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비밀 신비성

 

1986. 9. 26. 밤(금)

 

본문:사도행전 3장 16절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히브리서 11장 1절∼2절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우리 기독교는 믿음의 도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구원 도리입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믿음으로 기독교의 구원은 다 이루어진다 하는 이 사실을 세상은 부인합니다. 왜? 세상에는 믿음으로 다 망합니다. 세상은 믿음으로 다 망하는 세상인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다 경험하고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교에서 믿음으로 모든 구원과 성공과 행복이 이루어진다는 이 말을 비웃습니다.

세상에 망한 것이나 속는 것이나 실패한 그 모든 것은 믿음으로 인해서 망하고 속고 실패되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믿음으로 인해 가지고 다 망하고 속고 실패한 것이 세상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믿고 여자는 남자를 믿고, 수상 사람은 수하 사람을 믿고 수하 사람은 수상 사람을 믿고, 또 사람은 사물을 믿고 사물은 사람을 믿고 이래 가지고 전부 다 믿음으로 망한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온 세상이 다 믿음으로 망했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성공한다. 믿으면 된다.’ 이라니까 모든 사람이 조롱을 합니다.

또 예수교인들이 전부 ‘믿음이면 된다. 믿사옵나이다 하면 된다. 믿으면 된다.’ 이라니까 세상이 또 그거 따라서 ‘우리는 믿고 삽시다. 믿고 살아야 된다.’ 해 가지고 믿어야 된다는 말을 신문에다가 많이 내고 그말이 잔뜩 퍼져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농장에 가니까 그 말하기를 ‘우리 모두 믿고 삽시다. 믿음으로 합시다.’ 신문에도 ‘우리가 다 믿고 살아야 된다' 하는데 그말이 지금은 쑥 들어가 버렸습니다. 왜? 믿고 살아야 한다고 해서 서로, 그때 말하는 걸 보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할지라도 그 사람을 믿어야 된다. 믿고 살아야 된다.’ 믿고 사니까 믿은 끄트머리에 다 패망이 나오고 다 멸망이 나오니까 지금은 뭐 믿고 살자 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별로이 없습니다. 믿어야 된다는 말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아주 유력한 목사님인데 그 목사님은 말하기를 ‘믿고 살지 말아라.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강도로 대해라. 살인 강도로 대해라.’ 그런 말 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다 도적놈으로 알고 대해야 되지 도적놈으로 알지 안하고 그냥 보통 사람으로 알고 대했다가는 나중에 큰 낭패가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이 맞는 말입니다. 왜? 세상은 전부 성경이 말하기를 속이고, 남 속이고 또 남에게 속고, “속이고 속는 세상이라” 이렇게 성경에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 교인들이 ‘믿으면 된다. 믿고 살아야 된다. 믿음으로 살면 성공한다.’ 이렇게 하는 말을 세상 사람들이 조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교는 믿음으로 성공하는 것이 예수교입니다. 또 세상은 믿음으로 망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면 뭐 때문에 그렇게 믿음으로 성공하는데 믿음으로 망하고 그런가? 그것은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이 믿는 믿음은 만물보다 거짓된 변질된 인간이, 변질된 인간이 변질된 사람을 믿고, 변질된 인간이 변질 안 된 만물을 믿기 때문에 거게는 변질된 것이 섞여 있기 때문에 다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근원이 다 썩었고, 믿음의 근원이 다 거짓되고, 믿음의 근원이 다 죽은 것들이기 때문에 거게서 나온 믿음은 다 서로 죽이고 해치고 망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고 완전하신 하나님이 믿음의 근원이어서,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믿으라 말이 아니고, 완전을 믿으라. 영원 불변을 믿으라. 참을 믿으라. 이러니까 기독교의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요 인간을 믿는 믿음 아닙니다.

인간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뭘 믿겠습니까? 자기가 아무리 잘해 줄라고 애를 써도 자신도 자신을 모릅니다. 생명에 권리가 있습니까, 능력에 권리가 있습니까, 공간에 권리가 있습니까? ‘내가 아무 날 아무 시간에 거게 가서 만나리라’ 했지마는 제 생명이 떠날란지, 자기는 그때에 어데 가서 날아가 가지고 어데 가 있을란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절대 주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무슨 약속을 하며, 무엇을 책임을 지며, 무엇을 부담을 하겠습니까? 그러기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을 근거한 믿음을 말을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모든 승리도 하고, 모든 성공도 하고, 모든 축복도 받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자존자시며 전지 전능자시며 완전자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대해서 원하고 계시는 것 두 가지 있습니다. 원하고 계시는 것 두 가지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할 일이 많지마는 원하는 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분이시다. 전지 전능자시다. 창조주시다. 대주재시다.

주귄자시다. 만왕의 왕이시다. 만주의 주시다. 지극히 작은 거 개별 개별을 다 주권으로 모든 것을 통치하고 계신다.’ 그런 하나님으로 믿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것을 첫째로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둘인데 하나는, ‘하나님이 뭐 이렇게 크신 분이라, 이렇게 능한 분이라, 이렇게 위대한 분이라, 모두 창조주라.’ 뭐이라고 해 봤던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가 여기는 거야 ‘네가 그렇게 여기든지 말든지, 안 해도 좋다. 여겨도 좋고 안 여겨도 좋고,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일 원하시고 계시는 것은 뭣인고 하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과거적으로, 과거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해 주셨나?’ 하는 그것을 알고, 인정하고, 해 주신 그 가치를 알아서 해 주심을 받은 그것을 잘 보존하고 귀하게 취급하는 요것을 하나님이 제일 원하십니다. 이것도 뭐 무슨 말인지, 말은 알지마는 그 속에 뜻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뭐 전지 전능 대주재 창조주 그거는 몰라도 좋다. 다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어떤 자인데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해 주셨는가?’ 그 해 주신 일이 얼마나 가치 있고, 얼마나 크고, 얼마나 자신에게 필요하고 요긴한가 하는 이것을 알고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 이것을 하나님이 제일 원하십니다.

그라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거 뭐, 감사 안 해도, 하나님이 감사하는 것도 귀하게 보지만 감사 안 해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전지 전능자라,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라.’ 이거 몰라도 좋고, 크신 것도 몰라도 좋고, 감사 안 해도 좋고, 어쨌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자인데 우리에게 그분이 뭐 어떻게 무엇을 해 주셨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성경이 말한 대로 알고 확실히 믿고, ‘이렇게 우리에게 해 주신 이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하고, 얼마나 요긴한가?’ 이것을 깨닫고 이것을 잘 강직하면 하나님으로서는 제일 만족히 여기십니다. 제일 만족히 여기요.

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 섬기는 거 뭐, 성경에 섬기는 거, 높이는 거, 아는 거, 또 크심을 이런 것 다 좋고 중요한 일이지마는 하나님이 제일 요구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해 주셨으며 그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가?’ 하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이거 해 주신 것을 깨닫고 확실히 믿고 이 은혜를 귀중히 강직하는 것을 제일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요거 여러분들이 녹음기나 기록이나 해 가지고 가서 심심 산곡에 가 가지고 고요히 이 세상 문을 닫고, 세상을 떠나서 모든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문들을 닫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대로 문을,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생각해서 ‘과연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 무엇보다도 당신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해 주셨으며 그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요긴한가?’ 그것을 확실히 깨닫고 믿고 해 주신 그 일을 잘 강직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제일 윈하시고 제일 기뻐하십니다.

그렇겠습니까< 그거 이해가 됩니까? 이거 이해 잘 안 되는 말이오. 이거 무슨 말인지? 둘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분이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을 해 주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 확실히 믿고, 바라고, 복종하면서, 참고 견디는 이것을 하나님이 둘째로 제일 원하십니다. ‘이분이 앞으로 우리에게, 이분이 앞으로 내게 어떤 일을 해 주실 분이다.’ 미래로 ‘어떤 일을 해 주실 분이다.’ 하는 이것을 확실히 믿고, 이분이 나에게 해 주실 것을 의심 없이 소망하고 이제는 그것을 바라면서 꼬박꼬박 시키는 대로 순종하면서 기다리는 이것을 하나님이 제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요 두 가지를 우리에게 원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통틀어 말하면 믿음입니다, 믿음. 무슨 믿음? 과거적으로, 과거적으로, 과거적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것을 해 주신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 이것을 하나님이 제일 원하시고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왜? 당신이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피조물 되어 오셨고 또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성경은 그걸 가르칩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어떤 어떤 일을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큰 힘을 들여서 해 주셨는데, 해 주신 이것을 입술로는 하루도 여러 수십 번 수백 번 말하면서도 확실히 믿는 그 믿음을 가지지 않는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심히 탄식하시고 제일 섭섭하게 생각하십니다.

또 하나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어떻게 해 주실 이 사실을 의심 없이 확실히 믿고 이것을 바라고 있는 이것을 하나님이 둘째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 이 둘입니다. 우리가 뭣을 어떻게 헌신을 할 때에, 뭐 순종을 할 때에, 또 하나님 앞에 무엇을 바칠 때에 기뻐한다 하는 그런 것은 그것이 다 그리 그리 모든 것을 종합해 가지고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해 주셨다는 그것을 간접 간간접적으로 이런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거 저런 것을 시키시는 것이고 말하는 것이고 또 앞으로 어떻게 해 주실 그것을 믿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시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어떤 걸 해 주셨는가?’ 내게 해 주신 그것이, 내게 해 주신 그것이 어떤 것을 해 주신 그것을 내가 믿으면 그것을 나에게 해 주신 그분은 으례히 전능자요, 완전자요, 영원 불변자요, 자존자요, 창조주요, 지극히 크신 유일하신 한 분이시요 자존자 한 분이신 것은 당신이 우리에게 해 주신 그것을 알고 믿으면 그분이 어떤 분이라 하는 것은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해 주신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믿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분은 전능자다.

창조주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다 주권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다.’ 자꾸 이래 쌓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과거적으로 어떤 중요하고 필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어떤 중요한 것을 해 주신 그분이 해 주신 그것을 가르쳐서 알고 믿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요 두 가지. 현재와 미래적으로는 ‘그분이 현재와 미래에 나에게 어떤 것을 해 주실 것이다.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대로 이렇게 당신이 미래적으로 내게 필요한 이런 것을 해 주실 분이다.’ 하는 이것을 확실히 믿도록 하기 위해서, 믿음이 생겨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것 저런 것 하는 것이지 요지는 그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왜 그럴까? 하나님은 완전자이시요, 그분은 창조주시요, 무한자시요, 영원자시요, 전능자신데,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에게 뭐 이런 대접 저런 대접 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그분이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이 지극히 큰 것을 해 주셨는데 이것을 가치 있게 여기지 못하고 보배로 여기지 못하고 이것을 예사롭게 여기면, 이 참 큰 걸 해 주신 이걸, 이것을 다 헛되이 받아서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대로 천상 천하에 하나님 다음의 위치를 가질 수 있는 이런 지극한 것이 이루어질 터인데 이것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니까 이것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거 저런 거 모든 것을 거게서 간간접 뭐 이리 저리 구비해 가지고 당신이 과거 현재적으로 우리에게 이미 해 주신 것을 우리들이 바로 알고 그것을 확실히 믿는 사람, 확실히 믿고, ‘감사합니다.’ 안 해도 좋습니다. 하나님 그거 바라지 안 해요 사실은.

그것도 우리를 그런 사람 만들기 위하는 것이지 확실히 깨닫고 이 보배를 놓지 안하고 강직하고, 이 보배로운 큰 사랑의 은혜 역사를 우리가 간직해서 그 효력을 다 얻는다고 하면은 하나님은 그 외에 딴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딴게 필요가 없어. 딴거 원하지 않습니다.

또 미래적으로는 그분이 성경에 계약하기를 ‘앞으로 당신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해 주시겠다’ 하는 미래적으로 당신이 우리에게 해 주시겠다는 그것은 너무 커서 사람들이 안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암만 제가 화장을 잘하고 아무리 자연식을 하고 뭐 아주 위생을 하고 온갖 영양을 구비하고 해도 그래 봐야 찍해야 뭐 한 백 년이나 더 살지 안하고, 찍해야 한 이삼십 년 아니라, 한 일이십 년도 안 돼. 일이십 년도 안 되는 그 생명도 할라고 모든 사람이 다 애를 쓰고 있는데, 여게는 영생을 해 준다 해, 영생. 영생을 해 준다 했어, 영생.

조그만한 일생 동안 부지런히 벌어 봤자 다른 사람이 저 사람 돈 잘 번다 성공한다고 떠들어 쌓아도 찍해야 큰 빌당 한 채 그리 안 하면 뭐 아파트 몇 동 지어 놨지마는 빚 다 청산하면 제 돈 없어. 이런데 ‘영계 것과 물질계의 그 모든 것을 다 우리에게 준다.’ 인간의 원수가 사망인데 ‘사망도 네 주먹 안에 준다.

생명도 네 주먹 안에 준다. 모든 존재도,’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않는 하나님이시요, 이렇게 우리에게 앞으로 참 인간의 지식이 상상도 측량도, 아무리 이해할라 해야 이해하지도 못할, 인간의 지식으로 도저히 측량 못 할,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이 미래로 이 큰 것을 해 주실 이 사실을 전부 거짓말로 듣고서, 말쟁이 말로 듣고, 왜? 세상에 그런 말이 말이 많으니까.

불교에도 이렇게 해 주겠다, 뭣에도 이렇게 해 주겠다, 뭐 종교마다 막 이렇게 해 주겠다, 거짓말을 주 대 놓으니까 하나님이 하신 말씀도 이 거짓말 중에 하나로 이래 알고 있어 그렇지 성경에 이렇게 해 주신다는 이 사실을 틀림없이 요대로 당신이 미래로 해 주실 것을 믿고 바라보는 자에게는, 이 사실이 그에게 하나님이 해 주신다는 이것을 의심 없이 확실히 믿고 요것을 바라는 사람이면 하나님은 그거 원합니다. 생명 바치는 것도 원하지 안해요! 요것만을 원해요.

미래로 당신이 우리에게 어떤 거 해 주실 것을 믿는 사람이 없어. 입술로만 믿는다 하지. 왜? 믿느냐 안 믿느냐 시험을 해서 이 금덩어리를 이만한 걸 지금 네가 얻는다 하는 것을 ‘금덩어리 지금 오늘 내가 생긴다. 이 금덩어리 주먹만한 금덩어리가 생긴다.’ 이것을 믿으면 여게 돈 몇만 원 가지고, 몇만 원 이거 때문에 이거 집어 던지고 몇만 원 보고 갈 리가 없다 말이요. 갈 리가 없어.

이 큰 것을 하나님이 말했는데 이거 모두 다 땅에 이런 거 저런 거 지저분한 거 다 그것을 가치로 여기고, 그거는 실상으로 알고, 그거는 확실히 있는 줄 알기 때문에 전부 그거 그리 따라가지 이거는 다 버린다 그 말이오.

이런데, 하나님이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도, 당신이 미래적으로 우리에게 계약한 이것은 인간이 거짓돼서 믿어지지 못하지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도 없습니다. 당신이 미래적으로 우리에게 큰 것을 해 주실 이 사실을 의심없이 믿는 사람, 요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실히 믿는 사람, 믿는 그 믿음이, 믿음의 양과 질이 천층 만층인데 당신이 요구하시는 것은 미래에 당신이 우리에게 해 주실 요것을 확실히 믿는 그 양과, 또 바라보는 그 양과, 이루어지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그 순종의 양과, 기다리는 양, 이것만이 무궁세계에 당신이 높이 평가하시요. 그분에게는 아무것도 그리운 거 없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이것만이 당신이 요구하십니다.

하나는 과거에 해 주신 거, 과거에 해 주신 것. 우리에게, 하나님의 공심판이라면 전지자가 입법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 입법은 인간이 상상도 못 해. 사람이 입법해 놓은 그 입법에도 조문을 따져서 판단할 때에 몇십 가지 걸리지 안하는 사람이 없는데, 하나님의 전지자의 입법에 ‘이는 완전히 죄가 없다. 이는 이 율법을, 하나님이 입법한 입법을 완전 이행자다. 하나님과 조금도 틈없이 완전 친교를 가져서 완전히 그 머리와 몸, 한 몸을 이루었다.’ 이것도 큰 것을 해 주신 것인데, 영생도 큰 거 해 주신 것인데, 이 큰 것을 해 주신, 이 큰 것 해 주신 이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사람, 사실대로 확실히 믿는 사람, 이 가치를 자기가 아는 사람, 이러기에 당신이 인생에게 대해서 심판할 때는 그거라. ‘내가 너희에게 어떤 거 해 줬나?’ 해 주신 그것의 가치를 아는 것, 또 그것을 해 주실 때에 어떻게 해 가지고 해 주신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하냐 하는 그것을 아는 것, 사실은 사실인데 요 사실을 아는 것만치가 당신이 평가하는 것이요 확실히 믿는, 확신하는, ‘고거 사실이라’ 확신하는, 확신하는 양만치, 그것이 얼마나 보배로운 그 가치성을, 자기에게 얼마나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중요하게 취급하는 고거, 요 세 가지 외에는 하나님이 인생에게 대해서 아무 상대할 게 없어. 알겠습니까? 당신이 해 주신 것, 앞으로 당신이 해 주실 것, 이것에 그 실상의, 실상의 억억만분지 일을 알고 믿고 취급을 하는지, 알고 믿고 취급한다 해도 하나도 실상으로 알고 믿는 것도 없고 취급하는 것도 없고 완전히 거짓부리인지, 얼마나 알고 믿고 취급하는지, 과거에 우리에게 해 주신 이 큰 것, ‘어떻게 해서 큰 것을 해 주셨으니 나도 이것을 소중히 어떻게 해서 잘 강직해야 되겠다. 앞으로 이 큰 것을 해 주실 터이니 이 큰 것 해 주실 것을 나도 바라고, 이 큰 것 해 주시는 걸 내가 놓지 안하고 떨구지 안하도록 해야 되겠다.’ 하는 요 미래에 대해서 과거에 대해서 요것만을 하나님이 평가로 하십니다. 요것만을 평가로 하시요.

이러기 때문에, 오늘 봉독한 말씀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을 믿으므로” 16절에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성하게 했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네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했다” 네가 똑똑히 보지 안했느냐? 미문에 항상 앉은뱅이로 있던 병신 아니냐? 네가 똑똑히 아는 자가 아니냐? 네가 똑똑히 봤고 똑똑히 아는 자가 아니냐? 똑똑히 봤는데 그때는 어떤 자며 지금은 어떤 자이냐?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했다” 또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이 사람을 완전케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완전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소원이 이거 둘뿐입니다.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것 둘뿐인데 그 이름을 믿고, 그 이름을 믿고,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을 가졌으니까 하나님으로서는 그 이상 더 소원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그 이름을 믿는 것은 과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그것을 확실히 자기가 인정함이 하나님이 만족해 하시오. 인정하니까 우리 위해서 과거적으로 해 주신 그 모든 해 주신 것의 그 효력, 그 효력, 그 효력을 하나도 남김 없이 믿으니까, 확실히 믿으니까 그 효력을 하나도 아낌 없이 다 줘 버렸어. 믿으니까 다 줍니다.

또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과거 해 주신, 하나님이 해 주신 이것으로 인해서 네가 이렇게 해라.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예수는 과거 아닙니까? 과거에 해 놓지 안했소? 과거 이제, 그 이름을 믿는 것은 이미 해 주신 그것을 확실히 믿는 거라.

이미 해 주신 그것으로 인해서 온 믿음, 이미 해 주신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영감과 진리가 왔습니다. 이미 해 주신, 당신이 해 주신 그 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해라 하는 거 있으니, 이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 이렇게 해라 하는 거 있으니, 이렇게 해라 하는데에 함으로 완전케 되었다. 함으로 완전케 됐다. 이뿐입니다, 이뿐이오.

이것은 우리가 이런 행동 저런 행동 모든 행동하는 것은, 이런 행동 저런 행동 모든 것을 행동하는 것은 이 믿음이 생겨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공작을 하는 것이고 이렇게 모두 다 역사를 하는 것이지 그게 다 필요 없습니다.

믿음은 뭐인가? 믿음에 대해서 잠깐 좀 말하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그 무슨 말인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하는 것은 양면을 말합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 우리가 소망하는 것, 우리가 소망하는 그 소망하는 그것을 믿을 때에 소망하는 그 실상을 제가 가진 사람이요, 그 실상을 만난 사람이요, 가진 사람이요, 실상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모르고.

자기가 소망하는 그 소망하는 그 사실을 믿을 때에 인간이 보지 못하는 그 실상 있는 그 실상을 제가 접한 사람이요, 가진 사람이요, 누리는 사람이오. 요걸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온 행동, 믿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오는 행동 그것은 자타가 환하게 볼 수 있도록 속에 있는 그 소망의 실상을 끌어내오는 것이 그것이 믿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행동한 그 행동 그것은 나는 믿음으로 가져 누렸지마는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데 내 행동을 통해서는 다른 사람이 환하게 볼 수 있도록 그 실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믿음은 그 실상이, 믿음은 그 소망 그게 실상이 있는데, 소망이 없는 게 아니라, 소망이 없는데 우리가 행함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소망은 그 실상이 있는데, 그는 변하지 안할 그 실상이 있는데, 실상이 있는데 그 실상 그것을 아무도 못 봐. 누리지도 못하고 가지지도 못해. 믿는 자는 그 실상을 만졌고, 실상을 가졌고, 실상을 누리고, 그것을, 그 실상을 가지고 누리고 그 가치의 행복을 누림으로, 실상을 보고 맛보고 접하고 기뻐하고 그 실상의 효력을 누림으로 필연적으로 나오는 행동이 있어.

필연적으로 나오는 행동 있는데 그 행동은 내가 믿음으로 있는 그 실상을 보고 나 혼자 좋아하고 누렸지마는 그것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끌어내다가 보여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게 믿음의 비밀입니다. 알겠습니까? 믿음은 마음으로 인정하는 믿음인데 인정하는 믿음은 마음으로 믿는 믿음은 벌써 실상을 다른 사람은 못 봤지만 나는 그 실상을 만졌고 가졌고 누렸고 내것 됐고, 그럼으로 필연적으로 내 고기덩어리로 하는 행동, 고기덩어리로 하는 행동은 내가 마음으로 믿어 내것 만든 그것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내가 그것을 누릴 때에 그것을 가지고 내가 누리고 그것의 효력을 내가 누리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볼 수 있도록, 육체로 그것을 누릴 때에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실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마음으로 믿는 믿음은 “바라는 것이라” 그말은 미래에 속했고 바란다고 해서 실상이 아닌 거 아닙니다. 바란 거 실상입니다. 바란 그 실상이 있는데 그것은 마음으로 믿음으로 그 실상을 자기는 접해서 가져 누리고, 몸으로 그걸 믿을 때에 몸으로 그 행동을 할 때에 그것이 껍데기로 나타나는 외부로 나타나서 자타에게 알 수 있는 그런 형체의 것이, 유형의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유형의 것이 이루어지고, 그런고로 마음의 믿음은 자타가 볼 수 있도록 외형을 갖추지 안한 그 속에 실상인 진짜 실상인 그것을 자기가 가지게 되는 것이고 육체로서 행동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외형의 것이 되어지는 것이라.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믿음은 보지 못한 것을 자기는 봤고, 보지 못한 그것을 실상으로 봤고, 그 실상을 봤어. 만들고 난 다음에 보는 게 아니라 실상을 지금 믿음으로 봤어. 믿음으로 봤는데 그 믿음을 고기덩어리로 지키면 다른 사람에게까지 보여 줄 수 있도록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 비유가 잘 안 되지마는 어떤 사람이 자기가 취직 시험을 쳤는데, 취직 시험을 쳤는데 그 시험에서, 이거는 높은 시험은 다 투표 시험이니까. 그 무슨 큰 주식회사에서 주주들이 모여 가지고 사장을 누구를 낼꼬? 해 가지고 투표를 했는데 자기가 당선이 됐습니다. 당선이 됐어. 당신됐다고, 아무것이가 당선 됐다고 그렇게 소식이 전해 왔습니다.

그 사람이 그 소식 전해 온, ‘이제 아무것이가 사장으로 당선됐다’ 하는 그 소식이 전해 왔을 때에 그 소식으로 자기가 사장된 것을 확실히 믿을 때에 벌써 그 사람은 사장의 그 영광과 권세와 그 행복을 그 소식 듣고 믿을 때에 벌써 누리고 있습니다. 믿을 때에 벌써 누렸습니다. 뭐 이 다음에 취임하나 안 하나 벌써 꼭 같은 사장의 권위와 영광을 다 누리고 자기 마음 자세나 자기 행동이나 다 그걸 누리고 있습니다.

누리고 있고, 그 이튿날 자기가 취임해 가지고 사장 행동을 할 때에 모든 사람이 ‘저 사람이 사장이로구나’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이제 사장의 그 직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에게 수표가, 예를 들어서 수표가 만일 어떤 그 천만 원짜리면 천만 원짜리, 그 천만 원짜리 수표가 왔다고 하면은 그 수표가 온것은 돈 아닙니다. 그 수표가 왔을 때 ‘이것은 천만 원짜리 돈이라’ 하는 것을 그 사람이 지식으로 확실히 믿기 때문에 벌써 그 수표 천만 원짜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돈 만 원짜리 천 장 가지고 있는 거와 꼭 같은 소유감을 느끼고 또 든든감을 느끼고 그만한 재력을 자기가 가진 것을 자기가 느낍니다. 돈 한 푼도 안 써도 벌써 수표를 가지고 ‘나는 천만 원 재산을 가지고 있다.’ 천만 원 가진 그 부요감을 자기가 느끼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떡 한 개 안 사 먹었소. 그거 가지고 이래 나가 가지고 천만 원을 들고 가 가지고 떡을 한 개 사 가지고 먹으면 이제 다른 사람 보기에 천만 원짜리 수표 가지고서 떡 한 개 사서 먹는 것을 다른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들 요 믿음의 비밀, 믿음의 신비성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 그걸 알기 위해서 이 세상 믿음의 종류라 하는 게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믿음이라는 것은 그 실상을 벌써 믿으면 그 실상을 자기가 가진 것이요 누린 것입니다.

천만 원짜리 수표를 떡 주는 데 ‘이게 천만 원 짜리 수표라. 이게 곧 돈 천만 원이라.’ 그 사람이 ‘이거 내버리면 돈 천만 원 내버리는 거다. 가지고 있거라.’ 하지마는 이 사람이 안 믿습니다. ‘이게 무슨 돈 천만 원이 되겠나? 이거 누가 만 원짜리 하나 주면 바꾸면 싶으네. 이까짓 거 무슨 가치가 있어?’ 할 때에는 그 사람은 천만 원 수표를 가지고 있지마는 천만 원의 그 재력을 그 사람은 가지고는 있지마는 가지지도 못한 사람이요, 누리지도 못한 사람이요, 거게 대한 그 효력을 그 사람은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라다가 나중에 은행에 가 가지고 그걸 주니까 돈을 천만 원 주니까 ‘아이구, 참 그거 천만 원이 되는구나.’ 그때사 이제, 천만 원을 바꿔 주면 ‘이게 천만 원인가보다’ 하고서 그때사 그 사람은 알 거라 그 말이오.

믿는 사람은, 알고 믿는 사람은 찾기 전에 벌써 돈 천만 원이나, ‘야, 돈 천만 원 수표 그거 가지고 암만 천만 원 해도 그거 돈하고 좀 차이가 안 있겠나? 그러니까 너 구백구십만 원하고 바꾸자.’ 구백구십만 원하고 바꾸자 하면은 십만 원 거석 하니까 그래도 안 바꿉니다. 그 천만 원이나 수표 천만 원이나 현금 천만 원이나 꼭 같은 돈으로 믿기 때문에 그 가치의 부요의 효력을 제가 누리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하는 그것을 우리가 똑똑히 깨달읍시다. 저도 그전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하는 것에 대해서 일 면밖에는 내가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일 면밖에 깨닫지 못해서 ‘하나님이 이 계약에 있는 모든 소망은 그 계약을 달성시키시는 하나님의 이 인도를 우리가 지켜 행하면 우리 소망하는 것이 실상으로 이루어져 가지고 자타가 보고 누릴 수 있다.’ 여게만 깨달았었습니다.

여게만 깨달아서, 그러기에 ‘믿음은 소망하는 것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 믿음이라’ 이렇게 했는데 실상은 진짜 믿음은 내가 깨닫지를 못했어. 진짜 믿음은 깨닫지를 못했어. 그것은 고기덩어리로 외부에, 이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 더 크고 고기덩어리로 만드는 것이 그 다음의 외부적인 것인데 속에 알맹이는 모르고 외부적으로 고기덩어리로 만드는 그것만 지금 내가 자꾸 주장을 하고 깨달았던 사람이오.

이제는 그게 아니고, 자기가 소망하는 그것을 신구약 성경 말씀은 소망을 달성하는 그 방편이기 때문에 소망하는 그것을 영감 인도대로 꼬박꼬박 순종을 하면 그게 믿음이라. ‘순종하면 내가 소망하는 것이 실상으로 이루어진다’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그것은 자타가 알도록 외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외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그 실상의 외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소망의 내용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서 이루어 놓으신 건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시고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인데, 요 이루어 놓으신 요거는 완전한 것인데, 요 완전한 것인데 요 완전한 요것은 내가 고기덩어리로 행하여서 유형적인 것으로서 나타나기 전에 그것을 내가 의심 없이 확실히 믿으면 그것이 내것이 되어지는데, 요 믿음으로, 믿음으로 얻는 것은 주님이 이루어 놓은 완전한 것을 내가 믿음으로 가져 누리고 믿음으로 가져 누리면 필연적으로 누리는 그 행동이 나타나니 행동이 나타난 그것으로서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볼 수 있도록까지 나타나 보여지는 것이니, 우리는 꼭 내가 행동으로 함으로써 그 실상이 이루어지는, 유한한 행동에서 유한한 실상이 이루어지는 그것만 우리는 생각하고 우리가 믿음의 비밀을 몰라서 주님이 이루어 놓으신 그 실상을, 그 실상을 내가 믿으면 그것이 내것이 되는 것인데, 믿으면 내것이 되는 것인데 그 믿음은, 믿으면, 믿으면 내가 그 실상을 내가 누리는 것이고 믿으면 내가 실상이 그것이 내것이 되어지는 것인데, 믿으면 그 실상이 내것 되어지는 이것은 우리가 가지지를 못하고 도달하지를 못했고 이 육으로 믿음으로, 육으로 믿음으로 그것이 자타가 알 수 있도록 이렇게 자기의 믿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믿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그것만 우리가 만들어 가지고 누릴라고 애를 썼었지 당신이 우리에게 이루어 놓으신 그 구원을 우리가 믿을 때에 그 믿음으로 그 실상을 내가 가지게 되는 이것은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라면 예수님이 대속해 놓으신 것을 믿으면 되는구먼’ 하는데, 믿으면 되는 그것이 우리에게 거짓부리 믿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깨닫게 해 주시지를 아니하셨고, 실행을 함으로써의 그 실상이 이루어지는 그것만 알렸고 자기가 행해서, 자기가 순종해서 믿음을 지켜 행함으로 그 실상이 이루어지는 껍데기 이루어지는 그것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지고 그것이 이루어짐으로, 외부가 이루어짐으로 그 속에 마음으로 믿어서 확신을, 믿어, 마음으로 믿어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그 실상이 내것이 되어지는 그 신앙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외부적인 신앙은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셨고 내부적인 그 실상은, 실상의 신앙은 우리들에게 너무 거리가 차이가 있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해서 저는 내치 깨닫지를 못했었습니다. 그것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못 했는데, 좀 우스운 말 같지마는 제가 그전에 말도 더러 하고 했지마는 제가 오늘 산에 가서 있을 때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그 믿음의 신비성을 제가 얼마 동안 명상하고 찾을 때에 믿음의 그 신비성을 제가 차차 심령이 열려서 깨닫게 될 때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하는 그것은 내가 실행한 그 결과로, 내가 순종한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그것이 아닌, 내가 순종하는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순종하기 전에 내가 믿음으로 그 실상을 내걸 만드는 그게 있다. 믿음으로 그 실상을 내것을 만드는 그게 있다 하는 그것을 제가 오늘 찾아 보고 깨닫고 그것을 누렸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제게 깨달은 대로 말하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뭐 순교고 뭐 순생이고 뭐고 뭐고 하는 것보다도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당신이 우리에게 베풀어 놓은 지극히 큰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주신 그것도 지극히 큰 것이고 또 그것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이 지극히 큰 힘을 들여 가지고 주셨는데, 과거에 큰 힘 들여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것, 큰 힘 들여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것 요것을 우리가 확실히, 성경에 말했으니 요거 확실히 믿는 것, 확실히 요 실상을 확실히 믿어서 요 실상을 가지는 것, 당신이 과거적으로 큰 힘 들여서 우리에게 큰 것을 해 주신 요것을 내가 믿음으로 그 실상을 가지는 가지는 요자 되는 것을 주님이 제일 원하시고, 요자 되는 것을 제일 원하시고, 다음으로 원하시는 것은 당신이 미래적으로 우리에게 큰 걸 해 주실 터인데 큰 거 해 주실 이 사실을 믿고, 큰 거 해 주실 이 사실을, 미래적으로 큰 거 해 주실 이 사실을 믿고, 믿음으로 바라고, 믿음으로 바라고, 거게 대해서 당신이 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소망하고 기다리고 있는 거. 이것을 소망하고 기다리고 있는 거. 소망하고 기다리고 있는 거. 소망하고 행하는 그 행동 없어도 좋아.

소망하고 행동보다도 소망하고 기다리는 거 요것, 당신을 소망하고 기다리는 거, 요것을 당신이 제일 기뻐하신다 하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뭐, ‘무슨 순교를 했다’ 순교한 거 그거 뭐이냐? 순교하는 그것이 당신이 큰 거 해 주신 그것을 느낀 느낌의 작용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지 생명 바치는 게 가치 있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어떻게 한다고 가치 있는 그것이 그분이 우리에게 앞으로 해 주실 것을 바라는, 그분이 어떻게 앞으로 큰 것을 해 주실 것을 소망하는 발동으로 이래 하기 때문에, 그 소망하기 때문에 발동하는, 소망하기 때문에 발동하는 그 발동을 아름답게 가치 있게 보는 것이지, 앞으로 당신이 해 주실 것을 확실히 믿는 요것을 당신이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믿음을 원하십니다. 믿음을 원하는 거. 그거 뭐 잘 예화도 비유도 안 되지마는 자기가 현재 돈 천만 원 수표가 있는데 그 수표를, 다른 사람이 ‘이게 천만 원짜리다.’ ‘아이구, 나는 지금 저녁을 못 먹어서 배 고픈데 내가 지금 저녁 어데가 누어 잘꼬, 지금?’ ‘천만 원짜리 수표 있으니까 얼마든지 일등 여관에도 가 잘 수 있고 또 얼마든지 좋은 요리도 먹을 수 있다.’ 하지마는, ‘그만하면 먹는데 뭐 그래 쌓고 있어?’ 그렇게 해도 안 믿어집니다. 안 믿어지니까 그걸 가지고 있지마는 그거 누리지 못합니다.

그걸 확실하게 ‘천만 원 수표라 천만 원 돈과 꼭 같은 거라.’ 하는 것을 믿으면 그 시간부터 벌써, 돈 일전 한 푼도 없어도 뭐 십만 원짜리도 부를 것이고 이십만 원짜리도 부를 것이고, ‘너 돈 한 푼도 없으면서?’ `왜 없어?' 천만 원 수표가 있으니까 있는 걸 확실히 믿으니까 거기 대한 효력을 누리고 그 권세를 가지고 누린다 말이요. 모르면 그거 못 누리요.

요와 같이 당신이 과거에 해 주신 것을 확신하는 확신을 가지고, 미래에 해 주실 것을 확신을 가지는 요것을 당신이 원하십니다, 원하시기를.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지금 썩어서 냄새가 납니다” “돌을 옮기라” “썩어서 냄새가 납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안했느냐?” 마르다가 안 믿으면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려내지 못합니다.

알겠습니까? 마르다가 안 믿으면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지 못합니다. 마르다가 안 믿으면 나사로를 살리지 못해요. 마르다가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 나사로 살렸습니다. 믿을 때에 살릴 수 있고 믿지 않으면 살리지 못합니다.

“할 수 있거든 해 주십시오” “할 수 있거든이 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 하심이 없느니라” “네 믿는 대로 되리라”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으면 하나님이 해 주실 수 있다 그 말이오. 믿으면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 하는 말이오.

“네가 믿으면 이루어지리라” “네 믿는 대로 되리라” 믿는 대로 되는데 우리는 혼자 주관적으로 믿는다 하는데 왜 안 됩니까? 믿는다 하는데 왜 안 됩니까? 안 되는 거 믿음이 실상이 아니라, 실상의 믿음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믿음에 어누리 된 요것을 어짜든지 우리 현실에서 믿음의 어누리 되는 것을 이걸 다 깨뜨려 버리고 어누리 없는 실상의 그 믿음, 하나님이 보실 때에 ‘요거는 믿었다. 요거는 믿는다.’ 하는 그 실상 있는 그런 믿음을 가져지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에 모든 믿음을 만드는 행위, 과거를 믿는 믿음을 만드는 행위, 미래를 믿는 믿음을 만드는 행위. 이런 행위를 지저분하이 한 것이지 실상은 그런 것이 필요 없고 당신이 과거에 우리에게 뭐 큰 거 해 주신 거 요거 믿으면 됩니다. 당신이 과거에 나에게 어떤 분이 나에게 어떤 거 해 준 거 고거 믿으면, 어떤 분이 나에게 해 준 거 믿으면 이만하면, 그분이 나에게 이거 해 주셨으니까 땅위에 염려할 게 뭐 있겠소? 걱정할 게 뭐 있겠소? 뭐 하겠소? 그분이 큰 힘 들여 나에게 이거 해 주셨는데 이거 믿으면 미래로 당신이 나에게 또 해 주실 것을 믿는다면 이 두 가지 믿으면 다야, 이 두 가지 믿으면.

두 가지 믿으면 세상을 이겨. 두 가지 믿으면, 두 가지를 믿으면은 능치 못할 것이 없어. 왜? 믿으면 그 능력이 일해.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을 믿음으로” 사죄, 칭의, 화친, 영감, 진리 이것을 믿음으로, “이것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이 운동을 믿음으로 이 운동이 “네가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했다” “성하게 했다” 요것을 우리가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수로 난 믿음이 완전케 했다” 예수로 난 믿음이 뭐입니까? 예수로 난 믿음이, 예수로 난 믿음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것이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입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자가, 중생된 자가 사는 생활이 진리 생활이요 영감 생활인데 이 중생된 자가 사는 요 생활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전자 됩니다. 완전자. 이것이 장성해서 완전자 됩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자기 것으로 완전히 상속하고 통치할 수 있는 완전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주 거짓말 같고 물에 넣어도 붇지 안할 것 같지마는 주님이 나에게 세 가지 대속해 주신, 대속해 주신, 사죄 하나만 해도, 사죄 하나만 해도, 우리의 모든 삐뚤어진 거, 알게 삐뚤어진 거, 모르고 삐뚤어진 거, 뭐 과거 현재 미래 영원무궁토록 우리에게 모든 삐뚤어진 것을 당신이 다 힘 들여 가지고 삐뚤어진 걸 정리해서 다 대속해서 사죄해 주셨다는 이것도 얼마나 큰지 얼마나 넓은지 모릅니다. 얼마나 큰지. 우리가 만일 만 년 산다면 만 년 살면서 우리의 삐뚤어진 걸 낱낱이 헤아리고 찾으면 다 찾겠습니까? 못 찾소. 못 찾아.

우리에게 대한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하나님의 법을 우리가 영원히 연구하면 그 법을 다 알 줄 압니까? 다 몰라. 그것을 다 이행해서 다 이행을 나에게 줬어.

대형 사죄, 대행 칭의, 대화친 이것을 당신이 해 주신 이 가치를 이것을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하는 데에서, 생각해서 깨닫고 믿고 깨닫고 믿고 깨닫고 믿고 또 깨닫고 믿고 예수로 난 믿음으로 또, “예수로 난 믿음” 예수로 난 믿음으로 살고, 예수로 난 믿음 뭐인가? 중생, 영감 진리로, 중생된 영감 진리로 사는 거. 요 살면 완전케 됩니다.

그러면 이 다섯 가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다섯 가지. 사죄, 칭의, 화친, 영감, 진리 이 다섯 가지. 요 다섯 가지 요것으로만 요 이름으로만, 요 다섯 가지를 자기가 믿을 때에 다섯 가지를 믿음으로 그 이름이 역사해. 요 사실을 내가 믿으면, 요 사실 내가 믿음으로, 내가 요 다섯 가지 사실을 믿을 때에, 내가 믿을 때에 그 사죄의 능력은 역사할 수 있고, 칭의 능력은 역사할 수 있고, 화친의 능력은 역사할 수가 있고, 영감의 능력은 역사할 수가 있고, 진리의 능력은 역사할 수가 있고, 이러면 전지야. 다라. 이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할 수 있어.

이래야 죽은 자가 살아나고, 죽은 자가 죽은 것이 살아나. 이라면 모든 죽은 것이 다 살아나, 뭐이든지. 마음 죽은 것도 살아나고, 기쁨 죽은 것도 살아나고, 죽은 기쁨이 살아나. 죽은 기쁨이 살아나고, 죽은 쾌락이 살아나고, 죽은 성공이 살아나고, 죽은 영광이 살아나고 죽은 희망이 살아나고, 죽은 권세가 살아나고 전부 죽은 것이 다 살아나.

죽은 것이 다 살아나고 다 하나님과 직접 만나 가지고 하나님은 내 안에 나는 하나님 안에, 거게서부터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구걸하는 사람 되지 안하고 다른 사람을 구제해 줄 수 있는 사람 돼져.

거게서 아무도 가지지 못한 세상이 뺏들지 못한 참된 그 쾌락과 기쁨과 만족을 가져. 그 앉은뱅이가 제일 기뻤을 것 아니겠소? 또 제일 천한 사람이 제일 존귀한 사람 됐어. 이 다섯 가지 변화는 요 다섯 가지를 믿는 믿음으로만 됩니다.

짜다라 메다 놓고 뭐, 짜다라 사람에게 오만 생명까지 다 바쳤지마는 요 다섯 가지를 고쳐 준 그 사람의 사람이 됩니다.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사람 부자가 되리라” 요 다섯 가지 고쳐 주면 그 사람의 사람 돼요. 부모의 사람 안 돼요. 선배의 사람 안 돼요. 모든 이거 상관의 사람 안 돼요. 요 다섯 가지 고쳐 준 그 사람의 사람 다 되고 맙니다.

모든 사람의 영광의 존귀를 ‘나를 왜 주목하느냐?’ 막 영광을 그에게 돌려.

모든 사람이 자꾸 영광을 돌리는데 ‘아니라, 그 영광 내것 아니라.’ 주님에게 자꾸 영광을 내던지고 자꾸 영광을 돌리고 주님에게 맡기고, 영광이 돌아와서 그 영광을 자꾸 주님에게 맡겨야 되지 안맡기면 안 돼. 이 일곱 가지는 요 다섯 가지로만 말미암아 됩니다, 요 일곱 가지는 요 다섯 가지로만 말미암아 돼.

이런데 요 다섯 가지를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 돼요.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 돼.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 돼요. 믿음의 신비성을 우리가 자꾸 해서 우리 강퍅을 버려야 됩니다.

보십시오. 베드로가 물위로 걸어갔지요? 물위로 걸어갔는데 그때 물위에 떠벅떠벅 걸어갔는데 뭐 배를 탔소, 뭐 해? 물위로 걸어갔는데 풍랑 보고서 빠져들어갔습니다. 빠져들어갔어. 빠져들어갔는데 물위로 쩌뻑쩌뻑 걸어가다 물속에 빠져들어갔는데 빠져들어가는 것을 예수님께서 뭣 때문에 빠져들어갔다 했습니까? 뭐 때문에 빠져들어갔다 했어? “믿음이 적은 자야” 믿음이 떨어졌거든. 믿음이 떨어지니까 빠져들어갔어. 믿음 떨어지니까 빠져들어갔어.

믿으니까 걸어가고 믿음 떨어지니까 빠져. 믿음이 떨어지니까, 믿음 자본이 떨어지니까 빠졌어.

믿으니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나와 함께 하고! 믿음에 의심이 들어오니 권능 떠나 버리고. 이 믿음으로 우리는 해야 됩니다, 믿음으로. 이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백난의 노력을 하는 것이고 모든 여러가지 방편으로 하는 것은 이 믿음 가지기 위해서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밤에는, 내가 믿으면 됩니다. 안 믿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큰 거 해 주신 것 내가 믿고, 큰 거 해 주실 이 큰 것을 믿어. 이것만 하면 우주와 영계가 다 내것이라. 요 믿는다 해도 믿지 않기 때문에 꼬박 꼬박 우리가 하나씩 하나씩 행동 함으로써, 요만치 행동하면 요만치 믿음이 생기고 요만치 행동하면 요만치 믿음이 생기고 요만치 행동하면 요만치 믿음이 생기고 행동을 함으로 믿어지는 요 믿음 요것이 앉은뱅이가 걸어가는 믿음이라.

행동으로 아니라 당신이 계약했기 때문에, 계약했기 때문에 믿어! 계약했기 때문에 믿는 이 믿음은 이제 보지 안하고 믿는 믿음이라. 보지 안 하고 믿는 믿음. 행해 보고 믿고 증거가 나타나니 믿고 이거 보고 믿고 저거 보고 믿는 거 아니라 보지 안하고 믿는, 보지 안하고 믿는 믿음. 보지 안하고 믿는 믿음이 뭐입니까? 당신이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하는 계약을 했기 때문에 요 계약 보고 믿는 것이 요것이 보지 안하고 믿는 믿음이라 말이오. 요 믿음을 우리가 가지면 다 돼요.

광고합니다. 주일 아침에 여섯시 출발에 대해서.

교회 부근에 있는 학생들을 인도하는 선생님들은, 가까우니까 ‘여섯시에 나서 뭐할라고?’ 하지 말고 새벽예배 와 가지고 하나님 말씀 듣고, 그 학생들 위해 기도하고, ‘오늘 인도해 가지고 내가 그 학생들에게 이거 안 가르쳐 주면 안 되겠다’ 하는, 가르칠 내용을 단단히 준비하고 기도하고 가서 그렇게 인도하십시오.

그러고 교회 부근에 있든지 어데 있든지 한 달, 자기가 심방을 했든지 말았든지 뭐. 심방은 날마다 가도 소용 없어. 날마다 심방을 갔더란대도 한 달 안 나온 학생을 다른 사람이 인도했으면 그 학생은 그 반으로 가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자기가 매일 심방을 해도 그거 상관이 없어. 매일 심방해도 그 학생을 안 나온 학생을 인도했는데 한 달 안 나온 학생을 인도했으면은 인도한 그 반사에게로 속합니다.

반사에게 속하는데 ‘내가 그래도 날마다 심방 갔는데’ 죽이는 소리 하지 말고.

소용 없어. 고거 가지고 사람 죽이지 마십시오. 그걸로 사람 죽이지 말아요. 내가 암만 심방 가도 안 나왔는데 다른 사람이 심방 가 나왔으면 구원했으니까 감사하고 좋아할 일이지 ‘왜 내가 갈 때에는 안 나왔나?’ 해 가지고 그 학생 죽이는 그런 행동 하지 말라고.

이제는 한 달 안 나온 학생은 누가 인도했든지 인도한 사람 그 반에 붙이고 뒷말 하지 말아요. ‘나는 자꾸 내가 자꾸 심방 했는데 뭐. 내가 심방 했는데 내 반이지.’ 아니야. 안 나온 것은 하나님이 그 반사에게 붙이지 안하고 딴데로 옳겼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런 짓을 하지 마십시오.

그저 한 달 안 나온 학생은 처음으로 가서 심방 해 가지고 나왔든지, 근본 반사는 ‘날마다 심방해도 안 나왔다’ 한더란대도 상관이 없어. 심방은 상관 없고 어짜든지 한 달 안 나오는 학생은 교회에 인도한 그 반사에게 그 학생을 소속시켜서 우리가 그 학생을 구원하도록 하고 자기 반에 안 온다고 해 가지고 이렇게 해서 그 학생 죽이는 그런 행동 하지 말아요. 하나님이 진노하셔요. 그 행동 안 해야 됩니다.

중간반은 이 개월, 이 개월이지? 중간반은 이 개월. 장년반은 육 개월인데 장년반 육 개월 틀렸어. 그것도 삼 개월 해요, 이제부터 삼 개월. 육 개월 동안 있어 가지고 사람 다 죽이고, 그러니까 다른 구역으로 가고 싶어서 여섯 달 동안 쉴라 했는데 석 달 동안 쉬어 가지고, 다른 구역에 가고 싶거든 그만 즉시 가도 돼요.

석 들 동안 안 나온 식구는 암만 심방해도 인도한 그 사람에게로 소속합니다.

장년반 석 달, 중간반 두 달, 주일학교 한 달, 그것을 꼭 기억을 하십시오.

또 반사가, 한 반사가 학생 십오 명 이하되는 반사들이 많았는데 그 총 몇 개지? 그런데 요번에 이백칠십 몇 반인데, 십오 명 이하되는 반사가 이백칠십 몇 명인데 이번에 오십 몇 명이 올랐습니다. 오십 몇 명은, 반사 오십 몇 명은 십오 명 이상으로 다 끌어올렸습니다. 이러니까 그렇게 해서 한 몇 주일만 하면 전부 십오 명 이하되는 반사들은 다 십오 명 이상의 학생으로 다 올릴 수 있습니다. 십오 명씩만 되면은, 우리 학생이 얼마 되지? 만오천? 만 명 넘어? 안 그럴 건데.

어쨌든지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그러고 오늘 아침에 새벽기도 나온 사람이 한 팔백 좀 너머 구백 될까 구백이 좀 못 될까 그래요. 이런데 그래 모두 밥 굶기로 하고 그래도 아마 힘이 드는 모양이라. 자, 새벽기도 못 나와서 밥 굶은 사람 한번 손들어 봅시다. 새벽기도 못 나와서 밥 굶은 사람? 새벽기도 못 나와서 밥 굶은 사람? 뻐뜩 들어 봐요. 그래도 그런 사람들은 양심이 있구만. 밥 굶기로 해 놓고서 새벽기도 못 나오고 밥도 굶지 안하고 밥만 뻑뻑 먹고 있는 그런 사람 그 회개해야 돼요. 안 돼, 그거는.

이제 내일 아침에는 이 사람이 다 나와요. 이 사람이 다 나오면은 한 이천 한 팔백 되겠습니다. 그랬는데 내일 아침에 기도를 많이 해요. 그리 안 하면 새벽기도 나오게 되는가, 그래 기도도 안 하는데?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오기로 하나님 앞에 작정하고 힘써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나올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손은 다 들어. 손을 놓고 한번 더 해. 내일 새벽기도 나올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힘이 없어. 자, 내일 새벽기도 나올 사람 힘있게 손 한번 들어, 손 한번 들어 봐요. 이래. 이라면 인제 내일 새벽에는 한 이천오륙백 명 나오겠습니다.

못 나오거든 또 밥 굶어요. 그놈을 밥을 세 끼만 굶으면 그 다음 아침에는, 아침 굶고 막 밥이 먹고 싶어, ‘이놈 못 먹여, 안 먹여 준다.’ 점심 먹을라 해도 ‘안 먹여 준다' 저녁 먹을라 해도 `안 먹여 준다. 내일 새벽기도 나가야 밥 먹여 준다.’ 그라면 이 고기덩어리 이놈이 그만 ‘녜' 하고서 복종한다 말이오. 자기 고기덩어리를 쳐서 복종시키지 못하면 우리는 이 세상 일도 하늘 일도 아무것도 못 해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믿음의 이 비밀을 가집시다, 믿음의 비밀. 믿음의 이 신비성. 아무것도 없는데 믿으면 됩니다, 안 믿으니까 안 되고. 왜 물위에 쩌뻑쩌뻑 걸어가다가 믿으니 걸어가졌는데 믿음 떨어지니 왜 못 갑니까, 아무 줄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믿음의 신비성을 여러분들이 믿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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