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열매-온유,겸손,평안


선지자선교회 1983년 8월 7일 주후

 

본문 : 마11장 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가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또 어떠한 존재든지 그것을 모를 때에는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나무를 모르거든 그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또 이런 사람 저런 사람도 사람은 우리가 그  사람을 보고 모르나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전에도 말씀하신 대로 '수고하는 사람들아 다 내게로 오라' 네가 공연한  인간고를 겪고 있는데 그런 수고를 해도 다 헛수고니까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의 마음이 편히 쉬도록 하겠다'  그러시면서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하나는 네가 네 생각대로, 네 욕심대로, 네  뜻대로, 어떤 또 상관대로, 어떤 부하대로, 어떤 주인대로 그렇게 네가 거게  따라서 움직이는 그런 일을 하는 자들아. 암만 해 봐야 네게도 유익 없고  상대방에도 유익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을 다 버리고 내가 너희들에게  메워 주는 멍에를 메고 가라.

 혹 멍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멍에라는 것은 소가 수레를 끌  때에, 구루마를 끌 때에 멍에를 목에다가 나무로 만들어서 이래 꾸부정하게  만들어 가지고 목에다 턱 걸어 가지고 그래 구루마를 끌도록 하는 그게  멍에입니다.

 또 농부가 소를 가지고 논을 갈라고 할 때에 소가 쟁기를 끌어야 논이  갈려지니까 끌 때에 소 목에다가 멍에를 끼워 가지고 소가 가면 뒤에 쟁기가  따라가고 구루마가 따라가고, 말도 그러합니다. 그것을 멍에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너희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이런 멍에 저런 멍에가 많이 있어서 이런  책임 저런 책임, 이런 할 일 저런 할 일이 심히 복잡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들인데 그렇게 많은 일로 고생하지 말고,  그 해 봐야 죽는 일이요 망하는 일이요 또 자기가 손해보면 상대방은 유익을  보면 하지마는 상대방도 손해보는 일이니까 그런 것을 버리고 내가 너거들에게  멍에를 메워 주는 내가 멘 이 멍에를 너희들이 메도록 해라. 그러면 너희들이  첫째는 마음이 쉬게 된다. 또 모든 것이 평강을 얻게 된다.

 예수님께서 메고 간 멍에는 그저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 그 것뿐입니다.

딴것 없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 임금이 와서 나를 이제 내게 대해서  온갖 고문이나 고형이나 심문이나 정죄나 훼 방이나 그런 것들을 할 것이다.

별별 그 수단과 방편을 가지고 내게 대해서 많이 괴롭히고 곤란케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오든지 가든지, 뭐 나를 괴롭히든지 평안하게 하든지 나는  상관이 없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그 계명을 지키는 것  그 두 가지 외에는 없다. 아버지를 섬기는 일과 그 계명 지키는 것 두 가지밖에  없기 때문에, 저희들이 와 가지고 내게 대해서 어떠한 일 해도 무슨 일 하든지  해 봤자, 무슨 일 하든지 해 봤자 내게서 나타날 것은 아버지 사랑하는 것만  그들에게 보일 것이고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것 그것만 보이지 딴거는 아무것도  저희들이 볼 것도 없고 와 봐야 내게는 그 두 가지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꼭 두 가지 그것밖에 안 했습니다.

 우리에게 멍에를 말하는 것은 그저 우리가 할 일을 생각하면 그뭐 할 일이  한없이 있습니다. 할 일을 요구하는 것도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수십 수백으로  가뜩 찼고, 또 명령하는 것도 그렇고, 아래도 그렇고 옆에도 그렇고 위에도  그렇고 우리의 할 일은 가뜩 찼습니다.

 찼는데, 그렇게 많은 일로 수고하지 말고 꼭 한 가지만 하도록 단정을 지워라.

내가 세상을 이긴 것은 한 가지만 해 가지고 이겼으니까 너희들도 한 가지만  해라.

 한 가지 뭐? 그저 할 일이라는 것은 주님이 아버지외 계명을 지키는 것,  아버지에게 계명 지키는 순종하는 것,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그것과 아버지  섬기는 것 그 외에는 딴것을 안 한 것처럼 너희들도, '내 멍에를 메고 내 짐을  져라' 그말은 너희들도 내게 순종하는 그 순종의 멍에와 또 하나님을 섬기는 것,  하나님을 섬기는 그 짐, 책임 말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그 책임만 지고 딴  책임은 다 지지 말아라.

 그러면 그 결과적으로 어떤 일이 생겨지는고 하니 차차 차차 온유한 마음이  생겨지고 겸손한 마음이 생겨지고 또 평안히 쉬는 일이 생겨지는 그 세 가지가  결과다.

 내 멍에와 내 짐을 지면 이 세 가지가 열매로 맺는 것이니 이 세 가지 열매가  네게 맺으면 주님이 메워 주신 멍에와 그 짐을 잘 짐진 것이고 그 세 가지가  이루어지지 안하면 거짓부리고 네가 아직까가 멍에도 안 바꾸고 짐도 안 바꾼  것이다.

 그러면 안 바꾼 것이니까 말뿐이지, 말로만 바꿨지 실상 바꾸지 안 했기 때문에  네게는 말로는 평안하고 실상은 너에게 고통스러운 것도 눌리는 것, 고통스러운  것과 눌리는 그 눌림은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신앙 생활을 하는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류를 만드신 분이 누군고  하니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이 만드셨습니다.

사람도 그분이, 만물도 그분이, 우주도 그분이 일월성진도 그분이, 영계도  그분이, 그분이 만드셨고, 그분이 보존하시고, 그분이 관리하시고, 그분이 홀로  또 마음대로 섭리로써 그것을 다 운영하시고 이용하십니다.

 그러면 이것도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멍에를 멘다는 말은, 내 멍에 메라 말은  내게 순종해라 하는 그 말씀인데 오전에 순종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하고 두 가지 순종이 있는데 마음으로 순종은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에 빠진 것이 없이 모두 그 이름을 지었고 또 이것은 이렇다 저건  저렇다 거게 대해서 간단명료하게 우리에게 그 정의들을 다 내서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은 자존하신 분이요 지존하신 분이시다 스스로  계신 분이시고 모든 것은 그로 말미암아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은 원인이 있지마는  주님은 원인이 없다. 영원 자존자시다. 그분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 그분이  목적을 정하셨다. 목적 위해서 예정하셨다. 또 창조하신 것을 보존하시고  이용하시고 섭리하시고 운영하시고 때가 되니까 십자가 위에서 대속하시고 또  부활하시고 지금 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분이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 또 나로 인해서 목숨을 잃는 자는 찾을 것이요 목숨을 얻기 위해서  주를 버린 자는 잃어버리리라' '네가 세상에서 주와 주님의 도 때문에  무엇이든지 손해를 보면 그 손해의 몇십 배, 백 배 세상에서도 받고 또 내세에  가지 못할 자가 하나도 없다' 이것을 다 우리가 의심 없이 인정을 해야 됩니다.

의심 없이. 의심없이 인정.

 주님이 주권하시는 것은 사람이 날 때에 남자 나고 여자 나고, 또 이런 형편에  태어났고 저런 형편에 태어났고 하는 그것 전부 당신이 혼자 예정하신 그대로  주권적으로 사람이 나게 하시고 죽게 하시고, 또 사람이 활동하는 것도 그분이  홀로 주권적으로 섭리하시고, 일찍 죽고 늦게 죽고, 병들고 건강하고, 이사를  가고 오고 하는 그것 전부 다 당신이 주권적으로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섭리하시는데 한쪽으로 당신이 섭리하시면서 한쪽으로 하나님의 종들을 둬  가지고서 '네가 그리 가는 거는 틀렸다' 해도 가게 됩니다. 틀렸는데 갔으니까  틀렸으니까 틀린 또 값을 뒤에 가서 받게 됩니다. 이 전부가 다 주님이 혼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공간이라는 이 공간, 이 공간이 넓게 좁게, 또 공간이 없어지는  것, 이 공간에 대한 것을 주님이 혼자 주권하고 계십니다. 예를 들면 내가 꼼짝  못하게 조부란한 감방에 갇히는, 감옥에 갇히는, 그건 공간이 아주  좁아졌습니다. 또 거게서 넓은 광야로 가 가지고서 광야에 가서 또 원치 않는데  광야에 가서 있는 그것도 공간이 넓어 졌습니다.

 그러면 공간에 대한 것도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고, 또 이 움직임도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고, 사람의 심리도 당신이 주권하고 계시고, 사람의 생사화복도  주권하고 계십니다. 사람이 말하는 것도 다 주권하고 계십니다.

 그의 뭐 언행심사들도 다 실은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시는데 거게서 어떤 자는  하나님의 법칙을, 그대로 되기는 되는 건데 하나님의 법칙을 믿음으로 하기  때문에 의가 되고 어떤 자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하심에 따라서 하는데 하나님  법을 어겨서 불의가 돼집니다. 불의 되는 것도 제가 하는 게 아니고 의도 제가  하는 게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렇게 하십니다.

 또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그것도 주권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됩니다.

 아무리 자기네들이 어렇게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불이면 다 태우고 뜨겁게  하는 것이 그것이 일반 방법이고 일반이지 하나님께서 불로 태우게 하셨으니까  태우게 했지 하나님이 당신이 주권적으로 불이 태우길랑 냅두고 불 내음새도 못  내게 하면 또 못 냅니다. 또 사자가 먹을라면 먹지만 또 못 먹게 하면 그것 또  움키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권이라. 하나님 주권이라는 것. 인간의 심리를 주권하시고 인간의  언행심사를 주권하시고 그의 활동을 주권하시기 때문에 원수가 암만 미워서 칼로  칠라고 이래도 요만치만 치고, 하나님께서 활동계를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이 그 이상을 못 나가게 스톱 하면 저는 요래 가지고서 그 팔이 말라빠져야  됩니다. 그대로 있으면 하나님이, 그 팔이 말라서 빠짝 말라도 요동 못한다  말이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되고, 또 하나님의 전능을 믿어야 되고, 전지를  믿어야 되고, 하나님은 어데든지 계시는 이 무소부재와 광대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되고,  하나님의 그 목표, 사랑으로 이루실 목표도 믿어야 되고, 예수님의 대속도  믿어야 되고 우리의 구속을 위해서 모든 것을, 모든 것이 존재하고 대기해 있고  우리의 구속을 위해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모든 것들을 다 활용해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고 계시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믿는 그게 뭐이냐? 순종입니다. 믿는 그것이 마음의 순종이오. 하나님께서 천하  사람이 다 말하기를 '이거는 뭐이다' 해도 당신이 아니라 하면 아니라야 됩니다.

그게 믿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자기나 세상에 있는 사람이나 보이는 거나 보이지 않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아는 것이 믿음이요 또 우리에게 하라고 인도하시는  지도하시는 그 지도대로 따라서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두  가지 믿음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메워 주신 멍에입니다.

 이 멍에는 메면 쉽고 수월하고 평안하고 또 온유해지고 점점 겸손 해진다고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인정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음으로,  전능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우리의 구원의 유익을 위해서  역사하심을 믿음으로 인해서,  믿나 안 믿나 하는 그 표시는 '열매를 보아 알지니라' 그러면, 열매 무슨 열매?  믿음으로 인해서 온유함이 우리에게 생겨져야 하겠습니다. 온유함이라 말은 아주  어린아이가 갓난아이가 어머니 품 속에 안겨서 젖을 먹으면서 만고에 모든 근심  걱정 하나도 없고 그저 젖만 먹으면서 어머니의 젖만 빨면서 평안하게 얼굴에  하나도 그런 무슨 근심빛이나 그런 게 하나도 없고 평안하게 그렇게 있는 그와  같은 그 상태를 가리켜서 온유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이도 좀 크면 어머니 젖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안 놓인다 말이오. 염려가 되기  때문에 '내가 어머니를 어떻게 기쁘시게 해야 이 어머니가 나를 놓고 달아나지  안할까?' 이러면서도, 이러니까 젖을 먹으면서도 어머니한테 애교를 부리고  친교를 부리고 하는 건 벌써 그거는 온유 하지를 못합니다. 근심 걱정이 되는  거라.

 그러나 그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는 그런 단계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어머니 만나  어머니 품 안에서 젖 딱 물고서 젖 무니까 그만 뭐 좋아서 벙긋벙긋 웃기나 하고  아무 근심 걱정 없는 그와 마찬가지로,  왜? 우리 주님이 전능하신데! 우리 주님이 전지하신데! 나를 사랑 하셔서 모든  만물을 지으셨는데! 나 위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도 하셨고 또 부활도  하셨는데! 크고 작은 개미 한 마리 수염을 요래 놀렸다 요래 놀렸다 하는 그것도  다 주님이 주권하셔서 요리 놀리고 더 놀리지 못하면 요래 가지고 있다가 그만  끝나는 거라 말이오.

 이렇게 이 하나님의 주권을 이렇게 성경이 말했으니까 하나님의 이 사랑과,  하나님의 목적과, 이 목적을 위한 모든 예정과, 창조, 하나님의 보존, 섭리,  십자가의 대속, 이 사실을 믿을 때에 우리가 그 믿는 열매가 우리에게  온유함으로 생겨져서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젖먹는 어린아이 같이 우리 마음이  그를 믿음으로 인해서 뭐 평안하게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겠느냐? 제가 말하지만 저를 만들고 살리고 한 이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시고 또 제가 내 구원을 위해서 존재해 있는 것인데 무엇이 어떻다  말이냐?' 이렇게 믿음으로 자기 마음이 온유해지는 것, 이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또 성경에 말하기를 죽음이 있는 동시에 부활이 있으니까 죽었다가 부활하면  죽기 전에 몸은 모든 것에 제재를 받는 그런 불완전한 것 이지마는 죽었다 한번  살아만 나면 다시는 아무것에도 제재받지 않는 다시는 늙지도 쇠하지도 안하고  떡 먹을라면 떡 먹고, 고기 먹을라면 고기 먹고, 또 사람에게 보일라면 보이고  안 보일라면 안 보이고, 우주가 넓다 하지마는 우주 이걸 일 초 동안에 몇십  바퀴라도 돌라면 돌고 또 억만 년이라도 안 먹고 살라면 안 먹고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하신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이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능력으로 그의 부활하심과 같이 변화하심같이 우리도 변화를 받는다'고 성경에  그렇게 약속을 해 놨습니다.

 이런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면을 믿고 저 면을 믿고 이 성구 저 성구를  믿음으로 우리는 모든 면에서 어떤 일을 당해도 온유해야 믿는 증거입니다.

온유하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이러니까 모든 것을 믿으니 내가 뭐 그분 앞에다가 무엇을 내놓고 '주님,  이것은 아무래도 여기 조금 뭐, 조금만 무엇을 가감했으면 좋겠는데요. 좀  이랬으면 좋겠는데요. 이것은 아무래도 요 좀, 다른 거는 다 좋은데 요것만큼은  안 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제 무엇을 내놓을 수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 앞에서 하나도 나를 내놓은 일이 없다. '겸손하다'  그저 그분을 믿기 때문에 그분 시키시는 대로만 했지 내가  뭐 이렇다 저렇다 하지를 안했다.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구약 성경에 있는 이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믿음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은유가 생겨져야 되겠고 또 다시는 '야, 뭘 어떻게 할까? 이거 이래  볼까 저래 볼까?' '아이구, 그것 내가 뭘 압니까? 주님 뜻대로 하시지요. 나는  그저 내게 답답한 일 있으면 구하라 했기 때문에 구하는 것뿐입니다. 또 마음에  좋은 것 있으면 감사하는 것뿐입니다. 또 어려운 일 있으면 기도할 것뿐입니다.'  당신이 하라 하는 그것 외에는 안 한다 그거요. 이런 겸손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러고 난 다음에는 뭐이 있는냐? 과거에는 이걸 이래 볼까 저래 볼까  여러 수십 가지로 이렇게 모두 다 내가 상대하는 내 상대에 인격들이 많고,  상대에 사물들이 많고 이러니까, 그게 많은 것만치 내게는 '거게 대해서  상대하기를 어떻게 상대해야 되느냐?' 이러니까,  '이 사람의 성격은 이러니까 어떻게 상대할까? 이 사람은 어떤 민족이기 때문에  어떻게 상대할까? 이 사람은 어떤 지위에 있으니 어떻게 상대할까? 이 사람은  어떤 그런 독종이니까 어떻게 상대할까?' 이제는 그런 것 다 치워버리니까 편타  그말이오. 그래서 마음이 편해.

 뭐이냐? 어데서든지 뭐 독종 앞에서도 주님의 인도, 의인 앞에서도 주님의  인도, 말할 수 없는 감정 앞에서도 주님의 인도, 말할 수 없는 애정 앞에서도  주님의 인도, 딱한 사정 앞에서도 주님의 인도, 뭐 산벼락 같은 일이 오는 데도  주님에게 순종.

 이러니까 순종 하나만 해서 '주님의 뜻이 뭐이냐?' 그것만 딱 하기로 작정하고  나가니까 자기 움직여야 될 일에 대해서 그만 영 일이 없다 그말이요,  간추려져서. 아무 할 일 없어. 그저. 하나밖에는 할 일 없어.

 뭐이든지 닥쳐도 '이게 이러니까 그거 상대방을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어째야 되나?' 그놈의 심리를 연구하고 다 이래 할 게 아니라 그저 '여게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이냐? 내게 주신 그 신구약 성경 가지고서 성경 그 성문대로,  글로 써 있는 성문대로 하면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성문대로 하면서 '요게 대해서는 요 성구가 해당하다. 요대로 해야 된다.'  요대로 하면서 '이만하면 다 됐다' 하는 게 아니라 '요대로 해 가지고 이제는  요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얻겠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받겠다.' 능력을 받고 능력받아 뭐할 라고? '능력 받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자기가 명문된 문자적인 성구를 가지고 자기가 현실에서 주의 명령을  찾아 가지고 그대로 하면서 그것은 그 생명을 얻는, 생명을 얻는 그 중매쟁이기  때문에 생명을 얻기 위해서 그 성구를 그대로 순종하면서 그 순종하면서  순종하는 소망과 목적을 가졌는데 소망과 목적은 뭐 이냐? 이제 생명을 얻는  것이라.

 그러면 생명을 얻을라면, 또 얻어 가지고는 뭐하느냐? 생명 얻는 것은,  성령이신 하나님을 영접할라고 하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니라' 해 놓고 '내가 너희들에게 일러 준 말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  '곧 생명이요 곧 영이니라' 그러니까 이 말씀 가지고 생명 소개받고, 생명  가지고 하나님의 그 본체 소개받고, 이래 가지고서 나가니까 항상 평안하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 믿는 데에서 자기의 모든 당한 일이 평안해. 자기 할 일이 확정이  됐기 때문에 평안하고 또, 자기 할 일이 뭐인데? 믿음인데. 믿음이 순종인데  순종하는 것을 작정했기 때문에 평안해.

 순종이 뭐인데? 하나님이 하나님은 전능자라 이렇게 말씀하니까 전능자로 내가  인정하는 것이 순종이라 말이오. 전능자를 인정하니까,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만드신 것을 내가 인정을 하니까, 크고 작은 모든 것이 내 구원을  위해서 주님이 섭리하시는 내 현실이라는 것을 내가 인정을 하니까 자연히  평안하다 그거요. 또 온유하다 그거요.

 이러니까 다시는 제가 독단으로 행동하고 싶지를 안해. '주여, 무엇이든지  명하시옵소서. 명만 하면은 그저 무슨 길이라도 명만 하면 나는  순종하겠습니다.' 이것만 하니까 온유와 겸손 편히 쉬는 평안 이 세 가지 열매가  맺어지면 멍에를 바꿔 멘 증거고 또 짐을 바꿔 진 증거라 그말이오.

 짐도 이런 것 저런 것 책임을 진 게 많고 할 일이 많은데, 책임이 많고 할 일이  많아. 책임이 많고 할 일이 많은데, 책임이 많고 할 일이 많은데 그 책임 많고  할 일 많은 것이 나를 이리 저리 주관할라 하니까 상전이 열도 더 넘고 백도  넘으니까 이 상전이 이러니까 그 상전 순종해야 저 상전 순종해야, 이러니까  사람이 피곤해서 못 견디는데 상전 한 분만 둔다 말이오.

 하나님을 섬기는 것. 하나님을 섬기는 것 그것 하나만 해. 그것 하나만 해,  딴것 안하고. 하나님 섬기는 것만. 왜? 하나님 섬기는 것은 자 기에게는 상전이  하나뿐이라. 하나님 섬기는 그것 하나.

 요것 하나 딱 거석해 가지고, '그러면 이 사람이 지금 나를 가자고 쌓는데  어짜랍니까?' 야야, 너 뭐하노? 무슨 짐 졌노? '내가 주님 섬기는 그것밖에 더  졌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들 가자고 쌓아면 그뭐 너는 나 섬기는 것만 해야지.

'주님 섬기는?' 가만히 보니까 '네가 가자 하는 데는 안 가는 게 주님 섬기는  것이다. 안 갈란다.' 또 가만히 있으니까 그 사람이 가자 하는데 가는 것이 주님  섬기는 것이로구나. 간다.'  주님 섬기는 것이냐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냐 요 하나로 자기 이상의 것을  결정을 다 지워버리고, 또 자기의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는 그저 순종하는 것 그  외에 딴게 아무것도 없어.

 이 두 가지만 가져 가지고 우리에게 어떤 열매가 나타나야 이 두 가지가  거짓부리가 아니고 참이겠느냐? 열매가 세 가지가 나타나야 되는 것이니 하나는  뭐이냐? 하나는 온유해져. 온유해져야 돼. 또 그러고 나니까 뭐 주님이 신구약  성경에 약속하신 그 말씀 선포해 놓은 말씀을 그대로 인정하니까 만사해결이라,  평안해. 당신 외에는 두려울 분도 없고, 섬길 분도 없고, 바라볼 분도 없고,  내게 필요한 분도 없고 그분 한 분이면 다라. 이러니까 이 길을 찾았으니  온유해지지, 온유해져.

 마치 사람이 자기가, 다른 사람은 도시락을 모두 싸 가지고 왔는데 자기는 지금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든지 무슨 이래 도시에 여행을 하면서 아무것도 안  가지고 있지마는 주머니에 돈이 가뜩 들었다 그거요. 이래 들었으니까 다른 사람  도시락 가져가는데 뭐 돈만 있으면 다 되지.

 '이 사람아 자네는 도시락 없어 어쩌는가?' '뭐 괜찮네. 도시락 없으면 굶으면  굶지 그것 뭐 걱정이 뭐 있는가?'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휴계소가 여게, 남강  휴게소가-남강이라 했나?-진주 남강 휴게소가 있으니까 여기 가서 우리점심  먹자' 다 하는데, '자네는 도시락이 없으니까 같이 갈라먹도록 좀 오게'  이러니까 '괜찮네. 굶으면 굶지 무슨 상관 있는가?' 그래 척 들어가서 요리를  부르니까 어떻게 좋은 게 나오는지? 이 돈이 있으니까 든든하다 그말이오. 그것  모양으로 이제 배경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말씀대로 그 말씀을 자기가  의심없이 확실하게 믿으니까 인정하고 보니까 어떻게 마음이 든든한지?  그러니까 다니엘을 뭐 사자구덩이 갖다 집어넣는다 해도 믿으니까 든든하다  그거요. 그러니까 속으로 벙긋벙긋거리며 기도합니다. 기도 하니까 '됐다. 저놈  기도하니까 이제는 틀림없이 사자구덩이 집어넣는다.'  집어넣는다 했는데 그 소리 듣고 그래 기뻐하고 즐거워 하면서, 다리오 왕 암만  그래도 하나님이 주권자시고 모두 하기 때문에 당신이 주권 자시기 때문에  당신의 명령 순종하면 살아서 유익하면 살릴 것이고 죽어 유익하면 죽일  것이니까 그분에게 주권돼 있는데 염려가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사자구덩이 넣는다 해도 조금도 요동이 없지, 뭐 이렇다 해도 요동이  없지, 왕이 해도 무슨 요동이 없지, 이것이 온유입니다. 온유.

 이 온유가 우리가 믿느냐 안 믿느냐? 하나님의 모든 지식을 내가 확실히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 또 나에게 명령하는 그 명령대로 순종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그것. 인정에서 우리가 온유가 나오고 또 순종에서, 순종하면은,  뭐랍니까? '내 말에 거하면 뭐라 했지요? '내 말에 거하면' ○○○집사님,  뭐입니까? '네가 내 말에 거하면' 뭐라 했소? 뭐라고 했지? '네가 내 말에  거하면' 뭐라고 했어? '참 내 제자가 되고' '참 내 제자가 되고' 참 내 제자라  말은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나면 자신이 성화된다 그말이오. 자신이 성화돼  버려.

 성화되고 나니까 사람이 변화되고 나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지걸거려 쌓는 것이  마음에 안타깝고 답답하기나 답답하지 자기에게는 아무 염려가 없다 말이오.

 행해 보니까 더 온유, 말씀하신 그 사실을 그대로 믿으니까 더 온유, 이 온유가  있는 것이 내가 순종을 두 가지 순종을 하는 그 양이 많으면 온유가 많을  것이고, 두 가지 순종이 지식으로만 순종하면 끄트머리로 온유한 체해도  속으로는 가슴이 도근도근 할 것이고,  뭐 왜정 말년에도 그랬고 6·25 때도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이래 거석하니까  예수 믿어서 큰소리 하던 사람들 다 그만 속에 예수화된 그게 없으니까 뭐  큰소리 뻥뻥 했지마는 도망을 홀트리 쳐.

 이러니까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이 그 증거가 온유요. 자, 내가 마음으로  인정하고 믿으면 온유가 마음 속에만 있고 또 내가 순종으로 믿으면 몸에까지 꽉  다 배 버려, 온유가. 온유가 다 배 버리니까 얼굴빛만 아니라 몸까지 다 변화가  된다 말이오. 온유.

 또 겸손이라. 이러니까 그다음에는 '아무래도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지마는  그래도 이럴 때는 좀 조화를 부려야 되겠는데' '저 미련하게 자꾸 지금 저렇게  말하니 이럴 때는 그래도 좀 지혜를 써서 조화를 부려야 될건데' 이러니까 제  의사를 며칠 가다가 몇 달 만에 가다가 한번씩 제 의사를 내놓는다 말이오. 내  놓으니까 그만치는 그 교만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겸손하다' 의사 내놓을 그런  게 아무것도 없어.

 뭐 그럴 때도 '이 어째야 돼? 이러면 안 좋겠느냐?'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  당신 뜻대로 하시옵소서. 뭐이든지 명하시옵소서.' '죽음이라도 갈래?'  '가겠습니다.' '홍해바다도 들어갈래? '들어가지요.' '불미 속에도 들어갈래?'  '들어가지요. 당신 명령이면, 명령하십시오. 물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그러면 걸어 봐라. 걸어오라.' 털퍽털퍽 걸어가니까 가졌다 그거요.

 이것이 오늘도 주님이 살아 계시고 우리도 그 보혈을 지금도 믿고 우리도 꼭  같은 선택자요 꼭 같은 입장이요 소속이요 처지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차차 겸손해져, 자꾸. 뭐 보면 사람도 뭘 시키면 이의가  많습니다. 이의가 많소. 뭐 사람도 보면 그 분명히 이래 하면 될 것인 줄 알고  이래 시키고 저 하는 거는 틀려도 이래 말하면 뭐 이의가 많아서 '아이구' 그저  고치를 훌훌 불면서 '하, 그래도, 허, 허,' '그만 괜찮다. 그래 하면 된다.'  그럴 때에 우리 사람도 답답합니다.

 사람도 조금 앞선 사람과 뒷선 사람이 앞선 사람의 의사를 뒷선 사람에게  가지고 지도를 해도 뒷선 사람이 이해가 안 됩니다. 이해가 안 돼요. 안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그게 이해가 될 겁니까?  이해를 하고서 당신에게 순종할라 하면 안 돼. 그저 당신이 말씀하시기를  '천지는 변해도 내 말은 변치 안한다' 그 말씀했으니까 당신의 말씀을 내  마음으로 순종함으로써 온유해지고 내 몸으로 순종함으로 온유해지고, 이 온유가  좀 커져가야 된다 말이오.

 커지고, 이세 겸손이 과거에는 더러 하나님께 이의를 더러 하지마는 차차  자라가니 이의가 없어. '이거 뭐 어찌 하면 좀 안 좋겠느냐?' '무슨 말씀입니까?  그저 저는 예예뿐입니다.' 그러다가 낭패 당할라 고? '아니, 낭패 안 당합니다.

내가 믿습니다.'  이래서 '나는 겸손하다' 주님은 겸손뿐이라. 온유와 겸손뿐이라. 이러니까  평안했어.

 그러니 우리도 이 두 가지 온유와 겸손이 있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우리는 모든  것이 편해. 이제는 모든 염려, 근심, 걱정, 분주, 복잡, 계획, 많은 상전  대접하는 것, 뭐 사장 노릇 할라 하니까 모든 부하들 이거 다스리는 것, 심히  복잡하지마는 복잡한 것 다 버리라. 복잡한 것 다 버리고, 그저 두 가지.

 하나는 하나님 섬기는 것. 하나님 섬기는 것, 하나는 순종하는 것 그 둘뿐이라.

'그러면 많은 직원에게 이 직원은 지금 제일 산따로 제일 말단 직원인데 이  직원한테는 어째?' '직원한테 어떻게 하는 그런 것 생각지 말아라.' '그러면  여기도 뭐? 여기도 뭐입니까?' '거기도 믿 음이지.'  가만히 그 직원한테 딱 대할 때에 '주님, 이 직원한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나는 믿음 하나뿐이니까-'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이 '그 직원에게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성경 말씀 가지고 요렇게 말해 줄 때 그대로 하면  '그러면 이 직원이 삐꿀 것이가, 돌아갈 것이가, 그뭐 복수를 할 것일까, 이  직원이 반감을 가질까?' 반감을 가지든지 말든지, 삐꾸든지 말든지, 좋아하든지  말든지, 그 사람이 그만 달아나든지 말든지 주님이 그 사람에게 그때 지시하시는  그대로 그만 하는 것뿐이라, 아무 염려 없이. 아무 걱정 없이. 그러니까 편해요.

편히 쉬라 그말이오. 모든 것에 대해서.

 요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평강이요 생명이요 능력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기에게 당한 현실 큰 현실을 당할 때에 그때에 갑자기  그것을 멍에 주님의 멍에 찾고 주님의 짐 찾고 이러면 안 됩니다. 평소에,  평소에 조그만한 그 현실에서 거게서 멍에 메는 것 짐 지는 것 요 두 가지를  해서 조그만한 일에서 온유와 겸손과 편히 쉬는 그런 일을 체험하고 해서  이러면,  아무리 몇천 메타 되는 그 산이라도 한 자욱씩만 밟아 올라가면 올라가집니다.

그뭐 높은 산에 간다고 많이 높이 날아야 되는 줄 압니까? 그렇지 안해. 한  자욱씩만 밟아 올라가면 돼요.

 이러니까 주님이 우리 인도하시는 것은 꼭 이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이 그리  인도하기 때문에 현실 현실에 순종하는 사람은 제삼자가 보니까 '저렇게 높은  저런 걸음을 어째 걸을까? 어찌 저리 올라갔을까?' 그 올라가기가 어려운 게  아니고 한 자욱씩 한 자욱씩 밟아 올라가니까 그리 올라가졌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 구원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조그만한 순종으로, 자꾸  뭐, 언제든지 조그만한 순종뿐이라. 마음에 가벼운 순종뿐이라.

 아브라함이 독자를 번제로 드리라 하니까 아이구야 큰일났다 싶으지마는  그분에게는 그게 예사라. 왜? 그분은, 우리가 볼 때는 여러 수십 길 위에 높은  정도의 명령이니까 겁이 나지마는 그분은 그까지 올라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명령이 그렇게 별스러운 명령이 아니라 그거요.

 이러니까 기독교는 실력 있는 사람이 얻는 도가 아닙니다. 힘쓰는 자가 얻는다  했어, 힘쓰는 자.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치로 치기를 실력을 가치로 치지  안 하고 하나님은 가치를 치기를 무엇을 가치로 치십니까? 저 ○○○목사님? 뭘  가치로 치지요? 힘쓰는 것. 녜, 힘쓰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충성입니다. 충성을  가치로 쳐요.

 그러니까 자기 있는 힘대로 하면 다요. 그 이상이 아무것도 없어. 이러기  때문에 병신도 일등 구원 이룰 수 있고, 무식도 일등 구원 이룰 수 있고, 뭐  바보도 일등 구원 이를 수 있어. 제대로만 충성만 하면 그것을 의라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의라고 인정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제가 며칠 전에 그것을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주님이 만일 오셔  가지고서 모든 성도들을 살려놓고 '자, 이 심판은 충성이다. 충성 하나 가지고  심판을 해서 대우 결정을 한다. 이렇게 하면은 어찌 되겠느냐?  그러면 충성은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해 가지고서 주님에게 주를 섬긴 일이니까  다한 것 그것을 거석하면 제일 못난 사람, 제일 아주 찌끄러기 사람에게는  합격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아주 잘나고 유명한 사람들 가운데는 합격되는  사람이 별로이 없으리라 그렇게 보여지요.

 이러니까 고린도전서 1장에 '너희들을 택한 그 육체로 보면은 뭐 학벌 좋은  사람 문벌 좋은 사람 잘난 사람 그런 사람이 많지 못하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어째 보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보편적으로 전체를 살펴보면 주님이 심판할  때는 이다음에 충성 그것 하나 가지고 다 다루지 않느냐 그렇게 보여 지는 것이  거의 보편으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금맡긴 비유도 보면은 두 냥중 맡은 사람과 닷 냥중 맡은 사람이나  힘대로 했기 때문에 대우는 꼭 같앴어. 그것도 그거라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저 우리 힘만 다하면 됩니다. 이러니까 이 두 가지를  바꿈으로써 세 가지 열매가 맺는 이거는 돈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니고, 유식해야  되는 것 아니고, 아이큐가 뭐 높아야 되는 것 아니고 권세 있어야 되는 것  아니야. 그런 것 아무 필요가 없어. 그것 다 썩은 데 속한 것이니까 그것 필요가  없어요.

 없고, 다만 생명은 주님과 주의 말씀이니까 이제 주님이 말씀하신 이대로 그만  자기가 주님이 메워 주신 멍에 메고 주님이 지워 주신 짐을 지고 이래 가지고 그  결과로 맺어지는 것이 온유, 겸손, 평안함 이 세 가지만 이루어졌으면 그만  이거는 만점입니다. 합격이오.

 이러니까 그 현실에서, 그걸 시험해 보자 말이오. 그렇습니다. 아마 지금도  그럴 거라. 그거 나는 6·25 때에 두 달 동안은 평안하게 산 그것도 좋지마는 한  달 동안 녹아나는 그것 더 좋았어요. 한 달 동안 녹아나면서 '곧 인민군이 오늘  지금 인민재판 해 죽일라 한다, 내일 죽일라 한다, 오늘 저녁에는 끌고 지금  전쟁으로 끌고 가 죽일라 한다.' 이라는데,  거기서 죽, 이제 예배당 마루 밑에 들어가 가지고서 죽 외웁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라는 걸 쭉 외우고 나면은 그만 마음이 평안합니다. 죽 외우고  나면은 마음이 평안해요. '주님은 이러하신 주님 이시로구나. 그러니까 문제가  있나? 어라 나가자.' 후떡 나가버리면 그만 그때는 어데 가고 없어요, 또.

소리하러 오지도 안하고.

 이렇게 신강하면서, '탄환짐 지고 가는 데 너는 짐을 못 지니까 그저 뒤에  감독으로 따라가라'고 저녁마다 아침마다 와 가지고 조르는데 그래 하루는  잡으러 온다 해서 강단 밑에 가 숨어 가지고 기도를 했어. 기도를 자꾸 이  기도하며, 기도가 뭐 다른 게 아니고 '주님이 누구, 어떤 분이십니까?' 자꾸  이러니까 주님이 어떤 분이라는데 주님이 어떤 분이라는 걸 내게 환하게 알려  주니까 '이런데 내가 공연히 믿지 안해 그렇다.' 역부러 나갔어. 떡 나 가지고  집 밖에 나서 가지고 '에헴' 하며 고함을 지르며 '에헴' 이러니까 반장이 있다가  그거 인제 인민군 반장인데 쫓아오더니마는 '오늘은 천상 아무래도 탄환 지고  가는 데 좀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이래.

 그때 내가 있다가 '나는 하나님의 종인데 설교 전도 외에는 아무것도 못 하도록  하나님의 종이야. 그 외에는 나는 못 해. 그게 하나님이 내게 맡긴 직분이라.

그거나 하라 하면 하지.' 내가 이래 놨다 말이오. 그런데 어떻게 평안하고  담대한지? 이러고 나니까 가더니마는 다시는 짐지고 가자 소리를 한번도 안  해요. 그뒤에는 안 들었습니다. 참 주님은…  그러니까 우리가 순종, 이 순종하면은 평안 오고, 순종하면 온유 오고 자꾸 해  보면 그다음에는 그만 제가 자율이나 주관이나 사욕이나 이런 것을 내세울  마음이 없어요. 그분 좋은데, 그분 시키는 것이 좋은데 뭐 그런 것 내놓을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믿읍시다. 온유의 열매가 맺기까지 믿읍시다. 겸손의 경험과 체험의 열매가  맺기까지 믿읍시다. 주님을 섬기고 순종하는 이 두 가지로 에데서든지 평안할 수  있는, 공산주의 앞에서도 평안하고, 어데서도 평안하고, 평안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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