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한 싸움


선지자선교회 1985년 8월 4일 주후 

 

 본문 : 다니엘 3장 13절∼22절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 오라 명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낯빛을 변하고 명하여 이르되 그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칠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을 명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지라 하니 이  사람들을 고의와 속옷과 겉옷과 별다른 옷을 입은채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질 때에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가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우리는, 기독교 구원을 얻는 데에는 세상에 많은 책들과 지식들이 있지만 그런  것은 우리에게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 있는 것도 있으나 그것이 없어도 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없어도 상관없고, 또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기독교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약으로 선포해 놓으신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법칙으로 이대로 알고, 이대로  인정하고. 이대로 행함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 외에 다른 방편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의 제일 첫째로 중요한 것이 신구약 성경은 우리가 믿어 구원  얻는 도리를 가르치신 유일한 법칙으로 믿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또 이  말씀은 정확 무오해서 가감이 없는 진실성의 권위를 가진 말씀으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의 구원은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이 구원 도리에 대한  지식을 우리가 잘 갖추어 가지도록 해야겠습니다. 자기가 모르는 것은 행할 수도  없고 모르는 것은 또 자기가 행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다른 어떤 서적보다도 많이 읽어서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  지식이 적은 사람은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적게 읽고 적게 알아도 손해가  적겠고, 세상 지식이 많은 사람은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많이 읽고 많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 지식은 따져 들어가면 근원이 뱀에게서 나온  지식이기 때문에 그 지식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식을 반대하고 나오는 거짓말  지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이 이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으로  인정할 때에는 그 사람은 벌써 이 지식으로 말미암아, 세상 이 지식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을  가지되 이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과 같은 그런 권위성의 신실성이 없는 지식이요,  또 책임을 지지 않는 지식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세상  지식은 다만 그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이 지배를 해서 하나님의 지식에게 복종을  시키고 이용을 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되지 그 지식이 하나님을 닮는 데에  방해를 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부인할 만치 그렇게 내게 있어서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 그 지식은 자기를 완전히 삼키는 지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 지식을 가진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의 지식을 가진 양이 많아야  되겠고, 세상에 대한 그 지식을 자기가 견고히 알면 아는 것만치 하나님의  지식은 그런 것을 초월한 확고의 확신성을 가지고 있지 안하면 구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구원을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지식을 올바로 알아야겠고,  이게 중요합니다. 바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바로 아는 것은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바로 아는 것은 아는 그대로 내가 참되다 인정하는  확신을 가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 지식을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지식에 대해서 확실하다고 인정을 하는 그런 확신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실패입니다. 그것으로도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정하고 확신하는 것은 뭐  때문에 그렇게 하느냐 하면 자기가 이 세상을 상대해서 살 때에 확신을 알고  인정하고 확신하는 그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향할 때에 그에게 끌리지 안하고 이  확신하는 진리대로 그대로 실행을 해서 세상이 온갖 유혹을 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할 때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알고  인정하고 확신을 가지는 것이지 현실을 만나서 이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그  미혹을 당할 때에 그 미혹에 넘어간다면 그 사람은 안다는 것이 아무 효력이  없이 다 소용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이렇게 하나님의 지식대로 내가 신앙 행위를 해서 심신의 기능을  영생시키고 심신의 기능을 주님이 대속해 내서 법적으로 살려 놓은 심신의  기능을 실질적으로 실상으로 영생하는 기능을 만들라고 현실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라고 애를 쓰는 것인데, 현실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성경 지식대로  행하지 못하고 성경 지식을 빼앗겨서 미혹에 빼앗겼으면 헛일이요, 미혹에  뺏겼던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반드시 강압을 가지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일이 있읍니다. 우리를 슬슬 달래 가지고 미혹을 시켜서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역사가 있고, 하나는 강제로 강압해 가지고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떨 때는 우리에게 있는 보배로운 것을  빼앗을라고 달라들면서 '네가 이 성경 말씀대로 생활하면 네게 있는 보배를 내가  빼앗겠다' 그렇게 협박을 하고 위협을 합니다. 이래서, '네 건강을 빼앗겠다, 네  아름다운 그 가정을 빼앗겠다, 네 부부를 빼았겠다, 네 직위나 직장이나 사업을  뺏겠다. 네 생명을 빼앗겠다. 이렇게 위협을 합니다. 아무리 그 위협을 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 믿어 구원 얻는 이치를 가르치신 그 이치를 양보하지  안하고 그 때에 그대로 실행해 나가는 것이 신앙인데, 그렇게 나가면 달래다가  안 되면 있는 것을 빼앗겠다고 그렇게 우리를 협박을 합니다. 또 그래도 안  들으면 너에게 무엇을 주겠다고 우리를 또 유혹을 합니다.

 이래서. 유강으로 아주 부드럽게 우리를 유혹시키는 방편도 있고 우리를 강제로  강압시키는 방편도 있는데, 어떤 방편으로 우리를 신앙생활 하지 못하게 하든지  우리는 거기서 구원 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양보하지 아니하고 빼앗기지 안하고  거기서 진리 말씀대로 그대로 싸워 나가서 이기는 것이 그것이 영생을 이루는  것입니다. 만일 그때에 겼으면 제가 일년 싸우다가 져도 마지막에 결말에 졌으면  저의 모든 신앙생활은 다 헛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때문에 그렇게 할 때에 신사참배에 굴한  사람들은 그때까지의 신앙생활은 다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면 실패했으나 과거에  준비했던 것이 실패하니까 원통해서 다시 거기서 일어서는 힘이 강하면 오히려  실패한 것이 또 실패 안 한 사람보다도 앞설 수도 있는 그런 형편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믿어 구원 얻을라고 하면 첫째는 구원 얻는 유일한  법칙을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있으니 그 법칙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기 때문에 이  법칙을 잘 아는 데에 주력해 가지고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알고 난 다음에는  그게 참인가 거짓인가. 자기는 참으로 그걸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그것을 자기  스스로 따져 가지고 확실히 인정하는 그 노력을 해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은 정학 무오하고 확고 부동하다, 이렇게 참되다 인정하는 그 인정을 자꾸  만들어야 됩니다. 인정을 만들어서 자기의 인정되지 안하는 것이면 회개를 하고  자꾸 인정하는 자기가 되도록 이렇게 노력을 해서 인정을 만드는 사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인정을 만들고 난 다음에는 그때까지 하는 노력이 뭐이냐 하면 아직까지 결과는  못 됩니다. 인정을 할라고 애를 써서 인정하는 사람이 됩니다. 혼자 스스로 자꾸  기도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주님이여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의 말씀대로  실행하게 해 주옵소서. 만일 내게 있는 좋은 것을 다 뺏든다 할지라도  빼앗길지라도 내가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이 말씀은 내가 요동치 않게 해  주옵소서. 만일 나를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을 한다 할 지라도 주님이 구원  법칙으로 주신 이 법칙을 내가 어기지 않게 해 주옵소서. 만일 나를 감옥에다가  가두고 마지막에는 나를 극렬한 그런 사형을 시킨다 할지라도 내 구원의 법칙을  내가 양보하면 영원한 멸망이기 때문에 한 번 죽는 것인데 뭐 아무래도 죽기는  죽는 것인데 안 죽기 위해서 이 구원 도리를 양보하지 않고 기어코라도 구원  도리를 지켜서 내게 닥친 혀실 이라는 현실은 내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그대로  통치로 통과하는 내가 되 게 해 주옵소서.' 하는 이런 사람이 되도록 평소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기 대해서 대적하라면 대적하고, 말하라면 말하고, 던지라면  던지고, 잡으라면 잡고, 견디라면 견디고,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은 명령이  이래라 하든지 저래라 하든지 그 명령대로 그 현실을 통치를 합니다. 이것 이  에덴 동산에서 동산을 다스리라 하는 그 다스리는 것입니다. 통치합니다.

그러면, 그때에 내 환경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꺾지 못 했고.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고, 그 현실은 나를 꺾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나는 살았고, 그들은 살지 못하게 할라고 애를 쓰고, 나는 살았고  하면 살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썩어져서 패전을 당했고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으로써 승리를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우리는 이 싸움이 없는 때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없는 때는 우리가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살아간 과거의 역사에 구름 같은 간증자들이 모두 다 이런 형편 저런  형편을 당해서 이 사람은 이런 데서 패전했고 저 사람은 저런 데서 패전했고, 이  사람은 이런 유혹에서 넘어졌고 저런 사탄은 저 강압과 그 압박에서 패전을  했고, 이런데 나는 이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 내 앞에는 어떤 일이 닥칠란지 알지  못하니 자기 앞에 이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에 어떤 애로와 굴곡과 파란이 있을  것을 미리 예상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예상하는 것이 기도요, 그렇게  예상하면서 '그럴 때에 내가 약해지지 안하고, 꺾어지지 안하고, 그때에 주님과  주의 도리를 배반해서 영원한 멸망을 받지 안하고, 그때에 주님을 모시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내가 되므로서 믿음의 싸움을 이기고 주님의 법적으로 대속 받은  것이 실상으로 영생으로 완전히 화해지게 해 주옵소서. 현실 현실마다 다 기능을  영생으로 완전히 구속하고, 또 영은 현실에서 자기 심신을 다 통치해서 병은  주격이 되고 심신은 영에게 통치를 받고 영은 진리와 영감에게 통치 받아서  하나님과 진리와 내 영과 내 마음과 내 몸과 내 행동과 내게 속한 만물들이 다  한 덩어리가 되어서 영원한 천국의 영생을 이루는 이 걸음을 걷게 해 주옵소서.'  하는 것을 우리가 날마다 기도하는 것이 그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후에 이 말씀을 봉독한 것은 그것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이 그 꿈을  꾸고 금으로 그 신의 모양으로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위에는 금으로 하고, 그  다음에는 은으로 하고, 그 다음에는 놋으로 하고, 그 다음에는 철로 하고, 그  다음에는 진흙과 철로 해서 이렇게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만들어 놓고 그  신상에게 누구든지 절하지 않은 사람이면 불미 불에 넣어서 다 화형으로  죽이기로 그렇게 결안을 내고 온 전국민이 그 앞에 와 가지고 절하는 판입니다.

그때에 온갖 악기를 울리면서, 그 악기 울리면 악기에 따라서 모든 백성들은  거기에 절을 합니다.

 절을 하는데, 그때에 뭐 다른 사람들은 다 절을 했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사람이 거기 절을 하지 안했습니다. 절을 하지 안하니까 온 백성들이  고발하기를 '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고 하는 저 이스라엘에서 포로되어 온  그 청년들은 왕이 만든 신상에게 절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고발을 했습니다.

그때에 왕은 그 고발을 듣고 '하, 이는 우리나라에 참 충성된 일군들인데 아,  이거 원통하다.' 이래서 그 세 사람을 불러 가지고 들으니까 너희가 내가 만든  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안한다고 하니 너희들이 혹 몰라서 그렇게 했나, 어째  그만 생각을 미쳐 못해서 그렇게 했나. 참으로 고의적으로 절하지 안했나?'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것은 왕이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한번 돌이킬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에게, 16절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도 이 대답을 할 수 있는 이 사람이 이  시간에 돼야 됩니다. 안 되면 썩었습니다. 천하를 차지하면 까짓 거 뭐할  겁니까? 아무 가치 없습니다. 오늘이라도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다  없어집니다. 뭐 세계에 강대국 하지만 그 까짓 거 주님 오시면 다 불타 버리고  맙니다. 없어집니다. 무엇이 가치 있습니까? 이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이  자리에서 자기를 만들어야 됩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절을 하겠나 안 하겠나, 말해라 아.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의례히 그런 신상을 섬기지 안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기 때문에 뭐 그까짓  거기 대해서 아무리 왕이 말해도 그런 말을 말로 들어서 상대해 가지고 하겠다  안 하겠다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왕을 빠짝 똥같이 납작 멸시해 봤습니다.

이게 있어야 합니다. 이게 있어야 해.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뻘뻘 떨면서  '예, 예, 대답하겠습니다.' '대답을 해라' 죽음을 뚜드리니까 말도 안 하고,  있다가서 또 하니까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막 분해서 어 어 어 이라며  야단을 지겨도 꼼짝도 안 합니다. '대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왕이 말같지 않은  말을 우리에게 할 때에는 우리가 그 말에 대해서 답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  같지 않은 말을 하지 마시오.' 그말이오. '비언이면 무답이라' 말이 아니면 답을  하지 안해.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될요가 없나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법을 어기라고 하는 그 세력은 왕이든지 대통령이든지  장관이든지 경관이든지 호주든지 친구든지 공산주의든지 뭣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라고 하는 그런 존재에 대해서는 아주 그까짓 거 똥같이 여기고  구더기같이 여기고 그까짓 거 발 아래 있는 때같이 여기는 것이 하나님의  성도입니다. 뭣 때문에 두려워합니까 두려워하기를? 뭣 때문에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에 절을 꾸벅꾸벅한다 말입니까? 뭣 때문에 공산주의에 꺾어집니까.

꺾어지기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자를 상대방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을 잊어버릴까 해서 거기서 부드럽고 유하게 이렇게 저렇게 술슬 둘러서  이렇게 저렇게 말하고, 속에는 '네가 말하는 것은 똥만치도 못하다. 똥은 죄가  없지만 너는 죄 덩어리다. 너는 영원히 멸망 받을 마귀 덩어리다.' 아주  멸시하고 깔봅니다. 이게 있어야 합니다. 아,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데  하나님 말씀 어기라 하는 그 세력은, 그 세력하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말씀하고 대립이 되는데 하나님 말씀은 그런 것들을 지었습니다. 그런 것들의  억억억억억억억만 배도 더 크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뭣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이거는 믿음 없는 자의 행동입니다.

 17절에,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그럴 것이면" 우리를 불에다가 넣어  가지고 태워 죽일라고, 불에다가 던져 태울라고 하시면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아, 거기서 건져내서 필요하면 불보다 더 강하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능히 건져 낼 수 있는 세력을 가지고 있고, 온 바벨론 나라에 있는  백성들이 똘똘 뭉쳐 가지고 잡아다가 극렬한 불에 태운다 할 지라도 바벨론 왕과  전국민보다 강하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까짓 것 다 소용 없고, 불보다  강하신 분이기 때문에 불 세력도 소용없고,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왕이 암만 죽이고 싶어도 죽이지 못합니다. 왕의 세력의  억억만 배도 더 크신 분이 우리 주님이신데 왕이 하고 싶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줄 압니까? 왕의 손에서도 우리를 죽이지 못하게 하십니다.'  참 정평 정가했습니다. 하나님의 가치도 정평 정가했고, 느부갓네살 왕도 정평  정가했고, 불의 세력도 정평 정가했고, 대중들의 뚤뚤 뭉친 그 전 국가의 세력도  정평 정가해서 그리했기 때문에 그것은 여기 비해서 아무 것도 아니게 봤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게 봤습니다. '천조 대신을 손에 잡혀 주라. 너거 앞에서 불에  태우게 국기를 잡혀 주라. 너거 앞에서 국기를 태울께.' 이는 그들과 대항하는  가운데 그 세력이 암만 크다 해도 그런 것보다 더 크신 분이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정평 정가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만일 우리를 건져 내실란지 안  내실란지 모릅니다. 불에 타서 죽도록 하실란지 건져 내실란지 모릅니다. 주님과  진리 위하여, 영감 위하여, 주님과 영감과 진리 위하여 그대로 살므로 불에 타서  사형을 당하면 그 영광이 크고 크고 무쌍히 크니 하룻밤 나그네에서 이보다 더  잘 살고 준비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주님이 여기서 건져 내시는 은혜를  주실란지, 여기서 영원 완성의 은혜를 주실란지 모릅니다.' 그말입니다. 여유가  얼마나 있는지? 아, 느부갓네살 왕 자기가 말하는 거기에 백 배 천 배 넓은  세계에서 벌써 그런 것을 초월해서 고차원에서 생각하고 있는데 그 근방에  오기나 오겠습니까? 오지도 못해.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얼마나 빛난지, 얼마나 참 깨끗한 성도의  말인지, 요런 말을 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왕이여 왕의  신상에게 절하지도 안하고 왕이 말하는 대로 그대로 하지도 안 할 것입니다.

아예 그럴 줄 아십시오. 공연히 시간 보내고 자꾸, 기운 없는데 말 암만 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안 할 줄 아십시오.' 딱 단정을 내렸어 안 하겠습니다가  아니고 '안 할 줄 아십시오' 얼마나 여유 있는 말했는지?  이런 사람이 되기를 우리가 힘씁시다. 돈 앞에서도, 그 전주의 자본이 아니면  당장 굶어 죽을 수 있는 전주 앞에서도, 권세 앞에서도, 사형 앞에서도, 자기  일생을 좌우하겠다는 모든 가장 앞에서도, 가족 앞에서도, 직장의 그 모든  권위자 앞에서도, 내가 이 기술 안 배우면 망하겠는데, 기술을 얻을라고 할 때에  기술 권위의 앞에서도, 공부를 하는 그 공부 앞에서도 어디서든지 주님의 말씀에  위반되면 안 합니다. 주님과 동행 외에는 할 것이 없습니다. 주의 말씀을 어겨  가면서 천하를 줘 보십시오. 하는가? '나 한테 한번 절해라. 천하의 모든 영광  다 주겠다.' '사탄아 물러가라. 오직 그만 경배하라 하였느니라.' 할 때에 사탄  그놈은 쫓겨나가 버리고 천사는 수종들었습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 지금 계십니다. 늙지 안했습니다. 쇠하지 안 했습니다.

변하지 안했습니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이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바벨론 나라에서 이 운동이 뭣 때문에 일어났을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위해서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이 뭣 때문에 일어났을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보고 이로써 믿는 도리를 깨달아서 제 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그런  신실한 그 도들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만들어서 하신 것입니다.

누가 만들었습니까? 주님이 만드셨지.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서든지 요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함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이라' 주님도 '아버지의 말씀은 영생인 줄  내가 아노라. 아버지의 명령은 내가 영생인 줄 아노라.' 이러기 때문에 영생을  버리고 사망을 가지지 안할라고, 마치 우리를 그냥, 불에 들어 갔으면 불에서  살아 나을라고 애쓰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 어길라 하는 데에서 어기지  안하고 말씀대로 살라고 날뛰는 것이, 이 지식을 가졌으면 꼭 그와 같습니다.

말씀을 어기고 하는 것은 자살하는 행위요,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손해가  없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 직장이 떨어졌습니다. 직장 떨어지면 그까짓 거  몇 닢푼치 안 되는 직장 떨어지고 말씀과 성령과 하나님을 내 것 삼았습니다.

그게 큽니까, 뭐이 큽니까? 땅 위에 피조물 이런 거 저런 거 주님 때문에, 영감  때문에, 진리 때문에 내가 그것을 손해 봤으면 여러 배 백 배를 당신이 갚아  주마고 계약했습니다. 이 계약은 변하지 않습니다. 뭣 때문에 우리가 뻘뻘 떨고  있습니까? 왜? 떠는 그런 더러운 칙칙한 못난 신앙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까?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삐뀔까 돌아갈까? 뭐  아무 것도 아닌데 이래서 슬슬슬슬 이라니까 아, 그게 무슨 가치있는 줄 알고.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와 이 세 가지 외에는 아무 가치 있는 게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의 이 세 가지가 뭉친 것이 예수님의 공로인  것입니다. 이 외에는 가치가 없어. 뭐가 가치 있습니까. 있기를?  그러기 때문에, 오늘 오후에는 이 말씀을 보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이런 사람이 되어서 우리가 우상에 절하는 그것은 아닐지라도 그와 같은,  이치라. 세상에서 어떤 것이 들어서 '너 하나님 말씀 어기고 나에게 복종하지  안하면 이렇게 하겠다. 또 하나님 말씀 버리고 나에게 복종하면 이렇게 좋은 거  주겠다.' 꾀어도. 협박을 해도. 위협을 해도. 있는 걸 다 뺏들어도, 어떤 걸  좋은 걸 줄라고 해도, 내게 있는 생명을 뺏들어도 코 웃음 웃고, 비웃고,  '어리석은 자야 너는 해하지 못해. 야, 뺨 한번이라도 더 때려라. 더 때리면  상급하나 더 있다. 네가 형벌을. 당장에 급한 사형 시키지 말고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으로 더 좀 이 역사에 아무도 견디지 못한 최고의 고문과 고형으로 나에게  가해라. 그게 나에게 선물이다.' 그러면 부활의 영광의 주님 앞에 대할 때에.

그때에 그 사람을 주님께서 아노라 하시고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세상이 해할 수가 있는 줄 압니까?  해하는 길은 절대로 없습니다. 해할라고 하면 유익이 됐지. 왜 이렇게 든든한  시온의 대로가 있는데 이 길을 가지 못하고 그렇게 못나게 일생 동안 이것  때문에 죽을까, 돈 없어서 죽을까, 직장 떨어져서 죽을까, 어때서 죽을까?  죽기를 두려워 해 종노릇하는 거기서 해방시킬라고 주님이 오셨는데 그런  종노릇에서 항상 칙칙하게, 못나게. 천하게 그렇게 우리가 구불다 가서 세상을  천하게 떠나고 말 것입니까? 이제는 새롭게 깨어서 산 사람으로 삽시다. 세상  아무 것에게도 하나님의 피조물 어떤 것에게도 우리는 종될 필요가 없습니다.

창조주 그분 한 분에게 종 됐으면 됐습니다. 그분 한 분만 모시면 됐습니다.

그분이 내 하나님이 되고 내 지능이 되고 내 전 부가 됐는데 피조물이 내게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거는 내 것이지.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확정을 지웁시다. 가지고, 불 앞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돈 앞에서도. 권세  앞에서도, 직장 앞에서도, 사형 앞에서도, 어떤 아름다움 뭐 아름다운 유혹  앞에서도, 어떤 유혹에서라도, 어떤 거 앞에서라도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은 요런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요런 사람으로, 요런 말을 하는 사람으로,  요런 행동하는 사람으로, 요런, 기쁨이 그 피부에까지 가득 찬 사람이 되도록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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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2 믿음의 상태/ 사도행전 2장 17절-21절/ 791014주전 선지자 2015.10.31
31 믿음의 상태/ 사도행전 2장 17절-21절/ 791015월새 선지자 2015.10.31
» 믿음의 선한 싸움/ 다니엘 3장 13절-22절/ 850804주후 선지자 2015.10.31
29 믿음의 선한 싸움/ 디모데전서 6장 5절-15절/ 851115금새 선지자 2015.10.31
28 믿음의 승리/ 히브리서 11장 6절/ 791115목새 선지자 2015.10.31
27 믿음의 시발 순서/ 로마서 12장 1절- 2절/ 800414월새 선지자 2015.10.31
26 믿음의 연단/ 베드로전서 1 장 7절/ 85011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0.31
25 믿음의 연성/ 요한복음 8장 31절-37절/ 861128금새 선지자 2015.10.31
24 믿음의 열매-온유,겸손,평안/ 마태복음 11장 28절-30절/ 830807주후 선지자 2015.10.31
23 믿음의 영광과 능력/ 마태복음 16장 13절-26절/ 840615금야 선지자 2015.10.31
22 믿음의 자녀, 면류관/ 빌립보서 4장 1절/ 840722주새 선지자 2015.10.31
2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창세기 12장 1절-9절/ 881012수야 선지자 2015.10.31
20 믿음의 종자/ 에베소서 1장 17절-23절/ 1987. 8. 4. 새벽집회(화) 선지자 2015.10.31
19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히브리서 12장 1절-2절/ 880710주전 선지자 2015.10.31
18 믿음의 증거/ 누가복음 5장 4절-10절/ 791129목새 선지자 2015.10.31
17 믿음의 증거/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890807월밤집회 선지자 2015.10.31
16 믿음의 지식, 믿음의 행위, 믿음의 사람/ 고린도후서 5장 1절-7절/ 840102월새 선지자 2015.10.31
15 믿음의 지식-행위-사람/ 요한계시록 1장 3절/ 831125금새 선지자 2015.10.31
14 믿음의 지식-행위-사람-목회자/ 로마서 1장 17절/ 840102교역자회 선지자 2015.10.31
13 믿음의 표본으로 준 신앙노선/ 창세기 12장 1절-3절/ 871024토새 선지자 201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