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1981. 8. 21. 금야

 

본문 : 눅 17 : 5- 10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제자들이 주님에게 믿음을 더 많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제자들이 이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하는데 대해서 첫째 대답이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너희들이 뽕나무를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명령하였을  것이요 그것들이 다 너희 명령에 순종하였으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다른 물건과 같이 그렇게 분량이 많고 적은 그 관계보다도 주님이 큰  믿음이라 믿음이 적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데가 있지만 그것은 다른 의미에서  말씀한 것이고 믿음은 많고 적은 것으로 물량 모양으로 그렇게 구별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그 양이 많건 적건 그것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씨 중에 가장 작은 씨로 되어있는 그 겨자씨를 들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겨자씨 믿음, 겨자씨 만한 믿음이지만 이 믿음이 지극히 큰 일을 할 수 있다  하는 것으로서 믿음은 그 양이 많고 적은 거기에 있지 아니하고 산 믿음과 죽은  믿음 이것으로 믿음은 구별할 수가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아무리 작아도  사람 보기에는 조그마한 일을 하고 또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가진  믿음이라면 그는 무식한 사람이고 또 가난하고 아주 어리고 약하고 천한 그런  사람이면 그 믿음을 가진 데에도 차이가 있다고 이렇게 보지 말아라. 아무리  못나고 가난하고 무식하고 약해도 상관없고, 아무리 유식하고 잘나고 부요하고  강해도 상관없다 또 그 사람이 낮은 지위에 있고 어떤 사람은 높은 지위에  있어도 그것도 상관이 없다 또 그 사람이 큰 일을 하고 작은 일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도 상관이 없다 믿음은 그런 것을 다 초월한 것으로 산 믿음이 되면 보기에  아무리 작아도 능치 못할 것이 없고, 사람들 보기에 저는 참 큰 믿음이라 왕이  믿는 믿음이니까 부자가 믿는 믿음이 학자가 믿는 믿음이 큰 일을 경영하는  사람이 믿는 믿음이 저런 믿음은 큰 믿음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면 안된다. 믿음은  크고 작다 많고 적다 이런 세상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과 같이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련되어 있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믿음은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이것 가지고 구별을 해야 된다.

 거기 안으로 종 들어앉아 주십시오.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딱 버티고  앉았으면 어쩔거라. 저 이집사님 부인, 안으로 썩 들어앉아요. 저 뒤에서 자기  구역이라고 뒤에 온 것도 개이치 않고 자기 구역에 온다고 찾아 오는데 딱  버티고 앉아가지고 들여다 주지 않고 그 뭐이라. 또 어디로 가? 그만 거기 앉았지  뭐. 이 앞에 자리 비었어. 이러니까 이 빈자리에 앉으면 나중에 자리를 옮길 수  있으니까 자리 욕심만 차려놓고 식구들은 안 오니까 다른 구역 식구들이 와서  자리를 채워 놓으니까 좀 부끄럼은 면해서 자기 구역 식구가 와서 채워주는 양  그렇게 지금 생각하고 있어. 여기 자리 넓은 사람들은 우리 자리는 한자리가 나고  두자리가 남으니 다른 구역으로 좀 양보하여 갈라 나눠주도록 그렇게 해  주십시요 이래야 되지 그게 양심이라. 교인은 안 와도 어찌하든지 자리 탐만 내는  것 그거 안됩니다.

 사람들은 이 믿음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것을 먼저 제해 버려야 된다 하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말한  대로 어떤 위대한 사람이 믿으면 그 믿음은 아주 큰 믿음이고 많은 믿음이라.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믿으면 그 믿음은 아주 위대한 믿음이라 또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이력이나 모든 것을 볼 때에 아주 허무한 그런 사람이 믿으면 그까짓  믿음이야 그거 뭐 얼마 안되는 믿음이라. 사람들은 이렇게 보이는 것을 가지고  믿음을 평가하는 이것을 주님이 첫째로 제거해야 된다 하는 것을 여기에 보이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면에 크고 작고 잘나고 못나고 하는 거기에 있지 아니하고 그  믿음이 생명 있는 믿음이냐 생명없는 죽은 믿음이냐 하는 여기에 믿음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생명있는 믿음은 어떤 게 생명있는 믿음인가? 그가 참 진실히  진실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맺어져가지고  있는 그것이 생명인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를 생명의 도라 하는 말은 하나님과  결합이 되어있는 도라 하는 말입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죽은 영이 살아났다 하는  말은 하나님이신 성령님과 진리와 영이 결합이 됐다 하는 말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과 결합인데, 단속 안하면 안돼 좀 단속해요. 모두 잘 안 들으면  여러분들이 몰라요. 생명있는 믿음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맺어져가지고  있는 그것이 생명있는 믿음이요, 생명없는 믿음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결합이  되어있지 않는 것이 생명없는 믿음인 것입니다. 껍데기야 크든지 작든지  영화롭든지 아주 졸렬하든지 그 믿음은 하나님과의 결합이 되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여기에서 믿음의 가치는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씨 중에 가장 작은 것이지만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땅에  파묻으면 썩지 아니하고 땅을 양식으로 삼켜 가지고 그것이 움이 터서 자라는  것처럼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는 그 신앙은 그가 어떤 주위 환경 형편 사정을  그 현실을 만날지라도 현실에서 삼켜져서 썩어지지 아니하고 그 현실을 마치  겨자씨가 땅을 양식으로 삼아 자라는 것처럼 그 현실을 먹고 자라게 된다. 이런  현실이 닥치면 그 현실을 통해서 믿음이 좀 더 자라게 되고 또 영화로운 그런  현실을 닥쳐도 그 믿음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연결이 없는 그 믿음은 좋으면 좋아서 믿음이 그 좋은 것에게  감염돼 가지고서 좋으니까 좋음에 따르는 그런 믿음이 됐다가 갑자기 불리한  일이 닥치면 그만 또 불리함에 삼켜 가지고서 좋아서 믿던 그 믿음이 다  없어지고 그것은 이런 형편 저런 사정을 만나면 거기에 삼키워져 그 믿음이  그것들의 믿음이 됩니다. 좋으면 좋은 것대로의 믿음이 됐다가, 나쁘면 나쁜 것의  믿음이 됐다가, 슬프면 슬픈 것대로의 믿음 됐다가, 기쁘면 기쁜 것대로의 믿음  되니까 이것은 환경을 따라서 그 사람의 인품이나 신앙이 변동되는 그것은  분명히 생명이 없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환경이 어떻게 변해 올지라도 그로 인해서 자기 신앙이 변동되지  아니하고 그것 닥치면 그것으로 인해서 더 신앙은 견고해지고 더 뜨거워지고  이렇게 해서 자기 현실을 마치 우리가 음식이 있으면 음식을 먹으면 내가 자라고  하는 것처럼 세상을 자기 밥을 삼아 가지고 자라게 되는 이 신앙이 생명 있는  신앙이요, 세상에게 내가 밥이 되어가지고 세상에게 잡아 먹히고 삼키워지는  그것은 생명없는 신앙이라. 그러기에 믿음에는 생명이 있느냐 생명이 없느냐  이것이 제일 중요하지, 너희가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하니 믿음에 대해서  아직까지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생명 있는 믿음 생명없는 믿음 다시 말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하나님과 연결이 된 그 신앙과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있는 그 신앙, 아무리  하나님의 이 도를 인정하고 실행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그  믿음이 있고 또 자기가 하나님 말씀을 인정하고 실행하는데 참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가지고 하는 신앙이 있고, 죽은 신앙 산 신앙 이것으로 언제든지 우리는  구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 죽은 신앙을 싫어하고 산  신앙을 원하기는 원하는데 그러면 산 신앙인지 죽은 신앙인지 이것을 정평하지  못하고 모두 다 제각각 산 신앙인 줄로 알아서 속게 되면 그것이 곧 사망이 되는  것입니다.

 요새는 보면 제각각 정통이라고 남의 교파는 모두 다 멸시하고 정죄하고  훼방하고 저의 교파만 좋다고 이렇게 떠들어대고 야단을 지깁니다. 이것도 매우  위험한 일인 것입니다. 자기가 참 생명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산 믿음으로 잘못 알고 있으면 그 사람 생애는 다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과 같고 모래 위에 짓는 집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 보기에 어떻게  위대한 일을 했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가보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짓는 집과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이 덩치가 어느 것이  크겠습니까? 그거야 이런 초목 가지고 짓는 집이 훨씬 크기야 몇십배 더  크겠지요. 이렇지만 나중에 불로 시험하니까 다 타버리고 없어진 것으로 비유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참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가지고 그 신앙생활을 한 것과 하나님과  연결없이 세상 권세나 가지고 돈권세 인간권세 나라권세 사회권세 세상 문화권세  지식권세 이런 것하고 연결해가지고서 일을 하니까 교회보다는 세상이 훨씬 양이  크고 많은 것처럼 이렇게 크다 사람들은 놀래지만 그것이 가치가 아니라 믿음은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여기에 중점이 있고 여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 하나님과 연결은  내버려 두고 사람만 보기에 뭐 어떻게 다 크다 위대하다 하는 그런 것가지고는  그것은 신앙의 가치는 아니요, 신앙의 힘은 아니라 하는 걸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 단체가 과학의 큰 힘을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힘이 없으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사람 보기에는 초초해도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에 함께 있으면 그는 장차 우주와 영계를 다 상속받을 그 위대한  것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우리가 주의할 것은 내가 믿는다는 이  믿음이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여기에 중점을 두고서 우리가 시험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너희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시험하여 확정을  해라 나는 과연 믿음이 없구나 그 믿음은 산 믿음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믿는 줄 알았는데 생명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구나, 나는 생명 있는 믿음을  가졌구나 하는 그것을 시험해가지고 네가 확실히 확정을 지워라. 아 나는 지금  생명있는 믿음이니 요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야 되겠다 나는 생명이 없는  믿음이니 이 믿음을 집어던져 버리고 어서 생명있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다 요거  확정을 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생명이 있는 믿음과 없는 믿음은 어디서 그것을 알 수가 있는가? 생명이  없는 믿음은 자기가 여러 종류 모양의 현실을 만날 때에 그 현실에 피동 되는  그것이 생명 없는 믿음인 증거인 것입니다. 그 현실에 피동되는 그것이 생명없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 사람이 재산이 넉넉하고 잘 먹고 잘 입고 살다가 갑자기  그만 재산이 없어서 아주 굶주리게 돼놓으니까 그 사람 믿음이 그만 흔들리져  버립니다. 그 경제에 가난해지니까 그 믿음이 그만 아주 없어져 버리고 그만  가난에 쪼달려가지고서 그 옛날 믿던 것은 하나도 없어져 버리고 그 가난의  사람이 돼가지고서 믿음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또 그 사람은 가난할 때는  예수님을 잘 믿더니만 갑자기 부자가 되고 높은 벼슬을 하고 아주 시집을 잘  가서 훌륭하고 위대한 남편에게 시집가고 나니까 그만 그 처녀 신앙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다 생명없는 증거입니다.

 생명 있는 신앙은 그 사람의 닥치는 현실이, 아 저 사람이 저런 현실을  닥쳤으니까 아마 저 사람의 신앙의 요동이 있을 것이라 했는데 어떤 현실을  닥쳐도 그 신앙이 요동치 않습니다. 아마 저 사람의 신앙이 저렇게 큰 어려움을  당했기 때문에 그 신앙이 다 박살이 날 거다 했는데 그 신앙이 여전히  튼튼합니다. 그 사람이 저렇게 영광스럽고 존귀한 그 현실을 만났기 때문에 저  사람의 신앙 다 버리고 붕뜬 사람이 됐을 것이다 했는데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동치 않습니다. 이것이 생명있는 증거입니다.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다른 사람이 안다는 것보다도 자기가 자기 현실이 닥쳤을  때에 그 현실을 내가 이용해 가지고서 내 구원을 이루려고 내가 하여서 이런  현실이나 저런 현실이나 그것이 음식을 먹을 때에 짠것도 필요하고 단것도  필요하고 매운것도 필요하고 또 신것도 필요한 것처럼 이런 현실 닥치니까  그것도 맛있게 이용해가지고서 구원 이루고 또 저런 쓴 현실을 닥치니까 그것도  맛있게 이용해가지고서 구원 이루고 하는 내가 이렇게 되어 있는지, 이런 현실  닥치니까 기쁘고 즐겁다가 저런 현실 닥치니까 그만 슬프고 고통스러워지고  믿음이 없어지고 이렇게 환경과 주위에 피동되어서 요동되는 이런 신앙을 내가  가졌는지 남이 몰라도 내가 내 현실을 닥칠 때에 내가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그  현실이 내게 닥칠 때에 내가 변했는가 내가 현실을 이용했는가 현실을 따라서  내가 변해지던가 현실에 따라서 변해지지 않고 그 현실을 하나님과 진리의  순종하는 것으로, 현실이 어찌됐는지 그 현실에도 하나님과 진리에게 순종하는 이  생활을 내가 하고 있는지 하나님과 진리는 버리고 그 현실에게 내가  피동돼가지고 현실이 울라 하면 울고 웃으라 하면 웃고 현실이 높아지라면  높아지고 현실이 딱 죽어지라면 죽어지고 이 현실에게 피동된 신앙, 무슨  신앙인가 이것을 첫째로 우리가 시험해서 알아야 합니다.

 자기는 죽은 신앙을 가졌는지 산 신앙을 가졌는지 절대자이신 대주재이신  주권자이신 이 창조주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시려고  하신 이 하나님, 이 하나님과 자기와 연결이 되어 있으면 우주와 영계가 자기  것인데 이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이 저희 것인데 그것에게 피동 될 턱이 뭐  있습니까 있기를. 이 사람이 백만장자이데 그만 돈 몇백 원에 사지를 못쓰고 생전  못 본 것처럼 그 몇백 원에 그만 그 사람이 변동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백만장자라는 걸 모르는 것 아닙니까? 자기가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야  너 내가 지금 이거 백원짜리 열 개를 줄 터이니까 내 아들 해라 이러니까 내가  백만장자라 우리 아버지는 백만장자인데 그게 다 내 재산이라 백원짜리 열 개면  천원인데 천원에 내가 네 아들돼? 이럴 거다 말이요. 그렇지만 백원짜리 열을  준다 하닌까 나는 아무 것도 없는 자인데 내가 당신 아들 할 것이요 하면 자기가  아무리 부자의 아들이지만 그 부자의 아들인 것을 실상 모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구속을 받은 자라면 그 현실에게 무엇 때문에 피동이  되겠는가? 하나님과 하나님과 연결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제자들이 주님에게 말을 하니까 주님이 너희 보기에 믿음이 크다  작다 많다 적다 하지만 그게 아니오 그 믿음의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그 믿음이  하나님과 참으로 연결이 되어 있느냐 하나님과 연결 하나도 없고 모든  피조물들과만 연결이 돼가지고 마귀 일 모양으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정말로 창조주이신 대주재이신 그분과 연결이 되어 있는지 그분과 연결되는  데에는 돈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고 지식 가지고 명철 가지고 배짱 가지고 열심  가지고 꾀 가지고 용모 가지고 자기 지위 권세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자기의 성품을 다해서  자기의 인격을 하나님에게 다 드려 하나님을 사귀려 할 때에 하나님이  사귀주시지 이거 외에 무엇이 있다고 그거 하나님께서 엿새동안에 만든 것인데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 많지만 주님의 피공로는 입어서 천국은 가기는 가지만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생명없는 믿음 가진 자 심히 많고 생명있는  믿음 가진 자 심히 적습니다.

 생명 없는 믿음은 아무리 위대한 일 해도 그거 마귀일입니다. 다 죽고 망하는  썩는 일이요. 그러기에 성경에 말씀하기를, 가만 두어라 심기워지는 것마다  천부께서 심지 않은 것은 다 뽑혀서 멸망당한다 가만 두어라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돼가지고 된 것 그것만이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이요, 그것이 반석위에 지은 집이니 그것만 남습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우리가  참 일생동안 이런 생활 저런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다 아무리 좋은 생활을  해도 다 끝날 것이고 고통스러운 생활을 핻고 그 고통이 끝날 것이고 많이  가져도 적게 가져도 다 한꺼번에 손 툴툴 털고 우리가 갈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뭐 하려고 이 땅위에 그거하고 있는가? 그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무래도 목숨이 있으니까 이 땅위에서 먹어야 되고 입어야 되고 마셔야 되는데,  먹고 입고 마시는 건 뭐 때문에 하느냐? 하늘나라를 준비하기 위해서 구원준비  하기 위해서 합니다. 하늘나라의 구원이 없고 세상만 보고 산다면 어떤 의사가  나한테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기운 가지고 살대로 살아서 박력있게 살고 돈  모아가지고 그 자가용 비행기 한 대 마련해 놓고 살대로 살다가 내 힘으로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힘을 빌어야 되는 그런 처참한 때가 되면 그 비행기 타고서  저 태평양 바다 가운데 풀 빠지고 만다 뭐 한다고 그 힘없어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칙칙하게 그렇게 비참한 생활을 할 필요가 뭐 있느냐? 그 사람 그렇게  말해. 그 말 일리 있습니다. 옳습니다.

 세상보고 산다면 뭐 그렇게 살아 봤자 송장밖에 안되는 것 뭐 하러 살겠습니까?  우리가 그래도 사는 것은 하늘나라를 준비하기 위해서 영생의 나라에 가 가지고  필요한 소유도 준비해야 되겠고, 영생의 나라에 가가지고 필요있는 실력도  준비해야 되겠고, 영생의 나라에 가서 필요한 지위도 마련해야 되겠고, 영생의  나라에 가가지고 환영받을 수 있는 이 모든 교제도 세상에서 해 놔야 되겠고,  이러니까 이런 생활 저런 생활을 그래도 하면서 아무리 잘못 믿는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예수 믿는다고 조롱도 받고 욕도 얻어먹고 또 바쁜데 일을 미루어 놓고  주일도 지키고 그래도 예수 믿기 때문에 할 말 못하고 하고싶은 대로 못하고  이렇게 모두다 제재받아서 예수 믿으면서 만일 죽은 믿음을 가졌다고 하면 어찌  됩니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됩니다. 죽은 믿음 가졌다면  하늘나라 가지만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니까 죽은 믿음 가진 그것은 세상에서  안 믿는 사람과 같은 그 생활하는 것이나 꼭 같은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자기 믿음이 그 믿음 속에 생명이 있는지 자기 믿음 속에  대주재이신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는지 연결이 되는지 생명이 없는지 연결이  없이 저 혼자서 지금 자기 주관으로 저 혼자 믿는다고 야단을 지기고 하나님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지 이것을 살펴 가지고서 이 문제를 첫째로 우리가 해결해야  하겠습니다.

 자기 믿음에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은 무얼 보고 알까? 아는 것은 쉬워.

이러기에 이 겨자씨로 비유를 했습니다.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이것을 알기 쉬워.

아무리 씨가 작지만 생명 있는 것은 땅에 심으면 어찌 됩니까? 땅에 심으면  생명없는 것은 땅에 심어 놓으니까 수분이 오면 수분이 오니까 이게 썩습니다.

땅에 있는 지기가 오니까 썩습니다. 거름 기운이 오니까 썩습니다. 땅 속에  온기가 있기 때문에 온기로 인해서 썩고 지기로 인해서 썩고 수분으로 인해서  썩고 또 거름 기운으로 인해서 썩는데 생명있는 것은 그것이 오니까 썩지 안하고  그것을 도로 양식으로 삼아 먹습니다.

 자기 현실에 이런 것 저런 것이 썩는데 생명 없는 믿음은 그것이 오면 그만  그것의 그 사람 돼 버리고 맙니다. 좋은 것 오면 좋은 것의 사람이 돼 버리고  슬픔 오면 슬픈 것의 사람 돼 버리고 독한 것 오면 독한 것의 사람 돼 버리고  악한 것 오면 악한 것의 사람 돼 버리고 악한 자 오면 자꾸 악한 자 되고 독한  것 도면 독한 자 돼 버리고 도둑 속에 오면 자기도 도적 돼 버리고 이렇지만  하나님과 연결된 것은 생명있는 것은 그렇지 않다 그 말이요. 아무리 도둑 속에  가도 자기만은 도둑이 안됩니다. 아무리 창기 속에 가도 자기만은 그 창기가  안됩니다. 아무리 거짓말 하는 거짓말 소굴 속에 가도 자기만은 거짓말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요.

 자기의 환경과 주위 현실을 자기 믿음이 그것을 양식처럼 이용을 해서 점점  믿음이 더해지는지 자기 현실 닥친 데에 자기 믿음이 그만 현실에게 속화돼  가지고 그것에게 삼켜져서 그 현실에 피동 되는 이런 사람으로 사는지 그 현실에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그 피동을 현실에서 살고 있는지 하나님께 피동된 그  피동의 생활을 그 어떤 현실에서든지 그 현실과 어떻게 마찰이 되어도 그  현실에서 그렇게 살고 있는지, 그만 그 현실에 피동돼가지고 현실의 것이 되어서  현실하고 합작해서 좋은 것 오면 좋은 것하고 합작되고 나쁜 것 오면 나쁜  것하고 합작되고 울음이 오면 울음하고 합작되고 슬픔 오면 슬픔하고  합작돼가지고 그것대로의 사람이 되어있는지 과연 그것을 극복해서 정목해서  거기에서 하나님으로 인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이것 우리가 살펴야 됩니다.

 거기서부터 끝에 가서 이 중점이 있는데 이것을 증거 하려고 했는데 증거를  해보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이거 하나가 문제라. 첫째 이 문제를 해결을 지워야  되지 이 문제 해결 안 지우면 소용없습니다. 더 증거를 안해요 더 설교  안하겠습니다. 자기의 믿음이 생명이 있는지 생명 없는 죽은 믿음인지 이걸  살펴봐요. 공연히 죽은 믿음 가지고 있으면서 믿는 체하면 참 불쌍한 사람됩니다.

 세상이 우리를 불쌍하다 하는 것 상관없소. 영원무궁 세계에 가서 영광스러우면  되는 것이지. 이러니까 우리가 이 생명 없는 믿음이면 일생을 살아도 그것이 전부  멸망이요 소용이 없고, 생명있는 믿음이라야 되는데 이게 제일 큰데 이게  돈보다도 크고 권세보다도 크고 명예보다도 크고 건강보다도 크고 내 가족보다도  크고 나보다도 크고 생명보다도 큽니다. 이 믿음에 생명 없으면 그만이요. 모든  종교로 인간으로 내 이 하나님으로서 자기 것을 삼는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생명 있는 믿음, 믿음은 하나님에게 대한 모든 것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인데  인정하고 순종한다고 그것이 생명있는 믿음이 아니라 외식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거짓부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인정하고 순종하는데  성령이 옳다 인쳐 주는지 인정하는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있는지 그게  문제입니다. 따라 합시다. 산 믿음. 죽은 믿음, 죽은 믿음. 산 믿음. 산 믿음 죽은  믿음. 이것은 자기가 압니다.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은 그것은 참 껍데기로 아는  것이요.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알 수 있어. 뭘 보고 아는가? 나무를  모르거든 그 열매를 보아 알지라고 말씀했습니다.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알 것은  자기가 자기 현실을 날마다 시간마다 만나는데 그 현실과 자기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을 보면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다에도 띄우고 강에도 띄우는데 그 떼나무라고 아름드리 되는 나무를 베어  가지고서 그 여러 수백 주 수천 주를 한데 묶어서 이래 바다에 띄우면 물  내려가는 대로 출렁출렁 그것 따라 그렇게 크지만 물 내려가는 대로 물에 따라서  내려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커도 이렇지만 거기에 조그마한 고기 새끼라도  생명있는 것은 물이 내려간다고 제가 내려가요? 제 마음대로요. 물 내려가도 저는  올라 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믿음이 어리든지 크든지 그 속에 생명 있는 믿음은, 어려서  어린 믿음이라도 주일학교 믿음이라도 이제 믿는 믿음이라도 그 속에 생명 있는  믿음은 자기 현실에서 거슬리는 역류하는 게 있습니다. 마찰이 있고 거슬려  역류가 있고 환경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고 뭐 당회장 노회장 시찰회 총회장 되어도 생명없는 믿음은 그 주위와 환경  자기 현실에게 다 피동됩니다. 그것의 사람되요. 이러니까 하는 것이 전부 다  인간 중심이라 인본이라. 그러나 이제 믿어도 생명있는 믿음 하나님 믿는 믿음은  그것이 마찰이 있습니다. 세상에게 끌려가지 않아요. 하나님의 진리에 합당하면  관계를 가지고 아닐 때는 마찰이 와요. 자기가 직장에 들어갔다고서, 직장 못  구하다가 직장 들어갔다고서 그만 직장에서 무슨 죄를 지어라 해도 그만  굽신거리며 죄짓지 안해요. 안되면 굶어 죽고 뛰어나오지 환경에 따라서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또 그렇게 어릴 때에는 감당할 수 있는 쉬운 환경을 주시고 장성하면  차차 어려운 환경을 주십니다. 자기에게 다 알맞은 환경을 주시는데 생명 있는  신앙은 자기 환경에 하나님과 진리대로 삽니다. 자기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기 환경에게 피동되어서 환경에 따라서 아무 마찰없이 이렇게 사는 것은  생명이 없는 증거인 것입니다. 생명이 있으면 거슬림이 있습니다. 마찰이 있고  거슬림이 있소. 거슬림이 있는데 속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능력을  힘입어서 거슬려도 거기서 하나님과 진리대로 삽니다.

 요것을 오늘밤에 우리가 스스로 자기를 살펴서 판정을 지웁시다. 나는 이제까지  산 믿음을 가졌나 죽은 믿음을 가졌나, 내가 언제는 산 믿음을 가졌다가 지금은  생명이 떠나서 죽은 믿음을 가졌다. 내가 산 믿음 생명 있는 믿음은 가끔  생명있는 믿음이 되고 그 일반적으로는 죽은 믿음이 많았다. 오늘 사는 생활에도  거기서는 내가 생명 있었다가 생명있는 믿음을 살았다. 오늘 내가 무슨 일,  누구를 만났을 때는 그만 생명을 잊어버리고 생명없는 믿음을 살았다. 내가  이제까지 산 생활에는 얼마는 어찌 되고 얼마는 어찌 되었다. 아 나는 생명있는  믿음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다. 나는 환경과 주위에 끌려서 큰 나무떼를 모아서  모은 것이 강물에 출렁거리면서 떠내려가는 것처럼 이렇게 내가 아무리 목사고  장로고 집사고 권찰이고 돼있었지만 환경과 주위에 출렁출렁 따라서 살았지  환경과 주위 거기서 하나님을 따른 신앙생활 나는 하지를 못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30분 기도하고 난 뒤에, 총공회 운영 위원들과 또 기도원 운영 위원들 고문도 다  포함되겠습니다, 기도 후에 4층 회의실에서 모임이 있다고 교학실에서 광고가  있습니다. 다 기도하고 가요. 이거 작정하고 가요, 작정하고. 믿음 없이 죽은 믿음  가지고서 그래 믿으면 불쌍한 사람됩니다. 저 신관에도 불 꺼 주십시오. 확정을  지워요. 뭐 집이 달아나고 사업이 절단 나고 자기 가정이 절단 나고 자기 목숨이  절단나는 그게 큰 것 아니라 그것도 크지만 그것은 여기에 비해서는 참 하나의  먼지같은 것입니다. 자기가 닥친 현실에서 확정지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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