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밖과 안

 

1987. 11. 27. 새벽 (금)

 

본문:마태복음 14장 22절∼28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제자들이 예수님이 재촉하시고 명하신 그대로 순종하여 앞서 바다 건너편으로  갈려고 출발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하시고 재촉하신, 재촉이라 말은  독촉이라 말입니다. 재촉하신 그대로 바다 건너편으로 갈려고 배타고  출발했습니다. 그랬는데 “배가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배가 육지에서 제법  멀리 떠났습니다. 제법 멀리 떠날 때까지 아무 사고 없이 잘 갔습니다. 수리를  떠나고 난 뒤에 바람이 일어나고 물결이 일어나서 그들이 가지를 못하고 배가  가는 길이 중단되고 곤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알기에는 예수님은 자기들과 함께 계시지 않고 이랬으나 주님은  멀리 산에 계셨지마는 제자들의 모든 형편을 하나도 모르지 아니하시고  감찰하시고 또 감시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풍랑 일어 고난 당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빨리 제자들에게로  오셨습니다. 오실 때에 배를 타지 않고 물 위로 걸어오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 지식대로의 주님이 나타나시지를 아니하시고 제자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 지식이 아닌 초자연적인 그런 방편으로 주님이 이렇게  오셨습니다.

오신 주님은 분명히 제자들을 그 고난 가운데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오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보기에는 그는 비인간적으로 비인간 행동의  불합리적으로 그렇게 오시니까 제자들은 놀라서 유령이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빨리 ‘안심하라’ 하시지 안했으면 그 제자들이 어데까지  위기에 떨어지련지 모릅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 그 제자들이 주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인해서 자기들에게 이상한 은혜가  왔습니다.

물귀신이, 물에 있는 유령이니까 물귀신인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안심하라’ 한다 할지라도 귀신이 안심하라 하니 더 두려울 것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가 원수로 알고 있는 그 원수가 안심하라 하면 안심이 되겠습니까? 안심하라  하면 더 걱정될 것이요, 두려워하지 말라 하면 더 두려움이 생길 것이요, 귀신이  내라고 하면 어찌 됩니까? 내라고 하면 이제는 평안이 오겠습니까 두려움이  오겠습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자기네들이 무서워서 유령이라 하면서 아주 소리 질렀습니다.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이랬으니까 그때에 그 제자들이 유령이라고  하면서 그들이 보기에 유령을 보고 얼마나 놀라며 두려워했겠습니까? 또  두려워했기에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러면 어찌 되겠습니까? 자기의 원수가, 이들이 유령이라고 하면 저들을  대적하는 자로 봅니까 저들을 돕는 자로 보고 있습니까?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대적하는 자로 보고 있지요. 원수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대적하는 자로.

그러면 대적하는 자가 안심하라 하면 그 안심이 되겠습니까 안심하라 할수록 더  근심이 생겨지겠습니까? 근심이 생겨지는 것이 필연하지요. 또 두려워 말라  이라면 두려움이 없어지겠습니까 더 두려워지겠습니까? 어찌 돼요? 하나씩 들어  깨달아야 되지 떠드는 소리만 가지고는 소용 없어, 아무래도. 도리를 알아야지? 두려워하지 말라 할수록 더 두려워지는 것은 필연한 일입니다. 또 ‘내다’  하면은 이제는 안심이 될까요? ‘내다’ 하면 어찌 돼요? 원수가 `내다' 이라면  마음에 반가워지겠어요 더 정이 떨어지겠어요? 정이 떨어진다 그거요. 이거야 이  세상일로 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 아닙니까?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제자들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는 이 소리를 듣고 난  다음에 제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안심하라는 말을 듣고 근심이 더 되었는지  ‘내니’ 하는 소리를 듣고서 더 정이 떨어졌는지 ‘두려워하지 말라’ 하는  소리를 듣고서 어떻게 됐는지, 더 두려워졌는지? 어떻게 됐습니까? 저분들, 처음으로 온 분 같은데, 두 분이 같이 앉았는데 처음으로 온 분 같은데.

어찌돼요? 이 제자들은 그 소리를 듣고 어찌 됐어요? 그 두 분 같이 앉았는데.

어데 누가 하노? 여게 물었는데 거게도 처음 보는 분들이네. 더 두려워했지요. 더  두려워할 거 아닙니까? 두려워했는데, 할 건데 제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들이 안심하라는 소리를 듣고 더 근심하고 ‘내니’ 하는 소리 듣고 더, 원수가  `내다 내다' 이러면 정이 떨어지지 뭐 붙을 게 뭐 있겠소?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서 자기가 공산주의는 믿는 사람을 막 만나면 그것 죽이고, 공산주의가  되면 기독교는 용납 안 해요. 기독교는 세뇌 작업이 안 된다고 생각해. 어떤  민주주의자라도 오래 처박아 놓으면 공산화돼. 이러나 기독자는 중생된 속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것은 암만 해 봐야 세뇌 작업이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이 많이 경험했어. 그러기에 기독자는 모조리 죽여버리요. 속에 신앙이 있는  것은.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서, ‘저 공산주의가 왔다. 저 소련군이 왔다.’ 6  5 때는  ‘소련군이 왔다.’ 소련군이 와 가지고서 이북에서 학살한 그 굉장한 학살을  했습니다. 언제 유기선 그 장로의 간증하는 걸 들었지요? 그들은 저 사람 없는  데에 빈들판에 옥을 만들어 놓고 가둬놓고 머리도 들지도 못하구로 요래 꼬부려  요래 가지고 앉을 때도 꼭 장나무 하나 나무 한 개 딱 걸쳐 놓고 거게밖에는 못  앉고 그 밑에는 전부 물이고 요라니까 거게서 요래 가지고서 앉아서 있다가  마지막에 죽일 때에는 광장에 나가도록 해서 거게 들어가면 큰 세파트들이  준비돼 있어, 세파트들이 와 가지고서 엉크려서 물어 빼고 이래 가지고 다리고  뭐고 마구 물어서 지금 숨 넘어 갈 때가 되면 소련 장교가 권총으로 이마를 쏴서  거기서 죽이는, 죽이되 사형을 이래 시키요.

이런데 그 공산주의자가 소련군이 와 가지고서 ‘저거 소련군이라. 소련군이 저기  왔다.’ 저 소련군이 뭐 한 명이 왔다 두 명이 왔다 이렇게 말할 때에  “유령이라” ‘소련군이라’ 이럴 때에 소련군을 보고 놀래서 지금 벌벌 떨고  있는데 그 소련군이 있다가 ‘안심하라’ 이러면 안심이 되겠소? 어떻게 되겠어?  안심이 되겠어 더 근심이 되겠어? 더 근심될 것 아니야, 그거는? 필연한 일  아니야? 또 ‘내다’ 내다 이러면 정이 붙겠어 더 소름이 끼치겠어? 어찌 돼?  소름이 끼쳐지지. ‘두려워 말아라’ 이러면 참 안심이 되겠어? 그럴수록 `저놈이  어떻게 우리를 죽이려고 지금 하는가?’ 싶어 두려워하지 말라 하니까 더  두려워지지요.

이랬는데 이 제자들은 이상하게도 유령이 말하는데, 저들이 유령으로 본 유령이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이랬는데 그 제자 중에 다 말한 것은 여기  기록이 안 됐지만 그중에 한 사람인 베드로는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옵소서.’ 지금 뭐 물에 빠져 죽는다고 놀라 있는 그자가 ‘물 위로 걸어오라 하면 내가 물  위로 걸어가겠습니다’ 할 만치 됐으니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는 그  음성을 듣고 난 다음에 제자들이 받은 그 영향, 거게서 받아서 된 그 영향 그  결과 그 현황은 어떻게 됐습니까? 이 일반적인 법칙의 것이 왔습니까? 이  일반적인 법칙의 정반대의 현상이 드러났습니까? 어떻습니까? 정반대의 현상이  드러났어.

그럴 때에 그들은 은혜를 받고 나서 그만 참 두려움이 다 없어졌고, 안심하라는  대로 안심이 돼졌고, 또 내라고 말씀하신 데에 주님하고 그만 딱 정이 들어붙고  두려워 말라 하는 데 다 안심이 되고 이렇게 됐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들이 얼마나 변해졌느냐 하면 물 위로 걸어오라면 물 위로 걸어갈  만치 그만치, 물에 두려워 공포에 싸여서 견디지 못하던 그 사람들이 물 위로  걸어갈 만치, 그만치 용감스럽게 믿음을 얻고 은혜를 받았다 그거요.

여게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도리가 뭣인가?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하신 말씀을  듣고 즉시 순종했습니다. 주님이 ‘나 앞서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 이렇게  하시니까 명령 듣고 즉시 순종했습니다. 배타고 간 것은 순종 아니요? 즉시  순종해 가는데 순종으로 출발하니까 배가 설렁설렁 잘 갑니다. 그들은 또 노를  젓고 배는 설렁설렁 잘 갑니다.

이러는데 차차 차차 바람이 일기 시작합니다. 바람이 일기 시작하는데 또 풍랑이  일어나니까 배가 잘 안 갑니다. 잘 안 가니까 그들은 ‘야, 노 좀 힘있게  저어라.’ 저어도 배가 안 가니까 자꾸 힘있게 젓습니다. 또 옆에서 있다가  ‘바람이 요래 불 때에는 키를 요렇게 틀고 조렇고 틀고 또 닻을 요래 기울이고  조래 기울이고 이라면 바람이 오는 바람을 역풍해 가지고서, 동에서 오는 바람을  역풍해 가지고 동으로 배가 갈 수 있도록 이렇게 돛을 이용할 수가 있지  않느냐?’ 그 이용이 돼.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배가 서쪽으로 가는 게 정한 이치인데  이 돛을 이상하게 달면 동쪽에서 부는 바람에 서쪽으로 가는 것이 정한 이치인데  이 *돛*을 이걸 이상하게 작용을 하면 이 바람이 역풍이 돼 가지고 도로  두루루루 감아 가지고서 저 동쪽에서 오는 바람인데 동쪽으로 갈 수가 있다  그말이오. 이치가 맞아요? 이치가 맞아? 이분, 이치가 맞아? 저기서 오는 바람을  거슬려 역용을 하면 그게 도로 이렇게 돌아서 간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런 수단  다 부리요.

그럴수록 배는 점점 더 못 가고 바람은 더 강하게 붑니다. 그들은 나중에  찾아오신 주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했으니까 그들은 주님과 멀어졌습니까  가까와졌습니까? 멀어졌어.

여게서 무엇을 가르치는고 하니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 듣고 그대로 순종해서  건너편으로 가려고 출발해서, ‘주님이 앞서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재촉하셨다.

빨리 가자. 주님이 가라 하니 빨리 가자.’ 하면서 배타고 갈라 하니까 배가 설설  잘 갔는데, 가다가 자기들이 노젓고 옛날, 다 그때 사도들은 전부 어부들이오. 어부들이니까  바다에 와 가지고 배를 턱 타다 보니 옛날 하던 솜씨도 나오고, 옛날 하던 기분도  나오고, 이렇게 노 젓고 가는 바람에 주님이 가라 하는 대로 명령은 그대로  순종해서 가기는 가고 있지만 차차 차차 자기네들 옛날 주님 만나기 전, 만나기  전 옛날 자기네들의 모든 구습과 그 모든 상식과 주관과 그리 돌아가고 주님은  차차 멀어지고 잊어버리게 됐습니다.

그러면 그걸 어데다가 주님을 잊어버렸다고 그렇게 억설을 해다 대는 건가?  억설이 아니라. 나중에 보니까 주님을 보고서 유령이라 한 것 보니까 주님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주님을 생각 안 했어. 주님을 생각한다면 하필 주님이  오시는데 주님이라 하지 뭐 유령이라 할 턱이 있습니까?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해졌어.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순종하는 생활 이렇게 하다 보면 생활 하는 데  거게만 마음이 기울어지고 정신이 기울어지고 그러니까 그만 자기는 예수님 믿지  안할 때에 옛사람, 다시 말하면 자기로 돌아간다 말이오. 자기, 옛사람 자기로  돌아가 가지고 이렇게 그 일만 하려고 바로 하려고 애를 쓰지 주님은 잊어버리게  된다 그거요.

주님을 잊어버리게 되면 나중에 가서 그 일도 되지도 안하고, 장애물이 생겨져서  일도 되지도 안하고 일이 안 되면, 안 되면 ‘내 안에 전능의 능력인 주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낭파된다’ 이래는 생각지를 아니하고 일이 안 되니까 일을  되도록 하기 위해서 저들의 수단 방법 기존 지식 경험 체험 다 잡아 이용합니다.

이용해 가지고 열심히 할수록 주님은 점점 멀어지고 잊어버리게 됩니다.

잊어버려서 나중에 어데까지 잊어버리게 되어지느냐? 잊어버려지게 되어지는  것은 주님이 구원하러 오시는 것은 자기를 죽이러 오는 것인 줄 알고 자기의  구주는 정 원수인 줄 알고, 이렇게 아무리 주님의 명령을 순종한다 할지라도 그 마음에 주님으로 인하여,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말씀하신 대로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이것을 버려 버려서, 주님으로 인해서 동하는 것, 또 주님을  건너편에서 만날 주님을 소망하는 이 소망의 주님, 주님을 자기가 주님으로 동하고 정하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가는 요 주님이 자기  마음 가운데 사라져서 잊어버리게 되면, 주님을 잊어버리게 되면 아무리 주님이  시킨 그 방편대로의 행동을 한다 할지라도 마음에 주님이 떠나시고 주님을  잊어버리게 되면 자기는 주님의 명령 순종하면서 옛사람이 점점 돼지는 것입니다.

요것 인정이 돼요? 주님을 말씀을 순종하면서 점점 속에 마음은 옛사람이 되고  자기는 옛사람으로 바꾸어집니다. 옛사람으로 바꾸어지니까 처음에는 그 일이  순조롭게 잘 되더니마는 주님 떠나니까 그 일 안 되고, 그 일 안 되면 어서  ‘우리가 주님을 잊어버렸다. 주님이 가라 하셨는데 왜 이것 이러나?’ 그것  주님이 가라 한 걸 저희들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면 풍랑에 ‘풍랑아! 주님이  만유의 주님이 가라고 하셔서 우리가 가는데 풍랑 네가 어데 달라들어? 잔잔해!’  이러면 그 풍랑 제가 잔잔하지 꼼짝 못해. 잔잔하지만 주님 잊어버렸다 말이오.

잊어버리고 나니까 나중에 가서 망령을 어데까지 부렸느냐? 이제 구원하러  오시는, 오는 구원은 자기를 죽이러 해하러 오는 것으로 알고 또 자기를 구원하는  주님은 정 원수로 알고 이래 가지고 주님의 구원의 도가 정반대로 들려지는  김일성이 모양으로 이렇게 정반대 돼 이런 사람이 되고야 만다 그거야. 완전히  옛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듣고 주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행위를 하다 보면,  행위에 신경을 쓰다 보면 주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주님을 잊어버리면 주님  모신 그 신자가 주님 잊어버리게 되면 자꾸 옛사람으로 돌아간다 그말이오.

악령 악성 악습으로, 주님을 떠나 악령으로 돌아가고, 또 주님 중심으로 가던 자가  자기 중심의 악으로 돌아가고, 또 주님에게 순종하는 믿음으로 사는 생활 하는  자가 이제 자기 구습, 이제까지 습성들여 놓은 구습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의 명령 순종하는 행위 하는 데에 힘을 써야 되지만 주님  명령 순종하는 행위에만 힘쓰고 주님 잊어버리면, 그 행위는, 그 행위는 배 젓는  거야 누구라도 할 수 있지 않소? 그 행위는 안 믿는 사람의 행위와 거의 같다  그거요.

“한 자리에 둘이 있으나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그말은 껍데기 외형은 꼭 같은 일 해도 속에 주관자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는  버림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했어. 요것 이해가 됩니까? 이런 것을 심령이  어두우면 이해를 못 하면 헛일이라.

그러니까 나중에는 이렇기까지 정반대의 사람으로 돌아갔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주님의 명령 이 성경 말씀대로 행해야 된다는 걸 깨닫고 성경  말씀대로 행하기를 시작하든지 또 영감대로 행하기를 시작하든지 어쨌든지  주님에게 순종하는 생활, 주님의 법도대로 사는 생활, 이 생활을 자기가 할 때에  그 생활보다 주님을 자기 마음에 모시는 것을 더 주로 삼아서! 주님을 자기  안에서 모시는 걸 더 주로 삼아 가지고 주님을 더 생각하고,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이거를 더 생각하고, 더 주체가 되어지고,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명령 순종 주님 생각하고, 사모하고,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이것이 더  주체가 되어지고, 이 주체의 힘으로써 행동하는 그 행동을 해야 되지 잘못하면  주객이 전도되기 쉽다 말이오.

주님보다도 행동에다 주력해서 행동하다 보니까 주님 잊어버리기 쉽다, 주님  잊어버리고 행동만 하면 그 행동은 예수님이 가라는 길은 절대 가지 못한다, 주님  잊어버리고 행동에만 주력하는 자는 주님 가라 하는 대로 바다 건너편으로 가지  못합니다. 일보도 전진 못 해요.

이래 가지고, 이렇게 되면, 주님 잊어버리고 행동에만 주력하게 되면 어데까지  타락하느냐? 주님을 물귀신이라고 하기까지, 주님을 마귀라고 하기까지 성경 말씀  부인되고 모든 것이 부인됩니다. 자꾸 의심이 나와.

의심이 나와서 성경 말씀은 부인되고 세상 과학은 인정이 돼지고 인간들 말은  인정돼지고 성경 말씀은 부인되는 이 사람으로 자꾸 타락하고 완전히, 속화되다가  타락하고 변질되고 이래 가지고 그만 악령 악성 악습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런데, 이럴 때에 그들이 살아난 방법이 뭣입니까? 그들이 살아난 방법이  뭣이지요? 어떻게 해서 그들이 그 풍랑 가운데 사람이 변해져 버렸지요? 어떻게  해서 변해졌습니까? 이분? 주의 음성 듣고 변해졌습니다. 다른 길이 없어. 주의  음성 듣고 변해졌어.

그러면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신앙 생활 하다가 왜 신자들이 타락하느냐? 열심히  신앙 생활 하는 가운데에 신앙 행위만 중한 줄 알지 행위보다도 나에게 그  행위를 명령하신 주님은 더 중하시니까 그 행위보다 주님 모시는 데에 더 주력을  하고 힘을 쓰고 주님과 함께 행동하기를 힘을 쓰지 안하면 자기도 모르게 그만  타락해서 마귀돼 버리고 맙니다. 완전히 세상 사람 돼 버리고 맙니다. 맑스가  목사 아들이라 합니다. 그 사람을 유태인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그게 타락하기  시작하면 이렇게 타락이 돼 버립니다.

주님 잊어버리고 행동에만 주력하다 보면, 행동은 잘하요. 행동은 잘하기 때문에  자기 행동하는 것만 보고 자기 행동만 이제 보게 되니까 행동은 잘하니 예수님  잊어버리는 그자는 예수님 모시고 사는 사람과 적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적이 되고 말았어.

이런데에, 이렇게 타락되었을 때에 살아나는 길은 한 길뿐입니다. 주님 음성 듣는  한 길뿐이라. 그럴 때에는 무조건, ‘내가 이렇게 지금 됐으니까 기도하러 가자’  안 돼. 기도하러 가도 안 돼. 주님의 음성 듣는 게 제일이라.

그럴 때는 뭣이냐? 신앙이 어리면 재독을 들어요. 자꾸 이제 녹음 테이프를 그래  가지고 자꾸 재독을 들어. 재독을 들어 가지고 눈이 쪼그매 뜨여지고 귀가 쪼그매  열려지거든 그다음에는 성경을 읽어. 자꾸 성경을 읽어.

성경을 자꾸 읽으면 어찌되느냐? 악령 악성 악습 이놈이 저 먹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이놈이 쫄쫄 곯아 가지고 쫓겨나갑니다. 내 속에 악령이 주장한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성경을 자꾸 읽으면 그놈이 먹을 것이 없으니까 배가 곯으니까  그놈이 쫓겨나가. 쥐를 없게 하는 데는 쥐 먹을 것 하나도 없애 놓으면 그놈은  와서 있지 안해요. 먹을 것 없으면 자연히 가 버려요.

이거 모양으로 성경을 자꾸 읽고 이러니까 마귀 그놈 먹을 게 없거든. 그놈  양식이 없거든. 죄짓는 일 안 하고 죄가 없어지거든. 자기 주관이 없어지거든.

이러면 차차 차차 성화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어찌 되느냐? 이 제자들 보니까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옵소서’ ‘오라' 이러니까 물 위로 쩌뻑쩌뻑 걸어갔다 말이오. 초인간적인,  초자연적인 초인간적인 신앙의 아주 강경한 신앙의 참 고위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거게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것이 우리에게 구원 도리로 주셨기 때문에 이 도리를 자꾸 보고 또  껍데기 보고 알맹이를 보고, 이러기 때문에 제일 처음에 껍데기 가르치고 또 좀  있다가는 또 알맹이 가르치고 또 좀 있다가는 알맹이 가르치고 또 너무 지치면  얼마 동안 쉬웠다가 또 그다음에 또 새로 가르치고 이렇게 자꾸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는 데도 요걸 귀넘어 듣고 제 주관에 맞지 안하면  그만 부인해 버리는, 예수 믿어 신앙 생활 잘 하는 사람 가운데에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볼 수 있는  그런 아주 적기독, 그것을 가리켜서 거짓 그리스도라, 적기독 신자, 거짓  그리스도인, 외식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누가 못박았습니까? 외식 신자들이 다 못박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외식자들이 다 못박았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외식자 중에는 제일 외식자  중에 강한 외식자가 되어져 있는 고급 외식자들은 다 누구였습니까? 제사장,  서기관, 열심 있는 바리새 교인들, 그들이 다 예수님을 정죄해 가지고서 십자가  못박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깊이 알고 진실히 듣고 진실히 행할라 해야 되지 이 세상 일  모양으로 머리 좋으면 되는 줄 알아도 머리 암만 좋고 세상 학문을 전부  통달해도 자기 마음을 기울이고 ‘여게 죽고 사는 게 있다. 이 말씀은 절대의  말씀이요 능치 못함이 없는 전능의 말씀이다. 생명의 말씀이다.’ 하는 것을  깨닫고 자기 인격을 기울여서 들으려고 겸손하면 천치 바보 글 일자 무식꾼도 잘  들을 수 있고, 자기가 ‘나는 이만한 지식이 있으니까 저 무식한 저까짓 것들 하나 깨달으면  나는 열 깨닫지’ 하는 교만함 가지고 자기를 기울이지 안하고 자기가 왕이 돼  가지고 주장돼 가지고 하는 자는 암만 들어봤자 저에게 생명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생명이 안 되구로 합니다.

이 지식은 전능의 지식을 가진 지식이기 때문에, 독자적 권위를 가진 지식이기  때문에 이 지식은 교만한 자는 아무리 외워도 제게는 하나도 들리지 못하도록  막아버리요.

그러기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고 통달한 자” 통달하다 말은 세상  지식에 통달하다 말이오.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어린아이는 뭐 광문다학한 지식이 있어요 없어요?  어린아이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 없어도 다 인격을 기울이는 자에게만 주시지  인격 기울이지 않는 그런 교만한 자는 물리침을 받아서 하나도 받지 못해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서는 지혜 있고 지식 있는 자, 문벌 좋은 자, 학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 학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 말은 이제 이 유식한 박사들  가운데에서 진리를 바로 아는 사람이 많지 못하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지 세상 지식, ‘내가 뭐 일류 대학을 졸업 맡고  뭣을 하고 유학을 하고 내가 학위를 몇 개 가지고’ 너는 벌써 그것 내놓으니까  그것 가지고 족한데 주님 찾을 필요가 뭐 있나? 다 멸망받고 맙니다.

요 도리를 꼭 깨달아서 눈 감고 명상하고 자세히 생각해 가지고서 요대로 또  실행해 보면 또 깨달아지고 실행해 보면 또 깨달아지고 자꾸 실행해 보면  깨달아지니까, 그런고로 배워서 알고 인정하고 실행해 보고 또 깨닫고, 그래야 돼.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사람이 변화돼.

그러면 새로 진리를 알아. 그러면 그 진리가 자기를 진리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자유를 줘.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주일학교 반사들 이 공과 외우는 것, 요것 잊어버리지 말고 꼭 외우도록 하십시오.

또 하루 삼십 분 기도 요것 놓치면 안 됩니다. 또 지하철 기도도 위해서 기도도  계속합시다. 요새 곧 담판이 질 것입니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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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2 믿음의 구성요소/ 히브리서 11장 6절/ 810107수새 선지자 2015.10.31
51 믿음의 그릇을 키워라/ 마태복음 8장 5절-13절/ 810818화새 선지자 2015.10.31
50 믿음의 기도-엘리야/ 야고보서 5장 15절-18절/ 830829금새 선지자 2015.10.31
49 믿음의 능력/ 히브리서 11장 5절-6절/ 870130금새 선지자 2015.10.31
48 믿음의 능력/ 마태복음 14장 29절-32절/ 850901주후 선지자 2015.10.31
47 믿음의 능력/ 디모데후서 3장 15절/ 870125주전 선지자 2015.10.31
46 믿음의 능력/ 누가복음 5장 1절-11절/ 800402수야 선지자 2015.10.31
45 믿음의 능력/ 누가복음 5장 4절-10절 상반절/ 800404금새 선지자 2015.10.31
44 믿음의 능력/ 로마서1장 16절-17절/ 851109토새 선지자 2015.10.31
43 믿음의 능력/ 히브리서 11장 1절-6절/ 820203수새 선지자 2015.10.31
42 믿음의 능력/ 누가복음 5장 4절-10절 상반절/ 800403목새 선지자 2015.10.31
41 믿음의 두 요소/ 히브리서 11장 1절-3절/ 820710토새 선지자 2015.10.31
40 믿음의 두 요소/ 베드로전서 1장 7절/ 820705월새 선지자 2015.10.31
» 믿음의 밖과 안/ 마태복음 14장 22절-28절/ 871127금새 선지자 2015.10.31
38 믿음의 비밀/ 요한 1서 3장 3절/ 860101수새 선지자 2015.10.31
37 믿음의 비밀/ 로마서 1장 17절/ 860417목새 선지자 2015.10.31
36 믿음의 비밀/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880124주전 선지자 2015.10.31
35 믿음의 비밀 신비성/ 사도행전 3장 16절/ 860926금야 선지자 2015.10.31
34 믿음의 사람/ 민수기 14장 1절-10절/ 810824월새 선지자 2015.10.31
33 믿음의 상태/ 사도행전 2장 17절-21절/ 791014주후 선지자 201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