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구원설-제한적구원설


선지자선교회 1985년 7월 7일 주새 

 

본문 : 출애굽기 20장 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오늘 유치반 중간반 일 이부에 한 번 더 공부할 공과입니다.

 사람은 두 종류로 이렇게 나누어 증거를 했는데 현재 세계 교회들은 종류로  나누는 것을 반대하고 하나라. 사람은 하나라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는 세계  교회입니다. 감리교라든지 성결교라든지 그 외에 거의가 다 사람은 다 한 종류라  이렇게들 말합니다. 교리적으로는 칼빈주의 하나만이 사람은 두 종류라 이렇게  말을 하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다른 모든 교파가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누는 것을 반대하는 그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 이유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두 종류로  택자 불택자로 이렇게 나눌 리가 있나? 그러면 하나님이 하후하박으로 어떤  자에게는 후하게 대접하고 어떤 자에게는 박하게 대접하는 하후 하박의 불공평한  일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해서. '사람은 한 종류뿐이요 멸망받을 종류와  구원받을 종류로 이렇게 두 종류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을 리가 없다. 하나님의  공평의 속성을 따져 볼 때에 그럴 리가 없고 또 하나님의 사랑면을 따져 보아도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말을 해서 일반 교파에서는 만인 구원설을 말합니다.

 만인 구원설이라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피를 흘리신 것은 전 인류를  위해서 흘리셨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얻는다고 하지 안 했느냐?'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은 어떤 자에게 한해서 대신 담당하신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고 어떤 자들에게는 대속의 그 공로를 베푸시지 안하셨다.' 그래서  제한적 대속을 말합니다. 어떤 교파에서는 '예수님의 대속은 누구든지 다 위해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심으로 대속하신 것이 아니고 한정이 있어 가지고 그렇게,  전체가 아니고 제한적인 그런 대속이다' 말하고, 또 어떤 교파에서는 '만인  대속이다.' 만인이라 말은 무한을 말하는데 전 인류를 말합니다. 전 인류  대속이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진리를 사람을 아주 사랑한다는 면에서, 이긴다는 면에서, 또  겸손하다는 면에서 이렇게 만인 구원설을 말을 하고, 깨달은 칼빈주의는 제한적  구원설을 말합니다. 여기서 달라서 '구원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이루어야 구원이  된다' 이렇게 말하는 교파도 있고, '구원은 하나님과 자기와 둘이 잘 합작되어야  구원을 이룬다' 그렇게 말하는 교파들도 있고, '구원은 사람이 보기에는 사람이  해 가지고 구원이 되는 것같이 보여지지만 실은 하나님 혼자의 주권으로 구원을  이루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주권 의지에서 구원 얻기로 예정된 사람을 주권의  능력으로 구원을 시키시기 때문에 궁극적 구원이다. 이는 주님이 당신 단독이  구원하시는 구원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교리가 많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제한적 구원설을 말하는 것이 칼빈주의요, 또 궁극적 구원설을  말하는 것이 칼빈주의요,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는 것이 칼빈주의요, 하나님의  예정을 강조하는 것이 칼빈주의입니다. 그러나, 칼빈주의도 우리가 생각하는  예정론과는 아주 차이 있습니다. 또 주권론도 우리가 생각하는 주권론과  다릅니다. 제한적 구원설을 말하는 것은 우리와 같습니다. 또 궁극적 하나님의  은혜라 하는 것도 우리와 같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자꾸 나아가서 사람 편을  너무 생각하는 그런 해석도 있고, 또 하나님 편을 너무 생각하는 그런 해석도  있고, '이거고 저거고 다 사람은 단독이 생각할 권리는 없다. 하나님께서 문서  계시로 나타내신 그저 계시 그대로 알고 그대로 생각하고 그대로 믿고 그대로  주장하고 행동하는 이것이 올바른 기독교다' 그렇게들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정통입니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똑똑히 분해를 할라고 하면 거기에 미달된 그런 것도 있기는  있지만 원리적으로 말하면 칼빈주의는 어떤 것이 칼빈주의인가 하니 성경주의가  칼빈주의입니다. 성경대로 주장하는 것이 칼빈주의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성경이 하지 못하게 했으면 안 해야 된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성경이 하지  말라 하면 안 해야 된다. 아무리 사람들 생각에 나쁘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도  성경에 하라 하면 해야 된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하라고 하는 데까지 하고  성경이 금하는 데까지 금해야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칼빈주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궁극전 구원과 제한적 대속을 말하고 하나님의 주권 구원을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대가 달라서 과거의 칼빈 시대보다도 벌써 그 후 삼 사 세기가  지나간 오늘이기 때문에 우리 세대 와서 우리가 깨달은 것과 칼빈 선생의  깨달음과는 차이가 있으나 그 차이 있는 성질이 그때 그 칼빈 선생은 거기  대해서 말하지 아니한 것을 오늘 우리들이 새로 발견해서 말한 것이 대부분이고  칼빈 선생이 말한 것이 틀려서 그 반대로 이렇게 말하는 그런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면, 칼빈의 깨달음이 더 거기에 보충돼졌다. 또 더 세밀히  되어졌다, 더 정학히 되어졌다 이렇게 할 수 있고 칼빈의 깨달음이 틀렸다 하는  그런 것은 별로 많지를 못합니다. 혹 있기는 있지만 많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지금 깨닫고 나가는 것도 현재에 세계에서는 제일 첨단을  걷고 있습니다. 제일 첨단을, 제일 앞서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세대가 많이 남았으면 이 후 세대는 우리가 지금 깨닫고 믿는 것을 또  이는 너무 구비하지 못하다 이는 불구비하다 해서 더 깨달음을 보충해 가지고  세밀한 깨달음을 가져서 어떤 죄악이라도 빠지지 못하도록 그렇게 단단히 아주,  좁은 그물과 같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엉근 그물이고, 엉근 그물이라도  뭐 다 걸리고 빠질 것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다음에는 더 쏘문 그물을,  죄악이 발달되니까 요리 조리 불거지고 빠지니까 그렇게 빠지지 못하도록.

죄악은 빠지지 못하고 또 우리의 구원을 방해하는 마귀란 놈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이렇게 방해하는 것도 이렇게 쏘물게 할 것이고, 옛날 칼빈 시대에 한  것은 그것은 뭐 지금보다 옛날이기 때문에 방어하는 것도. 방어하는 그물도  엉글고 또 구원하는 그물도 엉글기 때문에 그 그물 가지고는 지금 가면 방어도  못 하는 면이 많고 구원도 못 하는 면도 많은 거와 같은 그런 비유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반 다른 교파에서 말하는 것은 그것은 뭐 그물이 고가 커서  엉글다는 것보다도 그 그물들이 모두 다 한쪽은 다 째졌습니다. 한쪽은 째지고  그저 성한 데만 있기 때문에 실은 거기서는 걸리지를 못하고 대개는 다 빠져  달아나고 또 얼마든지 세상에 들어와 가지고 역사하게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교파는 세상이나 교회나 별 다를 것이 없어 거의 다 같은  것이 기독교입니다. 천주교는 세상과 거의가 같고 다를 것이 없습니다. 뭐  주일을 그전에는 잘 지키지를 안했습니다. 잘 지키지 안하고, 주일날 뭐 술 먹고  술 팔고 또 어떤 장사라도 무슨 일이라도 필요있는 대로하는, 일하는 것은  주일날이라 하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제재를 받지를 안하고 뭐 주일날에  상관없이 그렇게 해 나왔었고. 또 음식에 대해서도 제재 받을 것이 없다 해서  음식에 대해서 절제하는 그런 음식이 많지를 못했습니다. 또 그뿐만 아니고  행동도 그러합니다. 행위도 별로 절제 하는 일이 적습니다. 이래서, 세밀히  들어가면 그러합니다.

 또, 감리교 같은 그런 교파도 보면 이 세상과의 관계를 맺는 그 관계에서  아무런 거리낌이 별로 없이 다 서로 통하고 이렇게 화합할 수 있도록 그렇게 돼  가지고 있고. 장로교는 세상과 이렇게 화합되는 그 면이 아주 까다로와서 그렇게  화합하기가 어렵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더우기 우리가 나가는 길은 아주  세상과 화합하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이러니까 화합하기를 아무리 원하고  원하지만 우리가 깨달은 이 교리를 맞출라고 하면 세상하고 화합이 안 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화합을 하면 올바른 화합을 하게 되기 때문에 올바른 화합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화합할라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이 화합하게 해 주셔야 화합이 되지 인간만으로는 화합을 못 한다 하는  것이 우리들이 깨달은 교리의 결론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모두 깨달음이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 지금 진영에서  나가는 데에도 세상에 대해서 세상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나 하는 그 관계에  대해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어서 세상과의 관계가 아주 확 터지게  하는 그런 주장도 있고 그 관계하는 데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단단히  방어해서 요 말씀의 고로 들어오는 것이라야 그것을 우리가 영접하지 그 고로  들어오지 안하는 것은 전부 다 우리를 해하는 악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이 고를  단단히 방어해야 된다 그렇게들 하고 있고 그거 다릅니다.

 그래서. 교회의 복음 운동을 해도 아주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널펑하고 저분은 좁게 하고 이렇게 하는데, 물론 우리가 세상과 접하는 데에  입문은 다 넓게 해야 됩니다. 예를 들면 '나는 제사를 지내는데 예수를 믿어도  됩니까?' '아, 예. 제사 지내고 믿으십시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 주장이  들어올 때는 제사를 지내고 예수를 믿어라 이렇게 했지만 마지막에는 '제사는  지낼 수 없다' 또 제단 위에 올려놓은 제물도 먹을 수가 없다. 그러면 제사  지내는 집에 가 가지고 먹는 거는 어떠냐? 제사 지낸 집에 가 가지고 제단에  올려놓지 안한 것이라도 제사 지낸 집에 가 가지고 먹는 일은 하지 못한다  마지막에 이래 됩니다. 그러면, 왜 못 하느냐? 그러면, 제단에 올려 놓지 안한  그 음식도 제물이 됐느냐? 제물은 안 됐다. 제물은 안 됐지만 네가 그 제사 지낸  집에 가서 먹으면 다른 사람들이 보고 '저 사람도 제물을 먹는구나' 그렇게 여길  터이니까 다른 사람들에 양심을 더럽히게 되기 때문에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제사 지낸 집의 음식이라 할지라도 만일 시장에 판다고 하면 네가 시장에 가서  파는 걸 보고 그것이 제사 음식이다 그렇게 보여지면 네가 사 먹지 말 것이고 또  이거는 제사 음식이 아닌갑다 이렇게 보여질 때는 묻지 말고 사 먹어라. 만일  물어서 제사 음식이라 하면 너는 사 먹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뚜렷한 명문을 가지고 금하는 것도 있고 사람들의 양심을  가지고 금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고로, 주일 지키는 것도 그 신앙 양심에  매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일을 할 수 없고 어떤 사람은 그 일을 할 수 있고  그 신앙 양심에 따라서 좀 더 좁게 지키는 사람 넓게 지키는 사람 그렇게 달라져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입문은 넓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입문은, 아, 나는 지금  내가 점을 치고 있는 사람인데 점치는 나도 교회 가면 됩니까?' '아, 점치는  사람은 교회 못 옵니다. 오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그것은 조금 그  방편이 서투른 방편인 택입니다. '아, 점쳐도 좋다. 점을 치면서 오라. 술을  먹으면서 오라. 제사를 지내면서 오라' '나는 지금 사창굴 직업을 하는데 사창굴  직업을 하면서도 교회 갈 수 있습니까? '아. 괜찮다. 교회 오너라' 그렇게  전도를 합니다. 전도하는 것은 그것을 어떤 사람이라도 예수 못 믿을 사람 없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와 가지고 예수를 믿는 데서 차차 차차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하는 데서 회개가 돼져서 마지막에 회개는 어디까지  회개하느냐? 하나님 말씀에 어기는 그런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행위의  온전함까지 이루어 가도록, 행위의 온전함이 되어야 이제 건설구원 성화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 믿기에 시작하는 입문은 아주 넓어서 안 믿는 사람이나 다름  없이 이렇게 넓게 열어 가지고 '어떤 일이라도 하면서 예수 믿고 예배당에 올 수  있다' 이렇게 열어 놓고, 예수 믿어서 구원을 이루어지는 그 구멍은 아주 좁게  해서 '성경 말씀에 털끝만치라도 어긋나면 그거는 성화 구원 안 된다. 온전한  행위라야 된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와같이 이웃을 사랑해야 그래야 영생하는 구원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마지막 결론은 그렇게 지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사람들을 가르칠 때에 사람은 두 종류라  하는 것을 밝히 가르쳐 놔야 됩니다. 지금 장로교 칼빈주의에서도 사람은 두  종류라 하는 것을 교리적으로는 따지면 그렇게 사람은 두 종류인데 그 일들을  말하면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또 그렇게 말하며 낙심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이럴 것이기 때문에 이 교리를 말하면 오히려 손해간다 해  가지고 이 교리들을 말하지 안하는 그런 교단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한 삼십 오륙 년 전인데, 가조 가서 집회를 하니까, 그때 저는  집사입니다. 집회를 하니까 ○○○목사님이라고 하는 목사님이 오셔 가지고 듣고  나중에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집사님. 그렇게 교리대로만 가르치면 교인들이  이해도 못 하고 또 오히려 시험에 들어서 믿음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니까 교리 설교를 하지말고 그저 일반적으로 그렇게 설교를 해서  가르칩시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그때 전도사이고 나는 집사고 그래서  그래 내가 대답을, 다른 말 뭐라고 할 수도 없어서 그저 웃으면서 '예 예'  그렇게만 말했습니다. 그때에 그 집회에 참석한 사람이 여기에 내가 보니까 한  사람 있습니다. 이 ○○○집사님이 그때 그 집회에 참석을 했었습니다. 가조  교회 집회 할 때.

 그때 그 가조 집회서도 큰 운동이 일어났었습니다. 뭐 하나 예를 돌면 박기천  집사라는 사람은 군 직원인데, 면에 출장 나와 가지고 있는 군 직원인데 분이  도에 출장 갈라고 출장 명령을 받아 가지고 다 서류를 싸 가지고 와 가지고 잠깐  그 집회에 참석하고 가겠다고 그 집회에 와 가지고 참석하다가 그만 '이거 내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이래 가지고 다 포기하고 그라고 그 자리에서 사면을 쓰고  자기는 하나님에게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아주 180도 전환을 해서 전도사로 그때  출발했었습니다. 출발해 가지고 전도사 노릇을 하다가 6.25때에 순교  당했습니다. 아주 참 깨끗한 순교를 당했습니다. 감옥에 가 가지고, 주일을  범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기에 지금 각재' 각구목 말이오,  '이 목재가 하나 있으니까 이것을 아무 데까지만 져다 주고 그래 오늘  주일이니까 나가서 주일을 보도록 하라' 그러면, 감옥에 갇혔으니까 나오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 주일을 지켜야 되니까 주일 지킬 마음도 있지만 각구목, 각재를  하나 져다가 주고 나가라 하니까, 그거는 그 날 일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오늘, 다른 날 같으면 뭐 그런 걸 하루 종일 지라 해도 내가 져다가  순종하겠습니다만 오늘 주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일을 하지를 못합니다.'  그라니까 '네 그러면, 나가기 싫은 놈, 그러면, 나가기 싫거든 하지 말아라'  그래 가지고 주일을 범하지 안할라고 해 사지고 그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엮어 가지고 가 가지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분도 주일  지킬라고 하다가 순교당했고, 배추달 선생님도 주일을 지키다가. 주일 학교  반사인데 주일 지킬라 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변판원 선생이라 하는 선생도 주일 학교 반사인데 그이는 성자입니다. 참  그이는 아주 신앙의 영웅입니다. 그랬는데. 그분은 주일뿐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지 안할라고. '이 말씀 부인해라 이 말씀 부인하면 놔 주겠다' '그거  부인하지 못합니다.' 이래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부인 안 할라고, 요 말씀  부인해라 해서 부인 안 한다고 해 가지고 안 한다면 칼로 죽 찌르고 이래 가지고  나중에 뒤에 가서 보니까 그 시체가 전신이 많이 찔렸습니다. 여러 군데  찔렸습니다. 나중에 마지막에는 뱃구멍 있는 데는 이만치 구멍을 뚫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칼로 가지고 도려서 구멍을 뚫었습니다. 거기에 마침 같이 가 죽는  가운데서 한 사람이 꼭 살아 나왔습니다.

 구덤터 잿만당에서 순교하는데 한 사람이 살아 나왔는데 그 사람이 이제  증거하기를 양쪽으로 이래 손을 짜매 놓고. 나무에다 짜매 놓고, 열 십자로 이래  짜매 놓고 성경을 가지고 '이 말씀을 네가 믿느냐 안 믿느냐' '믿습니다.' 하면  '이거 부인 못하겠느냐?' '부인 못 합니다.' 하면 칼로 찌르고 또 성경을 집어  뜯어 버리고, 또 그 다음에 그라고 그라고 뭐 일곱 번인가 몇 번인가 그렇게  다져서 칼에 찔려도 '그 말씀을 부인 못 합니다.' 이라니까 '이놈 속에 뭐이  들어서 이러냐' 하면서 마지막에는 안 되니까 칼로 가지고 뱃구멍 있는 데를  도려서 이만침 구멍이 뚫리도록 이래 도려 가지고 그래 죽였습니다. 그래서 그  구덤터 재라는 그 재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저는 그때에 여기 부산 내려와서  서부교회 부임이 돼 가지고 있었고 6.25때 바로 이리 와서 부임돼 가지고 있고  해서 그 장례에 제가 연락도 받지도 못했고 참석을 못 했습니다. 그러나, 그  변판원 선생은 늘 절 따라 다니면서 제 교훈을 받았고, 또 제가 거기서 처음에,  제가 그 교회를 세운 교회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교회를 시무한 그 교회  주일학교 반사인데 제가 삼봉산 가 있을 때에 밤이면 한 번도 빠지지 안하고  거기 올라오면서 그래 뭐 찬송하고 아주 독실한 신앙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신앙생활 하면서 교리와 신조대로 예수를 믿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리대로 이렇게 믿는 걸 주장함으로 그때에 거창 지방에 큰  불이 일어났었습니다. 뭐 모두 다 그때 ○○교파에서 거창 교회들이라 하면 다  존대를 하고 거창 있는 사람이라 하면 전부 그만 다잘 믿는 사람으로 인정을  했습니다. 왜? 6.25 라는 큰 난리가 지나갔지만 6.25 지나갈 때에 신앙을 그대로  지킨 지역이 거창 지역이 제일 신앙을 지켰습니다. 주남선 묵사님이 계시면서  신앙을 지켰고 또 제가 있는 데서 신앙을 지켰었고 이래서 그때에 거창이라면 좀  유명했었습니다. 그것이 다 교리 설교를 하는 데에서 생겨난 신앙이고 교리를  주장하는 데에서 견고한 신앙들이 생겨졌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리적이  아니고, 교리가 아니고 감정적으로 사람의 흥분적으로 사람의 정서나 움직이는  그런 설교는 그것도 좋지만 그 설교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왜 하는고 하니, 오늘도 여러분들 반사 선생님들이 주일학교  하생이나 중간반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 교리적으로 가르쳐야만 합니다.

교리적으로 가르치라 말은, 첫째는 사람은 두 종류라 하는 것을 똑똑히 인식을  시켜서 그 심령 속에 못 박아 놔야 합니다. 사람은 두 종류라. 두 종류이기  때문에 그 종류가 두 종류가 어디서부터 두 종류가 됐느냐? 저 근본 하나님 혼자  계시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의지 가운데서. 하나님 혼자 계셨고 하나님이 '내가  이런 것을 하나 해 보겠다' 하는 그 목적 정하신 그것이 하나님 다음으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에서부터 두 종류입니다.

목적 안에서 목적으로 지음받은, 목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 하나 있고,  목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목적대로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이용당하기  위해서 지음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목적으로 지음 받은 거 있고  목적을 위해서 지음 받은 것이 있어 이렇게 거기서부터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누어진 것입니다. 이러니까, 시발이 두 종류요 또 마지막의 결말이 두  종류입니다. 결말은 어떻게 두 종류인가? 하나는 천국이요 하나는 지옥으로  이렇게 결말이 두 종류로 갈라집니다.

 그러면 시발에서 목적까지에 걸어가는 그 생의 법칙 생의 방편은, 이것도 두  종류인데 이 생의 방편은 이것은 뚜렷이 두 종류로 나누기가 어렵고 좀 비슷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만 이 생의 방편에 가 가지고 혼합을 시키고 혼돈을  시켰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을 해석을 하는 데에 성경대로 해석하는 것과 인간  형편에 따라서 괸리하도록 해석하는 그런 인본 해석이 있고 신본 해석이 있고 또  사람들이 사는데 사는 목적이 하나는 천국 소망을 가지고 세상살이를 하고  하나는 세상 소망을 가지고 세상살이를 하고 그러니까, 다 같이 세상살이는  하기는 하는데 그 껍데기는 꼭 같으나 속으로 하나는 목적이 천국이요 하나는  목적이 세상이고 또 하나는, 같은 생활 하지만 하나는 성신의 감화 감동대로의,  영감과 진리대로의 생활이 있고 하나는 영감과 진리대로의 말은 하기는 하지만  자기 중심 자기 주장 자기 주관대로의 생활이 있고 이렇게 갈라집니다. 그래서  이 생활 방법이, 좀 방편과 법칙이 다릅니다. 사람이 두 종류이기 때문에,  동기도 두 종류요 목적도 두 종류요 생활 방편도 두 종류인 것입니다.

 두 종류인데, 요것을 단단히 구별해서 가르쳐 줘야 될 것입니다. 종류인데 하나  예를 들면 하나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요 하나는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첫째 아담에 속한 사람은 그는 뭘로 사는고 하니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사람으로서 삽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은 전부 다 그것이  악령은 뭐인가? 자기 주장의 영이 악령이요, 악성은 자기 주장의 인간 본성이  그것이 악성이요, 악습은 악령과 악성으로 말미암아 한 행동하면 그것이 한  행동했고 두 번 하면 두 번째 연습됐고 세 번 하면 세 번째 연습됐고 네 번 하면  네 번째 연습이 돼서 그 악령 악성의 생황을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자꾸 해서  보태 가는 그것을 가리켜서 습성이라 이렇게 그렇게 말합니다. 악습으로 이렇게  살고 또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안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로,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살고, 또 영감으로 살고 진리로 살고.

 그러면,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지만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고 또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이렇게 살기  때문에 겉으머리 생활은 같은 거 같지만 나중에 두 사람이 깊이 새겨서 이렇게  따져 들어가게 되면 나중에 가서는 충돌이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암만 사귈려고  해도 마지막에는 그 속이 다르기 때문에 모를 때는 이래 버물 버물 하지만  마지막에는 이렇게 충돌이 됩니다.

 충돌이 될 때에. 그러면 충돌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은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을 멸할라고 합니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의  행위는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의 행위를 멸할라고 합니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의 해 놓은 일들은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들의 일들을 멸합니다. 그러면,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들은 어디,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들의 모든 행위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의 행위를 멸합니다. 또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의 그  모든 행위들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의 행위를 멸하고 일을 멸하고 사람을  멸합니다. 사람을 멸합니다. 이러니까, 이 두 편이 두 종류인데 저 종류는 이  종류의 사람과 행위와 일을 멸하고 이 종류는 저 종류의 사람과 행위와 일을  멸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대립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멸하다니? 어디 사람을 멸할 수 있는가? 사람을 멸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들이 사는 생활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을 멸합니다. 죽입니다.

죽이다니? 무슨 소리인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생겨진 옛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죽여서, 그 사람을 그러면 죽여 가지고 어짜는가? 죽여서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사람으로 다시 살릴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마음과 몸이 다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가? 네. 그렇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데 그러면 죽이면 어찌 되는가? 죽이는 것은 어떤 게 죽이는 것인고 하니,  그리 돼 가지고 있어도 속에 알맹이가 그래 돼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본질과  본성이 그래 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감염돼서 물이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 베 쪼가리가 붉은 물이 들었으니까 붉은 물을 이걸 빼  버리면 하애 집니다. 붉은 물을 빼면 아주 붉은 물이 없어지고 난 다음에는 푸른  물을 들이면 또 푸른 베쪼가리가 됩니다.

 이래서, 예를 들어서 만일 둘째 아담에게 속한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되는  이 세 가지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악령으로, 악령에게 사로잡혀 있는 마음과  몸을 그것을 이거 탈색을 시킵니다. 자꾸 말하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사상과 주의와 그런 것이 이것이 벗어집니다. 벗겨지고 탈색이 됩니다. 탈색이  돼서, 그 사람이 처음에는 예를 들면 악령이라고 말하면 악령의 감화로 살라고  이라다가 자꾸 하나님 말씀을 이래 듣게 되면 악령의 감화로 살지 안하고 성령의  감화로 살라고, 자기가 압니다. 이게 악령의 감화냐 성령의 감화냐.

 예를 들면 오늘 주일날 지금 닥쳤는데 주일날은 이렇게 내게 대해서는 중요한  일, 내 살림살이가 왔다 갔다 하는 이런 중요한 문제가 있으니까 오늘 이 주일날  지켜야 되느냐, 주일을 지키면 살림살이가 다 패가 될 것이고, 오도 주일을  지킬라면 살림살이가 패가 될 것이고 또 살림살이를 손해 안 볼라 하면 주일을  범해야 되겠고 이럴 때에 자기 속에 감화가 오는데, '오늘 그렇지만 네가  살림살이 패가 되면 되겠느냐? 주일을 범해라. 범하라고도 뒤에 잘 믿지' 이렇게  말하는 고 영감이 있고 또 '내가 죽어도 주일은 다시는 내가 범할 수 없다. 내가  범죄함으로서 주님이 죽기까지 해 가지고 대속하셨는데 내가 주일을 범할 수가  있겠느냐? 오늘 살림 다 패가해도 주일을 범하지 않겠다' 하는 고 마음으로 자꾸  변화가 된다 말이오. 변화가 되면 그것이 악령은 쫓겨 나가고 성신으로서 그  사람이 사로잡히게 되고, 또 자기 중심인 그 악성은 차차 차차 제거되어지고  영감 성신의 '감화에 이와 같이 자꾸 사로잡혀서 성신의 감화의 사람이 되어지고  또 악습은, 버르장이 그거는 없어져 버리고 이제는 진리대로의 행위가 자꾸  되어집니다.

 이러니까,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물들여 놓은 그 마음을 주님의 대속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이제 변화시키는 그것이기 때문에 이편에 있는 사람은 저편  사람을 죽입니다. 저편 사람을 죽이면, 악령 악성 악습의 사람을 죽여 버리면  뭐이 됩니까? 죽여 버리면 그 마음과 고기덩어리만 있을 때에 그 마음과  고기덩어리를 주님의 대속의 마음과 대속의 고기덩어리와 또 주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은 성령의 감화의 마음과 성령의 감화의 고기덩어리와 또 성경대로의  진리의 마음과 진리의 고기덩어리로 변화시킨다 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서로 달라집니다. 이러니까, 하늘의 소망과 땅의 소망이  달라집니다. 하늘의 소망 사람은 땅에 소망 있는 그 소망을 이것을 하늘의  소망을 위해서 투자를 합니다. 이러니까. 땅의 소망을 하늘의 소망을 위해서  투자를 하고 또 하늘의 소망은 이거 하늘의 소망을 하기 위해서 땅의 소망 가진  것을 소망 가지지 못하도록 자꾸 없앱니다. 땅의 소망을 못 가지도록 하고 또  땅에 속한 소망은, 부부간이라도, 부부간이라도 만일 그 남편은 하늘의 소망을  가졌고 아내는 땅의 소망을 가졌으면 남편은 그 아내를 하늘의 소망으로 소망을  바꾸라고 하고 또 그 아내는 남편이 하늘의 소망으로만 사니까 재미가 없고  이라니까 자꾸 어둥거려 가지고 하늘의 소망을 그거 버리고 땅의 소망으로  살자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니까 안 되면 나중에 '그럴 게 아니라 하늘의 소망  반 땅의 소망 반 반반이 해 가지고 그래 살자' 이랍니다. 그래 살자 할 때에  '그러면 그래 하자 반반이, 뭐 너무 천국만 바라보고 살게 있느냐? 하늘의  소망만 위해 살지 말고 땅의 소망 반 하늘의 소망 반 그렇게 살자' 해서 그렇게  살자 하면 그 다음에는 뭐이 나오느냐? 이제 그라고 난 다음에는 '내가 이라면  못 살겠다. 못 살겠으니까 이제 하늘의 소망일랑 반을 할 게 아니라 십 분지  일을 하고 이제 땅에 소망을 십 분지 구를 하자' 이라다가 또 '그러면 할 수  없으니까 그래 하자' 하면 나중에 가면 '하늘의 소망을 다 버리고 땅의 소망만  가지고 살자' 이래 돼집니다.

 이러니까, 자꾸 하늘의 소망은 땅의 소망을 멸하고 땅의 소망은 하늘의 소망을  멸한다는 것, 사람이 두 종류요, 시작도 두 종류요 마지막에 결과 도 두  종류인데. 그 생활 법칙도 두 종류로 되어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이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두 종류를 혼돈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불택자의 종류의 생활  방편을 취하면 그 생활 방법을 허하는 것은 그것은 택자의 모든 생애와 구원과  택자의 성공을 돕는 일이 되겠습니까 이 택자의 성공을 파괴하는 일이  되겠습니까? ○○집사, 예? 파괴시키는 일이지요. 파괴시키는 일이 돼. 이제  파괴시키는 일이 되니까 자기가 그와 같이 살지만 그것이 자기를 돕는 행위겠소  자멸하는 행위겠소? 예? 뭐입니까? 자멸하는 행위지요. 자살하는 행위지요.

요것을 똑똑히 여러분들이 구별시켜 주십시오.

 저 지난밤에 ○○○조사님이 설교하는데 그것을 약간 말을 했습니다. 말을  했는데, 공과에 있는 걸 말했는데 그런 것을 좀 똑똑히 그렇게 구별 시켜서 주면  좋습니다. 뭐이든지 그렇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택자들이요 세상 지식대로 사는 것이 불택자들이요,  불택자 행위라 말이오. 그 사람이 불택자인지는 모르지만 불택자 행위는 그렇다  그말이오. 그 생활하다가도 나중에 죽을 때라도 택자로 돌아오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 말씀대로 사는 행위와 세상 인간 지식대로 사는 행위와 이 두  행위가 서로 합할 수 있습니까? 합하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성경 말씀대로 사는  행위는 인간 지식대로 사는 행위를 차차 차차 이것을 없애고 성경 지식대로 사는  행위로 이렇게 변화시키려고 애를 쓰고, 또 세상 지식대로 사는 이 행위는 성경  지식대로 사는 행위를 변화시키려고 자꾸 애를 씁니다.

 며칠 전에 신문에 보니까, 어제인가 보니까, 어제, 어제 보니까 무슨 신문,  조선 신문인가 어디인가 보니까 인제 서울에서 단군 신사를 짓기로 그렇게  운동하다가 원첨 기독교가 반대를 해서 그만 그것을 포기했다. 서울에서는  포기했다 이라지만 또 부산서는 지금 또 짓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언제든지  짓기는 짓습니다. 짓는 이게 뭐이냐? 지금부터 와, 지을 때부터 지금 그걸  반대하는 거는 뭐이냐? 이게 뒷에 가서는 단군 신사에 절을 하지 않으면 기독교  이걸, 뭐 전부 학교 아이들 단군 신사에 절을 다 시키고 이래 가지고 큰 운동이  일어날 터이니까 미리부터 반대하자 이래 가지고, 왜정 말년에 이제 신사  참배했던, 그때는 무심히 했지만 지금은 이제 그걸 미리부터 알고, 그때 패전은  하기는 했지만 지금부터, 단속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 전부 다 반대를 해서,  이제는 단군 신사에 절하는 것은 우상 숭배이기 때문에 이거는 안된다 이래서  미리 단속을 해 가지고 반대하니까 그 일이 이루어지지를 안했습니다.

이루어지지 안했으니까 그것도 운동은 운동입니다.

 이랬는데, 이제 ○○○선생이 '이러니까 이거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것을  좀 '기록해 가지고, 목사님이 그걸 기록해 주시면 그것을 자꾸 학생들에게  인식을 시켜야 되고' 저 먼저 내가 언제 한번 기록해 준 일 안 있소? 예, 뭐  그때 내가 한번 기록했는데, 언제 거기 대해서 주일 공과에 했던가 뭐 한 거  하나 있는 거 같은데? 예? 잊어 버렸어? 단군 신사에 그런 데 절하지 말라고,  뭐이든지 생명 없는 데 절하지 말라고 서로 마주 볼 수 없는 데는 산  사람에게라도 절하지 말아라 하는 그것을 그때 그 세밀히 한번 말해 놓은 그런  교훈 한번 한 일 있는데. 그거 내가 그걸 깨달았기 때문에 그걸 미리부터 그렇게  말해 놨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지금 뭐이냐? 그걸 짓지 못하게 한다는 말은 소용없다 말이오.

언제든지 짓기는 짓습니다. 언제든지 짓기는 지으니까 지금 짓 지 못하도록  운동하는 그 운동은 그것은 우리 할 운동은 아니라 말이오. 우리 할 운동은  아니고 뭐 할 운동? 지금 어떤 걸 지어 놓고 어떻게 해도 생명을 바쳐서  거기에는 절하지 안해야 된다 요거 지금 우리가 지금 연습하고 위해서 기도하고  그때 이겨서, '단군 신사에 절 안 한다고 죽이면 사형을 당했으면 사형을 당했지  절하지 안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에게 믿음을 주시고 이런 참된 진실한 신앙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지금 생명을 내놓을 그걸 준비를 해야 되지 그거  지금 못 짓구로 하는 그 운동은 또 외식 운동이라 언제든지 껍데기 운동은  알맹이 운동을 위하는 것인데 알맹이 운동이라야 돼지지. 지금 그 운동은, 벌써  그거는 대단히 단군 신사를 반대하는 거 같지만 그거 가지고는 반대가 아니라  그말이오. 그거 가지고는 반대가 아니라.

 이러니까. 그 반대하는 것은 그걸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개인 개인이  죽어도 우상 숭배 안 하겠다 하는 이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좋은 운동이요  알맹이 운동인지, '단군 신사에 절해서는, 이순신 장군의 뭐 동상이니 그런데  절하는 것이 그것이 우상 숭배이기 때문에 안 해야 된다 하지 말아라' 이 사람  운동이 알맹이 운동인지, 이거는 안 해야 되는데 우리로서는 안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서 순교를 당해도 하지 않도록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절히 하나님에게 구하는 그 운동과 이제 단군 신사에, 모두  이 순신 장군이니 이런 신사들에게 절해서는 안 된다 하는 그렇게 교훈 하는 것,  절하지 말아라 하는 그 교훈이 알맹이인지. 그거 절하지 안해야 될. '절하지  안할라면 너희들이 하나님에게 미리부터 그만치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되니까  기도해야 된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입도록 너희들이 기도의 그릇이  차도록 해야 된다.' 그러면 그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 알맹이 운동입니까? 어느  게 알맹이 운동이오? 자 ○○○씨 한번. 어느 게 알맹이 운동이지요?  신사 참배 하지 말라하는 그게 알맹이 운동인가, 신사 참배 안 하도록 기도해라  하는, 기도를 많이 하도록 하는 그게 알맹이 운동인지, 어느 게 알맹이  운동입니까? 저 ○○○선생 한번 대답해 봐요. 늦게 와도 알기는 아 네. 맞았어.

그거 알맹이 운동, 바로 말했어. 그래. 기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 그때  생명을 내놓고 하지 하나님 도우심 입지 안하면 생명 내놓고 할 사람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안 해야 되는데 나로서는 안 할 수 없다.

안 해야 된다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면 안 할 수 있는 줄 알고 하지 마라는  그것은 껍데기 운동이기 때문에 똑똑히 알고 보면 그 속에 마귀 그놈이 지금  공작하는 거라 말이오. '안 해야 된다. 너는 안 할 수가 없다. 안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이 도와 주시기를 네가 간절히  기도해라.' 기도해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기까지 노력을 하는 그 운동하는  것이 제일 알맹이 운동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오늘 공과에서는 두 사람이 있고, 이것은 동기와 목적이  다른데, 방편도 다른데 이 방편에 혼돈 시킨다. 이 생활 법칙을 혼돈 시킨다.

생활 법칙을 혼돈 시키는데 이 생활 법칙을 혼동시키면 어찌 되느냐? 이 법칙은  저 법칙의 사람과 행위와 일을 멸하고 이 법칙의 행위는 상대방의 사람과 행위와  일을 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늘에 속한 사람이 땅에 속한 사람의 법칙을 쓰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게 자살 행위다. 또 안 믿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불택자가 택자의 생활 법칙을 하면 어찌 되느냐? 택자의 생활 법칙을 하면 그  생활 법칙은 불택자의 생활 법칙과 일과 사람을 멸하는 것입니다. 그거 다 서로  서로 쓸 수 없고 왜? 불택자들의 법칙은 멸망을 자꾸 성장시키고 또 택자들의  법칙은 생명과 평강을 성장시키고, 이라니까. 불택자가 택자들의 법칙을 쓰면 그  멸망을 깨트려서 멸망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에 자멸하는 행위가 되고 만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자멸행위가 된다는 요것을 똑똑히 구별해서 아는 것이  좋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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