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의 세가지 성패의 길


선지자선교회 1985년 5월 1일 밤 

 

본문 : 창세기 13장 7절∼16절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이 말씀은 지난 주일떼도 유치반과 중간반 일 이 부를 공과로 삼아서  가르쳤습니다. 또 다음 주일도 이 말씀을 공과로 해서 가르칠 것입니다.

 여기 공과의 내용은 세 가지 대지로 되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그  차제 성공과. 또 많은 사람들을 얻어서 사람 부자가 되는 이 성공과. 또 많은  소유를 얻어서 소유에 성공하는 이 세 가지 성공하는 그 길을 여기에  보였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에 있었던 그 한 토막을 우리에게 기록해서 역사를  소개해 주는 것 아닙니다. 이 사실은 우리의 구원의 도리,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신 구원의 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 가지 성공을  하느냐 실패를 하느냐 하는 그 길을 가르친 것입니다.

 아브람은 믿는 사람의 조상이요, 잘 믿는 사람의 조상이요, 또 롯은 잘 못 믿어  망하는 사람의 조상입니다. 이래서 아브람과 롯이 그 신앙으로 구약과 신약에  있는 모든 신자들의 한 표본입니다. 표본. 표본으로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런 일은 하나의 역사로 지나가고 마는 게 아니고 우리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하는 표본이니 망하고 흥하는 것을 측량하는 측량이요. 또  재는 잣대요, 또 다는 저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을 예사로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본인이 부인을 하든지 안 하든지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이  두 길 중에 한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길 중에 어느 길이든지 아브람의  그 길을 걸어가든지 롯의 길을 걸어가든지 두 길 중에 한 길을 가는 것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기독자들인 것입니다.

 망하고 실패하는 그것이 뭐 간단합니다. 그렇게 복잡하지도 안 하고 그만  간단해서 성경을 별로이 모르는 사람이라도 다 알 수 있을 만침 간단 명료한  그런 법칙입니다. 그러면 그 법칙이 무슨 법칙인가?  아브람과 롯이 이러한 현실을 만난 그것은 우연히 그 현실이 닥쳐진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런 현실을  만드셨습니다. 그 현실에서 아브람의 취한 그 길이 있고. 롯이 취한 길이  있습니다. 여러번 들었기 때문에 다 아실 터이니까 뜻만 따서 말합니다.

 그러면, 아브람의 걸은 길은 어떤 길을 걸었는가? 그 닥친 현실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닥친 현실이 우연히 온 현실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만들어서 요 길 안 가면 저 길 가고 저 길 안  가면 요 길 가고 두 길 밖에는 갈 수 없는데, 자기가 자유로 이 길을 갈라면  아브람의 길을 갈려면 아브람의 길을 갈 수가 있고 롯의 길을 갈려면 롯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그렇게 되어 있는 현실로 하나님이 딱 현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현실은 참 난처한 현실입니다. 아주 어려운 현실입니다. 어려운 현실이라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좋게 할라고 하면 자기가 낭파가  되고 또 자기가 낭파되지 안할라고 하면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야 되겠고 뭐  간단합니다. 요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을 위하는  그 길을 택할라고 하면은 자가는 절단이 나는 것이고, 또 자기가 절단 안 날라고  하면 하나님은 섭섭하게 배반을 해야 되는 길이고 그렇게 하나님이 그 길을 딱  만들어 놨습니다.

 만들어 놨는데 그 아브람은 하나님을 위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그 길을 택할라고 하니까 아브람의 그 일은 뭐  절단입니다. 아브람의 일은 그만 다 절단나는 겁니다. 이러니까 롯이 이 현실을  만나 가지고 신강하다가 롯도 하나님을 위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아닙니다.

그도 의인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싶었지마는 하나님을 위할라고 하면  자기가 어마 어마의 그 낭파가 되는 거 아니라 아주 그만 절단나 버리기 때문에  자, 하나님 위할라면 자기가 절단 나고 자기가 절단 안 날라고 하면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하나님을 배반해야 되겠고 둘 중에 하라 했습니다. 오늘도 이겁니다.

뭐 어려운 것 아니오, 아주 쉽습니다.

 아브람은 내가 이런 모 저런 모 모든 것이 낭파가 되고, 그러니까 자기 업도  낭파 자기 가정도 낭파, 자기 사정도 낭파, 자기 출세도 낭파. 자기의 성공도 낭파  뭐 자기에게 대한 것은 전부 절단납니다. 전부 절단나고 그래야 하나님을 위하고  기쁘시게 할 수 있고. 또 자기가 그런 낭파 안 당 할라고 하면 자기가 낭파 안  당하고 실패 안 당하고 뭐 사업이나 자기 모든 성공이나 출세나 그런 것이 낭파  안 당하도록 할라고 하면은 하나님을 배반 할 수밖에 없는 그 길에 딱  놓였습니다. 우리도 이 길을 현실이라 하는 것은 이 길을 닥치는 것입니다. 쉽게  여길 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위할라고 하면은 내 일이 낭파가 되고. 내가 낭파  안 당할라고 하면은 하나님 배반해야 되고 뭐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 다  이런 길을 닥치고 있으니까 아브람은 내가 낭파가 되고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 배반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을 섭섭하게 내가 배반 할 수는 없다,  내일 뭐 이런 것 저런 것 무슨 조건 무슨 어떤 일들이 낭파가 돼도 나 낭파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 섭섭하게 배반 할 수는 없다 요것을 딱 결정한 것이  아브람입니다. 그 일이 쉽지 않습니다.

 롯도 이렇게 할라고 했지마는 없는 하나님 위할라고 하면은 자기고 자기 업이고  자기 공부고 자기 사업이고 자기의 취직이고 자기 출세고 자기 성공이고  말하자면 자기 일 전부 낭파입니다. 처녀라면 시집갈 것. 총각이라면 장가갈 것,  또 앞으로 출세할 것, 성공 뭐 자기 직업, 직장 말할 것 없이 그만 자기는 왕창  무너져서 그만 낭파입니다. 하나님 생각할라 하면 자기 일 낭파돼 버리고 자기  낭파 안 되도록 할라 하면은 부득이 하나님을 배반해야 되고. 그러면 요겁니다.

 요 두 갈래길에서 아브람은 내가 낭파당하든지 내가 죽어도 하나님은 배반 할  수 없다.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하나님 섭섭하게 할 수는 없다. 또 하나님이 모든  걸 없는 가운데 창조하시고 모든 걸 주권하고 계시고 대주재신데 그분 기쁘시게  하면 세상이 날 어떻게 하겠느냐. 아무리 내 보기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낭파되는  길을 내가 취하고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낭파시켜도 나는 이 길을  취해야 되지마는 하나님은 나를 낭파시키지 않을 것이다 하는 것을 또 믿습니다.

 롯은 그런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할 수 없다 하나님 위해서 기쁘시게 할라 하면  내 모든 면이 낭파가 되니 어찌할 수 없다 하면은 참 기가 차지마는 부득이  하나님을 섭섭하게 배반해 버리고 하나님의 윤리도 도덕도 신앙도 위주도  기쁘시게 하는 것도 영화롭게 하는 것도 다 눈 찔끔 감고 버리고 자기 낭파 안  당할 고 길을 택한 것이 롯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현실에서 아브람의 길을 걷든지 롯의 길을 걷든자 반드시  걷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온 가족들과 모든 사람들의 여론에 따르면 사람들의 그 모든  주장하는 그 주장을 따르면 하나님의 주장을 버려야 되겠고 하나님의 주장을  따를려면 사람 주장들 버려야 되겠고, 자, 하나님 주장을 따를려면은 가족 주장도  버려야 되겠고 사회 주장도 버려야 되겠고 국가 주장도 버려야 되겠고 모든  전인류 주장도 버려야 되겠고. 평소에는 안 그렇습니다. 안 그렇지마는 하나님이  요렇게 외통목으로 딱 만들어 놨다 그 말이오. 인간 주장이나 인간 여론이나  인간의 모든 제도나 법도나 모든 이런 것을 안버리고 지킬라고 하면 하나님의  주장과 법도는 버려야 되겠고 이거냐 저거냐 이 둘 중에 하나입니다.

 이랬을 때에 아브람은 내 의견이나 내 가족의 주장이나 우리 동리 사람들의  주장이나 학교 주장이나 사회 주장이나 국가 주장이나 세계 주장이나 어떤  주장이라도 이 주장도 좋고 순종해야 되지마는 이 주장을 순종할라 하면은  하나님의 주장을 버려야 되고 하나님의 주장 순종할라 하면은 이 주장을 버려야  되는 데는 할 수 없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주장을 버리면 그들에게 어떤 형을  당하고 어떻게 내가 외로워지고 어떤 처단을 당해도 내가 하나님의 주장을  버리고 인간 주장을 따를 수는 없다. 이래서 아브람을 참 자기는 죽음을 머금고  죽었으면 죽었고 뭐 세상에서 어찌 되었으면 되었지 하나님 주장을 버릴 수는  없다 요 길을 택했고 롯은. 안 되겠다. 하나님 주장 따를라 하면은 이 모든 것이  이것도 저것도 저부 모든 사람과 대립이 되겠고 모든 마찰이 돼서 상관과도  마찰이 되고 부하와도 마찰이 되고 친구와도 마찰되고 동역자와도 마찰되고  동업자와도 마찰되고 학교 선생들과도 마찰되고 뭐 형제간에도 마찰되고 전부  마찰이 다 되고 하나님 뜻 맞출라 하면 다 마찰되고 안 되니 이거 어짤 수 없다.

주여 어쩔 수 없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하고서 인간들의 주장을 딿고 하나님  주장을 어찌 할 수 없어 버린 것이 롯의 걸음입니다. 이거야 뭐 예수 믿기  쉽습니다. 몰라서 못 믿는 것 아니고 이겁니다.

 또, 하나는, 보이는 이 요단 들은 물 좋고 초원 좋고 평지고 또 아주 도시가  가깝고 이래서 목축하기에는 참 아주 좋은 곳이나 정반대로 가나안은 물도 없지  풀도 없지 발간 자산이지, 발간 자산이라. 풀이 있어야지, 발간 자산이라.

이러니까 이 발간 자산을 차지하고 좋은 땅을 아브람에게 주면 하나님이 네가  옳게 한다. 하나님이 칭찬 할 것이고, 또 사람의 도리도 맞는 것이고 이렇지마는  그라는 날이면 저거 가정은 다 절단 나버리기 때문에 가족들은 자꾸 부르짖지  이라니까 할 수 없어서 소돔들을 택했고  아브람은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마. 너 어느 것이든지  좋은 대로 택해라. 네가 택하고 나머지기 내가 하마.' 그것은 아브람이 그라면  좋은 것 이거 너 해라 하지와 뭘 그래 엉큼하게 그래 말이냐? 엉큼한 거 아니오.

만일 아브람이 이 요단들을 택해라 했으면 그 뒤에 롯이 바짝 망해 버렸는데,  망할 때 가면은 '아이구 우리 삼촌이 이것 택하면 망할 줄 알고 나한테 여기 하라  했구만' 이렇게 할 터이니까 그걸 못 한다 그 말이오. 그래서 '네가 좋은 데를  택해라. 네가 하고 나머지기 나는 택하겠다.' 이렇게 해서 사람의 소유의  넉넉해지는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에 있는 것이지, 뭐 인인  관계의 조건이 좋다, 또 형편이 좋다, 배경이 좋다 그까짓 것 아무 소용없다. 배경  좋아도 소용없고 무슨 조건 좋아도 소용없고 시기가 좋아도 소용없고 아무  소용없다. 다만 소유의 성공도 하나님 한 분에게 있다. 인간의 비위 맞춰  가지고서 아무리 그 인간을 잃지 안하고 인간의 비위 맞춰서 인간을 얻을라고  해도 하나님이 원수가 되게 하면 부모고 자녀들도 다 원수가 다 나눠 버리고  만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도 하나님이 사람을 붙여 줘야 되지 붙여 주지 안하면  소용없다. 이래 판단해 가지고서 아브람은 자기보다 하나님 인간의 모든 공론보다  하나님의 뜻, 눈에 보이는 모든 좋은 형편보다 하나님의 축복 이것을 택해서 그  가나안의 붉은 자산을 차지하고, 롯은 번들번들한 요단들로 옮겨갔습니다.

 옮겨가고 나니까 즉시 여호와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아브람아 네가 큰  집인데 좋은 것을 너거 작은 집 조카에게 주고 너는 이 아무것도 없는 이 메마른  자산 가나안을 택했느냐. 너거가 큰 집이니까 좋은 것을 먼저 차지하는 것이  당연치 않느냐?' 이래도 아브람은 '네, 그저 당신 한 분이면 나쁜 땅도 좋아지고,  홀로 외로운 데도 모든 인류를 다 차지할 수 있고. 아무리 조건이 나빠도 다 인간  성공을 할수 있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이러기 때문에 당신 한 분이 전부의  전부가 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섭섭하게 하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뜻을 어기고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없습니다. 당신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이라니까 하나님께서 '그래. 그러면 내가 모든 것보다 낫다 말이냐? 예  낫습니다.' '그러면 나는 네 하나님이 돼야 될세' 그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셔 가지고서 아브람에게 축복을 하셨습니다. 소돔왕으로 더불어 시비가  있을 때에 아브람의 그 행동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모든 일을 처리했을 때에  하나님이 기뻐서 소돔왕 떠나고 나니까 당장 하나님이 찾아왔습니다. '아브람아,  너는 이렇게 모든 것 양보 양보하고서 나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나만 위주로  하고서 나만 생각하고 이와 같이 하니까 네 보기에는 당장 낭파가 많지?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원수를 막는 방패와 지극히 큰 상급이 되게 해.

주겠다.' 말씀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아브람은 그 축복 받은 것은 인류  중에는 제일 큰 축복 받은 것이 아브람입니다. 인류 중에는 뭐 제일 축복  받았습니다. 예수님 다음으로는 제일 큰 축복 받았어. 예수님은 자연인이  아닙니다. 엘리야보다도 그 아벨보다도 누구보다도 아브람이 제일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축복은 영원히 계속 됐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것을  기억합시다.

 옛날은 그 분봉왕이라고 있습니다. 분봉왕. 큰 대왕이 있고 대왕이 있으면은 그  대왕이 그 나라에 속한 조그만한 소국들이 있습니다. 소국. 그 전에 우리 이  한국이라는 반도 강산은, 저 옛날 저 대국에 만주에 있는 그 대국에 속해 가지고  있어 그는 대국이고 우리는 거기에 속한 한 소국입니다. 이랬는데 그때는 큰  나라에서 조그만한 나라에 왕을 파송합니다. 분봉왕이라 해 가지고서 왕을 파송을  합니다. 이 사람이 자기가 그 왕이 아는지도 모르는지도 모르고 그 왕을 위하는  그 충렬의 마음을 가지고서 이렇게 지내다 보니까 그 사회에서 정구지 밭도  씻기고 또 논따랭이도 씻기고 오만 것 다 뺏기고, 또 집도 팔아먹고 뭐 아주  조그만한 집 가지고 있고 이래 아주 신세가 가련했지마는 대왕이 떡 와 가지고  그 사람을 이 나라는 내가 너희에게 주니까 네가 이 나라에 분봉왕을 해라.

분봉왕을 해라. 분봉왕을 만들어 준다면 그 나라의 것이 전부 다 그 사람의 것이  돼 버리고 맙니다. 지저분한 것 그런 것을 많이 차지한 것보다 그 모든 것을  주권하고 있는 그 대왕을 사귀어서 대왕이 자기를 돌봐 주니까 모든 것이 다  해결입니다.

 이런 걸로 비유는 잘 안 되지마는.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걸  없는 가운데서 만드셨고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인간 눈도 주님이 만드셨고 귀도  주님이 만드셨고 코도 주님이 만드셨고 입도 주님이 만드셨고 이 두뇌도 주님이  만드셨고 모든 체격도 다 주님이 만드셨고 우주 모든 만물을 다 주님이  만드셨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저렇게 어떤 손해를 볼지라도 주님 한 분이 제  주님이 됐다고 하면 그만 다입니다. 아, 코를 만든 그분이 내 코를 가장 좋은 코  만들어 주셨고, 눈 만드신 그분이 내 눈을 제일 좋게 만들어 줬고, 귀 만드신  그분이 내 귀를 제일 좋게 만들어 주셨고, 내 두뇌를 만드신 그분이 내 두뇌를  좋게 만들어 주셨고, 그 분이 우주를 다 만든 당신이 나에게 주시면 내 것 됐지  뭐 누가 항의하겠습니까? 이 아브람은 지저분한 그런 것 때문에 하나님 팔지  안했고 지저분한 그런 걸 손해를 볼 때에 롯은 가슴이 도곤도곤해서 그거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 배반했지마는 아브람은 지저분한 그런 것 어떤  손해가도 하나님만 내 하나님 삼아 놓으면은 문제없다 하는 요것을 딱 믿었기  때문에 아브람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 삼았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제 하나님  되고 보니까 하나님의 모든 것이 아브람의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있는 소유는 전부 아브람의 소유입니다. 이래서 나사로도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서  아브람의 품에 있다 이랬습니다. 다 아브람의 자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쉽습니다. 뭐이냐? 돈이냐, 사업이냐, 직장이냐 지위냐, 뭐  조그만한 지저분한 권세냐. 기술이냐. 지식이냐, 뭐이냐? 그것 때문에 하나님  팔아서 배반을 해서 하나님 뺏기고 그런 것 지저분하이 찾아 봤자 하나님이  나중에 그거 다 없애 버리니까 롯같이 비참한 신세된 자가 없었습니다. 이러나  아브람은 그 지저분한 그런 것 손해가 다 가도 하나님 한 분만 내 하나님 삼으면  된다 하고서 하나님 한 분 아브람의 하나님 삼고 보니까 아브람은 천상 천하에  제일 그 공자라. 여러분들 우리가 이걸 믿읍시다. 이거 믿어야 됩니다. 아십시오.

내 현실에서 내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지저분한 이걸 차지하느냐, 이거 차지할라면  하나님 배반해야 되고 하나님 차지할라면은 이 지저분한 거 손해 봐야 되고  지저분한 것을 손해 보고 하나님을 차지할래, 지저분한 것을 차지하고 하나님을  배반할래 이겁니다. 지저분한 것, 티끌 같은 것. 고드름 고름 딱지 같은 것 부스럼  딱지 같은 것. 지저분한 것 뭐 좋다고 해도 아. 나는 이 지방에서 이런데. 뭐  어데서 이런데 할 것 없이 지저분한 것 그것을 아껴서 그거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 배반할래, 하나님 내 하나님으로 삼기 위해서 지저분한 그런 것을  내가 손해를 볼래, 어느 거 할래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어느 거든지 자유로  하십시오. 이것으로서 기독자는 망하고 흥하고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으로 표본으로 보인 것인데, 아브람은 이 길 걸어서, 천상 천하에  피조물로서 예수님이 제일 인성으로서는 행복스러웠고 그 다음은 아브람입니다.

요 주장 요 사상을 가지고서 살아 나가서 그래 됐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요 주장 요 사상을 가지고 살아 나가면 요렇게 됩니다.

 그러나 롯은 땅에 보이는 현실의 지저분한 그것이 아깝고 그게 탐이 나서 그게  아까워서 하나님 배반하고 그거 취했습니다. 취한 그 결과가 롯이 어떻게  됐습니까? 아내 망쳤지, 딸 둘이 있는 것 망쳤지, 자기 망했지 사람 하나도  없으니까 사람 하나도 없이 다 망해서 제 사람 하나도 없지 제가 살던 성까지 다  불에 타 가지고서 그 사해라는 무서운 저주받은 바다가 돼 버리고 말았지, 뭐  있던 땅까지 다 절단 나고 말았습니다.

 그저 이거니까 뭐 쉽습니다. 어느 것 차지할래? 땅에 지저분한 것 이거 얻기  위해서 하나님 버릴래. 하나님을 내 하나님 삼기 위해서 네 보기는 좋지마는 실상  그까짓 것 지저분하고 가치가 그리 없는 것이다. 별로이 가치 없는 것이다. 뭐  가치가 있어 봤자 우리로 말하면 이 지구 땅 덩어리 중에 한국이라는 이 쪼갱이  속에 든 것 밖에 더 됩니까? 이 지구라는 이 지구 있으니까 우주에도 지구 땅  덩어리 이런 것은 억억억억억만 개도 더 됩니다. 그것이 다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거 다 우리 것 된다 했소.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 된다 이렇게 말씀했어. 믿으면 됩니다.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이 없습니다. 뭐이냐? 내 현실에서 하나님 차지할대. 뭐 차지할래? 하나님  차지든지 이런 것들 차지든지 둘 중에 하나지 둘 다 차지는 못 한다. 어느  것이냐? 요것이 영원히 망하고 죽고 흥하고 성공하는 길이니까 확정을 지웁시다.

확정을 지웁시다  자 어느 길을 차지할래 하면은 너무 딱딱하고 하니까 어느 길을 차지하는 것이  복이 있는지 아는가 어디 한번 물어 봅시다. 롯의 걸어가는 그 길이 복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다 아시네요. 아브람이 가는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성공이요 복되다는 것을 확실히 인정하는 사람 있으면 손드십시오.

아. 저 뒤에는 벌써 손들었다. 녜. 아멘!! 따라합시다. 아멘! 아멘!! 이겁니다. 이거  여러분들. 과거에 왜정말년에도 다 이것 때문에 다 이거 가지고 다 이겼습니다.

6·25 때도 그렇고 역사에 모든 성도들은 이거 가지고 이겼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실패는 그 앞에 놓이지 않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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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믿는 자의 세가지 성패의 길/ 창세기 13장 8절-10절/ 850425목새 선지자 2015.10.30
176 믿는 자의 세가지 성패의 길/ 창세기 13장 1절-18절/ 850421주전 선지자 2015.10.31
175 믿는 자의 세가지 성패의 길/ 창세기 13장 6절-15절/ 850424수야 선지자 2015.10.31
» 믿는 자의 세가지 성패의 길/ 창세기 13장 7절-16절/ 850501수야 선지자 2015.10.31
173 믿는 증표/ 요한복음 3장 16절/ 87041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