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비밀


선지자선교회 1986년 4월 17일 새벽(목)

 

본문 :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기독교의 모든 구원은 다 믿는 믿음 하나 가지고 다 이룹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지식이 옅은 사람들은 고만 대개가 '믿사옵나이다' 하면 다 된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만 믿기만 하면 된다. 이래서, 왜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가? 말하는 그 이유는 믿기만 믿으니까 믿는 대로 일이 됩니다. 사람들이 치료할 수 없는 병도 믿으니까 완치가 되어지고 또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도 믿으니까 그 일이 되어지고 이러니까 믿으면 된다, 고만 믿사옵나이다 하면은 다 된다 하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다 자기들의 신앙의 경험에서 그래 보니까 되니까 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OOO 장로라고 있는데 그 장로님이 거창 와서 그때 집회를 한 번 했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교섭이 돼 가지고 거창 와서 집회를 인도했는지는 모르나 거창 와서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제가 가서 한 시간 가서 참석을 했는데 그때 수많은 환자들이 와 가지고 병이 낫겠다고 왔었는데 낫는 사람도 있고 또 안 낫는 사람도 있고 있는데 그분이 다른 무슨 뭐 교리나 신조나 그런 것도 없고 그저 '믿사옵나이다' 하나뿐입니다.

그것만 가지고 다른 교리를 가르치거나 하는 그런 사경회는 아니고 그저 부흥회를 하는데 그분의 말을 듣는 중에 하나는, 요새 같으면 뭐 그게 별 게 아니지만, 우물을 파다가 사람들이 고만 기구를 거기다가서 빠뜨렸는데 그러니까 뭐 우물 파다가 다시 사람이 들어갈 수도 없고 물은 자꾸 나오고 이러니까 고만 우물 못 파게 됐는데 와서 사정을 해서 갔더라고. 가 가지고 그 기계가 상당히 무거운 기계인데 밧줄을 달아 내려 놓고 '그것도 뭐 믿으면 되지 안될 게 뭐 있나' 이라면서 밧줄을 달아 내려 놓고 '하나님이여 이거 이 기계를 이 밧줄 끝에다 당글어 매어 건지도록 해 주십시오' 하고 그래 '믿사옵나이다' 하고 잡아 당기니까 그 기계가 끌려 올라와서 했다고.

그러면서 그분은 믿는 그 믿었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런 간증을 여러 가지를 합디다. 하는데 그분이 상당히 하동서 거창이라면 거리가 요새 같으면 뭐 교통이 편리하니까 그렇지만 거리가 먼데 거기까지 소문이 번져 와서 강사로 청해 가지고 집회 인도를 하는데 그때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모여 가지고 뭐 다른 믿는 도리는 배우는 개 없고 다만 '믿습니다' 하는, 그러면 믿기만 믿으면 된다 하는 그것을 주장을 했는데 그때 와 가지고는 그렇게 뭐 많은 표적이나 그런 것이 나타나지를 아니했습니다.

또, 지금은 그때 OOO 씨가 그만 사이비한 종교를 없앤다고 이래 가지고 산에 있는, 기도실이라고 굴을 모두 거석해 가지고 굴만 하나 있으면 반드시 거기 그런 사람들이 하나씩 들어가 있어 가지고 그저 믿으면 된다 하는 그런 말을 가지고 그렇게 사람들을 많이 끌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전부 다 들어 보면 믿으면 되는 그런 경험을 했고 체험을 했기 때문에 그 주장을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다 믿으면 그대로 됐었습니다. 이랬는데 차차차차 그 믿음이 믿어도 안 되고 안 돼서 나중에는 그런 소문만 듣고 사람들이 갔고, 그러니까 실상은 안 되는 것을 선전 가지고 자꾸 사람들이 꼬여서 이렇게 유지가 됐고 또 거기 있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게 나으니까 연보를 많이 해서 유지했지만 나중에는 연보한 것도 적고 하니까 참 생활이 곤고하게 되고 이랬었는데 그때 그만 OOO 씨가 그걸 가지고 많이 그걸 다 제재를 해 버렸습니다.

제가 삼각산에 가서 집회할 때도, 그 사람들이 왔으면 좀 좋겠는데 그 번연히 예수 믿는 이치는 모르고 믿기만 믿는다 하면은 된다는 그것을 좀 바로 그걸 들려 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 사람들은 딱 굴에 앉아 가지고 자기에게 소속한 사람들은 집회를 가지 못하게 합니다. 가면 자기네들 세력이 약화되어지고 또 사람들이 그렇게 안 오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때 마침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큰 홍수가 났습니다. 홍수가 나서 굴마다 전부 물이 들어가고 막 바람이 불고 이라니까 그만 그 굴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이 거게 홍수 때문에 거기 있으면 죽을까 싶어서 다 피해서 가깝게 있는 것이 삼각산 제일 기도원인데 그 기도원으로 모여서 기도원에 그때 모인 사람이 한, 모여 있는 사람 말고 굴에서 나온 사람들이 한 오륙십 명 나왔었습니다. 오륙십 명 모두 그 굴에 있는 머리되는 사람들이 한 오륙십 명 나왔었는데 그 사람들이 나오고 난 다음에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거게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믿음에 대한 말씀을 주시면서 믿사옵나이다 하는 그것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하는 그것을 좀 말을 해서. 그때에 많은 시비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자기네들 말한 게 반대되니까 이런데, 그분들이 다 보면 다 신앙 경험하고 체험을 해 가지고 '믿습니다' 하니까 되는 그 경험이 있고 체험이 있어서 그런 것이지 공연히 그래 말한 것 아닙니다.

아닌데, 요새는 지금 또 어찌 되느냐? 요새는 이제 이 교리나 신조만 가지고 자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고 '믿습니다' 하는 이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어 가지고 지금 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앞서 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라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그 제자들이 수 리를 떠나고 난 다음에 풍랑이 일어서 건너가지를 못하고 심히 두려워하고 고통하고 했습니다. 그라다가 예수님께서 그 신강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산에서 혼자 기도하시다가 빨리 가셔 가지고 물 위로 걸어서 그들을 구출할라고 갔습니다.

가면서, 가니까 그들이 말하기를 '유령이라'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즉시 말씀하시기를 '내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할 때에 그들이 예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 듣고 남은 사람들도 다 두려움이 없어졌고 평안이 있었지만 그 중에 더 열심있는 베드로는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그렇게 두려워하던 사람이 아주 참 돌변했습니다. 백 팔십 도로 변해 버렸습니다. 백 팔십 도라 말은 동으로 됐던 게 서로 정반대로 돌아간 걸 가리켜 말합니다.

그렇게 아주 반대가 됐는데, 반대로 회개를 했는데, 그러니까 반대로 그렇게 회개한 표가 뭐이냐?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니까 그가 말하기를 '나도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이런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라 이라니까 그만 물 위로, 죽겠다고 지금 겁이 나는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 거의 수 리라면 수십 리를 떠났다 말이오. 수십 리 떠났으니까 상당히 수심이 깊은 그곳에 갔었는데 거기서 배에서 걸어오라 하니까 자기도 물 위로 걸어갈 줄 알고 푹 뛰어내려 가지고 뛰어내려 가지고 물 위로 걸어갔습니다.

물 위로 걸어갔는데, 걸어가다가 바람을 보고, 고만 바람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져들어갔습니다. 물에 빠져 들어가니까 그때사 또 죽겠다고 고함을 질러서 주여 나를 구원해 달라 하니까 주님이 와서 손을 잡아 일으켜서 구원하셔서 배까지 가니까 풍랑은 잔잔했습니다.

이것도 보면 그 제자들이 왜 그렇게, 예수님께서 바다 건너로 가라 할 때에 수 리를 갈 때는 바람도 없었고 무사히 가다가 수 리를 가고, 난 다음에 갑자기 풍랑이 일고 그들은 가지 못하고 신강을 했는가? 무엇 때문에 그들이 가지 못하고 신강했는가? 그 뒤에 보면 또 베드로가 고만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난 다음에 '나도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오라' 이라니까 뛰어내렸으니 요 모든 것을 보면은 거게 결함이 뭐인가? 그분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서 물 건너로 가라 할 때에 예수님의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주님이 갈릴리 바다 건너로 앞서 가라고 하시니까 자기네들은 그걸 따지지 못했지만 주님이 바다 건너로 가라고 하신, 주님이 그렇게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거는 순전히 섞인 거 없이 주님이 명령하셨으니 명령하신 그대로 순종해서 배를 타고 건너갔던 것입니다.

가다가, 그들이 지금 풍랑 때문에 가지 못하고 신강을 하면서 왜 이렇게 풍랑이 일며 또 왜 이렇게 암만 노를 저어서 그저, 이래 젖고 저래 젖고 수단 방법을 암만 부려 봐도 그 배가 전진하지 안하는 그 이유가 어데 있느냐 하는 그것을 그들은 생각지를 못했지만, 그 본인들은 생각지 못하고 지내갔지만 지나간 후의 그 사실을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구원 도리로 주신 이 도리를 보고는 그 뒤에 사람들이 깨달은 것이 꼭 같이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 듣고. 지금 그 순종하는 행위를 안한 것 아닙니다.

배 타고 목적지 바다 건너로 갈라고 지금 뭐 배도 타고 노도 젓는 것이 처음과 꼭 같이 노를 젓고 오히려 노는 더 열심히 젓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 안 한 것 아닙니다 순종을 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것이 그것이 처음만치 순종 안 해 그러냐? 처음보다 순종을 다 힘써 하고 애써 하고 그대로 말씀하신 대로 갈라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처음에 갈 때와 풍랑이 일어 못 갈 때와 보기에는 아무 다른 조건, 변한 조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배도 그 배 탔고 또 내나 그 기술 가지고 노도 저었고 또 목적지에 갈라고 했고 지금 갈라고 힘을 쓰고 애를 써서 자꾸 그대로 열심히 갈라고 애를 쓰고 이랬는데 뭐 때문에 못 갔느냐 하는 그것을 우리가 다른 성경을 보고 그 다음 순서된 걸 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첫째 나타난 것은 뭐이냐 하면은 풍랑이 일 때에 그들이 무서워했습니다.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걸 보고 유령이라 하면서 놀래서 고만 자기도 모르게 그 비명 소리를 고함을 지른 걸 보면은 그들이 지금. 잔뜩 무서움에 두려움에 쌓여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두려운 것이 무엇 때문에 그거 두려워졌던가? 두려워진 그것은 예수님께서 뭐 오만 기적과 이적을 나타내셨고 또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믿으면 된다는 이제까지 가르친 게 그것인데, 믿으면 된다 하는 가르친 게 그것인데 그들이 주님이 창조주란 것을 그들이 믿었고 또 주님이 말씀하시면 뭐 안 되는 게 없는데.

그러면 그분들이 행동도 그대로 했고 순종도 그대로 했고 또 모든 구비도 배도 탔고 노도 것고 다 했고 그들이 지금 건너갈라고 애를 썼고 했는데 뭐가 그때 가서 안 됐던가? 고것은 주님의 명령하신 말씀은 능치 못한이 없다 주님이 명령하신 말씀은 그대로 된다 하는 요것을, 요 생각을 잊어 버리고, 요 생각을 버런 것과 주님의 말씀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믿는 요 믿음을 버린 것뿐입니다.

외형에 사람이 보기에 하는 행동은 조금도 덜해진 게 없고 감한 게 없었는데 다만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마음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은 우리가 그대로 행할라고 하면 다 된다. 주님의 말씀하신 말씀은 순종만 하면 다 된다.' 하는 요 믿음이 없었다는 고 고장밖에는 거게서 발견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걸 또 증거하는 것이 뭐이냐? 그러면 그 다음에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내니 안심하라' 하니까 고만 그들에게 사람이 완전히 변해 버렸습니다. 주님이 내니 안심하라 하는 '주님이 안심하라 한다' 안심하라 하시는 주님을 그들이 생각했을 때에 그거 그렇게 배 위에서도 참 비명 소리를 할 만치 놀라서 기절한 그런 사람들이 물 위에, 배에서 물 위에 옷도 입은 채로 그대로 물 위에 걸어갈라고 퍼뜩 뛰어내린 걸 볼 때에 그분들이 주님의 그 음성을 들을 때에 모든 두려움이 물러간 것이나 또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무슨 말씀이든지 말씀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하는 고 신앙이라든지 그런 것이 아주 백 팔십도로 바꿔졌습니다 그러면, 풍랑 만난 것과 가지 못한 고것과 고 다음에 이어서 베드로가 그렇게 말할 때에 배 위에서 물 위에 뛰어내렸고 고만 거기서 정금정금 물 위로 걸어갔습니다. 걸어가다가 또 바람 보고 무서워하니까 빠져 들어갔습니다.

요것이 우연히 그때 그래 된 게 아니고 벌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영원 전 다 예정하신 순서 고대로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풍랑이 안 일 수 없고 또 그들은 신강 안 할 수 없고 베드로는 그때 나를 명해서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고렇게 안 할 수 없고 요게 예정대로 고렇게 돼 가지고 고 순서가 나왔는데, 그러면 이 순서를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이 우리에게 구원 도리인데 뭐를 대체로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이런 일이 있는가? 그때, 그시에 우연히 된 그 사실을 우리에게 기록해 준 게 아니고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영원 전 딱 예정해서, 예정은 하나도 변하지 못하는 것인데 예정한 그 예정대로 그 일이 이루어졌고 그때에 고런 모든 형식들이 이루어졌다 그거요.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면, 처음에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라' 예수님이 명령하신 고 명령을 고대로 순종했는데 순종하는 태도도 다르지 안했고 순종하는 기구도 다르지 안했고 순종하는 모든 구비 조건들도 하나도 다르지 안했습니다. 꼭 같았습니다. 꼭 같았는데 왜 풍랑이 일어 못 갔는가? 그들이 왜? 못 가면서 제일 표난 것이 무서워했다 하는 건데 무서워 왜 못 갔던가? 또 고 뒤에 그분들이 예수님의 음성 듣고 난 다음에 '나를 명하여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이렇게 말을 한 걸 보면은 벌써 베드로에게나 모든 제자들에게 두려움이라는 건 하나도 없어져 버리고 사람이 변해져 버렸어요. 그 말을, '오라' 하니까 그만 물 위에. 내렸습니다. 뛰어내려서 걸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주님의 명령하신 것을 주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니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는 다 하면 된다. '하면 된다' 요것이 틀림없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대로 내가 순종만 하면 다 된다 하는 요것을 확신하는 그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라 하면 때에서 물에 내리면 죽는다는 그거는 뭐 틀림없이, 일생 동안 어부로 살았으니까 베드로는 잘 압니다. 물에 빠지면, 옷 입고 물에 빠지면 죽는 것이지 빠져 들어가지 물에서 안 빠져들어갈 리가 없는 것인데 예수님 말씀하신 그 말씀을 '주님이 말씀하신 말씀은 순종만 하면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그대로 된다' 이것을 이제까지 자기의 선입적 관념도 다 부인할 만치, 역사의 통계도 다 부인할 만치 믿었던 것입니다. 믿기 때문에 그렇게 소원을 했고 소원하니까, 명하니까 그 물 위로 뛰어내려 섰다 말이오.

그러면, 물 위로 뛰어내건 것은 그러면 주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을 순종했다 합시다. 주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을 순종해서 물 위에 뛰어내려서 걸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명령이, 그 명령이 이제까지 역사에는 한 번도 없는 일입니다.

역사에 없는 일 아닙니까? 역사가 생겨온 이후로서 그런 일은 한 번도 없는 일인데 베드로가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시니까 그만 배에서 썩 내려 가지고 물 위로 걸어간 이 순종은 이제까지 역사에 없는 일인데도 그들은 역사의 통계도 부인하고 주님의 명령하신 거는 순종만 하면 그대로 된다 하는 것을 믿었던 그 신앙이 얼마나 큰, 의심이 하나도 없이 신앙을 했기 때문에 내렸습니다 그러면, 그래 내려 가지고 물 위로 걸어갔습니다. 걸어갔으니까 그 사람이 뭐 변한 거 뭐 있습니까? 아무것도 변한 거 없습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 순종이 변했습니까? 또 그가 물 위로 걸어간다고 발자국 떼 놓는 것이 변했습니까 주님에게 갈라고 하는 향방이 변했습니까 뭐 변했습니까? 암만 봐야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없는데, 변한 것이 나타난 것이 바람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져 들어가는지라 이랬습니다. 바람을 보고 어째 무서워했을까? 그러면 처음에는, 그때까지 바람이 안 분 게 아닙니다. 바람은 계속 불었습니다. 계속 분 것은 '배 위에 오르시니까 바람이 잔잔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갑자기, 예수님이 배 위에 턱 오르니까 바람이 잔잔하니까 모두 놀래서 참 이거 어찌 풍랑이 다 이렇게 복종하는가 이래 가지고 다 놀래서 주님 앞에 머리를 숙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풍랑이 뭐 안심하라 한다고 풍랑이 변동했는가? 풍랑 그대로 일었습니다. 그대로 일었는데, 그대로 풍랑이 일어서 지금, 쫌 전에는 이 풍랑에서.

죽겠다고 하던 그 베드로가 '나로 명하여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그때, 그러면 과거에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수 리나 지나왔다가 풍랑으로 인해서 심히 두려워서 떨었던 그 두려움은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그 두려움은 없어졌습니다.

두려움이 없어졌으니까 그분들이 주님에게 대한 믿음이나 주님이 명령하신 거는 고대로 된다는 그 믿음이 틀림없이 확고하게 된, 믿음을 인해서 두려움도 없어졌고, 또, 그 믿음을 인해서 두려움이 없어진 것이 증거가 뭐인가? '나를 명해서 바다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걸어오라' 하니까 물 위에 뛰어내린 걸 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난 다음에 그들에게, 믿음 없어진 것이 믿음이 다시 생겼고 또 나를 명해서 오라 하십시요 할 때에 배에서 물에 뛰어내린 걸 보면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뭐 아무 것이라도 순종하면 된다 하는 고 믿음이 확고하게 생겼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그렇게 말하고 주님이 오라 하니까 물 위로 뛰어내렸는데, 뛰어내려서 걸어갔으니까 그러면 걸어갈 때와, 걸어갈 때에 베드로와 물로 빠져 들어갈 때 베드로와 다른 게 뭐 있습니까? 달라져 변해진 게 뭐 있습니까? 주님이 변해졌겠습니까?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라 하는 데 그게 변해졌겠습니까? 행동은 하나도 안 변했습니다. 외부의 행동은, 순종은 하나도 안 변해졌어. 순종은 하나도 변해지지 안하고 그랬는데 처음에는 물 위로 걸어가다가 물 위로 걸어가지 못합니다. 물에 빠져 들어갑니다. 빠져 들어가는데 그러면 사람 보기에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그러면 물 위로 능력으로 초자연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걸어가던 것은 그만 걸어가지 못하게 딱 됐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물에 빠지는 것을 주님이 뭐라고 판단해 가지고 그 흠점을 뭐라고 말씀했는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야' 이래. 믿음이 적은 자야.

믿음이 적다 말은, 인제 믿음이 적다니까 처음에는 배에 뛰어내릴 때에는 믿었는데, 때에 뛰어내릴 때에는 믿었는데 그 믿음 가지고 오다가 그만, 배에서 뛰어내릴 때에 믿음 고 믿음만 계속 했으면 주님 앞에 도달했을 건데 고 믿음이, 가다가, 처음에는 그저 주님만 봤고, 주님만 봤고 주님이 명령하시면 된다. 주님과 주님의 명령만 요 둘만 보고 주님의 명령하셨으면 그대로 우리는 순종하면 다 된다 요걸 가졌는데 고 뒤에 '바람을 보고' 하는 걸 보면 바람을 봤으니까 주님만 보던 자가 이제 주님을 놓쳤기 때문에 바람을 봤습니다. 주님을 놓쳤기 때문에 바람 본 요게서 고장이고, 그러면 또 그 다음에, 주님을 놓쳤기 때문에 고장이고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면 된다' 하는 요 믿는 믿음이 요게 그만 의심했기 때문에 요게 고장입니다.

그러니까 그 결과로 그들에게 이루어진 게 뭐이냐 하면은 무서워 빠져 들어가는지라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여게서, 지금 간단하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자꾸 알면 이거 자꾸 연구를 해 가지고 들어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고 광경과 같은 그런 것이니까 우리가 아무리 순종하는 행동한다 해도, 행동이 없어도 안 되고 행동만 가지고도 안 된다. 그러면 처음에 갈 때도 순종하는 행동은 꼭 구비했지 하나도 부족함 없이 순종하는 순종 행동은 꼭 같았습니다.

순종함은 같았는데 '주님의 말씀은 순종만 하면 능치 못함이 없다' 하는 요것을 믿는 고 믿음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는 요것을, 주님의 명령하신 건. 뭐이든지 고대로 하면 된다 '고대로 하면 된다' 하는 요 믿음이 없었지, 하는 행동은 했습니다. 행동은 했지만 주님의 말씀은 순종하면 능치 못함이 없다 하는, 고대로 된다는 요 믿음이 없어서 처음에 가다가 고장났고, 또 두번째 물 위로 걸어갈 때에도 다른 거 꼭 같았습니다. 그분이 물 위로 걸어갔는데 뭐 걸어가는 발자국을 안 떼 놨겠습니까 또. 주님을 바라보기를 잘못 바라봤습니까 주님 바라본 것도 다, 고대로 주님은 봤기 때문에 지금 호소를 했지요.

바라본 것도 꼭 같았고 발자국 떼 놓은 것도 꼭 같았고 물 위로 걸어간 것도 꼭 같았는데 왜 빠져 들어가느냐? 빠져 들어가는 것은 단지 그 고장이 뭐이냐 하면은. 믿지 않기 때문에 빠져 들어갔다고 했어. 믿지 않기 때문에 빠져 들어갔다. 믿지 않기 때문에 빠져 들어갔다. 처음에도 그렇게 하던 사람이 왜 그와같이 지금 못 갔는가? 그 이유는 주님의 명령은 순종하면은 능치 못함이 없다 하는 믿음 없는 고것이 고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은 뭘로 치우쳐 가지고 안 되겠느냐? 교리와 신조를 가지고, 요렇게 요렇게 하면 된다 하는 그 교리와 신조 가지고 자꾸, 논리적인 신앙을 가지고, 논리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실행은 합니다. 안 하는 게 아니오.

논리적인 신앙을 가지고 고 지성의 지식적인 지식의 신앙을 가지고 고대로 실행은 합니다. 그 실행을 하는데 거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지를 안합니다.

기적이 나타나지 안해서 교회를 또 소원해도 부흥이 안 되고 또 뭐가 이루어지지 안하고, 그러니까 요 하나님이 말씀하신 고 말씀을 이 성경대로 다 고대로 실행할라고 애를 써서 고대로 실행을 해서 지킵니다.

실행을 해서 지키는데, 물 위로 걸어간 거와 같은 초인간적인 능력이 와서 역사하지 안하기 때문에 그 일이 성공이 안 된다. 그러면 아는 것을 잘못 아느냐? 아는 것도 바로 알았고 또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할라고 애를 쓰고 또 순종을 지금 하고 있고 이랬는데 다만 그 신비한 하나님의 능력이 오지 안해 가지고 일이 안 되니 그건 뭐냐? 그 고장은 뭐이냐? 믿지 않는 그거 믿음의 고장인데.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으니까 믿음의 그 결과대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서 신기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그들이 체험했기 때문에 이제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런 사람으로 또 돼 가지고, 믿기만 하면 된다 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해 놓으신, 믿기를 왜 믿느냐? 그저 맹목적으로 믿기만 하면 된다 이라니까 그 믿음 가지고 되기는 됐지만 그 믿음 가지고 언제까지 되는 거는 아니고 처음에는 '믿기만 하면 된다' 하고 믿으니까 됐는데 그 다음에 또 믿기만 하니까 안 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마지막에는 아무 그런 일이 안 되고 이러니까 헛일이라 그 말이오.

또, 한 사람들은 고 이치에 맞춰서 그 이치를 논리적으로 잘 알고 있지만 또 거게도 하나님의 능력이 안 갑니다. 논리적으로 다 하고 논리적인 그 이치를.

그대로 순종하는 행동을 하는데 그것도 안 됩니다. 또, 믿사옵나이다 하는 것도 안 됩니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둘 다 안 됩니다. 이 둘 다 안 되는 것이 이것이 오늘 현실의 교회라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사고이니까 이것은 이 둘이 합해야 된다. 합해야. 이치를 알고 믿어야 되고, 또 이치 알았으면 믿어야 되고, 믿으면 이치를 알아야 되고, 믿으면서 믿음은 가졌으나 이치를 모르고 이치는 가졌으나 믿음이 없고 이래 가지고 우리가, 예수교는 순전히 인간이 이룰 수 없는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의 역사인데 그 역사를 우리가 받지를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엊저녁에 증거한 것이 무슨 증거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이 세 가지 큰 은혜 주신 거. 참 말할 수 없는 이걸 그저 하나 제목만 줬습니다. 제목만 줬어. 백 가지를 얻는 데에 백 가지 순종을 하도록 백 가지를 우리에게 가르치며 이 백 가지를 네가 지금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하지 안하고 백 가지 가운데에 그 머리되는 거, 머리되는 거 하나만 딱 말하며 고것만 순종하면 이 백 가지가 다 따라 하도록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주님이 하시는 이 일을 다 기록할라 하면은 온 세상에 둬도 둘 곳이 없을 만치 이렇게 복잡한 많은 양을 하나님께서 간추려서 이 신구약 육십 육 권에 아주 간단 명료하게 간추려서 거게 대해서 강령만 들어서 말했는데 강령 들어서 말하면, 몇 가지만 순종하면 그 한 가지 순종에 그 속에 뭐 백 가지도 천 가지도 많이 들어 있는 걸 한 가지 순종하면 되도록 요렇게 축소해 가지고 우리에게 해 주시고 한 가지 순종만 하면 고다음에는 성신의 감화가 은밀 의지, 비밀의 하나님의 뜻 비밀의 은밀인 요 수 많은 것을 고 하나만 순종하면 고 하나 순종하면은 하나 순종해서 그 봉우리를 인봉을 딱 떼 버리면, 하나 순종해서 딱 떼면 그 속에 수천이 수백이 있는 것이 그거는 성신이 안도해 가지고 다 할 수 있도록 요렇게 모든 것을 축소시켜서 간단 명료하게 요렇게 해 주신 이것이 큰 은혜요.

또, 이렇게 해 놓은 것을 이것은 전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이 어려운 일인데 이것의 대부분이 믿기만 하면 됩니다. 뭐 행동하지 안하고 그저 '예,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틀림없습니다. 확실히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은 되는 것이 거의 반수 이상 됩니다. 믿습니다 하면 되는 것이 반수 이상 돼.

그 다음에 또 나머지기는 믿습니다만 해 가지고 안 되고 믿습니다 하고 믿는 행동인 그거 자기가 실행을 해야 되는 그게 또 있다 말이오. 실행해야 되는데 그러면 실행해야 되는 그거는 사람이 실행을 하는 행동 가지고 하도록, 네가 실행하는 행동으로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해 놨느냐? 행동만 하면, 흉내내는 거뿐이라. 인간의 힘이, 예를 들면은 쌀이 백 가마니가 있는데 그 백 가마니를 '이걸 들어라.

이놈을 들어서 이거 들어 가지고 네가 해라. 들어다가 네가 하면 된다, 이 백 가마니를 이걸 그만 값도 낼 거 없이 이놈 들어다가서 네가 하기만 하면 그만 백 가마니 쌀은 네 쌀 된다. 들어라.' 이라니까 이라면서 '아이구, 내가 어찌 그거 백 가마니를 그걸 들 수가 있습니까?' '들면 된다. 들어라. 들고 가거라. 들고 가면 된다.' 된다 해서 들고 가니까 드니까 들립니다. 들려 가지고 들고 이거 백 가마니를 들고 와서 오니까 백 가마니를 내가 갖다 놨습니다. 또 가서 백 가마니 들고 옵니다.

또 백 가마니를 들고 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천 가마니도 들고 옵니다. 또 만 가마니도 들고 옵니다. 가서 드니까 들립니다. 들고 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들고 가라 하니까 믿음으로 순종하니, 믿고 순종하니까 그게 들려 가는데 들려 가는 건 제 힘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래 놓고는 이제 그것이 한 가마니도 못 들고 가고 쌀 한 말이나 들고 갈까 한 가마니도 못 들고 가는데 그 백 가마니를 들고 가라 해 놓고 백 가마니를 들고 갈라고 이래 드니까, 드니까 들립니다. 들리니까 또 가져가니까 가집니다 이러니까 자꾸 아이구야, 쌀은 얼마든지 있는데 그거 지금 자꾸 백 가마니 뭉텅이 천 가마니 뭉텅이 아래 있으니까 들고만 오면 전부 내거 되니까 이거 큰 부자 되겠다 싶어 자꾸 부지런히 열심히 들고 갑니다.

들고 가는데, 들고 갈 것 많이 들어다 놓고 난 다음에는 '아따, 내가 참 이 쌀 이렇츰 많이 들고 왔다. 들고 왔다. 이렇게 많이 들고 왔다.' 하는 고것은 스스로 섰다 내 힘으로 내가 일을 했다 스스로 섰다 하는 자이고 인제 고 다음에는 나중에 깨닫고 나면은 이게 우리가 이래 한 게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하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우리가, 들고 가라고 이렇게 하니까 하나님이 내가 들고 가는 형용만 이래 하니까 당신이 뒤에서 들어 주셔서 천 가마니도 당신이 들고 만 가마니도 들 수 있으니까 그 능력이 들어 주셔 가지고, 드니까 들려지니까 가니까, 어리석은 자는 제가 단독이 제 스스로 제 혼자 한 걸로 이렇게 알고 그러면 제가 한 거같이 여겨지도록 해야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네가 순종해라 하니까 돼집니다.

그러면 되어지는 이것이 나중에 가서 하늘나라 가서 보니까, 나는 천 가마니 만 가마니 쌀가마니를 다 들어 와서 내걸 만들었는데 자기가 들어 왔는 게 아니라 가만히 가보니까 자기는 찍해야 쌀 한 말도 들고 갈까 싶지 않은데 힘은 다한다 말이오. 힘을 다 써도 안 들리는데, 안 들린다 말이오. 힘을 남은, 힘을 하나도 남구지 안하고 힘을 다 들여다 쓰니까 버쩍 들려 올라온다 말이오. 이놈을 조금 덜 쓰니까 안 들리고 다 쓰니까 들려. 다 쓰니까 들려 올라오니까 제 힘으로 들려 올라온 줄로 이렇게 생각했는가 보니까 제 힘을 다 써도 그거는 억만분의 일도 되는 거는 아니고 절대 안 되는 건데 있는 힘을 다 쓰니까 고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신실히 지키시기 위해 가지고 이렇게 들어 주셔 가지고 이래 갖다 놓은 것인데 가보니까 전부 제 힘으로 들고 온 것은 하나도 없고, 거기 가 보니까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은 하나도 아니고, 사람의 능력은 유한한 인간이기 때문에 유한이나 만들고 무한을 만들 수가 없고 또 사람은 이거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불완전이나 만들 수 있지 암만 해 봤자 불완전이 완전을 만들 수가 없고 또 죽은 자 생명이 없는 자이기 때문에 생명 없는 자가, 죽은 자가 생명을 만들 수가 없는 건데 이거는 순전히 하나님이 단독 만들었고 인간에게 그저 이와같이 네가 믿고 행해라 하니까 믿고 행하는 데 전심 전력을 기울여 행한 것뿐이지 만든 거는 순전히 먼지 만한 것도 내가 만든 거는 없고 순전히 하나님 단독 만들었는데 나는 그분이 만들어 주시도록 약속한 것을 내가 순종하면 되고, 믿고 순종하면 된다 했기 때문에 믿고 순종하는, 내가, 약속한 것을 믿고 순종하는 나 할 일만, 나 할 일 내가 한 것뿐이지, 믿는 일을 했고 순종하는 일을 한 것뿐이지 실상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은 내 힘으로 이루어진 거는 아니고 순전히 객관의 역사로 이루어졌다 하는 것을 그때 봤기 때문에 그들이 면류관을-면류관은 성공했다 말이오. 성공이라 하는 표를 면류관이라 말합니다-면류관을 다 벗어서 주님에게 다 드렸다. '내가 한 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거 다 전부 주님이 하셨습니다. 이거 이 성공은 다 주님이 받으십시오. 주님이 했지 나는 이 성공에 대해서 하나도 조그마치도 여게 내가 내 힘으로 내 공로로 한 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라며 면류관을 드렸다는 걸 지난밤에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세 가지 큰 것이 우리에게 참 은혜로 이렇게 왔는데 세 가지 큰 거.

그러면, 제일 처음에 세 가지 큰 거 하나는 뭐입니까? 하나는 뭐입니까? 세 가지 이 큰 거 이거 중요합니다. 지난밤에 뭐 설교를 한 시간 사십 분인가 했다 하는데 이거 지금 여러분들이 지금 거리가 멀어 모르기 때문에 자꾸 이리저리 말하면 속에 성령의 감동으로 믿음이 들어갈까 싶어서 한 것이지 뭐 말로 들어 가지고 그런 게 아니라 능력을 받아, 인간의 주관을 초월한 깨달음과 초월한 믿음과 초월한 능력을 얻는 그것이 다 성령의 은사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하나님께서 큰 공짜배기 이 세 가지를 줬는데, 은혜를 줬는데 이 세 가지 은혜를 준 가운데에 첫째가 뭐입니까? 일호. 말하십시오. 말을 하십시오. 저 뒤에도. 소리를 내서 말해 봐요. 모르면 모른다고, 모르는 사람 손을 들어 봐요.

모르면 모르는 사람 손을 들고. 그러면 세 가지 은혜 첫째가 뭐이라 하는 것을 아는 사람 또, 말을 해 봐요. 모르는 사람 저 뒤에 하나밖에는 안 들었는데 다른 사람 다 안 들었으니까 다 아는 사람인데. 그러면 이 큰 은혜 세 가지를 줬는데 첫째가 뭐입니까? 고함 질러 봐 대답해요. 고함을 질러 말해 봐요. 내 귀에 들려야지. 예? 엉뚱한 소리만 하니까, 여러분들이 귀가 없어! 들을 축복이 없어! 듣는 축복이 없어! 깨닫는 축복도 없어! 꽝꽝 얼었어! 전부 육덩이기 때문에 헛일이라 말이오.

엊저녁에 내나 가르쳐 놨는데 뭐 지금 이 시간도 가르쳤는데 뭐 지금 사죄는 무슨 사죄 뭐 공짜배기릍 준 거 뭐 사죄? 엉뚱한 소리하면 안 돼. 첫째가 뭐이요? 요 조그만한, 몇 살이고? 열 일곱 살 요거는 더 키워지지 안 했기 때문에. 요거는 인간의 주관의 썩은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잘 듣네. 여기 OOO목사 아들이 요맨한 건데 그거 물으면 다 들어. 요거도 물으면 주일학생은 물으면 다 들을 거라.

주일학생은 다 아는데 왜 박사는 모르느냐? 왜 장로님들은 왜 모르느냐? 저 잘난 사람은 왜 모르느냐? 죽은 게 가득히 찼기 때문에 그걸 회개해야 돼.

요새 지금 어떤 여인이 나를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걸 자꾸, 내게 아니야, 내가 하나님의 세워 주신 서부교회 대리자이기 때문에 이 서부교회에 하나님이 많다 그 말이오. 하나님 많다 말은 우상이 많다 말이오. 여러분들이 우상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거 나를 쳐서 내게 지금 이거 말하는 것이지 내게도 우상이 없기는 뭐 없지 안하겠지만 내기 아는 대로는 우상이 없어. 내가 아는 대로는 내가 내게 우상이 없다 그 말이오. 이거 여러분들이 지금 우상을 회개해야 돼. 이거 우상 때문에 모르는 거라. 그러면 여게서는 아는데.

첫째가 뭐이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주실 축복을 낱낱히 기록할라고 하면은 온 세상에 둬도 다 둘 곳이 없을 만치 이렇게 많은데 요걸 간추리고 간추려서 고게서 제일 고게서 간추려 가지고. 절정만 했습니다. 절정. 예를 들어서 비유컨대는, 지리산이라 하면 지리산 상봉 '지리산' 하는데 지리산에 상봉으로 말하면 내가 가 보지는 안했지만 아마 그 산도 그럴 거라. 지리산 상봉이라 하면 그 상봉이 찍해야 몇십 평에 지나지 못할 겁니다. 몇십 평 되거나 뭐 그렇지 아주 상봉으로 말하면 몇십 평도 안 될 것입니다. 이런데 그 '지리산' 하면은 지리산 밑에 붙어 있는 그 산으로 말하면 얼마나 돼? 지리산이, 몇 도를 발을 뻗치고 있습니까? 지리산이 몇 도에 연결돼 가지고 있지요? 어? 이 공부 모두 안 했나, 이거 학교에서? 두 도? 무슨 도 무슨 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는 모르겠는데 경상남도하고 그런가? 아마 한 삼 도나 걸쳐 있을 겁니다. 이렇게 퍼졌어.

퍼졌는데 고 위에 절정은 지리산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산의 모든 절정만 이렇게 말에 표시한 거와 마찬가지로 신구약 성경에, 우리에게 이 신구약 성경 주는 것은 온 세상에 둬도 다 기록할라 하면 모자랄 만한 그 수많은 하나님의 계약의 축복을 간추려서 이 신구약 성경 한 권에다가 간추려 가지고 준 이것이 큰 은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간단 명료하게 해서 요게 있는 하나를 믿고 순종하면은, 믿고 순종하면 봉이 떼져. 믿고 순종하면 인봉한 봉을 해 놓은 거, 그 사람이 제 모가치 고거 하나를 믿고 순종하면 고거 하나 봉을 뚝 떼고 보니까 그 속에 무진장이라. 성신의 감동이 와서 가르쳐 준 그걸 가리켜서 은밀한 의지라 이랍니다.

은밀한 의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숨어 있는 은밀한 뜻은 한없는데 그거는 성령이 가르쳐 가지고 안다 말이오. 이런데, 수많은 것을 간추려서 이렇게 간단 명료하게 축소해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쳐 준 이것이 하나님의 큰사랑이다.

그게 은혜다 그 다음에 둘째로 은혜는 뭐입니까? 이렇게 이것이 참 영생하는 것이고 원 하냐 순종이 이 우주보다 가치가 있는 영계의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했는데 온 천하를 얻고도 네가 하나 잊어버리면 너는 손해 갔다. 그러면,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얻는 그 하나가 우주보다 귀하다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 안 했습니까? 온 천하를 얻어도 요 하나 잊어버리면 너는 손해 갔다 하니까 그 평가가 온 천하보다도 하나 믿음으로 순종한 그것이 가치가 크다는 것을 이거 말씀해 놓은 거 아닙니까? 이걸 도무지 깜깜하게 심령이 어둡기 때문에 암만 말해야 이거 모 론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 굶어야 돼! 죽어야 돼! 굶어야 돼! 이제 돈이고 그런 거 다 귀신 든 걸 다 내 버리고. 고쳐야 돼요. 제가 세상 지식이 예수 믿는 것보다 더하고 하나님의 권능 얻는 것보다 더하고 믿음 얻는 것보다 더 하고 하나님보다 더한 그 자가 무슨 하늘나라 구원을 얻어? 어림도 없어. 네 힘 가지고 네가 살지 하나님의 축복과는 감감 멀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요새 지금, 음신 들어 있는 것을 우리에게 실물로 가지고 지금 우리에게 시험해서 보이고 있고 우상 섬기는 것을 실물로 가지고 보이고 있고 또 공부 귀신, 지식 귀신 든 것을 실물로 가지고 우리에게 보이고 있는데 이 하나를 보아서 그걸 깨달으면 그 승리할 것인데 도무지 형식 계시를 무시하고 있다 그 말이오.

저는 못 믿어도 그랬습니다. 6·25 때는 그때 제가 그 면에서 이호 사형수로서 사형 집행을 이호로 받아 가지고 있습니다. 사형받을 자로 이호에 기록돼 있는 게 저입니다. 그랬는데 농산 가 가지고 그날 여기 OOO 지금 목사인데 OO목사 조그만할 때 나하고 같이 거기 누워자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안 그런 아이가 그만 오줌을 싸서 그 오줌이 내 옷에 배어 들어왔다 말이오. 그때 내가 퍼뜩 깨닫기를, '네가 이놈아,' 여게 있으면, 오줌은 그거 배설물 아닙니까? 오줌 배설물 아니요? 거름 아니요, 오줌은? 오줌은 썩은 거름 아닙니까? 오줌은 썩은 거름, 썩어 나온 게 그게 오줌인데 배설물이라.

내가 왜 이 오줌에 내옷이 적셔졌느냐? 퍼뜩 깨닫기를, 하나님께서 내게 가르쳐 주지 안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고 다 계시 아닌 게 하나도 없는데 이것도 이거는 성경 계시, 특별 계시가 아니고 이거 자연 계시, 일반 계시인데 내가 여게서 자고 그날 거기서 저 사형한다고 벌써 보고 가 왔기 때문에, 오지 말라고 보고가 왔기 때문에 내가 여게서 자고 여게서 예배 볼라고 여기 지금 자고 있는 이것은, 네가 여게서 잔 이것이 네가 너 썩는 길이다. 네가 그 오줌 들어갔는 거는 그거 썩는 것이다. 네가 썩는다는 그 계시로 하나님께서 형식 계시로 나에게 보여 주신 거로구나 고것을 내가 똑 깨달았기 때문에 그분들이 지금 잡아 죽일라고 그날은 사형을 시킬라고, 인민 재판에 사형을 시킬라고 지금 거기서 하고 있는데 미리 와 가지고 못 오구로 이렇게 기별하고 이래 갔는데 고 자연 계시를 보고 '내가 여기 있으면 썩는다 내가 있어 썩어서 죽는 것보다는 가서 살아서 죽는 게 낫지 않느냐?' 거게서 마구 그 가랫대까지 도망을 쳤습니다. 달음박질 막 해 가지고, 뭐 그때는 젊으니까 달음박질해 가지고 가니까 예배 시간 십 오분 전입니다. 사택에 뛰어 들어가니까 거기 집사들이 막 기절을 합니다. 아, 지금 오늘 인민 재판해 가지고 사형 처분할라고 이라고 있는데 어짤라고 왔느냐고.

나는 내가 썩을 수 없어 왔다.

나는 거기 있을 수 없다, 그라면서 바로 즉시 강단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강단에 뛰어 올라가 가지고 기도하다가 고 예배 시간 돼서 거기서 외쳤는데 그날 큰 은혜가 와 가지고 큰 은혜, 뭐 가 가지고 가니까 처음에 갈 때 그 계시를 이거 하나님이 나에게 지금 썩는다 하는 요걸 보여 준 것이라 하는 것을 내가 깨달았을 때에 그곳까지 갈 용기가 생겼고 담력이 생겼고 기쁨이 생겼고 열심이 생겨져 버렸고 거게 가 가지고 그 사람들이 또 웅성웅성 자꾸 하는 바람에 또 믿음이 떠나 가지고 또 두려움이 났다가 강단 위에 올라가니까 그 두려움이 하나도 없어지고 크게 외쳤는데 그날 인민 재판 할라 했는데 인민 재판이 연기가 되고 그날 인민 재판을 안 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들려지는 말이나 모양이나 그런 거 벌로 보지 않습니다. 이런데 내가 요새는 좀 어두워졌는지 그 여자들이 한 여자는 나하고 결혼하자 하고 또 한 여자는 또 나를 하나님이라고 하고 또 한 학생은 고함을 자꾸 질러서 미친 소리를 하고 고함을 질러 쌓고 하는데 그거 세번째라, 그거는.

이랬는데, 여게 대해서 둘은 내가 깨달았어. 깨달아 가지고, 이것이 그 여자는 하나님의 계시 이용물로서 이용을 당했고 그 계시는, 목사에게 한 것은 교인들에게 다 말하는, 다른 교인들에게 말하면 교인들을 그거 죽을 것이고, 저하고 여자가, 그 여자가 결혼하자 하는데 여기 남반들 결혼하자고 자꾸 삐식거리며 달라들고 자꾸 이래 온다고 하면은 이거 기절할 거라 말이오.

그러니까 그 대표인 나한테 거석한다 말이오. 나는 그 여자를 내가 한 번, 단지 그 권찰이 데리고 와 가지고 그때 초면으로 만나서 인사했지 모르는 사람이야.

이랬는데, 그게 아마 이 형식 계시다. 깨닫고 거게 대해서 설교하고 난 다음에 그 여인이 저게 와 있는지 몰라도 깨닫고 설교하고 난 다음에 그 여인에게, 여러분들과 나와의 더러운 음신 고것을 쫓아내서 회개를 하면 그게 없어집니다.

없어지면 회개한 것이고, 또 있으면 또 재발해서 우리 속에 그 음신의 더러운 귀신이 들어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거 하나 표시로 하는 것이고, 또 우리에게 우상된 것을 완전히 회개를 했으면 그 여인이 그런 소리를 안 할 것이고 우리 속에 이런 우상 저런 우상 수많은 우상들이 여러분들이나 내 속에 이게 나가지 안하고 있으면 또 그렇게 할 것이고, 또 우리에게 공부시키는 공부 귀신이 들어 가지고 우리 구원을 전부 완전히 삼키고 만데 이 공부 귀신 그것도 마귀인데, 사탄인데 이 죄를 회개해서 공부 귀신 이 귀신을 우상을 물리치면 그것이 낫고 그럴 것이고 안 물리치면 그 여자가 그렇게 하다가 그 여자는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낫울지라도 나머지기, 이렇게 말해 주고 이렇게 해도 회개하지 안한 자들을 망칠 거라 말이오.

그래 이번에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서부교회를 고쳐서 살릴라고 하기 때문에 이제 망하는 것도 많이 망할 것입니다. 막 뚜드려 망해서 박살이 될 것이고 뭐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서 굉장히 뛰어 올라가는 자는 뛰어 올라갈 것이고.

앞으로 하나님의 큰 능력의 역사가 인제 우리 교회 있을 거라 하는 것을 제가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인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 무한한 이 축복을 축소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셨다.

또, 둘째 거는 뭐이냐? 이 약속하신 이 계약의 축복을 믿기만 하면 된다. 이런 공짜배기가 어데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와같이 해 주신다고 했으니까 이 사실을 내가 믿기만 하면 된다. 믿기만 하면 되는 이 공짜배기 아니요?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너무 공짜라서 안 믿는다 그 말이오. 공짜라서. 믿기만 하면 된다 하는 걸 했지. 나머지기는 네가 순종해서 행하면 된다. 행하는 것도 우리가 행할 수 없는 거라.

천하 인간이 다 달라들어도 우리 구원은, 하늘나라 구원은 털끝만한 것도 천하 인간이 다 달라들어도 인간의 힘으로서는 하늘 나라의 구원은 먼지만한 것도 털끝만한 것도 못 합니다. 왜? 이거는 인간을 초월한 것입니다. 다 영원성이요 완전성이요 불변성이요 영생성인데 인간이 어데 그걸 할 수가 있습니까? 할 수 없다 그 말이오. 없는 건데 이제 하나님께서 이래 하면 된다 할 때 내가 그 말씀 믿고 내가 순종해서 하면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 이 큰 선물 주셨는데 이 큰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주신 이유가 뭐입니까? 이유가 뭐이요? 고것만 말하십시오. 이유가 뭐이요? 저 OOO OOO이가? OOO 말해 봐. 일어서서 말해 봐. 의. 의가 뭐인데?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게 뭐인데?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게 뭐이요? 대답을 해요, 좀 알거든.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게 뭐입니까?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다! 지옥을 가든지 천국을 가든지, 지옥 가는 건 우리 기본구원은 영은 하늘나라 가지만 우리 심신의 기능은 다 지옥 가든지 천국 가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택자도 안 믿는 자는 그 심신의 가능이 다 지옥갑니다. 왜 권능이 없느냐? 권능이 없는 거는 우리가 이거 고장이 나 가지고 그런 것이라.

이 세 가지 선물을 준 것이 의를 인해서 줬는데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뭐입니까? 제일 좋아하는 것이 뭐이요? 양성원 학생. 저 O 조사님.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의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근본부터 지저분한 의도 의는 좋아하십니다. 의가 있으면 거기 책임지시고 보호하시고 망치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의가 있는 가정에는 절대 안 망합니다. 의가 있는 사업은 망하지 않습니다. 의가 있는 그 말은 절대 소멸이 안 됩니다. 의가 있는 그 모든 행동은 다 영생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의를 좋아하시는데 천상 천하에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제일, 다시는 없는 완전하고 지극히 큰 의가 있으니 그 의의 이름이 뭐입니까? 그 의의 이름이 뭐입니까 저 뒤에도. 말하는 거, 부끄러워하지 말고 말을 하라 그 말이오. 하나님이 좋아하는 제일 큰 의가 있으니 그 의가 뭐입니까?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가 뭐인데? 의는 뭐인데 의는 하나님의 소원하시는 그 뜻을 완성한 것이 의인데 그러기 때문에 개인이 하나님의 뜻 하나 완성했으면 고 의는 하나님이 보존하시고 그 가정에 사회에 회사에 천하가 불탈 때도 의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보내지 불타서 망하지 않게 하십니다.

이런데, 그 의가 제일 큰 의요 가치 있는 의라고 하면은 그 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이 의인데 그러면 그 하나님의 뜻을 완성한 그것이 하나님의 제일 큰 뜻이요 제일 크게 소원하는 것이요 제일 좋아하는 것이요 크게 문제되는 그것을 순종했어야 될 것 아닙니까? 이렇게 가르쳐도 모르면 모릅니다. 절대 모릅니다.

이렇게 가르쳐도 모르면 몰라요. 이렇게 가르치는 데가 없어!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의인데 의 중에도 작은 의 있고 큰 의 있고 하니까 작은 의는 뭐이냐? 하나님의 뜻 중에도 작은 뜻이 있고 하나님의 큰 뜻이 있고 하나님의 최대의 큰 뜻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제일 소원하고 제일 근심하고 걱정하고 제일 좋아하는 큰 뜻이 있으니 그 큰 뜻 세 가지를 완성한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 제일 하나님이 소원한 게 뭐이냐? 하나님과 이 피조물 사이가 삐뚤어져 있는 거 이거 하나님이 제일 큰 문제고 창조주와 피조물이 삐뚤어져 있는 거 이 문제를 이걸 삐뚤어진 거를 바로 잡았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소원이었데 바로 잡은 이것이 사죄의 의요.

또 창조주와 피조물이 하나가 돼 가지고 창조주에게 이렇게 피동해 창조주에게 연결돼 가지고 창조주가 흔들면 흔들고 창조주에게 딱 들어붙어 가지고 있어야 영생이 되는데 창조주와 이와같이 들어붙지 안하고 엉뚱하게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끊어져 있기 때문에 창조주와 들어붙이는 거 들어붙이는 이게 뭐이냐 하면은 칭의라 그 말이오. 칭의.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는 이것이 이제 이 행함의 의라. 칭의야.

또, 하나는 뭐이냐? 창조주와 피조물이 원수되어 있는 걸 이걸 화친을 해야 되지 뭐 암만 행동을 해 봤자 그 속이 벌어지면 안 된다 말이오. 그러면 암만 행동은 따라 하지만 속으로는 뻘룩하이 속으로는 다르다 말이오. 암만 내외 간이 둘이 밥도 같이 먹고 일도 같이 하고 이렇게 잠도 같이 자지만 속으로 뜻이 딱 들어맞지 안하고 속으로 이래 가지고 있으면서도 얼마든지 사는 사람 많이 있지 않소? 그저 부득이 하는 행동은 다 같이 하지만 속에 이 뜻은 하나가 안 됐다 그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이 뜻이 하나가 돼 가지고 딱 들어 화친을 가져야 될 터인데 화친되는 이것이 제일 큰 문제인데 하나님이 제일 큰 소원하는 문에 이 문제를 이 완성한 이것이 하나님의 의인데 이 완성을 누가 했나? 이거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가지고 신인 양성 일위가 돼 가지고 이 일을 완성했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큰 의, 이 큰 의 때문에 우리에게 이 세 가지 선물을 줬다 말이오. 이 의가 얼마나 크며 이 의 때문에 이 세 가지 선물을 준 것인 것을 우리가 깨닫고 믿을 때에 하나님의 이 세 가지 완성한 이 큰,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나는 의를 가진 자다, 나는 이제 사죄를 가진 자이다, 칭의를 가진 자이다, 화친을 가진 자이다,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가졌다는 것을 믿는 요 믿음만 가지면 되고 요 믿음을 가지고 말씀하신 거는 다 고대로 실행하면 다 된다 그 말이오.

요 믿음만 가지고 내가 행할 때에는 내가 행할 수 없는, 내가 하나도 행할 수 없는 그 모든 거 다 행할 수가 있고 또 요 믿음만 가지고 이 계약에 돼 있는 것은 믿기만 하면 다 되고 요 믿음만 가지고 요 계약에 있는 것을 내가 알기만 하면 다 돼. 그 간추려 놓은 것을 내가, 요것을 다 알기만 하면, 요 믿음 때문에 알기만 하면 다 되고 요 믿음 때문에 아는 것을 믿기만 하면 다 되고 요 믿음 때문에 아는 것을 행하면 다 되고 이 큰 선물이 우리에게 온 이것인데 이 세 가지 하나님의 의라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난밤에 그렇게 말해도 귀넘어듣기 때문에 안 된다 그 말이오. 이래서 오늘 아침에는 내가 뭐 곤해서 떨어져 버렸어요. 떨어졌는데, 이제 사람이 와서 깨워서 알았어. 내가 그래 안 하면 몰랐어요. 그래도 내가 퍼뜩 재독하라 하다가 가만 안 되겠어. 이거 이거 뭐 양성원 학생들도 지금 인제 오늘 저거 집에 다 가는 거, 학기말이지? 학기말 아닌가? 가는데 아무래도 이거 알려야 되겠다 해서 안 된다 하고 내가 나왔습니다. 나왔는데 여러분들이 이걸 가지면 고만 천상 천하에 부자가 되고 이거 안 가지면 다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 하나님의 큰 의 이 의가 가치 있어서 우리에게 세 가지 선물 주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 의의 가치를 모르고 이 의가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으며 이 의가 어떻게 힘들여 이루었으며 이 의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세 가지 선물을 사람들은 부인할 수밖에 없어. 이 세 가지 의의 가치를 깨달은 사람은 이 세 가지 선물을 믿을 수가 있어. 믿을 수가 있고, 그러기에 이 의의 가치를 깨닫고 이 의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이 세 가지를 대할 때는 다 성공이 되지만 이 의를 잊어버리고 행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거. 또 이 의를 가지지 안하고 믿기 때문에 안 되는 거.

믿사옵나이다 하는 사람이 왜 안 되느냐? 믿사옵나이다 하는 사람이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이 하나님의 의 이거는 잊어버리고 믿사옵나이다 하니까 처음에는 됐지만 안 된다 그 말이오.

또, 이 하나님의 의 이 세 가지 지극히 큰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네들이 실행만 하면 된다고 교리 신조 논리로만 가지고 말하면서 자꾸 아무리 행해 봤자 안 된다 그 말이오. 이 세 가지 의를 먼저 믿는 여기에 큰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능력이 있고, 이룰 믿고 난 다음에는 실지로 세 가지 선물 준 걸 이걸 내가 믿어야 되지 안 믿으면 또 소용 없다 그 말이오.

이렇게 이 믿음의 비밀을 우리가 받았는데 마귀란 놈이 요렇게 삐끄러지게 조렇게 삐끄러지게, 온 천하를 얻는 것과 이 세 가지와 비교가 됩니까? 이 가치를, 내가 천하에 있는 제일 권세, 부자, 말하기를 네가 지금 그 미국의 대통령이 된, 다 미국의 대통령하고 이 세 가지하고 바꾸겠어? 어림도 없습니다. 그 대통령 억억만을 가지고 와도 안 바꿉니다 공연히 안 될 판이니까 그렇지? 아니오. 믿는 사람은 절대 안 합니다. 어데 이거 내놓고 그거 가질라 하는 그런 거 가지겠습니까? 그러나, 오늘은 예수 믿는 척 하지만 그것보다도 조그만한 무슨 장관 하나만 줘도 다 치워 버립니다. 장관 하나만 줘도 다 치우고 이래서 장관 가지고 장관으로써 믿음 버리고 장관하기 위해 가지고 하다가서 폭발 만나서 죽은 사람도 있고 또 이 믿음 버리고 이 세상에 정권 탐하다가 절단나는 사람도 있고 믿음, 그러니까 믿음을 가진다 하지만 돈도 그까짓 거 몇십억도 안 되는 거 그거 돈 몇 억만 되도 그 돈을 따라가 버리고 이 믿음을 버리니까 전부 외식이고 거짓부리라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큰 힘 들여서 하나님이 의를 만들어 놨는데 이 의를 믿지 않는 자를 하나님이 복수하실 것이고 이 의를 믿는 것을 무조건, 그 의 믿는 이것을 당신이 대우해서 이 의 믿는 자를 영원히 높여 가지고 당신에게 이 의로 말미암아 이 간추려 준 거 요 세 가지를 자기가 믿는 요 자에게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주시기를 아까워하지를 안하고 다 주시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이런데, 이걸 믿을라 하면은 성신의 감화가 와야 믿지 그리 안 하면 믿어지지를 안해. 성신의 감화는 자기 주관을 초월한 객관의 역사로 오는 그걸 받아야 되는 것이니까 이 주관 역사가 다 해야 객관 역사가 온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에 그라면 다시 말한 거, 아무리 행동해도 소용없어 행동해도 소용없어. 열심을 내도 소용이 없어. 모든 것이 구비해도 소용이 없어. 뭐 없으면 안 돼? 뭐 없으면 안 돼? 예? 믿음 없으면 안 돼. 또 믿음 암만 있어도 또 뭐 없으면 안 돼? 행동 없으면 안 돼. 자기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아무리 알아도 예수님의 이 의 하나님의 의를 믿지 안하면 헛일이라.

하나님의 의를 믿어도 이 세 가지 선물을 차지하지 못하면 또 헛일이라 그 말이오. 이 큰 거 여러분들이 배웠습니다. 뭐 이것만 하면 한 달이고 일 년 설교해도 요것만 자꾸 해도 여러분들이 지금 감당을 못 해. 이제 이걸 자꾸 재독 하겠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십시오.

어짜든지 하나님이 지금 회개시킬라 하는 기회니까 아끼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회개는 막 하십시오. 하나님의 굉장한 기적과 축복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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