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저울질

 

1987. 2. 5. 새벽 (목)

 

본문:잠언 24장 12절∼14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여게 “꿀을 먹으라 송이꿀을 먹으라 네 입에 달리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꿀, 송이꿀, 또 지혜 이렇게 말하는 건 다 한 가지를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으로 주신 이 계약의 말씀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계약 말씀 외에는 지혜의 말씀이 없습니다. 뭐 이십세기의 과학이 그게 지혜인 줄 알지마는 인간에게는 신구약 이 계약서, 계약의 말씀 이 외에는 지혜의 말씀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곧 모든 것이 이 말씀대로 건설되고 이 말씀대로 파괴됩니다. 이 말씀에 파멸된다는 것은 파멸되지 안할 수 없고 또 이 말씀에 건설된다는 것은 아무도 그것을 훼파하지 못합니다.

그대로 사람들의 금생과 내세 영원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계약서를 보고 여게서 두려워 조심하면서 이 계약대로 모두 다 헐어서 없앨 것은 헐어서 없애고 계약대로 보존할 것은 보존하고 또 계약대로 새로 신축할 것은 신축해서 이렇게 이 계약에 준해서 금생도 내세 영원도 다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계약은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이 계약의 말씀 외에 다른 것은 우리 영혼에게 좋은 식물이 없습니다.

이 말씀만 우리 영혼들이 먹고, 먹으면 윤택하고, 먹으면 성장하고 그래 됩니다.

영혼이라고 말하면 그 심신만을 말함이 아니고 그 마음이 영의 지배를 받아서 영과 이렇게 연결돼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을 가리켜서 영혼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중생된 영과 연결되지 안하고 할 때는 악령하고 연결되어서 악성으로 변질돼 버립니다. 사람의 마음이 악령과 연결되면 그만 악성으로 변질이 돼 버립니다. 그러면 그거는 뭘 좋아하느냐? 멸망하는 것만 좋아합니다. 이 세상 안 믿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런 모든 그것만 좋아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 모든 것은 털끝만한 것도 남은 것이 없고 전부 멸망입니다. 멸망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악령과 하나되면은 악성이 되어지고, 악성이라 말은 자기 중심의 마음이 돼 버린다 말이요, 자기 중심의 마음이. 그러면 창조주가 계시고 주권자가 계시고 모든 것을 먹이고 입히고 기르시는, 소망을 가지고 기르시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을 다 배반하고 제 중심으로, 악령 그놈이 제 중심으로 하다가 천국에 쫓겨나니까 인간계에 들어와 가지고 인간을 제 중심으로 살도록 한 것이 에덴동산에서 배암이 와 가지고 유혹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제 중심으로 살면 하나님이 그것을 냅둘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하나 하나님의 것 가지고 잠깐 가공을 해서 만든다 할지라도 만들어 놓은 그것이 자기에게 소용이 하나도 필요가 없고 자기에게 해가 되면은 자기에게 해될 것을 그대로 냅두는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자기에게 해되면 다 없애버리고 말지. 꼭 그와 같습니다.

이래서,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은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뭘 우리가 믿는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그런 것은 뭐 자기는 몰랐다 이렇게 해도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 네 장래가 있겠고” 장래가 망하지 안하고 장래가 영원히 있다 말입니다. 보존된다 말입니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해 가지고 모든 일을 해야 되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땅에 있는 그런 것을 따라서 날뛰는 자가 다 자멸하는 자입니다. 사람이 보면 마귀의 지식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은 예수를 잘 믿습니다. 또 그 사람에게 기적이 나타납니다. 축복이 나타납니다.

이래서세상에서 버림당한 사람, 약한 사람, 무능한 사람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택해 가지고 세상에 모든 권위있는 자를 다 부끄럽게 한다고 고린도전서 1장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라다가 국민학교 들어가면 이것이 좀 달라집니다. 국민학교 차차 상급이 돼서 육학년 되면 이게 뭣을 제가 아는 줄로 알고 떠듭니다. 예수 믿는 것은 아주 무시를 합니다. 중학을 가면은 더 그렇습니다. 고등학교 가면 더 그렇고 대학 가면 더 그렇습니다. 좀 더 위에 외국에 유학이나 하면은 더 그렇게 못쓸 사람이 돼 갑니다.

그것은 배암의 지식을 많이 가질수록 자꾸 그와같이 되는데 배암의 지식이 그라면 필요 없느냐? 배암의 지식을 가지는 것은 가지는 목적이 다릅니다. 모든 사람이 배암의 지식에게 다 끌려 가지고 일생을 망치는데 어느 배암의 지식에 끌려 가지고 일생을 망치느냐? 인간을 망치는 것이 뭐이냐? 망치는 것을 자기가 알아야 거기 빠지지 않기 때문에 망치는 것을 알기 위해서 세상 공부를 하는 것이고, 그 세상 공부라 하는 것이 인간의 생각에서, 인간의 경험에서, 인간의 체험에서, 인간의 모든 추측에서,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인간 속에 어떻게 멸망시키는 것이 있느냐? 인간을 멸망시키는 것이 어떤 어떤 것이 사람 속에 있느냐 하는 것을 알라면 세상에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지식을 낱낱이 심사해서 알면 아는 것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 지식은 사람들이 그것으로 멸망하기 때문에 이게 어떻게 해서 멸망하느냐? 멸망시키는 것을 알기 위해서 그 지식을 가지는 것이고, 또 자기가 멸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그 지식을 가지는 것이고, 또 멸망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서 그것을 가집니다. 물 속에 빠진 사람을 물 속에 들어가지 안하면은 건질 수 없기 때문에 물 속에 들어가서 건지는 거와 꼭 같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 지식을 자기가 하나님의 지식만이 참된 지식이기 때문에 이 지식대로 자기는 복종해 살기 위해서 거기에 참고가 되고 보조가 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이 지식이 활동할 때 그것을 종으로 잡아 부려서 하나님의 지식을 달성하는 데에 그런 것을 이용하기 위해서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고, 하나님에게 받은 선물이라 했고, 그것을 그래 하지 안하고 그것이 옳고 참되다고 생각하고 그것으로 인해 그것을 더 근본으로 삼고 그것을 더 가치있게 여겨서 그것에게 피동되고 그것에게 순종하는 그 사람은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되느냐 하면 그 지식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그 사이를 끊게 만드는, 이간 붙이는, 자기를 미혹시키는, 자기를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을 변질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음행의 포도주라 이렇게 말했어.

그러면 세상 지식을 음행의 포도주로 가지고 먹어서 그로 말미암아 망하는 사람도 있고, 세상의 지식을 사람들이 ‘묘한 게 있으니까 여게 빠졌구나. 요것의 가치가 하나님 말씀과 보면은 요게 틀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그 이용물로 삼는 그런 사람은 그 지식이 있을수록 구원 성취가 더 정확히 되어지고 구비하게 돼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 지식은 내가 그것에게 따라서 움직이면 헛일입니다. 세상 지식은 꼭 내가 거게 따라서 움직이면 망한다는 것을 단단히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은 꼭 하나님의 지식은 내가 따라서 움직여야 되지 사용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이렇게 사용하면 좋을 줄 알아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사용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은 내가 사용하면 안 됩니다.

나보다 하나님 말씀이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거 사용할라 하면 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게는 복종을 해야 되고 또 이 세상말 그것은 내가 거게 복종하면 내가 죽습니다. 나는 세상말보다도 훨씬 무한히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말을 내가 이용해야 됩니다. 내가 종으로 잡아 부리고 이용을 해야 됩니다.

그라면서 하나님께서 여기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시지 아니하시겠느냐” 이 저울질하는 것을 저울질을 여기 말했는데 저울질은 달아본다 말이오. 마음을 달아본다 말이오. 마음을 달아보는데 이 특별히 저울을 사용하면서 이렇게 인용하면서 말씀한 것은 저울이라는 것은 요것은 꼭 초월되어 가는 이 초월성을 가리키기 위해서 저울로 말한 것입니다.

초월이라 말은 하나에 하나 보태면 둘, 둘에 둘 보태면 너이, 또 너이에 하나 보태면 다섯, 다섯에 반 보태면 다섯 반, 이렇게 저울은 그렇지 저울이 한 근 없는 백 근은 없습니다. 꼭 한 근이 올라가고, 저울을 달아보면은 한 근에서 두 근으로 두 근에서 세 근으로 백 근으로 이래 자꾸 이래 초월해서 올라가지 이 한 근 없는 두 근은 없습니다. 한 근 없는 두 근은 없어. 또 한 근 없는 천 근은 없습니다. 한 근이 없으면 천 근이 절대 없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한 근보다 더 많은 게 두 근, 두 근보다 더 많은 게 세 근, 세 근보다 많은 것이 네 근 이래 가지고 이게 초월해 가지고 실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저울이라 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하나 인용해 가지고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앙 생활은 ‘나는 그런 사소한 일은 나는 모릅니다.’ 또 ‘나는 몰랐습니다' 이렇지마는 이 하나님의 도는 하나씩 둘씩 차차 차차 자라가는 거와 같이 자라가고 돌담 쌓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씩 이래 초월 초월해 가지고 올라가는 것이지 밑에 밑절미 없이 위에 되는 것이 없다 말이오.

그런데, 믿는 사람 쳐 놓고서 이 초월 신앙 저울 신앙 이래 초월 신앙을 생각지 안하고 자기 마음대로, 밑에 일학년도 안 되는 것이 자기는 아주 대학생인 줄 알고 여기고 있고 자기는 지금 초보도 한 자국도 걷지 안하고 한 자국을 떼지 안하고 자기는 여러 수천 메타되는 그 산만당에 올라가 가지고 서 있는 줄로 알고 있다 말이오.

그러면, 한 자국을 밟지 안하면은 절대로 두 자국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한 자국을 밟아야 두 자국, 두 자국을 밟아야 세 자국 자꾸 이래 올라간다 말이오.

그러니까, 신앙은 초월이라. 신앙은 초월이지, 초월 신앙이라야 되지 초절 신앙은 안 된다 말이오. 초절이라는 것은 밑에 돌 한 개 없이 위에 돌 한 개 놓는 그것이 초절입니다. ‘그런 것은 나는 몰랐습니다’ 이라지마는 그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앙 생활에 고쳐 나가라고 하는 그 고치기 위해서 하나님이 현실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을 성전을 지을 때에 성전 짓는 것을 모세에게 한목 쫙 다 말해 주고 난 다음에 성전 지을 때는 어떻게 지었습니까? 다 이렇게 한 몇 가지를 말해 주며 이래 지으라 했습니까? 안 그랬습니다. 꼭 ‘요거 해라. 요거 만들어라. 또 요거 만드는데 요거 몇 치로 끊어라. 또 요거 이어라. 요거 집어라. 요거 뭐하고 뭐하고 합해라.’ 하나 하나 그렇게 했습니다.

그게 뭐이냐? 우리 구원이라 하는 것은 우리는 뭐 있어야 될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순서도 모릅니다. 그 순서를 아시는 이가 그분뿐이고 무엇이 있어야 될 것을 아시는 이가 그분뿐이라.

신구약 성경은 우리가 통으로 그 설계서인데, 내 구원의 설계서인데, 계약서인데, 통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놓고 난 다음에는 현실을 주십니다. 그 현실이, 요 현실 줄 때에 그 현실에서 말씀대로 자기는 그 현실에 대한 계약이 있기 때문에 그 현실에 계약을 지키고 또 그 다음 현실에 계약 지키고 자꾸 이라는데 우리가 그 계약을 지켜서 나가면 자꾸 초월됩니다.

이 계약 지켰으면 그 다음 계약 그 다음 계약 자꾸 이래 가지고 자꾸 산만당에 올라가듯이 그보다 더 초월한 계약 초월한 계약으로 이래 주지마는 자기가 첫째 계약을 지키지 안하면 하나님께서, 제맘대로 돌아다니는 것이지 언제든지 첫째 계약 그걸 지키도록 또 그 계약을 지킬 수 있는 현실 주시고 또 그 계약을 지킬 수 있는 현실 주시고 자꾸 현실을 주시는데 그 현실에서 그 계약은 지키지 안하고 자기 마음대로 지금 이래 신앙 생활 해 나가는 것은 일생 동안 해야 한 자국도 떼놓지 못했습니다.

저울과 같이 자기가 한 근 그것을, 비유로 말하면 한 근 그 신앙 생활 하고 난 다음에 두 근 신앙 생활이 되는데 한 근 신앙 생활은 그거는 나는 오늘까지 무시하고 시시하고, 한 근 신앙 생활은 안 하고 그 다음에 그저 천근 만근 신앙 생활 하는 줄로 그라고 있지마는 저는 교만하고 건방지기만 건방지고 망령이기만 망령이지 신앙 생활이라는 건 절대로 되지 않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신앙 생활은 차차 걸어가는 거와 같이 한 자국에 두 자국 밟아가는 거와 같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천리 길도 한 자국에서부터 시작된다. 한 발자국을 걷지 안 하고는 천리 길을 걷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근이 없이는 천 근에 갈 수가 없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 생활이 차차 자라가는 것처럼, 아무리 그 사람이 그래도 그러면 키로 말해도 석 자면 석 자에 석 자 한 치 두 치 이래 자라가지 석 자에서 당장에 여섯 자가 되는 그런 길이 어데 있습니까? 이런데, 만 가지가 이런데 우리 신앙 생활은 이렇게 모두 다 초절주의로 해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보면은 이 계약 가운데 하나만 가지고 그것만 만날 가지고 그것만 주장합니다. 철야 기도만 주장하는 사람은 철야 기도만 하면 다 된 줄 압니다. 또 자기는 신앙 그 신조와 교리 중에도 한 신조 한 교리 그것만 붙잡고 그것만 전부인 줄 알고 그것만 가지고 기도해도 만날 그것만 기도합니다.

암만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가르쳐도 상관 없어. 말씀 가르치거나 말거나 듣기는 듣지마는 듣고 난 다음에 자기가 지금 생각하는 건 또 옛날로 돌아가서든지 자기 주장하는 뭐이든지 그것뿐입니다. 기도하라 하면은 그것뿐이오. 그것만 기도하요.

오늘 아침에 기도할 거는 뭐이냐? 이게 하나의 순서요 이게 빠져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거 인제, ‘주님이 마음을 저울질하신다. 다신다.’ 그러면 이것은 다 초월해야 되지 초절이라 하는 것은 밑에 동가리가 끊어지고 위에 가는 것이 그게 초절입니다.

초월이라 하는 것은 돌담 쌓듯이 돌 한 개 놓고 그 위에 또 한 개 놓고 또 한 개 놓고 이거야 아무라도 다 할 수 있어. 하나 놓고, 밑에 돌 하나 놓고 그 위에 돌 놓기야 누가 못 놓겠어? 그거는 아무라도 돌 위에 돌 놓는 건 쉽지마는, 한 개 위에 한 개 놓는 거는 다 하지마는 밑에 한 개 없이 위에 한 개 놓는 그 일은 할 자가 있습니까? 그 일 할 자가 있습니까? 그걸 천하에 할 자가 있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 생활에는 차차 차차 초월적으로 가야 되지 초월 안 하고서 초절적으로 가는 그런 신앙은 절대 가는 법이 없습니다.

자기는 구원 얻은 줄 알고 이룬 줄 알고 있지마는 나중에 가 보면 전부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이라. 그건 다 불타버린다. 제 주관대로 신앙 생활 하고 제 주관대로 제 마음대로 이렇게 신앙 생활 했지 하나님을 따라서 그 법칙대로 신앙 생활한 것이 없다 그거요.

그러니까 네 앞에 닥친 그런 일이야 사소한 일이라 하지마는 네 현실마다 없어서는 안 될 걸 주시기 때문에 네 현실에서 그 현실을 무시하지 말고 ‘이 현실에서는 하나님의 계약이 어떠하냐? 이 현실에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그 현실을 빼 놓으면 구원이 안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렇게 할라면 “네가 송이꿀을 먹으라, 꿀을 먹으라. 이 지혜가 있으면 그의 장래가 있겠고 그의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기 때문에 네가 꿀을 먹으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우리에게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사소한 일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신앙 생활은 자라가야 되지 초절적으로 이래 가지고 항상 자기는 그것만 주장하고 있을 게 아니라 그것도 행해야 되지만 요것도 행해야 된다 했어. 그 십일조도 하지만 요것도 또 의와 신과, 거기 뭐라고 했지? 의와 신과 또 뭐라 했노? 아니야. 마태복음 23장에 있는데 자꾸 인제 나는 잊어버려요. 의와? 인. 의와 인과 신을 지키라 그랬어, 서이. 의와 인과, 어질 인입니다. 의와 인과 신을 지키라 이랬어. 그러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되지 자꾸 자기 주장대로만 나가서 이래 가면은 그 신앙 생활 안 됩니다.

그러면 사람을 이래 보면은 저 사람은 어떤 주장 사람이라. 하나 독특히 있는 그게 있으면은 안 됩니다. 그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은 다 둥글둥글해져야 되는 것인데 그러기 때문에 자기 현실에서 요 현실에는 지킬 계명이 무엇이며 지킬 계약이 뭐인가?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건 뭐이냐 하면은 믿음뿐이라 했으니까 믿음뿐이라 말은 하나님의 도리를 아는 것과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니까 요 현실에는 해당되는 하나님 말씀이 무엇이며 내가 어떻게 하며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요것을 찾아 가지는 것이 그것이 신앙인데, 기쁘시게 하는 것도 이 현실에서 어짜면 기쁘게 할까 그것도 내나 그 현실에 하나님이 그 현실을 줄 때에는 요 현실에서 무슨 계약을, 요 현실에서 지킬 계약은 무엇이며 요 현실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나 기쁘시게 하는 것이 계약 지키는 것이요 계약 지키는 것이 기쁘게 하는 것이요 그것이 믿음 지키는 것이요 또 그게 뭐입니까? 그 현실에서 그 현실에 해당되는 계약 지키는 것이 그러면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또 그 현실에서 계약 지키는 것이 또 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이지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사랑하지 않는 자라” 이랬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삼위일체가 와 가지고 동거 동행하겠다” 이렇게 말씀했어.

그러니까, 우리가 요 현실에서 해당되는 그 계약, 하나님의 계명 요것을 우리가 찾아서 지키는 요것으로써 우리가 성전이 돼 가고 내가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참 이 보배로운 구원이 돼 나가지 이게 안 되고는 되는 법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초절 신앙을 좀 가지지 말자 그말이오. 어떤 사람은 장 그뿐이라. 좋은 걸 가졌습니다. 좋은 걸 가졌지마는, 좋은 걸 가졌지마는 좋은 것 그것만 가지고는 안 돼요. 집 짓는 데는 위에 스라브가 좋다. 스라브가 제일이다.

중요하다. 대들보가 중요하다 하지마는 기둥이 없으면 그 대들보가 유지를 못 합니다. 그 설 수가 있습니까? 또 기초가 없으면 그것이 다 무너지고 말고 안 된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모세가 성막을 지을 때에 이리 이리 지으라 하지마는 만일 열 가지를 가지고 성막을 지으라 했으면 열 가지만 다 구비하면 되는 게 아니라. 열 가지만 구비해 되는 게 아니라. 열 가지도 중요하지마는 열 가지와 같이 그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요것부터 하고 요것부터 하고 그 순서도 중요하다 말이오.

순서도 중요하고 또 재료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9장인가 거기 보면은 “모세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했는고로” 명하신 대로라 하는 그것은 짓는 순서도 명령이요 또 무슨 재료 무슨 재료 그것도 명령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서와 그 재료가 다 구비하되 그것이 있을 자리 있고 끼일 자리에 끼이고 요래 순서대로 돼야 되지 그게 조립이 바로 돼야 되지 조립이 안 되면 안 돼.

그러면 조립을 모세가 그 설계서 전체를 보고서 성막 짓느냐? 못 지어.

하나님께서 그렇기 때문에 꼭 하나씩 말했어. 하나 요거 해라. 고거 하고 난 다음에 또 요거 해라. 조거 해라. 그 하나씩 하라 할 때에 하나씩 그것만 하면은 다 성막이 돼졌지 그거 아니고는 성막 안 됩니다.

그 하나씩 하라는 것이 뭐이냐? 오늘 우리 각자들에게 현실을 주시니까 그 현실 현실마다 하나님이 요거 하라고 현실 주는 것이니까 그 현실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거게서 지켜 나가야 되지 그 현실은 다 집어 던져 버리고 자기가 뭐이든지 좋아하는 그것만 항상, 이 현실에도 그것만 저 현실에도 그것만, 오늘 아침에도 기도는 내나 자기 좋아하는 그 기도 제목만, 기도 제목을 열이면 열 다섯이면 다섯 가지고 항상 그것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순서대로 주는 거, 오늘 아침에는 요 말씀 줬으니 오늘은 요 말씀을 가지고 지금 자기가 고칠 거 고치고 만들 거 만들고 그것을 배우는, 배우는 현실이라. 배우는 현실. 또 자기가 성경을 봐도 각단 각단 성경을 보게 됐으면 성경 볼 그 현실에 볼 때에는 보는 그 성경 거게서 자기가 고칠 걸 고치고 믿을 거 믿고 이렇게 해야 되지 자꾸 이거 현실을 떠나고 자기 주관 신앙, 그러기 때문에 모든 철학이나 세상에 이종교는 어떤 종교인가? 그것은 다 전부 주관 종교입니다. 자기 따라서 인간 따라서 믿는 것이요 또 자기 주관이, 암만 불교를 믿어도 자기 주관에서 믿고 싶은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게 아니오. 기독교는 순전히 계시 종교요 피동 종교입니다.

그런고로, 저울질하는 것은 초월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신앙이 초절 신앙 되면은 헛일이라. 초월 신앙이라야 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꼭 성경도 구약은 필요 없고 신약만 필요하다. 구약은 필요 없고 신약만 필요하다. 또 어떤 사람은 또 구약만 필요하다.

그러면 신학교든지 그런 신학, 저 신학교는 구약만 필요로 삼는 신학교냐 신약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신학교냐? 그걸 신학을 말하면 그 신학은 구약적 신학교다. 그거는 신약적 신학교다. 또 그 사람은 구약 신학 같지만 그거는 세상 신학적 신학교다. 세상 사람들이 신학을 말하는 그 신학을 위주로 하는 신학적 신학교다.

구약적 신학교다. 신약적 신학교다. 신학적 신학교다. 그 신학은 그거 아니다.

철학적 신학교다. 그것은 그런 게 아니고 이 사회 일반적 지식이기 때문에 지식적 신학교다. 자꾸 타락되는 것이, 구약적 신학도 그것도 치우쳤어. 신약적 신학도 치우쳤어. 신구약 성경이 아롱아롱한 것이 그것이 바로 된 것이고 또 그것만 가지고 해 가지고는 잘못하면 탈선되기 쉽습니다.

왜? 신구약 성경은 같은 성경이지마는 깨닫기가 잘못 깨닫기가 쉽고 또 자기가 바로 깨닫기가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 사람에게 진리 가르치고 저 사람에게 진리 가르치고 했기 때문에 이제까지 모든 성도들이 깨달아 나온 게 뭐이냐? 깨달아 나오는 그 교리,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이 깨달아 나온 그 교리를 겸해서, 신구약 성경을 첫째로,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깨달은 교리와 신조를 그 다음으로, 또 그 신학교는 신구약 성경은 상관없고 교리와 신조만을 위주로 삼는 그것이면 그것도 또 틀렸다 말이오.

신구약 성경 그 똑 같은 동등으로 하나, 첫째. 그 다음에는 모든 신조와 교리, 그게 모든 사람의 신학이라 말이오. 이거 거석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또 그것만 하고 이 세상 것 전혀 거석하면 안 돼.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관한 이 모든 교훈이 다, 인격에 관한 교훈이 다 구비됐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뭐이냐 하면 물리를 알아서 모든 것이 다 과학적인 또 신학교가 돼야 된다 말이요, 과학적인.

그래서 우리 양성원에서는 과학을 가르칩니다. 과학을 가르쳐서 인문과학 자연과학 그래 과학을 가르칩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나면은 그런 것도 이제 가르치고 또, 그렇게 한번 좀 구비하게 해 볼라고 그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리 저리 치우치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이거 자꾸 언제 이런 말 또 한번 할란지 모르니까. 이 초절 신앙을 이것을 회개를 해서 초월 신앙으로 해 나가고 또 이것은 꼭 자라나가는 것같이, 그러기 때문에 언제 내가 그런 말 했는데, 지금 백 층 빌딩을 말이요, 백 층 빌딩을 짓는데, 백 층 빌딩을 짓는데 그거는 하루 동안에 지을 수 있습니다. 하루 동안에 딱 거석만 하고 이 과학적으로 다 연구하면 하루 동안에 백 층 빌딩 건물을 지을 수 있다 말이오.

지을 수가 있어요. 그거는 딱 자본만, 재료 많이 들고 자본만, 건축비만 많이 들면 딱 이래 가지고 모든 거 구비해서 딱 조립해 맞춰버리면 그만 될 수 있어. 그러나 이 조그만한 쥐새끼 한 마리, 쥐새끼 한 마리 그거는 꼭 그만한 시일이 걸려서, 조금 거기 따라서 좀 속히 자라고 좀 더디 자라는 그거뿐이지 그 암만 쥐새끼라도 그걸 하루 동안에 새끼쥐를 큰쥐 만들지 못합니다. 그거 안 된다 그거요, 그거는. 그거는 자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만일 과학으로 그와같이 한다 하더래도 했으면 그게 벌써 죽어요. 못 살아요. 생명이 유지되지 안해.

이러기 때문에 이 생명은 하나님께 다 속한 것인데 이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돼 가지고 되는 게 생명이라.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돼 가지고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 법칙을 가져야 되지 법칙을 어기고 이 물질 법칙 가지고 그것은 맞지를 않는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쥐새끼 한 마리는 그거 하루 동안에 그것은 새끼쥐를 큰쥐 만들지 못한다. 만일 과학으로 만들었으면 그거는 생명이 없어 죽어버린다. 안 된다.

그러나 여기 백층 빌딩은 그거는 하루 동안에 만들 수가 있다. 돈만 많이 들면 만들 수가 있다 하는 그런 말을 그전에 언제 말했는데.

어짜든지 우리가 이 초절 신앙을 가지지 말고, 꼭 저울도 한 치에 한 근에서 두 근으로 올라가지 그 한 근 없는 두 근 되지 안하고 또 우리가 천 메타 길을 올라갈 때에 그때에 한 자국씩 밟아 올라가지 안 올라가고는 안 됩니다.

‘비행기로 올라가지’ 비행기도 땅에 붙은 것이, 땅에 붙은 것이 한 치 뜨고 두 치 뜨고 세 치 뜨고 네 치 뜨고 떠 가야 되지 땅 위에 한 치, 한 치 뜨는 일이 없이 천 메타니 몇천 메타 위에 뜨는 일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이고 만이라는 숫자도 하나에서부터 올라가는 것이오. 하나 둘 요게서 올라가는 것이지 하나 없는 천이 있을 수가 없어. 하나 없는 천이 어데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이 꼭 초월해서 올라가야 되고 자라가는 거와 같이 자라가야 되고 이러지, 걸어가는 발자국과 같이 걸어가고 커나가는 거와 같이 이래야 돼지지 그거 뚝 떼서 떼 맞추는 거와 같이 그렇게 초절적인 그런 신앙을 가지지 말고, 그런 신앙을 가져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올바른 성전을 건축할라고 하면은 하나님이 건축할 때에 신구약 성경은 다 봤지만 신구약 성경 이거 다 봐도, 나를 만드는 이 설계서인데, 나를 만드는 설계서인데 이 신구약 성경 다 봤다고 소용이 없어. 신구약 성경 보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것을 내게 실질적으로 효력있게 해 주는 것은 현실을 주셔 가지고 요 현실에 해당되는, 조 현실에 해당되는, 현실에 해당되는, 현실에서 해당되는 그 성구를 가지지 못하면은 소용 없어.

고거 행하지 안하면은, 언제 행해도 행해야지 행하지 안하면은 항상 빙빙 돌아다니지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꼭 한 치 자라가야 두 치 자라가고 두 치 자라가야 세 치 자라가지 고거 없이는 안 된다는 그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요 현실에서 “작다고 무시하나 그 심령을 저울질하는 분이 너를 통찰하지 않겠느냐” 말씀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광고합니다.

삼십 분 기도 잃지 맙시다. 기도록에 등록된 수는 팔천육백오십사 명입니다.

또 오 분 기도 후에 모구역장들은 다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모구역장이라고 하면 어떤 이가 모구역장인가? 모구역장은 자기 구역에서 분구한 것은 한 분구를 했든지 두 분구를 했든지 다 모구역장입니다.

모구역장인데 모구역장을 모이라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집사 투표를 했는데 그 투표된 것을 그것을 백프로 신용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거는 오늘 나온 사람은 자기 전도한 사람 그 사람밖에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투표했을 것이라. 그러면 사람은 지금 아직까지 어려서 집사가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것을 심사해 가지고 투표한 것을 심사해 가지고 집사로 그렇게 세울 것입니다.

요것은 여러분들이 무기명 투표해 가지고 여러분들이 세우는 것이고 그라면 권찰들이 심사해 세우는 것이고 또 당회서 세우는 게 있습니다. 개인들은 모르지만 당회서 볼 때 그 사람은 꼭 집사가 되겠는데 이것은 세우지를 못했다 할 때에는 그 사람을 당회에서 세웁니다. 당회에서 세우는 사람을 삼분지 일을 세울 것이고 여러분들이 투표해 가지고 세우는 것을 삼분지 이를 세울 것이고 그렇게 처음부터 그런 계획을 가지고 이래 했었는데, 오늘 그 심사할 것이니까 자기 구역에서는 혹 분구가 돼도 자기가 만일 시간상 참여를 못 할 사람이라면은 자기 모구역장에게 말하이소. ‘나는 지금 여게 참여를 못 하니까 우리 구역에 누구 누구는 집사될 자격 있고 누구 누구는 집사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해 주면 그 구역장이 모구역장이 알고 그 사람이 못 될 사람이 있으면은 그거 그 수정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모구역장에, 자기가 모구역장이지마는 새끼 모구역장이니까 더 큰 모구역장이 있으니까 큰 모구역장에게다가 그 모든 것을 의논하고 자기 시간이 없으면 가도록 하십시오.

그라고 또 하나는 거게 그게 다가 아니니까 그걸 심사해 가지고, 뒤에는 알 터이까 우리 구역에는 누구 누군고 그걸 꼭 알아야 됩니다. 누구 누구가 집사인고 그거 알고 안 다음에 ‘누구가 꼭 집사가 돼야 될 터인데 그분은 자격도 있고 그래야 교회 일을 하겠고 또 교회서 덕을 세우고 이러는데 그분이 지금 집사로 당선이 안 됐으니까 이분은 당선돼야 되겠다’ 싶은 분은 그런 분을 다 그 추천을 해 주십시오.

추천을 해서 자기 모구역장에게 내면 좋고 그럴 수 없는 그런 분들은 혹 그런 시간이 없으면은 신고함에다가 다 ‘나는 아무 구역장인데 우리 구역에 누구는 집사로 내 줬으면 좋겠다’ 자기 마음에 꼭 이 사람이 집사는 돼야 되겠는데 요번에 당선이 안 됐다 싶은 그런 사람은 그렇게 신고해 주면 요다음에 당회에서 삼분지 일을 세울 때에, 당회서 백 명을 세울 것입니다. 백 명을 세울 때 그때 하면 됩니다.

그라고 또 조금 자꾸 시간이 늦었는데도, 이번에 다른 교회서 견학하러 왔었는데 와 보니까 그만 여게, 내가 며칠 전에도 말 했었는데 자꾸 오는 사람은 자기 처음이지마는 여게서 그분들을 맞이하는 사람은 자꾸 맞이하기 때문에 그만 피곤하기도 쉽고 또 무심하기도 쉽다 그거요.

이런데 와 가지고 보니 뭐 모범 반사로 이렇게 따라 다녀봐야 모범될 것도 하나도 없고 자기 교회서 하는 것보다도 더뭐 충성이 없고 진실이 없고 사랑도 없고 뭐 하는 것이 엉망이라. 이래 놓으니까 ‘나는 요번에 왔다가 손해봤다, 와야 뭐 배울 것 뭐, 우리는 이 서부교회 오면은전부 우리 교파 아니라도 말이요우리 큰집에 지금 간다.’ 큰집에 간다 하고서 다 그렇대요.

여기서 가면 자기 그 감상문을 해서 ‘가 가지고 거기서 반사 뒤에 그 심방하고 다니니까 이런 좋은 점 이런 좋은 점이 있어서 나는 그거 배우고 왔다’ 이 모두 읽힌답니다. 그 읽힌대요. 여기 온 사람들 반사들 간 간증을 이래 하도록 한대.

그래 놓으니까 그 밑에 있는 반사들이 ‘아이고 나도 거기 가고 싶다’ 가고 싶어 못 견뎌 두 번 세 번 자꾸 이래 주차로 온답니다. 이렇게 오는데 그래 가지고 왔더니마는 자기네들 기대에 아무것도 아니고 영 아주 뭐 너무 허무하고 이래 가지고 아주 환멸을 느꼈다고. 도로 실망하고 가 버렸어.

이러니까, 사람이란 기계가 아닌데 어찌 한결같이 그렇겠습니까? 인제 그거는 또 그런 사람은 아직까지 어린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우리는 하나지마는 치르는 사람은 이렇게 많기 때문에 여게 대해서 아마 이렇게 얼마나 지치고 피곤했겠느냐? 육백여 교회서 왔다고 하니’ 뭘 얼마나? 육백 됐어? 칠백십구라 하니까 이렇게 와 놨으니 온 사람은 자기 하나뿐이지마는 이거 당하는 분들은 여러 번 당하니까 이거 힘들겠다 이렇게 좀 생각해야 될 건데 아직까지 어리니까 그런 것 생각지 못한다 말이오.

그래서 6 5 때 피난와서 막 피난은 자꾸 오지 거기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전부 있는 대로 살림 다 털어먹고 지금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그걸 널리 생각하면 ‘전쟁 속에 나도 피난 안 했으니까 다 떨려도 내가 피난 안했으니 그만해도 족하지 않느냐?’ 이래 생각하면 하지만 그래 생각할 사람이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있는 것 다 털어먹고 가 가지고 이제 가을이 돼, 6 5가 물러갔으니까 그 뒤에 무슨 떡이라도 해 가지고 올까 이라니까 그 가을에 몽둥이가 다 왔더랍니다.

인제 농사 지어 놓고 난 다음에 먹을 게 있으니까 ‘이놈의 새끼 그 날 그때 가 가지고 너무 압제를 많이 받았고 이러니까 이거 내가 복수하러 간다’ 몽둥이 가져왔더래요, 모두. 그거 무식해 그런 거라. 자기가 뒤바꿔 생각하면 또 자기도 그렇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것을 이해하나마 우리가 많은 사람을 접촉하는데 그 사람들에게 참 덕이 되게 은혜되게 한다는 거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주로 모범 반사들 그런 반사들은 제가 이 강단에서도 한번 광고를 했습니다. 이름을 부르면서 이런 반사 선생님들은 수고를 많이 하는데 끝까지 우리가 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그렇지 않으면 뜻을 못 이룬다고 강단에서 그걸 했다 말이오. 하고 주일학교 반사회 때도 했다 말이오. 내 마음에 아무래도 좀 쪼리쪼리해서 그거 했는데 그라고 얼마 지나고 난 다음에 그만 이런 폭로가 나와 버렸어. 이런 실수가 생겼어.

이러니까 우리가 조심해서 끝까지 해야, 그게 뭐 서부교회가 이거 아무것도 아닌 존재지마는 그뭐 한국 사람이 전세계에 퍼져 가지고 있어요. 퍼져 가지고 있는데 전세계에 한국에 서부교회라 하는 그 교회 이름이 다 나 가지고 있어.

‘서부교회’ 서부교회도 나와 있고 저 한국에 있는 ○○교회도 소문이 나와 있고 다 나와 있어.

이러니까 우리가 이거 직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왔다가 어떤 사람은 가 가지고 그 교회가 주일학교가 삼 배 사 배 부흥했어. ○○○ 조사님? 지금 불은 중에 제일 많은 불은 게 몇 배 불은지 소문 들어 봤어요? 칠 배. 여기 왔다 간 지 그 오기 전 칠 배가 불었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어? 이러니까 반사 선생님들이 피곤해도 꼭 안내 될 때에는 이것이 주를 위해서 순교할 그 현실인 줄 알고 순생적인 그렇게 충성을 해서 왔던 사람에게 ‘아이쿠, 우리도 이래야 되겠다’ 그에게 힘을 줬으면 그거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거게 있는 힘 줘서 일하면은 그 부가 있다 그거요.

그러고 오는데 한 사람 앞에 한 사람씩 따라 그래 보내지 말고 어느 한 교회서 다섯 사람이 왔으면은 다섯 반사를 어떤 한 반사에게 딸려 보내십시오. 한 반사에게 다섯 반사가 가서 그 한 반사 하는 걸 쭉 보고 이라면 되는데 오는 사람마다 이 사람 되니까 저 사람 자꾸 이래 가지고 이래 해서, 오십 명 올 때도 있고 육십 명 올 때도 있으니까 그때 간추리면 그렇게 모범되는 반사가 없고 또 모범 되는 반사도 처음에는 있지마는 나중에는 안 된다 그거요.

내가 어떤 반사를 아는데 그 반사가 처음에는 모본이 돼서 따라다니는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아이구 선생님, 선생님은 괜찮습니까? 우리는 발이 다 불켰습니다.’ 열심히 이래 심방을 하니까 발이 불켰다고 이랬기 때문에, 발이 불켰다고 했으니까 모범이 됐다 말이오. 모범이 돼 그 사람들이 ‘우리도 발이 불키게 이래 하자’ 이랬는데 나중에 와 가지고서는 그 반사가 있다가, 착각했어.

자기가 한 건 생각지 안하고 ‘발은 안 불켰습니까?’ 이라니까 `발은 뭣이 발이 불켜요? 그래 다녀 발이 불켜요?’ 아예 볼 게 없다 말이오.

처음에는 반사가 모범적으로 이렇게 충성을 하니까 따라다니는 사람이 발이 불켰는데 나중에는 묻기를 반사가, 그전, 제가 충성은 잊어버리고 ‘발 안 불켰습니까?’ ‘발은 뭐 불켜? 그래 다녀 발이 불켜요?' 아예 그만 은혜가 안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어짜든지 힘을 내서 그래 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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