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상태


선지자선교회 1979년 10월 14일 주전

 

본문 : 사도행전 2장 17절-21절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여기 세 시라는 말은 낮이라는 말인데 낮인데 성령강림후 사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에 그때에 은혜를 받아서 성신의  감화로 저들의 심령이 밝아지니까 오늘까지 어두운데서 자타를 망하게 하던  생활을 하던 그것이 원통해서 울고 가슴을 치고 또 자기네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마음에 굳게 결심을 하고 하는 것이 좀 열열해졌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중에 어떤 사람은 이렇게  심령이 밝아져서 과거와 현재 영원 그 현재를 밝히 보고 뜨거운 회개와 뜨거운  각오와 뜨거운 그 행동이 일어났는데 그 자리에서 같이 들은자 중에도 어떤자는  그 마음이 강퍅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왜 저 사람들이 저렇게 날뛰는가 저거 무슨  아마 술취했는가보다 이렇게 그들이 수군거리고 말하는 것을 베드로가 여기  책망하면서 그들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술취한 것이 아니라 요엘선지가 예언한대로 예언이 이루어져서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의 택한백성에 임하니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의 그 심령이 밝아져서  자기와 하나님과 세상과 영원무궁 세계와 죄와 의와 심판과 사망에 대한 것을  바로 깨닫고 보니 이들의 모든 그 심신이 뜨거워진 것이다. 술취한 것이 아니다  하고서 말한 것입니다.

 그다음에 19절 이하에 "하늘에서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물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이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때에  지금 이 하늘도 다 떠나가고 이 땅도 변하고 전체가 불에 타서 한 번 원소로  돌아가고 만물이 큰 변동을 받는 예수님의 재림때의 불심판을 두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얼마 남았는지 모르지마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지금의 우리가  보고 아느대로의 이 모든 우주안에 있는 전체는 크게 심판받고 크게 변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인식하고 있는 이 하늘도 다시 보지 못하고 우리가 지금 인식하고  있는 이 세계도 만물도 모든 조직도 건설도 다시보지 못합니다.

 이것으로서 끝나고 이제는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수립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기 말씀합니다.

 그다음에 17절로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이 우리에게 지금 해당된 말씀입니다.

19절이하의 말씀은 이렇게 이 물질로 되어있는 이 우주에 한 변동이 불원간에  갑자기 닥칠터이니 이 일이 닥치기 전에 사람들로 이 멸망에 참여하지 말고 이  멸망에서 구원함을 입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4절로 16절까지에 하신 말씀은 오순절 성령감림으로 이렇게 성령에 충만한  은혜가 임했을 때도 역연 강퍅해서 자기의 과거의 잘못을 크게 원통히 여기고  자기의 미래에는 어떻게 깨끗하게 사람답게 살아볼 뜨거운 마음을 가진 그  현재의 그들의 회개의 뜨거운 그 역사를 보고 술취했다 하는 이런 망령된 자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와 같습니다.

 이 주일은 어떤 것이 주일인고 하니 자기가 이제까지 잘 살았든지 못 살았든지  주일 이전에 어제까지에 산 그사람의 산 것을 원통히 여기고 오늘 어제까지의  사람보다 좀 더 참사람 좀 더 온전한 행위로 살아보려는 이 사람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 주일입니다.

 또 하나님의 모든 복을 주시되 복으로 주시지 아니하시고 복을 우리에게 생의  법칙으로 주십니다. 생의 법칙대로 주실 때 이 법칙대로 행하면 그 복이 됩니다.

복을 주지 않소.

 복인 이 법칙을 주어 법칙대로 할 때에 이 복이 실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이 실상의 복으로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이 날에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주일을 닥치기 이전보다 자신이라는 사람이 변해지는 변화를 받고 좀  더 세밀하고 구비한 생의 법칙을 받는 것이 오늘입니다. 주일입니다. 그러나  이날을 택함을 입은 믿는 사람으로도 주일을 범하고 돈을 얼마 벌고 주일을  범하고 누구 사람으로 더불어 약속이 이루어지고 하니까 오늘 주일 범하고 큰  수입 보았다 하는 그런 강퍅하고 멸망할 기독자도 있고 또 여기와서 앉아  있을지라도 이 시간 지금 누가 기다리는데 무엇을 해야 할텐데 이 시간에 부득이  나와 예배 안 드릴 수는 없지마는 공연한 시간으로 허비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어리석고 강퍅한 자도 이 가운데 있고 어떤자는 여기서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그렇게 사는 것이 좋기는 좋겠다 나도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 이런 사람도 있겠고  어떤 사람은 여기서 은혜를 받아 자기라는 사람을 영감으로 보아 참 원통하고  자기의 과거의 생애를 영감으로 공평정가 할 때에 너무 허무해서 부끄럽고  원통으로 자기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여기에 대해서 맘에 참 뼈가 아프고  살이 떨릴만치 마음에 뜨거운 각오와 결심이 생겨지고 해서 이 시간에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되고 자기의 생애의 그 법칙이 완전히 수정되는 이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고 이 자리에서도 이렇게 은혜받는 것을 보고 비웃고 조롱하고 우습게  생각하는 이런 불쌍하고 가련한 자들도 여기에도 있습니다. 오늘 믿는 사람  가운데도 다 이렇게 있습니다.

 이러기에 무궁세계의 하늘나라에 그 구원얻는 자의 영광과 권위의 차이는 세상  무엇으로 형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형체로 형용했고 여러종류의 육체로 형용을  했습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을 악령이 와 가지고 자꾸만 자기 마음을 강퍅하게 이렇게  만들려고 애를 쓰는데 이 강퍅한 마음이 되지 아니하도록 노력을 해야됩니다.

 안믿는 사람이 일년동안 한 일을 그믐날 반성하고 격려할라 하니까 머리가  아프니까 술 한 잔 먹고 취해 가지고 그만 미치괭이가 되어 가지고 그날을 다  잊어버리고 지내는 것처럼 이런 어리석고 미련하고 강퍅한 자처럼 무엇을  양심으로 생각해 보니까 잘못이 나올 듯 하고 가책되는 것이 나올 듯 하고  무엇도 무엇도 정리해서 정돈해야 될 일거리들이 머리아픈 일들이 생각나니까  그만 술 취해서 잊어버리는 자처럼 양심도 다 잊어버리고 과거는 과거로  지내보내 버리고 거저 현재 낙관으로 기쁘게 즐겁게 살자 그것이 인간의  멸망입니다.

 그렇게 자기 마음을 방종하게 강퍅하게 미련하게 하는 사람은 그사람은 참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입니다. 왜 인간의 생애가 하고 지내 보내는 것으로서  끝나는 것 아니요 인간의 생애는 그것이 이 세상에서도 자기 생활한 그것을  되묻고 되묻고 되묻고 제가 생활해 놓은 것이 있으면 거기 더러운 것을 다시  두터쓰고 다시 두터쓰고 몇번이든지 두터씁니다.

 제가 옳고 바르고 깨끗하게 해놓은 생애가 있다고 하면 그 생애는 여기서도  다시 필요있게 써먹고 저기서도 다시 필요있게 써먹고 그사람을 만나서도  필요있게 쓰여지고 저사람을 만나도 필요있게 쓰여지고 여러번 자기의 행한  행동을 더러운 것도 몇십번 몇백번이라도 세상에서 뒤집어 씌우는 것이요  무궁세계에서는 그것을 가지고 영원히 누립니다. 자기의 잘못한 것 가지고  영원히 누리요. 자기의 바로한 것을 이 세상에서도 그것을 열 번 스무 번 효력을  볼 뿐만 아니라 무궁세계는 영원히 효력을 봅니다.

 이러한 종류가 인생이요 이러한 인과보응을 가진 것이 인생이요 영원불멸의  존재로 되어있는 것이 인생이요 어떻게 짐승처럼 아무나따나 살아 이 시간  끝났으면 끝났다 가련하고 불쌍한 자입니다.

 여러분 아이가 어릴 때 공부할 때에 아무따나 산 그것이 자기의 일생에 그  열매를 안먹는 줄 압니까? 어릴때에 존절히 하고 진실되게 모든 애로를 극복해서  노력한 그것의 노력의 결과를 일생동안 그 효력을 보지않는 줄 압니까?  금생은 이렇게 인과보응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으로 되어있는 것이 인간이요  인간의 행한대로 보응되는 영원한 영원한 영원한 세계를 가지는 것이 죽었다가  부활해서 심판받아서 사는 무궁세계입니다. 지옥에도 구더기도 안죽는 나라요  자기의 일생살이를 거기에서 뒤집어서 자기가 먹어야 돼요.

 그런데 어떻게 자기가 아무나따나 한 그 값을 안받는 수가 없고 자기가  조심해서 존절히 해서 잘해놓은 그값을 자기가 그 덕을 안받는 것이 없는 것이  인생인데 어떻게 오늘 현실주의로 현상주의로 내일이야 어찌되었든지 오늘이야  기뻐보자 오늘 평안해보자 오늘 막 살아보자 막 먹어보자 막 써보자 막 놀아보자  막 말해보자 오기대로 막 해보자 해보자 그 열매를 제가 먹지 아니하고 되는지  그런고로 여기 오늘 봉독한 말씀 가운데 첫째가 이렇게 은혜받아 자기가 과거를  반성하여 원통히 여기고 자기의 미래를 바라면서 과거를 다시 그것을 지나간  일이지만 미래의 거름으로라도 써서라도 이것을 효력을 볼라고 이렇게 참사람의  마음과 참사람의 깨달음과 참사람의 각오의 뜨거워지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  사람들 술취했나 미쳤나 왜 저러노 하는 그런 강퍅한 자들도 있었으니 오늘도  그때와 같은 마귀고 그때와 같은 타락한 인간이고 그때와 같은 세상이니 네가  은혜받는 사람이 되려느냐 은혜받는 것보고 술취했다고 하는 그런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이 되려느냐 하는 이것을 첫째로 이 말씀에서 가르칩니다.

 둘째는 오늘인지 내일인지 몇십 년이 남았는지 그날과 그시는 모릅니다. 그나라  예수님의 이천 년이라면 예수 이천 년은 지금 17년밖에는 안남았습니다. 성경에  말세를 가르치는 징조를 많이 말했는데 그 징조는 거의 다 이루어졌습니다. 거의  다 이루어졌습니다.

 온 세계가 느부갓네살 왕 예언으로 말하면 강대국이 있고 그 밑에 아주  약소국까지 전부 독립되어서 되는 나라라고는 전부 독립 다하고 강대국이 있어  강대국에 모든 나라들이 다 지배받는 이 일이 이루어진다는 이 일의 예언의  징조는 지금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국경적으로 점령할려고 하는 그것이 벌써 지나갔소  다 독립을 시키고 정치적 통일, 사상적 통일, 활동적 통일을 시켜 여기서 주권을  잡으려고 하는 그 정치가 성경에 예언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소 사람들의 지식이  역사에 없던 가속도의 발달이 이루어진다는 말씀도 벌써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하나가 아직까지 시작안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사상주의 예술, 종교, 철학,  정치, 도덕 이 전부가 각각 주체성을 가지고 이 주체와 저 주체가 서로 투쟁  견제하는데 이것이 똘똘 뭉쳐서 한 힘이 되어진다 하는 것이 아직까지 성립  안되었습니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이 보이고 차차 기미가 보여집니다.

이리하여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요것으로서 요것이 최종입니다.

 그런데 밤사이 도적같이 주의 재림이 갑자기 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이  우주에 크게 한 번 변동될 종말의 변동입니다. 이전에 한 번 있었으니  노아홍수로 세계가 침몰된 변동은 불과 지구에 있었소 이번에는 하늘과 땅에 이  모든 것이 다 변동되어서 하늘이 간데없고 땅이 간데없다 이랬소 그 말은 그것이  없어졌다 그 말이 아닙니다. 현 상태와 모든 조직과 나열 모든 건설 이것들이  완전히 다 파괴될 것을 말씀합니다.

 모든 체질이 다 불에 타서 다 풀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내 말이 아니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이요 내말이 아닙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때가 오기전에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성신의 감동의  은혜를 주셨으니 이 감동을 받아 성신이 네 마음을 깨끗해서 좀 더 생각해 봐라  좀 더 널리 생각해봐라 좀 심각하게 생각해봐라 네 사욕을 버리고 전체적으로 한  번 생각해봐라 모든 것을 공평되게 한 번 생각해봐라 조물주가 있는데 피조물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네가 만든 것이 네가 지은 것이 네게 합당치 않으면 네가  어떻게 하겠느냐 오늘의 땅위에 보라 어떤 권세 아래에 있는 것이 그 권세에  대립이 되면 그 권세에 어떻게 지탱하겠느냐 어떻게 권세와 권세가 합해지느냐  권세와 권세는 합한 것 같으나 야심으로서 작전상이지 반드시 권세와 권세가  투쟁하여서 한 권세가 잡고야 마는 것이다.

 조물주가 계시니 주권자가 계시니 지금도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주재가  되시니 그분이 계신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분이 계시니 너는 오늘에 그분의  복수 심판이 오기전에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이날을  준비하라 네 생활에 옳고 그른 것을 세밀히 따져서 조심하고 창조주 주재자  주권자 대 주재이신 이분을 생각하면서 이분에게 마찰없도록 배치없도록  이분과의 관련을 네게 정리하고 정돈해라 하는 것을 베드로후서 3장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성령이 오시면 예수믿는 가운데 세 가지 종류로 나타난다 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믿는 사람들 가운데 세 가지 종류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아이와 종의 믿음 하나는 청년 믿음 하나는 노인믿음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이 상징을 가지고서 우리들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아이로 우리의 믿음에 볼 수 없는 것을 하나 표시해서 알려주고 젊은이로  상징해서 알려주고 늙은이로 상징해서 우리의 믿음의 형태를 상태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아이는 늙은이와 다른 것은 늙은이는 지나간 때를 자랑하고 그것을 팔아먹고 써  먹습니다. 아이는 좀 더 배우고 좀 더 알고 또 새것을 보고 새것을 취하고  자라가려는 알아가려는 좋아져 가려는 더 강해져 가려는 어쨌건 향상, 전진,  성장의 욕망을 가진 것이 아이입니다.

 예수믿는 사람가운데서도 아이처럼 이런 성격의 믿음을 가진자가 있고 좀 더  자라가고 알아가고 강해져가고 해서 좀 더 성장하고 좀 더 전진하고 좀 더  온전해지기를 원하는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아, 오늘을 만났다 오늘은  내가 이전에 어저께 사는자로 살지 아니하고 좀 더 사람이 되어보아야 되겠다 좀  더 행위를 고쳐보아야 되겠다 좀 더 하나님에게 대한 바른 지식을 내게 대한  올바른 지식을 내가 공연히 되지도 못한 것이 저만 자랑하는 과대평가하는  그런데서 속지말고 내가 어떤 괴물이며 어떤 거짓자며 내게 인간 병든 것이  무엇인가 오늘은 좀 더 알아 보아야 되겠다 인간이 무엇인지 좀 더 알아보아야  되겠다.

 금생이 무엇인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것인지 내가 정말 이제까지 산  생활이 어떤 생활인지 좀 더 알아보아야 되겠다 이제 한 번 고쳐보아야 되겠다  좀 더 이제는 장성해져야 되겠다 좀 더 깨끗해져야 되겠다 이렇게 하루를  맞이하는 이자가 아이의 믿음으로 상징했고 젊은이의 믿음은 이것은 자기 이미  있는 것 그것만 써먹지 이미 있는 그것만 써먹지 힘이 더 늘어가지도 안하고  배움도 그것으로 끝맺었소 이제 내야 뭐 공부 다 했고 이제야 졸업했고 뭐  했으니까 이제는 배운 것 그것 써먹지 배우는 것도 중단되었고 자기가 자라는  것도 중단 되었고 자기가 전진 향상도 중단되었고 이미 있는 현상 그대로  유지되는 것 어제 하던 생활 오늘, 오늘 하던 생활 내일 그대로의 이제까지  신앙생활하던 이제까지의 하나님의 법칙을 지키던 요것으로 족하게 여기고  이제까지 지키던 법칙이 이것이 부족한 것 없나 삐뚤어진 것 없나 미달된 것  없나 편벽된 것 없나 미 구비된 것 없나 이것은 없이 거저 주일되니까  주일지키고 연보할 때 되면 연보하고 성경보면 성경보고 기도하면 기도하고  전도하면 전도하되 아이와 같은 이런 욕망이 없는 믿음 언제든지 그 태생이요  이것은 젊은이의 믿음입니다.

 지식적으로나 성화적으로나 모든 행동적으로나 모든 내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나  대외 대내 투쟁이 없이 이미 점령된 것으로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이미 된  것으로 족하게 여기고 여기서 자기에게 죄인된 것 삐뚤어진 것 죄인으로 살지  아니하고 죄인을 발견해서 죄인으로 살지 아니하고 자기는 자라야 될 그 점을  발견하여 자라려고 살지 아니하고 현상으로서 만족히 여기는 이것으로서  젊은이의 신앙으로 상징했습니다.

 늙은이의 신앙은 쉽게 지식도 차차 차차 감소됩니다. 열 가지 알았던 것이 이제  하나 잊어버리고 아홉 가지 하던 일도 차차 줄어지고 활동 범위도 줄어지고  욕망도 차차 차차 좁아지고 이래서 점점 퇴보되는 것 앞으로 아이의 믿음과  정반대로 앞으로 향상이나 전진이나 성장은 원하지 아니하고 노력지 아니하고  뒤를 돌아보고 자기의 과거 행위 그것이나 자랑하고 그것이나 뜯어먹고 그것이나  팔아먹고 그것으로 만족히 여기는 이런 신앙 이것으로서 믿음의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 상징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교회에 다니기는 다니지마는 아이 믿음이든지 젊은이  믿음이든지 늙은이 믿음이든지 이 셋 중에 자기는 하나로서 귀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는 어떤 자인지 셋 중에 하나입니다.

 그 늙은이 신앙이라고 항상 늙은이 신앙이 될 수 있고 늙은이 신앙이 이 시간에  젊은이 신앙으로 바꾸어질 수 있소 젊은이 신앙이 아이 신앙으로 바꾸어질 수  있소  자기가 신앙 모든면에 힘쓰던 것이 차차 줄어지면 늙은이 신앙이요 과거에  힘쓰던 그것은 놓지 아니하고 그대로 현상유지에 힘을 쓰면 이것도 젊은이의  신앙입니다. 이것도 필요없소 여기보면 젊은이 신앙도 소용없소 늙은이 신앙도  소용없소 아이의 신앙이라야 구원이 됩니다.

 그다음에는 보면 종의 신앙이 있습니다. 종의 신앙과 아이신앙이 그 맺어지는  결과가 같습니다. 아이의 신앙과 종의 신앙은 예언한다 이랬소 그 결과가  예언한다 예언한다 말은 우리말로는 요것 말이 되기가 그래서 요렇게 번역이  되었는데요 예언이라는 번역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을 나타낸다는 번역으로 되어야  바로됩니다.

 여기 예언이라 말하는 것은 미래사를 말하는 것이 예언함이 아니고 예언이라는  것은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것을 나타내는 것이 예언입니다.

 선지자는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것을 나타내는 것이 선지자요 그 발표를  가르쳐서 말이라 하기 때문에 예언이라는 말과 선지라는 말은 하나입니다.

 인간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선지자요 예언이요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경영을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경영을 나타내는 것이  예언입니다.

 하늘에서는 하나님과 천사들과 마귀들이 모여가지고서 천국회의에서 땅에 있는  아합왕 저놈이 저렇게 강퍅하니 아합왕 저놈을 누가 가서 멸하겠느냐 의논을  하니까 마귀가 있다가 내가 가서 그놈을 멸하겠습니다. 네가 어떻게 멸할래 그놈  허영과 허욕이 많기 때문에 내가 허영과 허욕을 그놈 속에 가지고 가 가지고  네가 전쟁하면 네 연방국가 국경을 넘어서 국가 영토를 다 점령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놈이 당장 전쟁할 테니까 전쟁에 가 뒈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늘에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경경이 이런데 이 귀신이 들어가 놓으니까  아합왕은 마음에 나기를 야 우리가 이처럼 강하고 평안하니까 전쟁하면 모든  이웃나라의 영토를 다 빼앗을 수 있겠다 욕심이 나온다 이말이요 그래 가지고서  자, 이 전쟁하는 것이 어떤가 모두 선지자들에게 한 번 알아보아라 하니까 모든  이 간사한 선지자들이 이번에 전쟁을 하면 왕이 대승리를 합니다. 미가야  선지자에게 물으니 미가야 선지는 내가 하늘의 회의를 들었는데 이렇고 이렇고  이런데 이제 왕이 전쟁에 나가면 전사하고 옵니다.

 이러니까 이놈은 언제든지 내가 할려고 하는 것 못하게 하는 놈이지 이놈보라  내가 패전하고 오는가 보라 이놈 잡아다 가두고 연명만 할만큼 음식을 먹여라  내가 전쟁을 이기고 와 가지고 이놈을 잡아 맛있는 잔치를 하겠다 이랬다 그래  미가야 선지가 나를 해할 수 있도록 살아오기나 오십시오 가 가지고 죽지 안했소  이렇게 보이는 그것은 하나님 경영 그것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비밀경영을 인간에게 미리 알려서 인간이 알고  준비해서 멸망을 받지 않도록 하는자가 선지자요 예언자입니다.

 또 선지자는 하나님이 하시는 그 역사를 인간에게 그 역사를 해서 보이는 것이  하나님이 사자 입에서도 다니엘을 죽지않게 하는 일 불속에서도 타지않게 하는  그것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속에 들어가 다녔으나 불내도 나지 아니하고  나옴으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였고 사자구덩이에서 사자가 삼키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역사를 인간에게 보였고 이것이 다 선지자요 예언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14장에는 똑똑히 그렇게 말했소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이것이 예언이요 선지자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은 하나님을 본 사람이 본래 없지마는 독생하신 예수님이  그를 나타냈다 했습니다.

 그런고로 아이 믿음과 종의 믿음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세상에게 알려주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경영을 세상에게 알려주어서 예비케하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세상에 나타내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굴복하게 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세상에 나타내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굴복하게 하고 하나님의 그  완전성을 그이의 인격으로 나타내고 하나님의 속성을 그의 생애로 나타내고  하나님의 사람을 그로 통해 나타내고 하나님의 진실을 그로 통해서 나타내고 또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것을 그사람을 통해서 세상에게 나타내게  됩니다.

 우리가 아이의 믿음 종의 믿음 종의 믿음은 자기 현실에서 뭐 예언이고 뭣이고  다 치워버리고 자기 현실에 하나님의 내게 대한 뜻이 무엇인가 요것만  찾아가지고 죽든지 살든지 하는 그것만 종입니다.

 종의 믿음을 가지든지 아이의 믿음을 가지든지 가지면 나같이 못난 것이  우리같이 못난 것들이 완전하시고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거룩하시고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이 하나님을 나타내어 하나님같은 나로 만물에게 상대할 수 있는  만물에게 나타나는 이렇게 지극히 크고 존귀한 소망이 예수의 공로로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기의 현실 신앙생활에서 전진향상하지 아니하고 이미  현실생활에서 조금만 힘쓰면 아이믿음 되는데 현상유지의 신앙생활하는 자는  환상보는 자라 이상보는 자라 환상이라는 말은 환영을 본다 그 말이요 그림자를  본다 그 말이요  예언 아이 믿음 종의 믿음은 실존하신 이 하나님의 전부를 자기가 실질적으로  자기가 받아 가지고 나타내는데 이 사실을 영화보듯이 그림보듯이 그림자 보듯이  현상유지의 신앙은 자기에게 영감이 와 가지고 이상한 것을 느껴지고 이상한  것을 느끼고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이상한 것을 생각하고 했지마는 그림에 본 떡  한 가지다 그림자 본 것 한 가지라 환상보는 것 한 가지라 실제 예수는 모르고  예수 믿어야 그사람 이상한 것만 보니까 이상한 소리나 하지 실지로는 제가  받지를 못해 불쌍한 사람이요 늙은이 신앙은 꿈꾼다 이랬소 이 꿈꾸는 것이야  실상과 얼마나 거리가 머요  꿈에 제가 공중에 날라 다녔다고 그것이 실상인가 실상에 나는 것과 무슨 소용  있소 꿈에 온 세상을 점령했다고 해서 그것이 실상에 무슨 소용이 있소 무슨  상관 있소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되고 하나님의 전부가 내것이 되어서 피조물에게  나타나는 이것이 우리 기독자의 성공인데 이것이 실상인데 이 실상을  그림자보듯이 이 실상을 사진 보듯이 보는 것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림자 보는  것이 실상에 무슨 상관있소 꿈꾸는 것은 이 실상에 얼마나 거리가 머요.

 그러기에 자기가 좀 더 힘써서 아이의 신앙, 종의 신앙으로 힘쓰면 이 실상속에  들어가서 실상에 하나되는데 조금 게을리 해 가지고 현실을 지나가면 환상을  보는자 됩니다.

 좀 더 게을을 부려서 차차 차차 퇴보하게 되면은 꿈꾸는 늙은이와 같은 그런자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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