이 아니면 행하지 못합니다. 그거는 과거에도 불가능하고 미래에도 불가능하고 꼭 현실에서만 행함이라는 것은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은 전능자로서 나를 보호하신다’ 하는 것을 평소에 배울 수 있습니다. 지식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행함이 아닌 것입니다. 다만 현실에 전능자의 보호를 믿으면 이렇게 할 수 있고, 천 번 만 번 말했어도 전능자의 보호를 믿지 않는다고 하면 현실에 그 사람은 이렇게 할 수가 없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됩니다. 그럴 때에 온 세계가 다 부인하고, ‘네가 이 현실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 한다고 이렇게 하면 너는 당장 멸망을 받는데 그 미련한 짓을 하느냐?’ 하나님은 전능자라,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요 거짓이 없는 분이시라, 어떤 현실에서든지 당신의 법도를 지키는 그것이 믿음이요, 법도를 지켜면 당신이 책임진다고 했기 때문에 전능자가 책임지니 문제가 무엇이겠느냐? 이러니까, 다니엘에게 다리오 왕이 ‘너 한 달 동안은 너거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고 해라. 이거 조서를 내려 놨으니까 할 수 없다. 기도하면 사자 구덩이에 넣기로 조서를 내려 놨기 때문에 어짤 수 없다, 기도하지 말아라’ 다니엘은 뭐 힘썼느냐? ‘아, 나는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을 믿고 신실하심을 믿고 그 지능의 전능을 내가 믿습니다. 믿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을 쉬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비록 내가 왕의 밑에서 총리를 하고 있지마는,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안하는 것은 내가 뭐이든지 복종하지마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위반되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왕에게 순종을 못 합니다.’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도 좋으냐?’ ‘녜, 당신은 권리 있으니까 당신 명령대로 안 하니까 약속대로 사자 구덩이에 넣어야 될 것이고 나는 하나님과 약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중단 안 해야 되고, 나는 나대로 법을 지켜야 되고 당신은 당신대로 법을 지켜야 될 것 아닙니까?’ 하고서 그대로 계속 기도를 할 때에 사자 구덩이에 던짐 받은 것이 그것이 다니엘의 할 일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이 어떠하다는 것을 그 이튿날 아침에 다리오 왕에게 보여줬고 온 전국에 보여 줬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오늘 우리의 할 일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역경에나 순경에나 평소에나 비상시나 세계가 막든지, 온 세계가 반대하든지, 세계가 높여 주든지, 온 세계가 나를 높여도 하나님의 법에 내가 높아질 수 없으면 내가 높아지지 안하고, 온 세계가 땅 속에 파묻어도 하나님의 법에 내가 파묻힐 일 하지 안 했으면 파묻히지 않는 것으로서 믿고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에 파 묻었던 세계는 확 폭발이 돼서 다 가루가 돼서 날아가 버릴 것이고 이는 솟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오늘까지의 기독자의 역사는 다 이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는 하나님의 육십 육 권의 이 도리에서 하나님은 어떠하다, 영계는 물질계는 어떠하다, 인생은 어떠하다, 너는 이 성질 쓰면 망하고 이 성질 쓰면 산다, 너는 이런 사람되면 망하고 이런 사람되면 산다, 너는 하나님께 대해서는 신인 관계는 이렇게 해라. 인인 관계는 이렇게 해라, 사물 관계는 이렇게 해라, 네가 지식이 좋지마는 지식 그것보다 사람이 먼저다, 네가 사람부터 먼저 되는 그것이 되고 그다음에 지식은 하나의 그림 그리는 거와같이 발표하는 방식이요, 또 세상에 이렇게 저렇게 처세하는 처세술인데 너는 처세술을 배울 필요가 없어. 그것은 다만 하나 참고로써 배암의 지식을 배울 것뿐이지, 너는 현실에서 네가 이렇게 저렇게 할라 하면 안 돼. 양심 써서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의 법칙에 말씀해 놓으신 말씀이 있으니까 네 양심으로 하나님의 법을 찾으면 그때 그때 하나님의 성령님이 이렇게 저렇게 해라, 양심보다, 무한히 탁월한 완전한 하나님의 영감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그대로 하면 옳고 바르고 참되니까 그대로 해야 돼. 그것이 우리 기독자들이 힘쓰는 것입니다.

요셉이는 불학 무식으로, 그 당시에는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었는데 애굽 나라의 총리 대신이 돼 가지고서 흠 없는 통치를 했습니다. 다윗도 일자 무식의 목동 초군으로 글 배우지를 안했어. 그도 하나 배운 거 있어. 뭐이냐? 하나님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영감대로, 영감대로 사는 고거 하나 배웠어. 또 껍데기로는 양심대로 사는 그거 하나 배웠어. 양심대로 사는 그거 배워서 양심대로 사는 고 지혜와 지식을 배웠고, 그 안에 거게서 올라가서 영감이 시키시는 대로 그와같이 배웠고 이렇게 했기 때문에 그는 흠 없는 생활을 보냈던 것입니다. 사무엘도 그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기독자는 철학을 공부하면 그 철학을 내가 배워 가지고서 그 철학대로 살라고 하는 것 아닙니다.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이 철학에 파묻혀 가지고서 인간들이 다 망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은 요렇게 삐뚤어져서 망했다 조렇게 삐뚤어져서 망했다, 인간들이 망하는 그 길을 지금 찾고 있는 것이 철학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하면서, 인간들이 요렇게 요렇게 삐뚤어졌기 때문에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 속에 철학을 뽑아 버려서 내 버려 던질라고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 말씀을 공부해 가는 데도 이런 배암의 지식 저런 배암의 지식 그런 지식들이 다 유혹하기 때문에 배암의 지식을, ‘지혜는 배암같이 하라’ 말씀 안했습니까? 배암의 지식을 네가 다 배워서 통달해라, 하나 네가 배암의 지식대로 하기 위해서 배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식에 너는 복종해서, 하나님의 지식은 네가 복종할 지식으로 모시고 살고, 이 배암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에 복종할라고 할 때에 이 배암의 지식을 이용하기 위해서 너는 가지라.

그러기 때문에, 인간 지식은 이용하지 인간의 지식에는 복종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참 하나님이 기막히고 탄식되어서 안 오실 수 없는 이런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첫주일인데 간단하게 몇 가지만, 다 참고할라 하면 한이 없기 때문에.

첫째는 이 세상에는 지식이 가득찼습니다. 지식으로 가득찬 세상입니다. 지식으로 가득찬 세상이오. 그러나 눈을 널리 뜨고 전체를 보는 이 관찰을 가지고, 온 세계 인류들 머리 속에 가뜩가뜩 들어 있고 책 속에 가뜩가뜩 들어 있는 이 모든 지식을 다 간추려서 분석하면 둘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지식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요, 하나는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 요 두 지식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시비해도 죽이는 지식은 죽인 일만 했지 죽인 일 아닌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장담해도 그 사람이 난 지 백 년이 지나가면 그 지식은 다 죽이는 지식이라 하는 것을 확실히 판명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산 지식 살리는 지식은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선포해 놓은 하나님의 지식 이 지식은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으로 인해서 살아난 사람들은 본인은 압니다. 하나님의 지식으로 산 것은 영생입니다. 절대 죽지 않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의 말씀은 영생인 것을 나는 아노라’ 말씀이 지식, 말씀이 모든 사람이 다 공통성 있게 표시될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지식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신구약 성경 육십 육 권에 기록한 지식의 외부와 그 안에 이면의 것은영감입니다. 영감과 진리 이것을 말해서 인간말로 표시해서 진리라, 참된 이치라 말합니다. 영감과 진리, 이 하나님의 지식은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 외의 것은 전부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입니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인데, 이것을, 죽은 것을 산 사람이 먹으면 산 사람의 피와 살이 되는 것처럼,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나 이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이 삼키면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왜? 이 인간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이 그 지식을 지배하고 내게는 하나님의 지식이 있어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는 데에 세상 지식을 이용하면 그 지식은 보배로운 하나님의 선물이 되고,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이 둘이 서로 어깨겨룸 할 때에 하나님의 지식을 버리고 인간 지식으로 나가는 것은 다 사망인 것입니다.

자기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지식은 하라 하고 인간 지식은 하지 말라 할 때에, 인간 지식은 어데 있는가? 인간 지식은 온 세계에 하나님의 지식이 아닌 그 전체는 인간의 지식이요 자기 속에도 모든 사랑하는 자들 속에도 꽉 찼는데, 하나님의 지식은 하라 인간 지식은 하지 말라 할 때에 사람들은,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은 온 천하가 반대해도 하나님의 지식대로 합니다. 요것이 십자가의 미련한 도를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미련하게 보이지마는 하나님의 권능이요 그것이 영생입니다. 인간 지식대로 걸어간 그것은 다 하나님의 심판에 정죄받아 가지고 다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서 이런 지식 저런 지식이 많이 있는데, 하나님의 지식은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요, 인간의 지식은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은 산 지식이 그것을 잡아 먹어서, 산 지식이 그것을 이용을 해서 산 지식에게 복종하는 생활을 할 때에, 이 인간 지식을 산 지식에게 복종할 때에 산 지식대로 인간 지식을 이용하면 그 지식은 좋은 고급 요리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큰 힘이 되고 자기에게 크게 좋은 결과를 가져 오지마는 하나님의 지식을 거슬려 배반하고 인간의 지식을 찬성해 나가는 것은 생각 하나도, 뜻 하나도, 행동 하나도 그 전부는 다 사망이고 거기 섞인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는 죽은 지식과 산 지식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둘째로는 믿음입니다. 세상은 믿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다 믿고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 될라고, 믿음 있는 사람 될라고, 또 믿음을 받는 믿음의 대상이 될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믿음도 산 믿음 있고 죽은 믿음 있습니다.

산 믿음은 어떤 게 산 믿음인가? 산 믿음은 영원 자존하시고, 조물주, 주권자, 대주재, 만왕의 왕, 생사 화복 흥망 성쇠를 주권하고 계시는 이분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분 외에 믿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분을 믿는데, 자녀가 부모를 믿습니다. 자기 호주머니에 돈이 있으니까 낮에 도시락 안 가져 왔는데 이 돈 가지고서 점심을 사서 먹을 것을 믿습니다. 녜, 그 믿음 좋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산 믿음인지 죽은 믿음인지 문제입니다. 내가 돈이 있어도 하나님이 나에게 돈을 주셨으니 이 돈을 가지고 도시락을 사서 내가 먹는데 하나님께서 도시락을 사 가지고 먹게 해야 되고 또 먹어도 소화가 잘 돼야 되고 소화되게 해야 되지, 하나님이 그분이 내게 대해서 이 식물에 대해서 나로 하여금 먹고 영양케 해서 살도록 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이 식물로 나에게 유익을 가지도록 그분이 해 주시면 유익이 되고 그분이 안 해 주시면 헛일이다. 요것을 가지고서 음식을 먹으면 영양될 것을 믿습니다.

부모가 있습니다. 부모는 오계명에 봉양하라 했습니다. ‘아, 부모는 나를 낳았다.

부모는 나의 근본이다. 궁극적 근본이다. 부모는 나의 원인이다. 그로 말미암아 나는 났고 그로 말미암아 나는 행복되다’ 하면 죽은 믿음입니다. 그거 죽은 믿음입니다. ‘아, 나는 영원 자존하신 창조주 하나님 그분이 나를 창조하셨다.

나를 만들어 낳았다. 나를 만드시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마는 내 아버지 어머니를 그분이 만드셔 가지고서 아버지 어머니를 또 이용해서 통해서 나를 만들어 주셨다.’ 내가 존재해서 내가 출생한 데 대해서는 첫째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그 은혜의 기관으로 쓰신 아버지 어머니에게 둘째로 감사하고, 이래서, 과거 동양의 그 정치학에서는 ‘군사부’ 첫째는 임금이요, 둘째로는 스승이요, 세째는 부모이지마는 성경에는 부모가 첫째입니다.

인인 관계 계명에 대해서는 오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것이 인간 계명에 대해서는 제일 첫 계명입니다. 이러면 부모를 믿고, 부모를 믿는 것도 부모를 궁극적인 근본으로 부모가 근본이라 하면 우상 섬기는 것이 됩니다. 그건 다 죽은 믿음입니다. 거게서는 하나님의 축복과 권능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타락된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모든 것의 근본이 되셨는데, 하나님이 우리 부모를 통해서 나를 낳으셨고 나를 기르셨고 양성했으니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다음으로는 은혜의 기관인 부모에게 감사하고, 또 나에게 식물을 주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 근원을 알고 믿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믿고 그다음에 부모가 심부름해 가지고서 은혜의 기관으로 주신 것을 믿고, 또 그 식물은 나에게 영양을 줄 것을 내가 믿고 이렇게 간접 간간접, 일간접 이간접 삼간접 사간접 오간접 십간접 뭐 간간접으로 돼도 근본은 하나님 그분이 안 하시면 안 된다 해서 그분을 믿는 그 믿음을 가져야 그것이 산 믿음이지 그분을 빼 놓고 믿은 것은 다 멸망입니다. 하나님이 그 복수를 하십니다.

영원한 지옥이 뭐이냐? 믿는 사람도 그 요소가 지옥 가서 타는 게 많고 하늘나라 가는 것 많습니다. 타는 건 뭐이냐? 근본인 대주재 조물주요 창조주요 주재자인 그분을 믿지 안하고 그분을 근원으로 삼지 안하고 그분을 떼내 버리고 무엇이든지 근원으로 삼은 거는 다 우상 숭배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 멸망으로 던져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말씀하시기를 이 만물은 경건치 안한 자를 심판할 때까지 머물러 뒀다가 불로 다 사른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건치 안한 자라니? 모든 근원을 하나님으로 삼아, 근본을 하나님으로 삼아, 그분을 근거하고 그분을 중심해서 그분이 모든 것의 근원이니까 그분이 설정해 놓은 그분의 법칙에 따라서 이렇게 사는 것이 경건이요, 그 법을 어겨서 어떤 존재를 위해서나 중심으로 살아도 산 것은 그것은 다 경건치 안하기 때문에 다 불로 사른다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이 우주는 성경에 하나도 남지 안하고 전부 불에 타서 원소로 다 돌아갑니다. 원소로 돌아가고서 다만 의만 남게 됩니다.

왜정 말년 때에 이런 설교를 하다가서 일본 사람들한테 많은 충돌을 받았습니다.

받아도 성경에 있기 때문에, ‘너거도 믿어라. 믿지 안하면 안 된다. 너거가 뭐이라고 너거가 그렇게 하겠느냐?’ 결국은 하나님 말씀대로 되고야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도 산 믿음도 창조주 조물주 대주재가 있으니 그분이 모든 것의 근원이시요, 주권자, 크고 작은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분이니 그분을 믿고, 그분이 이런 피조물을 기관으로 삼고 저런 피조물을 기관으로 삼아 가지고서, 그분이 주실 때에 이런 것을 통해서 주시고 저런 것을 통해서 주시고 그 모든 것을 통해서 주시는 것을 고것을, 거게서 통해서 주실 때 이거는 이것대로 감사하고 이걸 통해서 주셨기 때문에 이것 감사하고 이것 감사하고 이렇게 감사로 자꾸 나가지마는 근본은 하나님을 감사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감사하는 고것이 산 믿음이요, 뭐이든지 하나님을 근원으로 삼지 아니하고 피조물 어떤 것이라도 그것을 근원으로 삼으면 고것이 죽은 믿음입니다.

‘아, 나는 국민이니까 국가를 믿는다’ 그 국가 믿는 것 좋다. 그러나, 네가 그 국가를 통해서 너를 보호하고 복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떼 내 버리고 국가를 믿으면 너는 사망이다. 너는 망한다. 죽은 믿음이다. 하나님이 나를 국가에, 이 국경 안에서 살게 하셨으니까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통치하는 이 정권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행복을 주실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워 놓은 기관이니까 내가 소중히 여깁니다. 소중히 여깁니다. 소중히 여겨서 선한 양심을 다 해 가지고 충성을 다 합니다. 있는 충성을 다 합니다. 국법을 잘 지킵니다. 학교법을 잘 지킵니다. 가정법을 잘 지킵니다.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 합니다.

그러나, 근본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뚜렷한 그 계통적인 법이 있기 때문에 내가 오늘까지 일생 동안 상관으로 내 주인으로 이래 모시고 있어서 복종했지마는 명령하는 것이 그분의 뜻에 이탈되지 안했기 때문에 내가 복종했지마는 그분의 뜻에 맞은 것은 복종하다가 그분의 뜻에 몇 년 가다가 하나 그분의 뜻에 이탈되는 게 하나 딱 올 때에는 탁 스톱 해 버립니다. 안 합니다.

‘아, 네가 이제까지 충성되이 복종했으니까 이거는 의례히 순종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왜 순종 안 하느냐?’ ‘이제까지는 당신이 나에게 명한 것은 우리 하나님의 법칙에 딱 들어 맞았기 때문에 내가 예 예로 복종했습니다. 복종한 것은 근본은 하나님께 복종이요 다만 당신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군으로 세워 가지고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신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 명령인 것을 알고 내가 그대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니까 충성을 다 했습니다. 있는 충성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명령하는 것은 그분의 뜻에 위반되기 때문에, 당신의 하나님에게 위반된 명령을 나한테 말하기 때문에 위반된 명령에 내가 복종하면 나도 같이 하나님께 역적되기 때문에 내가못 합니다’ 하는 그것이 다니엘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나 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걸 공부하는 것이오.

이래서, 믿는 것도 산 믿음이 있으니 산 믿음은 자존자, 주권자,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권하는 자, 이 모든 명철과 두뇌를 다 주관하는 자, 이분을 믿고 그 분을 믿으므로 그분이 이런 기관 저런 기관을 창조하셔 가지고서 당신의 이 모든 나열해 놓은 그 기관이 있는, 그분의 조직과 그분의 그 계통과 그분의 세포를 내가 인정하기 때문에 거게서 오는 법칙, 거게서 오는 진리, 거게서 오는 명령, 거게서 오는 생명, 거게서 오는 축복 그걸 내가 바라기 때문에, 거게 맞은 것은 다 믿고 거게 이탈된 것은 믿지 않는 그것이 산 믿음.

자기가 아무리 예수 믿는다고 해도 그분에게 이탈되는 그런, 그분에 대적이 되는, 그분에게 배치되는 그런 어떤 존재에게, 어떤 법칙에게, 어떤 제도에게, 제도를 자기는 믿고 순종하고, 믿어서 그것을 하나님과 끊고 최고의 근원으로 삼아 가지고서 이렇게 믿는 것은 다 죽은 믿음입니다. 요 믿음을 우리가 다 수정해서 해야 됩니다. 요게서 참된 인격이 나옵니다. 요게서 세상을 이기는 참된 연결이 나옵니다. 요게서 어떤 그 악정도 이기는 인격이 나옵니다. 이런 사람은 공산주의가 아무리 밀어도 요동치 않습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가 말해도 그 법에, 그 법칙에 맞으면 예 예로 복종합니다. 그분의 법칙에 맞지 안하면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를 더듬어 찾는 눈이 양심이요, 더듬어 찾는 눈이 양심이요. 양심으로 더듬어 찾아 가지고서 영감을 만나는 것이요, 영감 만나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는 전능의 행위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잘 수정합시다.

산 믿음, 죽은 믿음. 죽은 믿음은 하나님을 떼내 버리고 어떤 피조물이든지 믿는 거는 다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과 연결되어 그분을 근원으로 삼아 가지고 그분에게서 나에게 모든 것이 흘러 내려오고, 전달돼 나오는 요 사실을 믿는 것은 만물을 믿는 것도 좋고 모두 다 좋습니다. 내가 배고픈 데 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으면 내가 힘 얻을 것을 믿습니다. 이 밥은 나에게 힘 줄 걸 믿습니다. 그러나 이 밥은 하나님 떼내 버려도 이 밥만 하면 내게 힘 준다, 아닙니다. 안 됩니다. 그건 죽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밥을 주셔서 내가 먹게 하시니, 이 밥을 또 먹었다 할지라도 그분이 소화 잘 되게 해 주셔야 잘 된다. 또 소화가 잘 돼도 그분이 나에게 영양되게 해 주셔야 영양이 된다. 또 영양이 돼도 그분이 내 영양된 이 힘을 잘 쓰게 하셔야 잘 쓰지 잘 쓰게 안 해 주시면 이 힘 가지고서 죄만 짓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을 근거해 가지고 믿는 그것이 산 믿음이요, 거게서 하나님을 떼내 버리고 믿는 그 모든 믿음은 다 죽은 믿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을 믿을 수 있으나 하나님 떼내 버리고 믿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하나님을 거슬려서 나올 때에 그 믿는 믿음은 다 죽은 믿음이라. 사망하는 것이오. 모든 것을 믿되 하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을 근거해 가지고 믿고 하나님의 그 줄기에서 계통이 바로 되어 있는 그것을 믿고 삐뚤어졌을 때는 딱 배신해 버리는 것이 그것이 산 믿음으로 사는 것이오. 그때 배신할 때 죽지 안하고 사는 것이요, 그때 따라가면 죽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여러분들 그런 일이 얼마나 있지 않습니까? 눈이 어두우면 모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믿는, 하나님 믿는다 하면서 요 산 신앙을 가지지 안하고, 산 신앙 가지면 다니엘과같이, 하나님을 믿는데 갑자기 왕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아라’ 갑자기 느부갓네살 왕이 말하기를 ‘우상에게 절해라’ 산 믿음 같으면 `아, 이제까지 내가 당신에게 복종한 것은 나는 하나님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칙에 딱 맞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당신의 일군으로, 당신의 종으로 세워 가지고서 이와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의 명령이 하나님의 명령인 줄 알고 복종했지만 이거는 하나님의 명령 아니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절 할 수 없습니다.’ 딱 그럴 때에 거게서 살았습니다. 만일 그럴 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아이구, 그렇습니까? 그라면 절 하겠습니다.’ 했으면 하나님 배반했지,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의 보호 없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죽일라고서 그 모두 단체가 돼 가지고 그랬는데 하나님 배반했지,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 능력 없으니까 제 실력 다 떨어져 버렸지, 그 죽일라 하는 사람들이 공모해 가지고 나중에 안 죽이고 말겠습니까? 기어코 죽고 맙니다. 죽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기를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고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 자는 살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오늘 자기 목숨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주님 배반하고 죽은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얼마든지 두고 보지 않습니까? 그럴 때도 ‘아, 나는 하나님 법칙 어길 수 없습니다. 오늘 주일을 범할 수 없습니다. 우상에게 절할 수 없습니다.’ 했으면 살았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보여 주지, 신앙을 버렸을 때에 죽었지! 그런고로, 믿음도 산 믿음 죽은 믿음이 있습니다.

세째로는 소망하는 것, 소망도 산 소망 죽은 소망이 있습니다.

산 소망은 뭐이 산 소망인가?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은 그이의 법칙을 소망하는 것이요. 그이의 섭리와 역사를 소망하는 것이니, 그분을 소망해서 그분이 햇살 퍼지듯이 이래 쫙 내리 퍼져 가지고 있으니까 그분에 속한 것은 내가 다 그분의 법칙대로 소망하지마는 그분을 떠난 어떤 것은 그것은 다 정함이 없는 것들이요 생명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은 소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떼놓고 소망하는 것, ‘이것만 있으면 산다, 돈만 있으면 산다, 지식만 있으면 산다, 기술만 있으면 산다, 건강만 있으면 산다, 배경만 있으면 산다, 나라만 있으면 산다’ 어림도 없습니다. 안 됩니다.

산 소망은, 하나님 그분이 주권자시요, 창조주시요, 대주재시요. 크고 작은 것을 개별적으로 섭리하시고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계시니 그분이 해 줘야 된다, 그분을 바라고, 그분을 소망하고, 그분이 해 주면 천하가 반대해도 된다. 천하가 다 해 줘도 그분이 반대하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을 소망하고, 그분이 조직하고 그분이 나열하고 그분이 만들어 놓은 이 온 세상의 신불신자 이 모든 것은 다 그분이 창조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상대할 때에 내가 눈이 밝아 가지고 조물주 그분의 이치에, 그분의 주장에, 그분의 계획에, 그분이 선포해 놓은 계약에 딱 들어맞는, 계약에 맞추어서 소망하고, 법칙에 맞추어서 소망하고, 그것을 어기는 것은 내가 소망하지 안하고, 그러기에, 그 소망은 수수백천으로 발기돼서 거기서 산출돼서 거게서 배정해서 흘러 내려왔다 할지라도 그분 한 분을 믿는, 소망하는 그 소망에서 내가 소망하는 것은 그것은 산 소망이지마는 그것을 떼 버리고 그분 없어도 요거만으로서 나에게 뭘 줄 수 있다고 소망하는 것은 다 허망이요 죽은 소망입니다. 자기를 속였소. 그렇게 한 행동 하나도 살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정신 하나도 살아 있지 않습니다. 마음 하나도 살아 안 있습니다. 다 죽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소망도 죽은 소망 산 소망 둘이 있으니 이 산 소망을 우리가 금년에는 가져야 되겠습니다. 소망을 항상 조심해서 정선하십시오. 이 산 소망을 가진 자는 어떤 피조물에게 위협을 당하지 안해. 협박을 당하지 안해. 유혹을 당하지 안해. 왜? 그분과 그분의 섭리와 그분의 법칙과 그분의 이치 그대로만 오고 그분이 역사하시는 그대로 오는 고것만 믿기 때문에 거게는 실족해지지를 안해.

또 그다음으로는 우리는, 무엇을 자기가 의탁할라 합니다. 의탁, 맡기는 것.

의탁할라 합니다. 의탁도 산 맡김이 있고 죽은 맡김이 있습니다. 산 맡김이 있고 죽은 맡김이 있습니다. 맡길 때에 인간에게도 맡길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도 맡길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물질에게도 날 맡길 수 있습니다. 저녁으로 추운데 방문 떡 닫고 있으면 그 온실에다가 자기는 맡겨 놓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것 다 맡길 수 있습니다마는 하나님 한 분만이 나를 맡아 줄 수 있다 하는 이 사실을 믿고 하나님이 이런 걸 통해서, 나는 하나님께 맡겼는데, 하나님께 맡겼는데, 하나님께 책임을 지웠는데, 책임을 지웠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책임을 지웠는데 당신이 이것을 통해서 내게 책임을 이행하시고 저것을 통해서 책임 이행하시고, 책임 이행하는 것은, 내가 이런 면을 맡기고 저런 면을 맡겼는데 그 맡긴 각 면마다 하나님께서 이 면 맡긴 것을 이것을 통해서 책임을 져 주시고 저 면 맡긴 것은 저것을 통해서 책임을 져 주시고, 이거 좀 범위가 넓어서, 예를 들면 어린 아이가 의식주를 맡깁니다. 부모에게 맡기지 않습니까? 부모에게 맡기는데 이제 그 아이는 모릅니다. 신앙을 모를 때에는 그거는 모르니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야. 신앙 아는 사람이 부모에게 맡기니까 부모에게, ‘내 의식주를 책임져 주신다’ 좋습니다. `책임져 주신다’ 그러면 네가 어떤 면이라도, 부모가 책임져 주시는데, 그러면 부모가, 하나님께서 네 의식주를 책임 안 져 줘도 부모가 줄 수 있느냐? ‘아니, 하나님이 부모를 통해서 주는 그 의식주 내가 책임을,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그걸 거석하지 하나님이 안 해 줘도 해 준다는 그런 걸 나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네가 참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에게 맡기는가 누구한테 맡기는가 보자.’ 그러면, 그 아이에게, 만일 의식주라 했는데 음식에 제사밥이든지 예를 들면, 부정한 아주 부정한 하나님의 법에 위반된 식물이 왔습니다. 위반된 식물이 자기에게 나타났을 때에 그때에, 위반된 이 식물을, 내가 이분에게 의식주를 의탁해 맡겨 놨으니까, 맡겨 놨기 때문에 주니까, 주니까 먹습니다. 먹으면 하나님의 법에 위반되게 주는데, 위반된 걸 주는데 먹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의식주를 맡기지 안한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잘 먹다가 안 먹습니다. 왜 안 먹느냐? ‘아, 그것은 우상의 제물이기 때문에 나는 안 먹습니다.’ ‘아, 내가 네 의식주를 맡아 가지고 있지 않느냐?' 맡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이, 내 의식주를 나는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 가지고 의식주를 주는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죄되지 않게 주시지 죄되게 주는 것은 하나님이 주는 게 아니라 당신이 주는 것이지 하나님이 주는 거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거 안 먹습니다.’ 요렇게 딱 거절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든, 자기가 생명도 맡깁니다. 생명도 ‘자, 네 생명은 내게 있다. 내가 널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줄로 알지 못하느냐? 다니엘아, 그러니까, 네가 너거 하나님께 기도 안 한다 하면 내가 살려 줄 것이고 지금이라도, 또 만일 너거 하나님께 계속 기도한다 하면은 나는 살려 주지 못한다. 그러니까, 네 생명을 어떻게 할 거냐? 네 생명을 나한테 맡길래 하나님께 맡길래?’ ‘당신한테 맡길라 하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야 당신한테 맡길 수 있겠고 하나님에게 맡길라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되겠고, 당신에게 맡길라면 나는 하나님께 기도 안 해야 되겠고, 하나님께 맡길라면 당신에게 거슬려도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되겠고’ 다니엘은 자기 생명을 누구에게 맡겼습니까? 하나님께 맡겼어.

하나님에게 맡긴 표가 뭐인데? 사자 구덩이에 집어 넣어도 그는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죽이는 것도 당신 살리는 것도 당신이기 때문에 생사는 당신에게 맡겨 놨기 때문에 사자가 날 죽이고 살지리 못한다, 왕이 죽이고 살리지 못한다.

그라면서 그는 하나님께 맡긴 것을 표시했을 때게 그로써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우리는 크고 작으나 모든 게 오늘 다 이렇습니다. 맡기는 것도 산 맡김이 있고 죽은 맡김이 있습니다.

자기가 바다 가운데 가서 어떻게 파선이 돼 가지고 바다 가운데 떨어져도 거게도 산 믿음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다물에 파선이 돼서 빠졌으니까, 빠졌으니까 ‘아, 이제 나는 빠졌으니까 이거는 뭐 의례히 죽는 것이다’ 이 인간 통계가 다 죽는 것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죽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에게 생사를 맡겼기 때문에 절대로, 바다 가운데 일 년 머무르고 있어도 죽는 거 아니다. 바다물은 날 죽이지 못한다 하나님이 바다물을 통해서 날 죽게 하시면 죽고, 하나님이 날 바다물을 통해서 죽게 하시지 안하고 여기 바다물에서 살게 하시면 산다. 비유컨대 일 년을 바다물 속에 빠져서 있었습니다.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바다물을 통해서 죽이게 하시면 죽었지, 바다물을 통해서 죽이지 안하시면 일 년 속에 있어도 썩지 안하고 가만히 있을 것이오. 일 년 후에 솟아나서 살아 나올 것이오. 요렇게 믿어야 됩니다.

우리는 생사나 의식주나 모든 것을, 자존자, 주재자, 주권자, 창조주, 전지 전능자 그분이 내 생사 화복을 이것을 당신에게 맡긴 사람은, 당신에게 맡긴 사람은 다른 것에게 맡기지 안해야 됩니다. 당신에게 맡긴 사람은 당신의 법을 위반되게 어떤 것이 와도 그것을 내가 받지를 안합니다. 당신의 법칙에 맞게 오는 것은 당신이 나를 책임지고 해 주시는 것인 줄 알고, 당신이 주는 줄 알고 달게 받습니다. 또 당신에게 맡겼는데 당신의 법을 위반되게 어떤 세력이 와도 ‘내가 당신에게 맡겼기 때문에 어떤 것이 와서 나를 해친다 해도 해하지 못한다. 불 속에 넣어도 해하지 못한다. 사자 구덩이에 넣어도 해하지 못한다. 공산주의 속에 넣어도 해하지 못한다.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 안 하면 막 죽인다고 해도, 왜정 말년에 일본 나라 세력이 강하게 그래 해도 해하지 못한다. 너거는 해하지 못해. 해할 권리 없어.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거를 통해서라도 나를 죽일라면 죽이고 살릴라면 살리고, 하나님이 하셔야 되지 하나님 떨어지고 너거 단독이 주권적으로 아무것도 못해.’ 요걸 믿는 믿음이 믿음입니다. 이 사람들이 세상을 이겼습니다. 이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맡기는 것도 산 맡김 죽은 맡김.

또, 의지도 그러합니다. 의지도 산 의지 죽은 의지 있습니다. 하나님 그분만을 의지하는 것이 산 의지요. 하나님 그분만을 의지하는 것이 어떤 것이 의지하는 것인가? 하나님 그분만을 의지하는 것은 그분이, 보이지 안하신 그분이 당신이 선포해 놓은 계약이 있으니 계약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 의지하는 것이라. 하나님 법칙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 의지하는 것이오.

내가 이 현재 당했는데 하나님의 법은, 보십시오. 하나님의 법을 예를 들면 하나님의 법은 요라라 하고 세상 법은 요라라 할 때에 이거 갈래길입니다.

갈래길인데 하나님 의지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사람입니까? 그 사람에게 표가 납니다. 그 현실에서 표가 납니다. 하나님은 요래라 하고 세상은 온 전 통계는 이래라 하고 두 갈래길인데 이 사람이 만일 왼쪽으로 세상이 말한 대로 요래라 하면 그 사람은 뭘 의지하는 사람입니까? 세상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생각이 요래야 되겠다 싶어서 하는 사람은 뭐 의지한 사람입니까? 자기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에 영감에 요래라 할 때에 온 천하가 다 말해도, 그리 하면 너는 죽고 망한다 해도 고 법칙대로, 고 영감대로 신앙 양심대로 요대로 하는 사람 그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요렇게 우리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되는데, 다만 하나님께서 당신이 기관으로 이렇게 모든 것을 시설해 가지고서 당신 의지하는 자를 어떻게 당신이 책임지시는가? 책임지시기 위해서 온갖 시설들을 다 나열해 놓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시설에, 시설이면 내가 의지하고 그분의 시설에 틀리면 나는 반대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 의지하는 것이라 말이오. 의지하는 것도.

또 다음으로는 복종하는 것. 복종하는 것도 산 복종 죽은 복종이 있습니다. 산 복종 죽은 복종이 있습니다. 산 복종은 뭐이 산 복종인가? 완전자 자존자 주권자 대주재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그분에게만 순종하는 것이 산 순종입니다.

그분에게만 순종하는 것. 그 외에 딴것에게 순종하는 것은 다 죽은 순종이요, 다 멸망하고 마는 것이라. 그거 죽은 순종이라.

그러면, 산 순종은 어떤 것이 산 순종인가? 그분이 당신이 모든 것을 당신의 나라를 시설해 놓은, 이 세상, 당신의 세상인데 이래 시설해 놓고 당신이 이렇게 이것을 통해서 이래 명령하고 저것을 통해서 저래 명령하는데, 그 당신의 명령 지도 인도 그것은 우리가 뭘로 알 거요? 신구약 성경 법칙이 있어. 있으니까, 그분의 법에, 그분의 제도에, 그분의 영감에 순종하는 것은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이오. 그것을 어겨서 순종하는 것은 상관에게 순종하든지, 사장에게 순종하든지, 부모에게 순종하든지 수상에게 순종하든지, 수하에게 순종하든지, 가족에게 순종하든지, 애인에게 순종하든지. 돈에 순종하든지 뭣 순종하든지 그분, 그분의 법을 어겨서 순종하는 것은 전부 사망 순종이기 때문에 이거는 멸망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종도 산 순종이 있고 죽은 순종이 있으니까 산 순종을 우리는 가려서 금년에 해야 되겠습니다. 이래야 우리에게 기적과 축복이 나옵니다. 믿는 사람은 기적과 축복으로 삽니다. 예수를 믿어도 모두 거짓부리 예수를 믿기 때문에 기적과 축복을 못 받으니까, 말씀하시기를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데 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그건 비유인데, 소금의 맛이라 하는 것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를 가리켜서 맛이라고 말한 것인데, 고대로 살면, 고대로 살면 쓸모 있어 점점 위로 영접하고 사람에게 존대받고,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대속의 피도 버리지 영감도 버리지 진리도 버리지 이래 사니까 소금이 맛 잃은 것이라. 그러니까 쓸데 없지 쓸모 없지 점점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지지. 스무 살 먹었을 때는 팔팔한 게 쓸모 있더니마는 서른 살 먹으니 쓸모 없어, 오십 살 먹으니 쓸모 없어, 육십 살 먹으니 쓸모 없어, ‘나는 나이가 칠십이라도 정년 퇴직 커녕, 정년 퇴직도 아직 안 하고 칠십이라도 지금 막 일등으로 이라는데?’ 너도 쓸모 없어. 그런 데 순종하면 쓸모 없어. 왜? 마지막에 그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정죄받아 가지고 다헛일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종도 산 순종을 가립시다. 우리는 뭐 아이한테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어른한테 순종할 수 있습니다. 부모한테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도 순종하고 친구에게도 순종하고 선생님에게도 순종하고 다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 순종해야 돼. 아버지 어머니의 명령은 얼마나 지켜야 되겠습니까? 그렇지마는 아버지 어머니가 하나님의 법에 위반된 명령을 할 때에는 그것은 내가 거게 순종하면 나도 하나님에게 역적노릇하지, 아버지도, 아버지 어머니도 하나님에게 역적노릇 했지, 이러니까, 나 망하고 아버지 망하고 다 망해, 내가 순종하지 안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순종 안 한다고 매를 때려. 매를 때려도 ‘나는 이거 하나님의 법에 위반 되게 순종 못 합니다’ 이라면 저는 살지. 그러면 저로 통해서, ‘저놈이 죽어도 저렇게도 순종 안 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긴다고 순종 안 하니, 이놈아,보자. 하나님의 법이 어데 있노?’ 성경 찾아 보이면서 요렇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놈이 저렇게 매를 맞아도 그거는 순종 안 하고 똑 저렇게 하니 저게 저래 볼 게 아니라 저거 뭐 있어. 저놈이 저렇게, 그러면, 이놈아 그래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라면 하나님이 너 도와 줄 줄 아느냐?’ ‘아, 도와 주시기를요’ ‘이놈, 보자' 나중에 보면 자기보다 쑥 올라가 버려. 쑥 올라가, 이래서야 비로소 알아. 순종도 산 순종 합시다.

계속도 옳은 것을 계속해야 되지 더러운 것 계속하면 됩니까? 계속도 산 계속 있고 죽은 계속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딱 들어맞은 계속은 죽어도 계속하십시오.

하나님에게 위반된 거는 계속하지 말아요.

이러기 때문에, 지식도 산 지식, 믿음도 산 믿음, 소망도 산 소망, 맡기는 것도 산 맡김, 의지도 산 의지, 복종도 산 복종, 계속도 산 계속 이러면, 요걸 하면 금년 내에 서부교회는 막 한국 교회 위에 나섭니다! 올라갑니다! 절대로 틀림없습니다! 믿는 사람이 없어!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믿는 사람이 도무지 없어.

이제 금년에는 우리가 믿는 사람이 됩시다. 이러면 학생은 학생으로서 학생의 머리가 될 것이고, 사회인은 사회인의 머리가 될 것이고, 정치가는 정치가로서 머리가 될 것이고, 사업가는 사업가로서 머리가 될 것이고, 성경에 말해 놨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안하리라 했어.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안하리라고 했어.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오늘날 네게 명한다는 그 말씀은 신구약 성경 말씀에 순종한다는 말이 아니오. 신구약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필요한 참고서와 같은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현실에 자기가 양심 생활할 때에 성신의 감화가 요렇다 하는,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시는 고대로 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 하나님이 거짓말하는 하나님입니까? 신명기 28장 1절에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거짓말하는 하나님입니까? 이걸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영생을 믿을 겁니까? 어떻게 천국을 믿을 겁니까? 믿지 못한다면, 뭐 하러 교회 나옵니까, 이걸 믿지 못한다면? 이까짓 거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 그까짓 거야 쉽지 않겠소? 영생보다는 쉽지,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이 모두 다 네것이 된다 이것보다는 세계 점령하는 게 쉽지 안해요? 이 큰 것을 말씀했는데 이 조그만한 것도,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는 이것도 믿지 못하면 어떻게 믿을 것입니까? 북해에 해적질 해 먹던 그 영국인이 전도 받은지 칠십 년 만에 세계의 제일 인류의 부국이 되고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거게서 청교도들이 쫓겨 나와 가지고서 그게 나가서 저 그저 아무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미국 간 지가, 미국 발견 해 가지고 한 지가 얼마 안 됐어. 삼백 년 조금 넘었어. 세계에 이렇게 됐지마는 이 물질 문화가 되는 통에 미혹받아 가지고 신앙이 떨어져. 신앙 떨어지니까 또 말씀대로 떨어져 내려오고 있어. 일본 나라가 우리 나라보다 삼십 육 년 복음을 앞에 받았습니다. 똑똑히 알라면 삼십 육 년 복음을 앞에 받았어. 명치 천황 때 복음 받았어. 삼십 육 년 복음을 앞에 받아 가지고 그 사람들은 우리 나라를 삼십 육 년 통치했습니다. 다른 거 아니오. 복음받아 가지고 그래 했어. 그로써 그 구미에 있는 문화를 끌어 들였고 그 문화를 받아 들이고 거기 있는 신무기를 거석해 가지고서 우리 나라를 점령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절대로 수치당하지 않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믿어 보십시오, 말대로 되는가 안 되는가. 올해는 시행해 봐요. 날마다 기적과 표적을 봐요. 오늘은 기적은 뭣 봤다, 축복은 뭣 봤다, 매일 기적과 축복을 받으십시오. 왜 못 받습니까? 매일 받읍시다. 매일, 믿음 지킬 때는 절대로 기적과 축복은 매일 있습니다. 없는 날은 없습니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너무도 어지럽고 복잡하고 사이비한 것으로 악령이 장식하고 별별 형형 색색의 문체로서 이루어 놓았기 때문에 참으로 주님의 인도가 아니면 생명 길을 걸어갈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저희 때가 얼마 남지 않았는 고로 있는 힘을 다 하여서 인간을 백방으로 유혹시킬라고 이렇게 저렇게 하여 사람의 눈들은 다 세상으로 인해서 어두워져서 참을 찾지 못하고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죽음도 있건마는 죽음을 잊어 버리고 날마다 살기 위해서만 도모하는 저희들이 아닙니까? 이렇게 어두운 세상에 산 것과 죽은 것이 꼭 같이 있는데, 죽은 것을 버려야 산 것을 취할 수 있고 산 것을 버릴 때는 즉시 죽은 것이 되는 이 비밀을 오늘도 말씀해 주셨사옴을 감사합니다.

이제도, 산 지식, 산 믿음, 산 소망, 산 맡김, 산 의지, 산 순종, 산 계속으로 하는 복 있는 저희들이 됨으로 주님의 기적과 축복으로 모든 것을 성공할 이 방편을 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산 믿음을 지킬 때에는 먼저 주님이 사람을 점점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마귀가 쓰기에 편리하게 좋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의인을 만드시고 따라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는데, 오늘 저희들이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을 가루고 영광을 가루고 예수 믿어야 소용 없다고 하여 이 모든 거짓, 모든 우상 종교, 모든 사이비한 거짓 종교들이 다 사람들을 휩쓸고 있는 오늘입니다. 불쌍히 여기셔서, 먼저 저희들이 참된 신앙을 가짐으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저희들에게 현저히 나타남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다니엘처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증거해야 될 터인데 저희들이 너무도 불신으로 살았습니다. 이 죄를 용서하시고 금년부터는 참된 신앙으로 살아 날마다 주의 기적과 축복으로 점점 세상 빛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많은 형제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였사오니 주님의 것입니다. 영원히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나래 안에 품어 주시고, 저들의 크고 작은 모든 호소를 들어 주시고, 의논하여서 바로 지도해 주시고, 어려운 것들을 다 거기서 면제해 주시고, 모든 시험을 다 건너 뛸수 있게 하여 주시고, 이리 하여서 염려 없는 든든한 안심하는 든든한 생애에서 주님의 보호를 입고 나아가는 저희들 되게 하시고, 말세에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는 그 모든 것이 불탈 때라도 주님의 은혜로써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 줌을 받을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주님의 종들에게도 주님의 피의 사랑이 점점 그의 속에서 뜨겁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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