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관

 

1984. 12. 12. 수야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17절∼19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우리는 만물관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바로 알아야 잘할 수도 있고  고칠 수도 있고 또 비뚤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잘못 알면 그것은 벌써  사망입니다.

 제가 오늘 이 설교를 하게 된 동기가 아무래도 우리 서부 교인들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들에게 이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 성경 말씀을 주시는  것을 가리울 것이 아니고 이것을 말을 해서 읽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에 된 모든 일이 우리에게 거울이 됩니다. 그들이 복 받은 그  일은 우리도 그렇게 하면 복 받고 그들이 화 받은 그 생활을 하면 우리도 화를  받습니다. 다만 그들과 우리는 육체의 이스라엘, 신령한 이스라엘이라는 차이만  있지 하나님도 같은 하나님이요 소망도 같은 소망이요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계약한 계약도 같은 계약이요 성령도 같은 성령이요 대속도 같은 대속입니다.

 그랬는데, 이스라엘에 크게 패망된 일이 세 번이라면 세 번이고 두 번 이라면  두 번인데. 하나는 북쪽 열 지파가 앗수르 나라에게 완전히 전멸을 당했습니다.

또 남쪽에 두 지파의 나라는 바벨론으로 포로돼서 그 때에 크게 참 패망을  당했습니다. 또 마지막은 예수님 승천하신 후 로마에게 정복을 당해서 완전히  전멸을 당하고 8.15해방 전까지 참 비슷한 처지에 있다가 이제 겨우 뭐 독립했다  하지마는서도 별 그렇게 참 자유 없는 전쟁으로 날마다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로 그렇게 인해서 전멸을 당하는 그 일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선지 이사야가 거게 대해서 많은 말로 권고를 했습니다. 뭐 알아듣고도 깨닫고도  귀가 따가와서 못 견딜 만치 그렇게 이사야가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이사야  선지의 말을 등한히 듣고 패역을 부리다가 하나님이 예언하신 말씀대로 결국은  멸망을 받고 구원 받으라고 하신 대로 구원은 받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 후  남쪽에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이 두 자파가 멸망받기 전에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가 많이 말을 했습니다. 이리 되면 너희들이 이렇게 망한다 하는  것을 여러 가지 비유로도 말씀하시고 또 직접적으로도 말씀하시고 이래서 참  깨달으면 아무래도 깨달을 수 있을 만침 그렇게 경고를 시켰고, 또 회개 안 하면  장차에 비참할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한 데도 유다 지파는 회개를 하지 아니하고  주후 오백 팔십 사오 년 경에 바벨론으로 포로돼 갔었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에도 예수님께서 많은 말씀으로 권면했지마는 그들이 듣지  안했다가 예루살렘은 완전히 참 참혹하게 전멸을 당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에 말한 대로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자기의 자녀를 다  자기가 삶아서 먹게 되었고, 남편과 아내 있으면 힘센 자가 힘 약한 자를 잡아서  먹게 됐고 그렇게 하는 그 예언하신 말씀대로 비참하게 됐었습니다.

 지금도 주님이 우리에게 자꾸 경고해 주시는 것은 과거 북쪽 열 지파  이스라엘과 남쪽에 두 지파 유다와 또 예수님 초림하실 때의 이스라엘에 대한  것과의 꼭같은 형편이라는 것을 주님이 일찍부터 예언을 하신 그대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인자의 임함은 노아의 때와 같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여러분들에게 권고하고저 하시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서, 요한계시록 이 다섯 권을 특별히  지금 있어서는 우리가 많이 읽고 거게서 깨달음을 가지고 변화를 받아야 될  것입니다.

 그때 앗수르가 포로되고 전멸 돼 갈 때는 그후 종적이 없습니다. 역사에 이민된  일들이 많이 있어서 이민이 되면 반드시 그 후에 어느 모퉁인가 그 족속성과  방언성과 또 인질, 인성이나 모든 문화가 나타납니다. 그걸 아주 감추지는  못합니다. 물론 식민으로 이민 시킨 그 정권자들은 그런 것을 하나도 없이 다  멸할라고 하지마는 그 흔적을 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쪽에 열 지파  앗수르로 잡히게 된 이스라엘은 전혀 그 흔적이 역사에 안 남아 있습니다. 그걸  보아서 그때 열 지파는 전멸됐다 그렇게 모든 학자들이 다 생각을 가집니다.

그들이 이사야 선지의 예언을 등한히 여겼고. 또 예레미야 선지 에스겔 선지의  예언을 등한히 여겼고, 세례 요한과 주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을 등한히 여기다가  다 그렇게 참변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형편과 우리의 형편이 같아서 특별히  우리가 지금 와서는 모든 성경을 다 내리보지마는 그 중에도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서. 요한 계시록 이 다섯 권을 우리가 열심히  상고하면 멸망받을 자기를 잘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이 어떤  죄악이 있으면 주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무엇을 진노하고 계시며 우리가 어떤  것을 어떻게 돌이켜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한 것은 더 신령한 그 이스라엘 마지막 예언이기 때문에 그  예언은 깨닫기가 참 어렵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깨닫기가 어렵지마는서도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서는 우리가 보면 아주 깨닫기가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죄악을 바로 맛보기로 기록해 놨기 때문에 깨닫기가  쉬우니까 특별히 다른 교회, 교인들도, 물론이지마는서도 우리 교회 교인들은 이  다섯 성경을 열심히 봐서 과거에 앗수르가 그렇게 멸망한 것이 거울이 되어  우리는 그런 멸망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되겠고, 또 유다 나라가 멸망한 것을  보아서 멸망하지 않도록 우리는 회개해야 되겠고, 또 예수님 초림 하셨을 때에  이스라엘이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랐다는 것은 그거는 가속도의 멸망을  예언 했는데 그런 멸망을 받지 안할라면 우리가 보고 회개를 해야 합니다.

 앗수르로 간 데는 거게는 그 전멸이 됐기 때문에 그것이 보이지 안했고 그때는  북쪽 이스라엘 지파의 회개한 것이 그렇게 보여 지지를 않습니다. 뭐  단체적으로나 또 종교 지도자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이나 그 어느 모라도 그렇게  이사야 선지의 말을 듣고서 회개한 그런 싹수가 보여지지를 안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갈 때는 그때에 회개한 그런 깨끗한 성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 포로되어 가기는 갔지마는서도 포로되어 갔으나 본국에  있으나 오히려 포로되어 간 것이 본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보다도 더 행복스럽게  살았습니다. 또 예수님 초림하셨을 때에도 그때도 이스라엘이 그렇게 참혹하게  말했지마는서도 세례 요한의 예언과 예수님의 예언을 듣고 그대로 믿어서 회개를  한 사람들은 예루살렘 멸망받을 때에 그 멸망에 참여를 안 했습니다.

 그 멸망된 그것을 그때에 그 전에도 더러 몇 번 설교했지마는서도 그 멸망을  같이 받게 되니까 이 제자들이나 모두 예수님 따라 다니던 그 무리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밌기는 믿으면서도 설마 그럴까해서 있다가 그만 로마 병정들에게  포위돼 가지고서 완전히 전멸되게 됐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택한 자들을 위해서 그 날들을 감했으니까 너희들은 집 위에 있는  자는 그 옷을 가지러 내려 오지 말고 밭에 있는 자는 겉옷 가지러 가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 하는 그 말씀을 하신 대로 그때에 포위되고 나서 '아,  포위됐는데 우리가 깨어 있지 안했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는 꼼짝 못 한다.' 로마  병정들이 딱 포위했었습니다. 그럴 때에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이제는  우리는 전멸당한다. 우리가 공연히 땅에 있는 거 이거 저거 욕심내고 이거 저거  챙기고 어짜고 하다가 포위를 당했으니 이제는 희망이 없다.' 이라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갑자기 로마 황제를 큰 중병에 걸리게 해 가지고서 그  황제가 중병이 걸렸으니까 이제는 뭐 전쟁할 그런 여유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그  군대를 철수해 가지고 돌아오라 하는 명령이 내렸습니다. 갑자기 명령이 내려서  그때 그 군대 장관이 군인들을 다 철수해 가지고서 로마로 돌아가는데 로마로  돌아가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그 예언의 말씀을 듣고 세례 요한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빨리 급하게 도망하라. 산으로 도망하라. 도망하라는 그 말씀을 듣고  빨리 도망했습니다. 빨리 도망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를 저 겁쟁이들 다  로마 병정들 다 철거했는데 뭐 저렇게 저라는가 이렇게 조롱을 했지마는서도 그  예언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대로 돌이켜서 그 예루살렘에서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피한 사람들은 딱 피하자 마자 로마에서 다시 소식이 들어오기를 왕이 이제 완쾌  되었으니까 다시 가서 예루살렘을 정복하라 해서 반쯤 가다가 도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예루살렘을 포위해서 그러니까 한 넉 달 동안 포위해서  물을 하나도 보내지 안했고 양식을 하나도 보내지 안했고 딱 포위해 놓으니까  물이 없으니까 처음에는 짐승을 잡아서 의를 마시다가 마지막에는 강자가 약자의  피를 마시다가 마지막에는 자기의 자녀까지도 꾀를 마시고 아무것도 생명은  남았지 먹을 것이 없으니까 전부 약한자의 고기를 참 강한 자들이 다 먹는 이런  비참한 일로 해서 실컷 거게서 다 잡아 먹고 이라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 이제 다  몇 남지 안했을 때에 그 때에 들어가 가지고서 완전히 전멸을 시키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때에 된 그것이 우리에게는 거울이 되는 것이니까 이 유대  열 지파에게 예언한 이사야 선지의 예언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또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의 예언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또 사도 요한의 예언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금 뭐 유혹받기 쉬운 것이 지금 한쪽에서는 공산주의의 그 탄압으로  인해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전부 신앙 있는 믿는 사람들이 다 살해를 당하고  그게 뭐 순교가 될란지 죄짓다가 죽은 살해가 될란지 모르나 다 이렇게 살해를  당해서 자리를 걷듯이 온 세계는 기독교가 착착 걷혀지고서 공산주의가 지금  틔어 나오고 있습니다. 뭐 중공에 뭐 교회가 어짜고 하지마는서도 거기 신앙생활  못 합니다. 이북에는 교회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어 나가고 지금이라도 그  사람들은 요새도 또 말 들으니까 아, 소련이 지금 좀 뒤를 돌봐 주고 소련하고  하나되고 하니까 중공에 눌렸지마는서도 중공에 그렇게 눌리지 않습니다. 소련이  더 우세하게 됐으니까. 요새도 다시 이제 이 삼팔선 부근에다가 재무장의 정비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지금 지금이라도 툭 터져 가지고 만일 남한이 정복 당한다면  이북의 그 신자들이 당한 거와 같은 그런 꼴을 당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정권을 잡는다고 하면은 남한에 이 기독 신자들 그들이 이제까지  경험한 대로 예수 믿는 자는 절대 세뇌 작업은 안 된다. 머리를 뇌를 씻는 세뇌  작업은 안 된다. 안 되니까 모조리 그런 건 다 숙청을 해야 되지 둬서는 안  된다. 이라니까 만일 그리 된다고 하면은 우리는 다 참 예수 믿는다고 주님의  이름으로 순교를 당할 때야 좋지마는서도 내나 순교 당할 만한 그런 준비가 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와도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고통이 없고 또  그들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떻게 구원할지 모르지마는서도  안한다고 해도 다 순교니까 이미 죽을 것 순교하니까 얼마나 영광이지마는서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나중에 예수 믿고 죽는다 그말이오. 예수 믿고 죽으니  비참한 참 그는 개죽음을 하게 되는 그런 일이 우리 앞에 지금 당면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 우리 마음은 하나도 뭐 두려움이나 뭐이나 그런 거는  하나도 없고 강퍅해지기만 점점 강퍅해집니다. 요새도 남한에 지금 도마 위에  오른 고기와 같이 돼 가지고 있으면서도 뭐 무슨 운동 무슨 운동 하면서 모두  운동이니 하는 것 보면은 그 속에는 전부 제 감투 장만하는 것, 제 감투  장만하는 것, 감투 장만하지 안하는 사람은 자기가 뭘 디디고 올라가야 다른  사람에게 좀 유명해질까해서 사다리 만드는 것, 이거 참 비참하고 비참하고 이거  뭐 곧 뒤에서는 지금 원수들이 생명을 노리고 있는데 그걸 모르고서 지금 코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사야나 에스겔이나 예레미야나 사도 요한의 그  예언이 과거에 지나간 것이지마는서도 그 지나간 것이 그리 지나갔으면 우리에게  이 성경을 주지 안했을 터인데 우리에게 주신 것은 또 우리에게 지금 주신  예언입니다. 이런 예언은 까마득히 보지를 안 합니다.

 이래서 지금 한국 교회든지 세계 교회에 보면은 어떻게 하면 잘 살까 어떻게  하면 복 받을까 이렇게 좋은 면으로만 이렇게 자꾸 건설면으로만 이렇게 하니까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서 좋아하지마는서도 지금 건설 면을 볼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파괴면을 봐야 될 때입니다. 파괴면을 보아서 그 파괴를 우리가 먼저  면하고 주님의 노를 풀고 주님의 징계를 벗어나고 난 다음에 이런 건설 저런  건설이 있을 건데 전부 참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그 미가 선지가  말하기를 이렇게 하나님을 진노케 하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가 없다 하기 때문에 너희들이 다 전멸  당한다 예루 살렘은 밭 갊을 당하고 성전은 수풀 언덕이 되리라 그렇게  예언했습니다.

 이러니까 지금 우리에게는 이 다섯 성경이 우리에게 지금 당면한 급한 경고요  예언입니다. 이래서 요사이는 저도 이 성경을 별로이 볼라고 하지 안하고 그저  보통으로 자꾸 이렇게 뭐 거게는 성경을 보면은 자꾸 참 듣기 싫은 소리만 많이  했습니다. 듣기 싫은 소리 많이 해 놨는데 그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고  기뻐하는 이런 성경이 많이 있는데 그 성경을 볼 일이 없다고 뭐 이렇게 자꾸  말을 안해도 그만 그래 가지고서 그 성경을 등한히 했는데 어짠지 요새는  하나님께서 자꾸 그 성경을 보여 주십니다. 이래서 우리가 벌써 아마 한 달포를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예레미야 애가 여게 대해서 자꾸 하나님이 말씀을 주셔서  우리가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요사이는 이 성경들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에스겔을 지금 훑어 보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우리가 유치반이나 중간반이나 장년반이나 다 서둘러서  이사야서를 많이 읽도록 합시다. 이사야서를 읽으면은 주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어떻게 지금 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고 또 예레미야서를  보면은 우리가 얼마나 비참하고 가련한 처지에 지금 놓여 있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에스겔 예언서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분노하셔서 우리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분노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거기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요한게시록은 보면은 마지막으로 모든 땅위에 일들이 다 정리가  된다 하는 것을 거게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저녁에 제가 거기 서로 우리가 같이 깨달아야 될 문제는 이  다섯권의 성경을 열심히 상고하자. 다른 성경보는 거 다 그만 둬두고 좀 둬두고  지금 시급한 것이 이 다섯권 성경이니까 다섯권 성경을 열심히 좀 보자 하는  그것을 제가 말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그라고 나서 이렇게 생각을 해 보니까 참 이런 하나님의 종들이든지  저런 하나님의 종들이든지 다 유력한 종들이 증거하는 증거를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무슨 책자로 이렇게 들어도 전부 호화판 설교입니다. 어짜든지 좋은  것만 말하고 기쁜 것만 말해서 모두 다 사람들이 다 안심하고 좋아하고 뛰고  굴리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그런 말들이지 우리가 지금 비참하고 가련하다 하는  그 듣기 싫은 소리는 대단히 듣기가 참 어렵게 돼 가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고로, 각자들이 뭐 그거 다 누가 설교 해 가지고서 언제 그거 가르칠  여가도 없으니까 이 다섯권 성경은 읽으면 스스로 다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아주 맛보기입니다. 그저 찍해야 좀 맞보기 아닌 거는  비유한 거뿐이요 비유한 것은 고 한 장 두 장을 내리 계속해서 읽으면 고 가운데  비유로 해 놓고 고 다음에 해놨기 때문에 요거는 무슨 말이라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어떻게 노엽게 한 일이 있는가 어떻게 노엽게  했는가? 노엽게 한 일을 우리가 거게서 발견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주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어떤 그 징계를 예비해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거기서  발견할 수가 있을 것이고. 또 주님이 지금이라도 우리들의 회개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을 또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전도지를 요번에 전하라는 것도 백만 장을 베낄라고 다 돈을 주고  벌써 주문을 해 놨습니다. 곧 올 겁니다. 우리가 이런 일이 이제까지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이렇게 전도하는 전도지는 전했지마는서도 찍해야 이십만  장 십만 장 이렇게 전했지 백만 장을 이번에는 꼭 전해야 된다 하는 이런 것은  저도 느끼지 안했고 이거는 안 전하면 안 된다는 큰 화를 받겠다는 그것이 제게  느껴져서 그랬고 또 인사로 전하는 예레미야 애가 2장 18절에 있는 절수는 내가  처음에 하나님 앞에서 새벽 두 시 되어서 그 말씀을 받고 내가 생각할 때에 많이  멈춤 멈춤 거렸습니다. 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지 않겠느냐? 네나  회개하지 뭐 이렇게 하면 이거 믿는 사람에게 전한다는 것이 미쳤다고 하지  않겠느냐? 그래 가지고서 제가 거역을 하고 자꾸 주저를 하고 항거를 했습니다.

했으나 이제 마지막에 하나님이 강력하게 이걸 전해야 된다는 걸 강력하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저는 그때에 거게서 복종하고서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서 순종하고 그래 제가 그 시간에 하나님 앞에 '저도 이 전도지 박히는데  내가 십만 원을 제가 연보를 해서 전도지를 박히겠습시다.' 하고서 그 시간에  작정하고서 그렇게 전도지를 베껴 가지고서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전도지를 전하는 데에서 많은 깨달음을 받고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전도지 받을 때에 또 거게 대해서 기도하고 또 줄 때에 기도하고 나는 참 하지  못하던 기도를 이 전도지로 말미암아 많이 했고 내가 예사롭게 기도의 제목으로  그렇게 삼지 안하던 기도의 제목에 대해서 얼마나 깨우침을 받아 가지고서 그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가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봉독하고 설교하는 것도 실은 제가 이 다섯권  성경을 열심히 읽자 하는 그것이 제가 오늘 밤에 전하려는 그 속에 중심이었고  제 속에 간절한 마음으로 느껴진 것이었고, 그러면 뭐이라고 설교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할 때 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이 설교를 그저 본문 읽고 해야 되겠다  했으니까 이 설교에 중점을 두지 말고 이 다섯권 성경을 이제 읽기로 작정하고  열심히 가서 읽으면 거게서 주님의 노를 깨달을 것이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은  어떻게 멸망을 받는다는 거 거게서 우리가 회개하면은 좋은 날을 보고 어려움을  면한다는 거 그런 것을 깨달을 수 있을 터이니까 이 다섯 가지 성경을 열심히  읽도록 그렇게 합시다.

 여기서 간단하게 말하면,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신  것과 라오디게아 교인 자기들이 본 것이 정반대입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시기를 어떻게 보셨나 하면은 너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이 말할 수 없다. 너와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이 말할 수 없이 너는 비참하게 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네가 말하기는 나는 부자라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말하나 실은 주님이 보실 때는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면, 오늘 우리는 어떤 눈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것이 주님이 나를 보신 대로의 정확한 눈을  가지고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정꺼꾸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고 있는지? 우리 자신이 가련하면은 가련한 것으로 봐야 하겠고  부요하면 부요한 거로 봐야겠는데 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여기 구역에는 '네가 말하기를'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이래 놨는데, 여게는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모든 것이  부요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도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과 그 자기가 자기를 보는 것이  주님과 자기가 주님이 자기를 보는 것과 자기가 자신을 보는 거와 이렇게  정반대로 봤으니까 우리는 이런 눈이 없는지 우리는 이런 눈이 아닌지 아,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그렇지마는서도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주님 보는 거와 꼭  보는 그 관찰이 똑 동일하다 그렇게 될란지 그 밑에 여게 보면은 왜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렇게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또 눈 멀고 벌거벗었느냐 그것을  밑에 해석을 해 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그렇게 곤고한 자가 아닌지 가련한 자가 아닌지 말씀  하시기를 18절에. '내가 너를 권하노니'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해야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해져야 곤고함도 물러가고 가난함도  물러가고 모든 고통이 다 물러갈 건데 이 불로 연단한 금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마지막에 대환난이 닥칠 때에 그 사람이 곤고치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가에 왔을 때에 그때에 애굽 병정들이 추격하고 앞에는  홍해가 막혀 가지고 있으니까 그들은 참 곤고했습니다. 심히 곤고했습니다.

가련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니 모세니 갈렙은 벙긋벙긋 웃으면서 기쁘고  즐거워했습니다. 아, 사자 구덩이에 던지는 그런 일을 당했을 때에 다니엘은  기쁘고 즐거워서 그 소식을 듣고 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사자 구덩이에 묶어서 사자 구덩이에 던질 때도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사자 구덩이에 떨어질 때도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일반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을 때에 그 어떻게 됐습니까? 기쁘고 즐겁겠습니까?  벌써 새파랗게 질려서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기 전에 시체가 될 것입니다.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기 전에 벌써 새파랗이 질려 가지고서 반 송장이 됐을 것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그렇게 기쁨과 평강을 누렸는데 일반 사람들은 왜 그런가?  그것은 불로 연단한 금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가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로 연단한 금이 뭐인데? 불로 연단한 금은 해석을 많이 할 수 없고.

불로 연단한 금은 세상에서 불덩이와 같이 그 어려움을 닥쳐도 불덩이와 같은  그런 어려움을 닥쳐도 아무리 용광로가 뜨겁다 할지라도 다른 잡철들은 절단이  나 버리지마는서도 정금은 빛이 납니다. 정금은 빛이 납니다. 이제 불로 연단한  금은 아무리 뜨거워도 정금은 빛난다. 이와 같이 아무리 대환난 어떤 거 있어도  모세와 여호수아 갈렙과 같이 다니엘과 같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이  이렇게 그런 것들이 와도 불은 뭐이 불인가? 불은 사자 구덩이가 그들에게 불일  것이요 또 불미불이 불일 것이요 홍해 바다가 불일 것인데, 그런 어려움이 오면  믿음이 바짝 타 버려 가지고서 없어질 믿음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보호하시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여기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시고 하나님이 살아 계신 걸 이렇게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다 하는 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다 그런 불같은 불덩이  같은 어려움을 당해도 타지 아니하고 변하지 안하고 의심 나지 안하고 요동치  않는 믿음. 요동치 않는 믿음 그것이 불로 연단한 금입니다. 그 믿음 있는  사람들은 다 기쁘고 평안해지기는 지지마는서도 그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다  녹을 거 아닙니까? 이러니까 네가 불로 연단해도 없어지지 안할 그 금, 이것  비유인데 상징적으로 말했는데 그런 어떤 불같은 시험을 당해도 네가 조금도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것이나 하나님의 보호를 믿는 것이나 하나님의 품안에  네가 있는 것이나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는 것이나 이 사실을 네가 믿는 믿음이  요동치 안하니까 그 자리가 좋고 그 자리가 더 영광스럽고 그 자리가 더 빛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쁘고 즐겁지마는서도 믿음 없는 자는 제가 안 녹고는 못  견딘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곤고하고 가련합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이렇게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그 전지  전능을 하나님이 주권자를 주재자를, 또 창조주를.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이렇게 하나님이 모든 걸 가지시고 자기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 만침만 믿어도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가 모든 천하를 다 주권하고 계시고 모든 걸 다 가지고  계시고 이런 전 지능 능력 가졌다면은 그 아버지가 모신 자가 뭐 땅위에서  염려가 있겠습니까? 이보다도 하나님을 이보다도 더 믿는 그 사람에게는  세상에서도 그에게는 어려움이 없고 무궁세계 가 가지고도 그 믿음 가지고서  믿음의 공헌을 가지고서 하나님 이 대우할 터이니까 금생이나 내세나 다 이  금생도 부요하고 내세도 부요한데 이 믿음이 없이는 네가 가련하다 그 말입니다.

 이러니까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네가 부요해라. 이 금을 사라, 사라 말은 사라  말은 네게 있는 것을 줘야 살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사는 것은 그것은 상대방이  요구하는 걸 줘야 되지, 돈 요구하면 돈을 줘야 상대방이 그걸 팔 것이고. 또  상대방이 나는 돈은 필요 없다. 양식이 필요하니까 양식을 달라 할 때 양식을  줘야 살 수 있을 것이고 아 양식도 돈도 나는 필요 없다. 내게는 금을 달라 금을  달라, 하면 금을 줘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물건 팔수 있어? 팔라 하는  물건을 가지고 팔라 하는 그분의 요구대로 댓가를 치뤄야 할 것이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불로 연단한 이 금을 가지신 이는 하나님이신데 이 금을 살라  하면 그분이 요구하는 대로 내가 사야 요구하는 대로 네가 가지고 있는 걸 줘야  되니까 우리가 그 금은 믿음이니까 고 믿음을 내가 가질라고 할 때는 어떨 때는  내가 생명을 줘야 고 믿음을 가진다. 생명 안 주면 그 믿음 못 가진다. 그러면  고거는 생명 주고 사야 될 거라 말이오. 거게서는 내 모든 세상을 다 내놔  버려야 고 믿음을 가질수 있을 거라. 그때는 고문과 고형으로 내가 죽지는  못해서 내 몸이 고문과 고형해 가지고 내 몸이 전부가 다 전부 절단이 나고 다  아주 부서지고 말이오 부서져야 그때 믿음을 지키지 부서지지 안하면 믿음을  지킬 수 없을 때는 내몸이 부서지고 내 몸을 내 놔야 그 믿음을 지킬수 있다  말이오. 그게 뭐이냐?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믿음을 요동치 안하고 그  믿음을 그대로 유지할라고 하는 데에는 내게 있는 걸 뭘 내놔야 될 이거 내놔야  될 때도 있고 저거 내놔야 될 때도 있으니까 이것을 내놓고 살아야 될 때도 있고  저걸 내놓고 살아야 될 때도 있으니 네가 이불로 연단한 금을 이것을 네가  가질라고 하면은 네게 있는 것을 내놔야 되는 것이니 어떤 걸 내놔야 될런지  있는 대로 다 내놔도 이 불로 연단한 금이 믿음이라는 것을 내가 놓지 않겠다,  뺏기지 않겠다 해야 되지 무엇이라도 한 가지는 가지고 요거는 주고 살 수 없다,  다른 건 다 주지만 요거는 주고 살 수 없다, 생명만은 주고 살 수 없다,  생명만은 뺏기고 믿음 가지지는 못 한다. 살고 믿음 가지지 죽어도 믿음 가질  수는 없다 하면은 고 사람은 그 믿음을 못 살 거라 말이오. 그거 금을 못 살  거라. 이래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흰 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횐 옷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의 대속 아닙니까? 우리가 주님의 사죄를 입었습니다. 사죄를 입었습니다.

또 칭의를 입었습니다. 또 화친을 입었습니다. 입었지마는 그 현실에서 내가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벗어 버리지 안할라면은 안 벗으면 됩니다. 안 벗으면  되는데 이것을 안 벗고 내가 이 주님의 대속을 입을라고 하면은 그거도 꼭 같애  금 사는 거 한가지라. 내가 죄 안 지을라 하면은 생명 내놔야 될 때도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살라 하면 생명 내놔야 될 때 있고 하나님을 배반치  안할라면 생명 내 놓을 때 있다 말이오. 그래서 저 충혼탑이라고 내가 장  보는데, 과거에 신사 참배 때는 생명 내놓지 안하면 주님을 내놔야 되고. 네가  하나님 배반하고 여기 신사 참배에 절을 하든지 그리 안하면 네가 생명 내놓고  그만 신사 참배 절 안 하든지. 다니엘도 생명 내놓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생명 내놓고 다 믿음 가졌고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횐 옷 사는 것은 주님의 대속이니까 주님의 대속을 이것을 벗지  안할라고 하면은 내게 있는 것을 상대방이 생명 주면 주겠다 하면 생명 주면  되지마는 재산 주면 되겠다 하면 재산 주면 되지만 내 몸뚱이 주면 되면 몸뚱이  주면 되지만 나중에 뭘 달라 할지 모른다 말이오. 어짜든지 그걸 내가 꼭 사기는  사야 되고 그 예수님의 대속을 벗어서는 안 되고 예수님의 대속을 내가 꼭  가져야 되겠으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꼭 입어야 되겠다고 하면은 뭘 달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 주고라도 예수님의 대속은 내가  사서 입지 벗지 않겠다 하는 요것이 없으면 우리가 안 될 터이니 우리가 이  믿음이 돼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공연히 헛되이 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안할 때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으며  어찌 되겠느냐? 여러분 죽어 봤습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안할라 하면은  내가 재산을 내놔야 된다, 가정을 내놔야 된다 건강을 내놔야 된다. 자유를  내놔야 된다, 내 몸뚱이를 내놔야 된다, 내 생명을 내놔야 된다. 내 직장을  내놔야 된다 그렇게 내놔 봤습니까 내놔 봤습니까? 여러 수천 번 내놓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여러 수천 번 수백 번 내 놓습니다. 내놓고 내놓고 내놓고,  뭐 주여 내놓겠습니다. 이렇게 단정을 짓고 수십 번 수백 번 연습을 한 사람도  막상 그 일이 닥쳤을 때에는 뻘뻘 떨고서 주저주저하다가서 참 그 길을 걷게  되지 그렇게 썩 가기가 어려운데 원첨 많이 연습한 사람들은 그런 거 왔을 때에  뭐 거게 대해서 상관이 없이 그저 기쁘고 즐거움으로 다니엘처럼 감사합니다.

하고서 감사와 기쁨으로 갔는데, 우리가 그런 지금 횐 옷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벗었으면 그것은 벌거벗은 수치를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못한 몸의  기능도 마음의 기능도 다 유황불 구렁텅입니다. 다 유황불 구렁텅이.

 우리가 불로 연단한 금을 살 준비가 됐습니까? 살 준비가 됐습니까? 이 믿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내 전부를 다 내어 줄 준비된 것이 그게 살 준비된  것입니다. 횐 옷 살 준비도 그것입니다. 안약 살 준비도 그것이오.

 안약도 사 바르고, 안약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읽는 것 읽는 그것이 안약  사는 거 아니오. 하나님 말씀 읽는게 사는 거 아니오. 암만 읽어도 그거  가지고는 준비는 되지마는서도 그 진리가 내것되는 것 아닙니다. 내가 현실에.

하나님 말씀을 네가 말씀대로 살래 말씀을 버릴래? 요 말씀을 버리느냐 말씀을  취하느냐? 요 현실에서 말씀을 버리느냐 말씀을 취하느냐? 요 중에 둘 중에  하나인 그때에 사라고 한 것은 네가 하나님 말씀을 내놓지 안하고 하나님 말씀을  네가 네것으로 간직할라고 하면은 네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희생돼도 말씀은  어기지 않겠다, 말씀은 내주지 않겠다. 말씀은 버리지 않겠다 이래야 네가 이  진리를 가지고서 그 눈을 밝게 하지. 그래야 그 진리 내놓지 안하면 고거는 눈  밝은 일이요 옳고 바른 일이기 때문에 이 준비가 우리가 돼 가지고 있습니까?  이래서 제가 오늘 저녁에 이 말씀을 본 것은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

안약은 하나님 말씀인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 자꾸 읽음으로서 내 눈이 밝아지고  차차차 밝아지고 외나 내 눈이 환하게 밝게 되는 것은 현실에서 내가 미리 알고  성경을 보고 안고 말씀을 가지고 고대로 현실에서 회개를 하고 고 말씀대로  현실에서 지키고 요럴 때에 비로소 우리눈은 밝은 눈이 되고 지혜 있는 사람이  되고 바로 행하는 사람이고 옳게 행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제가 오늘 저녁에 요 말씀 한 것은 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 눈 먼자야  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 우리가 뭐인지 몰라요. 모르는데 지금 이 우리  현실에서는 뭐이냐? 이사야 선지의 예언한 것과 예레미야 그 선지, 예레미야  애가서, 또 에스겔서, 또 요한이 준 요한계시록 이것이 우리에게 당면된  예언입니다. 이러니까 이 말씀을 읽어서 우리가 눈이 밝아져야 돼.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 되겠습니다. 알아야 뭘 어떻게 하지요?  오늘부터 작정하고 제가 이것을 저 뭐이 언제 주일날 제가 한 번 이야기 하고  그 뒤에 자꾸 계속해서 말한다 하는 것이 그저 주일날 닥치면 설교에 이거 뭐  전념을 전심을 기울이져 가지고 이라다 보니까 설교 하는데 거게만 전력  기울이다 보니까 그게 다 마음이 쏟아지니까 그만 이 성경을 읽어보라 하는 그  말을 빠져 버리고 하지를 못했습니다. 이래서 오늘 밤에 하는 것인데 어짜든지  우리가 과거 육체의 이스라엘이 선지자의 예언을 등한히 하다가 망한 것처럼  우리도 오늘 그런 사람이 되지 안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적절한  예언은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 예레미야 애가서, 에스겔서, 요한 계시록서가  우리에게 지금 당면된 예언입니다.

 그리고, 새벽 기도에 어짜든지 나오도록 하십시오. 자꾸 지금 들어야 되는데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지금 모두 마귀란 놈들은 편하다, 평안하다 하지마는서도  성령은 지금 탄식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이와 같이 꼬와 가지고서 뭐 교회들도  이런 말은 하면 다 듣기 싫어하고 교회들도 지금은 평안하다 뭘 지금 내 파 네  파 싸워 가지고 어떻게 하면 내 명예를 좀 올릴까. 어떻게 하면 지위를 올릴까  이래 가지고서 사다리 만들고 모두 발판 만들고 자기의 구멍 가게 만들고 또  자기 감투 만들고 이런 이런 때가 아닙니다. 다 그거 모두 다 정신을 못 차려  그런 것이니까 우리가 지금 어떤 때라는 것을 자꾸 이 이사야서를 들으면 이러면  알 것이고 어떤 때라는 걸 알 것이고 에스겔서를 읽으면 예레미야서를 읽으면 알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공연히 위협이나 협박 주는 거 아닙니다. 그렇게 어리식게 듣지 맙시다. 아주  긴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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