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자녀, 면류관

 

1984. 7. 22. 주일새벽 

 

본문 : 빌립보서 4장 1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선지자선교회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자들아' 육신의 자녀는 열 달 동안 배 안에 잉태해  가지고 있으면 이 공간에 나와 가지고 자유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식물만 젖만  먹이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조금 일찍 낳은 그런 조산된 아이도 뭐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모두 연구를 해 가지고 살리는 일이 있지만 어쨌든지  그것도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어느 정도 기한이 차야 되지 그전에는 안 됩니다.

 요새는 사람들이 전부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것을 저거 마음대로 자꾸 변화를  시켜 놓고 요래 재주 부리고 조래 재주 부려서 변화를 시켜서 사람의 지능이  발달이라 해 가지고 과학 만능을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지으실 때의 근본 조직  근본 제도 그 제도를 마구 마음대로 흐려 버려 놨습니다. 이러니까, 성경에  말씀한 말이 모두 다 참이라 이렇게 하지 못할 만치 사람들이 헝클어 놨다  말이오. 이것이 사람들에게 좋은 장기 같지만 이것이 들어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변동 못 할 하나님의 제도를 인간이 얼마든지 변동하는 이것을 만들어  냄으로 자신들이 어떤 제도에도 얽매이지 안해도 된다 하는 요것으로서 타락과  방종을 아주 과속화시키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면의 의학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람들이 들어서 금방 죽게 되는 것을  낫게도 하고 요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고 의학이 발달됨으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의학이 발달된 것만치, '너거 의학과 나와  한번 싸워 보자' 하시고 의학이 발달된 것만치 병이 점점 더 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병원은 더 많아지고 환자 수는 더 많아집니다. 그런데, 또 여러 가지로  연구해 가지고 이 장수 하는 이것을 자꾸 연구해서 모든 전심전력을 장수하는  데만 기울이니까 또 그 면이 좀 낫습니다. 어쩌든지 괴로운 일은 안 하고 힘드는  것은 안 하고 잘 먹고 잘 입고 수월한 거만 택하니까 그 수명이 길어집니다.

그러면, 길어지는 수명 가지고 자기의 사는 것이 하나님이나 자기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돼야 그것이 유익이지 더 삶으로써 하나님과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자멸하는 수명이 되면 그것이 복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좁은 범위에서는 보면 필요하다 이렇게 보이지만 넓은 범위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그 제도를 변개하는 거기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세워 주신 그 제도를 그것도 변개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하나 기준을 잡을 수  없도록 이렇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이 자꾸 변해서 나가는  것을 가리켜서 속화라 이거 세상이 변해지는데 따라서 자꾸 변해져 가는 사람을  가리켜서 속화되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기에. 유행이 좋은 면도 있지만 유행이 좋은 면만 있는 게 아니라 보수가  또 좋은 면도 있습니다. 보수와 유행을 전체를 다 생각하면 유행보다 보수가  훨씬 유익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진화시키는데 그 진화 하는 것이  아주 장기인 줄 이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진화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창조의 원형 원질 그래도 있는 것이 훨씬 유익합니다. 20세기에서 이렇게 문화가  발달됐다 해 가지고 만들어 놓은 그 모든 것이 결산을 대면 사람을 다 죽이는  것의 결산이 되고 말지 사람을 돕는 일은 안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너무 세상에 뒤떨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야만이라고 해서  우리를 괴물로 볼 터이니까 야만 돼서는 안 되겠고, 너무 앞서 갈라고 날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어 앞서  가지도 말고 뒤서 가지도 말고 중간쯤 이렇게 가면서 그저 돼지는 대로 그대로  가지 먼저 앞서 갈라고 그렇게 여기에다가 전력을 기울여서 노력하는 이런  필요가 없습니다. 유행과 또 모든 진화 이런데 대해서 힘을 기울이는 거보다도  과거를 보수하고 유지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꼭 올바른 길을 걸으려면 보수와 진화 이 둘을 아롱아롱하게 하면 참된  사람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런 말씀도, '사람은 열 달 동안 어머니 뱃속에 있어야, 만삭이 돼야  나오면 이제 이 공간에서 자유해 살 수가 있다' 이런 말씀이 지금 안 맞아.

사실은 지금 이 말씀이 맞아야 되는데, 사람들이 요새 뭐 유리관에다 넣어 놓고  자꾸 이래 거석하고 몇 달 안 된 것도 꺼내가지고 저거들이 전심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이래 하나 살려 놓고는 자랑을 하고, 그런데 그렇게 살려 가지고  살리려고 하면 아이 하나 낳아 가지고 기를만한 재산이 별로 없다 그 말이오.

그러나 열도 낳아도 아무 그런 힘 들지 안하고 낳아서 길렀는데, 요새는 자랑해  봤자 그게 망하는 일이지 그게 되는 일은 아니라 그 말이오.

 일반 육신의 사람도 열 달 동안 배 안에다가 춥든지 덥든지 괴롭든지 또  피곤하든지 바쁘든지 꼭 배 안에다가 간직해 가지고 돼야 그것이 사람 노릇을  하지 그전에는 사람 노릇을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기에  빌립보 교회에 대해서 바울이 말하는 것을 우리가 보고 배울 수가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자들아'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안에 서라' '주 안에 서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기쁨과 면류관은 어디 있는가?  면류관이라 말은 상급이라 말이고, 기쁨이라는 것은 우리의 심령이 아주  쾌락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의 쾌락과 우리의 기쁨은 어디 있는가?  이것은 주님이 십자가의 보배피 공로로 대속해 놓은 그 사람을 먼저 구속 받은  사람들이 자기 심령 안에다가 잉태해 가지고 길러야 합니다.

 이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나의 참아들 디모데야' 그렇게 말했습니다. '참아들  디모데야' 한 것은, 그러면, 참아들이면, 다 아들은 아버지도 있고 어머니도  있어야 아이가 돼 나오는 것인데 바울이 참아들 디모데라고 이렇게 말했으니까,  그러면, 바울이 참아들이라고 했는데 디모데의 어머니를 바울이 아내를 삼았다는  말입니까? 참아들이라 하니까 육신의 아들들은 다 거짓 아들이라 그 말이오.

이거는 가짜 아들들이라, 이거는 다 변동될 아들들이라 가치가 없는 아들들이라  그말입니다. 참아들이라 말은.

 그러면 참아들은 뭐인가? 참아들은 진리와 영감으로 낳은 아들인데, 그때에  낳기는 바울이 낳았고, 그러면, 낳을 때에 어머니는 바울이라면 아버지는  누군가?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라 말이오. 주님이시라 말이오. 주님이 성령으로  잉태해서, 어머니는 마리아요 아버지는 하나님이신 성령님으로써 잉태한 것처럼  우리들도 주님으로 내 심령 속에 배어 가지고 내가 낳은 참아들이라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속한 그 사람을 우리 심령 속에 배  가지고 우리가 사모할 만치 또 사랑할 만치 그렇게, '떠나 있으나 몸만 떠나  있지 마음은 떠나 있지 않다.' 그만큼 마음 안에다가 그를 사랑 하고 사모해서  자기 심령 속에 그만치 기를 만치 기르고 시간을 채울 만치 채워야 그것이  자라서 성도 구실을 하지 그렇지 낟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사 일을 하든지 권찰 일을 하든지 하는 것은 참아들을 낳는 일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대속해 놓은 것을 우리 심령 속에 잉 태 해  가지고 우리가 늘 사모로 기르고. 사랑으로 기르고, 늘 우리가 기도로 기르고  그를 위해서 온갖 것을 아무리 아버지의 그 부정이. 아버지의 정자가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어머니가 계속해서 뭣을 공급해서 먹여야 그것이  자라고. 또 먹여도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만큼 일정한 기간이  지나가야 그게 사람 노릇 하고 자라 가지고 나오는 것처럼 주님의 대속의 씨가,  대속 받은 택한 자의 대속과 선택으로 된 고 씨를 우리가 받아 가지고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비로소 그것이 중생되면, 중생되면 벌써 내가 잉태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에게 전도해 가지고 그 사람이 전도를 받으면 전도  받으면 그것이 잉태됐다, 내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다 내게 주신 내  아들이라 말이오. 여자나 남자나 하늘나라 가면 딸이 없어요. 아들이라. 전부 다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이요 거기에는 뭐 남자니 여자니 그래 그런  게 없습니다. 천국에 여자가 있으면 나는 재미없겠어. 왜? 여자는 남자를  유혹시키고 남자는 여자를 유혹시키고 전부 이것 때문에 다 소돔 고모라 성도  망하는데 그런 게 있으면 안 됐을 터인데 그때는 여자가 없고 남자가 없어요.

전부 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벌써 내가 가서 전도해 가지고 그  사람이 나로 통해서 중생됐으면 벌써 내가 낳았다 그 말이오. 내가 낳았으니  내게 뱄다 말이오. 내게 뱄으니까 내가 어느 기간 동안 그를 자꾸 내 심령 속에  배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육체의 자녀는 이 뱃속에 배지만 참아들은 어디  뱁니까? 참아들은 어디 배 안에 뱁니까 머리에 뱁니까 자기의 심령 속에 뱁니까?  어디 잉태됩니까? 심령 속에 잉태된다 그 말이오.

 그러면. '잉태되면 배 안에 있어야 되지 저 밖에 있으면 잉태인가?' 아니야. 배  안에서, 배 안에 잉태되는 것도 있고 밖에 잉태되는 것도 있고 잉태가 별별것이  다 있습니다. 고기 잉태가 어찌 되느냐 하면 고기는 암고기만 냅두면 알 암만  낳아 봤자 안 됩니다. 숫고기를 내 둬야 알이 새끼가 됩니다. 새끼가 되는데  그거 그만 숫고기가 암고기에게 무슨 새끼를 낳는 그 법이 몸을 접하거나 그렇지  안해. 안하고, 숫고기가 암고기를 따라 다니면 암고기가 마구 알을 주 품어 내.

똑 바람 품듯이. 물 품듯이 품어 내트리면 숫고기가 뒤에 따라다니면서 사정을  해 가지고 그게 비로소 고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사람은 한 가지 이치만 가지고 말하면 안 된다 그거요.

'배면 심령 속에 어찌 배? 저 밖에 따로 있는데. 몸 안에도 있지 않는데?' 우리  고기덩어리 이거는 공간에 요 자리 있으면 저 자리 못 있습니다. 이러나, 우리  마음은 이 고기덩어리보다는 아주 범위가 넓습니다. 우리 마음은 지금도 미국도  갈 수 있고 세계도 일주도 할 수 있고 아주 능한 것입니다. 영은 더 능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기덩어리 속에 밴 것은 육신의 아들인데 그거는 참 가짜라고  할 수 있어. 나중에 가서 보면 아무 인연도 없어요. 그러나 참 아들은, 심령  속에 밴 것은 참아들이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도 그 계통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주일학교 반사든지 권찰이든지 믿음으로 낳은 그것은 하늘나라에  가면 자기의 계통이 돼 가지고 있고 다 자기의 자녀가 돼 가지고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그것이 나의 기쁨이요 나의 자랑이요 나의 면류관이라 했습니다.

'나의 기쁨이요 나의 사모요 나의 사랑이요 나의 면류관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믿음의 자녀를 기르는 데에는 우리 심령 속에 오래 동안 품어  가지고 그 육체의 자녀를 먹여서, 대개 보면 부모가 키가 크면 자녀도 키가 크고  부모가 뚱뚱하면 자녀도 뚱뚱하고, 또 부모의 모양을 닮는다 그 말이오. 이마가  훌떡 벗겨진 사람은 그 이마가 훌떡 벗겨져서 닮고. 또 다리가 정갱이 마디 밑이  긴 사람은 또 긴 다리가 나오고 또 정갱이 밑이 짧막한 거는 또 짧막한 게  나오고 모두 다 닮는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거는 저거 아버지 닮았다 저거  어머니 닮았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그게 벌써 사정 될 때에  아버지의 요소가 다 있는 대로 들어가고 또 기를 때에 어머니의 요소가 다  들어가 가지고 길러진다 그거요.

 그러면, 아버지의 요소는 주님의 요소기 때문에, 주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그는  틀림이 없는데 어머니의 요소는 우리의 요소기 때문에, 목회자, 목사를 닮은  것이 교안들이요, 권찰 닮은 것이 식구들이요 또 반사를 닮은 것이 주일학교  학생들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그 모두 모든 행동과 그 모든 것이 다 흡수 돼  가지고 먹어서 자라게 된다. 기도함으로 자라고 가르침으로 자라고 또 내가 본을  보임으로 자라고 이래 가지고 다 참아들은 자기의 모든 신앙 요소를 먹고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아이가 배었는데, 요새는 왜 아이를 전부 저거  마음대로 하나 낳고 둘 낳고 셋 낳고 마음대로 하느냐 하면 전부 죽여서 그렇다  말이오. 살인을 해서. 죽여서. 자. 아이 낳을라 하는 것을 아예 그렇게 남녀의  그 배란과 정충이 요렇게 합해지지 못하도록 그걸 가운데다가 뭐 판대기를  찌우는가 뭘 가운데 꾹 찌워 가지고 그래 못 배도록 그렇게 하는데. 요새 또  산아 제한하는 사람들 그게 큰 아주 자랑거리인 줄 알고 하는데 산아 제한의  부산에 회장이 우리 교회 나옵니다. 우리 교회 나오는데 지금은 후회를 해서  아예 손을 떼고 그런 짓 안 합니다. 그거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거  장기인 줄 알지만 하나님이 보면 '네가 이놈 내가 잉태하는 것을 네가 방해했지?  네가 살인을 얼마 했다. 그게 나올 거라 말이오.

 그래 하지, 또 그렇지 않은 것은 미리 주사를 딱 맞으면, 주사 맞으면 한 달  동안은 정충이 죽는다. 배란이 죽는다, 또 맞으면 이거는 석 달 죽는다. 넉 달  죽는다 반 년 죽는다 이거 한번 맞아 놓으면 일 년 동안은 정충과 배란이  죽는다. 다 이런 것들이 다 있다 말이오. 그거 모르는 게 아니라. 그래 가지고  또 잉태 되면 또 약을 먹으면 떨어진다. 또 소파 수술하는 유산 시키는 것은 돈  안 받고 의사들이 공으로 해 주는 데 있다 이래 가지고 지금 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모두 다 요새는 뭐, 얼마 전에는 야만이라도 하나라도 더 낳고 하나  더 기를라고 이랬는데, 요새는 적게 낳고 적게 기를라 하는 그게 전부  안일주의에서 마귀가 내가지고 하나님을 반대하는 데서 그와 같이 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때문에, 천연 자원이 모자라서 그렇다 이라지만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시면 마구, 한국에도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시면 지금 사람의 백 배가  돼도 먹고 남습니다. 먹고 남아요.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농사 하나도 안 지어도  다 먹었는데. 하나님이 그런 능력이 있는데 능력이 없어 그렇습니까? 전부  저거가 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저거 마음대로 계산하고 하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  앞에서 또 산아 제한한 이게 심판에 가 가지고 굉장히 구경거리가 있을 거라  그거요.

 그러나 자기가 그런 것도 안 하고, 판대기도 안 끼우고 또 주사도 안 맞고 또  유산도 안 시키고 자기가 절제 생활 해 가지고 동침을 안 하고 안 나오면 그것은  자기가 그만치 행락을 누리지 안하고 고통을 하고 그랬으니까 그 값이 다 치이는  거야. 이렇지만 저거 행락은 누릴대로 누려서 얼마든지, 옛날 요랑 하면 뭐 십  배 더 행락을. 십 배 더 행락을 누리고 또 아이 기르는 것은 안됐다 싶으니까  아이는 못 낳고 그랬으니까 이것 도 심판거리가 심히 큽니다.

 이러니까, 그전에는 자녀 낳는다 하면 모두 좋아서 소망을 가졌는데 그러니까.

그 소망을 가졌으니 그것 가지고 해석할 수 있고 자녀가 하나 둘 더 많이 있으면  좋고, 자녀 낳는 거와 같이. 이래 자녀 낳는 욕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성경에  '나의 참아들' 믿음의 아들들을 많이 낳아야 되다 이랬지만 요새는 그것도  변동시켜 버렸습니다. 왜? '아. 아들 많으면 징그럽다.' 꼭 하나 아니면 둘,  요새는 또 하나. 이러니까 믿음의 아들 많이 낳자 하는 이거는, 하나면 된다고  이것도 또 그만 제도를 변동시켜 버려서 믿음의 아들을 많이 낳아야 된다 하는  이것도 없어지고 말았다 말이오. 이거 전부 마귀들이 하기 때문에 속는 자는  속습니다. 어쩌든지 육체의 자녀도 많이 낳는 것이 좋습니다. 또 많이 낳으면  열심히 일해야 돼. 보니까 아이 하나 낳으면 사람 다르고 둘 낳으면 사람 다르고  그 여자를 보면, 대번 만나 보면 알아요. '저 여자가 아이가 있나?' 아들,  자녀가 있다고. '그거 이상한데, 자녀가 있으면 자녀 생전 안 키운 사람  같은데?'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또 보면 자녀 한 번도 안 키운 거. 안 낳은  거 환하게 표나요. 낳고 기른 것과 안 낳고 한 기른 거와 영 달라.

 이러기 때문에, 처녀가 시집 안 가고 이래가지고 사는 거 그거 또 주님을  사모하고 바로 살면 좋습니다. 좋은 동시에 자녀를 낳지 안했으니까 거기서 또  손해 가는 면이 있어요. 이런데, 자녀를 낳으면 또 성장되고 성화되는 그 면이  있습니다. 자녀를 안 낳으면 독단으로 이와 같이 살기 때문에 거기서 얼마든지  자유하니까 그만치 구원을 이루지 못해요. 그런데 구원 이루는 것은 전부  십자가에서 구원 이루어지는 건데 주님과, 진리를 위해서 고난당하는 데서 구원  이루어지는 것인데 독신 생활 하는 사람도 독신 생활 하면서 남자는 여자로  여자는 남자로 더불어 이렇게 성생활 하는 그것을 절제를 해서 안 하고 그렇게,  음행하지 안하고 독신 생활 하려 하니까 그 고통이 심하다 말이오. 그 고통이  심해. 그러니까 그 고통을 겪으면 자녀 낳은 것만치 또 그면으로 또 성장되고  숙달이 돼 나간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요새는 그렇지 안해. 뭐 결혼할 필요, 일주일 결혼이나 일주일  결혼도 있고 한 달 결혼도 있고 이래 가지고 또 결혼할 때 계약 써 놓고  결혼하고 이래 가지고 결혼하고 나면 뭐 날 수가 찼으니까 이제는 뭐 이혼 신청  할 것도 없이 그만 그래 보고만 하면 돼 버려요. 이렇게 어쩌든지 자유주의  시대가 왔습니다. 자유주의 시대가 왔어. 이래서. 결혼 안 하고 혼자 지내면서  어쩌든지 사회를 어지럽혀서 여자는 이 남자 저 남자, 남자는 이 여자 저 여자  이래 가지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 모두  제도가 다 인간들이 변질시킨 것이 다 자기 망하는 일들이라 그거요. 그러니까,  자녀 많이 낳는 것도 영광이라 이라는 그것도 그만 다 안맞는다 그거요. 실은  그게 맞습니다.

 이러니까, 참자녀를 낳는 그것이, 하늘나라에 가면 그것이 면류관이라 했어.

그것이 기쁨이라 했어. 그것이 영광이라고 했어. 이러니까. 우리가 믿음의  자녀를 낳는 거는 참아들, 참아들 낳는, 여학생도 잘 기르면 그게 참 아들이 돼  아들이 돼. 남학생도 아들이 되고 남자도 여자도 아들이 돼.

 이러니까. 믿음의 자녀를 기르는 데에는. 믿음의 자녀를 기르는 데에는 첫째  뭘로 해야 됩니까? 첫째는 심령 속에 일정한 그 기간을 잉태해 가지고 그 심령  속에다가 딱 간직하고 다니면서 '내가 몸은 떠났지만 심령은 떠나지 안했다'  말한대로 요 심령 속에다가 사랑하고 사모하고 사랑 하고 사모하고 자기 심령  속에 잉태해 놓고 자기가 사랑으로 기르고 사모로 기르고 기도로 기르고  말씀으로 기르고 또 그에게 모든 이런 저런 본을 보여 기르고 이래 가지고 얼마  동안 그 심령 속에 잉태해 가지고 있어야 된다 하는 그것을 지금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 동안 '내가 비록 몸은 떠나 있지만 마음은 떠나지 안하고 늘 항상 잉태해  가지고 있다' 하는 것처럼 자기 심령 속에 그것을 품고 있어야 되지 품지 안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사들도 일을 해도 밤낮 자기가 낳은 자기의  믿음의 자녀를 그 심령 속에 잉태 해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품고 있어야  됩니다. 또 권찰도 품고 있어야 됩니다. 목사들도 자기가. 자기가 낳은 자녀,  또 그러면, '낳으면 애비가 하나지 둘이냐? 애비야 주님이시지. 주님이 주님이  자기를 통해서도 전도해서 낳을 수도 있고 목사를 통해서도 낳을 수 있고 전부  다 주님의 지체야. 우리 전부는 주님의 지체라. 이러기 때문에. 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그 사람이 새로 깨닫고 중생된 사람은 내가 낳은 사람이요.

또 물주고 가꾼다 이랬습니다. 또 말씀을 듣고 자라는 것은 자꾸 밥을 먹여서  길렀다 그 말이오. 생자 부모. 낳은 부모 또 기른 부모, 가르친 부모 부모가  서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참 믿음의 자녀를 기르는 데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어떤 사람은 일 년 동안 하면 되고 어떤 사람은 십 년은 해야 되고 어떤 사람은  육십 년을 사모해야 되고, 또 아무리 사모해도 되는 거 아니라. 자기 자녀들은  오래 동안 사모하니까 될 줄 알아도 안 돼. 다른 사람은 일 년만 사모를. 한  달만 사모해도 확 돼 버리는데 어떤 거는 평생 사모해도 안 된다 그 말이오.

사모한 그것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자기에게  하나님이 잉태시켜 주신 그 자녀는 자기 심령 속에 잉태해 가지고 있어야 되지  그만 낙태해 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 말하는 거는 낙태하지 말고 심령 속에 늘 간직하고 있어야  된다. 심령 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되는데 뭘로 간직해 있어야 됩니까? 어떻게  간직하고 있어야 됩니까? 심령 속에 어떻게 간직하고 있어야 돼요? 예?  ○○○저거는 조는 거 같은데 말 대답은 잘하는데, 너 정신 차리면 아주 희망  있는 사람이 되고 너 정신 차리지 안하고, 지금 그 행위를 꼭 고쳐야 돼 고치면  희망 있는 사람이 되고. 네가 명철은 가지고 있는데 정신 안 차리면 희망 없어.

알겠어? 정신 차리면 네가 유망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 사랑과 사모로, 사랑과 사모로. 늘 내가 떠나 있어도 내가 그 학생을  사랑하는 그 마음, 사모하는 마음 이래 가지고, 먼데서 뭐 말씀은 가르칠 수  없으니까 먼데서 기도합니다. 먼데서 기도하면 만 리 밖에서라도 거기다가 젖  줄기를 대고 먹일 수가 있다 그 말이오. 기도하고 또 가르치고 요렇게 사랑하고  사모, 내 심령 속에다가 사랑과 사모로 자꾸 이래 보호해 가지고 사랑으로  먹이고 사모로 먹이고 기도로 먹이고 말씀으로 먹이고 내가 또 그들에게  양무리의 본이 되는 본으로 먹이고 이래 가지고 길러야 됩니다.

 길러야 되는데,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기쁨과 영광과 면류관이 뭐인가? 기쁨과  면류관이 뭐인가? 하늘나라의 기쁨과 면류관은 뭐이 하늘나라의 기쁨과  면류관입니까? 하늘나라의 기쁨과 면류관은, 그것은 자기의 믿음의 자녀를.

믿음의 자녀를 기르느라고, 믿음의 자녀를 잉태했는데 이게 뭐 이런 고장으로  저런 고장. 이런 방해 저런 방해, 자기 안에서도 방해 하는 거 있고 자기  밖에서도 방해하는 거 있고. 그것을 신앙으로 자라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것은 어째야 됩니까? 싸움을 싸워야 돼. 내가 믿음의  자녀를 기를라 하면 이것을 해하지 못하도록 이렇게 보호해서 모든 외적  내적으로 더불어 이것을 싸워서 이것을 길러야 됩니다. 내가 가물치 기르는  가물치 기르는 그걸 조금 연구를 했는데 이제는 가물치 기르면 돈 벌 수 있어.

그걸 가물치를 말하니까 저 전라도 어디에서 온다고 이래 하면서 가르쳐 달라고  해도 안 가르쳐 줘.

 이랬는데, 그것 때문에 양사방 다니면서 이래 연구해 가지고 가물치 알을, 알을  그때에 두 봉지를 구해가지고 왔는데 한 봉지가 한 사천 마리 됩니다. 한 팔천  마리 됐어. 팔천 마리 됐는데 그거 가지고 어북 이만치씩 길러 가지고 다 기르는  걸 다 알고 난 다음에는 도로 알 구해 준 집에 다 공으로 다 갖다 줘  버렸습니다. 한 마리도 없어요. 이랬는데, 다른 고기는 낳으면 그만 딱 잉태  됐다가서 알을 딱 낳고 나면 모두 잊어 버려 버려요. 낳으면 저절로 부화가 돼  가지고 나옵니다. 이러나, 이 가물치는 알을 딱 낳고 난 다음에는 지키요.

언제든지 지키고 떠나지 안하고. 그라고 새끼가 딱 나오면 새끼가 딴 데 가서  다른 것에게 피해를 받지 안할 만치 이만치 어북 클 때까지는 꼭 지키요. 가에  삥삥 돌아다니면서 지켜서 만일 다른 고기가 근방에 오면 싸워서 그놈을 쫓고  이래 가지고 그래 이만치, 자라도록까지 기릅니다. 그러니까 다른 고기가  해치지를 못 해. 만일 그래 안 하면, 그거는 똘똘 뭉쳐 있어요. 커도. 이러기  때문에 그만 다 잡아 먹힐 건데 그래 가지고 보호를 해. 그래 인제 나중에  장성하게 되면 그랍니다. 클 때는 이놈들이 육식 동물이기 때문에 이 큰 놈이  작은 놈을 잡아먹는 일을 해요. 저거끼리 잡아먹어. 잡아먹는 일 못 하게 해요.

이러니까 에미가 돌아다니며 이렇게 지키기 때문에 잡아먹지 못 합니다. 그래  가지고 키워 가지고 이제 언간히 크면 다 보내 버려요.

 이 동물들도 다 이렇게 하는데, 우리가 심령 속에 그것을 밤낮 사모해야 돼요.

'아무 것이 아무 것이 아무것이' 사모해야 되고, 또 그걸 사랑하는 그 마음이  있어서 사랑을 기울여요. 사랑을 먹고 자라니까, 내가 그걸 사랑해야 그게  자라지고 내가 그것을 사모해야 자라집니다. 그래 가지고 사랑하고 사모하니까  기도하게 되고 또 그를 위해서 내가 조심하게 되고 그를 위해서 내가 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먹이게 되고 이래 가지고, 사모하고 사랑함으로 기른  이것이 수없는 애로와 다 투쟁해 가지고 길렀기 때문에 면류관이라 하늘나라의  면류관이 뭐인가? 그게 면류관이라.

 권사님들 권찰님들 알 거라. 그거 하나 기르기 위해서 참 골이 빠집니다. 요래  놓으면 또 요리 불거지고 요 병이 들고 또 조 병 들고요 병 들고 조 병 들고  오만 병이 드니까 그걸 구출하기 위해서, 요새 ○○○권사님은 조금 눈이  나왔네. 얼마 전에는 다 죽어 가. 내가 있다가 '○권사님, 좀 있으면 그라면  죽는다 뭐 때문에 그렇게 사모하고 그래 못 잊고 그래 가지고 만날 고통을 해  가지고 그라느냐?' 이랬었는데. 하도 사모하고 사랑하니까 그 심령이 잘  자라도록 됐어요. 우리 ○장로님 때문에 그래 가지고 말랐어. 말랐는데. 지금은  인제 거기서 아주 천국 생활 합니다. 거기서 목사 노릇 안 하요? 목사 노릇 하고  있어? 목사 노릇 한대요. 거기서 인제 설교하고 가르치고 있어. 하나님은  기이하게 역사를 합니다. 그라고 또 이런 일 저런 일 그래 가지고 고통을 하고  이래서 모두 다 그런 문제들 이 해결되고,  이러니까, 내 면류관은, 하늘나라 가 보면 면류관이 상급이 뭐이 상급이냐?  그것을 기르기 위해서 수많은 싸움을 싸워 가지고 내가 이기지 안했으면 그것을  기르지 못했어. 내가 승리를 해야 그게 자랍니다. 승리 안하면 져 버려요.

그러기 때문에, 내 면류관이요 나의 기쁨이라 하늘나라의 기쁨이라. 또  하나님께서는, 주님께서 뭐 보느냐?  그걸 보 고, 내가 언제 비유하기를. 아내는 본국에 있고 남편은 미국에  공부하러 갔는데 공부하러 가 가지고 아주 높은 학위를 받아 가지고 이래 떡  오니까, 집에 와서 보니 벌써 마누라가 늙기는 쪼글쪼글하이 늙었고 뭐 옷은  주렁주렁하이 똥도 묻고 뭐 얄궂은 걸 입고 이래 가지고 있고 하니까 '에이구  이거 안되겠다. 이거 뭐 부모를 맡겨 놨으니까 이거 좀 거석하기는 거석하지만  아무래도 할 수 없어 얼마 위자료나 줘서 이혼 하고 말아야 되겠다' 이러고 이제  보니까, 번들번들한 새 처녀들이 막 결혼 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라는데,  나중에 보니까 자기는 그걸 잊어 버렸는데 조금 있으니까 반들반들한 놈이 남자  놈이 또 들어오고 쏙 나오고 쏙 나오고 쏙 나오고 또 아주 아름다운 딸이 쏙  나오고 쏙 나오는데 뭐 반들반들하이 아주 꽃봉석같이 해 놨습니다. 해 놨는데,  자기가 공부한다고 돈도 안 보냈는데 그것들을 그렇게 아름답게 기를라 하니까  늙을 수밖에 없고 자기가 옷도 좋은 옷을 입을 수가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  자녀를 보고 그 남편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했어. '이제 내가 이 짐을 다 이와  같이 당신에게 지워 놓고, 부모와 자녀를 지워 놓고 이래 가서 당신 이 늙은  것은 내가 늙게 했소 . 당신이 이렇게 천해진 것은 내가 천해지게 했소 .

이러니까 당신은 가만히 계십시오. 내가 당신을 이제 모셔 놓고 내가 평생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이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를 해.

 꼭 주님도 꼭 그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이 자녀를 이걸 기를라  하니까 남한테 욕도 얻어먹어. '뭐 그런 거는 집어 던져 버려라.' 내가 어떨  때는 그래 해 봐. 그런 거는 집어 던져 버리라고. '뭐 하려고 거머쥐고 있노'  그라면서 '집어던져 버리라' 이래도 집어 던지라 해도 못 던진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오만 속 다 썩히고 오만 욕 다 얻어먹고 오만 멸시 천대 다 당하고 이래  이래 가지고 길렀기 때문에 그게 뭐이냐? 주님 만날 때에, 주님 만날 때에 가장  기쁨과 위로와 주님에게 내 모든 추한 것을 다 가려 주시는 기쁨의 안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줄 알고 우리는 믿음의 자녀를 기를 때에 순서 있게 또 올바른 방식과  제도와 법칙에 맞추어서 그만한 정력과 그만한 내 모든 성의를 기울여 가지고  길러야 될 것이고 그만치 모든 애로를 극복하고 길러야 면류관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중해에서 '이백일흔여섯 사람을 내가 바울 네게 줬다.' 천사를 보내가지고.

왜? 십사 일간 그렇게 풍랑으로 이는데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그렇게 애쓰는 걸 보고 하나님이 감동돼서 '배 안에 있는 이백일흔여섯 사람을  다 오늘 네게 줬다, 네게 줬다' 말씀했습니다. 영원한 자녀요 영원한 면류관이요  영원한 기쁨이요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요번에 하기 아동 성경 학교 때, 참 이거 자꾸만 눈물 쭐쭐 흘리는 것은  추접해서 흘릴 수는 없지 속눈물을 많이 흘렸어. 왜? 내려오는데, 폐하고  내려가는데 보니까 그렇게 구름같이 자꾸 이렇게 뭉케뭉케 나오는 걸 볼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서 이렇게 시켜준 거, 내가 ○○교파와 싸울 때에는 나  혼자뿐이었어요. 우리 서부교회 하나뿐이었는데, 전부 대립이 됐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래도 이제, 이래서, 이 총공회 진영의 교회가 칠팔십 교회가 되지,  또 이 학생들 그날 구천 명 나왔고 이튿날은 구천오백 명, 그런데. 구천이니까,  보고를 많이 안 한 게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대충 이라는데, 그 다음에  마지막은 얼마라 했습니까? 만천오백이 나왔는데 이것도 뭐 반사들이 다 없는  반사가 많으니까 또 계수 안 한 것도 있을 거라 말이오.

 이랬는데. 그 많은 무리들이 하나님이 보내주셔서 이렇게 꾸역 꾸역 나오니  '이것만 바로 돼도 한국과 세계를 구원할 수가 있겠다' 하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데 대해서 어떻게 감사한지. 감사해서 그저 울라면 얼마든지 울겠어. 기뻐서.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요 자랑이요 면류관이요 우리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모와  사랑 안에서 그것을 늘 계속 얼마 동안 잊어버리지 안하고. 몸은 떠나도 내가  마음은 떠나지 안했다하는 요런 방식으로 기르지 안하면 헛일인 것입니다.

기르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또 우리가 여러 가지 남모르는 전투를 해 가지고  승리해야 그걸 내가 뺏들지 내가 지면 마귀에게 뺏기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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